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8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죄를 죄 되게 하는 수갑 기능 (롬 7, 7-1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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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8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죄를 죄 되게 하는 율법기능 (롬 7, 7-11)

하나님이 불의하시뇨? 그럴수 없느니라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교만하시뇨? 참람죄? 바알세불 대마왕 귀신들린자뇨? 그럴수 없느니라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6, 개역)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마 12:24, 개역)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2:25, 개역)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 12:26, 개역)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 12:27, 개역)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마 12:28, 개역)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율법과 이혼, 새언약(율법 외에 한 의)와 결혼 (롬 7, 1- 6)
로마서 2022 2024. 3. 9. 11:28
22-037 율법이라는 전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새신랑과의 결혼  (롬 7, 1- 6)

〈로마서 7, 7-11, 신약성경 247쪽, 찬송가 495장 새 438 내 영혼이 은총 입어,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찬송가 235장 새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새찬송가 438장〉 

1.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2. 주의 어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 나라 
   내 맘속에 이뤼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로마서 7, 7-11, 신약성경 247쪽〉 

(롬 7:7,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8, 개역)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 7:9, 개역)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롬 7:10, 개역)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11, 개역)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4, 공동) 또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그대가 맡은 훌륭한 보화를 잘 간직하시오.
(딤후 1:14, 쉬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도우심을 구하며, 그대에게 맡겨진 진리를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딤후 1:14, 현대어) 그대의 그 놀라운 능력은 그대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주신 것이니 소중하게 보존하시오.

(딤후 1:13, 현대어)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으로 내가 가르쳐 준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시오.
(딤후 1:14, 현대어) 그대의 그 놀라운 능력은 그대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주신 것이니 소중하게 보존하시오.
(딤후 1:15, 현대어) 그대도 알다시피 아시아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심지어 부겔로와 허모게네까지 떠나가 버렸습니다.
(딤후 1:16, 현대어) 주께서 오네시보로와 그 가족을 보살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종종 나를 찾아와 격려해 주어 마치 신선한 공기를 가득히 들이마신 때처럼 내게 새 힘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나를 찾아올 때 조금도 꺼려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딤후 1:17, 현대어) 사실 그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찾아 안 간 곳이 없이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나를 찾아낸 것입니다.
(딤후 1:18, 현대어) 그가 에베소에서 나를 도운 일은 나보다도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낱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딤후 1:13, 개역)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 1:13, 새번역)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고,
(딤후 1:13, 공동)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 원칙으로 삼으시오.
(딤후 1:13, 쉬운) 내게서 들은 진리의 가르침을 잘 따르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지게 될 믿음과 사랑의 본으로 삼으십시오.
(딤후 1:13, 킹흠정)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그 틀을 굳게 붙들고
(딤후 1:13, 한글킹)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의 본을 굳게 붙잡고
(딤후 1:13, 현대인)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 들은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고
(딤후 1:13, 현대어)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으로 내가 가르쳐 준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시오.
(딤후 1:13, 가톨릭)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115)

1.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2. 이 계명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이 계명을 너는 지키라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네게 부탁한
   이 계명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이 계명을 너는 지키라


〈찬송가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찬송가 200장〉 

1.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2. 귀한 그 말씀 내 노래 제목이 되도다 
   모든 사람에 복주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아 생명길을 가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3. 널리 울리고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들어 복을 받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멘


(롬 7:7,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비추어 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에 ㉣"탐 내지 말아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 ㉢여기서부터 7장 전체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나'는, 바울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인간 일반을 대표해서 지칭하는 수사학적 대명사로 사용된 것임 ㉣출 20:7; 신 5:21
(롬 7:8, 새번역) 그러나 죄는 이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내 속에서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
(롬 7:9, 새번역)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롬 7:10, 새번역)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롬 7:11, 새번역)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무인도 섬에 홀로 있게 되면
그곳에는 법도 윤리도 없다 라고

그러나 두 사람 이상 있게 되면
그때부터 규칙을 만들지 아니하면 무법천지가 된다 라고 말이죠
즉 윤리나 법이란 결국 인간이 지옥의 몸이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억누르지 않으면
즉 규칙을 세우지 않으면 무법천지가 되는 거지요
아니다 나는 혼자 있어도 화장실을 따로 만들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등등등
그러나 이것도 남의 눈을 의식하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지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 규칙성도 얼마가지 않는
작심 3일 밖에 안된다 라는 거지요

만약 영화 캐스트 어웨이 곧 톰행크스 주연의 영화처럼
무인도 섬을 벗어나 외부로 나갈려고 한다면
그때부터는 규칙을 만들고
배구공에다가 타인을 심어서 종교화 해야
외부로 나갈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만약 무인도가 전부이다 외부가 없다
과거에 타인을 만난 경험이 없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죠
그렇다면 법이고 규칙이고 윤리이고 뭐고 없는 겁니다
좋고 나쁘고 라는 선악도 없는 거죠
타인과 부딧힘으로써 좋고 나쁘고가 생기고
그에 따른 규칙을 정하는 거죠
규칙이 고정적이면 몰라도
우리가 전세계의 윤리 문화 도덕 법이 다 다른 이유는
부딧히는 그 상황에 따라
오히려 그 쪽에서는 좋은 의미가 다른나라에서는 나쁜의미가 되는 거죠
딱 하나 예를 들면 동양문화의 용은 환상의 동물 용은 아주 좋은 의미인 거죠
그러나 서양의 용은 사탄 완전 정반대인 거지요 기독교문화의 서양인 것이고
동양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승천의 성공의 의미를 두는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동얀은 집단적으로 왕에게 복종하겠끔하는 무의식을 심는 거지요
집단세뇌 말이죠 유독 미국에서만 그것도 대선 때에만 UFO 논쟁이 있는 이유는
전세계에 집단세뇌를 시키는 것이지요 최강국 왕의 나라 넘보지 말고
꿇어 엎드리라 라고 말이죠 무의식을 자극하는 겁니다

그러니 두 사람 이상만 생겨도
종교가 생겨나고 그런 윤리 선악의식이 바로 죄의 소원 곧 정치가 되는 겁니다
두 사람이상만 있어도 정치가 있다 즉 무당이 생기는 겁니다
누구는 하늘의 접촉자 매개자 곧 왕이, 정치가 있는 겁니다

자 그런 점에서
지난 번에 전남편 율법이 죽으면 그 아내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서
새남편에게 시집을 가도 죄가 안된다 라고 하는데 있어서

오늘 본문 그럼 율법이 죄냐 라고 우리가 묻고픈 것을 도리어 먼저 문제시 하면서
운을 띄우고 있습니다

율법이 죄가 아니라 죄를 겨냥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율법은 죄의 소원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의 죄만 상대하고 있다 라는 거지요
인간 상대하는게 아니라

왜? 인간의 주인은 죄 이니까
인간은 죄의 숙주인 거지요

그래서 율법은 논개처럼 죄를 껴 앉고 자폭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율법이 아니면 죄를 알지 못하고요
율법이 아니면 내 속의 죄가 살아 있고
정작 나는 그 죄의 주인 됨에 의한 종노릇으로써 죽어 있는 좀비일 뿐이다 라고
율법이 알려주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몽학선생으로서 누구를 쳐다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화살표입니다
왜 못 지키는가 그래서 몽학선생 이전에 율법은 나를 죽은자 취급하고
오로지 죄만 살아 있다고 증명해 보입니다
비로소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사망의 몸으로써
그 사망의 몸 이라는 처음자리에 몰아넣어서 몽학선생으로써
첫사랑을 쳐다보라 라고 화살표로 가리키고
그림자로써 실상을 제시하고 뒤로 퇴장하는 누락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은 전남편으로써 나를 껴안고 죽는 논개가 되고
그 죽는 요나의 표적인 큰물고기 뱃속 어두운 스올 무저갱 지옥 사망의 몸된 자리에서
이제 죄의 소원의 내막을 들추어내어서 죄의 소원인 죄의 문턱을 넘어서는
멋들어진 구원을 받을 만한 몸이 아니라
도리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사망의 몸으로써 그 처음자리에서
아들의 소원을 곧 환자의 소망이 아니라 의사의 소망을 비로소 보여주고 뒤로 빠지는 겁니다
그림자는 실상을 말하기 위함 인데
그림자를 껴안고 살려고 하니까 실상을 도리어 죽이는
사망의 몸임을 빼도박도 못하게 들통당하는 수치가 드러나는데 있어서

심지어 예수님을 죽여놓고서도 예수님이 그 살인자의 죄악을 가려주는
이 실상으로 안내하는 화살표 안내양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존재를 우선시 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기에
율법을 존재화 하고 즉 우상화 하고 이 말은 곧 녹쓴때를 썩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맞아요 썩어라 라고 존재로만 보이도록 합니다
기능이 아니라
의사를 자기의 친구로 두면 자기가 더더더 건강하고 의인인자로 타인에게 자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의사의 존재가 아니라 기능은 오로지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기능을 펼칩니다
즉 오로지 수술칼을 들이대면서 자꾸 죽일려고 달려드는 거지요
사실은 내 속 어두운 뱃속에 있는 죄를 건드릴려고 수술칼로 찢는줄도 모르고
죽일려고 보고 있으니 이 기능이 아니라(무능한 젖먹이와 어린아이의 기능인 의의 병기가 아니라) 어쭈 율법의 존재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면 의사를 내 편으로 만들면
이 권력을(불의의 병기 곧 힘 칼과 방패로 전쟁 곧 정치를 하면 되겠네 라고 다들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올무에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율법 존재와 자기를 합치 동일시 하더라 말이죠 이게 바로 율법이 더더더 죄를 죄 되게 율법이 탐하지 말라 라고 명령어를 주면 그 명령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율법이전의 탐한다 라는 것을 몰랐다가 졸지에 탐하는게 뭔가를 알게 되어서 탐하지 말라 라는 명령어로 인해서 탐하지 않게 지킬수가 있는게 아니라
탐할 수밖에 없는 몸으로 몰아가는 율법의 기능에 말려들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율법의 기능 의사의 기능에 관심없고
율법과 즉 의사와 자꾸 합칠려고 하다 보니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겁니다
그 인간 꾀를 더더욱 촉발케 하는 유도를 하는 거지요
한 예로 예수님이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 까지 농부일을 다 채운 자들 보란 듯이
딸랑 늦게 차출되어서 딸랑 30분 일한 자에게도 하루 일당을 다 주니까
자기들은 적어도 두배 이상 줄꺼라 라고 생각했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율법 또는 규칙 또는 윤리 또는 선악이 어떻게 발동하는고 하니
인간 속의 깊은 생각지도 못한 죄 곧 악을 들추어낸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의 방어기제는 내가 악이 아니라 너 예수가 악이다 라는
이 보편성을 이 집단성을 드러낸다 라는 점입니다

아니 규칙대로 정당하게 일당을 똑같이 줬다 말이죠
문제는 법을 지킨자들이 더 많이 일을 했기에 거기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많이 일 했다 라는 것은 상대적인 딸랑 30분 일한자와의 비교입니다

진짜로 더 많이 일했다 라면 12시간 더해서 13시간 했다면 1시간 초과수당을 암묵적으로 요구할수 있다 말이죠 그런데 더 많이 일을 했다 라는 것이 없어요

더더더 문제는 점심때 1시에 차출된 사람 놀던 사람을 불러 일하라 라고 해서
그 사람은 6시간 일했다 말이죠 딸랑 30분 일한 사람에 12배나 일했다 말이죠
그리고 오후 3시에 일한 사람도 있어요
이들 중간 중간에 들어온 자가 없었다면 전체 다 일한자가 빡빡 우길수가 있어요
그런데 중간 중간에 들어온자도 똑같이 하루 일당을 똑같이 다 받았다 말이죠

오후 3시에 들어온 자는 6배나 더 일했기에 거기에 따른 보상이 더 늘어났느냐? 아니다 말이죠
똑같이 받았다 말이죠

그런데 12시간 다 일한 자는 반발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1년치 계산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딸랑 하루에서 벌어진 선악사건이다 말이죠

정당한 대로 안 준게 아니라 정당한 대로 정당한 값을 다 주어도
갑자기 하루일당 계산으로 준 주인이 졸지에 악하다 라고 취급당해 버리는 겁니다

왜 갑자기 악이 튀어나올까요
정당한 12시간 다 일한 자신의 선함에 비해서 악하다 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악할려면 12시간 품삯을 안 줬으면 모르겠는데
다 줘도 악하다 주인은 악하다 라고 나온다 라는 겁니다

지난 주에 누가 세상에서 가장 교만하다 라고 인간들 모든 인간들의 평가가 나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가장 미움을 받는
가장 교만한 자이다 말이죠
맞아요 가장 교만한 예수쟁이들이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 라고 몰아서 죽였거든요

이 뫼비우스의 띠를 풀려고 이 의문의 반복을 풀려고
이 율법의 완성을 풀려고 해 보라 말이죠
과연 누가 있을지

네 맞아요 율법이 논개처럼 나를 껴안고 죽는 길 만이
실상인 새남편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말이죠

그러니 율법은 애초부터 내 속의 죄가 살아나도록 부추기는 겁니다
왜? 율법은 나를 겨냥한게 아니라 내 속의 죄를 겨냥했기에
죄가 살아나니까 나는 그 죄에 죽은 죄의 소원이 질질질 끌려다니면서
좀비 노릇을 해 왔다 라는 거죠 세뇌당한 조종당하는 로봇 라는 거지요

죄가 살아남으로써 나는 죽은 거죠

이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광야로 몰아갑니다
광야 광야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몰아가니까
자기는 살아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한번도 애굽을 탈출한적이 없는 이 내 속의 죄가
출애굽한척 하면서 따라왔던 겁니다
그 죄를 겨냥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커녕

광야 광야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몰아가니까
이 사망의 몸이 구원받을 몸이라고 착각한 그 착각을
그 속임수를 그 꾀가

이 십자가의 죽음에 다다다 들통나더라 말이죠

십자가는 그렇게 죽음 덩어리인 나를 토해내는 겁니다

그렇게 토해 내침을 당하는
세 번 부인한 자
하나님을 원망한 자
하나님의 원수
그 증거가 꼬끼오 세 번
그 증거가 증거궤에 담긴 세가지 
곧 아론의 싹난 지팡이(니만 대통령하냐 나도 대통령이 될란다 정치-임마누엘),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이미 모세 곧 제사장의 실패를 염두한 거죠. 화가 나사 십계명 두 돌판을 깨뜨렸으니까, 종교 곧 모세의 온유의 한계, 인간 초코파이의 한계 가짜믿음 살인의지), 
그리고 만나는 담은 항아리(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도 없는 자아로 자기유익으로 만드는 사망의 몸 우상의 몸,으로 들추어낸 만나 이것이 사랑없는 몸으로 들추어낸 사랑이다 곧 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로 그림자는 실상을 말하고 있음)

그러니 율법이 죄가 아니라 
율법은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음으로 몰아가는(논개)
죄를 죄 되게 해서
올무 곧 미끼를 물은 것이여 율법을 지킨 나가 반드시 예수님을 악으로 몰아 죽이는
살인의 몸으로 반드시 만들어 버린다 라는 것

아냐 나는 절대로 살인하지 않을꺼야가 아니라
그건 잠시 보류할 뿐이지
날 때부터 잠재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태어날 때부터 가진채로 태어난 사생아 이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마귀가 몽둥이 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율법을 통해서 몽둥이를 대심으로써

살인자의 자리에서 그 살인의 죄악 마저도 씻기시는
선악을 묻는 것이 아닌
사랑을 묻는

이 사랑으로 창조한 창조주를 내 반드시 너에게 내가 누군지 알려주겠다 라고
토해 내친 자리에서 
(왜? 율법 지키면 토해내치지 않을줄 알았는데
정작 율법 자체가 무조건 이유없이 토해내칠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드심 앞에서
그 어떤 반박 힐문을 할수 없도록 예수님을 가장 교마한 자
농부들처럼 악한 주인으로 몰아간 그 빼도박도 못한 증거물 곧 십자가에 탁 걸려 넘어졌으니 말이죠 마치 율법을 쥔 머슴아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돌삐 쳐죽이고자 하는
그 정당성 마저도 살인의지로 들추어내듯이 말이죠
아니 부자청년이 정말로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면 죽은자 곧 가난한 자를 살려보라 말이죠
행함으로 안되는 사랑으로 살려 보라 말이죠 율법의 완성은 사랑 아닙니까
그래놓고 왜 율법을 다 지켰다 라고 혹시 부족하다면 당장 채우겠다
이것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부족분 채우겠다 라는 탐심이다 말이죠 우상숭배이다 말이죠
탐심하지 말라가 도리어 탐심하게 만들도록 부추기는 율법에 걸려 넘어진거다 말이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신 예수님에게 탁 걸려 넘어진 것이다 말이죠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되도다

(눅 7:23, 개역)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것을 오늘날 한국교회는 진짜로 실족치 않을려고 가르치는 성화론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닙니다 제발 넘어지라 라는 겁니다
넘어져야 자신이 지옥의 몸임을 알거 아니겠습니까 넘어져야
누가 일으키는 그 요나의 표적을 십자가를 볼거 아니겠습니까
전부다 자기의 숙제로 가르치게 되니 그게 또 계급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모세의 자리에 앉은 법이 되어서 정죄하기 바빠요
그 정죄에 예수님이 걸려들어서 죽였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모든 인간이 십자가에 걸려든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사망의 몸으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사랑이 또렷한데
어딜 감히 사람의 꾀로 속임수로
율법을 그림자로 이용해서 실상을 가릴려고 하느냐 말이죠
그람자로 사람을 온전케 해 보라 말이죠 전재산을 가난한 자 죽은자 살려보라 말이죠
도리어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지 않으면 다행이게
예수님을 안 죽이면 다행이게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살인자들로 그 증거가 십자가 아니냐 말이죠

토해 내침을 당해도 마땅한 자 임의 그 증거가 십자가 아니냐 말이죠

이 십자가가 아니면 절대로 인간은 그림자 율법을 놓을 리가 없어요
율법은 정작 그런 인간임을 알고 도리어 인간을 죽이고자 죄를 살리고 있는데 말이죠

죄를 살려야
독수리를 살려야 내 종 느부갓세살을 살려야
이스라엘이 죽어요

이스라엘이 죽지 않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리가 없지요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을 
그 죽은자 의 그 당사자가 되도록 말이죠

내가 살아있으면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인간은 자꾸 자기가 살아있다 라고 보니까
하나님을 막 상대할려고 해요
대상물로 삼아요 웃끼죠

인간이 불을 상대로 막 만질려고 해요 웃사 꼴을 보고서도 불을 막 만질려고 해요
정작 웃사가 상대하는게 아니라
법궤가 거룩이 웃사를 상대합니다 웃사를 죽여서 웃사 속의 죄를 살려냅니다
사망의 몸을 살려냅니다
말이 안되죠 사망의 살려내요 죽음을 죄를 살려내요

즉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 상대할 입장이 못 됩니다 타 죽어요
얼굴 봤다가는 죽어요
왜?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손 깨끗한 자
얼굴이 그 증거입니다

음란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죽음이 가득해요
안그러는 인간이 없어요
소위 가장 거룩된 성화된자의 얼굴을 보니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위장했을 뿐 음란이 까까득 해요

그 음란을 감추기 위해서 그 교만한 얼굴 
완악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 곧 율법 지키기
곧 목이 곧은 백성임을 자기 스스로 수치를 얼굴을 가리우기
백날 해봐도 소용 없음을 들추어내는 것이 정작 율법의 기능인데

율법의 존재에 거룩의 존재에 자기 존재를 썩어서 합체 할려고 하다 보니
녹슨 찌끄기 녹이 포함 되어 있는줄 모르는 겁니다
그 녹을 주님을 살리는 겁니다 율법은 그 녹슨 찌끼만 상대하시는데
인간은 그 녹을 거치지 않고 건너뛰고 갈려고 하니
웃사처럼 법궤를 만져서 즉사 하는 겁니다
거 보세요 율법은 법궤는 나를 죽인다니깐요
그리고 사망을 죄를 살리더라 말이죠

다윗은 그 죄가 살아난 것을 보고
죄를 주님이 해결하실 때 까지 가만히 두다가
법궤가 들어올 때 너무 기뻐서 춤추다가 바지 내려가는 바람에
미갈이 다윗왕이여 체통을 지키고서 라고 비웃다가
불임여성이 되는 겁니다

즉 미갈은 법궤의 대상물이 된 다윗죄인을 다윗 토해야 할 죄인을 부르러 오셨는데
반대로 법궤를 상대할려고 또 웃사처럼 거룩을 잡을려고 하는
이스라엘 교만을 보여줌으로써 그 얼굴이 증거가 됨으로써
도리어 다윗을 교만하다 라고 몰아세운 겁니다

이렇게 언약은 두언약으로 율법은 두 언약으로
토해야 할 자로 수태치 못할 자로 화로다 나여 지옥의 몸임을 알고 우는 자로
그 수치를 가려주시는 눈물을 씻겨주심을 받은 자로
모세의 자리에서 정죄하는 완악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로 계집종 가정부로

둘로 갈라버리는 법궤요 율법이다 말이죠

율법은 우리를 무조건 눈물 흘리는 사망의 몸으로 몰아버리는데
다들 가정부가 되다 보니
왜 나의 정당한 품삯을 안 주냐 라고만 따지는
교만 그 얼굴의 분노 곧 예수님을 악한 주인으로 교만한자로 몰아가더라 말이죠

마침 놀랍게도 우리가 앞서

세가지 비유를 접했습니다

화덕 비유
녹슨 가마솥 비유
전병 비유

다들 한결같이 착각하기를 아 주님은 내편으로 상대할려고 하니까
좋게 좋게 해석합니다

즉 다들 건강한 자요 의인이라고 자기자신을 해석 합니다
그러니 의사가 의원이 필요없다 라는 의식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니 안 아픈데 왜 의사가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아프면 당장 의사가 필요하니 구할수 밖에요

율법은 넌 평생 웬수 평생 환자 이다 라고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다 라고
비로소 율법의 알맹이를 접하고서 다윗은 웁니다
자신은 토해 내쳐야 할 자임을 알게 하시는
정직한 영이 없다고 울게 만드시는 정직한 영에 의해서 말이죠

죄가 살아았는데 우찌 속에 정직한 영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는 자들은
집단으로 몰아가는 율법과 선지자 그리고 십자가를 무시하고
다윗언약을 무시하고
개인 사적인 구원을 위한 사적인 개인의 숙제로 해석하다 보니
저런 화덕비유 녹슨 가마솥비유 뒤집지 않은 전병비유를
다들 좋게 좋게 해석하는 겁니다
집단적으로 못 봅니다 
집단적으로 본다 라는 말 자체가 이미 모순 되죠
내 개인의 시선 뿐인 가운데 무슨 수로 남의 시선으로 해석하겠습니까

그래서 집단적인 시선으로 보라고 율법을 줬는데
아 모든 인간은 죽었고 죄가 살아났구나
죄가 죄 되게 하셨구나 로 봐야 하는데
율법의 껍데기만 취하다 보니
자꾸 존재가 될려는
개인숙제하기만을 바라는 겁니다 율법 잘 지키는 존재와 거룩한 율법의 만나
합체 연합 일치 동일시 
그러니 성화론자들의 성령론은 존재론인 무당개념이지
기능인 단절로 해석하는 놈들이 아무도 없어요

날 죽이는 성령론을 외치는 자가 없어요
다들 저 화덕비유(호 7장) 녹슨 가마솥 비유(겔 24장) 뒤집지 않는 전병비유 호세아 7장에 전병비유와 함께 어리석은 비둘기 비유도 나와요 물론 같은 의미입니다

아니 비둘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로운 성령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이 같이 순결하라 라고 했는데
왜 닭둘기처럼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 왜 순결한지
왜 뱀같이 사악하기 짝이 없어서 악마취급하는데 지혜롭다 라고 하는지

존재론에서는 해석이 안됩니다 
(즉 해석하겠다 라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안됩니다 해석포기 해석차단 단절
도리어 해석 당해야 한다 라는 거죠)
왜 내 존재와 결부 곧 나를 개입시킬려고 하니까
이질적인 거부반응으로 인해 합체 할 수가 없어요

존재로만 보고 기능으로 못 본다 라는 말은
기능은 그때 그때 달라요 자꾸 움직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듯이
고정적이지 않다 말이죠
반대로 존재는 고정적입니다 고정적이면 가만히 있기에 보편적진리로 만들 수 있어요
개인이라는 내 존재도 개입시키고 합체 시킬수가 있어요
자꾸 움직여봐요 미꾸라지처럼 가물치처럼 미끌미끌 장어처럼 펄떡 펄떡 뛰어봐요 
얼마나 힘센지 잡는데 얼마나 힘드냐 말이죠 식겁한다 말이죠
돼지 잡는데 그 비린내와 고함소리에 저절로 토를 할정도로 역겹습니다
처참해요 온 사방에 피가 튀기니 말이죠
움직이지 않아야 나의 행함을 가미 시킬수가 있어요
뭐 가미 시키는 것은 오로지 자기유익을 위해서 잡아죽이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반대로 기능은 해석당해야 하기에
내 유익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이 지옥의 몸으로 들통당하는 겁니다

어리석은 비둘기 비유는
애굽과 괜히 손 잡는 바람에 앗수르에게 잡혀간다 라고
이사야선지자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그 비유의 수수께끼 행동과 연관된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냐 말이죠

신약에 나오는 비둘기 곧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한다 라는 그 비둘기의 기능은 존재가 아닌 기능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정도로 비둘기가 가장 흔하게 하늘에서 땅에 착지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카이 왠지 어러석을 정도로 순수하게 사람의 손에 잡혀 죽어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율법과 선지자가 마치 사람의 손에 잡혀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작 그 반대로 사람을 잡는 올무요 그물이다 사람잡는 어부 이다는 겁니다


(마 10:16, 개역)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21:12,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런 의미에서 뱀은 낚아 채는데 지혜롭고
비둘기는 바보처럼 잡혀줄 정도로 공짜로 날 잡아잡수세요 라고 할 정도로 온순하다 말이죠

자 그러면 이 기능 존재가 아닌 기능은 사건이 됩니다
뱀처럼 지혜로운 법궤는 인간의 접촉을 차단하는 지혜로써 웃사를 즉사시켜버립니다
먹이를 낚아채는데 한치 오차도 없습니다 어딜 감히 세 번의 부인을 건너뛰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 장지지겠다 함께 죽겠다 뭐 율법 네 배나 갚으라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정확하게 낚아챕니다 안 속습니다 모조리 차단 합니다
법궤 스스로 발이 발통이 달린냥 모든 우상의 손모가지 발모가지 다 짜르고 다닙니다
그런데 웃사는 사적으로 잡을려고 하니 아무리 본능이라고 해도
사적이 아닌 더더더 본능적인 집단성으로 웃사를 즉사 시키는 겁니다
어딜 감히 더러운 손으로 불을 잡을려고 해
그리고 순결한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올때는 다윗을 발가벗겨버릴 정도로 기쁘게 만드는 거죠
그것을 비웃음 꺼리로 만들어 버리는 미갈로
이렇게 둘로 두 언약으로 갈라놓듯이 말이죠 그러니 내 쪽으로 끌어올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어요

자 이렇게 반드시 한 쌍으로써 율법은 찢고 선지자는 싸매는
우리는 존재로 보니 반대로 보이지요 율법은 지키면 날 좋게 해 주고
선지자는 그냥 선지자 아니지요 다윗언약의 선지자 즉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거짓선지자 북이스라엘의 신학과 상대적인 다윗언약의 선지자는
오히려 싸매어 주기는커녕 더더더 찢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완성된 십자가의 사랑이 있기에
눈에 보이는 존재는 그림자는 모조리 누락 시키고자 마구 마구 찢고
단절 시키는 기능으로써 작동하는 겁니다
왜? 이미 완성된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이 다 완공이 되었기에땅의 눈에 보이는 존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집으로써 먼저 심판 먼저 매 맞는 겁니다

그러니 나의 유익을 위한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런 사적인 구원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교회를 나의 개인구원용으로 보는데 있어서
도리어 올무가 되는 것이 가마 솥 비유인 거죠

아니 보세요 우상숭배를 가장 잘 제거했다 우상를 타파했다 라고 자부하는
성화론자들을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교만하고 가장 우상숭배자이더라 말이죠 교회사람들이 말이죠
믿는 구석이 있어요 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이다 라고 했는데
그게 돈이라는 믿는 구석을 내밀더라 말이죠
그게 부자청년
그게 바리새인 이다 말이다 바리새인은 돈을 사랑한다 라고 예수님의 해석만 그래요
아무도 그렇게 바리새인을 해석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카이 예수님의 해석을 비웃는 겁니다
그래 와 나는 돈에 미쳤다 우짤래 ~~~시어머니를 비웃는 거죠
(눅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1, 개역)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2, 개역)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 16:13, 개역)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4, 개역)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항상 남들에게 칭찬듣는 자들이지 절대로 악평 악플이 달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아니 그런 자를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함에 있어서
예수님이 도리어 악플달리고 교만하기 짝이 없다 라고 취급받지요
네 맞아요

비유란 수수께끼란 해석불가란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만 하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가 만땅으로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그런 효과로 인해 사란들에게 충분히 대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반대로 해석하신다는 겁니다
화덕 비유 불에 달궈진 화덕 비유 완전 잔칫날이 졸지에 초상집이 되게 하는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푸는 임금비유 같아요
하나님 나라 비유가 다들 한결같이 부정적인데
반드시 긍정적으로 합체 녹슨 찌끼를 합체 시킬려는 노림수를 더더욱 부추기는 해석이
도리어 만연할때에 반대의 해석을 하게 되면
예수님 꼴 당하는 개죽음 당하게 되는 거지요
이게 성전 곧 교회에서 벌어지지
교회 다니지도 않는 사람에게서 벌어지겠냐 말이죠

뒤집지 않아서 한 쪽이 다 타버리면 결국 다 버린다 말이죠
왜 애굽과 손 잡아서 
왜 앗수르에게 포로 잡혀가냐 말이죠

자기 따나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나서는 것이 도리어
꺼져가는 심지 곧 애굽
상한 갈대 곧 애굽과 손잡았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장로들의 대표기도는 반대로 역시나 긍정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잘못 기도한 줄도 모르고 도리어 은혜롭다 라고 칭찬받는 기도이지만 말이죠

아 맞다 하나 더 있죠 호세아 7장에 세가지 비유에 하나 더 [속이는 활 비유]
아니 활쏘는 팔을 주님이 강건케 훈련 시켰는데 도리어 그 활을 적에게 쏘는게 아니라 주님에게 쏘고 있더라 아까 위에서 언급한 악한 농부의 비유와 같죠
예수님을 도리어 악한 주인으로 활쏘고 십자가에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을 자기의 사망의 몸임을 쏘는데 활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남 정죄하는데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데 사용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 그 자체가 교만 밖에 없어요
겸손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 얼굴이 그 중거가 되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할 수가 없어요
봤다가는 타 죽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일려고 주님의 마당을 짖발고 있더라 말이죠
아니 내가 타 죽어야 할 장소인데
나를 더 높여주는 장소로 그런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그런 예수님으로 해석하더라 말이죠

나를 찢는 수술칼로써의 비유들인데
내가 건강한 자임을 의인임을 돋보이게 해 주며 높여주는 것으로 다들 해석을 하니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식이 되는 겁니다

고쳐달라고 부르짖으라 라고 울어라 라고 부르짖게 만드는 비유를
저 참 잘했지요 구원받을 만 하지요 아 겸손해야지 나대지 말고 촐랑거리지 않고
깐족대지 말아야지 그게 주님 보시기에 좋을 거야 라고
좋게 좋게 해석하면 되는줄 아는 거죠

알짜 없습니다 다 찢어버리시는 겁니다

무조건 이유 없이 논개처럼 함께 빠져죽자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그것이 운동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아니 죽은 죄가 나의 죄를 제대로 치료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게 할 수 없다은 것을 보여주고자 죄가 살아남으로써 죄로 죽은자 만드시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의 소원은 가인에게만 덮쳐진게 아닙니다 집단적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덮쳐진 겁니다
그러니 이미 죽은 거죠

그런데 살아있다 라고 내 존재에서 출발해 버리면
이게 바로 죄가 살아있다 라는 증거요 나는 그저 죄에 조종당하는 숙주일 뿐인거지요

그래서 율법이라는 에프킬라고 파리 모기 해충 십이지장충 아니다 이건 몸 속이다 잔딱
한 방에 다 뿌리는 겁니다 집단적으로 뿌리지 찔끔 한 마리 모기에게만 안 뿌리지요
방 안에 가두어서 죽이지요 한 구조 판대기 전체에

그러니 율법은 에프킬라 또는 잔탁 이지
율법이 죄를 죄 되게 드러내는 것인데
또 존재로 해석하니 내 존재랑 안 맞으면 우리는 무조건 선악으로 따지다 보니
율법이 죄냐 라고 묻는 거죠
예수님을 악한 주인이라고 몰아버리듯이
자기가 교만한 얼굴임을 완악한 수건인 율법으로 가리우기자 하니 말이죠
율법이 완악한 수건입니까?
여러분이 세수하고 얼굴 딱은 그 수건으로
계속 얼굴을 덮고 가리우고 1년 아니 딱 1개월 아니 딱 하루동안 지내보세요
얼굴과 얼굴을 마주 안 본다 라는 자체로 금방 교만한 자로 소문이 일파만파 퍼질 겁니다

일반 수건도 그런 판국인데 율법을 그렇게 활용할 정도였다면
율법을 이용햐서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라는 말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 정도로 극도로 교만하다 라는 거죠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얼마나 교만 합니까

처음 초창기 한국 환경운동가들 버스 매연 줄이자 라는 데모 집회를 한번은 과격하게 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중에 성추행범으로 잡혔다 말이죠
도둑질 하지 말자 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도리어 가르치는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하는 이 간극을
인간은 그 어떤 방법도 좁힐 방법이 없습니다

도리어 간극이 더더더더 벌러진 그 사망의 몸에서
토해 내쳐야 할 그 심판의 자리에서

비로소 율법의 올바른 취지
내 속의 죄를 수술하는 칼로써 작동하는 겁니다
비로소

토해 내친 자리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교만 밖에 없는
그 처음 애굽
에굽의 종 되었던 너희는 끄집어 낸 나 여호와 라는
그 이름을

음녀의 자리에서 왜? 지금 호세아 우리가 살펴보고 있잖아요
아니 주님은 호세아 자녀 세 자녀처럼
이스라엘을 음녀 못 만들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몰아버려요

그 음녀의 자리 환자의 자리에서만
율법의 기능인 율법의 완성이신 이 십자가의 죽음을 보라 라고
그림자가 아닌 실상을 보라 라는 음성을 듣기 때문에 말이죠

귀머거리 자리에서만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율법의 기능입니다
거 보세요 이미 모순 되지요 귀머거리는 귀가 안 들리는 자입니다 
안들리는데 어찌 듣습니다
이게 비유입니다 수수께끼 곧 단절입니다

귀가 건강한 자에게서는 다른 것 다 들어도 율법의 기능은 못 듣십니다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외침을 못 듣습니다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라는 부자청년과 같아요
그저 개인구원을 위한 자기유익을 위한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 곧 자기자신이 우상인
그 우상만을 위하기 때문에
들릴 리가 없지요 그 얼굴처럼 얼굴돌리고 등돌리고 다시는 안 보겠다 라고 돌아서 가는 겁니다

듣는다고 하니 못 듣고요
본다고 하니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
소경인 겁니다

나 소경
나 죄인
나 환자
나 심판받아 마땅한
나 사망의 몸
나 지옥의 몸
나 토해 내쳐야 마땅한 자
나 죽은 자 이다는 자이게만

이 비유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로소 소경된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 큰 물고기 바다 깊은 어두운 깜깜한 소경처럼 단하나도 안보이는
그 지옥 속에 뛰어드신 유일한 빛을 말이죠

내가 만들려고 했던 모든 가짜 빛들이 없는
사망의 음친한 그 무저갱 지옥의 몸인 심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겠끔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도저히 한 몸이 될 수 없는
원수된 둘로 나누어진
그 지옥 바닥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신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주님의 의사 된 기능 때문에

우리는 먼저 매맞는 겁니다
이스라엘 먼저 된 자도 실패한 것을 우리가 무슨 수로 성공하겠냐 말이죠
아뇨 실패하라고 매 맞는 겁니다

그 매 맞는 것을 보고 어머니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반대로 보고 이방인이 돌아왔듯이 말이죠

우리는 반대로 멋들어진 축복받은 모습으로 전도하고픈데
주님은 우리를 죽이시기로 작정되게 하심으로써
복음을 증거하십니다 인간의 전도와 주님의 전도는 정반대이듯이 말이죠

우리는 막 심으면 다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우기지만
주님은 주님이 심지 않은 것은 다 뽑겠다 라고

반드시 두 언약으로 가르시는겁니다

여기에 율법과 선지자를 페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온전케 하심으로써

율법의 완성인 사랑만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율법의 미완료 의문으로는
행함으로는
절대로 사람을 온전케 못하는
도리어 완악케 만드심의 차이로써

인간 쪽에서 아무리 거룩을 잡았다 그리고 실천했다 라고 해서
그 속임수에
속이는 활 비유 자기 눈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찌르는 예수님을 악으로 모는 그 의사를
도리어 거부하는 모습을 들추어내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해야 할 자임을
하나님의 의에 십자가에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에 복종하지 않고
자기 의 쌓기에 하나님께 대한 열심 때문에 망해야 할 자임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는
이 사망의 몸인
곤고한 자를 누가 건져낼 자인지를 보여주시고자

내가 끄나플로 붙잡고 있는 것 하나 하나를 모조리 다 제거함으로써
그림자가 아닌
유일한 산 소망
참 실상만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겁니다


이 심판의 주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음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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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4 인자 에스겔 아내의 죽음 (겔 24,15-27)

녹슨 가마솥 비유 (겔 24, 1-14)
에스겔 2019 2024. 3. 16. 21:28
21-073 살인자의 성읍아, 녹슨 가마솥아, 화 있을진저 (겔 24, 1-14)

〈에스겔 24,15-2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7쪽, 찬송가 82장 새 95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363장 새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찬 82) 새찬송가 95장
내 안에 사는 이 (92)
찬미예수 2000 - No.462 약할 때 강함되시네 (주 나의 모든 것)
괴로울 때 주님의 (1167) 찬미예수 2000 - No.1665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울어도 못하네 (찬 343) 새찬송가 544장
누군가 널 위해 기도 (1306) 찬미예수 2000 - No.1868 누군가 널 위해

〈찬송가 82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새찬송가 95장〉

1.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2. 나의 사모하는 선한 목자는 어느 꽃다운 동산에 
   양의 무리와 늘 함께 가셔서 기쁨을 함께 하실까

3.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4. 주의 자비롭고 화평한 얼굴 모든 천사도 반기며 
   주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에 천지가 화답하도다

5.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 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 뿐일세.  아멘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새찬송가 287장〉


(겔 24:15,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4:16, 개역)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겔 24:17, 개역)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겔 24:18, 개역)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겔 24:19, 개역)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겔 24:20, 개역)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4:21, 개역)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겔 24:22, 개역) 너희가 에스겔의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우지 아니하며 사람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겔 24:23, 개역)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쇠패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겔 24:24, 개역) 이와 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루면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겔 24:25, 개역) 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의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의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를 제하는 날
(겔 24:26, 개역) 곧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아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리지 아니하겠느냐
(겔 24:27, 개역)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 안에 사는 이 (92)

(빌 1:21, 개역)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나의 왕 내 노래 내 생명 또 내 기쁨
나의 힘 나의 검 내 평화 나의 주
내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내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나의 왕 내 노래 내 생명 또 내 기쁨
나의 힘 나의 검 내 평화 나의 주
내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찬미예수 2000 - No.462 약할 때 강함되시네 (주 나의 모든 것)

(고후 12: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괴로울 때 주님의 (1167) 찬미예수 2000 - No.1665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1. 괴로울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후  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2. 힘이 없고 네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누군가 널 위해 기도 (1306) 찬미예수 2000 - No.1868 누군가 널 위해

누군가 널 위해 기도 (1306)

1.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 널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조용히 그대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찬송가 343장 울어도 못하네, 새찬송가 544장〉

1.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2.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다시 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3. 참아도 못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4.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겔 24:15,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24:16, 새번역) "사람아, 나는 너의 눈에 들어 좋아하는 사람을 단번에 쳐죽여, 너에게서 빼앗아 가겠다. 그래도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아라.
(겔 24:17, 새번역) 너는 고요히 탄식하며, 죽은 사람을 두고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발에 신을 신어라. 또 수염을 가리지도 말고, 초상집 음식을 차려서 먹지도 말아라."
(겔 24:18, 새번역)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의 아내가 저녁에 죽었다. 나는 그 다음날 아침에 지시를 받은 대로 하였다.
(겔 24:19, 새번역)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들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겔 24:20, 새번역) 그래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겔 24:21, 새번역)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 권세의 자랑이요, 너희 눈에 들어 좋아하는 것이요, 너희가 마음으로 사모하는 내 성소를 이제 내가 더럽히겠다. 너희가 이 성읍에 남겨 둔 너희의 아들과 딸들도 칼에 쓰러질 것이다.
(겔 24:22, 새번역) 그래도 너희는 에스겔이 한 것과 똑같이 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 초상집 음식을 차려서 먹지도 못할 것이다.
(겔 24:23, 새번역) 너희는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발에 신을 신은 채로 그대로 있을 것이며, 탄식하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것이다. 오히려 너희는 너희 자신의 죄로 망하는 줄 알고 서로 마주 보며 탄식할 것이다.
(겔 24:24, 새번역) 에스겔이 이와 같이 너희에게 표징이 될 것이다. 너희도 그가 한 것과 똑같이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에야, 너희는 비로소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24:25, 새번역) "그러나 너 사람아, 내가 그들에게서, 그들의 요새, 그들의 기쁨과 영광과 그들의 눈에 들어 좋아하며 마음으로 사모하는 것을 빼앗고, 그들의 아들딸들을 데려가는 날,
(겔 24:26, 새번역) 그 날에는 탈출한 사람이 너에게 와서, 네 귀에 소식을 전하여 줄 것이다.
(겔 24:27, 새번역) 그 날에 네 입이 열려 그 탈출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시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표징이 되면,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24:1, 쉬운) <솥과 고기> 구 년 열째 달 십 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4:15, 쉬운) <에스겔의 아내가 죽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4:1, 현대어) [녹슨 솥 같은 예루살렘]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9년째 되던 해 10월 10일에 주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ㄱ. BC 589년 12월에 해당된다)
(겔 24:15, 현대어) [예루살렘 멸망의 징조]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개역)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개역)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15,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6, 개역)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7, 개역)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8, 개역)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개역)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개역)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1, 개역)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개역)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개역)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 10:24, 개역)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마 10:25, 개역)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0:26, 개역)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9, 개역)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30, 개역)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 10:31, 개역)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2,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먼저 소크라테스의 말 악법도 법이다처럼
물론 와전된 의미이기도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악처도 처다 아내다 이듯이

오늘 본문에 에스겔 인자의 아내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냥 아내 아닙니다
너 인자 에스겔의 눈에 기쁨은 아내의 죽음이다는 거죠
개콘이 다시 시작한지 몇 달이 되었는데
기쁨이 라는 역할을 하는 유치원 코너가 생각나네요

얼마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서 그 동안 우찌 참았는지 빵빵 터지더라구요

자 이렇게 사람은 기쁨이 없으면 바로 좌절하고 낙망하고 살아갈 이유를 상실하고
방황하고 갈길을 알지 못해서 주저 앉게 됩니다

그런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
그러나 조금만 희망과 기쁨이 있다면 온갖 깡다구로 살아남는 강한척하는 이 이중적인 인격의 인간에게 오늘 본문 성경은 그런 인간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슬픔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것들이 과연 절망 다운 절망이며 좌절 다운 좌절이냐 라는 그 껍데기를
그 바닥을 뜯고 뜯어보자 라는 식입니다

그래서 그냥 네 아내가 아니라 네 눈에 기쁨이 되는 아내
눈이란 지난 번에 얼굴에 대해서 언급했지요
모든 내부 몸 속의 벌어진 사건 곧 마음과 안보이는 속내의 것들이 얼굴에 다 나타나고
또 모든 외부에서 작동이 된 사건들이 그 얼굴에서 나타난다 라고
그 얼굴 중에서 얼굴이 바로 눈입니다
그러니 눈이 어두우면 그 얼굴과 곧 머리죠 온 몸의 대표성인 머리와 그 몸이 다 어둡다 라고 하셨지요

(마 6:23, 개역)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눅 11:34, 개역)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웃기게도 이 구절을 인간의 건강문제로 취급해서 자주 인용해 언급하던데
바로 그것이 자기 눈에 들보를 보지 못하는 눈이 어두운 소경 아니다 라고 하는 자들인거죠
눈이 밝은 자는 예수님 뿐이다 말이죠 모든 인간은 겸손한 적 없어요
겸손이 힘든게 아니라 단 하루도 단 1초도 교만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라는 거지요
그러니 겸손할려고 하지 말라는 거죠 다 속임수 밖에 안되는 겁니다
입으로는 찬송하고 겸손하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마음으로는 저주와 교만과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더라 말이죠

그냥 저는 어두운 눈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라고
고쳐 달라고 주님만 밝은 눈이신 빛인데 빛도 아닌 주제에 말이죠

그 증거가 십자가요 그 증거가 모든 인간의 역사 곧 교만한 얼굴입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보기 싫어서 아름다운 모양이 없다 라고 다들 얼굴을 돌려버렸으니 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23-15 이스라엘의 교만과 그 얼굴의 증거 (호 7, 8-16)

자 그 정도 인간은 개인 사적인 기쁨만 쫓고 살아갈려는 그 완악하고 교만함에
바로 복음은 기쁜소식은 그런 인간에게 오로지 슬픔만을 주는
진정한 복음 기쁨을 펼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두언약이지요 두 기쁨이의 충돌인 겁니다
인간의 거짓된 기쁨은 단한번도 그 얼굴에 슬픔이 나타날까봐 늘 완악한 수건으로 가립니다

바로 그 모습을 복음 기쁜소식은 거울로 비춰주면서 얼마나 슬프게 우시는지
거울로 비춰주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밝게 밝혀주고 있는데
우리는 얼마나 어두운 눈이였으면 그 거울을 그 거울로 비춰주시는 인자는 깨뜨려 죽이고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하고 기쁘니 이런 늙어 추한 천년묵은 마귀할멈처럼 무당의 언어만 선악의 언어만 법의 언어로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샛별 교만한 계명성이 되어서 모든 사람을 자기 노예로 삼고자 하는 행위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그냥 아내도 아닌 네 눈에 기쁨이 되는
너의 얼굴은 너에게 기쁨을 주는 아내로 가득찬
얼굴에 아내로만 가득찬 너의 기쁨이 되는 아내를 쳐서 죽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기쁨이 사라져 죽게 되면 자연히 슬피 울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히고
슬픔도 통제하시면서 슬퍼하지 말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울거나 슬퍼하지 말라 라고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거부반응이 자연히 나타날 수 밖에 없음을 아시면서도 밀어 붙이시는 이유는
기쁨도 사적인 개인적인 것도 아니요
슬픔도 사적인 개인적인 것도 아니기에

기뻐할 자격도 슬퍼할 자격도 없다 라는 거지요


결국 인간의 본래 창조 취지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사적인 기쁨 때문에 도리어 주님을 죽이는데 일관함에 있어서
사람을 창조함에 있어서 후회 하셨다 라는 겁니다

창조주의 피조물이다 라면
하나님의 자녀 라면

이는 내(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요 이는 내(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라는 거죠

그런데 아무도 그런자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게 된 겁니다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개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개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개역)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개역)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8, 개역)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10,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 ㉡시 14:1-3(칠십인역); 53:1-3(칠십인역); 전 7:20
(시 14: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개역)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개역)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53:1, 개역)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마할랏에 맞춘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2, 개역)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53:3, 개역) 각기 물러나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전 7:20, 개역)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롬 3:13, 새번역)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 ㉢시 5:9(칠십인역) ㉣시 140:3(칠십인역)
(시 5:9, 개역)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시 140:3, 개역)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셀라)

(롬 3:14, 새번역)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 ㉤시 10:7(칠십인역)
(시 10:7,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롬 3:15, 새번역)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 ㉥사 59:7; 8
(사 59:7, 개역)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사 59:8, 개역)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롬 3:18, 새번역)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 ㉦시 36:1
(시 36:1, 개역)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결국 피조물 곧 창조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라면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주의 성도 라면 적어도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구절에 모든 것이 다 함축되어 있지요
의인은 없나니

(롬 3:10,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 ㉡시 14:1-3(칠십인역); 53:1-3(칠십인역); 전 7:20
(시 14: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개역)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개역)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53:1, 개역)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마할랏에 맞춘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53:2, 개역)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53:3, 개역) 각기 물러나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전 7:20, 개역)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깊은 속마음을 깊게 깊게 알아야 하는데
뭐 그렇다 라고 아주 수준높은 학문적 깊이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인 얕게 대충 안다 라는 것은 엉뚱한 가짜 하나님을 만들어서
자기 기쁨을 위한 우상조각으로써의 자기를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 조작했다 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의 속마음을 아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의 기쁨 위주로 하나님도 자기 기쁨을 위해 끌어오겠다 라는 대상물로 삼는 식입니다
이것이 지난주에 로마서

22-038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죄를 죄 되게 하는 기능 (롬 7, 7-11)

에서 주님의 대상물로써의 인간이 아니라 주님의 숙제가 아니라
죄인을 죄 답게 만들어서 죄인을 부르러 오신 의사의 숙제기능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이 율법을 대상물로 삼아서 새신랑이 아닌 전남편 죽은 율법을 신랑으로 삼은 음녀 곧 자기 숙제로 인간 숙제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율법의 의 자기의 의를 쌓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교만한 자 곧 음녀이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를 강도의 소굴 음녀의 소굴로 만드는 겁니다 사탄의 회가 따로 없지요
자칭 하나님의 백성 곧 빛의 아들들 이라고 하는 저 유대인이나
오늘날 교회를 보십시오
독사의 자식이 따로 없지요

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 알려고 하지 않고서 하나님께 열심을 낼려고 할까요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건 인정욕구 투쟁입니다 그건 곧 살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이 인간의 역사에 한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인정받고자 함은 곧 살인할 수 밖에 없는
그럼 그 살인이 동생 아벨의 죽음으로 끝납니까?
결국 하나님도 죽여버리겠다 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 믿겠다 라는 자기 숙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함이거든요
내가 예수 너 인정해 줄게 너도 날 좀 인정해줘 하는 겁니다
이게 이미 유대인의 모든 역사에서 다 나타난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보세요 자기가 당한 히틀러 짓을 도리어 반대로 하잖아요
인간은 벗어날 수 없어요 한치 발걸음도 못 넘어서는 겁니다 이게 죄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지난 번 녹슨 가마솥 비유로써
살인자의 성읍 예루살렘아
오늘날로 치면 살인자의 소굴 교회야 라고 하시면서

지금 예루살렘을 파괴하실려고 하는데
오늘 본문 다음 에스겔 25장 주변 나라에 저주를 퍼부음 속에서

오늘 본문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선지자 에스겔 아내의 죽음을 언급하시고
그냥 아내의 죽음도 아닌 네 눈에 넣어오 안아플 기쁨이 되는 그런 아내의 죽음을
일부러 유발시키시면서
거기에다가 울어라 슬퍼해라가 아니라

울지마 슬퍼하지 마 라고 에스겔 개인의 사적인 생로병사 희노애락을 모조리 다 날려버리시는 겁니다 미치 욥처럼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숙제로써 의사의 숙제로써 욥을 하루 아침에 환자 죄인 소경으로 만들어서
희년 기쁜 소식을 부어주시고자 하실려고 고아 과부 나그네로 삼으시는 겁니다
건강한 자의 기쁨이 되는 자는 의사가 아니기에 의사가 필요가 없어요
더더더 건강한 자가 될려고 헬스트레이너가 필요하고 건강보조제를 찾겠지요
건강보조제가 다 효과 있는게 아니라 도리어 플라시보 효과만 누리는 거죠
즉 자기만족인 거지 의사가 만족하지 않아요

그래서 가짜 하나님 엘로힘을 쳐버리십니다
베드로가 자기 멋들어진 구원을 위해 물 위를 세 번 걸을수 있도록 해주는 그 가짜 예수를
진짜 예수님은 쳐서 물에 빠뜨려 죽이시는 겁니다
귀신을 쫓아내시는 거지요
다 죽여놓고서 다시 살리시고자 고아 과부 나그네
곧 창녀 환자 죄인을 만들어서
그들이 먼저 천국에 가도록 하시는
주님의 기쁨을 그 속마음을 알리시고자 하시는 겁니다

결국 선지자 에스겔은 인자로써
그 당시 예수님의 역할을 기능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대적인 마귀의 세력은 마치 예수님 당시에 모든 권력 모든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바리새인으로써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기능 이 두 언약의 충돌로써

바벨론 포로 잡혀 간지 이미 9년 10월 10일이 지난 시범에 와서
(제가 난독증이라 십월 십일 이라고 쓰여진 것을 십일일 이라고 두 개로 보이길래
자신있게 외쳤는데 땡 틀렸다 말이죠 처음에는 오독(비극) 나중에는 정독(희극)
틀림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라는 거죠)

(겔 24:1, 개역) 제구년 시월 십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왜 9년 10월 10일이 지난 시점에 와서 왜 예루살렘 멸망 사건을 보라 라고 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그것은 과거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시점이다는 거죠

바리새인은 이미 과거 문제 해결 했다
우상을 모조리 다 파괴하고 모든 행동들을 반대로 신앙실천으로 다 바꾸었다 라고 자부했다 말이죠 혹시나 부족하면 말씀만 하시라 지금 당장 고쳐서 행동하겠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그 마음 이면에는 이미 바닥에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독립운동이 밑바닥에 깔려서 이 저주를 감내하고 참고서 바르게 살기 운동으로 이 국난을 해결하겠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이것은 욥도 그랬고
다윗도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꺽으신 뼈를 살려보겠다 라는 마음이
곧 자기 기쁨이 자기 복음이 이미 바닥에 깔려있다는 겁니다

바로 그 기쁨을 다 날려 버리는 겁니다

주님의 복음 곧 사랑은
바로 그 바닥에 죽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녹이 끼여 있는 그 자체로써
녹도 해결도 못하고서
하나님과 자신의 뜻을 썩고 혼합시켜서 기쁨이 되겠다 라고 하는 그 모습인데
정작 내 속에 죄가 나를 사로 잡아 오는도다 라는
그 죄의 소원을 해결도 못한채로써
썩기만 하면 홉합 합체 일치 동일시 연합 시키면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얼렁뚱땅 넘어갈려는 바로 그 녹슨 찌기를
주님은 그냥 넘어가시지 않겠다 라고

이스라엘 멸망과 주변 나라의 멸망을 한 가운데
갑자기 생뚱맞게 선지자 아내의 죽음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의 기쁨의 구하였더면

각 번역마다 다 달리 단어를 채용했군요

(갈 1:10, 개역)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새번역)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 1:10, 공동)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합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합니까? 내가 사람들의 호감이나 사려는 줄 압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닐 것입니다.
(갈 1:10, 쉬운) 내가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갈 1:10, 킹흠정)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갈 1:10, 한글킹)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현대인) 내가 지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 1:10, 현대어)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달콤하고 교묘한 말로 여러분의 환심을 살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뿐입니다. 만일 내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서 환심이나 사려고 든다면 어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사람을 좋게 하면 자기 자신을 저주에 두겠다 라고 하겠습니까

(갈 1:8, 개역)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개역)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곧 사람을 좋게 하는 기쁨은 다른 복음이요 그 자체가 저주이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뒤 앞 이스라엘의 멸망과
뒤 주변 이방나라의 저주와
그 사이 그 간극 속에
선지자 에스겔 인자의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그 어떤 인간의 기쁨이 없는
오로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이 저주의 간극 이 절대죽음의 간극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넘어서보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 시간과 상관없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이방인의 저주 사이에
선지자 에스겔의 한 몸과 같은 아내의 죽음을 톤해서
곧 인자의 죽음을 통해서
이것은 미리 예수님의 죽음을 보여주는 거죠
그 인자의 죽음을 통해서
마귀가 저주 하기 전에
하나님의 저주를 미리 당함으로써
마치 벙어리로 만들어 다시는 비유를 외치지 못하겠끔 하겠다 라고
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백성들이 선지자를 묶고 몽둥이를 치기 전에
미리 주님께서 에스겔을 벙어리로 만들어 꽁꽁 묶어 버리시니
사탄의 가시가 심각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쁨은 곧 복음은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
알려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 곧 복된 것과 저주 자체가
인간에게서는 심각한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런 것들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진짜 죽음인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에수님이 받으신 저주를 보라 곧 십자가를 보라 라는 겁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그럴 것 같으면 죄가 뭔지 알아야 하고
자신이 왜 죄인인지를
율법이 왜 죄 아래에 가두고자 가입이 된 것인지(우리가 지금 로마서 이 부분을 하기에)
왜 하나님의 원수로 몰아가시면서
예루살렘을 멸망 시키시는지

살인자의 성읍으로써 부모 잡아 죽이고 자식 잡아 죽이는 인신제사 때문에?
가마 솥에 녹이 있어서? 아무리 녹을 제거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녹슨 가마의 죄악 때문에?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해서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것도 다른 복음입니다 이게 성화론자들의 이론 아닙니까 주장입니다
그러니 자기 하기 나름인 그러다 좀 부족하면 밧데리 보충 보조제 성령을 구하라 라는 식으로
실용주의 자기가 안 믿으면 아무 소용없다 라는 미국식 복음주의 아니냐 말이죠
그렇게 미국 복음주의를 욕하면서 유럽의 개혁주의를 따른다고 우겨도
다른 복음이기는 맹 마찬가지인 자기 숙제 하기 나름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뭐냐?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서 저주 받는게 아니라 지옥 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지옥간다는 거죠

결국 하나님 원망 해서 불뱀 물리는 저주는 당연한 것이고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지요 아니 나에게 부정적인 수갑이라고 해서 수갑이 죄냐 말이죠
전남편 율법아 죽으면 자유하다메? 수갑이 끊어지면 자유한 것 맞잖아요
수갑이 무용지물이 되니까 말이죠 그러니 기능으로 봐야지 존재로 왜 따지냐 말이죠

그럼 수갑이 끊어지고 율법이라는 전남편이 죽으면 자유하다고 해서
사적이고 개인적인 자유가 주어지느냐 아니지요

새남편과의 관계성이 있다 라는 의미에서 자유인 거죠
즉 여전히 얽매이는 종 노릇이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자유의 종이다 은혜의 왕 노릇에 의한 종노릇이다 라는

은혜의 왕 노릇을 모르면 자유는 여전히 모르고요
아무리 율법을 거부하더라도 자유는 없고요
이방인처럼 아무리 율법의 기능인 양심을 저버린다 라고 해서 자유는 없어요

사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어요 집단적인 판대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늘 남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판국인데 뭘 사적으로 따질려고 하느냐 라는 겁니다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따지겠다 라는 자체가 이미 저주 속에 놓여진 거죠
사람을 좋게 한다 곧 자기자신이지요 무당이 그렇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서는
자기자신에게는 그렇게 충성하다 보니 나라 말아먹고 있는 거죠
더 교만한 죄명이가 판을 뒤 엎어버리겠다 라고 조국을 살리겠다 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 조차도 사적인 명예를 위한 것이다 말이죠

모든게 복수심인거죠 인간은 복수심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겁니다
움직임 모든 것이 복수심인 겁니다 반작용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고 십자가를 알기 싫어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기 싫어서 나오는 사적인 기쁨인 복수심 곧 살인의지인 겁니다
다들 샛별의 자리에 앉아서 복수를 해야 곧 정치 마귀의 마지막 세 번째 시험처럼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심판 하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선지자의 아내를 죽이시는 겁니다
마치 사탄의 가시처럼 푸욱 찌르시는 겁니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에게 있으니까

저들 악한 무화과 나무처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나서지 말라 라는 겁니다
만약 참선지자 임에도 불구하고 나서면
어차피 나서도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심이니 나만 남았다 라고 우겨도
이게 복수심 아닙니까
지가 하나님의 원수인줄 모르고 왜 원수들이 활개칩니까 라고 따진다 힐문한다 말이죠
그래서 목이 곧은 백성을 낮추시고자
주님 자신이 세밀한 음성 곧 약함이 네 은혜로 족하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갈리는 겁니다
내 기쁨 내 뜻이 전혀 안 통하는 겁니다
예수님 조차도 나의 원대로 마옵소서 라고
자기의 기쁨이 하나도 안 통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나의 원함이 전혀 가미 되지 않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거죠
엘리야가 그렇게 주님에게 얻어터지고 알았듯이
에스겔도 그 원인 없는 결과를 경과해야 거치는 겁니다

그러니 그 어떤 원인도 없애버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하필 에스겔 아내의 죽음이냐 말이죠

여기서 네 눈의 기쁨인 아내 였다 라는 거지요

그리고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이라는 결과 곧 원인에 따른 결과도 없애버리시는 조치입니다

즉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 결과가 먼저 덮쳐졌기에
이 말씀이라는 결과를 성사 시키시고자
원인을 없애는
네 눈에 기뻐하는 아내를 쳐서 죽이시는 겁니다

이것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자기영광 자기기쁨을 근거로 원인으로 하는
말씀이 진행이 되는게 아니라

집단적이고 하나님의 뜻 곧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불뱀에게 물려야 하고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어야 하는

이 이스라엘의 운명 곧 죽이시기로 작정된 운명으로써
인자 되신 예수님이라는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서
이방인의 심판주를 증거하시는 겁니다

내가 살아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새주 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를 죽이시는
나 라는 원인을 죽이시는 겁니다

즉 구세주 이미 되심이라는 결과 때문에
나를 죽이시기로 하시는 겁니다

이미 하늘의 이스라엘이 자유하는 예루살렘 여자로써
죽은자 같으나 산자로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로써

세상의 시선에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증상물로 세상에 던져지는 겁니다

이 세상에 던져짐이 호명이듯이
인자야 라고 부르시는 것은
너의 운명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렇게 보여줘라
어떻게요
이번에는 그 어떤 경우라도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 결과 때문에
증상물로써 네 기뻐하는 아내의 쳐서 죽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거 비밀이요 비유입니다 무슨 소리인줄 아무도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아니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더더욱 기쁨이 아내인데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이것을 남들이 안 보는 골방에서 안 울고 안슬퍼하는
사적인 개인적인 눈물없음 슬픔없음이 아니라

대 놓고서 모든 이스라엘이 다 알도록
안 울고
모든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입소문이 다 퍼지도록
안 슬퍼한데? 미친거 아니니????

어떤 누구가 저를 자꾸 미친거 아니냐 라고 미쳤다 라고
온 동네 방네 퍼트리고 다니던데
자기 눈을 자기 스스로 찌르고 있는 누워서 침 뱉기만 하더라 말이죠

그래야 미끼를 덮썩 물꺼 아닙니까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나홍진 감독 영화 갑자기 제목이 생각 안나네용
랑종 태국 영화도 만들었는데
아 곡성이다
이 곡성을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라고 해 놓고서는
역겨워 하면서 말이죠
닭그네의 무당 짓에 아버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시대상인데 말이죠
자식들 다 죽여도 뭐 하나 반항할수 없는 울수도 슬퍼할수도 없는 이 무기력한 상황
기가막히고 기가막히는 거죠

닭그네 해결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하면 다 끝난줄 아느냐 말이죠
더한 무당이 권력을 잡았잖아요
그러니 이 놈의 민주당 놈들 또한 악귀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귀신을 물리치니까 더한 일곱 귀신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거 우리가 호세아를 통해서 지금 살펴보고 있지요

예후 장관이 바알제사장을 이스르엘 이라는 동네의 성전에 바알 제사장을 다 집어넣어서 한꺼번에 다 죽여버렸다 말이죠
그런데 더한 귀신이 들어간냥 북이스라엘의 왕조가 이렇게 7번 이나 쿠테타로 암살 당해서
왕권찬탈의 형식으로 국가역사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뭐 그래 따지면 안 그러는 나라가 어디있느냐
심지어 남유다도 마찬가지이니까
일곱 귀신 안 씌인 왕 대통령 그런 인간 아닌자가 어디있느냐 라는 거지요
이것이 개인의 기쁨 그리고 사람을 좋게하는 인간 역사의 답도 없는 의문의 반복된 역사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무한반복인 뫼비우스의 띠를 무슨 수로 끊고
고르데우스의 매듭을 무슨 수로 해결하랴?

내 기쁨을 포기하고 주님의 기쁨 곧 복음을 따르면 간단하다
곧 주님 쪽에서 신랑으로 찾아오시면
바리새인을 타 넘어서 오시면
이 의문의 반복인 율법이라는 전남편에서 자유케 된다

그러니 이 율법의 정죄가 아닌
그건 마치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 그 당연함을 받아들야야 함에 있어서
이제는 이 새신랑에 걸맞는 새로운 죄인인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죄인을 부르시는 의사에 기능에 걸맞는 환자로써

주님의 기쁨에 걸맞는 햅시바야 쁄랴야 로써
사적인 기쁨인 아내와 개인적인 자기 영광이 아닌
주님의 복음으로 인해서

인자 개인의 기쁨이 날라가도록 만드시는 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인 기쁜소식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대상물로 삼아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모든 방식이
마치 녹슨 찌기를 염두하지 않고서
좋은 뜻으로 다가가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라는 보편적진리(엘로힘)을 추구하는 것이다 말이죠
여기에 구체적 보편적 진리(전쟁의 신 여호와)는 바로 그 기쁨을 께뜨리시고자
욥을 은혜받은 자로 마귀에게 당당하게 내세우시는 겁니다
즉 은혜 받았다는 그 자체의 결과가 마귀가 사탄의 가시가
자녀의 죽음 아내의 죽음 심지어 병든 몸 그리고 빈 지갑으로
얼굴에 한 가득 슬픔이 덮쳐도
이것이 주신 이도 여호와요 취하실 이도 여호와인
치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환자가 되어야만 하는 왜? 의사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이 바로 네 은혜가 네게 죽하다 라는 의미인 겁니다
이 복음이라는 결과 때문에 주어지는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인 거죠
말이야 쉽지 이거 실제로 당하면
하나님 원망 뿐만 아니라 더한 것도 다 나오는 나약한 인간이다는 거죠
그래야 하나님의 원수인 자신의 아무것도 아님을 직시 하는 겁니다
똥 떵 어 리

그 심판받아야 마땅한 자리에서 심판주를 외치는 것이
원인 없는 결과이지

환자도 아닌 자리에서 의사를 외치는 것은 종교오락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것이 무당들인 거지요 무당읜 언어 곧 돈 만 밝힐 수 밖에요
모세의 자리를 더더욱 높여주거든요 그 저리에 자기가 앉았으니까 말이죠

자기가 원인이 되면 뭐든지 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뭘 해도 죄 밖에 없는데
소경 아니다 라고 눈이 밝아서 볼 줄 안다 라고 하니
눈이 어두운 온 몸이 다 어두운 겁니다

그렇게 눈이 밝고 용모가 아름답고 겸손하기 짝이 없고
젊은 나이에 관원 즉 지도자로써 경건의 모양으로 남들에게 존경까지 받는 
남들보다 우월한 환경속에 있다 라고 자부했던
그것도 청년 부자청년 늙은 부자도 아닌 
새파란 20대 청년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그 부자청년을
단 1초 만에 눈을 어둡게 만들고 온 몸이 어두운 자로 만들어 버리시는
이 심판주의 기쁨을 구하지 않는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는 자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를 한 순간에 저주했듯이

그럼 그 동안의 눈이 밝고 용모가 아름답고 겸손하고 경건의 모양이 있어서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라는 것은 뭐였습니까?
집단 전체 판대기에서는 똥떵어리 배설물이였다 라는 거죠
그러니 아무리 개인적인 사적인 기쁨을 추구했어도
주님 보시기에 썩은 냄새가 나는 배설물이였다 라는 것입니다

정작 심판 주 앞에서 화로다 나여 나는 배설물 똥입니다 제발 고쳐주세요 하는 것이
바로 의사의 기능이 딱 맞는 내 기뻐하는 자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호세아서에서 자꾸 음녀 만들고 창녀 만드시는 겁니다

이해가 안되잖아요 왜 깨끗한 신부를 안 찾고
더러운 죄인을 찾는지

그런데 의인이 있다 없다?
50
40
30

아니 소돔과 고모라 된다고 아무리 동성애반대시위를 해본들
정작 그 동성애반대시위하는 자를 소돔이라고 취급하신다 말이죠
왜? 역시나 자기 기쁨을 구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자꾸 숫자가 개인의 수가 줄어듭니다
기여이 끝까지 갑니다

20
10
5
3
2
1
그렇게 묻는 아브라함 개인도 의인이 아님을

0
빵 
아무도 없습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NOT ALL 비전체에 주님은 충성하셨다 말이죠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셨습니다
이 간극 이 공백 이 사이 간극에 말이죠

왜? 이미 결과가 복음이 떳기에
사적인 기쁨은 이전 것으로 다 지나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즉 새 것이라는 주님의 소유 앞에서
육의 소유들은
곧 내 것은 이제 없는 겁니다

이 없음에 충성하신다니깐요

이 공백에

그래서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산 자의 하나님이 덮쳤기에
모든 가적인 소유물 아내 가족 네 어미나 네 아비나 네 자식을
나 보다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라고 하시면서
뭐 화평 ~~~~ 화 ~~~ 평
에라이 검을 주러 왔다 라고

다들 사적인 개인 소유물을 확장 시키는 기쁨 곧 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아내도 자식도 다 날려버리시는 겁니다
심지어 그런 멋들어진 개인 구원을 바라는 엘리야 너 저신도

너가 너의 소유물이 아닌

주님의 소유물로써 탈탈탈 다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얼마나 노략이 빠른지

마할살렐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말이죠 속히 이루어진다 말이죠
스알야숩
임마누엘
다 불테우고 남은 그루터기만 돌아온다
이것이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지 않고 너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함께 동행하심이다

내가 동핼할려고 내가 주님을 대상물로 삼은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불과 심판과 동행하도록
다 불태우시는 분이 임마누엘이다 이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속마음까지 다 아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자입니다
언제든지 취하시고
즉 마치 나는 당연히 살아야 한다는 그 사고방식에
언제든지 죽임을 당해도 마땅한 자이구나를 심으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런 죽은 자를 다시 언제든지 살리시는 다시 싸매어 주시는 분이
누ㅜ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의 소유물로써 나를 다루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속내 바닥을 뜯어내시면서
주님의 마음을 심어
주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심이다는 거죠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해서
갑자기 안하던 성경공부와 스터디 모임에 참석해서
갑자기 성경지식을 천배 만배 늘렸다 라고 해도
그거 역시나 육의 소욕일 뿐입니다

그거 다 한 순간에 다 날리시는 분을 정작 알려고는 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사생아가 아니라 자녀인 자는 자 이렇게 아버지의 속마음을 아는 자
곧 징계 받는 자입니다

징계 받지 않는 자는 사생아 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버지가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자 되신 예수님을 징계받는다 라고 도리어 사생아 취급했고
자신들은 예수님 예수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깔려 죽었기에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아서 그렇지요 라고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는 티를 팍팍 내는지
그 저주 그 다음 차례 니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하여 울어라

왜? 니 소유는 니 기쁨을 모조리 다 날려버리시는 주님이시니까

그러니 정작 놀랍게도
사실상

살인자의 성읍 예루살렘 심판 이전에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인 에스겔 25장 주변 이방나라의 심판 그 이전에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먼저 징계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벌어지는
이 심판을 인자 에스겔은 징계를 받음으로써
저들의 허물을 거울로써 비춰주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자 라고

다들 미끼를 덮썩 무는 거지요

그러니 예수님의 등장은 곧 마귀와의 차이를 나타내듯이
내가 왜 하나님의 원수인가를 분명히 또렷히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이 십자가 앞에서
거리끼는 걸림돌을 제거하고자
오히려 더더더 경건의 모양과 나의 의를 소유한 것을 과시하고 인정받고자 할떼에

바로 그것이 소돔보다 더 한 가버나움의 죄악이였듯이

주님이 주신 것이나 자랑하라 말이죠
내가 한 숙제를 들이내밀 것이 아니라

그 자랑이 바로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인 십자가이기에
이 거리끼는 걸림돌을 무슨 수로 자랑하겠으며
소유로 삼겠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자랑할 수 없는 것을 자랑하는 겁니다
곧 내가 자랑하는 숙제를 할려고 하니까 내 소유가 안되는 미끄러지는
잡을려고 하면 줄꾸덕 미끄러지는 리마리오 빠다 기름 발린 이 십자가를 자랑할 수 없어요
부끄러워 했으면 했지

그런데 놀랍게도 십자가가 나를 자랑 합니다
드디어 십자가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어떻게? 십자가는 나를 드디어 죽였다 라고 막 신나게 자랑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기쁨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대상물로 삼을때는 억지 웃음과 억지 기쁨으로 연기를 해야하지만

정작 십자가가 나를 대상물로 삼을때는
월척 잡았다 라고 마구 마구 신나게 몽둥이로 때려서 기절시켜서
줄자로 길이재고 무게재고 월간 십자가 낙시에 사진찍어서 그 기쁨의 환희를 담아서 발행합니다

뭐 저는 단 한번도 낚시를 해 본적이 없어서 맞는지 안맞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예수님을 소유한게 아니라
주님아 나를 소유하는 방식이 오늘 본문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내 기쁨은 애초부터 없고
내 소유가 되어야 기쁨이 된다 라는 그 소유도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소유 뿐인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소유한 나
십자가가 나를 소유함으로써

십자가는 외쳐지는 겁니다

이것이 상대적인 두 언약으로써의 한 세트가 되는
다른 복음 곧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은 기적을 구하는데 있어서

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아닌 구원이 아닌
주님 자신이 자신의 기쁨 자신의 소유인 복음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자들이라고 나서는 구원자들로부터 구원을 구원하심으로써

저들과의 차이로써
주님의 소유물로써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
어리석고 미련하고 왜 지혜를 구하는 인공 지능 임계점 5년 안에
모든 인간을 다 초월하는 이제 심판의 권한이 인공지능에게 달려있는
그 따위 지혜를 자기 눈 찌르는 누워서 침뱉는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과 상대적인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

그리고 유대인 기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서는
이 십자가가 거리끼로 걸림돌이 되는
맞기는 맞는데 믿었다가는 같은 꼴 하나님의 저주 당할까봐
매 맞는 자여 될까봐 거부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정할수도 없는
소유물리 되기는커녕 목에 탁 걸려서 넘어가지도 않고 뱉을 수 없는
목에 갈린 가시
걸림돌 거리끼는 걸림돌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그 개인 구원 개인 기적 개인 기쁨의 소유에
그 육의 소욕에
성령의 소욕은 거꾸로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저들에게 걸림돌로써 삼킬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두들겨 패서 죽여 쓰레기 통에 시체를 버려도
다시 떼굴 떼굴 굴러와서 머릿돌이 되는
죽여도 소용없고
인정할려고 하니 그 동안 죽이고자 했던 그 완악한 마음이 들통당하기는 또 싫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이 십자가가 얼마나 미운지

그런데 그 미운 오리 새끼 십자가
나의 기쁨이요 나의 산 소망이 된다 라는

이 하나님의 속 마음을 누가 알려고 할까 

오로지 자기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만이

부르짖는 자입니다
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자기 죄를 깨닫는 자 만디 주님께 돌아오는
주님을 아는 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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