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죄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 1- 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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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죄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 1- 4)

생명 안에서 은혜의 왕 노릇 (롬 5,17-21)
로마서 2022 2023. 10. 14. 17:05
22-030 생명 안에서 은혜의 왕 노릇 (롬 5,17-21)

〈로마서 6, 1- 4, 신약성경 246쪽, 찬송가 196장 새 262 날 구원하신 예수님, 482장 새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찬송가 196장 새 262 날 구원하신 예수님〉  

1.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저 죄인 어서 주께와 죄 사유하심 받아라 

2.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라 
   죄중에 상한 영혼을 주 온전하게 하시네

3. 주 우리 죄를 인하여 피 흘려 죽으셨으니 
   주밖에 없는 사랑을 만 백성 알게 전하세

4. 주 예수 사랑 못 잊어 나 항상 눈물 흘리네 
   이 세상 어디 가든지 내 주만 생각 하도다

5. 목마른 자 이 샘에와 영생의 물을 마셔라 
   내 주를 사랑한대도 늘 맘에 부족하도다


〈로마서 6, 1- 4, 신약성경 246쪽〉  

(롬 6: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송가 482장 새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1.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2.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 
   저 광야 같은 세상을 끝없이 방황하다가
   위태한 길을 떠나서 주께로 내가 이끌려 
   그 보좌 앞에 나아가 큰 은혜 받게 하시네

3.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때껏 지은 큰 죄로 내 마음 섧고 아파도
   참 마음으로 뉘우쳐 다 숨김없이 아뢰면 
   주 나를 위해 복 빌어 새 은혜 부어 주시네

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주 세상에서 일찍이 저 요란한  곳 피하여
   빈들에서나 산에서 온 밤을 새워 지내사 
   주 예수 친히 기도로  큰 본을 보여 주셨네  아멘


(롬 6:1,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새번역)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3, 새번역)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 ㉠또는 '침례'
(롬 6:4, 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 ㉢또는 '침례’


로마서 1절 2절을 다른 번역은 어떤지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 동안 하도 성화론자들의 공격인 [방종] 개념 때문에
곧 행하는 문제인 거죠 죄를 행하느냐 안행하느냐 즉 죄 짓느냐 죄 안 짓느냐 라고
1절을 중심으로 보아 왔는데
알고 보니
2절을 중심으로 보게 되니
이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롬 6: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1,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새번역)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공동)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롬 6:2, 공동)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쉬운)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는 사람>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쉬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킹흠정)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롬 6:2, 킹흠정)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롬 6:1, 한글킹)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 6:2, 한글킹)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롬 6:1, 현대인)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현대인)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현대어)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침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계속 죄를 저질러야 하겠습니까?
(롬 6:2, 현대어)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살게 해주셨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부서져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산산이 부서진 것입니다.

(롬 6:1, 가톨릭)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은총이 많아지도록 우리가 계속 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롬 6:2, 가톨릭)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죄에서는 이미 죽은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죄 안에 살 수 있겠습니까?


번역들도 죄를 짓느냐 와 죄에 거하느냐를 구분 없이 나열했는데
죄란 짓는 의미가 아니라 행하느냐 안행하느냐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죄 짓는 나, 죄 안 짓는 나 의 문제가 되는 거죠
내 숙제로 보는 거죠 너 하기 나름이다 라는 실용주의인 거죠
자기 숙제를 잘 할려면 방종하지 말아야 겠지요

그게 바로 잘못 본 겁니다
죄를 인간이 다루는게 아니라 죄가 인간을 다루기 때문에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 증표 증상물이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죄 짓느냐 안 짓느냐 라는 개인숙제 방종하냐 안히냐 라는 인간숙제가 아니라
죄가 들어왔기에 그 죄 속에 거하냐 죄 바깥에 거하냐 라는 장소 공간 
다른 몸 개념이 되어버린 겁니다
비로소 죄 바깥의 의미가 죄 속의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들리게 되는 겁니다
마치 백성 아니다 라는 그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고 덮쳐지는 몸 판대기 구조를 말하듯이
또 이사야서에는 부른적 없는 백성에게 부르신바 되었다 라고
남겨둔 한 씨 불 속에 다 태워 죽였는데 다시 살아난 한 씨 덕분에
소돔과 고모라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 남겨둔 한 씨를 다른 몸을 예비하셨다
하나님의 불 심판과 동행하는 한 몸 된 가시떨기 나무로써
죄 속과 죄 바깥이라는 공간을 염두하고서
죄 짓냐 안짓냐가 아닌 죄가 들어온 죄 속이냐
은혜가 들어온 백신주사가 주사바늘이 외부에사
내 몸 속으로 투입되는 은혜가 들어온 죄 바깥이냐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자꾸 개인 행함을 염두하는 종교라는 오락 때문에
자기 즐거움 때문에
자기 죄악을 들추임 당하기 싫어서
그것을 도리어 지옥으로 보고 의사를 죽일려는 건간한 자 의인이 될려는 숙제를 하더라 말이져

아니 자기를 환자 취급하는 의사를 좋아라 할 인간이 없거든요
그래서 한국교회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이 소리를
이 기쁜소리를 거부하는 완악한 유대인 사탄의 회 유대교의 뒤를 따르는
또 천주교와 똑같아 진 겁니다

죄인으로 부르러 온 예수님이라는 다른 몸을 안 쳐다볼려는 완악함
자기가 건강한 자가 되고
자기가 의인이 될려는 자기 숙제를 해야
종교는 돈이 되는 겁니다 돈
돈 버는 짓을 버리고
떡도 안되는 저런 복음을 증거했다가는 굶어죽거든요

즉 죄인은 구원자의 표상이다는 거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겁니다
겉으로는 죄인을 부러온 의사다 라고 성경에 있으니까 거부는 안해도
이미 그 속내는 이 복음을 죽으라고 거부하는
아니 목사놈들 상대해 보니 다 그렇던데
그 놈들 밑에서 배운 놈들은 오죽 더하든지
장로 전도사 집사 심지어 애들까지
모조리 무당들만 다 모여있더라 말이죠
고맙게도 아예 대 놓고서 활동을 해여
천주교 같은 민주당 이 놈들 정의실천사제단과 다를바 없어요
바리새인이지요
거기에 반대하는 딴나라당놈들은 로마독재와 같은
한국기독교 곧 개신교를 대변해 주는 집단같아요
이 놈들은 민주당을 반대하지만
그런 유대인들이 자기 손에 피 뭍히지 않겠다 라고
빌라도에게 떠 맡기는 일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 라고 하면서도
넘어가는 그러니 민주당이나 딴나라당이나
피 빨아먹는 흡혈귀들이기는 매 매찬가지 아닙니까
쫄지마 라고 외치는 털보의 독재나 쥐박이의 독재나 같은데
서로 원수지간처럼 독립운동으로 그 권력의 자리 사로 차지 할려고 발악을 하더라 말이져

털보주변의 인물들이 다 그래요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요
뇌과학자 박박사 또한 위대한 인물들이 이 예수의 복음 때문에
많이 죽었다 라고 찰스다윈 이야기에서 적개심을 품던데
불교인이라는 종교인이기에 당연한 겁니다
자기 숙제 인간 숙제 방해하는 놈들은 신이든 뭐든 다 죽이는 겁니다

그러니 결국 이 말은 죄의 안과 밖 이라는 장소 공간 판대기 구조 몸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런데 저런 놈들은 방종하지 말자 라는 놈들과 똑같이 자꾸 개인 숙제로 몰아가는 겁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놈들을 다 죽이고파 하고요
죄 짓냐 안짓냐가 아니라 죄가 들어오느냐 라는 공간 개념 
곧 죄 속에 거하냐 죄 바깥에 거하냐 라는 장소개념 판대기 개념입니다
죄 바깥은 그럼 따로 있으냐 없어요
은혜 속에 출애굽 하면 애굽만 아니면 다 바깥이냐 아니 없다니깐요
새로 맹글어야 합니다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백신 밖에 없요 죄 바깥은 백신 뿐입니다
그 백신이 다른 판대기 다른 몸 다른 족보
육체의 족보를 따라 나지 않은
하나님께로 난 자 
곧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혈통 유대인도 소용없는
예수님의 피로 난 자의 족보
마치 그리스도의 세계 라고 마태복음 1장 족보에서처럼
세계관 판대기 족보처럼 다른 몸의 족보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 그 세계 안의 족보이냐 그 세계 아닌 바깥의 족보 곧 죄 속의 족보냐 몸이냐 라는

이 안 과 밖의 구분인 겁니다

더더더 불가능 더더더 단절이 된 거죠
방종이라는 행함 곧 여건이 되는 사람과 여건이 안되는 사람에게서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은 간따나 어려운데 불가능한데
이건 더더더 단절입니다 방종 안한다 라고 자신하는 놈도
여기서는 아예 손을 쓸수도 조차 없는
아무리 니가 완벽하게 조건을 갖추었다 치자
딱 하나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예수님 자신이 피 흘려 죽어서 피 발라주지 않는 이상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아예 떠 먹여 줘도 안 먹을라꼬
왜 남의 시선에서는 그것이 죄인이다고 구제 불능인 환자이다고 시인하는 셈이거든요
줘도 안 먹는 완악한 인간인데 그러니 완악한 인간이 방종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겁니다
안 그러는 바리새인이 없지요 바리새인 치고 방종하는 놈 있던가요? 없지

자 이제는 어 그러고 보니 그럴 듯 하게 들리니까
또 아 그러면 은혜를 더하고자 우리 일부러 환자 되고
일부러 죄 짓자 라꼬 또 죄 짓는 인간의 숙제로 역시나 주장하는 놈이 한둘이가 아니지요

이카이 아까전에 그 입 다물던 또 방종하지 말자 라는 놈이 나와서
거봐라 저런 부작용의 놈들이 있으니 저런 놈 막을려면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또 안 굽히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의인 악인 푸른나무 죽은 마른 나무 둘다 불 살라 버리고 둘다 하나님릐 칼이여 칼이여 라고 선지자는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라 검을 주러 불을 지르러 온 겁니다
화염방사기로 둘 다 다 태워버리는 겁니다
하늘에 이미 새이스라엘이 있으니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공중해체 시키는 거죠

그러니 거짓선지자는 안망한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라고 역시나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고 나그네 주제에 나그네를 죽이고
제사장 곧 고아가 제사장을 죽이는 고아가 고아를 죽이는
제 살 깍아 먹기 라는 처참한 지옥이 벌어지는 겁니다
지옥은 딱히 저 우상의 나라인 이방에서 찾아볼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보면 됩니다 지옥백성임을 대 놓고서 자랑질 할 정도 이니까 말이죠

죄가 들어와 버려서 죄 속에 속 이라는 공간에 갇혀 버려서
빠져나올수 없게 되었다 라는 거죠 포로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남도 아닌 다윗이
그것도 400년 만에 그 간격을 좁힌
시온 성을 하나님의 중심인 장소를 차지한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반드시 지을려고 한
그 주의 전을 사모하는 옇심이 주님이라는 진짜 실상을
모형 그림자 성전 짓기 라는 자기숙제 때문에
진짜 성전을 죽이게 되는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나오는 백신 주사인 이 십자가라는 화목제물을
역설적이게도
죄인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원수로 만드신
주님의 꺽으신 덕분에 보게 하신 겁니다
그거 안 볼려고 방종 안할려고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라는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꺽으신 뼈를 자기 숙제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가릴려고 지옥을 가릴려고
죄악을 가릴려고 백날 해도 소용없음을
도리어 이 꺽으신 뼈로 기뻐하면서 씹고 뜯고 먹고 마시는

은혜의 왕 노릇에 기뻐하는 겁니다
은혜가 들어왔어요

그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라는 선물이냐
아니면 여전히 방종하지 말자 라는 행함이냐 라는 전쟁이

솔로몬이냐 아니면 명분을 갖추자 라는 혈통이냐
수치스러운 자식 솔로몬이냐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냐 아니면
순서대로 건강한 자 의의 족보 대로냐 저런 접붙인 족보 되면 안된다 라는
이 아비아달 제사장 파냐
사독 제사장 파냐 라는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다들 아비아달 제사장 파 인거죠
오로지 말씀이 임한 자에게만
저 불륜으로 낳은 솔로몬
씻겨주심을 모르는 저 죄인을 저 환자를 거부하는 겁니다
그 죄인에게서 성전은 의미가 있어요 거룩측량 성전측량이 말이죠

그런데 건강한 자에게서는 이 성전이 의사가 의미가 없어요
다윗의 더러운 죄악을 대신 행동한 행동대장 요압장군 또한
자기 손으로 다윗을 왕으로 모셨듯이
자기 손으로 솔로몬이 아닌 암논 죽고 그리고 그 다음 압살롬 죽고 
이 압살롬 불효자식을 이 방종한 자식을 얼마나 요압삼촌이 죽이고 싶어했냐 말이죠
다윗 하나 지킬려고 말이죠 다윗의 더러운 짓을 자기가 다 대신해서
지켜낸 다윗인데
이제야 드디어 의인 모양 갖추고 건강한 자 껍데기 갖춘 아도니야를 왕을 세울려고 하는데
어랏 솔로몬 저 불륜으로 낳은 자식을 낳겠다 라고?
그럼 또 더러운 짓을 또 대신해야 한다고?

그래서 솔로몬을 통해서 다윗은 저 하나님의 원수 요압을 반드시 죽이라 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시 받은대로 아들 솔로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나라는 둘로 나누어 지는 지옥 맛을
처음자리인 죄인의 자리에서
절대로 인간이 합칠수 없는 두 막대기가 되어
지금 저 이 팔 두 막대기 싸움 아닙니까
의인 된다메? 건강한 자 된 다메?
절대로 합칠 수 없는
정작 주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셔서
두 막대기를 합쳤는데
자기 숙제로는 안 보이니까
약속을 기여이 자기 손으로 지키고자 하니까
지킬려고 하면 할수록 간극이 좁혀지는게 아니라 더 더 더 벌려져서
지금 원수처럼 서로가 서로를 박멸 할때까지 멈추지 않겠노라 라고
참 대단한 의인들 납셨고 대단한 건강한 자 납셨고
대단한 방종 안하는 자 납셨다 말이죠

두 바퀴 벌레들 끼리 서로 박멸할때까지 피 터지게 싸우겠다 라고
그 의문의 반복을 말라꼬 하냐 말이죠
이미 다른 몸
다른 장소에서 다 해결 되었으니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니까

이 원수와 화목케 된 둘이 된 것을 하나가 되게 하신
이 막힌 담을 헐어버린 원수도 사랑한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니까
담벼락을 막힌 담을 더더더 신비롭게 더더더 크고 더 높고 더 넓고 더 길게
자기 영역을 선넘지 말라꼬 경계선을 긋는 겁니다
개 돼지도 아니고 말이죠 오줌 갈겨서 자기 영역 표시를 하는
개 보다 못한 놈들이 더럽기 짝이 없는 유대교요 천주교요 그것을 또 따라하고파 미치는
기독교 이다는 겁니다
방종하지 말자 이걸로 돈 버는 미친놈들이다 말이죠
유교와 기독교를 합친 혼합종교 말이죠
결국 방종하지 말자도 아닙니다 방종하지 말자 카는 놈 치고 방종 안하는 놈이 없어요
결국 유교 즉 도덕 윤리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더더욱 아니고요
오로지 돈입니다 오로지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은 딱 하나입니다 이 우상숭배를 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곧 자아 라는 우상을 다리걸어 넘어뜨리는 겁니다

아니 포로 된 주제에 죄를 짓느냐 마느냐 라는 문제는 소용이 없어요
바이러스 걸린 키보드 주제에 바른 타자를 하느냐 마느냐는 소용이 없어요
외부 바깥에서 백신주사를 투입하느냐 마느냐 라는
예수님의 조치 밖에 없다 라는 거죠

오늘 본문은 그 외부에서 죄 안에 갇혀 버린 자에게
어떻게 백신을 투입하는 문제로 다루고 있는데

웃기게도 은혜를 더할려고 죄를 죄 속에 거하겠느냐?
아니 이미 거하고 있는데 또 거할려고 ? ㅋㅋㅋ

자 그카이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가 계산을 하니까
아 그럼 방종 하지 말아야 겠구나 라고 똑같은 계산 값을 하는 겁니다
판대기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계산기 두드리더라 말이죠
율법 계산기로
율법 외에 한 의의 계산기 새언약의 계산기가 판대기로 장소 몸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헌 술 헌 부대 계산기 두드리고 있고
유통기간 다 지난 그것도 수천년도 지난 약효 다 떨어진
그 백신을 외부도 아닌 억지로 내부에서 짜내에서
바이러스가 백신 흉내내면서 서로 찌르고 있더람 ???이죠

은혜를 더 할려고 죄 속에 계속해서 거하듯이
바이러스를 자기가 해결하겠다 라는 식인 거죠
아니 이미 심판 받았는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심판을 더하느냐
네 심판을 더해요
구원을 더 하는게 아니라
그게 은혜입니다 사탄의 가시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말이죠

내부 문제는 다 선이고 자기 이니까
외부의 문제는 다 악이 되는 겁니다 자아라는 몸 장소를 자꾸 철거 할려고 하니까
그러니 바이러스 제대로 걸린 것을 외부가 투입해야 알지
바이러스 걸림놈이 자기가 바이러스 걸렸음 조차도 모르는
환자 죄인인데 이 처음자리를 발로 차버리니
선택된 자가 그것도 선택된 백성 중에 더더더 선택된
제사장 선지자 너희 어미 이스라엘이
고아 과부 나그네를 죽이는
이 도저히 좁힐수 없는 간극을 더더더더 벌리시는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을 보여주시고자
죄 속에 거하는 죄를 더하고자 율법을 줬는데
율법의 취지를 모르니까
더 고아를 죽이는 자 살인자 결국은 하나님도 죽이는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고 하나님도 잡아먹는
그 입이 지옥인줄 모르는 겁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니 마음이 지옥이다 라는 거죠

내부 문제에서는 답이 없다고 했잖아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자꾸 의를 행할수 있다 라고 바이러스가 좋아라 라고 그래 그래 계속해봐
방종하지 말자 라고 계속 가르치라 라고 하는 겁니다
반작용은 한 풀이 이지 적개심이지 무엇에?
외부의 백신 주사에 대한 적개심이지
십자가에 대한 거리낌이지
도적질 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본인이 도적질하는
그래서 외부에서 선악의 바깥의 은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지
백날 해 봐라 말이죠 육체에서 과연 선한 것이 나오는가?
예수님까지 하나님 까지 죽인 결과를 이미 통보 받아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자꾸 방종하지 말자 라고
사형선고를 취소 할 수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외부에서 선언인데
자기자신은 바이러스 안 걸렸다 라고
사형선고 아직 안 받았다고 보는 겁니다

더더욱 십자가에서 모든 육체는 못 박혔다 라고
이미 선언해 버렸는데
그것은 예수 너 이고 라고 무신론자가 비웃는게 아니라
유대교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 까지 비웃고 있어요
그것은 예수님 생각이구요 저는 아직 사형선고 안 받았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죄 가운데서 죽었다 라는
사도바울의 이 외침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죠
그게 사도바울 본인도 죄 속에 살 때 본인이 십자가를 거부했던 마음인데
왠 은혜인지 말도 안되고 예수님을 죽이고 스데반 집사를 죽인 
죄 속에 살던 자가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죽음으로 나온 피를 발라
믿음을 발라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백신 주사
이 십자가만 알기로 한 백신 주사를 맞음으로 인해
이 외부에서 꺼내어주시는
죄 안에 갇힌 자가 장소가 몸이
죄 바깥의 예수님이라는 몸에 합쳐지는 백신 주사 십자가로 다시 태어난
십자가 주사로 죄 바깥으로 탈출하게 됨을 당하게 되니

비로소 이 소리를 하니까
똑같이 자기가 사도바울 자기가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죽였듯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소리인줄 모르니까
죄 안에 거하는 소리만을 나열한 것만 듣다가

무슨소리인줄 모르는 소리를 더더욱
바울을 외치면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냥 막무가내식으로 증거함에 있어서

우리 자체가 행함이라는 우상으로써
복음이라는 이 생명과 대조를 하시는 겁니다

손이 있어도 발이 있어도 눈이 있어도 못 보는 소경에게 말이죠

그럼 고쳐달라는 백신 곧 의사를 보느냐
말도 안되죠 소경인데 어찌 봅니까

말씀이 소경을 단 번에 말이죠

그러니 이건 설 듯이 아니라
선포요 선포입니다
이 말씀이 살리는 자는 살고
말씀이 죽이는 자는 내어버려두시는 것 뿐입니다
달음발질 함도 아니요 원함도 아닙니다

원함도 아님을 알기에
주여 원하신다면 저를 이 소경을 고쳐주시옵소서
당신을 보기를 원하나이다 ~~

대 놓고서 이렇게
복음과 행함
생명과 죽음
율법의 행함이냐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이냐 를 대조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겁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 말은
상대방을 보고서
조건이 맞아서 하는게 아니라 씨를 그냥 마구 마구 뿌리는
씨가 알아서 그 사람을 구분하지
들을만한 사람인 갑다 싶어서 전하고
에이 안 들을 것 같은 놈이네 라고 귀찮다 라고 해서 안 전하고가 없다 라는 거죠
그래되면 또 행함이니까 말이죠

바울 지가 그랬었었었었으니까 더더욱 더 잘 아는 거죠
본인도 그때 성령이 아니였기에 무슨 소리인줄 못 알아 먹었는데
당연히 거부하는 자들은 더더욱 무슨 소리인줄 못 알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음 자체가 바로 이 차이성으로써 드러내고자
복음의 유익을 위해서 말이죠 자기유익이 아닌
사랑만이 뭐든지 [예]가 되기에 말이죠

역시나 비복음은 여기서도 그저 자기 개인 구원
그 개인 구원이 모여 모여서 집단처럼 모양을 갖추고 경건의 모양을 갖추어도
역시나 개인 구원인 교리 종교 자기숙제로써의 실천 이딴 우상숭배이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뭐 그리 죄 지으면 안된다 라는 식으로
정작 죄 바깥으로 벗어 날수 있는냥 말하면서도 죄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는 소리만을 한다 라는 겁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니깐요
사형선고 받았는데 그리고 사형 받았는데 뭘 또 사형선고 안 받는 행위를 하자?

네 맞아요 은혜를 더 할려고 죄 속에 거하겠느냐 라는 이 말만 해석할 줄 알았지
물론 엉터리로 사실은 해석 틀렸잖아요
그 뒤에 구절이 무슨 소리인줄 다 틀렸던 거죠
이 뒤 구절이 맞아야 앞의 구절이 맞게 되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
혼자?
개인?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누구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느냐 가 사도바울이 말하는 바입니다

사형선고 받았고 이미 사형 받았다
누구와 함께 주와 함께 말이죠
이 외부의 인물의 개입이 없으면
무슨소리인줄 모르니까 또 개인의 숙제
외부에서 올 리가 없잖아요
모조리 내부 숙제 뿐인 겁니다 그게 종교라는 마약 아닙니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그게 지옥 아니냐 말이죠 그 사망의 몸 주제에 사망만 나오지
지옥 죽음만 나오지
믄 놈의 생명을 억지로 짜내어 본들 그 다음 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그 누구 라는 구체적 인물이 안 나오면
또 보편적 자신의 몸 곧 공간 장소 판대기 이지요
그리고 보편적 자기
이 시간 때를 역사를 보편적 시간 아닙니까 역사 가 말이죠 그 역사를 주장하는 겁니다
이것을 종식 시키는 종말이 와야 합니다
주님은 역사를 종식 시키는 묵시를 투입 시키시는 겁니다
여호와의 칼이여 칼이요 불이요 불이여 역사를 불 살라 버려요
그 지옥에서 무슨 놈의 의인 푸른나무
악인 마른나무 죽은 나무
그게 소용이 없어요
주의 길을 예비하고자 첩경을 불도져로 밀어서 평탄케 다리미질로 쭈욱 평평하게 하십니다
높은자든 낮은 자든 주님 앞에서 다 죽어야 하는 겁니다 심판 주의 심판이라는 기능을 드러내기 위해서
의사 수술칼의 기능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암덩어리로 쭈욱 찢어져야 하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냄이냐? 그렇다 말이죠
수술칼이 먼저 있었기에 말이죠 역사 보다 묵시가
태어나기도 전에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으로 갈라놓았다
수술칼로 쭈욱 찢었다 말이죠

종말이 단순히 1999년 이라는 영화 속의 그런 종말이 아니라
그래서는 종식이 안 됩니다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고 하잖아요
바퀴벌레에게 무슨 놈의 누구 라는 구체적 인물이 필요하냐 말이죠

그런 엉터리 해석하는 인간들의 바퀴벌레가 아닌
이런 엉터리 해석하는 인간들로 말미암아
그 허무한 인간 때문에 우는 바퀴벌레로써
주여 어서 심판해 주소서 브로큰 애로우 폭격요청 하늘의 핵미사일을 
이 인간들에게 퍼 부어 주소서 라고 우는 
그 구체적 인물을 부르짖는 바퀴벌레의 백신주사 요청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성전 맞지요 라고 비싼 돌로 정성을 꽉꽉 채운 성전이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랑할때에
과부의 하루살이 전재산의 헌금으로 그 아름다운 성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허물어 버리겠다 라는 진짜 성전 앞에서 그림자를 누락 되어야 함을
과부의 헌금
바퀴벌레의 울음을 통해서 증거하시는 겁니다
그 눈물을 씻겨주는 자의 시간 곧 묵시가 투입이 되었거든요
이 인물 그 구체적인 인물 최종 마지막 인간
마지막 아담 종말의 인간 말이죠

이 구체적 인물이
나의 역사 곧 시간과
나의 몸 곧 공간 장소를 종식 시키는
곧 죄 속에 거하는 이 사망의 몸을 종식 시키는

그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아담은 망해야 하는 자로써
다윗은 망해야 하는 자로써 망가뜨리는 다윗의 자손의 증상물로써
의사의 증상물 환자로써
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겁니다

환자분 어디계십니까?
백신 주사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고쳐주소서
아 네 다윗 환자님 백신주사 맞을 차례 이십니다 라고
따로 시간 
백신 차례
주님의 의사의 시간이 와야
나의 시간이 날라간 상태에서 말이죠
그리고 그 백신은
죄 바깥에 투입이 되지만
사실은 죄 속에서 죄를 빵구멍 뚫어버려서
몸 자체를 바꿉니다
장소를
공간을
몸을
판대기를
다시는 죄가 묻지 않는
그런데 마귀는 자꾸 죄를 들차봅니다
뚜껑 덮었는데
시체를 덮었는데
이미 죄 속에 죽었던 나를 덮어버렸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 새 몸이 되었는데
이 백신을 무력화 시키는 마귀가 맡은 역할로 인해서
자꾸 덮어버린 시체를 다시는 안 보시겠다 라고 흰눈으로 덮었는데
마귀는 자꾸 파재끼면서
진짜 너는 이거다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이래 된다 라고
또 죄에 죽은 우리에게 죄가 왕 노릇 하던 그 옛언약을 자꾸 들이내미는 거죠
안 그러면 마귀는 자기 죄악을 인간에게 뒤짚어 씌울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핵미사일 한방 쏴달라 불주사 백신주사
저 마귀가 소유한 나 라는 영역을
나도 그 경계선이나 긋고 앉아있는 그 막힌 담을 헐고자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짓겠다 라는 그 핵미사일 약속을 쏴달라 라고
한나와 마리아가 폭격요청의 기도를 하는 겁니다

이 백신 주사 한 방 핵미사일 한 방 쏴 달라
한 방에 단번에 잔 탁 십이지장충 뭔 충 뭔 충 
온갖 지옥 벌레가 계시록에서 봤지요 지옥에서 올라온 황충
온갖 벌레를 마귀가 다 심어버렸다 말이죠
그가 한 방에 잔 탁 ~~~~~~~ ㅋㅋㅋㅋ

뭘 해도 너는 환자다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의 시선이 있는데
환자 지가 건강한자를 부르러 왔다는 둥
의인이 되어야 한다 라고 의인을 부르러 왔다는 둥
그러니 방종 하지 말아야 한다는 둥
그거 의사의 시선이 아닙니다
아무리 보편적진리로 속담화 해도
다수화 해도
의사의 시선
종말의 시선이 아니다 말이죠
역사를 불 사를려고도 하지 않을 뿐더라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중간에 길을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는 놈들의 모습입니다
악한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 이다 말이죠
성화론자 치고 얼굴이 천사 아닌 놈들이 없어요
바리새인 치고 천사 아닌 얼굴이 없어요
유독 예수님에게만 마귀의 얼굴 독사의 얼굴로 가면이 벗겨지는 것에
예수님만을 죽이고자 하지
우리를 죽일려고 절대로 안해요 천사이니까 ~~~~~~~ ㅋㅋㅋ

눈먼자의 도시 라는 영화에서 제일 마지막에 비를 내리잖아요
다들 바이러스로 인해 눈이 먼 소경이 되었는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길에서는 답이 없잖아요
그렇게 자기 속의 죄가 다 드러나고 난 뒤에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이 들통난 뒤에

한 방 핵미사일 백신이 비로써 전 지구에 떨어지니까
비로소 눈 뜨지
외부의 비가 안 오는 이상
답이 없어요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는 땜빵용 심리상담일 뿐이지
백신이 아닙니다
방종안해도 방종해도 여전히 죄 속에 거하는 거죠

마치 불뱀에게 물려서 다 죽게 되었는데
약이 필요하지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다고 낫느냐
네 맞아요 약줘도 그 사람 여전히 인자를 못 보는 소경 못 고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완악한 겁니다 예수 그 따위꺼 안 보면 되지
예수만 빼고 다 볼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 죽여버리십니다
예수만 남고 다 죽이시는 이 십자가를 말이죠
이 종말의 최종 인간만 남기시고
인간 아닌 지옥 벌레 황충이는 다 죽이시는
그 종말을 선지자는 미리 앞당기는 겁니다

죄를 죽이는 그래서 그 죄와 함께 죽지 않는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어요
자살해도 소용 없어요
개인 문제가 아니니까
죄의 권세를 한 방에 싹 잔탁이 외부에서 와야 하는 겁니다

그게 은혜의 왕 노릇이다는 겁니다

꼴에 아 그럼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라고 하니까
다들 거부감을 가지는데 있어서

또 머리 굴려 계속 저렇게 사도바울이 당차게 이야기 하니까
어 그럼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으면 은혜가 되겠네 라고
자기 구원을 개인구원을 목적으로 도박을 거는 놈도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그것을 또 집어넣고 개입시킬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칼줄 알고 바울이 미리 차단하듯이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뭘 또 죄 속에 살아사
죄 속에 살려고 하니까 자꾸 개인 구원 개인 구원을 외치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잖아 그 컴퓨터 그 계산기 바이러스 걸렸잖아 라고
바이러스 걸린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겁니다

자꾸 가인의 족보 세계관처럼
낳았더라 낳았더라 생산 순풍 순풍 행함으로 자꾸 도출 되는
그거 말고는 답이 없다고 보는
그러나 답이 된 적도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 의문의 반복만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답이 없는 짓만 
1차 5차 중동전쟁 1000차 1000000000처 중동전쟁을 벌려도 
답이 있는 줄 아십니까 택도 없어요

애들만 잡아먹을 뿐입니다 애들만

아 답이 있넹
둘 다 다 죽이는 불도져 다 밀어버리는 겁니다 공백
빈털터리
사막 사막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그러니 유대인들은 답을 알면서도 거부하고요
헬라인 이방인 곧 팔레스타인은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중간치가 중립지역이 어디있습니까
세계적으로 반유대와 친유대 밖에 없는
인간의 최종모습이라고 저번에 자본주의를 보편화 했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의 저자 막스베버 유대인의 주장처럼 말이죠
인간들이 보편화 한 종말의 인간인데
정작 진짜 종말이라는 인물은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에 대해서 죽이는 제대로 말이죠

그런데 이런 죄도 엉터리로 해석함을 죄애 대해서 심판하시고
죄를 엉터리로 해석하니까 그 죄에 반대되는 의도 엉터리로 해석하시는 의에 대해서 심판
그리고 그들이 심판하고 구분짓기 하는 그 심판도 심판
그들의 종말도 심판하시는

외부의 백신핵주사 바로 모든 육체를 못 박아 죽이는 이 십자가만이
은혜인데
누가 백신을 더 할려고 주사 나 한테 만큼은 더 많이 놓아주세요 라고
주사 두 방 맞는다고 은혜가 오냐? 그 사고방식 자체가
방종하지 말라 라는 사고방식과 똑같이
여전히 죄에 대해서 죽이시는 이 백신주사 십자가를 이 의사를 거부하고
자기가 진단 내려요 글쎄 발 만 씻겨도 되는데 온 몸이 다 더러우니까
온 몸을 다 씻겨달라고 ~
도대체 환자 맞기는 맞나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 맞기는 맞나요 방종하지 말자 라는 님~~~~~

대화 자체가 안되잖아요
바로 그 대화 자체가 안되는 자의 내막까지 오늘 본문에서 다드러내시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성령이라는 종말의 주사 외부에서 투입해서 찌르는 그 주사를 
안 맞았을때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이 복음과 이 은혜와
이 약속의 완성과 대조를 하면서 말이죠

저들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게 되면
앞에서 다룬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그렇다 그래서 심판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가 심판이거든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앞뒤 안맞는 부조리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십자가 라는 불륜 불의 스캔들 말도 안되는 
죄라는 선악의 법을 넘어서버리는 이 부조리가 하나님의 의 이다는 겁니다
이 불의한 의가 이 불의한 십자가 곧 장대 높인 달린 인자가 우리를 낫게 했습니다
이 똥물에 7번 담그는 
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우리를 낫게 했습니다 라고 말이죠

에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이 선해지겠네 라고
하나님을 원망 세 번만 하지 말고 천번 만번 하면 깨끗해지겠네
그 카이 이미 심판 이미 정죄 받은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그 싫어버린바 된 인자되신 예수님을 보겠다는 말입니까
여진히 자기 구원이라는 탐심을 우상숭배하겠다 라는 말입니까?

여전히 주체, 주인공을 자기에게 두지 하나님의 의 라는 심판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의라는 주체에 두지 않으니까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게 되고
곧 창조를 취소하는 창조를 모르니까 말이죠

그리고 반드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뒤짚어 씌워서 절대저주를 뒤짚어 씌워서
빈털터리 하나님의 원수 곧 바짝 메마른 뼈 사망의 몸 인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의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말이 안되는 원인 없는 결과인데
말이 되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니까 자꾸 의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사실상 가르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원수사랑 입니까
가정부요 노동의 댓가 믿어준 보상을 바라는 종교라는 음녀이지
국가라는 짐승이 양성하는 음녀이거든요

지금 두 음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잖아요
우크라이나는 지금 관심사가 자기들에게서 벗어나 이팔로 넘어가버린 것에
제발 우리 좀 쳐다봐 달라고 합니다
미얀마 사태처럼 되어버린 거죠

그러니 인간에게서는 답이 없기에
답 비스무리 한 것으로 속여야 하는데 그것이 보편적진리인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남들이 도와주기 전에 자주국방이 탑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저런 사도바울의 거짓말
모세의 거짓말 오죽하면 애굽왕이 야들아 저 말을 믿냐?
사막 사막 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속에 들어가면 죽어요
왜 죽으러 가느냐
종교란 마약이란다
여기에서 너희들 종교 대우해 주마
제발 죽으러 가지 말아라 라고 모세를 거짓말로 취급했다 말이죠
즉 이 말은 히브리 잡족들도 거짓말임을 끊임없이
광야 속에서 속았는거 아니냐 라고 늘 모세를 죽일려고 시도했듯이 말이죠

사도바울은 그카이 너희들은 이미 정죄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끝까지 행함의 문제로 인간 숙제로 보는 그 사고방식을 말이죠
그 선악 나에게 유익이 되냐 나에게 손해가 되느냐 라는
사랑이 없으니 가정부 의식 노예의식 뿐인 겁니다
자유하는 하늘의 어머니 라는 모태 처음자리를 자기 스스로 발로 차 버리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음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이제 컷으니 내 나라는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자주 신앙 자주 국방을 추구하는
선악 또는 양심 또는 율법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죄 아래 가두는 것도 모르고
율법을 지켜서 정죄 하는 정죄한다는 말은 불안하다는 것이거든요
자기를 지키고자 정죄하지 않으면 자기 몸이 날라가 버려요 자기 몸 자기 역사 말이죠
남을 7번 용서를 하는데 46년 걸렸다 말이죠 베드로가 말이죠 ㅋㅋㅋ
성전을 짓는데  46년 동안 걸렸다 말이죠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ㅋㅋㅋ

분명 은혜의 문제 곧 믿음의 문제인데
졸지에 행함의 문제 율법으로 말미암은 행위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무도 의롭게 못하는 그 행함 말이죠

물론 믿음 조차도 물론 그들은 행함으로 보는 겁니다
선물인데 누가 선물을 숙제로 봅니까
선물을 숙제로 보게 되면
내부의 문제가 되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게 되는 거죠
즉 선물이 아닌 겁니다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어요 즉 언약은 약속은 인간에게서
다른 말로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은 선악이라는 법만 따지는 겁니다
사랑도 몇 번 했는데 라고 계산하는 7번 사랑했다 라고 라는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만 나올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믿지 말아라 말이죠 예수님만 또 죽일려고 할 뿐입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해서 주어진 선물인데
의인은 없는데 자꾸 자기 의를 쌓아서
육의 자랑을 꾀하더라 말이죠
그렇게 되면 또 경계선을 긋고 나의 영역 너의 영역 넘어오지 말라 라고 
자기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공간으로 담벼락 막힌 담을 헐고 있는데
도리어 높이 세우고 있더라 말이죠
저 매국노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이죠
그게 하나님이 아닌 우상인 거죠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니까 말이죠

바로 이 공간 개념이 죄에 거한다 라는 거한다 장소 개념으로써
죄가 들어온다 와 연결된 입장에서
공간 장소 몸을 다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연합 이라는 한 몸 개념이 역시나 오늘 본문에 나오지요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6, 개역)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 3:7, 개역)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개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개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개역)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개역)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개역)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6,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연합된 몸
그의 죽으심과 합한 몸
세례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가 된 몸

자 이렇게 장소 공간 몸 네 맞아요 에스겔 성전 개념의 성전기능인 거죠
의사 기능
구원자의 기능 인자의 기능
그러니 율법과 선지자는 폐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마 5:17, 개역)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22:40, 개역)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눅 16:16, 개역)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24:44, 개역)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행 13:15, 개역)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28:23, 개역)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행 28:23, 한글킹) 그 후 그들이 그와 날을 정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오니,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써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시키더라.


그래서 인간의 숙제로는 믿음이든 행함이든 둘다 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둘다 다 말이죠

왕이 와야 합니다 유대인의 왕 말이죠

이 두 강령을 완성하는 자 말입니다

(마 22:40, 개역)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는 율법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선지자를
우리는 둘 다 죽일 수 밖에 없는
사망의 몸이다 라는 거죠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였고
우리는 이웃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을 선지자 라는 이웃 곧 나그네를 죽였다 말이죠
차라리 이웃사랑실천을 안했으면 죽이지도 않았을텐데 (물론 안한다 라는 것도 행함이니까
믿음의 차원과는 그렇게 되면 상관이 없게 되죠 내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 라고 상관이 되시도록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서 막힌 담을 허무시는 참성전을 삼일 만에 짓는 겁니다
이것이 다 이루시는 성전을 완공하시는 자 곧 유대인의 왕입니다 
유대인들은 절대로 허용못할 왕으로써 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는 도시야 라고
선지자의 죽음의 노선에 예수님 자신의 죽음도 함께
연합이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몸 장소 공간

우리는 뭘 해도 예수님을 선지자를 죽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바로 그것이 걸어다니는 인자 라는 새성전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나를 사망의 몸으로 규정짓고 심판하시고 다시 싸매시는 겁니다
죄가 들어오듯 이제는 은혜가 들어오는 겁니다
이 은혜 문제를 행함으로써 죄를 다루듯이 다룰려고 하니까
은혜를 더할려고 죄를 더 짓겠느냐 라고 짓는다 로 우리는 보는 거죠
그래서 방종개념이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수하고 경계선 긋기로 구분짓기용으로 사용되는 거죠
너 사마리아 방종하는 인간들 넘어오지마 나도 너희 구역 안 넘어갈게 라고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처럼 성벽을 세우는 거죠 무슨 놈의 감옥이냐 말이죠
이 두 감옥끼리 서로 지 잘났다고 싸우는 가운데 애들만 죽어나가는 겁니다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는 거죠 언제까지 이 의문의 반복만을 주구장창 할 껍니까?
답도 없는데 ~~~~~~~~)
바로 그것이 걸어다니는 인자 라는 새성전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우리의 죄악을 인자라는 신체 몸 박스 공간 장소 에 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죄 짓는다 가 아니라 거한다 라고 장소 몸 또는 여기에다가 더 이중반복적인 의미로써
공명되듯이 짝꿍 되듯이
[~~~ 안에] 라고 누구 누구 안에 라는 의미로써 더 강조가 되어버리면
이건 뭐 권세 문제이지
행함 문제가 아닌 겁니다

주체 주인의 권리 주권 곧 왕 노릇이라는 표현이 앞에서 나왔듯이 말이죠

자 그러니 방종으로 1절을 규정지어 놓고 봐 버리니까
밑의 구절들이

은혜 안에 라는 누구 라는 인물과의 한 몸 연합이 중요해지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교회를 더 중요시 하자 라는 졸지에 교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불교인거죠 불교란 교리 플러스 실천인 겁니다
종교인 겁니다
종교는 음녀입니다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기 하는 거죠
자기 쪽에서 신랑을 사랑하겠다 라는 식입니다
그러니 돈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사랑에 무슨 놈의 돈이 필요하냐 말이죠

도리어 힘을 빼는 약하게 만드시는데 말이죠

아니 죄 아래 갇혀서 포로된 자가
신랑을 찾아나선다?

그게 희년이겠습니까? 복음이겠습니까?
그건 또 하나의 노동의 댓가를 바라는 가정부인 거죠
사랑 따위는 필요가 없는 믿어준 댓가
말씀을 지켜준 댓가 내 놔라 라고 멱살 잡고 겁박하는 깡패짓인 겁니다

이게 한국교회가 돈내고 복 받자 라는 야바위꾼 강도의 소굴이 된 이유입니다
유대교도 마찬가지였구요
인간은 안 됩니다 다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이웃사랑실천하는 놈 치고 사기꾼 아닌 놈이 없어요
노인들 대상으로 하는 사기꾼들이 처음에는 얼마나 효자 효도의 달인들로써
외로운 노인들의 말 벗이 되어주잖아요 아들같이 딸같이 말이죠
어느정도 되었다 싶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기를 치는 거죠
물건 팔고 벗겨먹을 수 있으면 모든 것 다 동원해서라도 말이죠

그래서 지난 주에 제사장을 낮에 죽여라
선지자는 밤에 죽여라
이스라엘 너희 어미 너희 처음자리를 다 죽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고아라는 기업이 없는 제사장 주제에 고아가 고아를 잡아죽이고 말이죠
제사장이 제사장을 죽이듯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고 나그네가 나그네를 죽이고
과부가 과부를 죽이는

이 사망의 몸의 실상을 낯낯이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그렇게 다 들추어서
심판하시고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듯이
반드시 창녀 너 고멜에게 창녀인 이스라엘에게 장가들겠다 라고
의인 이스라엘이 아닌
창녀 죄인 환자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장가 들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왜 그러시냐 말이죠

성전의 기능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정직한 영이 없어요
중심이 없습니다

이 중심의 기능을 하시겠다 라고
그래서 반드시 내 너의 피 신랑이 되고
너의 전 남편 바알의 이름을 너의 입에서 반드시 제거하겠다 라고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하시면서

처음사랑으로 먼저 떳기에
우리는 그 증상물로써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로써

이 율법의 정신인 약자보호법 (고아에게 기업이 되시는 고엘)
이웃환대법 (나그네에게 임금이 되어서 섬기시는 왕으로 오심)
그리고 시형제결혼법 (과부에게 남편 없는 과부에게 남편이 되시는)
이 율법의 완성으로써 반드시 오시겠다 이것이 복음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은혜 라는 것은 행하는 문제가 아닌
방종처럼 말이죠 죄 짓니 마니가 아닌

거하는 장소로써 들어오는 겁니다

안에 밖에 라는 장소개념으로써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은혜가 왕 노릇으로써 일방적으로 내 안에 쳐들어 와버리게 되면

이제 나의 운명은 이 은혜의 운명과 같아지는
한 몸이 되는 연합이 되더다 말이죠

인간에게서는 두 몸이 하나가 되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것을 두 몸으로 여전히 간극을 두자 라는 식이 행함입니다

그러나 둘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버리면
행함이 날라가 버리고
같은 운명 같은 몸이 되기에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에 함께 사는

이거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행함에게서는 나올수가 없는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이라는 선물로써 주어지는
장소 몸 공간개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장소로 이야기 함에 있어서
장소도 장소인데 여기있다 저기 있다가 아닌
장소이긴 장소인데 비밀의 장소처럼
무슨소리인줄 모르는 장소
즉 행함이 끼여들 틈을 안 주는 장소
곧 너희 가운데 천국이 있다 라고 해 버리니까

이건 뭐 같은 한 운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되는

오히려 단절 차단의 의미가 더 강해져 버리더라 말이죠
그 가운데서 선물로 은혜가 외부에서 덮쳐지고
믿음이 선물로써 외부에거 덮쳐지는 자에게서는
이 눈물 슬픔 잿더미 심판을 거쳐서 나온
대신 희락을 대신 감사를 대신 찬송의 옷이 덮쳐지니까
사랑 안하고는 못 배기는

인간의 행함이나 인간의 행함으로써 믿음 따위는 항상 타인의 욕망을 따른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인데

사랑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더라 말이죠

베드로야 이 여인은 보자마자 더러운 발에 뽀뽀하고
비싼 향유로 자기머리카락에 적셔서 씻기고
내 낭군이시군요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껴안듯이
해를 품은 달처럼 말이죠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아무리 창녀일지라도 창녀마리아를 껴안는데

너 베드로는 장모를 고쳐줘도
물에 빠진놈 건져줘도
단 한번이라도 이 여인처럼 했더냐?

왜? 물위를 걸었을때에 남들 보라꼬 남의 눈을 의식해서
믿음질 자랑질했지
믿음짓을 자랑할려고 할 뿐이지 사랑할려고 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너 베드로도 똑같이 창녀 만들어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으로써 오시겠다 라고
비로소 죄인이 되고
창녀가 되니까

의사를 기뻐 껴안고
구원자를 사랑해서 뽀뽀하더라 라는 겁니다

네 암요 암요 암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꼐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결국 인간의 믿음이라는 신앙생활 조차도 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겁니다

마치 예루살렘 힌놈의 골짜기 부활의 마을이라고 하는
그 동네에 살아도
늘 부활 되기를 바라면서

나사로 일부러 죽이시고 일부러 또 3일 뒤에 늦게 가니까

동네사람들이 부활의 동네이기는커녕
시기와 질투의 소돔과 고모라 지옥의 마을 처엄
 
아이고 사랑했다메? 사랑했다 했으면서 이렇게 늦게 오냐 라고
행동 하나 하나를 꼬투리 잡고자 눈 시퍼렇게 심판할려고
죽일려고 달려들더라 말이죠 심판주에게 말이죠

얼마나 웃깁니까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불에게 불을 막 던져요 
심판의 홍수 노아홍수 심판에게 물대포를 막 쏘아대고요

심판주의 여호와의 칼 되신 분에게
인간들의 칼을 막 날려요
죽음을 막 날려요

사망을 막 날려요

사망아 누구를 쏘려느냐?

사망과 생명의 주에게 말이죠

이런 우리의 내막까지 낱낱이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성전의 기능과 무관한 자가 되는 겁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어요

누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 식인종 맞습니다 라고 먹겠느냐 말이죠
다들 그 정도까지는 죄인이 아니다 라고 선을 긋죠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고 선지자를 죽이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라고

베드로는 도리어 끝까지 따라 가겠습니다 장지지겠습니다 함께 죽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자꾸 의인 될려고 건강한 자 될려고 하지마
그거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거야
그거 가정부이고 노동의 댓가를 바라는 거죠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거야

너를 반드시 나를 세 번 부인하는 죄인 만들어서
창녀 만들어서
너의 전남편 바알 우상
우상의 사고방식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장지지겠다는 둥 함께 십자가에 달리겠다는 둥
그거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온 의인 되겟다 정의실천하겠다 건강한 자 되겠다 경건의 모양을 갖추겠다 그거 반드시 제거해서 그 우상을 제거해서
나 너를 반드시 창녀 죄인 환자 만들어서
이 피에 맞는
이 새성전의 두 기능 장소와 때, 몸과 역사(시간) 반드시 불도져로 밀어서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때로 채워서 한 몸을 이루는
이 성전의 기능을 너에게 펼치겠다

이 성전의 기능을 주시는 분이시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안 받는다 받는 분 아니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주시는 것이 돈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돈 돈 돈 뿐이지만 그 정도로 우상숭배자이지만
반드시 그 전남편 바알을 제거해서
반드시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사는

이 화목제물의 피를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로 만들어버리시겠다 라고 
너는 나의 헵시바야 쁄라야
나는 너를 천국으로 삼아서 너를 반드시 함락 침략 침노하고야 말겠다 라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차지하듯이
함께 죽고 함께 사는
함꼐 동행하는 한 몸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하이라이트인데
다들 겁주는 종말의 공포가 되어버리니까
돈 바치고 영혼 바치고 다 속아넘어가는 거죠

우리가 지금 에스겔 호세아 하고 있잖아요
구약의 요한계시록인 셈입니다

이거 사랑의 최절정입니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결혼에 이 한 몸 됨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외부나
내부나 
즉 우리 자신에게서 말이죠
전남편 바알을 제거하시듯이 우상을 다 제거하시듯이

모조리 다 그 방해되는 요소를 심판하시고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구원을 결혼식을 딴 따 따 단 하시지

마귀 보란 듯이 배 아파 죽으라꼬 말이죠
그냥 하는 법이 없어요

이 사랑의 최고의 선물인 결혼식을 우리는 자꾸 음녀처럼 자기가 사랑할려고
신랑찾기를 할려고 하니까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사랑하겠다 끝까지 따라 가겠다 라는 것이
도리어 나 저 사람 알지 못한다 알면 장지지겠다
그 놈의 장은 저기서도 여기서도 두 쪽에서 다 지지는
결국은 10번 이상 해 버릴 수밖에 없어서
지질 장도 없게 되는 그 한계에 부딧히게 만들어서

이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사랑만이 승리하는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는 은혜인데
이 행함이라는 선악의 법으로 자꾸 해석하는 버릇 때문에
방종하지 말자가 오늘의 내용이 아니다 말이죠

방종 하지 말자 라는 말은 곧 세 번 부인하지 말자 가 되는거 아닙니까

아니 그러면 너는 세 번 부인 하자 라는 말이가
라꼬 또 꼴깝게 듣는다 말이죠
자꾸 인간 숙제로 돌려야
삥을 뜯거든요 돈을 내거든요
가정부 만드기 수법이라는 말입니다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래서 이미 죄 아래서 죽었다 라는 겁니다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율법을 성경말씀을 대상물로 삼아서 행하고 규치 지키고 실천하지가 아니라

율법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말씀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죄에 대해서 죽이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죽었는데 그 속에서 살수 있겠냐 말이죠

자 그러니 이것을 자꾸 믿는척 하니까
율법 지키는 척 하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니까

그 남도 조져야 하는 율법 지킨 자신이 남들을 정죄하고 돌아다니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지키는 놈들 끼리 끼리 유유상종 모여서 사마리아 아예 못 넘어오도록 선긋고
지들끼리는 남 용서 몇 번 했니 라고 서로 저울질 하는데

율법을 가지고 말이죠

율법 앞에서 얼마나 장난질 하고 얼마나 강도짓을 하는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 라는 비유에서
제사장 레위인들이

사실상 강도 만난자 그리고 지나가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인물로 나오지
정작 강도가 없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그 강도가 누구다? 제사장 레위인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놈들이다 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완전 정반대
그것도 철천지 원수 사마리아인이 이웃으로 나온다?
비유 듣고 깨닫고 고침을 받으라고 하시는 소리입니까
아니면 절대로 못듣도록 단절로써 차단으로써
혹시나 고침을 받을까봐 싶어서
철천지 원수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써 말씀하십니까?

비유 내용이 귀에 들어오기는커녕
입에 거품을 물고 뭐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증거한다고?
그 자체가 예수 저거 안 죽이고는 못 견디겠다 로 만드시는 겁니다

아니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미사일로 아이들을 죽였는데
그들을 이웃으로 원수를 사랑하라 로 비유를 증거하면
이스라엘 그 악마들이 가만히 있겠냐 말이죠 부글부글 끓겠지
두 악마들이 서로 서로 누가 부모잡아먹고 누가 더 자식잡아먹느냐
그것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말이죠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저들의 신들은 다 악마예요 알라든 여호와든 다 악마라니깐요
창조를 취소 시키는 창조

아무리 임금삼고자 해도 도망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 라고 하시는 분이
진짜 하나님이시다 말이죠

제발 좀 내 땅 좀 그만 밟아라
제발 좀 오지 말아라
내 마당만 밟는다
너희는 나에게 자꾸 보일려고 오는 눈도장만 찍어서 
열 번 찍으면 한 번 공짜를 바라는 그 심뽀로 온다 라고

그래서 선지자는 이웃은 나그네는 자꾸
내 손에 죽을려고 자꾸 속을 빡 빡 긁어대는 겁니다

난 절대로 살인 안 할 거야
난 절대로 원망 안할 거야
나는 절대로 나그네를 쫓아내지 않을 거야 라고 하지만
반드시 내 손에 죽어서

정직한 영이 없음을 고발 당하도록
내 손에 죽은 선지자로부터 고발당하도록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치는 그 놈이 바로 너 다
라고 외치는 이웃으로써 나그네로써 이런 이웃을 도저히 영접못하는
쫓아낼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들어서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선지자로부터 고발당해서
반드시 울게 만드는
49일 지나도 때려죽어도 안 우는 자에게
50일째 되는 날에 (날짜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 역사 내 시간을 날려버리겠다는 의미로써의 종말 
즉 주님의 시간이 졸지체 쳐들어옴으로써 내 역사 시간은 날라가버리는
일곱 절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오순절) 나팔절 대속제일 장막절(초막절)
성령이 부어지니까 갑자기 어찌할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라고 우는
반드시 우는 자 만들고야 상한심령 만들고야 말겟다 라고
매국노 세리가 가슴을 치면서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뭘해도 죄인인 심판받아 마땅한 사망의 몸임을 알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우는
그런 창녀 죄인 환자 만들고야 마는
선지자로 이웃으로 오시겟다 라고)

그 피 위에 세워지는 새성전으로써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성전 기능
정직한 영의 기능
중심의 기능
인자의 기능으로써

이 은혜가 이 믿음이 왕노릇함을 말하고자
대조가 되는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을껀가 가 아닌? 죄 속에 거할껀가?
더 넓은 의미에서의 공간 장소 몸 개념으로써 권세 사망권세 왕노릇을 대조해서

그 차이로써 은혜의 왕노릇을 증거하는데
엉뚱하게 방종하지 말자가 되어버리니까
이건 계속해서 도리어 죄 속에서 살자 계속 거하자 계속 이 의문의 반복인
행함문제로 내 숙제로써 두자 라는 식이 되어버리니까

뒤의 의미들이 다 날라가 버리는 거죠
대조가 되는게 아니라 같은 동질성으로써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역시나 우상이나 하나님이나
재물이나 하나님을 두 주인을 섬기자 라는
그 놈의 눈에 보이는 교회들의 한결같은 결론 돈 내고 복 받자 라는
그 음녀짓을 유대인들을 보고서도 또 똑같이 따라하는 강도의 소굴이더라 말이죠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니 함께 죽지도 않는데 어떻게 함께 다시 살수가 있냐 말이죠

되찾는다 라는 의미는 잃어버림의 의미가 있어야 되찾음이 의미가 있는데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말이죠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니까
거 봐라 행해야 한다 라고 나오잖아 라고 또 반박해요 글쎄

바로 그런 의식이 법 지키기라는 선악에서 입니까 곧 남의 시선을 의식함 입니까
아니면 사랑해서 입니까

가정부 월급 받기 입니까
아니면 아내의 피신랑 사랑 입니까 아니 이런 허물도 다 덮어주시나요?

천사가 죄인을 흠모합니까?
가정부를 흠모합니까?

천사는 가정부를 흠모할 턱이 없어요 자기도 다 할 줄 아는데요 뭘
천사는 죄인을 흉내조차도 할 수가 없어요

찢겨졌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을 당하는 일으 흉내조차도 말이죠

자신들이 맡은 기능 자체가 틀리는데요 뭘

신부의 기능을 할 수가 없어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피신랑의 피 흘리심의 대상물이 될 수가 없다 말이죠
결혼 상대자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피신랑이 좋아라 미쳐서 스토커처럼 자기 목숨 버려가면서
지옥에서 건진 자는 피신부 뿐이거든요

신부 자체로는 피신부가 아닙니다 피신부가 될 수가 없어요
제가 사실은 잘 못 표현한 것인데 독자적으로 피신부가 될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같은 운명이라고 해서 피신랑의 동질성으로써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피신랑 혼자 다 했지
아무리 신부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해서 피신부가 되는게 아니라

아 참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제가 잘못 표현했네요

피신랑의 피로 사신 교회라는 의미에서 피교회 피신부라는 의미인데
말을 줄이는 식으로 말이죠

신부 자기 피로 사는 교회도 아닙니다
왜 이것을 집고 넘어가야 하느냐 하면 방종개념이 나온 의미 조차도 이래서 그렇거든요
항상 눈에 보이는 나 중심을 먼저 우선시 하다 보니
보이는 내가 다니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의식하고 눈치보고 말이죠
자기가 투사 시킨 가짜 예수를 눈치보듯이 말이죠
그런 목사 장로들 뿐이라서 맨날 싸우다 보니

진짜 복음은 내 숙제 아예 없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소식이냐 말이죠
그러니 정확하게
피 신랑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인 거죠
예수님의 숙제 뿐이였다 곧 피 흘리신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은 예수님 뿐이셨다
여기에 왜 자꾸 목사 장로들이 끼여들어서 자꾸 숙제를 하라고 강요하는지 원

예수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어넣지 마세요
만약 넣는다 라는 것은 남의 시선을 또 의식하는구나 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냥 예수님이 아닌
반드시 내 죄를 캐내어서 아무리 의인이라고 우겨도 반드시 캐내어서
없던 죄도 만들어서 캐내어서 그 죄 값으로 피 흘려 죽는
내 죄를 대신 해서 죽으시는 그 죽음으로 합하러 오신 한 몸이지

그러니 얼마나 싫어버린 바 되겠습니까? 그것도 나에게 말이죠

그 정도로 남의 시선 따위는 끼여들지 못하게 하시는 사랑이요 징계이거든요

그런데 자꾸 가짜 예수를 내가 조작해서 투사시켜서
(이게 개혁주의이고 이게 성화론자 아닙니까)
흠모할 모양 많고, 아름다운 풍채에 이게 늘 남의 시선 의식인 거죠
귀히 여김 받지 않는 것을 누가 바라겠냐 말이죠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진 자 만이
이 십자가가 영광으로써 바라는 겁니다 귀히 귀히 여기심을 받는 거죠
누가 이 비유를 비밀을 듣고자 보고자 하겠냐 말이죠 다들 고개돌리는 판국인데 말이죠
그러니 우상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우리 숙제에서는 없는 겁니다
매일 매일 용서를 부어주심 만이 다 이루심 인거죠
곧 손수 직접 마련하신 이 화목제물 첫맹세로만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울리는 꽹과리는 타인의 욕망을 타인이 부러워 하는 것들을
역시나 똑같이 투사 시켜서
결국은 복 달라 결국은 돈 달라 라는 소리인거죠 (존재의 함성입니다 나 살아있는데 안주면 우짜노? 뭐 살았다고? 너 이미 죽었는데 ~~~
사 딸라 사달라 김두한 4 딸라 ~~~~~~~ 4 달러 돈 달라 돈 달라 ~~~~)

그러니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죽지 않는 이상

이미 죽었는데 또 그 죽음 속에 거하면서 살아야 하는 그 마침이 없는 거죠
죽었는데 안 죽엇다 라고 우기고 있으니 말이죠

이것을 참나 말로 표현할려고 하니 뭐 우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이죠
소위 모태 신앙이라는 둥 하는 자에게는 아예 안 통하고요

전혀 무신앙이였다가 주님을 만난 자는
처음사랑때를 기억해서는 대화가 통하는데
그 사이에 목사들에게 세뇌가 되었는지
결국은 행함 이야기를 안 하면
또 자꾸 무슨 소리인줄 못 알아먹더라 말이죠

그러니 교회에서 오히려 대화가 되는 사람이 없어요 없어

다 탈탈탈 털려서 빈털터리가 되니까 조끔 대화가 될까 말까
바로 또 목사에게 세뇌 당해 버리니까
바로 행함으로 또
늘 목사 눈치, 주변인 눈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저들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말이죠
이게 갇혔다 라고 장소 개념으로써 죄를 거한다 라고 표현한 겁니다
장소로 몸으로 공간으로 세계로 판대기 구조로
새번역은 죄 가운데 라고 가운데를 장소도 되지만
누구와 합쳐졌느냐 죄와 한 몸이냐
그리스도의 죽음과 한 몸이냐 라고 ~~ 관계성을

그러니 우리 앞에서 호세아에서
그래 그래 많이 많이 딴남자랑 놀아나라 이 창녀 이스라엘아
그러나 나 여호와 반드시 너에게 새장가 가고야 말겠다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곧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며 
죽음과 한 몸 된 너 창녀 이스라엘아
그 죽음 보다 강한 너의 본래 남편 왔다
그리고 그 죽음을 시기하고 투기하는 사랑이란다 라고
죽음 보다 강하니 그 죽음을 뚫어버리고자 죽으러 왔단다
그러니 더 이상 죽기를 무서워 사망의 왕노릇에
종노릇 아내노릇 할 필요가 없는
이미 죄 가운데 죽었다 말이죠
죄가 사망이라는 전남편이 죽었는데
없는 사망을 신랑으로 삼아서 살겠다고?
이미 죽었는데 너의 전남편 죽음은 죽었는데?

죽음이 뭐 있어야 죽음 가운데 사냐 말이죠
네 맞아요 광야 속으로 들어가는 출애굽 사건이 기억나지요
그래 그래 많이 원망해봐라 
사망이 이 죽음의 사막 가운데서 아무리 너를 죽일려고 달려들어도
사망과 함께 죽었으니 어찌 죽음 가운데 사냐
이제 너는 창녀 이스라엘 너는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로만 살도록 되어 있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동행의 수갑
사랑의 밧줄로 단단히 묵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저들
늘 목사 눈치, 주변인 눈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저들이 아무리 가만히 두질 않는다 해도

자유하는 꼴을 막사는 꼴을 못 본다 해도
그러니 방종자 라고 손가락질을 해서 이 사망에게 눈치 보도록 만든다 해도
그런 의식을 아무리 심는다 해도

사망아 누굴 쏘느냐?
주님이 언제 나타났는지 다 대신 맞더라 말이죠
우리는 바로 그 공로만을 바라본다 라는 취지에서
지금 사도바울은 아주 당당하게

이 은혜를 저 행함의 법칙과 대조해서 증거함으로써
은혜라는 예수님의 죽음과 합한자로써 증거하는 겁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라고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로써
이것 보다 영광이 없다 라고
아니 내 같은 사망의 몸에

하나님의 의인 절대심판과 절대용서인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시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그 앞에서 그 입 다물라
너무나 숭고하여서
숭고 곧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숨이 멎을 정도로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라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몸이라는 공간 장소에서 나타내시는
그 창조를 펼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 자체가 저들 성화론자 뭐 방종 운운하는 자들과 틀리는 겁니다

방종한다고 새언약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사랑의 용서가 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방종 안한다 라고 해서 새언약이 되는 것도 아닌

이미 전체적인 구조 판대기 자첵가 통체로 완료된 채로써
지금 통보만 할 뿐입니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 가운데 속에 거하겠다 라는 것도
행함의 발로 견딜수가 없어서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뭐라도 채울려고 발악하는 모습이고
그것을 또 반대한다고 해서 저절로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이 믿음과 합하는 몸인가 아닌가
합한다 라고 해서 또 자기 숙제로 여기면 이거 또한 음녀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겠다 라고 나서는
해 봤짜 유대인과 다를바 없는
바벨론 큰 꼬추만을 우상으로 삼는
왜? 나는 망하면 안되니까 내 아들 고아 되면 안되고
내 남편 나그네 백수 되면 안되고
나 아내는 과부가 되면 안되는
그러다 보니
고아가 고아를 죽이고 제사장이 제사장을 죽이고
나그네가 나그네를 죽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죽이는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는
과부가 과부를 핍박하는
왜? 율법 지키기 위해서
제사장이 율법 지키기 위해서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쳐 가듯이
성경은 너무나 차갑게도
예수님은 너무나 차갑게도
강도는 정작 출연인물로 빠져있는데
누가 이웃이냐 라는 동시에
누가 강도냐 라고
강도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이웃도 밝혀지지 않는
사탄의 깊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깊이인 사랑
하나님의 의도 안 나타난다 라고
도리어 누가 봐도 철천지 원수인
저 사마리아
저 팔레스타인이 선한 이웃이라고
아니 원수인데?????

200명 인질로 삼아서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죽인 자들인데?

누가 저들을 죄 속으로 몰아넣었냐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로 안 보이는
이 하나님의 의가 덮쳐지지 않은 이상
십자가의 죽음인 이 피 흘리심의 십자가의 사랑이 덮쳐지지 않는 이상

이 팔 서로 지 잘났다고 지가 옳다 라고 나서는
그 의문의 반복인
원수 갚기에서 벗어날길이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개인 구원을 이미 염두해 두고서 봐버리면
그 개인 구원이 바로 원수 갚기이거든요
너 보다는 내가 무조건 잘 되어야 해 라고

언니 사마리아를 앗수르 큰 꼬추 사모한다 라고 온갖 욕에 온갖 저주를 다 해놓고서는
지는 동생 예루살렘은 더 큰 꼬추 바벨론을 우상숭배라고 자기 신랑으로 맞이하는

이 원수 갚기
여자의 원수는 여자 아닙니까 그게 영화 밀양에서 나오잖아요 전도연
용서 라는 그 여자만의 기능을 왜 하나님 니가 뭔데
내가 용서해야 하는데 니가 뭔데 먼저 하느냐 라꼬 ~~~~~~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김추자 거짓말이야 ~~~~~~~~~

사랑도 거짓말 ~~~~~~~

이게 모든 인간의 행위요 모든 행함이 바로 원수 갚기
너 하나님 가만히 안 두겠다 라고
약사 장로 타락시키겠다 라고 나서는 겁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겠다 라는데 왜 방해 하냐 라고

방종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놈이 더더더 방종을 대 놓고서
원수 갚기 이게 인간의 믿음인 행함인 겁니다

그래서 그거 깨뜨리시겠다 라고 나서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네 맞아요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사도들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사도들이기에

이 예수님의 죽음만이 원수 갚기 라는 그 의문의 반복의 고리를 끊어내지
그 허상 그 허구 그 그림자를 실상으로 내 행함으로 나타내겠다 해 본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이냐 말이죠
마귀 밖에 더 있냐 말이죠

자살도 일종의 원수 갚기입니다
아무리 나를 타락시켜도 나는 내가 알아서 내가 썩은 부분만 오려내듯이
마귀에게 속았던 그 부분만 짤라 내겠다 라고
끝까지 정의를 실현하겠다 이 선악을 발산한다는 자체가
원수 갚기이고 
하나님은 날 버려도 나는 너를 안 버린다 라는 식으로
자기 의를 추구할 뿐이지

정작 그따위 유치찬란한 조작된 신 조작된 정의와 상관이 없이 펼쳐지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으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그 정도로 나는 사망의 몸이군요 라고 우는자로 만드시는
이 정직한 영을 부어주소서 라는 새마음이 새영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오지 않으면

헌 마음 헌 부대 헌 술로 승부를 걸겠다 라고
헛짓
칼로 물 배기
말라꼬 하냐 말이죠 허구인데
안개를 왜 잡을려고 하냐 말이죠
신기루를 왜 잡아서 뭐하게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거 안개인데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사람의 구원이요
인생 허무 그 자체인 허상인데
뜬구름 잡아서 누구한데 과시할려고
도로 욕만 먹는 줄로 모르고
누워서 침 뱉는 짓만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즉 행함은
다 차단 시키는 겁니다
일체 개입 못하도록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4절은

누가 선한 사마리아 이웃처럼
강도 만난 나에게
바이러스 걸린 나에게
다가와서
제사장도 지나가고 목사처럼 말이죠
레위인도 지나가고 더럽거든요

그런데 내가 더럽다 라고 사마리아 이 개같은 이방인
우상숭배자 라고 침뱉어 쫓아낸 자가

강도 만난 나를 치료해 줄때에

외부에서 백신 주사를 놓아줄때에
3-4절은 그야말로 외부의 작용이다 라는 겁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하는
의사 팔레스타인 의사가 자기 피를 뽑아서 수혈할 때에

그의 죽음과 그의 다시 살아남과 합해지는 몸 공간 장소의 투입 천국의 침략만이

죄와 함께 죽는 이 종말을 고하고
주님의 종말과 한 몸이 되어서
그의 몸인 장소인 곳에서만 사는

에스겔 새성전의 5대 제사 기능과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고자
처참하기 찢고 찢는

그 찢은 몸을 다시 싸매어 주시는

때 주의 때와 합하는 일곱절기를 통해서
나의 때로 나의 시간으로 격었던 그 경험치를 훌훌훌 탈탈 버리고
예수님의 시간으로 안식의 주인으로 꽉꽉 채움으로써

비로소 안식이라는 창조

인간의 안식일 지키는 것을 박살내고 취소시키지 않는 이상
텅텅 빈털터리
절기를 지킨 것이 도리어 안식일의 주인을 죽인
그 허구 그 우상을 깨뜨리는
이 안식의 주인의 침략으로 인해 내 시간 내 안식일 지킨 마일리지 도장 찍은
그 허구의 카드 찢어지지 않는 이상

주님의 시간과 합해 질수가 없는
종말 마침이 되는 완성이 되는 이 새마음을 모르도록 하시는 겁니다

제가 신약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어 그 자체가 하나 있는데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달음박질 함도 아니요 라는 의미입니다

원하는 자 깨뜨리는 복음 이다는 겁니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 가운데 거하리요 살리요 그거 깨뜨리는
그렇다고 반작용으로 한풀이로 원수갚기로 너 보다는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으로
거봐 거봐 방종하면 안된다 아이가 도 복음은 무참하게 짖밟아 깨뜨리고

달음박질 함도 아니요 이게 방종 안 하기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바로 이 화목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밀어붙이신다 라는 이 첫맹세 대로만
첫사랑 대로만 밀어붙이심으로 인해서

거 보세요

기생라합이 간담이 40년 동안 녹았잖아요
기생인 주제에 국가의 민족의 신 민족의 종교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외부에서 생판 모르는 그 신의 이름만 듣고도 벌벌벌 떨어 간담이 녹아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자기 민족의 신 자기 민족의 종교를
냅따 여호와 라는 그 이름 앞에서 다 팔아버리는 겁니다

허락도 안 받고 자기 땅도 아닌데 이 나라 땅 다 가지고 가이소 라고
심판해 달라고

이 심판의 주를 만난 것이 창조주의 이름을 부른 적 없던 자에게 부르신바 되도록 말이죠

그래서 거짓말로 자기 민족을 죽이러 온 심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을
거짓말로 숨겨주는

이 행함이 있는 믿음
곧 부정적인 행함입니다
그냥 행함이 아닙니다
그건 비밀 비유가 될 수가 없어요

비유 비밀이란 풀수가 없도록
앞 뒤가 모순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말인데 구원이다? 말이 되냐 말이죠

똑같이 기생라합이 구약에 있었다면 신약에는
십자가에 달린 한 쪽 강도가
아니 글쎄 이 죽음의 권세를 심판하시고자
죽음 속으로 뛰어든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당신의 나라에

저의 나라 모조리 다 팔아버리겠습니다 라고
이 사망의 몸도 팔아버리겠습니다 책임져 주세요 라고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아무리 사형수이고 아무리 미친 정신병자 사이코패스 라도
야 이 두 미친 놈들아 정신 차려라 라고 하는 겁니다

앞 뒤가 모순이 되기에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날 괴롭히는 엘리야 또 너냐

아이고 좀 제발 좀 죽어라 왜 죽지도 않고 또 왔냐

신약에서는 이 기생라합의 고백이 바로 한 쪽 강도였다 라는 겁니다

나라 장소 천국 장소 개념이 덮쳐지지 않는 이상

죄 문제를 개인이 짓냐 안짓냐 라는 되도않는 빵께이 소꿉놀이 종교오락 장난질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결국 성화론자들이 이 소꿉놀이를 종교오락을 가르치는 이유는
설마 소꿉놀이가 목적이겠습니까? 아니지요

나 목사의 구원
돈 달라 라는 소리 인 겁니다

그러나 복음은 금과 은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오로지 주 나사렛 예수 이름 뿐입니다

이 나사렛 이단 예수 이름 때문에
사도바울은 비로소 외치는 겁니다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 겁니다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왜? 제대로 부정한 입술로써 죽었기에

다시 싸매어 주심이 있었기에

이 앞 뒤 모순된 비유 비밀로써의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외칠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외치고 있는 겁니다

부정한 입술을 제거함을 받고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고

이 새 것 이 그리스도의 죽음만 외치기 위해서
이 앞뒤 모순된 비밀인
그루터기만을 남기고자

심판의 불을 지르러 막 돌아다니는 겁니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11,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 6:12, 개역)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불을 지르러 왔다 라고

그리고 모조리 다 태워서
오로지 그루터기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때 몸 장소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한 새로워진 몸 새로워진 때를
이 땅에서 펼치고자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하듯이
사도바울은
이 주의 나라를 이 땅에 퍼붓고 있는 겁니다

이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자 만이
남도록 말이죠

이 동행하는 중심을 세상의 중심을 
하나님의 집인 온 유대와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유대로부터 공중해체 시키고
그 다음 사마리아와 이방나라 구석 구석 주님의 피가 안 증거되는 곳이 없도록
땅끝까지 
죽음끝까지

사망의 권세 사망이 왕 노릇하는 그 구석 구석까지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십자가의 깃발을 박아버리는 겁니다 푯대의 깃발을 꽂는 겁니다
우리 마음 구석 구석 끝까지 이 십자가라는 다이나마이트로 폭발 시키고자 말이죠

나의 몸 나의 시간
인간의 몸 인간의 역사가 공중해체 되는 그 자리에

예수님의 몸 예수님의 시간을 꽉 꽉 채우시고자 말이죠

화목제물로 첫맹세대로 붙도져로 평탄케 다리미질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찾을래야 찾을 수 없도록 말이죠
흰 눈과 같이 희게 ~~~~~~~~~~~~~~~~

나와 변론하자
토론하자 따져보자 배틀토론 하자

죄를 흰 눈으로 
먹보다 더 검은 죄를
붉은 피로 다 덮어버리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저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주시고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 밖에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 밖에는
제대로 심판 당했으니 제대로 그 입 다물라 라는 입다물게 하시는
중심을 정직한 영이 없어어 우는 자에게
값없이 정직한 영 새영 그리스도의 마음
종말의 영을 부어주시니
황공무지로소이다

토론하자굽쇼? 아닙니다
저에게 묻지 마소서 당신의 그 깊은 뜻을
저 따위가 뭘 안다고 대화에 끼어들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의미이다 말이죠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당신의 거룩한 영광 앞에서
더럽기 짝이 없는 지옥의 몸 사망의 몸으로 드러났는데
내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해 주시는
죄를 사하시다니요
그것도 당신의 피를 흘려서

의사의 피를 뽑아서
환자인 나를 수혈해 주시다니요
내가 뭐라꼬


그러니 어찌 아니 기쁠수 있겠느냐 말이죠 기뻐하기 싫어도
기뻐하심을 입게 당해버렸으니 말이죠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래서 다 이루어진 이 거룩한 한 씨만을 남기고 다 제거하는
이 심판을 증거하는 기쁨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인 선지자
지상의 왕들의 모가지를 댕칼 댕캉 날리는
이미 하늘의 이스라엘이 다 세워졌다 라고
눈에 보이는 왕을 왕 취급도 하지 않는 냥

임금 없는 나그네 같이

심판의 10가지 재앙 같이 선지자는
개구리재앙 태양재앙 장자의 죽음 재앙
애굽강을 피바다로 만드는 재앙 등등 처럼 말이죠

바울은 지금 친절하게 쉽게 알려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앞 뒤 모순되는 비유 비밀로써
더더욱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모순은 생각지도 않으면서
도저히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말이죠
도리어 우리의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더더욱 모순으로 몰아가버리는
그렇다고 반박 할수도 없고
(정 그러면 이 지옥의 세 구덩이 넘어서보시던가?
왜 다윗의 자손에게 다윗은 주여 라고 했는지 답해보시던가?
행함의 차원이 아닌 믿음의 문제 곧 믿음의 달인들인 유대인의 문제가 아닌
인간 몸의 문제가 아닌 예수님의 몸 문제인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믿음 문제를 지금 바울은 외치는 겁니다
고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한 몸이기에
이것이 유일한 죄 안에서 죄 바깥의 말도 안되는 생명인 겁니다
어떻게 당신의 나라에 기억해 달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이 세상 밖으로 못 나가는 안에 갇혀버렸는데
밖에 나가면 죽어요 글쎄
사망인 자에게는 사망 바깥이 죽음입니다
물 속의 물고기가 물 바깥의 세계가 곧 죽음이듯이
몸이 그래요 몸이
인간의 선악의 신체는 이 사망의 세계가 딱 맞아요
그런데 당신의 나라? 그것은 죽고자 하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겁니다
인간의 천국은 자기 지금 신체를 여전히 그대로 천국에 까지 잇고자 하는
연속성의 천국이지
다른 몸이 아닌 겁니다 여전히 안이지 전혀 다른 바깥이 아니다 말이죠
그러니 이 땅의 세계에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이상
버린다 라고 해서 버렺지도 않는 바이러스인데 그 증상물의 몸인데 우찌
숙주가 된 몸을 버리겠냐 말이죠 그저 그 몸 그대로 천국으로 옮기고자 하는
그 망상 그 조작된 천국을 깨뜨리는 몸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는 몸으로써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한 자로써 모든 육체를 신나게 이사야는 사도바울은 못 박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맞물리도록
우리의 죄악과 복음이 한 세트가 되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몸을 소개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그 영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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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7 피 흘림(살인,사망,죽음) 뿐인 지옥된 세상과 수치를 당함 (겔 22,13-16)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부모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해쳐 피 흘린 예루살렘의 죄악을 국문하라 (겔 22, 1-12)
에스겔 2019 2023. 10. 20. 18:01
21-066 부모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해쳐 피 흘린 예루살렘의 죄악을 국문하라 (겔 22, 1-12)

〈에스겔 22,13-16, 구약성경 1183쪽, 찬송가 373장 새 503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찬송가 155장 새 165 주님께 영광〉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찬 373)
주의 사랑 비췰 때에
(찬  414)
예수 부활했으니(찬 154)
주님께 영광(찬 155)
즐겁도다 이 날(찬 157장)

〈찬송가 373장 새 503 세상 모두 사랑 없어〉  

1. 세상 모두 사랑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만들고 모든 소망 채우는 
   사랑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위해 저희들 오래 참고 있었네

2.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받기 원하네
   어떤 이는 고통과 근심 걱정 많으니 
   사랑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하도다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없는 까닭에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3. 어떤 사람 우상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앞에 사랑 요구하도다
   먼저 믿는 사람들 예수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예수사랑 가지고 예수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4.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 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
   저희 소리 들을 때 가서 도와줍시다 
   만민중에 나가서 예수사랑 전하세
   예수사랑 전하세 예수사랑 전하세 
   만민중에 나가서 예수사랑 전하세


〈에스겔 22,13-16, 구약성경 1183쪽〉  

(겔 22:13, 개역) 너의 불의를 행하여 이를 얻은 일과 네 가운데 피 흘린 일을 인하여 내가 손뼉을 쳤나니
(겔 22:14, 개역)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
(겔 22:15, 개역) 내가 너를 열국 중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서 멸하리라
(겔 22:16, 개역) 네가 자기 까닭으로 열국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찬송가 155장 새 165 주님께 영광〉  

1.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 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2. 부활의 주님 나타나시사 
   두려움과 의심 물리 치셨네
   주의 교회 기뻐 찬송하여라 
   다시 사신 주님 죽음 이겼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3. 생명의 임금 영광의 주님 
   주님 없는 삶은 헛될 뿐이라
   주의 사랑으로 세상이기고 
   요단 건너 본향 가게 합소서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겔 22:13, 새번역) 네가 착취한 불의한 이익과 네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 때문에, 내가 분노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벼르고 있다.
(겔 22:14, 새번역) 내가 너를 해치우는 날에, 너의 심장이 배겨 나겠느냐? 네 두 손에 계속 힘이 있겠느냐?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루겠다.
(겔 22:15, 새번역) 내가 너의 주민을 이방 사람들 속에 흩으며, 여러 나라로 흩뿌려서, 네게서 더러운 것을 소멸시키겠다.
(겔 22:16, 새번역) 너는 이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번의 내용이 이스라엘이 왜 망하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지옥 곧 살인 뿐인 세상에 긷혔음을
다른 민족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반드시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곧 심판의 주가 누구신가를 말이죠

이것이 제사장 나라 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스라엘을 보여주고자 백성을 인도하는 제사장이 
도리어 고아를 등쳐먹고 
그런 제사장을 왕이 새로 인도해야 하듯이 해야 하는 선지자가
도리어 나그네를 등쳐먹고
이것을 다시 여자의 족보 죽었더라의 족보에서 난 왕이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인 여자가
도리어 땅의 계집종 하갈이 되어서 
진짜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를 죽일려고 하는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을
가짜 하나님의 자녀가 자녀라고 우시면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죽일려고 하듯이

이 죄악을 다 들추임을 당하고서
곧 약속의 개입으로 말이죠
죽었더라 족보 속에 놓여져서
죄 아래에 가두어서 
곧 시온에서 나온 율법으로 뜨인돌로써
자아의 우상성을 다리걸어 넘어뜨림 당함으로써 말이죠

말만 제사장 나라가 아니라
먼저 매 맞는 나라로써
지옥의 실상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 꼬라지가 지금 현재 이스라엘도 고아를 등쳐먹고 나그네를 죽이고
과부를 죽였듯이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아닙니다 도리어 소돔과 고모라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 땅임을
성령을 통해서만 고백함으로써
그 눈물을 씻겨주시는
이 인애와 자비를 바라도록 되어 있는 것이 제사장 나라 인데
더러움을 수치를 눈물을 거룩으로 옮기고 수치를 가려주심을 당하고 눈물을 씻겨주심인
이 인애와 자비를 먼저 매 맞으면서 징계 받음으로써 사생아가 아님을
자녀임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데

자기가 자기 스스로 제사장 나라가 될려고 하니까
도리어 고아 죽이고 나그네 죽이고 과부를 죽이는

그래서 제사장은 낮에 죽임 당하고
선지자는 밤에 죽임을 당하고
너희 어미 이스라엘은 멸망 당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제사장 나라는커녕 악마의 나라
지옥의 나라
사망의 몸의 나라임을 
제사장 나라가 될려고 하면 할수록
주의 전을 사모할려고 하면 할수록
주님을 삼키는 주님을 죽이는
하나님의 원수 나라임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누가 자신이 악마의 나라 독사의 자식임을 알겠습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성령을 선물로 받지 않는 이상
절대로 회개를 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눈물을 흘릴수 없기에
눈물을 씻겨주시는 인애와 자비도 없는 겁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닌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긍휼히 여기실 자를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호 2:23, 개역)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심판의 자리에서 말이죠 처음자리에서 말이죠
지옥의 백성 자리에서 말이죠

제사장 나라 자리에서는 도리어 긍휼이 없었던 겁니다

먼저 된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 먼저 되는
선줄로 생각하지 말라 넘어질까 두려워 하라 라고 말이죠


결국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유는 여호와가 누구신지 몰랐던 겁니다
창조를 취소하는 창조를
이스라엘 선택을 취소하는 선택을 거부하고 몰랐던 겁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에 곧 심판에 복종치 않아서 망하는 겁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 곧 저주에 복종치 않아서 말이죠

그러니 지난 번의

부모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해쳐 피 흘린 예루살렘의 죄악을 국문하라 (겔 22, 1-12)

이 너희 어미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건 호세아 지지난 주 말씀이지요

3주 전 에스겔 오늘본문 앞내용과 지지난 주 호세아 말씀에서

너희 어미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는 결국 딱 하나입니다

여호와가 누구신지 모른다 라는 말은 곧 다른 남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우상숭배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숭배하는 이유와 똑같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자들도 똑같은 이유로 돈에 미쳐있습니다
예수님에 미쳐있는 자는 없어요

이사야 사칠 팔 오랜만에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나는 주모 곧 공주가 되리라 왕비도 아니죠 공주 ㅋㅋㅋㅋ 나이 60 넘어도 영원한 공주
절대로 과부 안되리라
절대로 내 자식 고아 안 만들리라 고아 될 바에 동반자살하겠다 라는 식이지요
그리고 내 남편은 절대로 나그네 안되리라

자 이런 모습은 결국 고아 과부 나그네를 죽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바벨론이 이미 내어버려둠을 당한 사생아의 모습인데
사생아 주제에 무슨 놈의 아버지도 없이 자녀가 된 모습을 갖출수 있겠느냐 말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잔칫집을 갖추면 갖출수록 지옥으로 만들 것 아니겠습니까

다 남의 것 빼앗아서 하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죠

애굽을 에덴 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시선을
오로지 지옥으로 보고 있는 자는 여호와 뿐입니다

그러니 그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안다 라는 것은
에덴 동산 천국 같은 저 애굽을 저 잔칫집을 지옥으로 보는 시선을 가진다는 것인데

아니 다들 아무리 봐도 천국인데
잔칫집인데 누가 지옥으로 보겠냐 말이죠

그 잔칫집 애굽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예를 양산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쟁을 통해서 노예를 전리품을 확보하는 거다 말이죠
초기의 왕 제도 체제가 이런 판국이다 말이죠

그런 왕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르었으며
얼마나 많은 노예를 사로잡아 와야 하는 겁니까

물론 인디언 부족처럼 부족 시대에서 족장 체제에서도 있었어도
그 경계선은 견고하지 않아요
담벼락 막힌담이 약합니다 늘 수시로 무너질수가 있는 거죠
서로 피곤하다 말이죠
그런데 왕족 체제가 된다는 말은 그 경계선
그 담벼락이 견고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마치 텐트 치고 접었다 폈다 라는 시대에서
이제 건물 성전으로 바뀌는 식처럼 말이죠

떠돌이 나그네 유목민체제에서
정착민 농경민 그래서 기하학 농지 토지 땅 분쟁이 자꾸 벌어질 수밖에 없는
부동산 문제가 발생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더더욱 내 구역 너 구역 경계선을 긋는 것이 곧 생존이 되어버린
그게 지옥인 거죠 지옥
자기 스스로 선을 옭아매는
자유하는 것이 없는 거죠

그러니 머리 둘 곳이 없는 겁니다
아니 공중의 나는 새가 경계선 긋고 날라 다닙니까?

여우가 아무리 굴이 있어도 영원한 부동산이던가요?

그런데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옭아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주님의 방식이
광야에서 사랑을 나누겠다 라는 겁니다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개유 고치고자 유도하다

광야에서는 아무리 경계선을 그어도 모래 바람 한번 휙 하면 다 사라집니다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큰 글씨를 적어도 파도 한 번 치면
지우개로 지우듯 다 지워버리니까 말이죠
아무리 예쁜글씨든 나쁜 악필이든 어떤 선 긋기도 다 없애버리는
이 자유를 주님은 주시겠다 라고 말이죠

어린아이 처음자리로 만들겠다
그 다음날에 아이는 다 잊어버리듯이 말이죠
칼로 물 베기 백날 짤라고 물은 아무리 날썬 검도 짜를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이미 덩어리가 아닌 이미 다 짤려진 상태인 것처럼
물렁 물렁 젤리 이다는 겁니다 딱딱하면 딱딱할수록 더더욱 부서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다른 민족을 몰라도
이 이스라엘 만큼은 이 세상이 왜 지옥인가를
보여주심에 있어서
이 지옥의 몸 이 사망의 몸에서
부르짖는 자 만들기 위해서

잘개 잘개 부서진 물처럼 말랑 말랑한 물처럼 만들기 위해서
이것이 도리어 수치를 가려주심이다는 거죠
거지 나사로는 수치를 가려주심이 있었지만
부자는 너무나도 딱딱해서 가려줄수가 없는
지옥의 딱딱한 덩어리 세 개가 그를 가로막는 담벼락으로
높이 넓게 크고 길게 시온산에 세워진 산당처럼
신비롭게 자리잡고 있으니 아무리 불도져로 밀어주지 않는 겁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핍박하는 하나님의 원수 만들어서
우리아 장군을 죽이는 사망의 몸을 만들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자기 스스로 무화과나뭇잎으로 가릴려는 개수작을
정작 율법은 도리어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내가 저런 이 율법의 완성을 거부하고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를 죽일 수밖에 없는
왜? 나는 잔칙집 천국집을 유지해야 하니까
그게 바로 주를 삼키는 짓임을

그것을 까발리시는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죄인으로써
의사의 표상으로 환자인 다윗을 만들기 위한
율법의 취지를 거꾸로
맹 애굽왕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가 누군지 몰라서
경계선을 긋고
자기 믿음의 영역을 긋고 앉아있으니
그 경계선을 그 막힌담을 허물어 버리시고자
꺽으신 뼈 외에는 절대로 기쁨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다윗을 왕 자리에서 쭐꾸덕 미끄러뜨려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
지옥의 몸 사망의 몸 이라는 처음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꺽으신 뼈가 곧 화목제물 이라는 첫맹세 대로만 밀어붙이시는
이 약속을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는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마땅히 죽여할 자임을 모르니까
이 화목제물 곧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약속을 인자를 안 쳐다보는
내 살과 피를 먹으라 라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인 겁니다

그러니 정치로 인구조사해서 여론조사해서
자꾸 사람을 꾀는 짓만 하는 겁니다

그런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 다윗(모든 인간의 대표성이니 우리죠)을 박살낼려면
꺽으신 뼈가 이미 창세전에 주어진 겁니다
다윗이 태어나기도 전에 말이죠

이 창조
다윗 창조를 취소하고자 투입이 되는 약속으로써
이름 없는 임마누엘 아기가 아니면
꺽으신 뼈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 아니면
다윗은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는 겁니다

그저 텐트 접었다 폈다 이동하는 그 텐트보다
부동산 궁궐 속에 하나님을 가두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 다윗의 손에 피가 가득한데 무슨 수로 말이죠

주님은 그 다윗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아니 계시고
반드래 다윗에게 자기자신을 성전으로 주시는 겁니다
걸어다니는 성전

자 문제는 이제 다윗이 이 걸어다니는 성전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 라는 겁니다
창조를 취소하는 창조주 곧 심판의 주
이 심판의 불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습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겁니다

성전이란 다윗과 함께 사는 동행의 장소이거든요
평생 영원히 여호와의 불과 함께 살아야 해요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닌
그건 도리어 함께 사는 한 몸으로써의 동행이 아니라
요놈 잡았다 라고 주의 전을 사모함으로써 주님을 죽이고서
자기 혼자 살고자 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성전을 하나님을 죽이는 올무로 사용하는 겁니다
교회 종사자 들이 그래서 위험한 겁니다
독사의 자식들인 거죠

도리어 반대로 하십니다
다윗 자체를 하나님괴 함께 사는 한 몸 동행하는 성전으로 삼고자
다윗을 성전 삼으시는 겁니다 다윗 자체
그것이 다윗 가문입니다
다윗의 자손이 먼저 있었고 그 다윗 자손이라는 약속에 의해서
다윗은 태어난 겁니다 꺽으신 뼈로 기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제물 됨으로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듯이 말이죠

문제는 또 여기서 가문이라고 하니까 족보 말이죠
죽었더라 죽었더라 족보에서
또 낳았더라 낳았더라 라는 가인과 라멕의 찬양을 부르는 자들이 있으니
또 분절 또 갈라지는 겁니다

혈통으로난 육정으로 나지 않고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즉 이미 창세전에 다윗 자손이라는 오실자
이미 오실분이라는 미래적으로 표현했는데
미래에 오시는 분의 표상이 다윗이라는 현재 또는 과거의 인물이 되니

결국 다윗은 그림자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실상은 저 분입니다 라는 소리를 하는 그것도 광야에서 말이죠
경계선이 없는 곳에서 말이죠

그런데 다들 왕궁에서 궁궐에서 잔칫집에서
경계선이 무진장 쳐져있는 38선에서 저분입니다 외치면
이건 뭐 막힌 담을 허시는 분이 아니라
삼팔선을 도리어 억수로 높은 담벼락 더더욱 막힌 담을 세우게 되는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악마집단인 사탄의 회 이다는 거죠
교회 오고 싶으면 돈내라 돈 인 겁니다

그래서 과부의 헌금을 통해서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일 큰 교회 제일 비싼 돌로 세워진
너무 너무 아름다운 교회를 자랑하고 싶어서 들떠 있는데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통해서 하루살이의 전재산 헌금을 통해서
그 작고 작은 하루 일당 말이죠 그 작은 금액을 통해서
이 아름답다 라고 자랑하고픈 그 교회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도록 다 무너뜨리겠다 라고

성전은 우는 곳이다 말이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 여호와의 불에 의해서 타 죽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원수로만 보이니 말이죠

그 앞에서 울리는 꽹과리
십일조 했구여
이레에 두 번 철야기도 했구요
이웃사랑실천했구요
교회 충성 봉사 했구요
대구 이슬람 반대 시위 운동 
동성애반대운동
환경지킴이 운동

얼마나 꽹과리가 요란한지 ~~~~~~~~~

동성애 반대 운동 하면 뭐합니까
가버나움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예루살렘처럼
맹 소돔과 고모라 이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9명의 유대인 문둥병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는
그 곳에는 나를 인정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말이죠
그동안 결핍되었던 즐거움을 채우고자 예루살렘 종교오락교회로 되돌아 갑니다
그러나 단 한명의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죄악을 덮어주는 사랑 앞에서
무릎 꿇는 겁니다 제대로 된 심판의 주를
사망의 몸에서 지옥의 몸에서 그 수치를 가려주신
그 인물과 비로소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겁니다

저들은 또 자기 숙제 홀로 숙제 그 혼자 숙제를 도와달라는 점쟁이를 찾아 간거죠
주술이란 이 죄의 소원을 자기 숙제로 해결해 달라고 
저주 안 받게 해 달라고 추도예배가듯이 말이죠
그래서 9명의 유대인 문둥병 고침받은 자는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겁니다

지옥의 몸을 아무리 고쳐줘도 또 지옥으로 그 즐거움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이란 즐거움 때문에 삽니다 가장 우선사가 되는 것은 자기의 즐거움입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이 종교입니다 종교 보다 최고의 오락이 없어요
하나님과 같이 되는 오락 말이죠 홀로의 숙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것을 확대하는 것이 정치 온천하 만국 줄테니 내게 무릎 꿇어라 ~~~

즉 내 몸 자체가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 라는 거죠
선한 좋은 것 즐거운 것은 취하고 
악하고 나쁜 것을 버릴려는 몸이다는 거죠
그러니 상대적으로 나쁜 것이 들추어지면 그때부터 지옥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나
이스라엘이 고아 과부 나그네를 죽이는 이유가
나는 지옥을 당하면 안된다 라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은 아벨의 피를 받고 하늘에 호소 고소합니다
땅은 늘 인간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늘 수시로 인간을 죽일려고 달려듭니다
그 지옥이 올라오는 것을 인간들은 늘 억누르고자
스멀 스멀 올라는 죽음을 늘 가리기에 바쁩니다
마치 약속의 땅이 척박한 땅으로 변하게 되니
활과 화살이 아니면
총이 아니면 살수 없는 하루 하루가 되는 겁니다
미래 공상과학 영화에서 지구종말 후에 살아남은 자들이
하나 같이 총과 칼을 쥐어야만 하루 하루를 연명하더라 말이죠
그게 무슨 놈의 살아있는 겁니다 이미 죽은 거죠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죽은 거죠
그러니 지금 미국을 보세요 총 없이는 못 살잖아요
세계 1위의 나라가 곧 지옥임을 제대로 보여주잖아요

그 지옥과 손 잡는 나라냐 아니냐로 이 세상은 돌아가는 겁니다
지난 주 친유대 반유대냐로 세계가 갈리듯이
친미(친유대)냐 반미냐로 세계가 갈리는 겁니다
무식하게 중국이 여기에 끼어들어 세계를 친중 반중으로 가르겠다고 끼어드는데
돈이 있다고 짐승 위에 올라탈 수가 있느냐 말이죠
수천년의 유대인역사에 그 전세계에 흩어진 이민자역사에 비하면 신흥종교에 불과한 겁니다
(미국을 지옥으로 보고 있는 책 공정하다는 착각 곧 능력주의의 폭력성 
자유경쟁체제 라는 자유자본주의
돈에 미친 지옥이라는 거죠
헬조선 https://youtu.be/xJf1aNwkvKQ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주장인데
그렇다고 이들 역시나 중심도 없는 정의를 내세워 의문의 반복을 하기에는 맹 마찬가지
똑같은 놈이다 말이죠 양쪽다 다 양발차기 하는 불도져로 밀어버리는
사탄의 가시로써의 고레스와 같은 메시야
또는 하나님의 종 나의 종 느부갓네살 바벨론 왕으로
돈을 사모해서 돈에 쫄딱 망하는 지옥을 봐야
사망의 몸인 것을 알게 될 것 아니냐 말이죠
이 세상이 지옥임을 말이죠
이것이 사랑의 폭력성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의 시기와 질투라는
모든 것을 다 태우는 의인이든 악인이든 불살라 버리는 여호와의 불 이다 말이죠)

그 카이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옳으냐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으냐
왜? 세금을 내야 보호받잖아요

그 올무에 어딜 지옥의 원리를 주님에게 적용하고자 하느냐 말이죠
죽은 자는 죽은자에게 맡기고 산 자는 산자에게 맡겨야 될 것 아니냐 말이죠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주님이 그래서 지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생기게 되면 바로 그 원흉인 예수님을 하나님을 죽을려고 하고
결국 반드시 성공하고야 마는 겁니다 자기가 지옥임을
제 발등에 도끼 찍은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새언약이라는 올무에 걸려드는 겁니다
다 이루신 거죠
이제 즐거움 따위는 없어요 심판 밖에 지옥 밖에 없습니다
지옥의 하나님 만이 나의 구세주 이십니다

딱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가 무릎 꿇어 경배하는
제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내 죄를 나의 지옥의 몸을 사망의 몸을 제대로 심판하신
심판 주가 여기 계신데 ~~~~~~~~

다른 9명의 유대인 문둥병자는 또 종교오락 하러 예루살렘 교회로 가는 겁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결국 주를 삼키는 오락이기에

인간의 즐거움 중에서 가장 기쁜 즐거움이 바로 하나님 죽이기입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
나도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릴 줄 아니까
너 좀 꺼져주세요 예수여 좀 꺼져주세요

이것이 인간의 최고의 선 최고의 오락 즐거움이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죽일때에 다들 하하 호호 했습니다
기뻐 죽어요 아주 아주 신났어요
얼마나 즐거운지 하하하 손뼉치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이게 지옥입니다 이번에 초딩을 개패듯이 팻는데
옆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좋아라 죽습니다

아니 왜 성경은 가인과 아벨의 살인사건을 원초적인 사건으로 잡았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낳았더라 낳았더라 족보와 즉 라멕의 찬양과
죽었더라 죽었더라 라는 약속의 개입으로 죽음을 보지않고 올라간 하나님과 동행한 족보를 언급했을까

분명히 미성년 촉법소년인데 말이죠
성경 말씀은 모든 인간의 기대치를 비켜갑니다 단 하나도 동의가 되는 것 없는
단절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악하다 라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악에서 태어난다 라는 겁니다
마틴 루터가 인간은 악마의 배설물이다 라고 했듯이 말이죠

그래서 이 적나라한 인간의 내면을 다 들추어내는
하나님을 죽이는 최고의 기쁨 하하 호호 하면서

(막 15:29, 개역)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막 15:30, 개역)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막 15:31, 개역)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막 15:32, 개역)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하나님의 중심을 정직한 영을 정의를 욕하더라 말이죠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이런 부류들 
촘스키 이런 부류들 또한 정의를 욕하기는 맹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좌파들 말이죠 이놈들도 지옥의 자식이기는 매 마찬가지이니
쥐박이든 어준이든 다 불태우시는 겁니다 모조리 다 복수심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지젝이 사랑의 폭력성을 저들은 모른다 
사탄의 가시의 폭력성을 모른다 라고 
자기가 하는 말을 좌파 촘스키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라고 ㅋㅋㅋㅋ
좌파든 우파든 둘다 불 태워 죽이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중도파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선이든 악이든 둘다 죽이시는데 제 3의 영역은 없어요
세상이 지옥임을 둘추어내시는데 있어서 자꾸 천국으로 만들려고 하니
그 천국 고아 과부 나그네를 죽여서 유지할려는 천국인데 말이죠

시편 아삽의 시처럼 저들이 지옥임을 화목제물 속에 들어가서 
진짜 절대죽음 속에 들어가보니 
비로소 아는 겁니다 아삽 본인도 지옥임을 말이죠 하나님의 원수임을 말이죠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족보 속의 동행 함께하시는 불을 보는 겁니다
다들 다른 하나님의 불로 호작질만 했던 거죠
그리고 그게 바로 자신들이 동경하는 바벨론 왕 바알신이였을 똑똑히 보라꼬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 지 말이죠
그 애굽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니까 말이죠
참성전 예수 안에 주님의 죽음 속에 곧 믿음이라는 선물 속에 말이죠 한 몸
그래서 제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여호와가 누군지 몰라서 망하지 말라꼬
선지자를 보내서 이미 하늘에 자유하는 예루살렘이 세워졌다 라고 무태한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제대로 망하는 자 만드시는 겁니다 주님의 죽음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아삽을 성소 속에 집어 넣듯이 말이죠 이것이 때 시간 인물 자체가 시간으로써의
종말의 영 곧 중심을 부어주시는 공간도 바뀌는 몸도 바뀌는 그 공간 그 몸에만 
종말의 영 중심을 부어주시는 겁니다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 개역)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 73:2, 개역)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시 73:3, 개역)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4, 개역)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 73:5, 개역)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 73:6, 개역)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7, 개역)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 73:8, 개역)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 73:9, 개역)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10, 개역)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 73:11, 개역)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2, 개역)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 73:13, 개역)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4, 개역)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 73:15, 개역)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73:21, 개역)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시 73:22, 개역)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시 73:23, 개역)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개역)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개역)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26, 개역)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7, 개역)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8, 개역)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 35:21, 개역)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시 35:21, 현대어) 저들은 어떻게든 나를 잡아 먹으려 입을 크게 벌리고는 `하하하, 우린 벌써 알고 있었지' 하며 좋아서 날뜁니다.
(시 35:25, 현대어) `헤헤, 고것 잘됐다. 진작 저것을 없애 버렸어야 하는건데!' 하며 원수들이 기뻐하지 않게 하소서.

(시 40:15, 개역) 나를 향하여 하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놀라게 하소서
(시 40:15, 새번역) 깔깔대며 나를 조소하는 자들이, 오히려 자기들이 받는 수치 때문에, 놀라게 해주십시오.
(시 40:15, 공동) 깔깔대며 나를 조소하는 자로 하여금 너무나 부끄러워 넋을 잃게 하소서.
(시 40:15, 쉬운) 나를 향해 “그럴 줄 알았지, 잘 되었군!” 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당황하게 해 주소서.
(시 40:15, 킹흠정) 나를 향하여,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모욕에 대한 대가로 황폐케 하소서.
(시 40:15, 한글킹) 내게 "아하, 아하."라 말하는 자들이 그들의 수치의 대가로 인하여 절망하게 하소서.
(시 40:15, 현대인) 나를 보고 야유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수치에 놀라게 하소서.
(시 40:15, 현대어) 나를 쳐다보며 `하하 꼴 좋다' 이렇게 비웃는 것들 짓밟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소서.

(시 70:3, 개역)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시 35:16, 개역)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 이를 갈도다
(시 35:17, 개역)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리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시 35:18, 개역)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35:19, 개역)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35:20, 개역)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시 35:21, 개역)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시 35:25, 개역)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70:1, 개역)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 70:2, 개역)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로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시 70:3, 개역)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시 70:4, 개역)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5, 개역)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어느 손으로 때렸게 발로 차고 춤 뱉고 말이죠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짓는 자여
어서 어서 너 자신을 구원해 보시지 라고
최고의 기쁨을 그들은 곧 오늘날 우리들은 만끽하고 있습니다

신은 위대하다 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신을 죽이는 신들의 전쟁 말이죠

곧 이 잉여가 바로 제의, 제사이거든요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이것들이 바로 제의, 제사이다 말이죠
의미가 있을 려면은 신의 영역에 이르러야 잉여 곧 제의 제사 무대에
경연무대에 오를수 있다 말이죠

그러니 가수는 옛고대로 치면 제사장인 겁니다
고대의 제사장이 오늘날로 치면 가수인 거죠
각 분야의 모든 학문 학계의 달인들은 제사장인 겁니다
철학자든 문화계 연예계 모조리 신이라는 즐거움과 학문의 즐거움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물 촉매재 곧 무당인 거죠

그러니 지옥이 아닌 세상이 없는 거죠

온 세상이 무당들인 거죠
누가 누가 번제와 제사를 잘 드리느냐 그것이 유투브에 올아오고
좋아요 구독으로 역시나 돈을 버는 겁니다
돈 안 버는 번제와 제사는 없는 겁니다
잉여
오락 즐거움이 곧 돈입니다
돈이 안되는 곳에는 즐거움이 없어요

바로 그 잉여의 세계를 깨뜨리는 잉여로써
사람들의 손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이

이 잉여의 세계가 지옥이라는 사실을 천기누설하다가 죽임 당하시는 겁니다


그럼 그래 니 말 마따나 지옥이라 치자 그럼 천국은 어디인데 라고
장소로 물었어요

그런데 장소 공간 개념을 몸으로 표현해서

내 안에 있다 심령천국은 단어 풀이란 세대주의 사기친 것이고요
바리새인들에게 삥 둘러싸인 예수님 자신
너희 가운데 한 가운데 있다 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니 악마들에게 삥 둘러싸인 천국인데
(정작 그런 악마들로부터 악마취급 받아서 죽이심을 당하는
이게 악마들추기 지옥들추기입니다 즐거움을 안 주니까
돌을 떡 덩이 안 되게 해 주니까
거룩한 성전 뛰어내려서 두 손으로 딱 받는 종교의 기적을 안 주니까
온천하 만국을 주겠다는데 안 받으니까 하나도 안 즐거운 겁니다 안 통하는 거죠
오로지 죽으로 오신 사랑 곧 화목제물로 불도져 밀 듯이 다 불태워 버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장소도 아니고 공간도 아닌 한 몸

다윗 가문 자체를 성전으로 삼는 그 인물

그러니 공간이 인물이 되는
이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행함

행함이 끼워들 틈이 없는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로 출발한 믿음으로써만
말귀 알아 먹는
안 그러면 자꾸 행할려고 하니까
행한다 라는 말은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 할려고 하니까
즉 태어나지도 않았는을때에 오실자의 표상으로 삼는 식인데

테어난 뒤에 달음박질 그리고 원하는 바로 이룰려고 하는
그거 이 화목제물에는 안 통한다 말이죠

그러니 이 화목제물은 정작 이 세상이 지옥이기에
남이 아닌 내 자체가 사망의 몸
지옥의 몸
화로다 불 났나 불이야 불이야
불 타는 나의 이 몸 누가 건져주랴 라고
불을 지르러 오신 주님을 통해서

오히려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다가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누가 저 세상이 지옥인 것을 알려줄 것인가 누굴 보내꼬
맹구처럼 선생님 저요 저요 저요 제가 불 지르러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소서
제가 심판의 불을 불난 집에 불 지르러 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1, 개역)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2, 개역)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 6:3, 개역)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4, 개역)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11,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 6:12, 개역)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청소할 때 부정한 것 물로 씻겨지고 불로 태워지면 얼마나 속이 다 후련하냐 말이죠
선지자 본인이 부정함에서 거룩으로 옮겨지는 이 성전의 기능
의사의 기능을 누려서 속이 다 후련했으면
이제 사람들의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싹쓸이 노아홍수 퍼붓듯이
엘리야 불을 막 퍼붓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여호와의 불이여 불이여
여호와의 칼이여 칼이여 ~~~~~~~~~~

예수님은 뭐 내가 화평을 주러온 줄로 아느냐
칼을 주러 왔다
불 지르러 왔다

선지자란 이 땅이 지옥임을 들추어내는 겁니다
그러니 즐거움은커녕
가족이 가장 최종의 즐거운 최종목적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가족을 원수지간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지옥이 따로 없도록 말이죠

나의 수치를 서로 서로 가족이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들추어내면
그런 지옥이 따로 없는 거죠

네 맞아요 수치 란 나의 허물
나의 죄

특히 날 때부터 소경은 고의적인 수치 고의적인 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바리새인처럼
이스라엘 지도자들처럼
저 실로암 소경은 자기 죄냐 부모 죄냐

라고 교리신학 문제를 풀이 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 소경의 소경됨
문제는 날 때 부터이니
자기 본인의 죄인지 부모 죄인지 이것만 분명히 밝히면
신학교리 완성하고 가르치는 선생으로 올바르게 가르칠 것 아니냐 라는
이 얼마나 지극히 당연한 선생의 모습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죄도 아니요 부모 죄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날 때부터 소경이 되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사도바울이 그래서
우리의 불의함이 소경됨이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느냐?
그렇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즉 안식의 주인을 말하기 위해서
손마른자는 딴 날이 아닌 안식날 만에만 고침을 받아야 한다 라는 거죠
즉 환자는 의사만을 말하기 위해서
죄인은 구원자 만을 말하기 위해서 죄를 심판받듯이 찢겨지고 싸매어지는
수술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말이죠

의사를 말하기 위해서
곧 인물입니다 인물
그 인물과의 관계성인데

구지 인물과의 관계성이 없이
나 홀로
마일리지 쌓듯이 스템프 도장 찍어서
10개 모으면 하나 공짜 받듯이
그런 스템프 찍는 일에
믄 놈의 인물과의 관계성이 필요하냐 말이죠
자기숙제 뿐인데 이게 성화론 이라는 악마집단 교리실천 아니냐 말이죠
오락입니다 오락 종교오락 마약이다 말이죠

그러니 또 반대로 아 그럼 우리가 범죄를 더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도록 하자 라고
여전히 스템프 도장 찍는
인물과의 관계성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여기는 그 자체가
이미 심판받았다
자기 숙제로 승부건다는 자체가 한풀이 복수심 살인의지인 겁니다

맹 방종을 안하기도 인물과의 관계성 없이
자기 숙제로 홀로 경건의 모양만 갖추는 식이면
여전히 경건의 능력을 주시는 이 와의 관계성이 없는 거죠
그러니 양쪽다 이미 심판 받은 거다 말이죠

종교라는 음녀는 어떻게 해서든 저 국가 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고픈 겁니다
자기 쪽에서 자기 숙제로 신랑을 찾기 하는 겁니다
바알 여자들이 우상섬기는 이유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도

누구인지도 알지도 않을려는 그저 완악한 마음을 채워주고자 오기와 신념의 믿음만을
보고픈 것만 보고 믿고픈 것만 믿는
현대에서는 그 믿음이 돈으로 대체 된 거죠
돈의 역사에 대해서 운운하는 인문학자들은
유대인의 믿음은 곧 돈의 믿음이다 라고 하는 주장을 하는데
맞습니다 맞다고 그 인문학자들이
인물과의 관계성을 주장하느냐? 역시나 유대인들처럼
자기 학문의 숙제들을 나열하는
자기 죄냐 부모 죄냐
이게 세상이 지옥인 이유인 겁니다

사랑이 없으니 울리는 꽹과리만 나열이 되는 거죠

자기 숙제가 있다는 말은 자꾸 책임 질려고 한다는 거죠
책임 지면 뭐합니까 권력 곧 힘을 쥘려고 말이죠
즉 즐기는 것은 힘 밖에 우상 밖에 없어요

최근의 우리가 나눈 말씀 대부분이
왜 이스라엘은 망해야 하는가
반드시 이스라엘을 죽이시겠다
선지자도 제사장도 너희 어미 이스라엘도 
왜 죽이시는가?

딱 하나입니다
우상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즉 이 말은
나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곧 지식이 학문을 말하는게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그 사랑 때문에 반드시 지옥 속에 집어넣어서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이 하나님의 의로만 은혜로만 건지시겠다 라고
주님의 숙제로써만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로써만
요나의 표적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이 간극 이 모순된 간극으로써만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알고
우상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하실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숙제가 없으니 책임 질 거 없으니

권력을 쥘 필요가 없으니 말이죠 우상을 섬길 필요가 없으니
내 자식 고아 안 만들겠다 라는 숙제도 필요가 없고
도리어 그게 고아를 죽이는 지옥이 된 거죠
제사장 본인이 기업이 없는 자인데 고아를 제사장이 잡아 죽이는
제사장 본인도 고아인 주제에 그 처음자리를 발로 차 버리고서 말이죠
그런 제사장 반드기 낮에 죽이고
그런 선지자 나그네를 핍박하는 나그네를 죽이는 선지자 반드시 밤에 죽이고
과부를 핍박하는 과부인 이스라엘 어미를 반드시 죽이시겠다 라는

이 하나님의 의를 심판을 즐기는 이 막살기 책임질 것 없음을 누리지 못한다 라면
또 숙제 할려고 달려 들 때 마다
주님이 만드신 지옥 보다
지가 지 꾀에 지옥도 아닌 지옥에 자기가 누워서 침뱉는
절대저주도 아닌 절대심판도 아닌 것에 자기가 자살하는 식으로
그딴 속임수에 자기 꾀에 넘어가지 말고

제대로 된 심판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어딜 사기를 치느냐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죽음을 우리는 누리도록
주님이 격으신 그 심판을 우리는 증상물로

주님의 숙제로 인한 십자가에서 태어난 증상물로 우리는 누리는 겁니다
즐기는 겁니다

죄가 안 들키기를 바라는 그것이 도리어 지옥이고
죄가 들켜도 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 마저도
너끈히 용서하시는 
이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눈물을 씻겨주시고
수치를 당치 않게 대신 매맞은
대신 발가벗으심 당하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는

이 사랑만이
우리를 이 지옥의 몸
사망의 권세
지옥된 세상에서 건져주신다 라는 사실에

네 숙제는 되도 않는 죄를 더하는 지옥만 더할 뿐이고
주님의 숙제를 마음껏 누리도록
이 사탄의 가시 마져도
이 이스라엘만큼만은 징계를 때리심으로
심판을 내리심으로 반드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게 하시겠다 라는

이 맏아들 때리시는 아버지의 사랑
이것이 제사장 나라 라는 것을
인간의 숙제로써의 제사장 나라는 결국 고아를 등쳐먹는 것 뿐임과 대조해서

주님의 숙제가 옳았다 라고
선지자를 보내서 모조리 불태우심으로써
오로지 주님만 남기시고자 하심을
지옥은 나를 불태우시겠다 라는
이 사랑만 첫맹세 첫사랑만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이 약속만
붙잡고 가도록 하시겠다 라는 사실에

우리를 그 사랑에 작살에 꽃혀서 끌려가는 증상을 즐기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보다 더 또렷한 사랑은 없는 거죠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꽃아버린 사랑의 작살이기에 ~~~~~~~~~~

유일한 지옥 탈출 
자아 나 라는 우상 탈출일 출세상 출지옥 출애굽 출이스라엘 출사람의손성전인

예수님 안이라는 참성전 걸어다니는 끊임없이 간섭하시는 성전인 
하나님의 중심 정직한 영 이십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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