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0 양과 염소를 분별하여 심판하시는 인자 (마 25,31-33)

빼앗으러 온 천국(도둑) - 달란트 비유 (마 25,14-30)
마태복음 2018 2021. 4. 11. 10:52
18-129 달란트 비유(충성된 종과 게으르고 악한 종의 비유) (마 25,14-30)

〈마태복음 25:31-33, 개역한글, 신약성경 44쪽, 찬송가 277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 25:31, 새번역)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마 25:32, 새번역)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마 25:33, 새번역)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뒤바뀐 의인의 범죄와 악인의 돌이킴(회개) (겔 33,12-20)
에스겔 2019 2021. 3. 7. 09:38
19-85 뒤바뀐 의인의 범죄와 악인의 돌이킴(회개) (겔 33,12-20)

두 아들 비유 ; 파수꾼 세례요한의 경고를 들은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에스겔 33장을 통해서
교회에서 이런 내용을 안 가르쳐 주는 것은
자신들이 세운 가짜진리가 무너질까봐
항상 염려하는 것이 질서가 무너질까봐 못 가르친다 라고 했습니다
가르칠수가 없어요 배울수 있는 자도 없거든요
마치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교육 자체가 안되니까 말이죠

의인 악인 만 문자로 운운하지
의인의 범죄
악인의 회개는 안 가르친다 말이죠

그것은 수십년 지나도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불가능이니까
그 반대로의 가능성만 가르친다 말이죠

그것이 가짜 진리 곧 계급입니다 성화론이 그래서 한국교회를 다 덮어버린거다 말이죠
그 속에서 수준이 높은 성화론이니
수준이 낮은 성화론이니 거 봐요 계급을 따지 잖아요
우상숭배자들의 특징입니다

소유로 계급을 따지듯 성화 스팩으로 계급을 지어요 
바로 오늘 말하고자 하는 분류작업을 하더라 말이죠

문제는 그것이 천국에는 안 먹혀요
즉 가짜 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분류 작업은 다 거짓이더라 라는 겁니다.

어른이 된 목사라는 둥
어린 성도 라는 둥
그런 용어를 자주 쓴다 라는 자체가
아 이 목사 맛이 갔구나 이더라 말이죠

어른이라면 장성하다면 
죽음 속으로
심판 속으로
종말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야말로 단단한 음식을 먹던가 말이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자처럼 말이죠

에게게게 겨우 의문의 교회를. 눈에 보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유지할려고
그런 용어를 델꼬와서 쓰더라 말이죠
인자(새성전)자체로 기도하지 않고
성전에 바친 금으로 서원으로 자기열심으로 맹세를 하듯이 말이죠
이게 우상숭배이거든요 어서 도망쳐야한다 말이죠

분류작업이 졸지에 계급이 되더라 말이죠
도망치기는커녕 안주해서 우상숭배에 더 열심이더라 말이죠
얼마나 이 교회에 충성할 자인가로 계급을 말이죠
바리새인도 그랬어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저주 중에 저주를 받은 날 때부터 소경인 자들은
아예 계급에서도 배제가 될 정도로 아예 취급 자체를 안 하는 거죠

예수님의 성전측량 곧 거룩측량은 
바로 이런 마귀의 분류작업인 계급짖기와 정반대가 되는 겁니다.
즉 반대를 위한 반대이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그냥 무턱대고 계급을 짖겠습니까 아니지요
선은 취하고 악은 멀리하는 식이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선악의식에 대한 반대입니다
선이 선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나 자신도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가 되는 줄
악이 되는 줄 모르는 거죠
그런이 선도 악인줄 모르는 겁니다

촛불시위에서 악은 선을 이길수 없다
어두움은 빛을 이길수 없다 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앞장세워가면서 까지
노래를 불러도
그런 독재는
율법에서는 안 먹혀 드는 겁니다
차라리 악을 없애 버릴려면
선의 자리에 설게 아니라
그러면 그럴수록 악에 바쳐서 악이 더더욱 악해지거든요
차라리 악의 자리에 서서
그들과 함께 회개를 하거나
그들과 함께 사랑을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때려죽어도 못해요
왜? 자기는 누가 뭐래도 선하거든요
이게 악마들의 특징입니다
딴나라당 놈들도 다 이런 의식이구요
촛불당도 다 이런 의식이예요
결국 이 두 독재가
서로 계급 따먹기 할 뿐인데
정의니 뭐니 하는 것은 다 거짓이다는 거죠

둘다 돈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기는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이런 두 놈들 다 없애는 것이 평화 이거든요
멍청한 안초딩 보세요 자기가 싸우고자 원수라고 여겼던 자들과 이제 합당을 해요 ㅋㅋㅋ
진작 그카지 진작
완전히 사기꾼이다 말이죠

그들만의 게임에 속을 필요가 없이
그냥 종말을 구하세요
어서 어서 심판해 달라고
불을 떨어뜨려 달라고
네 맞아요 같이 죽어야지요 뭐

이것이 정의 이거든요
부자와 가난한 자 자체를 없애버려야지
중간치 해 달라는 것은 또 하나의 우상숭배이니까 말이죠

왜 인간들의 정의가 거짓인지를 말이죠
진짜로 당선이 되니까
어 이게 아닌데 라고 얼굴에 다 나오더라 말이죠 엠비 아바타가 말이죠

가짜 정의가
가짜 심판이 
진짜로 심판을 하게 된 셈이니까 불안한 눈빛이 그대로 나오더라 말이죠
어 그냥 해 본 말인데 진짜로 되네 라고 점 점 점
그러니 또 의문의 반복이 계속이 되는 겁니다

결국 인간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행함을 통해서 형성한 의와 죄와 심판에 대해서 심판 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인자가 나옵니다
인자가 보좌에 앉았다 라는 말은
심판의 주 이시다 라는 거죠

곧 그 인자는 심판의 주 이시지만
인간이 어떻게 다룬 자이다?
인간의 심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인간에 의해서 심판 받은 분이 도리어 그 심판자 인간을 심판 하러 오신 겁니다

그 인간들의 심판의 기준이 뭡니까 네 맞아요 선악입니다
이 선악이라는 기준으로 심판했는데
그래서 인자를 죽였는데

이 인자가 도리어 심판의 주로써 인간을 심판하러 왔다는 말은
이것 보다 인간의 자존심을 스크래치 하고
이것 보다 인간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인간이 쌓아온 지식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 이다는 겁니다

지난 주에도 언급을 했습니다만
누가 초상집에 갈려고 점쟁이나 점집 또는 철학관 등등 점을 치는 자들이 없잖아요
다들 잔칫집에 갈려고 점쟁이를 찾는다 말이죠 

관상가 양반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라고 왕을 염두하고서 묻듯이 말이죠

아냐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야 라고
그 죄를 심판해 주소서 라고 초상집
제사가 있는 하나님의 집에 가는 자가 없어요

하나님 집 자체도 유대인 곧 바리새인은
십의 일조를 냈고요 이레에 두 번 금식 했고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우상숭배의 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강도이 소굴이 된 이유 이다 말이죠

이런 강도들에게 심판 주로써 오신 인자가 과연 기쁨으로 여겨지겠습니까
아니면 또 어떻게 하면 죽일꼬 라는 살인의지를 들통당하게 되겠습니까

남들이 다들 모두다 선으로 여기는 양을 도리어 염소라고 인자는 들통내시고
반대로 누가 봐도 악한
절대로 선으로 옮겨올수 없는 그 절대악마와 같은 자들을 양이라고 선언해 버리신다 라고 하면
이건 뭐 모든 인간들이 다 달려들어서 예수님을 죽일것이 뻔하다 말이죠
사회 질서 규범을 엉망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인간의 생존권을 위태 위태 하거든요
범죄의 도시를 만드는데 가만히 둘 리가 있겠냐 말이죠
그런데 도리어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의 잔칫집 건설을
에덴동산 건설을 도리어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냐 말이죠

그래놓고 딴 세상에 천국을 만들어 놨으니까
어서 떠나자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누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자 중에
이 말씀에 동의를 할 수가 있겠냐 말이죠
네 맞아요 떠나고픈 자 만이 그 말에 동의가 되겠지요

이스라엘도 안 되는 판국인데
개같은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아예 단절된 소리인 겁니다

성화론자들 중에 과거 이스라엘은 실패 했지만
이제 신약 시대에는 성령을 주셨기에
이제는 가능하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랬던 자들이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떠날 마음이 있음을 연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속일려고 할 뿐이더라 말이죠
추호도 없음을 우리가 인정을 해야 한다 말이죠
누가 심판의 자리
누가 초상집에
누가 종말을 끌어오겠냐 말이죠
최우선은 자기 생존인데 말이죠
그러니 인간 자체는 거짓이기에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네 저의 말도 듣지 마세요 거짓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 적도 없는데 왜 듣냐 말이죠
너희는 저의 말만 들으라 라고
목사 말도 들을 필요가 없어요
병신 속지 말라꼬 그렇게 눈치를 줘도
도리어 훈계하겠노라 라고 달려들다 보니
왜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배신때리냐 라고 울부짖더라 말이죠

인자를 쳐다보지 않는 자는 다 거짓입니다
우리가 죽인 그 인자이거든요

내가 거짓이 안되겠노라 라고 심판했던 그 인자가 
도리어 오늘 심판 주로써
사람들을 분류하기 시작 합니다
이미 인간은 틀린 셈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인간은 이 인자 앞에서도
자기가 죽인
나는 심판 받으면 안된다 라고 도리어 인자를 죽여서 심판한 그 기준으로써
인자 앞에서도 그 기준을 여전히 들이댐으로써
양과 염소를 가르고 분류한다는 자체를
뒤짚어 전복시켜 버리시는 겁니다

그래 너가 생각해도 이 사람은 도저히 구원 못 받은자 같지?
그 사람을 구원하시고

또 도리어 이 사람은 누가 봐도 구원 받아 마땅한 자 이다 라고 여기는 자를
보란 듯이 지옥에 보내시고자 왔다 라고
모든 사람의 손에 십자가에 달려 죽어버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인자 라는 새성전의 의미이거든요

가짜 진리를 인간은 어떻게 형성했습니까
오랜 시간동안 율법을 지켰다 라고
그것이 부자 이거든요
노력의
행함의 결실로써 된
그야말로 모범 사례이다 말이죠

문제는 예수님이 하루 아침에 용서를 해 버리는 7에 70번의 용서 앞에서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졸지에 의문이 되어버렸고
거짓이 되어버린 겁니다

더 낫지 아니하면 살려주는 영이 아닌 셈인거죠
그럼 그들은 어디에서 남을 7번 용서를 했을까요?

바로 죽음이라는 바닥이 뜯겨지지 않은채로
나는 살아야 한다에서 나온 것이다 말이죠

진짜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해서 나온 남 용서 7번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울리는 꽹과리 스팩쌓기에서 나온 것이다 말이죠
그야말로 이기적인 거죠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치는 대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살려주는 것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몰라도
도리어 율법을 어겼노라 라는 괜한 오해를 받으면 안되기에 그냥 지나가버린 겁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율법을 사수했다는 것이 과연
사랑입니까 오히려 살인 입니까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결국 살인자 이다는 것이 말씀이 증거해요
제가 증거하는게 아니라

그 증거가 십자가 이거든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더라 말이죠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열심 자체가
자기의 살아있음을 먼저 내세우게 되는

그야말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바로 그것이 사망의 몸임을 증거하는 셈인데
도리어 의를 거룩을 말씀을 실천했다 라고 착각하는
살인해 놓고서는
도리어 거룩을 실천했노라 라고
그런 거짓으로 포장을 해 버렸으니
그런 유대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시는 겁니다

뭐 양 이라꼬? 유대인이 그랬어요
너희들은 염소야

또 우리는 염소입니다 우리를 떠나소서 라고 하는 자들에게
유대인들 보란 듯이
너희야 말로 양이로구나 라고
단 하루 만에 이 사마리아인을 죄 용서 해 버림으로써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더라 말이죠

바로 앞의 글 에스겔 34장에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말이죠

이것이 이사야 서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른 적 없던 자들에게 부르신바 되고
왜? 단 하루 만에 용서 해버리시니까 말이죠
주를 찾지도 않던 자들에게 찾으신 바가 되어버리시겠다 라고 말이죠
하루 아침에 주의 나라를 세워버려요

여기서 이 주의 이름 앞에서
이스라엘은 역사가 수천년이라는 둥
모세의 제자 1300년의 정통이라는 둥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수태치 못한 자가 복 되도다 라고 하시는데

말이 안 되잖아요
아이를 많이 낳아본적이 없는 처녀가 하늘에서 아들이 많고
순풍 순풍 자식이 많은 여자가 단 하나도 없더라 라는 겁니다

양과 염소가
축복 받은 자와 저주 받은 자가
뒤 바뀌더라 라는 겁니다

인자 에 의해서
새 성전 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앞의 글 에스겔 34장으로 치면

다윗이라는 다윗의 자손을 기준으로 인해서 말이죠

이 다윗이 바로 왕 같은 제사장 이거든요
제사장 기능의 중심으로 양과 염소를 분류하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도 만만치 않게 저항을 합니다
그들 또한 레위인들 곧 제사장 중심으로
율법 중심으로
저 율법이 없는 이방인과 다르게 진리를 형성 합니다
네 맞아요 성전 중심으로 말이죠

문제는 그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써
우상 숭배의 터전이 되었고
또한 아직까지도 46년 동안 짖고 있는
의문의 반복이더라 라는 겁니다

개척교회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교회는 미완성입니다
늘 큰 교회를 꿈꾸고 있거든요

그럼 큰 교회 재벌 교회 목사는 완성된 거냐
자식한테 못 물려줘서 안달이거든요
즉 여전히 미완성이다 말이죠
욕심이 탐심이 우상숭배가 밑도 끝도 없거든요

그들 앞에 새성전 인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교회들을 심판하시겠다 라고 말이죠
교회들이 피 치 흥 거리면서 비웃어요

뭐 쥐뿔도 없는 자가 교회를 헐라 라고 하니 말이죠
그 동안 이 성전을 사수한다고 들인 공이
노력이
시간이
돈이
얼마인데

거지 같은 놈이 뭐 헐라 ~~~~~~~~~ 헐 ~~~~~~~라

뭐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을 뒤엎어버리겠다 라꼬 ~~~~~

즉 여기에 인간 스스로가 단절을 선언해 버리는 겁니다
주님이 단절로써 오셨는데
고맙게도 인간이 스스로가 단절을 선언해요

거봐 거봐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로구나
먹기를 탐하고 그럼 그렇지
포도주를 즐기는 그럼 그렇지 술꾼이로구만

너는 너가 단절이다 선언하기 전에 우리가 단절로써 선언 할 거야 라고 나오도록 하신다 말이죠

그 증인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 아닙니까

바리새파가 괜히 나온게 아니거든요
소위 딴나라당의 폐해를 다 격고서 그것을 극복하겠다 라고 나온 파이거든요
그러니 목숨 걸고 거룩을 사수한 겁니다

철저하게 분류작업으로써 저 사마리아인과 어울릴수가 없다 말이죠
철저한 단절이다 말이죠

오늘날 정통교단들 보세요 철저하게 이단들과는 상종 안해요
그런데 돈많은 교단들과는 상종해요
같은 이단인데
돈 받고 순 ~~~~~~~~ 복음으로 인정해 줘요 글쎄

바리새인이 한 쪽으로는 로마와 독립운동을 하구요
한 쪽으로는 돈 찔러 넣어서 성전 사수를 위해 로마에게 돈 상납하듯이 말이죠
양다리를 다 걸치는 겁니다

다른 방법으로 사수할 방법 있으면 말해 보세요
교회 무너지면 무슨 수로 책임을 질꺼냐 말이죠

이런 상황에 주님이 들이닥치신 겁니다
그야말로 조금이라도 낳아진 환경도 아닌
최악의 상황에 말이죠
물론 인간의 모든 상황이 최악이니까 말이죠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열수도 없고 닫을수도 없고

처음부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아니였거든요

너 자체가 교회이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말이 씨알도 먹혀들 말입니까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

그러니 인자가 심판주로 오셔서 같이 떠나자 라고 할때에
네 이 종말의 사고방식이 옳습니다 라고 하는 자가 
아무리 인간 사회에서 염소로 취급 받아도 양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아뇨 저는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나를 빼앗길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라고 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그 사람이 인간 사회에서 양으로 취급받는 자라고 해도
염소라는 것이 드러나는 겁니다

즉 심판 주 앞에서
네 맞습니다 저는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심판주와 함께 하는 자는
빼앗길 필요가 없고

아뇨 저는 심판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평생을 말씀을 지켜온
단 한번도 아버지 말씀을 어긴적이 없습니?? 라고 하는 자에게는
안 빼앗고자
안 속고자 하는 것이 도리어 빼앗기고 속게 되는
이 빼앗으러 온 천국 곧 종말의 천국 앞에서
염소로 드러나는 자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지금 유대나라 독립운동하기 바쁜데 신랑을 맞이할 분위기가 아니다 라는 거죠
자기 일이 있다는 거죠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일 곧 세상을 심판하신다 에는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자기 나라 조차도 그 심판 속에서 심판의 주를 외쳐야 하는데
독립 곧 잔칫집 운동을 했으니까 말이죠

이스라엘이 아닌 딴나라를 에덴동산과 같은 잔칫집을 세울려고 한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한 애굽왕 바로왕과 같은 자들이다는 거죠
가룟유다(독립운동가)와 시드기야 왕(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과 
같은 자들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들의 심판 기준과 예수님의 심판 기준이 틀린 셈인거죠
주님의 심판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거룩을 펼치시기 위한
대신 죽으심 대신 절대저주를 받으심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앞의 글 에스겔에서 다윗을 언급하신 이유가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는
나는 너의 목자가 되고 너는 나 목자가 기르시는 양이 된다의 관계로써

심판 주의 심판을 통해서 대신 심판받는 관계
사울왕은 버렸으나
다윗은 버리지 않겠다 은혜를 사울에게는 거두었으나
나는 너 다윗에게 긍휼을 버리지 않겠다 라고 선언하시는
이 관계성을 주님의 죽음으로
곧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 이루셨다 라는 겁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을 주었다 라는 겁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다는 겁니다

즉 다윗 또한 사울과 마찬가지로 심판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에게는 사울에게는 없는 
아들에게만 있는 징계를 통해서
긍휼이 떠나지 않도록 하겠다 라는 겁니다
사울에게는 이 7에 70번의 용서가 없어서 떠나서 지옥에 가게 되고
다윗은 똑같은 잘못을 했어도
이 경건치 않은 자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심판받으시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로 인해서
7에 70번의 단번에 용서하시는
속이 시원한 순식간에 당장 용서하시는 그 긍휼로 인해서
영원한 나라를 이 다윗을 기준으로 해서 세우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되도 않는 그 사망권세
음부의 권세를 바닥 뜯는
그 의문의 증서를 찢으시고
십자가로 사랑을 확증 하셨다 말이죠

이 십자가를 이 심판의 저주를 거부하는 자들이 이제는 염소가 되는 겁니다

누가 봐도 부자를 복 받은 자라고 여겼고
거지 나사로를 저주 받은 자라고 여겼는데
이 십자가의 피 용서 라는 약속의 피에 의해서

복받은 부자야 말로 저주 받은 자이고
저주 받은 거지야 말로 아브라함 품에서 아브라함이 대신해서 모든 변호를 맡더라 라는 겁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부자가 양인줄 알았는데 염소였고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
천국에 가 봐도 부자는 설 자리가 없어요
예수님의 피 용서만 자랑하지

거기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울 자리가 아예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누가 봐도 저주 받은 거지는 도리어 아브라함 품에 안겨서
모든 변호를 아브라함이 알아서 처리하더라 말이죠

대신해서 말이죠 대신

그 정도로 무능하다는 겁니다
이런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천국의 기능이요
성전이라는 거룩을 펼치는 제사장의 기능이듯이 말이죠

그 다윗성 시온성을 중심으로 한 언약의 피가
바로 예루살렘에서 피 흘리심으로 말씀이 다 이루어 지는 겁니다
인간의 가짜 진리는 오히려 이것을 막을려고 했고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듯이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영원한 나라는 바로 다윗에 의해서 세워지는 겁니다
인간은 도리어 방해만 할 뿐이였음이 드러나는
다윗의 고백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건치 않을 자를 용서하시는 이 십자가의 피가

인간의 분류작업과 반대로
인간의 가짜진리로 역사로 행함으로 구로함으로 세우는 되도 않는
이스라엘 나라 또는 사람의 손으로 짖는 성전과 다르게

삼일만에 단번에 지금당장 후딱 순식간에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겁니다

왜 이사야 마지막 66장이 갑자기 안 맞는듯한 내용이 기록이 되었을까

후딱 단 하루 만에 순식간에 영원한 나라를 이라는 표현과
십자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사실은 신학교 다닐때에 하도 엉터리 소리를 이사야서 공부할 때 듣다 보니
교리적으로도 안 맞고
목회학에서도 안 맞고
갑자기 생뚱맞게 이사야가 이렇게 마무리 짖는다는 것에 놀래서 그랬다 말이죠

기억에 남는 것은 성경 66권과 이사야 66장 이것만 교수에게 들은 것 남더라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장난이 따로 없죠

전혀 역사(시간과 공간)와 행함과 
원인에 따른 결과의 법칙을 전혀 안 따르니까

미래에서 쳐들어오는 방식이다 보니

그때는 미래에서 쳐들어 온다 라는 개념 자체가 신학에서는 없었으니까 말이죠

자 이런 사람의 일이 심판의 기준이겠습니까
심판의 기준이 될 리가 있겠냐 말이죠

바로 그 심판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그런데 인간들이 이 엉터리를 기준의 삼았다 말이죠

그럼 하나님의 일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기에

(요 5:24,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생명도 아닌 것들이 심판할 수 없어요
심판자는 오로지 생명 뿐이다 말이죠

(요 6:28, 개역)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바로 인자 라고 합니다
대신 매 맞아 죽는 자 라는 겁니다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십자가의 피 기준으로 인해
미래에서 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말로 인해서
양과 염소 가 갈라지는

양과 목자의 관계 자체가
오로지 사랑으로만
십자가의 피 흘리신 대신 죽으심으로만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지나가고 삭제되고 이전 것의 반복일 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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