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3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한 몸된 운명 (롬 6, 8-1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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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3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한 몸된 운명 (찌꺼기=잃어버림이 된 누락의 총화로써의 교회 곧 새이스라엘) (롬 6, 8-11)

보라 주의 고난을 상속받은 자요 주의 마음인 징계인 사랑을 유업받은 자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운명

(고후 6:2, 개역)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죄의 세례와 의의 세례 (롬 6, 3- 7)
로마서 2022 2023. 11. 24. 20:48
22-032 죄의 세례(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와 의의 세례(그의 부활을 본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 (롬 6, 3- 7)

〈로마서 6, 8-11, 신약성경 246쪽, 찬송가 157장 새 167 즐겁도다 이 날, 가스펠; 살아계신 주, 들풀에 깃든 사랑〉  

〈찬송가 157장 즐겁도다 이 날 (새찬송가 167장) 〉  

1. 즐겁도다  이 날 세세에 할 말  
   사망 권세 깨고 하늘이 열려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나와서 
   생명의 주예수 찬송하도다
   즐겁도다 이 날 세세에 할 말 
   사망 권세 깨고 승리하셨네

2. 부활하신 주님 나타나시니 
   천지 만물 모두 새 옷 입었네  
   꽃은 만발하고 잎이 우거져 
   승리하신 주를 찬송하도다
   즐겁도다 이 날 세세에 할 말 
   사망 권세 깨고 승리하셨네

3. 생명의 주 예수 죽음이기고 
   캄캄한 길지나 다시 사셨네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네
   즐겁도다 이 날 세세에 할 말 
   사망 권세 깨고 승리하셨네  아멘


(롬 6:8, 개역)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9, 개역)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 6:10, 개역)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1, 개역)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가스펠; 들풀에 깃든 사랑 (1049) 〉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진흙같은 이몸을 정금같게 하시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없네

우리 마음속 깊은 그곳에 영혼을 내리신 주
죽음 이기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었네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진흙같은 이몸을 정금같게 하시네


〈가스펠; 살아계신 주 (605) 〉  

1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용서하시고 /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2 주안에서 거듭난 생명 /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가지고 /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3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 주를 위해 싸우리라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 주님께서 나의 앞길 지켜주시리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롬 6:8, 새번역)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롬 6:9, 새번역)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롬 6:10, 새번역)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롬 6:11, 새번역)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꾸 선악의 법에 의해서
자기 살아있음에 중심을 둬서
이거 하느냐 저거 안하느냐 로 승부를 걸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을 행해야 하나님의 선이 드러난다는 바울의 증거에 반대하면서
나는 그런 짓 안하겠다

또 그리고 이제는 정반대로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하겠다 라고 또 이것은 하겠다 라고
어찌되었든 나는 살아있응께 뭐라도 해야 하는
자기 숙제를 펼쳐놓고서 이거 했다 저거 안했다를 주장하고자 하는
사망의 몸 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중심이 되신 예수님이 철회하시고
멋들어진 나를 구성한 것을 거부하시고
오로지 못난 놈으로 새로 죄인 중에 괴수로 만들어서
오로지 자신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몸 기준으로 화목제물 중심으로만
그 중심으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다 못박으심으로싸
인간의 살아있다 주장하는 사망의 몸을 마침표를 찍고 끝내버려서

더 이상 이미 죽었는데 방종하니 마니
은혜더하고자 죄 짓니 마니 하는 그 주장을 종결 시켰습니다

이제 이미 죽은 자를 누가 살리느냐
환자를 누가 고치느냐 소경에게만 보이는 의사로
화로다 나는 사망의 몸이다 죄인에게만 나타나는 구원자로
잃어버림 이스라엘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은 찌기가 된 자에게만 보냄받은 목자로써
율법이 죽인 죄 아래 가두어 다 죽은 자를
누가 살리느냐 라는 이 주님의 중심세우기
예루살렘에서 나온 말씀이
누구를 찢어서 다시 살리는 새창조를 부으시는지
누가 중심인 성소 안에
참성전 안에 함께 동행하면서 살려주시는 영을 표상 증상물로 피조물로 창조되는지를
이 중심의 활동만으로 역사를 진행시키시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하라 라고
중심을 성전이라고 했고
이것을 인간들은 말귀를 못 알아보고 부동산 성전으로
자신의 몸 공간 장소와 합채 시키는 손성전으로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이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
혼합물 찌꺼기 짬뽕인 엉터리 성령론의 개방이요 합일사상인 겁니다

도리어 떨어뜨려서 간극을 벌려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라는 건져내랴 라고
우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죽은자 말이죠

마치 아무리 육의 족보를 잇고 잇는 개방의 성령론 합치 합체 동일시 연합 할수 있는
가능성의 손세례를 추구하는 엉터리 헛짓을 해도
뭘 해도 다 찌끄래기 짓 뭘 해도 거짓이요 뭘해도 가찌요 뭘해도 우상이요 음란인 겁니다

그러나 걸어다니는 성전되신 예수님 앞에서
정작 이스라엘의 가치는 찌꺼기로 나타나는 겁니다
혼합물이 될려고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서 한 몸 이룰려는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봐도 우상숭배 밖에 안되는
사망의 몸으로써 드러날 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가치입니다 진면목입니다 사망의 몸인 찌꺼기인 모습인 것을 말이죠
그럴줄 아시고 주님 쪽에서 친히 직접 마련하는 화목제물이 있는 겁니다
이 화목제물의 증상물이 찌꺼기인 겁니다

주님이 새롭게 만드시는 새로운 죄인입니다 환자입니다
의사를 부르짖는 새환자 말이죠
물론 나일론 환자도 있기 마련이지요 은혜를 더할려고 죄 짓겠다 하는 놈들 말이죠
이것을 또 반박하고자 나온 역시나 인간의 살아있음에서 출발한 방종하지 말자 라는
성화론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나일롱 의인이요 건강한 자입니다

우리의 불의가 환자됨이 죄인 됨이 하나님의 의를 의사됨을 드러내느뇨
바로 이 역발상이
주께만 범죄한 죄인 새로운 죄인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 주께만 범죄했다 라는 의미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억수로 수 많은 사람까지도 죽을 수도 있고요
다윗이 그랬지요 인구조사로 정작 다윗이 아닌 남들이 막 죽어나갔어요

7만명이 죽었습니다 칠 입곱 7 완벽한 절대심판의 숫자입니다 행운의 럭키 숫자 아닙니다
일곱 절기로써 예수님의 죽음이 뛰어들어 때가 시간이 역사를 날려버리는 겁니다
천국의 침략 침노입니다 그 앞에서 내 인생 이제 쫑 난 겁니다
공든탑 날렸으니까 말이죠

우리아 장군 한 가정만 망가뜨린 것이 아닙니다
7만명의 가정입니다
이태원 참사도 쨉이 안됩니다
세월호 참사도 쨉이 안 됩니다
그야 말로 죄인 중의 괴수로 최고의 범죄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런 원수로 빈털터리 만드시는 찌끼 미말에 둔 구경꺼리로 말이죠

그러니 더더더 악착같이 살리시는 겁니다
주님의 자신의 의사 됨을 말하시고자 죄인을 환자를 악착같이 죄인 만드시듯이 말이죠
7만명 가정 파탄도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너희 죄가 아무리 붉을지라도 그거 중심 아니니까
중심 정직한 영 마음판에 박아버리시겠다 라고
뭣이 중헌디 7만명 가정 파탄 난게 중하냐? 아니면 화목제물이 중하냐 라고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만으로 불도져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2살 밑으로 다 죽어도 못 먹어도 고 고 고
라헬이 위로 받기를 거절해도 무조건 이유 없이 고고고 하시는 겁니다

너희 죄책감이 중하냐 나의 의사 됨이 그 선악의 죄책감을 수술하시겠다 라는
의사 됨이 중~~~ 하냐 뭣이 중한디 라고
뭐가 심각한지 함 해 볼까?

모세언약의 완악한 수건을 쓴 자는
절대로 이 다윗언약의 인애와 자비 앞에서 수건을 벗을려는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본인 자체가 다윗처럼 일급 살인자가 되어봐야
악착같이 이 잃어버린 자를 용서해달라고 우는 구스여인의 자리 맨 끄트머리로 미끄러자빠져 봐야 비로소 왜 완악한 수건을 벗겨서 찌끄래기 자리에서
이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피 용서가 옳았는지를 외치지

안그러면 마귀들처럼 정죄하기 바쁩니다

주님이 새롭게 만드시 죄인으로 자신의 의사 되심을 나타내시고자
주께만 범죄한 찌꺼리로 사망의 몸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슬프게 만드시고
잿더미로 만드시로 욥이 생각납니다 제대로 된 핵폭탄 저주를 받아도
예수님에 비하면 뻔데기 앞의 주름일 뿐입니다

그리고 근심되게 만드시는

이 절대심판 때문에 새로운 죽은자 죄인으로 만드심 앞에서
화로다 나는 망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로 십자가의 지혜로 오신 분이시다는 겁니다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시고자
화목제물로 오신 이 남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자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들고야 말겠다 라고
창녀 고멜로 새롭게 만드시는 이 피신랑이

이미 죽은 자를 산자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우리의 처음이요 나중 마침이 되신 창조주이심을
증거케 하시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그 외에는 죽은 자의 하나님인 거죠 북이스라엘 신학인 거죠

누가 슬픔의 눈물을 씻겨주는 자 인지
누가 잿더미 대신 꽃화관을 저주받은 자를 영광의 신부의 화관을 씌워줄 신랑인지
누가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피조물에게 창조주의 영광에 맞는 찬송의 옷을 입히시는지

머리 된 남자의 증상물인 여자는 그 머리의 몸인, 오실자의 표상이듯이 말이죠
그러니 교회란 이스라엘이란 누락의 총화, 잃어버림의 최종결정판인 겁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남녀 서로 적대적이면서도 서로 두려워 하고 있으니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라고 외신에서 다루더라 말이죠
그것이 명바기 때부터 젊은이들을 돈으로 유혹하는 정치가 되어버리니
일베들부터 시작해서 여성혐오가 심해지니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 하는 그러니 사랑은커녕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 말이죠
돈에 대해서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건물주가 되는 것이 소원인 어른 부모의 욕망을 심은 증상물인 것처럼
정치가 돈이라는 우상을 젊은이에게 심어버리니까
돈이 필요가 없는 천사와 같은 젊은 여성이 졸지에 적이되고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외국에서 다들 이해가 안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https://youtu.be/p9Ge0DUidnk

저출산 문제가 더 깊은 남녀갈등에서 찾는데 말이죠
정작 당사자 한국은 헛발질 하고 있는 겁니다

젊은이는 환상을 본다 라고 사랑에 목숨을 바치는 것에 의미가 있는 젊은이들이
거꾸로
사랑을 혐오하게 되고 그저 돈만 허구만 권력만 허상만 우상만 사랑하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부동산은 나이 다 들어서 늙은 사람들이 하는 경제활동인데
거꾸로 젊은이들이 집 부동산 투기에 미쳐버렸으니
산 소망이 없으니
돈을 억수로 많이 모아도 헛되다 라고 자살을 하는 겁니다
먹방 보다 더한 포르노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음식이 목숨보다 더 귀하게 되니 서로 적개심 밖에 모르는 겁니다
먹방이 대세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역사는 끝났다 라는 거죠
사실은 역사의 끝이 몰아버려서 나온 결과인 겁니다
사람이 죽는게 아니라 자살하는게 아니라
자살이 인간을 죽이는 겁니다 먹방이 말이죠 돈이라는 소유의 넉넉함이 말이죠
그런 죽은 세상에 휘둘려 가는 겁니다

이게 강도의 소굴이 된 기독교가 다 망친 결과죠 
유교기독교 혼합종교 혼합물이 된 무당 우상숭배 때문에 말이죠
천주교가 했던 짓을 역시나 새것이 없기에 사랑이 없기에 결국은 아무리 빠져나와도 결국 따라하는 겁니다 저 지옥 갈 자들을 말이죠
일본을 다신교라고 그렇게 욕하더니만 딴나라당 기독교가 다 망치는 겁니다
그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죄인 중의 괴수를 부르러 오셨다는 겁니다
아무리 너희 죄가 붉을 지라도 흰 눈 같이 희게 하시는
이 화목제물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이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같은 운명이 되었다가는 이미 죽은 자가 되니까 싫은 겁니다
그러나 그 죽은 자가 비로소 진정으로 산 자 임을
이 모순된 부조리 불륜의 스캔들 불의한 부정한 십자가가 옳았는지는
나의 손성전 세우는 행함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못 보는 겁니다
그 찌끼의 자리 우는 자리에서 눈물 씻겨주는
외부에서 오시는 율법 외에 한 의로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 잃어버린 자를 되 찾는 이 목자 이 신랑의 피흘림을 화목제물 되신 사랑을
또렷하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것도 누가 꾀냐 라는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를 깊게 높게 넓게 크게 이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시는 겁니다
오죽하면 범접할 수가 없는 뻔데기 근처에도 못가는 7에 70번의 용서로써
단 번에 단 하루 만에 중심인 거룩한 성전을 다 이루시듯이 말이죠
이 하나님 나라 백날 인간의 손으로 46년 동안 지어도 여전히 미완공을
주님은 단 하루 만에 예수님 나라를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출발 자체가 없음 잃어버림에서 출발한 겁니다 처음자리가 말이죠
왜 수 많은 강대국 강한민족 능력이 많은 자들 다 내버려두고
가장 무능한 가장 미약하고 가장 적은 수의 족속을 택했냐 말이죠

(신 7:7,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마귀는 왜 인간을 가장 나중에 창조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곧 사랑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사랑을 거부하는 기능을 받은 겁니다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거부하는 기능만 발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애굽왕과 애굽군사롤부터 영광받으시는 이유입니다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시는 이유입니다
존재는 언제든지 변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가면을 쓸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능은 동결이 되었기에 바꿀 수가 없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이기에 이유 없이 이 주님의 긍휼을 방해하는 짓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찌꺼기 자리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드러내기 위함이지
중심된 하나님의 화목제믈을 드러내기 위함이지

자기 자신이나 하나님을 예수님을 잘 믿는 복 받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거죠
그건 북이스라엘이 다윗언약을 거부하고 모세언약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창녀 음녀 도적질 하지말라 하나 본인이 도로 도적질하게 되는 이 간극좁힐려는
음녀라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강팍한 자들의 모습인 겁니다

그럴꺼 같으면 처음부터 무능하지 많고 능력 많은 부자만 아니 마귀를 선택했어야 하지요
마귀와 처음부터 결혼 했었었야 했다 말이죠
왜 구스 여인과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자와 결혼하시느냐 말이죠
왜 고멜과 결혼하시느냐 말이죠
모세를 앞세워서 이혼도장 찍을려고 발악하기 바쁜데 말이죠
이혼증서 안 받아주면 모세를 죽일려고 하는 
이 얼마나 율법준수의 대가들 아닙니까

여인의 자리는 찌꺼기 자리이듯이
오로지 예수님 만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이 지지난 주에 에스겔 22장에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로 표현한 겁니다

21-068 풀무불로 녹는 은의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 (겔 22,17-31)

부정의 부정으로써
여자는 더더더 부정하기에 더더더 많이 탕감받는 자가 많이 사랑하니까 말이죠
더더더 긍휼을 베푸시는 겁니다
남 7번 용서하기가 아니라 
도로이 7에 70번 용서 받기 말이죠


그러니 죽음(부정) 보다 더 강한 부정의 불륜 스캔들 사랑을 말하도록 되어 있는
죄인 중의 괴수로써 예수님의 7에 70번의 사랑을 보여주도록 되어있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그건 육의 소욕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여주니까 말이죠

자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주와 함께 죽었다면 주의 다시 사심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잃어버림 속에서 되찾으시는 주님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한 몸된 자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행함이 개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만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도 인간의 숙제가 아닙니다 믿음 자체의 숙제인 겁니다
즉 인간 내부 속에서 만들어내는 믿음이 아닌
선물로 주어지는 외부에서 주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은혜 공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에게 말이죠

그런데 이 소리가 행함을 추구하는 저 바리새인 같은 성화론자나 개혁주의자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겁니다 마치 북이스라엘신학처럼 모세언약으로 충분하지
다위언약으로 오시는 화목제물이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은 죽음도 죄도 사망도 해석 할 줄 모르면서 해석할려고 달려드는 것은
결국 자기가 해석한다는 자체가 자기가 살아 있다 라는 
나는 여기 있다에서 출발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에 대해서 주님은 예수님 중심으로
성전 걸어다니는 참성전 중심으로 말씀하심에 있어서
예수님의 활동으로 인해 죄와 사망을 규정함에 있어서
세상을 판단하시는 겁니다

즉 죄 바깥에서 죄를 규정해야 하는데
죄가 장악한 죄 속에서 죄를 규정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죠
그러니 죄도 죽음도 사망도 해석 못하는데
꼴에 이스라엘 선생이라고 지도자라꼬 어른답게 행동할려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해석할려고 하더라 말이죠
죄 속에 있으면서 말이죠

잘못된 해석인지 바른해석인지 그 이전에
죄 바깥에서 해석해야 하는데
이미 죄 속에서 해석하겠다 라는 자체는
엉터리 해석이기 이전에 바른해석이기 이전에 뭐든 상관없이 무조건 틀린해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자기따나 바르게 해석했다 라고 우기면서 바울에게 반박하는 겁니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그렇다 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즉 매를 벌더라 말이죠 이 징계가 주님의 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곧 심판인데
자꾸 자기들의 용어인 선택 구원으로 자기 살아있음의 용어에 맞게 해석해서 받아들이더라 말이죠

그카이 에이 그럼 우리가 악을 행해야 하나님이 선해지겠네 라고 반받하더라 말이죠
주님의 몸 그것도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의 용어에 맞는 용어를
자기가 주인공이 된 자기 몸의 용어에 맞출려고 허니
안 맞으니까 당연히 거부반응으로써 반발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바른말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정죄받았다 합니까?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선해진다 라는 논리가 잘못 되었기에
그 말은 잘못 되었다 라고 
이 얼마나 바르게 반박했잖아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기말에 반박한다 라고 너거들 이미 정죄받았다 해 버리더라 말이죠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출발 자체가 서로가 달라요 
소욕이 서로 달라요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거슬리니까 서로 방해합니다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저들의 육의 소욕은 율법을 소유한 선악의 몸이지만
바울의 성령의 소욕은 율법 외에 한 의 곧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죽음이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롬 3:1, 개역)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롬 3:2, 개역)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3, 개역)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롬 3:4,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6, 개역)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 3:7, 개역)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개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개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개역)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개역)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8, 개역)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 이라는 중심에서 출발하는데
인간은 자기 살아 있음 이라는 중심도 아닌 주제에 항상 자기가 살아 있음을 주인공으로 여거서
자기 숙제로 출발한다는 겁니다

자 그래서 나온 인간의 또 하나의 반응이
지난 번에 나온

아 그럼 그게 아니면 우리가 악을 행해야 하나님의 선이 나타남이 아니다 라면
당연히 아니기에
그럼 반대의 반대인

우리가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하면 되겠구나 라고
순서만 악이면 선을
선을 위해 악 이라고 순서만 바꿀 뿐인
그것 외에는 달리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지난번엔 반박했지만 이제는 이것을 역으로 수긍을 해서
구원을 받기만 하면 되는거 아니냐
끝이 좋으면 다 좋은거 아니냐 라는 식입니다

율법은 언제든지 가면을 써서 남의 시선을 속일 수가 있습니다
어차피 중심 없는 것들 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대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것이 손 할례 손율법 손 세례 손성전 모조리 다 손입니다
즉 행함이자 곧 우상이다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처세술입니다

그러나 기능은 마음판이기에 어찌 손을 댈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누가 칼 댈수가 있겠습니까? 칼 로 물 베기 보다 더 심한 불가능인데
간따나 불가능인데 더더더더 간극을 더 벌리기 인데

아무리 선의 가면을 쓰든 악의 가면이 되었든
선악 선악 악선 악선 순서를 바꾸는 존재가 되었든

바로 선악을 따지는 몸
악선을 따지는 몸
그거 이제 이미 죽었다 라고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라는 겁니다

이제 중심되신 화목제물로 따지는 겁니다
선악으로 따지는게 아니라 말이죠

이미 죽었는데
자꾸 그 죽은 몸을 가지고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 짓겟다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선해진다 라고
선악으로 승부 거는 선악의 몸의 숙제는
다른 법칙이 없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에서 나오는 법칙
인간 자체가 법이 된 선악의 법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죄 라고 사망이라고 곧 죽음이지요
그리고 주님은 이것을 마귀 라고 하시는 겁니다
죄 사망 죽음 이것이 마귀의 장난이다 라는 겁니다

죽기를 무서워 사망의 왕 노릇에서 사망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죠

즉 주인공이다 라고 권세 왕노룻이라는 표현으로 주체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죽는다 가 아니라
죽음이 인간을 죽인다 라고
주체를 죽음으로 마귀로 두시는 겁니다

바울 또한 내 속에 죄가 죄를 짓는다 라고 
마귀 핑계
죄 핑계를 댑니다
핑계인 것 같으나
속이는 것 같으나 참 말입니다
마귀가 그런 짓을 했다 라고 합니다
내 속에 죄가 그런 짓을 한다고 말이죠

(롬 7:17, 개역)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자꾸 내가 아니요 내가 아니요 이래요

로마서 7장은 그런면에서 핑계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마귀 탓 죄 탓이다 라고
이것을 말해주는 목사들이 없어요 그카이 마귀들입니다 돈 밖에 몰라요

모조리 자기 숙제라꼬 사기를 칩니다
놀랍게도 7장의 단어들이 나 중심의 내 숙제가 나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8장은 그런 나 가 사라지고 개인숙제는 없어지고 우리 라는 관계용어로써 나열이 됩니다

그런식으로  
로마서 7장을 모조리 마귀 탓이라고 그래놓고 갑자기 8장은 모조리 다 
주님의 사랑 탓 즉 주님 덕분, 예수님이 중심되신 탓 참성전 덕분 탓으로 다 돌리는 겁니다
이 얼마나 참소망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은혜의 왕 노릇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목제물 아니였으면 우짤뻔 했냐 라는 거지요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개역)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인 새영 새마음 덕분에 성령받은 자는
이제야 죽으심에 함께 고난 당함에 용기를 은사를 받았다 라고
또 징계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더라 말이죠

사망과 맞짱뜨는 자가 된 것처럼
미끼가 되었다 라고 말이죠

이것이 죄 바깥
마귀와 한 몸이 되지 않는
중심 되시는 주님의 시선이요 해석입니다
그러니 중심도 없는 마귀나
중심도 없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해석을
죄 속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주제에 주인공인냥 살아있는 냥 해석하는 그 자체를 용납지 않으시고

주님 자신의 죽으심으로 출발한 화목제물 되신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해 주시는 겁니다

죄를 짓는다가 아니라 죄 속에 있다 라고 말이죠
죄는 인간이 자꾸 주인공이다 라고 인식케 바이러스를 집어넣었으니
간염이 된 인간이라는 키보드는 자기 숙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자기가 주인공인 거죠 중심도 없는 주제에
의인이 없나니 해도 놀랍게도 성화론자들은 이 말씀을 얼마나 거부를 하는지
그 심각성을 몰라요 도리어 그들은 행하지 않는 자를 심각하게 봅니다
행한 자신들은 심각하지 않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 인간은 죽는다가 아니라
죽음이 마귀가 죄가 인간을 죽이고 죄 속에 집어넣는 죽음 속에
사망의 권세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 허구를 찢을려며는
죄 바깥으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인간 쪽에서는 방법이 없지요
그 방법 조차도 죄 속에서 생각해 내니까
구원론이 교리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 교리에 또 실천을 플러스 하는 자기 숙제가 또 행함이 나와야 하구요

아닙니다
죄 바깥으로 빠져나갈 필요가 없이
주님이 죄 속으로 들어오시면 다 해결되어버린 겁니다
이 시작만 있으면 끝이 마침이 동시에 있는 겁니다
중심이 없는 인간이 아니라
중심으로써 죄 속으로 들어오셔서 죄를 죽음을 사망의 권세를 빵구멍을 뻥하고 퍼트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함을 받는

이 십자가의 밝히 보이심 때문에 누가 속인 것 까지 다 알게 되는 겁니다

죄 속으로 들어오시는 죄의 세례로
죄 바깥에 있는 분이 죄 바깥에서 다 해결하시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빵빵한 풍선 안에 장독대 안에 있는 우리는 못 봤으니까
증인이 될 수가 없겠지요

풍성 안으로 들어와서 죄 속으로 들어오신 
이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이 그 같은 장소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과 고모라 라고도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신 곳
이 장소가 다 같은 곳인 이유는
건물 공간을 부순하고 해결될 손공간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손공간을 중심으로 두면서도 중심도 없는 그 인간 속의 마음을
마음판을 바꾸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풍선 안에서 뻥 하고 터트리는
그 과정을 목도 하도록 하시는 증인 되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성령을 주셔서 왜 자꾸 죽는 곳으로 몰아가시는 찌끼가 되게 하시는지
알아야 이해가 되지

모르게 되면 중심이 없이 방황케 됩니다 내 열심히 특심이라는 둥
요나처럼 삐쳐서 삼일 돌 것을 하루만에 돌고 말이죠
이렇게 하나님 배신 때릴 것 같으면 차라리 날 죽여라 라고 하는 겁니다

선지자 자신 손 중심으로 안하시고
자꾸 하나님 마음 대로 하시냐 하고 따지게 되겠지요

심심하면 나는 1300년 묵음 모세의 제자라고 우기지
너는 겨우 딸랑 하루살이 내일 아궁이에 던질
찌기가 된 구경꺼리가 된 하루짜리 임마누엘 아기의 제자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제자냐 
실로암 소경 너는 겨우 만난지 하루 밖에 안되는
하루 짜리 예수의 제자냐 라는 식이다 말이죠

1300년 곱하기 365일 사십 육만 이천 팔백일 462,800일 짜리 모세의 제자이다
참으로 왜 이렇게 허탈하기 짝이 없을까요
우리가 멋들어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구 허상 손도 없고 입도 없고 마음도 없는데 있는척 하는
허상 안개 수에 칠 가치도 없는 것을 붙잡았으니 말이죠

단 하루 만에 나라를 세우시는 것은
손이 아니라
마음 중심이거든요

(사 66:8, 개역)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이 중심
정직한 영이 성령을 로마서8장에서 주어짐에 있어서
막 죽으러 나가는 겁니다

죽은자로써 악착같이 사는 겁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주님의 다시 사심을 증거하도록 증인 삼으시고자 말이죠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면서도 이렇게 귀히 귀히 귀히 귀~~~~~~~히
악착같이 입히시는 겁니다

이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넓은지 큰지 높은지
수천년 걸리는 나라가 단 하루 만에
천년이 하루 같이
성령은 우리를 악착같이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다들 죽었다
이제 예숭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은 죄 중심
죽음 중심
사망 중심
마귀 중심으로 돌아간다 라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다들 다시 되돌아가는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성령을 부어서

원인 없는 이 상황에
예수님이 죽으셔서 다들 허탄함 속에서

단 하루 만에
불 일 듯이 삽시간에 하나님 나라가 막 세워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도리어 말이죠
삼손이 살아있을 때 보다 죽었을때에 도리어 삽시간에 더 불일 듯이 퍼지듯이 말이죠

이 이미 죽음이 내 죽음도 아닌 예수님의 이미 죽으심 되심이
도리어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불 일 듯 
단 하루 만에 주의 나라가 세워짐을 보는 겁니다
참선지자는 그래서 하늘에 새예루살렘이 세워진 것을 보고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을 다 날려버리는 겁니다
불이야
칼이야 의인이든 악인이든 푸른나무든 마른나무든

오히려 의인은 그 포로됨 속에서
찌꺼기 된 자리에서
이 완료가 된 이스라엘을 보게 되는 겁니다
존재가 오히려 날라가니까
기능이 만개가 되는 겁니다

성령은 우리 존재를 위함이 아닌
우리의 기능을 일깨워 줍니다

이 예수님의 죽으심이
이 화목제물 되심이
도리어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악착같이 다시 사시는 
주님의 함께 사심을 보여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죽음이 중심이고
죄가 중심이고
마귀가 중심이기에

자살 곧 죽음을 권유하는 세상이거든요
자살로 몰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미 죽은 자는 내 죽음 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다시사심을 위해
아무리 자살로 몰아가고 마약을 종교를 권유하듯이 해도
악착같이 살아남아라 라고
함께 일하기 때문에
아무리 환난 궁핍 곤란 등등이 와도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라고
심판의 자리(죽으면 죽으리라 자리)에서 도리어 찌꺼기 자리에서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 그 온유하심을
더더욱 자신의 죄수복을 입은채로 이미 죽은 자로써
다시 함께 다시 사는
특별사면이라는 주님의 피 흘리심을
보라 지금은 구원 받을 때요 때 성령을 부어주셔서 매맞는 구경꺼리가 된 것은
내가 이미 죽었는데 뭘 수치를 느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것이요 라는 이 말씀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 말씀을 실천 하는 믿음 좋은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
많이 탕감 받았기에 찌꺼기 자리에서 심판의 자리에서 말이죠
성령님이 그 사랑을 또 확증케 하시고자
보라 지금은 성령시대 ~~ 라는 라디오방송이 생각나서 패러디 함
보라 지금은 은혜의 때 때 때
은혜는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임했거든요
죽은 자 
무명한 자
죽은 태
없는 자

그런데 산 자요
유명한 자요
하늘에 자식이 많은 자유하는 어머니 예루살렘 태요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요한 자 이기 때문에

막 퍼주고 막 매맞고 막 참고 막 견디고 막 오래참는
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중심으로 있기에
막 사는 겁니다

즉 상대적으로 마귀는 세상은 죽음 죄 우상을 권유하면서 뮬아가기 때문이기에 말이죠

죽은 세상이고 그리스도인 만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죽은 세상에 살아계신 주님을 막 막 막 증거하라꼬 말이죠

(고후 6:1, 개역)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2, 개역)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3, 개역)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고후 6:4, 개역)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고후 6:5, 개역)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고후 6:6, 개역)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고후 6:7, 개역)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1, 개역)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고후 6:12, 개역)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고후 6:13, 개역)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후 6:14, 개역)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5, 개역)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개역)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7, 개역)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8, 개역)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이미 넉넉히 이기었기 때문에

죽이시기로 작정된 미말에 찌꺼기 구경꺼리로 삼은 것 자체가
살아있는 사랑의 또렷한 현실이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성령을 은사를 주신 겁니다 넉넉히 이긴 살아계신 주님을
우리는 악착같이 끝까지 증거하도록 되어 있는
그저 감사뿐인 삶 뿐인 겁니더


로마서7장은 죄 탓 죽음 탓 내 속에 있는 마귀 탓으로 바울은 증거했지요
이제 로마서 8장은 오로지 성령 탓 성령 덕분에 성령의 숙제로 바울은 증거합니다

(롬 8:3, 개역)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개역)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5, 개역)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개역)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개역)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9, 개역)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개역)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1, 개역)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2, 개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 8:13, 개역)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4, 개역)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5, 개역)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6, 개역)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7, 개역)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8, 개역)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9, 개역)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0, 개역)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개역)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2, 개역)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3, 개역)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 8:24, 개역)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5, 개역)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6, 개역)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개역)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어떻게 나 같은 원수를 영화롭게 하시는지
중심 되신 새마음 새영의 숙제를 우리는 질질질 끌려다니면서
어떻게 징계의 사랑의 매를 맞아가면서
어떻게 완성하시는지

이 사랑의 중심이 펼치는 숙제를
저 죄의 숙제와 대조를 해서 말이죠

이 두 주인공 고개 싸움에 우리는 낑겨서 새우등 터지는 겁니다
이미 죽었고 이미 사랑이 확증 된 입장에서

우리는 까먹을 때 마다 비디오테이프 되감기 해서
타임루프 걸린채로 다시 목격토록 하시는 겁니다

왜? 이미 넉넉히 이겼기에 말이죠

나의 승리는 죄가 심은 따로 다른 승리를 추구하는
솔로몬의 영광이지만

화목제물 되신 사랑의 승리는
이 찌꺼기를 원수의 목전에서 딴 ~~~ 딴 따다 단  결혼식 올리는
주의 영광을 위함이기에 내 영광은 없어요 처음부터 말이죠
주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찌끼가 되었으니 말이죠

성령은 그래서 우리를 마구 마구 찌끼 속으로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주의 고난에 말이죠

이 하나님의 의를 위해 우리를 불의케 찌꺼끼 많이 탕감받는 자로써
많이 사랑하는 심판 속에 집어넣음인데

따로 자기의 선함을 자기의 구원을 각자도생처럼 개인구원으로 챙길려고 하니
이런 예수님의 피흘림 중심의 언어 용어들이
내 사적인 구원용어에는 안 맞아서 자꾸 딴소리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이거 하나 하나 지젇해 주시는 이 사랑 앞에서
우리는 이 사랑이 나를 어떻게 무릎 꿇게 하셔서 경배케 하도록 만드시는지
나 밖에 모르는 내가 어떻게
주님만 영광 돌리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로 삼으시는지

물론 간단합니다 바로왕을 강퍅케 하면 됩낟
저절로 구하게 됩니다
나의 의로는 이길 턱이 없으니 밑천 다 떨어지고
원수로 찌꺼기로 들통나서

광야에서 타일러 개유 가르쳐서
즉 성렁 받은 선지자가 광야에 있으니가 말이죠
좋은 옷 입은 자는 궁궐에 새 때까리로 널려있으니 말이죠
ㅡ런데 중심이 없어요

저 내일 아궁이에 던질 풀도 귀히 귀히 입히시는
저 들에 핀 백합화를 저 찌꺼기
세상 미말에 둔 구경꺼리를 어떻게 헵시바야 쁄라야 라고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들고야 말겠다 라는
주님의 첫사랑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그 숙제를 우리는 누리도록 되어 있는 증상물로써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우리는 악착같이 저들 우상숭배자들
종교오락꾼들에게서 매일 매일 작살에 꽃혀서
탈출 시키시는

이 사랑의 넉넉한 승리를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덕분에 주님 탓으로

무덤이 있고 싶어도 무덤이 없습니다
자살할 자격도 없습니다
죽을 자격 조차도 없습니다
무덤이 없는데 뭘 죽냐 말이죠
아무리 죽음이 사방으로 애워싸는 우겨쌈을 당해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오락꾼들은 요즘 장례문화가 또 돈이 되다 보니
아예 종교장례묘지를 교회가 직접 장사를 하던데
미친 우상놈들 답지요 아예 상종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큰 교회를 따라하고 싶어서 미쳐있습니다
무덤 있기를 냅뚸 버리시는 거죠
상조회사를 아예 채리고 있어요 글쎄

무덤 없는데 말라꼬 무덤을 사는지 원
죽고 싶어도
저런 엉터리 우상 숭배자 교회가
죽음을 죄를 사망을 중심으로 세상을 추구하는
죽은 세상이 되어서
죽음을 권유하고 자살을 권유하고 죄를 권유하고 마약을 권유하는 식으로 몰아가도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계신 주님의 끝까지 사랑하신
화목제물 중심 덕분에
성령은 자꾸 화목제물을 보라꼬
저런 엉터리 죽음에 속지 말라꼬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고

산 소망으로써 
이 죽음 뿐인 세상에서
살아계신 유일한 분
의인은 정녕 살리라 라는
이 하나님의 의에만 복종하는

너희는 저의 말만 들으라 ~~~~~

(마 17:5, 개역)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하나님은 예수님 중심으로만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중심도 안되는 목사말도 듣지마시고
십자가를 진 적도 없거든요
베드로파 바울파 그런 파당에 골라 골라 먹는 베스킨 세례 파당인 손세례 무시하시고

심지어 중심도 안되는 세상이 아무리 자살을 권유하고 자살로 몰아가더라도
그런 파당
국가 짐승의 경계선 긋기 영역소유에 휩쓸리지 마시고
교회 속의 파당 정치에 놀아나지 마시고

방금 뉴스를 보니 갑자기 국민건강을 중증치료 중심체제에서
예방치료 중심으로 전환한다 라고
갑자기 2-30대 젊은이들의 우울증 급증으로 인해
자살률이 세계 1위가 되어서 도리도리 무당이 바꾼다고 하던데
그것 자체가 더더더 자살로 몰아가는 식이겠지요
이미 죽은 세상이기 때문에 다른나라들의 손가락질이 무서워서
부랴 부랴 대책을 세우니
중심이 없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다 죽은 놈들이 우상숭배자들이
자살을 막겠다?
이미 자살한 놈들이 말이죠
중심을 거부하고 화인침 받은 완악한 마음으로 남을 살리겠다 라고
그게 도로 죽이는 꼴입니다
이태원 참사 다 죽여놓고서 병주고 약주고?
갑자기 교회 쳐들어가서 추도예배를?

지원 약속한다고 해 놓고서는 예산 다 줄이는
아마 예산을 더 깍을 겁니다
지금 죽음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나라부도를 막겠다고
경찰 파출소 부동산도 팔아서 메꾸어 넣는 판국이니 말이죠
10월달에 부도난다를 지금까지 돌려막기를 했는데
2월이 되면 이제 아무리 해도 안될거다 라고 전망하는 거죠
아무튼 총선까지만이라도 속일수 있는데 까지 다 속여서라도
온갖 속임수를 목숨 걸고 펼쳐야 할테니 말이죠
죽은 세상 답지요

오직 화목제물 되신 분만이 중심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시는
유일하게 산 자이기에

나머지는 다 죽은자의 하나님이기에

그런 우상에게 놀아나지 마시고
이것이 애굽나라 곧 자살의 나라입니다
그것을 감추고자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감추고자
이 잔칫집은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잔칫집을 유지하는 겁니다
그러니 에덴동산 같았던 애굽의 실상은 죽음이요 죄요 마귀인
큰성바벨론 인 겁니다
주님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1300년 만에 죽은 모세도 변화산에서 나타내듯이
상대적인 1300년 만에 죽은 애굽광 바로왕도 지옥에서 소환하시는 겁니다
모세는 어서 죽어주소서 별세해 주소서 라고 화목제물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고
그래서 모세는 광야 광야 3일길 유월절 어린양 희생제물 이라는
광야 들에 핀 백합화 라는 주님이 귀히 여기시는
찌꺼기 이스라엘을 제일 미약한 나라
죽은 자 같으나 산자로 만드시는
천한 계집종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시는
이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 곧 인애와 자비인
구스 가장 천한 여자에게 내 너에게 반드시 결혼 장가가고야 말겠다 라는
이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소서 라고 모세는 간구하고

반대로 1300년 만에 지옥에서 소환된 애굽왕 바로왕은
역시나 똑같은 기능으로써 저 모세는 허풍쟁이 이다 
저 되도 않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 = 속이는 자 같으나 참 말인 모세의 말을
반드시 이스라엘이 다 휩쓸리도록 만드는 기능
아무리 광야로 따라갔어도 목이 곧은 백성으로써 반드시 원망하도록 만들고자
지옥에서 소환되어 그 기능을 하도록
가룟유다야 너가 맡은 일을 어서 해야지 라고
반드시 솔로몬의 영광을 상대적으로 구하겠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왜 이스라엘의 광복 해방의 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왜 예수님은 하시지 않습니까 내 열심히 특심인데?
그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안 보여주시고
주님이 보여줄 표적인 요나의 표적 곧 7에 70번 용서인
천한 계집을 찌꺼기 패역한 예루살렘 딸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시고자
예수님 자신이 화목제물이 되는
이 중심을 세우기 위함이다

중심도 없는 정직한 영도 없는 그 이스라엘 껍데기 나라 세워본들
번제와 제사만 반복하는 우상이고
음란을 반복할 뿐이다 음녀가 신랑을 찾아나서는 꼴이다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고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의문의 반복만 하는
백날 46년 동안 성전을 세워봐라
율법의 완성인 중심이 세워지는지?
인애와 자비가 세워지는지? 백년? 천년? 만년? 이 지나도 세워지는지 완공 완성
다 이루어졌다가 되는지?

세워졌다 쳐 본들 그 성전에 금을 바쳐서 맹세를 이루겠다 라는
역시나 우상숭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 곧 인애와 자비는 거부하고 죽이고 다윗언약을 거부하고
독립해서 번제와 제사 그건 누구도 다 행하는 짓인데
저 천한 계집 다윗을 왕비에 자리에 높이시는 이 인애와 자비를
번제와 제사를 지키는 자들이 과연 할 수 있는지
백날 금에게 합하고자 혼합물로 짬뽕시켜본들
과연 인애와 자비를 나타낼수 있는지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정금과 찌꺼기로 분리해서 찢으셨으나
다시 정금 되신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 속에서 사망을 뚫고
용광로 심판 풀무불 심판 속에서 정금같이 나온
완벽한 사랑으로 나온
이 남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 화목제물의 사랑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인애와 자비로써
다시 싸매어 주신
진짜 거룩 측량인 행함이 있는 믿음
저 끝의 가장 끝에 있는 천하고 무능한 창녀 고멜을
왕비의 자리
왕 되신 주
하나님이 너희가 죽인 예수를 주가 되게 하신
이 살아계신 그 영광의 주 되심의
그 격상에 맞게 천한 계집을 거룩으로 힙히시는
이 율법의 완성을 이 사랑을
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앞뒤 모순 된 이 간극인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이룬 이 믿음을
이 새 마음 새 영의 마음을 우리에게 값없이 부어주신
이 성령으로 죽음의 세상
자살을 권유하는 허구의 세상에
죽음 뿐인 세상에 주의 살아계심만 증거하도록
악착같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죽음 끝까지 지옥 끝까지 죄악 끝까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 십자가의 사랑을
충만케 하라 다스리게 하라 번성하게 하라 라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세상의 미말에 찌꺼기 구경꺼리로 만드셔서
죽이시기로 작정 하셨다 말이죠

자기 목숨 걸때가 없어서 자살하는 죽음 뿐인 세상에서
목숨 걸 때가 있도록 만드신 이 살아계신 산 자의 하나님을 증거함이
노래함이 찬양함이
이것이 바로 피조물의 최고의 영광 아니고 뭐냐 말이죠

이것이 마귀 보란 듯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피신랑의 반드시 자기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의 목숨의 피를 바르신
넉넉히 이기신 이 주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도록 만드신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다 이룬 율법의 완성인 사랑에
우리를 작살 꽃아서
깨진 장독대에 물 퍼부어 담은 그 헛짓이 아닌
또력한 실상으로써 깨진 장독대 자체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우물 속에 강가 속에 넓고 넓은 바다 속에
아예 빠뜨리는
도저히 말릴수가 없는 죽음 보다 강한 질투의 사랑인 겁니다

이미 죽은 죄 밖에 없는 자들을 살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듣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이 죽은 세상에 외치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는
이 정직한 영의 탄식을 심어주시길 바라며
이 산 소망으로 중심인 사랑만 쳐다보시면 됩니다

오직 이 또렷한 십자가만 바라보고 가시면 됩니다
다른 것들은 다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구원도 헛됨입니다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개인구원 사적인 구원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죽인 예수님을 주가 되게 하신
이 제대로 된 절대사랑인 예수님을 살리신
주가 되게 하신
이 또렷한 사랑을
살인자의 옷을 입은 채로
죄수복을 입은 채로
내가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나의 주가 되게 하신
이 또렷한 사랑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는 이 주만을 경배하게 하시는 겁니다

나의 죽음도 다 이기시는 이 사랑이 나보다 옳았기에
너무 너무 또렷하기에 밝히 보이시는

니의 죄악도 이기시는
더 이상 우리의 꾀
속임수
허구
허상이 먹혀들지 않는
누가 꾀느냐

이 사랑에서 끊을자 없도록 다 이루신 겁니다

헬라인 이방인 지혜자들에게서는 하나님의 어리석고 미련함으로 단절의 지혜를
유대인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
깨끗함 거룩 의로움 부자의 구원됨 솔로몬의 영광을 추구함에 있어서 정반대의 길이
광야 죽음의 사막에 핀 백합화, 천하고 더러운 걸레 창녀 신데렐라 계집종
죄인 매국노 세리 창녀 환자 문둥병자의 친구로 오심에 있어서

이 얼마나 거리끼는 거부감의 지혜로 오시는지

그러나 천한 계집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이 십자가만 알기로 자랑하기로 한 
저 일급 살인자 바울에게 새마음을 집어넣어서 나온 고백이

나의 고백으로 만드시는
내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하시는 십자가의 영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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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9 두 음녀 오홀라 오홀리바 (겔 23, 1-10)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과 풀무불 심판 (겔 22,17-31)
에스겔 2019 2023. 12. 2. 13:54
21-068 풀무불에 녹는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 (겔 22,17-31)

〈에스겔 23, 1-10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4쪽, 찬송가 463장 새 400 험한 시험 물속에서, 찬송가 315장 새 523 돌아와 돌아와〉  

주께 맡기어라 (1044)
달리다굼 (891)
험한 시험 물속에서 (찬 463) 400
돌아와 돌아와 (찬 315)

〈찬송가 463장 험한 시험 물속에서, 새찬송가 400장〉  

1.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노한 풍랑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2. 권세 능력 무한하사 모든 시험이기고 
   풍랑조차 복종하는 내 주앞에 비오니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3. 사망 길에 빠진 이 몸 캄캄한 데 헤매며 
   부르짖는 나의 애원 들으소서 내 주여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아멘


〈에스겔 23, 1-10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4쪽〉  

(겔 23: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3:2, 개역)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겔 23:3, 개역)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겔 23:4, 개역)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겔 23:5, 개역)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겔 23:6, 개역)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겔 23:7, 개역) 그가 앗수르 중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
(겔 23:8, 개역)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바 되며 그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바 되었더니 그가 그 때부터 행음함을 마지 아니하였느니라
(겔 23:9,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겔 23:10, 개역) 그들이 그 하체를 드러내고 그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그 누명을 여자에게 드러내었나니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문을 행함이니라


〈찬송가 315장  돌아와 돌아와, 새찬송가 523장〉  

1.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 한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 오라

2. 돌아와 돌아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우리 아버지께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 오라

3. 돌아와 돌아와 환난 있는 곳과 
   죄를 범한 데와 미혹 받는데서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 오라

4. 돌아와 돌아와 집에 돌아 오라 
   모든 것 풍성한 아버지 집으로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 오라


〈가스펠; 달리다굼 (891) 〉 

1.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어두운 죄악의 길을 걸어가다
   상하고 찢기어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내 영혼 어둠속에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 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 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2. 주님을 떠나서 세상을 향해
   맘대로 고집하며 내 영혼 먼곳으로 나갔었네
   인생의 어려움 절망 가운데
   눈물과 한숨과 내 영혼 슬픔속에 잠이 드네
   주님을 떠나서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 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 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겔 23: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23:2, 새번역) "사람아, 두 여인이 있는데, 그들은 한 어머니의 딸들이다.
(겔 23:3, 새번역) 그들은 이집트에서부터 이미 음행을 하였다. 젊은 시절에 벌써 음행을 하였다. 거기서 이미 남자들이 그들의 유방을 짓눌렀고, 거기서 이미 남자들이 그 처녀의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겔 23:4, 새번역) 그들의 이름은, 언니는 오홀라요, 동생은 오홀리바다. 그들은 내 사람이 되어, 나와의 사이에서 아들딸을 낳았다. 그들을 좀 더 밝히자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이고,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다.
(겔 23:5, 새번역) 그런데 오홀라는 나에게 속한 여인이었으면서도, 이웃에 있는 앗시리아의 연인들에게 홀려서 음행하였다.
(겔 23:6, 새번역) 그들은 모두 자주색 옷을 입은 총독들과 지휘관들이요, 모두 말을 잘 타는 매력 있는 젊은이들과 기사들이었다.
(겔 23:7, 새번역) 그들은 모두가 앗시리아 사람들 가운데서도 빼어난 사람들이었는데, 오홀라가 그들과 음행을 하였으며, 또 누구에게 홀리든지 그들의 온갖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혔다.
(겔 23:8, 새번역) 오홀라는 이집트에서부터 음란한 행실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에 이미 이집트의 젊은이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여서, 그들이 그의 처녀 젖가슴을 만졌고, 그에게 정욕을 쏟아 부었다.
(겔 23:9, 새번역) 그래서 내가 그를 그의 연인들 곧 그가 홀린 앗시리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주었더니,
(겔 23:10, 새번역) 그들이 그의 하체를 드러내고 그의 아들딸들을 붙잡아 갔으며, 끝내는 그를 칼로 죽였다. 그는 심판을 받아 여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인간이란 자기 혼자서 본성을 형성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본성 자체도 타인의 욕망으로 구성이 된 자기 것이 하나도 없는 채로
자아도 아닌 자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사랑하기로 또는 미워하기로 작정이 된 그 본성은 잊은채로
아니 알수가 없기에
이 원인 없는 결과를 잊은 채로 알 수 없는 채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결과물 표상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도리어 원인을 갖추고자 하는 본능으로 인해
출생의 비밀을 캐내고픈 욕망으로 인해
타인의 욕망으로 구성된 허구의 자아를 형성합니다
내 숙제는 내가 하겠다 라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이 없는데
아니 자아라는 것 조차도 없는데
자꾸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데 있어서
그 허상 허구를 형성함에 있어서

마치 죄를 짓는 주체가 아니듯
죄가 인간을 다루듯이
인간이 죽는게 아니라
죽음이 주체가 되어서 죽음이 인간을 죽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아가 주인공인냥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모든 세계관을 형성하고 파악하고자
사고(생각)하는 겁니다

정작 그 죽음의 실체를 인간을 통해서 들추어내시는데 말이죠
죽음의 표상물이니까 말이죠
문제는 인간으로써가 아니라 흙으로 돌아가 버린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죽음을 까발리는 인간이 못 되고서 흙이 된 겁니다
죽음의 비밀도 못 푸는 채로
출생의 비밀 따위는 아예 접근 시도 조차도 못하고서 말이죠
결국 죽음 근처도 가본적도 없이 말이죠

그래서 참인간으로 오셔서 그 죽음의 실체를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사망아 누굴 쏘려느냐?
정녕 죽으리라 라는 절대죽음을 이루시고자 말이죠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6, 개역)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 15:47, 개역)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전 15:48, 개역)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전 15:49, 개역)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50, 개역)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1, 개역)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개역)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개역)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개역)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인간을 통해서 인간이 주인공으로써 죽는게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죽게 함으로써 죽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이 사망의 권세 왕노릇을 거쳐서 은혜가 왕 노릇함을
이 우상 전남편을 거쳐서 본래남편을 나타내시고자
인간을 이 잃어버린 자리에 놓으시는 겁니다

죽음이 인간을 죽이는 인간을 다루는 죽음이 주인공임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죽음 죄 마귀 음란 우상 등등의 사망의 권세가 왕 노릇함을 말이죠

이렇게 불뱀에게 다 물려 죽게 하신 후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시는
이 요나의 표적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나타내시고자 말이죠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니라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즉 화목제물인 십자가의 피 용서의 발림이 없어서 지옥가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의 신학인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지옥이 아니라
지키든 안 지키든 율법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한 사망의 몸임을
사망의 주인공 됨에 종노릇함의 실체를 보여주고자 율법이 가입된 것이다 말이죠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이 가입이 되지 않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니 말이죠
그러니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써 사망의 몸임을 알려주고
동시에 저 분을 보라 라꼬 너 사망의 몸에서 나올수 없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쳐다보라 라꼬 몽학선생의 기능으로써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고 가리키는 화살표로써
율법과 선지자는 작동 하는 겁니다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저 이방인처럼 되지 말라꼬
율법에 의해서 제대로 된 죽음을 절대심판을 지적당함으로써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음을
중심이 없음을
중심인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지적해 줌으로써
모조리 다 불도져로 밀어서 탄식케 만드는
그 허허벌판 광야로 인도하여서 개유 꼬셔서 가르쳐 인도하시는
그 광야에서 맺은 첫맹세 첫사랑으로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말이죠

바로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을 저들 사망의 권세 속에 놓이게 하는
요나의 표적 곧 캄캄한 어두운 바다 깊은 큰물고기 뱃속 이라는 그 절망 속에 놓이는 겁니다

과연 죽음 같지도 않은 것이 인간을 다루는
물론 법적으로는 우리는 이미 벌써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짜 죽음은 사랑이 없어서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죽는
첫째사망은 다 죽지만
둘째사망이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오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이 없으면 이미 죽었는 줄을 모르는 겁니다
이미 죽었는데 뭘 은혜를 더하고자 죄 속에 거하겠냐 말이죠
이미 죽은자는 오실 자의 표상으로써
그 외부의 관계로 인한 증상물로 나오게 하시는 겁니다

죽음이 나의 숙제가 아닌 외부에서 작동했듯이 그 관계성을 끊고
이것을 음란이라고 하지요 이 음란을 제거하시는 외부의 침략자와의 관계로 인해
이제 은혜가 외부에서 펼치시는 숙제로 인해
왕노릇 하시겠다 라고 쳐들어 오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의 내용을 낱낱이 밝히는 겁니다
누구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의 선택은 바로 이 심판 이 죽음 이 저주의 내막을 낱낱이 들추어내는
기능으로써 작동이 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미끼죠 이스라엘은 미끼로써
잃어버림의 총화 곧 모음집입니다 최종결론 끝판 결정판인거죠

과연 누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자 있는지를
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주님은 욥기처럼 마귀와 내기를 하시듯이
어서 미끼를 물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귀는 모세를 다윗을 베드로를 월척 잡았다 라고 좋아라 하지만
정작 본인이 잡히는 줄 도 모르도록 기능을 하는데 있어서
이 사랑의 비밀 곧 천국의 열쇠를
이 십자가의 피 용서인 다윗언약을 통해서(북이스라엘의 모세언약이 아니라) 나타내시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말이죠 폐함이 없이 말이죠
폐하시는커녕 완전케 하려 함으로 말이죠

(마 5:17, 개역)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그런데 인간은 이 율법을 쥐고서 자기 숙제로써 법을 따지다 보니
졸지에 그 법의 자리에 자신을 앉히게 만들어버립니다

법이란 단순히 지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법을 통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어 있고
그 권력은 반드시 살인으로 까지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즉 법을 지킴과 동시에 법을 어기는 살인 까지 가는 겁니다
이 모순의 간극을 법은 유도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것은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법이 쥐고 있는 권력을 쥐고 싶어서 인 겁니다
그러니 울리는 꽹과리인 거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법은 모르는 겁니다 마귀는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완악한 수건을 벗기시고자 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도리어 죽기를 무서워
더더더 완고함에 굳어져 버리는 겁니다

이 법의 자리
정작 주님은 이 법대로 했다가는 이러다 다 죽어처럼
다 죽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마귀처럼 그 빈자리에 앉게 되니
탈탈탈 다 털린 빈자리의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도리어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그 빈자리를 꽉꽉 채우고자
남을 7번 용서 하겠다고 자기숙제로 나서게 되더라 말이죠

정작 주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빈자리 보다 더더더 빈자리로
이 원수의 자리에 까지 내려오셨는데 말이죠 (텐트 속의 텐트)

이 남겨둔 한 씨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는데 말이죠

이 인애와 자비를 쳐다보지 않고
완악한 번제와 제사를 손에 꽉 쥐고서
모세언약을 고집하다 보니

그러다가 이스라엘 까지 다루는 입장까지 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 본인이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남을 정죄하는 율법으로
정작 자신의 눈의 들보는 쳐다보지 않게 됨으로써
죽기는 두려워 함이 도리어 남을 죽이게 되는 살인의지를 펼치게 되는 겁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것이
도리어 도적질하게 되는 살인하게 되닌
이 간극을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듯이 말이죠

자 이렇게 율법의 완성인 남을 사랑하는 사랑도 없는 주제에
이 간극을 좁힐려고 하는
죽음의 비밀도 못 풀면서
무슨 생명의 비밀이 되고자 함에 있어서

이 죄가 이 사망이 우리를 속이는데 있어서
더더더 큰 올무를 통해서 죽음의 내막을 율법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물론 인간은 완악한 수건을 못 벗기 때문에
이 사자질 허구 실상도 아닌 그림자를 덮어 쓴 채로 무슨 놈의 비밀을 풀겠습니까
외부에서 실상 실체가 벗겨주셔야만 하기에
속아 넘어가도록 내어버려둠을 당하지 않도록
율법에 제대로 당하는 그 심판 그 제대로 된 심판을
특급상품인 이 이스라엘이 먼저 받는 특혜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제대로 된 심판이 아니면 제대로 된 구원이 없기에 말이조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분이 나를 제대로 살리시는 구원자이기에
그 죽음에 뛰어든 주님의 죽음을 우리는 우리 몸에 지니는 겁니다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6, 새번역)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고전 15:56, 공동)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고전 15:56, 한글킹)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능력은 율법이라.
(고전 15:56, 현대인) 죽음이 쏘는 것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고전 15:56, 현대어) (55절과 같음)
(고전 15:55, 현대어) ㄷ) 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죄, 곧 죽음을 가져오는 독침은 없어지고 우리의 죄를 폭로하는 율법도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재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ㄷ. 70인역 호13:14)

과연 죽음 같지도 않은 것이 이스라엘 까지 다룰수 입장이 되는지를?
그래 그래 사망아 그래 이스라엘 많이 쏘아 봐라
이미 죽음이 졌는데 죽음의 승리가 없기에
죽음이 죽었는데 이스라엘 죽여본들 주와 함께 다시 사는
이 관계가 주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었는데
뭘 그렇게 쏘아대니
독침도 없어지고 그 독화살의 표적이 되는 이스라엘도 표적도
주 안에서 다시 살아나버린 은혜의 왕 노릇에 사랑의 왕 노릇에 한 몸이 되었는데
너 사망이 주장하는 왕 노릇이 이제 무슨 안개를 허깨비를 허상을 펼쳐놓고서
그 그림자를 진짜 인냥 허세를 부리니 ~~~~

아무리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쏘아대어보아라
이 사랑에서 끊을 자 있는지를 ~~~~~

이스라엘은 이 풍랑 속 사탄의 가시 속
사망의 권세 속
이방나라 우상의 음란 죄악 속에서 과연 사망이 누구를 쏠 수 있는지를 말이죠
그 허깨비를 들추어내는 미끼로써
하나님의 군대로써 마른뼈까지 이제 거쳐서 나왔으니 말이죠
이 이스라엘 이름 답게 이스라엘 스스로는 못하고
그 이름을 지으신 주님의 숙제로써 그 기능을 하도록 되어있는 겁니다
그렇게 이 세상을 죽은 세상임을 들추어내고서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써 본향을 본래남편을 말하는 기능으로써
잃어버림의 총화로써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즉 인간 취급 못받는 세상 미말에 둔 찌끼 구경꺼리 웃싸꺼리로써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산 자로써 말이죠 왜 죽은 세상이 시기를 하거든요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한다 라는 이 관계성 때문에 말이죠
왜 주님을 미워하는 죽은 세상이냐? 죽었다 라고 선언하셨거든요
세상이 악하다 라고 증거하셨거든요 낱낱이 그 죽음의 비밀을 까발렸거든요
실상의 죽음은 주님이 보여주셨는데
죽음 같지도 않는 허상의 죽음이 죽여버리겠다 라고 사망이 누굴 쏠려고 할 때
그 누구 조차도 그 표적 조차도
허구인 죽음이 만들어낸 허구의 표적이니까 말이죠
베드로를 잡았데요 글쎄 마귀가 잡은 베드로는 허구인데 말이죠
베드로의 실상은 예수 안에 있거든요
엉터리 허구 잡아놓고서 실적보상제도를 주장하는 겁니다
이 실적보상 조차도 허구인데 말이죠 뭘 해도 다 허구인데
왜 그 허구의 그림자 놀이에 놀아나야 하는가 말이죠

그러니 이 허구인 세상의 내막을
죽음의 내막을 낱낱이 밝히시는 이 첫사랑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인해
이 인애와 자비로 인해
이 허구인 번제와 제사 곧 손세례 손성전 손이스라엘 육적 혈통이스라엘
손행함 손믿음 손할례의 내막을 낱낱이 들추어내시고자

주변의 이방나라를 깔아놓고서
그런 허구인 이방 나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본성이 드러나는 겁니다
인간의 본성인 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도록 되어 있는 타민족과 다르게
이스라엘은 도리어 은혜가 드러나도록 하시는 겁니다
뭘 해도 다 죄임을 알게 하심을 통해서
뭘 해도 사망의 몸이요 하나님의 원수 됨을 통해서
잃어버림의 자리에 놓아 두시는 겁니다

남들은 다 감추는데 있어서
이스라엘 만큼만은 감추고자 한 것이 도리어 들추임 당하듯이 
다른 민족에게 없는 매를 먼저 매 맞도록 되어 있는겁니다
(그럴 때 이방나라는 즉 죄는 즉 마귀인 사망은
이 미끼를 덮썩 좋아라 무는 겁니다
자신들도 해야 할 하나님의 원수 됨에 울어야 함을
도리어 이스라엘을 울게 만들어 주는 사단의 가시로 작용케 만들고
그 하나님의 원수 이다고 우는 그 회개가 듣기 싫어서
심판 주가 나서기도 전에 먼저 심판해 죽이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겁니다우리가 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거든요
이것이 사망의 비밀이 한 꺼플 풀리는 시작인 겁니다
이 시작 자체가 끝판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반대로 이스라엘을 아무리 외부 타인들 이방민족이 아무리 저주를 해도
거짓선지자 발람에게 돈 뇌물을 줘서라도 저주를 빌어도 도리어 축복이 되는 
은혜의 왕 노릇의 관계로 놓으셨는데

육적 이스라엘은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은 
즉 가짜 이스라엘은 나 애굽으로 돌아갈래처럼
다시 사망의 왕 노릇의 종노릇으로 다시 되돌아 가는 겁니다

사랑이 없어서 두려운 겁니다

(요일 4:18, 개역)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고전 13:1, 개역)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개역)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즉 사랑이신 하나님을 두러워 하지 않기에 사람이 두려워서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겁니다
곧 자기자신이 두려운 겁니다 허구인 자아를 말이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그 허상이 되지 못한 그 허구를 두려워서 말이죠
그림자인 자기를 두려워 하기에
완벽한 하나님과 같이 되지 못한 그 공포에 두려워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구인 자아를 붙잡을 수 밖에 없는
자기가 두렵기 때문에 자기 밖에 사랑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은혜가 왕 노릇하는 이 외부의 숙제로
사랑이 퍼부어 지게 되면
아무리 저주를 퍼부어도 그 사랑에서 끊을 자 없습니다

이 외부에서 맺은 관계성을
즉 율법(내부를 초토화 시키는 제대로 된 심판) 외에 한 의로 맺은 관계성이
얼마나 견고하고 미쁘신가 믿음직 스러운가를

외부의 이방나라가 이스라엘을 자꾸 건드리고
자꾸 유혹에 아무리 빠뜨려도

가만히 두면 될 것을 괜히 건드리고(빈자리를 가만히 못 있죠)
괜히 저주를 퍼붓는 바람에
왜? 그래야 자신의 영광됨을 남의 것을 빼앗아서 이루고자 하기에
그 저주 퍼붓는 것이 도리어 축복을 퍼부어 주는 식이 되는 겁니다
저주가 안 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 돈 받고 축복과 저주를 하는 발람의 꾀는 반드시 작동해야 합니다
주변의 이방나라처럼
성도를 괴롭히는 주변의 사람들과 친척들도 다 동원이 됩니다
심지어 계시록 이미 죽어서 지옥에 가 있는
애굽왕 바로왕까지 다시 소환시켜서 까지 말이죠
계시록은 이 구약의 선지자처럼 사랑의 최종결정판처럼
이 결혼의 하이라이트로 작용케 하기 위해서
다 동원이 되는 겁니다

(신 23:5, 개역)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그러니 저들이 반대로 아무리 이방 우상의 신을 축복을 받으라 라고 이스라엘을 축복해도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이 되는 
그 심판의 주 되신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하기 위해 
매를 대시는 심판의 주를 증거함에 있어서 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관계로써 이방나라와의 관계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그러니 이방을 쫓을 이방나라를 쫓아 왕제도를 수입하고 우상을 수입할 입장이 못 되는 거죠
도리어 이방이 이 이스라엘을 쫓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어떤 이스라엘? 매 맞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매를 때리시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쫓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방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본성이 다 들통당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스라엘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을 두 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아들 이스라엘이 아니라
딸로 그것도 두 딸로 하나는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로
또 하나는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말이죠

이 말은 꼬추 달린 아들 이스라엘 표현이 아닌
꼬추 없는 딸로 표현한 것은
여성의 본래 기능인 자기를 책임져 줄 낭군이 누구신가를 말하는 기능으로써
머리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찌끄레기 이스라엘이라고
여성의 자리는 찌꺼기 자리 이다 라고 신부된 이스라엘의 자리는 찌끄레기 자리입니다
여자는 자기의 자리가 없는 부정한 자로써 주님이 누구신가
머리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자리에서
부정할수록 더더욱 긍휼을 받은 자로써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의사가 누구신가를 말하고자 말이죠

그것이 오늘 두 음란한 자매의 이름에서 나타납니다
오홀라 오홀리바 둘 다 텐트 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광야 라는 죽음의 자리에서 누가 진짜 죽음을 다스리는
풍랑을 사망의 권세를 사탄의 가시를 독수리를 다스리는 자인가를 말하는 자로써 말이죠
특히 남유다 예루살렘을 오홀리바 라고
텐트 속에 텐트 라고
광야 속에 광야
죽음 속에 죽음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라고 절대죽음으로써 남유다 예루살렘 만큼은 
반드시 매를 대서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홀라 사마리아는 죽은 자로써 기능을 해야 하고
오홀리바 예루살렘 남유다는 죽은자 뿐만 아니라 이 죽음에 뛰어드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머리가 누구인지를 말이죠

자 그렇다면 지금 현대의 유대인은 주님이 세우신 유대인이 아닌 거죠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인 거죠 머리 없는 좀비인 겁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고 고쳐주소서 라고 하면 되는데
도리어 율법 지켰다 라고 우기면 우길수록 더더욱 그 완악한 수건을 그림자를 못 벗고
그림자를 우상숭배하고
돌 나무에 새긴 것이 아닌 도리어 그것을 거부한다 라고 우기면서
율법 지키는 자기자신을 우상숭배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거죠 이건 뭐 약도 없어요
마약인 거죠 답이 없어요 마약금지 공익광고를 보면 마요미가 나와서
단 한번에 끝 인생 끝 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로 답이 없으니 말이죠
도리어 소경 아니다 나 볼 줄 안다 라고 하니까 소경인 겁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은 내 반드시 매를 대서라도 반드시 머리가 되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 그래 많이 니 마음대로 살아봐라
반드시 니 전남편 바알을 제거하고 니 얼굴에서 반드시 음란을 제거하는
주님 자신의 숙제를 하겠다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이 말은 아무리 마귀가 내 본래 아내 이스라엘을 더럽혀도
나 반드시 거룩을 입히고야 말겠다 라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3:9, 개역)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여자는 이 약한 자리에서 강한 주님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신부된 이스라엘이 말이죠

결국 결과는 그럼 강한 것이네요?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 말이죠
사랑 보다 약하고 약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게 없어요 그런데 가장 강하데요 글쎄
사랑의 열매인 자식이 그 어떤 동물들 보다 가장 나약한 젖먹이인데
이 젖먹이 보다 강한 자가 없다 라고 화목제물의 전쟁을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정한 나의 찌끄레기 자리에
힘빼 힘빼 목이 곧은 백성 힘 빼라고 자꾸
잔칫집 도시가 아닌 죽음의 광야 사막에서 개유하시고 사랑하시는 겁니다

더더더 부정한 주님의 죽음으로 오시는
텐트 속에 텐트 
광야 속에 광야
죽음 속에 죽음으로 오시는 것이 

바로 사망의 권세인 사망이라는 주인공을 찢는
아 진짜 주인공은 저 분이시군요 라고
여인의 자리에서 부정한 더더욱 부정한 여성의 자리
지난 주에는 로마서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산 자 되신 주님을 외치는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써 말이죠

그래서 악착같이 살아라 라꼬
나의 생명을 악착같이 살릴려고? 아니지요
예수님의 생명의 주 되심을 외치고자 악착 같이 증거하라꼬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못 얻든지 즉 죽든지
상관 없이 말이죠

즉 잃어버림이 없이는 되찾음이 없듯이
어차피 되찾을 것 잃어버림의 과정은 없어도 되지 않느냐 라고 하게 되면

죄만 없애 주면 지가 자기가 알아서 바르게 살면 된다 이게 성화론자들 주장 아닙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원수의 목전에서 왕의 격에 맞는 죄 사함 뿐만 아니라
왕의 격에 걸맞게 격상 시켜서 결혼의 자리인 신부의 자리까지 높여야
마귀가 배 아파 죽는 겁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란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하는 겁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지혜는 도리어 세상이 칭찬해요 박수 칩니다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지지 말고 박수를 쳐요
반드시 그 박수 치는 마귀를 격동케 만들어 견딜 수 없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헬라인 곧 지혜를 추구하는 이방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해서
거꾸로 가는 이 십자가의 지혜를 거부하고

또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를 걸림돌로써
자기를 높여주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세상의 미말에 둔 찌기
구경꺼리로 만드는 
그래서 더더욱 완악한 수건을 못 벗게 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도록 만드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반대로 남에게 뒤짚어 씌우는
역시나 미끼에 걸려 넘어뜨리도록 만드는 이 십자가의 지혜를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바로 저런 우리의 불의(잃어버림, 찌꺼기)가 하나님의 의를(되찾음)을 드러내느냐 그렇다
에이 그럼 우리가 악해야 하나님의 선이 드러나겠네 라고 
그 카이 너희들은 이미 정죄받앗다 라고 바울에게 욕 먹듯이 정죄 받을 짓만 골라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를 자신들의 행할수 있는 손 의로움으로 해석한 것도 틀렸으니
하나님의 의도 잘못 본 거고 더 중요한 하나님이 누구신지 역시나 모르는 겁니다
의사를 드러내기 위한 주님의 우리를 환자 만드심인데
순서만 반대로 언어로 말하니까 마치 바로 꼬투리 잡았다는 냥 바로 공격해 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도 반대로 보니 말이죠 (원래 처음부터 날 때부터 배배 꼬인 것이 들통난 거죠)

그런 놈들이 나타나야만 하고 마치 오늘 본문처럼 그런 이방나라들이 주변에 깔려야 하듯이

또 이제는 또 반대로 아 그럼 은혜를 더하고자 우리가 죄를 더 짓자 라고
(이들은 마치 유대인처럼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거룩인 의로움에 자기의 의를 썩을 려고 하는 불순물 혼합물을 추구하는 겁니다 도리어 구별 거룩 분리는 찌끼가 되어야 하는데
은혜를 더하고자 죄 짓고자 함이 찌끼가 되고자 함일까요? 아니면 또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자
자기를 높일려고 하는 자기 숙제로 자기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자아 우상숭배 탐심일까요?
주님이 속을 리가 없겠지요 그러니 이 반대이론의 정당화가 방종하지 말자 라꼬
또 인간의 숙제가 나오는 겁니다 둘 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것을 같은데 
자꾸 극과 극의 정반대이다 라고 보는 겁니다
유대인은 자기 손에 피를 안 뭍히고자
로마를 이용하고 로마는 그런 정치술에 안 속겠다 라고 나오고
이 둘이 서로 원수지간처럼 굴어도 역시나 한 놈인 것처럼 말이죠)

마치 죄를 다룰수 있는냥 언급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죄 속에 들어갈수 없다 라고 (죄 속 안 죄 바깥 으로 공간 장소 판대기 구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로 생각하는 겁니까? 언어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드는 겁니까?
언어가 구조화 되어 있는데 심지어 무의식 마저도 구조화 되어 있다 말이죠
내 꿈이 아니라 타인의 꿈들이 마구 마구 지배를 하더라 말이죠)

이미 죄와 함께 죽었는데 죄 라는 권세 죄라는 주인공의 발 아래
죄의 왕노릇에 종노릇하고 싶어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다 라고
이미 죽었다 라고 선언 했는데 왜 또 다시 돌아갈래 라고 박하사탕처럼 발악을 하느냐 말이죠
권세 공간 장소 판대기(세계관=구조)로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자기영광 때문에 자기구원을 사적으로 끌어당길려다 보니
사망이 주인공 됨에 있어서 은혜가 왕노릇 한다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또 알려주실려고
우리를 죽은 자로
없는 자로
무태한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그 신부된 자리에서
그 약한 자리에서 잃어버린 찌꺼기 자리에서
너의 남편이 누군지를 보라는 겁니다
바알 이라는 사망의 권세가 니 남편인지
너 대신 매 맞은
너 같은 사망의 몸에 뛰어드신 죽음 속에 죽음인 진짜 절대죽음을
정녕죽으리라 라는 제대로 버림받은 주님이 너의 남편인지를 말이죠

그러니 이 두 딸은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와 남유다 예루살렘은
텐트생활이라는 떠돌이 나그네 유랑하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즉 이 땅에 머리 둘 곳 없게 만드시는 잃어버린 자 찌꺼기 되게 하시는 겁니다
왜 왜 왜 말이죠
남의 것을 빼앗아 서라도 정작민이 되고 픈데 말이죠
이 땅에서 잔칫집을 형성하고 싶은데 말이죠

이 두 딸은 하늘에 본향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떠돌이로 살게 하시는 겁니다
주의 주 되심을 말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떠돌이가 되게 하심으로써 본향을 사모하게 하시는 겁니다
부르짖게 만드심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버림받음이 없다면 되찾는 구원자가 누구신가를 모르는 거죠
철저하게 자기가 아닌 주님을 부르짖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 무능하게
죽은자로 만드시고
아무것도 없는 자 만드시고
무태한 자로 만드셔서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잿더미 속에서 화관을 입히시는 신랑을 말하는 자요
(누가 산자와 결혼하지 죽은 자와 결혼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원수 죽은자의 하나님을 믿는 그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써 슬픔 대신 희락을
(고아 과부 나그네 눈먼자 앉은뱅이 포로된 자에게 은혜의 기쁨의 날을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은 만한 날이요 아니 죽는데
보라 지금은 구우너의 날이로다 아니 죽는데 
이 죽으면 죽으리라 속에서 신랑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피신부이다는 겁니다)

무태 한 자 같으나 산 자의 어미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이다는 겁니다
찬송이 끊이지 않는 근심 대신 찬송의 나라 이다는 겁니다
찬송의 옷을 입혀버렸응께 말이죠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원인 없는 결과를 이미 받았기에
세상의 미말에 구경꺼리 찌끄레기 쓰레기 취급 받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겁니다

왜? 본향이 있기에 떠돌이 텐트 광야 생활을 하는 광야교회인 겁니다

(행 7:38, 개역)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본래 남편이 있기에 과부 고아 나그네 생활이라는 잃어버림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기에 은혜가 있기에 말이죠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렘 31:12, 개역)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시 34:1, 현대어) [내게는 근심 걱정 없어라; ㄱ) 다윗의 노래.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다가 쫓겨날 때 지은 노래] (알렙) 끊임없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라. 찬미 소리 내 입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ㄱ. 삼상21:11-16 참조. 히브리어 성서(마소라 본문)는 각 절이 히브리어 자음으로 시작된다)

아니 떠돌이 텐트생활로 하루살이처럼 걱정 뿐인데
도리어 찬송을 하다니 말이 되나요?
본향이 있기에 말이죠

이 찌꺼기 된 자리에서
세상의 구경꺼리가 된 자리에서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리에사ㅓ 말이죠

실제로 철학에서는 여성을 성기가 있는 자궁이 있다 라고 하지 않고
성기가 없는 존재로써 진리를 말하는 기능으로써
여성성은 즉 여성의 기능은 진리를 담은 그릇이다 몸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의학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가는 여성의 흔한 질병 자궁암 같은 경우는
아예 치료할수 없게 되는 식입니다
메타 저 넘어서의 세계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보니
사람의 무의식을 따지겠다 라는 거지요

그러나 철학자들 이 초등학문 이 거짓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 자체를 할 수가 없고 믿음이 아닌
행함으로 자기가 살아있음에서 출발하지 그것도 그렇게 외치는 자기가 죽으면 
다 소용없는 헛짓 그래서 돼지머리 놓고서 제사 드리는
손제사에 목숨 걸 수밖에 없는 겁니다

돈 없으면 학문연구도 공부도 의료기기도 병원도 예배당도 다 소용이 없는 겁니다
굳이 여성은 그런 학문으로 기록을 남겨 대대에 남길 필요가 없이
그 진리를 담는 그릇으로 이미 태어났거든요
남자 지들이 없어서 애달은 거지요 뭐
이제는 그런 여성성도 없는 시대가 된 거죠
서로 꼬추 달고 싶어서 안달이 된 시대인 겁니다 처음부터 그랬어요

바로 이 없는 소용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이 텅텅빈
광야의 텐트
이 여성성의 부정성을 가지고서 주님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말하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두 딸 이스라엘의 처음자리가
원래 그 어미는 음녀인 창녀 가나안 잡족 헷 사람이요
그 아비 포주는 가나안 잡족 아모리 사람이다 말이죠
그 어미에 그 딸 이라는 본성은
이미 과거의 처음때인 애굽때부터 가나안 정복 이전인
애굽의 속성과 동일한 히브리 잡족 속에서도 나타나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미 그랬다 라는 거죠

이 두 음란한 자매는
창녀라서 협력 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지 잘났다 라는 창녀 티를 팍팍 내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처음부터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에
호세아 당시나 에스겔 포로 잡혀 와서나
아 이래서 두 나라로 갈려졌구나가 아니라
이미 애굽 때부터
처음부터 모친의 죄 중에 뱃속에서부터
두 날라로 갈려져서 싸운 겁니다
지금 팔레스탄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처음 모태 속에서 야곱과에서 쌍둥이는 싸웠던 겁니다

형 에서와 동생 야곱 중에 누가 떠돌이가 된 겁니까
또 누가 정착해 버렸습니다

누가 본향을 사모하겠습니까?
없는 자 아닙니까
잃어버린 자
버림받은자처럼 떠돌이가 긍휼을 바랄꺼 아닙니까

이 부르짖는자로 만드셔서 본향을 사모하게 만드시는 겁니다

이 우는 자가 기쁨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시 126:6, 개역)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30:11, 개역)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사 35:10, 개역)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사 51:11, 개역)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렘 31:13, 개역)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더 9:22, 개역)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더 9:22, 새번역) 그 날에 유다 사람이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났으며, 그 날에 유다 사람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뀌었으므로, 모르드개는 그 이틀 동안을, 잔치를 벌이면서 기뻐하는 명절로 정하고,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지키도록 지시하였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가
부림절 죽는 날이 곧 구원의 날이 되는 겁니다 심판의 날이 말이죠

아무리 발람 거짓선지자가 저주를 퍼부어도
그 저주가 도리어 변하여 축복이 되는 겁니다
더더더 축복이 되도록 저주를 퍼붓는 자들을 주변에 까시는 겁니다

이 잃어버린 자리에서 찌꺼기 자리에서
죽은 자 같은 그 죽음 속에서 산 자 되신
본향의 본래 남편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피 신랑의 피 신부의 기능을 하도록 말이죠
피 신랑이 흘린 피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신부로써 피 신랑이 흘린 피 로 피 발려진 신부로써 말이죠

그 죽음으로 산 자를 외치는 겁니다

주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기에

남들이 다 죽은 자 라고 취급하는 이 이스라엘로부터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로부터
창녀 마리아 로부터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미리 장사 치르는
이 여인의 행함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 마다 기념이 되도록 하는
피 신랑을 제대로 증거한 피 신부로써 기능을 기념이 되도록 하시겠다 라고
누가 본향 본남편을 외치는 자 인지

많이 탕감 받은 창녀인지
탕감 받을 것이 없는 거룩한 제사장인지

그래서 시온에서 나온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어서
잃어버린 자 죽은 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울부짖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 잃어버린 과정을 거침으로써 되 찾는 주님의 은혜로
주님과 무관한 자가 아님을 우리가 아닌 주님 본인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것은 동시에 하나님 본인의 주 되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스스로 버리시고 스스로 되찾으심 말이죠
여기에 이스라엘은 동원이 되는 겁니다

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심이 하나님의 의로움이라고 했지요
이거 비밀인데 무슨 수로 인간들은 의로움을 지켰다고 우기는지
세상의 도덕 세상의 종교에서 말아흔 선함과 의로움을 가지고 와서
썩어서 지켰다고 우기면 과연 의인이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악도 순 엉터리로 해석한 것 아닙니까

주님 스스로 버리시고 주님 스스로 되찾으심으로써
이 의를 이 거룩을 
그것도 가장 더러운 이 두 창녀에게
잃어버린 광야의 텐트 생활의 죽음으로 산자를 외치도록 되었는
부정한 입술을 새입술로 창조하심으로써
거룩측량 성전측량으로 거룩을 입히시는 겁니다

(요 10:14, 개역)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6, 개역)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7,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8, 개역)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 10:19, 개역)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요 10:20, 개역)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라는 이 안다 라는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라고 

누가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 인지를 말이죠

약한 양의 자리에서 말이죠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자리에서

잃어버림의 경험이 없는 자에게서는 필요없는 쓸데 없는 목자의 음성을

애타게 찾으시는 목자의 음성을 말이죠
이 광야에서 듣는 겁니다

이 죽음 까지 찾아와서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세상의 구경꺼리가 되신 주님의 음성을

본향이 있는 자는 본래남편이 있는 자는
슬픔 우는 자리 잿더미 자리 찌꺼기 자리
버리움 당하는 근심의 자리에서

스스로 버리시고 스스로 되찾는 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은 창조에 보탬이 된 적이 없었듯이
주님의 일하심에 보탬이 없는 채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오로지 이 용서만을
피 만을 자랑하는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말이죠
7에 70번의 용서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육의 자랑은 육에서 난 것 뿐인
그 어떤 육체도 자랑 할 것이 없는 가운데서

오직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만 자랑케 만드시고자

두 창녀의 자리에서 그 떠돌이 자리에서 본향을 사모케 만드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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