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2 큰 표적과 기적으로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는 큰 환란 날 (마 24,15-24)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 9-14)
마태복음 2018 2021. 2. 14. 09:41
18-121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 9-14)

〈마태복음 24:15-24, 개역한글, 신약성경 41쪽, 찬송가 277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 24:15, 새번역) 『"그러므로 너희는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 ㉣단 9:27; 11:31; 12:11』
(마 24:16, 새번역)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마 24:17, 새번역)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제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오지 말아라.』
(마 24:18, 새번역) 『밭에 있는 사람은 제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말아라.』
(마 24:19, 새번역) 『그 날에는 아이를 밴 여자들과 젖먹이를 가진 여자들은 불행하다.』
(마 24:20, 새번역)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마 24:21, 새번역) 『그 때에 큰 환난이 닥칠 것인데, 그런 환난은 세상 처음부터 이제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마 24:22, 새번역) 『그 환난의 날들을 줄여 주지 않으셨다면, 구원을 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줄여 주실 것이다."』
(마 24:23, 새번역)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시오,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오' 혹은 '아니, 여기 계시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함』
(마 24:24, 새번역)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면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홀릴 것이다. / ㉥12:38; 39의 '표징'은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기적』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 곧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절대저주 속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사적인 구원과 축복만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가짜 현실에 머물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모른채로 적당한 선과 적당한 악으로 중간치로 살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가짜 현실을 꾸미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는 거죠

여기에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산 자의 하나님을 보여주시는데 있어서
이삭을 바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진짜 현실은 할례 없는 저 파라오 왕의 세계가 아닌
아 맞다 그때는 애굽의 바로왕이 없었죠 그럼 누굽니까
네 맞아요 아브람 본 비언약의 인물 아브람의 세계인 거죠
그 아브람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인도하는 자가 바로
꺽으신 뼈인 이삭의 죽음이 되는 겁니다

바로 이 할례 라는 육체의 단절을 통해서
산 자의 하나님과 합한 마음이 되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하나 됨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자신의 사적인 자식이 부활이 믿음이 들통남으로 인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절대악과 절대선을 알게 되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는 겁니다
진짜 현실을 말이죠

이것을 거부하고자
인간은 우상을 곧 자기계획을 투사 투영시킨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겁니다
곧 바벨론 여자들이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되지 않겠노라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겠노라 라고 우상을 섬기는 이유처럼 말이죠

여기에 산 자의 하나님은 바로 이 잃어버림 곧 종말을 확 끌어오는 겁니다

이삭의 죽음처럼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말의 믿음입니다

고로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모든 말씀은 종말적이다는 겁니다
미래완료를 확 땡겨 버리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그 앞에서 사적인 구원 사적인 축복은 다 들통나고 쓸모없는 허구 우상
탐심이 곧 우상숭배이니라처럼 우상으로 들통나는

자기를 위한
우상 곧 자기를 위한 예수 자기를 위한 십자가 자기를 위한 하나님으로써
들통이 나야 하는 겁니다

왜 항상 우상이라는 의미 앞에 자기를 위한 이라는 단서가 붙을까요
네 맞아요 자기를 잃어버릴수가 없는 겁니다

이 잃어버림을 인간의 경건 껍데기로 추구하는 자들이 있어요
죽은자가 되어야 한다고 자기 스스로 죽은자 되겠다 라고
그럼 죽습니까 오히려 죽은자가 되었다고 나 옳았다 라고 자기가 더더욱 더 나타납니까
자기를 잃어버릴수가 없는 겁니다
주님의 숙제는 없고
자기 숙제를 했다고 나오더라 말이죠

취할 이도 여호와 이지 자기가 아니고
주시는 이도 여호와이지 자기가 아니다 말이죠

주님이 곧 경건의 능력이 되는데
왜 자기 숙제가 경건의 능력이 됩니까 경건의 모양 껍데기 흉내 사기 속임수 인데 ~~~

그냥 경건은 애시당처 나에게 있을 수 없다 라고 해야 할 판국인데 말이죠

이것이 자기를 잃어버린자 아닙니까 회개가 덮쳐진
종말의 영이 덮쳐진자 아니냐 말이죠

어 저 사람에게 누가 덮쳐졌지 라고 그 누구를 보게끔 되는게 아니라
자꾸 자기를 보래요 글쎄

왜 그 껍데기를 왜 쳐다 봐야 하느냐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나를 꾀냐 라는 그 속임수가 다 들통나는
그 절대저주의 현장인 십자가의 죽음 속으로 우리를 몰아가시는 겁니다

남의 속임수 뿐이겠습니까
뭘 해도 죄 밖에 안 나오는 우리 자기자신의 속임수도 다 들통내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몰아감 속에서 세상 종말도 포함이 됩니다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라고 여운을 남겨두시는데

(마 24:6, 개역)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아직 끝이 아니다 라는 말은
오히려 시작 점이 되는 겁니다

(마 24:8, 개역)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결국 인간의 시간 개념 곧 육체라는 시공간 개념이 무너지는 의미로써
시계 들고 잴수 있는 입장에 놓여진 것이 아니다 라는 거죠
그 다음 니 차례인데 종말 속에 속하게 됨으로써 시간 공간이 날라감을 당해야 할 입장이다는 거죠

바로 종말 절대선과 절대악이 완성되는 하나님의 의 곧 잃어버림과 되찾음이 벌어져야
그제야 끝이 된다는 겁니다

(마 24:14, 개역)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9, 개역)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 24:10, 개역)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마 24:11, 개역)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12, 개역)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3, 개역)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14, 개역)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은 사적인 개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사적인 개인 역사왐 무관하게 집단적으로 즉 판대기 전체로 벌어지는 상황이기에
여기서 나 개인은 예외가 되는 경우가 없다는 겁니다

다윗을 볼까요
불법을 저질러서 소로 잡아 죽이는 짓도 합니다
거짓선지자처럼 미혹하는 거죠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꺽으신 뼈가 미리 떳는데 어딜 감히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라는
그런 속임수 꾀를 펼치냐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꺽으신 뼈가 다윗을 건져주심으로 인해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끝까지 견디는 자는 다윗이 아니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위해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 했다 라는
예수님의 놀라운 탄식의 기도 덕분이였다 라는 예수님의 숙제 완성으로
끝까지 견디신 예수님의 숙제 완성으로 졸지에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의 피 용서가 덮쳐짐으로써 끝까지 견디는 자로 무시험 합격 시켰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 다윗은 타락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뭐든지 예가 되는 겁니다
피가 자기가 예수님의 피를 찾아서 그 피를 먹고 마시고 발랐는게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다윗에게 피를 마시게 하시고 살을 먹이게 하시고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발라 버리신 겁니다
그러니 끝까지 견디기 싫어도 끝까지 견딜 수밖에 없는
경건의 능력이 덮쳐진 겁니다

인간은 아무리 해 봐야 능력은 없고 왜 성령이 아니기에
도리어 경건의 모양만 껍데기에서만 맴도는 의문의 반복 밖에 나오지 않음을 들통당하는
경건의 능력으로부터 들추임을 당하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곧 축복된 자 이다 라고 했습니다

고로 사적인 구원 사적인 축복 사적인 교회가 아닌
사적인 것이 날라가 버림을 당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벌어지는가를 보게 되는 겁니다
뭐 보여주시니까 안 볼수가 없을 것이고
할례 받지 않은 자는 안 보여주시니까 그저 보이는 것이 전부 다 이기에
그것으로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 말 마따나 권정땡 이였죠 없는 것은 없는 겁니다 라고 하듯이
안 보이는 것은 없다 라고 하겠죠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에 거기에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존재와 비존재(곧 종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나타나는 하나님과
반대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인
잃어버리는 하나님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시는 주님을 죽는 하나님의 차이입니다

(요 10:18, 개역)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간극인 공백을 하나님의 의 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가짜 의 가짜 거룩은 쭐꾸덕 미끄러지는 겁니다

어차피 우리는 뭘 해도 가짜 이기에 빨리 쭐꾸덕 미끄러져서
자기 사적인 숙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일
곧 절대 악과 절대 선이 뭔지를 보여주시고 하시는 주님의 계획을 보자 말이죠

이 간극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저주가 펼쳐지는 십자가로써
하늘과 땅의 틈새, 사이, 간극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이 간극 이 사이가 뭔데
인간은 조금이라도 율법에 의해 흠이라도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의 진로를 피할길이 없습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절대 저주가 뭔고하니

죄 없아 태어난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짐으로 인해서
맹렬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됨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음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스스로 버림받는 길로 가셨다 라는 겁니다

절대저주 속으로 말이죠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곧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하는 영원한 분리 이다는 겁니다
따로 따로

캬 선악과가 뭡니까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하나가 될까요 아니면 영원히 분리가 될까요

선악을 알 필요가 있을까요?
내 속에 선함이 없음을 오히려 기뻐해야 할 판국은

피조물은 창조주의 관계로 인해서
누가 외부에서 건져낼 자가 있다 라는
하나 됨의 관계 속에 놓여졌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선악을 알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자꾸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저 개같은 이방인처럼
선악을 알아서
자기 구원을 자기가 따 내겠다 라는 
선을 추구함으로 인해서

졸지에 누구를 악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습니까

바로 그 선악을 방해하는 성령을 훼방하는 노릇
곧 십자가라는 마음판의 할례를 거부하는 

저 애굽 왕 지옥의 벌레인 파라오 왕을 따라하더라 말이죠
나는 파라오 절대로 안 따라한다
독창적으로 행동 하겠다

마치 나는 조상때로 돌아가면 선지자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이 봐라 우리의 마음은 선지자를 아름 다운 비석으로 꾸밀정도로 우리는 선함을 추구하겠다

바로 이것이 악마의 자식들의 공통적인 사고방식이다는 겁니다

너튜브에 올라온 설교나 신학이나 잘믿고 잘사는 법 과 같은 종류를 보면
거기서 언급된 목사들을 보면
다 마귀들을 자랑하고 있어요

아무도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가 없어요
그저 사적인 구원을 위한 우상 예수 가짜 예수만을 나열해요
그저 예수님을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삼고자 할 뿐이다 말이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말이죠
악한 세대가 기적을 구원을 바라거든요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인 요나의 표적 곧 절대저주인 십자가 뿐인데 말잊쇼

이것이 바로 종말의 상태이다는 겁니다
잘믿고 잘사는 뻔한 트릭인데 잘도 속아넘어가더라 말이죠

한번은 삼땡교회 청년과 대화를 한적 있는데
그 전 목사였던 전병땡 목사는 복음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것에 대한 처세술 곧 트릭을 가르치는 자라고 하니까
그 사람 누나가 와서 이단이라고 단절하라 라고
자기들은 부산에서 올라와서 오로지 그 목사의 교회 옆에 사는 것이 영광이다 라고
그것을 자랑하면서 과시하더라 말이죠
얼마나 자랑 할 것이 없으면 사기꾼 옆으로 이사와서 산다 라는 것을 자랑할까요

합해졌거든요
전병땡 목사랑 합해졌거든요

목사를 씹으면 바로 짤려요
예수님을 아무리 욕해도 교회에서 안 짤립니다

그게 바로 목사들 이거든요
하나님 너 까불면 죽어 라는
우연히 나온 우발적인 실언은
개인의 사적인 발언이 아니예요

오늘날 목사들이 속에 있는 말을 대신 내 뱉어 준 겁니다

하나님 나를 부요케도 말고 가난케도 말고 중간치 안 만들어 주면 안믿을 거야 라고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맹세하고 기도하더라 말이죠

겨우 그렇게 들통나서 되겠습니까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외쳤다 말이죠

바로 이런 절대저주가 튀어나올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자꾸 종말로 몰아가시는 겁니다

그야말로 욥처럼 케보이
도대체 하나님은 저를 못 죽여서 안달이 났습니까

케보이 도대체 원하는 것이 뭡니까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개인적인 잃어버림
사적인 종말 아닙니다

예수님의 잃어버림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사적인 종말도 마치 순교했다는 또 그 선악을 자랑하는 
영원히 떨어진 분리를 멍청하게 자랑할 것이다 말이죠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속임수를 펼치냐 말이죠

그런 깨작 깨작 거리는 남 7번 용서가 아닌

큰 것을 구하라 말이죠 7에 70번 용서를 하시는
이 십자가의 죽음을 구하라 말이죠
개인의 사적인 죽음 안 받습니다

뭐 케보이 뭐 왜 저를 못 죽여서 안달이십니까 ~~~~~~~~~ 뭐 ~~~~ 소는 !!!

다들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겁니다

자 그랬던 베드로가 사적인 구원이 날라가고
하나님의 일로 인해서
이 절대저주인 십자가를 통해서
그가 대신 잃어버림을 받음으로 인해 우리가 되찾음을 받게 되게 됨으로써

이제 베드로는 제사장의 기능으로써
양을 먹이고 양을 치고 양을 먹이는
이 절대 악과 절대 선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사도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듯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이미 합격 처리가 된 교회로써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제사장으로써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써 하루 아침에
3초도 안 되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라고

이 하나됨을 외치더라 말이죠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도 주를 위해
왜? 한 몸이니까 말이죠

선악을 아는 몸은 이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절대선 절대악을 알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종말의 뭐뭐뭐를 싫어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영원한 분리로써 이 세상을 끌어안고 어떻게 하면 잃어버림을(종말) 당하지 않고 살 것인가 에 대한 것만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영원한 잃어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안 잃어버림 당하고자 하는 것이 잃어버림 당하는 것이고
아 나는 저 예수님의 죽음을 보니 망해도 싸구나
주님 주님의 절대저주인 십자가의 죽음이 나 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이 새로움 앞에서 자신이 이전 것으로써 삭제 당해야 함을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절대선 절대사랑 절대축복이다 라는 겁니다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듯이

깨작 깨작 겨우 7번 사랑으로는
이 7에 70번의 절대사랑을 알 길이 없는 겁니다

무조건 이유 없이 나 보다 옳았고
무조건 이유 없이 나는 틀렸음을

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또렷하고 명료한 사랑 때문에
속임수 7번은 택도 없는 거짓임을 비로소 아는 겁니다

자 이런 7에 70번의 크나큰 사랑을 쳐다보는데 있어서
이 종말 때문에 도리어 미움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남 7번 용서는 미움 안 받고
다들 납득이 되고 수긍이 되어서 미움 당할 이유가 하등 없지만
즉 이 세상을 거들 내지 않는 비종말성이거든요

그런데 7에 70번 용서는
이 땅과 함께 영원히 살고파 잃어버림 당하지 않겠다 라고
선악으로 대충 하나님과 같이 된 그 의문을 추구함에 있어서
도리어 영원히 분리가 되는 따로 따로 노는
영원한 잃어버림 속에 놓이게 되는
이 종말 이 세상을 끝을 끌어당김에 있어서
7에 70번의 십자가의 피 용서를 거부하고 싫어하고 반발하고자

이 십자가의 피에서 생산된 자들을 미워하고 죽이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러면 그럴수록 종말성을 십자가는 더 구체화 함으로써
이 미끼인 이스라엘을 에스겔서를 통해서 봤듯이
이사야서를 통해서 봤듯이 확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처럼

이 신약의 종말의 단체인 교회라는 미끼를 물어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종말을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앞 당겨 버리게 되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성도는 이 죽은 세상에
새 것 
새 언약
이미 완성된 약속
참성전 되신 예수님의 몸
종말의 몸을 확 땡김으로써

이 세상의 의문을 마침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절대저주와 절대사랑을 통해서
오늘 본문의 다니엘서의 예언 곧 종말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겁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주변나라에 포로 잡혀감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니엘을 죽이고자 하는 이들 주변나라의 운명을
떼굴떼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 식으로

저마다 애굽왕처럼 다들 건축자들이 멋들어진 구원의 집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겠노라 라고 쌓는 가인의 에녹성처럼 
그 거룩하다고 하는 함량미당의 짐승나라 우상 국가건설을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하게끔 하는
뜨인돌로써

다니엘이 작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다니엘에게 달려 버린 겁니다
곧 인자입니다 누구 누구의 아들
이것이 산 자의 하나님이다 라고 했잖아요

자 여기서 왜 이들 나라가 왜 멸망해야 하느냐 라는 겁니다

그것은 인자의 나라의 등장 때문에
이들은 마귀의 나라로써
애굽의 뒤를 따르는

할례 받지 않은 자로써 멸망의 나라를 건설하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럼 맘 고쳐서 조상때로 돌아가면 안 그럴 것이다처럼
멸망의 나라를 건설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겠네

아닙니다
이미 새 것이 떳는 이상
인자의 나라가 떠 버린 이상

이전의 것으로 쭈물딱 쭈물딱 거리면서 
삭제될 것으로 반복할 뿐입니다

그냥 이 인자의 나라로 인해 멸망 당하는 것을 기뻐하면 됩니다
누구처럼

기생 라합이 간담이 녹아서 어서 이 가나안 나라들을 멸망 시켜 달라고
자기 민족 자기 국가 자기 전재산을 다 팔아 넘겨버리듯이
어서 심판해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마치 전재산인 하루살이의 과부의 헌금이
종말의 헌금으로써
지금 제자들은 이 아름다운 성전의 벽 비석과 비싼 헌물을 자랑함에 있어서
정작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통해서
어서 눈에 보이는 교회 뿌싸뿌고
어서 어서 참성전 되신 예수님이 참성전으로써 와 달라고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허물어 버리시고
3일 만에 짖는 가까운 의
이 공백의 성전
십자가의 성전
십자가에서 나온 참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달라고
과부가 좋말의 헌금을 내더라 말이죠

아이고 겨우 46년 동안 찔끔 찔끔 짖는 성전이 그것도 성전이가 라고 하듯이
인간이 국가를 세우는 방식은 오래도록 시간이 걸리듯이
정성과 힘을 다해서 세우는데 있어서
겨운 7번 용서에 40년 씩이나 걸리는 방식과 같은
모호하고 흐릿하고 미완료적인 의문의 성전이다는 거죠

3일만에 짖는 인자의 나라는
40년 씩이나 걸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일 매일 7에 70번의 용서가 퍼부어지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 인자의 나라가 이미 떠 버린 이상

왜 모호하고 조잡스럽기 짝이 없는 되도 않는 인간의 손으로 짖는 성전
인간의 손으로 짖는 국가
인간의 손으로 하는 손할례가
왜 멸망을 당해야 하는 지를

인자 라는 뜨인돌에 의해서 무너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전 것은 가라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무리 큰 성 바벨론 국가가 나타난다 해도
아무리 시민국가를 꿈꾸면서 더 체계적이고 더더욱 민주주의적이며
더더욱 살기 좋은 국가가 만들어 진다 라고 해도
이들은 모두다 애굽왕을 뒤 따를 뿐이다 라는 겁니다
이런 바벨론국가의 뒤를 따르는 나라들은
마치 앞의 글 에스겔에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멸망처럼
왜 이 인자의 나라에 의해서 멸망해야 하는지를 보여줌에 있어서
다니엘서의 예언이 구체화 되는 겁니다

왜? 거룩이 한 참 모자르는 함량미달의 짐승나라 이기에
금신상 은신상 동신상 철신상
이 네 짐승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 라는 겁니다
이것만을 이 의문의 반복만을
이 함량미달만을 반복함에 있어서

함량미달의 짐승나라에서 파생된 헬라제국이
여호와의 성전을 파괴하고 제우스 신상을 세웠듯이

이 인자의 나라를 거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 끝날 때 까지 이런 짖을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다니엘의 예언을 무시하고
이 더러운 세상과 함께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겠노라 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절대저주이자 절대사랑인 십자가를 거부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보이는 세상이 전부이기에
종말을 끌어올수가 없어요
성령이라는 종말의 영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할례(십자가의 피 용서, 7에 70번) 받지 못한 자이니까 말이죠
그저 남 7번 용서로 세상과 함께 버티고자 할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은
바로 이런 자들의 반복성을 보고서
산 소망에 더더욱 기뻐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우와 다니엘의 예언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까 말이죠

하나님의 계획대로 차곡 차곡 진행 되고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 말이죠
그러나 이 십자가의 피 용서가
이미 벌써 넉넉히 이길 것이다 라는 앞으로 될 것이다 가 아니라
이미 벌써 넉넉이 이겼음 이니라 라고 완료형으로써
모든 성경 말씀은 완성형으로써

다니엘의 예언대로 완료 되었음을
이 종말을 누리는 자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낳은 자녀 인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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