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1 복음(예수님)에 사로잡힌 자 사도바울 (롬 1, 1- 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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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후가 아합왕이 아닌 그의 아들 요람 왕을 죽였습니다 이미 벌써 죽었는데, 수정합니다)
22-001 복음(예수님)에 사로잡힌 자 사도바울 (롬 1, 1- 7)
로마서 2022 2022. 1. 8. 11:13
22-001 복음(종말;원인 없는 결과)에 사로잡힌 자 사도바울(피 발린 문제아 탕자) (롬 1, 1- 7)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마태복음 2018 2021. 12. 11. 13:32
18-155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로마서 1, 1- 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찬송가 277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가 277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1.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수많은 심령 멸망하겠네 
   그 누가 갈까 주의 복음 들고 생명을 구원하는 곳으로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2. 구원의 문은 넓게 열렸으니 십자가 군병 일어나거라 
   너희의 힘을 하나로 뭉쳐서 죄악의 쇠사슬을 끊어라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3. 왜 너는 멸망길을 가려느냐 주 음성 듣고 응답하여라 
   널 구원하려 예수 죽었으니 생명의 이 복음을 전하라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4. 온 천하 만민 승리의 그 날에 영광과 찬송 주께 드리네 
   속죄함 입어 구원받았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부르세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로마서 1, 1- 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가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2.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3.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 바다 건너가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4.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롬 1:1,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롬 1:2, 새번역)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롬 1:3, 새번역)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롬 1:4, 새번역)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 '거룩함의 영' ㉡또는 '확인되신, 지정되신, 지명되신'
(롬 1:5, 새번역)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 1:6, 새번역)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 들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롬 1:7, 새번역)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어! 신약에서도 소제목을 여전히 달아놓았군요
아 맞다 새번역은 소제목을 안 달았어 그렇게 봤군요

(롬 1:1, 쉬운) <인사말> 나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특별히 선택되었습니다.
(롬 1:8, 쉬운) <로마 방문을 간절히 원하는 바울> 
(롬 1:16, 쉬운) <복음의 능력> 
(롬 1:18, 쉬운)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롬 1:1, 현대어) [인사] 로마에 사시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께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이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전도자가 되었고, 복음을 전하도록 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입니다.
(롬 1:8, 현대어) [감사기도] 
(롬 1:16, 현대어) [믿음을 통한 구원] 
(롬 1:18, 현대어) [인간의 타락한 모습] 

개역개정한글
롬1:1 <인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8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롬1:18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오늘은 이미 로마서 1장 시작의 부분을 글로 적은 글에다가 더해서
호세아 1장을 한 것을 연결 시켜서
글을 보충으로 더해서 내용을 말하고자 합니다

https://crosslamb.tistory.com/2527

이미 말했듯이
지금 에스겔 20장 정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원래 주 요 중심이 되고
나머지 에스겔 끝부분과 로마서를 보충으로 글로만 올렸었는데
어라 너무 중요한 부분을 하게 되다 보니 그냥 설교녹음으로 다 해버렸다 말이죠
그러다기 빠뜨린 부분 로마서에서 첫 1장 첫글만 빠뜨리고 나머지는 다 하다 보니
안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때가 되었다 말이죠 에스겔 끝 부분은 중간에 빠진 것이 많지만
원래 주로 하는 부분이 있기에 나중에 다 메꾸어 지니까 그때 하면 되고요
로마서는 빨리 해야 싶었는데 다행히 기회가 되었습니다
(뭐를? 설교녹음을, 녹음파일을 말이죠 그래서 녹음이 빠진 것을 오늘 매꾸게 되었습니다 )


자 그래서 로마서 첫 시간에
복음이 사도바울에게 나타났다 라는 내용으로 하고자 합니다
네 맞아요 호세아서에서 말씀이 브니에의 아들 곧 인자죠 수수께끼죠
요셉의 아들 아니냐 목수의 아들 아니냐 그런데 왜 이런 행동을 하지
그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임하다 보니
말씀이 임한 호세아 에게서처럼 복음이 나사렛 이단 예수를 핍박하던 그 당사자 사도바울에게 임해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호세아서에서 6명의 남유다 왕 4명 북이스라엘 왕 2명 그들에게는
왜 백성을 대표하는 왕이면서도 안 임하는가?
그러면 인자는 곧 그들의 증상물인 허물을 들추어내는 거울임과 동시에
말씀이 임한 자 복음이 임한자 로써 중간에 낑긴 목에 탁 걸린 자로써
역사 속에 투입되는 인자 곧 묵시를 등에 업고 나타난 자가 되는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죽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버렸다 말이죠
누구를? 나타나 버린 예수님을
물 위가 아닌
풍랑을 거쳐서 물에 빠진 사도바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버렸으니
이제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증상물로써 왜? 유대인이 사탄의 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그 당사자가 바울 본인이고 그런 바울이 누구를 핍박했다?
나사렛 예수 말이죠
이 나사렛이라는 에브라임 지파에서 난 예수님을
둘로 나누어진 두 막대기를 합치고자 하신 주님의 뜻에
이 새성전 건립에 누가 최고의 방해자인가?
사도바울인 된 겁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도리어 삼키더라 말이죠

(요 2:16, 개역)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개역)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7, 새번역)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 ㉢시 69:9

아 이게 시편 69 구 였구나 육구구 비둘기 육구구 이래 외워야 겠네요 ㅋㅋ
자꾸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와 헷갈렸네요 ㅋㅋㅋ

(시 69:9, 개역)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시 69:9, 새번역)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에게로 쏟아집니다.
(요 2:17, 새번역)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 ㉢시 69:9
(롬 15:3, 새번역)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69:9

왜? 중심이 세워지면 동시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나를 미워해서 그렇다 라는 겁니다
왜? 내가 세상을 악하다 했기 때문에
지지난 주에 예배 후에 어머니께 왜 저런 도리도리 무당을 주님은 왕으로 메시아로 세웠습니까? 우리가 흔히 사회의 악한 현상을 가지고서 성경으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그 반대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이미 세상을 악하다 했기에
저런 놈들이 제발 좀 나타나줘서 이태원 세월호 등등 만들어줘여 한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중요한 것 문재앙과 같은 자들도 바리새인 같은 자칭 거룩한 자들도
어릴적부터 단 한번도 율법 어긴적 없는 부자청년도 반드시 포함이 되어서 말이죠
이들이 세상을 악하다 했다 라는 먼저 성경말씀의 선언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하는 짓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키는 행동들로 부자가 되고 이스라엘 관원 지도자 선생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 성전의 중심 세우기 위한 것 때문에 비방 받듯
물론 다윗 또한 한계점을 가진채로 이 중심세우기에 레위인들처럼 동원이 되고
실패한 레위인을 다시 지도하고 지시하듯이
역시 다윗 또한 실패한 것을 다윗의 자손이신 왕이 오심으로써
이 중심 세우기에 열심인 겁니다 물론 정직한 영 성령 곧 새마음입니다
이 새마음 앞에서 사람의 손으로 짓는 성전은 강도의 소굴일 수 밖에 없음이 들통당하는 겁니다

(눅 4:9, 개역)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눅 4:9, 현대어)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올라가서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시오. 성경에 ㄷ) `주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천사를 보내 보호하게 하시니 그들이 두 손으로 너를 꽉 붙잡으리라. 혹시나 돌부리에라도 채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리라'고 하지 않았소?' (ㄴ. 시91:11-12)


아 맞다 911 구급차로 외원는데 늘 까먹네요 ㅋㅋ 구 일일 일일 일이

자 그러니 사도바울에게 느닷없이 나타나버린 겁니다
이 나타남은 갑자기 순식간에 이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원인과 조건을 갖추는 식이 되어버리면 시간과 공간의 가입이 됩니다
지금 시공간을 깨뜨리는 의미이니까
아무리 사도바울이 가장 나사렛 예수를 핍박했다 라는 그 이유로
그 원인으로 이런 결과
이런 원인 없는 결과
정답의 나타남
갑자기 느닷없이 나타남 때문에 취소가 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이럴때에 불가항력적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불가항력적이다는 것이지 절대죽음 절대심판 절대저주를 타넘고서 말이죠

우리의 선택이 불가항력이다 라고 나오면 이게 또 교리가 됩니다
그카다가 사탄의 회로 빠진 자들이 유대교였고 지금의 천주교요
기독교도 이미 그래 된지 오래된 거죠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냐 라고 하신 말씀이 나타나버렸으니까 말이죠

아무튼 본문으로 들어가서
다른번역에서 소제목을 공통되게 인사말로 표현했군요
저는 로마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계속 생각해 오다가
에스겔과 마태복음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니(그때는 마태복음을 하고 있는 중이였거든요)

종말의 시작이다 또는 원인 없는 결과의 무한반복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공백의 반복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시작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곧 역사의 끝남이다 라는 겁니다
찢으셨으니 다시 싸매어 주심이라는
종말을 단순히 시간의 끝 내 인생의 끝 보다
시공간이나 역사와 몸이 이 새 몸 앞에서는 이전 것은 지나가버려야 한다 라는
완료가 왔다 라는 겁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의 완성이다 라고 했거든요
이것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도 안 기쁜 이유는 내가 지키는 율법은 그럼 뭐가 되느냐? 똥덩어리 배설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였거든요

율법의 가입으로 나는 오히려 이전 것은 지나가야만 하는 가짜로 들통남에 있어서
우는 자게에만 죄인 환자에게만 남을 사랑하는 자가 왔음이 기쁜데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는 자들에게는 법 지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가장 나쁜소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희년은 복음 기쁜날 은혜의 날은
오로지 고아 과부 나그네
눈 먼자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 죽은자 가난한 자
에게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나타나버린 겁니다

(마 11:5, 개역)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반대로 본다는 자, 건강히 걸어다닐줄 아는 이동자 무엇을 이동합니까 자기 몸 공간 아닙니까
그 공간 그 몸 무너진다 라는 겁니다 우상이거든요, 문둥이 피부가 섞었다 말이죠
즉 세균에 의해서 불타는 몸이다는 겁니다 귀도 안 들려요 글쎄 사망의 몸이지요
가난한 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악마 취급 받게 되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늙은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그 미친짓을 왜 하냐 라고
도리어 본인들이 드러누워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이라는 넷플렉스 한국드라마처럼 유럽의 선악구조가 이제는 파괴가 되어버린
니만 악이냐 나도 악 될란다 라고 어차피 부의 불평등 앞에서는 가진 놈만 가지게 되니
그럴빠에 드러누워 버리는 식이 되는 겁니다

자 이런 답도 없는 세상에서 정답이 나타나버렸다 말이죠
내 눈 앞에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은혜의 날이
기쁜소식이 말이죠

자 그럼 기존의 옛것 옛부대의 것들을 사수하는 것들이 왜 남의 것을 빼앗아서 유지해온 것들인
불타야 하는 의문의 반복이였는지가 이 새것 앞에서 새부대 앞에서 들추어니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타났듯이
누구에게? 고아 과부 나그네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 죽은자 가난한 자에게만 말이죠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자 개같은 이방인 갈릴리여 에게 나타났듯이

죽었던 예수님이 사도바울에게 느닷없이 나타나버렸습니다
호세아에게 임해 버렸습니다

그 앞에서 기존의 쥐고 있었던 배설물 손 놓고
명예고 뭐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고 뭐고
가말리엘 문하생 그딴 훈장들 다 버리고

이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춤구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씹고 뜯고 
안하고는 못 배기는 복음이 임하는 겁니다
나 라는 주체를 없애는 내 기쁨을 넘어서는 초월하는 메타 기쁨 중의 기쁨입니다
용서 중의 용서입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기뻐하심을 입은 나타남입니다

세상 노래에 김범수의 노래 나타나 라는 노래가 있더라 말이죠 고 부분만 압니다
안들어봐도 사랑이 나타나면 다 무너집니다 무릎 꿇어 경배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그런내용이지 싶습니다 

사망아 누굴 쏘느냐 라고 사망은 그저 죽이는 것 밖에 몰라요
공포와 불안을 야기 시킵니다 그런 사망 속에 살다 보니 옆에 누가 죽어도 덤덤해 지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세상이다는 냉냉함 뿐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나타나니까
사랑아 죽은자도 살리는 사랑 당신 누구요 라고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서 자꾸 자꾸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 엄마 라고 아이는 마음껏 마음 푹 놓고 물을 수가 있습니다
자신은 어리석고 미련하지만 든든한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안 속에 있으면 물어봤다가는 야단만 맞습니다
법을 쥔 자들은 그렇게 야단을 침으로써 정치를 합니다
물어봤다가는 자신의 무식함이 탈로 날까봐 그거 먼저 걱정하니까 힘으로 윽박지르는 겁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이 복음이
이제 마음껏 물어볼 수 있는 복음이
그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해져도 상관 없고
소경이 되어도
앉은뱅이가 되어도
귀머거리가 되어도
문둥병자 죽은 자 가난한 자가 되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사랑이 나타났기에 말이죠
자본주의에서 취급하는 악마가 되어도
이상한 변호사에서 장애인은 독일 나치에게서 같은 독일인이더라도 악마 취급받았거든요
우월한 열성 유전자 속에 이런 건강한 자가 못되는 장애인은 같은 
유대인 취급을 받아버리거든요 가스실에 집어넣어서 죽여버립니다
이제 교회가 저들을 악마 취급하잖아요
세월호 이태원 그들을 악마취급해 버립니다
물론 그들도 안 당하기 전에는 같은식으로 악마로 취급했다 말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
졸지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음이 나타나버렸습니다
사랑아 누구를 살릴려고 나타났니

내 눈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말이죠

예상을 빗나가버렸고
지금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어요
찾아버리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 다음부터 조건이 되어버립니다
법이 되어버려요
번제와 제사를 없애러 온 인애와 자비인데
번제와 제사가 되어버리면
그 다음부터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가 쳐들어 옴으로 인해서

이제 에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입장에서
성령으로 시작했던 사도행전처럼 곧 성령행전이지요 성령행전처럼

이제 종말의 영을 받은 사도바울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어떻게 이 사도바울을 죽여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심으로써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는지
복음을 나타내시는지

아 이래서 사도바울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구나 라고
성도의 죽음 실패 멸망을 통해서 복음을 나타내심을 증거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로마서가 아닌가

마치 요한복음이 영과 육의 대립처럼
로마서는 육의 시작인가? 아니면 영 곧 복음의 시작이냐? 라는 대립처럼 느껴져서
율법이냐 은혜냐 라는 대립으로써 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은 이 은혜로 시작하기 때문에
왜 율법이 아닌지를 한 세트로써 대립시켜 증거합니다

그러니 역사 즉 시공간과 육이 어떻게 종말이라는 끝에서 쳐들어오는 은혜에게
복음에게 어떻게 무너져야만 하는 지를
이것이 평화 즉 전쟁종식 아닙니까

그 무너짐이 도리어 새것을 세우심이나를 기쁨인지를
인간의 기쁨은 행복은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쁨이다는 겁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끔씩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 이지만
묻지마 살인 묻지마 폭행에 그 이유가 생뚱맞게도
행복해 보여서 라는 말을 뉴스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지 못하면
그거 불행이다 라고 여기는 그 타인의 욕망은 과연 어디서 왔냐 말이죠
네 맞아요 모든 병 모든 죽음은 죽음 조차도 남의 시선입니다
죄도 모르는 인간의 눈치를 보고 죽는
욕심도 모르는 우리가 호세아 서에서 다룰 이 음란 이 음행 이 우상이
욕심도 모르면서 욕심을 부리거나 반대로 욕심을 심판하겠다 라고 법을 세워요 글쎄
바로 그게 욕심인데 말이죠
사망도 죽음도 모르면서 죽여버리는 남이 행복해 보여서 그렇게 죽여버리면
자기는 안 죽습니까? 그렇게 자기가 죽을 줄도 알면서도 죽이는 그 죽음도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겁니다 물론 지옥에 가서 압니다
내 속에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라는 것을 말이죠
결과적으로 지옥에서 여전히 예수님의 죽음을 모른채로 계속 의문의 반복인 죽음만 반복하는 겁니다 불가마 속에서도 안 죽는 불멸이 된 채로 말이죠 그게 망한 것인 거죠

전쟁 종식 곧 마침이 없으니까
평화가 없으니까
둘이 원수 된 것을 한 몸을 이루는 한 몸이 없으니까 그게 지옥입니다
꼭 지옥에 가야 지옥이 아니라
이 땅은 시온에서 중심이 세워짐으로 인해서
지옥 다움을 펼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계속 의문의 반복 속에서 마침이 없이 말이죠
평화가 없이
한 몸 됨이 없이 말이죠

아 맞다 로마서 시작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서 한달동안 고민한 것이
저야 뭐 신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니까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다 보니
에스겔과 이사야를 하면서 로마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게 뭔고 하니 과연 구원 그 이후 라는 말이 되는가 라는 점을 갑자기 생각나게 되어서
이것을 로마서와 연관해서 봤다 말이죠

구원 그 이후 라는 그 이후 자체가 시간 아닙니까
역시나 육은 이 시간을 끌어온다 말이죠
곧 구원 이후의 자기의 몸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구원이 된 이후에도 손을 못 때는
결국은 자기가 자기자신을 단도리 하겠다 라는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라는 지옥을 천국에 가서까지도 하겠다 라는 심뽀인 겁니다

자 그렇게 구원 전과 구원 후 로 나눈 시선이지요
자 이것이 인간 자기 시선의 기준 아니겠습니까
교리가 그래서 문제입니다 교리란 실천 플러스 교리 이거든요
인간의 숙제를 강요해요
강요 인 듯 강요 아닌 강요 같은 강요된 선택 이다는 겁니다
선택은 선택인데 자유는 자유인데 강요된 자유라?????????
이것이 죽은 자의 하나님 입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셔서
즉 오늘 본문에서도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부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을 자꾸 인간 쪽으로 끌어당가지 말자 말이죠
구원을 자꾸 인간 쪽으로 끌어당기지 말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숙제로써 또 봐야할 판국이다 말이죠

자꾸 내 쪽으로 끌어당길게 아니라
부활이 자꾸
복음의 나타남이
말씀이 호세아에게 임함이
다메섹에서 너가 핍박하던 나사렛 예수다 가 나타나서
자꾸 쳐들어 온다 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요

한 몸이 안되는 이상
공포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빨리 항복해서
한 몸이 되는 화친 평화를 이루는게 낫지
괜히 뻐팅기고 있다가는
지만 손해가 되는 겁니다

지금 유대교의 최선봉의 최고의 인재도 박살이 나 버렸어요 글쎄
그런 사도바울 없애버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사도바울과 한 몸으로 쳐들어오신 예수님의 복음이 약속이 말씀이 
희년이 나타나버렸어요 
이제 자기인생 없습니다 삭제 당한 겁니다 자기 이름도 없어요
졸지에 사울 큰 자에서 갑자기 바울 이라는 작은 자로 이름을 갈아버렸어요
그럼 큰 자는 누굽니까? 예수님의 죽음 곧 복음이 큰 자입니다
이 큰 자 앞에서 작은 자로써 한 몸이 되어 신부로써 쳐들어온 신랑 앞에서
이 신랑이 몰고온 세계
사랑아 누구를 살릴려고 왔니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외치기만 합니까? 실제상황으로써 벌이지도록 말이죠
그럼 바울은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로써
계속해서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이 산 자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누구누구의 언약 최종적으로 새언약을 새성전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어머니 말 마따나 바울이 하는게 아니라 성령 새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신랑의 마음이 안 외치고는 못 배기도록
바울 본인이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 죽은자 가난한 자의 자리에서
말도 안되는 


나타난

기쁜소식을 이 은혜의 날을

은혜는 새성전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린양의 죽음이고
날은 일곱절기처럼 다 이루었다를

저 46년 동안 아직도 미완료로써 완공 못하는 의문의 반복으로 율법 지키는 자들과 대비해서
그 차이로써 증거하는 겁니다

물론 바울 또한 그 차이로써 죄수 복을 입고서 특별사면이라는 피로 적힌
무시험 합격이라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타남에
말도 못할 기쁨으로써 춤 안 추고 노래 안 하고 씹고 뜯고 마시고 안 하고는 
바지가 벗겨질 정도로 말이죠

아니 30살 쯤에 복음을 시작해서 3년 지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끝나버렸다면 여기서도 3년 이네요 절대심판이자 3년 동안 
발가벗은 모습으로써 거울로 비춰주셨다 말이죠 이것이 종말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 종말 끝 ~~~~~~~~~ 이냐 말이죠
맞잖아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허망하게 다 끝났고
제자들도 다 각기 제 갈길로 다 흩어졌잖아요

뭐 다시 모였다고 소문이 들려오던데 그거는 저거들끼리 이야기이고
지 사정이고

그런데 사도바울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야말로 생뚱맞잖아요
저런 예수의 제자들 저 종교꾼들이 미쳐서 다시 모였다고 해 본들
뭐가 달라지냐 말이죠
이미 끝났는데

그 어떤 연결 고리 하나 없이
바울에게 나타났다?

아니왜요? 예수님을 죽이는 사형집행 행사 총괄본부장 행동대장인데
그 사도바울에게서 복음이 나타나서

어떤 철학자는 제자들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관심이 없었다 라고 하고
오로지 사도바울에게서 기독교가 발생했다 라고 하던데
그야 논리 이성적 사고방식 자체가
제자들은 안된다 라고 봤는데
바울은 달랐다 라는 거죠 유대교만 박살내는게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써 주변의 철학이나 이방인의 논리까지 다 깨뜨렸으니까
자연적으로 발행할 수 밖에 없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문명 문화(우상)으로 해석하지 기독교문화의 발생으로 말이죠
복음이 나타났다 라고 안 보는 겁니다
예수는 그 때 죽고 끝났다 라고 볼 뿐이고
같은 인간으로써 바울을 독재와 세상과 맞써서 싸운 투쟁가 혁명가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위대한 지식인으로 볼 뿐이다 말이죠
마귀들 답죠

아니지요 
바울에게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것은 이제 비울은 제대로 삭제 당했고
예수님이 그 안에서 활동하신다 라는 겁니다
이제 더 확산이 되어가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죽음의 세 구덩이를 타넘어서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그 중에 한 놈이 사도바울이라는 나사렛 예수 이단 예수를 핍박하는 자를 타 넘어서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사도바울 눈 앞에 나타나  말이죠

https://youtu.be/pgc5yzUfO2U

범수의 세계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도 사랑을 인애와 자비를 번제와 제사로 바꾸어서
범수의 세계를 고수하고 유지할려고 여전히 둘로 나누는 경계선을 치는 자기영역을 고수 하지만(범수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ㅋㅋ 고소하지 마시길)

https://youtu.be/kbzJoHmsFBs

고로 인간은 마침이 없어요 그저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의 세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의 세계
은혜의 세계인 마침이 된 평화의 세계는 사도바울의 세계를 죽이시기로 작정 하시면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사는
바울에게서 죽음으로 나타났나다가 다시 생명으로 부활로 나타나시는
이 간극을 이 모순을 좁히는게 더더더더 벌리는 것이 거룩입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더더 많이 사랑하도록 말이죠
이 둘로 나누어진 막힌 담을 헐어버려서 평화의 몸으로
끝사랑 마침이 된 마지막 아담으로써 
살려주시는 영으로 말이죠
한 몸으로써 쳐들어 오신 겁니다

이 예수 안의 세계 밖은 다 죽음일 뿐이기에 지옥일 뿐입니다

우와 이제 특정 장소 예루살렘을 초월해서 우주까지 확장된 종말이 펼쳐지게 되니
종말 다 이루었다 라는 미래완료를 펼치게 되니

종말의 무한반복이 되는거 아니냐 말이죠
구원 그 이후가 아니라 말이죠

구원의 계속 됨 멈추지 않음이 아니냐 말이죠
매일 매일이 구원
매일 매일이 사랑이 넘쳐나고
매일 매일이 살려주심뿐이고
매일 매일이 7에 70번 용서이고
매일 매일이 일만 달란트 44조 탕감입니다 이거 20년 전에 검색해서 안 것인데
지금의 체감가치는 빈살람이 3000조? 만수르가 1000조 인데 이들이 16만년 일해도 못 갚는 빚입니다

이 놈은 왕자이고 석유나라이지만
일반인인 우리는 오죽 하겠습니까?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고아 과부 나그네
눈 먼자 앉은뱅이 문둥병자 귀머거리 
물론 그 어떤 누구도 모든 인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잠재되어 있지
늘 지옥이 늘 올라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늙고 병들고 약하면 다 걸리는 겁니다
이 죽은자
이 가난한 자

이 불도져 앞에서 늘 밀려져야 할
다리미질 앞에서 늘 심판받아야 할 
발라버려져야 할 죄인들이 뭐 니 잘났니 내 잘났니 하는 짓들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불도져 앞에서 도리어 이 첩경을 평탄케 하시는 심판만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는 겁니다
마리아와 한나의 종말의 기도, 다 이루었다 완료의 기도
율법의 완성인 인애와 자비를 요청하는 기도가 바로 유일한 산 소망이자 기도인 겁니다

종말의 무한의 빚 반복
원인 없는 결과의 무한반복

박땡선의 세계가 무너진 그 자리에서 말이죠

정답이 찾아나서시는 문제아 잃어버린자 찾기 탕자찾기 죄인찾기
왜? 십자가의 피 발라 버리기 앞에서

쪽팔려서 성화운동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를 무너뜨리는 겁니다

https://youtu.be/VSE5IJTUmX4

빰 밤 바바 빰 발라버려 즉 은혜의 실제확장의 라이브 방송이다 말이죠
실시간 스트림 생방송이다 말이죠
모든 문화계는 철학도 포함해서 말이죠 다 성화론자 혁명가들입니다

인간이 발라버리는 것은 안 발려져 버립니다
의문의 반복만 해요 정답에 가까이 갈 줄 알고 말이죠
광주학생운동가들이 지금 딴나라당놈들 아닙니까
독재를 저들이 더 옹호하고 있습니다 무당까지 다 동원해서까지 말이죠

민주당은 아직까지도 광주학생운동하고요
그거 제대로 안한다고 삐친놈이 진중땡이고요
이 세상을 천국 만들겠다 라는 놈들이 더 지옥을 만들고 있잖아요
또 이것을 반대로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고 해서 답이 나오냐
답 안 나옵니다 

정작 세상을 악하다 하신 분이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신 겁니다

그러니 저들의 모든 짓이 헛짓이 되는 겁니다
그냥 자기 편 만들기 위한 인정투쟁일뿐인 정치판입니다
정치도 과학도 모든계 종교화 되어버린 겁니다 끼리 끼리 오락게임 말이죠

드렁큰 타이거가 발라버려 라고 괴물이 되어서 세상을 무너뜨리겠다 라는 식으로
모든 부조리를 발라버리겠다 라고 외쳐도 못 무너뜨립니다
제대로 못 무너뜨리는 놈들이 무슨 놈의 괴물이 됩니까?

마귀가 벌벌 떠는 분이 제대로 된 심판 주 이신데 말이죠
율법을 주니 이 놈들이 자기를 찌르는게 아니라 남 찌르는데 다 활용하더라 말이죠
광명한 천사처럼 말이죠

그래서 은혜로 심판하시는 겁니다
율법으로 심판하니까 지가 좋아하는 놈들은 다 뒤로 빼돌려서
10가지 재앙의 10가지 신들 우상으로 보디가드나 삼고 있으니

중심이 필요 없는 놈들이더라 말이죠

그런 애굽나라 잔칫집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유사천국이 실제상황 실제 라이브 생방송이 아니라

이 복음이 나타났다 가 진짜 생방송 실제상황입니다
다 불도져로 밀어버리는 말씀이 말이죠

뭐가? 로마서가 말이죠 로마서가 실제상황인 겁니다
백날 따져보세요 로마서랑 지금의 나와 내가 쳐해져 있는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무것도 연결 고리가 없어요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의 기능과
즉 사도바울이라는 새이름의 기능과

야곱이라는 이름
사울이라는 큰 자 라는 이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어요

그럼 이 로마서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겁니다
야곱에게 쳐들어온 새이름을 주신 분
사울 큰자에게 쳐들어온 새이름 바울을 주신 분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말이죠

네 맞아요 그 분의 숙제가 벌어져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만 기쁜소식이지
그냥 읽으면 생방송 실제상황도 아니고요
나랑 상관도 없구요
남의 일 로 그저 지식쌓기 용도로 많이 많이 억수로 많이 의미를 부여해서 볼 뿐이지
사도바울 죽이시기로 작정 한 것은 그저 남 이야기일 뿐인 겁니다

어떻게 사도바울이라는 이 인물을 어떻게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의 거룩을 입혀서
복음을 증거하는가?
복음을 나타내는가?
개인 문제로 보면 어줍짢에 바울 흉내라고 낼려고 하겠지만
주변의 환경 특히 유대교 까지 쥐고 흔 들수는 없다 말이죠
그들을 무슨 수로 이 바울과 대비된 한 세트로 구성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러 억수로 미운 짓을 유대교에게 하면 될까요?
지금 우리가 기독교 기득권층들에게 억수로 미운 짓을 하면
그렇게 되면 언약이 되고 말씀 약속 묵시가 되는 겁니까?

정작 바울은 본인이 하나님의 원수로써
복음의 나타남 앞에 무릎 꿇게 되는데 말이죠

그렇게 찢겨진 바울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라는 또 노래 가사가 생각나네요
박진영 제이와이피 인가? 난 남자가 있는데 또 다른 남자를 어떻게 어떻게 사귀냐
난 여자가 있는데 또 다른 여자를 어떻게 어떻게 사귀냐
맞아요 불륜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우상을 자기 남편으로 자기 여자로 남편 아내로 지내고 있어요
기생라합에게 느닷없이 새남편이 나타나니까 전남편 율법처럼 전남편 국가와 민족 그리고 우상의 신을 졸지에 버려야 할 판국입니다 자기의 손으로? 아니지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지옥을 몰고온 심판의 주 앞에서
새신랑으로 맞이하지 안될 판국으로 급박하고 신속한 이름이 복음이 나타나버렸기에 말이죠

바울 보세요 스데반 죽여놓고도 뻔뻔스럽게 3초도 안 되어서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 라고 이 예수님을 복음을 외치지 않습니까?
그것도 예수쟁이를 죽일려고 가는 와 중에 

여전히 진행 중에

너가 핍박하는 나사렛 이단 예수다 라는 분이 나타남으로 말이죠

적군을 무찌르러 가다가 갑자기 본인이 적군이 되어서 말이죠

어떻게 이 하나님의 원수가 
원수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었는가 라고 말이죠

그 어떤 연결 점이 있나요?
원인이나 조건이 있나요?

과학에서는 원인이 없으면 더 이상 논리를 진행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양자역학을 만나고 나니 인간은 쥐뿔도 아는 것이 없다 라고 해 놓고서는
그것을 아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 위대한 인간이다 라고 나와요 
하여튼 구제불능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원인을 갖추지 않으면 논리를 이어 갈 수가 없어요

자 그렇게 그 어떤 접촉점이 없이 복음이 졸지에 나타나 버린 겁니다

마치 창세기 38장 이였던가요?

갑자기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이야기가 갑자기 난데없이 낑겨있습니다
앞뒤 안 맞게 말이죠 갑자기 슥 
사이 간극처럼 얼룩처럼 공백이 생긴것처럼
둘 사이에 빵구멍이 뚫힌 것처럼 말이죠 
누가! 구원의 뿔로 빵구멍을 낸것처럼 말이죠

며느리 다말이라는 종말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시아버지 유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종말의 단체가 되기 위해서
며느리 다말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이죠

이 부정적인 부조리 스캔들이 바로 십자가라는 종말성이다 말이죠
다 이루었다 라고 완성을 미래완료를 이미 미리 뿌뿌뿌 나팔불고서 말이죠
이게 믿음의 세계 복음이 나타난 세계입니다
우찌 죽은 자가 우찌 가난한 자가 기뻐하냐 말이죠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전혀 다른 
반대를 위한 반대의 방향 간극을 더더더더 벌리는 식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믿음이 나타났거든요 복음이 나타나버렸다 말이죠

마침 또 찾은 것이

우리가 에스겔 시작할 때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말이죠

2019.07.12 계시의 출발과 사로잡힌 자 (인자) (겔 1, 1- 3)

구원 그 이후 라는 시간은 역사는 공간은 이제 없어요 날라가 버렸어요 
공중분해 해체 되어버렸다 말이죠 내 몸 중심이 아닌
예수님 중심의 새 술 새 부대 새 판으로 재구성이 되었는ㄷ
여전히 옛언어로 또 속일려고 할 뿐입니다
이제 사로잡힌자만 있을 뿐이다 말이죠

누구의 운명이 내 속에 들어와 버렸다 라는 거죠
결정체로써 동결되어버렸다 말이죠 확정

멋들어진? 아니지요 죽이시기로 작정된 모욕적인 구원 곧 종말 곧 요나의 표적으로써 말이죠
싫어버린 바 된 다들 귀히 여기지 않는 고개를 돌리는 버림받은 모습
세상의 찌끄레기로 말이죠

(고전 4:9, 개역)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마침 중간에 낑긴 이라는 의미를 찾다가
철학자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검색해 찾은 것이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발가벗은 생명체

2000년 이후로는 이제 본격적인 난민시대가 되었다 말이죠
유럽으로 유입하고자 하는 난민이 천만명이다는 거죠
결국 실제적으로 2천만명 어디 그곳 뿐이겠습니까

https://youtu.be/rloH9Gou2HM

마침 어제 시사다큐를 하더라 말이죠
(아 이게 2부넹 또 1부를 찾아 봐야겠네요 ㅋㅋ
지젝은 오래전부터 난민의 시대가 될 것을 알고 받아주면 안된다 라는 식으로 
말은 해 놓고서는 또 가까운 이웃이 아닌 
불편한 이웃을 사랑치 않는 것은 아무리 이웃사랑이어도 가짜다 라는 식으로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식으로 말을 하던데 
실천하라고 해 놓고서는 본인들이 헷갈리게 말한다 말이죠 
물론 막살아라 라는 뜻인데 강요된 선택을 비판하고서는 
역시나 강요한 된 선택을 유도한다 말이죠 누가 자유로울수 있겠습니까? 
자기자신만 빼고 확증편항으로 볼 것인데 말이죠 안 그러는 사람이 있냐 말이죠)

우리나라도 미얀마 난민이 돌아 돌아서 외국인 노동자로 왔지
난민으로 들어왔다가는 한국이 받아줍니까? 지 밖에 모르는 놈들인데 ㅋㅋㅋㅋ

지금 있는 자들도 어떻게 하면 쫓아내고파서 안달인데
뭐 잠재적인 범죄자이다 이슬람 테러자 이다 그럼 너는 안 그렇구????

그러나 철학자가 말하는 발가벗은 예외상태는 아무리 성경을 끌어와서 개념을 붙여도
안 맞아요

끌어오지 말라 말이죠

우리가 에스겔 새성전의 치수를 아무리 숫자로 표기가 되었다고 해도
그 의미를 내 쪽으로 끌어와 본들
또 의문의 반복 뿐인 내 숙제만을 늘려갈 뿐이다 말이죠

주님의 숙제로써 오로지 천사들만이 새성전을 정확하게 짓는데
자꾸 내 쪽으로 끌어오면 또 함량미달이 된다 말이죠

발가벗은 생명이라는 난민을 수용하니 거부하니 해본들
정작 발가벗은 생명으로부터 배제당하는
배제된 난민으로부터 배제 당하는 이 종말성은
아무리 철학자들이 저런 의미를 도출해 본들 다 거짓이 되는
또 함량미달인 666 사람의 수 일 뿐입니다

총명한 자는 즉 똑똑하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을 입은 자는
그런 사람의 수에 속지 말아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마치 남을 7번 용서 했습니다 라는 말에 속지 말아라 말이죠
난민을 7번 수용했습니다

도리어 7에 70번이나 배제 당하고 난민으로 쫓겨나는 발가벗은 나를
예수님의 피로써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목숨을 내어주심으로써 
원수가 목 마르거든 마실 것 입을 것 먹을 것을 받아 먹어라 라는 겁니다
내가 떠돌이 난민이다 라는 거죠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 골칫거리 말썽쟁이 이다 라는 겁니다

인자의 몸에 담겨져야만 하는 사로잡힌자 이다는 거죠

그런 자로써 사도바울이 이제 종말을 복음을 
사도바울에게서 시작하시는 겁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점점점 후패가 되고
패하게 되고
사도바울 속에 있는 속사람 예수님은 곧 복음은 곧 종말은
점점점 날로 날로 새로워 지는

그 후패하는 내용과
그 날로 새로워 지는 내용을

이제 사도바울은 기록해야만 하는 겁니다

집이 낡아서 공사를 하는데
아예 다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공사도 있지만
비용이 없어서 내부공사를 통해서 점점점 새로지어가는 그런 공사를
너튜브에서 찾아서 보면
썩은 벽들과 낡은 지붕을 어떻게 밀어내고
새건물을 어떻게 확장시켜가는지를 보여준다 말이죠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새공사를 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나를 어떻게 주님이 이기시는지를 말이죠 넉넉히 승리하시고
어떻게 나는 매일 매일 찢겨지고 폭파당하고 해체가 되는지를 본인 당사자가
해체가 되면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기록하는 식입니다

네 맞아요 에스겔처럼 묵시의 실체상황 종말의 실제라이브 방송이다 말이죠
이스라엘을 해체하고 있잖아요
왜? 새성전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 해체를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증상물은 이미 숙제를 누가 외부에서 다 완료했기에 이것을 믿음이라고 했지요
믿음이란 외부의 숙제라고
다 완료했기에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가 없는

누리기 이다는 겁니다 누리기
즐기기

이것을 존재가 아닌 당위 라고 했지요 기능

존재가 존재 하기도 전에 있었던 당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을 나타내는 증상

감기가 걸리면 눈에 안 보이는 감기가 말이죠
어 그런데 증상물로써 콧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말이죠

저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슴에 흰수건을 달았다 말이죠
3월달 입학식때 말이죠 여전히 추운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기에
7, 8살 코 찔찔이들이 늘 콧물을 주루룩 마르지 않을 정도로 늘 흘리니까 말이죠

그 증상이 나타나니까 막을 방법이 없어요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 사나이 그 콧물을 즐길수 밖에요

누리기 뿐입니다

내 숙제가 하나도 없이 주님의 숙제
종말의 영의 숙제
종말의 마음인 예수님의 마음을 누리기 할 뿐이예요

우리의 마음은 곧 육이지요 이 새 마음에 의해서 밀려나는 과정을 누릴 뿐입니다
밀려서 밀려서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듯이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아 내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자기 의로움을 쌓은 것을 밀어버리시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도 밀어내시고
알고보니 예수님의 의로움에 비해 보니 똥 덩 어 리 강마에 냄새나기 짝이 없는 ~~~~~

이 썩은 내를 하나 하나씩 밀어내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우리는 도리어 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썩은 내로써 우리의 시커먼 죄악을 불태워서
흠향하시더라 말이죠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태운 그 냄새 그 역겨운 살타는 냄새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향기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야야 사도바울아 너에게서 탄내 난다 뭘 태웠노

아 내게서 그리스도의 피 냄새가 십자가의 흔적으로써 새겨지듯
몸에 평생을 베여버렸단다 라고 그것을 자랑해요 글쎄

다들 그 그리스도의 향기를 역겨워 하는데
사도바울은 도리어 자랑하고 다니는 사로잡힌자로 사도바울을 만들어버렸다
사도로 말이죠

그것이 영광이다 라고
권세와 나라와 영광이 입혀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약할 때 강함이라는 약함이 입혀졌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운명이 덮쳐졌다 라고 말이죠

이것을 영광이라고
권세라고 누가 거꾸로 보겠냐 말이죠

너무 너무 약하게 되어버렸는데 말이죠

저런 철학자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
무국적자
서류난민
서류 또는 신분증이 없는 Sans Papiers 상파피에 (한국식 표현은 불법체류자)
발가벗은 생명

이라고 규정된 그런 발가벗겨진 자들로부터 더더더 발가벗겨진
절대로 때려죽어도 자기들의 신 종교 포기하지 않잖아요
그게 무슨 발가벗겨졌냐 말이죠

나의 신은 나를 버렸습니다 라고 나와야지
역시나 다른 나라에 난민으로 가서 또 테러하는데 그게 무슨 발가벗겨졌냐 말이죠

자기가 믿는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발가벗겨 져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 밖에 없는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지나개나 다 발가벗겨졌다고 자기 쪽으로 끌어와요

그것이 우리가 에스겔 몇장이였죠?

2021.11.13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

에스겔 11장입니다

예루살렘 거주민과 포로로 잡혀가는 포로민 
난민은 아니지만 역시나 난민 같은 포로민 바벨론 포로민은
언젠가는 주님이 회개하는 나를 돌봐줘서 보상을 해주듯이
예루살렘으로 돌와오도록 해주실테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야겠다 라고 나오지만

이스라엘 해체라는 문제아가 실패가 멸망이
이미 하늘에 새이스라엘이 다 이루어졌기에
새성전이 다 이루어 졌기에 나타난 증상인데

이런 주님의 언약과
안 맞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이스라엘 입니까

이스라엘은 원래 처음부터 없었는데
원래 잃어버릴 것이 없는 자로써 세워졌는데
자기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나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또 기대하고 또 희망을 가지더라 말이죠

이것이 사랑이 없기에 또 울리는 꽹과리
또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자기 의를 또 쌓아요 글쎄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내더라 말이죠 율법을 자꾸 지켜요 글쎄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어딜 주님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고자 하는데 감히 속일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또 사기치는 의문의 반복인 율법 지킨 몸을 형성하냐 말이죠 육을 또 세워요
그리스도의 몸이 있는데 말이죠

마치 불 타는 성전을 또 지어요 글쎄 교회를 말이죠
불 타지 않는 새성전 걸어다니는 새성전인 예수님이 있는데
그 예수님의 몸으로써 신부된 교회
곧 성령의 전인 우리가 있는데

우리는 돈 안되니까 건물성전 짓기에 집착한다 말이죠

그런 성전은 마치 46년 동안 짓는 의문의 반복일 뿐

삼일 만에 짓는 성전 앞에서 무너져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체를 그런 46년 동안 짓는 의문일 뿐이다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고
난민 7명 수용하는 것이 다 거짓이다는 겁니다

지젝은 난민을 수영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둘 모두다 나쁜 짓이다 라고
어쭈 좀 다르게 주장하지만
역시나 답은 없다 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우리는 정답이 있기 때문에 문제아 진정한 문제아로써 증상물로 나타나는 겁니다
내 숙제로 탕자가 되는게 아니라 주님의 숙제로써

난민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자로써 말이죠

예루살렘 거주민과 다르고 바벨론으로 포로잡혀간 포로민들이
어쭈 우상을 믿는 바벨론으로부터 공격받을 줄 알았는데

어라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그들과 잘 썩이는 겁니다

왜 이렇게 친근감이 있는고 했더니

예루살렘에서 우상섬겼듯이 하나님과 우상을 썩어서 
시온산에 산당으로 도배했잖아요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그림을 그리고 우상숭배했잖아요

역시나 바벨론도 마찬가지였다 말이죠

도리어 바벨론 포로민인 된 이스라엘로부터
난민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자가 누굽니까

에스겔 인자 아닙니까

마치 예수님이 유대인으로부터 당하는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종말을 그대로 보여주곻 있어요 그 당시 유대인이 로마 식민지로써 나라를 빼앗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빼앗긴 자들로부터
유대인으로부터 예수님이 버림받는 ~~~~~~~~

에스겔이 미리 앞당겨 보여줬다면
사도바울은 그럼 뻔하죠

네네 바로 그겁니다

역시나 사도바울이 왜 믿는자들로부터 버림받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부터 거부당하는지를

로마서 내용을 보면 결국은 버림받을만 하네 라고

왜?

율법 지키는 자들과 안 맞거든요

완전히 극과 극인 상극
정반대 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사도바울 본인이 율법의 달인이였던

저 육의 세계의 최고 최전방 행동대장 아니였냐 말이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도 예수님의 운명이 에스겔 인자에게 나타났듯 
점점점 확장되면서
이스라엘은 해체가 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미래도 사도바울에게 덮쳐져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식으로
모든 육체를 해체 시키는 식으로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그 당사자 사도바울이 그 1번 타자로써

의문의 증서 율법의 마침이 덮쳐져서 해페가 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새로 지어짐이 되는 ~~~~~

이거 제가 안다고 해서 머리로 지식으로 말이죠
나의 육은 절대로 수용 못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요

그러니까 사로잡힌 자로써 그냥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불도져 앞에서 깔려 주름이 펴지는 평탄케 되는
이 평화만이 이미 다 완료되었기에 그 증상물로써

거부할 수가 없는 당위로써 그저 즐길 뿐입니다

사도바울 보세요 완전 박살이 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웃으면서 기뻐하면서

하나도 안 기쁜 나쁜소식을 기쁜소식이라고 그 다음 니 차례이다 라고
종말의 멈춤이 없다 라고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너도 깔려 납작이가 되라 라고 한다 말이죠

되라 라고 이것이 명령어로 들려서 지키는 개념으로 받아 들어야 합니까
아니지요 존재는 어떻게 해서든 지킬려고 하겠지만
존재 이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당위로써 그저 나타날 뿐입니다
(당위는 오히려 거부하고 싶어도 못할 정도로 밀려 닥쳐옴 입니다)

아이가 자라면 몸에 털이 나고 여자아이는 가슴이 올라온다 말이죠

누가 이것을 지키기를 해서 가슴이 나옵니까
저절로 나오지 (지키기와 무관하게)
때가 되니까 말이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고
이 어린아이 라는 의미가 지키는 행함의 문제에서 떠난 의미이듯이)

남자아이는 이제 목소리가 변하고 근육이 발달하게 되니까
엄마가 이길수 없을 정도로 힘에 부치게 된다 말이죠

나는 싫어 다시 어린아이 때로 돌아갈래 해도 소용이 없구요
나는 지켜서 더 어른이 될 거야 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니 아예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곧 죽는 자연사 하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해서
아무리 지켜본들 지키기를 해 본들 안되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찢어지는 시공간 역사인데
아무리 역사를 내 쪽으로 끌어온들
이 말은 아무리 실천하고
지키기 라는 내 숙제로 해 본들
다 소용없는 육이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기 위해서
누락 되어야 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공간 이라는 역사가
육이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즐기는 증상
누리는
정답이 떳기에 문제아로써 누린다 말이죠

불가항력적 은혜 ~~~~~~~~~ 저항이 안되요 안돼 ~~~~~~

웃끼게도 자기들이 불가항력적 은혜 라고 해 놓고서는 교리로 만들어요
교리 로 형성 자체가 안된다 라고 말해놓은 셈인데 교리로 지키겠데요 글쎄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 말로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면 또 몰라

알맹이는 역시나 쏙 빼놓고 이런 교리로 또 결국은 돈 빼먹을려는 ㅋㅋㅋ

뭐 외부의 공격인 이단 때문에 어쩔수 없다 라고 핑계거리로 삼지만
결국 그게 이단인 어쩔수 없는 나 라는 이단을 치고자
나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라고 나오면 되거든요

알고보면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누가 가장 거부합니까
오늘날 교회요 우리 자신 아닙니까

유대인도 그렇게 사단의 회로 빠졌고
천주교에서 빠져나온 이 개신교
이 캘빈주의도 마찬가지 아니냐 말이죠

성경적인 바른 성경적인 교리 뒤에 숨는다고 해서
주님이 속아 넘어가겠냐 말이죠

그래 따지면 진짜 법궤 뒤에 숨었던 홉니와 비느하스 또한 죽임 당하면 안되잖아요

심지어 예수님 이라는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은 더더욱 그렇구요

내 구원을 위해 내 쪽으로 끌어올 말씀이 아예 단 하나도 없어요

그 버릇에 취한 자였던 자가 사도바울이였거든요

그 교리실천의 달인이 이제야 비로소 복음을 외칩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도리어 종말의 시작이였다는 거죠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내가 붙잡으면 며칠 못 가서 끝나지만
십자가가 나를 튼튼히 붙잡아 버리니까 때려죽어도 끝나지가 않는 겁니다

4.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앞에 찬양할 때까지

내가 이기면 내일 또 언제 질지 모르지만
이미 넉넉한 승리가 나를 붙잡고 가면

내가 찬양하는게 아니라
찬양이 나를 다루어서 스피커로 전류를 흘려버리니 소리가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아무리 벙어리요 음치 박치 라도 소용이 없어요

지금 바울이 딱 그 짝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 예수님의 복음을 외친다?

말이 되냐 말이죠

바울 너가 핍박하는 예수 그것도 나사렛 이단 예수를

정통 중에 정통
스카이 중에 스카이

과연 바울의 숙제로써 감당하실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만 어머니 감당 하실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바울 학생이나? 바울을 키운 모교 가마리엘 문하나
감당 못 합니다 

은혜만이 감당합니다
박은혜 김은혜 최은혜 이은혜 등등 말고

예수님의 죽음만이 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 감당 하시는 겁니다
바울 숙제 단 하나도 없어요

예수 쓰앵님 만이 감당 너끈히 하셨음을 그 증상물로써 바울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흔히 목사들이 무식한 베드로 보다 (일반인 어부 베드로와 학자 바울을 비교하니 웃끼죠, 다른 것을 노린거다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과 바리새인을 비교하듯 결국 눈뜬 소경인 거죠)똑똑한 바울을 좋아라 하는데

그런 목사들을 보면 베드로 보다 더 모잘라요 총명한 성령을 받은 자 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겁니다
베드로도 감당 못하면서
베드로를 얼마나 싫어라 하는지 원 ~~~~~~~ 티를 너무 너무 내더라 말이죠

결국은 사기꾼으로 들통내니까 출교를 시키던데

이단 잡는 바울이 되겠다 라고 ㅋㅋㅋ
다락방 이단 까지는 좋았는데
신천지 앞에서는 다들 같은 편 되어버리니까
돈 안 쓰는 이단은 충분히 잡지만 돈 많이 뿌리는 이단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더라 말이죠

자기가 이단 인줄 모르니까 자꾸 무슨 무슨 운동을 하는 겁니다
이단 방지 대책 운동 본부 따위처럼 말이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처럼 모든 종교라는 마약에 다 있는 짓을 해요 글쎄

차라리 이단 중의 이단이 되어라 말이죠
나사렛 이단 예수의 운명이 미리 덮쳐진 인자 에스겔과 사도바울처럼 말이죠

마치 과거의 에스겔이 다시 활동하듯이
미래의 사도바울로써 활동하는 겁니다 
인자라는 그리스도의 몸은 멈추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육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
곧 예수 안이다 말이죠 이런 시선이 바로 새성전의 시선입니다
걸어다니는 참성전 되신 예수님의 시선 말이죠

바로 이런 시선이 약속의 사고방식이고
반대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 무조건 비언약적 사고방식인 육이 되는 겁니다
반드시 자기 자랑인 육의 자랑으로 귀결이 되니까 말이죠

복음은 아무리 나를 자랑하고 파도
복음이 나를 지워버리고 삭제시켜 버리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십자가의 피 용서인 사랑만 자랑하도록 하니까 말이죠
안 그러면 울리는 꽹과리 소음 밖에 안되니 말이죠

인간의 몸은 이미 죽은 자의 몸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의 몸에서 출발하는 믿음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일 뿐입니다
이것을 산 자의 하나님을 유일하게 증거하신 유일한 참이스라엘이신 예수님이

심지어 사도바울 조차도 가짜이스라엘였음을 알려주시지
가짜가 너 가짜야 라고 알려주지를 않습니다
유일하게 진짜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 되신 분 오직 예수님 만이 알려주심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이 복음 덕분에 내가 가짜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거룩이 없다 라고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가 너 거룩 없단다
거룩이 없으면 너는 차단되고 배제 되어야 한단다를 비로소 알려 주심으로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죽은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자 이렇게 자복케 만드시고자 알려주신 분이 바로
내 손에 죽은 예수님이다 라고 비로소 불쌍히 여겨달라고 상한심령으로써
성령으로써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써 성령을 구하는 겁니다

기도 조차도 엉터리로 하기 때문에
성령의 놀라운 탄식인
주님의 기도를 곧 종말을 곧 복음이 나를 다루어 달라고
기도가 나를 다루어 달라고 그것도 종말의 기도
성령의 기도가 나를 다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령의 기도를 말이죠

기도를 할 줄 모르니까
종말의 기도가 뭔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내 대신 기도하시는 분의 기도를 구하는 기도를 말이죠
이중배제 이중누락 이중소외인 거죠

회개의 달인이 되는 결국은 나에게로 귀결이 되는 회개를 할게 아니라
회개 조차도 할 줄 모르는 우는 자로써의 회개
회개 할 줄 모릅니다 내 회개는 차단 당하는 회개를
다윗이 비로소 종말의 인자의 기도 꺽으신 뼈의 기도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꺽으신 뼈인 아이가 이름 없는 아이 곧 솔로몬의 형이
다윗을 바로 그런 4종 세트로 자기 죄악을 스스로 가리고자
아이를 죽게 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그 기도를 누락 시키는 기도를
꺽으신 뼈가 기도하는 이중배제 이중차단 이중단절로써
반대를 위한 반대로서의 기도로써
막살기를 지키는 달인이 아닌 막살기를 거부하는 막사는 종말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대신 막 죽어 대신 심판받는 이 종말의 복음을
나 사도바울 속에서 시작 하셨다 라고

이제 부서지는 
입술이 찢어지는 그 기쁜소식만 누릴 뿐이다 라고
복음을 개시 하는 겁니다

나 사도바울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당해서 기쁘다 라고 말이죠

육은 정녕 죽으리라를 보여주는 몸이고
몸과 영은 정녕 다시 살리라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몸 곧 예수 안을 보여주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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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 불 지르러 오신 여호와와 VS 비유(십자가)로만 외치는 인자야 또 너냐? 라는 비웃음 (겔 20,45-49) 

화평(구원)을 주러 온 줄 착각 마라! 불(심판)을 검을 주러 왔다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개역)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거룩함(상 주심)을 열국(원수)의 목전에서 ; 은혜로만 들어가는 중심 (겔 20,40-44)
에스겔 2019 2023. 6. 17. 14:14
21-060 거룩함을 열국의 목전에서 나타내심 ; 은혜로만 들어가는 주의 인도 (겔 20,40-44) 

〈에스겔 20,45-4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1쪽, 찬송가 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406장 내 맘이 낙심되며〉

〈찬송가 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 영화 모두 잃어 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 복을 얻겠네

2.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되 예수 진실하도다 
   예수 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뵈시면 
   원수들이 미워하나 염려 할 것 없도다

3. 내가 핍박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 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 외에 기뻐 할 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하니 기뻐  할것 뿐일세


〈에스겔 20,45-4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1쪽〉

(4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
(47) 남방 삼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하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48)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49)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찬송가 406장 내 맘이 낙심되며〉

1.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 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하며 내 짐을 지시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2. 희망이 사라지고 친구 날 버릴 때 
   주 내게 속삭이며 새희망 주시네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 떨 때에 
   승리의 왕이되신 주음성 들리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3.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 때 
   주 나의 곁에 오사 용기를 주시네 
   환난이 닥쳐와서 슬픔에 잠길 때 
   주님의 능력입어 원수를 이기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겔 20:45,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20:46, 새번역) "사람아, 너는 얼굴을 남쪽으로 돌려라. 남쪽을 규탄하여 외치고, 남쪽 네겝의 숲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겔 20:47, 새번역) 너는 네겝의 숲에게 말하여라. '너는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숲 속에 불을 지르겠다. 그 불은 숲 속에 있는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태울 것이다. 활활 치솟는 그 불꽃이 꺼지지 않아서, 남쪽에서 북쪽까지 모든 사람의 얼굴이 그 불에 그을릴 것이다.
(겔 20:48, 새번역) 그 때에야 비로소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이, 나 주가 그 불을 질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다.'"
(겔 20:49, 새번역) 내가 아뢰었다. "주 하나님, 그들은 저를 가리켜 말하기를 '모호한 비유나 들어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겔 20:45, 현대어) [밀려오는 불꽃과 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명령하셨다.
(겔 20:46, 현대어) '너 사람아, 무서운 눈초리로 남녘 땅을 바라보아라! 남쪽을 바라보며 설교하고 남녘의 숲을 치며 예언하여라!
(겔 20:47, 현대어) 너는 남녘의 숲을 향하여 이렇게 심판 선언을 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숲처럼 무성해졌구나. 그러나 내가 네 속에 불을 질러 놓겠다. 그래서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모조리 태워 버릴 것이다. 의인도 죽고 악인도 죽게 할 것이다!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기까지 그 숲속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 불꽃에 그을려 죽을 때까지 그 활활 치솟는 불꽃을 조금도 누그러뜨리거나 꺼뜨리지 않을 것이다.
(겔 20:48, 현대어) 그러면 그 꺼지지 않는 불을 온 나라에 질러 놓은 이가 바로 나 여호와라는 것을 온 세상이 깨달으리라.'
(겔 20:49, 현대어) 그래서 내가 말하였다. '오! 주님, 슬픈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저를 가리켜 '그는 언제나 이상한 소리나 비유를 써서 지껄이는 놈이다.'라고 비난합니다.‘


(겔 20:1, 현대어) [인간의 죄악과 주님의 구원] 우리가 포로로 잡혀 간 지 7년이 되던 해 5월 10일에 이스라엘의 장로 몇 사람이 나를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내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겔 20:32, 현대어) [주께서 새롭게 시작하신다] 너희는 보나마나 우리도 다른 민족들과 똑같이 살고 싶다.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섬기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겔 20:45, 현대어) [밀려오는 불꽃과 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명령하셨다.



(마 10:1, 개역)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2, 개역)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 10:3, 개역)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마 10:4, 개역)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 10:5, 개역)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7, 개역)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마 10:8, 개역)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9, 개역)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마 10:10, 개역)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마 10:11, 개역)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 10:12, 개역)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 10:13, 개역)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 10:14, 개역)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 10:15,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6, 개역)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7, 개역)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8, 개역)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개역)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개역)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1, 개역)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개역)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개역)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 10:24, 개역)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마 10:25, 개역)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0:26, 개역)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9, 개역)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30, 개역)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 10:31, 개역)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2,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개역)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개역)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2: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24, 개역)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5, 개역)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눅 12:26, 개역)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8,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29, 개역)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눅 12:30, 개역)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31, 개역)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2, 개역)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3, 개역)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4, 개역)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5, 개역)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눅 12:36, 개역)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눅 12:37, 개역)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눅 12:38, 개역)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39, 개역)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눅 12:40,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1, 개역)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눅 12:42,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 12:43, 개역)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4,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눅 12:45, 개역)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눅 12:46, 개역)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눅 12:47, 개역)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8, 개역)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개역)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눅 12:52, 개역)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눅 12:53, 개역)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눅 12:54, 개역)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눅 12:55, 개역)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눅 12:56, 개역)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눅 12:57, 개역)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눅 12:58, 개역)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눅 12:59, 개역)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에스겔 20장을 마치 오랜만에 하는 것 같아서
왠지 그 동안 한 것이 잊어버린 느낌이 들어서
앞의 내용을 다시 요약해 보고자 합니다

20장 1절을 3월 초 3월 3일 부터 했기 때문에 오늘 20장 마지막 부분을 하니까
거의 석달 반, 넉달 가까이 동안 끌어왔으니까 말이죠

에스겔 마지막 장을 집중하느라 좀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에스겔 20장 1절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여호와께 묻고자 
여호와께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시겠다 하십니다

왜냐하면 약속 즉 [여호와가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곧 주의 비밀의 이름에는 관심 없고
복음(비유 비밀 수수께끼) 또는 언약 또는 묵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저 무당 찾듯이 찾아와서 묻고자 하니까

주님이 귀를 막고 코를 막고 이 썩은 것들아 똥내 난다 썩 꺼져라 내 마당만 밟는다처럼 말이죠
고개를 돌리고 안 볼란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섬기느냐 왜 음행하고 왜 음란한가?
오랜만에 이사야 사칠 8, 47 팔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그것을 마치 고문 당하는 여호와처럼 국문 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말이죠
국문 하려느냐 이 놈들아

(겔 20:4, 개역)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하느냐 너는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겔 20:4, 공동) 너 사람아, 네가 이들을 심판하려느냐? 네가 이들의 조상이 저지른 역겨운 짓을 낱낱이 밝혀 심판하려느냐?


물론 에스겔 한테 저들을 심판 어서 빨리 심판해라 라고 하시지만
오죽 주님을 괴롭게 만들었으면 저렇게 하시냐 말이죠
아니 누가 주님을 괴롭히겠습니까? 아무도 신을 괴롭게 할 자가 없을거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인간이 조작한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하나님 본인이 제발 날 좀 고만 괴롭혀라 라고
하나님 본인 자체가 그만 좀 와라
나에게 보일려고 오느냐 고개 돌리고 눈을 거리고 안들을란다 귀를 막고
냄새 난다 라고 코를 막더라 말이죠
이것은 마치 카스트 제도에서 오염 될까봐
자본주의의 신 곧 돈도 재물도 던져서 주는 겁니다 오염 될까봐
이게 문화화 되었다 라는 말은 믿음으로 신앙화 된 신이 법이 그렇게 둘을 갈랐다
니 영역 내 구역으로 나누었다 라는 뜻이거든요 
자 이렇게 인간들의 악마적인 성화 곧 선함을 거울로 비춰주듯이 말이죠
바리새인이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 가듯이 말이죠

https://youtu.be/xPXIQyxdFM0
인도의 카스트는 폐지된 적 없다? (f.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 [인도 6부]
(인도가 중국을 재치고 이제 인구 1위가 되었고 이제 강대국 곧 선진국이 되는데요
즉 그 만큼 자국민의 피를 빨아먹었다 라는 겁니다 중국도 그렇듯이 말이죠 ㅋㅋ 
이제 검열로 입국 불허가 되겠군요 ㅋㅋ 
과거 서구는 식민지를 빨아먹어서 선진국이 되었지만(지금의 미국 보세요 흡혈귀 아닙니까)
중동난민을 받아들이는 조건이 뭡니까? 자기 영역을 더더욱 굳건하게 해줄
가족끼리는 해치지 말자를 견고하게 해 줄 그런 자들만 받아주는 겁니다
어쩔수 없어요 오늘날 교회가 운영이 되는 방식과 똑같습니다
밥만 먹고 가는 돈 안되는 청년들 밥 축 내는 놈들 제발 오지말라꼬 
어떤 장로가 얼마나 징징 거리는 지 ㅋㅋㅋㅋㅋㅋ
결국 선진국이란 지금은 자국민을 가족을 원수로 삼지 않으면 
불가촉천민으로 만들지 않으면 부자가 될 방법이 없어요 
선진국이라는 잔칫집은 그 정도로 
이 비유의 나라인 아들의 나라 인자의 나라와 정반대인 이유인 겁니다
아니 그런 지옥의 세상에 왜 이런 중심을 세우시는지 과연 소통이 될까요
다들 그러고 있는 그 지옥 속에서 천국을 중심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는 이 새로운 판대기에 이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는 새언약이라는 종말에
인간은 그저 아직도 이 의문의 반복
서로가 서로를 찔러 죽이지 않으면 선진국 잔칫집을 세워질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주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오염된 자라고 취급한 것을 잊지 않으시고
거울로써 이들의 모습을 비추시는 겁니다

나 여호와를 오염된 자로 취급하면서 왜 찾아왔니 제발 좀 그만 좀 오라
거봐 거봐 나의 선지자를 비유를 삐닥한 소리를 하는 자야 또 왔냐 라고
지금도 비웃고 있잖아 라고 거울 비추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높은자 만들어서 고멜 만들어서 낮추시고 그 낮은 자를 다시 높이시는 겁니다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10, 개역)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개역)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개역)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 1:16, 개역)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 1:17, 개역)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18,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호세아 1장 우리가 지지난 주에 했는데요 딱 이 상황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처럼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마 19:3, 개역)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9: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 19:5, 개역)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9:6, 개역)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 19:7, 개역)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마 19:8,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 19: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그래서 에스겔 20장으로 되돌아 오면
이스라엘 장로 곧 대표자들은 우상을 찾으니까 이 음행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그 우상숭배가 오로지 자기 몸 구원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주님의 마태복음 답변처럼 에스겔 20장의 답변은

오로지 첫사랑에 맞는
처음자리 곧 애굽때에 맺은 언약 대로만 행하시지

너거들 아쉬울 때에 무당 찾듯이 찾고 묻는 그 따위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 라고

오로지 언약 대로만 밀어 붙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20장 1- 12절의 요지 이구요

https://crosslamb.tistory.com/2594

옛날에, 애굽의 종에서 택하여 맹세한 그날에 (겔 20, 1-12)
에스겔 2019 2023. 3. 3. 15:47
21-056 옛날에, 애굽의 종됨에서 인도한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 맹세한 때 (겔 20, 1-12) 


결국 너거들 처음자리는 구원받아 마땅한 자리가 아니라
우는 자리 곧 심판 받아 마땅한 자리 인 환자 죄인의 자리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거 아비는 아모리 가나안 잡족이고 너거 엄마는 헷사람 창녀 무녀의 딸이고
그래서 죄악을 곧 음행이지요 지적하시면서
고멜을 취하라
고멜의 상태가 음녀로써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이니까 말이죠

그런 환자를 고치러 오신 의사이니까
의사의 이름에 걸맞는 환자를 부르러 오셨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 심판주 앞에서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라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는데

아무도 심판주 라는 주의 이름에는 관심 없고
그저 주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 외모를 꾸밀려는
결국 구원도 남의 시선 때문에
타인의 욕망 때문에 추구하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죽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써 말이죠

이런 자들에게는 한 몸 개념이 필요가 없으니까
모세에게 이혼증서를 써 달라고
깨끗한 여자랑 결혼 해야겠다 라고
그럼 그 깨끗한 여자 곧 처녀로써
그 처녀는 무슨 죄로 이미 결혼한 경험이 있는 유부남과 결혼을 해야 하느냐 말이죠

인간의 거룩 성화 선을 추구한다 라는 것은
결국 남을 더럽게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이런 선악의 구조 라는

저주 속에 있음을 율법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데
율법이 없는 이방인과 똑같이
도리어 율법을 지키겠다 라고 음행을 하는 식에

예수님은 안 속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 에게 음란한 여자를 취하고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장 지지겠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겠습니다 라고

야 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

예수님이 너는 나를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는 예언을 무시하고
저런 선함을 갖추고 정의를 갖추고 믿음을 갖추어서 행하겠노라 라고 다짐을 했건만

예수님은 무참히 사탄아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구나 썩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 곧 언약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곧 다짐을(실천을 행함을 인간믿음 곧 가짜요 음행)을 생각하는 구나 라고

하나님의 일이 뭡니까 지금 베드로는 언약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저 나는 고아 안 될끼다 예수님 죽으면 난 고아나 마찬가지일테니 고아 안될란다
과부 안될란다 나그네 안 될란다 이거 바벨론 여자가 우상섬기는 이유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바로 그것을 꼬추 짜르듯이 짤라
패역한 예루살렘 딸 오홀리바로 만들어서
높은자 낮추시고 곧 찢으셨으나 로 만드시고
다시 낮아진 자를 높이시는 그것도 원수들의 목전(밥상)에서 밥상은 시체만들었다 미끼다 라는 거죠 그런데 그 시체에 깔려죽도록 상을 구원을 베푸시는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고자
이게 하나님의 일인데

이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를 무시하니까
음란 음행 우상숭배로써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비춰지는 희년 곧 복음
이 십자가의 언약을 첫사랑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 압제하는 자로써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더라 말이죠

난 때려죽어도 내 아들 고아 안 되게 할끼다 
난 공주가 되어야지 난 절대로 과부 안될란다 
내 남편 절대로 나그네 안 만들란다
이 처음자리를 스스로 미워하는 자리 회개의 자리를 무시하는 것이
복음
언약
첫사랑 
희년을 거부하는

그래 놓고 복 달라꼬 무당 찾듯이 찾아 오는

그래서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착각마라 검을 주러 왔고 불을 지르러 왔다

저 고아 안될란다 과부 안될란다 나그네 안 될란다
아들 아내인 나 그리고 남편
이게 가족 아닙니까
인간이 믿는 구석이 있어서 까부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인간의 중심은 새성전 아닙니다
오로지 가족입니다
이 가족을 원수지간 만들어 버립니다
기드온 군사 이야기에서 
상대방 적군이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잠결에 헐레벌떡 깨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칼로 찌르더라 말이죠
가족이라는 울타리
같은민족 같은동지 라는 자기영역의 자기구역
그래서 적은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 내부에 있도록 하는
서로가 서로를 찔러 죽이는
믿는 구석 곧 중심을 그렇게 여리고성 무너뜨리듯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도록 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가족이 원수였던 겁니다
내가 믿는 구석으로 여겨졌던 가족이 사실은 원수였다 말이죠

그래서 이사야가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거울 비추듯이 발가벗고 3년 동안 간극을 더더더더더 벌리는 겁니다
거울로 비춰주는 동시에
처음자리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게 회개의 자리 처음자리
그래서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왔냐? 라고 비웃음꺼리가 일부러 되는
수치를 가리우는게 아니라 수치를 드러냄으로써 거울로 비춰주는 죄수복을 입고서 말이죠
아무도 죄수복을 입지 않은 상황에서 죄수복을 입고자 등장하게 되면
모든 시선이 집중이 됩니다 자 이렇게 이빨사이에 끼인 고춧가리 큰 덩어리 빼낼려고 달려듯이
이 아름다운 그림에 검은 얼룩점이 생기면 모든 시선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서
아름다운 그림 하나도 안 보이고
그 아주 작은 검은얼룩점에 시선이 다 빨려들어가서 
얼룩점으로부터 응시를 당하는 겁니다 내가 그림을 보는게 아니라 
얼룩점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응시를 당한다 말이죠
그것도 아름다운 그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안 보이고요
아주 작은 얼룩점 꼬춧가루 그 아주 작은 깨어진 거울 한 조각에 응시를 당해서
그 깨어진 거울 조각에 비춰지는 거울에 갇혀 버린 나를 비로소 보도록

부정적인 예언
화평이 아닌 칼을
불을 지르러 온

이 비유
너의 중심인 가족 무너뜨리기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찌르도록 하는
이 비유 이 삐딱한 소리를 말하는 자여 또 왔냐 라고 비웃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진찌 중심인 새성전
성전을 3일만에 짓는 자여 너 자신도 구원해 보시지 라고
어느 손으로 때렸게 뺨 때리고 발로 차고 침을 뱉는

비로소 비유 비밀 수수께끼 이 언약이라는 중심이 떳기에
인간들이 46년 동안 지어도 못 짓는 완공 못하는
그 인간들의 신앙이 결집이 된
가족처럼 끈끈하게 결속력을 잡아주는 그 가짜 중심인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는

성전을 헐라 삼일 만데 짓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첫사랑의 처음맹세 첫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처음부터 이 십자가 언약에 걸맞는 죄인으로 만들려고 환자로 만드셔서 구원을 펼치시겠다 라는 것인데

베드로는 사람들 끼리 속담으로 보편적진리로 구성이 된 구원을 추구할려고 하다 보니
가짜 중심 가짜 가족 가짜 한 몸인 우상 음란 음행을

진짜 중심 앞에 뻔데기 앞에 주름을 남을 7번 용서했다는 둥 따위를 드리내미는 겁니다
그것이 곧 음행이거든요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로해주는 자를 음녀처럼 찾아내어서 그런 신랑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호세아 곧 비유 그 자체 덩어리 또 너냐 라는 비웃음꺼리는 아니거든요
그러니 호세아 남편을 버리고 또 다른 남자 찾고
또 되찾아 오면 또 다른 남자 찾는 이 고멜의 속성을 들추어내시는 새 남편이 아니면
이 율법이라는 전남편과 이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음행입니다 음란이다 말이죠

아니 십자가를 진 적도 없는 자가 무슨 놈의 남편 입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라는 그 신랑만을 예비 예언 하셨다 말이죠

쉽게 말해서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음행인지 모르는 이유는
비유 곧 수수께끼로써 십자가의 피 용서로써
7에 70번의 용서를 받아야 할 판국인 죄인이 아니게 되면

야 또 7에 70번 용서를 말하는 자야 또 왔냐 라고 비아냥 거리는 겁니다

왜? 남 7번 용서하는 것이 나에게 있는데 왜 굳이 저런 삐닥한 모욕적인 구원이 필요하겠냐 말이죠
아니 그 정도로 나는 나쁜놈이라는 말이냐? 그런 모욕적인 구원을 받을 정도로 내가 고멜이라는 말이냐?

멋들어진 구원이 이미 자리 잡은 이상
고아 안될란다 과부 안될란다 나그네 안될란다 가 자리 잡은 이상

이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 할 수밖에 없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7에 70번 용서받기를 거부 할 수 밖에요

실제로 어떤 목사는 죄 죄 죄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고만 캐라
많이 무따 아이가 고만카고 이제 부활 부활 부활 캐라 라고
왜 이 목사는 짜증을 낼까요?
네 맞아요 소통이 안되고 단절만 되더라 라는 것을 느꼈거든요
목사 다움을 펼칠수가 없더라
그 카이 목사 말 안듣고
소통이 잘 되어야 하는 가족이어야 중심이 서는데
이 놈의 십자가가 분열을 조장하니까 교인들끼리 원수가 되더라 라는 겁니다

자 그래서 십자가 라는 소통도 안되는 이 삐딱한 언약을 외치는 자여 또 너냐 라고
성전을 헐고 가족중심을 헐고 삼일만에 성전을 짓는 자여 또 너냐 라고 비웃는 겁니다

오죽 하면 목사가 나서서 제발 제발 좀
제발 좀 고만 캐라 많이 무따 아이가 라고
징징 거리는 겁니다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쳐야 결속 곧 가족이 되고 중심이 서는데
왜 너는 삐딱한 소리로 분열을 서로 원수지간으로 만들려고 하느냐 라꼬 ~~~~~

맞습니다 교회 곧 강도의 소굴의 최대의 적은 바로 예수님과 아이돌 인자 였던 겁니다

이렇게 둘이 원수 되어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한 몸 되게 할려고 십자가로 막힌 담을
자기 영역 구역 선 긋기 경계선을 허물려고
가족
가짜중심을 허물려고 성전을 헐려고 오셨으니까
최대의 적은 예수님이 아니고 뭐 겠습니까?

이 주님 쪽에서 한 몸 이룰려고 하시는 신랑의 찾아오심을 거부하는 자들이
강도의 소굴이였던 겁니다
모세에게 이혼증서를 요구한 겁니다 율법 실천하겠다는 것이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를 압제 하는
자신들의 처음자리를 발로 차는
첫사랑을 거부하는 짓이였다 말이죠 
처음자리 7에 70번 용서의 자리를 발로 차버리는

남을 7번 용서가 보편적진리 자리 잡은 입장에서 
가짜중심이 가짜가족 가짜 한 몸이 자리잡은 입장에서
새로운 판이 형성이 된 
진짜 중심 진짜 신랑 진짜 한 몸이 쳐들어 오게 되면

누구든지 나 보다 아내를 남편을 자식을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그래서 서로 원수 지간 만들어 버리는

왜 이 종말을 생각지 않느냐 ~~~~~~~~~~~~
정답을 결과를 왜 이 원인 없는 결과를 다 이루었다를 생각지 않느냐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끝을 보면 금방 다 알게 됩니다 뭘 해도 가짜였음을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자기를 스스로 미워하게 됨을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처음자리를
우리를 거꾸로 그렇게 안되겠노라 라고 왕자 공주 임금이라는 잔칫집을 형성 할려다 보니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르 필히 압제 하는
율법 4배나 갚으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구원은 내가 지킨다  때문에
남의 양 딸같이 가족같이 여기는 그 양을 잡아서 마귀 지옥에게 접대를 했으니
이게 음란 음행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왜 이 종말을 생각지 않느냐
왜 너의 처음자리를 생각지 않느냐
왜 너의 우는 자리 스스로 미워한 자리 회개의 자리
왜 너거 아비는 아모리 가나안 우상민족잡족 너거 어미는 헷사람 무당의 딸 창녀의 자리를
생각지 않느냐
그래서 징계로써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높은 자리 음행 음란 우상의 자리에서 낮추셨다가
그 고멜을 다시 찾아다니시는
이 하나님의 의를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간극을
이 비밀의 비유를
도저히 해석 불가인 십자가의 피 용서를 펼치실때에

다들 비웃는데 내 사랑만큼은 반드시 웃음으로 만들어버리시겠다 라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이 처음언약 처음맹세대로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로지 종말의 영인 성령에 의해서 곧 에스겔서로 치면
새성전 곧 중심인 새마음을 통해서만
종말에만 나타나는 언약의 줄로 막대기로 자기 양과 남의 양을 가르듯이
양과 염소를 가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이 출애굽때에 맺었던 언약 대로만 밀어붙이겠다 라는데

언약에는 때려죽어도 관심 없고
자기의 다짐 베드로처럼
또는 이스라엘 장로들처럼 무당 찾듯이 물으러 올 때에

자신의 구원의 필요성 때문에 구원의 조건 갖출려는 부자청년처럼 말이죠

그럴때에 집안 식구가 원수인 것처럼

이 처음언약 첫사랑 처음자리를 무시한 음행하는 자들에게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고 불을 지르러 왔다 라고

선지자 곧 인자는 이 첫사랑에 맞는 처음자리인

내가 음행한 자로써 자기 스스로를 미워하는 죄인 환자 우는 자를 찾으시는

이 옛날에 맺은 그 첫사랑의 언약 대로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럼 지난 시간까지의 요약과 더불어 오늘 내용의 요점도 이미 이야기한 셈입니다



자 그럼 이게 무슨 소리이냐 라고 나오는 자 당연히 있을 겁니다
이미 이 말 자체가 무슨 소리인지를 알아먹을수 없는 이야기 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언약 곧 묵시 또는 예언은 그야말로 비유입니다

비유로만 말씀하시지 비유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신다 라고 했을때에

(마 13:34,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막 4:34, 개역)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우리가 이 비유를 수수께끼라고 했지만 더 중요한 종말성의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져 있음을 봐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꾸 공간 곧 몸이지요 그리고 시간 곧 역사이지요
이거 있다 라고 자꾸 중심인냥 우기는데

비유라는 예언은 바로 그 시공간을 깨뜨리고 중심을 박아 버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집안식구가 원수인 이유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 바로 자기가족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시공간이 가족이라는 것 보다 더 또렷하게 보이는게 없거든요
그래서 무당 찾듯이 물으러 오는 겁니다

이게 음행 음란 우상숭배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의 옛날에 맺은 언약 속에는
야 이 핏덩어리야 살라 라고 그때 애굽의 종 되었을때에 
잃어버렸을 때에 맺은 그 언약은

누구든지 나 외에 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용납치 않겠다 라고
맺으신 언약이니까 이 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시겟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진정한 나의 남편은 예수님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육의 남편을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한다?
아니면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더 사랑하는 것 때문에 활동하고 목적으로 살거든요
그런 목적 자체가 음행 음란 우상숭배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에스겔 초반부터 이스라엘의 음행을 이미 다 보셨고
그래서 그 음행의 하이라이트
또는 음란의 공든탑이 바로 예루살렘 불 태워 버리기 아니였냐 말이죠

고전 7장은 우리 보고 결혼 생활을 이렇게 하라 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종말때에만 나타나는 시공간이 삭제된

중심이 나타나버려서 고멜인 우리와 호세아인 예수님과의 결혼 곧 한 몸이라는
비유로써의 십자가에서 원수 된 둘로 나누어진 것이
하나로 함쳐진 한 몸으로써

아까 말한 마태복음의 모세와 이혼증서 이야기 나온 것을 더더더 비유인 판국입니다
간극 좁혀서 실천하라는 말이 아니라 더더더
간따나 예수님의 한 몸 마태복음도 무슨소리인지 모르는 판국에
고린도전서의 한 몸은 더더더 모르는 판국의 비유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것은 자꾸 단독적으로 따로 떼어와서 우리 쪽에 같다붙일려고
복사 붙여넣기 하듯이 따로 떼어 낼려고 해서 인데
마침 고린도 전서 7장 결혼처럼 8장도 자꾸 음행을 대비해서 대조를 시켰다 말이죠
모세에게 이혼증서 요구한 마태복음처럼 음행에 대해서
대조하고 한 세트로써 말이죠
즉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음행은 음행 축에도 못드는
그 깊게 더 광범위하게 뭘 해도 음행으로 취급해 버리는

그러니 한 몸이 되고자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이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뭘 해도 다 음란이 된다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어찌 음행이요 음란이 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데
도리어 7에 70번의 용서 라는 종말의 비유에서
따로 내 공간 곧 남을 7번 용서한 내 몸
따로 내 시간 안식일 지켰다는 둥 나의 시간이
박살이 나지 않으면

그래서 스스로 미워하지 않으면

괜히 안식일 지키고
십의 일을 하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한 것 때문에 지옥에 가는

왜냐하면 옛날에 맺은 애굽의 종 되었을때에 맺은 언약과 안 맞거든요
곧 주의 이름과 안 맞더라 말이죠

주의 이름에 걸맞는 의사의 이름에 걸맞는 환자의 이름이 아니라
종말의 이름이 아니라
김저주 김심판 김종말이 아니라

자꾸 멋들어진 자기의 이름을 따로 구빌할려고 하다 보니

도리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이 종말의 구원이 아니라
도리어 원수가 되어서 종말의 구원을 비웃는 저 마귀
저 베드로를 송사하는 마귀와 뭐가 다를바가 뭐거 있냐 라는 겁니다

이건 한 몸이 아니라
자기가 신랑을 찾아서 신부 값을 하겠다 신부의 조건을 갖추겠다 라는
이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제사장 딸과 같은 겁니다

자기 신랑을 자기가 찾아요

그래서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라는
마귀의 두 번째 종교 시험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이거 다윗의 시편 911 112 이렇게 외웠는데 이젠 맞을 겁니다 ㅋㅋㅋㅌ
시편 911 112 91편 11-12절

(마 4:6, 새번역)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 ㉡시 91:11;12

시편 69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킨다 인데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서 인용된게 아닌데 한 번 헷갈리기 시작하다 보니 자꾸 반대로 역여져서 ㅋㅋㅋ

(요 2:17, 새번역)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 ㉢시 69:9

그래서 악한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는 종교기적 따위를 말이죠
여성은 사랑받고파서
섬기는 자를 찾아헤매는 겁니다
세상에 없어요
남편이 자신의 허물을 책인져 줄줄 알았는데
안됩니다
왜냐하면 암논 왕자와 다말 공주의 사랑처럼 계속해서 새것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인간의 사랑은 한계점에 부딧힐 수 밖에 없거든요

그카이 모세에게 이혼증서 써 달라고 이게 바로 음행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처음부터 새것이 나오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 부모 자식 이런 가족이라는
중심도 아닌 중심으로 착각하는 이들을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러니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곧 한 몸은
이 고멜 같은 이스라엘을
멀정한 베드로를 고멜처럼 만들어서 처음에 맺은 그 언약인
십자가의 언약이 아니면

여호와가 누구인지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바로 물에 빠진 자가 되어서
언약의 줄로
종말의 사랑
이 끝사랑 처음사랑이자 끝사랑만이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지
안 그러면

어차피 나를 구원해 줄 신이면
이 신 저 신 상관이 없다 라는 식의

그런 식으로 점쟁이 찾듯이 찾는

보자 한 2-30년 전에 서울쪽의 교회들 곧 젊은 여자 청년들이 그렇게 점을 보러 간다 라고
소문이 자자 했다 말이죠
지금은 아예 보편화 된 거죠
그 정도로 미래가 불안해서 박문호박사는 미래 중독이라고 표현하면서 
미래를 불안이라는 값을 치르고 산다 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곳에 시집 갈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그런 마음도 없다 말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뭘 해도 음행 음란 이였다 라는 겁니다

애초부터 옛날에 맹세한 그 처음언약 첫사랑은 아예 관심 없고
내 몸 내 시간 중심으로만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아니 음란한 우상숭배자이기에

이거 고쳐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미래가 있을 수가 없는 거지요

한 몸이 된 다는 것은
마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라고 했을때에
주의 이름을 부를수 있는 자는 자기 이름이 삭제 당하는 자 이다고 했잖아요
마찬가지로 한 몸은 결국 내 몸을 제대로 삭제 시키는 자만이
나와 한 몸을 이룰 자

곧 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주님의 몸이 제대로 삭제 당하셨다 라는 겁니다
제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심판 받으셨다 말이죠

그래서 몸과 시간을 제대로 삭제 시키는 자 만이 한 몸을 이루고자 하시거든요

그런데 우상 곧 음란은 자기만의 몸 자기 혼자 만의 몸만 추구하도록 되어 있어요
타인은 지옥이다처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내 몸처럼? 자기 밖에 모르는 몸인데 어떻게 타인의 몸을
그것도 한 몸으로
수갑을 백날 채워본들 끊고 나갈려고 하는
그 정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무슨 수로 말이죠

쉬는 부부 라는 예능프로가 새로 생겨서 봤는데
우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그런데 왜 주님은 이 불가능에 도전하셨을까?
인간은 오로지 음란 곧 우상숭배 밖에 모르는데

타인을 사랑 할 수 조차 없는 지옥의 몸일 뿐인데
누가 남을 사랑하겠습니까?
내 몸과 같이 자기 몸처럼
도리어 남을 7번 용서했다 라고 우기는 그런 남을 7번 용서한 자기 몸을 더더더더더더 사랑하는 이 음행 이 음란 이 우상숭배 밖에 모르는데  흑흑흑

누가 울겠습니까?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달라고

이런 외침 자체가 아무도 없으면 도리어 부끄럽잖아요
외침 조차도 나올수 없는 지금의 상황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독수리 보내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주의 종으로 삼아서
예루살렘 불태워 버리고 잃어버린 경험 속에 집어넣고 곧 처음자리이죠 환자의 자리
풍랑을 일으켜 베드로 빠져 죽게 만드시죠
사탄의 가시 푸욱 찔러서 내 은혜가 니게 족하다 라고 하셨죠
그래서 오늘 본문 남쪽에 얼굴을 향하게 해서
불 낫 뿌라 라고 예언을 비유를 묵시를 종말을 수수께끼를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을 비오지 않기를 3년 반 동안처럼 엘리야가 기도하듯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 음란한 자식을 놓듯이
심판 속으로 음행 속으로 집어넣어버리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내 음행은 음행 축에도 내 죽음을 정녕죽으리라 축에도 못드는
불뱀에게 물려 죽는 하나님을 원망해서 죽는 것이 음행이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봐서 지옥가는 것이 진짜 음행이라고 보여주시는

그래서 먼저 
이 일 부르짖기 전에
장대 높이 달리셔야만 하듯이
이 풍랑에 또는 독수리에게 또는 사탄의 가시가 있기 전에 먼저
옛날에 맺은 언약 이 첫사랑
이 십자가가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이
인자의 발가벗겨짐 대신 매맞은이 먼저 있었기에
그 증상물로써 아버지가 이삭이 죽음에 접붙임 당하듯이
이 첫사랑을 먼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라는 첫사랑의 언약을 먼저 세우시는 겁니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짓에 도전하셨을까?
오로지 이 언약
십자가의 피 언약으로만 밀어붙이시는

그래서 더더더 음행할 수밖에 없는 지옥의 몸 사망의 몸의 자리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비로소 부르짖는

그 카이 애굽왕과 애굽의 군사를 통해서 영광받는
왜? 부르짖도록 만드시고자
그들 애굽왕과 애굽 군사를 강퍅케 만드시니까 말이죠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는
비로소 나 죽습니다 이 사망의 몸 건져주이소 라고 아니 부르짖도는 못배기도록 하시고자

오늘 본문 남쪽으로 얼굴을 향하도록 해서
불 타라 숲들아 라고 

그래 그래 남풍이 불면 우와 이제 덥겠구나 라고 그래서 날씨도 그렇게 잘도 파악할 줄 알면서

왜 이 묵시 이 예언 이 종말의 심판은 잘 도 대비 할 줄 모르느냐 라고

이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인 이 예언 이 언약은
절대로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아이고 또 삐딱한 소리만 하는 
아무도 못 알아먹는 비유를 수수께끼를 인자야 또 너냐 
또 왔냐 라고

비웃음꺼리를 몸에 가득 담아서 저들의 허물을 담고서

이것 자체가 인자 자체가 하나의 비밀이니까 말이죠

주의 전을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열심히면 열심일수록
더더욱 인자를 삼키는

주의 전을 사모하고 열심일수록
여호와께 점쟁이 찾듯이 물으면 물을수록
더더욱 고문하고 국문하고 괴롭히는

아니 십자가의 언약이 떳는데
옛날에 맺은 맹세가 떳는데
왜 쓰잘데기 없는 우상숭배하듯이

돈 놓고 돈 먹기 하듯이
성전 그 자체가 중심으로써의 처음맹세 그 자체인데
인간들은 성전에 금을 바쳐야 헌금을 내어야 효과를 본다 라고

바로 이것이 주님을 죽이는 살인의지인 음란이요 음행이다 라고 
이거 불 태워 버리겠다 라고
너거들 중심 곧 가정을 중심으로 꾸밀려고 했던 중심세우기
예루살렘 성전 46년 동안 짓기 중심세우기
오냐 그거 불태워 버리마 라고

이런 종말의 언약
종말의 비유는 왜 대비를 못하느냐
날씨는 그렇게 잘 때려 맞추면서?????

(눅 12:56, 개역)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마 24:35, 개역)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 13:31, 개역)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눈에 보이는 천지는 어차피 삭제 될 것이다 말이죠
새 것 새 판이 짜여졌다면
즉 중심이 세워졌다면 한 몸을 다 이루었다면
이제 내 몸 내 시간이고 뭐고 다 날라가게 하신
그 주의 이름 앞에서 모든 무릎을 꿇어서

이제 더 이상 둘로 나눌 수 없는
하나님이 짝 지어준 한 몸이 떳기에

이제 이 십자가의 언약 처음 사랑 앞에서
나는 매일 매일 처음자리
뭘 해도 음란이요 음행이요 우상숭배자인 죄인으로써 
환자로써 주의 이름을 부를때에

그 인자 가 된 에스겔은
마치 부정적인 예언처럼 처음자리처럼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이사야처럼
이런 부정적인 모습이 사실은 거울로써

거울을 보고 손가락으로 아이고 저놈 이상한 비유로 말하는 놈 또 나타났다 라고
비웃었을때에

누워서 침뱉기 하는 이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의 전쟁을 통해서

우리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비로소 부르짖을 수 있는 사망의 몸 자리
환자의 이름
죄인의 자리에서
이 처음자리에서

처음맹세 그 처음언약 이 십자가의 언약만 밀어붙이시는

이 주의 이름을 여호와의 이름을 비로소 제대로 부르게 되는
나의 이름이 삭제된 자리에서 말이죠

이 십자가의 사랑을
이 부정적인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의 언약만 예언만 밀어붙이시는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도록 하시는 겁니다

다른 길로는 음행을 음부의 권세를 이길 방법이 없는

오로지 부르짖는 자인 신부 만들기
죄인 만들기
고멜 만들기
환자 만들기 라는

십자가 언약의 숙제에 놓여진
신랑의 숙제 
처음사랑의 숙제만이 있을 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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