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6 내 몸이니 먹어라 나의 피를 마셔라 곧 언약의 피 니라 (마 26,26-30)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보는 시선 (마 26,14-25)
마태복음 2018 2021. 5. 22. 14:01
18-135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보는 시선 (마 26,14-25)

〈마태복음 26:26-30 개역한글, 신약성경 46 ,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 26:26, 새번역)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마 26:27, 새번역)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마 26:28, 새번역)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새 언약의'』
(마 26:29,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마 26:30, 새번역)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갔다.』


예수님의 행동은 믿음에서 나온 행동들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말이죠
곧 종말적이다 말이죠

반면에 인간의 행동은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구성하기에
결과적으로는 과거의 반복입니다
그러니 과거를 삭제할 방법이 없다 말이죠

여러분이 태어날때부터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스스로 제거할 방법이 있던가요?
그림자가 있다는 말은 존재의 반복이지
미래완료가 덮쳐지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미래완료가 덮쳐지게 되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그 사람에게서는
실상만 나타나도록 되어 있겠죠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곱하기 세 번
이 말은 비로소 그림자로써의 종교오락은 끝났다 라는 겁니다
마침이 되고 이제 실상과 함께 동행하는 자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한 쪽 강도도 그랬습니다
실상을 보게 되니 이제 더 이상 그림자가 있는 존재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으니
어서 어서 저를 낙원에 뗄따 주세요 라고
어서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저도 함께 죽여주세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주세요 라고 말이죠

이 말을 들은 다른 한 쪽 강도는 오히여 그림자가 더 길게 늘어뜨려져서
자신을 삭제시키러 오신 예수님 보다
이 더 길게 늘어진 그 그림자의 크기에 의해
자기자신을 더 또렷하게 주장합니다
죽는 판국에 더 또렷해 본들 무슨소용이 있냐 말이죠

가룟유다도 그랬습니다
마귀에게 속은 자신의 그림자가 정오때 한참 정중앙 머리 위에 비출때는 그 그림자가 짧고도 짧더니만 해질녁에는 그 그림자가 끝이 어디일지 모를정도로 길게 늘어져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더욱 생생하고 또렷하게 주장하는 겁니다
막판에 마귀에게 속지만 않았더라면 라고 말이죠
그 부분을 도려내겠다 라고 자살을 하는 거죠
자신의 그림자가 그렇게 시켰다 라고 말이죠
아니 아무리 정오때 자신의 그림자가 깨끗한 장소 있었다 해본들 그거 의미 없고요
아무리 해질녁 자신의 그림자가 똥물에 비쳐져서 더렵혀져 본들 그것 또한 의미가 없는데

(요 6:5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13:8,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내 그림자는 저 오염된 강물에 있으면 안돼 라고
아 이 마지막 부분만큼은 더러워져서 도려내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할 정도로
그림자에게 속아서 말이죠
마귀에게 안 속겠다 라고 자기자신의 그림자에게 속아서 도려내겠다 라고 자살을 하니

지나가보면 얼마나 웃끼냐 말이죠

그러니 차라리 이 모욕적인 웃음꺼리를
차라리 미리 앞당겨서 당해보자 말이죠
바로 앞의 글 에스겔 35장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종말이 먼저 떳기에
감사 안하고는 못배기도록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이 먼저 떳기에
일부러 월경하는 여자처럼 만들어서
부정한 자리
멸망당하고 심판당하는 자리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는 때려죽어도 알수 없는 이름이거든요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을 절대로 구하지 않겠노라
나는 하나님을 절대로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얼마나 선악으로 단단히 포장 되어 있냐 말이죠
그래놓고 애굽과 손 잡고 있으니
이사야가 발가벗고 3년 동안
애굽은 발가벗은 자들이다 손 잡지 말라꼬 거울로써 비춰주더라 말이죠

꼴에 남자 라꼬 꼬추라꼬 말이죠

그러니 그 꼬추 그 남자의 자리 다 멸망당해 버려서
이제 월경하는 부정적인 여자의 자리에서
이 이름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부정한 오홀라 보다 더더더 더 음란한 오홀리바 자리에서 말이죠

(겔 23:4, 개역)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이 둘째자리인 탕자의 자리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되더라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을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마음판의 할례를 
거룩한 이름이 먼저 떳다 라는 이유로
모조리 다 꼬추 짤림 당하고
허리 뿌써뜨림 당하고

혈통을 끊어짐 당함으로써

멜기세덱 영원한 제사장의 허리에 접붙이시고자 말이죠

그러니 이제 월삭과 절기 그리고
소위 영원한 언약이라는 안식일 마저도 그림자로 취급해 버리고
다 깨뜨리고
이제 실상으로써 나오게 되니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 그림자들이 어쩔줄을 몰라 당 당 당 당황하셨어요가 되는 겁니다

이 그림자들은 실상이 나타나주길 바라는게 아니라
도리어 그림자들은 실상이 안 나타나주기를 바라거든요

실상을 바랬던 자는 변화산에서 천삼백년 만에 느닷없이 나타난 모세가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했듯이
비쌴 향유를 부은 여인도 예수님을 미리 장례식을 치른다 말이죠

이 종말을 앞당긴다 라는 말은
정답을 앞 당긴다 라는 말은

세상은 그림자이지 실상이 아니다 가짜현실이다
진짜 실상은 당신의 죽음만이 우리의 어두운 눈을 제대로 뜨게 해 주실 분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어서 어서 실상이 나타나고
우리와 같은 그림자는 어서 어서 누락 배제 소외 누락 왕따 당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빨리 퍼뜩 삭제 해 달라고 말이죠

이러니 사도들은 죽이시기로 작정 되었다 라는 것 보다 더 기쁜 것이 없더라 말이죠
사탄의 가시 보다 더 은혜로운 것이 없더라 라는 겁니다
완전 거꾸로죠

인간 존재가 말하는 행복 기쁨 즐거움 노래 감사와 정반대입니다

존재는 의문의 반복 뿐 그단새 시시해지고 재미없고 권태로워서
또 다시 우울증으로 다시 돌아간다 말이죠 그림자이니까 
허구 이니가 허상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존재는 차라리 빨리 바닥을 치는 것이 낫다 말이죠
우는 자가 복 되도다 말이죠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듯이
어차피 마귀가 노리고 있는 시체
차라리 예수님이 나를 삭제 시키는 시체 취급해 주시는 것이 낫다 말이죠

이 말은 그 정도로 허구 허상 그림자와 상대적으로 또렷한 실상의 대립 속에서

주님은 오늘 본문에 진짜 참된 양식인 생명이 뭔지
진짜 유월절의 실상이 뭔지
그 천삼백년 전의 그 출애굽 사건때의 그 사건의 그림자
영화 외계인의 영화의 그림만 봤다가 이제야 자막을
인간의 언어로 풀이해 주시니까
그 그림자가 이제야 풀리는 겁니다
그 그림, 그 영상, 그 영화 필름이 무슨 내용인지를 말이죠

자막 없이 그 동안 그림만 보고 가짜절기도 지키고
가짜교리도 만들고
가짜질서 가짜진리를 만들었다 말이죠
죄 아래 가두어야 하니까 말이죠 율법의 기능이기에
그럼 이제 실상이 왔으면
자막이 붙었으면 이제 자막에 붙여진 실상의 내용대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데 있어서

유월절 어린양의 살 코기를 먹었던 것이 
예수님 자신의 몸이였고

유월절날 먹는 음료수 포도주가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을 더러운 죄악을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처럼 더러운 자를
위하여 대신 심판받아 거룩으로 옮기는 죄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피 
언약의 피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여태까지 그림자만 보고 살아왔던 자들에게는 무슨 소리인줄 모르기에
종말의 끝의 시선에서만
그림자가 사라진 자에게만 실상 곧 자막이 보이지
자막이 안 보이는
1인치의 벽을 못 넘어서는 자들에게는 그 그림이 무슨 말을 하는 지를 모르는
문화도 다르죠 사고방식도 다르죠
전혀 다른 세계이거든요

그림 퍼즐 조각을 겨우 맞추기만 했을 뿐이지
이게 뭔지 모르는 겁니다
자 그럼 그림을 해석해 봐
응 조각 맞추기를 했어
그래 조각 맞추기를 했으니까 뭔지 해석해 봐
율법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를 그림 조각 맞추기를 했다고만 외치지
그것이 뭔지 해석해 봐 라고 하니까
아무도 못 하더라 말이죠
부자청년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고만 하지
그래 너가 이웃환대법 약자보호법을 실천해 봐 라고 하니까 못하는 겁니다

그림의 조각 맞추기를 다 완성한 것이 도리어 본래의 의미를 가리는
그림이 되는 겁니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그림이 있는줄 몰랐던 거죠

주님이 아껴둔 이름이 있어요
남겨둔 한 씨가 있다 말이죠
그 실상이 그림을 확 찢어버리고
원인을 갖추지 않은채
결과를 통보 하시는 겁니다

그림조각 맞추기가 어릴적에는 몇 개 없어요
중학생쯤 되면 초등학생때의 100개 조각에서 한 4,500개 
제 마음대로의 추측입니다
이제 성인이 되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퍼즐 조각이라서 수천개 수만개의 조각을 맞추기를 해야 할 판국으로 난제로 자리 잡아요
못 풀겠다 라고 마지막 부분을 엉터리로 끼워맞췄다 라고 자살하는 가룟유다도 있고요
그런 일이 없지만 다 맞추었다고 했는데 정작 무슨 그림인지 모르는 자들
특히 소크라테스와 같은 천재들 철학자들 말이죠
손에 정답을 쥐고서는 존재로만 보고 있지 기능으로는 못 보는 겁니다
손에 지우개를 쥐고서는 지우개 아니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맞아요 지우개가 아닙니다
지우개란 자기자신을 지우라꼬 있는데 
지우개로 봐버리면 자신을 지워야 하니까 못하죠

이제 난제의 퍼즐조각 수천 수만개를 못 맞춘채로 지나서
치매가 오는 노인이 되었을때에는
치매예방 차원에서 백개? 등등의 훈련을 하기 위해서
또 그림 퍼즐 조각 맞춘다 말이죠

아무리 그림조각을 맞추는데 성공을 해도
무슨내용인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림 조차도 난해하기가 짝이 없으니 말이죠

그동안 그림자로 지켜왔던 유월절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 라고
실상을 알려줘도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그럼 신약도 아니고 자막도 아니고
그림 뿐인 구약의 이사야 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를 그럼 알까요

놀랍게도 유대인은 아예 53장을 금기로 해버렸다 라고 했잖아요
자 그럼 성경도 인위적으로 믿고픈 것만 믿고
보고픈 것만 보고
듣고픈 것만 듣는 식이라면
이 그림 조차도 얼마나 엉터리로 영화상영을 했겠습니까
설교를 그 동안 엉터리로 회당에서 가르쳤다 라는 거죠

왜? 여전히 존재 중심으로 보고 있고
여전히 그림자로 보고 있으니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거죠

자막 없이 영화를 봐봐요
한국영화를 보는 거랑 완전히 다를꺼 아니겠습니까
정답 없이 문제지만 나오니까 그 정답 찾기에 자막 찾기에 세월 다 보내는 겁니다
모세가 왜 천삼백년 만에 변화산에서 나타났을까요
드디어 율법의 완성이 나왔으니까
율법의 정답이 나왔으니까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거죠
주여 정답을 자막을 적어주세요 
율법의 완성인 사랑 곧 남을 사랑하고자 죽기까지 복종한 그 십자가를 어서 보여주세요 라고
율법의 대표자는 외치고 사라지고 누락 됩니다
무대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이
이 말 한 마디만 외치고 사라지는 겁니다
마치 세례요한처럼 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라고 말이죠

율법의 대표자도 이런 판국인데
다윗언약이라는 새언약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참선지자들은 오죽하겠냐 말이죠
당신만이 왕이십니다 구세주 이십니다
왕이란 섬기는 왕이거든요
다윗 왕도 섬기기는커녕 도리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취하기 바빳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야 장군을 고의적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가릴려고 자신의 수치를 무지 무지 가려보고자
그 결과물인 이름 없는 아이의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음이 안 닥치기는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막아서보고자 얼마나 애를 썼냐 말이죠

지금 에스겔 35장에서 바로 그런 과거를 언급하시는데 있어서
다윗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해서
집단 운명으로써 그런 과거를 지적하시는 겁니다
문제는 무지 무지 강조했지만
그것이 바로 과거를 이제 반성하고 고치라 라고 
또 인간에게 숙제를 던져주듯이 해석하면
또 그림자로 그림자끼리 모아서 그림자 퍼즐그림조각 맞추기 해서 맞추라는 말이 아니라

다윗 말 마따나
나의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릴줄 알았더니만
택도 없더라

도리어 이름 없는 아기의 죽음을 통해서
마귀가 독수리가 주검에 모여들 듯이
마귀가 다윗을 노리고 있듯이
주 여호와의 거룩이
다윗은 도리어 죽은자로 취급해서
아이의 죽음에 접붙임해서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라고 다윗의 시체를 바닥뜯듯이 죽음을 바닥 뜯어내는
이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곧 종말 곧 성령의 일로 인해서
다윗은 도리어 문제도 푼적도 없이
원인도 갖춘적도 없이
문제를 풀려고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는 택도 없는
함량 미달임을 알고서
과거에서 현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그림자가 아니라
실상
미래완료에서 현재를 구성하는
이 꺾으신 뼈로 기뻐하는
실상에 의해서
다윗 개인의 구원이라는 탐심 우상을 곧 다윗의 몸이 박살나고

주여 당신의 몸으로 바꾸어 주소서 라고
장소가 이동이 되는
예수님의 몸을 먹고 마시지 않는 이상
주님과 상관이 없는
땅 곧 장소 자체가
몸 자체가 주님의 몸으로 이동해야 함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함을
바로 잔칫집의 몸이 아니라
초상집의 몸 종말의 몸이 되어야 함을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이 꺾으신 뼈로 기뻐하는

기쁨이 먼저 떳기에
감사가 먼저 떳기에
에스겔 35장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먼저 떳기에
이 아껴두신 이름
이 남겨두신 한 씨와 함께

남은자로써 즉 다른말로는 다른 것은 안 남겨뒀다 라는 겁니다
다른 것을 만약에 남겨두면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박살내지 않으면 또 연결 또 복원
또 다시 짖고
또 옛날 것을 또 무한반복
또 그림자를 반복할테니
실상을 도리어 거부할 꺼다 말이죠

몸 교체를 이 살과 피로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살과 피를 내어줄 정도로 예수님 자신의 몸이 해체가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은
정작 우리가 자아라는 몸이 삭제되어야 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 몸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면
탐욕적인 우상숭배적인 그런 구원은 삭제되지 않을 것이다 말이죠

그렇다고 내가 자발적으로
우리 어머니 말 마따나
나라도 초상집에 안 가겠다 라고 하시듯이
내가 내 스스로 가는 초상집은 다 가짜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 죽은 자가 되고
내가 내 스스로 죄인이 되겠다 라고 골프채 잡고 디스코 장에 가서
죄를 짖는다 라고 해서 죄가 되는게 아니다 말이죠
인간이 설정하는 이웃사랑이 거짓 되듯이
얼마나 이스라엘이 위선적인고 하니 팔레스타인을 미사일로 가자지구를 의도적으로 부수듯이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이주 계획을 펼쳐서
팔레스타인을 몰아낼려고 거주 주택논쟁을 의도적으로 법적논쟁을 붙이더라 말이죠

어처피 약속의 땅이 아니기에
두 쪽다 지옥에서 서로 땅 따먹기 할 뿐이지만
만약 약속이 땅이 맞다면
또 다시 주님은 청소하겠다 라고 양쪽다 다 쫓아낼꺼다 말이죠
그런다 라고 청소를 하시느냐 또 70년 동안 약속의 땅을 공터로 만드시느냐
아니지요
이제는 이 약속의 땅이
예수 안이라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종말의 공간이라서 존재하지도 않아요 비존재로 공백으로써
십자가의 사건 속이 참성전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니 이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터지는
모든 땅이 주님의 전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 중심이 아니라
땅 중심
성전중심
사람의 손으로 짖지 아니한
예수님의 이름이 외쳐지는 곳 어디든 성전이 되는 겁니다

곧 나를 삭제 시키는
나의 몸을 지우는
나의 이름을 지우는 이름이 성전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이죠
이 성령의 전이 바로 우리 이다 라고
우리 몸을 늘 삭제하시고 늘 매일 매일 십자가에 못 박고
늘 겉사람은 후패하고 속 사람은 새롭게 하는

바리새인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반대로 만드시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인간이 스스로 손대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오죽하면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라고
경계선 라인으로 삼았을까요
즉 바리새인은 천국에 못 들어감과 동시에
바리새인 보다 더 나아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마귀 보다 더 나아야 천국에 간다는 말이거든요
이거는 아주 아주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마귀는 천국 자체에 못 들어가니까 말이죠
문제는 바리새인이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선생으로써
뭐든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위치이다는 겁니다 장소 말이죠

율법 지키기도 최고 (부자청년)
이웃사랑 실천도 최고 (한 율법사)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음도 최고 (맏아들)
윤리 도덕 법지키기
손깨끗하게 씻는 거룩실천
뭐 하나 최고가 아닌게 없어요

마귀가 그래요 마귀가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최고이여도 마귀가 천국에 갈 리가 없잖아요
왜냐하면 어린아이도 다 아는
마귀는 이미 자기 집이 자기가 있을 곳이 있기에
들어갈 수 조차도 없어요

자기 집이 있는데 남의 집에 왜 가겠냐 말이죠

자 그럼 마귀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간다 라는 말은ㅇ
천국에 가는 자는 
천국에 절대로 못들어가는 마귀 보다도 나은 자 일 수 밖에 없다 라는
당연한 결과의 말씀이다는 겁니다

즉 원인 없는 결과요
정답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 내용을 목사들은 마귀가 외치듯이 이야기 할까요
오죽 하면 마귀 보다 진짜로 더 나을려고 해요
마귀 보다 더더더 율법을 지키는데 최고봉이 될려고 하고
마귀 보다 더더더 이웃사랑 실천하는데 최고봉
문제는 어느세월에 ~~~~~~~~~~~~~~~~~~~~ 김보화 ㅋㅋㅋ 코메디언 이름 한참 찾았넹

지금 당장 순식간에 1초 2초 3초 만에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라는 겁니다
아니 3초도 안되는 당연한 말입니다
마귀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맞잖아요
3초도 너무 길죠
1초도 안되는 당연한 말씀이다 말이죠

그런데 마귀들이 이 말씀을 지키라꼬 지도 못 지키면서 남에게
교인들에게 자꾸 무거운 짐을 짐지워요 글쎄

완전 사기꾼들이지요

개인구원 개인숙제를 던진다 라는 말은
땅과 함께 역어버리는 집단구원을 무시하는
그야말로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의 특징이다 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도 말았어야할 놈이다 말이죠

어떤 목사가 저에게 차라리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했다 라고
가룟유다 취급하던데
웃껴요
개인숙제 개인구원 실컷 던져줘놓고서 못한다 라고 말이죠
사기꾼이 따로 없어요

그래서 답했죠
그것을 이제 알았냐 라고

파리채 잡고 책상 두드리고 문을 쾅 닫고 난리도 아니였어요
빨리 잘못했다 라고
교인들 앞에서 사과하면 받아주겠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웃끼는 소리죠
이미 이상하다 복음이 아닌 것 같다 라고
6개월 한 참 전에 말했고 
나갈려고 한 것을 조금만 시간을 다오 라고 해 놓고서는
이제는 다 뒤집어 씌우더라 말이죠

그러니 꼬투리 잡을려고 혈안이 되었던 거죠

왜 가룟유다에게 태어나지도 말았으면 저에게 좋았을걸 이라고 하셨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을려고 하고
끝까지 자기 숙제를 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그림자가 여전히 시키는 숙제를 차곡 차곡 열심히 경건하게 바른생활로써 해 왔다 라는 거죠

그런데 실상이 오니까 그거 다 삭제시킬려고 하니
그거 삭제하지 말래요 글쎄
목사에게서는 바로 교회 이거든요
교회 라는 그림자를 누락시키자 삭제시키자 라고 하면
손대지마 손대면 다 죽여버릴 거야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성화론 외치는 교회도 그렇고
안 그러는 교회가 없어요
사람의 손으로 지었으니
얼마나 자신의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모아서 정성스럽게 지은
공든탑을 감히 누가 부술려고 하냐 말이죠

인간이 성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그겁니다
가룟유다가 이스라엘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래요
그 동안 독립운동을 해 왔으니
얼마나 자기 목숨처럼 자신의 신체와 동일시 했겠느냐 말이죠

어라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정작 독립운동을 하겠다 라는 저 로마와 손잡고
예수 라는 이 한 인물을 죽이고자
그렇게 느려터진 자들이 갑자기 부랴 부랴 부랴
그럴게 게을러터진 항상 남들에게 자신의 일들을 떠 맡기던 자들이
갑자기 열심을 내어서 앙꼬만 차지할려고 하듯이
결과만 챙겨먹을려고 하듯이
갑자기 부지런을 떨면서 예수님을 죽일려고 부랴 부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가룟유다는 거기서 빠지겠다 라고 자살을 한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그 며칠 뒤도 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그 생각에서 갇혀버렸으니 말이죠

이것이 원인을 갖추어서 결과 곧 정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종말이 덮쳐진 자는 자살할 리가 없어요
자신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든다는 것을 아니까
주님의 죽음을 외치기도 바쁜데 어딜 감히 자살할 권리를 권력을 폭력을 살인을 행사하느냐 말이죠
살인죄입니다
자신을 자기가 살인하는 얼마나 독하기 짝이 없냐 말이죠

그러니 끝이 나쁘면 다 나쁜 겁니다
뭐 끝 이거 하나만 잘못 되었다 라고 수정하겠노라 라고 자신을 심판한다는 자체가
전체가 나빳다는 겁니다
바리새인 보세요 얼마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짖만 골라서 하는지
그게 다 나쁘다 라는 겁니다

정답이 없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을 보세요 결과가 좋으니까
끝이 좋으니까 다 좋은 겁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운명에 집어넣고자
주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몸이 해체되면서까지 끝까지 사랑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문제는 그 몸을 먹으면 내가 살인자가 되는데??

그거 감당하실수 있겠습니까?
같은 운명이 되는데?????
그거 감당하실수 있겠습니까??? 쓰앵님

내가 죄인이 되고 내가 환자가 되는데
과연 감당하실수 있겠냐 말이죠
당연히 못하죠

더군다나 개인숙제도 아닌데
집단적으로 무슨수로
에스겔처럼 원맨쇼를 해야 할까요

내가 원인을 갖추는 방식은 없어요
바로 앞의 글 에스겔 35장에서
여호와의 아껴둔 이름이 먼저 떳어요
그럼 이 먼저 뜬 이름에 맞는 
정답에 맞는 문제아
의사에 맞는 환자
구원자에 맞는 죄인을 찾는데 그냥 찾는게 아니라
건강한 자 보는 앞에서 상대적으로 그 차이로 그 간극으로 그 의로우심으로 찾는 겁니다

그러니 월경을 하는 여자처럼 부정한 자로 이스라엘을 만드셔서
왜? 거룩한 이름이 떳기에
아껴둔 이름
남겨둔 한 씨가 떳기에 말이죠

그러니 앞의 글에서 남협 뭐 페미니즘 이야기도 잠깐 했습니다만
남자들 모조리 여자 만들어서
여자도 여자로 만들어서
여자가 여자 아닌 자들이 무지 많아요
거의 백 프로입니다

여자 자체가 없음 이라는 비존재인데
왜그리 존재로써의 여자들 뿐인지
그러니까 바벨론 여자처럼
우상숭배를 하는 이유가 나오는 겁니다
과부 안 되겠노라
내 자식 만큼은 고아로 만들지 않겠다 차라리 같이 죽겠다 라꼬
그리고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겠다 라고
나그네 이방인 떠돌이 떠도는 유령이 되지 않도록 땅을 차지하여서
천대만대까지 복 받겠다

어느 세월에 ~~~~~~~~~~~~

안그래도 궁금해서 검색해 너튜브를 보니
쓰앵님이 선생님 샘 이더군요
스카이캐슬 성대모사를 보니
그야말로 바벨탑 땅의 사람들 답다 말이죠
언어 자체가 바벨탑 언어 뿐이더라 말이죠
종교꾼들 아무리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다 달라도
바벨탑 언어들 뿐이다 말이죠
땅 자체가 그들의 언어를 정해버렸으니 사고방식 자체도 못 벗어나요

그런 자들 보는 앞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다윗의 운명으로 바꿔치기 하시는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몸으로써
아예 1초 만에 바리새인을 타 넘고 와 버리시는 겁니다
간단해요
주님이 바리새인을 넘어오신다 말이죠

그러니 반드시 이방인의 목전에서 심판하셔아 하는 거죠
손 모조리 탈탈탈 바지 주머니 모조리 다 탈탈탈 빈털터리로 만들어서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보란 듯이 사랑을 펼치시는 겁니다

이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어라 이방인 중에 또 보는 자가 안 생기면 말을 안해
보는 자가 생겨요
자 이렇게 되면 이방인의 비웃음 조차도 심판꺼리가 되니
이스라엘도 비웃는 판국에 이방인은 당연한데
이방인이 구원이 되는
행함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
종말을 의지하고서 구원받게 되면
이스라엘은 더더욱 심판 받아 마땅하고
이방인은 원래 심판 받아야 하고
그러니 남방여왕에게 심판 받고

(눅 11:31, 현대인)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남방여왕도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할 것이다. 자,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여기 있다.』

느니웨 백성에게 심판 받는 그야말로 수치가 가득한 이방인으로부터
더더욱 수치를 당해야 할 정도로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솔로몬 보다 더 크고
요나 보다 더 큰
그럼 당연히 바리새인 보다 더 큰 분이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는 우리 죄악이라는 수치를 가려줄자가 없을 정도로
세상 밖에 내던져진 시체꺼리이다는 겁니다

지금 현대는 보는 시선을 보라 말이죠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땅이 황폐한지

땅이 황폐하면 할수록 더더욱 빈부격차는 이제 손댈수 없을 정도입니다
환경오염처럼 더럽다 말이죠
(넷플렉스에서 시 스피라시 바다의 음모라는 다큐에서
바다가 죽기 직전이다 라고
바다의 황폐함을 외치더라 말이죠
땅도 모잘라서 이제는 바다도 곧 죽을 판국일 정도로 다 끌어모아 잡아 죽이는 겁니다)

그렇다고 부요한 자가 안심이 될 정도인가
얼마나 불안하면 더 가질려고 할까요
마음 자체가 땅처럼 황폐해요

땅만 더럽다 라고 떠난다고 해서
땅과 분리된채로 독자적으로 깨끗함을 추구할 수가 없어요
땅이 더럽다면 인간도 이미 더러운 겁니다
아예 그래서 이것도 더러운거냐 라고
이미 남겨진 이름 아껴둔 이름이 떳기에
모조리 다 황폐케 바닥을 뜯어버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종말을 땡기는 주님의 믿음이다 말이죠

유월절을 껍데기로 절기로
행함과 절기로 지키는 자들에게
주님은 이제 다시는 유월절 껍데기 따위는 지킬 필요가 없는
의문의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는
아예 단번에 제사로 마무리를 짖는
실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림자 로써 빵 살코기
그림자 로써의 포도주
이것이 실상은 주님의 살과 피 였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의로워 질려고
또 의로움을 지키고자
그 동안 유월절 빵 무교병과 어린양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나는 뭘 해도 죄인입니다 이런 죄도 주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라고

주님의 거룩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거죠

이것이 함께 동행하는 하나됨 곧 섬기시는 왕 때문에 라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우상숭배의 예배 지키기가 되어버리니까
의미가 뒤 바뀌게 되는 겁니다
나의 개인적인 구원을 위해서
소위 갓바위에 빌어서 축복 받겠다 라고 말이죠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맹세하는 식이 되어버린
인간의 숙제로 둔갑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 말은 모든 인간이 말귀를 알아 먹는데
주님의 살과 피 라고 해 버리니까
갑자기 실컷 잘 먹다가도 갑자기 얼음
갑자기 조심스러워 지면서
그 다음부터는 잘 먹던 빵과 포도주를 점점 멀리하게 되는 겁니다
아니 거룩해 질려고 먹던 것이 갑자기 식인종이 되어버리는
죄인이 되어버리니까

건강한 자요
남자요 
의로운 자였는데

갑자기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 위한 그림자가 지나가고 이제 실상이다 라고 하니까
갑자기 건강한 자에서 죄인이 되어야 하고
남자에서 월경하는 부정한 여자가 되어야 하고
의로운 자에서 죄인 아 바뀌었구나 위에서 환자가 되어야 하니까

빵과 포도주 라는 그림자는 나 라는 존재와 딱 맞아 떨어지는데
누구든지 이해하고 실천도 가능한다
살과 피 라고 해 버리니까 그림자가 시키는대로 했던 나 라는 존재가 사라지게 되고
삭제 당하고
이 살과 피가 아니면 저 죽습니다 라고 해야하는 우는 자
죄인
환자
제발 저 좀 고쳐주세요
의사의 기능을 이 환자를 고치는데 활용해 주세요
구원자의 기능을 이 죄인을 용서하는데 활용해 주세요
라고
존재가 아닌 기능이 되어버리니까
월경하는 부정한 여자의 자리에서 거룩한 이름 곧
아껴둔
숨겨둔 남겨둔 잉여로써의 이름을 외쳐야 하니까

이스라엘 아들에서 머슴아에서 꼬추 짤려서 할례 당해서
허리 뿌서짐 당해서
예루살렘 딸로써 제발 긍휼히 여겨 달라고 하는

이름이 먼저 떳기에 나타나는 증상물로써 작용해야 하니까
이 살과 피가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그냥 과거의 그림자가 시켰던 대로
그것이 습관화 우상화 되면서
구지 이 골치 아픈 불편한 진실(시스피라시 카우스피라시)을 말라꼬
이 편한 것 뿌리치고 받아들이느냐 말이죠

그러니 존재 자체가 이미 우상화 되었기에
나에게 안 맞으면 다 무관하게 여기면 된다고 보는데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주님께서 그래? 그럼 나도 더 더 더 부정적으로
부정의 부정으로써 이 살과 피를 먹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
무관한 자다 라고 해 버리시는 겁니다

마치 바리새인 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라고 말이죠
저 마귀
저 바리새인을 그렇게도 의식하고 눈치 보면서
어라 나 예수에 대해서는 무관하게 여겨버리니까

이들 마귀가 시체를 찾듯이
주님이 마귀 보다 더 더 더 우리를 시체 취급 하면서
부정의 부정으로써
또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반드시
주님의 살과 피를 기준으로 해서
무관한 자인지
상관이 있는 자 인지
생명이 있는 자 인지 생명이 없는 자 인지를 가르시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강요된 선택으로써 율법 지키기를 요구하는 그 폭력에
그 반대 되는 무폭력 비폭력이 아니라

오히려 더 더 더 폭력적인 더 나은 폭력으로서 죽음 보다 더 폭력적인 사랑으로
질투의 모습으로써
바리새인 곧 오늘날 목사죠
목사 시키는대로 할래
내 시키는대로 할래

목사 시키는 것은 지키가 가능해요
그런데 지옥에 가요

반대로 예수님이 시키는 것은 지키기가 불가능해요
자기의 살과 피를 먹으래요 글쎄
이 말은 죄인으로써 의사를 찾으라 라는 겁니다
아 환자 로서 말이죠

그래서 차라리 소경입니다 고쳐주소서 라고 했다면
고쳐 줄 것인데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까 소경 맞구나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보이는데 자꾸 소경 이라고 고백하라고 하라니 말이 되냐 말이죠
아무리 봐도 나는 소경이 아닌데
눈이 아직까지는 보여요
눈이 안 보일때는 고쳐주소서 라고 하는 것이 맞지요
그런데 안 보이는게 아니라 보인다니깐요

바로 이것이 나 중심의 시선이다는 겁니다

나 중심으로 보고 있다 라는 것을 안다면
무조건 주님은 안 보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래서 주여 고쳐주옵소서 나는 소경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며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 없다 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줄 모른다는 자체가 주여 저 죄인 맞고 환자 맞고 소경입니다
주여 죽어주소서
주여 고쳐주소서 주여 살과 피를 먹여주소서 가 되는 겁니다

이런 나 밖의 타인의 시선은 성령님이 오시지 않는 이상
새 마음이 새 영이 오지 않는 이상
정직한 영이 오지 않는 이상 나올수가 없어요

그럼 정직한 영이 없다는 말 아닙니까
없으면 달라고 해야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주여 살과 피를 마침 정직한 영이 없어서 달라고 할 참이였는데
맞춤맞게 오셨군요 라는 자에게만

이것이 서로 통하는 대화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미 자아의 언어인 행함의 언어
선악의 언어
바벨탑의 언어에서는

말 자체가 안 통하는
그래서 여전히 자막 없이
그림만으로 판단하는 그런 어두운 눈으로써

주여 자막 주세요
무슨 소리인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면
알려주시고 자막을 주시고
성령을 주신다 말이죠

그런데 자막 필요 없어요
살과 피 필요 없어요
우리는 충분히 그림만 보고도 말씀 잘 지킬수 있어요 라고 나오니까

막상 그림자만 보다가
자막까지 나오게 되니
스스로 해석하고 제대로 볼 줄 아는 것이 오히려 더 없음을 알고
이 자막이 왜 이런 식으로 적혀야만 했나요 라고 물어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주여 살과 피를 왜 먹어야 하나요

쉽게 말해서 넌 눈 봉사이거든
내 몸의 눈을 먹어야 해
내 눈 띠 줄게 받아서 니 눈에 넣어라 라는 겁니다

내 참된 양식 줄게 너 입에 넣어라
내 피로 너 더러운 피
그 뭐라 하죠 당뇨병 환자들 피 갈아주는 것
수척?
투척 ? 뭘 던지나 아 이 비슷한 단어인데 검색해도 안나오네
비슷한 단어가 아닌가
ㅋㅋㅋ
투척이 아니라 투석기 ㅋㅋㅋ
너 더러운 피, 죽음에 이르는 피를
피 땀 눈물을 이 깨끗한 생명의 피로
이 꺽으신 뼈로 즐거워 하도록 이미 꺽으신 뼈가 먼저 떳다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하고
너는 세 번씩이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죽이고
이름 없는 아이 까지 죽이게 될 것이다

왜? 남겨둔 한 씨
임마누엘 아기가 먼저 떳거든
살아계신 하나님 곧 생명이 먼저 떳거든
그 증상물로 너는 죽은자로 태어났기에
주님의 살과 피를 먹여 달라고 외치도록 만들었거든
월경을 하는 부정한 여자가 되어버린 모세가 천삼백년 만에 나타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수 있도록 주여 죽어주소서 피 발라 주이소 라고 했듯이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앞당겨서 치루었듯이

이 죽은 자를 살리는 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라고
살과 피를 먹여 달라고 미리 앞당겨서 외쳤던 변화산의 모세와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너희들도 이제는 그림자 놀이 고만 할때가 되었으니
실상을 보고서
주여 저 죽은 자입니다 생명을 주세요 라고 해야할 판국이다 라는 겁니다
종말을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정직한 영을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살과 피는 단순히 물질이 아니다는 겁니다
물질이면
빵과 포도주와 뭐가 다르며
살을 먹기 위해 살점을 뜯어버리면
살을 먹는게 아니라 물질을 먹고
그 물질로 인해서 나의 존재를 더더욱 유지하는
또 개인 구원 밖에 뭐가 되냐 말이죠

주님이 자기 살을 주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야 한다는 겁니다
개인이 살점 뜯어먹는다고 몇 사람 겨우 먹고 다음 배고플때는 없으면
자 이제 그만
텔레토비 이제 그만 밖에 안되잖아요

모든 죄인을 위하여 흘리시는 피 인데
겨우 물질로서의 피 라면
몇 명이나 투석해 주겠냐 말이죠

그러니 상징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실재계도 아니다 말이죠
바벨 언어에서는 그 큰 의미를 담기가 너무나도 부족해서
담을 수 있는 언어가 없어요

그래도 어쩔수 없이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데
그냥 제가 쉽게 이해한 것은
거꾸로 쳐들어 오는 이 땅을 박살내려거 내려어는 천국의 기능처럼
즉 이 말은 죽어서 올라가는 천국은 없다 라는 거죠
기능적이지 존재론적인 천국은 없다 말이죠

예수 안이 천국이다 말이죠

자 그렇듯이

피 마시기 사랑이 이루어짐 아 달콤해라 
피 에서 사랑으로 사랑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한 몸 이렇게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피에서 사랑 그냥 사랑이 아닌 죽음 보다 강한 사랑
그리고 다시 사랑에서 음부보다 더한 질투로
그 질투에서 다시 불 같은 맹렬함이다 라는 겁니다

(아 8:6, 현대인) 『여자: 당신은 나를 인장 반지처럼 당신의 마음에 간직하고 도장처럼 당신의 팔에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며 질투는 무덤처럼 잔인하여 맹렬한 불처럼 타오릅니다.』

그러니 주님의 살과 피를 존재가 아닌 기능적으로 표현할 때
나는 너만의 의사로 왔어
그러니 너는 무조건 나의 환자야 환자로 만들어 버리겠어 라고

그 뭐죠 아가서의 사랑은
아 맞다
스토킹 사랑이다 말이죠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빨리 생각이 안나서리 ㅋㅋㅋ

왜냐하면 율법 외에 한 의가
외부의 인물로써 먼저 떳고 먼저 등장함으로써
그 대상물로써의 내가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주의 살과 피에 맞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거다 라는 거죠

이 종말의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 곧 기존의 방법은
또 내가 그 살과 피를 대상물로 삼아서
나의 존재를 위한 곧 우상적인 탐심 즉 개인구원을 위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보고 따라잡고자 하는 식이니까
바로 이런 그림자의 사고방식을 단절 시키는 것이 종말이다 말이죠

얼마나 제대로 무슨 말인지 말귀를 못 알아먹도록 했으면 단절이 될 정도로
무슨 소리인지 모를 정도이냐 말이죠

그러니 기능은 존재에게 포착이 되지 않는 겁니다

마치 지혜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서 반드시 천한 계집이 등장하고
그 천한 계집이 세상의 목전에서 이방인이라는 우상숭배자들 목전에서
왕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지혜의 기능이다는 겁니다
고로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면서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시는 거다 말이죠

바로 이 지혜와 같은 주의 살과 피는 그 동안
바로 앞 구절에서 무시 받는 비싼향유를 부인 여인에게 딱 맞는
살과 피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동원이 되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례를 치르는
지혜를 나타내고자
주님의 살과 피를 나타내고자 등장 되는 증상물 곧
천한 계집으로써
제자들이 격동하고 견딜수 없도록 만드는
가장 사랑 받는 자로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 여인이 한 믿음의 행동 곧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이 종말성이 복음이 증거 되는 곳 마다 기념케 하도록 한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 창녀가 한 행동이 기념이 될까요?
도리어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또 무시해 버리잖아요
도리어 제자들의 주장
가룟유다의 주장
그 비싼 돈으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도리어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무슨 소리인줄 교회가 오히려 더 잘 알아먹어야 하는데
도리어 더 무슨 소리인줄 세상 사람보다 더 모르는 것이
성경말씀이 되어버린 겁니다
왜?
여전히 이전 것 지나간 것
삭제된 것
그림자로써 성경을 해석하니까 말이죠

문제지를 풀고자 자기 숙제로 정답을 찾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이미 정답은 떳는데요 뭘
살과 피가 떳어요

그럼 문제지를 찾으면 된다 말이죠

누가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겠다 라고 나오겠냐 말이죠 엽기적인데
안식일날만 골라서 고침을 받는 손마른 자가 여기에 해당 되는
문제지입니다

저들이 고쳐야 할 것을 예수님이 고쳤으니 얼마나 격동하고 견디질 못해서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안식일 어겼고 범했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누구든지 잡기 쉽도록 안식일날만 골라서 고쳤다 말이죠
그 증거물로써 손마른 자입니다

누구든지 다 봤다 라는 증거가 왜 안식일날 고치느냐 라고
고쳤다 라는 것을 인정해요
그런데 왜 그림자날에 하느냐 라는 겁니다
그림자 이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 보고도 
봤음을 자기들 입으로도 시인을 했으면서도
못 보는 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듣고 깨달아 고침이 될까봐 두려워 떠는 것이
바로 주님의 살과 피입니다

존재로는 파악 못합니다
주의 살과 피가 터트리는 사건을 통해서만 파악이 됩니다
그러니 그 살과 피가 터트리는 사건을 보여주심을 당해야 하는 입장인 거죠

안식일날만 골라서 범하고 어기는 예수만 보이느냐
아니면 살과 피로서만 보이느냐

놀랍게도 안식일날 고침 받은 그 당사자
그 대상자
살과 피의 대상물인 손마른 자에게만 해당 되는 겁니다
그 손마른 자에게서만 안식일날이 바로 주의 날이 되는데

안식일을 지켜오는 그림자를 지킨 자들에게는
절대로 이 안식일이 예수님의 날이 아닌 겁니다
여전히 날과 절기를 지키는 자신의 날로 규정하는 거죠

그러니 살과 피는 그 동안의 신앙심과 믿음의 행동들이
이 살과 피 앞에서는

똥 떵 어 리 로 들통당하지 않는 이상
살과 피는 곧 생명은 무관한
여전히 죽음과 동행하는 자이다는 겁니다
죽은자의 하나님 이다는 거죠

산자의 하나님이 아니다는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음을 비로소 알고서
정직한 영을 달라고 다윗이 비로소 왕 자리에 내려와서
가장 높은 자리 아닙니까
그리고 제일 낮은 저 천한 자리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겁니다

이것이 이름이 떳기에
비로소 감사함으로 태어난 자가 다윗이라는 증상물로써 
왕이 아닌 죄인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 왕으로써 나타날때는 천군천사들이 아무도 잔치를 안 벌려요
그런데 죄인이 나타났다 라고 비로소 천군천사들이 잔치를 벌리는 겁니다
천사는 왕을 전혀 흠모도 안 하는데
천사가 도리어 죄인을 흠모해요

아이고 많이 탕감받아서 많이 사랑 받는구나 라꼬 말이죠

잉~~~ 벌써 26페이지넹
신나서리 ㅋㅋㅋ

자 이제 본론을 마무리하면서 결론을 맺어보자면

안식일의 실상 실체를 손마른 자만이 누렸고
안식일 지키는 자들은 곧 안식일을 대상물로 삼아서 자신들이 지켰다 안 지켰다를
예수님에게 까지 적용시킨자들은
때려죽어도 안식일이 누구를 말하는지의 저분이다 라고 가리키는 안식일을 도리어 무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주의 살과 피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제물 됨으로써 구원을 생명을 얻은
주님의 해체되는 몸입니다

그 해체 되는 몸에
우리 또한 합류가 되어서 같이 그림자로써의 자아가 해체가 되고
주님과 함께 새 몸으로서 같은 운명이요 함께 동행하고 한 몸으로써

단순히 구원 받고 땡 이 아닌
구원 받고 빠이 빠이 가 아닌
아예 한 몸이 되어버리는
그야말로 인간의 신체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한 몸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왜 남녀간에 결혼을 하는 겁니까
지들 좋으라꼬?
인간을 위한 안식일이 없었듯이
인간을 위한 결혼도 구원도 없습니다
오로지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교회의 한 몸을 말하기 위해서
미리 한 번 해 보라고 있는 겁니다

하나가 되던 가요?
안 된다 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라 라꼬

한 몸은커녕 한 마음도 안 되는 판국에
한 몸이 무슨 말이냐
남성인권보장 위원회(개콘)
바람펴서 딴남자랑 놀아나는 더러운 고멜과는 도저히 못살겠다
즉각 이혼을 모세는 보장하라 보장하라
한 몸은커녕 세 몸이 될 판국이다 즉각 이혼증서를 써줄 것을 즉각 보장하라 보장하라

인간의 결혼이 결혼 다운 결혼이 되게 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그랬던 머슴아들을 모조리 꼬추 짤라서
여자 보다 더 여자로 만들어서
월경하는 부정한 여자의 자리에서
새신랑 곧 생명
곧 살과 피로써 오게 되니

부끄 부끄가 되는 겁니다

지가 더 고멜 보다 더 더러운 여자가 되고서야
이 주님의 살과 피를 이해가 되었던 겁니다

죽은자였던 줄도 모르고
뭐 더러운 여자랑 못 살겠다 당장 이혼증서 써 달라
뭐 이혼 증서
이  혼   증   서

똥 덩 어 리

남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해체되어야 하고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해체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 여자 자체가 천국에는 없거든요

남자 여자도 없는데 무슨 놈의 결혼이냐 말이죠
뭐 정결한 결혼 ~~~~~~~~~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살과 피를 말하기 위한
죄인 만들기 이십니다

즉 그 어떤 의로움도 한 몸이 될 수가 없도록
오로지 절대 죄인 됨 속에서만
주님의 용서로써
주님 자신이 살과 피를 먹여주셔야만
이런 모욕적인 구원이어야만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마귀가 비로소 시기 질투하는
결혼식 즉 영원한 언약의 피 발라주심이다는 겁니다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마귀가 격동하지도 않고 견딜수 없도록 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 마귀
이 죽음
이 사망의 왕노릇을 거쳐서

은혜가 왕노릇 함을 이루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또 죽기를 무서워 또 사망의 왕노릇에 종노릇 할 뿐이니까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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