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7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심판받는 자가 복 되도다 (믿음=종말이라는 선물) (마 26,31-35)

내 몸이니 먹어라 나의 피를 마셔라 곧 언약의 피 니라 (마 26,26-30)
마태복음 2018 2021. 5. 30. 09:30
18-136 내 몸이니 먹어라 나의 피를 마셔라 곧 언약의 피 니라 (마 26,26-30)

〈마태복음 26,31-35 개역한글, 신약성경 46 , 찬송가 182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194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 26:31, 새번역)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 ㉨그, '나에게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슥 13:7』
(마 26:32, 새번역)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마 26:33, 새번역)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 ㉪그, '주님께 걸려 넘어질지라도' ㉫그, '걸려 넘어지지'』
(마 26:34,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마 26:35, 새번역)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어 나에게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이건 또 믄 말인가 싶어서 살펴봤다 말이죠

(마 26:31, 새번역)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 ㉨그, '나에게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슥 13:7』

(슥 13:7,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슥 13:7, 새번역) 『"칼아, 깨어 일어나서, 내 목자를 쳐라. 나와 사이가 가까운 그 사람을 쳐라.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 어린 것들을 칠 것이다.』
(막 14:27, 새번역)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모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기 때문이다. / ㉬그, '나를 버릴 것이다' ㉭슥 13:7』
(슥 13:7, 공동) 『칼아, 일어나 나의 일을 돕는다고 하는 목자를 쳐라. 만군의 야훼가 하는 말이다. 나의 목자를 쳐서 양떼를 흩뜨려라. 나 또한 손을 돌려 흩어지는 가련한 것들을 치리라.』
(슥 13:7, 쉬운) 『<목자의 죽음> “칼아, 목자를 찔러라. 내 친구인 사람을 쳐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목자를 죽여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내가 어린 것들을 심판하겠다.』
(슥 13:7, 현대인)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곧 내 짝을 쳐라.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질 것이다. 내가 내 백성을 칠 것이니』
(슥 13:7, 현대어) 『[목자없는 양 떼]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칼아, 일어나 내 목자를 찔러 죽여라! 내 곁에서 나와 똑같이 일하는 바로 그 사람을 찔러라! 양 떼가 뿔뿔이 흩어지도록 그 목자를 쳐죽여라! 내 백성을 바로 내가 무자비하게 쳐죽이겠다.'』

(슥 13:1, 개역)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슥 13:2,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슥 13:3, 개역)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슥 13:4, 개역)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슥 13:5, 개역)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슥 13:6, 개역)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슥 13:7,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바로 이 말씀 이 기록된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이다는 겁니다

(사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다 양같다 라는 겁니다 지 밖에 모른다 라는 거죠
바로 이런 죄악을 주님이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 라는 거죠
성화론자들은 유대인처럼 바로 이런 이사야 53장을 빼먹는 식입니다
고난 장이라고 얼마나 신학적으로 다루냐 말이죠 그런데 내용이 없어요

앞의 글 에스겔 36장을 살펴보며 글을 적는 내내

왜 주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떠나지 않고
생각을 당하게 되더라 말이죠

원인 있는 결과를 따지는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거든요

그런데 저 저주받는 무화과 나무야 말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특히 제자들이 자꾸 의식을 하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고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서 환전 하는 그 책상을 뒤 엎어버리고
제물로 바쳐질 짐승들을 다 쫓아내시면서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그리고 다시 성전 바깥에 나오니까 어라 진짜로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어있더라 말이죠
도저히 이게 무슨 의미인줄 몰라서 주님께 물었는데
또 주님은 동문서답 하신다 말이죠

(막 11:17, 공동)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 / ㉠이사 56:7 하반. ㉡예레 7:11.』
(사 56:7, 개역)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렘 7:11, 개역)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7:11, 새번역)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이, 너희의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곳으로 보이느냐? 여기에서 벌어진 온갖 악을 나도 똑똑히 다 보았다. 나 주의 말이다.』
(눅 19:46, 새번역)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사 56:7 ㉣렘 7:11』

(마 21:18, 현대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막11:12-14,20-24]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예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다.』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무화과 나무 저주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앞의 글 에스겔 36장에서 이스라엘을 심판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다는 겁니다
이 모욕적인 구원이 바로 7에 70번 용서이거든요

인간은 반대로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는 식으로
남을 7번 용서하겠다는 이 선악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사실은 자기 이름을 자기 구원을 위한 것이지
진짜로 남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예 모조리 텅텅 털어버리는 처음자리에 놓아서
이스라엘을 심판 속에 넣으심으로써
이미 이방인은 텅빈상태인거죠
이미 벌써 심판 속에 있었으니까
정답이 나타남으로써 이방인이 도리어 이스라엘에게 전도하듯이
너 이스라엘이 보여줘야할 기능이 바로 이방인이 도로 하는 식이 되었다는 거죠

그러니 무화과 나무를 저주해 놓고서는
믿음이 있으면 산을 바다로 옮길 것이다 라고

믿음이라는 종말을 선물 받아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신이 저 무화과 나무처럼 저주 받아 마땅함을 아는 자가
종말이라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 이다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 저주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베드로가 반응을 나타낼정도로 실제로 나타났다 말이죠

이미 정답이 떠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제 문제지를 찾으면 된다 말이죠

내가 바로 저 무화과나무처럼 저주 받아 마땅한 자 이다는 이런 자를 찾으시겠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정답이라는 예수님이 떳기에
무화과 나무는 그 정답에 맞는 문제아 곧 축복받는 나무가 아니라
저주 받은 나무로써 등장함으로써

예수님이 바로 나를 저주하시는 심판주 이십니다 의사입니다 라고 외치고 있는 입장이다는 겁니다
이 심판 주가 바로 구원의 주 이십니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다들 이 구원의 주를 말하고자 함에 있어서
자신은 심판 받는 저주 받는 무화과 나무가 되는게 아니라
축복받는 자 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정답을 찾을려고 하더라 말이죠
믿음은 이미 떳는데
정답은 이미 예수님으로써 떳는데

아무도 죄인이 안 나타나고
아무도 환자가 안 나타나고
아무도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하는 자들이 안 나타나더라 말이죠

그저 나는 정답을 찾고야 말겠다 라고 기존의 질서 기존의 진리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그거 무너지지 않는 이상 이 종말의 믿음을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믿음은 외부에서 주어짐으로써 단절성 철저한 단절

바로 이 무화과 나무의 저주처럼 철저한 저주 속에 놓여져야 하는데
그래야 그 처음자리에서 처음사랑을 누리게 되는데

우리는 처음사랑을 잊어버리니까
아니 어린아이가 자기 숙제를 하고자 부자청년처럼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다가오던가요

오히려 주님께서 어린아이에게 다가오시고
내어 쫓을려고 하는 어린아이를 붙잡아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다 라고
반드시 어른에게 쫓겨나는 그 자를
천국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창기 세리 강도는 사회에서 쫓겨나야 할 자들인 사형깜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먼저 천국 가신다 라고 하니

회당에서 성전에서 가장 먼저 쫓아내기 바쁜자를
도리어 천국에서는 가장 먼저 들어가신다 라고 하니
이런 종말의 해석을 누가 믿었으리요 ~~~~~~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

인간의 믿음만 골라 골라서 피해 가시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이미 자신을 축복이다 선함이다 라고 간주하고 전제를 깔고 있는 입장이기에
의도적으로 불편한 저주를 표현함으로써
아무도 좁은길 아무도 없는 길 아무도 초상집에 자발적으로 갈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은 종말은 한다 라는 거죠

믿음이 이렇게 불편하고 부정적인줄 미처 모르고 긍정적으로 해석한
왜? 이미 자기 구원을 깔았기에 우상을 허구를 깔았기에
그 허구를 겨냥하시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주님께서 다들 주님과 함께 한 몸 한 운명이 되겠다 라고 다가옴에 있어서
주님은 모조리 다 단절 시켜 버리고 나와 한 운명의 공동체가 되겠다고?
웃끼지 마라
나를 뺀 너희들 끼리도 하나가 되기는커녕
뿔뿔히 흩어지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목자가 없는 이상
양들끼리도 서로 서로 안 모인다 라는 거죠

오로지 약속하신 성령을 주실때만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겁니다
이 이름 거룩한 이름 말이죠
즉 심판 받은 자만 모인다 라는 겁니다

다들 아하스 왕처럼 임마누엘 곧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 이름을 무시하고 더럽히면서
도리어 자신의 깨끗한 믿음
선을 취하고 악을 버렸다 라는 그런 자기의 믿음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다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도리어 불의한 청지기처럼 나쁜놈 이렇게나 나는 악질 중에 악질
죄인 중의 괴수였구나를 까발리는 식으로써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다른 제자들 또한 나는 그 사람 모릅니다 라고
도망치고
몸으로도 보여줄 정도로
몸은 바로 증거물이거든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물
기록이 그 몸에 다 남아요 cctv 에 찍히는 것처럼 얼굴에 다 기록이 됩니다

그렇게 몸은 아이고 나 죽으면 안돼 라고 도망 치고 도망치면서
다 흩어지는

목자를 치니까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길로 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아무것도 내밀것이 없는 믿음
믿음 꼬라지 하고는 다 탈탈탈 털어버리는 믿음 보다 더 나은 종말의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각기 제 길로 흩어지도록 되어 있는

이 모욕적인 구원을

주님은 우리를 심판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되도않는 믿음 다 탈탈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리고서 산을 바다로 옮겨 빠뜨리듯이
우리를 종말속에 심판 속에 빠뜨려서
그 속에서 구원하시는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표적을 안 보여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가버나움 보세요 영화 가버나움도 참 재미있던데
기적 백날 행해도 인간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소용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행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런 예수님이 직접 베푸신 기적 마저도
자기 개인의 구원용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으로 활용해요
금송아지에 여호와 이름을 새기는 격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뭐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다 라고
진짜 종말은 도리어 아브라함 자손에서 끊어버리는 단절이 구원이 되는 겁니다
돌삐 곧 이방인을 통해서 아브라함 자손을 만드시는
그래야 단절 보다 더 더 더 단절인 내가 가장 싫어하고
더럽다 라고 공격하고 왕따 시킨 자를
왕비의 자리에 앉혔을때에
배아파 죽는 아삽의 시처럼 말이죠

(시 74:1, 현대어) 『[허물어진 성소를 슬퍼하며; 아삽의 노래]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를 영영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의 백성에게 화를 내십니까!』

막상 그 허물어진 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지식 곧 사랑을 알게 되는 겁니다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편 73부터 83까지 연달아 아삽의 시입니다
50편이 뚝 떨어져 하나가 있고요

아니 깨달았으면 그렇게 원수 갚아 달라고 하지 말아야지요
그런데 오히려 더 더 더 원수 갚아달라고 절대저주 속에 집어 넣어달라고 한다 말이죠

순서가 이상하지요 꼭 요나서 보는 것 같아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나중에 나오고 
요나가 도망치는 것은 처음 그것은 맞고
그런데 요나가 삐치는 것은 두 번째 순서가 되어야 말이 되잖아요
그런데 뒤죽박죽이 된 것은 바로 이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장면이
왜 제일 끝에 오지 않느냐 라는 겁니다
아삽의 시도 그래요
그래놓고 또 말도 안되게 뒷부분은 원인 없는 결과로 찬양 하기 바빠요
원수 갚은 장면 해결이 된 것 하나 없이 갑자기 찬양해요 글쎄

그렇게 원수 갚아 달라고 우는데 이 울음은 꼬끼오 울음이 아니라
다윗처럼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라는 오기 신념 인간의 종교성 곧 믿음이지요
그것을 다 동원하는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번제와 제사라는 행함을 주장하는 겁니다
내 열심히 특심이라고 나만 남았다 라고
요나처럼 열받아서 한 바퀴 후다닥 돌아버리는 겁니다

어 그런데 안 망해요

아니 생각해 보세요
이미 망했는데 뭘 또 망하냐 말이죠
그래도 내 눈 앞에서 망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내 눈 내 구원이 헛되지 않게
아니다 니 구원은 헛되다 라는 의미에서 안 망하게 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그런 의미에서 절대로 버리지 않겠노라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노라 라고 하듯이 말이죠


(시 74:1, 현대어) 『[허물어진 성소를 슬퍼하며; 아삽의 노래]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를 영영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의 백성에게 화를 내십니까!』

방금 제가 위에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올려놓고도 잘못 봤다 말이죠

74편 뒤에 성소에 들어가 보니 깨달았다를 검색하다가 74편이 보여서 올렸는데

어라 73편 앞에 있다 말이죠

그래서 다시 수정하면

[그렇게 원수 갚아 달라고 우는데 이 울음은 꼬끼오 울음이 아니라
다윗처럼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라는 오기 신념 인간의 종교성 곧 믿음이지요
그것을 다 동원하는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번제와 제사라는 행함을 주장하는 겁니다
내 열심히 특심이라고 나만 남았다 라고
요나처럼 열받아서 한 바퀴 후다닥 돌아버리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맞아요 원수 갚아 달라고 한 것 맞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수정하는 상황까지 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문제는 그 문제아
그 문제아가 누구냐 라는 겁니다
다윗이 원수 갚아 달라 아삽이 원수 갚아 달라를
율법이라는 정답이 떳기에 그 문제아는 그 가난한 자의 딸같이 여기는 어린양 유일한 단 한 마리 있는 자의 것을 빼앗은 부자
곧 자기 손님 곧 우상이지요 그 마귀를 대접하기 위해서 남의 양을 빼앗아 대접한
그 놈을 율법의 4배나 갚으라 라고 법대로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는 그 심뽀 대로 율법대로 실행했고
원수를 갚았다 말이죠

그래 바로 그 원수가 다윗 너 야 너

그러니 74편부터 원수는 자기자신이기에 아삽 자기이기에
그 원수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펼쳐달라고
아이고 아까전의 원수 갚아 달라는 것 그게 원수 갚아 달라고 외치는 것 맞기는 맞어
적어도 이렇게 원수 갚아 달라고 해야지 라고
제대로 원수 갚아 달라는 심판을 외치는 겁니다
누구에게
네 맞아요 자기자신에게

그리고서는 갑자기 로마서 7장 끝부분과 8장의 처음처럼
서로 모순 되게 이 간극 이 찢으심과 다시 싸매어 주심이라는
이 간극 이 사이 이 공백 이 거룩 분리 단절을 보고 기뻐하더라 말이죠

꺽으신 뼈를 보고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니 요나가 나는 이스라엘 선지자이지 니느웨의 선지자 아니다 라고 해 놓고서는
입 싹 딱고
이제는 이스라엘에게 비로소 심판을 외치는 겁니다
그 이전에 나는 이스라엘 선지자이다 어떤? 거짓선지자 이다는 겁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베풀려고 할테니 말이죠
이제는 참선지자로써 무엇을 외칩니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이스라엘 구원의 선지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심판의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무화과 나무의 저주를 외치는
종말이라는 믿음을 비로소 외치는 겁니다

안그러면 또 종교성을 외칠테니까 말이죠

맞습니다 저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곧 나의 저주입니다
뭐 율법의 네 배나 갚으라 라꼬 그래 그 범인이 바로 너다 너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마지 이사야 선지자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주는 겁니다

바로 이 싸인을 무화과 나무와 예수님은 서로 주고 받으면서
우리를 삼진 아웃 시킨 겁니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닭과 예수님이 둘이 짜고치는 고스톱에 베드로를 말려들게 해서
구원시키듯이 말이죠

이것이 앞의글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너거들끼리 서로 서로 시체 주검 취급해서 서로 서로 뜯어먹고 잡아먹는

안그래도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눈 뒤에 어머니께서 다시 물으셨다 말이죠
자식을 부모가 잡아먹고
부모를 자식이 잡아먹는 

이건 뭐 저주의 끝판왕 아닙니까
그 상황 속에 절대저주 속에 집어넣겠다 라는 에스겔 지난주 6장 말씀을 물으셨다 말이죠

(신 28:57, 개역)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삼하 12:3, 개역) 『가난한 자는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이것을 이스라엘 적군이 애워 싸니까
너희 이스라엘 너거들 이제 자식을 잡아먹을 것이다
아이고 무슨 그리 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누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라고

애워 싸고 쳐들어오지도 않고 나갈수도 없고
양식은 떨어지고 그래서 잡아먹었다 말이죠
이 내용이 저 위에 올린 구절과 다르게 역사사건 속에 있거든요
제가 구절을 못 찾아서 찾으신 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아 찾았습니다 ㅋㅋㅋ 열왕기하 6장

(왕하 6:20, 개역)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왕하 6:21, 개역)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왕하 6:22, 개역)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왕하 6:23, 개역)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왕하 6:24, 개역)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왕하 6:25, 개역)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왕하 6:26, 개역)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하 6:27, 개역)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왕하 6:28, 개역)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왕하 6:29, 개역)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하 6:30, 개역)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왕하 6:31, 개역)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왕하 7:1, 개역)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왕하 7:2, 개역)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왕하 7:3, 개역)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왕하 7:4, 개역)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왕하 7:5, 개역) 『아람 진으로 가려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왕하 7:6, 개역)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왕하 7:7, 개역)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왕하 7:8, 개역)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왕하 7:9, 개역)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그렇게 잡아 먹습니다
거 봐라 잡아먹었지 얼마나 여호와의 이름을 무시했으면 말이죠
그리고 나오라 라고 하니까 또 안나와요
하다 하다 배고프니까 어쩔수 없잖아요
에라이 이래나 저래나 죽으니까 먹고 죽자 라는 심정으로 나가게 되니까
거보세요 배가 곧 죄악이 우리를 다루지
인간은 죄악을 못 다룹니다
그렇게 되니까
이미 군대가 철수한지 오래고 그 양식들을 다 놔두고 갔다 말이죠

우는 자가 됨으로써 비로써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겁니다
자기 죄를 모르고 먹는 자는 죄악을 또 먹고 또 반복해요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린다
나는 자식 잡아 먹지 않는 부모가 되겠다 자식 잡아 먹는 일은 반드시 버리겠다
천만의 말씀

주님은 개인 안 다룹니다
집단으로 다룹니다

한 사람 잘못 하면 다 잘못한 것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율법은 죄를 겨냥하고 있거든요 우리 속의 선악을 말이죠
자기가 신이 되었기에 그 자기가 자신을 섬기는 것을 율법은 겨냥한 겁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첫계명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겁니다
너는 너를 섬기지 마입니다.

그리고 딱 한 사람 잘하면 모든 사람 다 잘한 것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말씀은 그 무너진 예루살렘 곧 우상 파괴에서 나오거든요
우상 문제 해결 못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자기로부터 포로된 자를 해방케 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무조건 축복 받은 자가 바로 야곱의 부서진 허리에서 나오듯이 말이죠
천하의 사기꾼의 허리에서 말이죠

이 모순된 간극을 벌려서 그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나오거든요

천하의 일급 살인자 다윗과 꺽으신 뼈 사이에서
새언약이 나오는 겁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와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신 예수님 사이에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나오듯이 말이죠

이런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시는 겁니다
다윗이 결국은 자식을 잡아먹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겁니다

뭐~~~~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려도 나는 절대로 안 버릴겁니다
그래 너 그렇게 말한 너가 제일 먼저 나를 그것도 세 번이나 꽝꽝꽝 부인 할 것이다
확정적인 발뺌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겠다
율법 네 배나 갚으라 웃끼지마 그놈이 바로 너야 너

캬 주님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붙입니다

이게 요나의 표적이다 말이죠
더 이상 수치를 가릴 것이 없도록 말이죠

그래야 외부에서 가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잖아요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늘 가리우기 바빠요
모든 행함이 그래서 다 거짓이다는 겁니다
불 붙이면 다 홀라당 날라가요

불에 타지 않는 옷을 주님이 직접 피 흘려서 가려줘야 하기에
자기가 스스로 가리운 것을 다 태우시고 
다 탈탈탈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흩어집시다 말이죠
남들은 다 버려도 나는 절대로 안 버리겠습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흩어지지 않을꼬예요~~~~~~~~
놓치지 않을 꼬 예 요~~~~~~~~

아무리 특급상품이든 뭐든 다 흩어버리시는 겁니다
단절 중의 단절입니다

심판 중의 심판입니다

오로지 주님의 찾아오심
섬기심 외에는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기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 외에는 없도록 말이죠
이 모욕적인 구원을 밀어 붙이시는 겁니다

이 모욕적인 상처인 십자가라는 흔적이

(슥 13:6, 개역)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슥 13:7,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슥 13:1,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샘 하나가 터져서,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 줄 것이다.』
(슥 13:2, 새번역) 『그 날이 오면, 내가 이 땅에서 우상의 이름을 지워서, 아무도,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나는 또 예언자들과 더러운 영을 이 땅에서 없애겠다.』
(슥 13:3, 새번역) 『그런데도 누가 예언을 하겠다고 고집하면, 그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자식에게 말하기를 '네가 주님의 이름을 팔아서 거짓말을 하였으니, 너는 살지 못한다' 한 다음에, 그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예언하는 그 자리에서 그 아들을 찔러 죽일 것이다.』
(슥 13:4,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어느 예언자라도, 자기가 예언자 행세를 하거나 계시를 본 것을 자랑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예언자처럼 보이려고 걸치는, 그 거친 털옷도 걸치지 않을 것이다.』
(슥 13:5, 새번역) 『그러고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나는 농부다. 젊어서부터 남의 머슴살이를 해왔다' 할 것이다.』
(슥 13:6, 새번역) 『어떤 사람이 그에게 '가슴이 온통 상처투성이인데, 어찌 된 일이오?' 하고 물으면, 그는 '친구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슥 13:7, 새번역) 『"칼아, 깨어 일어나서, 내 목자를 쳐라. 나와 사이가 가까운 그 사람을 쳐라.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 어린 것들을 칠 것이다.』


이 상처입은 목자는
그 상처가 어디서 왔는고 하니
바로 친구의 집이다 말이죠

이웃이라는 자가 죽였고 고아 과부 나그네를 말이죠
백성이라는 자가 죽였고 임금을 말이죠
부모라는 자가 죽였고 자식을 말이죠 다윗 말이죠 다윗
자식이라는 자가 부모를 죽였고

(슥 13:6, 공동) 『누가 '네 가슴의 상처는 웬 것이냐?' 하고 물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대답하리라.』

사랑한다는 자가 입술로는 찬양하나 마음으로는 저주하더라 말이죠
바로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제자들
더더욱 사랑하겠노라 끝까지 따라가겠노라 라던 베드로 말이죠

바로 이런 요나의 흔적을 가지고서

주님은 너끈히 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는 

그 증거물이 바로
음부의 권세 속에서 끄집어낸 베드로 이다는 겁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써의 다 이루셨다
넉넉히 이겼다 라는 주님의 승리물
전리품의 증거물입니다

새노래를 배운적도 없고 가르쳐주는 자도 없이
원인 없이 찬양하도록 태어난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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