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 다시는 애굽(인간구원) 기억 못하게 예수님만 구원하는 이름전쟁 (겔 23,25-2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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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을 기억 못하게 인간구원 삭제하는 주의 이름만 구원하는 기념이름전쟁 (겔 23,25-27)

21-071 다시는 애굽을 기억 못하게 사람의 구원을 헛되게(삭제)하는 주의 이름을 구원하는 주의 이름 (겔 23,25-27)

그 형보다 더 부패한 오홀리바 (겔 23,11-24)
에스겔 2019 2024. 1. 11. 17:23
21-070 그 형보다 더 부패한 오홀리바 (겔 23,11-24)

〈에스겔 23,25-2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6쪽, 찬송가 192장 영원히 죽게 될 내 영혼, 275장 새 498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찬송가 192장 영원히 죽게 될 내 영혼〉  

1. 영원히 죽게 될 내 영혼 구하려 주께서 십자가 지셨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려 갈보리 험한 길 가셨네
   나의 죄 사했네 나의 죄 사했네 주님이 지신 십자가로 
   우리 주 예수님 날 대신 하시고 죄없이 십자가 지셨네

2. 나의 맘 깨끗게 하려고 오신 주 사랑은 한없이 크도다 
   주께서 내 죄를 사하신 후로는 온전히 자유함 얻었네
   나의 죄 사했네 나의 죄 사했네 주님이 지신 십자가로 
   우리 주 예수님 날 대신 하시고 죄없이 십자가 지셨네

3. 언제나 주님의 능력을 힙입고 이 세상 기쁘게 살겠네 
   나의 죄 사하여 깨끗게 했으니 언제나 찬송을 부르리
   나의 죄 사했네 나의 죄 사했네 주님이 지신 십자가로 
   우리 주 예수님 날 대신 하시고 죄없이 십자가 지셨네


〈에스겔 23,25-43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6쪽〉  

(겔 23:25, 개역) 내가 너를 향하여 투기를 발하리니 그들이 분노로 네게 행하여 네 코와 귀를 깎아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겔 23:26, 개역) 또 네 옷을 벗기며 네 장식품을 빼앗을지라
(겔 23:27, 개역)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겔 23:36, 개역)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국문하려느냐 그러면 그 가증한 일을 그들에게 고하라
(겔 23:37, 개역)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겔 23:38, 개역)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겔 23:49, 개역)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찬송가 275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새찬송가 498장〉  

1. 저 죽어 가는 자 다 구원하고 죄악과 무덤서 건져내며 
   죄인을 위하여 늘 애통하며 예수의 공로로 구원하네
   저 죽어 가는 자 예수를 믿어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

2. 주 반대하는 자 불쌍히 여겨 참 회개할 때를 기다리네 
   열심을 다하여 인도해 보세 예수를 믿으면 다 살겠네
   저 죽어 가는 자 예수를 믿어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

3. 저 죽어 가는 자 구원해 내야 우리의 본분을 다 하리니 
   예수의 구원을 전파할 때에 그 크신 능력을 다 주시네
   저 죽어 가는 자 예수를 믿어 그 은혜 힘입어 다 살겠네  아멘


(겔 23:25, 새번역) 내가 질투하여 너희에게 분노를 터트리면, 그들이 너를 사납게 다룰 것이다. 그들이 너의 코와 귀를 잘라낼 것이며, 남은 사람들도 칼로 쓰러뜨릴 것이다. 너의 아들과 딸은 붙잡혀 가고, 너에게서 남은 것들은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겔 23:26, 새번역) 그들이 너의 옷을 벗기고, 화려한 장식품들을 빼앗아 갈 것이다.
(겔 23:27, 새번역) 이렇게 해서, 나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부터 하던 음란한 생활과 행실을 그치게 하겠다. 그러면 네가 다시는 그들에게 눈을 들 수도 없고, 이집트를 다시 기억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겔 23:28, 새번역)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나는, 네가 미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곧 네 마음이 멀어진 사람들의 손에 너를 넘겨 주겠다.
(겔 23:29, 새번역)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너를 다루며, 네가 수고한 것을 모두 빼앗아 가며, 너를 벌거벗겨 알몸으로 버려 두어, 음행하던 네 알몸, 곧 네 음행과 음탕한 생활을 드러낼 것이다.
(겔 23:30, 새번역) 네가 그런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니, 이는 네가 이방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음행을 하고, 그들의 여러 우상으로 네 몸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겔 23:31, 새번역) 네가 네 언니의 길을 그대로 따라갔으니, 나는 네 언니가 마신 잔을 네 손에 넘겨 주겠다.
(겔 23:32,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네 언니가 마신 잔을 너도 마실 것이다. 우묵하고 넓은 잔에 가득 넘치도록 마시고, 웃음거리와 우롱거리가 될 것이다.
(겔 23:33, 새번역) 너는 잔뜩 취하고 근심에 싸일 것이다. 그것은 공포와 멸망의 잔이요, 네 언니 사마리아가 마신 잔이다.
(겔 23:34, 새번역) 너는 그 잔을 다 기울여 말끔히 비우고, 그 잔을 조각내어 씹으며, 네 유방을 쥐어뜯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였으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23:35,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네가 나를 잊었고, 나를 네 등 뒤로 밀쳐 놓았으니, 이제는 네가 음란한 생활과 음행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겔 23:36, 새번역)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심판하지 않겠느냐? 두 자매의 역겨운 일들을, 네가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겔 23:37, 새번역) 그들은 간음을 하였으며, 손으로 피를 흘렸으며, 우상들과도 간음을 하였으며, 또 나에게 낳아 준 제 아들딸들마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여 태워 죽였다.
(겔 23:38, 새번역) 더욱이 그들은 나에게까지 이런 일을 하였다. 바로 같은 날에, 그들은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안식일을 범하였다.
(겔 23:39, 새번역) 그들은 자기 자식들을 잡아 죽여서 우상들에게 바친 바로 그 날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으니, 그들이 내 성전의 한가운데서 그런 일을 하였다.
(겔 23:40, 새번역)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먼 곳에서 사내들을 초청하였더니, 그들이 왔다. 두 자매는 그들을 맞으려고 목욕을 하고 눈썹을 그리고 패물로 장식을 하고,
(겔 23:41, 새번역) 화려한 방석을 깔고 앉아, 앞에 상을 차려 놓고, 그들은 그 상 위에 내가 준 향과 기름까지 가져다 놓고,
(겔 23:42, 새번역) 그 사내들과 지껄이고 즐겼다. 광야에서 잡된 무리와 술취한 무리를 데려오니, 그들은 그 두 자매의 손에 팔찌를 끼워 주고, 머리에 화려한 관을 씌워 주었다.
(겔 23:43, 새번역) 이것을 보고, 나는 '별 잡된 무리가 다 있구나. 두 자매가 음행으로 시들어 빠진 다 늙은 창녀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찾아오는 얼빠진 녀석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겔 23:1, 현대어) [오홀라와 오홀리바] 
(겔 23:22, 현대어) [오홀리바에게 내릴 심판] 
(겔 23:36, 현대어) [경고가 되는 두 자매]  

(겔 23:1, 쉬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겔 23:22, 쉬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다> 
(겔 23:36, 쉬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22-011 그리스도인을 도적질 하는 그리스도인(유대인을 도적질 하는 유대인) (롬 2,17-22)

https://crosslamb.tistory.com/2559


오늘 본문은 마치 우리가 살펴본 호세아 3장의 내용과 똑같습니다
주님이 반드시 너 창녀 예루살렘에게 장가 가리라 내가 본래 남편이다처럼 말이죠

(사 62:4, 개역)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23-06 창녀가 된 이스라엘에게 장가 가라 (호 3, 1- 5)
호세아 2023 2023. 10. 7. 07:09

https://crosslamb.tistory.com/2626

포로 잡혀가기 한 참 전 임에도 불구하고도 호세아 때 북이스라엘 마지막 때에
최고의 전성기인 가장 번성할때에
호세아가 투입이 되었으니 얼마나 싫겠냐 말이죠

포로 잡혀간 이후인 에스겔 당시에도 동일하게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꺽으신 뼈가 떳기에 다윗언약에 맞는
죄인 만드시기 위해서 말이죠

즉 음란한 행동을 해서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들겠다 하시는게 아니라그카이 로마서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에
인간은 에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이 선해 지겠네 라고
죄를 짓는 주체가 내가 주체가 되어 내가 죄 짓는 여부에 따라 하나님이 선해지느냐
악해지느냐 로 본다는 이 자체가 바로 음란이다 라고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그카이 이미 정죄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음란을 행해서 장가들겠다 라는 말이 아니라
장가가시겠다 라는 신랑이 떳기에
반드시 음란한 여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기서 그 동안 기독교 역사의 설교나 교육에서 이런 소리를 해 본적이
들어본적이 없기에 놀랠 노 자가 되어서 거부하게 되지요
자 그런다고 그렇게 거부한 본인들은 과연 음란하지 않는가
오히려 더 음란해요 글쎄 실제로 음란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죠 경건의 모양을 갖추는데 달인이 되니까
도리어 경건의 능력인 화목제물을 거부하는 겁니다

결국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기 위해서 불뱀에게 물리게 하시는 것인데
원망케 세 번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리게 하신 것인데

자꾸 불뱀에게 물려서 지옥간다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을 원망해서 지옥간다고 보는 겁니다
문제는 그건 당연한 것인데 정작 언약에서는 틀렸습니다
여전히 자기구원을 염두한 우상숭배사상입니다 모세언약으로 충분하다는 식이라서
다윗언약 곧 장대 높이 달인 인자 안 쳐다 봐도 된다는 식입니다
꺽으신 뼈로는 절대로 안 기뻐하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인데 왜 하나님의 저주로 기뻐하냐 말이죠

결국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멋들어진 구원을 달라 라는 데모 시위를 벌리는 것이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모욕적인 구원인 거리끼는 걸림돌 구원을 거부하겠다 라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것이 바로 음란이다 말이죠

다다다음번에 할 에스겔 23장 제일 끝 구정 49절에서

(겔 23:49, 개역)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현대인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거부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도 음란과 우상이 같이 언급이 되니 말이죠

음란은 반드시 우상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니 음란은 그저 야동에 너무 빠진 정도
이것이 심하면 갑자기 단어 까먹었는데 성욕집착자를 뭐라 하지요
아 변태
대놓고 여성을 겁탈하는 자 곧 성 범죄자 등등
성범죄로 인해서 남자 보다 여성이 얼마나 벌벌벌 떠느냐 말이죠
심지어 남자 또한 동성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 당하면
그 영화 뭐였더라 ~~~수치 모멸 치욕 때문에 감추기 바쁘죠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컬러오브나이트 였던가? 야한영화인데 팝송 좋아하다 보니 알게된 영화인데 어라 너튜브 리뷰를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깡패 두목이 덩치도 엄청 큰 놈인데 남자에게 추행당한 것을 비밀로 해 달라는 내용이 있는 건데 브루스 윌리스 영화에 있지 싶은데 오래전에 봤던 거라 기억이 안나네요
한국영화 석궁날린 사건 안성기 나오는 그 영화처럼 남성에게 추행당한 수학천재이야기처럼 말이죠 안성기 주연의 부러진 화살 이라고 영화가 검색 되네요

결국 현대의 시선에서 음란이
야동중독이나 성범죄자나 변태나 또 동성애까지 확대 시키거나 등등 모든 성폭력 사건을 다 연결하고 포함시킨다고 해도

우상과의 연결성은 아무리 찾아 봐도 찾을 수가 없어요

왜 그런데 성경은 이 음란 음행과 우상과의 연결을 아주 대 놓고서 하느냐 말이죠
현대인에게서는 말이 안되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인데 말이죠
우상 뭐 미신 따위 종교 따위라는 좀더 큰 조직이나 단체라는 집단 곧 다수와 연결 할 수가 없다 말이죠 아무리 집단화 해도 사이비 종교 정도이지 그러니 그 이단에 빠지는 것도
개인 문제이지 이게 무슨 보편적으로 봐야 하는 전체 집단의 문제로 보느냐 말이죠
음란도 개인문제 우상도 개인 문제 인 반면에

성경은 아예 대 놓고서 집단문제 라고 보는데 그것을 바로 애굽이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

소위 초창기 국가의 형태인 애굽은 물로 바벨밥을 그 모태로 삼지만
족장 시대를 지나 왕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왕입니다
국가제도는 곧 왕 제도인 거죠

성경에서 애굽을 언급한다는 것은 곧 인간나라의 왕을 최초로 언급하는 겁니다

심지어 십게명의 열 개의 계명 보다 더 중요한 전문 
십계명 전문은 전체 내용을 왜 언급하는지에 대한 그 취지 목적을 담고 있다 말이죠


(출 20:1, 개역)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출 20:2,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출 20:3, 개역)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바로 3절 첫계명 이전의 2절이 바로 전문입니다 십계명 전문
애굽 땅 종 되었던 너희를 인도한 여호와 인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나 외에는 다른 신 섬기지 말라 라는 겁니다(여기서 종 되었던 라는 표현이 그 전에도 있습니다
“출 13: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그러고 보니 애굽을 박살내는 열재앙 퍼붓고 홍해를 건너고 시내산에서 율법 두 돌판 받은 때이니까 그 사이에 시간의 간극이 있은 거죠)

결국 출애굽을 하는 이유인 거죠

(출 13:4, 개역)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출 19:1, 개역)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3개월의 간극이 있고 그 광야 광야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피 발랐다
그래서 이 율법을 통한 결혼을 선포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럼 율법의 법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결혼의 언약식인 사랑을 선포하는 겁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율법입니까 아니면 사랑 입니까?
아니 누가 법과 결혼하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뭐하고 하냐하면 물체 라고 합니다 물체
물건체는 딱딱한 느낌이 드는 고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돌덩어리와 같은 겁니다
아무리 푹신 푹신한 길다란 베개(잠잘 때 머리에 베고 자는 물건) 아니면 쿠션(죽부인 같이 길다란 한다리 걸칠수 있는 모양을 한)? 뭐라 부르나 싶어 검색하니 그대로 나오네요
죽부인 쿠션 ㅋㅋㅋ
자 이런 물건이랑 결혼하는 심지어 실제로 쿠션에 일본애니그림그려진 
그런 긴 쿠션이랑 결혼까지 하는 조금 정신병적인 자도 있던데 
어떤 여성은 군대까지 다녀오면서 실제로 권총이였던가? 장총이였던가?
M-16 소총이나 K-2 소총처럼 좀 긴 소총이였던가!
제가 또 총관리를 하다 보니 K-1 기관단총을 달라는 놈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멋들어져 보이거든요 문제는 잘 안 맞아요 사격훈련하면 또 한따까리 하거든요
그러다 멋들어진 폼이고 뭐고 이제는 총이 귀찮아서 자꾸 바꿔달래요
기관단총이 짧다 보니 무게가 더 가볍거든요 무거워서 싫다 라고 ㅋㅋㅋ
아무튼 그 여성이 군 제대 한 뒤에도 결국은 총과 결혼식을 진짜로 올려서 해외뉴스에 나오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딱딱한 물건으로 성경은 취급하것이 애굽이라는 국가 인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안 봅니다
국가에는 엄연히 역사 라는 것이 있기에
생동감 있는 역사를 통해서 교육도 하고 오고가고 주고받고 하는 
소통의 이야기 꺼리가 억수로 많은 오히려 국가야 말로
가장 소통의 창고로 보고 있다 말이죠
나라 없이 떠도는 것을 도리어 죽어 있는 딱딱한 매말라 버린 시체로 보고 았지
누가 국가를 심지어 왕을 죽어있는 우상으로 보겠냐 말이죠

그카이 성경은 인간의 언어에 곧 그런 언어로 구성된 사고방식에 안 맞는 겁니다
그 국가인 물체 곧 애굽이라는 우상숭배의 나라가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 자체가 애굽 자체가 우상 그 자체로써
그 우상의 종 되었던 너희를
애굽의 종 되었던 너희를
딱딱한 돌삐와 같은 죽은물건에게 종 되었던 너희를 빼낸 여호와 이다 라는 겁니다

벌써부터 인간은 여기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겁니다
아니 언제 누가 왜 죽은물건체에 종이 되었었던 말인가?
아무도 동의 못하는 말만 하신다 말이죠

그럼 안 따라 가고 동의 안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사람이란 자기가 누구인지 그 자체도 모르기 때문에
혼자가 되면 무서운 공포가 엄습해 와서 또 따라가긴 따라가요
그래야 또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야 자기자신이 딱딱한 물체가 아님을 
들통안당하고자 말이죠
그러니 국가만 물체인게 아니라
인간 자체도 국가와 같은 물체요 우상이요 죽은 시체인 겁니다
좀비가 걸어다니고 있을 뿐인거죠

그래서 실체를 알려면 역사와 시간을 쪼옥 빼면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움직이는 생명체는 무수히 변동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고 변이 변주합니다
살아있으니까 말이죠

자 그러니 지구와 같은 모든 피조물들은 역사와 시간을 뺀 기능으로써 활동합니다
지난주에 언급했나요? 댓글로도 달았는데
지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능만 할 뿐입니다
역사인 시간과 장소인 공간 몸을 쪼옥 빼 버리면 비로소 실체가 드러나는데
바로 기능을 하더라 말이죠 존재 보다 더더더 또렷한 존재인 비존재로써의 기능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지구의 나이가 45억년 이라는 둥 지구도 모르는 판국에 우주의 역사가 147억년이라는 둥 요즘은 이미 틀릴 것을 알고 측정방법에 따른 결과라고 했기에
과거처럼 왜 정확하다고 해 놓고서는 또 달라지느냐 라고 따지지 않는 거죠
올해 24년인가? 내년인가? 또 우주 망원경이 새로 만들어져 측정하면 또 달라질수 있다고
뭐 그거만 보는게 아니라 수 많은 발견을 할 수 있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요
이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의 숫자요 역사이지
정작 지구 당사자는 우주 당사자는 그런 존재에 존재하지 않고
존개가 딱딱한 물체덩어리인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포착할 수 없는
기능으로써 즉 역사와 공간이 쏘옥 빠진 실체로써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 활동은 때려죽어도 볼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기에
지구를 살리겠다는 둥 헛소리를 하는 거죠
지구는 인간의 손에 달린 인간 숙제가 아닌
지구는 예수님의 숙제로써 예수님에게 살려달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고자 퍼뜩 퍼뜩 죽어나가는 종말을 외치고 있는데 말이죠
역사라는 시간과 장소라는 공간 곧 몸을 쏘옥 빼달라고 부르짖고 있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런 애굽을 우상으로 규정하시면서
역사와 그 시간에 물든 색칠이 된 몸을 쪼옥 물빼듯이 세탁기 노아홍수세탁기에 돌려서
탈수 돌리면 뽀송 뽀송 빨래 끝 하듯이
역사와 공간을 쏘옥 빼면 애굽의 실체가 나오는데 바로 우상이다 라는 겁니다
역사고 뭐고 다 날라가니까 딱딱한 돌 조각 밖에 안 남는거죠

그리고 십계명을 선포 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애굽의 종 되었던 너희를 빼낸 여호와 이다 라고
여호와가 누군지 아니?
내 누군지 아니 장첸 아니 여호와 이다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자 그렇게 출애굽해서 광야 라는 죽음 속에 들어갔고
그 죽음 속에서 또 죽음의 3일길 광야 3일길로 가서
드디어 유월절 어린양의 피 바르는 시내산에서 올리는 결혼식이 바로 
십계명을 거룩한 계명을 선언하는 결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결혼식이 깨어집니다

아니 왜요?

십계명 두 돌판 집어던집니다
밑에서 우상숭배 판이 벌어졌거든요

이스라엘이 딱딱한 물건이 되었기에 결혼 할 수가 없어요
우상과 누가 결혼하겠습니까? 총과 결혼하는 그 여자처럼 말이죠

결국 인간은 단 한번도 출애굽 한 적이 없는 겁니다
설사 출애굽 했다고 성공한 증거로 도배를 해도
그 자체가 또 육의 자랑이 되는 딱딱한 우상
울리는 꽹과리 이기 때문에 결국은 딱딱한 자기에게로 회귀 귀환 되돌아오는 우상이니
그 우상에서 단 한번도 탈 출 한 적이 없는 출애굽 한적이 없는 겁니다
정작 애굽 나라가 아무리 쫄딱 망해도

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는 박하사탕 영화의 유명한 장면처럼
한 개인의 땡탈락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 곧 모든 인간의 땡탈락을 기정 사실화 하시면서 들통내시면서

주님은 다시 약속을 진행하시는 겁니다
첫 번째 출애굽 계명은 그렇게 실패 했고
두 번쩨 신명기 계명은 바로 그 실패를 기정사실화 하고서 주신 겁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아무리 구원을 줘 봤자 어차피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기에
줘도 소용이 없다니깐요 헛되기에
주님은 오로지 자기 언약만 탈출 시키시는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시는 일만 하시는 겁니다

에이 그럼 우리를 속였네 
아니 어차피 구원 줘도 못 먹는다는 것을 아시고서 실행하신 것이니까
이거는 속인 거나 마찬가지 이네 라고 나온다 말이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의 실체를 알려주신 거죠

실체를 알아야 곧 깊이 있게 알아야

왜 우리는 안되는지를 알고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면
주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다들 오해를 했지요
우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는 약속을 하셨기에
그 약속을 지키라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면 뭐 합니까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맞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데

자꾸 나 인간 맞잖아
구원 받은자 맞잖아요
구원해 준다 라고 약속해 놓고서 왜 이제 와서 딴소리냐 왜 배신이냐

아니 지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있어도
인간은 자기가 원했던 젖과 꿀이 아니다 라고 줘도 징징징 거리는 겁니다

왜? 나의 역사인 내 시간에 안 맞고
나의 공간에 맞는 내 몸에 안 맞는

전혀 다른 공간 전혀 다른 시간으로써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까 말이죠
흐른다 라는 말은 뭡니까 여기서 저기로 이동한다 라는 시간개념 아닙니까
그리고 땅 내 중심의 땅인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땅이다 말이죠

마치 달이라는 우주 공간의 달에 데리고 왔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내 몸에 안 맞는 달에 왜 왔냐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크가면 니는 왜 따라왔노 처음부터 오지를 말던가
오면 좋을 줄 알았지 아니 공기도 없는 이 달에서 무슨 수로 사느냐 라고 징징거리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달에 가면 마치 무중력처럼 둥둥 떠 다니고
그러면 맛있는 닭다리를 하나 먹을려고 해도 둥둥 떠 다니니까 하루 종일 그저 잡는다고 볼일 다 보면 힘들기 짝이 없는 구석기 시대 보다 더한 상황이 되는 거죠
약속의 땅이 척박한 땅이 되다 보니 활과 화살이 없으면 살수 없다 라고
언제 공룡에게 잡아먹힐줄 모르는 땅에 나는 메뚜기여 나는 메뚜리 랑께~~~
괜히 왔어 괜히 왔어 괜히 따라왔어 나 다시 돌아갈래~~~ 흑흑흑 뚝 뚜욱 뾰로롱 ~~~ 
영화촬영장 박수소리 우와 연기 너무 잘 하시는데요 
뭐여 촬영장이였어~~ (남보원 남성인권보장워원회)
공기도 없어서 바로 죽고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젖과 꿀 니가 직접 떠 먹어라 두두 둥!  둥! 둥!

아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갔더니만
그 땅 그 흐르는 시간은 애굽 땅 우상 딱딱한 우상의 종 되었던 나에게 안 맞는 겁니다
그 말랑 말랑한 젖과 꿀이
어떻게 딱딱한 나와 맞겠냐 말이죠
오해를 하고 갔뎐 거죠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괜히 간 겁니다
딱딱한 우상인데
하나님의 원수인데
뭐 구원을 바랬다고?
젖과 꿀을 바랬다고

그카이 인간은 그 약속의 땅 마저도 딱딱한 우상으로 도배를 하는 겁니다
자 그러니 단 한번도 출애굽 한 적이 없어요

이렇게 다른 민족은 몰라도 이스라엘 만큼만은 음녀이다 라는 지적을 보여주심으로써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숨겨둔 감추어둔 더럽히지 못한 기념이름을 주님은 구원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사 26:8, 개역)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바로 이 주님이 주님 스스로 자기 이름을 구원하는 주의 이름을 목격 증인이 되도록 하시고자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 데리고 나오신 겁니다

자기 구원만을 생각한 거죠
이게 바로 법의 의식입니다

곧 남자의 언어처럼 딱딱한 법의 언어로써의 구원을 바랬던 겁니다
그런 구원은 마귀의 2번째 시험처럼 종교를 자기 구원으로 이용하는 종교라는 마약인 거죠
처음에는 오히려 젤리처럼 유연하게 생동감 있게 날라다니듯이 몰입이 되어서
도파민 활성화로 말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굳어집니다 딱딱하게 말이죠
하이쿠키 라는 드라마에 아이큐 두자리가 갑자기 세자리가 되듯이
영하 리미트리스에 일약먹고 갑자기 천재가 되듯이 말이죠 limitless 무한한
https://youtu.be/rsy_ARDCvLY
https://youtu.be/sppuO-p2mJg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자로 표현하고 그런 여성 속에서도
부정한 창녀 음녀로 표현함으로써
딱딱한 법을 쥘려는 남자와 달리(뭐든지 이겨먹어야 하는 강박증-성공컴플렉스)
여성으로 표현함으로써
창세기의 원리에 따르면 여자는 혼자서는 살수 없는 자이다는 겁니다
머리를 의지하고 바라고 남자인 머리로부터 발생된 창조의 원리인 섬김을 받는 관계에 종속 됨으로써 그 여성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마치 의사가 누구인가를 말하기 위한 환자처럼 말이죠
그러니 건강한 자는 의사가 누구인가를 말 할 수 없기에 필요 없는 겁니다
의사에게도 건강한 자는 필요가 없고
건강한 자도 의사의 기능을 말할수 있는 기능이 없기에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개유] 하여서 꼬셨다 라는 표현이 더 맞더라구요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 2:15, 개역)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 2:16, 개역)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 2:14,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 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호 2:14, 공동)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꾀어내어 빈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주리라.
(호 2:14, 쉬운)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녀를 꾀어서 광야로 데려가 다정하게 말해 주겠다.
(호 2:14, 킹흠정)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끌어당겨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위로하는 말로 이르고
(호 2:14, 한글킹)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꾀어 광야로 데려가서 그녀에게 위로하여 말하리라.
(호 2:14, 현대인)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로 잘타이르고
(호 2:14, 현대어) [사막에서의 종교 개혁] 그러나 나는 다시 그녀에게 구애하여 사막으로 데리고 나가 다정한 말로 위로하리라.
(호 2:14, 가톨릭)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왜 저는 이 개유를 타이르고 달래고 위로하고 다정하게 말한다 라는 의미 보다
물론 어차피 뒤 따라 나오는 의미이지만
꼬신다 꾀다 라는 표현이 얼마나 참으로 적절하다 라고 여기는고 하니

부정의 부정이라꼬
이스라엘은 이미 주님과 자기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가지고 있는채로 따라왔다 라는 거죠
어라 돈을 바랬는데 주님 자기 목숨 값을 주지를 않나
황금을 바랬는데 주의 이름을 주지 않나

황금이나 돈은 천국에 갈수가 없다 말이죠
그거 다 딱딱한 생명없는 우상이거든요

죄 값 치른 화목제물 그리고 주의 이름은 젖과 꿀이다 말이죠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 전쟁 또한 칼과 방패 라는 무기 곧 딱딱한 것이 아니라
젖먹이 말랑 말랑 한 젖먹이 전쟁이다는 겁니다
무능하고 매맞고 웃사꺼리 구경꺼리 되는

여자는 여자인데 창녀 음녀 라는 말은 모조리 다 힘있고 강한 남자를 바라는 모습이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다가 그런 딱딱한 꼬추 곧 우상을 내 반드시 다 제거하고
둘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 그 부부지간에 파고들어서 반드시 너의 남편을 죽이고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돈이 있나 황금이 있나 뭐로 뭐로 꼬실건데?

광야 라는 죽음 속에서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는 주의 이름을 주겠다 라는 겁니다

에이 그 이름이 도대체 뭐길래
돈도 안되는데 말라꼬 안 받을란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래서 이 주의 이름을 구원하시고자
이 무시받는 이름으로써
그것도 이스라엘이 가장 무시하는 이름으로써
그 주의 이름을 무시하는 그 이스라엘을 전리품으로 빼내어서
의사가 누구인지 반드시 그 이름을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겠다 라고 하시면서

너의 짝꿍은 나다 신랑은 나다 라고 여자 옆에 있는 빈자리로써 자신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곧 너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보고 더 기뻐하라 라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옆에 있는 자로서 비로서 신랑의 신부 
곧 나의 사랑하는 자 어여뿐자 헵시바야 쁄라야 하는 호칭이 부르신바 찾으신바 되도록
주의 이름에 걸맞는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자로 찾는자로 삼으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첫사랑이라는 신랑의 신부 답게 처음자리는
바로 음녀
원래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지만
또 애굽의 종 노예로써 음녀로 태어났고
너의 아비는 아모리 사람 너의 어미는 헷사람
포주와 창녀 사이에 태어난 그 처음자리였지만


그런 음녀 보다 주의 이름에 
생명책에 걸맞는 새로운 죄인 음녀 오홀리바 로써
주의 이름이 뭔지 누군지 알도록
그래서 정작 주의 이름을 외치기 위해서 자기 이름이 삭제 되어도 마땅한 죄인
음녀로써 그런 천한 계집을 높였을때에
마귀가 곧 세상이 격동하고 견디지 못하게 하는
천한 계집 창녀를 왕비의 자리에 높였을때에 
머리된 남자의 기능을 제대로 허물많은 여인을 책임졌을때에
거룩측량으로 영광을 입혔을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욥을 통한 마귀와의 내기에서 넉넉히 이기시는
창조주의 지혜를 나타내시겠다 

마귀는 법을 쥐었고
주님은 은혜를 쥐었고
마귀는 율법의 행함을 쥐었고
주님은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을 쥐시고
언약전쟁을 벌리신 겁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내 구원이 필요합니까
주의 이름의 승리만을 구원해야 할 것 아닙니까
즉 내 구원은 내 이름을 위한 내 구원은 또 딱딱해 지는 겁니다 곧 우상이요 탐심입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을 구원하신다 라는 말은
매일 매일 그 매일 구원되신 예수님을 새로 믿어야 하는
사간도 역사도 쪼옥 빠진 딱딱한 것 하나도 없는
완악함 강퍅함이 없는 말랑 말랑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또 우상이 되는 거죠
내 구원 건드렸다가는 다 죽여버리겠다 라고
또 부동산 움직이지 못하는 물체 사물을 사수할 때
그거 헐어버려라 삼일 만에 짓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다 보니
내 몸에 그것도 지옥의 몸 음녀의 몸에 맞는 구원만을 바라다 보니
맹 똑같은 의문의 반복 뿐인 탐심의 구원인 우상일 뿐이다 말이죠

차라리 예수님의 구원을 바라는
애굽에서 늘 어린양의 죽음으로써 나타났다 말이죠
마치 바리새인 시대에 유대나라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났듯이
그들이 절대로 바라지 않는 싫어버린 바 된 모습으로 말이죠

그것은 지금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구원을 우상적입니다 딱딱해요
모조리 인간구원이라는 종교마약으로 인해 딱딱히 굳어졌다 말이죠

해외뉴스 어메리칸뉴스에서 갑자기 미국의 교회들이 문 닫는 수가 폭증하더라 라는 겁니다
아니 지금 가장 떼돈을 버는데 빈부차이가 심해서도 있지만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바로 앞서서 유럽의 교회 문 닫는 것 바로 보고 따라하니
원래 문 닫았는데 뭘 새삼스럽게 문 닫았냐 말이죠
눈치 보다가 말이죠 유럽은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덜 하다 보니
이제야 따라하는데 진작에 하지 말이죠
처음부터 교회가 아니였다 말이죠
처음부터 우상숭배자들이였는데 아까운 돈 말라꼬 내냐 말이죠

https://youtu.be/3bMd4Ilkvy4

우리는 출애굽 한 적이 없어요
늘 애굽을 꿈꾸고 애굽을 사모하고 우상을 사모한다 말이죠
이 음란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주님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라 라는 겁니다

이미 자기가 해결했다 라고 우기는 자들 아무리 들따 봐도 해결하기는커녕
음란해결한 자기를 더더더 우상숭배하고 있으니 말이죠
건강한 자 모양만 의인 모양만 경건의 모양만 달인이 되었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그 다른 복음 쫓는 것은 단 한번도 멈춘적이 없어요

곧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한데 말라꼬 다윗언약이 필요하냐
내가 죄인이라는 말이냐?
꺽으신 뼈
십자가의 죽음
화목제물이 필요하단 말이냐?



애굽에서 어린양의 죽음으로 나타났듯이
이스라엘에서도
구원받은 자 선택된 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의 손에서 빠져나오고자
십자가의 죽음으로 어린양의 죽음으로 빠져나왔듯이

애굽인 된 이스라엘에서 그들이 거리껴하고 걸림돌로 여기는
실족케 하는 이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로써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스라엘로부터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성사시키신 겁니다

사람의 구원은 어차피 헛되기에
허구인 우상이기에
손이 있어도 만지지도 걷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기에
백날 사람의 구원을
사람을 기쁘게 하는 그 종교오락 백날 해 본들 의미가 없어요

오로지 주께서 내 주께
주님이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이 더럽힌 그 이름 속에서 아껴둔 기념이름을
주님 자신이 구원하심으로써

너희가 죽인거 맞제
네 맞습니다
너희가 죽인 주를 하나님께 다시 살리셔서 주가 되게 하셨다 라고

나의 손에 죽은 예수님을 구원하신
그 예수님만을 그 어린양만을 구원하시고자
오늘 말씀을 죄인으로써 음녀로써 창녀로써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주의 이름을 반드시 안 부르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내가 부르는 이름은 결국은 나에게로 되돌아 오는 우상일 뿐이고

주님이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만드시는 이름은
바로 나를 위한 내 이름이 모조리 다 박살내시는 이름으로써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나의 구원을 박살내는 이름을 부르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나의 이름을 제대로 삭제 시킬줄 아시는 심판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 만드시는 이름이다는 거죠


그러니 나를 구원하기 위한 복음은 없다 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사람을 나를 기쁘게 하는 다른 복음이다는 거죠

오로지 예수님만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왜? 자기 이름이 이제는 의미가 없기에

더 이상 나의 이름을 위해 부르는 것이 의미가 없으니
주의 이름 외에는 부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원수임을 아는 자 만이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고
그 이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지 아니 부르도록 만드시는 것이지

나의 이름을 위해서 주의 이름 까지 불러서 덧 붙이는 그런 찌끼를 썩어
혼합물 만드는 것은
그래 그래 해 보라니깐요 답이 되는지
백날 원인을 갖추어 본들 답도 없어요

원인이 없어야만 답이 있는 겁니다

끝만 있는 자는 앞의 원인들 곧 역사와 공간인 딱딱한 지옥의 몸이 삭제된 자이고

끝이 없는 자들은 오로지 역사 곧 행함을 쫓을 수 밖에 없기에
믿음이 없어서 의에 이르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도 내 믿음도 아닌 그래 되면 원인이 있게 되니까
주님의 믿음인 원인 없는 이 반칙 부조리 불륜 스캔들로 인해
결과가 끝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라고 하는데
사실은 끝의 좋고 나쁘고는 없어요
끝 자체가 있느면 무조건 다 좋고요
끝 자체가 없는 상태만이 무조건 다 나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로 몸으로 채우는 겁니다 행함 말이죠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자기가 사는 땅 장소 공간이요
곧 자기자신으로부터 떠나라입니다
떠나면 그거 지키면 답이 되느냐
그 반대입니다 떠나면 지킨 것 조차도 의미가 없는 떠돌이요
나그네가 되는 빈집 빈땅 털털털 텅빈 빈터가 되는
그야말로 괜히 떠났어 라는 죽음 속으로
광야 속으로 무능함 속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그 빈 광야 속에서
이삭이라는 어린양의 희생제물을 접하게 됩니다
이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이 먼저 있었기에
그 죽음에 걸맞는 떠돌이가 되어야 했던 겁니다

네 맞아요 믿음의 주 되신 주님의 자작극에 의해서 말이죠
이 주님의 약속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오늘 본믄의 창녀 음녀가 되어야 했듯이
나그네 떠돌이가 되어야 했다 말이죠

즉 죽은자와 방불한 자가 되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개역)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3, 개역)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6, 개역)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8, 개역)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9, 개역)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 11:10, 개역)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 11:11, 개역)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히 11:12, 개역)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히 11:13, 개역)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히 11:14, 개역)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히 11:15, 개역)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 11:16, 개역)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7, 개역)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 11:18, 개역)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개역)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 11:20, 개역)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아니 여기에 무슨 놈의 성화론자들이 주장하는 행함이 어디 있느냐 말이죠
눈 씻고 그래 안약 계시록 대로 안약을 사서 넣어서 봐도 없어요

20절에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해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했다 라고 나오잖아요
장차 오는 일이니까 보였던 인간의 경험 속에 
내 마음에 저장 할 수 있는 겁니까
경험 되지도 본적도 만진적도 없는 역사도 넣을 수 없는 미래이고
역사는 과거이니까 말이죠
축복 했다 라는 구체적인 인물과의 관계가 있었다 라는 것 아닙니까
이 무슨 뜬 구름 잡는 소리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보이면 안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또렷하고여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 곧 얼굴과 얼굴을 마주 실상으로써의 한 몸 이다 말이죠
자기를 위한 구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둘이 된 관계가 아니라
하나가 된 몸 이다는 겁니다
그것더 풀무불 용광로를 거쳐서 절대죽음을 3일의 간극을 거쳐서 말이죠
잡스러은 혼합믈 찌끼를 분리시킨채
내 쪽에서 다가가서 신랑을 선택하는 자기구원이라는 탐심의 우상숭배를 들통당한채
아까 출애굽 후 3개월 만에 시내산 도착 그리고 언약식 결혼식이 펼쳐졌다 라고 했잖아요
그 죽음의 광야 3일 길을 건너서 말이죠
출애굽한적 탈출한적 없어요 가는 곳 보다 무너진 지옥 애굽을 도리어
이스라엘이 세우고 있더라 말이죠
빈자리를 견딜수 없어요 간극을 어떻게 해서든 메꾸어 좁힐려고 말이죠
그렇게 하나가 될려고 다가와 본들 주님이 도망치십니다

아니 왜?
우상을 썩을려고 임금삼고자 할 때

주님은 주님 자기 이름을 구원시키고자 도망시키는 겁니다

애굽에서 어린양의 죽음으로써 저들 애굽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왔듯이
이스라엘로부터 십자가의 죽음으로 빠져나오신 겁니다

어머니랑 어제 말씀 나누기도 했는데 뭐라고 나누었는고 하니
남자 없이 낳은 여자가 낳은 아기를
용이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못 잡는 이유는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4, 개역)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개역)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개역)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심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3년 반이라는 한때 두때 반때 라는 이 절대죽음 절대심판 속에 숨은

여자와 아기를 용은 놓치는 겁니다
1260일 동안 광야에 숨었다 말이죠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서 세상으로부터 탈출 빠져나왔다
구원받았다 말이죠

이 주틀에 넣어서 붕어빵 찍어내는 겁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목적인데
여기에 무슨 놈의 나의 구원이 어디 있냐 말이죠
또 보이는 나를 구원해 본들 그거 다 헛될 뿐인데 말이죠
허구 안개 연기를 누가 구원합니까?
또렷한 실상은 주님 뿐이고
사람은 그림자 잠시 있다가 사라질 안개일 뿐인데
그림자를 왜 구원하냐 말이죠
성경 어디에도 그런 구절 없어요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구원하는 내용 뿐입니다
주께서 내 주께 뿐이다 말이죠

그러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구원 헛된 구원을 외치는
구원자로 나서는 자들로부터 구원을 구원하는

저들의 성경인 다른 복음으로부터 복음을 구원하는
성경을 구원하는
말씀을 구원하는
약속을 구원하는

너희 이스라엘이 더럽힌 이름 에
몰래 숨긴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기념이름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으면 말이죠

모조리 다 썩어버리니 자기 이름 인간이름과 썩어버리니 말이죠

불 속 풀무불 절대죽음인 3일의 간극에서 나온 이름을
그 기념 이름을 구원하고자
너희가 건널수 없는 이 절대죽음 속에서 나온 이름을
반드시 구원하시겠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반드시 너에게 장가들고자
너의 음란을 너의 전남편을 반드시 죽이겠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상대방 바말이 우상이 있어야 음란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요
그거 주님이 반드시 죽이겠다 라고

주님 자신의 숙제로써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 하시는 겁니다

이 예수님을 구원하는 복음을 외치도록 만드시고자
십자가만 알기로 만드시고자

왜 나는 일급 살인자 모세 다윗 베드로 사도바울
그런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이 십자가라는 주의 이름을 구원하시는지

왜 인간구원이라는 종교오락이 이 십자가 앞에서는
그 실체가 우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낱낱이 까발리면서

주의 주 되심을
예수님을 구원하는 약속성취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나의 구원이 날라가 버리고
예수님의 구원 되심만으로 기뻐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그저 없는 허구인 자기구원을 바라고자 이용하는
종교오락만 반복할 뿐인 겁니다

그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시고자
음녀의 자리에서
텅텅빈 빈자리 광야 죽음 음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에서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은 구원하셨다 라는
이 십자가만 사도바울만 주장하는게 아니라

하나님 본인이 독생자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만 구원하시고
알려주시고자

다른 것은 다 거짓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 다윗언약인 새언약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기에

이 남겨둔 한 씨만 구원 하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주님은 선지자 곧 인자를 끊임없이 소모품처럼 보내심으로써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 이라는 인자의 죽음에 붕어빵 찍히듯이 나온
선지자들 곧 인자들을 끊임없이 목베인 영혼이 된 소모픔을 보내셔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단절에 이스라엘을 접촉케 하시고자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드시는 겁니다
음녀 만드시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만 구원하시고?? 말이죠

죽었는데 우찌 구원하냐 말이죠
이게 안보이게 된 사라진 원인이 없어져버렸는데 우찌 구원되느냐와 같죠
그래야 단절이 되는 겁니다 보이는 것을 구원하는 것은 믿음이 필요가 없어요
행함으로 충분합니다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해요 말라꼬 다윗언약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복음이 구지 필요가 있냐 말이죠 믿음 없이도 행함만으로 충분한데 말이죠
그러나 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거든요
우상으로만 맴돌아요 마침이 없이 의문의 반복만 해요
출애굽 한적이 없어요 자기의 종말이 없는데 
자기로부터 자기가 탈출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출 애굽이 있을 수 있냐 말아죠

어디까지 죄를 가득채우는지 보자
아이고 그것도 죄가?
그래 그래 마음껏 바람 피워봐라

내 너어게 반드시 너의 전남편 바알을 죽이고 애굽을 죽이고
반드시 너에게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스토커 중에 이런 스토커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실상을 아가서에서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다 라고

너 전남편을 반드시 제거해서 너에게 장가 들고야 말겠다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나오시는

이 사람은 죽음 보다 강한

이 시기
이 질투

(아 8:6, 개역)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7, 개역)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오 그래 이 사랑의 불 일듯하는 불로써의 사랑을 물로 꺼트리겠다고?
그래 그래 어서 해 봐 과연 물로 꺼트릴수 있는 사랑인지 함 보자 라고

주님 본인이 음녀인 오홀리바 예루살렘 보다 

더더더더 더더 음부 지옥 창기와 같은

십자가의 부조리 로써

광야 속의 광야
텐트 속의 텐트
부정 속의 부정으로써

그 어떤 접촉 다 차단하고 홀로 이 사랑을 이루기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창조주를 제대로 부를수 있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썩여 있다면
또 그 불순물로 인해서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는
이름을 부를수 없는

여전히 금송아지인 나 라는 우상과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를 송아지 배에다가 새기는 짓을
멈출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는 허상으로 드러났습니다
음녀의 자리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는
출애굽한 적이 없는 자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간은 오히려
주님 자신의 약속을 저런 인간들의 손에서 구원하신 역사 뿐입니다

이 실상을 보고 참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해페를 공중분해를 외쳤습니다
나 라는 자아의 해체
자아로부터 떠나라
자기 땅 자기 이름으로부터 떠나라 라는
주님의 명령에 의해서 저절로
아브라함은 아브람으로부터 떠났습니다
이 땅에서 비록 나그네 떠돌이
죽은자
없는자
무명한 자

오늘 나오는 음녀 같이 되었으나

바로 예수님의 구원을 위해서
주틀에 빵 찍혀나왔던

믿음의 주 돠신 예수님의 구원을 말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떠돌이 된 자 였습니다

다윗도 그랬듯이 아브라함을 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받은 것을
다윗은 아브라함의 사건을 보고 비로소 주의 이름을 구원해 달라고 외쳤듯이
원수 다윗으로 부러 자기자신으로부터 주의 이름을 구원해 달라고 외쳤듯이

오늘 에스겔 이제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 시켜서
포로 잡혀간 그 원수의 자리에서
창녀 음녀 죄인 중의 괴수 된 자리에서

이제 주의 이름을 구원해 달라고 외치도록 다윗언약을 새언약을 확대 시키는 겁니다

(겔 23:38, 개역)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너희가 무너뜨려 불태운 더럽혀진 성소를
너희가 범해 버린 안식일을

주님은 친히 걸어다니는 성소가 되셔서 성소를 구원하셨고
딱딱한 우상으로 만들어버린 성소 
복달라고 비는 산단으로 만든 시온을 구원하셨고
율법을 구원하셨고
율법을 지킨 자기를 높이고자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이 더렵힌 율법을
그 시온을 불도져로 밀어서 70년 만에 다시 구원하셨고
세우셨고

주님이 친히 안식일의 주인이 되셔서
안식일 날만 골라서 병자를 고치심을 거부하는
안식일 지키는 자들인 안식의 주인을 죽인자들로부터 예수님을 구원하셔서 주가 되게 하심으로 인해 종말의 주 
마지막 때의 마지막 아담으로써 살리는 주로
살리냐 죽이느냐 심판하시는 주로 끝을 결과를 마침을 결정 심판하시는 주로 삼으시는
주로 구원하심으로 인해서
이 안식일을 다시 구원하시는 평화의 왕 검을 주러 온 왕
비로소 성전 곧 중심이 세워지는 겁니다

모든 입을 다물게 하는 심판의 주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앞에서 내 구원 내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그 이름이 간담이 녹아서 벌벌 떠는

나(허구 허상 그림자)의 이름을 제대로 삭제 시키는 이 이름을 부르짖으시길 바랍니다

어서 고쳐달라고 어서 심판해 달라고 먼저 외친 지구의 부르짖음처럼 말이죠
모든 피조물의 외침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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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3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 여호와를 거부하였다 (호 6, 4-11)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 1- 3)
호세아 2023 2024. 1. 19. 18:08
23-12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 1- 3)

〈호세아 6, 4-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2쪽, 가스펠; 찬송가 499장 새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찬송가 506장 새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함은〉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주의 자비가 내려와
자비하신 예수여(찬 450) 395
오 신실하신 주(찬 447) 393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853)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181)

〈찬송가 450장 자비하신 예수여, 새 395장〉 

1. 자비하신 예수여 내가 사람 가운데 
   의지할 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맘이 어두웠으니 밝게하여 주소서 
   저를 보호하시고 항상 인도하소서

2. 죄를 지은 까닭에 저의 맘이 곤하니 
   용서하여 주시고 쉬게하여 주소서 
   천국가고 싶으나 저의 공로 없으니 
   예수 공로 힘입어 천국 가게하소서

3. 허락하심 이루어 사랑 항상 있도다 
   모두 이뤄 주심을 나는 믿사옵니다 
   구주밖에 누구를 달리 찾아보리요 
   복과 영생 예수니 더 원할 것 없도다

4. 거룩하신 구주여 피로 날 사셨으니 
   어찌 감사하온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주의  귀한 형상을 나도 입게 하시고 
   하늘나라 가서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찬송가 447장 오 신실하신 주, 새 393장〉 

1.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 같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2.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하나로 드러낸 증거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3. 내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호세아 6, 4-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2쪽〉 

(호 6:4, 개역)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6:5, 개역)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호 6:6, 개역)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8, 개역)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호 6:9, 개역)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호 6:10, 개역)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호 6:11, 개역)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853)

1.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앞에 어려운일 보네
 주님 앞에 이몸을 맡길 때 슬픔없네 두려움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2.날마다 주님 내곁에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 앞에 이몸을 맡길 때 힘주시네 위로함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편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3.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않고 말씀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오 나의 자비로운 주 (16)

1.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나의 몸과 영혼을
   주님 은혜로 다 채워 주소서
   이 세상 괴롬 걱정 근심
   주여 받아 주시고
   힘든 세상에서 인도하소서
              후 렴
   예수 오 예수 지금 오셔서
   예수 오 예수 채워 주소서

2. 모여라 주께 찬양하라
   나의 귀한 친구야
   주 이름 앞에 너 두손 모으고
   오 너의 슬픈 세상 눈물
   너의 쌓인 아픔을
   십자가 앞에 너 모두 버리고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181)

1.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후 렴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2. 주의 사랑은 끝이 없고
   그의 공의는 영원하며

3. 주의 보호는 끝이 없고
   그의 말씀은 풍성하며


(호 6:4, 현대어)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너희들의 진심은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이른 아침의 이슬처럼 쉬 사라지고 있구나.
(호 6:5, 현대어) 그러므로 나는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의 멸망을 알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씀으로 너희를 죽이겠다고 경고하였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듯이 나의 심판이 어김없이 너희에게 닥쳐올 것이다.
(호 6:6, 현대어) 내가 바라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호 6:7, 현대어) [죄악의 천지] 그런데도 너희는 아담처럼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사랑을 거부하였다.
(호 6:8, 현대어) 길르앗은 폭력배들이 들끊는 도시다.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 있는 곳이다.
(호 6:9, 현대어) 숲속에 숨어 기다리는 강도 떼처럼 제사장들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서 살인과 온갖 죄를 저지르고 있다.
(호 6:10, 현대어) 이스라엘에서는 무서운 일만 벌어지고 있다. 에브라임은 다른 신들을 따라가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더러워졌다.
(호 6:11, 현대어) 오 유다야, 네게도 형벌의 가을걷이가 풍년이 들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고자 그토록 간절히 원하였건만!

(마 9:13, 새번역)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호 6:6
(마 12:7, 새번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7, 새번역) 그런데 이 백성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를 배반하였다. / ㉠또는 '아담에서' 또는 '사람처럼'
(호 6:7, 공동) 이 백성은 ㉠아담에서 이미 계약을 깨뜨렸다. 거기서 벌써 나를 배신하였다. / ㉠이스라엘이 요르단을 건넌 곳(여호 3:16)이다. 거기서 하느님을 배신한 기록은 없다.
(호 6:7, 쉬운) 그러나 아담이 언약을 어겼듯이 너희도 언약을 어겼고, 내게 진실하지 않았다.
(호 6:7, 킹흠정) 그들은 사람들같이 언약을 어기며 거기서 나를 대적하고 배신하였도다.
(호 6:7, 한글킹)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처럼 언약을 위반했으며 거기서 나를 거역하여 변절하였도다.
(호 6:7, 현대인) 그러나 너희는 아담처럼 내 계약을 어기고 나를 배반하였다.
(호 6:7, 현대어) [죄악의 천지] 그런데도 너희는 아담처럼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사랑을 거부하였다.

(수 3:16, 개역)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수 3:16, 새번역)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수 3:16, 공동)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우뚝 일어서서 아담에서 사르단 성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둑을 이루는 것이었다. 아라바 호수라고도 하는 사해로 흘러내리던 물이 다 끊어져 백성들은 예리고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수 3:16, 현대인) 갑자기 위에서 흐르던 물이 멈춰 멀리 사르단 근처에 있는 아담성에까지 둑을 이루었고 사해로 흘러 가던 물은 완전히 끊어져 강바닥이 말라 버렸다. 그래서 백성들은 바로 여리고 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수 3:16, 현대어) 그러자 위에서 흘러내리던 강물이 멈춰 둑처럼 쌓였다. 사르단 가까이에 있는 아담이라는 성읍 부근까지 강물이 쌓였고 소금바다까지 흘러내리던 강물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리고 성읍 맞은편으로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아담처럼 언역을 어기고 여호와를 거부했다 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자기의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쌓았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아담은 우리가 아는 그 첫사람 아담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라 다른번역에서 장소로써의 우리가 잘 모르는 자주 안언급하다 보니
장소 아담성 요단강 건널때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바로 위에 여호수아 구절을 아담이라는 장소로써 참고하시라고 올렸습니다
즉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 처음자리에
아니 약속 속으로 들어가는데 거부할 꺼면 들어갈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거부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오히려 약속의 땅 안에서는 언약을 거부하는 마음이 가득함을 보여줌으로써 
애초부터 처음부터 아담 첫사람 때부터 인간은 언약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장소 공간으로써의 몸뚱아리 첫사람 아담이나 장소 아담성 캐쓸이나 
또 시간으로써의 약속의 땅 입성 때나 첫사람 처음사람 첫 때나 
시공간이라는 역사는 반드시 약속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시간을 쪼옥 빼시는 겁니다 그래야 실체가 드러납니다
국가라는 역사성을 빼면 짐승이라는 본성만 남듯이 말이죠
이 존재(역사)의 함성을 잠잠케 하시는 시온이라는 중심에 참성전(예수님)이 오지 않으면
그 입 다물라 잠잠할 리가 없는 거죠)

여호와를 거부 배신 배반 패역했다 라는 말은
여호와를 알지 않고
자기가 아는 여호와를 따로 챙겨서 찌기를 썩어서 혼합물로 다가가겠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언약을 거부하는게 아니라 반드시 역설적이게도 언약을 지켜가면서 언약을 어긴다는 겁니다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득채워가면서 언약을 거부한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번제와 제사에 목숨걸었다는 거죠
뭐 뉴스에 가끔 종교에 빠죠 남편이 부활 할 것이다 라고
죽은 시체 그대로 두는 약사출신의 천주교인 그런 사이비에 빠진자가 아닙니다
나라 전체가 국민 전체가 다 그래요
번제와 제사에 충성하지 않으면 복 받을 수 구원 받을 수 없다 라는 수준이다는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돈에 충성하지 않으면 돈 못 번다 라는 거죠
자본주의 시대에는 신이 딱 하나 뿐입니다 돈입니다
번제와 제사 라는 행위가 바로 언약을 어김이라는 결과가 되는 겁니다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도리어 언약을 안 어길려고 하고 원망을 하지 않을려고 하는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쌓았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지 다윗언약은 필요없다 라고 언약을 거부하는 겁니다
십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은 것으로 충분한데
남을 7번 용서하는 언약으로 충분한데 왜 7에 70번 용서의 언약이 필요하며
왜 뭘 해도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불쌓히 여겨주소서 라는 세리의 고백이 왜 필요하냐 라고
매국노 세리는 하나님 나라를 팔아먹은 자인데 그딴 악마의 고백은 필요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모세언약(율법)을 지킨 것이 도리어 다윗언약(십자가의사랑)을 거부하더라 말이죠
자신들의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첫사랑은 잊어버린 거지요
처음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이스라엘의 처음자리가 졸지에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첫사랑을 언약을 잊어버리고 거부하는 겁니다

이게 성령을 개방으로 보고 연합 세례 일치 동일 합체로 해석하지만
정작 성령은 단절로써 이런 인간들이 가지고 오는 
자기 의 쌓기를 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다 차단 시키는 겁니다 손세례 손연합을 차단하고 
손세례 이게 다 정치죠 자기를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거부하고 육의 소욕을 거부하고
성령의 소욕으로써 마음판의 세례로 주님이 직접 주도하시는 
연합 세례인 회목제물로만 절대죽음인 죽으면 죽으리라 요나의 표적으로만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는 겁니다
즉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사랑? 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독생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은 이 인애와 자비만을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상대적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모습들을 대조 차이로써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두 언약]이라고 했지요 땅의 계집종 하갈과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언약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러니 모든 사람이 언약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거 오해 하면 안됩니다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오히려 더 더 더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킨다 라고
항상 그들은 [열심히] 라는 행함을 쫓도록 되어있다 라느 겁니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의 달인들이다 라는 거죠
말씀실천의 달인들 입니다

결국 자기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
또 자기의 의를 쌓기 등등은
자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함입니다
자기가 있음 자기가 살아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에게로 회귀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자랑 육의 자랑으로 도착하는 겁니다
이것이 번제와 제사입니다

곧 북이스라엘 신앙인 셈이지요 오늘날 성화론자들의 신학입니다
바리새인 신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라고 했는데
우기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 라고 다가가는 식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의 특징이고
우리가 살펴본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벨론 여자들 곧 우상숭배자들의 특징이다고 했지요

바로 이것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인간 쪽에서 이것 말고는 할게 없어요
접속 자체가 되니까 말이죠 행함이 가능하니까 말이죠

문제는 믿음은 아무리 해도 단절이요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것으로 통보받는다는 겁니다
땡 탈락 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매국노 세리의 고백이 필요없는게 아니라
다윗언약이 필요없다 의사가 필요없다! 내가 뭐 환자냐? 죄인이냐?
의인답게 살아야 하고 선민답게 살아야 하고 건강한 자 답게 살아야지
왜 자꾸 죄인 죄인 고만 좀 캐라 마이무따 아이가 (그 박길땡 목사의 주장이 사실은 모든 인간의 주장인 겁니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십자가 십자가 고만캐라 좀 제발 짜증을 내는 거죠)

라고 단절이 제대로 되다 보니 믿음은 오기(신념,종교심)로 땜빵하면 되지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꺽으신 뼈로 출발하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그 비유 비밀은 필요가 없다

그래 그래 율법이 없는 이방인 너희는 다윗언약 쫓으려 므나
실로암 소경 그래 그래 3년 짜리 아니 실로암소경 너는 만난지 딱 하루이니까
하루짜리 아니면 그 청년 33세 쯤이니까 33년 짜리 예수의 제자나 되어라
그대신 우리 유대인 영역에는 넘어오지 말고 나사렛 이단 예수나 믿어라
우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울(나중에는 바울)이 너희 이단들을 다 몰아낼테니까
나는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로써도 충분하다 예수의 제자 될 필요가 없단다
율법 없는 저 개같은 이방인이나 할 짓 안할란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막 12:33, 새번역)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히 10:6, 새번역)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히 10:8, 새번역)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입니다.
(히 10:6, 쉬운) 또한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와 죄를 씻는 제사인 속죄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히 10:8, 쉬운)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먼저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도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제사들입니다.
(히 10:5, 현대인)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며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와 죄를 씻는 속죄제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
(히 10:8, 현대인)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주께서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거나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이런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임)

(마 9:13, 쉬운) 너희는 가서 ‘나는 희생 제물보다 자비를 원한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 9:14, 쉬운) 그 때,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전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성경검색프로그램에 쉬운성경번역에
마태복음에 9장 13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라는 문장이 있길래
어라 다른 번역은 없던데 뭐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오류이더군요

오자 신고
http://www.bible4u.pe.kr/zbxe/error/43240

햇볕같은 이야기 이 사이트는 찬미예수 최용덕과 연관된 가족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상관 없는 것 같고요
최용우 수도사는 목사되기를 포기하고 일반교인으로 돌아갈려는 
그래서 자료수집으로 유명한 사이트인데 아무튼 오늘본문과 연관된 진리를 찾을려고 무지 노력하던데 ~~~
https://cyw.pe.kr/xe/index.php?mid=a25&document_srl=142094
이 링크는 쉬운성경 오자 그대로 나오길래 프로그램 혼자 그런게 아니더군요

최용우에 대해서는 https://cyw.pe.kr/xe/index.php?mid=a44&document_srl=170819

자 다시 돌아와서 오류인가 인터넷검색해 보니 오자 맞더라구요
그런데 오히려 그 오류가 오늘 본문을 설명하는데 참 적절하다 싶더라구요

그 새술은 새 부대는 먼저 언급해야 할 오늘 본문을 이야기 하고 나서 
왜 그 오류가 적절한지를(오류를 그 문장에서는 안 맞기 때문에 떼어내고 그 의미상 오늘 본문에서는 딱 맞는 겁니다) ....

오늘 본문은 호세아입니다 즉 다윗언약입니다
그런데 다들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왜 더 이상 다윗언약은 필요없다 라고 거부하는
그 역사속에서 주님이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런 사고방식 안에서 보셔야 합니다

사건이란 존재를 무시하고요
존재는 사건을 무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네 맞아요 육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무시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의 소욕을 거스리듯이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거스리는 겁니다
성령이 그러니까 사건화 시키는 거죠 육은 사건화 할 줄 몰라요
그저 자기 존재만을 위한 짓 밖에 안해요

그래서 존재는 자기 있음 즉 자기 살아 있음에서 출발해서 자기 에게로 되돌아 오는 겁니다
자기에게로 회귀하는 거죠
그러나 사건은 뉴스에서 나오는 그런 사건사고가 아니라
세상에 딱 한번 역사 속에서 딱 한 번 벌어진 사건으로써
마치 역사라는 풍성에 송곳인 묵시가 사건이 역사 속으로 풍선 속으로 침투한 사건입니다
이건 뭐 딱 한 번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시작하자마자 풍선이 송곳 바늘에 찔려 뻥하고 터져버리니까
역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허구로 드러난 사건이 된 거죠
그 딱 하나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
곧 오늘 본문의 인애와 자비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믿음이라는 묵시의 세계에서 역사 속에 침범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 역사에서는 믿음이 불가능합니다 그저 행함 뿐입니다 존재만 우길 뿐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믿음 곧 예수님의 죽음만 외치는 겁니다
이 꺽으신 뼈로만 사는 사건이 바로 다윗언약입니다
신약의 성도는 십자가의 죽음인 화목제물 
곧 인애와 자비라는 믿음의 주에게서만 나오는 믿음으로만 다시 사는 겁니다

지금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가정 번성할때에 외치고 있습니다
더더욱 쿠테타 일으킨 예후 장군이 아합왕과 이세벨의 자녀인 요람 왕을 죽이고
또 이세벨을 죽이고 난 뒤에 
예후 장군의 자손들이 종교개혁 아닌 종교개혁의 환경 속에서 가장 번성할 때에
저들 남 유다 4명의 왕, 북이스라엘 2명의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 1:1, 공동)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내린 야훼의 말씀. 유다에서 우찌야와 요담과 아하즈와 히즈키야가 왕노릇 하던 때요, 이스라엘에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노릇 하던 때였다.㉠ / ㉠호세아가 예언 활동을 한 것은 주로 우찌야, 여로보암 II세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므나헴(기원전 745-738년), 브가히야(기원전 738-737년), 베가(기원전 737-732년), 호세아(기원전 732-724년)의 시대이다.
(호 1:1, 쉬운) <부정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유다 왕으로 있던 때이며,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으로 있던 때입니다.

여섯 명의 왕 그것도 제일 잘 나가는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성을 이어주는 가장 번성할 때에

주님은 존재가 아닌 사건으로써
기능으로써 의사에 맞는 죄인을 부르시는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의 사건을
그 묵시를 침투하시는 역사 라는 풍선에 송곳바늘로 푹 찌르는
역사 속의 풍선 속의 바람 빼기
역사 빼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실체가 드러난다 라고 했지요

7번째로 호세아에게 묵시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니
이 호세아는 화평을 주러 온 게 아니라 검을 주러온
안식의 주인으로써 이 안식일 지키는데 열심인 번제와 제사가 가득할 때에
인애와 자비로써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 말이죠
왕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놈 없고요 하는 왕 없고요
호세아가 그 일 곧 사건을 화목제물을 다윗언약을 펼침에 있어서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처음자리를 찾으러 왔다 말이죠
그 처음자리에 있는 자가 없기에
첫사랑의 언약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아무리 저들이 거부해도 주님은 죽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죽음이 아니면 역사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화목제물 되신 십자가의 죽음을, 그 첫맹세를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심지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 끝물 마지막 멸망 전에 투입이 된 
듣기는 들어도 못듣도록 존재 아닌 사건으로써의 
단절하시기 위해서 배치된 사라지는 매개자(역사성이 있을수 없습니다)입니다
곧 사건입니다 호세아 자체가 사건덩어리 곧 인자입니다
그 사건 앞에서는 역사 곧 존재는 사라짐을 이전 것은 지나감을 당하는 겁니다
사망 권세 죽음을 없애버리는 죽음으로써
사망 자체를 삭제 시키는 진짜 죽음으로써 말이죠
이 인자의 기능에 세워진 나라가 이미 있기에
눈에 보이는 존재의 나라는 삭제 되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은 사라지는 단절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아 그럼 우리가 언약을 기억하고 여호와를 배싱하지 않으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오늘 말씀의 취지를 모르게 되는 겁니다

또 존재로 돌아가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존재로 날라가고 역사 곧 시공간도 날라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충돌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의 죽음과 자기 의를 쌓는 것과 충돌하고
다윗언약과 그냥 다윗언약이 아닌 모세언약의 정신을 담고 있는 다윗언약과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신앙과 충돌함에 있어서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단절을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러니 깨달을까봐 고침을 받을까봐 돌아올까봐 걱정 하면서
못 돌아오도록 차단하기 위해서 증거함이지

그래야 주님이 자신을 알려주시고 되돌아오고 고침을 받도록 하시는
화목제물을 완성하시지
안그러면 또 인간의 숙제로 이루어지는 여호와지식 돌아옴 고침받으면
또 의문의 반복으로 다윗언약을 거부하는 모습 밖에 없음을 또렷히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인간의 숙제를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의문의 반복의 다람쥐챗바퀴만 돌 뿐이지
결과가 없어요
결롸란 원인 없이 되는 겁니다 원인이 있으면 존재가 있으면 결과가 없어요
이건 과학의 사고방식인 원인찾기의 논리에서는 이성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과학은 종교가 되었다 지젝의 주장인데 아니 처음부터 종교였던 거죠

그러니 모든 인간은 이 연합시도 연결 접촉시도라는 그 본능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먹기를 탐하고 경제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멋들어진 구원 곧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종교이고
그리고 정치 곧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전쟁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바로 샛별을 자리를 앉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연합 접촉 연결을 시도하는 겁니다
성령을 개방으로 해석하는 것 조차도 북이스라엘 신학입니다

그거 마지막 북이스라엘 선지자 호세아가 차단 단절 시키는 겁니다

자 그럼 처음자리 부터가 나는 언약을 거부할 수 밖에 없고
(북이스라엘 신앙은 절대로 언약을 거부하고픈 마음이 없음에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려고 하는 마음그런데 정작 약속은 예수님은 너는 반드시 닭 욹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토록 만드시는
언약임을 다윗언약임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또 여호와를 거부할 수 밖에 없는 맏아들이 탕자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사랑을 거부하듯이
힘써 여호와를 알자를 거부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다는 겁니다

지난 번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했는데
이 여호와를 알자 가 바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겁니다
예수님 본인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세 번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베드로의 숙제를 막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역사성은 고때만 세 번 부인하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세 번 부인하는 겁니까
그래서 첫사람 아담처럼 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즉 뭘 해도 다 죄이다는 겁니다
죄가 덮쳐졌다 죄가 주체가 되어서 인간을 첫사람 아담을 다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번제와 제사 라는 역사성을 빼버리겟다 곧 행함을 빼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당연히 내밀 것 하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빈털터리가 되니까
비로소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심판의 주만 보이는 겁니다
그 심판의 주를 보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간담이 녹아서
주여 불쌓히 여겨달라고 하는 겁니다

인간은 존재로 나 존재로 승부를 거는 겁니다
그 존재에 도움을 구하는 밧데리 충전하듯이 하나님의 존재
예수님의 존재를 끌어와서 도움을 받아서 승부를 거는 겁니다

그런데 사건은 기능은 바로 그런 존재를 공중해체 시켜버리고
사건 스스로가 말씀 의 운동력만이 새로 창조하시는
이전 것은 단절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고
새 술은 새 부대를 외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존재인 내가 기능으로 옮기는 작접을 할 수 없는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거죠

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가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요일 4장 10절) 인지를
그 내막을 아는 겁니다 아 알면 되겠구나 가 아니라
알면 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자격 조차 안되는 화로다 화로다 망해야 할 자인지를 아는 거죠
즉 정작 하나님을 아는게 아니라
비로소 자기자신을 제대로 아는 겁니다
왜 하필 남북분단의 땅에 태어나고 왜 하필 독재자의 세상에 태어났는가
애굽왕 박통령 때나 문재앙이라고 징징 거리는 자에게서도 역시나 문재앙독재자 때에 왜 태어나고 백성이 되어야 하는가
모든 피조물 이나 날과 달과 모든 절기나 지구나 해 와 달이나
모조리 다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는데 있어서 이 예수님의 죽음과 나를 대조 시키는
예수님 VS 나 전쟁
고려 거란 전쟁
여호와 VS 이스라엘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 전쟁입니다
이 이름을 나의 구원을 위해 끌어당겨서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물리쳤고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주의 이름은 바로 나의 이름을 삭제시키기 위해서 주어진 이름전쟁입니다

나의 이름을 제대로 삭제 시키지 못하는 주의 이름은 주의 이름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삭제시키는 그 주의 이름만이 나를 생명책에 기록하실 자 이다는 겁니다

이걸 또 철학자들이 휼내를 냅니다 소크라테스를 기원으로 하는 철학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최고의 지혜라고 지들끼리 칭찬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이미 유대교 탈무드에서도 나옵니다
그렇기에 실천을 해야 하닌데 모든 종교는 실천교 이니까 말이죠 인간숙제교 이니까 말이죠
문제는 그렇게 행함을 쫓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에 행함완료에 이르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정작 유대교가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 사마리아인 곧 북이스라엘
이방인과 혼합이 된 잡종이 더럽기 짝이 없는 자들이
도리어 의에 복종하고 의를 믿으니 의에 거룩에 이르렀다 라는 겁니다

이 행함과 믿음의 충돌
법과 은혜의 충돌
모세언약 껍데기와 모세언약정신의 완성인 다윗언약 곧 원수사랑완성의 충돌인 겁니다

이건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충돌에서도
그리고 오늘날 성화론자들과 성령과의 충돌 속에서도 나옵니다

어떤 교파도 천국간다 라는 장담을 주는 것 자체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을 사기치는 겁니다

아 그럼 교파를 초월한 초교파? 그 초교파도 작살내지 못하는 언약은
가짜 언약 인간이 썩어버린 겁니다
아 그럼 십자가만 따르면 되겠네 그것도 십자가 자체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진짜 십자가 앞에서는 모조리 세 번 부인하고 모조리 다 도망가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그렇게 지옥의 몸임을 들통내시고 십자가 스스로 모으시는 겁니다
사망의 몸임을 지적 받지 않은 자는 절대로 모일수 없도록 말이죠

그 십자가 앞에서 뭐 신앙을 100년 1000년 했다는 둥
십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토색하지 않았다는 둥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정작 율법대로 사망의 몸임을 부자청년에게 알려주잖아요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나누어 주지 못하는 지옥의 몸 이웃을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치 않고
도리어 등쳐먹은 것이 들통내는 율법을 거부했는데
애초부터 율법을 거부했기에 율법을 지켰다 라고 우기는 것임을 까발려주시는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보여주시는데
안 알려고 등 돌리고 돌아서 다시는 안 보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안보는
둘로 나누어진 단절인 원수의 관계로 남겠다고 나오는 겁니다

이 심판주 앞에서 정작 매국노 세리는 불쌍히 여겨달라고
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니
헹함의 법칙 밖에 없는 인간 세상에서
성령의 법인 인애와 자비를 바라면서 주여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비로소 자신이 심판받아 마땅한 사망의 몸임을
지옥의 불에 타는 몸임을
지금 그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이 불타야 함을 알고서
불 속에 들어가서 주여 당신만이 나를 찌끼로 제대로 심판하실 정금이십니다 라고
불 지르러 오신 예수님을
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둘 다 불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겁니다

이게 철학자들의 지혜인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안다
인간은 쥐 뿔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안다 라는 것을 발견한 것과
족히 비교 대상이 될 문제이냐 라는 겁니다

그 이전에 훨씬 이전에 유대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아무것도 없기에 그들은 실물 없이도 교환 할수 있는 은행을 만들고
금융시스템을 만들었는데 ~~~~~~
실물이 없는데 어떻게 교환되느냐 소통 접촉이 되느냐
바로 그들의 믿음이 신이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곧 돈이 신이 된 겁니다
모든 인간에게 소통 되는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돈입니다
이 돈에서 출발해야 마귀가 유대인을 장악한 겁니다
그런 자들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
왜 언약을 거부하고 배신하느냐 라는 소리는 다 헛소리가 되는 겁니다
다행히 말씀스스로가 운동력이 있어서 언약 스스로가 바로 우리를
북이스라엘을 남유다를 공중해체 시킴으로써 헛소리 허풍 그림자가 아니라
실상이 되도록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가 빍히 보인다 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십자가 만큼은 헛소리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알고서
이 헛소리를 진리로
그들의 보편적진리를 헛소리 허풍 구체적 보편적진리로 만드시는 겁니다

돈은 모든 인간을 소통케 하는 신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즉 이 말은 십자가는 유대인들아게서 마저도 거부당하게 되는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오로지 이 단절로써만 하늘에 소통되는 단 유일한 하나로 만드시는 겁니다

가장 거리끼는 걸림돌이
가장 뛰어난 유일한 지혜요 그 지혜는 세상이 견디지 못할 만큼 격동케 하는
천한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시는 진짜 실천완성을 보일때에
비로소 인간의 사망의 몸은 모제의 자리 샛별의 자리에서 끌려내려져서
심판의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괜히 유대인이 십자가를 목에 탁 걸린 뱉을수도 없도
그렇다고 삼킬수도 없는 목에 중간에 걸린 거리끼는 걸림돌로 여기는지

다른 것이 다 소통했는데
그거 따라갈자 없어요
아니 민족 자체가 나라도 없이 떠돌면서 결핍에서 나온 사고방식을
아무리 흉내내어 본다고 해서 따라잡을 문제가 이니니 말이죠

심지어 지젝은 유럽의 근대문명을 유대인이 다 살렸다 라고 해도
유대인혐오 시기심 부러움으로 인해 늘 쫓겨남을 당해도
소통으로 다 극복하고
돈이라는 신으로 다 극복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딱 하나 소통 할수 없는 단절인 이 십자가 만큼만은
아무리 완벽하게 다 갖추어도 딱 하나 빠진 것 하나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꺽으신 뼈 하나가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이 화목제물 앞에서
왜 이스라엘은 해체 되어야 함을 보여줌에 있어서

그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을 보고

마치 예루살렘 거주민이 포로잡혀가는 이스라엘백성을 보고 비웃었는데
그 다음 니 차례이다처럼
망하는 북이스라엘 보고 비웃던 그 남유다 에게도
그 다음 차례 니 차례다 라고

왜 이 해쳬가 바로 여호와를 알자가 펼치는 일임을
인애와 자비가 이스라엘을 멸망 속으로 집어넣는줄

그럼 이건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요
이스라엘이 그럼 어차피 소명되고 존재하지 않게 사라지는데
말라꼬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신다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를 배신함이 처음부터 첫아담부터였다 라는 이런 지적 자체가

존재가 사라질껀데 말라고 하시느냐
불 속에 들어가면 다 사라지는 재가 되는데

바로 이겁니다

여호와를 알자를 이루시기 위해서
불 속에서 이루시는 겁니다
사라지는
인간의 뇌가 녹아 버리는 아무런 생각 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인 사랑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인애와 자비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따라할 생각 조차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의 숙제가 없어요
주님의 숙제 뿐인 주의 이름의 전쟁입니다
그러니 이름전쟁은 나를 선지자노릇으로 귀신 물리치게 만드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그 이름으로 미움을 받는 사건을 만드시고

저들에게서 삼키지고 뱉을수도 없는 거리끼는 걸림돌로 만드는 겁니다

그게 호세아입니다 호세아 라는 인자가 투입이 된 것 자체가
이미 주님의 숙제가 펼쳐짐에 있어서 공중해체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여거서 다들 반발하는 것이 뭔고 하니

아 그럼 호세아에게 무슨 유익이고
이스라엘에게 무슨 유익이 되고

가장 이해가 안되는 그럼 뭐가 하나님에게 유익이 된다고 저런 일을 벌리시느냐 라는 겁니다

왜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단절시키고
언약을 거부하게 만들며
여호와를 배신하게 만드는지 말이죠

물론 그 이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모세율법을 실천할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것 인정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실패하지 않도록
그리고 역사가 점점점 발전하고 인간의 문명이 똑똑해지고
수 많은 사람들의 환경이 그때와 달라졌기에
더 좋은 환경에서 기회가 많이 되도록 허락하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될까봐 아예 원천 차단하듯이
그 과거의 행동을 붙잡고 현재 미래에 까지 다 단정시켜버리면
우리는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사느냐 라는 겁니다

그래서 억한 심정에 보내는 선지자 마다 족족 죽여버리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더더더 간극 좁힐려는 것아
곧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어 우리 조상들은 선지자를 죽였지만
우리는 이 선지자의 무덤을 기념하고 박물관으로 만들고
자라나는 미례세대에게 교육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 라고

바로 이 자체를 가지고 장난 오락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너희 조상들이 똑같이 미래세대에게 가르쳤고
그 미래세대가 지금의 너희이며
이 역사는 의문의 반복처럼 마침이 없이 반복이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럼 우짜란 말이냐 이래도 안된다 저래도 안된다
니 말 마따나 단절이라매? 단절 된 대로 되고 있다는 거라매?

내 손에서 떠난 약속 스스로가 움직이는 운동력을 보자 라는 겁니다

누구 말마따나 과학자 뭐 노벨상 받은 물리학자가 주장했다곤 하는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사건만 있을 뿐이다
즉 움직임 운동력만 있을 뿐이다 라고 하던데

인간이 지구를 살리느냐 못살리느냐 가 아니라
지구가 인간에게 죽어가면서 예수님의 죽음인 이 단절의 3일을 절대죽음을 외치고 있다는 것에
우리가 눈을 귀를 못 뜨고 못 듣는다 라는 사망의 몸임을 직시하느냐 라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뚱딴지 같은 낯선 말이냐
비유 비밀 수수께기 같은 소리냐

인간 끼리 소통되는 말만 하다가
이 단절의 언어를 외침에 있어서
소통의 언어가 안통한다는 것 자체에서 짜증을 낼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짜증 내는 소통의 언어 밖에 모르는 몸을 죽이시고
단절의 언어만을 소통시키는 몸으로 만드시지 않으면
이 성경 말씀 자체가 나와 상관이 없으니까
부자청년처럼 등돌리고 돌아서 가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수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끼리 백날 소통되는 언어로 사고방식을 구축하면 뭐합니까?
예수님과 대화를 할려고 하니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려고 하니
거리끼는 걸림돌에 탁 하고 걸려 넘어져 실족케 되어버리니 말이죠

아니 천국에 가서 대화 할 수도 없는 언어를 가지고 가본들
내 육체의 언어를 가지고 가 본들 거기서는 무슨 소리인줄 하나도 못 알아 보는데
궁궐에 살고 천국에 살아본들 무슨 소용입니까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그것이 지옥인데 말이죠

그래서 사망의 몸에서 나오는 언어에서는 오로지 단절 뿐이니까
주여 긍휼히 여겨 달라고

즉 주님의 숙제로 제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얼굴을 마주 못 보는 것 자체가 지옥인 사랑이 없는 나라이고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소음 뿐인 지옥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여러분도 잘 아시다 싶이
대화가 안 되는 부부가 있다 칩시다
이미 벌써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자임을 즉각적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소경이고 거기에다가 귀머거리이요 또 거기에다가 벙어리 까지
장애 3가지가 덮쳐진 자가 있는데
그녀의 신랑이 예수님이라면

그 어떤 단절에도 불구하고
늘 얼굴도 못보는 소경임에도 불구하고 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부부이다 라고
다들 그 어떤 누구도 반박 못하는 사실로 여기면서 볼 것이다 말이죠

늘 스킨쉽으로 인해서 둘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철거머리처럼 딱 달라 붙어서 하나가 된 모습 말이죠

그런데 두 눈도 멀쩡 두 귀도 다 멀쩡 말도 할수 있는 건강한 자 임에도 불구하고
대화할 남편이
두 눈으로 얼굴을 볼 신랑이
두 귀로 들어야 할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백날 궁궐같은 천국에 살아본들 그 무슨 소용 있냐 ~~~~~~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거늘 ~~~~~~~~~~


그래서 이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데
사랑을 주시고자 하시는데

모조리 거짓으로 만드는 거짓목자들로 인해서]
가정부로 다 만들어 버리다 보니
바쳐야 복 받는다 라고 행함을 쫓도록 만들어 버렸다 말이죠
가정부와 아내의 차이가 뭡니까?

아내는 아무리 잘 못 해도
그게 오홀리바 아닙니까 
그 긍휼 보다 더한 긍휼로써 자비로써 모든 허물을 다 덮는 것이
아내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가정부는 가정부 스스로가 변상하겠다 라는 법 대 법으로 인식하기에
법으로는 상대를 하지 않기에
언제든지 미리 변상할 자세 뿐인
그카이 대화할 상대가 없는 겁니다

돈이라는 우상이 손도 없고 귀도 없고 눈도 없고 만지지도 못하는 손도 없는
그 우상을 가지고 소통을 할려고 하니

언제 배신 때릴지 모르고 먼저 배신을 때리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능 자기 유익을 염두하고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게 밖에 없는 겁니다

소통의 언어는 말이 소통의 언어이지 바벨탑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단절의 언어였고

단절의 언어인 비유 비밀 십자가의 비밀의 언어는
단절일줄 알았는데 제대로 나를 위해 죽으시는 죽으시는 절대죽음으로써 대신 매 맞는
사랑의 언어 긍휼의 언어입니다

이 긍휼이 오늘 본문에서는 자비를 원하신다 라고 이 자비의 의미인데

그냥 자비가 아니라 그건 우리가 다 아는 언어이고 그건 존재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고

가능의 언어 사건의 언어 비밀의 언어 비유가 되어버리면

이 자비라는 의미는 부정한 자에게 불쌓히 여겨 주시는 긍휼로써
부정한 자임을 들추어내는 의미인 거죠

즉 오홀리바 광야 속의 광야
텐트 속의 텐트
긍휼 속의 긍휼 아닙니까

여성의 자궁인 히스테리 속의 히스테리입니다
즉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이다는 겁니다

남자는 7일 부정 여자는 14일 부정한
그 부정 보다 더더더 부정한 부정의 부정으로
긍휼의 긍휼로 오시는 이 자비만이

나의 부정함을 제거하는
눈물을 씻겨주시는 자비 인 겁니다

주여 제발 불쌓히 여겨주소서 긍휼을 베풀어 자비를 베불어 주소서 라는 의미는

밤에 주의 성실하심 만이
나와 애굽과 교만한 샛별 계명성과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와
전쟁을 하셔서
그 전리품으로 빼내시는 이슬 곧 인애 아침에 나아오는 이슬 
청년 이 되게 해 달라
주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나온 청년이다는 거죠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니 밤에 주의 성실로 애굽을 치듯이 나와 전쟁을 하시는
자비로 긍휼로 제발 나를 지근 지근 밟아 죽이시고

아침에 주님께서 붕어빵 주틀을 완성제작하셨듯이

그 절대죽음인 3일의 간극을 거쳐서 나온 자들을
아침에 붕어빵 주틀에 넣어서 찍어서 붕어빵 완성하소서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주틀제작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언약을 약속을 어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 하고 거부하고
예수님을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는

세 번 씩이나 모른다 라고 부인하는 그 처음자리

그때만 세 번 부인하고
그 때만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한게 아니라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첫사랑 아담 때부터 언약을 어기게끔 태어났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태어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태어났고

바로 이 언략이 벌리신 사건에 의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내 밀것이 없는 탈탈탈 털린 빈 손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에서
주의 자비로 말미암아
밤에 주의 성실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근 지근 나를 밟아서 빈털털로 하게 하심으로써
찌끼와 정금을 분리 시킨 그 처음자리에서

비로소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은 자기의 의 쌓기를 지근 지근 밟아서
하나님의 원수임을 들통내지 못하는 도리어 거꾸로죠
그 카이 7에 70번의 용서 앞에서도 자기가 남을 7번 용서한 것을 들이내미는 겁니다

일만달란트 탕감 앞에서 내 돈 띠 먹고 도망간 백데나리온 안 갚은 죄인을
자기가 건강한 자인냥 의인인냥 심판하더라 말이죠

3개월 노동임금이니 누구에게는 천만원 일반 서민에게는 큰 돈입니다
그러나 일만달란트 44조 앞에서는 뻔데기 앞에 주름인데

바보 같이 44조를 날려먹고 천만원 백데나리온을 택하는 바보 멍청이가 어디 있냐 말이죠

그 바모 멍청이가 바로 남이 아닌 우리 자기자신임을
발가벗은 자 임을 거울로써 비춰 주는 것이

비밀 비유 수수께끼 언약의 말씀인 겁니다

언약을 어기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겠노라 라는 자들은
이건 뭐 본능이라 어쩔수 없다 해도
더더더 어쩔수 없는
거울이기에
아니 자기 얼굴을 비춰주는 다 보이는 거울 앞에서
발가벗겨지지 않겠다 라고 남들을 다 속인다 해 본들
주님 앞에서 소용이 없습니다

네 맞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항상 죄인임을 밝혀내시는

주께만 범죄한 자 만들기 이다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만

이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충분한데 말라꼬 십자가 용서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복임은 다윗언약이 왜 필요하냐
다윗은 살인죄 저질러서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살인죄 안 지었잖아
그카고 저 다윗 꼬라지 봐라 남의 여자 취하고 남의 남편 죽이고
남의 아이까지 죽이는 저런 갈때까지 간 인생막장 뭐가 옳다 라고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온 다윗언약을 수용하냐

모세언약이 만약 흠이라도 있으면 또 몰라
하나님 본인이 인증마크 팍팍 찍은 인증제픔인데

이걸로 충분한데 뭐가 또 필요하냐 라고

네 맞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안 되겟다 라고
내밀 것 하나 없는 빈손 빈털터리 안 되겠다고

아직 소인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다 라고 배불러터진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소인에게는 남을 7번 용서한 의로움을 쌓은 마일리지가 남아있습니다

이게 남은자 운동하는 놈들이다 말이죠 

남은자는 그 반대로 다 불태워 죽여서 하나도 남지 않도록 다 태워버린 단절인데
예수님의 죽음인 새순으로부터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우는자를 남겨두심인 인데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가 아니라
의를 쌓은 남 7번 용서한 그 의인의 자리에서 남은자를 반대로 거꾸로 외치고 있으니

인애와 자비도 긍휼도 사랑도 다 반대로 보는
다윗언약을 반드시 거부하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강퍅한 마음에서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카이 호세아 인자를 보내서
거울을 보내서
수수께끼 비밀
단절을 보내서

모조리 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허물어 버립니다

남은자는 이제 주님의 손에서 직접 나올 문제가 되도록 말이죠

남유다도 똑같이 당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나라도 없고 민족도 없고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올자는 다 나오도록 넉넉히 충만하게 하시더라 말이죠

그카이 이 말씀을 듣고 간담이 녹는
여호와의 이름만 듣고도 말이죠

그 이름만이 나의 이름을 나를 제대로 짖밟는
하나님의 원수 임을 들추어내시고
그 원수에게서 빼앗고 탈취 늑탈
스알야숩 남은자만 돌아오지 그냥 돌아오는 자는 딴데로 돌아가더라 말이죠
오로지 예수 라는 문으로만 돌아오는게
딴 문으로 돌아왔다 라고 우겨본들 소용이 없듯이 말이죠
임금 삼고자 해도 도망치시듯이 말이죠

(시 24:7,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9,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예수님이 직접 들락날락하시는 소통의 문으로 오지 않는 이상
인간이 아무리 들락날락하는 문을 지어도 단절이 되는 겁니다

즉 사랑인 화목제물이 아니면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모세언약인 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기 때무에
다윗언약인 화목제물 꺽으신 뼈가 아니면 안되기에

이 꺽으신 뼈에 맞는 새로운 죄인인 하나님의 원수로 만들고자
언약을 어기게끔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세 번 부인하도록 만들어서

지난 주 에스겔 애굽을 다시는 기억치 못하도록 하시겠다처럼
너의 전남편 바알을 애굽을 반드시 죽이시겠다 라고
그래 그래 바람 많이 피워봐라
다시는 바람 못 피우도록 애굽을 죽이시겠다 라는 것이 바로
본남편이다 라고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결혼이라는 한 몸 되기에
왜 자꾸 제 3자인 남을 의식하는 결혼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건 우리가 신부될 교회가 늘 우상을 염두하고 있음을
그 속내를 감추고 있음을 주님은 아시고
그래 내가 긍휼을 결혼을 반드시 니 마음에 두고 있는 전남편을 짤라 죽임으로써
내가 원래 본래 남편임을 보여주마 라고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고
시기와 질투로써의 사랑을 긍휼을 인애와 자비를 보여줌으로써

징계의 전쟁을 벌려서 이름전쟁을 함으로써
인애 곧 아침에 평화를 이루시겠다 화평 온유를 보여주시겠다 라고

반드시 전쟁에서 뺴앗은 전리품으로써
왜? 왕이란 샛별의 자리란 전쟁을 마무리 마침을 이루는 평화 샬롬을 이루기 때문이거든요
괜히 주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닙니다
전쟁의 이름인 젖먹이 전쟁이다는 겁니다 권능의 이름
스알야숩 마헬살랄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한 몸 되시지 너희와 함께 한 몸 되시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그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는 것은
내갸 그 심판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죄인이다 라고 시인하는 회개인 거죠
그 이름을 유대인은 못 부르는 겁니다
자기가 살인한 자 이다는 것을 시인하는 자수해야 할 판국이니
이 이름 자체가 사건이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사건이니까
거리끼는 걸림돌인 거죠
부딧히는 돌에 걸린 겁니다

아니 임마누엘이 신약 만 있는게 아닙니다
구약에 있어요
못 불러요 그 이름을 불렀다가는
자기가 살인자 임을
십계명을 어긴 죄인임을 시인하는 셈인데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환자 만이 고쳐 달라고
죄인 만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겁니다

아니 이때 북이스라엘 가장 번성할 때 요때만
언약을 어겼습니까?
고때만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저지른 겁니까
날 때부터입니다

우리가 에스겔 오홀라 오홀리바 사건을 통해서
고때만 음란했다 라는 겁니까?
애굽때부터 음란했다 라고 했잖습니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15:1, 개역)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 15: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4, 개역)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마 15:5, 개역)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 15:6, 개역)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 15:7, 개역)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10, 개역)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청함받은 자 속에 택함 받은 자를 탁란하여서
역사를 단절시킴으로써 왜 나도 마찬가지 단절 당해야 하는데 왜 불쌓히 여겨주시는 겁니까 라고

이 단절을 이 잃어버림을 격게 하심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버리시는 자인 심판 주 되심을 보여주는 겁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날 때부터 언약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자 임을
고때만 언약을 어긴게 아니라
애굽때부터 음란한 백성이였음을 말이죠
그 처음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에서
잊어버린 첫사랑
잊어버린 언약을 쳐다보라 라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지적하시는 겁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꺽으신 뼈 필요없다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율법 네배나 갚으라 라는 번제와 제사라는 행위를 하도록
사람을 온전케 못하는 그 행함을 쫓도록 되어 있는
그 음란을 그 음녀짓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화목제를 안 쳐다보겠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는 그 완악함만 고집 부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지 않는 인애와 자비란
하나님께 뭔가를 행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지적을 받고
그 죄인 됨을 나타내는 세 번 부인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이 인애와 자비로 꺽으신 뺘로 기뻐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인애와 자비인 겁니다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꺽은신 뼈라는 화목제물
이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도리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으라 라고 외친 자신들의 행함이
죄였음을 지적받고
이 십자가를 믿는 겁니다 십자가 라는 나무를 믿을 정도로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자체를 믿을 정도로
기드온이 전쟁승리를 하도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실적 또는 존재로 취급할려는 그 완악한 마음에 에봇이 이기도록 했다 라고 던져주니까 그 에봇을 우상숭배하듯이
그 정도로 믿음 좋은게 아니라 역시나 행함을 쫓는

도리어 역사성을 쏘옥 뺀 사건을 보라고 에봇을 던져주니까
우상숭배나 하질 않나 말이죠

아까 올린 마태복음 15장에

하나님을 경배 안하는게 아닙니다 경배 하기는 하는데
헛되이 경배한다 라고 했습니다

즉 반드시 모세언약인 십계명 율법을 자기 살아있음 자기 몸에 딱 맞도록 지키는
그 행함 그 역사를 쫓는다는 거죠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것이 선지자를 우리 조상들처럼 죽이지 않겠다 라는 장로의 유전을 따르는
껍데기만 추구하는
하나님을 우상화 한다 라는 겁니다

우상 믿듯이 말이죠
이 찌끼를 분리 단절 시키는 것이 거룩인데
에봇 이라는 거룩한 옷 곧 제사장 옷을 던져주니까
번제와 제사를 드릴려고 하지
인애와 자비는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약함이라는 기드온 겁쟁이를 사용했는데
삼손 보듯이 천하장사 힘 이라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해석하더라 말이죠

간극의 벌어짐을 느끼는게 아니라
뭘 줘도 간극을 좁혀서
연결 접속 연합 동질 합체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이게 종교오락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마약입니다
사기를 쳐야 돈이 되거든요
애들 가지고 노는 합체로봇으로 보는 겁니다

출애굽 후에 백성들의 원망하지 못할 곳으로 가는게 아니라
원망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양식 없는 곳 물 없는 곳 갈 때 마다
세 번의 원망을 담아서 그 위에 뚜껑 시은좌(속죄소) 덮어서 (히 9:5)
다시는 허물을 보시기 않겠다 라고 덮어버리는 그 뚜껑덮는 카파르
허물을 가리어주심 수치를 가려주시고 눈물을 씻겨주시는 그 사랑이
그 십자가의 죽음인 화목제물이 바로 인애와 자비인데

(히 9:5, 새번역) 그리고 그 언약궤 위에는 영광에 빛나는 그룹들이 있어서, ㉠속죄판을 그 날개로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 ㉠또는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시은좌)’
(히 9:9, 새번역)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 ㉡그, '비유’

(히 9:7, 개역)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 9:8, 개역)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히 9:9, 개역)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히 9:10, 개역)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 9:11, 개역)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 9:12, 개역)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3, 개역)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히 9:14, 개역)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5, 개역)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 이래도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네 드러냅니다

에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이 선해 지겠넹 에라이 돌파리 바울아
어디를 사기를 치냐 라는 겁니다

바로 우리가 인애와 자비로 가본들 역시나 행함을 믿음과 썩은 혼합물로써
여전히 그 의문의 반복을 멈출수 없다 라는 완악함을 주장하는 거죠

이것 자체가 바로 번제와 제사 라는 언약어김이라는 행함을 쫓는
사람은 온전케 못하는 율법의 행함을 쫓는 겁니다
이 지적을 통해서
비로소 정직한 영이 없음을
그때만 정직한 영이 없어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 조사죄를 저지른게 아니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죄가 덮쳐진 자로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 눈물을 그 수치를 가려주실 첫사랑인 인애와 자비를
처음자리인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
불의한 자리에서 첫사랑을 기억하는 겁니다
첫언약 첫맹세를 기억하고

인애와 자비가 오시길 바라는 겁니다

이 인애와 자비 라는 매일 매일 뿌려지는 피가 아니면
또 역사화 하고
또 존재가 되어버리면
존재를 강화 하는 힘을 쫓는 또 우상화 또 혼합물로 썩을려고 하니

이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것도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고 천국가겠다 라는 심뽀는
애초부터 이 땅에서 단절 시키는 겁니다

이 단절의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죄인임을 모르고 의사를 구하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네 반드시 창녀 너 오홀리바 죄인에가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리라
내가 본래 니 남편이다 라고

주님은 언약대로 밀어붙이시고

우리는 그 왜 저렇게도 더럽기 짝이 없는 창녀랑 결혼하시고자 할까 라는
그 거부감에
정작 그 창녀가 바로 나 임을 밝히심으로써

비로소 신랑이 누구신지를 알고

왜 번제와 제사가 바알숭배인지를 알게 하시는 겁니다

사람은 온전케 거룩케 못하는 것은 모조리 다

손이 있어도 만지지도 못하고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는 존재일 뿐임을

도리어 그런 죄인 중의 괴수를
음녀 오홀리바 로 만드셔서 반드시 그 창녀에게 장가 드시고야 말겠다 라고 선언하는

이 첫사랑 대로 밀어붙이시는 이 여호와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라는 광명한 천사에게 다 속아 넘어갔을 겁니다

누가 꾀느냐

이 또렷한 십자가의 죽음이 또렷한데 말이죠

이 화목제물이 분명히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우리의 불의함을 수치를 눈물을 제대로 가려주시는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인 인애와 자비가 또렷한데

그 흐릿한 번제와 제사로 언제까지 높아지고 언제까지 존재감을 강화하는
그 헛됨을 언제까지 할꺼냐 말이죠

반드시 너에게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는
새언약의 다짐을 다 이루신 이 인애와 자비가 또렷한데 말이죠

(시 92:2, 개역)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우리가 노래 할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신랑을 노래하기 위해서 신부 삼으신 겁니다

그것은 바로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애굽 곧 우상
곧 번제와 제사를 박살내시고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심입니다

내 손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번제와 제사의 마침을
주님이 손 수 직접 그 속에서 빼내시는 전쟁 거룩한 전쟁을 통해서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시는 겁니다
밤을 통과 하지 못하면 아침을 맞이 할 수 없으니 말이죠

아침에 새벽에 새벽별을 주심으로써
주의 청년들이 헵시바와 쁄라 로 부르시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뿐 자야 라고 
신부로 비로소
그의 피로 세워짐을 당하고

수치를 가려주시고 눈물을 씻겨주시는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언약을 완성하심으로
죽음을 통과케 하시고 사망을 통과케 하심으로써

신부의 노래 모세의 노래를 하게 하심으로써
유리바다를 건너는 겁니다

이 어린양을 노래 하라고 새창조하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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