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6 의에 자유한 죄의 삯은 사망, 죄에 자유한 의의 선물은 영생 (롬 6,19-2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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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6 의에 자유한 죄의 삯 사망, 죄에 자유한 의의 선물 영생  (롬 6,19-23)

두 언약 (땅의 계집종 하갈 가정부의 아들 사생자 이스마엘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사라의 약속의 아들 자녀에게만 있는 징계받는 인자 희생제물 이삭)

의에 대해 자유한 죄의 종의 마지막인 사망과 죄에 대해 자유한 의의 종의 마지막인 영생

죄의 마지막 사망, 하나님의 은사(선물) 마지막 영생 (롬 6,19-23)

의(義.거룩)의 종이 된 죄에서 해방된 자 (롬 6,15-18)
로마서 2022 2024. 1. 27. 23:24
22-035 하나님의 거룩에 종이 된 죄에서 해방된 자 (롬 6,15-18)

〈로마서 6,19-23, 신약성경 247쪽, 찬송가 409장 새 309 목마른 내 영혼, 524장 새 222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가 409장 목마른 내 영혼, 새찬송가 309장〉 

1. 목 마른 내 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 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2. 주 내게 약속한 큰비 내려 주시려 은혜의 저 구름 건너편에 떠올라 
   그 귀한 징조가 내게 밝히 보이니, 나 힘을 다하여 주께 간구합니다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3. 은혜의 소낙비 지금 흡족히 내려 구원의 큰 강물 흘러 차고 넘쳐서 
   내 추한 모든 죄 모두 씻어버리니, 나 지금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네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를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로마서 6,19-23, 신약성경 247쪽〉 

(롬 6:19, 개역)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 6:20, 개역)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롬 6:21, 개역)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롬 6:22, 개역)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3, 개역)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찬송가 524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새찬송가 222장〉 
 
1.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2. 우리 다신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게 계셔 
   간데마다 보호하며 양식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3.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위태한 일 면케하고 품어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4.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사망권세 이기도록 지켜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롬 6:19, 새번역)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 ㉥그, '육신'
(롬 6:20, 새번역)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롬 6:21, 새번역) 여러분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롬 6:22, 새번역)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새번역)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개역)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먼저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안의 영생이다 라고 했습니다

삯이란 죄로 인해서 주어지는 품삯 또는 댓가, 수학적으로는 결과값이라는 거죠
은사 은혜로운 일은 예수님이 이룬 영생이다 그것도 예수 안에 라고 안과 밖으로 표현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라고
그럼 안이 아닌 밖은 뭐냐
바로 율법이라는 막힌 담으로 인한 경계선 너와 나 라는 구분선
둘이 된 것 즉 원수 관계이다는 거죠
그러니 막힌 담을 허무니까 경계선이 무너져 휘장이 찢어져서
예수 안이 다 넘쳐서 막힌 담을 헐고 막 넘어와 버리니까
모조리 예수 안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언약의 다 이루심을 거부하는 자는
모세언약 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새언약을 거부하는 자는
또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을 또 구성하고 담벼락을 쌓는 경계선을 치는 자 인거죠
이것이 오늘 본문에 죄의 종으로써 의에 대하여 자유했다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즉 의에 대해서 자유한 곧 의와 끊어졌기에 의 자체가 뭔지 모른다 라는 거죠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자체가 죄인 거죠
그러니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듯이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요 16:2, 개역)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3, 개역)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 16:4, 개역)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요 16:5, 개역)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개역)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요 16:12, 개역)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 16:13, 개역)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막힌 담을 헐고 예수 안에 들어오게된 침범 침략을 당한 자는
이제 반대로 의의 종이 되어서 죄에 대하여 자유하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즉 죄라는 주인 곧 왕 노릇하던 죄가 도망친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의에 대하여 자유한 자 역시나 예수님이라는 율법 외에 한 의가
자꾸 임금 삼아주겠다 라는 좋은 의도를 거부하고 도망치면서 자유했듯이 말이죠
죄 라는 권세가 더 이상 너랑 놀기 싫다 라고 도망을 치는

이런 상태가 죄에 대하여 자유한 자고
그 반대가 의가 도망치는 것이 의에 대하여 자유한 곧 죄의 종이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에 곧 예수님에게 복종치 않는 자 이다 예수님에 대하여 복종하는게 아니라
끊어진 연처럼 자유하면서 떠도는 연이 된 끈 떨어진 끈이 끊어진 마구 마구 멋대로 날라가버리는 연이 자유하는 연이 되었다 라는 거죠 의의 종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생아요 가정부요 땅의 계집종과 그의 자녀 이스마엘이다 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두 언약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두 언약을 로마서 6장에서
죄의 종과 의의 종으로 표현한 겁니다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도 육체의 약함이 나오네요

(갈 4:13, 개역)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갈 4:13, 새번역)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약함은 오늘 본문의 연약함과 다릅니다
이해력이 부족한 측면에서 쉽게 풀이해준다는 것인데
아무튼 사도의 수고로움 병듬 연약함 매맞음이 너희를 더 부요케 하기 위한 측면으로써
은사 곧 하나님의 일의 차원에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라는 겁니다

(롬 6:19, 공동)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 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롬 6:19, 쉬운) 여러분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말로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여러분의 몸을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드려 불법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의 몸을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십시오.
(롬 6:19, 현대어) 이렇게 내가 노예와 주인의 예를 드는 것은 보다 쉽게 여러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갖 죄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올바르고 거룩한 것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튼 죄도 영생도 인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죽으면 그게 죽음이 되는게 아니라 죄가 되는게 아니라
죄가 덮쳐져서 죄가 되고
인간이 죽는게 아니라 죽음이 인간을 죽여서 사망한다는 거죠

그런 이런 권세 곧 판대기 문제는 그 반대가 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망이 죽음이 나를 죽였는데
생명이 아무리 죽음이 죽인 나를 죽여도 도로 살려버리면
죽고 싶어도 살 수밖에 없는

의의 종이 되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욥이 생각나죠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어머니 말 마따나 인간은 놀이터 네 라는 겁니다

마귀와 하나님의 내기 장기에 장기알로 새우 등 터지는 신세로 놓여진 겁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다른 번역에서는 다 선물이라고 표현했거든요

선물이란 내부에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뭐 요즘? 한때!! 유행어 코메디에서 내가 내 자신에게 선물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웃음 자체가 현실을 전복시켜서 언어로 잠시 초월함으로써
현실 도피로써 웃음을 유발케 해서 힘든 생활에서 잠깐 쉼을 얻고자 함이지
내가 내 자신에게 선물 준다 라고 백날 해 본들
선물이라고 취급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것 같으면 선물이 아님을 다 알기 때문인거죠

어디까지나 선물이란 외부에서 주어진

외부의 숙제로 인한 결과죠

죄도 영생도 외부의 숙제로 주어진 것이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이 외부의 숙제인 주어짐 의 숙제에
인간은 어떻게 관여된 고 하니
연결해서 연결이 된게 아니라
그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절로써 연관이 된 겁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육체의 연약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거죠
죄도 뭔지도 모르고
의도 뭔지도 모르면서 의를 쌓겠다 성화 하겠다 라고
자기 의를 쌓지만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의에 대하여 자유한
연날리기의 줄이 끊어져 지 마음대로 날라가는 연의 신세가 된 거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끊어진 줄도 모르고서 접속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인 무당의 언어입니다
이 무당의 언어가 신과의 접속으로 인해 교리가 되고 법이 되어서
나중에는 그 무당을 대처하는 자들인 왕과 정치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거죠
신과의 접촉으로 인해 법을 잘 지키면 복 받고
법을 어기면 벌 받는
신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 라는 겁니다
이게 가인의 족보인 라멕의 찬양인 거죠

나 복 받았다 신의 저주를 극복하고 복 받았다 라고 그런 가인의 성이 바벨탑이 되고
그 바벨탑이 바로 국가의 원조가 되는 짐승이 되는 겁니다

그 가인 성(에녹성)에서 나온 영웅들이 바로 신으로부터 받은 뜻을 전달하는 매개자
곧 무당으로써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자로써 소통을 신의 뜻을 전달하는 겁니다
이게 제사 이다 말이죠 제사와 번제
과거의 제사는 피를 대신한 곡물로써 결속 곧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하더라 말이죠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다 보니 모조리 다 척박한 땅이다 보니
그래서 가인이 죽을까봐 싶어서 자기는 정작 동생 아벨을 죽여놓고서는
타인이 언제 죽일지 모르는 그 공포심 때문에 제발 대책좀 세워 달라 라고
그래서 준 것이 이마표 이다 말이죠 그것으로 만족 못 하다 보니 나온 것이 바로
성 케슬 보호막 10가지 재앙의 10가지 신들을 장자의 보디가드로 삼듯이
성을 세워서 보디가드로 그래서 활성화 시킨 것이 바로 영웅의 탄생
무당의 언어 영웅의 언어가 된 거죠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애굽의 원조인 바벨탑이라는 국가의 형태로 결속한 거죠 오늘날로 치면 시멘트 발라가면서 말이죠 역청 말이죠

(창 11:3, 개역)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개역)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자기 멋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왜? 의에 복종치 못하고 의에 대해여 자유하니까
지 마음대로 이니까 말이죠


똑같은 식으로 육체의 소욕과 반대되는 
성령의 소욕으로 죄에 대해서 자유한 자는
죄의 사슬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이제 죄에 대해서 죽었기에
죄가 더 이상 관여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거죠
죄가 이전처럼 작살을 꽃아서 올무를 멍에를 지워야 다스릴수 있는데
그 죄사슬이 끊어지니까 움직일수 있도록 연줄이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끊어지니까 더 이상 소통이 안되는 겁니다

(창 11:5, 개역)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창 11:6,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창 11:7, 개역)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 11:8, 개역)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마치 언어를 혼잡케 하니까 바로 흩어져 버리고 성 쌓기를
성화쌓기를 그치게 되는 단절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그 빈자리를 인간이 포기 하지 않습니다
무당이라는 매개자의 언어로 또 소통을 접속을
바벨탑 신의 구원의 통로를 계속 두드리고 시도하는 겁니다
신을 죽이고자 하늘로 올라가서라도 말이죠
걸어서 하늘 끝까지 ~~~~~~ 샛별 계명성이 따로 없죠

자 이렇듯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죽음이라는 사망이 결과적으로 주어졌고
영생이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생명이라는 영생이 결과적으로
원인 없는 결과로 주어졌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도 주어졌다 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어요 다른 표현이 없는 거죠
왜?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말이죠
아 그럼 육체를 강하게 하면 되겠네 라는 발상 자체가 이미 연약한 육체이다는 증거죠
육체 자체는 일방적으로 쳐들어 오는 영 앞에서는 택도 없습니다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뇨? 네 맞다 라고 했지요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이 말이죠
칼빈의 주장을 오랜만에 표현하면

불가항적이다 라는 겁니다
죄도 불가항적이다
은혜도 불가항적이다
저항할 수가 없다 라는 거죠
왜? 육체가 연약하기에

육체 핑계 대는 거죠 어쩔수 없어요 육 자체가 영 앞에서는 쨉도 안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내 속의 죄가 나를 사로 잡아 버렸다 라고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4, 개역)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5, 개역)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 7:16,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개역)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죄가 그랬다 라고 죄 핑계 대듯이 말이죠

그럼 반대로 영생은 내 스스로 의를 쌓아서가 아니라
역시나 성령의 소욕과 육의 소욕이 반대 되듯이
예수님 탓 덕분 은혜 덕분 은혜 탓 
은사 곧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벌린 십자가 사건인 화목제물과 
곧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과
그 내어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순종의 종 되신 예수님의 종 곧 의의 종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신 분은 예수님 뿐이니깐요
성화론자들이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겠다 라고 나서지만
의가 뭔지를 몰라요 죄도 모르듯이
십자가에서 밝혀지는데 십자가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넘어뜨리기 바쁘고 그 걸림돌 십자가로 인헤 자빠지기 바쁜데
죄를 의를 심판을 배울턱이 있겠습니까?
알려주시지 않는 이상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히 5:8, 개역)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개역)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바로 율법 외에 한 의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예수님이라는 의 가 나타남으로 인해
온전하게 된 것이지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거룩케 의롭게 의의 종이 되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모세언약(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거부하는 다윗언약인 겁니다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히 7:19, 개역)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아 그럼 율법이 잘 못 된 거네? 못 지킬 줄 알면서 준 거네?
라고 또 시비거는 놈들이 한 둘이가 아니예요 
아니 억수로 많아요
아니 다들 그래요 다 그래
율법이 잘못 된게 아니라 율법을 지킬수 있는 육체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율법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준 거다 말이죠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13, 개역)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4, 개역)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 5:15, 개역)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롬 5:16, 개역)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롬 5:17, 개역)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8, 개역)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9, 개역)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1, 개역)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0, 개역) 중보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갈 3:21, 개역)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2, 개역)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 3:23, 개역)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 3:24, 개역)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5, 개역)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 3:26, 개역)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7, 개역)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 같은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영생이라는 결과가 주어졌다 라는 겁니다

(롬 6:23, 공동)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쉬운)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롬 6:23, 킹흠정)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롬 6:23, 한글킹)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롬 6:23, 현대인)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현대어) 죄의 값은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라는 철학자들의 말이 있는데
(문제는 이들 인문학자들 곧 거짓선지자들은 그 끝이라는 종말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라는 겁니다 종말이 인물이거든요 유독 몇몇 학자가 인물이라고 카긴 캅니다만 역시나 최종 종말의 인물은 내가 한 숙제로 달성해야할 인물이 되어야 한다 라고 귀결이 됩니다)

마지막 곧 종말이 좋으면 다 좋다 라고
미래표절 미래를 미리 앞당기는 종말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기능 곧 사건이다 라고 이것이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언급했고요

반대로 존재는 미래를 미리 앞당길수가 없어요
기능 곧 사건은 (TV뉴스에 나오는 사건은 사람의 일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사건 곧 은사는
십자가 사건 외에는 없습니다)
성령이라는 총명한 지혜 곧 십자가의 지혜를 받은 자 만이
종말을 기능으로써 사건으로써 앞당길수가 있거든요 (사도행전이 그래서 성령행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사도들은 장기알처럼 배치되더라 말이죠 이 성령이 세상임금을 이미 심판했다 라고 증거하지요 그러니 이미 심판받은 놈들에게 휩쓸리지 말라 라고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것에 책망 곧 죄에 대해서 - 예수님을 안 믿고, 의에 대해서 ? 예수님이 다 이루신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의인데 인간은 자기 의를 쌓더라 말이죠 그거 그런 성화론 책망하시고, 심판을 심판하시고 사탄의 가시 느부갓네살 독수리 이미 심판받았으니 그들이 잘 됨에 낙심하고 배 아파 하지 말아라 시편 73편 성소 곧 예수 안에 들어가 보니 이미 벌써 저들은 심판받아버렸단다 괜히 낙심해서 다 죽게 되었다 말이죠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그래서 74편에는 아예 세상을 책망하는 내용으로 증거되고 있습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마지막이 사망인 죄 아래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앞당길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로부터 출발해서
내가 살아있음 나 있다 내 자신의 영광으로부터 출발해서
결국은 존재로 회귀하는
나 라는 원인으로 출발해서 원인인 나로 끝나는 것이
사망에 속한 자이다는 거죠

자기 스스로 죄를 많이 지어서 사망이 오지 않듯이
자기 스스로 의를 쌓아서 영생이 오는 것이 아닌

그 내부 숙제가 아닌

오로지 외부에서 주어짐으로써 양쪽의 왕노릇 사망의 왕노릇 은혜의 왕노릇에 
죽기를 무서워 죄의 종으로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를 주심으로써 은혜의 종 순종의 종으로써
영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곧 두 언약입니다

죄의 종은 계집종 하갈은 가정부이기에 의에 대해서 자유롭습니다
즉 사랑에 복종 할 수가 없어요 복종할려면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무슨 수로 신랑으로부터 사랑을 자력으로 따 낼수 있겠습니까

물론 신부의 자리는 탐냅니다 그러나 본래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낳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육은 육체는 유업을 받지 못합니다

이 반대인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은
아내 이기에 아무리 둘로 떨어뜨려놓아서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습니다
마치 누가 수갑을 채워버린양 의에 복종하고 있지
의에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둘로 따로 국밥처럼 원수 지간이 될 수가 없어요
반드시 하나가 되는 한 몸인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이 하나된 사랑의 관계에서 낳은 열매가 바로
이삭이라는 영생의 열매입니다

아무리 불 속에 집어 넣어도 안 죽어요
아무리 무태하고 잉태치 못해도 하늘의 자식이 억수로 많아요

이 단절이라는 육체의 소욕의 단절이 도리어
죄와의 단절인 자유함이 도리어 
성령의 소욕인 하나님의 은사가 풍성한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그 피 흘리심이 넘쳐 넘쳐 흐르는 겁니다
생명수가 말이죠

그러니 의에 대하여 자유한 죄의 종들은
이 한 몸 곧 예수님과 함께 같이 된 한 몸 된 운명
막 죽어나가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십자가의 운명을 거부하는 복종치 않는
자유하는 연줄이 끊어진 상태인 겁니다

신부의 자리인 교회의 자리만 탐할 뿐이지
정작 그 신부가 된 한 몸 한 운명은 싫은 겁니다
여전히 둘 로 나누어진 따로국밥인 원수의 관계로 남아서
휘장이 여진히 쳐져 있는 모세언약으로 충분하단다
막힌담이 여전히 허물어지지 않는 모세언약만 있으면 되지
다윗언약은 필요 없다 라고
다윗언약 곧 새언약에 대해서는 자유하겠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율법은 지키지만 복종하지만 율법 외에 한 의에는 자유하겠다 복종치 않겠다 라고 
자유하는 하늘의 여자 예루살렘을 거부하고
계집종 하갈처럼 가정부로써 월급만 달라 청소하겠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러나 가정부가 아닌 아내는
아무리 음모를 꾸며 죄를 뒤짚어 씌워도
죄가 더 이상 묻지 않는
신랑의 피
피신랑의 용서로 죄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인해
죄에 대하여 이미 죽어버렸기에
더 이상 죄 값을 치를 수가 없어서
죄에 대하여 자유하는

죄가 도망치는 겁니다
소용 없다 라고

아까 반대로 예수님을 아무리 임금 삼고자 하는 의를 선을 추구해도
예수님 본인이 임금 되어 주지 않겠다 라고 도망치듯이

자유해 버리는 겁니다 연줄 끊어지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연줄 끊어지는 자유를 즐기고 싶습니까
아니면 의에 대해서 연줄 끊어진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까

자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증거하시면서
이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죄요 그 마지막은 사망이 되는 것이고
이미 결정났는데 친절하게 다시 설명하시면서
이 말씀 성취를 믿는 것이 바로 의가 덮쳐져서 믿게 되는 그 마지막은 영생인
바로 은사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덕분 탓 으로

바울은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이 죄의 권세가 하는 일과
은혜가 왕노릇하는 권세를 말이죠

이 둘 싸움의 고래 등 터져서 결판 결정이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기에
이제 사망이 작살을 꼿아 연줄처럼 말이죠 잡혀가는 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한 자이고

반대로 영생이 작살을 꽃아서 잡아가는 종으로 삼는 자는 이제 죄에 대하여 자유한 자가 되는 삶만 누리는 겁니다

인간의 달음박질 열심 자기 의로움 쌓기 그리고 원함도 아닌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오직 긍휼히 여겨주시는
아니 십자가에서 다 내어주셨거든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다 내어주셨다 말이죠

그런데도 다른 것을 원한다??

아니 성경은 예수님만 구원해요

사람의 구원은 헛됩니다 아니 우상을 왜 구원해야 하느냐 말이죠
사람의 구원이 헛되다 곧 허구인 사람을 구원해 본들 안개이다 말이죠
육체를 왜 구원합니까 허구인데 안개인데 
누가 안개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냐 말이죠

예수님은 자기 피만 구원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로 이 피를 마신 자가 졸지에 생기다 보니
그 마신 피를 구원하다 보니 그 사람이 딸려온 거지
그 사람 자체를 구원함이 아닙니다

아따 매정하네 그게 무슨 사랑이고

아닙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주님은 자기 피만 구원해요
즉 기능이다 사건이다 라는 겁니다
언약만 구원 합니다

의사의 기능만 구원함에 있어서
딱 걸맞는 새로운 죄인이 바로 환자입니다

환자가 의사의 기능이 발현되는 판대기인 거죠

아무도 의사를 원치 않으니까 말이죠

그럼 내가 환자란 말이냐? 죄인이란 말이냐?
나는 건강하다 의사 필요 없다
나는 의인이다 구원자 필요 없다

그래서 주님은 의사는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은 겁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도 고쳐달라고 의사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자가 없었어요
도리어 개같은 이방인 여자
그것도 그 많은 이방인 여자도 아닌
귀신 들린 딸의 어미 한 테만 보내심을 받았음을
역설적으로 매정하게 나는 개같은 이방인에게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라고
이 단절성으로써 증거하시는 겁니다

구원의 단절이 도리어 구원이 될 줄 누가 알았으리요
환자가 된 저주받은 개같은 이방인 됨이
귀신 들린 딸 덕분에 의사 되신 예수님의 피 흘리심
곧 하나님의 의를 만날줄 복종케 만드심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죠

그러니 원인을 갖추겠다 라는 인간의 숙제를 다 비켜가서
두 언약을 한 세트로 이루시는 겁니다

개같은 이방여자가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여자이고
이스라엘은 가정부 밖에 안되는 땅의 계집종이 된 거죠

수태치 못한 여자
여자의 기능이 완벽하게 고장난
이 죽은 자와 같은
무능한 무명한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유한 자
죽은자 같으나 산자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마귀의 세계에서 알아줍니다
이미 자기 밥은 안 알아주는데 마귀에게서 자유케 된 자는 알아주더라 말이죠
무태한 자 같으나 하늘의 자식이 많은

왜? 죽었더라 라는 족보인 아벨의 족보 속에
에녹처럼 죽음으로부터 자유한 자처럼
영생의 족보가 있기에

반대로 낳고 살았더다 족보인 가인의 족보는
어디 죽여보시지 라고 라멕의 까불거리는 그 족보 속에서는
이 하나님의 의인 찢으셨으나 싸매어주시는 이 간극의 3일
곧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이 없어서 저들은

정작 아무리 낳고 살았더라 족보를 이루어도
그 마지막은 사망인 족보였다 라는 거죠

이것이 의에 대하여 자유한 
오죽 자유했으면
야다와 실라여 가인을 위한 벌은 7배이지만
나 라멕을 위한 벌은 77배 이지롱 이라고
백날 저주 내려봐라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지 라고

의에 대해서 자유하다 라고 하지만
정작 그 열매는 사망이고

죽었더라 족보인 셋의 족보는
아벨의 죽음을 계속 이어가는 겁니다
끊어진 것 같으나 산자로써
예수님의 말씀성취로 인해서
죄애 대하여 자유한
사망에 대하여 자유한
아니 어떻게 죽었더라 죽었다라 속에서 어떻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영생의 족보를 이루었는지

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 이룬 말씀성취 곧
십자가의 언약을 구원하심 덕분이구나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만을 외치는 자로 삼으셔서

우리가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라고

다 이루었다 라고 

그 분의 구원 됨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으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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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 너희 간음죄 살인죄로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다시는 애굽(인간구원) 기억 못하게 예수님만 구원하는 이름전쟁 (겔 23,25-27)
에스겔 2019 2024. 2. 2. 13:30
21-071 다시는 애굽을 기억 못하게 사람의 구원을 헛되게(삭제)하는 주의 이름을 구원하는 주의 이름 (겔 23,25-27)

〈에스겔 23,45-4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6쪽, 찬송가 206장 새 284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509장 새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찬 206) 새찬송가 284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찬 339) 새찬송가 282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 (찬 391) 새찬송가 353장
내게 있는 향유옥합 (168)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찬 509) 새찬송가 456장
달리다굼 (891)
불속에라도 들어가 (954)

〈찬송가 206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새찬송가 284장〉

1.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더럽기가 한량없던 우리들 
   아무 공로 없이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 지금 되었네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주의 그 사랑 한량 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2. 주의 보혈로써 정결하게 씻어 죄악에서 떠난 몸이 되었고 
   세상 근심 구름 간곳 없어지니 하나님의 빛이 영화롭도다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주의 그 사랑 한량 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3. 죄의 깊은 잠과 온 세상의 꿈을 어서 깰지어다 나의 친구여 
   은혜 받을 날과 구원 얻을 때가 지금 온 세상에 선포되었네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주의 그 사랑 한량 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겔 23:45, 개역) 의인이 음부를 심문함 같이 심문하며 피를 흘린 여인을 심문함 같이 심문하리니 그들은 음부요 또 피가 그 손에 묻었음이니라
(겔 23:46,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치게 하여 그들로 학대와 약탈을 당하게 하리니
(겔 23:47, 개역)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겔 23:48, 개역)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겔 23:49, 개역)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가스펠 ; 내게 있는 향유옥합 (168) 〉

1.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 놓았네

?2.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3. 내게 있는 향유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맞추고 깨뜨립니다
   주님 다시 이 땅 위에 임하실 그때
   주의 크신 사랑으로 날 받아 주소서


〈가스펠 ; 달리다굼 (891) 〉

1.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어두운 죄악의 길을 걸어가다
   상하고 찢기어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내 영혼 어둠속에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 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 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2. 주님을 떠나서 세상을 향해
   맘대로 고집하며 내 영혼 먼곳으로 나갔었네
   인생의 어려움 절망 가운데
   눈물과 한숨과 내 영혼 슬픔속에 잠이 드네
   주님을 떠나서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 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 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가스펠 ; 불속에라도 들어가 (954) 〉

1. 죄악된 세상을 방황하다가
   천국과 지옥도 나는 몰랐네
   고집대로 영죽을 험한 세상이
   왜그리 더러운지 이제야 아네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2. 탕자를 살려준 주님말씀에
   죄인의 두 다리 묻어 두었네
   아들이여 일어나 내손을 잡고
   남은 몸 모든 영혼 바치라 하네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3. 골고다 언덕길 오르신 예수
   추수할 일꾼들 찾아 부르네
   거친 바다 험한 산 피가 맺혀도
   십자가 내가 지고 끝내 이기리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가스펠 ; 생명보다 귀한 사랑 (813) 〉

1. 나의 허물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 묻으시고
   애절하신 음성으로 이 죄인을 부르셨네
   용서받지 못할 이 죄인 냉정하게 돌아섰네
   그러나 사랑의 주님 오래 참고 기다리셨네
   죽음보다 귀한 그 사랑 생명보다 귀하셔라

2. 나의 슬픔 모든 눈물을 주님께서 씻기시고
   피 묻은 손 내미시며 범죄한 손 잡으셨네
   용서받지 못할 이 죄인 외면하고 뿌리쳤네
   그러나 사랑의 주님 나의 손을 놓질 않네
   죽음보다 귀한 그 사랑 생명보다 귀하셔라

3.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 주님께서 도우시고
   나의 할일 알게하시며 두손들어 축복하시네
   용서받은 천국의 일꾼 회개하며 주님곁으로
   이제는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르오리다
   죽음보다 귀한 그 사랑 생명보다 귀하셔라


〈가스펠 ; 세상 권세 멸하시려 (667) 〉

1. 세상 권세 멸하시려
   주님 이 땅에 나타나시었네
   우리 안에 계신 주
   즐겁게 찬양해 주님나라 거하리
              후 렴 
   죄악을 이기셨네 
   할렐루야 이기셨네 
   죽음을 승리로 할렐루야 승리로
   모든 질병 고치셨네
   할렐루야 고치셨네
   주 다스리시네

2. 주의 보혈 권능으로
   우리 일어나 나가서 외치세
   어둠의 세력들은
   모두 물러갔네 승리하신 나의주
              후 렴 
   죄악을 이기셨네 
   할렐루야 이기셨네 
   죽음을 승리로 할렐루야 승리로
   모든 질병 고치셨네
   할렐루야 고치셨네
   주 다스리시네


〈가스펠 ; 주님의 빚진 자 (966) 〉 

1. 죄악에 썩은 내 육신을 주님이 쓰시려 했네
   죽음의 덫에 걸려있는 몸 주님이 쓰시려 했네
   속죄하는 손 치유하시고 속죄하는 발 치유하셨네
   새 생명 얻은 이몸 다바쳐 주님께 영광돌리리

2. 먹물로 칠한 내 육신을 주님이 희게 하셨네
   십자가 보혈 증거하라고 주님이 살리셨네
   기도할 때에 음성주시고 찬송할 때에 기쁨주시네
   내 작은 입이 내 작은 몸이 주님의 붙들린 자라

3. 평생 갚아도 빚진 자 되어 주님의 빚진 자 되어
   주님가신 길 택하였건만 눈물만 솟구치네
   생명주신 이 주님이시라 능력주신 이 주님이시라
   말씀전하여 복음전하여 주님의 빚을 갚으리


〈찬송가 509장 새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1.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고된 일 하다가 힘을 얻으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2. 네가 어둠 속을 걸어 갈 때에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참 평안을 네게 주시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3. 네가 부활의 주 따라 가려면 그 손 못자국 만져라 
   네가 주 안에서 길이 살리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4. 너의 죄악의 짐 무거울 때에 그 손 못자국 만져라 
   마음 문 열고서 주를 모셔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겔 23:45, 새번역) 그러나 의인들이 있어서, 바로 그들이 간음한 여인들과 살인한 여인들을 심판하듯이, 그 두 자매를 심판할 것이다. 그 두 자매가 간음을 하였고, 그들의 손에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겔 23:46,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회중을 소집하여 그 자매들을 치게 하여라. 그들이 겁에 질려 떨면서 약탈을 당하게 하여라.
(겔 23:47, 새번역) 회중이 그 자매들에게 돌을 던지고, 그들을 칼로 쳐서 죽이고, 그 자매들의 아들딸들도 죽이고, 그들의 집도 불태울 것이다.
(겔 23:48, 새번역) 나는 이렇게 해서, 음란한 행위를 이 땅에서 없애 버려, 모든 여인이 경고를 받아, 너희의 음행을 본받지 않게 하겠다.
(겔 23:49, 새번역) 너희가 음행을 저지른 이유로 형벌을 받고 나면, 그리고 너희가 우상들을 섬기다가 지은 죄에 대한 징벌을 받고 나면, 그 때에야 너희는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지난번 내용이 다시는 애굽을 기억나지 않게 만들어 버리겠다
왜? 넌 날 때부터 우상숭배자 이니까
그렇기에 출애굽 한 적이 없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본들 어차피 산당을 시온산에 도배를 해 버렸기에 소용없다
그러니 너희 구원은 헛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에게 발린 이 피 만큼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만큼은 반드시 구원하겠다
즉 예수님만 그냥 예수님이 아닌 너희 손에 죽은 예수님만큼은 반드시 구원하시겠다
이것이 존재가 아닌 기능 곧 사건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오로지 이 단 하나의 사건 뿐입니다 십자가 사건
곧 너희가 죽인 예수를 다시 살려내서 주가 되게 하신 사건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번제와 제사가 아닌 모세언약 만으로 충분하다가 아닌
인애와 자비인 다윗언약이라는 새술 새부대로만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복음만을
이 새언약만을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새언약에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집이 먼저 심판 받고
그 다음 사마리아 그 다음 땅끝까지 심판하시는 겁니다 이 심판이 바로 구원사건입니다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 4:12,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3, 개역)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4, 개역)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5, 개역)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벧전 4:16, 개역)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벧전 4:18, 개역)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벧전 4:19, 개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이 단 하나의 사건 때문에 창조부터 곧 창세기부터 종말 곧 계시록까지
이 단 하나의 사건만을 증거하고
너희가 죽인 예수님만을 구원하는 내용만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말씀 곧 언약 즉 약속입니다
이 약속만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순종하시며 배우셨거든요

(히 5:8, 개역)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5, 개역)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 5:6, 개역)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 5:7, 개역)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8, 개역)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개역)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10, 개역)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제사장의 기능이 뭡니까 더러운 속된 것을 거룩으로 옮기는 성전의 기능을 실행하는 자 아닙니까
이것이 성전이라는 공간 곧 몸 기능인 5대 제사 
곧 1 번제 2 소제 3 화목제 4 속죄제 5 속건제
다른건 다 피 흘리는 짐승인데
소제는 곡물이다 말이죠 가난한 자가 비싼 동물이 아닌 곡식을 바치게 하는 식인데
사실은 이 모두가 예수님의 몸의 찢겨짐 피흘리심입니다 그것도 첫소산물
맏물이라는 하늘에 속한 십의 일 첫 번째 첫소산물로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번제와 제사 라는 모세언약이 되어버리면
모세의 자리에 다 앉는 완악함이 되어버린다 말이죠
대제사장 멜기세덱 본인이 친히 제물이 되어버리는 이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저 완악한 수건 모세의 자리 샛별의 자리에 교만한 왕 자리애서 벗어날수가 없어요
교만은 곧 우상숭배와 음란과 살인으로 바로 이어지는 겁니다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다윗이 곧 우상숭배자로 태어난 다윗이
북이스라엘(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십자가 필요없다 어쩌면 오늘날도 똑같이 주장하는 목사들 사실은 전부죠 새영을 받지 않았으니 사울왕 짓만 합니다)의 범죄 음란을 욕하면서 본인이
다윗 본인이 사울왕처럼 되어서 밧세바를 취하고 그것을 덮을려고 그 지옥을 덮을려고
우리아 장구을 죽이는 살인죄 까지
네 맞아요 두 자매는 간음죄의 대가가 되고 북이스라엘이지요
오홀리바 동생인 남유다 예루살렘 곧 다윗은 살인죄의 대가가 되는 겁니다
율법은 사람을 온전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간음죄 살인죄의 대가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뭐가? 율법이 말이죠 죄를 죄 되게 죄 아래에 가두는 겁니다
아니 왜 우리 인간은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음란죄 살인죄가 될 수 밖에 없는 지요?
예수님의 친히 제물 되시는 이 인애와 자비가 오지 않으면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 오지 않으면
경건의 껍데기 모양만 갖추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껍데기 모양이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지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 라고
심판의 자리에서 긍휼을 바라는 
주님의 영광 곧 의사되심을 바라보지 않을려는 완악함이다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는 친히 제사장으로써 친히 그 제사장으로부터 갈기 갈기 찢기는
희생양 되는 겁니다 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주님 본인이 심판을 날리고 소제 는 반드시 화제 불에 태우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 본인이 심판을 날려놓고 정녕죽으리라 날려놓고
이러다 다 죽어 라는 모세의 온유 에스겔은 이러다 다 죽습니다 주여 라는 그 온유로
주님 본인이 날린 그 심판의 칼에 본인이 대신 맞으시는
이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었다 말이죠

이 심판 속의 구원이라는 앞뒤 모순된 간극 벌리기가 이 부조리가
이 십자가 라는 스캔들이 바로 하나님의 의
거룩
영광이다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피에 걸맞는 하나님의 영광인 거룩 곧 의에 걸맞는
죄인을 환자를 부르러 오신 겁니다
몸 공간 장소로써의 에스겔 새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의 기능인 5대 제사
그리고 시간으로써의 마지막인 종말을 앞당기는 7대 절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
마지막 영생을 이루는 자가 누구냐를 보라는 것인데
전신에 그 인물 보다 대제사장 멜기세덱을 보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지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도 아닌 자기자산도 온전케도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모세의 자리 그 완악한 자리에 앉다 보니 정작 속 알맹이
온전한 십일조 되신 예수님을 그 예수님의 죽음을 보는 십자가 사건을 안 보다 보니
아침에 즉 어두운 밤을 거친 새벽에 종말에 주의 청년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그 새벽별 계명성 교만한 바벨론왕처럼 되어서
지금도 보세요 이스라엘 보세요 음란과 우상과 교만의 극치를 달리잖아요
이스라엘이 그렇다면 전세계의 국가가 다 똑같다 라는 거죠
그러니 심판을 날리지 않으면 다들 교만한 자리에서 쭐꾸덕 미끄러지지 않는 겁니다
이 마지막 때 라는 절기 유월절 보세요 출애굽의 시작 아닙니까
죄의 종 그 죄의 마지막은 사망 아닙니까 그 사망으로부터 탈출의 시작이자
동시성으로써의 마지막인 이 유월절 7대 절기 때 시간 역사의 시작이
출애굽인데 아무리 유월절 지켜도 출애굽 한 적이 없는 겁니다
산당으로 우숭숭배로 도배를 하잖아요
이런 절기 지키는 것을 날려버리는 마지막 아담이 오지 않으면
마침이 없는 겁니다
이 예수님을 구원하는 것이 성경의 목적인데

그럼 내 구원은요? 구원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사람의 구원이 헛되다 라고 시편 다윗이 고백했듯이
구원해도 마치 우상을 구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손이 있기를 하나요 물론 우상에게 손을 그리고 조각합니다
그러나 만질수도 없어요 만질수도 없는 손을 인간이 조각을 해 놓고서는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그 우상의 손을 만지작 거리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상은 만져주질 않잖아요
그런데 왜 인간 쪽에서 먼저 나서서 만지는 겁니까

경주에 있는 나체 조각상 예술품에 사람들이 젖가슴을 만지고해서 그리고 인증샷 찍고 해서
철거했다고 하잖아요
갤럭시 인공지능이 들어간 최첨단 시대에 그 휴대폰으로 찍으면서도
이 미신은 없어지는게 아니라 더더더욱 구체화 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유럽이 기독교정신에 물론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쳐서 유럽은 취급하던데
그래서 살기 좋은 시대에 무기가 왠 말이냐 그래서 무기 감축을 선언했다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서로 서로 무기 구입에 사활을 걸고 있어요
아무리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대처하라고 데모를 해도 꿈쩍 안하던 각나라의 정부가
무기 구입에는 작년 한 해 전세계 무기구입이 7천조를 넘어갔다 라고 하던데
얼마나 급하면 말이죠 무당의 일을 대신하는 자들이 바로 왕과 정치꾼이라고 했잖아요
자기 나라의 신을 사수할려면 환경오염 보다 무기가 더 급한거죠
호세아 당시 일곱 왕들이 살인무기가 아니면 살 수 없었듯이 말이죠
약속의 땅이 척박한 땅이 되니 활과 화살이 없으면 살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죠

(사 7:24, 개역)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사 7:24, 새번역) 온 땅이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로 덮이므로, 사람들은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사냥을 갈 것입니다.
(사 7:24, 공동) 온 땅이 이렇듯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여 사람이 활과 살을 가지고서야 그리로 들어가리라.
(사 7:24, 쉬운) 그 땅이 모두 찔레와 가시나무 밭이 되어 야생동물이 들끓는 사냥터가 될 것입니다.
(사 7:24, 현대인) 사람들은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가서 사냥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온 땅이 가시와 찔레로 뒤덮일 것이며
(사 7:24, 현대어) 온 나라가 광막한 가시덤불에 뒤덮이고 야생 동물들이 들끓어서 사냥꾼들이 드나들 것이다.


약속의 땅을 우상으로 도배를 했으니 말이죠

그래서 신약은 더 깊어지는 겁니다
구약의 초반의 모세언약까지는 돌 조각 나무 조각등이 우상이지만
호세아서에 곧 다윗언약에 가면 애굽때부터
즉 너희는 날 때부터 우상숭배자로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우상은 모조리 인간의 손에서 제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 서에서는 이 음란한 마음이 바로 우상숭배이다는 거죠
남을 잡아먹을려고 올무를 친 것이 도리어 자기가 친 그물에 자기가 걸려드는 식인 겁니다
호세아서 에서는 모조리 음란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이유 없이 망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신약에, 새언약에 와서는 그 실체 곧 우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곧 탐심이 곧 우상숭배이다 라고 말이죠

남의 아내를 탐하는 거죠

탐하다

그러니 우상문제는 항상 음란과 연관이 된 겁니다 따로 놀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상대방 짝꿍이 있다는 거죠
음란을 자기 혼자 스스로 할 수가 없어요
항상 상대방을 이용해서 자기 유익을 구하는 쪽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상을 성경에서 언급할때에 자기 유익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라는 의미가 반드시 붙어서 나오는 겁니다

상대방 짝꿍이 있어도 결국 자기 유익을 위하는 쪽으로 이용한다는 거죠
이것이 음녀의 특징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바벨론 여자들의 특징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 자식은 고아 안 되리라
나는 과부 안 되리라
내 남편은 나그네 안되리라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내 아들은 부활 반드시 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구원되는 길이니까
나는 반드시 주모 여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받은 증거이니까
내 남편은 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온천하를 다스리는 하늘의 신의 승리이니까 정치문제죠

바로 이런 탐심이 깔려 있는 겁니다
그러니 날 때부터 우상숭배자였던 거죠

그런 음란 그런 탐심을 애굽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말이 애굽의 종 노예였던 거지
사실은 그런 싸움을 하다가 서열에서 밀려서 제일 밑바닥까지 갔다 뿐이지
언제든이 그 탐심이라는 우상숭배 곧 음란은 틈만 나면 스멀 스멀 올라와서
그 지옥의 몸인 것을 반드시 표출 하도록 되어 있기에

이 광야교회라는 이 죽음의 3일의 간극을 거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세 가지 증거물을 저당 잡히고 담보로 잡혀서 말이죠
이 부정한 세가지 물건이 무슨 놈의 저당물이며 담보물이 되는 겁니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이 무슨 놈의 저당물이며 담보물이 되냐 말이죠

약속 그리고 구원 이라는 책이 우리 젊었을때에 무지 무지 유행을 해서
구속사 시리즈 성경공부한다고 난리친 적이 있었는데

그 영향을 받은 선배이자 친척이
약속을 쌍방간의 언약이라고 해석을 하던데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애굽에서 건져낸 거다 말이죠

모든 인간의 약속은 쌍방약속이다 말이죠
상대방인 인정도 안하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혼자 선언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성경은 그런 약속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혼자 쳐들어 와서 선언한 약속입니다
이유는 간단 합니다 담부물이 없거든요
약속을 걸려면 언약을 할려면 그 위반시에 그 벌금을 미리 걸어야 할 것이 뭐 있어야 걸수가 있는데

모조리 다 빼앗긴 노예신분에 뭘 걸고 쌍방약속 거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약속 거래 성사 자체가 불가능한데 말이죠
쌍방이 아니라 일방적인 약속 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이 부조리인 불륜 스켄들이지
성령을 거부하겠다 거래성사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해서
성령 주신다는 약속이 취소 되는 법이 없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목숨값 이거 하나 거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러니 목숨 값 내 걸고 하는 약속은 인간 쪽에서는 없어요
그러나 내 목숨도 더럽다 라고 안 받습니다 
깨끗해야 약속거래가 성사가 되는데
더럽기 짝이 없는데 무슨 약속성사가 되는 쌍방언약이 되냐 말이죠

이 목숨값은 누구의 목숨 값입니까?

유일하게 조폭 깡패 불법사채업자들이 신체포기 각서를 요구하지요
요즘은 그거 없어요 온갖 나체사진을 지인들에게 유포한다 라고 협박하죠
중국에서 하던 깡패짓들이 이제 한국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은 느려터지고
악은 급속도로 퍼지니 말이죠
그래서 황금을 성전에 바쳐야 기도가 이루어지지
그냥 맹다지로 기도하면 안 이루어진다 라는 강도의 소굴 종사자들이 사기를 치는 거죠

제가 실수로 이번주 에스겔 말씀인데 헷갈려서
호세아 말씀을 한참 준비하던 중에 뭔가 이상하다해서 보니
아 이번주는 에스겔이구나 라고 부랴 부랴 새로 준비를 했는데
한 반틈 정도 글을 적었다 말이죠
그 속의 내용이 제목을 미리 말하면 

23-13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 (호 7, 1- 3)

오늘 본문 내용과 똑같습니다
에스겔은 포로 이후 바벨론 잡혀간 상황에서 과거 이런 죄악들을 지적하시는 것이고
호세아는 포로 이전 이사야도 이전이니까 한참 전에 이미 멸망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미리 지적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두 자매 언니 사마리아 북이스라엘의 간음죄를 심판하시겠다
동생 예루살렘 남유다의 살인죄를 심판하시겠다 라는 내용입니다
다윗 보세요 반드시 살인죄 까지 주님이 뒤짚어 씌우시는 겁니다
그래야 꺽으신 뼈의 기능을 구원하시니까요
다윗은 때려죽어도 그 꺽으신 뼈까지 안 갈려고 해요
베드로는 끝까지 부인하지 않겠다 라고 십자가의 죽음 곧 새언약까지 안 갈려고해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사탄의 일 사람의 일을 고집합니다

나는 간음죄 안 저지르겠다 나는 살인죄 안 저지르겠다
그렇게 간극을 좁힐려고 하면 할수록
주님은 그 반대로 단절 곧 간극을 더더더 벌리시고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간음한 여자로 만드시고
살인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화론자들이 극구 반대하겠지요
아니 누가 나를 의도적으로 간음죄인 살인죄인 만들려고 하는데
반발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즉 이 말은 우리가 아는 그런 간음죄는 간음죄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진짜 간음죄가 뭔지 알려주시고자 우리를 간음자 살인자로 만드신다 말이죠

간음죄 저질러서 지옥가고 살인죄 저질러서 지옥가는게 아니라
늘 수시러 올라오는 간음 음란 우상을 억지로라도 억눌러서
스멀 스멀 올라오는 그 죄를 억눌러 이기지 못하면
바깥의 죄와 내부의 죄가 만나서 나를 사로잡기 전에 내가 조치를 해야 한다 말이죠
바로 그런 마음 자체가 간음이다 라는 겁니다
아니 지금 틀어막는다 라고 해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가 멈출까요?
내일은 무슨 수로 장담하냐 말이죠
고때만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른 겁니까?
날때부터 간음죄인 살인죄인 인구조사죄인으로 태어난 겁니까?
심지어 주님은 애굽때부터 처음 젖먹이 핏덩어리 때부터
너는 우상숭배자로 태어난
너의 어미는 헷사람 무당의 딸이자 창녀이고 너의 아비는 아모리 사람 기생오라비 포주이다
즉 가나안 잡족이다 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이다 라는 거죠
즉 간음한 자로 태어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한다 즉
죄가 뭔지 모르고
의가 뭔지 모르고 심판이 뭔지 모른다는 거죠

간음죄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간음죄의 깊이 속에 집어넣습니다
모조리 간음한 여인으로 오늘 본문처럼 취급해 버리시는 겁니다

아니 지난번에 애굽을 기억지 못하게 하신다메요?
네 그러니까 내 말이

네 그카이 간음죄 살인죄를 심판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애굽을 지워버리면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네 맞아요 그 카이 심판하시는거죠

아니 심판 말고 기억을 지워주면 되잖아요

인간이 웃기는게 자기가 항상 불리할때는 또 그동안 무슨 소리인지 못알아먹겠다 라고
너무 추상적이다 라고 거부했던 모습만 추구하다가 왜? 지옥의 몸인 자기 몸에 안 맞거든요
지옥의 몸인 동시에 선한척 해야 하기에 못 알아먹는 척 하다가

그러다가 이럴때는 또 
그 추상적인 표현 뭐 애굽을 기억에서 지운다고
그개 말이 되냐 무슨 컴퓨터 저장장치에 삭제 하듯이 하느냐
기억에 이미 박혀 있는데 무슨 수로 라고 비웃다가
정작 불리할때는 아니 기억을 지워 주신다메요 라고 따지는 겁니다

즉 확증편향처럼 듣고픈 것만 들어왔고 보고픈 것만 보아왔고 믿고픈 것만 믿었던 거죠
알면서도 계시록의 음녀처럼 제사장의 딸처럼 알면서도 모른척 안보이는척 안믿겨지는 척 했던 거죠

그래서 기억 지워 주십니다 기억 지워 주시니까 심판한다는 겁니다
즉 아예 원천적인 그 몸을 죽여버리면 굳이 뇌 속의 저장장치 안의 기억파일만 삭제 할 필요 없이
전체 몸 자체를 죽여버리시는 겁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컴퓨터 부품 저장정치에서 파일 하나만 삭제하면 될 것을
왜 쓸데없이 그 썩어버린 부분만 삭제 하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 않고
아예 컴퓨터 전체 다를 박살 내 버리시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은 거부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자기가 죽는 마당에 데모 시위 안 할 인간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인간은 오로지 자기 영광만을 위해 사는 우상 그 자체
탐심 그 자체가 된 겁니다

전체 다 박살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전체 이스라엘 모두
이스라엘이 인류의 대표성이니까
모든 인간을 모조리 다 간음한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간음죄가 뭔지도 몰랐음을 간음죄 깊이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인 이 새성전 새마음 새영의 영광됨을 위해사
간음한 여인의 죄로 만들어 버려야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의 입장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예수님이 누구신가 라는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마귀에게 잡혀오는 겁니다

마귀는 신났습니다 드디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도 소용이 없을 걸 이라고 예수님을 잡고자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던 거죠

어라 그런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쳐 죽여라 하시고는
땅에 뭔가를 쓱쓱 쓰는데
남자들은 다 압니다 모르는 척 하고 있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 마다 간음한 자이다 라고
예수님이 율법을 확대해석을 해 버린 입장에서
남자 치고 간음자 음란죄 안 저지른 자가 없음을 말이죠
그러니 땅에 뭔가를 쓱쓱 쓰는 내용이 뭔지
남자는 잘 안 물어보는데 거 보세요 다 압니다
자꾸 교회에서 여성분들이 많이 물어보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돌로 쳐 죽일려는
율법의 돌을 쥔 법의 돌을 쥔 남정네가 간밤에 뭐 했는지를
꼭 간밤이 아닌 너가 간음한 증거의 내용을 적어버렸기에
얼마나 놀랬으면 신념과 오기와 완벽한 모세언약의 믿음으로 그렇게 돌삐를 잡고서도
놀래서 돌을 쓸며시 놓고 내몰라라 도망을 쳤겠습니까
간음한 내용을 상세히 적지 않고서는 그렇게 발가벗고 도망 칠 리가 없거든요
신념이고 믿음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서 말이죠
인간이 법의 돌삐를 놓았을 정도면
이거 자기 목숨 걸린 문제가 아니면 그렇게 안 도망칩니다

그리고서는 그 간음한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않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간음죄의 깊이 속에 있어보니까
바로 나도 너를 정죄치 않겠다 라는 주님의 영광을 안 쳐다보는 것이
진짜 간음죄이다 라는 거죠

또 이것은 양탈쓴무리마을 사모가
다시는 죄 짓지 말라 하셨지 않았냐 라고
또 그 목사사모가 간음죄를 또 저지르고 있어요
그게 간음죄이다 말이죠
사탄의 깊이를 거치지 않고 간음죄의 깊이를 거치지 않고서
사탄의 얕은 것만 대충 알다 보니
하나님의 깊은 십자가의 영광도 대충 얕게 알아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간음죄 저지르는 북이스라엘의 신앙과 똑같더라 말이죠
나라 이름도 이스라엘을 그대로 따와서 그 정통성을 유지하겠다는 심뽀로 말이죠

여기에 그럼 남유다는 좋겠네 가 아니라
그렇게 얕게 알던 북이스라엘에 비해 남유다 예루살렘 
곧 여동생 오홀리바는 더더더 더러운 간음으로 살인까지 더 깊게 홈을 파서
간음죄에다가 살인죄까지 이젠 7만명의 가정을 파괴하는
전두광이 보다 더 악한 인구조사죄까지 뒤짚어 씌워서
닭그네 세월호는 근처도 못 옵니다
이태원 압사사고 무당대땡령도 근처도 못 옵니다
이 일만달란트 용서의 영광 44조가 20년전 계산이니 체감값은 현재 최고 부자
빈살만 인가요? 3000조 곱하기 7에 70이 되는 겁니다
7을 곱하라는 말이 아니라 절대죽음 값으로 간극을 더더더더더 벌리는 단절이라는 겁니다
인간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짜를 정도로 접속하고자 하는 계산기 두드림이 아니라
두들겨 계산해 본들 소용이 없다 라고 체감값이라고 하고서는 도저히 체감할 수가 없는
포착불가능한 값이다 라는 겁니다
그 당시 일만달란트는 솔로몬의 영광을 염두한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인의 체감값이다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그 반대인 들에 핀 백합화의 영광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내일 아궁이에 던질 풀로써 즉 불구덩이 풀무불 속에 집어넣는 영광으로써 말씀하신다 말이죠

그러니 진짜 간음 죄는 예수님의 이 십자가의 영광 곧
화목제물에 맞는 걸맞는 죄인 환자로 만드시고자 하는 간음죄 주께만 범죄한 자 만드시는
신부 만들기 이신데 왜? 피신랑에 맞거든요 피에 맞는 모든 허물을 덮는 피
그래야 지혜이다 말이죠 물론 인간이 원하는 지혜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과 같이 되는 선악을 알아서 재판관이 되는 것이거든요
문제는 자기가 죄인인 주제에 뭘 율법대로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게 진짜 간음죄이다 말이죠
그래서 간음죄 근처도 못가는 간음죄를 더 깊은 간음한 죄인 만드시고자

그 놈이 니 다 ~~~~~~~~~~~ 다윗 이놈아 라고
빈자리 텅텅텅 빈 아무것도 내밀수가 없는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인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영광인 꺽으신 뺘로 기뻐하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피 신랑에 걸맞는 신부로 말이죠

우리는 법 아래에서 그것도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하지도 못하는
그런 간음하지 말라 라는 법을 지켜서
간음 안했다 라고 간음죄가 뭔지 아는 듯이 우기지만
그 반대입니다

십자가 라는 사건에서만 우리는 간음죄가 진짜 뭔지를 아는 겁니다

그래서 오홀리바 언니 사마리아 간음죄 보다 
그 언니 사마리아의 간음죄를 욕하면서도 동생 예루살렘 오홀리바의 간음죄는
더더더더 깊어져서 살인죄 까지
밧세바를 취한 것을 덮고자 우리아 장군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써
철저하게 계획을 짜서 죽인다 말이죠
주님이 다윗에게 악령을 집어넣어서 그 간음죄 살인죄까지 스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악을
자기 손으로 가리고자 회개 눈문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이게 간음죄
더 깊은 간음죄 임을 들통나게 됨으로써

더 이상 내밀 것 하나 없는 그 환자 간음죄인 된 상태에서
이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바로 이 십자가의 피 용서로만 다시 살려주심을 받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죄인 간음죄인 환자로써 동원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예수가 누군지 안다 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신랑됨 그 완성체 되심에 신부로써 텅텅빈 그 빈자리에서 신랑의 옆자리 짝꿍 기능을 하는 겁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들어간다처럼
신랑의 머리되심 영광되심 앞에서 나는 무능한 원수일 뿐입니다 라고
머리가 책임져 주지 않으면 내가 내 스스로 살아갈 입장이 못된다 라는 거죠
이것이 바로 창조의 의미를 담은 남녀관계 곧 신랑과 신부의 관계인데
독자적인 음녀는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을려고 하니
자꾸 율법 네 배나 갚으라 자꾸 세 번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겠다
장지지겠다 정 안되면 십자가에 함께 달려 죽겠다 라고
계시록의 음녀 짓을 하겠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더라 말이죠
자기 영광을 구하는 음란이요 우상숭배인 겁니다 가짜 하나님
하나님과 우상을 썩은 찌기인 거죠
그거 풀무불 속에 집어 넣어서 분리 단절을 시키는
닭 울음 세 번 넘어설수 있으면 넘어서봐 라고 3일의 간극인 하나님의 의로
거룩으로 분리 단절 시키시는 겁니다
의 라는 거룩은 구별 구분 분별 시켰다 라는 겁니다
뭘? 엉터리 간음죄 엉터리 살인죄 엉터리 죽음
내 끝까지 따라가서 합께 죽겠다 라는 그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드는 겁니다

진짜 정녕죽으리라 라는 죽음은 주님 쪽에서 손 수 직접 마련하셔야 합니다
안그럴꺼면 왜 느닷없이 모세가 변화산에서 1300년 만에 나타나고
동시에 900년 만에 나타난 엘리야와 함께 어서 죽어주세요 별세해 주세요 라고 합니까

베드로 주장이 맞을꺼 같으면 변화산에서 1300년 간극 900년 간극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3일의 간극
이 세가지 죽음으로써 모세도 엘리야도 자기들이 죽겠다 라고 함께 죽을랍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예수님에게만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하느냐 말이죠
죽음 근처도 못가는 모세의 죽음 엘리야의 죽음은
화목제물이 될 수가 없어요
절대죽음 절대심판 절대저주가 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되고파도 말이죠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오로지 예수님만이 담당하실 하나님의 영광인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마귀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지혜로써
천한 계집 곧 간음하고 살인한 이 오홀리바 예루살렘을
왕비의 자리 
왕의 자리에 걸맞는 왕비 신부의 자리에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원수들의 목전 상에서
마귀보란 듯이 펼쳤을때에
비로소 사망의 왕 노릇에서
은혜의 왕노릇으로 옮기시는 참성전의 기능을
하나님의 영광되심을 이루실 것 아니냐 말이죠
그 영광 앞에서 안 타죽는 것이 다행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거꾸로 보는 겁니다
사람들의 선악의식과 이방인이죠 그리고 유대인의 율법 그리고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양심
그런 법 아래에서의 간음죄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그런 간음죄로 얕게 아는 겁니다
하나님의 깊은 영광 없이도 다 아는 것
그게 간음죄인줄 알아요

아닙니다 진짜 간음죄란
바로 그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다시는 정죄치 않으시겠다 라는 하나님의 깊은 영광을 못쳐다보고 못알아보니까
자동적으로 율법으로 양심으로 법으로 돌삐 던지거나
자기 눈에 대들뽀는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를 억지로라도 꼬투리 잡고자 하는 그 심뽀로
결국은 예수님까지 죽인 살인자로 모조리 만들어 버린 그 십자가의 사건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너희가 살인자 간음자 이다는 증거가 여기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느냐 사기를 치느냐
그래 죄 없으면 돌삐 던져보라니깐 던져봐 던져봐

네 맞아요 던져야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 범죄치 말라고
그리고 범죄 예방을 위해서 큰 벌금 때리듯이 그 당시는 돌로 쳐서
다시는 간음죄 짓지 말라고 하는 정의구현이다 말이죠

문제는 과연 돌을 던질정도로 그 율법을 쥔 그 당사자는 간음죄가 없기는 하는가 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남들 눈에만 안 들켜 버렸고
그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만 재수 없게 남들에게 들켰다 말이죠
법은 어쨌든 저쨋든 심판하는 것이 맞아요
문제는 심판 안 받을 정도로 깨끗한 자가 단 한 사람도 있기는 하느냐 라는 점입니다

에이 그런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그럼 범인을 잡는 형사들은 단 하나도 죄가 없는 순수한 자이어야 하겠네 라고 또 옆으로 새는 주장을 하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라 지금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끝내 죽이는 살인까지
주님은 뽑아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건 마귀가 베드로에게 들어가서 다윗에게 들어가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난 저 사람 몰라 모른다니깐 내가 저 사람 알면 장지자겠다 라는 차원과 달라요
그것조차도 절대죽음 축에도 못 끼는 겁니다

마귀가 아닌 예수님이 자신이 십자가의 영광 그것도 부조리한
하나님의 저주인 이 십자가라는 예수님의 죽음의 영광에 걸맞는 죄인으로써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도 안되는 역설적인 고백
죽을까봐 모른다는 고백이
아니 무슨수로 사랑한다 라는 고백으로 바뀔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진짜 참성전의 기능인 걸어다니는 성전의 기능인
더러움음 거룩으로 옮기는
심지어 마지막 아담의 표상으로써의 아담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라는 신부로써

우리는 드디어 모세언약이라는 가정부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받은 사랑의 관계인 아내의 자리로 옮기움을 당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십자가의 영광으로 인한 아내 신부로써
피신랑의 영광을 부어짐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사랑 밖에 없는 겁니다

모른다 가 우찌 압니다 고 야다 (누군지 안다)로 바뀔까요

3일의 절대단절인 절대죽음 절대심판 절대저주 라는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른다 라는 자리에서 어떻게
압니다 내 신랑이 누군지 라고 사랑으로 바뀌게 되느냐 말이죠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 비밀 비유인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의 깊이 보다
내 구원이라는 사적인 영광이 깊이에 빠져 물론 그것도 타인의 욕망이라는
욕망 같지도 않은 얕은 욕망으로 인해서
그러니 내 유익을 염두하고서 들은 애굽을 기억에서 지우겠다 라는 소리를 또 곡해한 겁니다
아 그럼 나를 선하게 만들겠고 음란마귀 야동 영상 파일을 삭제 시키겠구나
다시는 떠올리고 싶어도 못 하도록 
그래서 선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시겠구나
이게 성화론자들 주장 아닙니까
그런데 이건 모든 종교에서 다 같은 주장을 해요
성화론자만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바로 그게 음란인 거죠
왜냐하면 바로 그런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니까
듣고픈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어라 돈을 주네
결국 이것이 장사가 됩니다
그러니 종교는 장사입니다
자본주의 라는 세속적인 돈을 거부한다고 하면 할수록
그런 교리를 만들어서 실천한다고 하면 할수록
더더더 자본주의 보다 더더 자본주의가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 라는 음녀는 늘 국가라는 짐승에게 늘 짖 밟혀요
불교도 그렇고 종교 치고 국가로부터 핍박 안 받는 종교가 없어요
그렇게 서럽게 핍박받는 종교가 국가 라는 짐승의 등에 반드시 올라타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결핍이 더더욱 짐승 등 위에 올라타고자 하는 욕망으로 자리 잡에 되니 말이죠
그 국가를 살살 달래는 것이 바로 돈이거든요
돈 때문에 로마로부터 그렇게 핍박 받던 기독교가 갑자기 세금이 모자르게 되면
국가 운영이 안된다 말이죠 그래서 세금으로 충당할려면 핍박이 갑자기 멈추고
도리어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서 왕권강화를 해야 한다 말이죠
호세아 서의 왕권찬탈의 방식과 별반 다를 것 없어요
그러니 이것을 무조건 좋다거나 무조건 나쁘다 라고 해석할게 아니라
그카이 성경 66권이 결정되는 것 조차도
다 사탄의 가시가 푹 찔린 은혜아래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저들의 수고로 인해서 결정되는
마치 자기의 약함을 알고 힘센 임금님 성에 빌어붙어 사는 지혜로운 네 짐승의 잠언말씀처럼
내 종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서 이스라엘 전체를 간음자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로 만들어서 예수님의 죽음과 접촉시키시는 그 인애와 자비
반대로 유대인은 그 반대인 번재와 제사로
안식일날만 골라서 왜 손마른 자를 고치느냐 라고
반드시 예수님을 죽이고자 살인을 계획하는
살인 하지 않으면 지금 유대교가 저 한 사람에 의해서 와해될 판국이니
번제와 제사는 결속력이라는 정치가 함유되어 있거든요
그 결속력을 깨뜨리면 독립자금이 없어서 자꾸 독립운동은 점점점 느려진다 말이죠
결국 종교는 돈입니다 국가는 돈입니다
종교가 돈으로 국가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는 겁니다
그래야 아무리 핍박받던 종교도 국가 짐승 등 위에 올라타야
비로소 자기 보다 더 약한 자를 마음껏 죽일수가 있어요

유대인이 자기들 손 피 안 묻힐려고 정치인 곧 무당이지요
무당의 손 본디오 빌라도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 죽이고자 할 때
아 이 빌라도가 그 노림수를 눈치 채고서는 안 말려들고자
도로 빠꾸 되돌려 보낸다 말이죠
국가 라는 짐승이 말이죠
그럼 종교라는 무당 신과 접속하는 놈들인 유대교인들이
어쭈 안속는다 이거지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정치인들의 약점인 바로 정치자금 돈으로 압박하면
데모를 일으키면 그것도 보수하는 것도 돈이고
뭐 돈이 안 드는 것이 없게 되니까 말이죠

앞으로 돈 되는 일 안해주겠다 라고 하면 같은 무당인 빌라도가
쌍방합의를 안 추구하겠냐 말이죠

과학도 종교이다 라고 지젝이 주장했듯이
모든 과학 기술이 들어간 모든 학문 자체가 종교 아닌게 없으니
의료 파업으로 국가를 길들여서 등 위에 올라타지 못하면
노동자 운동이 다 이런 거죠
도리어 빌라도에게 밀린다 말이죠 무당대통령에게 밀린다 말이죠

여기에 무슨 놈의 하나님의 영광이 그것도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어리석은 지혜의 영광이 어디에 끼일 틈이 있겠습니까

인간 자기 영광만이 될 때에 국가도 수용해 주지
내 영광이 안되는 상황에 국가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
그카이 독립운동 유공자는 도리어 3대가 망할 정도이고
매국노는 천대가 부유해진다 라는 소리를 듣는 거죠
시편 73편 아삽의 시가 생각난다 말이죠

요즘 누가 국가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까
내 영광에 방해되면 국가라도 짖 밟아버리는 판국에 말이죠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는 이 간음자로 만들어서
사탄의 가시 국가라는 짐승에 짖 밟히는 자로 만들어서

그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서 이 신랑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음녀이면서도 건강한자인척 즉 환자아닌척
또 의인인척 즉 죄인 아닌척 간은한 자 아닌척
하는 그 음녀의 특징인 신랑을 자기 쪽에서 찾아서 취사선택하는 그 음란 짓을 꺽어버리시고
다시는 애굽을 기억치 못하도록 하시고

도리어 황무지의 자리
뭘 해도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주님 쪽에서 의사의 기능 의사의 영광에 걸맞는 환자의 자리 죄인의 자리
주께만 범죄한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사

그 황무지 들에 백합화 자리 내일 아궁이에 던질 심판받아 마땅한 자리에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라고 신랑이 먼저 부르는 노래에
화답하는 신부로써 새노래를
헵시바야 뿔랴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묻는 그 신랑의 음성에
네 ~~~~ 라고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아니 가르쳐주는 자도 없고 배누는 자도 없는 이 새노래를 저절로 화답하는
먼저 부르신 그 음성에 화답하게 만드시는

주님 자신의 영광에 걸맞는 신부로 만드셨기에 말이죠

이것이 간음죄를 제대로 알고서 그 깊은 간음죄를 거쳐서
잃어버림을 거쳐서 나오는 주님이 손수 해결하신 간음죄를 해결하신 신랑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간음죄 만을 해결하시는 분으로 착각하는 그걸로 족합니다로 끝나는게 아니라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내 누군지 아니 장첸 아니 주님임을 반드시 알게 하시는

그래서 모르는 자리 절대 나 그 사람 모른다 라는 그 자리를 거쳐서
황무지를 거쳐서
이름을 부른적 없던 자리를 거쳐서
찾지도 부르지도 않던 백성의 자리를 거쳐서

반드시 이름을 안 부르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반드시 부르신바 찾으신 바 되도록 하시는

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동원이 되는 아내의 기능으로써
우리는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간음자로 만드셔서

그 간음한 여인에게서만 반드시 의사의 기능을 신랑의 기능인
뭘해도 잘했군 잘했어 라는 가정부와의 차이로써의 아내
이 두언약으로 사망과 영생을 가르시겠다 라는 겁니다

바리새인의 식사초대로 바리새인의 초청받아 갔는데
간음자 창녀 마리아가 비싼 향유로 발을 머리카락으로 씻고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장사 치르는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낼때에
제자들고 특히 회계담당 가룟유다는 제일 화를 내면서 그 돈 독립자금 총알로 왜 안쓰냐 라고 화를 내고
초대한 바리새인은 아니 선지자 맞다면 이 여인이 간음을 전문적으로 해서 돈 벌어먹고 하는 창녀인데
그 창녀의 영접을 넙죽 받는다 라고 속으로 말하더라 말이죠

아니 선지자 라메? 그런데 더러운 창녀를 받아준다고?
선지자 맞기는 맞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더러운 간음으로 몸 판 돈 때문에 왜 의롭게 쓰지 않는다고 화 내고

저 마다 다 자기 나름대로의 의로움을 다 계산하고 있더라 말이죠

정작 주님의 의는 주님의 영광은
이 여인이 이 창녀가 이 간음한 여자가
전재산 향유를 깨뜨려 가면서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주는 이 화목제
십자가 사건을 외치고 있는데
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을 기념되게 계속 반복적으로 증거하심에 있어서
상대적인 비복음도 동시에 제자들의 화냄과 바리새인의 의심이 동시에 같이 그 차이로써
두 언약이 한 세트로써
아내와
가정부의 차이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여자 곧 무태한 자여 기뻐하라 하늘에 자식이 많음과
땅의 계집종 하갈의 순풍 순품이 정작 하늘에 자식이 하나도 없음을
대조 하듯이

향유를 부은 여인을 주님이 높이 높이 높이시는 겁니다
유일하게 가정부가 아닌
법 아래에 있는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함에 있음이 아닌
죄의 종인 마지막인 사망에 있음이 아닌

은혜 아래에 있는 의의 종인 사랑의 순종에 마지막인 영생을
영생의 주로부터 부여받은 신랑이 누구인지 안 자이다 라는 겁니다

야다 남자를 아는

즉 신랑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는 유일하게 아내 밖에 없고요
가정부는 백날 해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겁니다

베드로는 비로소 교회의 자리에서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외치듯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신부의 자리인 교회로써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닙니다 라고
너끈히 죽음을 세 번 넘어서 오시는 그 신랑의 사랑의 노래에 화답하는 겁니다

이미 음부의 권세 곧 간음죄의 권세 즉 절대로 저 사람 난 모른다 라는
간음죄를 거쳐봤기에

그 음부 속에 까지 쳐들어온 이 요나의 표적
어두운 깊은 바다 큰 물고기 뱃속 스올 무저갱
그 지옥에 까지 뛰어드신

오홀리바 부정한 자궁 속에 더덛더 부정한 자궁으로써 십자가의 태로써
하나님의 저주인 절대죽음인 십자가의 표적
요나의 표적으로써
광야 속의 광야

아이고 그것도 광야가
그 죽음도 너끈히 이기시는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사랑으로써
자신이 누구신지를 내 반드시 너에게 나를 알리겠다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고멜과 같은 나에게
바알우상을 남편으로 삼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그 부부지간에 끼어들어서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갑자기 간음한 여자로 취급해서
딴 남자랑 놀아나고 있는 기혼녀 취급해서
반드시 내 너에게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이게 신약에서는

먼저 강한 주인을 결박하고 그 집 주인의 세간(장롱 가구)를 빼앗는
전리품으로 삼는 세간을 빼앗는 도둑놈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표형했다 말이죠
이것이 천국의 침노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장소 공간이 아닙니다 몸입니다
구체적인 몸입니다 인물입니다
장소와 공간은 누군지 아니 라는 표현을 쓸수가 없어요
어떤 장소에 가서 누군지 아니 라는 말 자체도 성립이 안되고도
어떤 특정 공간에 가서도 누군지 안다 라는 말 자체도 성립이 안됩니다

때 시간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특정 시간이 되면 누군가를 알게 된다 라는 것도 말이 안되요
안식의 주인을 알 생각은 안하고
안식일 지키기 주일성수 하기 그것만이 인간들에게 있을 뿐이니
이것은 절대로 신랑을 유일하게 아는 신부 아내가 아닌

그저 행함을 쫓는 가정부 그래서 그 보상인 월급 댓가금 급여만 있을 뿐인
인간 자기 영광 뿐이다 말이죠

아내는 여자는 남자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때만 창조의 의미가 되듯이 즉 사랑으로 창조했듯이

가정부나 로봇청소기나 이런 기계들은 굳이 사랑이 아닌 법으로도 충분히 제작 할 수가 있다 말이죠
가정부나 로봇청소기는 다른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어도
딱 하나 이거 하나만은 못 하죠
사랑을 못 합니다

제가 공장 다닐때에 공장장이 하는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자기는 거짓말을 하는 인간이 진짜 싫다 라고
그럼 뭐가 좋은데? 기계가 좋데요 글쎄

아 그럼!! 네 맞아요
기계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시키는 것 그대로만 하니까
입력한 값 그대로만 뽑아내니까 말이죠

아 그때 알았죠
예수님은 기계 곧 가정부를 위해서 죽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자 의인 거짓말 하지 않는 자를 위해서 죽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 거짓말 쟁이 간음한 자 환자를 부르러 오셨다 라는 것을

그래서 무당대통령은 자기는 사람을 안 믿는다 라고 하잖아요
거짓되니까
그런데 본인이 더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해요

성경은 간음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자가 도리어 간음자의 달인으로써
그 간극을 좁힐 길이 없다 라고

다들 인간 관계에서 가정부와 가정부로써 인간 관계를 맺을때에
예수님은 안식의 주인 즉 때 시간을 날리는 종결 마침이 되는
최종 관계인 사랑의 관계
종말의(마지막때에 부어주는 새마음) 관계로써

손마른 자를 일부러 안식일 지키는 가정부들 보란 듯이
손마른 부정한 자를
간음한 자를 다시는 정죄치 않겠다
안식일 날만 골라서 손마른자는 고치시겠다

이 사랑이 또렷하냐? 아니면
율법의 행함을 쫓는 것이 또렷하냐?

율법 외에 한 의가 또렷하냐?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는 불온전함이 또렷하냐 의문의 반복 미완료가 또렷하냐?

아니 누가 미완료가 또렷한 완료라고 하겠냐 말이죠

사랑이 또렷하잖아요
다시는 정죄치 않겠다가 또렷하잖아요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 라는 인간의 다짐은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오늘 세 번 부인 하지 않았다 내일은 장담하냐 말이죠

그건 날 때부터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가 잠재된 채로 태어난 
죄인임을 간음자임을 모르고서 하는 소리인 겁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모르는데 어찌
여호와가 누군지 알겠냐 말이죠

네 이제 아시겠죠
우리가 에스겔 그리고 호세아서 구약 후반 선지서 들을 통해서

자꾸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알리라 자꾸 카시면서
정작 동시에 자꾸 간음한 여인 더더더 더러운 오홀리바
고멜 창녀 더더더 음란한 더더더 우상숭배자로 몰아가시는

그 당사자가 바로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라고 하시는 여호와 이시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동안 곡해해 왔다 말이죠
의인의 자리에서 
건강한 자리에서
저들 성화론자 곧 바리새인들처럼
율법 지키는 자리에서 여호와가 누군지를 제대로 앟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이죠

아닙니다 그럴 것 같으면 베드로를 왜 세 번 부인케 만드시는지를
그들은 답을 못 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구원론을 펼쳐요

그러니 구원이 될려면 자꾸 내 쪽에서 구원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게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신학인 거죠
다윗 언약 필요 없다는 주장입니다 

십자가 고만 캐라 마이 무따 아이가
이거 실제로 목사가 외친 말입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된 
즉 우상을 구원하겠다 라는 주장과 같아요
아니 그 구원받겠다 라고 구원의 조건을 갖춘 것이
다 한결 같개도 모세의 자리에 앉은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은 모습 뿐이더라 말이죠

땅의 계집종 하갈의 모습이다 말이죠

구원론이 그래서 혼합물인
우상과 하나님을 썩은 내 구원을 포함시킨 
인간의 잔머리 속임수가 썩인 겁니다
무당의 언어이다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론은
그 영광 앞에서 되도 않는 성화론이라는 깨끗함 조차도
더럽기 짝이 없을 정도로 너무 너무 영광스러워서
안타죽을려고 천사가 여섯 날개로 가려야 할 절도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이 간음하는 몸
이 음란한 몸
이 우상숭배의 몸
이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이 절대죽음 속에 뛰어드신 이 십자가의 영광을 위해
의사의 수술칼의 영광을 위해
다들 무시하는 모세의 지팡이 그 아무것도 아닌 꼬챙이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생사가 갈리는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서
신랑의 피에 걸맞는 신부 아내 자유하는 예루살렘 오홀리바
얼마나 자유했으면 막사는 창녀 마리아
간음녀 오홀리바 였겠습니까?

그런 고멜과 같은 우리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강한 집 주인을 결박하고 세간인 너를 빼앗고야 마는 도둑이 되겠다
가나안 땅 정복하듯이 천국을 침략해서 천국을 빼앗고야 말겠다
너는 나의 신부로 반드시 만들고야 말겠다 라고

이 화목제물만 이 십자가만
이 주의 이름의 영광만 밀어붙이심 앞에서

비록 황무지
비록 무태한 잉태치 못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 일지라도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날 때부터 소경이 되어야 했듯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도리어 또렷히 보는 자는 
눈이 잘 보이는 건강한 자가 아닌
절대로 볼수가 없는 소경의 자리에서
간음한 여자의 자리에서 또렷히 보고 외치고 누구인지를 알 듯이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지혜 십자가의 비밀을 보는 눈이 없어서 망하는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 치르는
이 간음한 여자 창녀 마리아로써 우리는 부르신다 라는 의사 앞에

제가 간음한 자요 제가 죄인이요 제가 소경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주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보게 해 달라고

자기 잃어버린 아내를 도로 찾겠다 라고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아니 로봇 청소기에다가 아무리 돌쇠 라고 이름을 붙여도
돌쇠 마당쇠 라는 하인을 구원할려고 죽으시러
십자가에 달려 죽이신게 아닙니다

그런 하녀 그런 가정부가 아니라

아내를 구원하고자
사랑은 자기 목숨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거든요

아내가 모조리 가정부에게 포로 잡혀 있다 보니
천한 계집종의 자리에서 왕에게 걸맞는 왕비의 자리로 격상 시키는 겁니다

여기서 왕이란 참성전을 시온 세상의 중심에 세워서 완공하는 자입니다
즉 비로소 평화가 오는 거죠 전쟁의 마침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라는 외침은
이제 죄의 종 노릇 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겁니다
참성전이 계시록에서 이미 완성이 다 되었기에
우리는 이 땅의 이스라엘을 왜 멸망 시키시고
왜 이스라엘 전체를 간음한 자로 규정하시는 주님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랑 본인이 신부를 간음한 여자로 만드시는 이유는

신부 자기 쪽에서 스스로 간음을 해결했다거나
스소로 자기 순수함을 내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이 십자가의 죽음이 그 피 흘리심이 발리지 않는 이상

자기는 의롭다 건강하다를 내세울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영광 앞에서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내 세울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혼합물로 썩고자 했던 찌끼로 쓰레기로 들통날 뿐입니다

이 절대죽음인 십자가의 3일의 간극이 아니면
우리는 그것들을 배설물로 못 보고 
그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이
육체의 자랑으로써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남을 7번 용서 했습니다 등등의 자기 영광을 내세울 겁니다

간음죄란 신랑이 하신 일 곧 십자가의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 곧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 행하고 살고 하는 모든 것들이 우상숭배인 간음이요 음란인 겁니다

내 밖에 모르는 그 와중에 주님은 하나님이 벌린 사건인 십자가의 죽음을 보게 하십니다
왜 나같은 원수를 위해서 피 흘리셔야 했는지요 라는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치르는 그 간음한 여자인 창녀 마리아의 고백이 나오도록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저들 예수님의 제자가 왜 아깝게 비싼 향유를 땅에 허비하냐 라고 죽일 듯이 달려들고
아무리 저들 바리새인이 더러운 창녀 주제에 왜 거룩한 선지자에게 껴안고 입 맞추고
더러운 주제에 감히 지가 뭔데 거룩한 선지자를 영접하느냐 라고 아무리 눈치주고
눈에 레이져 로 쏘아 붙여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러 오신 주님을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그의 죽음을 미리 앞당기는 자는

사랑하는 자 곧 아내 밖에 없음을

이 베드로가 거부한 십자가의 죽음을
이 간음한 여인은 기쁘게 입맞추고 노래하고 감사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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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깨진 장독대에 아무리 음란한 물을 다시 붓지 않고
깨끗한 물을 넣는다 라고 해서 깨진 장독대의 물이 깨끗해 지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또 허기 집니다 배고파 배고파 그래서 밤마다 울부짖습니다
하이에나 짐승이 배고파서 울어요
그럼 먹이를 주면 배고픔이 멈출까요
더더더 피에 굶주리게 되는 겁니다
깨진 항아리에 아무리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악한 것을 선으로 만들어서 채워서 주든 소용이 없어요 
근본 항아리 자체가 깨졌다 밑빠진 장독대 이다는 겁니다

새항아리 새영 새마음 정직한 영 곧 중심이 오지 않는 이상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지 않는 이상

백날 해도 헌 술 헌 부대인 겁니다

정치꾼들이 아무리 새술은 새부대 라고 표현해서 사기를 쳐도
그거 성경의 의미와 반대로 자기유익이라는 우상숭배를 더더더 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겁니다
김땡셋 장로 대통령이 사용하니까 지나개나 다 하던데
자기 무덤 파는 꼴인 거지요

또 심지어 다음주에 할 호세아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에서는
반드시 이 간음죄와 살인죄는 반드시 정치적인 왕의 문제에 까지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곧 머리 문제인 거죠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아무리 무당의 언어로 억누를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간음 곧 음란죄와 살인죄는
정치 라는 왕의 문제와 다 맞물려서 벌어지는 겁니다
지난 주 로마서 죄의 삯 결과값 마지막은 사망이요
은사(선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외부에서 주어진)의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간음 곧 경제문제입니다 먹음직 스럽다 라고 했잖아요 탐하는 겁니다
남의 아내 남의 물건 남의 음식을 탐하는 겁니다
내 것이 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더 가져야 이기는 경쟁이 된 거죠
이 경제문제 먹는 문제에서 시작하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 문제 해결할려고 인간들이 종교를 찾습니다
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욕구를 펼쳐요
다윗의 기도인 시편 91편을 마귀가 인용하면서 시험합니다

(마 4:6, 공동)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 ㉠시편 91:11-12.

(시 91:9, 개역)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 91:10, 개역)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 91:11,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시 91:13, 개역)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시 91:14,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간극을 좁혀보갰다 라고 그래서 구원받겠다
아무리 거룩한 성전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 타락 떨어져도
신께서 천사들에게 명령해서 다시치 않도록 두 손으로 감싸거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이런 기적
이런 구원
이 멋들어진 구원 곧 축복을 주심을 뮏 숩 ~~~~~~ 니  다  라꼬

그러니 종교는 지 혼자 종교가 될 수가 없어요
우상숭배는 타인의 욕망이 곧 자기의 욕망이 되니까
반드시 함께 투게더 가 될 수 밖에 없는
다수 집단이 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슬슬 집단 조직이 나오면 국가의 원조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바벨탑이 생각나이죠
그러니 바벨탑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게 아닙니다
노아 홍수의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니까 원한 한풀이가 가득한 살인의지의 탑인 거죠
구원의 문 하늘의 문이 사실은 살인의 문이 되는 겁니다
가인은 제사 문제가 아니면 살인할 이유가 없거든요
성정을 헐라 라는 번제와 제사 곧 예배 문제가 아니면 예수님을 살인할 이유가 없어요
역설적이게도 이웃을 사항하기 위한 종교가 왜? 신을 사랑하고 신으로부터 사랑받은 티를 내기 위해서는 이웃사랑이 반드시 따르게 되는 동반된 사상이니까
모든 종교가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가 다 담겨져 있어요
바로 이런 무당언어가 그 무당의 자리를 시대가 변함으로써
무당 대신 신과의 첩촉라는 촉매자 매개자 중보자 중매자가 바로 지금의 왕 곧 대통령과 정치인들이거든요
괜히 손바닥에 왕 자를 세긴게 아닙니다
그거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악령을 괜히 집어넣는게 아니다 말이죠
그거 천주교에서 비행기 날다가 하늘에 떨여져 죽어라 라고 기도한다고 하던데
이런 천주교가 왜 사탄의 자식들인지를 보여주는 거죠
아니 주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나의 종으로 삼았다 라고 하는데
지들이 뭔데 주님의 뜻을 거부하느냐 말이죠
지들 속에서 왕자 세긴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그 자들을 먼저 척결하던가
그런 악한 짓은 안하겠다고요? 그게 바로 악한 거죠

인간이 이거 로마서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인간이 자기 속에 자기 속에 죄가 있기 때문에
죄의 숙주로써 안의 죄가 바깥 외부의 죄를 만났을 때에
마음껏 죄를 저지를수 있다고 보는데
이 놈의 안의 죄가 그 지옥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막을려고 아무리 억눌러도
배고프면 밥 먹여 줘야죠 이게 기본 경제문제이고 그 다음 종교 이건 음란 문제요
그 다음 정치 이건 사랑 문제죠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가는
그래 내 한테 절하라 그러면 내가 너의 아내가 되어줄게
어 싫어 ? 그럴줄 알고 이미 나는 바알 신랑이 있지롱 거봐 가장 큰 나라로
모든 지구상의 나라를 대통합했지롱 이라고 비웃는 겁니다

일부다처제도 아닌
일처다부제 인 거죠

여자의 자리는 창조의 의미를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비워져 있는 상태인데
이게 여성의 자궁으로써 철학자들은 여성의 성기가 없다 라고 했다 말이죠
(여성의 자궁이 홈패임처럼 둘로 나누어져 있잖아요 간극이 있다 틈이 있다 말이죠
그 사이 간극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마 이것 때문에 성기가 없다 로 주장하는 듯 보입니다
야곱의 허리 곧 환도뼈를 쳐서 꼬추 짤라서 그 홈패인 간극 속에서 이스라엘이 나오잖아요
그러니 이스라엘의 처음자리는 핏덩어리야 살라처럼 너는 사기꾼 야곱의 자리가 처음지라이다는 거죠
이런 이스라엘로 아들의 자리에서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더더더 꼬추 짤린 예루살렘 딸이 되게 함으로써
이 둘로 나눈 막대기를 남유다 르호보암이 통일시킬려고 하다가 주님한테 얻어터진다 말이죠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나라가 둘로 나누어진 것인데 주님이 둘로 나눈 것을 니가 뭔데 합칠려고 하느냐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심으로써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는
요셉 지파의 목자로 오시고 유다 지파의 섬기는 왕으로 오시는
이 원수된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가 되는 한 몸의 신랑이 오지 않으면
신부됨인 아내가 아닌 그저 기계인 가정부 라는 죄의 종으로만 있다 그 마지막은 사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신랑의 아내인 신부의 기능은
가정부와 반대로 하갈언약과 반대로
부정의 부정인 자리인 무태한 자 죽은 자 무명한 자의 자리에서 부요케 하시는 생명되신 신랑을 말하는 목마른 황무지의 자리인 환자 죄인 간음녀의 자리에 놓이게 되고

생명수 누구든지 목마른 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계 22:1, 개역)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개역)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3, 개역)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개역)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개역)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16, 개역)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 22:17, 개역)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8, 개역)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 22:19, 개역)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20, 개역)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개역)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생명수

반대로 가정부는 그 반대이니까 순풍 순풍 아이를 낳았다고 하지만 정작 하늘에 자식이 없는
도리어 의인의 자리 건강한 자의 자리 소경아니다 볼 줄 안다 라는 자리에서
의사가 필요가 없는 신랑이 필요가 없는 가정부의 목적은 오로지 행함에 따른 보상만을 댓가만을 챙기면 그만이지 사랑의 의미 창조의 의미는 없으니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 필요가 없는 겁니다
왜 이런 쓸데 없는 짓 둘로 찢으셨다가 다시 하나로 싸매어주시는 이 일이 비유 비밀이니
알 필요가 없는 거죠 그거 푼다고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니 가정부에게는 쓸데 없는 짓입니다)

물론 의사들은 그런 이론을 받아들이면 큰일나지요
실제로 벌어지는 여성의 자궁암 등등을 그러면 무슨수로 고치고자 수술하겠냐 말이죠
또 그렇다고 심리학자나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자들은
저런 철학자들의 주장을 무시할수 없는 이유가
심리치료를 위해서 그 근본 원인이 되는 마음이라는 그 빈 공간 그 빈상태를 살펴봐야 할 테니 말이죠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까지 나오니까 병 치료를 향한 공부를 하는 거죠
이 무의식의 세계인 뇌의 세계를 양자역학 컴퓨터나 아니면 인공지능을 합친 컴퓨터로
인간의 꿈의 세계까지 다 파악할려고 한다 말이죠

이 빈자리 텅텅빈 빈자리 곧 하나님의 원수된 자임을 외치는 자리로써의 울부짖을때에
그 부르짖음을 듣고 나타나는 신랑이 누구인가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로써의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에서
여성의 기능이 남편의 기능을 외치거든요

바로 이런 창조의 원리인 사랑으로 창조한 것을
남편이 없는 그렇다고 남자가 없는게 아니라 우상을 남자로 삼은 그 기혼녀인
음녀들은 번제와 제사를 바치게 함으로써
바알 숭배 덕에 남편 덕에 고아 과부 나그네를 면하더라 말이죠

하나님의 뭇별보다 더 큰 계명성이 되겠다 라고
새벽 이슬같은 청년이 되겠다 라고 그 가스펠이 도리어 숨어있던 욕망을 부추기는 겁니다
마귀의 두 번쩨 시험처럼 시편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마귀가 이런 메시아가 되어달라고 유혹했듯이
성경구절을 따와서 가스펠 가사로 만들어서 두구두구 드럼치면서 노래하는 거죠
그 카이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가 없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 교만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이 교만이 다음주 호세아 내용 그 다음에
곧 다다음에 나오는 내용이다 말이죠

(호 7:10, 현대인) 이스라엘의 교만이 스스로를 증거하는데도 그는 자기 하나님 나 여호와에게 돌아오지 않고 나를 찾지도 않는다.
(호 7:10, 현대어) 외세에만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교만이 제 자신의 죄를 쌓는 근원인데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지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주변나라의 힘을 의지한다 라는 것은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라는 남유다의 아하스 왕의 교만과 같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이사야는 발가벗고 3년 동안 다님으로써

애굽은 발가벗은 자들이다 곧 음란하다 라는 겁니다
음란하든 말든 지금 권력이 딸리면 미국이든 매국노가 되어서 일본과 손을 잡든
무슨 상관이냐?
뭐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 라꼬?
젖먹이 아기를 최전방에 보내라고?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하면서
바벨론 왕의 점괘를 거부하면서도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는 그 음란을 그 우상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말이죠

이효땡 가수가 연설한 것이 화제가 되어서 그 연설을 너튜브에서 들어봤는데
연예인이란 무당이거든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돈 받는 겁니다
그 연설문 자체가 무당의 언어 밖에 없어요

안그래도 늘 무당같아서 싫어했는데 생긴대로 놀더군요
자기 언니가  타로 점치는 것이 취미이다고 하던데
무당 곧 중매자는 사람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겁니다 디딤돌처럼
그러니 정치는 그 무당의 언어로 신과의 연결을 주선하고자 포획하는 언어로써
너의 구원은 너가 이루어라 나는 그저 도움을 줄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가 무당언어의 모토(Motto: 좌우명, 지향하는 목표점)이며
왕과 정치꾼들의 모토인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이 먼저 그 모범을 보이는 거죠
이 얼마나 무당 답냐 말이죠

또 이래 말하니까 그래 호세아서에서
이스라엘의 교만이 바로 외세의 세력을 끌어와서 왕위를 찬탈하는 살인을 저지르는게 교만이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낮아질려면
박땡희처럼 자주 국방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자주 국방

아닙니다 그건 이미 쿠테타를 성공하고 왕위를 살인으로 찬탈한

쿠테타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를 입 바르르 떨면서 완악함을 자랑하는
전두광이의 주장과 같습니다 
끝에 씨발이 빠졌죠 제발 날 짜증나게 두 번 말하지 않게 해라
선배고 뭐고 다 죽는다 라는 말이 생략이 된 겁니다

뭐 역사는 빈복 된다 라고 우기지만
반복이 아니라 그것 밖에 할 줄 모르는 겁니다
뭐 다른 것이 있어야 그 차이로써 반복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모든 역사는 쿠테타로 피로 세워진 역사 뿐이니 피 흘리는 길 밖에 없어요

어떤 국가의 나라든 어떤 민족이든 상관 없이 그 역사는 말이죠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을 너무 등쳐먹지 말자 라고 인권운동을 하던 젊은 사람이
10년 넘게 인권운동을 하다가 막상 자기 가족이 인질로 잡혀가다 보니
철 없던 젊은시절의 오기 객기 똥신념 똥고집이였다 라고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아니 그 순수한? 20대 청년의 인권운동을 하던 유대인 청년이
하루 아침에 그 신념을 밥 먹듯이 뒤집어 버리는 겁니다

또 스웨덴 복지국가 세계 1위였던 나라가 졸지에 갱단싸움에 의해
경제가 파탄이 날 정도로 단 5년 만에 복지가 무너지더라 말이죠
난민 정책에 의해 이민자 수용 정책이 실패하다 보니
이민자 혐오로 인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결국 갱단 외에는 할 짓이 없어서
결국은 수도 도시 한 복판에서 수류탄이 터질 정도로
두 갱단 사이의 다툼으로 인해 군대가 나서도 해결할 길이 없어 보일정도로 암울하다고 하더라 말이죠

https://youtu.be/V5Fv0ajV3Oc

지젝의 말 마따나 사회적인 토론이 있어야 한다
이웃으로 받아도 문제고 이웃으로 안 받아도 문제이니까 말이죠

로마서처럼 늘 우리 몸 속의 죄악이 밖으로 튀어나올 기회를 늘 틈만 노리고 있으니
인종차별 이민자혐오로 인해 청소년이 갱단으로 빠지는게 아니라
원래 우리는 갱단으로 태어난 사망의 몸이다 라는 겁니다

다음주에 할 호세아서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까지 왕위 찬탈이라는 살인의 죄악은 멈춰지질 않는 겁니다
쿠테타의 성공은 곧 바로 교만
바벨론 왕의 교만함 즉 하나님의 뭇별 보다 더 높아지리라 라는 계명성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구원이다는 거죠 바벨탑이다는 거죠 가장 높은 탑 중의 탑
계명성 교만한 버벨론 왕이다 라는 거죠
그러니 바벨론에 잡혀먹히는 것은 원래 당연해요
그것을 또 만회 할려고
예레미야서에서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곡식을 잘 바치지 않아서 그렇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모조리 무당 언어죠
그 원조가 아니 그 유명한 동일어가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다윗의 외침입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긍휼 곧 용서인 화목제물인 예수님의 피가 아니라
그 영생이 아니라
반대로 외부든(애굽의 군사력을 의지) 내부든 법 아래에 있는
행함을 쫓다 보니 죄의 삯 결과 값은 그 마지막은 사망이 되는 겁니다

이 사망을 이미 죽은 사망의 몸인줄 모르기 때문에
자꾸 살아있다는 티를 내는 행함을 늘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말이죠
행함을 쫓다 보니
간극을 좁히는 점쟁이 찾듯이 찾는
연결을 시도하기 때문에

이 간극인 3일의 절대죽음 빈자리 광야를 사망의 몸인줄 모르기 때문에
가짜 하나님을 연결 시도하는 무당의 언어

거 보세요 라멕이 자기 두 아내 야다여 실라여 라고
여성을 언급함으르써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인 정치
곧 내가 왕 됨을 획득했다 그것도 왕의 찬탈로
가인 왕의 벌 7배 보다 더더더 큰 벌 77배 이다 내가 이겼다 라고 찬양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노래입니다 자기를 위한 노래이다는 거죠
찬송가든 뭐든 아무리 시편을 달달 외운 유대인의 노래든 다 자기를 위한 노래인 거죠

(창 4:24, 개역)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이것이 낳았더라 낳았더라 족보인 가인의 족보의 마지막인 사망의 족보이고
반대로 아벨의 족보는 죽으면 죽으리라 족보 속에서 난데 없이 죽지 않고 올라간
영생의 족보가 되는 겁니다 그 마지막 끝이 좋으니까 다 좋은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단절을 보여주는 거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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