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함을 들추는 움직이는 말씀 (겔 3, 1- 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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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6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함을 들추는 움직이는 말씀 (겔 3, 1- 7)


인자야!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으라 (겔 2, 8-10)
에스겔 2019 2021. 3. 27. 13:55
21-005 인자야!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으라 (겔 2, 8-10)

〈에스겔 3: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3 쪽, 찬송가 442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찬송가 442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1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줍소서
  선한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 합소서 
  선한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 합소서

2 양의 문이 되신 예수여 우리 영접하시고 
  길을 잃은 양의 무리를 항상 인도합소서
  선한목자 구세주여 기도 들어 줍소서 
  선한목자 구세주여 기도 들어 줍소서

3 흠이 많고 약한 우리도 용납하여 주시고 
  주의 넓고 크신 은혜로 자유 얻게 하셨네
  선한목자 구세주여 지금 나아갑니다 
  선한목자 구세주여 지금 나아갑니다

4 일찍 주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게 하시고 
  주의 크신 사랑 베푸사 주를 좇게 합소서
  선한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합소서 
  선한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합소서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1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 하여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2 예쁜 새들 노래하는 아침과 노을 비끼는 고운 황혼에 
  사랑하는 나의 목자 음성이 나를 언제나 불러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3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못하리 
  나의 주님 강한 손을 펼 치사 나를 주야로 지켜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아멘


〈에스겔 3: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3 쪽〉

(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겔 3:1, 새번역) 『그가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을 받아 먹어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알려 주어라."』
(겔 3:2, 새번역) 『그래서 내가 입을 벌렸더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먹여 주시며,』
(겔 3:3, 새번역)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너의 배를 불리며, 너의 속을 그것으로 가득히 채워라." 그래서 내가 그것을 먹었더니, 그것이 나의 입에 꿀같이 달았다.』
(겔 3:4, 새번역) 『그가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어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가 하는 바로 이 말을 그들에게 전하여라.』
(겔 3:5, 새번역) 『나는 너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낸다. 어렵고 알기 힘든 외국말을 하는 민족에게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겔 3:6, 새번역)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알기 힘든 외국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에게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너를 그들에게 보내면, 그들은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겔 3:7, 새번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너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온 이스라엘 족속은 얼굴에 쇠가죽을 쓴 고집센 자들이어서, 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인자라는 에스겔에게 뱃속 창자까지 말씀을 채우겠다 라는 것은

(겔 3:3, 개역)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상인 이스라엘을 이렇게 만드시겠다 라는 겁니다
마치 말씀으로 도배가 된 인간 말이죠

십자가의 피 용서로 피에 의해
7에 70번의 용서의 바다에 풍덩 빠뜨리겠다 라는 겁니다

앞의 글 마태복음 열처녀 비유에서

아모스 8장은 언급하면서

[ 마지막 때 라는 부흥의 때 종말의 때는
영원한 말씀이 없어서
아무도 알려주는 자가 없어서 
이 영원한 말씀을 들려주는 자가 없어서 망한다 라고

지극히 전지적 영원한 말씀 시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어요
즉 인간 쪽에서 듣고 싶습니다 이제 늦게라도 알려주시면 저는 들을께요 라고
인간의 시점을 고려하지 않아요 ]

라고 적었는데요
늦게라고 말씀을 들을께요 채우겠습니다 라고 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밑빠진 장독대 라는 점을 모르기에
아무리 퍼 붓는다 라는 인간 숙제에 충실해도
즉 자기 의를 쌓고
또 하나님께 열심이어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십자가를 거부하고 복종치 않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십자가를 거리끼는 걸림돌로
즉 율법의 완성인 사랑에 의해서
율법을 아무리 지켰다 라는 자신의 의로움이 사실은 강퍅함
십자가를 못 보도록 하고자 했던 애굽왕 바로왕의 완악함이였다 라는 것이 들통나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 라는 정답이 찾는
질문지는

늦게라도 말씀을 듣을께요
말씀을 채울께요가 아니라

저는 아무리 들어도 들어도 들을 귀 없는 귀머거리요 소경이요 앉은뱅이입니다
고쳐 주세요 라고 나온다 말이죠
즉 자신의 가능성을
개선 된 사항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하라 하지 말라 라는 또 숙제를 말하는게 아니라
주님의 숙제에 저는 당하는 자 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당신이 빚으시는 대로만 나올 수밖에 없다 라는
주도권 주체를 아예 전부 주님으로부터 잃어버림 당하는 입장임을 외치는 겁니다

늦께라도 말씀을 들을께요 채울께요 해도
밑빠진 장독대 임을 알고
새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니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라고 뻔뻔스럽게
헌 집을 다 내어줄정도로 전부를 걸어버리는 식이 되는 거죠
밑빠진 장독대 백날 채워도 세니까 말이죠
세는 바가지 어디를 간다고 해서 안 세냐 라는 의식이
나다나엘 참 이스라엘 이다는 겁니다

자 그런 나다나엘과 같은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로 만들겠다 라는 것은
간사함을 없애는 숙제를 하면 되는게 아니라
밑빠진 장독대 라니깐요

목사들이 다 간사함이 없는 교인을 좋아한다 라고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간사한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온 몸을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도배를 해 버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바로 창자 뱃속 깊은 곳까지 빈틈없이 몸 속 깊은 곳 까지 꽉꽉 말이죠

자 그럼 잘 믿는 자가 유리할까요 아니면
밑빠진 장독대가 유리할까요
꽉 꽉 빈틈 없이 채울려면 말이죠
그 채우시는 주님의 숙제를 또렷하고 명료하게 볼려면
건강한 자 일까요
환자 일까요

네 맞아요 밑빠진 장독대와 같은 환자인데
그 장독대인 밑빠진 장독대임을 아는 자가 고쳐달라고

아무리 퍼부어도 다 새니까

그런 자를 무슨 방법으로 채울까요

네 맞아요

주님 자신이 흘리신 피 바다에 풍덩 빠뜨리는
밑빠진 장독대 전부를 들어서 빠뜨리면 됩니다
꽉꽉 채우고자 할 필요가 없어요
내 숙제가 없어요

오히려 
꼬로로록 피 바다에 빠져 죽는
죽으면 죽으리라 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을 누리는 겁니다

자 그럼 에스겔 개인을 구원하고자 함 입니까
이스라엘 이라는 종말에서만 나타나는 집단구원을 말하는 겁니다

인자라고 에스겔을
인자라는 새로운 인간을 구성하듯이
앞으로 오실 인자도 바로 이런 모습으로 말씀으로 꽉꽉채워진 분이시고

또 바로 이런 기능들만이 펼쳐지는 종말성을 담은
종말에만 나타나는 단체인 새이스라엘이
창자 곧 뱃속 깊은 곳 까지 말씀으로 꽉꽉 빈틈없이 채워진 인간으로써
인자로써 구성하시겠다 라고
먼저 주님이 주틀에 붕어빵 주틀을 형성하시고
남은 자를 그 주틀에 넣어서 찍어 내시는 겁니다
그 붕어빵의 뱃속을 갈라보니
단밭이라는 달달한 앙꼬가 가득채워져 있듯이
우리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라는 영원한 말씀을 꽉꽉 뱃속 깊은 창자에까지 채우시는 겁니다

이제 손으로 하는 할례는 족히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마음 판 전체를 다 십자가의 피로 도배를 아예 해 버리시는 겁니다

정 그렇게 허물을 캐고 깰려고 꼬투리를 아무리 잡고자 해도
결국 이 십자가의 피를 걷어내지 않는 이상
넓고 넓은 큰 바다 보다 넓은 그 바닷물을 다 빼내어서 바닷물을 걷어내지 않는 이상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이미 영원한 말씀이신 십자가의 피 용서
그것도 매일 매일 7에 70번의 용서의 피 바다에 푹 잠긴
밑빠진 장독대를 말이죠

인간의 되도 않는 땀과 눈물 피 

피 땀 눈물 방탄처럼 40년에 걸쳐서 해산하는 고통 속에서 낳은
남 7번 용서로는 누구 코에도 못 붙이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이 영원한 말씀에 의해 우리는 삭제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 밑빠진 장독대가 십자가의 피 바다에 빠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때에
꼬로록 꼬로록 아예 잠수가 되어서 더 이상 보이지가 않을때에
나 보다 누가 더 기뻐하시겠냐 말이죠
바로 이런 인간상의 새이스라엘을 만드시겠다 라고
인자로써 말씀을 창자까지 채우시는 겁니다

누구든지 말이죠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마 10:32,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 16:2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막 8:3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 9:24,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 8:9, 개역)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10:11, 개역)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 16:22, 개역)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누구든지 라고 하신 것은
기존의 사라질 법칙으로는
영원한 말씀의 새 원칙을 담을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 술이라는 새 복음은 새 이스라엘에게만 까까득 채우는 겁니다

지난 주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어라 했거든요

(잠 8:35, 개역)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 8:36, 개역)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즉 자기를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얻어버리면 그건 생명을 얻은 것이고
즉 죽은자 같으나 산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 이다처럼 말이죠

또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자기자신을 아무리 얻었더라고 해도
사망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되는 겁니다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 16:22, 개역)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자 그럼 누가 주를 사랑하는 자 이겠습니까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입니까

바로 잃어버린 자입니다
즉 주님이 사랑해 주지 않으면
주를 사랑할 수가 없어요
왜? 탕감 받은게 없는데 무슨 수로 사랑하냐 말이죠
자발적으로 그런거 없어도?

그것이 안된다 라는 것이 이미 성경 전체 구석 구석에 다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그런것만 가르쳐요
왜 안 보이니까 말이죠

요나의 표적에 의해서
요나는 바다 깊은 어두운 큰 물로기 뱃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즉 죽음의 자리 라는 잃어버린 자의 자리에서 말이죠

욥이 그 자리에 놓여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마귀에게 속한 세 친구의 사고방식과 다를바가 없더라 말이죠

주님께서 욥을 그들에게서 빼내시는 겁니다
본인의 자리가 의로운 자리였다고 믿었는데
저주의 자리였음을 드러남에 있어서
도저히 이해가 납득이 안되었던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그 절대 저주인 저주 중의 저주를 보고
자신의 의로운 자리가 저주의 자리로 드러남이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바로 즉각적으로 이해가 되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자신을 자기 스스로 저주를 해 버리는 겁니다

자신의 저주는 저주 축에도 못 드는 배불러 터진 소리임을
십자가의 저주를 보고서 말이죠

바로 이 저주의 죽음의 자리가
주님이 보여주시는 인간의 처음자리이다는 겁니다

나 자신을 살리고자 한다면 주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잠 8:35, 개역)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 8:36, 개역)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그렇게 주님을 잃어버린 자는 자신을 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육체의 편안함을 얻었는지 몰라도 자기의 영혼을 해치는 자 이다는 겁니다
왜? 사망을 죽음을 살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죠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자리에서 출발하게 된다면
참되신 하나님의 영원하심 말씀을 배척하는 모습
곧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으실 정도로
예수님은 그런 자들 속에 끼이지 못하고 배척받는다 말이죠

싫어버린바 되고 거부당하는
거리끼는 걸림돌 취급 당하죠
인간의 손으로 짖는 건축물에 버림받는 돌처럼 말이죠

아무리 봐도 인간의 생존에는 그 어떤 가치가 없는 쓸모 없는 돌로 취급받으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버리는 그 사고방식에 비해
즉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다에서 출발함에 있어서

성경 전체의 흐름은 그 반대로 죽음의 자리에서 출발해서 죽음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곧 심판입니다

처음 아담인 아담 안에 속한 모든 인간의 첫 번째 인간 아담은
개인의 죽음을 처음으로 보여주면서
개인의 연속적인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죽었더라 족보]인 창세기 5장에서 말이죠

반대로 가인은 [살았더라 족보] 를 보여주는 자신의 살아있음을 자꾸 출발한다 말이죠

그 다음에는 집단 죽음인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심판입니다

개인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아담의 죽음은 모든 인간은 다 죽었더라 라는 겁니다
말씀에 위배되었기에 말이죠

그 다음 죽음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서 집단의 죽음 곧 저주의 죽음이다 말이죠

우상숭배로 인해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이미 벌써 받았다 라는 심판주의 심판을 퍼부으심 이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곧 인자의 죽음입니다

우상을 사랑해서
사망을 사랑해서 받은 것은 뭐 당연한 죽음인데

이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음의 죽음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기존의 죽음은 이제 죽음 축에도 못 들고
저주 축에도 못 들게 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왜 문제는 여기서 부터인가 라고 했는고 하니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 하셨다 라는 겁니다
원하셨다
즉 이것만이 복음이다 라는 겁니다
성경전체의 흐름이 이 중심으로 흘러간다 라는 겁니다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11, 개역)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 53:12, 개역)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 다음의 죽음이
이 예수님의 죽음에
놀랍게도 이제는 성도들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에 뛰어드는 겁니다

한 몸으로써의 같은 운명임과 동시에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요 7:7, 개역)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요 15:18, 개역)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23, 개역)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5, 개역)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25, 공동) 『이리하여 그들의 율법서에 '㉠그들은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 ㉠시편 69:4(35:19 참조).』
(시 69:4, 새번역) 『까닭도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나의 머리털보다도 많고, 나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자들, 내게 거짓 증거하는 원수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훔치지도 않은 것까지 물어 주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았음이라는 이미 완료 과거완료로써
이 땅이 왜 말씀을 위배하는 사망의 땅인지가 구체화 되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죽인 세상임이 드러나는 거죠 성도의 죽음을 통해서 말이죠
사도들을 죽이시기로 작정 하셨다 라고 하셨듯이
늘 악한 세력을 들추어내시는 미끼로써 목베인 영혼들이 투입이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성경말씀은 개인적인 사적인 구원을 위해서 동원이 되는 우상숭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자기를 위한 자기 배를 위한)
도리어 말씀에는 저주의 기능이 있음을 전 우주에 전파하는 식입니다

아니 그 사랑의 예수님이 왜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았느니라 라고 선언을 하시는 겁니까

인간 구원의 목적이 아니라
정작 세상이 왜 심판 받아야 함을 보여주신다는 점을
인자 라는 에스겔을 통해서
그리고 새이스라엘을 통해서 증거하시는 겁니다

마치 배신자처럼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심판 받아 마땅하다 라고
다들 세상의 심판을 거부하는데 있어서
배신자로써 파수꾼으로 적이 나타났다고 외치고
또 그 적이 나로 접니다 우리 이스라엘입니다 라고 외치는 배신자 로써 말이죠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 되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 심판 속에서 구원이 펼쳐지는 겁니다
심판 받아서 다 죽이시고 찢으시고
다시 싸매어 주시는 긍휼을 입히신다는 
남은자만 돌아오겠끔 하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일인 말씀의 계획을 거부하고
자신의 성실함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자기의 의로움을 부지런히 쌓는 것은
도리어 저주만을 유발할 뿐인
하나님의 말씀의 개입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말이죠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의를 세우는 것과 (자기 숙제냐)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것이 (예수님의 숙제 완성인 십자가냐)
서로 대립을 이루듯이

하나님을 얻는 것은
곧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다 말이죠

다른 길로는 생명을 얻는 방법은 없어요
그가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가 낫게 되지
이것을 기쁜소식이라고 하지
자신의 의로움을 쌓는 것은 남도 못 살리고
자신의 저주만 더할 뿐인
그래서 욥이 왜 저주의 자리에 왜 놓여지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세상 심판을 하시고자 하는데
그런 하나님의 계획을 이미 마귀의 손 아래에 놀아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개입
생명의 개입을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살아있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겠습니까

그러니 개인 구원 없애 버리시고
집단 죽음으로 나아가고
그 심판의 저주의 자리에서
새로운 죽음인
인자의 죽음을 통해서

왜 세상을 심판하실려고 하시는지를

이제는 노아 때 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더더욱 노아를 비웃고 까닭없이 미워함이
몇천배나 강하게 성도의 미움으로 까닭없이 펼쳐지는데 있어서

세상을 악하다
심판하겠다 라는 예수님의 계획으로 인해
더더욱 이유 없이 미움이 펼쳐진다는 겁니다

그 한 복판에 이스라엘은 집단의 저주로 인해서
이제 인자의 죽음을 향하기 위해서
어린양의 죽음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
바벨론 포로 속에서
세상의 심판을 외쳐야 합니다

정작 바벨론은 그때 제일 잘 나가는 최강국의 정점을 찍고 있는 판국에

왠 말이냐 심판이
이제 겨우 좀 호강을 누려볼려고 하는데
바벨론 멸망도 아니고 아예 지구 전체를?

아이고 이제는 2020년 21년까지 되었는데
그 심판 언제 하니
자꾸 우리를 속일려고 하니

언제 오시니

이렇게 더뎌서 되겠니

바로 이렇게 더디온다 라고 비웃음이 구체화 될 때에
심판과 저주가 구체화 될꺼 아니겠냐 말이죠
팔을 어긋맞게 되듯이

한 쪽만 구체화 되는 법이 없어요
무르 익게 되면
다른 쪽 반대편도 무르익게 되는 겁니다

성도의 죽음이 구체화 되면 될수록
세상의 심판도 구체화 되기에
이미 시간과 공간은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말씀의 개입만을 바라는 생명의 개입으로 인해
우리는 반대로 죽음의 자리에 놓여져서 

요나의 표적 외에는 구할게 없는 겁니다

어서 어서 생명이 와 달라고
우리 모두는 죽은자 라꼬

이것이 산자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바라는
어린양 인자를 구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종말을 구하는 것 밖에는

아니 아무것도 할 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낳을 수 있는 자식은 더 이상 없듯이 말이죠
오로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한
자식 만들기 뿐입니다

이 단절 속에서
심판 속에서 긍휼이듯이
심판 속에서 사랑을 베푸심 외에는 다른 행복이 없다 라고
로마서 4장에 바울 본인이 그렇게 행복을 받았고
다윗을 보니 그랬었었었고
다윗은 아브라함을 보고 그랬었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말이죠

그래서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그 긍휼 곧 사랑만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 행복 곧

수치를 당치 않도록
가죽 옷 곧 그리스도의 피 옷으로 가려주심만이
사랑 받은 복 받은자 이다는 겁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듯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이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살인 무기이다는 거죠

예수님의 이런 죽으심이 아니면 우리는 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백부당 만부당 지옥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열심에 또 속아서
주님의 십자가의 달려죽으시는 그 사랑이라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사망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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