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한 목자 내 종 다윗을 세워 그들을 먹이는 왕이 되리라 (겔 34,23-24)

살진 양과 야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는 선한목자 (겔 34,17-22)
에스겔 2019 2021. 4. 11. 10:51
19-90 살진 양과 야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는 선한목자 (겔 34,17-22)

〈에스겔 34:23-2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5 쪽,  찬송가 082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4:23, 현대어) 『[평화의 왕국] 내가 오직 한 사람의 목자를 세워 내 양 떼를 돌보게 하겠다. 그는 옛날에 내 종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내 양 떼를 초원으로 몰고 나가서 정성을 다해 먹일 것이다.』
(겔 34:24, 현대어) 『그때에는 나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처럼 내 양 떼를 먹일 그 목자는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그대로 실천하겠다.』


구약성경에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라는 표현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고 문자적으로 따오면 저 양의탈을 쓴 무리의 권사모와 똑같은 짓만 하게 되겠지요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다시는 범죄치 말라고 했으니 범죄하지 않아야 하지 않느냐 라고 뻘건 글씨를 마구 마구 크게 쓰는 여고괴담과 같은 짓을 말이죠

문자적으로 따올게 아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다른 민족과 다르게 이스라엘은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과 다르게 구분 분류 시켰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지난 주에 나눈 말씀입니다
인간은 방금 권사모처럼 거짓된 분류작업으로 구분짖기라는 가짜진리를 형성했구요
예수님은 바로 그 가짜진리를 깨뜨리는 분류작업으로써
이마에 언약의 피를 바르는 저 초상집 곧 심판이라는 절대 저주 속에서의 절대용서를 쳐다보라꼬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겠끔 하셨다 라는 겁니다
아마 사모 라는 자리가 진리를 형성해 버리니까
초상집(십자가의 지혜)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거부하는 셈인 거죠

바로 오늘 본문이 그러합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된다 라는 것은
그들이라고 마치 먼 느낌이 들잖아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너와 나 라는 가까운 느낌 보다
먼 느낌이 드는 그들이라고 표현 하시는 이유는

물론 너의 하나님 이라는 너와 나 라는 가까운 느낌이 오히려 성경에 더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하나님 이라는 표현은 신약에 없어요
구약에만 있어요

왜 이렇게 먼 느낌으로 기록하셨을까요?
네 맞아요 바로 심판성을 깔았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성 앞에서 심판 받아 부르짖은 자가 바로 다윗입니다
네 맞아요 심판의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부르짖었다 라는 겁니다
그 부르짖은 자의 대표성이 바로 약속의 중심인물이 되는 겁니다
다윗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란 바로 자손인 이삭의 희생죽음이 먼저 있었고
그 희생죽음에 의해 뒤에 태어난 증상물이 바로 아버지 아브라함이였듯이

다윗이 이 꺾으신 뼈로 인해서 새롭게 단번에 금방 당장 다급하게 태어나는 겁니다
이 다윗은 두고 너와 내가
참 아니지요 그들과 나 여호와가 언약을 맺겠따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치 베드로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삼았듯이 말이죠

지난 주에 말한 이마에 피를 발라 버렸다 라는 겁니다
왜? 베드로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이 희생제물로 인해서 우는 자의 자리
심판 받은 자의 자리
회개의 영의 놀라운 탄식의 자리에서
울게 되니까 말이죠

이 우는 자가 복음이라는 약속의 피, 언약의 피, 십자가의 피를 발림 받는

이 제사가 있는 초상집에서 우는 자의 자리
종말이라는 끝의 자리에서 기쁨을 복음을 바라보게 되니까 말이죠

그 끝은 바로 죽음이 있는데
인간의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드니까 말이죠
바로 둘째 사망이라는 진짜 죽음이 있기 때문에
지혜라는 인물은 우리를 초상집으로
광야로 그 광야의 삼일 길로 그 광야의 삼일 길의 희생제사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 임마누엘이다 라는 겁니다

둘째 사망이라는 진짜 죽음을 못 보게 되면
인간들은 가짜 죽음 앞에서 온갖 한 풀이를 하게 됩니다
심지어 가룟유다처럼 자살까지 해요
아니 죽음도 아닌 가짜 죽음을 말라꼬 자기를 자해하면서까지 하느냐 말이죠
죽음도 아닌데 왜 죽냐 말이죠

세월호 7주기 라고 마침 아이들의 죽음을 아무리 덮어버릴려고 사회가 만들어도
바로 그런 놈들(덮어버리고자 하는 놈들)이 결국은 다시 끄집어 내는 겁니다
절대로 사고 원인을 밝혀낼수가 없어요
밝히고자 하는 놈들이 사실은 덮을려고 하는 자들이거든요

마치 성화론자들과 똑같아요 바리새인 놈들 정의와 개혁을 부르짖는 놈들 말이죠
절대로 조상때에 있었다면 우리는 선지자를 안 죽였을 것이다 라고 하는 놈들
선은 취하고 악은 버리겠다 라는 놈들이 사실은 덮어버릴려고 한다
회칠한 무덤 아름답게 선지자의 비석으로 만드는 놈들 말이죠
그러나 속은 해골이 죽음이 가득하다 라는 겁니다

(마 23:27,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그럼 부모 마음이 찢어지는데 잊어버리란 말인가
부모 라고 여기는 것이 잘못입니다

그들이 먼저 태어났고
그 다음에 그 증상물로써 부모가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진짜 울어야 할 자리에 비로소 가게 된 거죠
그동안의 우는 자리는 가짜진리에 속아서 우는 자리였던 잔칫집인 거죠
잔칫집에서 우는 것은 마치 금식을 지키기 해서
회개의 달인들처럼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지키기 해서
아이를 살려 보겠다 라는
나는 절대로 아이를 죽이는 범죄자가 될 수가 없다 라는 몸부림 이였다 라는 겁니다

둘째 사망을 몰라서 그런 겁니다
둘째 사망이 오지 않으면 가짜 죽음에 답답하게 의문의 반복만 해요
다윗이 얼마나 아이를 살려보겠다 라고 눈물 금식 기도 회개를 했겠습니까

자기 죽음이 먼저 닥쳐버렸으니 그것을 벗어나볼려고 말이죠

그러나 율법은 안 속습니다 저 개같은 이방인처럼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가 되지 말라꼬
율법은 진짜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말씀은 언약은 약속은 말이죠
그리고 자기가 살아서 눈물 흘리고 회개를 하고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면
아이를 살릴수 있을 것이다 라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가짜진리가 팽배하고
그것으로 간극 구분 구별짖기 그것이 계급이 되어버린 가짜이스라엘 속에서
주님은 둘째 사망이라는 진짜 죽음이라는 절대저주
심판 속의 심판 
저주 중의 저주를 통해서

가짜 죽음을 거들내어 버리시는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라꼬 말이죠

적어도 이런 죽음 이런 저주 절대저주 중의 절대저주
이런 심판 정도는 되어야지 라고

단번에 모든 저주를 다 받으시는 겁니다
속이 다 시원해요

되도 않는 남 7번 용서하겠다 라는 그 의문의 반복
얼마나 답답합니까 겨우 7번
그것도 40년 동안
깨작 깨작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는 것 맞을까요? 아니잖아요
용서하는 마음이 결국은 추호도 없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런 것이 진리의 자리로 차지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우상적입니까
남들은 몰라도 나 만큼은 남을 7번 용서했다 라는 것이
진리의 자리에 앉아버렸으니
이것 보다 우상 숭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즉 남을 7번 용서한 나는 절대로 죽으면 안된다 라는 것이 속에 감추어진 겁니다
무덤을 아름답게 흰색으로 페인트 발라놓고서는
속은 더러움이 가득함을 감추듯이 말이죠

이런 가짜진리들의 바닥을 뜯고 뜯고 뜯어내는 것이 바로
둘째 사망입니다

죽음 축에도 들지 않는 가짜죽음으로 징징거리지 말고
진짜 죽음으로 인해 바닥 뜯겨 보자 말이죠

아이고 저 되도 않는 가짜성전 짖기 그것도 46년 동안 깨작 깨작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3일만에 짖는 성전이
그것도 죽음으로써 다 이루는 방식은

인간이 나 살았다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해석과 반대로
주님은 제사장 중심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으로 일관하신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 곧 성전 중심 아닙니까
이 성전이 불타 없어져 버렸다 말이죠

하나님 본인이 불질러 버렸습니다 개같은 이방인들을 도구로 사용해서 말이죠
그럼 제사장도 없지요
성전도 없어요

무슨 수로 제사장 중심의 곧 언약, 약속, 시온 중심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시겠다는 말입니까
없는데

존재는 없어져도 기능은 절대로 사라진다 안사라진다
제논의 역설을 통해서 나누어 질수 없는 잔여, 잉여를 이야기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 잉여 이거든요

그게 바로 한 남겨둔 한 씨입니다
네 맞아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입니다

어 그런데 다윗 또한 죽었잖아요
네 맞아요 다윗은 죽었지요
그런데 산 자의 하나님은
다윗으로 오시는 겁니다
네 네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서 다윗의 자손입니다

이 다윗의 자손이 먼저 있었고
다윗은 그 뒤에 태어난 겁니다
즉 약속이 먼저 있었고요
그 뒤에 이스라엘이 하루 만에 당장 급하게 더디오시지 않고 순식간에 세워지는 겁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오해 오독을 한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언약이 아닌
눈에 보이는 성전처럼 자꾸 눈에 보이는 존재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다가 작살이 났습니다
그런 가짜진리로 어느세월에 이스라엘을 세우겠냐 말이죠
이 언약의 나라를 말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주님은 방해를 하십니다
나라가 두 조각이 나고
10개의 지파가 날라가 버리고
다윗이 손 대면 댈수록(악령이 걸려서 인구조사 하듯이)
더더욱 날려 버려요

기껏 내세우고 자랑할 것은(자기 합리화) 40년 동안에 남을 겨우 7번 용서?
아마 또 손대면 80년 만에 남을 7번 용서
또 손대면 160 또 320년
깨작 깨작 장난하냐 말이죠 때려치워라 말이죠

고구마처럼 먹다가 막혀서 답답하다 말이죠
의문의 반복입니다

뚫어뻥처럼 사이다 마시듯이 속이 확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다 말이죠

세월호 부모들은 해마다 돌아오는 그 날에 오히려 다윗처럼 씹고 뜯고 먹고 마시는 
구원 받은 날로 기뻐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저들 닭그네에게 속지 않겠다 딴나라당에게 속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이 속는 것이구요
판을 깔아주는 저 민주당 촛불시위당에게 속지 말자 라고 구호를 외치는 놈들에게 속는 겁니다

이들이 모두다 잔칫집에서 벌리는 일종의 행사입니다 제사행위이다 말이죠
가짜 진리로 계급을 형성한 겁니다
딴나라당은 딴나라 대로 악으로 계급을
촛불당은 촛불대로 선으로 계급을

이 선과 악을 깨어부수는 것이 바로
절대저주를 받은 인자입니다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입니다

내 아들 이라구요?
그렇다면 그 아들의 죽음에 동참 즉 자살하라는 말이 아니라
다시 살아라 라는 말입니다
비로소 태어나는 겁니다
왜? 대신 주신 아들 여디디야로 선물 받았거든요 바로 솔로몬 이라는 지혜를 말이죠
그래서 초상집에 가라 라는 겁니다
지혜 곧 모든 인간의 선과 악을 깨뜨리는 지혜를 선물 받으라 라꼬
이것이 제사장 중심 곧 성전 중심
그런데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다윗을 세우는 겁니다
다윗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버렸거든요 탕자처럼
곧 거룩 중심이다 라는 겁니다
이 거룩이 바로 성령이 하시는
죄를 거룩으로
더러움을 깨끗하게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기능을 하시는 겁니다
바로 참 성전 되시는 예수님 곧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여디디야 라는 선물의 뜻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 라는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꼬
사랑이 아니면 울리는 꽹과리 곧 남 7번 용서했다 라는 자기자랑 육의 자랑 뿐이다 말이죠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 라고

(눅 7:40,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눅 7:41, 개역)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눅 7:42, 개역)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눅 7:43, 개역)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눅 7:44, 개역)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눅 7:45, 개역)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눅 7:46, 개역)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눅 7:47, 개역)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8, 개역)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눅 7:49, 개역)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이 사랑이 아니면
평준화
정의
평화가 안 오는 겁니다
즉 의문의 반복이 또 반복이 되는 겁니다
부자와 가난을 아예 없애버리는
총과 칼을 보습으로 만드는 평화는 오지 않아요

(사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막에 샘이 넘쳐 나지 않는 겁니다
그 종말을 당기고자
다윗을 종으로 왕으로 세우는 겁니다
거 봐라 나 여호와는 다윗과 평화를 이루었다 라고 말이죠
이 원수 다윗을 말이죠
그를 그 멀리 있던 다윗을 가차이 가깝게 급히 다급히 단번에 속히 지금당장

이 인자(새성전)의 피가 발리지 않은 자들은
또 안 속겠다 라고 안빼앗기겠다 라고 하는 것이
도리어 빼앗기고 도리어 속는다 라는 겁니다
뭘 안 빼앗기고 뭘 안 속겠다 라는 거죠
네 맞아요 
자기 기준이다 라는 겁니다

이 현대사회에서 유일한 생존방법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포기해버리면 끝나는 거죠
문제는 끝나버린다고 해서 끝나면 참좋겠는데 끝나는게 아니다 라는 것이 문제죠
둘째 사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괜히 죽은거예요
제발 제발 죽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 하세요
새언약의 피에 양보하세요 악착같이 살아서
이런 더러운 나를 새것으로 만드시겠다 라고 대신 죽는 저 분이 누구신가를 보자 말이죠

바로 다윗입니다
이 다윗을 갑자기 에스겔에서 처음으로 등장시키시는 이유는
딱 두 군데 오늘 34장과 37장 밖에 안나와요

이 세상을 지금 다윗 중심으로 움직이신다 라는 겁니다
마치 제사장 중심이듯이
다윗 언약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윗 성이라고 하는 시온산 중심으로 움직이신다 말이죠
그러니 이 시온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듯이
다시 시온으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거든요
불타 없어진 예루살렘성전이 다시 세워져서
가시적이라도 그림자로써
이 거룩의 기능을 하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림자로써 활동 기능을 해야 하니까 말이죠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다윗처럼
이 산 자의 하나님이
자손으로 오셔서 그들의 주가 되시는 겁니다

다윗으로 오셔서 그들의 주가 되시도록 말이죠

그러니 인간 중심이나
혈통적인 이스라엘 중심이나
그런거 단 하나도 없어요
지금 현재 이스라엘은 80프로가 무신론자로 변한 만큼이나
아직도 나머지 10프로도 안 되는 이스라엘이 세상은 아직도 이스라엘 중심으로 흘러간다 라고
그래서 뭐 제 3성전을 짖니 마니 하고
메시아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말이죠

이미 왔다 갔는데
벌써 왔다 갔는데

그것도 이스라엘이라는 사단의 회에게 잡힐뻔하다가 미끄러져 놓치는 바람에 말이죠

구약대로 다 이루어졌어도 얼마나 가짜 진리가 그것도 수천년
그 정도로 의문의 반복만을 말이죠
그 정도로 말씀을 때려죽어도 안 믿는다는 것이 인간의 믿음임을 대표성으로써 증거해주거든요
예수님을 가장 안 믿는 자들이 기독교이듯이 말이죠
천주교 라는 대표 이단들과 야들은 유대교를 못 따라해서 난리이구요
기독교는 정통이라는 이단들과 신흥 이단들
정통이라고 우기는 놈들은 천주교 못 따라해서 난리고
신흥 이단들은 그 정통들이 자리잡은 그 돈 값을 탐하고 있구요
결국 인간 속에는 믿음이 없어요

다윗이라는 왜 다른 인물은 왜 안되고 꼭 다윗이어야 하느냐
주님의 일방적인 선언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속에서도
유일하게 붙여주시는 전쟁을 믿은 자는 다윗 뿐이였거든요
즉 이 말은 이스라엘 전체 중에 딱 하나 뿐이였다 라는 겁니다
다윗

마치 시아버지 유다가 바로 이방여자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알게 되었듯이
붙여주시는 뺑뺑이 시험 요셉 때문에 말이죠
엉터리 이스라엘 개념 곧 약속 개념 말씀의 의미를
저들 이방나라의 교리와 다름을 정작 유다는 이방나라 우상교리와 똑같이 취급했는데 말이죠
오늘날도 똑같아요
딴나라당은 한국교회 개신교를 대표하고요 물론 가짜이지만
촛불당은 천주교를 대표하잖아요

바로 그 다윗을 하나님은 자신의 거할 처소로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이것을 다윗은 아브라함처럼 또 자신의 힘으로 
처소를 만들려고 사람의 손으로 지어요 글쎄
그것에는 무엇이 빠졌는가
구로치 않아야 하는데 구로함으로써 죄가 또 가입이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그래서 그 오독 그 오해로
주님은 죽으셔야만 한다 라는 겁니다

왜 사랑이 아닌 울리는 꽹과리로 성전을 지어본들 또 의문의 반복이지
영원하지 않아요

다윗 자체를 하나님이 앉으시는 보좌 곧 하나님의 전으로 삼겠다 라는데
왜 따로 따로 성전을 지을려고 하느냐 말이죠

(삼하 7:14, 개역)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6, 개역)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삼하 7:7, 개역)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삼하 7:8, 개역)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삼하 7:9, 개역)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삼하 7:10, 개역)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삼하 7:11, 개역)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삼하 7:12, 개역)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3, 개역)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4, 개역)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개역)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삼하 7:16, 개역)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7, 개역)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삼하 7:18, 개역)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19, 개역)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삼하 7:20, 개역) 『주 여호와는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삼하 7:21, 개역) 『주의 말씀을 인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삼하 7:22,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러므로 주는 광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즉 사울왕처럼 은총을 빼앗지 않겠다 라고 주님 쪽에서 선언해 버리심 자체가
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영원성이 더 구체화 되는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 나라가 멀쩡할때가 아닌
이방나라에 포로 잡혀 갔을 때
마치 다윗은 이스라엘 바깥으로 사울왕을 피해서 도망쳐 다니고
정작 사울왕은 이스라엘 전부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해서
다윗왕을 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스라엘 바깥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짐을 당하듯이

다니엘서 7장에

영원한 나라가

(단 7:14, 개역)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 7:18, 개역)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단 7:27, 개역)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세워진다 라고

이것 또한 역설적이게도 네 짐슴이 양사방 공간과 역사를 다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우상이 도배가 되는 그 속에서

그 음부의 권세 속에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곧 신부

사랑을 완성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저들 우상의 나라가 잔칫집을 완성했다 라고 좋아라 하는 그 속에서
정작 초상집으로 가서
심판 속으로 가서
종말 속으로 가서
우는 자의 자리
잃어버린 자의 자리에 가서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만 자랑하는 자로 삼으시겠다 라고 말이죠

그 증인이 그 증상물이 다윗이였듯이
이 다윗 왕 곧 예수님을 주로 세우시겠다 라고

저들이 죽인 왕 예수님을 말이죠
고로 이 원수성이 다 드러나는 겁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죄였음을 말이죠

그런 나를 대신해서 죽고자
울리는 꽹과리(에디오피아 군대의 무기)가 아닌
사랑으로 7에 70번의 용서로 왔다 라는 것을

이것이 한 목자를 세우심이 마땅함을 보여주는
천국에서는 바로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만 기념하기에
이 쳐들어 오는 빼앗고자 도둑처럼 오는 천국에 의해서
가짜 나를 빼앗기고
진짜 나를
신부된 교회로써 오로지 7에 70번의 용서만을 영원한 용서만을 바라보는 자로
새창조하시고자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오시는 겁니다
그 심판 속에서 심판 받아 마땅한 원수로써

화로다 화로다 나여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우는 자로써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드는
진짜 저주 진짜 죽음을 받으신 저 분을 보라꼬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꼬
오늘도 에스겔 선지자는 광야에서
죽음에서
심판 속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다 죽은 껍데기 이기에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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