22-037 율법과 이혼, 새언약(율법 외에 한 의)와 결혼 (롬 7, 1- 6).mp3
9.58MB


22-037 율법이라는 전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새신랑과의 결혼  (롬 7, 1- 6)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미 4:2, 개역)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의에 자유한 죄의 삯은 사망, 죄에 자유한 의의 은사는 영생 (롬 6,19-23)
로마서 2022 2024. 2. 17. 08:47
22-036 의에 자유한 죄의 삯 사망, 죄에 자유한 의의 선물 영생  (롬 6,19-23)

〈로마서 7, 1- 6, 신약성경 247쪽, 찬송가 358장 새 552 아침 해가 돋을 때, 236장 새 205 주 예수 크신 사랑〉 

〈찬송가 358장 아침 해가 돋을 때, 새찬송가 552장〉 

1. 아침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2.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3. 한번 가고 안 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4. 밤 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로마서 7, 1- 6, 신약성경 247쪽, 찬송가 358장 새 552 아침 해가 돋을 때, 236장 새 205 주 예수 크신 사랑〉 

(롬 7: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2, 개역)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롬 7:3, 개역)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롬 7:4, 개역)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7:5, 개역)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롬 7:6, 개역)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찬송가 236장 주 예수 크신 사랑, 새찬송가 205장〉 

1.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듣게 또 들려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2. 아침의 이슬방울 쉬 사라짐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듣기 쉽게 늘 말해 주시오 
   날 구속하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3. 주 예수 나를 위해 이 세상 오셔서 
   날 구속하신 은혜 말하여 주시오
   나 같은 사람 위해 주 보혈 흘렸네. 
   이 복스러운 말씀 또 들려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4. 이 세상 헛된 영광 날 미혹 할 때에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들려주시오
   천국의 빛난 영광 내 눈에 비칠 때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롬 7:1,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율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 ㉠그, '형제들'
(롬 7:2, 새번역)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납니다.
(롬 7:3, 새번역)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그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다른 남자에게로 갈지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않습니다.
(롬 7:4, 새번역)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 ㉡그, '형제들'
(롬 7:5, 새번역)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롬 7:6, 새번역)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옭아맸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마 5:17, 개역)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7:12, 개역)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22:40, 개역)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눅 16:16, 개역)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24:44, 개역)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행 13:15, 개역)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28:23, 개역)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과 선지자는 거울입니다
결국 율법을 쥔 자들은 반드시 위선 하지 않고 싶어도 위선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을 쥐게 됨은 지키게 되든 말씀을 실천하게 되든 상관 없이
법을 쥐게 됨은 동시에 반드시 남을 정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치 만약 율법을 지킨 것에 보람이나 만족감을 가져서 기뻐하는 그 순간에
딱 맞게 율법을 어긴 자가 눈에 확 보이는 겁니다
자기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절대로 눈에 안 띠이던 불법자가 왜 자신도 불법자와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죠
율법을 지킨 그 순간에 불법자가 옆으로 지나가면 
아니 더 눈에 확 띄이라고 주님이 일부러 보란 듯이 코 앞에 지나가게 하면
그 놈을 반드시 정죄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율법이 기능이 아닌 존재인 자신과 결합을 하게 되니
찌기 쓰레기 찌끄레기인 자기 존재와 혼합시킨 그 우상인 탐심을 반드시 발휘하도록 말이죠

바로 그런 모습을 거울로 비춰주면 그 완악한 모습인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왜 필요가 없을 까요 네 맞아요 모세언약 지켰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더 필요하지 않은 거죠
이것이 북이스라엘 곧 교만한 앗수르를 사모하다가 우상숭배하다가 탐심이지요
그 앗수르에게 망하는 왜? 똑같이 교만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 곧 모든 인간은 중심이 없다 라는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어요 그러면 새 영을 달라고 해야 할 판국입니다
율법 외에 한 의를 달라고 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그게 다윗 언약인 새언약이거든요

그런데 다윗언약을 다 거부해요
즉 다윗언약을 외치는 참선지자를 다 죽이는 겁니다

참선지자는 바드시 법을 쥔 자들의 손에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노선처럼
안식일 지키는 자들의 손에서 반드시 안식의 주인이 죽듯이 말이죠

자기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을 좋겠습니까?
아니 율법 지킨 그 순간이 가장 영광스러워서 얼굴에 광채가 나는 순간인데
거울은 그런 얼굴에 광채가 나는 얼굴을 비춰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얼굴을 발가벗은 모습으로 비워준다 말이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돌삐 쳐죽일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 땅에 쓱쓱 쓴 글의 내용이 바로
발가벗은 모습을 한 얼굴을 비춰준 거울모드 였던 거죠
그 카이 반드시 간음녀를 죽이겠노라 라고 다짐했던 그 열성이
1초도 안되어서 줄행랑 치며 도망갈 정도로
급하게 유턴할 정도의 내용이다면
이건 제대로된 거울로써 비춰준 겁니다
간음죄 저지른 여자와 동급의 죄가 아니면 돌삐 놓을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현장에서 말이죠
그 현장 실시간과 막먹는 죄를 거울로 비춰주지 않으면 도망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선지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유민상이라는 죽일려는 첩자들이 살인에 실패하니까
특히 김지민이가 말이죠 개콘에서 말이죠
실패다 라고 하잖아요 그 코너 제목이 나는 킬러다 이다 말이죠
즉 실패다 라고 끝내는게 아니라 또 반드시 도전하겠다 라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은 반드시 킬러들의 손에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참선지자 거울을 말이죠
율법도 말이죠 아니 율법도 죽여버렸는데 선지자 까짓꺼 못 죽이겠습니까
그럼 당연히 예수님도 죽이는 것은 지극히 당당당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율법을 알맹이를 싹 빼버리고 껍데기만 남겨놓으면
모든 명분을 다 갖추게 된 거죠
이것을 속임수 라고 합니다

이 속임수 부릴줄 알고 선지자는 거울로써 무조건 이유 없이
무조건 우리를 발가벗었다 라고 멸망의 심판을 이유 없이 무조건 증거합니다
그럼 당연히 반작용 곧 노아홍수심판의 반작용인 바벨탑과 국가와 민족과 종교가
흩어지지 말자 라고 반작용으로 즉 한풀이오 곧 행함으로 반드시 나오는 겁니다
그 바벨탑이 그들이 사수하고자 한 성전 아닙니까

진찌 참성전의 기능은 냅다 갖다 버리고
성전 껍데기로써 돈 벌고 그 돈으로 독립자금 총알로 사용하고
국가재건 독립을 추구함으로써 흩어지지 말자 라고 
바벨탑을 쌓는 겁니다 그 벽돌을 잇고 잇고 이어주는 본드가
역청 아닙니까 방수에다가 견고하게 하는 풀 밥풀역할
알고보니 석유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정작 성령은 단절
곧 언어만 톡 하고 건드리니까 모조리 다 단절이 되어서
뿔뿔히 흩어지는 겁니다
반작용인 한풀이가 그 행함이 그 살인의지가 흩어지더라 말이죠
잠시 마귀가 세 번 시험하고 잠시 떠났다고 했지
그 시험 세가지 내용도 하나로 뭉치면 흩어지지 말제이 라는 겁니다

결국 잠시 떠낫다고 했지
언제든지 예수님을 훼방했다 말이죠 마귀가 말이죠
그런데 마귀는 정작 등장하지 않아요
그 세가지 시험으로 유대인을 다 장악한 마귀가 그럼 어디로 잠시 떠난 겁니까
놀랍게도 바리새인과 제사장 율법사 유대인에게서
그 악마성이 계속 들추어지는 겁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 마다
거울을 비춰주니까 말씀을 율법을 비춰주니까
그들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율법 가장 잘 지켰니 라는
마귀할멈의 진짜 본모습을 비춰주니까 그 거울 되신 예수님을 깨뜨리고
그 백설공주 가장 아름다운을 저주할려고 독을 먹일려고 하는 것처럼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을 저주할려고 하더라 말이죠
아니 수천년먹은 마귀할멈의 가짜 모습으로 백날 아름답게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모습이 이미 있는데 말이죠
그러니 가면 곧 위선으로만 사는 겁니다
늘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말이죠
그 남의 눈을 의식하는 아름다움을 갖춰서 뭐하게요
어차피 본 모습이 아니면 백날 해도 소용이 없는데 말이죠
그러니 허구가 그냥 허구로 안개처럼 사라지듯이 남는게 아니라
허구 자체가 자신들의 본모습이기에
가면갈기만을 하는 겁니다
오늘은 이 가면
내일은 저 가면
시대마다 다 다른 그 당시의 남들의 시선에 따라서 매번 다른 가면으로 갈아타면서 말이죠

바로 그런 꾀에 도리어 율법은 요놈 잘 걸렸다 라고
율법 자체가 올무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올무에 걸려든 겁니다

율법을 가면으로 갈아쓸려고 하다가
즉 모세의 자리에 앉고자 말이죠
도리어 율법의 원래 취지인 죄 아래 가두고자 한
선지자를 반드시 죽이는 살인자로 발각시켜 버리는 겁니다

안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약 조상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선지자를 안 죽일겁니다
이 보십시오 우리는 절대 그런 절차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자
선지자의 무덤을 흰색으로 거룩하고 하고
박물관으로 세워서 어린학생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도적질 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도리어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하는
절대로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하는 것이 율법의 취지이거든요

그럼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선지자는 우는데
그래 너 망해야 할 자 인줄 아는 구나 라고
도리어 선지자를 죽이게 되니
그 선지자가 올무로 작동되는 줄도 모르고
거울로 작동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자 이렇게 시온이라는 세상의 중심인 시온성전에서 나오는 율법으로 인해
제사장 기능 성전기능으로써

죄 아래 가두어짐을 당하고 선지자 곧 인자를 죽임으로써
어린양을 남이 아닌 나의 죄가 갈기 갈기 어린양을 찢어죽임으로써
되도 않는 나의 죽음도 아닌
어린양의 절대죽음 이라는 이 3일의 간극을 더더더 벌림으로써
비로소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
간음녀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이제 내가 거룩측량해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인을 심판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거꾸로 거룩측량 성전측량으로 인해서
제일 끄트머리에 놓여지는 그 문둥병자 소경 앉은뱅이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인 그 처음자리에서
음녀의 자리에서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너의 남편 바알우상을 반드시 죽이고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니까
너에게 새 장가를 가야겠다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아니 유대인이 바알숭배 그거 과거인데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의 우상척결운동으로 이미 다 제거했는데
왜 자꾸 너의 남편 바알이라고 하느냐 말이죠
우상숭배시절은 끝나고 도리어 독립운동이 활개를 치면서
여러파들이 지금 로마와 전쟁 중인데 말이죠

오로지 하나님만 믿는데 말이죠
바로 그 하나님이 가짜요 우상이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혼합물 즉 찌끄레기를 합쳐 버린 그 하나님을 죽여버리면
그 율법의 껍데기를 죽여버리면
경건의 모양 즉 경건의 능력은 거부하고 말이죠(다윗언약은 거부하고 인애와 자비는 거부하고)
경건의 모양 껍데기 즉 모세언약 곧 번제와 제사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이 껍데기를 죽여버리면
율법껍데기와 유대인 자신을 합체 시킨 그 가짜 하나님이라는 죽은자의 하나님을 죽여버리면
비로소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과 결혼 곧 인애와 자비를 베푸심을 누리게 된다 말이죠

그래서 율법에 대하여 함께 죽는
심판을 왜? 율법은 죄 아래에 가두는 것이니까
이 절대죽음이라는 찢으심을 율법으로부터 당해야 한다 말이죠

그리고서 그 심판을 심판주 본인이 날려놓고
대신 매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다시 싸매어주심으로써

이 인애와 자비를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언약으로
약속으로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 찢으심과 다시 싸매어주심이라는 이 간극 벌리기로 인해서
나는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애서
율법과 함께 죽고
그러니 이미 죄와 함께 죽었다 말이죠
더 이상 죄를 묻거나 따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죽었거든요

그럼 율법이 죄라는 말이냐? 오늘 본문에 나오죠
아 다음번에 할 7절에 나오군요

(롬 7:7,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이 죄를 겨냥해서 논개처럼 껴 앉고 자폭하듯이 죽었어요
그런데 그 죄와 한 몸인 나 또한 율법과 함께 빠져 죽는 겁니다

그것을 지난 번에 하늘에 날리는 연 그 연줄로 표현했고 수갑으로 표현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얽매여 있다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인 결혼의 관계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롬 7:6, 개역)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이 얽매여 있음의 반대 말이 뭡니까? 지난 번에 이 얽매여 있음의 의미가 복종으로 표현되었거든요

(롬 6:20, 개역)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롬 6:20, 새번역)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롬 6:20, 공동)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여러분은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습니다.

종이였다 말이죠 복종의 관계 이제 그 죄라는 남편이 죽으면
이제는 자유 곧 얽매이지 않게 되는 거죠

이 쪽 죄와 한 몸의 결혼관계가
반드시 너 남편을 죽여서 내가 너에게 새장가 가겠다 라고 했듯이

(호 2:19, 개역)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호 2:20, 개역)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023.10.07 창녀가 된 이스라엘에게 장가 가리라 (호 3, 1- 5) 1
2023.09.16 첫맹세 광야(죽음을 이긴 사랑)에서 맺은 언약대로만 (호 2,14-23) 2
2023.08.27 주신 것 도로 빼앗는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리라) (호 2, 8-13)
2023.08.05 음란을 제거하라 그제야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호 2, 1- 7) 1

그러니 이 전남편과의 이혼을 반드시 거쳐서 새장가 드시는
그 분이 오지 않으면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모르듯이

결혼의 세계관을 판대기로써 표현한 거죠
그러니 창조주가 누군지 안다 라는 말은
세계 판대기가 사랑으로 창조된 세계인지
선악의 법 법 법 법을 따지는 법으로 창조된 세계인지를

어느 판대기의 남편이냐 로 서로 달리지는 거죠
이게 두언약인 것처럼

두 남편
곧 나를 악이 아닌 선하게 만드는 남편인지
(율법으로는 사람은 온전케 못함에도 불구하고 선해지고픈 탐심이라는 우상숭배로 자꾸 썩을려고 자꾸 간극을 좁힐려고 다가가는 음녀가 되는
선해지는게 뭐가 나쁘냐? 선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동시에 남을 악으로 규정하기에
그러다가 결국 남편 예수님 마저 악으로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퍼부었으니
그거 감추고 그거 명분을 세우고자 모세언약 곧 율법 만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하는
거리끼는 걸림돌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아니면 나를 약속의 세계 속에 집어넣는 남편인지
선악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삼일의 간극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넘어서보라 말이죠
내가 대신 그 절대저주인 삼일의 간극 곧 하나님의 원수됨을 씻겨주는
막힌담을 타 넘어서 너에게로 가겠다 라는 이 사랑만 또렷히 밝히 보이시겠다 라고
예수님 자신의 죽음으로 원수됨을 막힌담을 
그 성전사수를 성전 헐라 3만에 짖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율법으로 백날 나의 죄악이 수시로 올라오는 그 지옥의 몸 됨을
억누르고 또 올라오면 또 억누르고 백날 해도

율법으로는 온전케 못하는 그 육체를
정작 율법은 어설프게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한다고
께어진 항아리 본드로 백날 정교하게 붙여도 소용없음을
도리어 율법으로는 깨뜨리고
시온에서 나온 율법으로 율법과 함께 공중해체 깨뜨리시고
함께 죽고 
곧 찢으시고
어린양과 함께 갈기갈기 찢으시고

이제 죄와 함께 죽었으니

(롬 4:19, 새번역)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롬 6:7, 새번역)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8, 개역)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7:6, 개역)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우리가 로마서 6장에서 살펴봤지요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으리요 라는 자들이 또 반드시 생겨나거든요
그거 안 속습니다
그렇다고 성화론자들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나오는데 그것도 안 속습니다

(롬 6:14, 개역)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5, 개역)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6, 개역)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7, 개역)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 짓냐 안짓냐 라는 문제
곧 인간 숙제의 판대기 세계관에서
죄가 덮쳐진 죄가 왕 노릇하냐 못하냐 로 바뀌었다 말이죠
바뀐게 아니라 원래 그랬는데

(롬 6:14, 개역)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여기서 주관 이라는 표현이 나오네요
원래 죄가 왕노릇했는데
이제는 은혜가 왕노릇으로 다 이루었다 십자가상에서 말이죠

[주관치] 라는 표현과 [아래 있지]를 다른 번역을 보니

(롬 6:14, 새번역)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새번역은 [다스린다] 이고

(롬 6:14, 공동)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동은 [지배]로 [주관]과 [아래]를 통잏했고

(롬 6:14, 쉬운)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에게 왕노릇 할 수가 없습니다.

쉬운은 [왕노릇]

(롬 6:14, 현대어) 죄가 다시 여러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율법의 속박을 받으며 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로운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어는 [주인] 이라는 표현과 [속박] [노예] [자유]로 표현했도 카톨릭은 [군림]으로 표현 그 외 번역은 중복된 표현 이더군요

(롬 6:14, 가톨릭)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자 그러니 그  군림 지배 왕노릇하던 죄가 죽었다

(롬 6:16, 개역)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와 죄의 종이 죽었다 사망했다 이미 죽었는데
뭘 죄를 짓니 마니 하냐 말이죠

이 로마서 6장 16절을 다시

(롬 7:6, 개역)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장 6절에서
얽매였던 것에 대해여 죽었다
이미 죽었다 말이죠
죽었기에 벗어났다 (벗어남이라는 자유는 상대적인 얽매임을 반대죠)
이제 율법에 저촉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 귀를 못 알아먹는 자들은
여전히 율법이 남편으로 남아있기 때문인 겁니다
즉 이 말은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고 거부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신앙인 거죠
이게 음란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음란죄가 아닙니다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죄라고 했거든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그럼 예수님을 기준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를 알아야 하는데
모세언약에서 규정한 그 죄 아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죄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더 깊은 죄 곧 형제를 미워하는 것 그 자체도 살인죄이다 라는
더 깊은 의미를 거부하는 거죠

놀랍게도 오늘날 성화론자들의 주장과 똑같아요

이들은 각자 개인의 죽음 개인의 다시 살아남을 항상 주장해요
왜? 율법의 행함을 쫓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함께 죽고 함께 다시사는 것이 없어요
이거는 개인 숙제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즉 음녀처럼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고 신랑과 결혼하겠다 라고 나서는 것은
율법을 남편으로 삼는 것 그 한계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러나 바울은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야만
이 새신랑으로 인한 새 영 새 마음
곧 아침 샛별을 주시리라 가 되는 거죠

네 맞아요 율법이 여전히 남편인 자는
자기가 샛별의 자리에
주지도 않았는데 받은 척 하면서 그 자리에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겁니다

아니 율법에 의해서 찢겨지는 그 주의 성실하심으로 갈기 갈기 찢으시는
그 간밤의 심판도 거치지 않고서 어떻게

삼일의 간극인 하나님의 원수 됨도 거치지 않고서
막힌 담을 헐고서 넘어오시는 주님의 대신 매 맞는
원수됨을 하나 되게 하시는 그 사랑을 그 인애와 자비를 바라보겠냐 말이죠

성화론자들처럼 다들 법 법 법을 따져요 
나는 너 보다 번제와 제사를 더 많이 쌓았다 라는
그 완악함을 추구하고
그거 안 알아준다 라고 죽여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 됨의 그 심판을 그 찢으심을 거치지 않으니까
슬픈 눈물로 씨앗 뿌림을
근심을
잿더미 됨의 절망 쫄딱망하는 포로됨 죽으면 죽으리라를 거치지 않으니까

도리어 심판하고 정죄하면서 달려들게 되니
왜냐하면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찢으니까 말이죠
율법을 도리어 자기들의 인애와 자비가 없음을 들통당하지 않을려고 번제와 제사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원수됨을 가릴려고 하듯이 하고
거울 증상물로 거울 비춰주듯 발가벗은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을 깨뜨리듯이
선지자를 죽이는

이 율법과 선지자는 죽이는
율법은 껍데기로 선지자는 거짓선지자로 대신하는
그 속임수에 과연 넘어가겠냐 말이죠

바로 그런 율법을 쥔 한 몸 된 그 결혼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이혼으로써
전남편 죽이고 바알을 죽이고 율법 껍데기 죽은자의 하나님을 죽이고

율법 외에 한 의 라는 새신랑으로써

이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왜? 율법은 사람을 온전케 못하기에
모조리 다 죽이는 죄 아래 가두기에

이제는 산 자의 하나님
살리는 영으로써
이 의의 남편이 오심으로써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는
예루살렘 딸과 결혼하는 새언약

비로소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즉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단다

이것 때문에
전남편과 한 몸 된 죄의 종이 된 모습이 다 들통당하는
세 번 부인 하지 않겠다 장지지겠다 라고 해놓고서는 끝까지 따라가겠다 해 놓고서는
내가 저 사람 알면 장지지겠다 라고 모른다 라고
이 꼬끼오 간극 세 번 넘어서보라 라고
죄의 종인데 무슨 수로 넘어서겠냐 말이죠

비로소 웁니다
하나님의 원수임을 텅텅텅 빈 털털이 음부의 권세가 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화로다 화로다 라고 우는 겁니다

이 원수 됨을 거쳐서
그 모른다 함을 반드시 압니다 로 바꾸시는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내가 본래 남편이다
너를 다시는 모른다 즉 황무지라 화로다 지옥의 몸이다 하지 않겠노라
내 너를 다시는 버리운자라 하지 않겠노라
왜? 이 십자가의 영광을 주님 홀로 다 이루셨기에
드디어 의문의 증서 인간의 한계치인 
율법의 행함으로써는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주님 홀로 다 이루셔서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면 될 것을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그 율법은 저 분이 이루실 분이야 너는 안돼 라고 저분을 가리키는 안내양
몽학선생으로써
그 율법의 완성으로써 의문의 증서를 도말하시고
이제

율법 외에 한 의와 결혼하는
즉 율법과는 이혼하고 말이죠
율법은 무조건 이유 없이 너는 뭘 해도 죄야 라고 정죄만 하니까
이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네
왜? 죄와 함께 이미 죽었으니까

사망 권세를 멸했는데
자꾸 정죄한다는 말은 사망권세를 인간들이 자꾸 되살리는
마치 이미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애굽을
나 다시 돌아갈래 라고 박하사탕처럼 외치는 거다 말이죠

마침 제 블로그에 검색을 하다가 스쳐지나가듯이 채팅한 내용을 잠깐 봤는데
누가 저에게 당신의 주장을 들어보면 자꾸 죄책감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라고 평가하더라 말이죠

뭐 채팅으로 주고 받는 글에 뭐그리 말하고픈 것 다 담아서 전했겠습니까
워드 키보드 치다가 틀리면 다시 두드린다 라고 정신없었는데
한편으로만 본 거죠
정작 마귀 앞에서 즉 사람들 앞에서 자꾸 죄책감 가지는 것
이미 채팅한다는 의식 속에 이미 죄책감이 깔려있으니 말이죠
그거 없어진다 라고 될 문제가 아니라
정작 물론 죄책감 없어지는 인간 없어요 내일 되면 오히려 더 죄책감이 그 빈자리
그 결핍을 더더욱 채울려고 더 달려들테니 말이죠
문제는 그렇게 인간과 마귀 앞에서는 그렇게 죄책감 잘 드는 인간이
어찌 예수님 앞에서는
젖먹이 무능한 자 앞에서는 하나도 안든다 라는 점입니다
마치 강자 앞에서는 머리 수그립니다 무릎 꿇어요
그러나 약자 앞에서는 절대로 인간은 머리 안 숙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거든요
그러니 자신의 행함 여부로 판단하는 것은 모조리 다 한풀이 반작용인 겁니다

행함으로는 의에 거룩에 이를 육체가 없어요
의인은 없나아 하나도 없어요

오로지 율법 외에 한 의 곧 예수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원수 됨을 한 몸 되게 하시는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또렷하지 않으면
모든게 흐릿하고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아니 또렷한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데
남편이 있는데

왜 자꾸 가정부처럼 도자기 깨먹었다 라고 돈 무라줘야 한다 라고
나는 무라 주는데 왜 너는 안 무라 주냐 라고
나는 남을 7번 용서하는데 너는 왜 남을 용서하지 않느냐

이게 마귀들입니다
이 마귀들이 성화론자들이
교회를 다 장악했다 말이죠
왜 천주교나 불교로 가지 않고
왜 교회를 다 장악하는지 말이죠

네 맞아요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는 반복일 뿐입니다
주 안에서는 이미 다 이루어졌고

이미 죄에 대해서 죽었어요
이제 자유입니다 막 사세요 ㅋㅋㅋ

이것이 자유케 하시는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곧
말씀이 진짜 본래 남편이 나오는 예루살렘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파괴 되었고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제 걸어다닌 참성전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한 몸 된 몸으로써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사는

(롬 7:6, 개역)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 순종한다 라고 했어요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다 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의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즉 반대의 의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을 알수 있겠죠
곧 자기 의를 새우는 것

바로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는 것입니다

거보세요 성경말씀이 딱딱 떨어지잖습니까

예수님과의 충돌을 보여줬던 바리새인 곧 유대인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예수님을 임금삼고자 할떼 도망을 치셨는데
예수님은 정작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셨거든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로 작정됨에 복종 하셨거든요

그 유명한 고난의 종 이사야 53장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2, 개역)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개역)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개역)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개역)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개역)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8, 개역)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9, 개역)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11, 개역)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 53:12, 개역)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사야 53장 고난 받는 종 이라는 이 제목은 무지 무지 기억하거든요
왜냐하면 성화론자들에게 배워서 그래요
무지 강조를 하거든요

마치 유대교가 오늘날까지도 이 구약임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53장을 찢어버렸다 말이죠
그런데 신학공부하는데 열심인 이 성화론자들이 무지 무지 강조함에도 부구하고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요 부분 10절 앞엣것은 워낙 유명해서 다들 외울 정도이지만
10절 부터는 외우기가 힘드니 흐지브지한데 그렇다고 못 외워도 의미만큼은 무지 강조가 되어야 하는데 물론 무지 강조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지만

바로 요 부분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라는 부분이다 말이죠

물론 앞의 내용도 다 이 의미인 것 맞아요
그런데 십자가 이야기 하면 왜 짜증을 내고 안색이 갑자기 변하는지

마치 너는 왜 너가 해야 할 숙제를 남에게 자꾸 떠넘길려고 하느냐 라고
막 혼내는듯한 분위기를 한 두 번도 아닌 그것 밖에 없더라 말이죠

그래서 아직도 수준이 낮다는 둥 어린아이 젖먹이 라는 둥
아직 딱딱한 음식을 못 먹는다는 둥

무슨 단계측정기를 달고 다는 것 같더라 말이죠
그것을 다 겪어서 지금에 와서 보니
우와 사 기 꾼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는지

그 꾀는 자를 다 보여주셨던 거죠

되도 않는 의문의 반복을 
조건 못 갖추었다 라는 둥
그런데 은연중에 나오는 자기들의 실수를 들키면
얼른 가리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저 한 숨만 나오는 거지요

지 혼자 지옥에 가면 될 것을 지도 안가고 남도 못가게

아무리 봐도 중독된 자들 같아요

모세의 자리 한 번 앉아버리면
샛별의 자리에 한 번 앉아버리면
자기 알아주는 자
자기 안 알아주는자만 귀신같이 갈라놓고서 정치만 무당 짓만 하는 거지요

그 카이 무당의 언어 밖에 없는 겁니다
선악의 언어인 거죠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모조리 십자가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선악의 언어로 보면 모조리 자기 숙제 할 것 밖에 없어요

또 개인 숙제로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 없는 주님의 숙제가 없는

자기 혼자 죽어야 하고 자기 혼자 다시 살아나야 하는 자기 숙제 뿐인

그 의문의 반복
자기 혼자 죽는 것은 자해 자살이나 하질 않나
자기 혼자 다시 살아나야 하는 숙제는 이게 나는 어려운 숙제를 했으니
보상 받아야 해 라고

성화론자 지들 끼리 보상해주듯이 자기들끼리 서로 알아주는
인정해주는
상호인정 상호기대 상호기만

이게 종교죠 종교오락 마약이지요

그러니 광명한 천사가 따로 없어요 다들 천사의 얼굴이라 ㅋㅋㅋㅋㅋ

이웃사랑실천의 달인들이라

자기가 아는 이웃이나 섬기고 말이죠
철천지 원수 사마리아는 삥 둘러가는 패쓰해 버리지요
마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분리장벽 같아요

그들이 말씀을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분리장벽을 더더더 높이 쌓는 것 같다 말이죠
막힌 담을 더더욱 높이 신비롭게 넓게 뚜껍게 더 크게 쌓는
시온산에 도배한 산당 우상숭배같아요

괜히 쌓는 바람에 더 넘어설려고 허물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거죠

그러면 더더더 멕시코 미국 장벽처럼 또 쌓고 또 쌓고
가인이 쌓은 에녹성처럼
우리끼리는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바벨탑처럼
이게 짐승인 국가고
이게 음녀인 종교 아니야 말이죠

경계선 긋기

어디 십자가 앞에서 속이느냐 말이죠

그러니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하게 하기는커녕
더럽기 짝이 없는 모습만 드러나는 거죠
그거 건드린 선지자 다 죽였고요
단 한 사람의 선지자도 남기지 않고서 말이죠

이 내막을 통해서
율법이라는 남편으로써는 행복따위나 그런거 없이 오로지 죽음 뿐이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것 뿐인 겁니다

새벽 아침은커녕
주의 인자하심은커녕
샛별은커녕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이라는 새생명은커녕
오로지 죽음 뿐인 겁니다

그 죽음을 감추고자
샛벽의 자리 곧 교만한 바벨론 왕 계명성의 자리
모세의 자리
백날 앉아본들
역시나 죄의 삯은 결과값은 사망
다윗의 회개 눈물 금식 기도의 결과 값은 역시나 사망

아니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우시더니 왜 지금은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십니까?

혹시나 함 해 봤다 택도 없더라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더라

이 온전케 못함에 대해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절망을 느끼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율법으로인해 절망을
왜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는가를
빈털터리로 탈탈탈 털림을 당하는 겁니다 율법으로부터 말이죠

마침 일당백이라는 너튜브에서 에릭프롬 유대인이 보는 구약해석을 듣게 되었는데
행함 외에는 달리 답을 못 내니까 온갖 잡교가 다 합쳐져 있더라 말이죠

그거 일일이 다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찌끼로 드러내시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율법은 용광로입니다
인간 속에서 섞고 싶어서 혼합물로 썩을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집어넣어서
언제든지 뭐든지 모조리 다 찌끄래기로 분리시켜 주는 겁니다
분리 수거해서 버리는 쓰레기로 만들어 주는 겁니다

뭘 해도 배설물 똥 덩 어 리

이제 주님의 숙제만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손수 직접 사랑하셔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화목제물 삼으심

이게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 외에 한 의입니다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7,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개역)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9, 개역)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1,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인간은 자기 유익 때문에 결혼을 합니다
결혼 해도 한 몸이 아닙니다 여전히 두 몸이요
둘이 된 원수 지간입니다

놀랍게도 성화론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주로 모태신랑이라서 그런가?
이상하게 전에 원수 되었다 라는 의식 자체가 없더라 말이죠
그러다 보니 대놓고서 바리새인의 성전의 기도처럼
십일조 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요 매국노세리처럼 토색하지 않았구요 라도
대 놓고서 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모습 또한 본적이 없어요
이 세 번째 매국노 세리 나타나면 바로 쉽게 노출 되지만 말이죠

율법은 이 원수 지간임을 더 또렷히 보여주는 사망의 몸임을 밝혀 줍니다

각자 두 몸이 각자의 숙제로 각자의 죽음과 각자의 다시 사는 것에 매진합니다

그런 법 아래의 사망의 몸에게

사랑은 그 소욕을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네 맞습니다 사랑이 못땐 짓을 합니다

사랑이 전혀 사랑 같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상 최대의 숙제를 방해나 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카이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이 사망의 권새를 멸하러 오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습니다
의의 결과 값은 영생입니다
죽고 싶어도 사망이 없어졌기에 죽을수가 없습니다
죽음 자체가 이미 사라졌기에 그때 나도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습니다

새남편이 옴으로써 새것이라는 의미이지

인간이 말하는 신상품은 여전히 과거의 것을 또 보안해서 만든 조작품일 뿐입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으니 말이죠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꾕과리일 뿐입니다




====================================================


21-073 살인자의 성읍아, 녹슨 가마솥아, 화 있을진저 (겔 24, 1-14)

(마 23:27,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음란죄 살인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에스겔 2019 2024. 2. 24. 06:32
21-072 너희 간음죄 살인죄로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에스겔 24, 1-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7쪽, 찬송가 205장 새 287 예수 앞에 나오면, 363장 새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찬 87) 새찬송가 87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찬 133) 새찬송가 135장
내 너를 위하여 (찬 185) 새찬송가 311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찬 200) 새찬송가 266장
예수 앞에 나오면 (찬 205) 새찬송가 287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찬 217) 새찬송가 425장
새벽부터 우리 (찬 260) 새찬송가 496장
나 가난복지 귀한성에 (찬 221) 새찬송가 246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찬 222) 새찬송가 235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찬 231) 새찬송가 240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찬 363) 새찬송가 337장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새찬송가 287장〉

1.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집에 길이 살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찬송가 260장 새벽부터 우리, 새찬송가 496장〉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 봅시다 
   일을 마쳐 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3.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에스겔 24, 1-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7쪽〉

(겔 24:1, 개역) 제구년 시월 십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4:2, 개역)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날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에 핍근하였느니라
(겔 24:3, 개역)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
(겔 24:4, 개역) 건 후에 물을 붓고 양떼에서 고른 것을 가지고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
(겔 24:5, 개역) [4절과 같음]
(겔 24:6,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 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일일이 꺼낼지어다
(겔 24:7, 개역) 그 피가 그 가운데 있음이여 피를 땅에 쏟아서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말간 반석 위에 두었도다
(겔 24:8, 개역) 내가 그 피를 말간 반석 위에 두고 덮이지 않게 함은 분노를 발하여 보응하려 함이로라
(겔 24:9,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화 있을진저 피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
(겔 24:10, 개역)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겔 24:11, 개역)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하게 하라
(겔 24:12, 개역)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곤비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겔 24:13, 개역)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정하게 하나 네가 정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정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겔 24:14,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룰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며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찬송가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새찬송가 337장〉

1.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3.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겔 24:1, 새번역)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4: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오늘 날짜, 바로 오늘 날짜를 기록하여 두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바로 오늘 예루살렘을 치기 시작하였다.
(겔 24:3, 새번역)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가마솥을 마련하여 걸고, 물을 부어라.
(겔 24:4, 새번역) 그 속에 고깃점들을 넣어라. 좋은 살코기와 넓적다리와 어깨를 골라서 모두 집어 넣고, 모든 뼈 가운데서 좋은 것들을 골라서 가득 넣어라.
(겔 24:5, 새번역) 양 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잡아 넣어라.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라. 그 고기를 잘 삶되 가마솥 안의 뼈까지 무르도록 삶아라.
(겔 24:6,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아, 속이 시뻘건 녹을 한 번도 씻지 않은 녹슨 가마솥아,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제비를 뽑을 것도 없이, 그 안에 든 고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어라.
(겔 24:7, 새번역) 죄 없는 사람을 죽인 피가 그 성읍 한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다. 피가 흙으로 덮이지도 못하였다. 그 피가 흙 위에 쏟아지지 않고 맨바위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겔 24:8, 새번역) 그 피가 흙에 덮이지 않게 맨바위에 쏟아 놓은 것은 바로 나다. 내가 분노를 일으켜 호되게 보복하려고 한 것이다.
(겔 24:9,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아,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장작 더미를 높이 쌓아 놓겠다.
(겔 24:10, 새번역)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지펴서, 고기를 푹 삶아서 녹이고, 고기 국물을 바싹 졸이고, 뼈는 태워 버려라.
(겔 24:11, 새번역) 그 빈 가마솥을 숯불 위에 올려 놓아, 가마솥을 뜨거워지게 하며, 가마솥의 놋쇠를 달궈서, 가마솥 안의 더러운 것을 녹이며, 가마솥의 녹을 태워 없애라.
(겔 24:12, 새번역) ㉠이 성읍이 온갖 고생으로 지쳤으나, 그 많은 녹이 가마솥에서 없어지지 않으며, 불로 아무리 달구어도 녹이 없어지지 않는다. / ㉠12절의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불확실함
(겔 24:13, 새번역) 너의 더러운 죄 가운데는 음행이 있다. 음행으로 더러워진 너의 몸을 내가 깨끗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가 너 자신의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려고 하지 않았으니, 내가 너에게 분노를 다 쏟을 때까지는, 네가 다시 깨끗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
(겔 24:14, 새번역) 나 주가 말하였으니,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가 그대로 하겠다. 내가 돌이키지 않으며, 아끼지도 않으며, 뉘우치지도 않겠다. 너의 모든 행실과 너의 모든 행위대로 네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먼저 2절에 핍근 이라는 처음보는 단어가 나오는데 매우 근접했다 라는 뜻입니다
핍절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데 매우 간절하다 또는 매우 절단 단절 끊어진 상태라 아무것도 없다 라는 뜻인데 결핍도 생각 나구요

자 이렇게 우상숭배의 이방나라가 적군으로써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애워싸고 있는데
예루살렘을 칠려고 매우 근접 곧 핍근하였다 라는 겁니다 매우 가까이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작 성전이 있다 라는 이유로
성전 곧 오늘날 교회죠 교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애국가 가서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고
이 얼마나 애국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애심 애신 신앙이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이런 마음 자세가 바로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주장과 똑같이
바로 이런 경건의 모습을 하나님의 저주에 해당 된다 라고 보시는 겁니다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은 서로의 소욕을 방해하는 정반대의 두 언약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오늘 말씀에 먼저 [인자야] 라고 누구 누구 아들아 라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면서
저들에게 녹슨 가마 비유를 들려줘라 라고 하시지만

인자야 라는 이 말 자체가 비유이고
그런 비유에게 비유야 저들에게 비유를 말하라 라고 하시면
이것은 더더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비유로 말 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반드시 인자 곧 무시받는 어린아이 취급받는 자로써
그런 어린아이에게 녹슨 가마비유까지 증거하라고 하시니
더더욱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즉 한 번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즉 두 번
곧 이중반복의 공명으로써
이중단절인 절대단절의 이중반복으로써

듣고, 비유를 듣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저히 못 깨닫고 못 보도록 하시기 위한
혹시나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싶어서 걱정하시는 마음으로써
이 가마 솥 비유를 하시는 겁니다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사 7:10, 쉬운)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 7:11, 쉬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이 모든 일이 일어날 표적을 구하여라. 저 깊은 죽음의 세계에서 저 높은 하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하여라.”
(사 7:12, 쉬운) 아하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표적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사 7:10, 현대어) [둘째 경고-임마누엘의 징조]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께서 아하스왕에게 이런 말씀을 보내셨다.

인자 곧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 라고 이사야 라는 선지자(인자)를 통해서 외쳐도
반드시 아하스 왕은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반드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긍정의 신학을 추구하는
남유다이면서도 북이스라엘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식으로
반드시 대응하겠끔 되어 있는 겁니다
거짓선지자의 사고방식인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해석하듯이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라고 보는 식인 거죠
아니 자기 살아있음 생존이 우선시가 된 무당의 언어만 추구하다가
비유의 언약의 말씀
더더군다가 무능한 아기 젖먹이 라는 
그것도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
이사야의 아들이 아닌
인자의 인자

분명히 목수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기능은 하나님의 아들 세상 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니
도대체 누구 아들인지를 알수 없는 육체로는 포착할 수 없는
해석불가의 비존재
족보가 없다 라는 거죠 육체의 아버지가 없는데 우찌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느냐 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내려온 인자 라는 겁니다
이 기능만 이 언약만 이 뜨인돌만 이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돌만 구원하시는 것이
성경말씀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상대적인 인간구원이 왜 안되는지에 대한
비언약이 한 세트로 구성이 되는 겁니다
두언약처럼 말이죠 땅의 계집종 하갈과 이스마엘 언약 이라는 비언약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과 이삭 언약이 한 세트로 구성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지난 주에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이라고 했지요
율법이라는 껍데기 존재와 자신의 좀재를 합칠려고 혼합물로 썩을려고 할때에
옳치 요놈 올무에 잘 걸렸다 라고 율법의 기능이 발휘가 되는 겁니다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모세의 자리에 앉듯
하늘 보좌를 비워두니까 그 자리에 앉고 싶어서 침을 질질 흘릴 수밖에 없는
올무에 걸려 든 것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우리는 꺄안고 자폭합니다
논개처럼 왜군 적장을 껴 앉고 빠져 죽고자 하는
율법처럼 무조건 이유 없이 죄인 죄 아래 가두고자
율법이 가입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어떤 것도 연걸점이 없어야 하는데 있어서
모조리 다 차단 시키는

오로지 주님 쪽에서 직접 손수 마련하신
화목제물만 남기고자 모든 접촉 시도를 차단하시는 겁니다

자 이런 결과가 덥칠때에 이런 비유가 덮칠때에
우리는 반드시 아니 본능적으로 반대로 생각히겠끔 되어 있습니다
거짓선지자의 주장처럼 평강이다 평강이다 설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 망하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망하게 되면 하나님 본인이 망하게 되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라고 말이죠

바로 이런 해석이 모든 사람을 장악하겠끔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메시아로써 왔을때에
마귀가 유대인을 장악했던 그 세가지 내용이 예수님을 세 번 시험하는 내용을 통해서 나오게 됩니다

설마 경제 문제 해결 못하는 무능한 메시아 이겠느냐

설마 종교문제 구원 문제 해결 못하는 메시아 그럴 것 같으면 말라꼬 메시아가 오겠느냐 라고 말이죠
거룩한 성전에서 떨어져 죽게 될떼 누가 구원하시겠느냐 시편 911 소방차 ㅋㅋㅋ 112 간첩신고
시편 91편 11절 12절 이렇게 외웠는데 또 까먹네요

(시 91:11,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라고 마귀가 시편 구절을 인용하면서 까지 말씀에 기록된 대로 유혹을 합니다

그리거 마지막 정치적인 문제 곧 왕의 등장으로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를 이루는
평화를 달성하라 라고 설마 이런 왕이 되어달라 이런 원수 문제 해결 못하는
설마 평강을 평화를 주러오지 못하는 메시아는 아니겠지 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그런 마귀의 세가지 시험의 내용을 담은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으로써
성전을 보고 해석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음으로써
성전이 있음으로써 화평이 온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아무리 원수가 이스라엘을 에워싸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우리가 고린도후서 4장을 외우듯이

성전만 있으면 마치 성전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는
뜨뜻한 온천수 목욕탕 안의 성도인 목자를 따르는 양처럼 
가마 솥 안의 양고기들이 따뜻한 목욕탕 물처럼 보호받는 식으로 해석하는
그 희망을 가진다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 속에 놓여진 모습으로써
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개역)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개역)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 인 것처럼
이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가 마치 가마 솥에 자식 끓여먹고
부모 끓여먹은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끓여먹은 바로 이런 죄악의 도시가

녹이 쓴 얼마나 녹이 쓸었으면 딱 달라붙어서 그 어떤 세제를 사용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살인자의 도시가 예루살렘이라고

우상숭배의 도시이기 때문에 자연히 인신제사는 따라올수 밖에요
마치 오늘날 교회나 성당이 돈을 우상숭배하듯이 똑같습니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 가자지구와의 전쟁 또한 똑같죠
살인자의 도시 답잖아요

이스라엘 사람인데 20대 때부터 인권운동을 하던 20년 가까이 운동을 해 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막상 자기 집안 식구가 인질로 잡혀가게 되니까
20년 가까이 인권 운동이고 나발이고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모든 운동은 아무리 좋은 이름을 같다붙여도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해도
환경살리기 운동 뭐 동물 안 잡아먹고 식물로만 양식으로 하는 채식주의운동을 해도
그 자체가 이미 복수심 곧 살인의지가 깔려 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이미 예수 믿기 운동 자체가 예수를 살인하겠다 라는 것이 이미 깔려 있으니 말이죠

인간의 그 어떤 믿음도 종교가 다 달라도
그 신앙 그 믿음 자체가 이미 살인의지 곧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내가 신 당신을 이렇게 믿어 줬는데 축복 안 주기만해 봐라 당장 복수하겠다 라는 것이
이미 깔려 있다는 거죠 믿겠다 라는 자체가 이미 복수심 살인의지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을 향한 가마 솥 비유에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뗄려고 녹슬어 있는 떼를 밀려도 해도 떨어지지 씻겨지지 않는
그 죄악의 녹슨 모습이
예루살렘의 살인의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왜? 자기는 망하면 안된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것이
인신제사로 부모 잡아먹고 자식잡아먹는 그 우상숭배
왜 우상숭배하겠습니까
바벨론여자들이 잘 보여줬죠 남자도 맹 똑같다 라는 겁니다

내 자식은 고아 안되리라
나는 과부 안되리라
내 남편은 나그네 안되리라

이거 모든 엄마들의 마음 아니냐 말이죠

마귀의 세가지 시험 곧 메시아 신앙
내 자식 고아 안되겠끔 경제 기업 문제 제대로 기업이 재산이 물려받을수 있도록 해 달라
곧 돌을 떡덩이 되게 해 달라

나는 과부 안되리라 이거 종교 곧 사랑문제죠 이쁨받는 여자가 되게 해달라
여자란 사랑을 먹고 살 거든요 사랑을 주는 낭군이 없는 과부와 같은 여자는
죽은자 취급받는 죽은자와 마찬가지인 거죠 무슨 희망으로 살겠냐 말이죠
이게 바로 종교에서 바라는 기적인 겁니다 구원인 거죠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들이 두 손으로 발이 상하지 않게
딱 받쳐서 내려오겠끔 할 것이다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오늘 가마비유랑 똑같죠 거룩한 성전에서 안 죽게 해 달라고
그러나 정작 반대로 해석한 거죠
요나의 표적 곧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마귀의 시험 곧 정치 문제죠 남자는 무조건 이여개 하는
승리나 성공에 대한 강박증으로 평생을 사니까 말이죠

내 남편은 나그네가 아닌 그 반대로 나그네 마저도 떠돌이 백수 노숙자 마저도
너끈히 일으킬수 있는 왕이 되게 해 달라
화평을 주는 자가 되게 해 달라

내 아들은 왕의 유전자를 가진 공무원의 아들이다 라고 한 것처럼 말이죠 ㅋㅋㅋㅋㅋ
우리 일반 평민들은 웃끼는 코메디 이야기 인 것처럼 느끼겠지만
그들은 진짜 진짜 심각한 겁니다

정치 곧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이 정치 문제는
한번 권력을 맛 본 자라면
모세의 자리에 앉아본 자라면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자리 샛별의 자리에 앉을수 있을까 라고
절대로 만족 할 수 없는 빵구멍난 장독대처럼
바닥 없는 지옥을 품고 살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물을 퍼 넣어도 바로 바로 새어버리는
그러니 이건 뭐 밤새도록 울부짖는 배고파 우는 하이에나인 거죠
배고파서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부를수가 없어요

남을 7번 용서했으면 자기 보다 못한 6번 용서한자를 깔보는 갑질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선거철이 되다 보니 더 잘 보이죠
두 진영 민주당이나 딴나라당이나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치는 사기를 치는 겁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원수 됨을 스스로 감추는 희망의 메시지를 외치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진노 속에 놓여진 녹슨 가마솥 비유로써 증거되는 거지요

그러니 이것은 깨닫고 뉘우치고 하는 그런 단계를 이미 넘어서버린
요단강을 건너가버린 저세상 텐션이라는 표현처럼
미쳤다 라고들 하지요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화평을 주러 왔다 라고 보는데 있어서
종교 보다 더한 마약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죠

바로 이런 하나님의 진노 조차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죠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이다 라고 했듯이
절대로 원수 일리가 없도록
인간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게 형성했는데
원수지간 안되도록 말이죠

우리가 남이가 ? 가족 아이가 라고
가족의 관계로 말이죠
가족이 그야말로 희망의 최후보루 아닙니까
가족이 무너지면 이건 뭐 끝나는 거죠
그러니 가족 만큼은 원수지간이 될 수가 없는 거죠

어 가만히 보니 우리가 남이가 라는 문구가 갑자기 눈에 보인 것이
버스 차 문 바깥에 붙은 광고문구로 인해서 갑자기 흔해빠진 말로 변하더라구요
그게 한 20년 전 쯤인데
정작 사건은 그 10년 전 더부터 
초원복국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가 남이가 라고 정치문구가 되었더군요
검색을 하다 보니 이 사건에 대해서 나오네요

https://youtu.be/MxgGSu5L-6Y
https://youtu.be/s75PQX9KkM0

그때는 워낙 관심이 없었을 때라 눈에 안 보였는데
버스에 광고판이 붙은때 부터는 눈만 돌리면 다 보이게 되니
세뇌가 안 될 수가 없을 정도로 흔한 유행어가 되더군요

우리가 남이가? 가족 아니냐 라는 것이 도리어 원수지간인 것을 티내는 거죠
이런 웬수가 없을 정도로 웬수 중에 웬수라고 ㅋㅋㅋㅋㅋ

나는 뭘 해도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는 해석 외에는 그 어떤 해석도 붘일수 없도록 하신 것인데
바로 그것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이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뭘 같다 줘도 반드시 희망을 가지고야 말겠다 라고
도리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피할 길로써 해석하는 식으로써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니까

이 십자가에 근접 할려고 
끝까지 따라 가겠습니다 
장 지지 겠습니다
까짓꺼 함께 십자가에 죽겠습니다 라고
간극을 좁힐려고 하는데

간극을 좁힐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욱 밀치는 것이다 말이죠

더더더 간극이 멀어지는 겁니다


바로 그렇게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하나님의 원수 됨의 확정이 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그 고아 과부 나그네
흑암의 백성인 눈먼 소경 
사망에 주저 앉은 앉은뱅이
사망의 왕노릇에 포로된 갇힌 자
이 처음자리
이 절대죽음 절대저주의 자리에서만
희망 따위는 없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만 기쁜소식 희년이 들려오는 겁니다
그러니 모조리 단절이 안되면 기쁜소식은 없는 거죠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사 9:1, 개역)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2, 개역)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눅 4:13, 개역)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눅 4:14, 개역)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5, 개역)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눅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61:4, 개역)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사 61:5, 개역)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사 61:6, 개역)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사 61:7, 개역)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사 61:8, 개역)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사 61:9, 개역)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사 61:10, 개역)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 61:11, 개역)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결국 원인 없는 결과로써
이 결과라는 기능을 구원하시고자 함인데
의사의 기능 말이죠

우리는 자꾸 원인을 구원하고자
나 라는 원인
왜? 나는 살아야만 하고
나는 무조건 이유 없이 구원받아야 하니까
저 녹슨 가마솥 비유 조차도 내 구원용으로 해석하는
원인을 자꾸 조건으로 갖추고자
구원하고자 하니까
정작 결과가 올줄 알았는데
결과가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없어요
원인이 없어야 결과가 있는데
그것은 나 라는 몸을 원인으로 둘 수밖에 없는 본능 때문에
내 몸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이 원인 없는 결과
즉 결과가 정답이 찾아 헤매는 잃어버린 양
곧 문제아 탕자 환자 죄인
의사가 찾아내는 환자 탕자 문제아가 되기 싫어하고

이스라엘 자체가 이스라엘이라는 처음자리를 발로 차 버리고
고아 과부 나그네를 핍박하고
예루살렘이 살인자의 도시 우상숭배의 도시가 되듯이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
말씀의 골짜기 부활의 골짜기 예루살렘이 음부 곧 지옥인 살인자의 성읍이 된 거지요

낮에는 제사장을 나 여호와가 반드시 죽이겠다
밤에는 선지자를 나 여호와가 반드시 죽이시겠다
이스라엘을 나 여호와가 반드시 죽이겠다
왜? 기업이 없는 고아가 고아를 죽이는
기업이 없는 제사장이 제사장을 죽이기 때문에
왜? 나그네가 나그네를 죽이는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기 때문에
왜? 이스라엘 어미가 이스라엘 어미를 죽이는
과부가 과부를 죽이기 때문에

제사장과 선지자와 너희 어미 이스라엘을 죽여라 (호 4, 1- 5)
호세아 2023 2023. 10. 28. 20:17
23-07 제사장(고아를 핍박하는), 선지자(나그네), 너희 어미(과부, 창녀 이스라엘)의 죽음 (호 4, 1- 5)

https://crosslamb.tistory.com/2629


곧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는 자들이기에 말이죠

왜 그들은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을 수 밖에 없을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안 그러는 사람이 없다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의 생존이 우선시가 되기 때문에
안 등쳐먹을 수가 없는 겁니다

구원도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구원이 먼저이고
내 축복이 먼저인 거죠

고아 곧 자식 문제에 있어서 남의 자식은 지옥가든 말든 상관 없고
내 자식 만큼은 구원되게 해 달라 라고
신앙과외 선생으로 노아 다니엘 욥을 교사로 앉혀 놨더니만
녹슨 불가마솥 비유나 가르치고 있으니
곧 심판을 가르치고 있으니
아니 부활 되게 해 달라고 했지 언제 심판을 가르치고 있냐 말이죠

누가 오늘 교회에 갈때에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자 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오로지 나의 구원 내 가정 구원이라는
소유욕을 더 키울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오늘 예루살렘 성전을 불가마 비유로 든 것은
그야말로 신약의 성전에 두 사람 곧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와 딱 맞다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불가마에서 화평에 맞는 조건으로써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 했구요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았습니다를 외치는 겁니다
성전에서 말이죠
즉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는 주장들이다는 거죠

그러나 세리는 머리를 들지 못하고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울고 있는 겁니다

누가 불가마비유에 딱 맞는 자입니다
누가 성전의 기능에 딱 맞는 자 입니까
누가 안식의 주인에 딱 맞는 자 입니까

안식일 지키는 자 입니까?
교회 충성 봉사 하는 자 입니까 곧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 입니까?

누가 성전에 금을 바쳐서 기도가 맹세가 잘 이루어진다 라고 속담으로까지 퍼트렸습니까?
성전의 기능은 불쌍히 여겨 달라는 
하나님의 원수됨에서 부정한 입술을 제거하는 기능을
완전히 개무시하고서
엉뚱한 속담으로 보편적진리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속담이냐? VS 비유냐?
무당의 언어냐? VS 십자가의 죽음의 약속 언어냐?
우리는 당연히 바알의 점괘를 안 믿는다 라고 합니다
그건 교회 안 다니는 자도 다 그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바알 점괘 안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는 그 모습은 절대로 때려죽어도 안 바뀐다 라는 점입니다

보세요 성전에서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토색 안 했구요 라고
했구요 했구요 했구요
즉 접근을 시도하는 음녀의 짓을 멈춘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알고서 메국노 세리는 성전에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는 겁니다
그걸 알고서 말이죠 멈춘적이 없는 죄인임을 알고서 말이죠

도리어 거봐 그러니까 너는 지옥가야 해 나는 의로움을 행했잖아 라고
어라 또 미끼를 덮썩 무네 말이죠

그러니 바리새인은 여전히 접속을 시도하는 겁니다
내 쪽에서 구원의 조건을 갖추는 행동을 여전히 시도한다는 점이다 말이죠
이게 바로 양고기가 담겨진 냄비 아니 가마솥 속에 있는 녹슨, 
찌기라는 혼합물의 속성이다는 거죠
절대로 벗겨낼수 없는 철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녹 이다는 겁니다

내 속 사람이 하나님의 법늘 원하나 동시에 내 속의 죄가 이겨버려서 죄의 법 아래도 팔아버리는
죄에 사로잡힌바 되더라 말이죠
가마솥에 녹슨 찌끼가 있더라 말이죠 그 녹슨 것이 나의 본래 속성인 하나님의 원수된 모습이다 라고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비로소 성전을 수술칼로 심판의 불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했다 라고 제단 숯불의 기능 곧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에 안 타죽을려고
천사가 여섯날개로 가리워야 할 만큼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비로소 성전의 취지, 수술칼의 걸맞는 환자, 불가마에 걸맞는 녹슨 찌끼로써
이스라엘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일어남을 말이죠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4, 개역)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5, 개역)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 7:16,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개역)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니 하나님도 안 믿는
그것도 우상의 민족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의 손에서
우상숭배자 바벨론 왕으로부터 에워쌈을 당하는 죽음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를 재현하는 듯한 제 2의 출애굽처럼
주님은 이 애굽왕으로부터 영광받으시는 겁니다
애굽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말이죠

구원자의 구원기능 수술칼의 기능인 의사의 기능을 펼치겠끔 동원이 되니까 말이죠
그래서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했듯이

내 종 느부갓네살 왕아 라고 종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겁니다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말이죠

메국노 세리의 자리에서 부르짖는자 만들도록 말이죠 이것이 주의 이름의 증상물인데

가짜 이름을 부르짖는 임마누엘 아기는 안 부를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는
그런 아하스 왕과 대조를 하듯이 바리새인의 기도와 대조로써
그 차이를 벌려놓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에서의 기도 라는 부르짖음이 아니라

배불러 터진 종교오락의 외침을 바리세인은 십일조 했다 라고
자기 쪽에서 접촉한 시도의 성과물을 내어놓는 겁니다
이게 자기 의를 쌓아서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모습인데
이게 바로 오늘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정통으로 진노의 대상인줄도 모르고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나온 자기 의 쌓기 이다는 거죠
왜? 동시성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게 되니까
즉 탕자를 용서하신 하나님 쪽에서의 용서인 십자가의 죽음 곧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에 반발하고 복종을 아예 할 수 없게 되니까 말이죠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쪽에서 내밀 것이 있어서 내밀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것을 거부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까

어딜 감히 똥떵어리 배설물을 들이내밀어
그카면 소는 누가 키우냐 즉 화목제물은 수술칼은 누가 받냐 말이죠
아무도 못 받는 겁니다

다들 죄인 아니다 환자 아니다 라고 하니 말이죠
그카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찾으시러 왔다는 것에
저요 저요 저 환자입니다 라고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이미 속담에 이미 보편적 진리에
탕자 같은 놈을 절대로 생산해 낼수 없는 종교체제
성전체제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정작 성전 가마 라는 주님이 아껴둔 이름
너희들이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기념 이름이 담긴 성전의 기능인
불가마솥 이름의 기능은
바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사람의 손으로 체제를 정비해 둔 성전은 불태워 버리고
성전을 헐어버리고
삼일 만에 다시 지은 성전으로써
불가마숱 기능으로써
걸맞는 죄인 중의 괴수로써

그 어떤 접촉점도 시도할 수 없는
삼일의 간극 단절
절대차단을 통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로써

철천지 원수 매구노 세리의 자리로써
임마누엘을 구하게끔
주의 이름을 부르짖도록 만드시겟끔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그 어떤 인간의 시도
간극 좁히기가 다 무용지물이 되도록
주님 쪽에서 이미 다 완성해 버림으로써
이 새언약만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불가마비유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 속의 속내를 들통당하지 않고서
구원받고자 하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를
전혀 모르고서 지옥가게 되는 셈입니다

불가마솥 비유야 말로
나의 우상숭배라는 하나님의 원수 됨을 재대로 까발리는 수술칼로써
그 앞에서 제발 고쳐달라고 우는 자
상한 심령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제 선지자 인자 자체가 비유덩어리로써 저들에게 던져집니다
우리에게 던져집니다
우리는 그 인자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속성이 들통나야만 하는 겁니다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우찌할꼬 라는
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통해서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인 십자가의 죽음이 있다 라는 것에 비로소 눈 뜨게 하십니다

매국노 세리는 성전에서 이 화목제물을 봤습니다
주의 이름을 봤습니다

내 때문에 죽으셔야만 했던 그 이름을
그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그 앞에서 그 참성전 앞에서
우리의 입은 잠잠케 됩니다

뭐 십일조 했다는 둥
이레에 두 번 금식햇다는 둥
이거 다 우상숭배였고
이거 다 배설물임을
그 똥떵어리 알아 달라고 했던 짓이
얼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성령은 우리를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지혜를 펼치시는
이 십자가의 죽음만 밀어붙이심 앞에서

우리는 불도져로 밀림 당하듯이
부끄 부끄 당하는 겁니다

부끄러워서 그 앞에서 함구 잠잠케 됩니다

비로소 다리미질에 평평하게 당하는
첩경을 평탄케 하시는

니 잘 났니 내 잘 났닌 라는 그 입이 다물게 됩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줄도 모른채로
벌씨 이미 소돔과 고모라로써 지옥으로써
지옥 짓만 하다가 갈 뿐입니다

울리는 꽹과리만 들리는 지옥처럼
우리의 입은 쉬지도 않고 꽹꽹꽹 울려댈 뿐입니다

우리의 입을 잠잠케 하시는
할 말 없게 만드시는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매국노 세리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이 화목제물되신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할 말 없게 만드신 그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않으심 앞에서

(사 53:7, 개역)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마 8:17, 새번역)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는 몸소 우리의 병약함을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 / ㉥사 53:4
(눅 22:37,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 ㉬사 53:12
(요 12:38, 새번역)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한 말이 이루어졌다.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 ㉨사 53:1(칠십인역)
(행 8:32, 새번역)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 ㉧사 53:7; 8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잠잠히 사랑을 완성 하셨습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서 율법과 이혼하고
하나님의 의와 결혼을 하게 된
새신랑의 새신부로써 말이죠

모든 언약 곧 약속을 다 이루었다 라는 그 거룩과의 결혼으로 인해 말이죠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요 19:30, 개역)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