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1 예수님의 마음(종말)과 베드로의 행동(검으로 출발과 끝남) (마 26,51-54)

예수님의 마음(종말)과 가룟유다의 행동 (마 26,46-50)
마태복음 2018 2021. 6. 27. 09:05
18-140 예수님의 마음(종말)과 가룟유다의 행동 (마 26,46-50)

〈마태복음 26,51-54 개역한글, 신약성경 47쪽, 찬송가 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찬송가 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1.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아니요 
   마귀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2. 우리들의 입은 갑옷 쇠가 아니요 우리들의 가진 검은 강철 아니요 
   하나님께 받아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3. 악한 마귀 제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 예수 앞서 가시니 
   두려말고 용기있게 힘써 싸우세 최후승리 얻을 때까지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4. 죄악 중에 빠진 사람 죄를 뉘우쳐 십자가에 달린 예수 믿기만하면 
   위태한데 빠진 영혼 구원얻어서 천국백성 될 것임일세
   일심으로써 힘써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마태복음 26,51-54 개역한글, 신약성경 47쪽〉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 26:51, 새번역) 『그 때에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뻗쳐 자기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랐다.』
(마 26:52, 새번역)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 26:53, 새번역) 『너희는, 내가 나의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시기를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마 26:54, 새번역)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앞의 글 에스겔 37장 마른뼈 내용에서
그 어떤
인간으로부터의 출발을 거부한 것을 말하는 것이 마른뼈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죽은자 이다는 거죠

즉 상대적으로
나는 살아 있다에서 출발하는 것을 주님은 거부한다는 거죠

주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것은 모두다 다 거부대상입니다
오로지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믿음이지

다른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다 행함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를 종말이다 라고 하고

원인 있는 결과를 행함이다 라고 했지요
그럼 원인 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은 결국
그 원인이 누구 입니까

없는 자아 곧 우상 아닙니까
자아 아닙니까
자아에서 출발하면 자아에게로 귀결 됩니다 결과가 자아가 된다는 거죠

고로 칼로 출발하는 자는 칼로 망하듯이
자아로 출발하는 자는 없는 자아. 우상으로 
이미 우상이란 망한 죽은자의 하나님이다는 거죠

그럼 산자의 하나님은 뭡니까

이 절대저주 속에서 나온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아들을 잡아먹게 되는 절대저주 속에서
이 사망권세를 깨뜨리는 것이
죽음 속에서 나온 것이 진짜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육에서 나온 믿음은 가짜이고 죽은 겁니다
육에서 나오지 않고
처음아담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진짜 살아 있는
마지막 아담에게서 출발한 것이
살려주는 영이다 말이죠

즉 처음아담에게서 난 자들은 모조리 다 검을 쥐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검으로 출발해서 검으로 끝나는 겁니다
몽둥이를 그래서 모든 인간이 쥐고 싶어해요 글쎄
파리채를 잡아서 책상을 치듯이 말이죠

그러나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기에
검이라는 살인무기를 쥘 필요가 없어요
인간이 율법을 지킨 후에는 
그 지킨 자아가 졸지에 살인 무기가 되어버립니다
너는 더럽고 악이고
나는 깨끗하고 선이고
그러니 선악은
법은 무기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저 사람과 나를 갈라놓는 것이지
합치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아니 마지막 아담이 이런 검 이라는 칼이라는 살인무기를 없애려고 왔는데
베드로는 졸지에 없앨려고 하는 칼을
몽둥이를 도리어 부러워하듯이 잡아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을 지킬수 있는 나의 선함은 결국 칼 밖에 쥘 것이 없다 라는

이 마귀가 바라보는 시체에 대한 시선을

주님은 베드로를 탈탈탈 털어서라도
그 검을 손 놓도록

인간 자아에게서 출발한 믿음이 살인무기라는 것을

이런 무기를 평준화 고갱이로 만들 재간이 베드로에게는 없거든요
인간에게서 출발한 믿음은 칼과 방패를 고갱이로 만들 재간이 없어요

인간의 믿음은 도리어 살인무기일 뿐입니다
성화론자들 보세요 눈에서 레이져가 막 발사가 되어서
또 누구를 죽이고자 레이져를 마구 마구 쏘아대는지

저 세리 매국노와 같이 토색하지 않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 하다고
하나님까지 끌어들여서 그 살인의지를 정당화 하는 겁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에서 다 들통났어요
하나님의 저주를 하나님이 퍼붓도록 내버려두지 않아요
반드시 자기가 그 하나님의 저주를 자기자신도 아닌
남에게 반드시 퍼붓도록 되어 있는 것이
최종적인 인간의 믿음이다는 겁니다
지독한 자기 사랑인 거죠
자기 라는 자아가 없거든요
우상이거든요
지독한 우상 사랑이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서 지독하게 지독하게 말이죠

이런 것을 지적 받는 자가 베드로입니다
가룟유다는 지적도 받지도 않고
혼자 자기가 알아서 자기를 심판해 버려요
얼마나 건방집니까 하나님에게 심판권 조차도 안 줘요

자기가 졸지에 심판주가 되어버렸어요
왜? 선악을 아니까
선악을 아니까 하나님과 같이 된 거죠
그것이 결국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칼을 몽둥이를 쥔 하나님을 부러워 하다가
그 가짜 하나님인 자기로부터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이것이 인간이 외치는 자유의지 라는 강요된 선택이다 말이죠
선택권이 있으면 자유로운줄 착각하는데
이미 그물망 안데서 자유로운 선택을 해 본들
강요된 선택일 뿐이다는 거죠

타인의 욕망대로 갈 뿐인
마귀의 시선대로 갈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칼을 놓아버리고
도리어 그 칼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으로써
믿음을 출발 하시는 겁니다
죽은 하나님으로 말이죠
이것이 진짜 하나님 이다 말이죠

칼을 보습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죠
몽둥이를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리어 존재를 기능으로 만드는
살리는 영으로 만드는

주님도 번제와 제사를 따지지 않는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거든요

(사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욜 3:10, 개역)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미 4:3, 개역)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칼을 쥔다는 것은
결국 의문의 반복이 되어서
마침이 없게 되는 거다 말이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영적인 전쟁을 하시는건데
그래서 마른 뼈로 하나님의 군대를 만드시는데

졸지에 전쟁을 하기 위해서
마른 뼈가 아닌
회개하는자
상하고 통회하는 자
우는 자가 아닌

의인이다고 건강한 자이다고 하는 자들은
전쟁을 끝내는게 아니라
칼을 계속해서 쥐어서
끝이 없는
마침이 없는 그 의문의 반복을 계속하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왜?
칼과 총을 쳐서 보습 곡갱이로 만들 재간이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거든요
존재는 오히려 칼과 총이 아니면 자기를 지킬수가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에게서 출발하는 믿음이고

예수님은 죽음 속에서 출발하셔서 나오신 하나님이시기에
전쟁을 종식 시킬 믿음을 펼치시는데 있어서
총과 칼을 보습으로 만드시는
즉 총과 칼을 손 놓아버리시는 겁니다

미쿡 보세요 총으로 돈 벌어 흥한 나라
총으로 이미 벌써 망한 나라이다 말이죠

트럼프가 얼마나 할 짓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잖아요
장사꾼이 되다 보니 할 짓이 겨우 무기 파는 것 밖에 없어요
공포와 두려움만이 총을 사도록
칼을 쥐도록 하는 겁니다

사랑은 칼을 쥘 이유도 없고
그 칼에 부정의 부정으로써
칼을 쳐서 곡갱이로 만드는 기능이 있다 말이죠

오늘날 교회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
전세계의 교회는 돈에 미쳐버리다 보니
이런 기능을 도리어 거꾸로 하고 있어요
총 팔기 바빠요
특히 성화론자들 보세요
칼을 쥐어라고 막 가르쳐요
성화가 남을 죽이는 칼이다 라고
니체를 욕하면서 니체 짖만 골라서 해요
자기를 지킬수 있는 유일한 것은 칼이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차라리 여고냐 아동 18세처럼
포로 잡혀 가라 말이죠

왜? 포로 잡혀 가야
그 황폐한 남의 나라의 포로됨 속에서
몽둥이가 교만해서 멸망당하는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래야 증인이 될 것 아니냐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놈은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라는 놈은
이런 주님의 계획은 본 것이 없으니까
증거 할게 없어요 글쎄

자 그렇듯 간단 합니다
베드로 개인에게서 출발한 믿음은
결국 칼을 쥐는 겁니다

자기를 지킬수 있는 것은 칼 밖에 없거든요
타인이 칼을 쥐었으니
칼을 쥐어야 유지가 되고
그 유지선이 무너졌을때에는
칼 만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말이죠

아니 남들이 죽일려고 달려드는데 칼을 안 쥐는 인간 있느냐 말이죠
왜 젊은이들이 입영통지서를 받고 총쏘는 훈련을 왜 받냐 말이죠
탱크 몰고 또 장갑차에 타서 박격포 날리는 훈련을 왜 수도 없이 왜 받냐 말이죠

적군이 죽일려고 달려드니까 말이죠

안 죽을려면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할려면 어쩔수 없이 받아야 하는 겁니다

칼을 손 놓자 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요
예수님의 겟세마네 최후의 기도처럼
아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라는
나는 살고 싶습니다 라는 자기의 뜻을 손 내려 놓는 거다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 흉내 내겠다 라고
여호와 증인처럼 총 잡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과연 살인의지가 없냐 말이죠
그것 또한 남을 살인하는 짖이거든요

안식일 지킨다는 놈들이 얼마나 살인자들이더냐 말이죠
성화론을 지킨다는 놈들이 얼마나 살기가 넘쳐나지 않더냐 말이죠

총 안잡겠다 라고 할게 아니라
총 잡으세요
그리고 지적을 받는 것이 오늘 본문의 취지입니다

아 주님의 나라는 총을 잡아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구나
임시 땡빵 밖에 안되요
인간의 믿음이 겨우 남 7번 용서로 임시 땡빵한다고 해서
함량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뭘 해도 가짜 이다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자 그래서 예수님이 해결해 달라고 해야 할 판국이고
우리 숙제가 아니라
주님이 어떻게 이 숙제를 다 완료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지
또 어떤 사람은 아 그럼 선물 받은 자는 다시는 총과 칼을 쥐지 않겠네요
자기 생존을 위해서 살지 않겠네요
천만의 말씀
돈 사랑에 더 미쳐 버릴수도 있어요

그런 선악의 조건을 존재에게 아예 바랄 필요가 없는
기대할 가치를 두지 마시고
그냥 사시고

주님이 이 의미를 어떻게 나에게 펼치시는지
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베드로가 그 주님의 숙제를 당함으로써
베드로는 이제 지적을 받으면서
아 주님이 이런 새 일을 밀어붙이시고자 하시는구나

나 베드로 속에서 펼치셔서
나는 그 일에 증인으로 삼으셨구나
그냥 외치면 되는 겁니다

주님이 이런 일들을 나에게 펼치셨다 라고

내가 지키냐 안 지키냐 라는 문제를 넘어서버린

이미 결과가 덮쳐졌기에
아니 외칠수가 없는
이미 떠 버린
이미 완성해 버린 그 증상물로써
나를 도구로 삼으시는 겁니다 스피커로 말이죠

앞의 글 마른 뼈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이스라엘 이라는
하나님이 죽음속에서 하나님 되심이라는 계획을
믿음을 다 이루셔서 등장했기에
그 증상물로써 마른뼈가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믿음으로 출발한 것에서는
나올수 없는 개념인 거죠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에서 나온 증상물이요
그 결과의 원인 없는
정답의 문제지로 문제아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럼 베드로는 자기의 뜻이 거부 당함을 느껴야 하고
왜 이것이 거부당해야 하는 그 과정을 거침으로 인해서

주님의 뜻
곧 칼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시는 일에
나는 늘 방해꺼리 밖에 안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지적하시고자 이런 일들을 펼치심으로써
그 증상물로써 증인 삼았다는 것에

기뻐하도록 되어 있는 베드로였다는 겁니다
베드로를 베드로 지가 만드는게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스앵님에게 달린 일로써
전적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이라는 주에게
주인에게 베드로를 맡겨버린 겁니다

이 주께서 내 주께만이

뭘 해도 다 예가 되고
아니오 함이 없도록 하시는
믿음으로 기쁘시게 하시는 겁니다
종말이 아니면
미래에서 쳐들어온 사랑
약속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기에 말이죠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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