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9 무너지는 성전! 무너지는 세상! (마 24, 1- 2)
(벧전 4:17, 새번역)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습니까?』
(벧전 4:18, 새번역)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잠 11:31(칠십인역)』
(벧전 4:19, 새번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조물주께 맡기십시오.』
(잠 11:31, 새번역) 『의인이 이 땅에서 한 대로 보상을 받는데, 악인과 죄인이 그 값을 치르지 않겠는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자여 (마 23,37-39)
마태복음 2018 2021. 1. 24. 10:30
18-11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자여 (마 23,37-39)
〈마태복음 24: 1- 2, 개역한글, 신약성경 41쪽,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 24:1, 새번역)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그에게 가리켜 보였다.』
(마 24:2,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 24:1, 쉬운) 『<성전 파괴의 예언>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 걸어가실 때, 제자들이 와서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마 24:2, 쉬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에 있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지막 시대의 징조』
(마 24:1, 현대어)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막13:1-2,눅21:5-6]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제자들이 곁에 와서 성전의 여러 건물을 구경하자고 말하였다.』
(마 24:2, 현대어)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이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 돌 하나도 제대로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막 13:1,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막 1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눅 21:1,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2, 개역)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3, 개역)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5, 개역)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눅 21:6, 개역)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눅 21:5, 새번역) 『몇몇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 놓았다고 말들을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눅 21:5, 공동)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 21:5, 쉬운)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심> 몇몇 사람이 성전에 대해 아름다운 돌과 헌금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21:5, 현대인) 『몇몇 제자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고 감탄하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눅 21:5, 현대어)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마24:1-2,막13:1-2] 제자 몇 사람이 성전 건물의 아름답게 조각된 돌과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 새겨진 벽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제목이 궁금해서
다른 두 번역을 올렸고 어차피 두 구절 뿐이라서 두 구절과 연관구절을 다 올려봤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뉴스에 나오는 교회들을 보면
다들 한결 같이 주장하는 것이
교회는 무너지면 안된다 라는 겁니다
즉 교회를 무너뜨릴려는 세력은 공산당과 같은 자들이요
대면 예배를 방해하는 자들은 교회를 핍박하는 악마의 세력들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미 무너진 교회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안 무너지게 할려고 하는 저 열심들이 바로
시드기야처럼 악한 무화과 나무로써
내 교회는 내 구원은 내가 지킨다 라는 완악한 모습인데
이미 무너졌기에 그런 증상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너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인해서
무너짐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곧 이전 것은 지나가고 삭제당하고 무너져야 하듯이 말이죠
그렇기에 교회는 도리어 안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장 먼저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세상여러분 여러분들은 다 무너져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먼저 무너져야함을 본을 보이겠습니다 라고 말이죠
네 맞아요 이사야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녔듯이 말이죠
모든 존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교회가 발가벗고 먼저 보여주는 선취를 보여주듯이 말이죠
어디 교회 뿐이겠습니까
세상이 무너짐에 있어서
인간의 육체는 모두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함을 보여줌에 있어서
모든 몸은 육체는 무너져야 한다는 겁니다
왜? 이미 먼저 누구의 새 몸이 먼저 떳기에 그 증상으로 말이죠
사도의 피 위에 교회를 세웠듯이
오히려 먼저 무너지는 것이 복입니다 ㅋㅋㅋㅋ
인간의 무너짐은 무너짐 축에도 못 들어가니까 말이죠
오늘 본문에 성전을 무너뜨리겠다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 라고 하시는 것은
인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그 성전을
예수님은 가장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취급하겠다 라는 선언 선전포고를 하시는 겁니다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아니 상대방 인간은 성전을 곧 하나님의 전을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거기에다가 곧 성전에 가장 아름다운 돌 가장 아름다운 꽃
다들 그 아름다움을 자신과 동일시 시켜서 그렇게 귀하고 귀하게 취급하였고
하나님의 전이니 더더욱 모든 정성을 다하고
거기에다가 까까득 거룩으로 채워넣었는데
주님은 느닷없이 왜 마당만 밟느냐
우엑 똥냄새가 진동한다 왜 똥을 쳐바르냐 라는 식으로
화평을 준비하는 상대방에게 느닷없이 전쟁선포를 하시는 겁니다
칼로 모조리 다 죽여 버리겠다 무너뜨리겠다 라고 말이죠
인간은 모든 것을 성전에 다 때려부었거든요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성전과 동일시 한 인간의 신체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요
그 성전의 무너짐을 통해서
전체 세상을 다 무너뜨리겠다 라는 겁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무식하게 자꾸 눈에 거슬리는 교회들의 행패는 보니
다들 견딜수가 없어서 교회는 무너져야 한다 라고 무식한 세상사람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어차피 무너지는데 있어서 견딜수 없는 눈에 가시 같은 행동 땜에
견딜수 없어서 외칩니다
바로 그것이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왜 세상이 무너져야 하는가를 증상물로써 나타내는데 있어서 교회를 활용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자기 뺨에 자기가 자기 손으로 치는 것이 되겠지요
결국 교회는 하나의 핑계꺼리 일 뿐입니다
코로나에 걸려 입원후 치료 받고 다 완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짤려 버리는 겁니다
자기 관리를 못한 자라꼬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 잡아서 짜르는데 있어서 하나의 구실이 된 겁니다
거기에 교회도 예외가 될수 없는 거죠
왜냐하면 교회도 늘 그런 짖만 해 왔거든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짖을 해 줘야만
왜 세상을 무너뜨리시고자 왔는지가 보이는 겁니다
정인이 사망사건을 통해서 그 양부모에게 욕만 할 줄 알았지
정인이를 위해서 뭐 하나 해 줄수 있는 것 있었나 말이죠
아무것도 없잖아요
죽은 뒤에 해 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노아 다니엘 욥이 옆에 있어서
너 하나 그래 구원 받았다 치자
그러나 니 아들은 아무리 노아 다니엘 욥
신앙의 영웅
베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아이언맨 맨 맨 우먼 백날 천날 만명이 있어본들
니 아들은 구원 못 받는다 라고 했을때에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내 구원
나 자신을 백날 챙겨 본들
아이 하나 못 챙기는 현실에서
무슨 놈의 구원받겠다 라고 하냐 말이죠
내 구원도 가짜인데 말이죠
내 구원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래 그래 구원 받았다 치자 말이죠
그런데 너의 아들이 구원 못 받으면
니 구원 받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는 겁니다
마치 애굽왕 바로왕의 장자가 죽으니까
바로 왕이 왕이 된 것 자체가 의미가 없듯이 말이죠
차라리 다윗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버리고자(그것도 다른 나라 왕도 아닌 이스라엘의 왕)
죄인의 자리에 놓아버리는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것이 도리어 구원 아니냐 말이죠 복 아니냐 말이죠(이것이 산 자의 하나님 아니냐 말이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
자 그럼 오늘 본문은 성전을 무너뜨리겠다 라는 선전포고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겠다 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래야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이스라엘을 만들꺼 아니겠냐 말이죠
누가 이것을 기쁜소식으로 들리겠습니까
그야말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형제 자매 모조리 다 서로 서로 못 잡아 먹는 원수 지간으로 만들겠다 라는 건데
우리가 얼마전에 나눈 말씀을 통해서
사가랴의 피 까지 라는 구절로 인해
그 사가랴가 요아스 왕의 손에 죽는데 있어서(요아스인데 요시아로 적었지 싶은데 찾으면 수정하겠습니다)
요아스 왕과 사가랴 선지자는 고종사촌 지간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 제가 눈이 안 좋아서 또 잘못 봤네요
고조사촌의 의미로써 동그라미를 빼먹고 봐서 고조부 랑 사촌 이라는 촌수 계산 땜에
고조 할부지가 같다 라고 했는데 잘못 본 것을 녹음에서 말했고
고종사촌이라서 고모의 종자 고모의 자녀와 사촌이라서 고종사촌지간 ㅋㅋㅋㅋ
어릴적부터 족보에 대해서 그렇게 어려워 했는데 계산 잘 못 했네요
위로 계산했고 옆으로는 못 봤네요
족보 그림 촌수를 보고 말했는데 역시나 여전하네요 ㅋㅋ
아무튼 가족이 원수입니다
사실상 구약에 참선지자와 충돌을 한 사람들이 다 친족입니다
결국 참선지자 자체가
원수로 등장 합니다
무너뜨릴려고 하기 때문이거든요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라
검을 주러 왔으니까 말이죠
결국 거짓선지자는 무너뜨릴려고 할까요 안할까요?
이미 미래완료가 먼저 떳음을 못 보는 이상
참선지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무너뜨릴려고 하고 있고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평강을 외치면서
기존의 것을 사수 할려고 할테니까 말이죠
그러니 현재에 거짓선지자가 되면 안된다고 라고 외치면서
참선지자 되자 라고 외치는 자들의 특징이
역설적이게도
무너지면 안된다 라는 사고방식인
거짓선지자 이다는 겁니다
절대로 무너뜨릴려는 마음이 추호도 없는 거죠
특히 성전은 더더욱
교회는 더더욱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과 짝꿍이 되는 것은 참선지자로써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생각이다는 겁니다
여기에 한 세트가 되는 대조되는 것이
거짓선지자와 한 통속이 된 자들은 그 반대의 모습을 취하겠죠
바로 이런 거짓선지자를 도리어 복음이 거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천국을 몰고온 예수님이 마귀를 끌여들어서 지옥을 먼저 말씀하시듯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통해서 지옥에 갇혀 버린 유대인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모든 인간들 모든 민족을 대표로 해서 유대인과 충돌하시면서 말이죠
마태복음은 그런 의미에서 종말을 끌어오는 것이 새이스라엘이고
누가복음은 그 종말의 의미인 이스라엘을 잃어버림 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눅 21:1,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2, 개역)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3, 개역)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5, 개역)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눅 21:6, 개역)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오늘 본문을 누가복음에서는 더더욱 잃어버린 자
곧 과부로써 종말을 미리 앞당겨서 성전을 무너뜨리는 헌금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헌금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처럼 하나님이 기뻐하는 헌금이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부자의 헌금은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그 아름다움에 인간들은 자신의 가치를 그 아름다움과 동일시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어서
정작 주님은 그런 자신의 가치를 의미두는 것에 있어서
느닷없이 무너뜨리겠다
그것도 과부의 헌금으로
마치 이사야 참선지자의 발가벗음으로
원수된 너거들이 싫어하는 모습
너희들의 감춘 죄악들을 들추어 발가벗겨진 모습
무너진 모습으로써 모습으로써
너희들의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는 그 성전을 무너뜨리는
이스라엘 국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써
참성전의 의미를 반드시 나타내시고야 말겠다 아니
이미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무너뜨리겠다 아니
이미 무너졌다 라고 선언 하시는 겁니다
아니 생각을 해 보세요 과부의 쥐꼬리만한 돈으로 어떻게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돌로써 세울수가 있겠습니까
깡통 교회 판자집 교회를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러니 부자가 오면 어떻게해서든 뜯어먹을려고 할꺼 아니겠냐 말이죠
가치가 있거든요
과부는 무가치해요 다들 싫어해요 고아 과부 나그네 말이죠
이런 자들이 될까봐 싶어서 잃어버린자 될까봐
교회 안에서 기도를 우상에게 구하고 있는 겁니다
가짜제사인 거죠
앞의 글 에스겔에서 왜 에덴과 함께 지옥으로 보내겠다 하는지 말이죠
결국 인간이 구상하는 제일 가치 있게 여기는 그 에덴 그 천국 그 교회를
그거 에굽일걸(에덴이 아니라-에덴동산 같았더라) (제가 오타가 무지 많습니다 일일이 고칠려고 무지 뜰다 보다가 눈이 너무 아파서 그만 둔적이 많습니다 이점을 양해해 주시고 봐주세요) 그거 애굽일꺼야
그거 지옥일걸(천국이 아니라)
그거 우상일걸(교회가 아니라)(교회의 머리 그리스도가 아니라)그럼 내일 아궁이에 던져 보자
지옥에 넣어보자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발가벗겨 보자
연단해 보자 라고 말이죠
고난 속에 집어넣었다 빼 보자
순금인지 도금인지
넣었다 빼내어 보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보면
불순물이 가득한 것이였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테고
불순물이 없는 주님이 일방적으로 용서한 자였더면 그 사랑 그대로 나올꺼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에스더의 표현 아니겠습니까?
(롬 5:4, 개역)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1,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2, 개역)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3, 개역)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개역)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5, 개역)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6, 개역)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7, 개역)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8, 개역)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9, 개역)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10, 개역)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화평을 십자가의 죽음으로만 이루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지난 주에 이사야 녹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발등상 하면 무조건 원수 개념을 생각하면 된다 라고 했습니다
그 원수가 누굽니까 나 자신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원수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주의 오른손 구원의 손
곧 원수를 사랑하시는
화목제물이 안 보이는 겁니다
누가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원수로 여기겠습니까
누가 우는 자가 되고자 하겠냐 말이죠
잃어버린 자 되고자 하겠냐 말이죠
누가 하나님이 권고 해 주시길 바라냐 말이죠
모조리 다 사생아처럼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이끌고 가고자 하지
뭘해도 잘못이다 라고 죄라고 알려주시는
아버지의 매
아버지의 권고를 누가 원하겠냐 말이죠
이 매가 먼저 있었는데
그 매로 인해서
매의 증상물로
심판의 증상물로 자녀가 있는데
사생아는 이 매가 없어요
심판이 없어요
그래서 모세의 자리
솔로몬의 영광을 구하거든요
무너지는 세상인줄 모르는 겁니다
왜 무너지는 교회를 왜 붙잡냐 말이죠
계시록에서도 마저도 성전은 없더라 라고 강조하잖아요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개역)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왜? 마치 해와 달의 빛나는 비추임이 쓸데 없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더 빛나거든요
어린양이 성전이니까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거죠
결국 처음부터 비존재 였다 라는 겁니다
즉 존재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의 기능이니까
완료 앞에서는 마침 앞에서는 누락 되는 거죠
무대에서 뒤로 빠지는 누락의 총화입니다
더 이상 그 기능이
그가 맡은 배우 역할은 다 끝났기에 무대 뒤로 빠지는 겁니다
어린양 참성전 되심 앞에서는 의미 없기에
저 한세트가 되는 지옥으로 집결하는 자들과 대조를 이루는 기능만 할 뿐이기에 말이죠
성령의 소욕으로써의 교회이지
육의 소욕의 반대를 위한 반대 말이죠
더 이상 어린양 성전 되심 앞에서는 의미 없어요
육의 소욕이 뭡니까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마음으로
과거의 조상의 잘못을 따라하지 않겠다 라는 것 아닙니까
(갈 5:16, 현대어) 『[성령의 열매와 육신의 일]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살면 여러분은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갈 5:16, 개역)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개역)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개역)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9, 개역)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개역)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 5:21, 개역)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2, 개역)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개역)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개역)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5, 개역)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6, 개역)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러다 보니 거꾸로 가르치고 거꾸로 보는 겁니다
베드로가 그랬거든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천국은 마귀의 실체를 들추어 내고서 그 차이로 증거가 될 때
우리가 성령의 일이라고 했다고 우겼던 것들이
오히려 육체의 일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러니 상한심령이 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으로써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성령의 열매가 없다고 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할꺼 아니겠냐 말이죠
비로소 우는 자가 될꺼 아니겠냐 말이죠
우리가 아무리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아름답다 라고 취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정작 죽은자를 살리는데 아무런 무용지물이였다 라는 겁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꾸밀려고 했듯이 말이죠
이런 자세를 유지하듯이
성전도 더러운 요소를 제거하고
아름다운 요소는 취하겠다
그럴 자격이 권리가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 자체가 그런 것을 그런 권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교회란 종말의 단체입니다
비존재라는 겁니다
잃어버림의 총화입니다
우리 자신이 교회가 되겠다 라고 교회에 온갖 아름답고 거룩하고 귀하고 좋은것과 선함을 가득채워서 교회를 만들겠다 라는 권리 자체가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우리를 잃어버림의 자리에서
종말의 기능을 나타내도록 합니다
우리 자체가 움직이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아벨의 죽음도 사가랴의 죽음도 결국 내 죽음이다 라고
교회에 증거하는 겁니다
계시록의 일곱교회처럼
교회 속에서 일곱교회는 꼭 원수짖만 골라서 합니다
일곱이라는 예수님의 기능처럼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간극
이 공백을 바로 종말이지요 원인 없는 결과
그 결과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를 끌어당기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아벨이 죽임을 당했고 사가랴도 죽임을 당했고 참선지자도 죽임을 당했고
예수님도 죽임을 당하셨듯이 말이죠
찢으셨으나 다시 되찾는
모조로 다 평준화 시키는 시온에서 나온 율법으로 불도져처럼 다 밀어버리듯
첩경을 평탄케 곧 높은자 낮추시고 낮은자를 높이는
(마 3:3, 개역)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막 1:3, 개역)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눅 3:4,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 성령의 일을 새 마음 새 영 곧 그리스도의 마음인
선악을 깨뜨리시고자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무너뜨리러 오신 겁니다
그러니 기존의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자들에게서는 원수가 따로 없는 거죠
자신의 가치를 기존의 것에 두었으니 그 권리를 찾고자 할테니 말이죠
그것이 아름답고
가치가 있고
그것이 선하다 라고 보았기에
더더욱 더러운 요소를 제거하고자 할텐데
악을 제거하고자 말이죠
그런데 그 악의 자리에
절대저주인 예수님이 오시고
참선지자들이 그 자리에서 새언약을 외치고 있으니
충돌이 안 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러니 가족이 원수가 아니 되고는 못배기는 겁니다
재산문제로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모든 눈에 보이는 것 자체를 다 없애버릴려고 하니까 말이죠
괜히 성경박사들이 위기감을 느낀게 아닙니다
교회를 무너뜨릴려고
이스라엘의 존재성 자체를 무너뜨릴려고 하니
어떻게 해서든 돌로 쳐 죽어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탄의 권력인 로마와 손을 잡아서라도(애굽을 동경했듯이 앗수르를 마음에 품었듯이 늘 바벨론을 사모했듯이 우상과 손을 잡아서라도 예수님을 절대저주인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에 못 박는데 성공하는 겁니다) 말이죠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그래 그래 성전을 아름답게 귀한 돌로 세우고
억수로 아름답게 꾸며라
꾸미면 꾸밀수록
교체작업의 대한 예수님의 일하심이 더더욱 극대화 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앞의 글 앗수르를 누가 교만케 만들고자
높이 높이 세웠냐 말이죠
에덴의 나무들도 다 시기하고 부러워 할 정도로 말이죠
그 정도로 인간의 모든 마음이 안 부러워하고는 못 배기도록 말이죠
우리가 지난해서 다마스커스가 중간에 있어서 그곳을 지나갈때마다
이스라엘 왕이 너무 너무 감동을 해서
나도 하나님을 저렇게 크게 크게 지어야지
네 맞아요 바로 우상을 크게 지은 것을 보고 뿅가버려서
나도 하나님을 저렇게 크게 압도감에 젖어서 저절로 존경심이 들도록 해야 겠다 라고 다짐을 한 장면을 우리가 살펴봤잖아요
바로 그런 짖을 교회를 짖는 자들이 노리고 있는 겁니다
아 우리가 이사야 17장을 하면서 살펴봤던 내용입니다
(사 17:1, 개역)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왕하 16:10, 개역)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왕하 16:11, 개역)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왕하 16:12, 개역)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왕하 16:13, 개역)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왕하 16:14, 개역)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왕하 16:15, 개역)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
(왕하 16:16, 개역)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명령대로 그 다메섹 우상 제단을 그대로 본떠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제단을 짖는 겁니다 우상을 세우는 겁니다
자기들이 가치 있다고 여겼으니까 말이죠
이것이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 라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는 아하스 왕의 선악을 추구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누가 약한 것을 구합니까 강한 힘을 구하지
그래서 스알야숩을 통해서 다메섹을 멸망 시키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기 스알야숩이 믄 힘으로 말이죠
바로 비존재입니다
과부를 통해서 성전의 아름다운 비석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듯이
스알야숩 아기를 통해서 다메섹 그 부러워 하는 우상 오냐 무너뜨려주마
스알야숩이라는 새 마음의 의미가 오히려 더 부각이 되도록
무너뜨리겠다 라는 겁니다
(사 7:3, 새번역) 『그 때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그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 윗못 물 빼는 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사 10:21, 새번역)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 ㉢히, '스알야숩'』
(사 10:22, 새번역)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서 오직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너의 파멸이 공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되었다. / ㉣히, '스알야숩'』
(사 10:20, 현대어) 『[스알야숩이라는 이름] 마침내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야곱의 남은 자들이 주님을 의지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앗수르의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의지할 것이다.』
왜? 임마누엘이 먼저 떳기에
(사 8:1, 현대어) 『[이사야의 아들과 징조] 주께서 내게 다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는 넓은 게시판을 만들어 내가 네게 줄 아들의 출생을 예언하는 글을 거기에 기록하여라! 너는 대문자로 그 아들의 이름을 ㄹ)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써라. 그것은 `신속한 약탈과 급속한 탈취'라는 뜻이다.' (ㄹ. 네 원수인 두 왕, 이스라엘과 아람의 왕이 곧 멸망한다는 뜻이다)』
아 맞다 마헬살랄하스바스 라는 비존재인 아기를 통해서
아람이 다메섹이 멸망함을 이루시는 겁니다
그러니 그 증상물로 다메섹을 부러워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거죠
그렇게 에스겔서처럼
앗수르를 부러워 하도록 높이 높이 영광스럽게 해 놓고서
멸망 시키는 겁니다
1000년 전의 애굽왕 바로왕을 다시 소환해서
앗수르도 바벨론도 높이 높이 만드니까
아하스 왕이 안 부러워 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도 그렇게 동일시 여기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를 크게 짖는 것도
심지어 제가 공장에 다닐 때
그 근처 교회가 새로 단장하면서 갑자기 멋지고 아름답게 새로 짖더라 말이죠
그렇게 깨제제 하던 모양이 갑자기 세련되게 말이죠
늘 벽이 페인트도 벗겨져서 누구 하나 관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가 했었는데 말이죠
어떻게 속여서 재건축을 했는고 하니
성전 돌 하나 하나에 건축헌금 한 사람들 이름을 새기겠다 라고
사기를 쳐서 그렇게 갑자기 돈을 모았던 겁니다
사기꾼 목사로 교체가 된 모양이더군요
아무도 그 성전 무너뜨리고자 과부의 마음으로 참성전이신 예수님을 끌어와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하면서 헌금 낸 자는 없었을 꺼다 말이죠
어디 성전 뿐이겠습니까
누구를 만나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자는 끌어들이고
무익한 자는 버리고자 가까이 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멀리할려고 하죠
내 마음에 저장 이라는 유행어처럼
늘 그런 가치가 있는 것을 가차이 둘려고 하고
손해될 것은 멀리 두는 겁니다
그럴만한 권리가 있다는 냥 말이죠
그런데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곧 세상을 말이죠
그 시작점을 성전을 무너뜨리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교체 작업입니다
무엇이 현실이냐 라는 거죠
사라질 것이냐 곧 사라질 이전 것이내ㅑ
아니면 새 것이냐
이 새것이 먼저 떳기에
더더욱 이전의 것은 사라지는 그 의미가 더더욱 부각이 되고자
모든 부러움을 가득 안고서 멸망시킬때에
그 갭이 그 간극이 그 공백이 커지는 겁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듯이
크게 크게 속아봐야
그 골이 움푹 움푹 더 홈패일때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나는 이 가짜 현실에서 벗어날 자격조차 없는
사망의 몸에 갇혀 버렸구나
누가 새 것을 새 마음을 주랴 라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더더욱 홈 패임 속에서 공백 속에서 느낄꺼 아니겠냐 말이죠
그러니 더 이상 자기자신 쪽에서의 출발을 뭐든지 죄로 보고
실패로 보고
다 부질없는 거짓으로 가짜로 볼꺼다 말이죠
뭘 해도 죄 밖에 없음을 말이죠
자 이렇게 주님은 교회의 무너짐을 통해서
인간들의 모든 거룩한 활동을 집결 시키는(앞의 글 에스겔에서 지옥은 인간들의 선악이 집결되어서 지옥갈자들이 집결되는 역사를 구성한다고 했듯이) 겁니다
여기서 주님은 교회로 구원을 이루는게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을 이루시고자
왜 교회는 아닌지에 대한 무너짐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에덴이 지옥으로 내려간다고 앞의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말이죠
이것을 위해서 십자가는 에덴을 지옥으로 보냄으로써
에덴의 가치를 엉터리로 만든 인간의 선악을 곧 종교성을
십자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에덴의 약속의 가치를 오히려 십자가로 이루시는 겁니다
엉터리 개념의 에덴의 껍데기는 인간들이 추구하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도록 만드시고 말이죠
누가 절대저주인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에덴이라는 천국의 의미로 보이겠냐 말이죠
누가 과부의 헌금이 죽은 자를 살리는 종말의 헌금으로 보겠냐 말이죠
누가 인자가 죄인들과 세리와 친구와 되어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술꾼이고 죄인과 친구 라는 별명을 금식을 지키는 자들에게 붙여짐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으로 보겠습니까
이미 별명 자체가 비꼬는 식이고
너희들도 예수 따라했다가는 왕따 시키겠다 죽여버리겠다 라는
노골적인 분위기를 가짜 현실을 만드는 그 거짓된 현실에서 누가 벗어나겠냐 말이죠
오죽하면 어떤 제자가 예수님!!!
예수님 잘못 하신 겁니다
바리새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신 겁니다
저들을 괜히 자극 시켰는데
저들이 예수님 말에 넘어지는줄 아십니까 도리어 주님이 걸려 넘어질 겁니다 라고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오죽하면 제자들이 눈치 없는 예수님에게
이 현실을 빠삭하게 이 정치판을 꿰뚫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식으로
어떻게 이 분위기 어쩔꺼냐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현실을 마귀가 깔아놓은 것이 전부이다 라고 본 겁니다
그래 그러니까 내가 교체 시키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더더욱 저들의 권력이 더더더 높아져야죠
사건에 맞도록 더더욱 다른 날 보다 그때가 오히려 더더욱 더 힘세게 보여야 하는 겁니다
괜히 주님이 앗수르를 영광되도록 높이 높이 세운 것이 아니다 말이죠
무너뜨릴려고 더 더욱 높아져야 넘어지는 강도가 더 자극적일테니 말이죠
극대화 시키는 겁니다
하늘 까지 높아져라 그래야 무너질 때 다 보는 겁니다
이 권고
이 보살펴 주심이
가나안 땅 기생 라합의 마음에 새겨져서 그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간담이 녹아서 40년 동안 기다리도록 말이죠
캬 ~~~~~~~
인간은 그저 자기 코 앞의 것만 보고 있지
저 멀리 있는 흑암의 백성에게 비추어지는 빛은 오히려 못 봅니다
다들 보고 있는데
바로 코 앞에 있는 예수님을 코 앞에서 보는 특권을 유대인들이 아무리 누려도 못 보는 겁니다
무너지는 자리임을 인정 못하니까 말이죠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무슨수로 어떻게 교체가 되겠냐 말이죠
모든 부러워 하는 요소
남자는 힘 성공 이겠고
여자는 아름다움
이것이 성전으로 집결이 되어서 바깥양반은 남근은 강박증 더 높이 더 크게 더 길게
안사람은 히스테리 아름다운 빵깨이 소꿉놀이를 하는
그 현실이 전부라고 여기는 것을
다 교체시키는
복음으로
십자가로만 구원을 펼치시는데 있어서
첫 번쩨 무너지는 1번 타자로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셨다 라는 것이
이것을 위해서 선택받은 겁니다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다는 거죠
인간들의 교회개념은 무너지지 않는 교회
곧 무너지지 않는 이스라엘
곧 무너지지 않는 나 라는 자아를
무너뜨림으로써
무너지지 않는 예수님 그냥 예수님이 아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분명 죽였는데
남이 아닌 내가 죽였는데 말이죠
무너지지 않는 참이스라엘 예수님
무너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의 머리 되신 예수님과 그의 몸
그래서 누락의 총화로서
배제
없음
잃어버림의 총화로써
심판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겁니다
이 교체작업을
십자가로
새 영 새 마음 새언약으로 이루심에 있어서
인간들의 모든 원수된 선악이 다 들추어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는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너희를 꾀냐 라고
그 속임수의 내막이 십자가에서 밝혀졌음을 압니다
그러니 이 무너뜨리시는 주님의 교체 작업 앞에
선악은 무너져야 함을 아는 겁니다
인간들이 이 교체 작업을 하는게 아닙니다
인간 쪽의 출발은 또 자신을 육을 자랑하도록 되어 있으니
오히려 내 숙제가 아닌 주님의 숙제만을 바라는 겁니다
권고 하심을 말이죠
그래서 이 교체작업에 도리어 자신이 제일 먼저 심판 받아야 함을 통해서
도리어 기뻐하는 자입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희년이 찾아왔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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