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3 녹슨 가마솥 바유 (겔 24, 1-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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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 중 제 구년 10월 십일 10일인데 난독증으로 오독해서 11일로 잘못 말함 오류임을 아시길 바랍니다)
21-073 살인자의 성읍아, 녹슨 가마솥아, 화 있을진저 (겔 24, 1-14)

(마 23:27,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음란죄 살인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에스겔 2019 2024. 2. 24. 06:32
21-072 너희 간음죄 살인죄로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에스겔 24, 1-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7쪽, 찬송가 205장 새 287 예수 앞에 나오면, 363장 새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새찬송가 287장〉

1.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집에 길이 살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에스겔 24, 1-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7쪽〉

(겔 24:1, 개역) 제구년 시월 십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4:2, 개역)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날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에 핍근하였느니라
(겔 24:3, 개역)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
(겔 24:4, 개역) 건 후에 물을 붓고 양떼에서 고른 것을 가지고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
(겔 24:5, 개역) [4절과 같음]
(겔 24:6,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 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일일이 꺼낼지어다
(겔 24:7, 개역) 그 피가 그 가운데 있음이여 피를 땅에 쏟아서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말간 반석 위에 두었도다
(겔 24:8, 개역) 내가 그 피를 말간 반석 위에 두고 덮이지 않게 함은 분노를 발하여 보응하려 함이로라
(겔 24:9,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화 있을진저 피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
(겔 24:10, 개역)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겔 24:11, 개역)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하게 하라
(겔 24:12, 개역)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곤비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겔 24:13, 개역)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정하게 하나 네가 정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정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겔 24:14,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룰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며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찬송가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새찬송가 337장〉

1.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3. 내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겔 24:1, 새번역)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4: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오늘 날짜, 바로 오늘 날짜를 기록하여 두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바로 오늘 예루살렘을 치기 시작하였다.
(겔 24:3, 새번역)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가마솥을 마련하여 걸고, 물을 부어라.
(겔 24:4, 새번역) 그 속에 고깃점들을 넣어라. 좋은 살코기와 넓적다리와 어깨를 골라서 모두 집어 넣고, 모든 뼈 가운데서 좋은 것들을 골라서 가득 넣어라.
(겔 24:5, 새번역) 양 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잡아 넣어라.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라. 그 고기를 잘 삶되 가마솥 안의 뼈까지 무르도록 삶아라.
(겔 24:6,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아, 속이 시뻘건 녹을 한 번도 씻지 않은 녹슨 가마솥아,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제비를 뽑을 것도 없이, 그 안에 든 고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어라.
(겔 24:7, 새번역) 죄 없는 사람을 죽인 피가 그 성읍 한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다. 피가 흙으로 덮이지도 못하였다. 그 피가 흙 위에 쏟아지지 않고 맨바위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겔 24:8, 새번역) 그 피가 흙에 덮이지 않게 맨바위에 쏟아 놓은 것은 바로 나다. 내가 분노를 일으켜 호되게 보복하려고 한 것이다.
(겔 24:9,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아,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장작 더미를 높이 쌓아 놓겠다.
(겔 24:10, 새번역)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지펴서, 고기를 푹 삶아서 녹이고, 고기 국물을 바싹 졸이고, 뼈는 태워 버려라.
(겔 24:11, 새번역) 그 빈 가마솥을 숯불 위에 올려 놓아, 가마솥을 뜨거워지게 하며, 가마솥의 놋쇠를 달궈서, 가마솥 안의 더러운 것을 녹이며, 가마솥의 녹을 태워 없애라.
(겔 24:12, 새번역) ㉠이 성읍이 온갖 고생으로 지쳤으나, 그 많은 녹이 가마솥에서 없어지지 않으며, 불로 아무리 달구어도 녹이 없어지지 않는다. / ㉠12절의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불확실함
(겔 24:13, 새번역) 너의 더러운 죄 가운데는 음행이 있다. 음행으로 더러워진 너의 몸을 내가 깨끗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가 너 자신의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려고 하지 않았으니, 내가 너에게 분노를 다 쏟을 때까지는, 네가 다시 깨끗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
(겔 24:14, 새번역) 나 주가 말하였으니,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가 그대로 하겠다. 내가 돌이키지 않으며, 아끼지도 않으며, 뉘우치지도 않겠다. 너의 모든 행실과 너의 모든 행위대로 네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먼저 2절에 핍근 이라는 처음보는 단어가 나오는데 매우 근접했다 라는 뜻입니다
핍절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데 매우 간절하다 또는 매우 절단 단절 끊어진 상태라 아무것도 없다 라는 뜻인데 결핍도 생각 나구요

자 이렇게 우상숭배의 이방나라가 적군으로써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애워싸고 있는데
예루살렘을 칠려고 매우 근접 곧 핍근하였다 라는 겁니다 매우 가까이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작 성전이 있다 라는 이유로
성전 곧 오늘날 교회죠 교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애국가 가서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고
이 얼마나 애국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애심 애신 신앙이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이런 마음 자세가 바로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주장과 똑같이
바로 이런 경건의 모습을 하나님의 저주에 해당 된다 라고 보시는 겁니다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은 서로의 소욕을 방해하는 정반대의 두 언약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오늘 말씀에 먼저 [인자야] 라고 누구 누구 아들아 라고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면서
저들에게 녹슨 가마 비유를 들려줘라 라고 하시지만

인자야 라는 이 말 자체가 비유이고
그런 비유에게 비유야 저들에게 비유를 말하라 라고 하시면
이것은 더더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비유로 말 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반드시 인자 곧 무시받는 어린아이 취급받는 자로써
그런 어린아이에게 녹슨 가마비유까지 증거하라고 하시니
더더욱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즉 한 번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즉 두 번
곧 이중반복의 공명으로써
이중단절인 절대단절의 이중반복으로써

듣고, 비유를 듣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저히 못 깨닫고 못 보도록 하시기 위한
혹시나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싶어서 걱정하시는 마음으로써
이 가마 솥 비유를 하시는 겁니다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사 7:10, 쉬운)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 7:11, 쉬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이 모든 일이 일어날 표적을 구하여라. 저 깊은 죽음의 세계에서 저 높은 하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하여라.”
(사 7:12, 쉬운) 아하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표적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사 7:10, 현대어) [둘째 경고-임마누엘의 징조]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께서 아하스왕에게 이런 말씀을 보내셨다.

인자 곧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 라고 이사야 라는 선지자(인자)를 통해서 외쳐도
반드시 아하스 왕은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반드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긍정의 신학을 추구하는
남유다이면서도 북이스라엘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식으로
반드시 대응하겠끔 되어 있는 겁니다
거짓선지자의 사고방식인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해석하듯이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라고 보는 식인 거죠
아니 자기 살아있음 생존이 우선시가 된 무당의 언어만 추구하다가
비유의 언약의 말씀
더더군다가 무능한 아기 젖먹이 라는 
그것도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
이사야의 아들이 아닌
인자의 인자

분명히 목수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기능은 하나님의 아들 세상 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니
도대체 누구 아들인지를 알수 없는 육체로는 포착할 수 없는
해석불가의 비존재
족보가 없다 라는 거죠 육체의 아버지가 없는데 우찌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느냐 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내려온 인자 라는 겁니다
이 기능만 이 언약만 이 뜨인돌만 이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돌만 구원하시는 것이
성경말씀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상대적인 인간구원이 왜 안되는지에 대한
비언약이 한 세트로 구성이 되는 겁니다
두언약처럼 말이죠 땅의 계집종 하갈과 이스마엘 언약 이라는 비언약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과 이삭 언약이 한 세트로 구성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지난 주에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이라고 했지요
율법이라는 껍데기 존재와 자신의 좀재를 합칠려고 혼합물로 썩을려고 할때에
옳치 요놈 올무에 잘 걸렸다 라고 율법의 기능이 발휘가 되는 겁니다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모세의 자리에 앉듯
하늘 보좌를 비워두니까 그 자리에 앉고 싶어서 침을 질질 흘릴 수밖에 없는
올무에 걸려 든 것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우리는 꺄안고 자폭합니다
논개처럼 왜군 적장을 껴 앉고 빠져 죽고자 하는
율법처럼 무조건 이유 없이 죄인 죄 아래 가두고자
율법이 가입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 어떤 것도 연걸점이 없어야 하는데 있어서
모조리 다 차단 시키는

오로지 주님 쪽에서 직접 손수 마련하신
화목제물만 남기고자 모든 접촉 시도를 차단하시는 겁니다

자 이런 결과가 덥칠때에 이런 비유가 덮칠때에
우리는 반드시 아니 본능적으로 반대로 생각히겠끔 되어 있습니다
거짓선지자의 주장처럼 평강이다 평강이다 설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 망하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망하게 되면 하나님 본인이 망하게 되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라고 말이죠

바로 이런 해석이 모든 사람을 장악하겠끔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메시아로써 왔을때에
마귀가 유대인을 장악했던 그 세가지 내용이 예수님을 세 번 시험하는 내용을 통해서 나오게 됩니다

설마 경제 문제 해결 못하는 무능한 메시아 이겠느냐

설마 종교문제 구원 문제 해결 못하는 메시아 그럴 것 같으면 말라꼬 메시아가 오겠느냐 라고 말이죠
거룩한 성전에서 떨어져 죽게 될떼 누가 구원하시겠느냐 시편 911 소방차 ㅋㅋㅋ 112 간첩신고
시편 91편 11절 12절 이렇게 외웠는데 또 까먹네요

(시 91:11,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라고 마귀가 시편 구절을 인용하면서 까지 말씀에 기록된 대로 유혹을 합니다

그리거 마지막 정치적인 문제 곧 왕의 등장으로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를 이루는
평화를 달성하라 라고 설마 이런 왕이 되어달라 이런 원수 문제 해결 못하는
설마 평강을 평화를 주러오지 못하는 메시아는 아니겠지 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그런 마귀의 세가지 시험의 내용을 담은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으로써
성전을 보고 해석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음으로써
성전이 있음으로써 화평이 온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아무리 원수가 이스라엘을 에워싸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우리가 고린도후서 4장을 외우듯이

성전만 있으면 마치 성전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는
뜨뜻한 온천수 목욕탕 안의 성도인 목자를 따르는 양처럼 
가마 솥 안의 양고기들이 따뜻한 목욕탕 물처럼 보호받는 식으로 해석하는
그 희망을 가진다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 속에 놓여진 모습으로써
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개역)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개역)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 인 것처럼
이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가 마치 가마 솥에 자식 끓여먹고
부모 끓여먹은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끓여먹은 바로 이런 죄악의 도시가

녹이 쓴 얼마나 녹이 쓸었으면 딱 달라붙어서 그 어떤 세제를 사용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살인자의 도시가 예루살렘이라고

우상숭배의 도시이기 때문에 자연히 인신제사는 따라올수 밖에요
마치 오늘날 교회나 성당이 돈을 우상숭배하듯이 똑같습니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 가자지구와의 전쟁 또한 똑같죠
살인자의 도시 답잖아요

이스라엘 사람인데 20대 때부터 인권운동을 하던 20년 가까이 운동을 해 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막상 자기 집안 식구가 인질로 잡혀가게 되니까
20년 가까이 인권 운동이고 나발이고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모든 운동은 아무리 좋은 이름을 같다붙여도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해도
환경살리기 운동 뭐 동물 안 잡아먹고 식물로만 양식으로 하는 채식주의운동을 해도
그 자체가 이미 복수심 곧 살인의지가 깔려 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이미 예수 믿기 운동 자체가 예수를 살인하겠다 라는 것이 이미 깔려 있으니 말이죠

인간의 그 어떤 믿음도 종교가 다 달라도
그 신앙 그 믿음 자체가 이미 살인의지 곧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내가 신 당신을 이렇게 믿어 줬는데 축복 안 주기만해 봐라 당장 복수하겠다 라는 것이
이미 깔려 있다는 거죠 믿겠다 라는 자체가 이미 복수심 살인의지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을 향한 가마 솥 비유에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뗄려고 녹슬어 있는 떼를 밀려도 해도 떨어지지 씻겨지지 않는
그 죄악의 녹슨 모습이
예루살렘의 살인의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왜? 자기는 망하면 안된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것이
인신제사로 부모 잡아먹고 자식잡아먹는 그 우상숭배
왜 우상숭배하겠습니까
바벨론여자들이 잘 보여줬죠 남자도 맹 똑같다 라는 겁니다

내 자식은 고아 안되리라
나는 과부 안되리라
내 남편은 나그네 안되리라

이거 모든 엄마들의 마음 아니냐 말이죠

마귀의 세가지 시험 곧 메시아 신앙
내 자식 고아 안되겠끔 경제 기업 문제 제대로 기업이 재산이 물려받을수 있도록 해 달라
곧 돌을 떡덩이 되게 해 달라

나는 과부 안되리라 이거 종교 곧 사랑문제죠 이쁨받는 여자가 되게 해달라
여자란 사랑을 먹고 살 거든요 사랑을 주는 낭군이 없는 과부와 같은 여자는
죽은자 취급받는 죽은자와 마찬가지인 거죠 무슨 희망으로 살겠냐 말이죠
이게 바로 종교에서 바라는 기적인 겁니다 구원인 거죠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들이 두 손으로 발이 상하지 않게
딱 받쳐서 내려오겠끔 할 것이다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오늘 가마비유랑 똑같죠 거룩한 성전에서 안 죽게 해 달라고
그러나 정작 반대로 해석한 거죠
요나의 표적 곧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마귀의 시험 곧 정치 문제죠 남자는 무조건 이여개 하는
승리나 성공에 대한 강박증으로 평생을 사니까 말이죠

내 남편은 나그네가 아닌 그 반대로 나그네 마저도 떠돌이 백수 노숙자 마저도
너끈히 일으킬수 있는 왕이 되게 해 달라
화평을 주는 자가 되게 해 달라

내 아들은 왕의 유전자를 가진 공무원의 아들이다 라고 한 것처럼 말이죠 ㅋㅋㅋㅋㅋ
우리 일반 평민들은 웃끼는 코메디 이야기 인 것처럼 느끼겠지만
그들은 진짜 진짜 심각한 겁니다

정치 곧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이 정치 문제는
한번 권력을 맛 본 자라면
모세의 자리에 앉아본 자라면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자리 샛별의 자리에 앉을수 있을까 라고
절대로 만족 할 수 없는 빵구멍난 장독대처럼
바닥 없는 지옥을 품고 살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물을 퍼 넣어도 바로 바로 새어버리는
그러니 이건 뭐 밤새도록 울부짖는 배고파 우는 하이에나인 거죠
배고파서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부를수가 없어요

남을 7번 용서했으면 자기 보다 못한 6번 용서한자를 깔보는 갑질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선거철이 되다 보니 더 잘 보이죠
두 진영 민주당이나 딴나라당이나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치는 사기를 치는 겁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원수 됨을 스스로 감추는 희망의 메시지를 외치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진노 속에 놓여진 녹슨 가마솥 비유로써 증거되는 거지요

그러니 이것은 깨닫고 뉘우치고 하는 그런 단계를 이미 넘어서버린
요단강을 건너가버린 저세상 텐션이라는 표현처럼
미쳤다 라고들 하지요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화평을 주러 왔다 라고 보는데 있어서
종교 보다 더한 마약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죠

바로 이런 하나님의 진노 조차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죠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이다 라고 했듯이
절대로 원수 일리가 없도록
인간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게 형성했는데
원수지간 안되도록 말이죠

우리가 남이가 ? 가족 아이가 라고
가족의 관계로 말이죠
가족이 그야말로 희망의 최후보루 아닙니까
가족이 무너지면 이건 뭐 끝나는 거죠
그러니 가족 만큼은 원수지간이 될 수가 없는 거죠

어 가만히 보니 우리가 남이가 라는 문구가 갑자기 눈에 보인 것이
버스 차 문 바깥에 붙은 광고문구로 인해서 갑자기 흔해빠진 말로 변하더라구요
그게 한 20년 전 쯤인데
정작 사건은 그 10년 전 더부터 
초원복국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가 남이가 라고 정치문구가 되었더군요
검색을 하다 보니 이 사건에 대해서 나오네요

https://youtu.be/MxgGSu5L-6Y
https://youtu.be/s75PQX9KkM0

그때는 워낙 관심이 없었을 때라 눈에 안 보였는데
버스에 광고판이 붙은때 부터는 눈만 돌리면 다 보이게 되니
세뇌가 안 될 수가 없을 정도로 흔한 유행어가 되더군요

우리가 남이가? 가족 아니냐 라는 것이 도리어 원수지간인 것을 티내는 거죠
이런 웬수가 없을 정도로 웬수 중에 웬수라고 ㅋㅋㅋㅋㅋ

나는 뭘 해도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는 해석 외에는 그 어떤 해석도 붘일수 없도록 하신 것인데
바로 그것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이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뭘 같다 줘도 반드시 희망을 가지고야 말겠다 라고
도리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피할 길로써 해석하는 식으로써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니까

이 십자가에 근접 할려고 
끝까지 따라 가겠습니다 
장 지지 겠습니다
까짓꺼 함께 십자가에 죽겠습니다 라고
간극을 좁힐려고 하는데

간극을 좁힐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욱 밀치는 것이다 말이죠

더더더 간극이 멀어지는 겁니다


바로 그렇게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하나님의 원수 됨의 확정이 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그 고아 과부 나그네
흑암의 백성인 눈먼 소경 
사망에 주저 앉은 앉은뱅이
사망의 왕노릇에 포로된 갇힌 자
이 처음자리
이 절대죽음 절대저주의 자리에서만
희망 따위는 없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만 기쁜소식 희년이 들려오는 겁니다
그러니 모조리 단절이 안되면 기쁜소식은 없는 거죠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사 9:1, 개역)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2, 개역)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눅 4:13, 개역)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눅 4:14, 개역)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5, 개역)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눅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61:4, 개역)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사 61:5, 개역)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사 61:6, 개역)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사 61:7, 개역)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사 61:8, 개역)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사 61:9, 개역)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사 61:10, 개역)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 61:11, 개역)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결국 원인 없는 결과로써
이 결과라는 기능을 구원하시고자 함인데
의사의 기능 말이죠

우리는 자꾸 원인을 구원하고자
나 라는 원인
왜? 나는 살아야만 하고
나는 무조건 이유 없이 구원받아야 하니까
저 녹슨 가마솥 비유 조차도 내 구원용으로 해석하는
원인을 자꾸 조건으로 갖추고자
구원하고자 하니까
정작 결과가 올줄 알았는데
결과가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없어요
원인이 없어야 결과가 있는데
그것은 나 라는 몸을 원인으로 둘 수밖에 없는 본능 때문에
내 몸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이 원인 없는 결과
즉 결과가 정답이 찾아 헤매는 잃어버린 양
곧 문제아 탕자 환자 죄인
의사가 찾아내는 환자 탕자 문제아가 되기 싫어하고

이스라엘 자체가 이스라엘이라는 처음자리를 발로 차 버리고
고아 과부 나그네를 핍박하고
예루살렘이 살인자의 도시 우상숭배의 도시가 되듯이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
말씀의 골짜기 부활의 골짜기 예루살렘이 음부 곧 지옥인 살인자의 성읍이 된 거지요

낮에는 제사장을 나 여호와가 반드시 죽이겠다
밤에는 선지자를 나 여호와가 반드시 죽이시겠다
이스라엘을 나 여호와가 반드시 죽이겠다
왜? 기업이 없는 고아가 고아를 죽이는
기업이 없는 제사장이 제사장을 죽이기 때문에
왜? 나그네가 나그네를 죽이는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기 때문에
왜? 이스라엘 어미가 이스라엘 어미를 죽이는
과부가 과부를 죽이기 때문에

제사장과 선지자와 너희 어미 이스라엘을 죽여라 (호 4, 1- 5)
호세아 2023 2023. 10. 28. 20:17
23-07 제사장(고아를 핍박하는), 선지자(나그네), 너희 어미(과부, 창녀 이스라엘)의 죽음 (호 4, 1- 5)

https://crosslamb.tistory.com/2629


곧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는 자들이기에 말이죠

왜 그들은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을 수 밖에 없을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안 그러는 사람이 없다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의 생존이 우선시가 되기 때문에
안 등쳐먹을 수가 없는 겁니다

구원도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구원이 먼저이고
내 축복이 먼저인 거죠

고아 곧 자식 문제에 있어서 남의 자식은 지옥가든 말든 상관 없고
내 자식 만큼은 구원되게 해 달라 라고
신앙과외 선생으로 노아 다니엘 욥을 교사로 앉혀 놨더니만
녹슨 불가마솥 비유나 가르치고 있으니
곧 심판을 가르치고 있으니
아니 부활 되게 해 달라고 했지 언제 심판을 가르치고 있냐 말이죠

누가 오늘 교회에 갈때에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자 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오로지 나의 구원 내 가정 구원이라는
소유욕을 더 키울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오늘 예루살렘 성전을 불가마 비유로 든 것은
그야말로 신약의 성전에 두 사람 곧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와 딱 맞다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불가마에서 화평에 맞는 조건으로써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 했구요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았습니다를 외치는 겁니다
성전에서 말이죠
즉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는 주장들이다는 거죠

그러나 세리는 머리를 들지 못하고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울고 있는 겁니다

누가 불가마비유에 딱 맞는 자입니다
누가 성전의 기능에 딱 맞는 자 입니까
누가 안식의 주인에 딱 맞는 자 입니까

안식일 지키는 자 입니까?
교회 충성 봉사 하는 자 입니까 곧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 입니까?

누가 성전에 금을 바쳐서 기도가 맹세가 잘 이루어진다 라고 속담으로까지 퍼트렸습니까?
성전의 기능은 불쌍히 여겨 달라는 
하나님의 원수됨에서 부정한 입술을 제거하는 기능을
완전히 개무시하고서
엉뚱한 속담으로 보편적진리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속담이냐? VS 비유냐?
무당의 언어냐? VS 십자가의 죽음의 약속 언어냐?
우리는 당연히 바알의 점괘를 안 믿는다 라고 합니다
그건 교회 안 다니는 자도 다 그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바알 점괘 안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는 그 모습은 절대로 때려죽어도 안 바뀐다 라는 점입니다

보세요 성전에서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토색 안 했구요 라고
했구요 했구요 했구요
즉 접근을 시도하는 음녀의 짓을 멈춘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알고서 메국노 세리는 성전에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는 겁니다
그걸 알고서 말이죠 멈춘적이 없는 죄인임을 알고서 말이죠

도리어 거봐 그러니까 너는 지옥가야 해 나는 의로움을 행했잖아 라고
어라 또 미끼를 덮썩 무네 말이죠

그러니 바리새인은 여전히 접속을 시도하는 겁니다
내 쪽에서 구원의 조건을 갖추는 행동을 여전히 시도한다는 점이다 말이죠
이게 바로 양고기가 담겨진 냄비 아니 가마솥 속에 있는 녹슨, 
찌기라는 혼합물의 속성이다는 거죠
절대로 벗겨낼수 없는 철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녹 이다는 겁니다

내 속 사람이 하나님의 법늘 원하나 동시에 내 속의 죄가 이겨버려서 죄의 법 아래도 팔아버리는
죄에 사로잡힌바 되더라 말이죠
가마솥에 녹슨 찌끼가 있더라 말이죠 그 녹슨 것이 나의 본래 속성인 하나님의 원수된 모습이다 라고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비로소 성전을 수술칼로 심판의 불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했다 라고 제단 숯불의 기능 곧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에 안 타죽을려고
천사가 여섯날개로 가리워야 할 만큼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비로소 성전의 취지, 수술칼의 걸맞는 환자, 불가마에 걸맞는 녹슨 찌끼로써
이스라엘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일어남을 말이죠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4, 개역)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5, 개역)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 7:16,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개역)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니 하나님도 안 믿는
그것도 우상의 민족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의 손에서
우상숭배자 바벨론 왕으로부터 에워쌈을 당하는 죽음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를 재현하는 듯한 제 2의 출애굽처럼
주님은 이 애굽왕으로부터 영광받으시는 겁니다
애굽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말이죠

구원자의 구원기능 수술칼의 기능인 의사의 기능을 펼치겠끔 동원이 되니까 말이죠
그래서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했듯이

내 종 느부갓네살 왕아 라고 종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겁니다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말이죠

메국노 세리의 자리에서 부르짖는자 만들도록 말이죠 이것이 주의 이름의 증상물인데

가짜 이름을 부르짖는 임마누엘 아기는 안 부를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는
그런 아하스 왕과 대조를 하듯이 바리새인의 기도와 대조로써
그 차이를 벌려놓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에서의 기도 라는 부르짖음이 아니라

배불러 터진 종교오락의 외침을 바리세인은 십일조 했다 라고
자기 쪽에서 접촉한 시도의 성과물을 내어놓는 겁니다
이게 자기 의를 쌓아서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모습인데
이게 바로 오늘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정통으로 진노의 대상인줄도 모르고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나온 자기 의 쌓기 이다는 거죠
왜? 동시성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게 되니까
즉 탕자를 용서하신 하나님 쪽에서의 용서인 십자가의 죽음 곧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에 반발하고 복종을 아예 할 수 없게 되니까 말이죠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쪽에서 내밀 것이 있어서 내밀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것을 거부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까

어딜 감히 똥떵어리 배설물을 들이내밀어
그카면 소는 누가 키우냐 즉 화목제물은 수술칼은 누가 받냐 말이죠
아무도 못 받는 겁니다

다들 죄인 아니다 환자 아니다 라고 하니 말이죠
그카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찾으시러 왔다는 것에
저요 저요 저 환자입니다 라고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이미 속담에 이미 보편적 진리에
탕자 같은 놈을 절대로 생산해 낼수 없는 종교체제
성전체제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정작 성전 가마 라는 주님이 아껴둔 이름
너희들이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기념 이름이 담긴 성전의 기능인
불가마솥 이름의 기능은
바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사람의 손으로 체제를 정비해 둔 성전은 불태워 버리고
성전을 헐어버리고
삼일 만에 다시 지은 성전으로써
불가마숱 기능으로써
걸맞는 죄인 중의 괴수로써

그 어떤 접촉점도 시도할 수 없는
삼일의 간극 단절
절대차단을 통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로써

철천지 원수 매구노 세리의 자리로써
임마누엘을 구하게끔
주의 이름을 부르짖도록 만드시겟끔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그 어떤 인간의 시도
간극 좁히기가 다 무용지물이 되도록
주님 쪽에서 이미 다 완성해 버림으로써
이 새언약만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불가마비유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 속의 속내를 들통당하지 않고서
구원받고자 하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를
전혀 모르고서 지옥가게 되는 셈입니다

불가마솥 비유야 말로
나의 우상숭배라는 하나님의 원수 됨을 재대로 까발리는 수술칼로써
그 앞에서 제발 고쳐달라고 우는 자
상한 심령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제 선지자 인자 자체가 비유덩어리로써 저들에게 던져집니다
우리에게 던져집니다
우리는 그 인자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속성이 들통나야만 하는 겁니다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우찌할꼬 라는
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통해서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인 십자가의 죽음이 있다 라는 것에 비로소 눈 뜨게 하십니다

매국노 세리는 성전에서 이 화목제물을 봤습니다
주의 이름을 봤습니다

내 때문에 죽으셔야만 했던 그 이름을
그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그 앞에서 그 참성전 앞에서
우리의 입은 잠잠케 됩니다

뭐 십일조 했다는 둥
이레에 두 번 금식햇다는 둥
이거 다 우상숭배였고
이거 다 배설물임을
그 똥떵어리 알아 달라고 했던 짓이
얼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성령은 우리를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늘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지혜를 펼치시는
이 십자가의 죽음만 밀어붙이심 앞에서

우리는 불도져로 밀림 당하듯이
부끄 부끄 당하는 겁니다

부끄러워서 그 앞에서 함구 잠잠케 됩니다

비로소 다리미질에 평평하게 당하는
첩경을 평탄케 하시는

니 잘 났니 내 잘 났닌 라는 그 입이 다물게 됩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줄도 모른채로
벌씨 이미 소돔과 고모라로써 지옥으로써
지옥 짓만 하다가 갈 뿐입니다

울리는 꽹과리만 들리는 지옥처럼
우리의 입은 쉬지도 않고 꽹꽹꽹 울려댈 뿐입니다

우리의 입을 잠잠케 하시는
할 말 없게 만드시는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매국노 세리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이 화목제물되신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할 말 없게 만드신 그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않으심 앞에서

(사 53:7, 개역)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마 8:17, 새번역)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는 몸소 우리의 병약함을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 / ㉥사 53:4
(눅 22:37,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 ㉬사 53:12
(요 12:38, 새번역)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한 말이 이루어졌다.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 ㉨사 53:1(칠십인역)
(행 8:32, 새번역)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 ㉧사 53:7; 8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잠잠히 사랑을 완성 하셨습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서 율법과 이혼하고
하나님의 의와 결혼을 하게 된
새신랑의 새신부로써 말이죠

모든 언약 곧 약속을 다 이루었다 라는 그 거룩과의 결혼으로 인해 말이죠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요 19:30, 개역)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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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5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이 증거 (돌아오지 않음-샛별) (호 7, 8-16)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음 즉 힘을 포기 못함 안 돌아옴 (얼굴과 얼굴을 마주안 봄, 원수임을 아는 자 만이 돌아옴 얼굴을 봄, 광야 목이 곧은 백성. 눈도장 보일려고 옴, 외세 곧 믿는 구석이 있음 힘 힘 힘 불의의 병기)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 (호 7, 1- 3)
호세아 2023 2024. 2. 29. 14:34
23-14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 (호 7, 1- 3)

〈호세아 7, 8-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3쪽, 찬송가 324장 새 534장 주님 찾아 오셨네, 가스펠; 왜 날 사랑하나〉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 224) 새찬송가 243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찬 231) 새찬송가 240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 541) 새찬송가 489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찬 542) 새찬송가 490장 
괴로울 때 주님의 (1167)
주님 찾아 오셨네 (찬 324) 새찬송가 534장 3.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 495) 새찬송가 438장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21)
목마른 사슴 (45)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 219) 새찬송가 540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찬 363) 새찬송가 337장 
왜 날 사랑하나 (790)
주같이 겸손한 친구있나 아니요 없지요 (1055)
예수같이 겸손한 친구는 한 사람도 없네 (251)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977)
주님의 솜씨 (490) 하늘을 바라보라 드넓은 저바다도 온세상 지으신 주님의 솜씨라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570)
주의 긍휼로 이땅 고치소서 (30)
나 행한것 죄 뿐이니 (찬 332) 새찬송가 274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찬 331) 새찬송가 273장
세상 권세 멸하시려 주님 이 땅에 나타나시었네 (667)


〈찬송가 324장 주님 찾아 오셨네, 새찬송가 534장〉 

1.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2.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인자높이 들렸네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세 우리 구주 모시고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3.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 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4.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 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 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호세아 7, 8-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3쪽〉 

(호 7:8, 개역)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호 7:9, 개역)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호 7:10, 개역)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호 7:11, 개역)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호 7:12, 개역)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 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호 7:13, 개역) 화 있을진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
(호 7:14, 개역)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호 7:15, 개역)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호 7:16, 개역)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가스펠; 왜 날 사랑하나 (790) 〉

1. 사랑이 구주를 죽게 했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이 괄호 안의 가사가 오히려 전체랑 더 희미함)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2.  그 손과 발 날위해 찢기셨네, 왜 날 사랑하나
   고난을 당하여 구원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3. 내 대신 고통을 당하셨네, 왜 날 사랑하나
   죄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호 7:8, 현대어) [외세를 믿으니 망한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며 이리저리 헴에고 다니니, 그들은 뒤집지 않고 굽다가 한쪽이 다 타버린 떡처럼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호 7:9, 현대어) 그들은 강대국에게 힘을 다 빼앗겼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백발이 듬성해도 늙고 허약해진 것을 알지 못한다.
(호 7:10, 현대어) 외세에만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교만이 제 자신의 죄를 쌓는 근원인데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지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호 7:11, 현대어) 에브라임은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비둘기같이 어리석어서 애굽을 향해 도움을 부르짖는가 하면, 또 금방 앗수르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호 7:12, 현대어) 그러나 그들이 헤매고 다닐 때에 내가 그 위로 그물을 던져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겠다. 내가 공회에서 이미 말한 대로 에브라임이 저지른 모든 악행대로 벌을 내리겠다.
(호 7:13, 현대어) [배반과 형벌] 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도망하였으니 반드시 그 벌을 받을 것이다. 나를 배반하고 떠나갔으니 모조리 패망할 것이다. 내가 다시 구원해 주리라는 망상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거짓말만 늘어놓고 나의 진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호 7:14, 현대어) 그들은 근심으로 잠들지 못하면서도 나의 도움을 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상들을 찾아가 곡식과 과일이 풍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
(호 7:15, 현대어) 내가 그들을 강하게 키워 주었더니 이제 나를 해칠 궁리나 하고 있다.
(호 7:16, 현대어) 그들은 사방을 기웃거리고 다니면서도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께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한번도 표적을 맞히지 못하는 휜 활과 같은 자들이다. 내게 모진 욕을 함부로 내뱉던 그들의 지도자들은 원수의 칼에 찔려 망하리니 그러면 온 애굽에서 그들은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먼저 우리가 에스겔 말씀

다시는 애굽(인간구원) 기억 못하게 예수님만 구원하는 이름전쟁 (겔 23,25-27)
에스겔 2019 2024. 2. 2. 13:30

에스겔 23장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출애굽을 한 적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오늘 본문과 연관시켜서 보면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한 마디로 교만하다 라는 겁니다

절대로 네버 네버 결코 결코 완악한 수건을 벗을 리가 없다는 거죠
자금 가자 지구 이스라엘 보세요 나치한테 당한 것 고대로 퍼붓고 있는
유대인 말살 정책과 견주는 팔레스타인 말살까지 가는 거죠

이스라엘 역사가 이렇게 교만하다는 것은
인간 전체의 역사 또한 교만하다는 겁니다

즉 교만의 반대말인 겸손한 자
결국 겸손한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의인은 없나이 하나도 없으며
각기 제 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사실은 찾아봐도 소용 없습니다
없으니까 말이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딱 한 사람 바로 예수님만이 겸손한 분이셨고
예수님만이 우발적으로 겸손한 자를 새로 발생 시키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겸손함을 겉모양으로 갖추겠다 라고 행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야말로 가장 교만한 자 였습니다
심지어 바알세불 대마왕 귀신이 씌인 마귀 중의 마귀인 대마왕 이단 중의 이단
교만한 자 중에 가장 교만한 자 로 취급 받으셨습니다

네 맞습니ㅏ 반드시 그리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일한 샛별이거든요
그런데 샛별의 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교만한 자 라고 취급 받지 않으신다면
과연 샛별을 주시고자 오신 샛별 맞으시겠느냐 말이죠

인간들은 물론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들은 교만한 바벨론 왕 계명성 샛별의 자리에 앉아버린 입장에서

자기가 이미 샛별인데 제일 높은 자리인 교만한 자리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버렸는데

예수님이 샛별로 오심 자체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샛별을 주시겠다 계시록 일곱교회에 두아디라 교회에 샛별을 주시겠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계 2:24, 개역)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계 2:25, 개역)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계 2:26, 개역)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7, 개역)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28, 개역)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 2:29, 개역)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즉 이것은 일곱교회 다 해당된다 라는 겁니다
딱 한 교회 두아디라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어떤 목사는 이단에서 합동으로 옮겨서 안그런척 하지만
일곱교회에서 책망이 하나도 없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추종하던 이단인데
지금은 사라졌는지 잘 안보이네요

아는 분에게 복음을 나눌려고 하는데 빌라델비아 이단에 소속된 자가 얼마나 방해를 하던지

아무튼 특정 교회 하나를 딱 떼어와서 자기에게 결합 시켜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이 말 할려고 예를 든 겁니다

바로 사적인 구원 사적인 교회가 없다 라는 겁니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개인구원을 추구하겠지만
성경에는 그런 존재로써의 구원은 없어요

그러니까 일곱 교회죠 이 일곱이 절대저주 절대죽음을 거쳐서 나온 일곱이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 된 겁니다
네 맞습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인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야단 덜 맞은 빌라델비아를 끌어온다고 해서
그 원하는 바로 대로 될까요?
일곱교회가 격는 상황은 개인 사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그러니 골라 골라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닌 거죠
일곱 교회가 격는 상황 전부가 우리가 지금 처해져 있는 상황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때 일곱교회의 때 이니까 종말의 교회인 거죠
종말을 외치는
5대 제사 라는 공간 장소에서 어린양의 죽음이 처참하게 벌어지고
7대 절기를 3일의 간극을 거쳐서 5 6 7 이거 숫자 개념으로 볼게 아니라
기능이기 때문에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뉴스 사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이 벌린 일 곧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바로 인자입니다 인자가 3일이라는 절대죽음 정녕죽으리라를 거쳐서 나온
일곱 이라는 성령의 때 성령을 부어주시는
그래서 주어진 결과물이 바로 일곱교회이니 매를 안 대시는게 아니라
도리어 매를 징계를 하심으로써 더더욱 사랑 안에 거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이 곧은 백성
각기 제 길로 가는 양같은 자
즉 교만하기 때문에
이 일곱교회의 의미 마저도 개인 사적인 구원 사적인 교회로 자꾸 땅겨서
불순물 즉 교만이죠 이 불순물 찌끼를 막 썩더라 말이죠

가마 솥에 녹이 쓴 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꾸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해석아니까
개인 구원 개인 사적인 겸손을 주장하더라 말이죠

일곱교회를 각각 따로 따로 다루시는게 아니라
일곱 자체로 다 묶어서 집단적으로 다루신다는 의미에서 일곱교회인데
그 속에서 또 따로 따로 골라 골라 취사선택할려고 하니
다들 칭찬만 듣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취사선택할려고만 한다는 겁니다
그카이 이단집단이 나오는 거죠

아니 빨갱이 집단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자유 라는 단어
민주주의 라는 단어 즉 좋은 단더 다 집어넣어서 사기를 치지
부정적인 단어 집어넣어 보세요 아무도 세뇌 당하지 않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적인 개인구원이 아닌 즉 개인구원을 사적으로 추구한다는 자체가
자기자신 자아를 이미 집어넣었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그 속에서
부정적이고 삐딱한 집단구원으로써의 참선지자 곧 율법과 선지자는 논개처럼 나를 껴안고 자폭하듯이 빠져죽고
예수님 또한 참선지자의 주장처럼 저들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도와주신다 라는 주장에 가장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삐딱한 소리만을 하시는 그 기능이 바로 겸손 유일하게 겸손하신 분으로써
우리의 거짓된 겸손을 깨뜨리시는 즉 교만을 깨뜨리시는
도리어 교만으로 취급받는 겸손이 되시는 겁니다

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자 오셨거든요

바로 그 주님을 보고 모세가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겸손한 말을 하게 됩니다
아니 교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 아닙니까?

심지에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는 겸손한 행동을 합니다

이 겸손을 제자나 예수님을 식사대접하고자 자기집으로 초대한 바리새인이나 해석을 못 합니다
왜? 이미 자기들의 가까 겸손이 있으니까 말이죠

도리어 이 창녀 마리아 그것도 싸가지 없이 무례하게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지를 않나
땅에 비싼 향유를 다 부어 허비를 하지 않나

도리어 겸손하지 못하다 라고 제자들에게 책망 받잖아요 왜? 아무리 봐도 교만하고
그 아까운 비싼 향유를 휘발성으로 소비할게 아니라 차라리 휘발시킬려며는
가난한 자에게 주지 왜 버리냐 말이죠 아깝게
다들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끼는 판국에
그것도 창녀 주제에 그것도 전재산을 1분도 안 걸리게 다 허비하는
자기 분수도 모르는 이 얼마나 교만하기 짝이 없냐 말이죠
대노를 하면서 제자들이 나무랩니다 더더욱 가룟유다는 회개 담당이라
얼마나 예수님의 먹을꺼리 하나 챙긴다 라고 헉헉 거리는 판국에
얼마나 예민해 져 있는데 거기에다가 기름을 얹어 부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바리새인은 선지자라면서 왜 저 더러운 창녀를 받아주시는 것일까 라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의심을
도리어 예수님은 책망하듯이 교만한 자 취급하고
바리새인도 안 지지요 예수님을 아무리 식사대접한다고 간극을 좁힐려고 해도
기괴한 행동만 골라서 하니까 말이죠 좁힐 방법이 없는 겁니다

자 이런 판국에 예수님은 더더욱 더 간극을 벌리시는 거룩을 하나님의 의를 펼치십니다
이 창녀의 하는 행동을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기념하겠끔 말이죠

마치 가장 더러운 창녀의 기념비를 하나의 모범 사례인냥 따라하라고 기념비 세우듯이 말이죠

그러면 제자들이나 분노한 제자들이나
겸손하게 예수님을 식사대접할려는 바리새인이나
이 창녀 기념비를 사람들이 보고 본받아 따라하도록 기념비 세우듯이 하시는
그 칭찬에 동의를 하면서 반가워 할까요 아니면 기겁을 하면서
안될소리 안될소리 아니 이 상황을 도리어 사람들에게 본받으라 라고 하라굽쇼 ~~~~~~~

왜? 이 창녀 마리아의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기는 종말의 행동
곧 행함이 있는 믿음 곧 제가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여야 한다 라고 해서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했거든요

과연 이 창녀 마리아의 겸손을 겸손으로 수용을 할까요 아니면
이 마리아의 종말의 행동과 더불어 예수님까지 반드시 죽여야만 할까요

인간의 믿음은 다 사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복수심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 구원에 하나도 보탬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이스라엘 독립운동에 하나도 보탬이 안된다 라고 팔아넘긴 겁니다
살인할 거죠

이게 개인구원의 탐심 곧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반박할 수가 없는 이유가
우상조각가였던 아브라함이 직접 이 개인구원이 주님에게 안 먹혀든다 라는 것을 알았어요

주여 의인 5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 안 멸망 시키실 겁니까

아브라함은 인간의 초코파이 정으로 하나님도 너무 나쁜 이미지가 되면 안되고
저들도 돌아올수 있는 기회도 주고 
좋은게 좋은거다 싶어서 50명을 제안했다 말이죠
설마 의인 50명 없을 까봐
오늘 본문으로 치면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자 50명이 없을까봐
나 아브라함처럼 이런 좋게 좋게 하자 라고 하는 
겸손한 개인 50명 없을까봐

그런데 분위기가 보니 아 50명은 좀 그런가 라고 컷트라인을 낮추는 겁니다
아 그럼 40명이면 되겠네

자꾸 개인 50에서 개인 40명 이렇게 개인의 숙제로 개인의 문제로 보더라 말이죠
그러다 30
20
10
5명

심지어 이렇게 개인의 의인
사적인 의인 하나 속에 마저도
아브라함 자기 자신도 속하지 못한다 라는 것을 알고
아 이것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전체 집단의 문제이구나
판대기 구조 판
지구 전체
역사 전체 판대기 문제임을 알고
다시는 인간 숫자 언급을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아니 모든 육체 판대기 전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러 오셨는데
왜? 겸손한 자가 없기에
모두다 다 치우쳐 져서 교만한 자 밖에 없는데

그 증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교만 뿐이다 말이죠
애굽에서 한 발짝도 탈출한 적이 없어요
도리어 한 발짝 내 믿는 곳 장소 몸
만나는 사람 마다 모조리 애굽 우상숭배자로 도로 만들어 버리고 있어요
교만한 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어요

왜? 자기가 교만한 자인줄 모르고 자꾸 겸손한 자라고
겸손을 지켰다 라고 우기니까
그게 바로 교만한 자 이다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다 이렇게 교만한 자 못 만들어서 안달이 났어요
모든 인간의 역사는 교만 밖에 없었어요
그럼 교회의 역사는 묵시의 시간 종말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사적인 개인 시간을 자꾸 집어넣으니까
교회가 더 더 더 세상보다 교만한 자들의 소굴 곧 강도의 소굴이 된 겁니다
돈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맨말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면서도
그 기도를 엎어버리더라 말이죠
일용할 양식 먹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의 피 없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이다 라는
기능 곧 함께 동행하는 한 몸이다는 겁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왜 찾아오셨습니까? 아니 우리가 찾아가는 것을 거부하시고 왜 찾아오셨지요
3절 겸손한 자 찾도다 
겸손한 자 찾을려고
바로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를 찾으러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 치르는
누가 봐도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가 겸손한 자 라고

그 순간에 우발적으로 다이나믹하게 신부된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발생시켜서 주님이 자기자신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숫자 1 2 3 4 사람의 손으로 세는 숫자가 아닌 묵시 곧 종말의 사건을 일이키고요
시간 우리 몸이 행동할 때 마다 쩨깍 쩨깍 흘러가는 그런 사람이 셀수 있는 시간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으로써의 끝시간 끝 때 끝을 미리 앞당겨서 미래표절 그냥 미래가 아닙니다
완료로써의 미래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시간 개념에서는 완료의 미래는 없는 거지요
계속 미완료상태의 미래일 뿐이지요 그러니 묵시의 시간인 인물이 아니라
역사의 시간인 숫자 장난질만 할 뿐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한계이니 어쩔수 없어요
그러니 겸손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무조건 교만한 자 일 뿐인
하나님의 원수 될 뿐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 교만한 몸 이 지옥의 몸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여기서 누가 라고 누구를 부르짖잖아요 그 분이 바로 마지막 아담 곧 살려주는 영이신
살려주세요 라고 부르짖도록 만드시는 유일한 겸손한 자 이시다는 겁니다
이러니 모조리 사건 개념인데
인간은 도리어 확장 합니다
언약의 바깥으로 더더더더 확장 확대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더더 큰 별이 새벽별 교만한 계명성이 되겠노라 라고 말이조

정작 진짜 겸손하신 샛별 되신 예수님은
바로 새벽이 오기 전의
주의 성실하심으로 밤에 갈기 갈기 찢는 그 잃어버림을 격으신
겸손함을 배우셨는데
순종을 배우셨는데

인간은 지가 뭐 대단하다고 겸손도 안 배우고 샛별이 될려고 하니
교만한 자가 따로 없는 거죠
갈기 갈기 찢겨지는 십자가의 죽음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도 거치지도 않고
겸손도 배우지도 않고서 교만한 새벽별 모닝 스타 아침을 맞이할려고 하니

과연 징계를 거쳤는지 보자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라

어 못하겠습니다
등돌리고 다시는 안보겠다 라고 얼굴을 돌리는 겁니다
즉 싫어버린바 되기 싫다는 겁니다

멋들어진 구원 곧 사적인 구원을 챙기겠다 즉 우상을 챙기겠다
그게 교만한 부자청년인 거지요
왜 이런 교만한 자를 성화론자 교회는 앞다투어서 맹글어낼려고 하는지
아 그래서 자기 교회는 남들교화에 다르다를 자랑하더라 말이죠

겸손을 배울려고 하지도 않아요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지도 않아요
교만한 몸 지옥의 몸이라고 건져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저 건간항 자다 의인이다 라고
아브라함은 접었는데 배설물로 버렸는데
저들은 버린 똥덩어리를 온 얼굴에 쳐바르고 주님께 보일려고 눈도장 찍을려고 하니
제발 오지마라 내 마당만 밟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눈 가리고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겠다 라고

정작 예수님이 우리의 교만함을 대신 지시고 오시니까
싫어버린바 되시고 고개를 다 돌리고
아름다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병든자 같이 얼굴이 새까맣게 되다 보니
아무도 귀히 귀히 여기지 않는 겁니다

얼마나 우리가 병들었으면 얼마나 우리가 어두운 눈이였으면
세상에 유일한 겸손한자를 가장 교만한 자로 하나님의 저주를 퍼부어가면서
십자가의 저주로 죽였겠느냐 말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겸손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 행동들
곧 행함을 쫓아서 의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는커녕 서로 서로 지옥 보낼려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하게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는
광명한 천사 노릇하는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니냐 말이죠

겸손힌 입을 열지 않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을
늑대들이 다 달려들어서 이 겸손한 어린양 하나 잡아먹을려고 갈기 갈기 찢는
우리들이 다 이런 늑대들 아니냐 말이죠


오늘 본문 보십시오

(호 7:8, 개역)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호 7:9, 개역)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호 7:10, 개역)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아니 이 충고가 이 간섭이 귀에 들려오겠습니까
들으라 이스라엘 캐 놓고 들으라 라는 소리 입니까?
듣도록 만들시려면
북이스라엘읗 황폐케 만드는 광야로 만들어야 들을까 말까 한데
지금 북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할때에 가장 부요할때에 가장 부패가 심각하다 라고

한쪽으로 다 치우쳐져서 찌짐 전 부칠때에 한쪽만 후라이 팬에 데우면 다 타버려서
다른 한 쪽도 역시나 못 먹잖아요
전병을 뒤집지 않을 정도로 다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주변나라와 연합국을 형성하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약할때에는 아무도 손 안 잡아줍니다
강하니까 손 잡아주면서 상대방을 노예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누가 연합하면서 서로 서로 이용해 먹지 않을려고 순수하게 손 잡겠냐 말이죠
그것도 개같은 이방인 우상숭배자들인데 손 왜 잡겠냐 말이죠
힘자랑 아닙니까
또 그 힘이 가장 번성할때에 가장 범죄가 가득하다 라고
그 힘을 차지할려고 마지막 북이스라엘 왕 까지 끝까지 쿠테타가 멈추지 않고 벌어지는 겁니다
두 세사람만 있어도 정치가 있다 무당이 생기고 우상이 없는 우상이 생기는 겁니다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고 하듯이

왜? 서로 서로 자기 유일을 따라 이용해 먹는 가정부 노예로 만들고파 하기에
즉 정치는 무조건 나는 옳아야 한다 라는 거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라는 놈이 무당에게는 충성하잖아요
왜? 사람은 자기에게 가치가 없거든요 돈이 안된다 라는 겁니다
자기는 사람 수준은 아니고 사람을 넘어서는 수준이다는 거죠
왜? 노예에게 충성하냐 말이죠
그런데 무당은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준다 말이죠
손에 왕 자나 그리고 말이죠 애도 아니고

애도 아닌 놈이 애들을 다 죽인다 말이죠 무당이 할게 뭐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라고 하니까
제가 다녔던 공장의 공장장 말이 또 생각나네요
그 공장장 말이 나는 절대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라고 말이죠
그럼 뭘 믿을까요 항상 믿는 구석이 있어서 강조하거든요
자기는 기계를 믿는데요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니까 말이죠
AI 인공지능도 자기가 알아서 거짓말을 하던데 말이죠
아무튼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싫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 자체가 거짓말이지요 하루에 평균 100번 이상 넘어가는 것이 인간의 거짓말인데 말이죠

결국 거짓말을 하지 않는 기계랑 살꺼냐 말이죠 그런 그림자랑 살아서 뭐하게요
이미 죽어 있는데 말이죠

주의 산에 오를자 손 깨끗한 자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1, 개역) [다윗의 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2, 개역)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5, 개역)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6, 개역)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시 24:7,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8, 개역)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 24:9,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10, 개역)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그래서 손 깨끗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 아닙니까

손 깨끗하게 살아라 깨끗하게 하라 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해도 내 손은 더럽기 짝이 없는 더러운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정직한 영을 달라고 부르짖는 자 아닙니까

그럼 정직한 영을 주시면 자신이 더럽기 짝이 없는 자 임을 아는 자가 되거든요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임을 아는 자가 성령이 임한 자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심에 복종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이 겸손을 이 순종을 이 복종을 배우신 분이
본이 되신 주틀이 되신 예수님 곧 유일하신 겸손하신 분입니다

모든 인간의 대표성인 실천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교만하다 라고 평가가 만장일치가 된 분이
유일하게 겸손하신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유일하게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 이십니다

그 입 다물게 모든 입을 잠잠하게 만드시는 여호와의 산에 
시온에 오를자 유일한 겸손한 자

잠잠히 입을 다무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잠잠히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시 11:4, 개역)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합 2:20, 개역)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19, 개역) 나무더러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인간의 겸손은 절대로 나무더러 깨라 라고 말하지도 못할 뿐더라 깨울수도 없습니다
혹시나 누가 들으면 미친놈 취급 받을까봐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할 수도 없습니다

아냐 나는 반드시 하고야 말 거야 라는 놈도 교만한 자입니다
즉 자기가 교만한 자임을 고백하지 못하는 자는 다 교만하다 라는 겁니다
겸손도 즉 정직한 영이 없기에 외부에서 넘어오기를 바래야 하듯이
겸손도 외부에서 넘어와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겸손한 자입니다

자 그러면 인간이 겸손을 겉모양으로 갖춘 자와
정직한 영이 없어서 외부에서 넘어와 주기를 바라는 자를
두 언약으로써 예수님은 항상 충돌 시켰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와 자칭 빛의 아들들 이라고 고소 고발하는 자들

그리고 창녀 마리아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항상 주님은 그 시대의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누가봐도 더러운 자를
도리어 겸손한 기능을 심어서
자칭 겸손함을 갖추었다 라고 조건을 갖춘자들과 일부러 충돌시켜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겸손을 나타내셨다 말이죠

이것이 종말에만 나타나는 겸손한 자의 부정한 행함이 있는 믿음인 거죠
그러나 보편적 진리에서 집단의 다수들에게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겸손인 겁니다

아니 성정을 헐라 3일 만에 다시 짖겠다 가 아무리 봐도 교만한 자의 말이지
누가 겸손한 자의 말이 되겠습니까

하여튼 그 겸손에 내가 포함이 되면 겸손이요
내가 아무리 간극을 좁힐려고 나를 포함 시킬려고 해도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내가 포함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철저한 단절이 되는 것이라면 도저히 겸손은커녕
도리어 최고의 교만이 되기에 반드시 심판해야 하고 거부하고 제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안그러면 바이러스 코로나처럼 전염병 급속도로 퍼지듯이 퍼진다 말이죠

뭐 악에 대한 방관은 뭐뭐 그단새 단절이 되어서 다 까먹었네요
그렇게 히틀러 나치에 대한 반성적인 역사적 해석을 해 놓고서는
지금 그 나치 히틀러 짓을 누가 합니까?

계시록의 음녀가 돈이 없을때는 국가 라는 짐승에게 짖밟히다가
돈만 생기면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서 짐승을 다룰려고 하거든요
그 음녀가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고자 하듯이
자기 쪽에서 사랑하겠다고 나서듯이
이 음녀가 제사장 딸 아닙니까
제사의 원리 거룩의 원리를 다 안다는 겁니다
다 알면 정작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는 다윗언약을 쳐다봐야 하는데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화목제물 필요가 없다 라는
제사장의 실패인 그 의문의 반복을 계속 우려먹으면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얼굴을 가리우는 식입니다

얼굴이란 외부에게 닥친 해외뉴스와
내부의 몸에서 올라오는 뉴스 곧 사건이 기록된

뉴스 신문지가 얼굴이다 라는 겁니다
아 간밤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라는 것을 그 얼굴을 보면서 읽는 것이지요
신문 읽듯이 포털사이트 뉴스게시판 읽듯이 읽는 겁니다

부시맨 이라는 영화를 보면
부시맨이 땅을 살펴보면서 간밤에 누가 다녀갔는지를 신문 읽듯이 읽잖아요
누구와 누가 싸웠는지를 누가 자기영역을 표시했는지 다 살펴보는데
인디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서부영화에서 봤듯이 말이죠
그것이 바로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겁니다

특히 여자는 외부에서 사랑받는 그것도 남자에게 신랑에게 사랑받는 입장에 놓이면
그 얼굴에서 도미노 현상처럼 외부인들이 다 감지가 될 정도로
아무리 못난 여자도 이쁨이 확 피어나서 시샘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타나는 겁니다

아가서의 합창이 그런 상황임을 잘 나타내지요

(아 8:6, 개역)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인간이 겸손하다면 죽음을 깨뜨려 보라 말이죠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니 말이죠

(아 8:1, 현대인) 여자: 만일 당신이 우리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오빠라면 내가 길거리에서 당신을 만나 입을 맞추어도 나를 비웃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아 8:2, 현대인) 내가 당신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나는 당신에게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을 갖다드리고
(아 8:3, 현대인) 당신은 나를 왼팔에 눕혀 오른손으로 껴안아 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 8:4, 현대인)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는 제발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아 8:5, 현대인) 예루살렘 여자들: 사랑하는 님의 팔을 끼고 사막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남자: 그대의 어머니가 산통을 겪으며 그대를 해산한 그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그대를 깨웠노라.
(아 8:6, 현대인) 여자: 당신은 나를 인장 반지처럼 당신의 마음에 간직하고 도장처럼 당신의 팔에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며 질투는 무덤처럼 잔인하여 맹렬한 불처럼 타오릅니다.
(아 8:7, 현대인) 많은 물도 사랑의 불을 끌 수 없고 홍수라도 그것을 소멸할 수 없으니 사람이 자기 재산을 다 주고 사랑을 사려고 해도 오히려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아 8:8, 현대인) 여자의 오빠들: 우리 어린 누이동생은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동생이 청혼을 받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8:9, 현대인) 만일 동생이 성벽이라면 우리는 동생에게 은망대를 세워 줄 것이며 만일 동생이 문이라면 우리가 백향목 판자를 둘러 주리라.
(아 8:10, 현대인) 여자: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와 같으므로 내가 님의 보기에 평안을 얻은 사람처럼 되었구나.
(아 8:11, 현대인) 바알-하몬이라는 곳에 포도원이 있어서 솔로몬이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내어주고 한 사람 앞에 은화 1,000개씩 바치게 하였네.
(아 8:12, 현대인) 그러나 내 포도원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솔로몬 당신은 은화 1,000개를 가질 것이며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에게는 내가 은화 200개를 주리라.
(아 8:13, 현대인) 남자: 동산에 앉아 있는 사랑하는 님이여, 그대의 음성을 들려 주시오. 내 친구들이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오.
(아 8:14, 현대인) 여자: 나의 사랑하는 님이시여, 노루처럼 달려오세요. 향기로운 산의 어린 사슴처럼 속히 달려오세요.

이 합창을 각각의 번역에서는 예루살렘 여자들 또는 합창단 또는 신부의 친구들 즉 아이고 배아파라 라는 시샘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라고 증상물로 동원이 되는 동네 여자들, 여인네들

그래서 신랑의 노래(선창), 신부의 노래(화답가로써), 그리고 합창단 예루살렘 여자들의 노래(시샘 곧 질투의 사랑의 증상물로써의 합창, 마치 천사들도 부러워 하듯이 천사의 합창처럼) 로 등장인물의 노래로 나옵니다

그카이 유대인 탈무드에서 사람이 감출수 없는 새가지
곧 경제에 해당되는 빈지갑
그리고 미움과 사랑 곧 자기가 좋아라 하는 것과 때려죽어도 싫은 것은 감출수 없다 라는 거지요
이게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인 종교죠

그리고 건강 곧 기침을 감출수가 없지요
이 건강함 자체가 정치가 되거든요 평강 평강을 외치는 이유이다 말이죠
자기 병도 못 해결하는 자가 남의 병을 무슨수로 고치냐 말이죠

이 세가지를 인간은 그 얼굴에서 감출수가 없어요
이 세가지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 하는 겁니다
시험 점수 결과는 예수는 가장 교만한 자 였습니다
겸손이라는 시험점수결과는 나올수가 없어요

네 맞아요 이것이 시험으 쳐서 나온 결과인 원인 있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 없는 결과로써 오셨기에 겸손 그 자체로 오셨기에
인간의 겸손 가짜겸손을 모조리 깨뜨리시는
교만한 자로만 보이는 모습으로 오셨기에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땡 탈락 하듯이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
싸가지 없는 마리아를 편들어 주지를 않나
창녀 마리아를 부정적인 행동을 마음판의 기념비로 세우질 않나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 라고 교만한 말을 하지 않나

인간의 겸손 개념과 어쩌면 그렇게도 교집합 겹쳐지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이
단절 단절 철저한 단절 그 자체로 오신
원인 없는 결과로써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아도 겸손한 자는커녕 악한 자 교만한 자 더러운 창녀 세리 강도를
먼저 천국에 보내시는 자로만 보이는 겁니다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단절로써 더더더 점점점 벌어지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해석으로만 일관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겸손을 우리가 아는 방식의 반대로 해석하심은
마치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군대를 의의 병기로 사용하심에 있어서 힘을 빼시는 모습과 같습니다
꼬추 할례를 단 한 사람이라도 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지는 전쟁
희한한 전쟁 곧 저들 불의의 병기와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힘을 쥐기만 하면 지는 전쟁
도리어 약함으로만 하는 전쟁
젖먹이 어린아이의 권능으로 하는 전쟁
곧 절대로 믿음 싱뢰 신념이 가지 않는 전쟁만 골라 하는 겁니다
엘리야가 저들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제사장과 싸울때에
저들은 힘을 노력을 모으고자 결집할때에
딸랑 한명이 그것도 불을 붙일려는 징조로써 불 잘 붙도록 하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를 위한 반대로 물을 뿌림으로써 저들의 비웃음을 일부러 유도하는
저들의 교만함을 일부러 유도 하는 저들의 거짓된 겸손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ㄷ 라는 거짓평강을 일부러 유도하는 불의한 행동
물 뿌리는 부정한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시는 겁니다
이 단절성을 아무리 소유할려고 해도 소용이 없는 단회성 일회성 이였으면
엘리야 본인도 그 행동을 해 놓고서도 무슨 의미인줄 몰라서
나만 남았다니다 열심이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왜 주님 시켰는대로 했는데
주님은 왜 나를 배신합니까 라고
본인이 또 의의 병기가 될려고 스스로 접든 간극좁히기가 안됨을
도리어 불의의 병기로써 주님께 반항하는 교만함을 보여주는 겁니다

즉 여기에서도 엘리야 개인이 개인의 신앙 개인의 구원이 들어갈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집단적으로 다룬다 라는 것은
지금 호세아서가 북이스라엘을 이렇게 치신다 라는 것은
남유다 그 다음 차례이다 뭐 저들은 하나님께 범죄해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 18명이 죽었다 라는
해석 자체를 할 수가 없도록 하신 겁니다 그런 해석은 아무리 들어도 교만하게만 듣기거든요
정작 겸손한 자 유일한 겸손하신 예수님은 
그래 그렇게 해석하는 너가 그 다음 차례이다 라고 해석한
겸손한 해석을 듣는 그 다음 차례이다 라는 그 사람 곧 우리 모두죠 모든 인간이
과연 겸손한 분의 해석을 옳게 들을까요 아니면 교만하다고 죽여버릴까요

그러니 예수님의 사복음서에서 하신 말씀은 그 어떤 인간의 해석도 접촉점
근접
간극좁힐수 있는 해석 자체가 아예 없어요
불일치 밖에 없어요
해석 불가입니다
즉 이 말은 성경 전체가 접근 불가 간극좁히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고 학문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바른해석이 좁혀질 것이다
정 그러면 인공지능 인간의 인지능력인 응용력까지 다 완벽하게 완비하여서
수천억배나 높은 지능으로 활성화 시켜서 백날 해석해도
역시나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더더더 벌어지는 겁니다
지금 현재에는 부족해서 미래에는 발달한 상황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아닙니다 불가능 합니다
불가능하다 라는 그 결과를 도리어 미래표절 해서 미리 우는 것이 도리어 겸손한 자 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임한 자입니다

우리는 뭘 해도 죄 밖에 없고
뭘해도 교만한 자이고
뭘 해도 하나님의 원수 짓만 할 뿐인
죄인 중의 괴수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종말때에만 나오는 기도입니다
성전의 두 사람의 기도 중에
매국노 세리의 기도입니다

다른 한 사람의 기도인 바리새인의 기도는
인간 중에서 가장 겸손한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자의 기도였고
그가 교만하다 라고 저 매국노 세리처럼 삥 뜯는 세금 뜯어대는 토색을 하지 않았다 라고
저 교만한 자처럼 되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하다 라고
저 교만한 세리를 도리어 주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
곧 성전에서의 기도에 딱 맞는 자로 새로 맹글어 버리시는 겁니다

아니 과거의 빼도 박도 못하는 행동들이 있는데 그거 부정하고
백날 지금 새롭게 주님에게 딱 맞는 기도를 했다고 해서
그 과거의 행동을 부정할 수가 있느냐 말이죠
바로 그것이 교만한 자의 해석 이다는 겁니다
어제까지 백날 잘 믿어도 오늘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듯이
어제까지 백날 안 믿어도 오늘 예수님을 믿으면 그거 주님이 하신 일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느냐 말이죠

인간은 원인 있는 결과를 따집니다
아니 요셉의 아들
목수의 아들이
무슨 놈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냐 말이죠
그카이 과거가 있는 것 그거 볼모로 잡아서
교만하다 라고 해석함에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주님은 교만하다 라고
너거들이 부정하다고 한 그 이방민족 니느웨 백성으로부터 심판받고
남방 여왕으로부터 심판받는다 라고 도리어 역으로 해석
반대를 위한 반대의 해석을 하십니다

여기서 아뿔사 그가 나 보다 옳도다 라고 반드시 고백을 부르짖음을 겸손을 받아내고야 마심 앞에서
항복을 해야할 입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 1번 타자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 라고
1번 타자 매맞는자로 이스라엘을 세우셨다 말이죠

이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교만함 그 자체
애굽 이라는 음녀 그 자체인 자를 어떻게 이 목이 곧은 백성을 어떻게 겸손한 자로 만드시는지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간단 합니다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면 불순물 찌기로 금방 분리 되는 겁니다

이 분리 되는 이 간극
이 갭
이 사이가

이 사이 간극으로 만드시는 것이 용광로의 기능입니다
겸손한 하신 예수님이 부으시는 성령 이십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간극 되기입니다
무능 되기
하나님의 원수로 우는자 만들기
정직한 영이 없어서 상한심령 만들기입니다

그런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교만한 자의 자리에서
음녀의 자리에서 신부의 자리로 옮기시우는

하나님의 중심인 성전의 기능입니다
곧 예수님이 흘리신 피 기능입니다

이미 하늘에 새이스라엘은 완공이 되었습니다
그 증상으로 눈에 보이는 과거물인 우리 육체를 삭제
과거 삭제
죄 삭제를 하시는 것이
바로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으로써
우리를 날마나 날마다 찢으시는 겁니다
늘 우리 속에서 올라오는 엉터리 해석
교만한 해석

겸손한 자기를 형성할려는 반드시 자기를 포함시킬려는 그 해석을
날마다 날마다 찢으시고자 오시는 겸손한 성령을 집어넣으시는 해석을

내가 내 스스로 종말의 집단이 될 수 없는
이 간극의 더 더 더 벌어짐 앞에서 우는 자 만드시는
이 간극 자체가 바로 종말에만 나오는

인자의
무능한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이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써 부어지는 겁니다

이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않고서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그 정도로 모욕적이고 그 정도로 살인자인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한
주님의 죽음 보다 강한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자신들이 겸손함을 갖추었다 라고 모세의 자리에 앉음으로
샛별을 주신다 라는 분의 기능이 필요없다 라고
의원이 의사가 필요없는 건강한 자 의인 겸손한 자리에 앉아버린
교만한 새벽별 계명성이 된 바벨론 왕의 교만을 개인 바벨론이 아닌
모든 인간들의 모습이다 라고 규정하시면서

그 교만을 꺠뜨리고자 하시는 겸손
즉 겸손은 교만을 못 깨뜨린다 라면 그거 겸손이 아닌 거죠

그러니 교만으로부터 겸손은 반드시 교만하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써
집주인을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세간을 늑탈할수 없듯이
반드시 도둑놈으로 오셔야 하시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속의 늑탈당하는 세간인 전리품이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을 도둑이라고 표현하실까요
즉 우리 또한 세간 가구품으로 취급하는 이 부정함이 아니면
자기가 잘난줄 아는 손 깨끗한 자인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자는 바로 그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그 선악 이전에 선악을 알기 전의 아기로써
선악의 해석에서는 해석불가로써

스알야숩 남은자만 돌아오고
마할살랄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너거와 함께 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다들 이 의미들도 부정적인 의미를 다 빼고 낱말뜻을 가르치다 보니
남은자 운동이나 렘넌트 운동이나 해 쌋고 말이죠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는 것은 다 죽여버리고
이것도 죽여야 하는데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주님의 온유 때문에
억수로 억수로 봐줘서 우는 자만 돌아오게 했다 라는 겁니다
이런 부정적인 의미 다 빼버리고 젊은아이들 다 세뇌시키고 있으니
남은자 운동을 하다가 우리 때에 결국은 운동권 시위하는데 까지 하더라 말이죠

다행히 전두환때 였다면 다 죽었을텐데
다행히 노태우 때라서 억수로 봐줬는데
그러니 운동권 다 실패 했는데 뭘 또 부활시켜서 따라 할려고 하는지

더 웃기는 것은 그 운동권을 그 실패한 운동권을 잡겠다 라고
한동땡 깐족이가 또 설쳐대더라 말이죠
실패한 것 가만히 놔둬도 되는데 왜 쓸데없이 저 교만한 민주당 따라하겠다 라고
독립운동 건국전쟁운동을 하냐 말이죠 영화보면 돈 준다 라고 해서
흥행을 올리는 이 무당짓을 멈추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지옥의 몸이다 라는 증거를 아무리 티를 안내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그 정도로 우리 모두는 교만한 자 이다 라는 겁니다

누가 마지막 때에
종말 때에
성령의 시대에
자신이 교만하다고 우는 자를 보겠느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유일한 겸손한 자의 음성은
아무리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는

비유로만 언약으로만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음 꺼리요

그저 자기들의 교만을 서로 서로 창찬하면서 사는
어두운 눈인 소경의 세상이 되었다 라는 사실에

주여 고쳐 주소서 라고 부르짖는 자를 찾으러 오신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바로 자기가 교만하다고 고쳐달라고 우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를 소경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새로운 죄인의 자리에서
주께만 범죄한 죄인으로써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부르짖는 겸손한 자를 찾으시러
겸손한 영을 심으신 자기 피 바른자를 찾으러 오셨씁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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