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8 아담(다윗)은 오실 자(다윗자손)의 표상(증상) (롬 5,12-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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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8 아담(율법 있기 전의 죄, 모친의 죄로 낳은 다윗, 사망의 몸, 원수, 연약함을)은 오실 자(다윗 자손)의 표상(해석,증상물) (롬 5,12-14)

죄인은 구원자의 표상, 우리의 불의함은 하나님의 의의 표상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제물(꺽으신 뼈)로만 즐거워함 (롬 5, 9-11)
로마서 2022 2023. 8. 12. 17:43
22-027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로만 즐거워함 (롬 5, 9-11)

〈로마서 5,12-1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5쪽, 찬송가 352장 새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473장 새 411 아, 내 맘속에〉

〈찬송가 352장 새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1.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한없는 은혜 받고서 내 생명 모두 드리오니 
   그 풍성하신 은총을 주 내게 내려 주소서

2.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내 허물은 덮으시고 
   주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를 믿는 맘을 보사 
   내 중한 죄를 사하여 참 평안한 맘 주소서

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주 은혜에 감격하여 
   한없는 감사 찬송을 내 주님 앞에 드리오며 
   내 맘과 정성 다하여 늘 기뻐하며 살리라

4.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마음과 이 천한 몸 
   그 보배 피로 값주고 주 친히 사신 몸이오니 
   나 이제 사나 죽으나 주 뜻만 따라 살리라


〈로마서 5,12-1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5쪽〉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찬송가 473장 새 411 아, 내 맘속에〉

1.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 귀하다 이 평안함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2. 이 귀한 평화 내가 받고 보니 모든 슬픔 사라지고 
   맘에 기쁨 넘쳐 주를 찬양하네 아 평화의 임금 예수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3. 주 날개 아래 내가 사는 동안 이 보배를 빛내리라 
   기쁜 그 날이 와 주를 만나 뵐 때 아 그 평화 영원하리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롬 5:10, 새번역)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롬 5:11, 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롬 5:12, 새번역)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롬 5:13, 새번역)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롬 5:14, 새번역)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롬 5:14, 공동)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었습니다.

(롬 5:14, 현대어) 그러므로 그들이 죽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처럼 금단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특별한 법을 어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앞으로 오실 분의 표상이었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시기로 된 그리스도와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롬 5:14, 가톨릭)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먼저 표상이라는 단어를 다른 번역에서는 모형이라고 했는데요
저는 아 이 모형이라는 단어를 오해할수 있겠구나 라고
제가 도리어 착각해서 또 다른 번역을 보니
대부분 모형인데 오해할 만한 원형이라고 공동번역에서 나와있구요
카톨릭 성경은 예형 이라고 모형과 비슷한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저는 오해 하겠다 싶어서 살펴본 것이 제가 도리어 오해한 줄로 모르고
모형이라는 번역에 좀 의구심을 가졌어요
왜냐하면 그 동안 모형이라는 단어를 억수로 많이 배워오면서
다들 그림자 라고 배웠으니까 말이죠
네 맞아요 말, 언어, 단어의 뜻은 맞는데

문제는 오늘 본문을 보니 그런 드러난 의미 보다
도리어 감추어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서 그런 관점에서 볼때에는
원형이 먼저 있고 그림자가 뒤에 있는데
그림자가 모형이 먼저 있고 실상이 뒤에 오니까
인간의 시간 개념과 안 맞다 보니
인간 쪽으로 모형이라는 개념을 당길려고 하니 
무리 데쓰 무리가 따르는 듯이 느껴지는 겁니다
정 당기고 싶으면 나의 시간과 몸 곧 장소 라는 이 역사가 날라가 버려야
이 묵시를 제대로 보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러면 또 당기는 의미가 없는 겁니다
묵시를 담을 그릇이 못 되거든요

그런데 그건 저의 착각일 뿐 우리가 원래 본품 보다 샘플을 먼저 시식이나
화장품 샘플을 먼저 접하듯이
영화도 본편 보다 먼저 예고편을 보잖아요
아 맞다 그것이 있었네
괜히 제가 무식한 것을 제가 오해한 것을
다들 아는 것을 괜히 쓸데없이 의아해 한 겁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아실 겁니다

표상 즉 표출 되어서 드러나다 라는 것 보다
증상 이라고 하면 증상물 보다
죄인 보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아담 보다 아담을 오실자의 표상으로 삼으신 구원자
환자를 부르러 오신 의사에
더 시선을 돌릴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나 건강한 자 맞잖아
나 의인 맞잖아 라고
다들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저 매국노 세리처럼 삥뜯지 않았고(바리새인)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맏아들)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고(부자청년, 유대인 관원 지도자 선생)
저 비싼 향유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줘야한다 라고 정의를 외치고자 분노하는(예수님 제자들)
자 이런 자기의 의에 순종하는 자
이런 건강한 모습 의로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더더 예수님에게 어필할려고
소경 아니다 라고 하는 자가 소경 맞다 라고

아담을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고자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더라 라는 겁니다

아무튼
우리가 억수로 그릇에 대해서 자주 세뇌 당하듯이 배워왔는데요
이왕 세뇌 당한 것 한 번더 전복 시켜 보자 말이죠
우리를 말하고자 함인지
예수님을 말하고자 함인지

그릇에 담을 보배에 대해서 교회에서 배워왔는데
그래서 보배 곧 그릇에 담을 보배 라는 의미에서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김국환의 노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아 최근에 이것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 들었는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였나?
아 아니다 정준희의 해시태그 포레스트 검프에 대한 이야기에서 들었군요

https://youtu.be/AQGXttpwNIg

그래서 몇 년 전에 접시, 그릇을 깨자 라고 이야기 한 적 있는데요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 개역)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고후 4:2, 개역)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고후 4:3, 개역)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4, 개역)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5, 개역)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6, 개역)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3, 개역)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4, 개역)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5, 개역)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7, 개역)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다들 교회에서 배우기를 우리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다 라고 가르치면서
자꾸 율법의 행함을 주입식 교육으로 당해왔던 겁니다
그 해석이 틀렸다 라고
믿음의 은혜로 들어가게 됨을 당하게 되면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게 아니라
지구 보다 더 큰 행성 아니 은하계도 아니 그 은하계 마저도 먼지 취급받는
하늘영광 보배에게 질그릇처럼 생긴 일회용 소모품 종이컵이
그 영광에게 붙어 있습니다 그 거룩이 활활활 타오르는 그 영광에

그야말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가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것은 행성인 보배가 우리(소모품 종이컵)를 담은 겁니까? 즉 붙어있는 겁니까 접붙임
아니면 조그마한 종이컵이 큰 행성을 담은 겁니까? 
지구보다 큰데 무슨 수로 담을수 있냐 말이죠
(이것을 또 무식한 놈들이 그릇깨자 막 살자 라고 또 존재로 해석하고 행함으로 해석하니
막살기를 진짜로 지켜요 글쎄 막살자가 덮쳐지는게 아니라 말이죠
자기 살이있음에서 자꾸 출발하더라 말이죠 
그게 자기 의에 또 순종하고 자기 열심을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추구하더라 말이죠
종이컵 그릇을 기능으로 말씀하시는데 기능 곧 존재 보다 먼저 앞선
기능으로써 증상물 표상인데 자꾸 내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이 선이 된단 말인가? 에라이 
역시나 생명은 주께 있다 가 아니라 나도 생명있다 살아있다 존재한다를
한다리 걸치고파 하는 존재임을 주장 함을 들추어내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아니 벌써 깨어지고 찢어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도 남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다니엘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심판의 불 저주의 불 사망의 권세 속에서 
무슨 수로 안 타죽고 살아있냐 말이죠
어라 그런데 예수님 불 보다 더 강한 
죽음 보다 더 강한
질투 보다 더 질투하시는 부정의 부정 죽으면 죽으리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춤추기 위해서 태어났고
동원이 되었고 은혜가 왕 노릇함을 말하기 위해서
죄인 환자 심판받는 원수가 되어서 불 속에 등떠밀려 들어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거든요
종이컵이 심판의 불 속에 들어가서 심판도 담아야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 진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더더 부정의 부정 죽으면 죽으리라가 붙어버려서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 불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하나님의 불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불과 함께 동행하고자 태어났다 말이죠 기능으로 말이죠
존재 보다 비존재가 더더더 존재적이다 말이죠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요
무태 한 자 같으나 하늘에 자식이 천지삐까리 ㅋㅋㅋ 이더라 말이죠 

어 그런데 왜 안 찢어지고 안 죽고 왜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지?
오실자의 표상 기능을 하라꼬 

비로소 생명을 보고 그 풍랑에 의해서 나의 살고 죽음이 다 날라가고 말이죠
주여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죽음도 풍랑도 사망의 권세도 잠잠케 하시는
도대체 누구시지요 라고 생명의 비밀을 아무리 들따 봐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비밀 잉께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비유로만 풍랑을 독수리를 바벨론왕을 일으켰응께 말이죠

비로소 생명의 비밀을 보고 왜 나는 죽어야 합니까 가 아니라
왜 나는 아직 살아 있어야 합니까 벌써 죽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 풍랑에서 건져주시고 살려주시는 지요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새번역)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 ㉭창 2:7(칠십인역)
(고전 15:45, 쉬운)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고 기록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6, 개역)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 15:47, 개역)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전 15:48, 개역)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전 15:49, 개역)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50, 개역)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1, 개역)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개역)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개역)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개역)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7,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8, 개역)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로마서 5장 다음 시간에 나눌 말씀이 죄를 뚫는 내용인데 사망을 뚫는 구원의 뿔이다 말이죠)

살려주시는 마지막 아담을 말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그래서 너는 산 자로 산 영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라꼬 말이죠
죄수복을 입히신다 라는 겁니다

생명의 비밀을 만나고 말이죠

왜 안 찢어지고 안 죽고 왜 아직까지도 살아있죠?
오실자의 표상 기능을 하라꼬 

죄인 되라꼬
환자 되라꼬
불의한 자 되라꼬

그래서 아직 안 죽이시고 죄 지으라꼬 막 살아라 라꼬 살려주시는 겁니다
사실은 이미 벌써 죽었으니까 말이죠 존재는 없고 기능으로만
증상물로만 있는 겁니다

내 안에 예수가 산 것을 말하기 위해서 나의 죽음도 유익항께 말이죠

그래서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질그릇을 깨자 그래야 보배가 드러난다 라고
자주 언급했었잖아요

아니 보배가 행성이 이미 지구보다 크고 종이컵 보다 큰데
질그릇 컵 깨어본들 티도 안나고 깨져본들 아무도 모르는데 
왜 질그릇을 깨뜨려야 보배가 드러난다 라고 하느냐

이 말은 그 정도로 보배가 중요하고 
질그릇인 우리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말을 함으로써 
강조점이 우리 질그릇에 있지 않고
주체가 주인공이 보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에게서는 때려죽어도 보배가 아무리 중요한다 해 본들
지구 보다 더 큰 행성으로써의 보배가 안 보인다 라는 점입니다
오로지 자기 밖에 안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은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심으로써 다 이루심으로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 라는 약속으로 그 언약으로만의 관계로

내가 내 자신의 의로움에 순종하는 그 꼴을 못 보시겠다 라고
하나님의 의가 나의 의로움을 자꾸 매일 치심으로써
불의한 자로 만드셔서 오로지 피로써만 화목제물로써만 관계 맺겠다 라고

안 죽이시고 살려두시는 겁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인간이 안다 라고 우겨도 그 안다 라는 지식을
자기 자신에게 주도권을 두고 있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자체인 사랑이 화목제물이 십자가가 안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이 사랑은
나를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늘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나의 의에 순종할려는 나를 늘 치시고자
나의 의를 매일 매일 날려버리는 빈털터리 만드시는 겁니다

오로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받는
이 화목제물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이 언약의 관게만을
밀어붙이시는데 있어서

죄를 죄 되게 하시고자 죄 아래 가두시고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 놓아서 백성 맞다 라는 언약의 줄로만

그래야 마귀와의 내기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이 피 언약인 요나의 표적만 펼치지
인간이 자기 손해 안 보겠다가 다가오는
바벨론 왕의 점괘 치듯이 다가오는 것을 일체 다 거부하시고
임금 삼고자 함에 있어서 도망치십니다

정작 주님의 사랑이 다가오심 앞에서는
고멜처럼 나 죄인 아니다 창녀 안될란다 라고 도망치고 말이죠

비록 창녀이어도 많은 남정네로부터 사랑받고 있잖아 라고
그것을 또 의 라고 자랑 하는 겁니다
많이 사랑 받으니까
거 보세요 가장 성화가 된 바리새인이나
바벨론 왕의 점괘나

어차피 사랑 아니잖아요 지 잘났다 아닙니까

그저 자기 의만 쌓는 겁니다

뭐만 보인다? 질그릇인 내 밖에 안 보이고 나만 중요하다 라는 거죠
그러니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안 깨어지는한 
보배가 아무리 지구의 몇천번배 보다 더 커도
결국은 나 밖에 안 보는 보고픈 것만 보는 나에게 갇혀버렸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이런 소경 이 정도로 심각한 소경인줄 우리는 모르는 겁니다
 
없는 자아에게 자아가 포로되고 갇혔고 억눌렸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벨론 왕과 같은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리라 라는 그 욕망이
그 타인의 욕망이 이미 우리 속의 자아로써 주인공인냥 자리잡아버렸기에
이 죄의 소원을 넘어설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소원 이라고 표현 할 정도 이겠습니까?
즉 소원 곧 이 욕망 외에는 없어요 다른 것은 인정 안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망이, 죄가 왕 노릇한다 라고 왕 개념을 집어넣어서
다른 잡하단 것은 여기에 끼일 틈을 안 주는 겁니다

(눅 23:34, 개역)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눅 23:34, 공동)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가졌다. / ㉠시편 22:18.

즉 인간이 끼일 틈이 없고요 주님은 마귀만 죄만 사망만 상대하신다는 겁니다
여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식으로 중간에 끼인 겁니다
욥기에서 마귀와 여호와의 내기 장기에 욥은 죽어나가는 새우등터지는 식으로 끼인 겁니다

죄의 소원은 소원 곧 굴레 권세 곧 왕 노릇에 벗어날 자 단 한 명도 없게 하시고
그 죄라는 부정한 권세에 더더더 부정한 죄가 거부하는 은혜의 왕 노릇으로써
아들의 소원 외에는 성경은 관심이 없다 라느 겁니다
즉 아들의 소원인 생명의 소원은 왕 노릇함에 있어서
다른 것은 왕 노릇 축에도 못 드는 인정 안해준다는 단절성 입니다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새번역)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 4:7, 공동)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창 4:7, 쉬운) 네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죄는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창 4:7, 킹흠정) 네가 잘 행하면 너를 받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네가 잘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그의 열망이 네게 있으리니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4:7, 한글킹)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창 4:7, 현대인) 네가 옳은 일을 했다면 왜 내가 네 예물을 받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을 것이다. 죄가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여도 너는 죄를 이겨야 한다'
(창 4:7, 현대어) 네가 잘하였다면 어째서 내가 네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어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느냐? 네가 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죄가 네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급기야는 너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리라.'
(창 4:7, 가톨릭)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소원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눅 10:22,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아들의 소원은 또 어떻게 번역했는지 보니
소원은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소원이라는 단어는 개역한글 밖에 없구요
다른 번역은 같은 의미로써 세 번이나 중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말이죠
원하심 = 계시(선택, 택함) 받은 자 = 아는 자)

자 저런 죄의 소원과 상대적으로
이 보다 더 절대적인 죽임이 없고 이 보다 더 절대적인 생명이 없는 죄의 소원과 상대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소원은 정녕 죽으리라 정녕 살리라 와 동행하는 것이 있는
중심이 있는 시온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정녕 죽으리라 와 같이 무능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정녕 살리라에 못 들어간다 말이죠 
그러니 또 어린아이 와 같이 될려고 존재로 니고데모처럼 다시 뱃속에 들어갈려고 하면 안되고
마른뼈 죽은 뼈처럼 하나님의 군대로 사용하시는 주님 쪽에서 넘어오심
곧 하나님의 의가 불 속에서 함께 출 추는 그런 하나님의 군대인 기능이지
이것을 자꾸 흉내낼려고 막살기를 지키라는 말이 아닌데
그러면 불 속에는 왜 안들어가냐 말이죠
막 살기를 지키는 자기 의에 순종하지
하나님의 의에 순종치 복종치 않더라 곧 자기 의 쌓기인 거죠

이 죄의 소원을 다른 번역은 어떻게 했나 싶어서 살펴보니 낱말의 의미를 풀어쓰는 식인데
주로 [지배] 라는 의미로 했고 정치죠 지혜롭게 할 만큼
죄의 [열망] 이라고 했구요 경제죠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데
자꾸 살아있다 라고 우기니까 자기가 살아있음에서 출발하시는 겁니다
정작 말씀은 반대로 죽으면 죽으리라 인데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이 욕망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욕망] 이 표현은 정신분석학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구요
정신분석 이라는 것이 히스테리를 연구하다가 발생한 학문인데
이것이 자궁입니다 히스테리 자궁이라는 뜻이거든요
긍휼이라는 뜻도 있구요

남자들은 강박적이라서 도대체 이 생명의 비밀이 뭔데 라고
이 생명의 탄생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달려들어도 도리어 쭐꾸덕 미끄러져버리다 보니
어떤 철학책 향략의 전이 라는 책이 있는데 지젝의 책인데

재미있게도 그 책 제목 표지를 제가 말하고파서인데

http://flkac.cafe24.com/carousel_img/2016_040.jpg

여성의 자궁 속을 아무리 들따 봐도 생명의 비밀을 찾을 수가 없어요
남자의 욕망은 그 비밀을 캐내는 겁니다

왜 내 한테 없는 생명 하와 생명이 왜 너에게 있는거냐 라고

남자란 뭐든지 이겨먹을려고 하는 강박증 때문에 
약한 어린아이까지 약한 여성까지 이겨먹을려고 말이죠

뭐든지 파헤치는 비판 비평을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래야 학문이 성립이 된다 말이죠
그래야 남을 이겨먹거든요 
네 맞아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을 이겨먹기위한 강박증이지
한 번 용서 두 번 8번 용서를 자꾸 모아요 편집증이지요 그래야 이겨먹죠
진짜로 사랑이 있어서 용서하는게 아닙니다 내 밑으로 무릎꿇어 라는 식입니다
타인은 무조건 지옥이고 자기만 무조건 천국이다입니다

그래서 뭐든지 파헤쳐보고자 해체주의인 포스트모더니즘처럼
메타 저 넘어에 뭐가 있는데 싶어서
초월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 곧 비밀을 캐내고자
찢어버리고자 하는 편집증 환자 이다는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기 만의 법칙으로 재정렬 재편집 할려고 달려든다 말이죠

그런데 아무리 들따 봐도 생명의 비밀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의사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는 
역거운 내장 장기들 등등 있으니
찾을 길은 없구요 도리어 응시할려다가 도리어 응시당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음부의 권세처럼 죄의 소원처럼 말이죠
그 왕 노릇에서 평생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 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졸지에 해석할려고 달려드는 그 정신병 강박증 해석망상 자체도 종노릇인 거죠
읽기는커녕 도로 읽혀짐을 당하는 겁니다
죄를 뚫어버리기는커녕 도리어 뚫혀짐을 당하는 겁니다
자기가 해석 응시 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해석당하고 응시당하는 거죠
그래서 야동 중독 무슨 중독 다 그런 식입니다 언제든지 빠져나올수 있다고 착각하는거죠
아무리 냉정하게 사물화 해서 접근을 해도 말이죠

또 공동번역과 카톨릭성경은 이 죄의 소원을 [노린다] 라는 의미에서
공동번역은 굴레 라는 의미를 집어넣었다 말이죠
굴레 쇠사슬에 얽매이듯이 갇혔다 포로되었다 수갑이 채워졌다 라는 거죠
꼼짝마 너는 포로 되었다 라고 말이죠
세상은 죄가 아담으로 인해서 들어옴으로 인핵서 이제 굴레 곧 감옥이 된 겁니다
세상이라는 감옥
그 감옥에서 뭐 부자로 살다가 다시 천국으로 들어간다 웃끼는 소리죠
그런식이면 천국도 감옥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누구 말 마따나 한국은 천국 보다 더 천국 같은 지옥이라서
아무도 천국에 갈려고 하지 않는 
대 놓고서 놀기 좋은 곳이 되었다 라고
아니 이렇게 자살률 1위인데 놀기 좋다니
그 잔칫집을 남의 것 빼앗았기 때문에 천국인데 자살률 1위 라는 겁니다

진짜 천국은 심심해서 답답해서 못 살겠다 라는 거죠 
너무 너무 심심해서 천국은 심심하면 데모할 판국 입니다
텅텅 빈
그러나 지옥은 빽빽 합니다 밤마다 파튀 ~~~ 축제가 벌어져요 글쎄 
뿌뿌부 이디엠 가락 틀어놓고 밤새도록 흔들어 댑니다 
강원도 양양이 갑자기 핫플레이스가 되다보니 밤새도록 음악을 서로 더 높이 틀다 보니
주민들이 지옥이 따로 없어요 지옥이 
하루 종일 울리는 꽹과리 굿판이 벌어지니까 말이죠
과거의 모든 술은 제사에서 사용되는 짐승의 피 이거든요
번제와 제사 뿐인 세상
행함 뿐인 세상
인간의 믿음은 예수님을 죽이는 살인의지 뿐인 겁니다
그런 이미 죽은 자들이
그게 생명 있는 줄 살아있는 줄 알고
아무리 완벽하게 제사 곧 번제와 제사인 술상을 이게 추수감사절 아닙니까
곡식을 거둔 열매로 술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잔칫날
그런데 정작 좀비들이 머리 도리 도리 흔들면서 뿌뿌뿌 춤추고 노래 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죄를 아주 냉정하게 사물화 되었는데
냉정하다는 표현은 봐 주는 것 없이 물건 취급한다는 겁니다
뭐 인권 따지고 온정과 긍휼 따위 그런 것 안 통하고 오로지 물건 취급하는 겁니다
지난 주 언급한 헤겔의 유물론처럼 말이죠
헤겔은 이 사랑을 철저하게 냉정화 시켜서 사물화 시킨 겁니다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말이죠
물론 철저함 근처도 못 갔지만 말이죠
존재로 취급안하고 기능으로만 그러니 오로지 죄인 환자 취급만 한다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죽은 셈인 거죠 코로나 처음 퍼질때에 오로지 물건 취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그래서 벌금 억수로 때리잖아요 그러다가 그 왕따 당한 것 때문에 몇 년 뒤에 보니
완전 공무원 자격 다 박탈당하고 가족들 외면하고 완전 쫄딱 망한 인생 취급
그야말로 수에 칠 가치가 없다 라고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라는 말씀이 실제로 실상화
리얼 생방송 현실화가 된 입장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냉정하기 짝이 없이
사물화 취급 당하는 겁니다

자 그런데 생명의 비밀을 캐내지 못하니까
소원이 죄의 소원이 지배할려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왔고 나가고 하듯이
사물화 물화 유물론처럼 물체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이랬다 저랬다 히스테리처럼
외부에서 들어왔는데 타인의 욕망이 말이죠 이게 법이지요 법
그러면 들어온 것 찾아서 빼내듯이 나오게 하고자 아무리 들따보고 파헤쳐도
안 보이는 겁니다 그 생명의 비밀을 찾을수가 없어요
기껏 한다는 것이 바로 외부에서 안 들어왔다 취급하고
내면의 숙제로 남기는 겁니다
자 그러면 죄가 인간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는다 거짓말을 한다 라는 식으로 거꾸로 해석합니다
거짓말이 인간에게 덮친 것인데 말이죠

그러니 밤의 세계 곧 실재계 라는 무의식이
눈 떠 있을 동안에 억눌렸던 것이 주인공처럼 막 슈퍼맨으로 막 날라갑니다
억누른 욕망이 마구 마구 튀어나오는 거죠

사랑을 아무도 내 편 만들려고 해도 냉정하고 차가운 냉소적인 사랑은 때려죽어도
내 편 안 들어주고 임금 삼고자 하는 나로부터 도망쳐 버립니다
반대로 그런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나를 풍랑으로 독수리로 사탄의 가시로 찔러 쪼개는
바벨론 왕의 칼로 말이죠 그렇게 고멜이 되고 만드시고자
죄를 죄 되게 만드시고자 하시는 의사 구원자 고통받는 메시아로 오실때에는
또 반대로 내가 도망쳐 고멜처럼 도망치는 겁니다
죄인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 싫다 라고 말이죠 거부한다 말이죠

이 두 소욕이 서로 싸우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생명이 있는 줄 착각하고 이미 죽은 자인데 말이죠
성령의 소욕은 죽은 자 라고 소경이라고 해야 고쳐주고 새마음 새생명을 줄껀데
자꾸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까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생명인척 하면서
또 또 인간이 주인공 주체가 되어서 죄를 다스리는냥 죄를 짓는다 라고 하고
거짓말을 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즉 자기가 항상 주체인냥 거짓말을 내가 하느냐 마느냐 로 달렸다 라고 보더라 말이죠

아닙니다 죄가 덮쳐진 겁니다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 거짓말이 죄가 주인공 주체가 되어서
거짓말이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백날 회개 눈문 금식 기도를 해도 죄를 자기 쪽에서 되도않는
일회용 무화과 나뭇 잎으로 가려도 안 가려지는 겁니다
율법 네배나 갚으라 로 가려도 안 되는 겁니다
피 흘린 양의 가죽 옷 즉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말하지
부자가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는 양가죽을 말하는게 아니지요
그 예수님의 피 흘리신 화목제물 아니면 언약의 줄 아니면
가려질수가 없는 겁니다
죄가 왕 노릇 왕입니다 왕
인간이 죄 짓는게 아니라 왕이 덮쳐졌어요
욕망의 왕이

그래서 욕망 이라는 표현이 왕으로써
다른 욕망은 다른 소원은 취급도 안해주는 왕이다는 겁니다
죄 라는 왕
사망이라는 왕 만의 욕망만 욕망으로 취급하고 
나머지 왕도 아닌 주제에 되도않는 사탄의 얕음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소원이라고 했어요 다른 소원은 취급안하고 죄의 소원만 소원이라고 말이죠

전적으로 외부에서 덮쳐졌다고 하신 겁니다 왕이 죄의 왕이
사망이라는 왕이 덮쳐졌고
냉정하게 사물화 해서 왕 노릇하고 있다 라고 합니다
기능적으로 철저하게 비존재화가 되어서 눈에 안보이게끔
비밀을 캐낼수 없도록 기능이 왕처럼 군림해서 왕의 명령을 안 따르고는 못 배기는
그래서 죄가 덮쳐진 외부에서 들어왔다 라고
오늘 본문에서도 언급 합니다

(롬 5:12, 개역)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딱 한 사람의 죄가
사망이라는 왕을 들어오게 할 수 있느냐 말이죠
하여튼 성경은요 말이 되는 것 하나 없어요
모조리 다 비유 비밀 입니다

이 죽음의 비밀을 무슨 수로 풉니까
남자의 욕망 이 보세요 욕망 죄의 소원은 뭐든지 비밀을 풀고파 하는 강박증 아닙니까
비평 비판하면 그 비밀을 풀어야 하는데 해석 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남자 답게 구원자가 될 수 있는데 구원은커녕 도리어 갇혀버렸다 말이죠
해석할려고 다가 가다가 도리어 해석망상에 갇혀버렸다 말이죠
죄의 소원을 다스리기는커녕 도리어 장악 당하더라 말이죠

자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라고 사물화된 죄가 먼저 언급이 되고
뒤에 인간이 죄를 지었다 라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즉 죄가 들어온 것이 먼저 있고 기능이 먼저 있고 비존재가 먼저 있고요
그 다음 죄를 짓는 존재가 나중에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반대로 보고 있지요 그래서 자유의지가 있다 라고
그거 철학사상인데 뭐 설명 뭐 해석할 길이 없으니 차용해 오는 거죠
과학에서도 물론 과학도 종교화 되었지만
과거 90년대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즉 선택이죠 선택하는 것 보다
먼저 움직임이 먼저 한 1초도 안 되게 먼저 앞서더라 라고 했다 말이죠
최근 과학에서는 훨씬 더 앞선 10초 이상 전에 먼저 선택보다 더 앞서서 움직이는 기능이 발휘되더라 그래서 자유의지란 없다 오히려 결정론 이미 결정된 결과물을 당할 뿐이다 라고
뭐 진화론도 깨지고 뭐 자유의지도 깨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스트레스 받는 것은 지 마음대로 사는게 덜 피곤하더라 라고 저번에
너튜브 매불쇼 과학코너 엑소 가 말했다를 언급했었죠

뭐 선택장애 있는 것 또한 선택을 못하는게 아니라 
못하도록 이미 먼저 앞서서 장악한 거죠
왜? 외부에서 덮쳐졌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이미 자기가 주인공이다가 덮쳐져버렸기에
죄가 왕 노릇하는 죄의 소원으로써 인해
죄가 주인공인줄 모르도록 죄가 감추어 버린 이상
인간 지가 주인공인냥 착각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죄가 인간을 숙주로 삼은줄도 모르고 말이죠

죄 아래 다 같혀 버렸다 말이죠
이것을 알려주는 율법이 있어야 안 망하는 자 이고
율법이 없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말이죠 

율법은 바로 이 죄를 죄 되게 만들고자 가입이 된
죄를 읽으라고 줬는데
어라 죄를 읽기는커녕 도리어 죄를 다스렸다 라고
죄의 소원을 더더더 펼치듯이 제대로 숙주 노릇을 하더라 말이죠

맞아요 죄를 읽으라고 준 율법이 주인공이 되어 알려준 것을
우리는 내가 율법을 지킨 주인공이 되다 보니 죄를 읽기는커녕
읽힘을 당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놓고 율법은 율법 외에 한 의가 있다 라고
율법 자기가 나에게 죄를 읽으라고 해서 읽었는데
죄를 읽기는커녕 죄에게 도로 읽힘을 당하도록 만들어서
현행범으로 체포 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라고
마귀에게 잡히는 것이나 율법 몽학선생으로 잡히는 것이
다행이 율법이 변호사 율법 외에 형사 외에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라고
변호사를 가리키는 몽학선생의 기능을 하더라 말이죠

범죄자가 되지 않으면
죄를 죄 되게 하지 않는 형사가 없다면 율법이 없다면
범죄자도 아닌데 변호사가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율법이 가입이 되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 말이죠
이제 몽학선생은 율법 외에 한 의를 소개하는 기능을 하는데

율법이 대표자 모세 
두 증인 중의 한 명 율법 대표자 모세 곧 우리를 무조건 이유 없이 찢는, 범죄자로 만들고
두 증인 중의 한 명 선지자의 대표 엘리야 우리를 무조건 새마음 종말의 영으로 싸매시듯이
율법의 대표자 조차도 실패함으로써 왕이 와야 하고 제사장을 다시 지도 한다 말이죠
얼마나 개판이면 아비아달 제사장은 약속의 자녀가 아닌 명분을 따라 딴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데 있어서 여기에 다윗의 조카 요압장군까지 다 정치적으로 다 묶이느냐 말이죠
그래서 다시 솔로몬 왕으로부터 새로 지도 받아야 할 제사장으로써 사독제사장을 따로 세우시는 겁니다 아비아달 제사장은 쫓겨나지만 사실상 요압장군처럼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다 죽여버리시는 겁니다 
또 선지자의 대표자 조차도 죽지도 않고 하늘에 올라감이 그 자체도 무의미 하기에
참성전의 기능을 수행할 왕이 와 달라고
끝까지 섬기시고자 죽기까지 복종한 
하늘 영광 다 버린 죄인으로 오신 화목제물로 오신 왕
이 왕 노릇 만이 다른 잡다한 것들을 잠잠케 한다 말이죠 중심도 아닌 것들을
생명도 아닌 것들을 잠잠케 말이죠
그 섬기는 대신 매 맞는 왕이 와야 한다 라고 변화산에서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다윗이 뿅하고 갔습니다
다윗은 그저 비밀 풀이 해석망상에 사로잡혀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이 죄를 해석할려다가 도리어 해석 당하는
넘어설수 없는 정직한 영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분명 이길수 있다 라고 봤는데
어라 도리어 죄를 죄 되게 하는 율법의 취지를
성령으로써만 새마음 인자의 소원으로써만 비로소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자는 인자의 소원은 오로지 이 화목제물로서만
사랑으로써만 이 죄의 소원을 뚫어버리더라 말이죠
이것을 목격한 자가 다윗이다는 겁니다

이제 이 다윗왕 마치 죄가 왕노릇하듯 다윗이
사울도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 보다 더더더 악한 놈이 되도록
죄가 죄 되게 하는 이 죄의 소원에 단단히 걸려서
사울왕이나 다윗왕이나 도진개진
바벨론왕의 점괘나 이스라엘의 기도 점쟁이 찾듯 하나님을 찾는 거나 도진개진

그 죄의 소원이 덮쳐진 다윗에게
인자의 소원 아들의 소원이 덮쳐져서
죄가 사망이 왕노릇하는 다윗에게
은혜가 왕 노릇하도록 인자의 소원이 덮쳐져서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시는데 있어서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듯이 다윗도 그랬고 솔로몬 왕 땜에 우상이 다 들어온 거죠
사실은 솔로몬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다 퍼진 그 우상숭배를
혼자 독박 쓰듯이 결정판 마무리 판으로 대표성으로써 보여주는
전체 모든 아담의 속성을 담은거지 개인적인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그 이전 이미
아부지 다윗 왕의 회개 눈물 금식 기도는 그럼 바벨론 왕의 점괘 곧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그것을 주님은 도리어 이 한 사람에게 덮쳐진 들어온 다윗의 죄를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 시키고 있는데 말이죠 솔로몬이 저럴 정도면
이제 빼도박도 못한다 왕 노릇 맞다 기능이지 존재가 아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죄를 죄 되개 하시고
이제 다윗이 죽고 없도록
다윗의 운명에 다 복속 되도록
이스라엘을 포로
죄악의 왕노릇
사망의 왕노릇에 포로 억눌림 갇히도록 하시는 겁니다

왜? 사망이 죄악이 왕 노릇 하도록

자 이렇게 원수의 목전에 발 아래 지근 지근 밟히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상황으로 만들어야

부림절
심판받는 이스라엘의 멸절 몰살 말살 멸망의 그 심판의 날이 그 종말의 날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새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도록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 곧 하나님의 저주요
헬라인 이방인 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미련한 지혜가 우리에게서는 끝까지 섬기심이다는 겁니다

이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만드시고
하만의 제비뽑기를 옳게 만드셔서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는 이 언약을 똑똑히
또렷하게 명료하게 미래완료로써 보여주시는 겁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말이죠 그래서 죄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을

어떻게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은혜가 왕 노릇 하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으로 인해
은혜가 왕노릇함이 보여지는

이 자궁 속의 자궁이라는 생명의 비밀을
아무리 들따 봐도 없어요
오히려 여성은 월경 때문에 피가 쏟아짐 때문에
남자의 7일 부정 보다 두배나 더더더 더한 14일 부정함으로
단절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부정한 불의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긍휼을 의로움을 용서를 보여주더라 말이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복음서에서 대립구도가
약한 무능한 아이와 자립적인 어른과의 대조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고 하시고
순수함 아닙니다 건물주를 꿈꾸는 어른의 욕망을 심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죽은자와 같은 무능한 어린아이가 어른과 대조를 이루고

또 선택민족 유대인과 버림받은 사마리아와 대조를 이루고
그래서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 먼저 되는 거죠
그리고 건강하다 의롭다와 창녀 세리 강도가 대조를 이루고
그래서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 간다 라고 말이죠
그카면 아무 창녀를 데리고 너 먼저 천국가겠네 라고 비꼬는 놈들 꼭 생기기 마련이지요
대조를 이루는 이 기능을 주님이 펼치지 않으면 찢고 싸매는 이 두 기능 두 증인의 완성인
참성전과 무관하니까 은혜를 더하고자 백날 죄를 지어본들 역시나 존재이지 기능이 아닙니다
죄가 왕 노릇한 것도 못 보여주고 창녀됨 부정한자 됨 잃어버린자 됨 도 못 보여주고
동시에 은혜가 용서가 왕 노륵 함도 못 보여주는
그저 은혜를 자기가 쟁취할려고 죄를 더하겠다 라는 역시나 존재 자기가 주인공인
아니 죄가 주인공임을 못 보여주잖아요
다윗이 백날 자기가 주인공될려고 회개 눈물 금식 기도 해도 소용없음을 들통 당하는
그게 없잖아요 그 기능이 없는 채 존재가 될려고 막살려고 하니 참 기가막히죠
동시에 화목제물인 꺽으신 뼈의 죽음이 역시나 없어요
은혜를 더하고자 백날 죄를 지어도 말이죠
뭐 과거에 어떤 전도사가 아브라함 흉내낸다고 자기 자식을 제물 바치듯 죽였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화목제물 입니까? 희생제물 입니까 역시나 지가 주인공이지
죄가 왕노릇도 아닌 사탄의 깊은것도 아닌 얕은 것 아니 바벨론 왕으로부터 멸망당해야지
지가 지를 멸망 시키고 있어요 글쎄 
그리고 동시에 은혜가 왕 노릇하는 기능으로써 새마음 곧 마지막 종말의 영이 덮져져야 하는데
안식일 지키듯이 자기가 날짜 시간 때를 채우고 있으니 그게 무슨 주님의 시간 이요
종말 곧 완성 마침이 됩니까
도로 자기 시간과 역사 날 때가 날라갈 판국인 죽으면 죽으리라가 아니라
지 구원 될려고 아브라함 흉내내고자 믿음의 조상이 되고자
쓸데 없이 자식을 이삭으로 만들어서 죽이는
해석망상인 강박증인 거죠

최근에 아프리카 목사가 예수님 흉내낼려고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따라하겠다고 하다가
죽었는데 또 다시 다른 아프리카 목사가 또 흉내 내다가 죽었다 말이죠
아들의 소원이 덮쳐지지 않으니까
죄의 소원으로 함 넘어서보겠다 라고 하니
그런 아프리카 못지 않게 한국은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복 받는자
그 복받은 이거 추구하고파서 그저 돈돈돈 자본주의 구조에서 못 벗어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못 벗어납니다 벗어날려고 시도 자체를 아예 하덜덜 마세요

자 바로 그렇개 죄를 죄되개 하시는 율법을 통해서 죄 아래에 갇히도록 하시는 겁니다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 저 이방인처럼 되지 않도록 하시고자
주님은 선지자 곧 인자를 투입 시키는 겁니다
인자는 나를 인자를 드러내는 표상으로 증상물로 삼았다 말이죠
곧 의사를 드러내기 위해서 환자로 삼아버렸다 말이죠
환자 죄인 죄를 죄 되개 만드셨다 말이죠
왜? 구원자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러니 우리는 의사의 증상물로써 환자가 되는 겁니다

이게 글쎄 놀랍게도 한국기독교 뿐만 아니라 전세계 기독교에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백날 성경박사 해 본들 바벨론 왕 점치는 것이나
불교 천주교
그렇게 천주교 욕해 놓고서는 뭐 다른 것 하나 없어요

자 인자를 그렇게 나를 표상으로

사실은 오늘 본문으로 치면 개인 적인 나를 언급할게 아니라
오늘 본문 로마서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아담인 셈이지요 아담을
제대로 찢고 그 아담을 제대로 싸매시는 
하나님의 의를 담고 투입되는 자로써
남도 아닌 나로부터 미움을 당하는 인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음꺼리인 거죠
남도 아닌 수제자 베드로로부터
남도 아닌 다윗으로부터
남도 아닌 선지자로부터 그래서 요나의 표적인 겁니다

단절 되었다 나의 개입이 일체 없는 도리어 나는 나를 죄로 죄 되게 만드신
그 주님과 그 의사와 조우하는 만나는 대조가 되는
아직 원수일 때 아직 죄인일 때 내 시간이 다 날라간 공든탑 나의 의가 날라간 그때가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죽으면 죽으리라 가 덮쳐진


그런데 인자를 다 죽여버렸뿟네 그려
이제 우짜죠

죄가 죄 되게 하심을 당하는 겁니다
그렇게 나의 몸을 찢고자 어린양을 찢어서 그 위에 피를 뿌리는
이 오대 제사 공간 몸 장소를 날려버렸다 말이죠
그 죄를 거룩으로 옮기시는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의 기능을 하는 인자
인자를 죽인 것이 존재를 죽인 것이 이메 인자의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더더더 그 사망을 뚫고서 더더더 발휘가 되는
어서 죽어주세요 어서 별세해 주세요 창녀마리아가 미리 장사치르는
이 3일의 간극을 통해서 몸을 모든 육체를 못 박았으니
이제 때 마무리 완성을 단 하루만에 급히 이스라엘을 내가 낳았다를 다 이루시는
그 시간 역사를 끝내는 종말의 영 새마음이 오기를 소망 소원하는
아들의 소원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다 이루어지는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사는 이 믿음을 다 이루시고 선물로 주셨다 말이죠

자 그러니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해 놓고서는
율법 지키는 놈이 율법을 죽이는
안식일 지키는 놈이 안식의 주인을 죽이는

이 죄를 죄 되게 하시고자

더 이상 죄 아래로 가두는 율법을 알려주는 자가 없도록 아무리 참선지자를 죽여도

나의 죄악을 고치는
그 찌르는 창 만이 나를 제대로 고치는 의사의 수술칼인데
이제는 찌르는 창이 없으니 나를 제대로 고쳐줄 자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없어질 창이겠습니까? 무시하고 비웃어서
여호와의 칼을 없애버린다고 해서 없어지냐 말이죠

바벨론 왕의 칼이 있지롱 ~~~~~~~~~~~~~~

내 죄악을 제대로 읽어대는 해석하는 자는 정답 뿐인데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 뿐인데
그래서 하늘 영광 버리고 죄인으로 오신 예수님 뿐인데
그 앞에서 문제아 일 뿐인 환자인 죄인으로 들어날 뿐인데

아냐 나는 건강한 자 되고 싶어
아냐 나는 의인이 되고 싶어 라고
그렇게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자로써 주일성수를 철저히 지키는 자로써
아무리 안식의 주인을 죽이고 선지자를 죽여 없애버린다고 해서
존재는 죽일지언정 기능이 없어지냐 말이죠 또 다른 계란 또 다른 계란
네 맞아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계란 치기를 한다고 해서
오늘은 세 번 부인 안했구나 다행이다 라고 해서
그 다음날 넘어 갈수 있냐 말이죠
죄가 왕노릇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데

은혜가 왕 노릇할려며는 어서 어서 부인하라 라고 주님이 다구치시는데
사탄아 왜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니 사탄이니까
하나님의 일만 하시는 바로 그 예수님으로부터
죄가 외부에서 들어왔듯
은혜가 예수님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옴을 당하는 은혜가 왕노릇하는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그 기도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그 기도
그 믿음이 와야
내 믿음 날라가고 새믿음으로써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즉 화목제물 제대로 덮쳐졌느냐 네 제대로 덮쳐져서
사망의 왕노릇을 거쳐서 은혜가 왕노륵 함을 누리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아 아까 그 대조
소위 빛의 아들들과 대조를 이루는 불의한 청지가
이 부정한 자가
죄가 죄 되게 함을 당함을 거쳐서
그 부정의 자리
백성 아니다 라고 하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는

이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예수님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기능을 이스라엘을 나타내는데
불의한 자가 새이스라엘의 기능을 말이죠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데

존재를 우기는 빛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드러낼 이스라엘의 기능을 저 불의한 청지기에게 빼앗기니까 도리어 예수님을 언제 죽일꼬 라고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 뿐이고 왜?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니까 말이죠
내 존재 안 알아주는 예수도 다 죽여버리는
이게 이미 죽은 자입니다
이 죽음을 이 죄를 못 읽으면서 자기가 이미 죽은 자인줄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인줄 못 읽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왔으면 안 타죽어야 하는데 어라 타 죽는데
얼마나 더러우면 말이죠 홀라당 다 타죽냐 말이죠
이 타 죽어야 하는 현실 이 샬롬을 직시함에 있어서

주님의 죽으심으로 대신 매맞으심으로 대신 찢겨지심으로서 나온 가죽오스로 인해
불 태움 안 당함을 불 속에서 누리는데

부자는 이 불을 이 심판을 읽지 못하니가
아무리 방탄복 아무리 최고의 고급 방호복 아무리 입어도
벌거벗은냥 바로 타 버리는

아이고 부자야 돈 많다메 돈주고 값주고 피 옷을 사라
그런데 못 사는 겁니다 그걸 알면서 더 놀리는 냥
아이고 그래 그랬었었었어요 그럼 값없이 사라 라고
아니 부자인데 자존심이 있지 돈 있는데
돈 없는 놈 취급 당해서 값없이 사렴 이라고 놀려먹듯이 말이죠

아 그럼 값없이 부자도 입을 수 있겠구나 했는데
어라 값없이도 못 사는 부자를 들통내는
우와 이건 뭐 살벌하기 짝이 없더라 말이죠

부자란 지금 한국처럼 그 당시 부자는 아미 지금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 모든 시대 전 세계인이 다 동일할 겁니다 아니 동일합니다
부자란 구원받은 자 복 받은 자로 인식이 된 상태인데
아예 지근 지근 발가벗겨서 저런 저주 저런 거지 상거지가 없도록 만드시더라 말이죠

부자는 의사 조차도 개인 의사 돈 먹여서 개인 주치의로 만들어서
오로지 자기만 치료하는 자로 담당시켜 만들어도

의사만이 쥔 수술칼을 쥔 자로써 고쳐줄 자이고
죄에서 구원해 줄 자인
그 의사의 증상물로써 환자를 부르러 왔고
우리의 환자 됨이 의사의 기능을 드러내고
그 구원자의 증상물로써 죄인만을 부르러 왔는데

환자 주제에 병든자 주제에 죄인 주제에
의사를 종 다루듯이 하고
심판 자를 도리어 심판하고 있으니
바벨론 왕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겠다 라는 놈
이 놈이 벌거벗은 부자인줄 도 모르고

(사 36:6, 개역)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사 42:3,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마 12:20,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그 바벨론 왕의 점괘를 안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나 애굽 발가벗은 애굽을 의지하듯이
애굽 찾듯이 하나님을 찾는

정작 상한 심령이 덮치면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죄를 죄 되개 하심으로써
사망의 몸임을 들추어내는데

늘 우리는 점쟁이 욕하면서 점쟁이 짓만 하는 겁니다

여기서 벗어날길 이 얼굴에 음행을 제거할 길은 오로지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미리 예수님을 장사 치르는
이 언약 뿐인

이 화목제물 뿐인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와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이 우리는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자기 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 뿐인데 말이죠

우리의 죄 곧 불의 함이 구원자의 구원 기능인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을 드러내시고자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실 자로
아담은 죄인은 오실자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증상물로써 동원이 되는 겁니다

아담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아직 연약할 때에
이전 것 때 시간을 날린 아담의 시간을 날린 마지막 아담 곧 오실자
살려주시는 영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 증상물로써 아담을 말이죠

개인 구원은 없어요 집단 구원입니다
아담이 그러니 개인이 아닌 거죠 모든 인간은 아담에 속했지요
아담 조차도 죄를 죄 되개 하기 위해서 동원이 된 기능 도구 사물이지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도 아닌 주제에
의인이라고 구원자 흉내내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환자 아니다 건강한 자 이다 라고 의사 흉내내는
그러나 대충 대충 심상히 (대수롭지 않고 흔하게) 건성으로 고치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소리만 하더라 말이죠

(렘 6:14, 개역)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8:11, 개역)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2,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렘 6:13, 개역)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6:14, 개역)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5, 개역)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8:6, 개역)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렘 8:7, 개역)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렘 8:8, 개역)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렘 8:9, 개역)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렘 8: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8:11, 개역)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8:12, 개역)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저마다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지나개나 칼을 잡으니 수술 할 줄은 모르고
남을 죽이는데만 사용하더라 말이죠 
칼이 어찌 남을 죽이는 기능이 아닌 고치는 수술칼이 될 수 있으냐 말이죠

오로지 죽이는 용도로써의 그 바벨론 칼을 가지고 어떻게 수술의 칼이 되느냐 말이죠
심판의 칼이 어떻게 구원의 칼이 되는 겁니까?

(마 13:10, 개역)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 13:11,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2,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3,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6, 개역)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 13:17,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 13:18, 개역)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다 말이죠
이 심판의 칼이 있는 자는 더 받고요 수술 칼이 7에 70 개나 있어요 영원히
이 심판의 칼 곧 수술 칼이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남을 7번 용서 받는게 아니라 도리어 용서하니까 얼마나 없었으면 있는 티를 낼려고 죄 아래 갇힌 사망의 몸임을 환자임을 안 들통당할려고 자기가 수술 칼로 해 보니 소아과 의사가 소멸이 되듯이 돈 안주죠 아이 보호자 깽판치죠 갑질 당하죠 못하는 겁니다 ㅋㅋㅋ
주여 내 딸이 귀신 들렸나이다 라는 그 런 자에게만 의사가 보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쓸데 없는 진짜로 쓸데가 없어진 의사 이다 말이죠
귀신들린 자식 덕분에 예수님을 만났다 말이죠
빌라도가 니가 유대인의 왕이냐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유대나라의 임금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유대나라는 우상의 나라입니다 사탄의 회입니다
빌라도 나라입니다 그 우상나라를 천국도 더럽힐려고 아들의 나라에 그대로 가지고 간다?
그 음행을 소아과 의사 다 죽일려고 ~?????
건강한 자들이 오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입니다

이 제대로 죽이시는 죄를 죄 되게
사망을 사망 되게 하시는 주님이 아니면
죽음을 죽음 되게 하시는 심판의 주를 못 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생명을 못 보고 
자가기 살아 있다 건강하다 의인이다 만 우기는 겁니다

의인이 건강한자 살아있다는 자가 우찌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딘 부스러기를 감사할까요?
우찌 똥물에 7번 담글까요? 문둥병자가 아닌데 아니 문둥병자 이면 일수록 
더더욱 피부가 민감한 자인데 우찌 담그겠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제대로 된 죽음이 안 읽혀지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못 쳐다보고 또 비밀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건상한 자 의인의 시선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의 시선에서
안식의 주인을 비웃는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구원 받을 가치도 없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살았다고 우기면서 고래 고래 함성을 지르지만 울리는 꽹과리 이지만
주님은 안 속고 안 듣고 오로지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너희는 잠잠하라
그 입 다물라 오로지 화목제물로만 언약으로만 밀어붙이십니다
그 죽음 앞에 뭐 그리 떠들어 대냐 말이죠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데

중심도 없고 생명도 없는 것들이 뭐 그리 말이 많냐 말이죠
울어도 시언찮을 판국에

칼 로써 죽이는 목적이 아닌 살리는 목적인 지닌 비밀은 오로지
생명의 수술 칼의 비밀은
심판의 칼 죽이는 칼 본인이 자신이 대신 죽임 당하는 이 진짜 죽음
이 십자가의 피 라는 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시고 그 나머지는 다 음란 음행일 뿐입니다
제대로 죄악을 사망을 원수를 읽을 줄 아는(여호와의 칼은 비웃지만 바벨론 칼은 두려워 하면서 정작바벨론 칼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사망을 휘두르더라 말이죠제대로 죽이지도 못하면서 그러니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그저 자기 존재만 의사흉내내는 의사 존재, 이스라엘 지도자 존재, 선생 존재 만 우기면서 
대접 받기만 할려고 할 뿐이지 섬기지는 못 하는 겁니다 중심이 생명이 없으니 말이죠
정작 진짜 의사는 자기의 피를 수혈해서 자기는 죽고 남을 살리는 수술칼인데
얼마나 무시했으면 말이죠 그러니 화목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오실 자 예수님의 증상물 표상 아담 환자를 제대로 찌르고 제대로 싸매는(고멜은 오실 자 곧 나를 제대로 읽는, 고멜(죄)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심판하는, 
오실 자 호세아 피 남편 실상의 모형 그림자 표상이다는 겁니다
언약이라는 이 남편이 아니면 음란을 제거할 방법이 없어요 
화목제 십자가의 죽음
곧 언약 외에는 안 되는 겁니다)
제대로 죽이고 심판하고 제대로 다시 살리는 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십자가가 라는 하나님의 의가 밝히 보이는데
죽은 자를 살릴 줄도 모르는 주제에 뭐 남을 7번 용서 했다고?
유사 용서
용서 축에도 못 끼이는 우리 연변에서는 7번 용서는 용서 축에도 못 끼입니다
적어도 7에 70번 이거는 역사의 숫자가 아닌 묵시의 숫자 곧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흉내낼 생각 조차도 하지 말라 로써 묵시의 세계 천을 곱하게 되면
하루에 아니면 1초에 7에 70번의 무한 반복인 이중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손가락으로 일곱을 세듯이 천을 세는 천 그까짓거 못 셀거 뭐 있냐 라고 보시면 안되는게
천이란 역사의 세계를 단절 시키는 개입을 못하게 하는 의미인데 
자꾸 난 천을 셀수 있다 라고 보니까 미끼를 물다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겁니다
하루에 평균 200번 무의식적으로 거짓말한다고 했는데
이 거짓말 무슨 식으로 씻어내냐 말이죠

소용없어 거짓말이라는 드라마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봤는데
처음에는 오 그럴 듯 하네 싶더니만 
결국 연애 호세아 선지자에서 말하는 연애(음행, 음녀) 이야기로 가기에
그만 흥미가 없더라 말이죠
요즘 한국드리마가 낯설고 생소한 소재로 처음에는 잘 출발하다가
무슨 강박증처럼 자꾸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을려고 하니까
이 연애 마치 가요가 모조리 다 사랑이야기 노래이듯이
진짜 사랑은 싫어버린바 되었기에 싫어합니다
아니 아름다운 풍채 흠모할 만한 사랑할 만한 매력이 없으니
다들 고개를 돌리는데 왜 좋아라 연애하겠습니끼 

이 음녀들이 연애 해 줄까 해도 할까 말까 안될 판국은데 
주님은 더더더 창녀 고멜
더더더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오셨다 말이죠

호세아가 그래서 교회에서 설교하기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언급한 연애 우상과의 연애는 밥먹듯이 합니다
누구 말 마따나 드라마는 여자들에게서는 야동이다 라고 하니까 말이죠
모든 드라마가 음행으로 끝납니다 음행으로 ~~~~~

그래서 소용없어 거짓말 드라마를 보고

저게 무슨 거짓말이고 지가 더 거짓말을 하네 라고 
처음에는 재미 있을 것처럼 보이더니 그만 재미가 없더라 말이죠
거짓말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진 그 자가 더 거짓되더라 말이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개역)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결국 주인공 주체는 돈이 주인공이더라 말이죠
음행 곧 육의 사랑, 연애가 돈이 되거든요
돈이 주인공으로써 일한 노동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요 보상으로써
돈이 주인공이다 라는 것이 드라마의 내용인데
그 썩을 재물을 부도난 수표를 왜 모으는지
노예를 많이 모아서 뭐하게요
사실은 모을 수 밖에 없어요 돈의 숙주이니까
죄의 숙주이니까 말이죠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 거짓말이 들어오는 겁니다
죄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겁니다
일본 애니 그 뭐였더라 오른손에 괴물이 들어와서 숙주로 삼아버린 기생충과 같은 제목
아 맞다 기생수

돈이라는 신이 들어와 버렸기에 우리는 돈에 미치지 않고서는 하루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수가 없습니다

가장 최고의 노예가 가장 최고의 주인이 되어서 도리어 인간이 노예짓하더라 말이죠
거짓말 하는 알아채리는 능력 조차도 돈이라는 신 앞에서는 찍 소리를 못하넹 ~~~~ ㅋㅋㅋ
그래서 무당들을 다 죽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그래놓고 왜 바벨론 왕의 점괘를 왜 옳다고 하시느냐
그 느부갓네살 왕을 왜 내 종이라고 종으로 삼고
고레스를 메데 파사 은신상에 해당되는 그 우상숭배자를 왜 메시아로 삼아서
성전을 짓게 하느냐

왜냐하면 그런 이스라엘의 기도가 바벨론 왕의 점괘와 같기에
다 죽일려고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짓는 그 이스라엘을 다 죽일려고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짓는 성전에 안 계시고자 말이죠
단절의 의미인 겁니다

무당 뿐만 아니라 우리도 다 죽이신다 라는 것을 아느냐 라고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죽으면 죽으리라 만이 죽음을 제대로 읽는 겁니다 내 죽음이 아닌 주님의 죽음을 말이죠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2화 처음부터
라디오뉴스에 끔찍한 살인사건에 범인이 동료직원을 토막살해하고 
내장 장기 등의 살까지 뜯어먹었다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우리는 죽음을 읽지 못하다 보니 
나(에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이 피로만 이 화목제물로만 관계 맺겠다 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 그럼 제가 인육을 뜯어먹는 살인마 라는 말입니까 그래 
너 죄인이야 라고 하시는데 있어서

우리는 살인마 아니다 라고 하니까
생명나무도 엉뚱한 것을 생명이라고 우기는 식입니다
아니 언제는 유월절 어린양 잡고 그 고기 뜯어먹고 
또 뜯어먹을려고 다음해 다음번 제사에 바치고 또 뜯어먹고 
포도주 마시고 할때는 언제고 왠 인간인 척? 왠 살인마 아닌척?
지금까지 다 해 놓고서는 ~~~~~~~~~~ 
특별히 이스라엘은 더더욱 그렇잖아요
그러니 율법을 다 엉터리로 지킨 겁니다 죄 아래 가두어
죄를 죄 되게 함으로써

주의 살과 피가 아니면 저 죽습니다 라고 이미 죽은자라고 나와야 하는데

엉뚱한 데서 생명이라고 우기니까 죽음인 자신을 못 보는 겁니다

사망의 몸인줄 모르는 겁니다 죄의 소원이 들어간 자임을 죄가 왕노릇 사망이 왕 노릇하는줄 말이죠

그래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이 의가 영광이 덮쳐지니까 비로소 보는 겁니다 생명의 실상을

그 실상의 그림자 표상 증상물로써
생명의 증상물로써 나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7에 70번 용서의 왕의 위상에 걸맞는 죄인 환자로써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낼 때

그것도 원수의 목전에서 밣혀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 취급받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그 자리에서
이 이스라엘 말살 몰살의 점괘 친 날이 그 멸망의 날이 구원의 날

은혜의 해 곧 주의 날임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증인이 되는 겁니다


나는 바벨론 왕의 점괘가 거짓임을 안다 난 안 믿는다 라고 해서
그 해석의 개입을 주님이 허용하시는게 아닙니다
너도 똑같은 놈이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울로 삼아버렸다 말이죠
거울로부터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하신 그 풍랑으로 부터 도로 해석 당하라 라꼬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고백 외에는 나올게 없습니다

바로 그런 너의 죄악이 읽혀져야 한다 해석 당해야 한다
그 죄 그 사망의 왕 노릇 바벨론 왕으로부터 칼로부터 해석 당하고 찔림을 당해야
멸망 당해야 그 보다 더더더더 부정한 하나님의 칼 내가 부정했던 그 하나님의 칼로부터
수술 칼로부터 이제 고쳐주세요 라고 나오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칼로 부터는 풍랑을 통해서 물 위를 걸은 것 다 찢겨지지 않겠다 라고
하나님의 칼을 무시할때는 언제고 이제 바벨론 왕에게 찔리니까 수술해 달라고
비로소 하나님의 칼이 옳았음을 더더더 옳았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내가 무시했던 그 며느리 다말이 진짜 예수님의 족보 생명의 족보를 언약의 줄을 던져주는
그가 나 보다 옳았다 생명의 줄이다 라는 겁니다
그 수술칼을 볼려면 바벨론 칼이 우리는 찢어야 비로소 그 비밀이 내가 무시했던 그 수술칼이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는 죄를 죄 되게 하심을 격는
죄를 읽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생명의 비밀이 짜 놓은 자작극 입니다
누구로부터? 반드시 내가 무시한 비유 비밀로부터 거꾸로 해석 당해야 한다 말이죠
나의 엉터리 해석
곧 해석망상을 거쳐서 그 해석망상에 의해서 반드시 무시 받고 내가 죽인 그 예수님으로부터
도로 해석 당하는

죽음으로부터 해석 당하고 정녕 죽으리라
생명으로부터 해석 도로 당하는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 의인은 주님 뿐임을
그 사랑은 

살려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임을 
그래서 아담은 오실자 마지막 아담의 표상 그림자일 뿐이다는 겁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따라할 필요가 없다 말이죠
그 그림자 죽은 것일 뿐인데
왜 생명을 불어넣느냐 말이죠 니 죽음도 죽음 축에도 못 드는
정녕 죽으리라를 주님만이 보여주시니까 ~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이기에 

이 사랑 곧 화목제로만 밀어붙이시는데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있는데 뭐 니 옳니 내 옳니
경계선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하고 
아주 무당 굿판으로 시온산까지 다 산당을 짓는 그 버릇 어디로 안 가는 겁니다

우리는 뭘 해도 강도의 소굴 짓 밖에 바벨론 점치는 짓 밖에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죽음의 비밀 생명의 비밀을

그 비밀이 바로 내 속의 죄가 마치 마귀 귀신처럼 왜 벌써 왔냐 라고 따지듯이
생전에 그 어떤 사람과도 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이
귀신과 무덤가의 청년에게 들어간 죄가 들어간 그 귀신과 
무덤가의 청년을 숙주로 삼은 그 귀신과 예수님이 대화를 하신다 말이죠
그래서 이제 나오라 라고 아니 들어간 귀신을 아무도 빼낼 마음도 없는데
이제는 나오라 라고 하고 또 다시 귀신의 요구대로 돼지떼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 라고
나오고 들어가고 라는 표현으로써 돼지떼 속에 들어가 버리니까
그 증상물로써 인간들이 아니 왜 우리 축산업을 붕괴 시키느냐 라고
예수님께 감사한게 아니라 귀신들린 청년 문제를 해결해 줘서 고마운게 아니라
얼마나 불편했냐 말이죠 무덤가가 하필이면 마을과 마을 사이 중앙에 있다보니
삥둘러서 갔으니 말이죠 졸지에 경게선이 쳐져있던 그 막힌 담을 허물어줘서
고마운게 아니라 청년 부모가 우리 마을 사람인데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왜 우리 경제 문제 망가뜨리느냐 라고 쫓아내버리는 겁니다
그 동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결국 귀신이였던 거죠
내가 귀신임을 감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귀신으로 뒤짚어 씌워야 하는 겁니다

귀신들린 청년은 정작 기능이였고 정상인이다 라고 우기는 존재가 그 존재들이 바로
귀신들린 자임을 들추어내시고자 주님이 귀신 취급 당하셔야만 하는 겁니다

죄가 들어간 죄의 소원이 덮쳐진 자입니다 
죄가 나간 것을 보고도 니나 가라 하와이 로 만들어버렸다 말이죠
자 그럼 귀신 문제 보다 개인 청년에게 들어간 귀신 문제 보다
사회 전반적인 모든 아담의 문제를 지적하러 오신 겁니다
유대 사회 전체가 교회 국가와 민족 전체가 교회아닙니까
그 교회 전체가 귀신들렸다 라는 겁니다

이 죄가 들어간 인간 곧 아담을 통해서 의사가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겁니다
내 딸이 귀신들렸고 나도 못 고치는 이상 저도 귀신들렸고 고쳐주세요 라고 하는 자 만이
생명을 보고서 의사를 보고서 고쳐달라고 하지

내가 환자도 아닌데 예수님이 의사처럼 전혀 안 보이는데 무슨 수로 고쳐 달라고 하겠냐 말이죠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말은 저는 귀신들린 자입니다 고쳐 주세요 라는 고백입니다
주님 쪽의 사랑이 덮쳐진 자에게만
은혜가 왕노릇함을 본 사망이 왕노릇함에 환자임을 알고서 은혜가 왕노릇하는 생명을
의사를 제대로 보는 눈을 허락해 주셔서 말이죠

네 맞아요 고침받아 놓고도 쫓겨나는 고통받는 메시아가 나의 신랑임을
그 환자를 주님이 찾으시는 고멜이 저입니다 라고 앉은뱅이 이방인에게 찾아오신
은혜를 본 자 만이 말이죠

네 맞아요 이제 슬슬 인정 합니다 은혜를 볼 눈이 없는 소경임을
그러니까 소경이니까 고쳐 달라고 보게 해 달라고 해야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예수님을 쫓아낸 돼지 축산업자들은 마귀의 3가지 시험처럼 귀신의 요청 요구 기도처럼
저 돼지떼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
귀신이나 인간이나 자꾸 저 천국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 라고
고통받는 메시아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듯이
가짜 천국 가짜 메시아를 요구하더라 말이죠
왜? 예수를 쫓아내는 것이 귀신 좇아내듯 하였거든요 이런 의인 이런 건강한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죠
제대로 귀신의 숙주 노릇을 한 셈이지요

바벨론 왕의 점괘 따위는 우리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은 안 믿어 라고 우기지만
예수님에게는 안 통하는 겁니다

그 다음 니 차례다 우짜노 실로암 망대 무너진 사건이나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1, 새번역)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눅 13:2,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거봐 거봐 갈릴리 그 더러운 이방인이 제사 제물을 바칠려다가 빌라도가 마침 나타나서
그들을 죽이는 바람에 그 피가 제물에 섞여버렸으니 그들은 이미 저주받을 운명이였어 라고
보는 그 해석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그래 너는 엉터리 제사 안 드리는 놈이 맞기는 맞냐

그래 그래 성전으로 맹세하는 것은 더디 이루어지고
성전에 금을 바쳐야 맹세 또는 기도가 빨리 이루어진다 라고 여기는 그 보편적 속담
그거는 뭐 우상숭배 바벨론 왕의 점괘이기는 매 마찬가지 아니냐?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인데 우짜노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두 증인을 죽여버렸는데 그만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울을 보여주는 줄 모르고

죽였다 우리를 괴롭히는 이 두 증인 죽였다
참성전의 두 기능 몸과 시간을 없애버리는 이 나쁜 성전의 기능을 죽였다 라고 좋아라 했는데
어라 누워서 침뱉기 라는 미끼를 덮썩 물어버렸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제 율법을 알려주는 자가 없는데
개같은 이방인처럼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처럼
에라이 더 잘 되었다 이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수준으로 그까짓꺼 높이면 되지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는 달인
그것도 사탄의 자식 독사의 자식들이

자기가 대접 받고자 인정받고자 더더욱 율법의 껍데기 4배나 지키면서
남을 7번 용서 했다 라는 그 자기 의를 쌓기함으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두 증인을 죽여버리면 되는 식으로써

시온산 곧 여호와의 산인 세상의 중심인 시온산에
누가 더 높냐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기냐 누가 더 넓냐 누가 더 신비롭냐 라고
산당을 누가 더 높게 크게 길게 넓게 신비롭게 세우느냐 라는 경쟁을
시온산에 도배를 하더라 말이죠
강도의 소굴이 된 겁니다
사탄의 중심으로 도배를 하더라 말이죠

계시록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하나님의 산인 예루살렘에 있더라 말이죠

(계 11:8, 개역)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두 증인이란 걸어다니는 참성전의 기능을 하는 인자로써
하나는 우리를 찢는 기능이고 하나는 다시 싸매는 기능인
거룩한 성전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5대 제사와 7절기의 기능
그러니 우리가 가지고 오는 때와 몸을 모조리 거부하는 거죠

안식일 지키기를 거부하고
의인된 몸을 거부하는
오로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때를 주장하는 참성전의 기능
동행
언약과의 관계성
함께 사는 한 몸 그러니 생명나무 선악나무가 있는 걸어다니는 참성전과 동행하는
그러니 우리는 이 두 증인의 기능을 하는 참성전 곧 하나님의 중심과 동행함을 
당하는 거죠 당하는 거
두 증인으로부터 공격받는 이 두 기능 찢고 다시 싸매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으로써 당함으로써 
이 공백 이 삼일의 간극에서 태어난 십자가에서 태어난 증상물이

이 증상물 모형 그림자가 원래 먼저 나보다 먼저 있었던
다윗의 자손
곧 다윗의 주
다윗이 말한 주께서 내 주께
주님이 치시고 주님이 다시 싸매시는 이 두 주 와 함께 동행하는
이 언약 이 새언약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증상물
오실자의 증상물 로써의 아담 곧 죄인

아직 연약할 때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제물의 증상물 로써의 원수
죄인 아담

으로 화목제물로부터 해석 당하는
정답으로부터 뽑혀 나오는 주께만 범죄한 자
그 죄를
정답이 찾아낸 죄인으로써 읽혀져야 해석이 되어져야
그 죄인 또한 피 신랑이 피 신부로써 비유가 되지
해석 불가가 되지

사람들이 해석할 줄 아는 아담 원수 죄인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증상물로써는
죄의 소원을 못 넘어서는 죄 아래 갇힌 자가 죄를 해석해서
문제 풀기를 해서 나온 자들은

의사를 의원이 찾아낸 자가 아닌
음녀가 찾아낸 신랑
믿고픈 보고픈 먹음직 보암직 그런 신랑 밖에 안되는

죄로 모르면서 의를 알앗다 라고 우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음녀

오실자 마지막 아담이 찾아낸 죄인 원수로써의 아담
그 아담은 오실자의 증상물
실상의 그림자
의사가 찾는 환자
구원자가 찾는 죄인인데

곧 주께만 범죄한 자인데
인간은 죄를 짓는다 거짓말을 한다 라고 해석하니까
죄가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개념이 없어요
들어오고 나온다 라는 것은 외부 작용이고
거짓말 한다 죄 짓는다 는 것은 내부작용으로 보는 겁니다
칼부림사건이 구조 문제인데 묻지마 살인 말이죠
개인의 문제로 취급해 버리는 그 조직 자체가 사실은 범죄자이거든요
독재자는 수천만명을 죽여도 영웅 대접 받아요
그러나 딱 한 명을 죽인 개인적인 살인 뭐 정신병이든 뭐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닌
묻지마 살인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악의 평범성이니까 말이죠
악의 평범성 또한 구조적으로 인정할 뿐이지
들어온다 나간다 개념은 여전히 인정 못해요
그래되면 사회가 무너져요
구조적이니까 억제 시키기 위한 보안대책을 마련하는 거죠
돈 있는 선진국은 되지만 돈 없는 국가는 택도 없죠

악의 평범성을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가 주장했지만

정작 다윗은 내 속의 죄가 이미 장악해 버렸다 라고
들어와버렸으니 나는 언제든지 튀어나오는 이 죄악을 
말릴수가 없다 라고 인정했거든요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주님이 악령을 집어넣어서 나오듯이 말이죠

아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2화 토막살인 뉴스 처음시작 하던데
나중에 3화가 어린아이 토막살인 사건까지 더 깊게 나오니까

아 이거 너무 심한데 위에서 언급한 내용 다 지울까 싶었는데
다윗 보세요 꺽으신 뼈로 기뻐한다 라는
유아 토막살인 자와 뭐가 다를까요
그 정도로 일급 살인자에게 이 의사의 존재가 아닌 기능을 말하기 위해서
죄를 악령을 심어버리셨거든요
이런 바닥을 안치면 또 겨우 오늘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 안했다 라고 우겨도
그 다음날 또 그 의문의 반복은 계속 되는 겁니다
아 그럼 방종 하라는 말이가
아 그럼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난다는 말이가 에라이 퉤퉤퉤

드라마에서 속이 불타듯이 부모마음이 찢어짐을 봐도
역시나 그 부모도 그 부모의 아부지 어무이 자식 잡아먹기는 매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예수님까지 하나님까지 잡아먹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인간인데요 뭘

그래놓고 우리는 천국처럼 살다가 천국에 가고자 하는 그 음행을
아니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데
마치 세상에 속한 그 버릇 그대로 천국에 가서 까지 발휘 할려고 하니
여전히 예수님의 나라를 개무시 하더라 말이죠
주로 하나님 나라 운동 하는 놈들이 지금까지도 그래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아주 아주 개 무시하는 자들이
놀랍게도 성화론자들 의로움을 쌓겠다 라는 자들 아닙니까

사도바울도 죄를 인간이 [짓다] 거짓말 [한다]로 봤던 
율법의 대가였던 바리새인 중이 바리새인 이였는데
아예 이제는 죄인 중의 괴수 라고 들어오고 나가고 라는 시선에서
이미 모든 인간은 십자가에 의해서 다 죽은자 라고 시인을 해 버렸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죄가 불의함이 들어오고 나감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들어오고 나간다 라고 했을때에
하나님이 심판의 주 되심을 드러내고자 표상 으로 삼았기에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된다 말이죠
심지어 지금 현재까지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 잔상이 남아있는 듯
가는 곳 마다 차별을 격고 있고
그들은 그것을 억누르고 돈으로 승화 하더라 말이죠
율법 만이 자신들을 지켜준다 라고 말이죠
안 망한다 라고 말이죠
여전히 죄가 인간을 다루는게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 라는 자기 숙제로 봄으로 인해서

뭐 그런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이 선해지겠네 라고 비웃는 겁니다

비유 비밀을 해석할 수 있는냥 무시하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 그 의
그리고 하나님이 선해 지겠네 라는 그 선이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했음을 못 보고 믿음의 관계로써의 표현을
율법의 행함으로 해석하게 되니
예수님의 죽음을 항상 빼 먹느 언약을 빼버려요 글쎄
자기 손해냐 아니냐 그것만 계산한 겁니다
아 그럼 내가 율법 그 동안 지킨 것 다 허사다 이말이네 에라이 퉤퉤퉤
보세요 자기 손해 안 보겠다
난 구원 못 받으면 안된다 라는 것이 먼저 깔린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다 보니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 죽음을 죽음 되게 하시는
십자가의 피 곧 죽음 곧 하나님의 의를 못 보고 복종치 않고
그저 자기 열심 그저 자기 의 쌓기여부로 천국 가냐 못 가냐 그것만
바울아 제발 좀 이야기 하고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십자가 좀 그만 좀 캐라
뭐 알아먹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도 모르는 그 비유 말해서 뭐하노 라는 식입니다
더 약 올리게 나는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니
미치고 팔짝 뛰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고침을 받을까봐 두려워 떠시는
이 비유 이 비밀의 방식이 아니면 말씀 안하시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사망의 비밀을 모른채로 정녕 죽으면 죽으리라
주께만 범죄했습니다 라는 언약의 고백 
성령으로 인한 고백이 무슨말인지 모르는 비밀이기에

생명의 비밀도 모르는 겁니다
생명은 주께만 있고 
주님만 생명인데
그 유일한 생명 되신 예수님만 죽인 주께만 범죄한 자인데

자기도 살아있다 라고 보니까
살인 안했으면 천국 살인 했으면 지옥 이라고
지 마음대로 해석하는 그 망상에
주님은 남을 미워하는 자 마다 살인하는 자 라꼬
모든 아담은 결국 산영 즉 살았다고 우기는 좀비로써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이 십자가 사건에 다 동참된 식이다 라고
살인마로 규정해 버렸다 말이죠
다들 미워하거든요 남녀노소 어린아이 곧 늙어 죽는 힘없는 노인 마저도
예수 죽이는데 있어서 예수 미워하는데 있어서 일심동체 이다 말이죠

왜? 율법의 행함으로 들어가는 천국을 가짜로 규정해 버렷으니
이제 죽어도 살아도 어딜 갈 수 있는 것이 없도록 다 없애버렷으니 말이죠
그게 기쁜소식인데 말이죠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만 들어가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곧 유대인의 왕이 섬기고자 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한
그래서 그 십자가의 증상물로 태어난 자가
표상이
실상이 낳은 
피신랑이 피를 흘려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사랑만 따지시는
화목제만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피 흘리심만 따지시는 그 나라인데

그 외에는 다른 나라는 없는데 그래서 소원인데
왕노릇인데

죄가 왕노릇해서 죽기를 무서워서 가짜 천국을 만들었는데
어디에게 갈수 없게 죽어도 못 가는 마치 구천을 떠도는
월말 김어준 철학 강의에서 불교에서 그런 자를
이 땅에서 아직 미련이 남아 있어서 자기따나의 사건이 해결이 되지 않은채로 있어서
떠도는 것이 귀신이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제발 좀 가라 라꼬 49제 칠 칠이 사십구
우리로 치면 칠칠절 해방절 나팔절 뿌뿌뿌 완료 마침이 되었는데
마침이 없이 계속 의문의 반복으로 미완료인채로 뭔가 찝찝하게 남아있으니 구천을 떠돈다 라고 말이죠

마침이 없으니 완료가 없고 다 이루었다가 없으니
굴레에 쇠사슬에 다람쥐 챗바퀴에 갇혀서 감옥 수갑채워져 있으니
계속해서 떠도는 겁니다
어딜 가고 싶어도 못 가도록 막아버렸으니 말이죠

죄를 짓고 안짓고 거짓말을 하고 안하고 로 해석을 하더라 말이죠
왜 해석하느냐 살아있다고 보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요
그런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나
지금 주민등록증 말소 안된 사망처리가 안된 아직 살아있다고 하는 자들 또한
주님이 보시기에는 다 귀신들인 이미 죽은자로 보시는데

왜 그럼 안 죽고 아직 살아있느냐 빨리 죽이시지
그건 죄 지으라고 살려주시는 겁니다

죄를 죄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보라꼬
넌 이미 죽은 환자야
죄인이야를 보여주심을 당할려며는 의사가 외부에서 들어와야 하니까 말이죠
죄의 소원처럼 죄가 세상에 들어왔듯이
은혜가 그 왕노릇이 들어와야 하니까 백날 설명하고 교육하고 이해시킨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오로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그 당사자가 찾아오심 밖에 없어요

아니 2천년 전에 죽은 예수님이 어찌 지금 2023년에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게 바로 사람의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믿음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으니 문제죠
아니 1998년 쯤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갈 그 쯔음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 그 시간을 우려먹어야 가짜 믿음이 안 들통날려고 계속 우려먹을수 있는데
아니 지금도 현재도 2023년 기후재앙 닥치기 직전 지금 현재 8월 24일로
주님 쪽에서 만나시고자 이렇게 말씀으로 쳐들어 와 버리니
도망 칠래야 도망 칠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먼저 심판하듯이 먼저 매 맞는 겁니다
이 사랑을 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요
죽음 보다 강한지 안한지 우찌 아느냐
죽음이라는 사망의 권세 왕 노릇을 먼저 깔고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을 안 당하면 또 모르겠는네
재수 없게 사실은 최고의 축복이요 영광이지요
먼저 당하게 되니 본 것을 안 봤다 라고 부인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물 깃는 박을 던져버릴 정도로 놀래 자빠져서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죄를 죄 되게 하시고 제대로 죽이고 제대로 살리는 이 선지자가
마지막 아담인 살리는 영 종말때에만 나타난다는 그 영 완료된 마무리 마침이 되는 영을 부으시는 자가 나타났어요 라고 동네방네 외치고 돌아다니는
아름다운 발이 안 되고는 못 배기게 되더라 말이죠

그때 첫사랑이 지금 매일 매일 첫사랑으로 계속 쳐들어 오닝께
무슨 수로 말리느냐 말이죠
자꾸 자꾸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데 말이죠

계속 해서 많이 탕감 받는 일 밖에 없어요
7에 70번 용서 받는 일 밖에 없어요
즉 상대적으로 죄 짓는 일 밖에 없어요
뭘 해도 죄 밖에 없어요
매일 매일 일만달란트 44조 20년 전 부터의 계산치인데 요즘으로 치면
영적가치로 치면 만수르 보다 더 부자인 빈 살만 보다 곱하면 일만달란트 라는 식이다 말이죠
목숨 값잉께 아니면 16만년 곱하기를 하던가
그런 첫사랑이 그때 90년대 보다 더 많이 탕감 더 많이 용서로써
퍼붓듯이 말이죠 2800조 빈살만 저리가라입니다
그거 용서 취급도 안해줍니다 돈 취급도 하지도 않아요
남을 7번 용서가 무슨 놈이 용서냐 말이죠
적어도 7에 70번 용서는 돼야지 라고 번데기 앞에 주름 잡는다 취급 당한다 말이죠

주님은 이미 모든 인간은 죽었응께 해석의 권리 조차도 안 주는데
준 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더라 말이죠 

그래서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그렇다
에라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겠네 라고
믿음이 아닌 행함으로 해석하는
믿음도 그냥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곧 하나님의 의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그 모순된 간극 공백에서 출발하는
십자가의 죽음이거든요
그런데 자꾸 자기가 살아있다 라고 보니까 해석을 취사선택합니다
믿음도 내 믿을 수 있는 것 선택하고 
내가 도저히 믿을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것은 배척하는 취사선택을 하니
그 행함으로 나 살아있음을 기준으로 해서 출발하는 해석으로 하니까

사망도 생명도 모르면서
성전에 정녕죽으리라 와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왜 있는지를 모른채로
성전의 두 기능 몸 장소와 날짜 시간을 없애버리고 새 몸 새 날을 보여주는
참성전의 능을 모른채로 자기 의를 쌓기 밖에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지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이 넘어오는 것을 거부하더라 말이죠
이 죽음과 생명을 함께 동행해야 하는데

동행자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지가 동했했노라 라고 임금삼고자 했으면 됐다 라고
그런데 임금 삼을 줄 알고 예수님은 참성전은 도망쳤거든요

죽음의 비밀도 모른채로 생명의 비밀을 알수 없게 하고자
도망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

비유 비밀을 해석하겠다 라고 달려드니

어라 비유가 안 도와주네 라고 가룟유다 하나님나라 운동하는
독립운동 하는 자가 비유 그까짓거 뭔데 라고 비유 없어버리고 죽이면
안 비유가 되지롱 이라고 죽여버리더라 말이죠

역시나 그 비유를 죽여버리면 이제 비유 아니지롱 이라고 나오는 겁니다


(계 11:3, 새번역) 나는 내 두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계 11:4, 새번역)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요, 촛대 두 개입니다.
(계 11:5, 새번역)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계 11:6, 새번역)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 11:7, 새번역)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아비소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계 11:8, 새번역)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곧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계 11:9, 새번역)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 두 예언자의 시체를 볼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 11:10, 새번역)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 시체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이 두 예언자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계 11:11, 새번역)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나와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 ㉡또는 '영이'
(계 11:12, 새번역) 그 두 예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는 큰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내게로'
(계 11:13, 새번역) 바로 그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는데, 그 지진으로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은 두려움에 싸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계 11:14, 새번역) 둘째 재난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 재난이 곧 닥칠 것입니다.
(계 11:15, 새번역)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 ㉣또는 '메시아’


비유 비밀을 해석하겠다 라고 달려드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 죽여버리는 겁니다
비유란 해석하닌게 아니라 그냥 해석 당하는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가 믿는게 아니라 믿음이 나에게 들어오는 선물입니다

그러니 왜 찢는지 라는 이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죄가 왜 들어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말이죠

죄를 죄 되게 하기 위해서 죄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들어온 죄를 통해서 성전의 기능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걸어다니는 성전 사람의 손으로 지을수 없는 참성전의 기능인 의사기능
곧 더러움애서 거룩으로 옮기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이죠

의인 그냥 의인이 되겠냐 말이죠 율법 지켰다 라는 행함을 강조할거 아니겠습니까
남을 7번 용서했다는 둥 이레에 두 번 십의 일조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의가 안 나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도 않아요
주님이 만드신 환자 주님이 만드신 죄인이 아니거든요
주께만 범죄한 자가 아니다 보니
고통받는 메시아를 모르고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누군지 모른다 라는 겁니다
그저 마귀의 세가지 시험처럼 나의 살아있는 생명에 딱 맞는 메시아가 되어달라고 하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나 이런 메시아 되어주세요나
바벨론 왕의 점괘나
우리가 평상시 기도하는 남 7번 용서, 십일조 이레에 두 번금식,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는 이것이 음행을 제거했노라 하면서도 음행이 가득한
바벨론 왕의 점괘나 점쟁이 찾듯이 기도하는 것이나 다 똑같다 말이죠
죄 안 지었는데 그것만 우길 뿐이지
죄가 들어오는
인간이 죄 짓나 안짓나에 달린게 아니라
죄가 인간들 다루느냐 숙주로 삼았느냐 들어온거냐 나가느냐에 대한 문제를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식입니다

그러니 그 비밀 그 비유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라고 없애도(바로 위에 올린 계시록의 두 증인 죽여버리기) 
다시 나타나면 그 죽음이 소용이 없는 거죠 사망아 도대체 누굴 쐇니
분명 쏴서 죽였는데 다시 일어나면
총이 화살이 무기가 아무쓰잘데기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죄 보다 사랑이 더 강한겁니다
다시 나타낭께
그 비유 죽여도 또 다시 살아나니까
그럼 이제는 안 보면 그만이지 뭐 무시하면 그만이지 뭐
마치 새롭게 무시하는냥 애초부터 무시햇거든요
처음부터 여호와가 누군지 창조자가 누군지 몰랐으면서 말이죠
다시 산 자는 창조주와 함께 하는 자 밖에 없어요

거부하고 십자가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 안 보면 되지 라고 해도
이 십자가 라는 구원의 뿔이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의 속내를 자꾸 수셔대는 겁니다
다리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실족케 만들고 말이죠
바벨론 왕의 점괘가 옳도록 만드시는
어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말이죠

물 위를 걷는 베드로 팍 다리 걸어 넘어뜨려 실족케 만들어
물에 빠져 죽도록 아니 물 위를 걷는 것을 자랑할려다가
물 속에 빠져 죽는 발가벗겨짐 웃사꺼리가 되니까
그러니 이 바벨론 왕 독수리 이 풍랑 이 사탄이 가시가 아니면
주님은 영광 안 받는 겁니다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아요 글쎄
즉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겁니다

계시록 올린 구절에서 일곱 번째 전 까지의 여섯 번째 까지는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 여섯 번째 날까지 도는
우리를 찢으시는 우는 자 만드심처럼 보입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다 라고 뺑뺑이 도는

죽으면 죽으이라 라는 자기부인으로 만드시는 종말의 때 성령의 때입니다
나의 때가 역사가 날라가는 날입니다
그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되는
일곱 번째 날은 이제 싸매어 주시는 나팔 뿌뿌뿌 하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날입니다

그 무능의 자리
그 백성 아닙니다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그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 로암미 로루하마(안긍휼) 이스르엘(버림받은)
그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는
단절을 거쳐서 나온 이 화목제물 만이
우리의 음행 곧 음행을 제거한 나 옳았지요 라고 우기는 그 음행을
제대로 제거하는 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하나님의 의 앞에
나의 의 쌓기는 제대로 찢겨짐으로써
바벨론 왕의 점괘나 우리의 의 쌓기나 똑같은 음행이기에
그 사망의 비밀을 거쳐서 생명의 비밀을 보니
뭘 해도 이미 죽어있는 자 임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봄으로써
왜 내가 달려야 할 그 자리에 왜 주님이 달리십니까
생명은 당신 뿐인데 라고
정녕 죽으리라 라는 저대로 된 절대 죽음을 보고서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제대로 된 절대생명을 보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 죽음의 비밀 그 생명의 비밀에 끼일수 없고
도리어 당함으로써
절대죽음과 절대용서 생명을 베푸시는 이 간극 이 공백에서 나온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오홀리바 언니 오홀라 사마리아 보다 더 더 더 더러운
여동생 예루살렘 오홀리바의 자궁 속에 자궁으로써
허다한 허물을 죄를 씻기시는 더더더 더러운 죄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신
이 언약의 정신 언약의 줄로써만
밀어붙이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동원이 된 겁니다
우리는 벌써 죽어고 남았어야 하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 라는 것은
죄 지으라고 남아 있는 겁니다
그 죄인의 자리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고 하시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죄를 죄 되게 하시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관계성을 거부하고 나 개인을 뚝 떼어서
나 라는 개인을 의롭게 만드는데 있어서 언약정신은 반대로
십자가는 그야말로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라고 볼륨 이빠이 틀어놓고서
이 십자가를 방해하더라 말이죠

저들의 이스라엘 곧 계시록에 의하면 
두 증인을 두 기능 참성전의 기능 몸과 때를 날리는
이 두 기능을 없애버릴려고 점친 날이
그 원수의 목전에서 죄인으로써 붙잡힌 이스라엘 몰살의 제비뽑기로 정해진 날
곧 심판의 날
나의 죄로 죽어야 할 날이 곧 나의 구원의 날이 되는
죄를 짓는게 아니라 죄가 들어온 날을 삭제 시키는 생명이 들어오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래서 포로된 날 백성이 아니다 라고 한 날이
오로지 화목제물의 공로로
구원의 날이 됨에 있어서
세상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아니 죄인인데 왜 용서하냐 말이죠
그러니 미치고 팔짝 뛰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말살의 날 끝 종말 말기 마지막 때의 날이 
도리어 우리의 구원의 날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심을 당하는 날이 되는

바로 이 화목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랑만 원수사랑 죄인사랑 환자용서의 날로만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도리어 의인들이 광명한 천사의 가면을 쓴 자들이
이 십자가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에 다 넘어져서 반발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마지막 아담이 오심으로써 살려주시는 영이 오심 때문에
우리 아담은 이 아담 말살의 날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심을 당하는 날에
진짜 인간

그러니 인자는 그럼 신이냐? 하나님이냐? 아니다 말이죠
하나님의 아들 이다 말이죠 즉 화목제물이다 말이죠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써 그것도 죄인
인간 취급도 못받는 죄인으로써

하늘 영광 버리고 오심으로써
모든 인간은 이제 가짜 인간으로 드러났고

인간이 믿는 신은 다 가짜 신으로 드러난
진짜 하나님이시다 말이죠

두 증인 당연히 율법의 대표자 모세이고 죄를 죄 되게 만드는 찢는 기능이고
당연히 엘리야 다시 오실 엘리야가 당신 입니까 라고 할 정도로
선지자의 대표 곧 종말의 때 시간 역사를 박살내는 기능이 선지자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아 율법이 대표 모세 라는 제사장 기능은 몸 공간을 찢는 기능이고요

그러니 인자는 이 두 기능을 담은 모든 허물을 담는 신체 몸 박스로써 몸 공간을 찢겨짐을 당하고
종말 새영 새마음의 때 
때란 인간의 공들여 시간을 들여 쌓은 의를 찢고 거부하고
주님의 완료 라는 끝을 땡기는 안식의 주인으로써 역사 시간을 찢는 묵시로써 완료로써
미완료가 없는 또렷한 이 사랑의 완성 율법의 완성 다 이루었다로써

그 인자로 비밀 비유로써 정녕죽으리라 와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죽음과 생명으로 오셨다

즉 죽어야 하는 죄인으로써 오셨다
그 죄인이 참 인간이더라 말이죠
나머지 모든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 건강하다고 우기는 의인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참인간이 없어요
그러니 죄가 들어간 숙주가 된 죄인에게
더 한 죄인으로써 오셔서 죄가 나가도록 하신 이 화목제
모든 육체를 공간을 몸 장소 공간을 찢는 더더더한 몸 더한 죄인으로 오셔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이 인자의 기능을 다 이루었다 말이죠

정작 모든 아담은 죄인 안 될려고 의인될려고 하는데
주님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의 자리에서 버림받았다 말이죠
내 아들 아니다 고아다 말이죠
로루하마 긍흉히 여기심을 받지 못했다 두 번째 마귀 시험 종교적으로 
사랑받는 아내가 아닌 버림받은 과부 온갖 저주를 막아줄 남편이 없는
로암미 백성 아니다 인간 아니다 섬기는 임금이 없어서
나라 없이 떠도는 떠돌이 나그네 이방인으로 취급 받았는데

그 분이 도리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였고
그 분이 긍휼을 베푸실 여호와 였고
그 분이 이방인의 구세주로써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는

누가 믿었으리요 즉 안 믿져지는 겁니다
누가 저 분만이 참인간으로 보이겠습니까
인간은 모두다 자기가 인간이다 라고 여기지
짐승으로 원수로 죄인으로 환자로 여긴다면
저 분만이 참 인간임을 거울로써 십자가로써 언약으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볼 텐데
본다고 하니 소경이니까 안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신입니다
인간은 단 한버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어요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새긴 그런 자기의 행위만을
신으로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신이 나타났다 빨리 퍼뜩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신이 아님을 들통당하고
자기가 인간이 아닌 마귀임을 들통당하게 되어 있다 말이죠

그 당시 제일 존경받는 이스라엘 선생이자 지도자인
바리새인을 악마 취급 하시는 분은
예수님 딱 한 분 뿐입니다

이런 또라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다들 존경하는 선생 취급하는데
(또라이란 법을 거부하고 지킬줄도 몰라요 오로지 법을 완성해 버리는
사랑만 추구할 뿐입니다 모든 경계선을 허물어 버리는 돈키호테와 같아요
아 그래서 죽은 신 니체가 말한 유럽의 신화 이야기를 인용해서 만든
그 죽은 신을 다시 지젝은 또라이를 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유일한 딱 한 사람만이
이 바리새인을 마귀로만, 독사의 자식으로만 대하시는데 바리새인이 안 죽이고 베기겠습니까?
다들 자기들을 다 존중하고 있는데 유독 예수만 저러고 있으니 바알세불 걸린 대 마왕 맞지 않냐 말이죠

아니 자기 의를 쌓는 유대인들의 멘토 길인도자를 소경으로 하루 아침에 말이죠
바로 이렇게 상극으로 극과 극으로
자가 의를 쌓는 자의 대표성인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으로 취급하시면서까지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의를 대 놓고 공격하심에 있어서
예수님만 주장하시고
예수님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시지
다른 이는 없다 라고 취급해 버리시는 겁니다

예수님 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의 곧 찢겨지시고 다시 부활하시는
참성전 그 자체이신
세상의 중심이시니까
모든 입을 다물게 하시는 분이시니까 말이죠

이 주님의 십자가의 의에 의해
매일 매일 나의 의로움이 공격당함으로써

오로지 나를 나의 표상으로 내가 나를 낳는 나의 증상물이 아닌

오로지 오실 자의 표상
마지막 아담이라는 살려주시는 자의 영을 받은 자로써의
살려주심을 당한 오직 화목제물의 증상물로써
우리를 매일 매일 죽이시는 아담
날로 날로 겉사람을 죽이시고
속 사람을 날로 날로 새롭게

예수님을 나타내시는 자로 증상물 오실자의 표상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다른 복음 
다른 기쁜 소식은 없으니
하나도 안 기쁘니
아니 숙제 안 적도 없는데 정답이 찾아와서 무시험 합격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것에
가장 악날한 그 다윗이 말이죠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모른다고 했던 그 베드로가 말이죠

예수님을 죽이는데 총감독 연출을 맡았던 그 사도바울이 말이죠

그런 죄인 중의 괴수가
불의한 자의 자리에서
오로지 이 첫사랑 처음맹세만을 증거하기로
십자가만 알기로 한 겁니다

나의 죄를 대신 해서 죽으신 
하나님의 저주인 심판을 받은 자는 예수님 뿐이기에

다른 사랑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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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4 왕관을 제거하고 면류관을 벗겨라 낮은자 높이고 높은 자 낮춰라 (겔 21,23-27)

바벨론 왕의 칼과 점괘 (겔 21,18-23)
에스겔 2019 2023. 8. 19. 13:24
21-063 바벨론 왕의 칼과 점괘 (겔 21,18-23)

〈에스겔 21,23-2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2쪽, 찬송가 037장 (새 037) 주 예수 이름 높이어, 204장 (새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면류관 가지고(찬 25)
주 예수 이름 높이어(찬 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찬 37)
예수 앞에 나오면(찬 205)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찬 204)

〈찬송가 037장 (새 037) 주 예수 이름 높이어〉

1.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만유의 주 찬양

2.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잊을 죄인아 못잊을 죄인아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만유의 주 찬양

3. 이 지구 위에 거하는 온 지파 족속들 온 지파 족속들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만유의 주 찬양

4. 주 믿는 성도 다 함께 주 앞에 엎드려 주 앞에 엎드려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만유의 주 찬양       아멘


〈에스겔 21,23-2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2쪽〉

(23)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헛점으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24)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25)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끝 때니라
(2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찬송가 204장 (새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1.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2.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3.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겔 21:23, 새번역)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이것이 헛된 점괘로 보이겠지만, 이 점괘는 예루살렘 주민에게 자신들의 죄를 상기시킬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잡혀 갈 것임을 경고할 것이다.

(겔 21:24,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죄가 폭로되었다. 너희가 얼마나 범죄하였는지, 이제 모두 알고 있다. 너희의 행실에서 너희의 온갖 죄가 드러났으니, 너는 벌을 면할 수 없다. 나는 너를 너의 적의 손에 넘겨 주겠다.
(겔 21:25, 새번역) 너, 극악무도한 이스라엘 왕아, 네가 최후의 형벌을 받을 그 날이 왔고, 그 시각이 되었다.
(겔 21:26,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왕관을 벗기고, 면류관을 제거하여라.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낮은 사람은 높이고, 높은 사람은 낮추어라!
(겔 21:27, 새번역) 내가 무너뜨리고,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도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 다스릴 권리가 있는 그 사람이 오면, 나는 그것을 그에게 넘겨 주겠다."



먼저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신다 라는 의미가 생각나서
높은 과 낮은 이라는 단어로 검색해 봤습니다

(전 10:6, 개역)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 부자가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겔 17:24, 개역)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겔 21:26,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행 8:10, 개역)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롬 12:16, 개역)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히 7:7, 개역)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어라 내가 찾는 구절은 아니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가 에스겔 17장에서 
아 우리가 살펴본 마른나무 푸른나무 곧 죄인 의인 모조리 다 불 태우시겠다 
살륙하겠다 라는 의미가 이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신다 라는
종말의 영인 성령이 곧 여호와의 불이 하시는 일이구나 라고 또 한번 되새기게 되네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찾던 구절이 아니라서 다시 검색을 해 봤습니다
네 맞아요 물론 한나 브린다 사건의 한나기도와 신약의 마리아 기도가 바로 연관되지만
혹시나 또 뭐 있나 싶어서 말이죠

높 과 낮 으로 두 단어로 검색하니
구약은 주로 욥기와 이사야에 집중이 되어있고요
욥기 곧 지혜(서)는 선지자 라는 종말의 영을 받은자를 통해서 실행하신다
뭐를 실행하시느냐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를 높이시고자 말이죠
그 나머지는

(신 28:43, 개역)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삼상 2:7, 개역)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하 6:22, 개역)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욥 5:11, 개역)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
(욥 22:29, 개역)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욥 24:24, 개역) 그들은 높아져도 잠시간에 없어지나니 낮아져서 범인처럼 제함을 당하고 곡식 이삭 같이 베임을 입느니라
(욥 41:34, 개역)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
(시 75:7, 개역)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 138:6, 개역)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전 10:6, 개역)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 부자가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사 2:11, 개역)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사 2:17, 개역)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사 10:33, 개역)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사 26:5, 개역)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겔 17:24, 개역)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렘 16:6, 새번역) 이 땅에서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묻어 줄 사람도 없고, 그들의 죽음을 곡하여 줄 사람도 없고, 그들이 죽어서 슬프다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머리를 밀어 애도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욘 3:5, 새번역)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겔 21:26,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단 5:19, 개역)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23:12, 개역)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0:15,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눅 14:11, 개역)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8:1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행 8:10, 개역)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행 26:22, 개역)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롬 12:16, 개역)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고후 11:7, 개역)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히 7:7, 개역)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약 1:9, 개역)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 4:10, 개역)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새번역)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신약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의가 곧 높은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는
이 거룩으로 밀어붙여서 다 이루었다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왕관과 면류관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게 같은 것 아니냐 라고 보는데
이 차이가 뭔가 싶어서 살펴보니

왕관은 권위 권력과 연관된 의미로 검색이 되고
면류관은 오히려 동양 문화에서 잘 표현이 된 앞 12줄 뒤 12줄이 달린 관 곧 모자입니다

그냥 성경에서는 왕이 쓰는 면류관으로써 전쟁의 승리자에게 씌우는 겁니다
뭘 해도 예 가 되고 아니오 함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면류관을 벗긴다 라는 말은 왕이 제 기능을 못한다 라는 거죠
곧 백성을 섬기고 적으로부터 구원자의 기능을 못하는
왕으로써의 기능이 없으니
의사로 치면 수술을 못하고 대충 대충 고친다 라는 겁니다


자 그래서 다시 제가 찾고자 했던 구절인

(삼상 2:7, 개역)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한나의 기도와 마리아의 기도

(눅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46,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개역)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8, 개역)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9, 개역)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 1:50, 개역)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 1:51, 개역)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53, 개역)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 1:54, 개역)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 1:55, 개역)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눅 1:56, 개역)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로 하나님의 의를 요청하는 브로큰 애로우 기도 ㅋㅋㅋ
적군이든 아군이든 다 멸살시키는 폭격요청 암호명
푸른나무 의인이든 마른나무 죽은 악인이든 다 살육해 달라 라고 말이죠
이런 무시 무시한 기도를 여성이 공통적으로 기도합니다
에스더의 기도 또한 죽으면 죽으리라 도 같은 의미 입니다
자폭기도 
자기나라 이스라엘에게 폭격요청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요청하는 기도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부어 달리는 기도
이 얼마나 무시 무시한 기도를 한나와 마리아가 드리더라 말이죠

아니 도대체 왜 이런 기도를 할까요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를 점쟁이 찾듯이 물으러 오고
바벨론 왕의 점괘를 여호와와 맹세의 관계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유대인들은 안 믿는다 라고 하지만
정작 점쟁이 찾듯이 찾는 기도를 하기는 매 마찬가지이듯이

이거 이스라엘 아니다 라고 
마치 과부의 기도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불의한 재판장을 귀찮게 함으로써
불의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기도함으로써 
마치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게 말이죠
부정한 거짓말로 정탐꾼을 숨기는 부정한 창녀 기생 라합의 기도처럼
우상조각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눈물로 희생제물 바치듯이 말이죠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의와 딱 맞아 떨어지기에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라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눅 18:1, 개역)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눅 18:2, 개역)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눅 18:3, 개역)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눅 18:4, 개역)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눅 18:5, 개역)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눅 18:6, 개역)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눅 18:7, 개역)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8,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9, 개역)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 18:10, 개역)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인간 자기자신 자아의 개인적인 원한에 대한 복수로 원한을 풀어달라가 아니라
택하신 자는 오로지 이스라엘 뿐이다 말이죠
이스라엘의 원한은 딱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자들에 대한 복수이다 말이죠

그런데 과부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이스라엘 약속의 땅에서
혹시나 생겨도 시형제결혼법이든 다 동원해서 과부 취급못하도록 말이죠
그런데 도리어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의 원수 짓만 골라서 하다 보니
과부를 등쳐 먹는 것은 아예 당연한 보편적인 속담이 되어버린
그 정도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 놓여진 것을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를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 뒤짚어 씌우더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 한나와 브린나 사건은 그야말로 이스라엘 전체 사회의 증상물로써
복선이 깔려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나가 마리아처럼 브로큰 애로우 폭격 요청을 기도하는 겁니다
과부가 아닌데도 한나가 과부 취급 당해버렸듯이
율법을 지키는 남정네들에게
마리아가 처녀로써 임신한 그 상황을 남자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돌삐던지는 이 상황을
유대인 전체 사회가 얼마나 악한지를 본인들이 하나님의 원수인 적이면서
마리아를 율법을 어긴 하나님의 원수로 적으로 뒤짚어 씌워서 돌삐를 던지더라 말이죠

그래서 왕의 기능을 못하기에 면류관을 벗기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왕 같은 제사장들인데 말이죠

이스라엘이 왕을 달라고 한 기준은 결국 하나님의 의를 거룩을 요청하는게 아니라
자기 존재에 손해 안 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우상숭배자 곧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저 이방인과 다를바 없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점괘 랑 다를바 없어요

그러니 너거들 원하는 소원대로 바벨론 왕의 꼬추 큰 꼬추
앗수르 꼬추를 사모한 언니 사마리아 오홀라를 우상숭배자라고 욕하면서도
더더더 큰 바벨론 꼬추를 더 사모한 여동생 예루살렘 오홀리바 너가
그 큰 꼬추 큰 성 바벨론에게 사모한 대로 함 당해봐라 라고
자기가 기도한 그대로 당해봐야 비로소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하시는 겁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존재는 관심이 없어요
이스라엘 기능만 뽑아내시는 겁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니까 
그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누리니까
자기 존재감이 뭐 특별한 줄 알았다 말이죠

그럼 그 물 위를 걷는 것을 사모 안해도 지금 이 순간 물 위를 걸으니
갑자기 특별한 자신을 보고서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사탄도 물리쳐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집디다 라고 말이죠

그럼 그 물위를 걷는 것 계속 우려먹듯이 풍랑 위도 걸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이스라엘 기능이거든요 하나님의 군사 말이죠
그런데 풍랑 위는 이 사망의 권세는 못 이기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이길수 없죠 
왕이 필요가 없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신 이유는
주여 저 못 이깁니다 라고 주신 것이다 말이죠
그런데 다들 이방인의 왕 제도처럼
모든 이방인이 왕을 구하는 것이나
이스라엘이 왕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나
이미 자기 존재의 유익을 이미 깔다 보니 누가 백성이 말이죠
그거 깨 부술려고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셨는데
예수님을 물 위를 걷는 베드로 존재 자기 존재를 높이고자 활용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갑자기 임금 삼고자 세 번씩이나 따라 잡을려고 하고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의 기능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원수인 적의 모습으로써

그 적의 모습을 깨뜨리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겁니다

즉 로마서 지난 주 말씀처럼
다윗은 아담은 오실자 곧 다윗 자손의, 오실 자의 표상이다 말이죠
그러니 에스겔 오늘 본문은 에스겔은 선지자 로써
인자로써
이 다윗언약만을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즉 죄인 곧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써
유일하게 산 분이신 살려주시는 영 만을 오직 화목제 만을
그래서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죄인 환자의 자리에서 말이죠
비언약의 자리에서 언약을 외치고자
보배를 담은 그릇이니 말이죠

다윗도 그런 짓하다가
하나님의 원수 짓 곧 정직한 영이 없고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뭘 해도 죄 밖에 없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고 주여 어서 심판해 주소서 라고
상한 심령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부어주심을 받아서 ㅁ
브로큰 애로우를 폭격요청을 한 우는 자
비로소 이스라엘의 기능을 달라고
정직한 영을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없응께 없으니 주의 마음이 없어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어서 그 마음 주소서 라고
과부의 기도처럼

없는 자리에서
원수 자리에서
죄인 자리에서
환자 자리에서 부르지는
비로소 하나님의 원수인 자기자신으로부터 구출해 달라고 기도하는
낙심치 않는 과부의 기도를 하는 겁니다

즉 이 눈에 보이는 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아니다 가짜다 라고 말이죠
고자질 하는 겁니다

왕이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원수인 적과 싸우는 자 이고
의사 만이 병마와 싸워요

전쟁에 승리한 자 곧 면류관을 쓴 자만이 성전을 세우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중심인 하나님의 집을 세우게 되면

실패 할 수 밖에 없는 율법 없는 이방인의 왕처럼
왜 왕을 구할까요 왕제도 말이죠 사망의 권세로부터 종 노릇하는 것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 유익을 구하고자 왕을 구하고 예수님을 임금 삼는 것은
결국 자기가 없는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된 선악과 따먹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처럼
왕을 자기 유익 때문에 임금 삼는 것은 곧 본인이 유일한 왕의 자리에 앉는
교만한 바벨론 왕과 같은 하나님의 별 뭇 별 보다 더 큰 자가 되겠다 라는 것이다 말이죠
인간의 믿음이 그래서 살인의지입니다 오로지 이 화목제물인 사랑만을 없애고자
선악의 법 지키는 결국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겁니다

그러니 사랑이 없이는 화목제가 없이는 울리는 꽹과리인 거죠
진짜 사랑은 나를 이 아무것도 아닌 자 만드시는
하나님의 원수로 만드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화목제에서만 나오는 믿음으로써
우는 자를 잃어머린 자만을 죄인 만을 부르러 오신 겁니다

인간은 환자라서 이미 병이 걸려버렸으니 싸우기는커녕
전쟁은커녕 이미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의 종노릇인 숙주일 뿐이다 말이죠
죄를 짓냐 안짓냐가 아니라 죄가 들어와 버린
죄가 왕 노릇하는 주체가 되어버린 상태이니

왕이 오셔서 어서 건져내달라 라고 우는
포로된 자리 소경된 자리 억눌린 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 
곧 흑암의 백성 즉 지옥 백성 하나님의 원수이고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앉은 뱅이 즉 사망의 몸인 화로다 화로다 죽어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요
개같은 갈릴리 이방인 즉 저주 받아 마땅한 자이다 라는 겁니다
이들 만이 고쳐달라고 의사를 구하지
건강한데 의인인데 누가 구원자 왕을 구하고 누가 의사를 구하겠습니까
목 마른 놈이 우물을 찾고자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죄가 들어와 버린 죄의 숙주로써 부르짖는 겁니다
자신은 전쟁을 하기는커녕 도로 포로된 입장이니 말이죠
저들 하나님의 원수와 같은 자로써 도리어 아군 예수님과 싸우도록
사망의 왕노릇 의 종노릇함으로써 총알받이로 감염이 된 하나님의 원수이니
자수를 하고 회개를 하고 항복을 외쳐야 하는 이유가
적으로부터 감염이 된 겁니다

세계 2차 대전 중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군에게 식민지가 된 한국인이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 무조건 자수 무조건 회개 하고
살려달라고 우는 바로 매국노 세리 자신이 로마로부터 포로 당했으니까
이 여고냐가 좋은 무화과 나무이지
난 로마로부터 포로 안 당했고 저 바벨론 왕이 점괘를 안 믿는
맹세한 민족 약속된 민족 그래서 우리 바리새인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라고 우기지만
그들의 믿음은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바든 애국자 독립운동가 다운 하나님 나라 운동 하는 그 믿음들이 순 엉터리 이기는 바벨론 왕의 점괘랑 똑같다 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시드기야 마지막 남유다 왕 갈기 갈기 바벨론 왕에게 찢겨 죽는
그 악한 무화과 나무인데
여고냐 어린아이 무능자 왕은 그 포로됨 속에서 매국노 세리처럼
매국노 영화 마지막 황제처럼 말이죠 여고냐를 좋은 무화과 나무로써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 다윗언약인 새언약 대로만 밀어붙이시고자
다윗을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드시고
베드로를 자기 의를 쌓은 악한 무화고 나무인 시드기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가 아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들어서
이 화목제물에 딱 맞는
새언약 곧 십자가의 피에 딱 맞는 걸맞는 새로운 죄인으로 만드시고자
우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심지어 우는 것 조차도 닭이 대신 울게해서 까지 만드셔서 말이죠

이 사랑만 이 화목제만 지혜자의 질문으로 다가오시고
화답하는 찬양이 이 화목제만 옳았다 라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세 번 씩이나
절대저주 절대 심판을 거친 꼬끼오 세 번을 거쳐져 완벽한 찢겨짐
빈털터리 됨 아무것도 아닌 게 됨의 공백을 거쳐서
절대용서 절대사랑이 철철철 흘러 넘치는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는
뭐 칼? 가뭄? 죽음? 핍박?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이 넉넉한 사랑의 왕의 승리 때문에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 라고 절대용서만을 화답하면서 새노래로 새신랑에 걸맞는 새찬양을 하는 겁니다

아주 사랑만이 흘러넘칠 뿐인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닌
우리가 전쟁을 할 수 없는 사망의 숙주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 마른 뼈로 군사로 삼으셔서
주님의 전쟁에 가만히 서서 증인 보라 목격자로 삼으신
그 전쟁의 승리자가 누구신가를 외치라 라는 겁니다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인간은 자기 이야기만 나열 합니다
평생을 죽을 때 까지
그러나 누가 홀로 다 이루셨는가를
성령을 부어서 증인으로 삼아서 목격한 그 승리를 
그가 누구신가 라는 비밀을 외치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아무도 이 비유 이 비밀을 말귀 못 알아먹응께 말이죠
그 비유
그 의사 혼자 만의 병과 싸우는 하나님의 원수와 싸우는 사투를 그 외로운 전쟁을 목격하라꼬
파수꾼으로 삼으셨으니 에스겔도 죽이시는 판국에
사도들도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판국에
그 영광 우리꺼 까지야 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영광이냐 말이죠

그 전쟁하는 자만이 왕이요
그 전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면류관을 쓰는 겁니다
그 왕 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장소 공간 그리고 역사가 아닌 주님의 시간인 묵시세계
말씀세계 속에서 영원히 동행하며 사는 겁니다
그 분만이 만드시는 겁니다 [예수 안]을 말이죠

우리가 자주 표현해서 그렇지 종교적인 용어로 세뇌하다 싶이 말이죠
예수 안 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인간은 그저 자기 자신의 안도 몰라요
그러면서도 자기 안 밖에 관심이 없어요
아무리 가족이라도 한 몸이라고 우기는 남편 아내의 관계에서도
안 이라는 개념은 하나가 되지 않는 이상
자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찌 안이 됩니까
늘 밖인데
자기가 자기를 봐도 자기 안 속에 못 들어가는 바깥이 찬 밥 신세인데
하물며 생판 모르는 남인데
그 남의 안에 우찌 들어갑니까?
철저한 밖만 누리는 현실 뿐인데 말이죠

그 밖인 하나님의 원수 됨을 철저하게 느낀 자가 바로 다윗 왕인데
이스라엘 왕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나서 바깥에서 왕 압둘라 굴에서
그것도 쫓겨난 자들 곧 고아 과부 나그네 소경 문둥병자 앉은뱅이 등등
그들과 함께 함 속에서 왕으로 세움 받았으니 말이죠

정규직 사울왕이 아닌 비정규직 다윗왕 바로 짤려도 할 말 없도록
짜르기 쉬운 비정규직 이스라엘 왕이
이 예루살렘 성전을 시온에 세우는
사망 권세를 이긴 전쟁의 마침이 되는 자가 다윗왕이거든요

그런데 손에 피가 많으니까 안된데요
그래도 하겠데요
더 피가 많도록 손 깨끗한 자로 하시는데
그것이 때 라는 종말의 영을 곧 성전이 두 기능
5대 제사 라는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그 기능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
곧 다윗은 혜택은 받지만 때를 아직 일곱 제사는 아직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쟁의 마친 다윗의 자손이 성전을 세우는데 어라 솔로몬 왕도 안 된데요
섬기는 목자가 이방인에게서 오는 겁니다 곧 요셉 지파입니다
유다 지파가 아니라 나사렛 동네인 스블론 땅 납달리 땅인데 에스겔 땅 분배에서는
에브라임 므낫세 땅이거든요 이 때가 와야 한다 말이죠 그 인자의 때
새영 새마음을 주는 때 성령을 부어주시는 때 말이죠

지도

https://t1.daumcdn.net/cafeattach/18qMx/ffac5bfa065058817ef5f350280efa74b050738c

https://www.culturalbible.com/wp/wp-content/uploads/2014/06/%ED%95%B4%EB%B3%80-%EA%B8%B8.jpg


그래서 두 막대기로 갈라져야 하고 
다윗은 갈라지기 전이고요
솔로몬도 갈라지기 전이고요 
진정한 하나님의 원수로써 이스라엘이 자리는 기능으로써
포로되어 잃어버린 그 공백
그 탈탈탈 다 털린 빈주머니
그 처음자리에서 이 걸어다니는 성전인 이 인자를 보기 위해서
다윗 개인을 넘어서 이스라엘 전체가 갈라져야 하고
다시 두 막대기인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이 왕과 목자가 말이죠 모든 무릎 이스라엘 뿐 아니라 개같은 이방인의 무릎도 말이죠
그러니 이방인 까지 원수로 삼아서 무릎 꿇게 하시는 마침이 됨이 오시는
그 때를 곧 다윗의 자손이 와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듯이
다윗은 다윗 자손의 표상이다 말이죠 실상의 그림자 곧 모형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믄 전쟁을 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원수 노릇만 하지 않았냐 말이죠
우리가 욕하는 저 유대인 사탄의 회 인 것을 욕하면서도
교회가 강도의 소굴인 하나님의 적 아니냐 말이죠
즉 교회가 하나님의 적인 강도의 소굴임을 욕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적인 강도의 소굴 됨에서 벗어날 수가 있느냐 말이죠
아무리 해도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더더 벌리시는
하나님의 의가 펼쳐지는 겁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이 학생의 목숨을 도적질 하는
율법의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정확한 판결을 왕이 아무리 내려도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쭐꾸덕 왕의 자리에서 미끄러뜨리는
간극 좁히기는커녕 간극을 공백을 더더더 벌리시는 이
빈공백 이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도록 만드시는
이 하나님의 의가 아니였으면
다윗은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았으면 때려죽어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자기 의에 자기 열심에 충성하고 순종할 뿐인
사탄아 썩 물러가라 사람의 일만 충성하고 하나님의 일
곧 언약에,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에 복종치 않는 자 일 뿐인

그저 의문의 반복인
누워서 침 뱉기만 할 뿐이다 말이죠 아무리 해 보세요 마침이 오나
때가 차나? 종말이 끝이 있나
없어요 완성이 완공이 없이 그저 48년 동안 짓고 있어도 또 미완공만 반복이이

종교 개혁 할 때마다 빠져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원수 짓만 골라서 하기 때문에 빠져나온다 말이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이다 라고 고쳐달라고 상한마음으로 말이죠

그런데 왜 빠져 나오냐 라고 돌아오라 동생아 탕자야 라고 
천주교가 억수로 긍휼이 있는 척 하지만
아무도 안 속죠

그랬던 개신교도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는 매 마찬가지이니
인간 쪽에서는 안 된다 라는 겁니다

백날 천주교처럼 민주당 좌파처럼 도리 도리 무당 대통령 물러가라 라고 외쳐 본들
주님께서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만드신 이상 소용이 없어요
후쿠시마 오염수 백날 아베 죽였다 라고 애국자라고 독립운동가 라고 높이 치켜 세워도
더한 놈 기시다를 통해서 바다에 풀어버리시는 겁니다

아베 보다 훨씬 덜 나쁜놈이라고 해도 이 악의 평범성 때문에
공무원은 시키는 일 만 하다 보니
아무리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아버지이고
아내에게 사랑을 퍼 붓는 진정한 남편이라고 해도
공무원은 오로지 국익 만을 위한 이냠에 충성하는 일만 할 뿐이기에
누가 바다에 오염수 안 뿌리고 베기겠냐 말이죠
다 돈 문제인데 다 돈의 노예일 뿐인데

후쿠시마 오염수 뿌린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벌써 그 앞바다에서는 노랑색으로 변했다 라고 하던데
오염 측정이 정상이라고 우기지만 누가 믿겠습니까
중국은 아예 몇십배 높다 라고 전면 수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몰래 서해로 버리는 원자력 방사능 오염수는 몇십배 된다 라고
언론이 미국을 등에 입고 주장하는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니
누가 말 마따나 모든 국가는 그야말로 깡패들입니다 깡패들 끼리 강도들 끼리
서로 지 잘났다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더 좋은 옷을 입었다 라고 주장하는 거죠
(회개 눈물 금식 기도 왜 합니까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왕궁의 옷을 입은 다윗 볼려고?
아닙니다 정직한 영이 없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는 다윗을 보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정치는 십자가의 정치 곧 깡패 보다 더 한 깡패 정치
모조리 다 하나님의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정치 죄인을 부르러 온 정치
실족케 하여 넘어뜨리는
모조리 다 빈공백으로 만들어 버리는 광야교회 만들기입니다

(마 11:8,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눅 7:25,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7, 개역)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개역)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마 11:10,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개역)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그래놓고 뭐 10년 이면 우리 바다에 온다 라고요?
아니 세탁기 안의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 몇초도 안되는데
지구라는 세탁기가 지금 노아홍수처럼 세탁기 돌아가고 있는데
이제는 물이 아닌 불로써 세탁기 돌리고 있는데
뭐 10년? 장난 하냐 말이죠
어서 빨리 다 퍼지도록 종말의 행함이 있는 믿음의 기도해야죠

석달도 안되서 옵니다 썰사 안 와도 비가 전 세계적으로 오는데 말이죠
그러니 일본 놈 뒤에 미국 놈들이 등받쳐 주고 있는데 무슨 수로 막아요
중국 백날 반발해도 미국 앞에서는 찍 소리 못한다 말이죠

한국의 딴나라 당은 미국 좌파 랑 원래 손을 잘 잡는 마음이 찰떡궁합이구요
한국 민주당은 미국 우파 트럼프랑 딱 맞아요

그래서 서로 이겨 먹을려고 이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라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막을 길은 트럼프 밖에 없다 라고 할 정도로
좌파들이 외치잖아요 
독립운동가 기념비를 치우든 안 치우든
둘 다 바벨론왕의 점괘 대로 행하는 겁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이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 하니까
이 간극을 벌릴 방법이 없어요
다윗이 그 카다가 한 대 얻어맞고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이제 주님의 왕으로써 그 왕의 자리를 빈공백으로 남겨두게 되는 겁니다
주님은 점점더 간극을 벌리는데 인간들
특히 두 집단들은 그저 간극을 좁힐려고
더더더 꽉꽉꽉 채울려고 한다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더 의인이다 자기가 더 건강하다를 외치지
텅 빈 주여 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고쳐 달라고 하지 못하는 겁니다

어딜 화목제가 밝히 보이는데 사기를 치냐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 기능으로써의 하나님의 군대는 마른뼈
여성이자 그런 여성으로부터 마저도 공격받는 과부요
한나요 처녀 마리아의 자리 로써
브로큰 애로우 폭격 요청의 기도
낙망하지 않고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 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예수님의 족보 디섯명의 부정한 여성의
빈공백으로써
이 남정네들의 왕 꼬라지들이 다 엉터리 왕임을 보여주심으로써 말이죠

그래서 다윗이 뭐 윤리나 논리나 양심을 따라서 고백한게 아닙니다
그 말 언어 단어 하나 하나가 비밀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용서함 받았다 라는 말은
오로지 주님 쪽에서 마련하신 이 화목제만 왕으로써 
전쟁의 마침으로써 오시기에

너의 자리 비워라 어쭈 안 비워 도리어 꽉꽉 자기 의를 채워서 자기 의에 순종하는
율법 네 배나 갚으라 그게 아이 못 살립니다
끝까지 따라가고 장 지지고 십자가에 같이 죽겠습니다 사탕아 썩 물러가라
어딜 화목제에 너의 사랑을 낑가 넣느냐
너는 그저 빈공백으로써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사랑을
화목제만 쳐다 보라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말이죠

가만히 있을 인간 없지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사망의 풍랑 독수리 바벨론 왕 점괘를 옳게 하신
애굽의 강퍅함 속에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부르짖는
우는 자 만드심으로써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 어둡고 캄캄한 바다 깊은 곳 스올 무저갱 지옥 속에서
사망의 몸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는
이 요나의 표적을 펼치시는 겁니다
이게 한나 마리아 과부 에스더 그리고 기생라합의 거짓말임 담긴 기도입니다
불의한 행함이 있느 믿음이다 말이죠

오늘날 기도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네 맞아요 눈에 보이는 것 다 없애 달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만 드러나게 해 달라고

존재로써의 내 몸
역사로써의 내 시간 내 때
이거 다 없애 달라고 말이죠

내가 하나님의 원수로써 원수가 나타났다 라고 파수꾼처럼 뿌뿌뿌 나팔 불 때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전쟁을 요구하는 기도인 겁니다

이것이 낙망 낙심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이미 다 이루어진 기도를 하는 짜고치는 고스톱인 십자가의 자작극이니까 말이죠
넉넉히 다 이겼기에

이미 다 승리했기에 믿음의 선물을 받아서 하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아니 누가 사랑을 의무적으로 억지로 행하듯이 보상을 노리고 합니까
사랑은 그저 좋아서 그저 튀어나오는 겁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기에
많이 기도하는 내용이 바로
불의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의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왕의 전쟁을 펼쳐달라 라는 기도입니다

그야말로 자폭기도 자뻑기도 이다 말이죠

그러니 인간 왕들의 왕관과 면류관이 벗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겁니다

당연함 뿐만 아니라
나의 그 왕에 대한 기대치 또한 다 벗겨지고 다 날라가는 겁니다
어디에도 내가 높이는 왕이고 뭐고 이제는 없는 겁니다

그 빈자리에서 포로된 자리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리에서
진짜 왕을 만나는
그것도 하나님의 원수인 나로써 죄인으로써 환자로써 만나러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죄인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인자의 모습으로 나의 허물을 담은 모습으로써 말이죠
그러니 나는 다윗은 아담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니 말 할 수 없는
오실 자의 표상 아니고 뭐겠습니까?
살려주시는 분만을 말하기 위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

그 원수만을 사랑한 그 사랑은
원수만이 외치니까
많이 탕감받은 자만이 외치니까 말이죠
그래서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 건강한 자 곧 인간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 말이죠

그러나 인간이라고 우기는 자에게는 이것처럼 심각한 것이 없습니다
왕관 벗겨지는 것 곧 나의 패배요 나의 재산을 지키는 왕의 장소가 텅비게 되는
그럼 언제든지 다른 국가들로부터 주변국으로 인해 침략 당하는
(천국은 지금까지 침략당하는데 침략하는 다윗의 자손의 것이다 말이죠)

자기 존재의 손익을 따져서 세운 왕이요 대통령인데
자국의 이익이 아닌 남의 나라의 이익을 먼저 우선시 한다?
왕의 왕관이 벗겨진다? 
이것은 곤 자기에게도 손해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말이죠
눈이 뒤짚어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서문시장도 죽으라고 외쳐서 당선 시켰더니만
이건 뭐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찌그러져 있더라 말이죠

시드기야 왕의 왕관이 벗겨지고 적 바벨론 으로부터 죽임응 당하게 되니
면류관이고 뭐고 다 사라지는 거죠

고로 포로 잡혀 가는 겁니다
그 포로된 자리에서 비로소 누가 왕인지를
포로 됨 속에서 외쳐야 하니

도대체 누가 왕 입니까 하나는 포로 잡혀갔고
하나는 개 죽음을 당했는데
시드기야 보는 앞에서 두 아들 죽임 당하고
결국 자기 자신 시드기야 왕도 두 눈이 뽑혀 감옥살이 하는

도대체 누가 왕 이냐 말이죠

그 왕의 자리를 텅텅 비게 공백으로 만드신 분이 진짜 왕이십니다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라고 말이죠

그러니 다윗언약의 그 맹세를 그 다윗의 운명을 전체 이스라엘의 운명으로 확대시키고자
더더더 이스라엘을 선지자 기능으로써 또라이로 미친놈으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본인들이 선지자를 죽여놓고 왜 그런 기능을 하게 될까봐 싶어서
도리어 그랬던 자들이 이제 선지자로써 개죽음을 당하게 되는
누워서 침뱉는

자 그럼 이스라엘 조차도 거부하는 이 이스라엘 기능을
누가 받느냐 말이죠

저 한나의 기도
마리아의 기도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외치는 에스더의 기도를 누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네 맞아요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아는자
전쟁은 나에게 향하는 뿔이요 창이고 여호와의 칼 이다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칼 속에 여호와의 칼로써 작용하게 함으로써
내가 하나님의 원수임을 그 원수와 전쟁을 벌리시는

이 하나님의 의 곧 낮추시고 높이시는 이 전쟁을 하시는 분이 누구신가를 보라 라는 겁니다

이것을 담은 자가 이스라엘 왕인데
역시나 왕 본인도 그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 또한
자기 유익을 구하다 보니
모조리 다 울리는 꽹과리 빈깡통 짓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찌르는 그런 회개

자기에게 상처를 내면서 까지 니 눈이 범죄 하였거든 두 눈을 뽑아버려라처럼

자기자신을 심판해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 회개 상한 심령
정직한 영이 없으니 말이죠

그런 한나의 기도 그런 마리아의 기도를 우리가 과연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비천한 자리에서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에서

정작 고아도 안하고 과부도 안하고 나그네 떠돌이도 안하는 상황에서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우리가 아무렇게도 막 잡아먹는
닭이 그런 기도를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울어야 하는데 닭이 대신 우는 겁니다

그 기도 내용이 뭡니까

베드로를 위하여 성령의 놀라운 탄식의 기도가 뭡니까
닭의 울음 내용이 뭐냐 말이죠

모든 피조물의 탄식기도 내용이 뭡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길 소망하고 기도하면서
인간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원수 갚아 달라고 말이죠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하나님의 원수를 이기는 원수 갚는 전쟁을 하는 자들을 보내달라고
브로큰 애로우를 요청하는 겁니다 
그래서 과부처럼 낙심하지 않고 떳떳이 불의한 재판관 입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모든 인간들 입 속으로 말이죠 원수 갚아달라고
이 놈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그래서 자꾸 하나님의 아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자꾸 언급하시는 이유는마른 뼈와 같은
아직 우리가 연약할 때 
아직 죄인이였을 때
아직 원수였을 때에
내가 연약한 무능자 이고 왜? 하나님의 원수를 이길 방법이 무슨 수로 있겠습나까
내가 하나님의 원수인데 말이죠
또 내가 죄인이다 말이죠 뭘 해도 죄 밖에 없는 탕자이다 말이죠
그리고 아직 원수였을때에 그야 말로 죽어야 하고 또 죽어야 하는
이 사망의 몸 원수의 몸 어서 주여 죽어주소서 라고
화목제가 아니면 나 같은 원수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우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는 이 언약의 관계 속에서
죽이시기로 작정된
마치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가면서 원수 갚아 달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그래서 위에 과부의 기도 에 대한 구절 올려놓고
밑에 두 구절 바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기도로써
성전에 바리새인과 매국노 세리의 기도를 두 구절을 함께 올렸는데
한 사람의 기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편이다 라고 율법 지켰다 라고 기도하고
네 맞아요 과부의 기도를 언급하시고 다시 기도를 두 개의 기도로 나누시는 겁니다
그리고 매국노 세리를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고 전쟁해 달라고 요청하더라 말이죠
과부의 기도와 같습니다

(롬 8:18, 개역)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9, 개역)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0, 개역)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개역)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2, 개역)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3, 개역)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 8:24, 개역)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5, 개역)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6, 개역)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개역)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개역)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잡아 먹는 모든 피조물
참으로 참담하게 북극의 곰들이 이제 자기 종족 까지 잡아먹어요
이것이 율법의 취지 라고 했지요
신명기에 축복을 한 배 밖에 안되는데
저주는 세 배 씩이나 된다 라고
그것이 바로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는 데 까지
율법은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북극 곰이 자기 동료를 잡아먹는 것은 복선이 갈인 겁니다
표상으로 그림자로 미리 보여준 예고편이다 말이죠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수준은 이미 가인과 아벨에서도 나타났지만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는 
저 북한의 고난의 행군때 90년 끝 무렵과 2000년 초
약 4년에서 그 몇 년 더 까지 그 일이
지금도 다시 벌어지고 있고

그러니 하루 하루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상황이다 말이죠
앞으로 더 참혹하면 참혹했지 말이죠
뭐 안 보인다굽쇼 우리야 무화과 나뭇잎으로 부자처럼 잘 가리우고 있다고 보기에 그렇죠
그 무화과 나뭇잎 다 떨어지면 무슨 수로 수치를 가리겠습니까?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더 잔혹하게 벌어지고 있는
뭐 북한 만의 일이 아니라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이다 라고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인 가해자요 하나님의 원수인데
무슨 수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김 받고
무슨 수로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의 아들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허탄한 허무인 인간에게 복종하면서 죽어나가는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온 종일 주를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 
예수님의 운명을 후사로 유업으로 기업으로 재산으로
기능으로 은사로 받을려고 하겠습니까

기드온 군대처럼 어떻게 해서든 안 뽑힐려고 온갖 잔머리를 다 펼칠 뿐인데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연약한데 말이죠 언약함을 죄인됨을 우리의 불의함을
우리의 원수 됨을 성령이 도우시겠다 라고 하시는
그야말로 비유 비밀이요 말도 안되는 말씀만 좌우의 날썬 검으로써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불의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기도 우리의 행함이 안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에스겔 보세요 하나님의 적이 나타났다 라고 뿌뿌뿌 파수꾼 노릇을 하는데
만약 파수꾼 노릇 안 하면 하나님이 너 에스겔을 죽이겠다 책임을 묻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더 웃끼는 것은 하나님의 적이 나타났다 라고 파수꾼 노릇을 하니까
아니 포로 잡혀 왔는데 이 포로 됨 속에서 무슨 놈의 파수꾼 노릇이냐 말이죠
적이 없는데 하나님의 원수가 없는데 이미 포로 되어서 끝났는데 말이죠

그런데 에스겔은 하나님의 원수가 나타났다 라고 계속 외치는 겁니다
네 맞아요 늑대와 양치기 소년 이라는 이솝우화가 생각나지요
그런 보편적 진리로써의 그리스 노예 이솝의 우화를 한 번더 전복 뒤짚기를 해서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저런 우화 저런 속담을 깨뜨리신다 말이죠
자 그렇게 에스겔은 하나님의 원수가 나타났다 라고 파수꾼으로써 외치니까
어디 어디 늑대가 어디 있는데 라고 하니
저 에스겔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자 그러니 에이 이 놈 거짓말을 했네 라고
이제는 참다 참다 참지 못해서 
에스겔 입을 막고 꽁꽁묵어버리자 설치지 못하게 하자 라고 했는데
(왜? 자꾸 캥기는 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자꾸 바리새인을 캥기게 만들어요 글쎄
(마 21:45, 개역)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 포도원 주인의 상속자 자기 아들과 악한 농부의 비유)

마음이 찔리는 겁니다

그래서 몽둥이 들고 밧줄 들고 갔는데
어라 이미 누가 에스겔을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고
누가 에스겔을 미리 꽁꽁꽁 밧줄로 묶어버렸다 말이죠
그러니 뒷 북 치듯이 해 본들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 된 것을 바꿀 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군대로써의 딸랑 혼자 에스겔과 곧 죽이시기로 작정된
후사요 기업이요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에 이미 승리했기에
누구를 하나님의 원수이자 적 그래서 이미 승리한 자로써 면류관을 쓴 자로써
저들 바벨론 왕 뿐만 아니라 역시가 점괘를 자기 유익을 구하듯이
구하는 저 하니님의 원수 이스라엘이나
둘 다 모두까기 양발차기로써 왕관을 벗기는 면류관을 벗기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원수가 나타났다 라는 말과 함께 동시성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자리에서 에스겔처럼 외치는 파수꾼
죽이시기로 작정된 자로써
후사 유업 이을 받은 자 하나님의 아들들 로써
반드시 만드시겠다 라고

바벨론 포로 속에서 외치고 있으니

이 무슨 이 기이한 그야말로 비유 덩어리 비밀 덩어리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는
즉 이 말은 보이는 원리로써는 이해 불가 이다는 겁니다
안 보이는 것으로만 밀어붙이신다
그 안 보이는게 뭔데? 믿음이다 라는 겁니다
물론 인간의 믿음은 가짜요 보이는 자기로부터 출발했고
하나님에 대한 살인의지요 복수심이 인간의 믿음이고
예수님의 믿음으로 출발한 믿음은 바로 언약 곧 화목제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기에
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믿음으로만 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 의에 순종할 뿐이지
하나님의 의에 절대로 복종 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파수꾼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적이 나타났다 누군데 내다 라고 
마음을 찌르는 짓을 저 늑대가 나타났다 라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
거짓말 하는 소년 내가 늑대다 아로 외칠 수 있겠습니까

자 그 정도로 자기 손해 안 볼려고 자기 영역 경계선
자기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서 대통령 왕을 세우는
그 이방 나라의 왕제도 로써의
우상을 섬기고자 곧 자기자신이지요 그런 우상숭배에 시다바리로써
왕을 구하고 왕을 세우는 것에

바로 그런 보편적 진리를 깨뜨리는 자로써 구체적 보편적진리인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는 것을
이런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역시나 이방나라의 왕 구하는 모습과 똑같이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있으니

진짜 이스라엘 왕은 바로 그런 사고방식과 전쟁을 벌리심으로써
나 하나님의 원수인 나와 싸워 이기시는 자로써 등장하시는 겁니다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제가 그 늑대입니다 라고

미리 자수 하는 것이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
(저들은 자수 하지 말라꼬 입 막을려고 하고 말이죠 인자 에스겔의 입을 막고자)
왜 아직도 살아 있는 겁니까 진작에 벌써 죽었어야 하는 죄인인데 라고

진작에 쫓겨 났어야 하고 진작에 포로 잡혀 갔었어야 하는 심판받아 마땅한
사망의 몸인데 말이죠


그 등장 앞에 모든 무릎이 다 꿇는
왕관이 제거 당하고 면규관이 벗겨지는

이 종말을 참성전의 두 기능을 보고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참성전 기능 때문에
이스라엘 왕 만큼은 다윗 왕처럼 지적을 받고 매 맞고 벗겨짐을 당함으로써
찢겨지고
다시 싸매어주심을 받기 위해서
포로 속에서 갇힘 속에서 억눌림 속에서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
잃어버린 자리
곧 눈먼 소경의 자리 사망의 몸의 자리
갇힌자 억눌린 포로의 자리 그 처음자리에서

처음사랑인 원수도 사랑하신 그 사랑만을 무기로써 전쟁에서 나가 싸우는
네 맞아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거지
이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이겼는데 뭘 또 이깁니까 단 번데 다 이루셨는데
그러니 모든 피조물처럼 원수들 입 속으로 들어가서 탈출 하도록 하신 겁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는
사랑의 전쟁이지

이게 무슨 전쟁이냐 라고 우리가 반발하지만

이 사랑이 보이지 않는 이 사랑이 실상이고
이 실상 이 중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고

보이는 울리는 꽹과리
이데오피아 달그닥 달그닥 무기끼리 흔들려 부딧히는 그 무기들은
나 살아있다 라고 무기가 살아있다 라고 외칠 뿐이지
인가은 그 무기의 시다바리일 뿐인
죽기를 무서워 사망의 왕 노릇에 종 노릇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무기를 쥘 려고 해요 글쎄

자본주의에서의 악마는 돈 없는 가난한 자 이거든요
그래서 돈을 서로 많이 차지 할려고 한다 말이죠
최고의 노예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쥘려고 말이죠
그게 돈의 노예가 된 인간입니다
죄란 짓는게 아니라 들어오는 겁니다

죄가 주인공으로써 주체로써 인간을 들었다 놨다 행 하지
인간이 죄를 돈을 사물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지 않는 겁니다
(마침 그 노래가 생각나서 검색하니
https://youtu.be/MStMdxnrYyY
처음으로 전체를 다 들어봤는데 역시나 들었다 놨다 라는 부분만 들려오지
다른 부분은 아예 잘 안 들리네요 저도 노래를 참 좋아라 하는데 말이죠
아니 노래가 자꾸 들려와서 들어오는데 말이죠)





또 위에서 구절을 올렸습니다만

(렘 16:6, 새번역) 이 땅에서는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묻어 줄 사람도 없고, 그들의 죽음을 곡하여 줄 사람도 없고, 그들이 죽어서 슬프다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머리를 밀어 애도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범죄로 이스라엘의 범죄로
교회의 범죄로 울어야 할 판국이냐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말이죠

그러나 그런 우는 자를 없게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누가? 하나님의 의가 말이죠
자기 의를 쌓은 것을 다 살륙하시겠다 라고 말이죠

일부러 살륙 이라고 적어도 그래야 살벌하니까 말이죠
그런데 자꾸 살육으로 변경이 되네요 한글 프로그램이 말이죠

바로 이런 왕을 구하는 자가 한나요 마리아요 에스더입니다
그것도 불의한 자리에서 과부요 수태치 못한
그런데 나중에 애기 낳죠 사무엘입니다
그 사무엘 기능은 그럼 뭡니까 네 맞아요 엉터리 제사장 엘리 가문을
왕관 벗기듯 면류관 벗기듯 제사장직 벗기는 기능인 겁니다
그리고 처녀가 아이를 임신한 마리아는
이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는
자신들이 우상과 연애해서 임신해 놓고서는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저 처녀가 임신한 마리아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라고 하시니

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다 원수로 간주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에스더 죽으면 죽으리라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런 하만의 점괘 제비뽑기 한 그 심판의 날
우리는 마땅히 죽어도 쌉니다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만드신
그 심판의 날이 옳았습니다 라고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외친
그 날이 그 우는 마음이 그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는 마음이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마음 곧 중심으로써

그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이 사랑으로써만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써만 전쟁을 하시겠다 라고
이 왕의 기능을 보여주시고자
이 의사의 기능을 말이죠

그러니 포로 된 자리에서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환자입니다 고쳐 주세요 라는 자리에서

고쳐 주실려고 원수 갚는 왕으로써 다 이루었다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비웃음과 멸시 고난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는
이 사랑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 사랑의 왕
용서의 왕
원수를 사랑한 이 화목제로써만

언약을 이루시고자

원수의 자리에 포로된 속에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무저갱 스올 지옥 그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우는

그 자리에서 그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그 죄인을 구하시고
그 원수에게 화목제물로 네어주시사

언약에 순종 하셨습니다

이 화목제인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일 뿐입니다

우리는 진작에 면류관이 벗겨져야 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왠 말입니까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이 수치를 가려주시는
이미 수치를 당한 자들인 포로된 자요 원수요 소경인데
이 눈먼자에게 기쁜소식을
이 흑암의 백성인 원수에게 왠 사랑의 용서인 그 십자가의 피를 대신 당하신 것인지

이 알 수 없는 비밀 이 보이지 않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우리 속에 나타내시고자
우리는 저 모든 피조물처럼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그 하나님의 의만 순종하신
그 주님의 죽으심을 유업으로 상속자로 아들로 삼아주심 앞에

이 주님의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만 자랑하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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