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7 도둑같은 종말의 인자의 때와 인자를 무시하는 악한 종 (마 24,43-51)

노아의 때와 똑같은 인자의 때 (마 24,37-42)
마태복음 2018 2021. 3. 21. 10:33
18-126 노아의 때와 똑같은 인자의 때 (마 24,37-42)

〈마태복음 24:43-51, 개역한글, 신약성경 42쪽, 찬송가 162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 163장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4:43, 새번역) 『이것을 명심하여라. 집주인이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알고 있으면, 그는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마 24:44, 새번역)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 24:45, 새번역)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집 하인들을 통솔하게 하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맡겼으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마 24:46, 새번역)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종은 복이 있다.』
(마 24:47,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마 24:48, 새번역) 『그러나 그가 나쁜 종이어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주인이 늦게 오시는구나' 하면서,』
(마 24:49, 새번역)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마 24:50, 새번역) 『생각하지도 않은 날에, 뜻밖의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마 24:51, 새번역) 『그 종을 처벌하고,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성경 말씀은 천년이 하루 같다 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세상의 지혜 속에서도 천년이라는 용어를 묵시적인 의미에서 사용합니다
즉 영원하다 라는 영원성을 천년 이라는 용어를 써 가면서
마치 천년묵은 여우처럼 영적인 존재의 위상으로 취급하면서
영원성을 말할 때 사용한다 말이죠

그런 영원성을 하루처럼 후딱 지나가게 함으로써
영원성은커녕 심판 적인 의미로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다 라는 거죠

부자 라는 의미로 영원성으로 사용하는데 있어서
성경말씀의 시선은 하루살이로 만들어 버리시겠다 라는 취지입니다

베드로 후서 3장이 그래서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말이죠
도적같이 
하루 같이
후딱


(벧후 3:8,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 ㉢시 90:4』

(시 90:1, 개역)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2, 개역)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3, 개역)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시 90:4, 개역)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벧후 3:1,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벧후 3:2, 개역)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벧후 3:3, 개역)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벧후 3:4, 개역)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5, 개역)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6, 개역)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 3:7, 개역)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8,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개역)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10, 개역)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개역)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개역)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개역)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4, 개역)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5, 개역)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벧후 3:16, 개역)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7, 개역)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 3:18, 개역)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본문처럼
도둑 같이

(벧후 3:10, 개역)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후딱 오신다고 했을때에
천년 이라는 그 길고 긴 영원성이
도리어 하루 아침에 쫄딱 불타 버리는 그런 상황을 미리 땡겨서
네 맞아요 종말을 땡겨서 보는 시선이 바로

말씀이다 라는 겁니다

이 말씀의 시선만이 영원해요

다른 것은 영원하지 않아요

이 말씀이 마지막때에는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고
듣고 싶어도 못 듣는다 말이죠
앞의 글 에스겔에서 언급했듯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배가 불러 터진 입장에서
즉 부자처럼 행세하고 있는 거죠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다 보니

말씀을 골라 골라서
고른다는 자체가 이미 자기 유익으로 말씀을 이용해 먹을려는 입장인데

과연 말씀이 멍청하게 그런 노림수에 놀아나 줄까요?

그래서 모조기 다 심판 속에 넣어버리시는 겁니다

아무리 동의를 안해도
꼭 한 놈의 배신자가 우리를 모두다 심판 속에 넣어 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생기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한 선지자

곧 인자
노아의 때는 노아가 그 배신자였고
이사야 때는 이사야가 인자로써 배신자였고
예수님의 때는 예수님이 인자로써 우리들을 배신하고
모든 인간은 심판 받아 마땅한 자 라고 자수를 해 버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말씀만이 영원하고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 라는
지혜자가 알려주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영원해야 합니까
사람의 구원은 헛되거든요
아니 허구를 허상을
우상을 구원해 본들
게속 허구로 허상으로 있을 뿐인데
구원해 본들 소용도 없고 의미도 없어요
무슨 놈의 기능을 하냐 말이죠
코가 있어도 냄새도 못 맡고
귀가 있어도 듣지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도 못하고
입이 있어도 발이 있어도 손이 있어도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는데
말라꼬 구원하냐 말이죠
그 정도로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 라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을 구할게 아니라
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구해야 한다 말이죠

마지막 때에
사람은 죽어나가든 아직 덜 죽어서 살아있든 새 때까리 이겠지만
말씀은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 말이죠

그 정도로 지금은 흔해 빠진 것처럼
언제든지 나의 선택유무에
팔만 뻗으면 언제든지 구하고 듣고 읽고 등등
가능하다 라고 여기겠지만
말씀 자체가 움직여 버리게 되면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지요
더 이상 나의 선택유무에 달린 것이 아니라(자유의지는 엉터리 사상입니다)
도리어 말씀에 의해서 내가 결정이 되는 겁니다

차라리 이미 결정이 나 버린 상태에서
그 정답에 맞는
문제지
문제아 곧 내가 탕자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종말을
애가 애곡 재앙이 기록된 말씀에
딱 맞는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인 심판 받아 마땅한 자 라고
이 말씀을 먹여달라고 해야 할 판국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 말씀이
영원한 말씀만이
곧 상대적으로 인간은 하루살이일 뿐이요
영원성 자체가 없으면서도 늘 탐심으로 영원성을 갈구하는 우상숭배자인 인간은

이 영원한 말씀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시집 장가 먹고 마시는
잔칫집이라는 인생의 즐거움을 찾더라 말이죠
인생 자체가 헛되고 헛된 허구인데
그 허구에 즐거움을 안겨 줄려고 무지 무지 애를 쓰는 것이
인생이라는 허무 이다는 겁니다

누가 초상집에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을려고 하겠느냐 말이죠
그 정도로 나는 애가! 슬픔 당해도 마땅한 인간이며
애곡! 눈물 흘리며 근심 당해도 마땅한 인간이며
재앙! 심판 당해도 마땅한 인간이라서
이 인자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참된 목자의 섬기심이 아니면
안되는 인간이다 라는 말씀의 규정을
영원한 말씀의 규정을 나타내고자 동원이 된
심판 받아야 할 하나님의 원수로 동원이 되고자
이 말씀을 구하겠느냐 말이죠

맞아요 아무도 못 구해요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합니다

아하스 왕의 모습이 우리 모습과 같아요
전쟁이라는 죽느냐 사느냐 라는 생존의 유무상황에

난데 없이 임마누엘을 구하라?
말씀을 먹어라?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어라?

아무도 말씀을 안 구해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않겠노라 라고 합니다
이게 정상이지
누가 비정상인처럼 네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고
말씀만이 영원하지
나는 영원할 필요가 없다 라고 나오겠냐 말이죠

이사야도 에스겔도 다 그랬다 말이죠
그랬던 자들이 성령이 임하게 되니까
갑자기 배신을 때리면서
말씀만 영원하시고
모든 인간을 심판해 달라고 자수를 하고 심판 요청
종말을 요청하게 되면
그 선지자를 우리가 가만히 두겠냐 말이죠

바로 이런 내막을 까발리는 것이 말씀이라는 영원한 말씀이다 라는 겁니다

누가 과연 이 영원한 말씀이 어서 어서 빨리 와 달라꼬 할까요

아니 오늘 본문에 간따나 도적같이 온다 라고 했을때에
그 영원성 이라는 속성을 가진 천년이 졸지에 하루처럼 변해 버리고

그렇게 간따나 도적처럼 온다고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때에 말이죠

거기에다가

(벧후 3:10, 개역)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개역)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개역)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라고 하더라 말이죠
간따나 도적같이 인데
더 빨리 빨리 재촉하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것도 하늘이 불에 타버리고

체질?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싶어서 다른 번역을 보니
원소 라고 새번역에서 나오고
나머지 번역은 천체 라고 지구와 우주를 말하는 거죠
소위 존재들은 다 불에 녹아버린다 라는 겁니다

(벧후 3:12, 새번역)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벧후 3:12, 공동)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하늘은 불타 없어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벧후 3:12, 쉬운) 『여러분은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야 합니다. 그 날에 하늘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겠지만,』
(벧후 3:12, 현대인) 『하나님의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천체도 그 열로 녹아 버릴 것입니다.』
(벧후 3:12, 현대어) 『여러분은 그날이 하루 빨리 오도록 손꼽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타고 천체는 녹아 없어지겠지만』

즉 이전 것은 지나간다 사라진다 삭제 된다 라는 거죠

누가 이런 기도를 하겠냐 말이죠

문제는 기도를 한 배신자가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더더욱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다 말이죠

선지자 와 같은 수준 높은자만이?

천만의 말씀
기생 라합이 했어요

그러니 핑계치 못해요

많이 배운자만 한다 라고
못 배웠다 라고 사적인 개인의 사정을 봐준다 라는 의미가 안통한다 라는 겁니다

누가 이 인자의 때를 간구하겠냐 말이죠
다들 자기 생존과 자기 의로움이라는 우상
되도 않는 겨우 남 7번 용서라를 깨작 깨작 장난질하는 사적인 구원이나 바라고 있지

누가 이 7에 70번 용서를 받고자
이 모욕적인 구원을
나를 없애 달라고
인자의 때를

오로지 말씀만 영원하셔야 한다 라고
예수님만 구원 받으셔야 한다 라고

누가 자기 개인 구원을 허구로 여기면서
어서 어서 심판해 달라고
어서 주의 말씀만이 남고 다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냐 말이죠

아무도 더 큰 것을 구하지 않아요

작은거 라고 구하는 것이 어디고 라고 하겠지만
작은 거는 다 사라지고
이전 것으로 취급 당해요
새것도 아닌데 왜 구하냐 말이죠

계시록에 의하면 성전도 없는데
해와 달도 없는데

오로지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만 참성전으로써 있을 뿐인데

없어지고 사라질 허구를 왜 구하냐 말이죠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2, 새번역)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2, 공동) 『나는 그 도성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 양이 바로 그 도성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계 21:22, 쉬운) 『나는 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바로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2, 현대인) 『나는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의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나를 괴롭히는 전능자만이 있을 뿐이다 말이죠
전능자와 어린양이 성전이 아니라
따로 따로 둘이가 성전이 아니라
전능자 라는 심판 주가 곧 심판 당하시는 어린양으로써
성전의 기능을 제대로 보여준다 라는 겁니다
둘이 하나이다는 거죠 이 모순된 앞뒤 모순된 기능이 하나 이다는 겁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의만 거룩만 영원하지
인간은 심판 받고 싶어도 이 간극에
이 공백에 끼어들수가 없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피 공로 뿐이다 말이죠

바로 이 하나님의 지혜를
이 십자가의 지혜를 못 만나도록 하고자 방해하는 자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악한 자 이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지난 주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계속해서 그랬듯이
에스겔 뒷 부분 그리고 마태복음
그리고 이사야 때도 그랬지만
요즘 새로 에스겔 처음 부분을 하면서
계속해서 연결이 되면서
말씀이 말씀 스스로가 해석을 하면서 다 알려주시니
저 같은 머리 나쁜놈은 그저 주서먹기만 할 뿐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소름이 돋아요
잠을 못자게 하실 정도로 잠이 다 달아날 정도로 말이죠
핵소름이다 말이죠 닭살이 돋아요

(마 24:43, 개역)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5, 개역)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바로 앞의 글 에스겔 34장 1절에서부터
거짓된 목자
악한 목자들이 자기유익을 쫓다 보니
무엇을 안 준다? 이 놈들이 말이죠

네 맞아요 지난 주에 애굽왕 바로왕이 잔칫집을 베풀어서 어디에 못 가도록 하겠다
때려죽어도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못 쳐다보도록
말씀이라는 주님의 살과 피를 못 보도록
십자가의 죽음을 못 만나게 하고자
강퍅함과 패역함을 추구하더라 라는 겁니다

즉 어떻게 해서든 영원한 말씀을 못 먹이도록 하겠다 라는 심뽀이다는 겁니다
그 말씀이 바로 다음 글 에스겔 3장의 내용인데

바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못 먹이고자 말이죠

초상집에 가서 지혜자를 못 만나게 하고자
잔칫집에 머물도록
시집 장가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베풀더라 말이죠

아니 아무리 부자가 백날 돈이 있어도
심판날에 그 심판을 견디는 옷을 못 구하면
그 부자는 헐 벗었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말이죠

바로 그런 종말의 시선으로써
과연 부자가 발가벗은 자로 볼 수 있겠느냐 라는 겁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이 세상은 죽은 자들의 시체로 보일 뿐인데
자 그렇게 독수리가 주검에 모여들 듯이
시체를 보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이 세상을 보는 이 인자의 시선
종말의 시선으로 죽은 세상으로 볼 수 있겠느냐 말이죠

특히 자기자신을 죽은 시체로 보냐 말이죠

때려죽어도 못 봐요
여전히 개인의 사적인 세계는 남아 있고
여전히 개인의 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는
살아있는 자로 여기고 있지
누가 자기자신을 죽은 자로 보겠냐 말이죠

죽은 자로 때려죽어도 못 보니까
초상집에 갈 이유도 없고
지혜자 곧 말씀을 구할 이유도 없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도 쳐다볼 이유도 없고

그냥 예배를 애굽땅에서 드리면 되지
왜 초상집에 가듯이
왜 구지 광야 사막에 가서
3일 길로 더 죽음에 죽음에 죽음 속으로 들어가서
또 거기에다가 어린양의 희생 죽음을 드리고자 
왜 왜 왜 자신을 죽은자로 취급해서
자꾸 살려달라고 외치느냐 말이죠

물에 빠지지도 않았는에 왜 미리 물에 빠진냥 살려달라고
방주에 들어가고자 그 미친놈의 비정상적인 노아의 외침을 들어야 하냐 말이죠

우리는 다 다른 한쪽 강도처럼
뭐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야야야 정신차려러

어 그런 정신나간 소리에
예수까지 덩달아 장단 맞춰주니까

뭐!!!!!!!! 오냐 오늘밤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이 얼마나 다른 한 쪽 강도는 죽는 마당에서도
이 두 미친 비정상적인 사람에게까지도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십자가의 지혜 라는 하나님의 어리석은 지혜를 못 만나도록 할려고 애를쓰고 있냐 말이죠
제발 정신좀 차리라고 얼마나 애쓰면서
잔칫집이라는 희망과 즐거움을 선전하고 싶었겠냐 말이죠

어라 또 옆길로 빠졌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 24:43, 개역)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5, 개역)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 집 사람들을 맡기면서
때를 따라 양식을 주라 라고 했다 말이죠

앞의 글 에스겔 34장에 그랬다 말이죠
그런데 34장처럼
악한 목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지 않고
도리어 양 고기와 양의 털에 눈이 멀어버리는
자기유익을 쫓더라 라는 겁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다 그렇지요

여기에 백성들까지 서로 서로 눈감아 주면서
자신들 또한 이 말씀을 먹기를 거부한다 라는 겁니다

이런 백성에게 나는 그들의 목자가 되지 않겠노라 라고 나올수 있는 목자가 과연 누가 있겠느냐 말이죠

그 목자의 자리에 참된 목자는
반드시 우리에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이심으로써

그 되도 않는 짧고 작은 남 7번 용서가 아닌
도리어 넓고 깊고 크나 큰 7에 70번의 용서받음을 일만달란트의 탕감을
이 영원한 말씀을 먹이시고자
목자와 같은 운명의 백성인
잃어버린 양을 만드시고자 함에 있어서

악한 종은
애굽왕 강퍅한 바로왕은
또 그 악한 목자의 거짓된 백성은
이 영원한 말씀인 십자가의 피 용서를
영원 영원한 7에 70번의 무한한 용서를 거부하고자

말씀을 안 먹이고자
못 보내겠다 라고

오늘 본문처럼

(마 24:43, 개역)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5, 개역)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 24:46, 개역)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7,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 24:48, 개역)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 24:49, 개역)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 24:50, 개역)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1, 개역)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4:45, 현대어) 『[충성된 종과 불충한 종;눅12:41-48]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종은 과연 어떤 사람이겠느냐? 주인이 맡긴 집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자녀들에게 때맞춰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마 24:46, 현대어)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종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종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마 24:47, 현대어)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은 이런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맡길 것이다.』
(마 24:48, 현대어) 『그러나 만일 그 종이 악해서 자기 스스로 `내 주인은 곧 오시지 않을거야'하면서』
(마 24:49, 현대어) 『동료 종들을 억압하고 술친구들과 흥청망청 놀고 술에 취해 있다면』
(마 24:50, 현대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예고도 없이 집주인이 돌아 올 것이다.』
(마 24:51, 현대어) 『그러고는 그 종을 모진 매로 때리고 위선자들이 받는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눅 12:35, 개역)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눅 12:36, 개역)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눅 12:37, 개역)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눅 12:38, 개역)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39, 개역)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눅 12:40,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1, 개역)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눅 12:42,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 12:43, 개역)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4,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눅 12:45, 개역)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눅 12:46, 개역)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눅 12:47, 개역)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8, 개역)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개역)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눅 12:52, 개역)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눅 12:53, 개역)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눅 12:54, 개역)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눅 12:55, 개역)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눅 12:56, 개역)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눅 12:57, 개역)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눅 12:58, 개역)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눅 12:59, 개역)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린양의 희생제사인 십자가의 죽음을 못 보도록
종말의 인자의 섬기심을 못 보도록 하는

강퍅함과 패역함을 추구하고자
먹고 마시는 잔칫집이라는 즐거움으로 인해
자기유익이라는 우상숭배로 인해
백성에게 영원한 말씀을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이지 않고자 하더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그저 거짓선지자의 특징처럼
평강이다 평강이다 대충 대충 심상히 고치나 평강이 없어서
화평 이라는 화목제물 되신 말씀을 먹이지 않고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 둘이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시는 이 십자가의 지혜를 먹이지 않음으로써
이 심판이 기록된 말씀을 먹이지 않아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지옥으로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를 심판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 24:51, 개역)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도적같이 오심은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바로 이런 악한 종을 염두하신 말씀입니다
이들이 더 이상 이런 도적을 예상하고 대비해서

심판을 언제든지 피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도록 하시겠다 라는 취지입니다

즉 결코 자신의 살아있음을 연장할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나는 죽고 주님만이 영원하셔야 한다는 자에게만
이런 주님의 화평으로 오시지 않고 친근함이 아닌
낯설기 짝이 없는
오로지 우리는 죽은 시체를 보시는 죽은자로 취급하심에 있어서

과연 이 영원한 말씀만이 옳았다 라고
말씀을 구하고 먹고자 하는 백성이 있겠냐 
또한 말씀만을 먹이고자 하는 목자가 있겠냐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증거 되는 겁니다

없다 라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고
또한 타인 뿐만이 아니라
자기자신에게도 기대하지 말고

오로지 믿을 것을 십자가 라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말씀하시는
이 말씀 되신 예수님만
영원하다 라고
그 앞에서 나는 빨리 어서 어서 사라져야 함이 마땅하다 라고
어서 이 영원한 말씀만이 남아야 한다 라고
종말을 구하라꼬 하시는 말씀이다는 겁니다

왜? 영원한 말씀인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만 예정 되었기에
다른 것은 예정 된 적이 없는
이전 것으로써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기에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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