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6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기약대로 (롬 5, 5-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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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6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심 (롬 5, 5- 8)

산 소망 ; 죄인을 위하여 죽는 사랑(의 확증)

환난, 인내, 연단, 소망 VS 욕심, 죄, 사망(반대를 위한 반대) (롬 5, 1- 4)
로마서 2022 2023. 6. 10. 14:50
22-025 환난, 인내, 연단, 소망 (VS 욕심, 죄, 사망 = 반대를 위한 반대) (롬 5, 1- 4)

〈로마서 5, 5- 8, 개역한글 신약성경 245쪽, 찬송가 046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찬송가 046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1.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백성들아 사랑을 전하세 
   경배하라 하늘의 천군과  천사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세 
   목자 같이 우리를 지키고 종일  품에 늘 안아 주시네
   찬양하라 높으신 권세를 찬양 찬양찬양 영원히 부르세

2.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우리 대신 죽음을 당했네 
   구주 예수 영원한 구원의 소망 경배하며 겸손히 절하세 
   찬양하라 우리 죄지신 예수 그의  사랑 한없이 크셔라
   찬양하라 높으신 권세를 찬양 찬양찬양 영원히 부르세

3.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천사들아 즐겁게 찬양해 
   구주 예수 영원히 다스리시니 면류관을 주 앞에 드리세 
   구주 예수 세상을 이기시고 영광 중에 또다시 오시네
   찬양하라 높으신 권세를 찬양 찬양찬양 영원히 부르세


〈로마서 5, 5- 8, 개역한글 신약성경 245쪽〉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1.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2.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3. 나의 죄 속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4.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5. 영원토록 내 할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아멘


(롬 5:3, 개역)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개역)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4, 새번역)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5:5, 새번역)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5:6, 새번역)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롬 5:7, 새번역)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롬 5:8,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지난번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 라고 했습니다  

아니 왜?

(롬 5:1,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2, 개역)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3, 개역)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개역)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4장에 율법에서 난 행함으로 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써 낫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럼 인간의 믿음은 안되겠네 그렇죠 인간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행함인지 아닌지 우찌 아노? 육으로 회귀하니까 말이죠 즉 육을 자랑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또 갑질하고 꼰대짓하겠지요 
왜 나 보다 못하냐 라꼬 말이죠

아무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라고 했습니다
곧 은혜로 말이죠 즉 예수님의 숙제로 말이죠 인간 숙제는 도리어 배제 쏙아냄을 당하는
은혜로 인해서 말이죠

행함이란 선악의 법은 결국은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그 욕심 그 탐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는
거 보세요 예수님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단순히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되고픈 하나님까지 죽여버리는데 성공해 버린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으로 터져나온 믿음의 거울로 들통난 사건입니다

중심이 없은채로 새마음 정직한 영이 없는채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결국 모든 인간의 행함 
즉 46년동안 지어도 아직 미완료인 예루살렘성전 건설이
예수님의 죽음 곧 하나님의 죽음까지 드러난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곧 인자란 바로 이런 인간의 죄악을 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죄를 낳고 즉 음란 음행을 낳고
그 음란함이 종교적인 음녀의 짐승 등 위에 올라탄 거죠
실제로 빌라도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고
자신들은 손을 씻고자 했지요
이것이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이다 말이죠
그 죄가 사망을 낳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사탄의 깊이를 받고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묻고 떠블로 가 라고 부정의 부정으로써
그 사망을
그 환난을 인내로 오래참으심으로
그 오래참으신 인내가 연단을 역시나 오래참으시는 새마음
그 연단이 소망을 다 이루셨다 라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이루시는 겁니다
거꾸로 가는 겁니다 원인을 갖추는게 아니라
원인 없는 결과로써 말이죠
성전에 금을 바쳐서가 아니라
단 하루 만에 아들을 낳는 겁니다
죄가 없기에 말이죠
이것이 다윗의 자손 나라입니다
다윗이라는 죄인을 받고 그 죄인을 자손인 인자가 다윗의 죄악을 담아서
다 이루는 나라 인 아들의 나라이다 라는 겁니다
소망은 미래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과거에 원인과 조건을 갖추어서 이루는게 아니라 말이죠 그건 행함이고요
자기 살아있음이라는 것에서 출발하고요 가짜 믿음이고요 곧 행함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조건 안 갖추어도 사랑이라는 결과가 덮쳐지는 겁니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아니 우찌 환난 인내 연단이 소망을 낳느냐? 그게 뭐가 기쁘고 즐겁냐?
메조키즘 마조히즘 환자냐? 환난이 즐겁다니? 말이 되냐

그래서 더더더 말이 안되는

우리의 불의함 즉 환난 인내 연단이라는 부정함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소망을 드러낸다?
네 그렇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산 소망입니다
이 산 소망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가 다 된 겁니다
지금 예수님의 숙제를 사도바울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행함이나 실천 인간의 믿음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도리어 뭘 해도 죄다 라고 규정해 버린 겁니다
그것이 율법의 가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가입으로 인해 뭘 해도 다 죄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숙제 곧 율법의 완성인 남을 사랑하는
남도 아니지요 평생 원수 
웬수도 사랑하는 이 사랑 때문에
비로소 산 소망이라는 성령이 임해 버린
성령을 그것도 약속한 성령을 산 소망을 부어버리셨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토를 달고
무슨 놈의 방종을 유발한다는 둥
토기들이 토기장이한테 왜 방종을 유발하느냐 라고 힐문하고 따지냐 말이죠

십자가의 피 앞에서 어딜 또 사기를 치냐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방종 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것 자체가
방종을 유도하더라 말이죠
도적질 하지 말라 하고 가르치는 것ㄹ이
도적질을 유도하더라 말이죠
백날 교육해 보세요 간극이 좁혀지나?
더더더 벌어지는 판국인 거죠

그런 자신의 선함을 갖추는 것이
즉 행함이
율법에서 난 행함은

결국
다른 것을 노리는

교회 돈 바치라 라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깔려 있는 것인줄
십자가의 죽음이 모를줄 아느냐?
어딜 사기를 칠려고 ~~~~~~~~~

그래서 교회고 뭐고 다 모조리 뭘 해도 죄 취급해 버리시는
이 산 소망 덕분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그러니까 저런 것들은 산 소망이 못 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나
국가 가족 
눈에 보이는 교회 그리고 목사 등등을 더 이상 의지할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이전 것이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눈에 보이는 것들이 권력이 되는
그래서 행함을 요구하는
행함이 결국은 눈에 보이는 실적으로 쌓이게 되는
역시나 권력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믿음이 가짜인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출발해서
즉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해서 결국 자기 자신에게 회귀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상을 늘 바라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은 산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도리어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다 녹아버리는 겁니다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 앞에서
권력 보다 더 강한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눈 녹듯이 다 녹아버리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하기가 졸지에 권력이 되어버리니까
저 매국노 세리처럼 토색 삥뜯어서 세금을 강제징수하는 짓 하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그 하나님이 가짜 이다는 겁니다

도리어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우상숭배인 악마짓인지를 모르면

이 남이 아닌 도리어 내가 예수님의 죽음이 덮쳐져서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할 판국에 놓여지지 않으면

저 따위 권력이 눈 녹듯이 녹는게 아니라
도리어 권력을 쥐고서 권력에 깔려 죽는
그 권력의 잔칫집 에덴동산 같았던 애굽이라는 천국이
다른 권력자들에게 역시나 개죽임 당하는 식으로써
천국이 침노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죽음 만이 그 천국 그 시온
그 세상의 중심을 나타내지 않는 이상
중심 중앙에 성전 곧 참성전 되신 예수님이 세워지지 않는 이상
백날 눈에 보이는 권력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을 차지해 본들 다 무너지는
이전 것은 지나가버리는 삭제 될 것을 붙잡고
썩은 동앗줄을 붙잡고
붙잡은 나의 공로에 보상해 달라 라고
구원을 탐하는 우상숭배를 오늘날 교회들은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버린 교회를 탈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 보다 눈에 보이는 교회
교회권력
권력을 가진 자들을 의식한다? 그 교회 가짜인 겁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악하다 하셨듯이 오늘날 교회를
강도의 소굴이라고 악하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들을 바꿀려고 할 생각 하 덜덜덜 마세요 ㅋㅋㅋ개혁? 안 됩니다

뭘 해도 죄 임을 모르는 자들과는 헤어지는게 낫습니다

공교롭게도

환난 인내 연단 이라는 이 부정적인 것이
어떻게 소망이라는 성령으로써 부어짐을 받을까요?
그렇다고 은혜를 더 할려고 죄를 일부러 지어본들 
그 행함은 어차피 은혜로 못 들어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겁니다

우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이 부정적인 행동이
어떻게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믿음으로 부어지는 겁니까?

네 맞아요 예수님의 숙제 곧 죄인을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은혜를 더 할려고 죄를 짓고자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사기를 치는 그 꾀임이
얼마나 만연하면
사실은 유대교가 그것을 욕하면서도 자신들의 믿음 곧 행함의 뿌리인 거죠
마찬가지 오늘날 교회들의 행함의 뿌리 역시나 방종입니다
방종을 욕하면서도 예수님의 죽음을 버리는 복음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교회 권력을 쫓고 있는 겁니다
중세교회만 그럴까요?
수천년 그 이전의 구약 시대
다른 예수님 오시기 전의 다른 나라의 세계 또한
안 변했고요 지금까지도 여전 합니다

왕제도가 변해서 대통령제로 바뀌고 총리제도로 바뀌어본들
여전히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부하는
눈에 보이는 왕을 쫓는 것은 여전 합니다
자기 투시 이니까 자기를 믿는 거죠

그렇게 믿고픈 것만 믿고
보고픈 것만 보고
듣고픈 것만 듣는데

오늘 이 본문의 내용을 들을려고 할까요?
환난 인내 연단 자체가 부정한데 누가 그 속에서 소망과 즐거움을 바라겠습니까?

이 광야 광야 3일 길  어린양의 죽음 만이 산 소망이 되다니?

아니 뭐가 아쉬워서 그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얼마나 부끄러우면 소망만이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즉 수치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겠다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겠다

또 오랜만에 이사야 25팔

구원이 뭐다? 찢으심 속에서 다시 싸매어 주심 이라는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이라고 공백이라고 했습니다

모조리 블랙홀처럼 전기청소기처럼 훅 다 빨아들여서 모조리 다 삭제 시키시는 겁니다
나의 잘 난 것 만 삭제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맙게도 나의 불의함 조차도 다 후루룩 다 빨아버리는 블랙홀이다 말이죠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계 21:4, 공동)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이사 25:8.


수치 곧 눈물을 씻겨주시는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자기 수치를 자기가 가리우는 자기숙제를 하지를 않나
사랑이 굳이 필요가 없이
내 나라 내 믿음 내 구원은 내가 챙긴다 라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이 사랑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가 없어서 망하는 저 이방의 우상숭배자가 지옥가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 라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아 죽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전히 눈에 보이도록 남아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다 이전 것은 삭제되고 지나가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예수님의 믿음 만이 또렷하고
예수님의 죽음 만이 예정이 되어 있지

아니 왜 인간의 구원이 예정 곧 약속이 되어 있습니까?
백날 이거를 교리화 해 보세요 교리화 한다는 말은 눈에 보이도록
또 실천화 한다 라는 말이거든요
그래야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고 권력화가 되거든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십자가가 모든 육체를 모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말이죠
그러니 이제 허구 허상 안개만 떠 다닐뿐

실상은 아닙니다 허상입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수에 칠 가치도 없을 정도로 허상 안개이거든요
곧 사라지는 겁니다 곧

안개를 왜 잡냐 말이죠 안 잡히는 것인데
왜 인간의 구원을 잡냐 말이죠
사람의 구원은 헛 되는데!!

왜 허구 허상에게
사람의 구원에게 의미를 둘까요
이것이 탐심이요 우상숭배요 이것이 음란 음행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백날 이렇게 이야기 해도

보편적진리 사람들끼리 소통되고 있는 속담에서는 안그러니까
넌 떠들어 대어라 나는 그래도 이 탐심 이 우상숭배 이 음란 이 음행 추구할란다
왜? 서로 서로가 인정하는 윤리 도덕 선하고 정의로움 이거든요

이 선을 권하고 행하고 악을 징벌하고 버리는 것이 왜 탐심 우상숭배 음란이고 사망이냐
교회 백날 다녀도 너 같이 이야기 하는 사람 못 봤다
목사들 백이면 백 다 선하다 라고 하지
누가 그것을 너처럼 악하다 라고 이야기 하느냐 라고 한다 말이죠

네 맞아요 듣지 말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제발 단절 되자 라꼬 ~~~~~~

자 그래서 왜 이런 갈라짐의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

아직 연약할 때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롬 5:6, 개역)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8, 개역)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6절 8절
제가 국어에 약해서 뭔가 안 맞는 표현아닌가 하는 점에서

아직 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아직 연약할 때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래서 다른 번역들을 살펴 봤지요
국어가 약하면 영어는 더 해서 영어번역을 빼고서 ㅋㅋㅋ

뭐 딱히 특별하게 보이는 부분이 없이 평이하게 번역했습니다

(롬 5:6, 새번역)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롬 5:6, 공동)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롬 5:6, 쉬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시의 적절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롬 5:6, 한글킹)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롬 5:6, 현대인) 우리가 아직 무력한 상태에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롬 5:6, 현대어) 우리가 피할 길 없는 궁지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신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현대어 번역이 좀 다이나믹하게 번역했더군요 점수를 많이 주고픈 마음입니다

바로 그때에 ㅋㅋㅋㅋ 아주 좋습니다

(롬 5:8,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롬 5:8, 공동)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롬 5:8, 쉬운)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롬 5:8, 한글킹)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롬 5:8, 현대인)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롬 5:8, 현대어) 그런데도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 죽어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8절은 공동번역은 때 라는 의미가 강조되질 않고요
현대어번역은 아까전의 칭찬이 무색할 정도로 아예 사라졌습니다
물론 의미를 나열하기 위해서 표현을 이해하기 쉽게 앞뒤 문장에 맞도록 해야 할테니 말이죠

(롬 5:7, 공동)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롬 5:7, 현대어) 설령 우리가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롬 5:5, 개역)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새번역)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5:5, 공동)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5:5, 쉬운)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5:5, 한글킹)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라.
(롬 5:5, 현대인) 이 희망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5:5, 현대어)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모든 일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채워 주시는 까닭에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5절부터 출발해 보면
소망 희망이라는 것이 성령으로 부어진 바 되었다면

이것을 다시 돌이켜 과거형처럼 묘사가 될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지고 난 뒤에
맞아 우리가 아직 죄인 이였을 때에 아직 연약할 때에 이랬었지 라고 회상하듯이 말이죠

네 맞요 사실은 아직 이라는 표현 보다는
때 라는 의미를 강조하고파서 이런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에스겔 성전을 통해서 봤던

때 라는 시간과 장소 라는 몸의 통합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무엇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성전 부동산 성전? 이게 우상입니다 행함입니다
네 맞아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단 하루 만에 지은 걸어다니는 성전인 참성전 되신 예수님이라는 인자
새마음과 인자의 몸이 합쳐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새마음과
섬기는 왕 섬기는 몸으로써 오신 인자가 합쳐진 것이 바로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이
다 이루어졌다 말이죠

이 중심이 이미 부어졌기에

아직 우리가 죄인 이였을 때에  때 와 아직이 기가막히게 연결 되잖아요
인간의 행함 인간의 믿음에서는 도리어 저렇게 단절되어도 너무 너무 더더더 벌어진 간극이
그 단절이 기가막히게 딱 연결 되어 한 몸이 되어부렸다 말이죠

이 때와 아직 이

졸지에 예수님의 때와 일곱절기 예수님의 몸 다섯제사
로써 다 이루심 앞에서
성령을 부어주심 앞에서
그 완료가 이미 덮쳐진 앞에서

우리는 죄인으로써 처음자리로써
이 첫사랑을 영접했기에
아니 첫사랑이 처음자리를 마련했기에
우리는 죄인의 자리를 
그 첫사랑이 찾아 헤매이는 처음자리
잃어버린 자리를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라고
나 라는 시간, 역사를 쥐고 있을 때가
주님이라는 때에 작살이 났다 라고

이 사랑의 확증
이 십자가의 사랑 보다 더 또렷한 것 있으면 나와보라 라고
당당하게
내가 이렇게 내 시간이 있을 때에
나 주님의 시간에 몸에 삭제 당했다 라고 당당하고 뻔뻔하게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이 말은

죄인으로써의 인간을 단 한번도 인간은 인정하거나
즉 이 말은 회개한 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성령이라는 새마음 중삼이 부어진 자 만이
주께만 범죄 했다 라고 언급 할 뿐이지

인간이 나 죄인입니다
너는 죄 지을 줄 모르지 난 죄 지을 줄 알아 라고
이것을 자랑인냥 외치는 것 조차도
주께만 범죄했다 라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나오는 죄인이라고 인정해야지만
조직에서 단체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의식하는 죄 회개이다 라는 거죠
그거 유대교 유대인들이 회개의 달인들로써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데 있어서

제대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실 분을 없애버리고 죽여버리는
이 십자가의 간극을 저들은 더더더 좁혀 버리고자 한 것이 더더더 벌리게 되어버린 겁니다

마침 월말 김어준에
박문호 뇌과학자가

https://youtu.be/JPZ6cDeyb8w

텅빈 공백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대화한 내용이 있어서 들어봤습니다

텅빈 공백이라는 처음자리를 인간이 찾을 수가 없더라 라는 내용이였습니다

그래서 환난 인내 연단이라는 초상집 광야 공백 속에 집어넣어버리시는 겁니다
이 처음자리
이 잃어버린 자리를 말이죠

이 아직 죄인 되었을 때로 말이죠
자기의 시간과 몸이라는 장소가 사라지지 없어지지
불도져에 밀려 삭제 되지 않는 이상

이 처음사랑을 무슨수로 기억하겠습니까?

그래서 광야 속으로 집어 넣고
환난 속에
인내 속에
연단 속에

지혜자의 믿음은 우리를 초상집으로 몰아넣으시는 겁니다

그 몰아넣는 이 다윗언약 저는 별명을 광야언약이라고 말하고파요
물론 모세언약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광야언약 보다 더 텅텅빈 의미로 하자면

텅빈공백언약 이라고 ㅋㅋㅋ


그래서 호세아가 마침맞게 고멜의 자리에
창녀의 자리에 이스라엘을 몰아갑니다
다윗의 처음자리로 말이죠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다윗 개인의 운명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다윗의 개인 운명을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으로 확장 시키듯이

이제 다윗의 자손의 운명
곧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을
이스라엘 그래서
이스르엘의 큰 날의 의미로
이미 원인 없는 결과가 부어졌기 때문에
아직 죄인이었을 때인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의 날이 때가

큰 날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때가 되도록 말이죠

이게 희년이더라 말이죠

이 희년 은혜의 날 성령의 부어주심 속죄의 날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부어주신

수치를 가려주신
하나님의 의의 날이

바로 자기 날
자기 몸이 삭제 되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미래완료
될 것이다가 아닌
이미 다 이루어 놓았다를 누리기 위해서

실제로 때가 그 뒤어 동원이 되고
의인인 몸이 아니라
죄인인 몸으로써의 장소가

그리스도의 몸에 맞도록
의사의 몸에 맞도록

동원이 되는

죄인의 몸으로써 동원이 되는 겁니다

즉 증상물이다 말이죠

결과의 증상물이기에

이 증상물은 현재 과거 미래가 날라가 버린 입장에서
아직 죄인이였을 때 라는 증상물로써
원인 없는 결과 라는 증상물

우리 죄인을 위해 죽으셨도다 라는 결과의 증상물로써
죄수 복을 입고자 피를 외치도록
십자가의 피 용서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네 맞아요 처음에는 죄수복을 입은 인간에게 주목하겠지요
그런데 다들 그런 죄인도 특별사면 하는

이 비유 이 비밀에 주목하도록
특별사면 하시는 피 발린 그 비유에 주목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너 죄인아 너에게 묻은 이 피 누구 피고 라고 묻도록 말이죠

이데오피아 내시 그가 누구뇨 라고 묻듯이 말이죠

지혜자의 짊문이 자기 피를 발라놓고서
이 피 누구 피지 라고 묻는 것처럼

죄인의 자리에서
고멜의 자리에서

베드로는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이 비유의 수수께끼 비밀을 풀게 아니라
본인 자체가 비유 덩어리 되신 신랑 피 신랑과 한 몸이 되어버린 피신부로써

아 당신은 어쩔수 없는 피 신랑이시군요 라고

베드로 또한 피 신부로써 비유 덩어리와 한 몸이 된 비유 신부덩어리가 되어서

이 지혜자의 질문
비유자의 질문
인자의 질문

하늘에서 풀리면 땅에서도 풀리고
하늘에서 매면 땅에서도 매이는 
이 비유 덩어리가 되어서

수수께끼를 풀 필요가 없이
본인 자체가 수수께끼와 한 몸이 된 수수께끼가 되어서

더더더 간극을 벌리러 돌아다니는 아름다운 선지자의 발이 되어버린 겁니다

호세아가 말이죠

저들 일곱 명의 남유다 4명 왕 북이스라엘 3명의 왕과 다른
저들 왕을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수수께끼 비유 덩어리로써

이 한 몸이라는 비유
이 결혼 이라는 수수께끼 비밀 덩어리로써
호세아 가전 자체가

큰 공백 텅텅빈 공백 덩어리로써 던져지는 겁니다
다들 공격하기 바빠요
즉 이 말은 자기의 몸 자기의 역사를 사수하고자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나의 역사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적인 저 더러운 호세아 가정을 공격하더라 말이죠

자기들의 처음자리를 자기 스스로 발로 차는 식이다는 겁니다

에이 우리는 저 고멜 만큼은 더럽지 않다
에이 그 정도까지 몸 파느 창녀정도 까지는 더럽지 않다 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자기 몸 기준 자기 때 역사 우리 집안에서는 저런 수준까지의 죄는 아니다 라고

어느 정도의 죄는 있어도 저 정도 까지는 아니다 라고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때와 장소를 기준으로 가지고
그것을 중심인냥 규칙인냥 규범인냥 법으로 지키고 있는데 있어서

십자가의 피 용서의 피 흘리심 앞에서는

우와 이 정도로 심각한 죄이다니 허걱 이라고
놀라 자빠질 정도로의 심각한 죄악을 
들추어내시는 이 십자가의 피 앞에서

할 말이 없겠끔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너희는 잠잠하라

말이 많다 라는 겁니다
에이 나는 그 정도까지의 죄는 아니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율법 강화로
더 깊게 파 버리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를 포함한 영역에서는 억수로 봐주고 법이 약하고
자기의 몸 기준에서는 먼 곳은 아주 엄격하게 심판하거든요
사마리아는 삥 둘러 갈 정도로 정죄하기 바쁘지만
정작 자신들의 죄악 유대인들의 죄악은 우리끼리는 봐주자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음욕을 품은 자 마다 간음죄 라고 해 버리니까
이건 뭐 빠져나갈 구멍이 아예 원천 차단
단절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앞에서 누가 무릎 꿇어서 나는 범죄자입니다 라고 울수가 있겠습니까?

형사님 경찰님 저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어야 합니다 라고
누가 자신을 제 3의 시선에서 보고 깜빵갈 죄인으로 여기겠으며
사망의 몸 지옥의 몸으로 여기겠습니까?

오히려 자기 몸에 딱 맞도록
율법도 적당히 지켜왔기에
율법의 옷을 입고서 정죄하기 바빳는데
예수쟁이들 다 죽이기 바빴는데

그랬던 사울이라는 청년 곧 바울이였는데

누가 너가 핍박하는 나사렛 이단 예수 다 라고 만나러 오신
그 예수님을
그 섬기러 오신 예수님
나의 역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거룩 중의 거룩이라는 역사
그런 몸 정통 중의 정통 그래서 이단 놈들은 모조리 싹 다 잡아 죽이는 그 몸을

섬기러 오신
그것도 정통 예수도 아닌
지금 이단 척결하고 있는 그 정통 바울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가

딸란 3년 짜리 밖에 안되는 신흥 이단 나사렛 예수의 섬기심 때문에

1300년 때가 날라가 버리고 텅텅빈 공백이 되어야 하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야 하기에 다 삭제 당하고

정통의 몸이 나사렛에서 태어난 이단 예수
자신은 베냐민 지파 아닙니까 정통 안에 세이프 했다 말이죠
나사렛은 스불론 땅 납달리 땅 에브라힘 땅 
부정한 땅이다 말이죠

그런데 나사렛에서 태어난 이단이
정통을 섬기고자
직접 만나러 왔다니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굽니까?

즉 비로소 이름을 부르는 겁니자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라는 말은
비로소 자기의 이름을 삭제 시키는 이름을 만났고 불렀다 라는 겁니다

자기 이름이 삭제 당하지 않는 이상
남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 분의 이름에서 비로소 새 이름을 받는 겁니다

바울

작은 자

아니 큰 자 라는 사울 이라는 이름이 더 큰 데요

아닙니다

작은 자가 더 큽니다

비로소 죄인의 자리에서 부른 그 이름에 걸맞는 이름을 새로
새 피조물로써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된

이전 때에
죄인 이었을 때에

그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때
5대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단번에 즉 때죠 다 이루신

이 분의 때에 복속 훅 한 방에 빨려들어가서
더 이상 나의 때를 갖출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마치 안식의 주인이 나타났을 때에
비로소 손 마른 자의 자리에서
이 안식의 때를 누리는 겁니다

도리어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때려 죽어도 못 누리는 창조의 때를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때려죽어도 싫어한다는 것이
인간의 선악의 법이다 행함이다 의인됨 건강한 자 됨이다 라는 겁니다

아니 이미 의를 이루고 있고 남을 7번 용서할 정도로 
우리는 이 7번 남 용서가 숫자상의 문제로 아주 우습게 아는데
자신의 목숨을 7번이나 바쳐서 이룰 정도였다 라는 겁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봉이다는 거죠
소방관이 불에 타는 집 속으로 들어가서
7명은 건진 예라는 거죠
각각 다른 불에 타는 집에서 말에서

단 한번도 불 속에서 들어가서 건진적이 없는 소방관이 수두룩 한데 말이죠

그 정도로 의롭다 선하다를 칭찬받을 만 하고
인정 받을 만한 그 의로움을 음란이다 음행이다 우상숭배다 라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물리쳤습니다 라는 그 의로움을
불법을 행하는 자여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새로운 이름인 주의 이름에 걸맞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70명의 제자를 파견했다 라면
저런 귀신을 물리치는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일을 하는 것으로 알텐데
아니였다 말이죠

너 처럼 죄인 중의 괴수 하나 부르러 오셨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하나 찾으러 오셨다

엘리야 선지자가 딱 한 사람 사렙다 과부
그것도 이세벨의 고향 아닙니까?
창녀 중의 창녀
죄인 중의 괴수
악녀 중의 악녀 딱 한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았고

엘리사 선지자는 딱 한 사람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에게만 부르심을 받았다 말이죠

아직 죄인이였을때에
말이죠

그런 자 만이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러 오신 예수님의 이름에
십자가의 피 흘리심에 딱 맞는
의사에게 딱 맞는 환자 이다는 겁니다

아무도 교회에 와서 죄인이다고 고쳐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오는 자 없습니다

저는 십일조 냈고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요 저 세리와 같이 삥 뜯지 토색하지 않았으니
복 달라고 복 받을 만한 인간
구원 받을 만한 인간이라고 자부하면서
마당만 밟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괴롭힐 때에
국문할 때 심문 심판 고문 할 때에

주님은 불을 지르러 오셨고 칼을 주러 검을 주러 오셨다
가족과 가족 끼리 서로 원수 지간
두 막대기로 나눌려고 오셨다 말이죠

그런 자들을 국문하시고자 에스겔 인자를
호세아 선지자를
사도 바울을 무기로 삼았는데

그 무기가 아이고 겨우 비유 라는 비웃음꺼리
아무도 믿지도 않는 십자가의 표적
요나의 표적

아이고 요나의 표적을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는 비웃음꺼리

매맞고 환난 당하고 고문 당하고
사탄의 가시에 푹 찔려 아무리 가시를 빼 달라고 해도 안 빼주는
그것이 하나님의 칼로써 불로써 불 지르러 왔고

말로만 남쪽의 숲들아 다 불 타라 라고
비유로만 말하는 비웃음꺼리가

고아 과부 나그네 아무리 해도 힘 없는 것들
몽골 사막의 빈 공터 보다

더더더 공백인 아무것도 아닌 것에 충성하시는 그 예수님이 불 검 칼 주러 오신

또 너냐 라는 아이고 십자가 고만 캐라

내가 괴롭다 웃겨서 괴롭다 고만좀 웃껴라 라는 

이 비웃음꺼리인 요나의 표적이 에스겔 인자를 무기로 삼으신 거다 말이죠

누가 이런 예수님과 한 몸이 피 신랑과 함께 하고자 하겠습니까
다들 도망치지요 제자들처럼 말이죠

그런데 제자들이 성령을 부음 받으니
본인들이 그만 그 무시꺼리
비웃음꺼리
비유꺼리
단절꺼리
찌끄래기 부스러기 남은 찌기 잉여물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의 9가지 열매 
칼 검 무기이다 말이죠

아니 무기가 무슨 놈의 무기가 매맞고 미움받고 침뱉음 당하고 발로 차이고
쫓겨나고 배고픔 가난 고난 병들고 죽은자 같이 되는 이런 부정꺼리 입니까

왜냐하면 저들의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줘야 하니까
저들의 발가벗음을 광야 됨을 보여줘야 하니까 말이죠

이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이 아무런 조건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님을 공백임을 모르니까 말이죠

그런데 인간은 그 공백의 자리에다가
자신의 의로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믿음 내 구원 내 가정
온갖 것으로 꽉꽉 채워서

수고했구나 나여 오늘은 평안히 쉬자 라고

아니 처음부터 작살내지
왜 다 이루어 놓으니까
창고를 늘리자 마저
남의 것이 되도록 하겠다 라고

오늘밤 니 영혼 취하면 저 창고의 물건 누구것이 되겠냐 라고
자기 영역을 넓힌 것을 하루 아침에 그 경계선을 다 허물어 버려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그 창고 그 잔칫집 그 에덴동산 같았던 
애굽나라를 하루 아침에 말이죠

그 나라 세울려고 얼마나 많은 나라를 쳐들어가서 강대국이 되었냐 말이죠
단 하루 만에 신기루 같이 날라가 버리는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록 만들어 버리신

사람은 수의 칠 가치가 없다처럼
사람의 구원은 헛되고

인생은 허구 이다 라고 만들어 버리시더라 말이죠

왜? 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만을 또렷하게 나타내게 하시기 위하여서 말이죠

인간의 때
역사 죠 그것도 우려먹는 재탕 삼탕 계속 우려먹는 정통의 역사죠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라는 것은 절대로 잊어버릴수 없어요 
아무도 삭제 시킬수도 없어요

인간의 몸 장소
절대로 그 잔칫집 천국 애굽나라를 멸할 수 없어요
다들 그 천국 이루고파서 난리이다 말이죠

가룟유다가 바로 그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 최선봉의 독립군 투사 아닙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줘도 결국은 애굽나라로 만들어 버리는
참으로 대단한 천국 시민 애굽시민임이 드러나 버렸다 말이죠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말이죠
국가 지도자들이 다 그래요

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은 어떤 나라를 이루신 겁니까?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아들의 나라를 만드셨고 다 이루셨다 말이죠

그 사랑을 확증 시켰다 즉 이 사랑만 세우시지
인간들의 상상 속에 있는 천국
국가
자기들이 구원이라는
자기 중심이

도리어 이 아들의 나라에 의해서 망해야함을
삭제 당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사랑

힘도 안되고요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것으로 여김을 받는 비웃음꺼리를

주님은 당당히 이루셨고 확증 시켰다 말이죠

과연 무시한다고 취소한다고 사라질까요

사라지게 만들겠다고 미끼를 덮썩 무는 놈들이 사라질까요


확증 속에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
질투와 시기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아 8:6, 개역)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즉 반드시 취소 시킬려고 달려드는 놈이 있다 말이죠
그 놈이 어찌 되는지 보여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사랑이
이 비웃음꺼리가

불과 같은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인 요나의 표적인 주님의 무기로써

강한 자
사망 권세
악한 영들과 싸우시겠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이미 끝나 버린 전쟁에서

누가 옳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뻔뻔하게 지혜자의 질문에 유일한 답변은

본인 자체가 비유덩어리로써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라는

비유덩어리로써 답변하는
죄인 중의 괴수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확증을 보고 답변하는
비유덩어리가 된 자 의 답변 뿐입니다

네 저 개 맞고 저 더러운 이방인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


교회도 가족도 내 구원 내 행함 내 믿음도
산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다 허구입니다 안개입니다

또렷한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는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의 확증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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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 의인과 악인을 살육하는 여호와의 칼이여 칼이여 (겔 21, 1-17)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불 지르러 온 여호와와 비유로만 외치는 인자야 또 너냐? (겔 20,45-49)
에스겔 2019 2023. 7. 8. 12:47
21-061 불 지르러 오신 여호와와 비유(십자가)로만 외치는 인자야 또 너냐? 라는 비웃음 (겔 20,45-49) 

〈에스겔 21, 1-1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1쪽, 찬송가 401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찬송가 401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1.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에 장애를 두려말아라 
   성령이 너를 인도하시리니 왜 지체를 하고 있느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2. 너 가는 길을 누가 비웃거든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어라 
   성령이 친히 감화하여 주사 저들도 참길을 얻으리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3. 너 가는 길을 모두 가기 전에 네 손에든 검을 꽃지 말아라 
   저 마귀 흉계 모두 깨뜨리고 끝까지 잘 싸워 이겨라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에스겔 21, 1-1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1쪽〉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겔 21:6, 개역)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겔 21:7, 개역)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겔 21:8,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1:9, 개역)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겔 21:10, 개역)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겔 21:11, 개역) 그 칼이 손에 잡아 쓸만하도록 마광되되 살륙하는 자의 손에 붙이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하셨다 하라

(겔 21:12, 개역)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붙인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겔 21:13, 개역)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홀이 없어지면 어찌할꼬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1:14, 개역)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세 번 거듭 씌우게 하라 이 칼은 중상케 하는 칼이라 밀실에 들어가서 대인을 중상케 하는 칼이로다
(겔 21:15, 개역)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살륙을 위하여 날카로왔도다
(겔 21:16, 개역)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 대로 가라
(겔 21:17, 개역)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을 다 하리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찬송가 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1.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아니요 
   마귀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2. 우리들의 입은 갑옷 쇠가 아니요 우리들의 가진 검은 강철 아니요 
   하나님께 받아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3. 악한 마귀 제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 예수 앞서 가시니 
   두려말고 용기있게 힘써 싸우세 최후승리 얻을 때까지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4. 죄악 중에 빠진 사람 죄를 뉘우쳐 십자가에 달린 예수 믿기만하면 
   위태한데 빠진 영혼 구원얻어서 천국백성 될 것임일세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겔 21: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21: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 쪽으로 돌리고, 그 곳의 성전을 규탄하여 외치고, 이스라엘 땅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겔 21:3, 새번역) 너는 이스라엘 땅에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대적한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너희 가운데 있는 의인과 악인을 다 쳐죽이겠다.
(겔 21:4, 새번역) 내가 너희 가운데서 의인과 악인을 다 쳐죽일 것이므로, 칼을 칼집에서 빼어서, 무릇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을 남쪽에서 북쪽에까지 칠 것이니,
(겔 21:5, 새번역) 그 때에야 비로소,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이 내가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줄을 알 것이다. 그 칼은 절대로 칼집에 다시 꽂히지 않을 것이다.'
(겔 21:6, 새번역) 너 사람아, 탄식하여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면서, 슬피 탄식하여라.
(겔 21:7, 새번역)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탄식하느냐고 물으면, 너는 그들에게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사람마다 간담이 녹으며, 두 손에 맥이 빠지며, 모두들 넋을 잃으며, 모든 무릎이 떨 것이다. 재앙이 닥쳐 오고 있다. 반드시 이룰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하고 말하여라."
(겔 21:8,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21:9, 새번역) "사람아, 예언을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칼이다! 칼에 날이 섰다. 칼이 번쩍거린다.
(겔 21:10, 새번역) 사정없이 죽이려고 칼에 날을 세웠으며, 번개처럼 휘두르려고 칼에 광을 냈다. 내 백성이 모든 경고와 심판을 무시하였으니,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겔 21:11, 새번역) 그 사람의 손에 쥐어 주려고 칼에 광을 내었다. 살육자의 손에 넘겨 주려고 그렇게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광을 냈다.
(겔 21:12, 새번역) 사람아, 너는 부르짖으며 통곡하여라. 그 칼이 내 백성을 치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를 칠 것이다. 지도자들과 나의 백성이 함께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라.
(겔 21:13, 새번역) 내가 내 백성을 시험하겠다. 내 백성이 회개하기를 거절하면, 이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21:14, 새번역) 너 사람아, 예언을 전하여라. 손뼉을 쳐라. 그 칼이 두세 번 휘둘릴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큰 무리를 학살하는 칼이다. 사람들 주위를 빙빙 도는 칼이다.
(겔 21:15, 새번역) 사람들의 간담이 녹고, 많은 사람이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내가 성문마다 ㉠살육하는 칼을 세워 놓았다. 번개처럼 번쩍이는 칼, 사람을 죽이려고 날카롭게 간 칼이다. / ㉠칠십인역을 따름.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불확실함
(겔 21:16, 새번역) 칼아, 날을 세워 오른쪽을 치며 방향을 잡아 왼쪽을 쳐라. 어느 쪽이든지 너의 날로 쳐라.
(겔 21:17, 새번역) 나도 손뼉을 치겠다. 나의 분노도 풀릴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





(겔 21:10, 공동) 사람을 마구 무찌를 칼이다. 서슬이 퍼렇게 날이 선 칼이다……㉠ / ㉠다음 줄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겔 21:11, 공동) 잘 갈아 날이 선 이 칼을 내가 누구의 손엔가 쥐어주리라. 벼려서 시퍼렇게 날이 선 이 칼을 살인자의 손에 쥐어주리라.

(겔 21:10, 쉬운)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다. 번개처럼 번뜩이는 날 선 칼이다. 나의 백성이 모든 경고를 무시하니 어찌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겔 21:11, 쉬운) 그 칼은 사형집행인을 위해 날카롭게 번쩍인다.

(겔 21:10, 새번역) 사정없이 죽이려고 칼에 날을 세웠으며, 번개처럼 휘두르려고 칼에 광을 냈다. 내 백성이 모든 경고와 심판을 무시하였으니,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겔 21:11, 새번역) 그 사람의 손에 쥐어 주려고 칼에 광을 내었다. 살육자의 손에 넘겨 주려고 그렇게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광을 냈다.

(겔 21:10, 현대인) 그 칼이 날카로운 것은 죽이기 위한 것이며 광택이 나서 빛나는 것은 번개처럼 번쩍이기 위한 것이다. 내 백성이 경고와 조언을 무시하니 즐거움이 없구나.
(겔 21:11, 현대인) 그 칼이 쓰기에 좋도록 잘 갈리고 닦아져서 살육자의 손에 들어가려고 날카롭게 번쩍거린다.‘

(겔 21:10, 현대어) 누구든 닥치는 대로 쳐죽이는 칼이 다 갈렸다. 번개처럼 번쩍이며 춤을 추는 칼이 다 갈렸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칼이 다른 백성을 쳐죽이는 데 쓰일 줄 알고 즐거워만 할 것인가! 이 칼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쳐죽이려고 번쩍번쩍 시퍼렇게 날이 서게 갈린 것이다.
(겔 21:11, 현대어) 나는 이미 살인자의 손에 그 칼을 넘겨 주었다. 살인자가 벌써 그 칼을 받아 손에 꼭 쥐고 있다. 이 칼은 본래 살인자의 손에 들려 주려고 그토록 날카롭게 갈린 것이다. 그토록 번쩍거리게 갈린 것이다.‘


10절에 간따나 날선 검인데 또 더더더 강조할려고 이중반복으로써
아멘 아멘처럼 마광을 했다 라고 합니다
이중반복이란 삼중반복 사중반복도 다 포함된
무한반복의 공명화 짝꿍이 되었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영원한 반복인 약속의 의미이다 말씀만 옳았다 라는 겁니다

제목을 여호와의 칼을 날카롭게 함은 살육을 위함이고
마광을 함은 번개처럼 빠르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했는데

어차피 죽이겠다는데 있어서
또 더 강조하듯이 첨가해서 
약간 번개처럼 빨리 죽이는 것과 마광이 믄 상관인가 싶어서
다른 번역을 올려 봤습니다

약간 제목을 틀리게 적은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의미상으로는 맞더라구요

어라 공동번역은 또 모르겠다 라고 했네요 괜히 또 궁긍해 졌지요 뭐

(겔 21:10, 공동) 사람을 마구 무찌를 칼이다. 서슬이 퍼렇게 날이 선 칼이다……㉠ / ㉠다음 줄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아니 모를턱이 없을 텐데 말이죠

(겔 21:11, 공동) 잘 갈아 날이 선 이 칼을 내가 누구의 손엔가 쥐어주리라. 벼려서 시퍼렇게 날이 선 이 칼을 살인자의 손에 쥐어주리라.

벼려서?
(사전검색하니까 무딘 칼이나 연장을 날렵하게 날선 검처럼 다듬어 만들다 또는 강화시키다
또는 멈춘 것을 움직이도록 하다 등등의 무가치한 것을 가치있는 쓰임새가 되도록 한다는 의미이네요)

(겔 21:10, 개역)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왜 모른다 라고 했지? 아 업신여긴다 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 본문 자체가 번역하기 어렵다 라고 한 것인가
제가 문해력이 낮아서 진짜 헷갈리더라구요

공동번역을 토대로 번역한 새번역 현대어 현대인 쉬운번역은 모두 설명을 붙여놓았거든요
시대가 바뀌면서 번역기술도 점점점 발전을 했으니까 말이죠

아마 그 정도로 과거에는 무슨 소리인줄 모를만 했겠다 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왜 의인과 악인들 모두 함께 죽이실까?

아참 마광은 그 정도로 또렷하다

시퍼렇게 광이 나서 다른 것을 못 볼 정도로 또렷하다 라는 의미이거든요
모든 시선을 다 빨아들이는 빛날 정도로 
거기에다가 번개처럼 빛나지만
속히 빠르게 이루어지니까 말이죠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한다 라는 점입니다

이야 여기서 우리는 우와 우리가 그 정도로 소경이구나 할 정도로
무시한다 라는 겁니다

에스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그 정도로 몽둥이를 얻어 맞아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린다 라는 겁니다

아니 왜 그럴까요?
의외로 쉽습니다

마약 먹은 놈들이 그렇잖아요
똑같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자신들의 선악과 함께 섞어서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답도 없는 겁니다
무조건 죽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또 여기서 선인 곧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모든 인간이 반발하는 것은
네 맞아요 악인은 죽이는 것 당연하다 라고 다들 동의를 해요
문제는 왜 의인도 악인과 함께 죽이시느냐 라는 문제이다는 겁니다

여기서 모든 인간이 더더더 이 말씀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보고 듣고 한다는 자체가
악인들은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말씀을 대하고 읽고 보고 듣고 한다는 자체가
자신이 비록 부족하여도

여기서 강조 비록 부족하여도 겸손하게 먼저 깔고요
비록 부족하지만

의를 쌓고자 노력하는 차원에서
이 말씀을 대하고 읽고 보고 듣고 한다 말이죠

아니 그런 가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개무시하고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아니 누가 계속 들을려고 할까요
그저 덮어버리는 거죠

에스겔을 설교하는 목사는 아마 목숨 내어놓고서 설교해야할 판국이다 말이죠

그런데 누가 그런 목사를 죽일려고 합니까
다들 에헴 에헴 우리는 그런 악인이 아닙니다
비록 과격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수용하고자 계속 들을려고 노력할 겁니다 라고 나올꺼다 말이죠

그런 다짐을 아무리 해도
문제는 의인이 아니지만 의인이 될려고 노력하는 자도
악인과 별반 다를바 없이 죽이시겠다 라는 점에서

역시나 개무시하기는 매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개개인을 다루는게 아니라 전체를 다룹니다
설싸 개개인이 그렇게 의를 많이 행했더라 하더라도

이 여호와의 뜻에 우리는 다 죽임을 당해야 함에 있어서
그 마땅함에 네 맞습니다 맞고요 하고 할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역시나 그런 뜻을 개무시 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이미 아시고 여호와의 칼을 준비하셨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아브라함 자손이다 라고 해도
도끼가 이미 놓여졌다 라는 겁니다

자 지난 번에 여호와의 불이야 불이야 였는데
역시나 개 무시해요

이번에는 여호와의 칼이여 칼이여 라고 하는데
역시나 개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의인과 악인을 모두다 죽이는 그런 칼이 무슨놈의 하나님의 뜻이냐 라고
거부하고 무시하기는 매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자 마광이라는 이중반복의 강조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언급하면

번개처럼 빛난다 그리고 순식간에 번쩍하듯이 빠르다
속히 이루어진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비해 인간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곧 눈에 보이는 성전에 대한 신앙은
더디 이루어진다 심지어 안 이루어진다
이것을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이 속담을 인간들은 긍정적으로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 신앙으로 바꿀려며는
반드시 우상숭배를 함께 섞어야 하는
성전에 금을 바치면
돈 액수가 크면 클수록 더 빨리 이루어진다 라는 이것이

이 우상숭배가 그때나
심지어 지금 2023년에도
아무리 지구가 멸망한다 라고 외치는 기후재앙의 종말이라고 해도
절대로 이 우상숭배가 절대로 절대로 네버 네버 멈추지 않는다 라는

이것이 상대적으로 한 세트 한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주님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이 여호와의 칼 앞에 다 놓여진자로 만드심에 있어서
가장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이 되듯이

이스라엘은 하여튼 이런 부정적인 의미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는 것에
영광인 줄 알아라 이것들아(아 갑자기 그 개그맨 이름까먹었네 ㅋㅋ)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유미 유미 ~~~~~~

아 아니다 영미 ~~~~ 영미 ~~~~ 컬링 선수 외침 말이죠
한참 뒤에 생각났네요 ㅋㅋ 안영미
컬링선수 이름은 성은 김씨 김영미

아니 왜 그러죠?
바로 이스라엘은 이 잃어버린 마음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 그럼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겁니까

저도 그런줄 알았습니다만 인간의 죽음 안 받습니다
그럼 뭐냐?

아니 잃어버린 경험을 가져야 한다메?
그래서 바벨론 포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메?

그것을 받아주면요 그런 경험을 했다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그럼 예수님을 죽이지 않아야 하는데
역시나 죽여요

문제는 그런 경험을 역시나 행함의 조건으로 갖추어 본들
행함이지 은혜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로마서 하고 있는데
율법의 행함이냐?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이냐 라고 했잖아요

결국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즉 구약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실패의 자리만 반복할 뿐이다는 겁니다
행함은 무조건 실패해야한다는 거죠

신약의 성령이 오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말이죠
그러니 구약을 우리가 살펴볼때에
신약을 거쳐서 봐야지
안그러면 또 에스겔 마저도 율법으로 해석하도록
행함으로 해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비유이고 그게 무슨 단절 입니까?
또 연결 접촉 네트워크 형성할려는 시도인 거죠

단순히 다윗언약을 에스겔이 외치는게 아닙니다
과거의 다윗이 아닙니다
미래의 예수님을 외치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믿었으리요 ~~~~~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인물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죠
다윗이 그 분을 봐버렸고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봐버렸거든요

그러니 잃어버린 경험 조차도 내 경험으로 만드는게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만이 절대저주를 받았다 라는 그 죽음을 보라 라는 취지입니다
행함으로가 아닌 믿음으로
그러니까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문제는 행함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믿음이 없어요
중심이 없어요
정직한 영이 없어요 그래서 다윗이 울었습니다
인간이 할 줄 아는 것
다윗이 할 줄 아는 것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가능성입니다 행함입니다
까짓꺼 장대높이 달린 인자 쳐다보기 뭐가 어렵냐> 고개만 돌리면 되는데
가능할 것 같죠? 나 라는 주체가 있어서 그렇게 착각 합니다
문제는 고개를 못 돌리도록 막아버리는 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말씀이요 비유요 수수께끼요
보편적 진리 곧 속담을 깨뜨리는 구체적 보편적진리이다는 겁니다
그 앞에서 내 행함이 1초도 안되어서 삭제 당하니까
내가 행한 것들의 흔적이 남아나질 않아요 다 지워버리는 겁니다
행함 증거 내 밀려고 하면 바로 지워버려요
아무것도 내밀수가 없도록 빈손 빈공백 만들어버리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잃어버린 경험 했고요 70만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해도요
그것 조차도 또 율법이 되는 겁니다 행함이 되고
조건이 되다 보니
역시나 예수님을 죽이는데 있어서
그런 것이 다 무용지물이 되더라 말이죠

인간의 죽음을 거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그것을 잃어버린 경험을 가지도록 하는 하나의 조건인냥 갖추게 되면
또 그 놈이 자기가 중심인줄 까불꺼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을 사탄의 가시를 찌르듯이
절대로 인간은 중심이 될 이유가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도리어 소모품이 되어서 죽이시기로 작정하기 바쁜데
중심은 믄 중싱 그저 그렇게 중심이 되고자 외모를 껍데기에 갖추도록 착각토록 만드시겠죠

지금 이스라엘의 땅
아니 약속의 땅에 있는 시온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포로잡혀 갔다 말이죠

왜? 우상숭배를 했기에 성전에다가 우상의 그림을 그리고서 제사를 드렸고
아비와 자식을 제물로 삼아 인신제사 까지 드렸다 말이죠

왜? 자기가 망하면 안되기에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기에
이게 우상숭배요 음행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잔칫집이 되어야지
초상집이 되면 안된다 라는 겁니다

아니 약속의 땅의 은혜를
아무것도 심지도 않고서도 그 소산물을 먹을 수 있는 이 은혜를

인간은 반드시 자기의 행함을 가미 시켜서
이 약속의 의미를 퇴색 시키든 말든
자기 생존을
아니면 죽어도 구원이 될 수 있는 이 이방나라의 우상숭배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이 약속을 무시했듯이
여호와의 칼?
여호와의 불? 웃끼지 마라 또 너냐 라고 비웃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나의 살아있음이 말씀 보다 먼저 우선시가 됨 인간의 육체 라는 겁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 경제문제는 돌을 떡 덩이가 되도록 해 달라
그것이 메시아의 조건이다 라고 시험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신에게 접근하는 첫 번째 조건인
나의 살아있는 생존을 보장해 달라는 겁니다
주님 당신이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책임져라 라는 거죠

여기에 주님의 뜻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즉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기 위해서 인간은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줄 모를 뿐만 아니라

지금 최고의 제일 먼저의 조건 자체가 자기 생존 아닙니까
자기 생존이 가장 우선시가 된 인간의 입장에서
뭐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이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 말이죠

그래서 의인도 악인도 죽이시는 이 말씀을 우리는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어떤 누구도 이런 말씀을 누가 외칠수 있겠냐 말이죠

자기 생존이 먼저인 인간에게서 말이죠
자기 배를 위하여 예수님을 임금삼고자 경제 문제 해결해 달라 가 먼저이고 우선시된
제일 먼저 시급한 문제인데

그 다음 먹는 문제 해결 되면 이제 자기영역을 넓히는 인정
사랑받기 위한 종교문제 그 다음 정치 문제 이렇게 점점점 그런
자아 라는 우상의 확장성을 꾀하는 거죠

그런데 뭐?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아 예수님 인간한테 맞아죽을 소리만 고 있어요 글쎄

이 상황을 뻔히 말씀을 통해서 보면서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라고 하니까
남도 아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죽일 듯이 달려들더라 말이죠

어머니가 자녀에게 야들아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다 이야기 하니까
인연 끊자고 해요 글쎄

아니 그 교회가 무식한 수준 낮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수준 높다고 자부하는 자들로만 모여있다고 우기는데 말이죠
목사 또한 최고의 성화론자라고 칭송을 받는데
다들 죽일 듯이 째려봐요 글쎄 우씨처럼 눈에 레이져가 발사 되어서
벌써 타 죽었어야 하는데 아쉬워요 ㅋㅋㅋㅋ

아니 어머니 보다 더 많이 배우고 대학까지 다 나온 자녀가
그 말했다 라고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으니 원

아니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써 나갔던 것이
그때로 끝나는게 아니라 점점더 더더더 깊어져서 나타나더라 말이죠

에스겔 때에

이제는 뭐 여호와의 칼?
아니 여호와의 불도 개무시하고 비웃는 판국에
여호와의 칼이라고 해서 무서버서 벌벌벌 떨까요?

절대로 돌이키라 라고 하는 소리 같죠 아닙니다
그 다음 예수님 때에는 아예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버립니다
자기들이 믿는 신을 죽여버려요
고로 모든 인간은 우상숭배자로 들추어짐을 당하는 겁니다
이게 잃어버림의 경험입니다
내가 믿는 신을 잃어야 하고
내가 나를 챙기는 구원도 잃어버려야 하고
내 중심 내 믿고픈 것만 믿고 보고픈 것 듣고픈 것 다 잃어버리는 내 영역이 내 창고가 다 빼앗김을 내 몸 내 시간 말이죠 그게 십자가에서 이루어지지
내가 믿숩니다 해서 바벨론 포로 잡혀간다고 해서 달라지느냐
아니다 라니까요 혹시나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걱정하고 두려워 떤다 라고 했어요
비유인데 풀려버리면 해석이 되어버리면 그게 무슨 놈의 비유 비밀입니까

에스겔 때나
예수님 때나
홉니와 비느하스 즉 엘리 제사때나
절대로 안 변하는게 인간입니다

무서버서 두려워 떨기는커녕 비웃기 바빠요
아이고 웃겨서 배아파라 또 비유로 말하는자 또 너냐
아니 소통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찬반이라는 결론을 내는 토론 변론이 되지
변론하자 라고 해 놓고서는
소통 자체가 안되는 말만 하고 있는데 무슨 놈의 찬반이 나오겠느냐 말이죠
바로 그것을 막는 것이 비유라니까요
누가 두려워서 떨겠습니까?  그저 웃지요 또 너냐 그래 그래 앵간히 하다 가겠지 라고
다들 체념하면서 보는 겁니다

(빌 2:12,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욥 4:14, 개역)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시 55:5, 개역)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그런 더디 이루어지는 구원은 가차없이 버리고요
빨리 반드시 이루어지는 금을 바쳐야 이 기도가 이루어진다 라고
지금까지도 아니 모든 인간의 내면속을
감찰하는 칼로써 말씀이 에스겔 한테만
호세아 한테만 나타나는 겁니다

뭐 기독교는 다르다 라고요? 똑 같습니다 역시나 우상숭배일 뿐인 바벨탑
강도의 소굴일 뿐입니다 돈 만 밝혀요 글쎄

마귀의 첫 번째 시험 조차도 못 넘어섭니다 둘째 셋째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여호와의 칼이
이 말씀이 날선 살육하는 칼이고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날섰다 라는 것은 날생 살아있다 라는 겁니다 즉 다른 것은 다 죽었다 라는 
이미 선언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그러니 화로다 나여 나는 망했구나 라고
매국노 세리는 성전에서 울면서 긍휼을 바라더라 말이죠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능으로써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의인됨이냐 자신의 죄인됨이냐가
이 여호와의 칼 앞에서는 쓸데 없는 것인데
인간들은 여호와의 칼 곧 말씀을 눈치 보는게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
세상 사람
목사 눈치
가족들 눈치 집안 식구가 원수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 눈치 보면서 살더라 말이죠
네 절대로 안 비웃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비웃어요

내 배고픔 앞에서
돌이 떡 덩어리 되게 해 달라 앞에서

말씀은 그저 비웃음꺼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런 말씀을 누가 날선 검으로 보고서 여호와의 불로써 보고
타 죽을까봐 
푹 찔려 죽을까봐 벌벌벌 떨겠습니까?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우리는 전혀 심각하지 않아요 말씀 스스로 자기 혼자만 심각해요 글쎄 뭐거 엎친데 덥친격으로 이중반복으로 보이겠냐 말이죠 그냥 개무시해 버리면 끝인데)

그리고 마광은 번개처럼 순식간에 번쩍 우리의 속내를 다 드러낸다 말이죠
여기서 오대수처럼 오이디푸스처럼 말이 많은
그 놈의 비극이 무슨 놈의 소용이 있냐 말이죠 그런 의문의 반복을 해서 뭐하냐 말이죠

그리스 비극 즉 신화의 비극
가차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게 나의 삶은 무의미 하지 않았다 라는 헛소리 아닙니까

아니 인생은 수에 칠 가치가 없다 라고 허구라고 하는데
그 허상을 그래도 무의미 하지 않았다 가치 있다 라고 해야
정신병에 덜거리지 목 덜미 덜 잡지
무의미 했다 라고 하면 목덜미 잡고 돌아가실 판국이 되니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는게 얼마나 정상적이냐 말이죠

그런데 말씀이 덮쳐진 참선지자만이 의인이든 악인이든
여호와의 칼로 다 죽여버리겠다 라고
말씀 자체가 특히 이스라엘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상관 없이
이 말씀을 보여주는게 있어서 죽어야 하는 자로써 태어난 것이다 라고 하면

얼마나 허무하겠냐 말이죠

네 맞아요 자아가 있기 때문에 허무 해요
그런데 자아가 없어봐요
그것 보다 더 신나는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는데 중심도 아닌 것들이 말이 많아요
처음에는 비극 나중에는 희극 이라고
아무리 가치 없는 인생이라고 해도
나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노라 라고 자신을 격려해줘야
이 각박한 세상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안그러면 다 죽는다 이러다 다 죽어가 되더라 말이죠
그러니 잠잠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하라 할 수가 없어요
나 살았다 라고 매일 매일 자기에게 외치지 않으면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수가 없어요
그렇게 외쳐야 행복을 천국을 억지로 억지로 남 눈치 보면서
추구하는 척 척 척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상 오니까 
이 중심이 오면 그저 할 말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저 허걱 거리면서
그 여호와의 칼에 찔려서 윽 하고 죽어야 합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구나 라고
그 죽음 속에 들어가서 비로소 울게 됩니다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해서 말이죠

속히 속히 빠르게 말이죠
그래서 마광입니다

아니 1초 전 까지만 해도
저 사기꾼 예수에게 안 속아넘어갔고
내 종교 내 국가 내 가정 내 중심을 지켜냈노라 라고 자부했던 자들이
갑자기 오순절 성령으로 인해서
사람이 갑자기 헤까닥 다 변해버리더라 말이죠
내 종교 내 국가 자기 영역을 경계선을 긋고 난리치던 자들이
그래서 예수님 까지 자기 종교 영역 
신앙의 믿음 영역
마음 속의 영역까지 절대로 못 들어오도록 막고자 죽여버리는데 성공했던 자들이
그 담벼락이 아무리 견고해도 다 무너지는
오순절 사건으로 인해 여기서 제가 저 순복음 이단들 땜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순절 강조하는 이유는 시간을 빼앗겼다 라는 겁니다
이제 성령 앞에서 감히 내 시간을 주장 할 수가 없어요 내 역사
내 과거 내 현재 내 미래를 다 지움 당해 버린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때와 몸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기능이 덮쳐져 버린 겁니다
이것이 장소와 시간의 중심으로써의 걸어다니는 성전 곧 시온산 중심인 성전되신 예수님이다 말이죠

이제 모든 육체는 십자가에 못 박혀 버렸으니
의인이다 라고 내세울수도 없고
죄인이다 라고 죄책감 가질 자격도 없는

그런 엉터리 의 엉터리 죄 엉터리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진짜 제대로 저주 받으신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샸다 마우스 그 입 다물라
중심이 여기 있는데 어딜 오대수가 오이디 푸스가 비극이나 뭐니 따질 자격이 있기는 있냐 말이죠
아아이고 그것도 비극이가 그것도 저주가 그것도 죽음이다
오딜 뻔데기 앞에서 말이죠

그런데 이 죽음이 이 잃어버림이 내 죽음 보라꼬
내 잃어버림의 비극을 보라꼬

그 되도 않는 내 목숨 잃어버린 것 다시 되찾아 본들
또 의문이라서 답도 없어서
완료가 없어요 마침이 없어요

네 맞아요 알고보니 이 예루살렘 불타는
이 중심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서
그 속에 다 참여 당하는 연합
세례를 당하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중심 되시는 예수님의 죽음 속에 들어가고자 
(시편 73편 아삽은 자기가 낙심이 되어서 목숨을 잃어버릴 정도라고 했다 말이죠
그런데 정작 성소에 어린양의 죽음에 안 들어가놓고서 잃어버림의 경험을 했다?
그것도 요나의 표적이 아니라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즉 남의 눈치를 의식해서 기적을 받아야 한다 라는 식이였던 거죠
성소에 들어가 보니 아이고 괜히 낙심했다 말이죠 괜히 죽을 정도가 되었다 말이죠
정작 봐야 할 것은 딴데 있었던 거죠 중심을 안 보고 중심인척 잃어버린 척 척 척)

예수님을 잃어버린
첫사랑을 잃어버린 그 새마음에 동참되고자
이렇게 여호와의 칼을 보내서
하나님의 뜻을 보내서
이 운명 속에 이스라엘 만큼만은 다른 민족들 다 보는 앞에서
매 맞는 겁니다 이것이 영광이다 말이죠 영광

사생아에게 없는 징계를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당하는 겁니다
지금 현재의 유대인들 보세요 여전히 징계 받잖아요 그럼 자녀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들 모든 민족들이 다 알 정도입니다
사생아 이라고
니느웨 백성이 오히려 그들을 심판하고 있고
남방 여왕이 이들을 심판하고 있더라 말이죠

여전히 그들은 매를 때리시는 아버지가 없는 자들과 다를바 없이 행동하니까 말이죠
유대인인데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는자 봤나요?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예수님으로 산다를 외치는 유대인 봤나요?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 천주교 포함해서 유럽은 통상적으로 그렇게 많이들 보거든요
그런 기독교인들 봤나요? 천주교 구교는 안외치지만 
개신교 신교는 외친다? 그런 자 과연 있으면 철저하게 조사 한번 해 보자 말이죠
설사 있다 해 도 세상사람들이 과연 살려뒀을까요?
아니 세상사람이 아니라
교회 사람이 벌써 죽이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죠

우리가 여호와의 칼에 살육 당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여호와의 칼 이신 예수님을 살육 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령이 있다는 증거인 거죠

뭐 개신교든 천주교든 기독교든
지금도 말씀을 죽이는데 목숨을 거는 자들 밖에 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뜻으로나 혈통으로나 육으로 나지 않은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녀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도록 불쑥 불쑥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죽여본들 다시 나타나요
자꾸 바톤을 이어받듯이

스데반을 죽였는데 스데반 죽인 바울이 바통을 이어 받고
계주를 하더라 말이죠
이에 여호와의 칼입니다 무기입니다 군대 마른뼈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말이죠

이 또렷히 밝히 보이는
마광된 십자가의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매일 속고 있습니다
자기 생존의 정당성 찾고자
억지로 믿어야 하고
억지로 행해야 하고
그렇게 이 여호와의 칼을 무시해야만
자기 생존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인정해 버리면 46년 동안 지은 성전 하루 아침에 다 무너져요 글쎄

이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보라꼬 마광된 여호와의 칼을 보라꼬

이 사랑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이스라엘이

지금 이방 나라 보다 더더더 우상숭배에 빠졌잖아요
다 포기해 버린 겁니다
자기도 포기해 버렸고
남도 포기해 버렸고
누가 인도해 줄 지도자 하나 없어요
각기 제길로 가는 양 같은 자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우시는 겁니다
오늘날로 치면 교회야 교회야 라고 우시는 겁니다
언제까지 내가 내 선지자를 암탉이 병아리 품듯이 품고자 했던
주님의 자녀를 어미 닭 품으로 모을려고 한 것을 방해하고 죽이고 했느냐
언제까지 그 의문의 반복을 교회야 예루살렘아 언제까지 할래 라고 우시듯이

그래도 또 선지자 보내서 예루살렘에서 죽도록 하시고
최종적으로 예수님 본인이 어미닭 본인이
우리 우영우 변호사 드라마 속의 어미고래와 아기고래 이야기처럼
어미 고래 어미 닭이 그 의문의 반복의 마침이 되고자
예루살렘에 죽으러 오셨다 말이죠

음부의 권세 중앙본부에 지옥 본부 강도의 소굴 본부에 말이죠
이 십자가의 사랑이 또렷히 보이는 자는
지옥을 없애버리고 그 지옥의 자리를 천국의 자리로 만든
이 십자가의 사랑을 외치는데 영광을 받지만

유대인은 거리끼는 십자가가 되어버렸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네 맞아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면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가 되지 아니하면
그 강도의 소굴
그 음부의 권세에서 빠져나올길이 없는
강도의 소굴을 중심으로 살고
선지자를 죽이는 예루살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하나님의 군대로써
칼로써

여기에 여호와의 칼이 섬기는 자로써 등장하는 겁니다
누가 이 여호와의 칼 여호와의 불이 
섬기는 자로 등장할때에
주여 칼이여 저를 죽여주소서 저를 불태워주소서 라고 우는 자가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가 예루살렘이 더더욱 자기영역을 확장시켜달라고
철야기도까지 하면서 소음을 내는데

귀막고 고개를 돌리고 안 들을란다 안 볼란다
너희들은 왜 자꾸 내 마당을 밟느냐 제발 좀 그만 괴롭혀라

오냐 이제 내가 너희들을 국문하겠다
에스겔아 여호와의 불로써 남에서 북으로 불 태워라
여호와의 칼로써 남에서 북으로 쳐서 살육해라
의인이든 악인이든 모조리 다 죽여라 ~~

이 섬김을 누가 받겠냐 말이죠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다 못 박아라 ~~~~~~~~~~~
의인은 빼고요? 아니 반드시 의인도 포함해서 ~~~~~~~

이 섬기시는 자 앞에서
주여 나는 사망의 몸입니다 고쳐주소서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그 칼과 불을 보고서

벌벌벌 떨면서 두려워 하면서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서
누구 그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누가 여호와의 칼을

칼이여 칼이여 저를 제일 먼저 수술해 주세요
내 뱃속에 마귀가 있어요 사망이 있어요
죽음이 있어요 이 사망의 권세 좀 수술해 주세요 라고
칼을 요청하는 사람 세상 천지에 어디있겠습니까

아 그런데 있어요 방금 생겼어요
즉 그 동안 없었는데 말이죠
칼이 방금 새로 만들어 냈어요

나는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여 라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우는 자가

칼이 새롭게 방금 만들어 내니까
그 사람은 사망의 몸이기에 오로지 칼만
말씀만 찾는 겁니다 의시만 말이죠
아무리 떡 돈 백날 많아서
부자가 창고 가득 쌀과 돈을 가득채워서
또 돈이 돈을 벌어서 창고를 아무리 늘려본들
내 영혼아 너 참 수고 했어 참으로 기특해 라고
이제 편히 쉬제잉 라고 자기가 기특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그 우영우 마지막 대사

뿌듯함 

그 뿌듯함에 춤추고 노래할 때 그 잔칫집 만들기 성공했다고 뿌듯해 할때에

오늘밤 니 영혼 취하면 이 창고에 쌓아둔 돈 다발 누구것이 되겠니?

헛짓 했네 헛짓

아예 첫 대면을 샬롬 평화 평화 막힌 담 허물기로 경계선 허물기로
간밤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안 타죽는

아니 남들의 시선 낮짝 얼굴을 대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이스라엘이라는 기능을
오늘 이스라엘 땅으로써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다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 라는
죽음을 초상집을 좁은길을 없는 길을
이 여호와의 칼 만이 나를 살리는

날 찌르는 창 만이 나를 제대로 치료하는 칼인데

그 앞에서 돌을 떡덩이 되게 해 달라가 무슨 놈의 소용이 있냐 말이죠
창고 늘려서 내 영혼아 편히 쉬자 너는 이제 보상 받을 자격이 돼 라는 것이

무슨 놈의 소용이 있냐 말이죠

사람은 말씀을 보여주도록 되어있는데 ~~~~~~~~

그 이름을 도리어 나를 우상숭배하는데 있어서 사용하고자
개무시하고 하나님 브랜드만 따와서
자기 배를 위하고자 채우고자 임금삼고자 하는

백날 채워보세요 채워지나? 지옥같이 매일 매일 밤마다 울어재끼는 겁니다
밥 달라 배고프다 라고 하이에나처럼 채워도 채워도 배고프다 라고 우는
지옥의 몸이더라 말이죠

그 속내를
이 여호와의 칼이 가만히 두시겠냐 말이죠

섬기는 자 라면 대수술 하는 겁니다

얼마나 제대로 셤기셨으면 두 막대기 요셉지파의 섬기시는 자로써
납달리 땅 스블론 땅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자
흑암의 백성 지옥백성 
개같은 이방인 갈릴리여 
세상에 빛이 비추었다 말이죠
아니 지옥 백성이 섬기는 자 한 사람 땜에 졸지에 순식간에 천국백성이 된다 라고?

남유다에게서는 독립운동 안하고 엉뚱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그 거리끼는 걸림돌 다 이루었다 때문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신 왕이 나타났다 라고?
성전을 헐고 삼일만다 다 이룬 유대인의 왕이 나타났다 라고

뭐가 보입니까? 아무것도 안 보여요 다 수수께끼 비유 무슨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유대인은 아직까지 지금 현재 2023년 7월 지금까지

이 다 이루신 유대인의 왕 앞에서 그 뻔데기 앞에서
아직까지도 그 의문의 반복인 음행 음란 짓으로 우상숭배로
아직까지도 남을 7번 용서를 하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말이죠
중심도 아닌데 왜 의식하냐 말이죠

그러니 거리끼는 걸림돌인 겁니다 다 이룬 완공된 걸어나디는 성전 앞에서
아직도 의문의 반복을 기초만 짓고 아직도 완공을 못하고 있어요 글쎄
그러니 저 7에 70번 용서를

남을 7번 용서를 하면 할수록 더 미운 겁니다

탕자보다 더 미운 아버지의 탕자를 용서한 그 아버지가 더 미워죽는 겁니다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탕자에 대한 사랑
7에 70번 용서가 졸지에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버렸어요

본인도 그 용서를 같이 받으면 되는데
그 완악한 수건 땜에 거부를 합니다

이래뵈도 나 이대 나온 여자가 라고
배운 교육받은 자 라꼬
의인도 악인도 다 심판하고 수술하시는 저 여호와의 칼을 거부하는 겁니다

아니 왜 내가 수술 받아야 해?
그게 수술 받아야 하는 이유인 겁니다

수술 받아야 한다 라는 것 자체를 모르니까 말이죠

아 그럼 내가 탕자란 말이냐?
환자란 말이냐?
네 그게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이다 말이죠

도통 무슨소리인줄 모르니까
이스르엘 하나님이 버렸다
로 루마하 주님이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
로 암미 너는 내 백성이 아니라

라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이스르엘의 날을 크게 하겠다 긍휼히 여기겠다 이게 스불론 땅 납달리 땅 아닙니까
오 람이 너는 내 백성 내 자녀가 아니다 라고 했던 그 자리에서
내 자녀이다 라고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앉은뱅이
그리고 지옥백성 개같은 이방인 갈릴리여 기뻐하라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 나타났다 말이죠

자신의 더러움을 비로소 비춰주시는 빛으로 인해서 더러움을 알고 고쳐달라고 우는 겁니다

이 여호와의 칼 만이
푹찌르고 살육하고 또렷한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감히 나는 의인이다 평강이다 안 망한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인데 망할 턱이 있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누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칼이 안 두렵고 떨리지도 않고
그저 자기 생존 땜에 하늘의 여왕에게 곡식만 제대로 바쳤다면 안 망했을걸 이라고

여호와의 칼은 두려워 하지 않은채 개무시하고 비웃었고
그저 남들의 시선만 두려워서 자기 배를 채워주는 우상을 불타는 예루살렘성전 강도의 소굴만
심각하게 여기더라 말이죠 자기 배만 그 지옥 그 사망의 채워도 채워도 배부르지 않는
밤새도록 밥달라 라고 울부짖는 하이에나만 심각하게 보니까

여호와의 칼을 무시하고 여호와의 불을 비웃는 겁니다

그래 그래 실컷 비웃어라
이제 내가 국문하겠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오늘날 교회가 외칠턱이 있겠습니까?
그저 윤리 도덕으로 교육하듯이 가르칠려고
지금 이제 여름수련회 때 쯤에 정신차리라고 부흥회를 열어서
돈 바치라고 잔소리 하는 수준에서 각성하자
이 무더운 여름에 정신차리고 똑바로 살아서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자 라고
마약을 퍼 먹이잖아요

한번은 부흥회때에 부흥강사를 음대 교수 부부가
분홍 드레스와 청녹색 신사복을 입고서 부흥회를 하는데
어라 갑자기 환상이 보여서
그 교회 사람들 모두가 얼굴을 보니 다 썩어들어가 있더라 말이죠

아니 내가 보고파서 본 겁니까?
그때부터 미친 듯이 도망칠려고 했는데
본 사람이 저 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다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듯이 매번 덤벼들었다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가족을 괴롭히더라 말이죠
저와 가까이 하던 사람들이 먼저 교회에서 쫓겨나고
결국은 저도 쫏겨났지요 뭐

괜히 봤어 괜히 봤어 흑흑흑 뾰로롱
그런데 그게 시작이였다 말이죠
가는 교회마다 다 그런 놈들 밖에 없어요 글쎄
그저 돈돈돈 

문제는 저도 마찬가지 돈 만 밝히는 놈인데
이 말씀이 살아서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겁니다 얼마나 괴롭히는지
저들이 괴롭히는 것은 뒷 북 치기 밖에 안되더라 말이죠

이 생 날것 생 날 유일하게 살아있기에
나머지는 다 이미 죽은 것들이기에
칼이여 칼이여 다 살육하는 이 칼의 기능을 보여주도록
그 칼에 다 죽어야 하는 자로 드러나야 한다 말이죠
의사의 기능에 환자가 되어야 하듯
구원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새로운 죄인으로 만들어져야 하니까 말이죠

그렇게 죽여 놓고서
다시 주님이 자기 피를 흘려서
그 죽은 자들을 자기 피 꼿아서 대수술로 수혈하고 헌혈해서
피를 갈아버려요 글쎄

이게 첫사랑이 찾아 헤메이는 처음자리인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이다 말이죠
섬기는 목자를
그 첫사랑을
처음자리에 있는 자

핏덩어리야 제발 살라 라고 처음맹세로 밀어붙이시는
이 여호와의 칼 앞에 놓여져야 하는 새로운 환자로써 말이죠

당신은 어쩔수 없는 피 의사입니다
피가 아니면 그 어떤 연결 점도 없도록 하시는
이 피 의사에 딱 맞는 피 환자
처음맹세로만 밀어붙이시는
예수의 피로만 다시 사는 환자로만 만드시고자

멀쩡한 나라 멀쩡한 왕 대통령 멀쩡한 가정 국가 다 버리고
그 예후 왕 까지 포함해서 7명의 왕을 버리고

호세아 가정 그것도 음란한 가정으로 만들어서
환자 만들어서
피 신랑에 맞는 피 신부로써
피의 결혼만을 보여주는

진작에 벌써 다 버린 이스라엘의 기능을
온 시온산을 우상으로 도배를 해 버린
그 시온산을 불태워 버려서라도
대 청소 대 수술을 함으로써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바벨론 포로 속에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어두운 깊은 바다 스올 무저갱 지옥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70년 만에 되돌아 오는

이 성전을 다시 주님의 손으로만 다시 세우시는
이 중심을
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라꼬 말이죠

이 예수님의 죽음만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대수술을 하는 겁니다
마음도 우상뿐이요 생각 뜻 모조리 다 썩어버렸다 말이죠
그것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시 새로 채우시는 겁니다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니 이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이 여호와의 칼
여호와의 불 앞에서

두려움도 떨림도 없이 개무시하는 자들에게서는
이 칼이 무용지물이다는 겁니다
냅뚸 버려요

칼로 수술해 달라는 자
그 부르짖는 자에게만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만
물론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 만드십니다 여호와의 칼이 말이죠
부르짖지 않은 자들에게서 부르신바 물으신바 되고
찾지도 않은 자들에게서 찾으신 바 되도록 하시는
여호와의 칼이 새로 잉태한 자
기뻐하심을 입은 자로 말이죠

개무시하는 자에게는 쓸모짝도 없는
고쳐본들 또 9명의 유대인 문둥병자처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또 우상숭배 또 음행 음란 짓만 할 뿐인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구원은 내가 이룬다 라는 그 의문의 반복만 할 뿐이다 말이죠

이렇게 여호와의 칼 곧 약속의 말씀은
두 패로 가르는 겁니다

누구든지 자기는 구원받는 쪽으로 자신을 두고자 하지
심판받아야 할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칼과 불이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거죠

자신은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우는 자에게만
이 칼과 불이 옳았다 라고 외치는 겁니다

그런 자 만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써 구원을 얻는
자기 이름이 쓸모짝도 없다 라고 외치는 자이고

자기 이름을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이미 벌써 내어버려둠을 당하는
주의 이름을 가지고 종교오락 중독에 빠져있는
산당 짓기 우상숭배그림 그리기 라는 

이기기 위한 게임만을 할 뿐인 또 자기숭배에
간극을 더더더 좁힐려고 시도하도록 되어 있는
종교 마약에 빠져있는 겁니다

자 그럼 악인은 죽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의인은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 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의 악마성은 곧 선악성은
여호와의 칼로써 와서도 끝까지 섬기시는
그 이기고도 남는 칼이 도리어 죽으시러 왔다는 라는 그 섬김 마저도
우리는 여호와의 칼을 죽였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라고 자기의 이김을 더 중요시 한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는 구제불능이다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이 헛되다 라는 겁니다

질려고 오시는 이 섬김을 칼로 보고 두려워 벌벌 떨 턱이 없는
그 정도로 완악한 수건을 벗을 수가 없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끝까지 개 무시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님은
여호와의 뜻을 이 창조의 이름을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인간만 그 창조주의 이름을 자기우상숭배로 이용하는
누워서 침 뱉기 할 뿐이다는 거죠

그러든 말든 듣든지 아니듣든지 밀어붙이시는 그 불도져에
그 여호와의 칼 살육하는 칼에
찔리고 깔려 죽는 자 만이
이 여호와의 칼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여호와의 칼을
다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여호와의 칼을
다시 살아났다 라고 외치는 자로써

그 칼이 나를 죽이는 칼이 나를 살리는 칼로써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이 칼을 부르짖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에스겔은 이 칼을 부르짖는 겁니다
즉 안 찔려 죽으면 진짜 죽는다 라고
에스겔 본인이 찔려서 외치는 겁니다

사도바울처럼 당하는

죽이시기로 작정된 자로써
이 여호와의 칼이 아니면 우린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었다 라고

이 말씀이 심각하지

나의 생존 따위는
이미 벙어리로 에스겔을 만드신 그 주의 이름 앞에
뒷북 치듯이 에스겔을 죽이겠다 라고 나오는
헛발질 밖에 안되는
누워서 침 뱉기일 뿐입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닙니다
오로지 십자가의 피 용서
그 대신 죽는 피 흘리심으로만 삽니다

육체를 죽이는 자를 두려워 말고
영혼까지 죽이시는 주님을 더 두려워 하라꼬 말이죠

이 여호와의 칼 만이 나를 살리는 암덩어리 제거자인 의사 이지
이 의사보다 나 자신이 중요해 져 버리면

이미 지옥일 뿐인 채워도 채워도 배고프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하이에나일 뿐인 겁니다

그 속에서 건져 달라고
기생 라합은 외쳤습니다


그 이름만 듣고도 간담이 40년 동안 녹고 녹고 녹아서
상한 심령이 되어서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를 바랬습니다

암덩어리의 심각성을 아는 자 만이
이 여호와의 칼이 인애와 자비로 보이지

안그런 자는 그저 그 여호와의 칼 오지 말라꼬
또 간극을 두면서
번제와 제사를 바칠테니 워워워 달래듯이 다룰려고 하는
이 음란 음행에서 못 벗어나는
자기 자아 우상숭배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유일한 답은 여호와의 칼 곧 말씀 뿐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만이
이 십자가의 피 요나의 표적만이

사람이 떡으로가 아닌
약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만 사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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