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패역한 족속에게 보냄받는 이마에 약속의 피가 찍힌 인자 (겔 3, 8-1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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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7 패역한 족속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겔 3, 8-11)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함을 들추는 움직이는 말씀 (겔 3, 1- 7)
에스겔 2019 2021. 4. 4. 10:36
21-006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함을 들추는 움직이는 말씀 (겔 3, 1- 7)

〈에스겔 3: 8-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3 쪽, 찬송가 163장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162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 426장 날 위하여 날 위하여〉

찬송가 426장 날 위하여 날 위하여

1 날 위하여 날 위하여 예수 간구하시네 
  형님같이 대신하여 중한 고통당했네
  거룩하신 보좌앞에 항상 주 여호와께 
  나의 죄 사하시기를 쉬지 않고 비시네

2 나의 맘에 나의 맘에 예수님이 계셔서 
  비인 영혼 영원토록 가득하게  하시네
  내가 천국가는 동안 오시기를 바라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기쁜 찬송  늘 하리  아멘


찬송가 163장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1 언제 주님 다시 오실 는지 아는 이가 없으니 
  등 밝히고 너는 깨어 있어 주를 반겨 맞아라
  주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 

2 주 오늘에 다시 오신다면 부끄러움 없을까  
  잘 하였다 주님 칭찬하며 우리 맞아 주실까
  주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

3 주 예수님 맡겨 주신 일에 모두 충성 다했나  
  내 맘속에 확신 넘칠 때에 영원 안식 얻겠네
  주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

4 주 예수님 언제 오실 는지 한밤이나 낮이나 
  늘 깨어서 주님 맞는 성도 주의 영광 보겠네
  주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


〈에스겔 3: 8-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153 쪽〉

(8)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겔 3:8, 새번역) 『내가 네 얼굴도 그들의 얼굴과 맞먹도록 억세게 만들었고, 네 얼굴에도 그들의 얼굴과 맞먹도록 쇠가죽을 씌웠다.』
(겔 3:9, 새번역) 『내가 네 이마를 바윗돌보다 더 굳게 하여, 금강석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니,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 앞에서 떨지도 말아라."』
(겔 3:10, 새번역) 『그런 다음에,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내가 너에게 하는 모든 말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귀를 기울여 들어라.』
(겔 3:11, 새번역) 『그리고 가서, 포로로 끌려간 네 민족의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전하여라. 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것이 바로 얼굴입니다
얼굴은 마치 그 날의 신문을 읽듯이
마치 부시맨이 아침에 땅바닥을 통해서 밤새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신문을 읽듯이 말이죠

그런데 그 얼굴 중에서도 이마는 바로 얼굴 속에서도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감추어진 그 속내가 다 드러나는 것이 이마입니다

놀랍게도 점쟁이들은 이 부분까지는 모르도록 되어 있어요
본인들이 이미 낙인이 찍혀 버렸거든요
이마에 말이죠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거죠
그들이 말하는 시간 곧 미래는 과거를 추론해서 말하는 겁니다

종말을 끌어오는게 아닌 거죠
어떻게 해서든 잔칫집에 가라꼬
절대로 초상집에 가지 말라꼬 하는 것이 점쟁이들의 말입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다 점쟁이들인 이유인 겁니다
바로 이런 패역한 자들과 한 패거리들이 거짓백성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또 놀랍게도 재미있는 것을 마침 보게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상학 이라는 책을 썼더라 말이죠

아니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서 발달한 철학이? 왠 관상학????
아 물론 동물과 인간의 차이 라는 생물학 관점으로 본
요즘으로 치면 과학으로 출발한 것이지만요
여기서 형상과 질료 라는 그 유명한 개념이 나오잖아요
그러니 동물과의 차이로서의 영혼이나, 뭐 정신 이나 
등등의 감정이 표출 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관상 곧 얼굴이다는 거죠

결국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런 철학자들 또한 점쟁이처럼
이마를 못 보는 겁니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약속을 못 보는 겁니다

속 깊은 곳 까지  못 본다 말이죠
그저 과거에서 표출된 것들만 점쟁이와 다를바 없이 말이죠
자신의 죽음을 누가 미리 앞당겨서 끌어와 보겠냐 말이죠
뭐 피해보겠다굽쇼? 택도 없는 소리죠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개역)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개역)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결국 얼굴 중에서도 이마란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데 있어서
저번에 말한 [권고 하심] 즉 불쌍히 여겨주심으로써(이사야 제일 마지막 장 66장)

(사 66:2,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본다 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래 봐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사랑으로 판단하지
즉 하나 됨으로 말이죠

울리는 꽹과리로 판단하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스펙 그 사람의 능력따위로 말이죠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입장인 하나 됨에 의해서 보니
인간은 이마에 주님의 약속 곧 언약이 없다 라는 점에서
불쌍히 보신다 라는 겁니다

즉 아무도 초상집에 갈려고 방주(종말) 안에 들어갈려고 긍휼을 바라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는 단 한사람도 없구요

오로지 사람의 일만 생각할 뿐이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에 대해서 주님은 우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우시듯이 말이죠
얼마나 암탉이 자기 새끼를 모을려고 했냐 말이죠 다 죽여버렸다 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이라는 주님의 약속의 사람에
너는 안 맞구나 안 맞구나 엉터리 이스라엘 이로구나 라고
이 표준적인 주님이 직접 만드신 이스라엘과 안 맞는다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과 안 맞는다
심지어 이스라엘 본인들 조차도 안 맞아요
그러니 우상숭배로 인해 포로잡혀 온 거죠

언약을 버리고 약속을 버리고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쫓는데 정신팔려 버렸다 말이죠

저 율법이 없어서 망한 이방인들과 다를바 없이 말이죠

바로 정신이 혼이 나가버린 비언약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님은 이런 패역한 족속에게
에스겔 인자를 투입 시키시는 겁니다

엉터리 인간 속에
엉터리 이스라엘 속에
가짜 인간들 속에서

참된 이스라엘의 기준을 세우시고자

이마가 굳은 백성에게 마음이 강퍅한 백성에게
노아처럼 한 선지자를 보내서
방주에 들어가라 라고

모세처럼 광야에서 삼일길을 지나 어린양의 희생제사를 쳐다보라꼬

강퍅한 애굽왕 바로왕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듯이
에스겔을 투입시킵니다 
초상집에 델꼬 가겠다 라고
그 광야에 다시 3일 길에 다시 어린양의 희생에 델꼬 가겠다 라고 말이죠
바로 이 어린양의 죽음이 이스라엘 얼굴 속의 이마에 발려야 할 언약의 피 때문이거든요

인간은 저 마다의 진리라는 기준으로 계급을 형성합니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이것이 역사가 되고 이것이 국가를 이루는 겁니다
수천년 수백년이 쌓고 쌓여야 하나의 국가가 그런식으로 탄생합니다
바벨론 해산하는 고통으로 국가가 태어나듯이

그러나 주님의 언약은 구로치 않고 이스라엘을 낳았습니다

단번에
하루만에
순식간에
급히
다급히 말이죠

(사 66:7, 개역)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사 66:8, 개역)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에스겔은 곧 오실 메시아라는 새성전을 짖는 그 관계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마치 원맨쇼 하듯이
출애굽사건을 재현하듯이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야고보서의 내용입니다
즉 행함도 무당목사들이 말하는 그런 행함이 아니라
부정적인 행동들만 말이죠
네 맞아요 종말을 확 땡기는 것만이 부정적인 행동입니다
즉 과거에서 현재로 행동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행함을 말하는 겁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부정의 부정인 거죠

오늘 본문 또한 애굽왕 바로왕 
강퍅한 바로왕 앞에 모세를 보내듯이 
에스겔을 패역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보내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바로왕이 오늘 본문 지금은 누구냐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이스라엘 아닙니까

아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되어서 구원받았는데
도루묵이 되어서 도리어 이스라엘이 애굽이 되었다 말이죠

처음자리를 다 잊어버렸다 말이죠 처음사랑을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을 다 망쳐버렸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못 먹어도 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증거하십니다
네 바로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즉 인간은 이미 포기 해 버렸어요
포기 안하겠다 해도
이미 포로 속에 잡혀 버린 상황에서
흑암의 백성이 되어버렸고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아버린 앉은뱅이와 같이 되어버렸고
또 마귀가 가만히 안 두죠 혼혈정책처럼 다 믹씽 혼합시켜버리듯이
다 썩어져 버린 입장에서
인간은 두 손 두 발 다 놓게 되어버린 겁니다
무슨 수로 12 지파를 다 회복 시키냐 말이죠
마지막 남은 유다지파도 개판인데 이미 죽어버렸는데 말이죠

문제는 인간은 안되잖아요 절대로 안 바뀌잖아요

문제는 주님은 그 이스라엘을 다시 애굽에서 뽑아내었듯이
또다시 빼앗고자
졸지에 언약이 약속이
바로 앞의 글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천국이 졸지에 도둑처럼 
갑자기 나타나 버렸다 라는 겁니다

도둑의 기능은 빼앗는 겁니다
만약 도둑이 빼앗지 못할 것 같으면 도둑을 할 이유가 없어요

바로 이런 빼앗는 도둑에게 안 빼앗길려면 우찌하면 될까요
네 맞아요 빼앗을려는 도둑에게 합류 하면 되요

합류 곧 하나가 되면 되요
하나가 된 마음으로 자기 것이 없는 상태로써 도둑과 하나가 되면 되요

그런데 게으르고 악한 종이 뭐라고 합니까
당신은 없는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데서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시고 모으신다 라고

마귀의 입에서 이스라엘의 의미가 나와요
마치 실로암 소경에게 누가 고쳤늕디 알려주듯이 말이죠

바로 이렇게 천국이가 침략해서 세상을 심판해서 빼앗은 전리품이 바로 잉여
곧 남은자 곧 이스라엘 이다는 겁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일에서만 나오는 이스라엘이지
인간의 손에서 나올수 없어요
이스라엘 본인들도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교회를 교회 답게 못 만들어요

만들어 버리면 또 우상으로 섬기는
육의 자랑이 되어버리니 말이죠


그래서 악한 종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남겨본들 어차피 당신에게 빼앗길 테니
빼앗길 빠애야
남기지 않고서 원금 그대로 당신의 것을 주겠다
나의 것은 안 빼앗긴채로 말이죠

자 이런 자는 도둑 곧 천국의 침략(거짓말로 자기나라를 멸망시킬려고 온 이스라엘과 마음이 합해 버린 간담이 녹아버린 기생라합처럼)과 빼앗을려는 자와 합류합니까

아니면 여전히 자신의 것들을 남겨두어서 사수할려는 자 입니까

잉여가 뭡니까
무조건 이유 없이 남게 된다 말이죠

잉여 스스로가 말이죠
미래완료이거든요
원인 없는 결과이다 말이죠
그럼 이 결과에 모든 것을 다 걸어버리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부정적인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바로 십자가를 믿는 겁니다

제논의 역설에서도 나오듯이
절대로 거북이를 못 이겨요
잉여이거든요

잉여는 무조건 남도록 되어 있는 남은자 개념의 이스라엘이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이 이스라엘에게 손을 대어버리면
더 이상 잉여의 의미는 날라가 버리는 거죠

종말은 잉여입니다
이 종말을 먹으면
공백을 먹으면 될 것을
말라꼬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리라 라고
대비를 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해요

속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이 도리어 속아요

그래서 인간의 진리는 시간과 공간 즉 정성을 바쳤다
정성을 바쳤다 라는 말은 대비를 했다 아입니까
대처방안을 준비 했다 마이죠

대비하면 뭐해요 잠깐 조는 사이
잠깐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의도적으로 그 빈틈을 노리고
도둑같이 오는데

잉여는 인간이 개입할 수가 없어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5천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았다 말이죠
이 남은 찌끄래기를 12 지파 이스라엘이다 라고 합니다

이 이스라엘의 언약의 백성의 의미는 인간 쪽에서 준비할 수가 없어요

대비 자체가 안된다 라는 겁니다
깨어있어라 자체가 안됩니다
조는 그 잠깐의 0.00003초만에 나타나서 후다닥 문닫고 퇴근을 해 버려요

즉 인간이 잠잔다를 염두하고서 오는 것이 도둑이거든요
도둑을 무시하지 말자 말이죠
사기칠려고 달려드는 자는 이길수가 없어요

사기 안 당하겠다
도둑에게 안 빼앗기겠다 라고 하는 것이 속게 되고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즉 자기 것이 있음을 여전히 염두한 상태이기에 말이죠

그러나 자기 것이 더 이상 없는 자는 그냥 합류 해버리면
잉여는 더더욱 풍성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이거든요

자기 것이 있는 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신랑이 주는 것만 받는 자가 바로 이마에 신랑의 약속인
피 발림이 바로 크나 큰 잉여 무조건 남도록 되어 있는 7에 70번의 용서입니다

그런데 인간 쪽에서의 자기 의 쌓기는 결국 육의 자랑으로 빠지는 우상숭배로써
계급을 형성하고 그 계급에 의해서 진리를 엉터리 진리를 구성해요
교회 질서를 형성하는 놈들이 다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뺑뺑이 돌릴 때
간첩이 안되겠다 라고 하면 할수록 더 큰 벌을 받고요
네 제가 그 간첩의 근본 원인입니다 라고
갑자기 생뚱맞게 며느리 다말과의 사건에서 낳은
잉여를

즉 누구 누구의 아들을 들이내미는 겁니다
시아버지 유다의 아들일까요?
아닙니다
내 아이가 아닙니다 라고

언약을 가지고 오라
약속을 가지고 오라
이스라엘을 가지고 오라 곧 야곱을 가지고 오라
그냥 야곱이 아니라
죽은자 야곱 말이죠
그 죽은자 야곱을 살리시는 이 약속 이 언약의 피를
이마에 바르고자

이 과정 뺑뺑이 돌리는 세 번 씩이나
우는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피에 맞는 자신들의 꽁꽁꽁 숨겨놓은 과거
요셉을 죽인 그 죄를 가지고 오라꼬

유다가 하마터면 잊어버릴뻔 한 약속을
며느리 다말의 죽음으로 인해 낳은 심판의 불 속에서 낳은 자식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 속에서 낳은 자식이 우리를 살렸다 라고
이 아이를 담보로 내밀었을때에

[바로 이것이 접촉점이 되는
약속의 정신
십자가의 희생 제물되신 어린양의 죽음과 연결이 되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우는 자에게 접붙임 하여서 (누구 누구의 아들 곧 인자라는 박스에 죄를 담아서 언약궤의 기능처럼 그리고 뚜껑 덮어서 다시는 허물치 않겠다 라는 성전의 기능을 새성전으로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 미래가 쳐들어 오는 것이 진리이지
과거에서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키는 방식의 진리는
계급을 형성하다 보니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못 나누어 주는 겁니다
미쳤나요 저 게으름뱅이에게 빼앗기게 
근심하고 등 돌리고 가는 겁니다 이것이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말이죠
잉여 라는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엉터리 이스라엘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산 자의 하나님에 의해서 단번에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약속의 자녀가 순식간에 세워지는 겁니다,]

그가 나보다 옳았다 라는 인자를 내밀어야 할까요?
아니면 또 요셉을 땅에 파묻어 죽였듯이
또 며느리 다말을 불 속에 집어넣었듯이 (막내를 저 개같은 이방여자에게 빼앗기지 않겠노라)
또 속이는 자 아버지 야곱을 빼앗기지 않겠노라 라꼬
내 아버지는 내가 지킨다 라고 요셉의 간첩몰이 독재에 맞서서 싸워야 할까요

아버지 야곱을 냅따 가따 바쳐버립니까?
그녀가 가 아닙니다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는

나의 엉터리 약속관을 깨뜨린 그가 낳은 자식을 들이내미는 겁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말이죠

어린양의 죽음이라는 누구 누구의 아들이
약속의 언약의 접촉점으로써 이마에 새기듯이 약속이 형성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연결이나 개방성으로써 연결되는게 아니라
도리어 죽음으로써 연결이 되는 단절성인 거죠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 곧 행함 자체가 죽음으로써 단절로써 연결(믿음)이다는 겁니다

앞뒤 모순 되게
찢겨졌는데 어떻게 싸매어지느냐 라는 거죠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비로소 심판을 받는데
그 심판 받는 것이 도리어 구원이 되는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구나 이전 것은 지나갔구나 새것이 되었구나 라고
이스라엘이라는 잉여의 의미는

남도록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의미를
이 과정
처음에는 비극 나중에는 희극처럼
처음에는 오독 나중에는 정독으로써
이 과정을 거쳐서
이 이스라엘이라는 비밀의 의미가
바로 저 어린양의 눈물로 인해서
희생으로 인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이런 미래에서 쳐들어 오는 진리를 무시하고

왜? 이스라엘이라는 약속의 의미를 너거 멋대로 구성해놓고
그것을 진리라고 하느냐

그 진리를 깨뜨리는 
빼앗는 진리로써
도둑으로써
미래에서 쳐들어 오는 천국으로써

너와 내가 처음에 맺은 그 약속을
그 이마에 새기겠다 라고 다시 처음의 자리로 출 ~~~~~~ 발 하시는 겁니다
처음사랑으로 새로 시작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약속 그 언약이 이마에 새긴 곧 언약의 접촉점이 되는 겁니다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듯이
이마에 발랐거든요

미간의 표

(출 13:9, 개역)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출 13:16, 개역)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해 라고 약속한 증표를 이마에 새겼다 라는 겁니다

물론 인간들 특히 이스라엘이라고 우기는 가짜진리(자기 의를 쌓아서 계급을 형성한
시간과 공간을 포기못하는 그것을 진리라고 남을 심판하던)가
예수님의 손을 못 박아 버렸고
그 이마에 까시 면류관을 씌워서 조롱을 했지요
시아버지 유다가 이방여자 며느리 다말에게 했듯이
절대로 막내아들
약속의 자녀를 저 이방여자에게 안 빼앗기겠다 라고 말이죠

여기서도 칠일 이라는 완벽한 심판이자 곧 절대저주이자 절대사랑이라는

그 사이를 이 간극을
이마에 새겨버리시니

(출 13:1,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 13:2, 개역)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 13: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출 13:4, 개역)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출 13:5, 개역)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출 13:6, 개역)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칠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출 13:7, 개역) 『칠 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
(출 13:8, 개역)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출 13:9, 개역)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출 13:10, 개역) 『연년이 기한에 이르러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출 13:11, 개역)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출 13:12, 개역)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출 13:13, 개역)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출 13:14, 개역)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출 13:15, 개역)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출 13:16, 개역)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이것은 결과만을 속 빼먹고 빠이 빠이하는 것이 아니라
경과

즉 사이
꼭지점이 아닌 점과 점을 잇는 그 사이를
그 간극을
그 공백을 먹는 식이 되는 겁니다

양쪽다 격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이 남은자 잉여
죽은자 같으나 산 자 라는
이 두 점을 잇게 되는
그래야 이마에 표식 즉 새긴다
홈을 판다 흔적을 새긴다가 되거든요
마음에 할례하듯이 짤라서 구멍을 낸다 짤라낸다 라는 것이 되잖아요

안 울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잉이 기록된 말씀을 곧 어린양의 죽음을 먹게 되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얻고
반대로 자기는 잃어버리게 되는 빼앗기게 되니까 말이죠

그래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먹게 되는 거죠
움직이는 것은 말씀 뿐이니니까 말이죠 운동력
영원한 것은 말씀인까

나머지는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고 삭제되고 이전 것은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인간은 움직이지 못하는 우상과 같아서
결과만 냉큼 따먹고
또 독자적으로 될려고 한다 말이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려고 하지 않고
하나가 될려고 하지 않더라 말이죠

그래서 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7에 70번의 용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모조리 다 빼앗아 가는 사랑이라는 도둑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울리는 꽹과리 라는 에디오피아 군대의 달가닥 거리는 무기가 흔들려 서로 부딧히는
스펙
이것이 계급이 되고
이것이 진리가 되도록 형성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대접 받을려고
양을 잡아먹는 겁니다

하나가 아닌 하나님과 같이 된 선악을 쥐는 법을 쥐는 권력
울리는 꽹과리를 쥐고자 말이죠
이것이 바로 양을 잡아먹는 이리, 늑대와 같은 삯꾼목자와 
또 그 한 패거리가 되는 패역한 백성이다는 겁니다

자 여기서 주님은 새롭게 이스라엘을
섬기는 목자가 떳기에 그 한 세트가 되는
이스라엘 잉여를 무조건 남도록 되어 있는 잉여를

저 엉터리 이스라엘로 다 망쳐버린 그 속에서 펼치시고자
에스겔 인자를 천국비유처럼(마태복음 25장의 세가지 종말의 비유 3종 세트 천국비유처럼)
천국의 침략으로 인해
그 전리품을 애굽 속에서 빼앗듯이

지금 애굽이 된 이스라엘 속에서 새이스라엘을 빼앗고자 침투하시는 겁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인간 같으면 벌써 포기해 버리고
아니면 이스라엘이 아닌 딴데가서
그것도 포로가 된 이스라엘 속에서
불가능성의 이중반복 인거죠 그 속에서
단절의 단절의 단절의 단절 속에서
이스라엘을 되찾겠다 라고
심판을 퍼부으시는 겁니다
불질러 버리시더라 말이죠
다 태워버렸는데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새순이 돋듯이 남은자를 뽑아내는
빼앗고자 말이죠

바로 이런 십자가의 지혜가 펼치는 것에 반발하는
인간이 따로 과거로부터 의를 실천해서 쌓고 쌓은 진리로 계급을 형성한 그 엉터리 이스라엘
완악하고 이마가 굳어버렸고 마음이 강퍅한 패역한 이스라엘이
저 바로왕 애굽왕처럼 강퍅하게 절대로 십자가의 피 용서를 못 받도록
언약의 피가 이마에 못 발리도록 만들고자 했듯이

패역한 이스라엘 또한
너는 주인 나는 가정부 내가 일만 만큼만 월급을 주면 된다 라는 식으로
따로 따로 국밥처럼
자기 것 이라는 자신의 진리를 구성하다 보니
독자적으로 말이죠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이 전리품을 빼앗고자 하는

(마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막 3:27,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도둑에 합류 할 수가 없어요
빼앗는 자와 합류할 수가 없다 말이죠
애굽을 멸망 시키는 
잔칫집 에덴동산과 같았더라 라는 가짜진리를 추구하는 자들 속에서 세간을 빼앗는
이 미간에 새긴 약속에
이마에 바르는 어린양의 피 용서에
동참할 수가 없어서
침략 심판 종말에 합류를 할 수가 없어서

안 빼앗기겠노라 안 속겠노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가룟유다처럼
시드기야 왕처럼 악한 무화과 나무가 되겠노라 라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거부하겠끔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쳐들어 오는 천국의
미래에서 오는 십자가의 피 용서가
인간을 두 부류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말이죠
왜 저 마귀 애굽왕과 똑같은 짖을 하냐 라고 말이죠
이미 심판 받았는데 나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하고 있더라 말이죠
경로 안주한 거죠
지나온 과거의 경로에 안주하게 되니
비용이 더 들게 되는 겁니다
안 잃어버리겠다 라는 것이 더 잃어버리게 되듯이 말이죠

무조건 남는 잉여는 그냥 잉여에 합류하면 되는 겁니다

기생라합처럼 냅따 다 팔아서 줘버리는 겁니다
어차피 멸망 당할꺼 사라질꺼 삭제될꺼 뻔하니까 말이죠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의 세 가지 내용중의 하나 기생라합의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말이죠
자기 것이 없는 지난 주의 마태복음의 등불을 준비한 종말을 준비한
신랑과의 사귐을 늘 누렸던 슬기로운 다섯처녀처럼 말이죠
이것이 죽은자 같으나 산 자 이다는 겁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거죠
왜 종말을 왜 죽음을 미리 앞당기냐 말이죠
왜 미리 다 빼앗기냐 말이죠
왜 여고냐 어린아이처럼 포로잡혀 가느냐 말이죠

끝까지 빼앗기지 않고자 독립운동을 해야지
왜 냉큼 팔아넘기냐 라고 말이죠
끝까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싸워야지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되도 않는 아주 작은 것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거다 말이죠
겨우 남 7번 용서가 어떻게 계급을 짖고 어떻게 진리가 되냐 말이죠

적어도 7에 70번 용사가 진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말이죠
왜 이 큰 것을 구하지 않냐 말이죠

(눅 14:27, 개역)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8, 개역)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9, 개역)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눅 14:30,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눅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눅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눅 14:33, 개역)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4, 개역)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눅 14:35, 개역)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왜 잉여를 구하지 않느냐 라는 내용입니다
더 큰 것 말이죠
왜 작은 것으로 깨작 깨작 장난하냐 라는 거죠

그러니 말라꼬 따로 자기자신의 숙제로 남길려고 하냐 말이죠
자기것을 따로 만들려고 하니까 빼앗기는 것이 먼저 염려가 되는 겁니다

그럴빠에 남기지도 않고
빼앗기지도 않는
적당한 중간의 위치를 자기가 만들어 낼려고 하더라 말이죠 빼앗길 빠에

여전히 자기 것이 있다 나는 살아있다를 주장하는 
초상집에 가지 않고 잔칫집에 가고자 하는 패역함이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는 자가 아니다 말이죠
잉여는 우는 자에게만 해당 됩니다
잃어버린 자에게는 잉여가 퍼도 퍼도 넘쳐요

7에 70번 용서 받는 것이 말이죠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것이 말이죠

많이 탕감 받은자가 많이 사랑해요

그런데 남을 7번 용서하겠다 라는 것은 잉여가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써의 자기 의를 세우고 쌓는
자신만의 진리를 구성했다 라는 겁니다

되도 않는 경우 7번 용서로 깨작 깨작
46년 동안 지어도 못짖는 의문의 반복인 성전을 질질질 끌면서 짖지도 못하고 말이죠

네 맞아요

(눅 14:28, 개역)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9, 개역)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네 절대로 성전 완공 못한다 라고 대놓고서 저들의 속을 빡빡 긁어대시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짖는 성전은 영원한 성전으로써 3일만에 후딱
급히
다급히
속히
순식간에
구로치 않고
수태치 못한 여자로써 놓겠다 라는 겁니다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선악의 의식으로
그래서 40년 동안 선을 7번 쌓았다 라는 가짜진리 가짜 하나님 가짜성전을 주장함으로써

도리어 삼일만에 짖는 자여 라고 비웃는 거죠
반작용이거든요
모욕을 당하다 보니
거꾸로 모욕을 퍼붓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이것 또한 가짜진리를 형성한 그 증거죠

새삼스러운 새로운 비판이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식입니다

그럼 자 이렇게 엉터리 진리의 기준에 못 미치는 자는
그 동안 자신도 못 미치다 보니 얼마나 갈새를 당했겠냐 말이죠
성화론이라는 카스트 제도 라는 계급처럼 말이죠

드디어 7번을 쌓게 되니
커트라인을 넘게 되니

이제 본인이 7번 못 미치는 자들을 심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의인이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정작 악인은 회개하고 돌이키는데 말이죠

의인이라고 확정이 되는 순간 범죄를 저질러요
반대로 악인은 뭘해도 죄 뿐임이 드러난 심판이 확정이 되니까
도리어 우는 자가 되듯이 말이죠

의인이 정작 절대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괜히 법을 지키는 바람에
진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말이죠

그래서 가장 존경 받는 바리새인
즉 모든 백성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다 라는 말은
아무도 그들을 반박할수 없도록 완악함 강퍅함을 갖추었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게 저주예요 저주
아무도 갈새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도리어 저주예요 저주

잔칫집에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영원성을 추구하고 동일성 합일성 연합 아닙니까
단절 되면 큰일난다 라고 보기에 초상집에 못가죠

그러니 성령도 연합으로 보고 있지
단절로 못 보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저주 안 받고자 가는 곳이 도리어 저주 받는 곳이다 라는 겁니다
안 빼앗기고자 가는 곳이 빼앗기는 곳이다 말이죠

가짜 성령론으로 어떻게 해서든 우는 자가 안 될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니 도둑은 잉여에 예민해요
마치 독수리가 시체에 예민하듯이
남길려고 도둑질하지
잃어버릴려고 도둑질하는 도둑놈이 어디있겠냐 말이죠
왜 서울시장이 될려고 합니까
도둑질 할려고 하는 겁니다 빼앗고자
무조건 남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얼마나 참으로 다행인 것이 마침 도둑놈이 시장이 되더라 말이죠
그러나 눈빛은 불안 불안 안들려고 감추는
그것이 이미 다 들켜버린줄도 모르는
어떻게 해서든 안빼앗길려고 하는 양다리를 걸친
빼앗는 도둑도 되어야 하고 안 빼앗기고자 새간을 사수하는 주인도 되어야 하고 바쁘다 바뻐
좋은 것을 택하지 못하는 많은 일로 근심하는 마르다와 같다 말이죠

얼굴 띠꺼운 싸가지 없고 뻔뻔스러운 더 좋은 것을 택한 마리아가 되지 못하니까
잉여는 없는 거죠

예수님이 도둑으로 오신다는 말은
천국이 도둑처럼 침략이라는 빼앗는 의미로 오는
종말의 천국으로써 오신다 라는 겁니다

아무도 이 이스라엘의 본래 의미를
이스라엘 본인들 조차도 못 갖추는
이 잉여성을
무조건 남도록 되어 있는
12 바구니 (오병이어로 인해 12 광주리가 남았다 말이죠)
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이스라엘들이 다 망쳐버렸더라 말이죠
겨우 남은 두 지파로 무슨 놈의 12지파를 만들 수 있겠냐 말이죠
지금도 눈에 시퍼렇게 유다지파만 남길려는 사단의 회처럼
여차하면 짜를려고 하는 판국이다 말이죠

12지파를 무슨 수로 준비하냐 말이죠
등불을 무슨 수로 준비할래 이 시아버지 유다야 ~~~~~ 이 패역한 족속아 ~~~

그런데 에스겔 9장에
도리어 천사들이 도저히 이 엉터리 이스라엘을 회복 시키는데 있어서
도리어 더더욱 불가능한
단절이 된
늙은 사람 
그리고 어린아이
여자들
이들에게 값없이 무한대의 용서로써
천사들이
그것도 베옷을 입은 천사들이
허리에 먹물을 담은 그릇을 차고서
붓을 들고 먹물을 찍어서
이들 약자에게 이마에 표를 찍더라 말이죠

이 심판 속에서 우는 자들이다 말이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죽은자와 같은 어린아이와 같은자 말이죠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우는 자가 아니면

아무리 늙어서 힘이 없어도
아무리 무능한 어린아이 라고 해도
아무리 약한 여자라고 해도
이마에 표가 없으면
우는 자가 아니면
잃어버린 자가 아니면
다 죽이라 라고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온 그 취지가 실행이 되는 겁니다

(겔 9:1, 개역)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겔 9:2, 개역)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겔 9:3, 개역)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겔 9:4, 개역)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겔 9:5, 개역)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겔 9:6, 개역)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러니 출애굽때의 장자를 무조건 죽이는 천사의 기능과 같아요

이 심판 속에서 이 살육하는 기계 속에서
수치를 당치 않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자는

어린양의 피가 이마에 발린
우는 자
잃어버린 자가
도리어 심판을 행하는 살육하는 기계를 쥔 천사로부터
보호를 받는 겁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이냐 말이죠
빼앗는 자로부터 빼앗기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안 빼앗길려고 하는 자가 도리어 빼앗기는 것은
자기의 것이 되는 이 잔칫집
구원 받아야 할 몸, 자아, 자기자신
왜? 구원 받았기에
바로 이런 의인에게는 건강한 자에게는

이 의사의 이마에 피 발라주심이 필요가 없어서
죽임을 당하고

도리어 나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라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단절되었음을
잃어버렸음을 아는 자는
이마에 표식을 하고 패쓰
넘어가버리는 겁니다

(겔 9:4, 개역)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죄 안 지어서 이마에 표시 당하는 자는 없습니다
개인의 자질이 아닌
집단적으로 포로된 입장이거든요

이스라엘 전체를 다루십니다
그 속에서 개인적인 자질을 또 따로 분류해 버리면
이것 역시나 엉터리 이스라엘을 여전히 고수하겠다 라는 거죠
정 그러면 나머지 10지파 공중분해 당한 그 이스라엘을 너의 개인적인 자질로 회복해 보던가
남을 겨우 7번 용서하는 자가 과연
몇 년 만에 성전을 완성할 수가 있을까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로 저런 사고방식 자체가
사망의 몸임을 팍팍 티를 내는 셈이니
구원 되었다 라는 것이 도리어 범죄를 저질렀다 라고 자랑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알짤 없이
울지 않는 자는
초상집에 가서
광야 속에서 3일 길로 가서 어린양의 희생죽음을 쳐다보지 않는 자는

남녀노소 약자든 어린아이든 여자든 다 죽이라 라는 겁니다
이미 약자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모세의 자리를 앉고자 하는
부자청년처럼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냐 라고 엉터리 진리를 구하고
영원한 말씀을 구하지 않는
사라지고 삭제되고 이전 것으로써 지나갈 것을 구하는 자들이다 라고
가차없이 다 죽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겔 9:2, 개역)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왜 천사가 베옷을 입었겠습니까
네 맞아요

우는 자 라는 겁니다
베옷은 초상집에 가야만 베옷을 입은 자를 볼수 있어요
다른 장소에서는 못 입는 옷입니다

마치 계시록의 굵은 베옷을 입은 천사의 기능도 동일하게
불타 없어진 성전의 기능인 더러운 죄악을 거룩으로 전이시키고자
절대저주인 처참한 피 튀기는 온 몸에 피가 다 묻게 되는
희생제사를 드리잖아요
그러니 어린양의 희생제물의 죽음에 동참케 하는 기능인 거죠
절대저주와 절대용서의 간극을 다 퍼붓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입히시는 겁니다
그러니 성도 또한 기생라합처럼 자기 것을 냅따 다 바치듯이
자기를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얻게 되듯이
이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을 당하게 되어서
어린양의 희생 죽음에 참예가 되어서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우는 자 이나 다시 기쁘게 하시는
빼앗긴 잃어버린 자이나 다시 되찾게 되는

이 간극을
이 공백을
이 슬픔을 먹이시는 겁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말씀을 먹이시는 겁니다

다른 진리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주님 쪽에서 마련하신 대신 십자가에 저주 받으심 외에는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증거하라 라고

절대로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못 쳐다보도록

강퍅한 애굽왕이 7에 70번의 용서를 못 쳐다보도록 막고자 했듯이

자신들만의 진리형성과 계급형성으로 인해
어린양의 용서가 이미 떳기에
인간들의 진리를 다 깨뜨리시는 방식으로써
빼앗고자 도둑으로 오심에 있어서
다시 참이스라엘의 잉여성을 새롭게 이루시는 겁니다

여기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자가
우는 자로써
이 십자가의 피 용서만 자랑하는 자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지혜라는 인물을 만나는 자입니다

반드시 이 십자가를 못 쳐다보도록 하는 그 반발성 속에서 말이죠
유대인은 거리끼는 걸림돌이라고 거부하는 환경을 구성하고
헬라인들은 어리석고 미련하다 라고 거부하는 환경을 구성하는
이 두 잔칫집(기적을 바라고, 지혜를 바라는)의 환경 속에서

방주 라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종말을
심판 속에서도 살려주시는 이 긍휼 곧 이마에 바르는 십자가의 피 만을 쫓도록 하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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