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9 달란트 비유(충성된 종과 게으르고 악한 종의 비유) (마 25,14-30)

등불 처녀 비유와 잃어버린 양 (마 25, 1-13)
마태복음 2018 2021. 4. 4. 10:34
18-128 열 처녀 비유와 잃어버린 양 (마 25, 1-13)

〈마태복음 25:14-30, 개역한글, 신약성경 43쪽, 찬송가 37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5:14, 새번역) 『"또 하늘 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마 25:15, 새번역)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품삯』
(마 25:16, 새번역)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 25:17, 새번역)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마 25:18, 새번역)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마 25:19, 새번역)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마 25:20, 새번역)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마 25:21, 새번역)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 25:22, 새번역)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 25:23, 새번역)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 25:24, 새번역)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마 25:25, 새번역)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마 25:26, 새번역)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마 25:27, 새번역)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마 25:28, 새번역)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마 25:29, 새번역)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마 25:30, 새번역)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마 25:14, 현대어) 『[달란트 비유;눅19:11-27] 하늘나라는 마치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돈을 맡긴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바로 앞의 글 에스겔 34장을 살펴본 글에서
천국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쳐들어 온다 라고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했습니다

즉 죽어서 가는 천국은 종말성이 없어요
그저 때가 되니까 가는
누구나다 다 아는 시간이요 때이지

그 시와 때는 알수 없는 시간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 시와 때를 알수 없는 천국이 바로 종말의 천국으로써
종말이란 시간 개념보다 
사건 개념 즉 내 쪽에서 다가가는 방식을 모조리 다 차단하고
단절시키는 사건으로써 쳐들어 오는
거꾸로 쳐들어 오는
나의 발과 손을 꽁꽁꽁 묵어서
그 어떤 대처도 못하는
도둑은 미리 알아서 대비 할 수가 없듯이
쳐들어 오는 천국이다 라는 겁니다 비유가 다 이래요

지난 주에 열처녀 비유 곧 다섯 처녀의 등불 비유를 언급했듯이
도둑같이 오는 신랑을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종말성
곧 천국이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천국은 자신이 이미 천국과 지옥을 분류한 입장에서
취사선택의 천국입니다

아니 이미 분류했기에 천국에 갈려는 행동만을 모으지
누가 지옥에 가고자 지옥에 갈만한 행동만을 모을려고 하겠냐 말이죠

결국 그 동안의 시간과 공간을 천국을 위해서 바쳤고 쌓았고
그 쌓은 의로움 거룩한 행동 등등이 이 천국과 맞다 라고 해서
그것을 진리로 형성했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의 분류는
바로 그런 인간의 방법을 치시는 방식으로써
깨뜨리시는 방식으로써
완전 거꾸로의 천국 분류로써 쳐들어 오시는 겁니다

니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수용하든 말든
그냥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너의 수용 여부와 무관하다는 말은

너의 진리관을 안 받겠다
인간의 분류작업을 거부하시겠다

아니 아예 의도적으로 그런 거룩 곧 자기 의로움을 깨뜨리시는 방식만
골라 골라서 쳐들어 오시겠다 라고
골라 골라서 피해서 오시는 겁니다

천국이라는 종말을
끝을 땡기시는 겁니다

자 그럼 진짜 끝은 끝이 아닌거지요
인간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드는 취급 자체를 안하는 겁니다
지금 현재가 종말이요 끝이 아닌 자는 끝은 결국 없는 겁니다
마침이 없어요

그들은 원인만 있고 결과가 없어요
의문의 반복이예요

지금 이 순간 ~~~~~~~~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

가 천국이 아니면 천국은 앞으로도 못 누리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이 아니면
또 지옥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이 지옥을 곧 나 죠
나 라는 지옥을
이 의문의 반복을 깨뜨리지 못하는 천국이 침략하지 못한다 라면
늘 의문의 반복
나 의 반복 뿐이예요

나 라는 것이 없는데
즉 이 말은 인간은 자아가 형성 되는
그 때부터? 6살? 7살?
언제더라? 정신분석에서 몇 살 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그 때부터
자기의 것이 생겨요
그러니 자아가 곧 진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없는데 자아가
그런데 졸지에 생기니까 자아가 곧 진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때부터 시간과 공간 이라는 자아라는 신체에 정성을 퍼부어요
그리고 진리화 해서
앞의 글처럼
즉 계급화 해서
진리를 형성하는데 나도 너도 그것이
이스라엘이 형성한 진리이다 라고 했잖아요
그거 깨뜨리시는 더 뻔뻔한 진리가

배신자 에스겔 파수꾼을 통해서 전해지더라 라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이라는 실상을 미리 맛배기로 보여주었는데
이제 오늘 예수님이 이 종말의 세가지 비유 중 두 번째 달란트 비유로써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를 없애는 천국으로 오지 못하면
천국 따위는 없는 겁니다
또 가짜 천국과
앞의 글처럼 가짜 목자와 한 패거리가 된 가짜 백성처럼
살진양으로써 가해자로써
가짜진리를 형성함으로써 지도 천국 안들어가고 남도 천국 못들어가는
마귀와 한 패거리로써 활동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이런 진리야 말로 성화론자들이 정말 정말 정말이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ㅛ
지도 못 지키는 것을 남도 못지키는 줄 뻔히 알면서도 짐 지우는 식으로 말이죠

얼마나 그 마음이 강퍅해서 잔칫집에 가 있는냥 지옥이였으면 말이죠

천국은 용서 밖에 없어요
그 어떤 죄도 말이죠
그러니 많이 탕감 받을수록 많이 사랑하는
그러니 울 수밖에 없어요
우는 자가 복 받은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을 성화론자들이 제일 짜증을 내요
왜 자꾸 초상집에 가느냐 라고 말이죠

돈 되는 노예 안 보내줄란다 여기서 예배 든 제사든 삶아먹든 꾸워먹든 마음대로 해라
그러나 절대로 이 노예들을 저 사막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라고

자기 것이 있는데
노예가 그 당시 돈인데
말라꼬 전쟁을 해서 전리품을 빼앗냐 말이죠

노예 때문 아니냐 말이죠

주인의지는 노예를 악하다고 안해요
선악의 의지가 없어요
노예를 얼마나 사랑하지 미워하지 않아요
누가 치킨 맥주를 먹고 마심에 있어서 나 치킨을 죽도록 미워해 라고 하지 않거든요
자기 밥을 누가 미워합니까
자기 것인데
자기 소유인데

오히려 자기 밥을 빼앗는 그 놈이 악하다 라고 한다 말이죠

바로 도둑 네 맞아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악하다 라고 해요
반드시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악마로 보여야 합니다

바로 그런 자들에게 에스겔 인자를 보내심에 있어서
더 악마로 더 강한 이마 금강석 더 뻔뻔한 소가죽을 입힌 띠꺼운 얼굴로써
더 나은
부정의 부정의 얼굴로써 가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저들의 선악을 깨뜨릴려고 말이죠

자 이런 예수님의 분류작업에 즉 거룩 분리 차이 분별 구별 작업에

인간의 자기 나름대로의 분류작업이 있다 라는 겁니다
앞의 글에서 말한 자기 의의 기준에서의 진리 말이죠

앞의 글에서 적을려다가 말았는데
꼬꼬무에서 아주 상상을 초월한 사모가 있었는데
돈으로 판사 변호사 경찰 등등을 다 매수하다 보니
죽은 딸의 아비가 감당을 못하더라 말이죠

하나는 선악이라는 노예의지로 살아왔고
하나는 선악을 벗어나는 주인의지로 살았으니 말이죠

예수님은 베드로든 가룟유다든 그들의 선악이라는 노예의지에 포로가 된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면서 두 언약을 보여주신다 말이죠

하나는 계집종 언약
또 하나는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의 언약 말이죠

가룟유다는 선악에 사로잡혀서 마귀에게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마귀는 절대로 가룟유다를 미워하지 않아요
자기 밥을 누가 미워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아 썩 물러가라 라고 억수로 나쁜놈 취급해요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 구나
나쁜 것만 취하고 좋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라고

즉 자기의 것 이라는 나는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는 나를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이상
이거 좋은 것이다 라고 절대로 자기 의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반드시 나쁜 놈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하는 나쁜놈 만들어서
심판 받는 자 만들어서 구원하시더라 말이죠
초상집에 간 지혜자처럼
엉엉엉 우는 자 만들어서
꼬끼오를 세 번 울게 해서라도 말이죠
주님과 하나가 되어버리게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만이 우는 자 였거든요
이것을 좋은 소식
복음
기쁜소식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좋고 나쁨이 아닌
선과 악으로 판단하다 보니
예수님을 악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마 12:24, 개역)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눅 6:22, 개역)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요 7:7, 개역)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주님만이 하실 판단을 자기들이 해 버리는 겁니다
왜? 자기들이 소유해 버린 자기 것인 진리에 의해서 말이죠
곧 자기가 쌓은 의에 의해서

뭐 천삼백년 묵은 모세의 제자와 겨우 딸랑 3년 짜리 예수의 제자와 비교가 되냐 라고 말이죠

그래서 누구의 죄냐 라는 그 죄라고 규정하는 그 죄를 심판하고
그 의를 심판하고
그 심판을 심판하시는

더 좋은 죄 ? 저들이 보기에는 더 악한 거죠 (날 때부터 실로암 소경의 죄냐? 하나님의 영광인가?) 
더 나은 의 ? 저들이 보기에는 불의하죠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냐? 빛의 아들들의 지혜냐?)
절대로 빛의 아들들은 손 조차도 댈수가 없는 단절로써의 의로움
더 나은 심판 ? 저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저주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이요 구원의 능력이다 말이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돌로 치는 심판이냐, 거룩 사수냐
아니면 나도 정죄치 않는다 라는 손벽을 치게 한 
그 마귀가 이미 심판 받았다 라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긍휼을 입히심인가? 단번에, 순식간에)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바로 이런 종말성으로써 천국이
어떻게 우리를 분류하는가 하면

평상시에 말씀을 대하든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가
선악적으로 판단하는 자들은

이 달란트를 나의 선함이냐 아니면 악함이 되느냐 로 판단한다는 겁니다
이 달란트를 잘 활용하면 선함이 되거나 악함이 된다 라고 말이죠
일딘 악함이 안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입니다
즉 자기는 선함 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기 때문에 말이죠

자 그런 입장에는
결국 자기도 자기 것
달란트도 자기 것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는 자기의 의식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자가 시간과 공간을 채우게 되면 그것을 진리 라고 여기게 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악을 버렸고 선을 채웠으니 말이죠
시공간도 자기 것으로써 그런 숙제를 자기가 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자기 것이 없는 말도 안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즉 주인 밖에 없는 거죠
자기가 없어요
주인만 있어요
자기를 잃어버린냥 주인만 얻었다는 냥

그러니 선악 이라는 분류작업을 할 필요성 자체가 없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주인에게 맡겨버릴 것이지
자기가 원수를 심판하고 원수갚기를 할 
자시고 마시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겁니다


자 그런데 아주 특이한 표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빼앗는 주인으로써의 빼앗음 이라는 표현 말이죠
마치 천국이 침략한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 말은 인간은 이미 자기의 진리를 소유한 것처럼
자신만의 소유가 된 천국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천국의 침략으로써
개인의 소유화 된 천국을 깨뜨리는 천국으로써의 진짜 천국을 언급했듯이
마치 오늘 밤 내 영혼아 편히 쉬자 라는 부자의 천국관을 깨뜨리면서
침략하는 천국처럼 말이죠

즉 이들은 자신이 단절 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의를 쌓듯이 부자가 창고를 늘렸다 말이죠

그런데 오히려 그 단절되지 않기
악하게 되지 않고 선하게 되기 라는 것이
도리어 단절이 된 것이고

반대로 공주의 나는 새는 창고를 부자처럼 늘릴수가 없어요
도리어 단절되지 않기가 아니라 단절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야말로 하루 살이 이더라 말이죠

나는 단절이 되기 싫어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악한 종이 되기 싫어서
원금 그대로 가지고 왔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마음 자체가 이미 주인과 마음이 단절이 된 상태임을 대놓고서 시인하는 셈입니다

나는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없는데 왜 너는 그런 마음을 품었니 라고 
그래 니 말대로 되어라
악하게 되어버려라 라고 말이죠

반대로 공중의 나는 새는 자기 창고가 없어요
자기 것 자기 소유가 없으니까
그야말로 누가 봐도 단절이 된 사람처럼 보이는자가
나머지 다섯 달란트 받은자 두 달란트 받은자 이다 말이죠

(마 25:24, 개역)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개역)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개역)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자아가 따로 분리가 되는 그 몇 살의 이전에는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 합니다

주님 자체가 주인 자체가 잉여예요 잉여
뭐든지 예가 되고 아니오 함이 없어요

(마 25:24, 현대어) 『이번에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씨를 뿌리지도 않은 곳에서 거두어들이고 심지도 않은 데서 모아 들이는 인색하고 매정한 분이신 줄을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이익을 남기더라도 빼앗아 갈 것이므로 돈을 다만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한 달린트 받은 종이 주인의 성향을 선악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선악이란 곧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었기에
자아가 있기에 자기를 자기가 소유한 입장에서의 판단은
하나님처럼 선악의 기준이 자기가 되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이익을 남겨본들 어차피 빼앗기는 것을
왜 남기냐 그냥 원금 그대로 주면 될꺼 아니냐 라고

이것이 모든 인간이 선악을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모습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바로 이것을 지난 주에 주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유 이다 라고
악하다 라고 하시는 이유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리가 없지요
종말을 땡길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다섯 둘 달란트 받은 자는
자기 것이 없기에
종말을 아예 대 놓고 땡기는 겁니다
어차피 다 잃어버려도 얻은 것이 있거든요

바로 하나님을 얻었다 말이죠
뭐든지 예를 얻었다 말이죠

(잠 8:34, 개역)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잠 8:35, 개역)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 8:36, 개역)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사랑하는 관계인 부부사이는 뭐든지 사랑인 뭐든지 예가 되는 뭐든지 용서의 관계이다 말이죠

그런데 주인과 종의 관계는 지키냐 못 지키냐 로써 월급을 주는 겁니다

부부는 하나 이다 보니 따로 나 자신의 것을 챙길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주인과 종은 하나가 될 수가 없는 따로 따로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손익계산을 따지는 겁니다
마치 가정부처럼 말이죠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는 안 그렇잖아요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더라 말이죠

바로 이런 자를 앞의 에스겔 34장에서 패역한 자 라고

그런 자에게 더더더 이마가 금강석으로 굳은
더더더 얼굴이 소가죽처럼 뚜껍고 딴딴한 뻔뻔스러운 얼굴로 가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래 진짜로 손이계산 한번 따져봐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아놓고도 다시 작고 작은 되도 않는 백데나리온 빚진자를 감옥에 보내니
너도 그 다음 차례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뭐 용서를 하지 않는다 라고
그래 용서를 무시하는 너도 함 당해보라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크나큰 용서의 일에 동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용서의 일을 거부하고
손이계산을 따져서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겠노라 라고 나오는
패역함을 보여주더라 말이죠

그러니 있는 자는 더 받고
용서를 받는 자는 더 용서 받고
많이 탕감 받는 자는 더 사랑하고

용서의 관계로, 십자가라는 미래에서 온 진리의 기준으로 못 보는 자는
자기 손익 계산의 진리 곧 선악으로 따지는 그 계급분류에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속이냐 라고
이 십자가의 피 용서에 덤비는 모습으로써 나타나는

쳐들어 오는 천국분류작업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뭐가 더 또렷하냐 말이죠

사랑이냐
죽음보다 강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그 십자가냐

아니면 나의 되도 않는 자기 의로움을 쌓아서 겨우 남 7번 용서가 그 속임수가 
그 의문의 반복이 또렷하냐 라고 말이죠

이 쳐들어 오는 종말의 천국에 의해서
영원히 갈라지는 겁니다

이 영원한 말씀을 얻는 자인지
아니면 자기의 되도 않는 사라지고 삭제될 의문의 자기를 
자기가 쌓은 의를 안 빼앗길려고 하는 자인지
이미 빼앗겼기에
있는 것도 빼앗기는

빼앗는 천국이 아니면
우리는 허깨비 안개를 쥐고
부자처럼 영원하다 라고 우기는 그 사단의 깊은 것을 못 보는 겁니다
알지 못 하는 겁니다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개역)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개역)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1, 개역)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2, 개역)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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