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5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한 자의 최후 (마 27, 1-10)

베드로를 위해 우는 닭의 울음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마 26,69-75)
마태복음 2018 2021. 8. 1. 09:42
18-144 베드로를 위해 우는 닭의 울음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마 26,69-75)

〈마태복음 27, 1-10 개역한글, 신약성경 49쪽, 찬송가 195장 이 세상의 모든 죄를〉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마 27:1, 새번역) 『새벽이 되어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모두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마 27:2, 새번역) 『그들은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마 27:3, 새번역) 『그 때에, 예수를 넘겨준 유다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쳐, 그 은돈 서른 닢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고,』
(마 27:4, 새번역) 『말하였다. "내가 ㉠죄 없는 피를 팔아 넘김으로 죄를 지었소."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그대의 문제요" 하고 말하였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의로운 피'』
(마 27:5, 새번역)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마 27:6, 새번역) 『대제사장들은 그 은돈을 거두고 말하였다. "이것은 피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으면 안 되오."』
(마 27:7, 새번역) 『그들은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마 27:8, 새번역)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한다.』
(마 27:9, 새번역)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은돈 서른 닢, 곧 이스라엘 자손이 값을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서, / ㉡사본에 따라 '스가랴' 또는 '이사야' ㉢슥 11:12;13; 렘 19:1-13; 32:6-9』
(마 27:10, 새번역) 『그것을 주고 토기장이의 밭을 샀으니, 주님께서 내게 지시하신 그대로다."』

(슥 11:12, 개역)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슥 11:13,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가룟유다가 스스로 뉘우쳤다 라고 했습니다

사적인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것이
자신을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것이 졸지에

(마 27:3, 공동) 『그 때에 배반자 유다는 예수께서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뉘우쳤다. 그래서 은전 서른 닢을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며』
(마 27:3, 쉬운)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예수님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을 보고,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마 27:3, 현대어) 『[유다의 죽음;행1:18-19] 그때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예수께서 사형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 깊이 뉘우쳤다. 그래서 그 은전 서른 닢을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돌려주며』

예수님이 유죄 판결로 까지 확대되는 것을 보고서
스스로 뉘우쳐서 은 30냥 받은 것을
받은 자 곧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말이죠

왜 스스로 뉘우쳤는고 하니
단순히 개인적인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것이 졸지에
예수님의 사형선고로 까지 이어질줄 몰랐다 말이죠
그럼 선을 취한 것이 아니라 선을 버렸고
악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악을 취한 결과가 되어버렸으니까

스스로 뉘우치고 돈을 얼른 도로 갖다 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그런 가룟유다의 개인 사정을 안 봐줍니다
그건 니 사정이고 ~~~ 라고

그 돈은 우리들과 무관한 일이니 니가 알아서 해라 라고 합니다

(마 27:4, 공동) 『"내가 죄없는 사람을 배반하여 그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나는 죄인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마 27:4, 쉬운) 『유다가 말했습니다. “내가 죄없는 피를 팔아 넘기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너의 문제다.”』

선악이라는 것이 매매 할때는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우리가 남이가 라고 했다가
막상 문제꺼리가 생기면 그건 니 사정이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나를 옳게 여기는 것은 취하고
나를 나쁘게 여기게 하는 것은 버리겠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서로 이용해 먹다가

아차 발을 헛 디뎠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리도록 되어 있기에

바로 그 선악의 한계를 어서 어서 빨리 당하라 라고
율법이 개입하더라 라는 거죠

곧 완벽한 절대저주 절대심판이 개입하는 겁니다

물론 개입하지 않는 자는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선악에 의한 실수로 인해서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날 때부터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이구나 라고

자기 따나 가지고 온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킨 것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이 모든 것이

율법 앞에서 완벽한 심판 앞에서 택도 없는 함량미달이였다 라는 것을
율법이 알려주는데

이런 율법의 개입이 없이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는, 저 개같은 이방인처럼
이 우상숭배를 지적을 못 받으니까
선악을 지적을 못 받으니까

여전히 그 의문의 선악으로
나는 끝까지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그 악이 되어버린 자기자신을 버리고 즉 자살하고
그 악에 놀아난 놈들과 함께 자폭을 하겠다 라고

뭐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그래 상관 있다 라고
벤또 도시락 폭탄을 던지듯이

거룩한 성소에 예수님을 판 돈을 던지고 자살을 합니다
끝까지 독립군 행세를 하더라 말이죠

니 벤또 니까묵으라 라고 도시락 폭탄을 던지면서 말이죠

그러면 저들은 나와 상관없는데 왜 도시락 던지노 라고
그 돈을 성전 헌금함에서 빼내면서
이 피 값을 성전 금고에 넣으면 안된다 라고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아서 가룟유다를 뭍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얼른 얼른 그 시체를 그 부정한 시체를
성전과 거룩한 성전과 무관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성전 금고에서 꺼낸 돈으로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아라 라고 했으니까

이것을 덮을려면 말이죠
얼른 얼른 시체를 자살한 시체를 묻어버려서
자신들의 죄악 또한 감추어야 하니까 말이죠

그러니 가룟유다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나
서로 서로가 자기들의 죄악을 스스로 덮기에 바빠요

이것이 선악이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는 남녀노소 어린아이부터 힘없는 여자나 노인들
곧 죽는 노인들까지 모조리 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그 함성은

이 국가적인 위기
성전을 헐겠다 라는 그 범죄에 맞서 싸우는
그 악에 맞써 싸우는
독립투사의 정신으로써 자기들의 구원을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자기의 죄악을 수치를 스스로 가리우고자 하는 그 의로움 그 선악 그 열심으로 인해서 
똘똘똘 뭉친 한 마음 한 뜻으로써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사탄의 깊은 것을 들추는 것이 율법의 개입이다는 거죠

이것이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나라 우상숭배자들이다는 겁니다

지지난 주에 베드로가 바로 이런 우상숭배로 가득차 있었다 라는 거죠
우상의 자리가 되어버린 예루살렘처럼 말이죠 (에스겔 지지난 주 8장처럼)

바로 이런 선악을 아는 우리와 과연 이 가룟유다의 자살이 
대제사장과 장로들 말 처럼 무관 할까요?

선악을 모르면 또 몰라

무관하겠냐 말이죠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일에 매일 매일 눈만 뜨면 열심인 인간이 과연 무관하겠냐 말이죠
자기자신이 우상이 되어버린 이상 말이죠

이런 선악을 포기하도록 자기부인 하도록 만드는 것이 율법의 개입입니다
죄 아래 가두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는 놈들은 더 자아라는 우상숭배에 더 열심으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거죠

하나님과 우상까지 섞어버렸으니까 우상이 그들에게는 곧 하나님이 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예수님들이 그들에게는 우상이 되는 겁니다

종교성이 강한 중고등 아동들에게는
우상이 되는 아이돌이 자신들의 기쁨이 되니까
어쩔수 없는 거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들이 해소를 하니까 말이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까지도
아직도 너훈아에게 믿습니다 라고 할 정도면

애들도 아니고 말이죠

너훈이도 팬을 이용해서 상호인정 상호기만을 펼친다 아입니까
너훈아만 그런가요 팬들도 너 땜에 스트레스 푼다 라고 앱따 복돈 받아라 라고 하지요

죽을때까지도 이런 우상숭배 중독 곧 자아중독에서 인간은 못 벗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이 개입해서 고맙게도 박살을 내는 겁니다

예수 마저도 우상으로 자기배를 위하여 섬기는 그 꼬라지를 못 고치니까
주님이 직접 나서시는 겁니다 낯설기 짝이 없는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나를 망하게 하시는 주님으로
주님 자신이 직접 계시를 하시면서
자아를 죽이시는 도플갱어로 인간으로 오시는 겁니다

뭐 율법을 지켜서 자아중독에서 벗어나겠다구요?
어딜 더러운 손으로 율법을 만지냐 말이죠

그런 속임수에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그 꼬임에 넘어가겠냐 말이죠
누가 속아 넘어가겠냐 말이죠

즉 이 말은 그 동안 속아 넘어갔고 그 속임수로 서로 서로 이용해 먹었다 라는 겁니다
가룟유다와 대제사장 장로의 패거리 관계가 그러했다 라는 거지요

가룟유다가 승자독식에 의해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잡혀버림으로 인해서
자신이 펼친 자아의 생각들이 이제는 더 이상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무관하게 되었다 라고
저들의 방법 곧 선악이지요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자기들 끼리도 가룟유다가 이제 더 이상 선이 아닌 유익이 아닌
해로운 방해꺼리가 되는 악이 되니까 악을 버리는 식으로써 
이제 가룟유다와는 무관하게 되어버린 승자독식이 되니까

연결 고리를 땅에 파 묻는 겁니다

그 돈도 피가 묻은 돈이라고 손 씻는 빌라도처럼
나와 무관하다 라고 말이죠

네 맞아요 그렇지요 지지난 주에
베드로가 너 갈릴리 예수 친구이지
너 나사렛 예수 친구 이지
너 예수당이지 말투도 똑같네

아니야 나 저 사람 모른다 나와 무관하다 라고 합니다

이게 선악입니다

이용해 먹을때는 선으로 취급했다가
불리할때는 악으로 버리는 겁니다

그 기준이 그 선악의 기준이 말씀? 웃끼는 소리죠
곧 자기자신입니다
없는 자아
없는 허상 허구
곧 우상 
자아 라는 우상이다 말이죠

나 저 사람 모른다 나와 상관없다 무관하다 라고 하잖아요

가룟유다와 대제사장 장로들
언제는 마음이 같다고 해 놓고서는
자기 분리한 상황에 쳐해져 버리니까

무관하다 라고 합니다

바로 주님은 이 무관하다는 뽑아내시는 겁니다

마귀가 시체 만들기 전에 무관하다 라고 만들어 버리기 전에
주님 쪽에서 우리는 시체 만드셔서

내 쪽에서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과 무관한
나 만의 완악한 수건 벗지 않기 라는 자기 의를 쌓고
자기부인을 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늘 율법을 더 더 더 강화하듯이
율법 지키기의 달인들인 바리새인에게 율법을 이야기 하시는 것은

율법 지킨 것을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수치를 어떻게 가려주시는가를 보라 곧 자기부인을 회개를
어떻게 주님께서 나에게서 받아내시는가
주여 살려주세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성령으로 인한 고백을 어떻게 받아내시는가를 보게 하시는 데 있어서

아무도 잃어버린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주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주의 이름도 모르는데 부르신 바 되고
주의 이름도 모르는데 찾으신 바 되도록

율법의 완성으로써 그들을 사랑하실때에
그들을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서
수치를 가려주실때에

정작 율법을 지킨 달인들이
격동을 하면서 견디질 못하는
바로 그 악한 세대로써 이 요나의 표적에 반발하는 자로써 등장하더라 말이죠

바로 이 십자가와 이 요나의 표적과 무관하다 라고 말할 수 있겠냐 말이죠

인간의 모든 활동 자체가 이 요나의 표적과 다 연관되어 있거든요

이미 가룟유다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무엇 때문에 합심 했냐 말이죠

더 이상 이용해 먹을 꺼리 없고
단물 빨아 먹고 버릴때에도

무엇과 다 연관이 되어 있는 겁니까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은
반드시 그 차이로써 등장하는 요나의 표적과 연관 되어서 나타나거든요

누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구하지
잔칫집을 구하지

누가 요나의 표적을 구하냐 말이죠 초상집을 구하냐 말이죠

그런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구한 자는 이미 망한 자 이고
요나의 표적을 구하는 자가 망한 자 같아 보이나 산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산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요
수태치 못한 죽은태 같으나 하늘에서 자식이 많은 자 이다는 겁니다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자 이렇듯 가룟유다의 자살이 대제사장과 장로들 말 마따나
우리와 무관하다 라고 할수 있느냐 라는 겁니다

아무도 그의 수치를 가려줄자가 없으면 누구나다 다 자살 합니다

아무도 신원해 줄 자가 없으면 말이죠

지금 현재 현대에도 2천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한국이 청소년 자살율이 세계에서 1위 입니까
아무도 변호를 해주지 않고
아무도 수치를 가려주지 않거든요

그 많은 교회도 돈 벌기 바쁘지 누가 돈 안되는 청소년을 변호해 주겠습니까
등쳐먹기 바빠요 교회는 말이죠

대제사장과 장로들처럼 말이죠
교회를 성전을 대표하는 성전종사자 아닙니까

바로 이런 음녀들이 돈 있으면 등에 올라타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짐승 이라는 국가 이거든요

총알 독립자금이 있어야 정치를 할꺼 아니냐 말이죠

자 이렇듯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선악을 따먹은 인간은 무조건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나는 잘 살아야 한다
구원문제도 이 선악문제로써 작용하고
천국 문제 
부자
성공이라는 남자들의 정신병 강박증
여자들의 사랑받는 아내 라는
나는 천한 여자가 되면 안되고 주모가 되어야 한다 안주인이 되어야 한다 라는
이 히스테리 등등 이 모든 정신병 조차도

모조리 다 선악이라는 수치를 자기 스스로 가리우는 이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

주님은 그런 잔칫집이 아닌 기적의 집이 아닌
저주의 집 초상집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시면서

이 가룟유다의 자살이 너희와 무관하지 않다 라고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라는 이 선악과의 차이로써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 차이로 증거하시는 겁니다

아니 오늘날 이 바쁘고 바쁜 현대 사회에
인공지능 시대
4차 혁명시대에
그리고서는 모순되게 마지노선이 10년 더 앞당겨졌다 말이죠

머리로는 인공지능처럼 만능이 다 되어가는데
몸으로는 이 지구가 안 따라와 주는 겁니다

머리로는 호모 데우스 신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육체로는 몸으로는 죽는 몸이 더 또렷해 지더라 말이죠
지구가 병들어 다 죽게 되었는 판국에
무슨 놈의 기적이냐 말이죠

현실이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라는 절대저주 절대심판 밖에 없는데 말이죠

가룟유다가 그런 상황에 쳐해 버리니까
나와는 무관하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무관하다 라고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고자 피 값을 성전금고에 둘수 없으니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그 시체를 파 묻어서
나그네의 무덤
떠돌이의 무덤 이라고 하자 라고 한 것이

이미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더라 말이죠
무관하기는커녕 도리어 더 더 더 연관이 되어버린 겁니다

부정의 부정인 거죠

디아더스 식스센스의 반전이다 말이죠
악마를 피하고 피하고 피하다 보니 자기가 악마였다는 겁니다
귀신

선을 취하겠다
기적을 구하겠다
구원을 구한다 라는 자체가 이미
귀신이다는 증거입니다
악한 세대 이다는 증거죠

누가 심판을 구하냐 말이죠

지금 가룟유다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서로 심판을 구합니까?
아니면 서로가 선악을 구하고 있습니까?

바로 다음글 에스겔 8장의 70인의 장로가 바로 우상을 그림 그리는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지 않으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수치를 가리우고자
우상을 그림 그리듯이 우상으로 선악으로 자신을 가리우더라 라는 겁니다

(겔 8:12, 공동)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가문의 장로들이 따로따로 신상을 그려놓은 컴컴한 방에서 하고 있는 짓들을 보았느냐? 저들은 내가 이미 저희를 돌보지 않고 이미 이 땅을 버렸다고들 생각하고 있다."』
(겔 8:12, 쉬운)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 어두운 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았느냐? 그들이 각각 자기가 섬기는 우상의 방에 있는 것을 보았느냐? 그들이 뭐라고 말하더냐?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으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하지 않더냐?”』
(겔 8:12, 킹흠정)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집 원로들이 어두운 곳에서 저마다 자기 형상을 둔 방들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신다. 주께서 그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겔 8:12, 한글킹) 『그때 그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집의 노인들이 어두운 곳, 각기 자기 형상의 방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았느냐?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는 우리를 보지 않으시며 주께서는 땅을 버리셨다 하는도다." 하시더라.』
(겔 8:12, 현대인) 『그러자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각자 우상의 방 어두운 데서 행하는 일을 보았느냐?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않으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하고 말한다.'』
(겔 8:12, 현대어)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것들이 저 은밀한 곳에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저들은 각자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애원을 하고 있다. '여호와가 여기까지 들여다보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벌써 이 나라를 버리셨습니다.'』
(겔 8:12, 가톨릭)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의 원로들이 어둠 속에서, 저마다 우상들을 새겨 놓은 방에서 저지르는 짓들을 보았느냐? 그러면서 저들은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시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이 땅을 버리셨다.' 하고 말한다."』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이사야 47 팔

(사 47:7, 새번역) 『㉢너는 언제까지나 네가 여왕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믿고, 이런 일들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않았으며,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또는 '너는 네가 권좌의 여왕으로'』
(사 47:8, 새번역) 『그러나, 방탕한 여인아, 이제 너는 이 말을 들어 보아라. 네가 평안히 앉아서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나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였지만,』

(사 47:7, 공동) 『'언제까지나 내가 여왕이다.' 하고 흥얼거리다 보니, 이런 일은 염두에도 두지 아니하였고 너의 장래를 걱정하지도 않았었지.』
(사 47:8, 공동)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마음놓고 향략을 누리는 여인아, 너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내가 과부 신세가 되다니, 내가 자식을 여의다니, 어림도 없다.'고 했었지.』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아니 누가 자신의 종말을 구하는 자 있겠습니까

가룟유다가 자신의 종말을 구하지 않고
늘 하나님나라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구원의 날을 구하다 보니
자신의 종말이 이럴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아니 자살할려고 태어나는 사람 있던가요?

타인으로부터 죽임 당하는 그런 종말도 안 구하는 판국인데
교통 사고 당하거나
재수 없게 하수구에 빠져 죽거나 말이죠
이런 것도 피하는 판국에

말도 안되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그런 종말을 누가 구하겠냐 말이죠

누가 스스로 초상집에 가냐 말이죠

왜 율법을 못 지키면 세 배나 저주인가? 
고끼오 꼬기오 꼬끼오 
제 삼일 만에
왜 한때 두때 반때 인가

그 [저주 중에 저주] 속에, [절대심판 중의 절대심판] 속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 자식이 부모를 잡아먹고
부모가 자식을 잡아 먹는 것이 나옵니다
레위기에도 신명기에도


(신 28:53, 개역)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신 28:54, 개역)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신 28:55, 개역)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신 28:56, 개역)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신 28:57, 개역)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레 26:29, 개역)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렘 19:9, 개역)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애 4:10, 개역)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왕하 6:26, 개역)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하 6:27, 개역)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왕하 6:28, 개역)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왕하 6:29, 개역)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하 6:30, 개역)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왕하 6:31, 개역)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자 이것은 약과입니다
문자적인 단어로 표현되었구요
의미상으로는
바리새인 보세요 율법을 지킨 것이 가난한 자 곧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치 않고
등쳐먹고 잡아먹는 식인의 모습이였다 말이죠

특히 십자가 사건 보세요
하나님을 잡아먹어요 글쎄 아버지를 잡아 먹어요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다는 겁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잡아먹어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잖아요

율법이 가입된 것은 바로 이런 실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시는 겁니다
죄 아래 가두시는 겁니다

다윗 보세요 이름 없는 꺽으신 뼈 솔로몬의 형
잡아먹잖아요
더군다나 자기 죄를 가릴려고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하잖아요
최선을 다했다 라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들의 선악의 법칙을 지키는 최선을 다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가리우고 있다 말이죠

자 안 그러는 인간 있습니까?
자식 안 잡아먹는 부모 어디 있으며? 정인이 사건이 남의 사건이냐 말이죠

부모 안 잡아먹는 자식이 어디 있냐 말이죠 하나님도 죽이고 예수님도 잡아 먹는 판국에

부요케도 마옵시고 왜? 교만해 질까봐
가난케도 마옵시고 왜? 도둑질 할까봐

중간치? 중간치 라는 말이 없어요
이래도 저래도 나는 뭘 해도 죄 아래 갇혔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 예요
이 율법이 없으면 저 개같은 이방인처럼
부모 잡아 먹고, 자식잡아 먹는, 뭘 해도 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밖에 모른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율법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미리 매 맞는 겁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기에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자기 스스로 수치를 죄악을 가리우는게 아니라
주님이 제대로 된 가죽옷으로
헐거운 무화과 나무로
돼지 삼 형제와 늑대 동화처럼
반석 위에 짖는 집으로써
늑대가 후 불어도 날라가지 않는
미쁘심
믿음직 스럽도 든든한 바위 같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되도 않는 우리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으로 우리의 죄악을 가려달라고
율법의 완성으로
사랑으로 와 달라고 
제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이죠

이것 때문에 모세는 1300년 만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주여 죽어주세요
하고
휙 사라져 버렸고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은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들이 화를 내면서 분노를 펼쳐도
아랑곳 없이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면서 예수님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부요해도 죄 뿐이고 가난해도 죄 뿐인
이 죄악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에
주여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여기에 반발하고 화를 낸 자가
선악을 주장하는 가룟유다 아닙니까

율법이 없는 가룟유다가 선악을 쥐고서 화를 내는 겁니다
그런 가룟유다의 최후가 뭡니까

아무도 자신의 수치를 가려줄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죽는 순간 까지도
선악을 추구해요 글쎄
내 선을 내가 취하고
내 악을 내가 처리한다 라고 

희한하게 성전에다가 그 은 30냥을 던져요
성전에다가?

왜 성전 아닌 곳에 버리면 왜 안될까요?

은 30냥은 노예 몸값이라고 했잖아요 요셉을 팔때에 은 20냥도 노예 몸값
은 1세겔이 노동 4일치 이니까 요즘 막노동 하루 10만원으로 치면
4 3 12 1200만원
이렇게 많을 리가 없고
하루 일당 5만원으로 해도 600만원 이것도 많고요
모욕적인 의미로써의 몸 값, 죄인 값, 매국노 값이니까
40만원 정도로

여자로 치면 사창가에 팔려가듯이 말이죠

그리고 성전에 왜 돈을 던졌는가?
나의 잘못된 것이 이 사람들에게 속아서 그렇다 라는 겁니다
구조 탓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이들도 벌 내려 달라고

여전히 선악에서 못 벗어나는 거죠

자 이렇게 저마다 다 개인적인 사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약속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반드시 가룟유다의 자살 사건과 연관되어서
한 세트로써 그 차이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과
인간의 살아있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의 
각각의 최후
각각의 원인 없는 결과이다 말이죠

자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선택에 의해서 벌어지는 사건으로써
가룟유다의 자살 또한 선택에 의한 겁니다
자력으로 일어나는 것이 없어요 자유의지는 인간의 철학 사상일 뿐이고요

그러니 주님으로부터 선택받은 12 제자로써의 자살이기에
천국 아니면 지옥 또한 주님의 선택에 의한 겁니다

주님의 선택으로 인한 구원이기에
약속 성취로 말이죠

인간이 약속을 지키는게 아니라
인간의 약속 지키기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약속 자체의 능력만으로 약속은 이 땅에서 성취 되거든요

그래서 구약에 예언된 약속에 예언된 기록된 대로
가룟유다는 악마의 운명을 보여주는 약속을 그대로 보여주도록 되어 있기에
자기 길을 가야 하는 겁니다

어서 너가 맡을 일을 해야지 뭐하고 있노 라고 예수님이 하시잖아요

이런 약속의 능력에 인간의 모든 힘을 다 합쳐서 약속에 들어올려고 해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임을 가룟유다가 그 예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베드로의 다짐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장 지지겠다
십자가 끝까지 따라 가겠다 조차도 안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이제는 쫄딱 망해서 마치 에스겔 37장처럼 에스겔 8장처럼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에스겔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갈릴리 예수 친구 아이가
나 그 사람 모른다
나사렛 예수 친구 아니가
나 그 사람 모른다
예수당 패거리 조폭 깍두기 맞다 스타일도 말투도 행님 차카게 살자 거봐 똑같네 라고
나 그 사람 모른다 자꾸 그러면 너 가만히 안 두겠다 거봐 거봐 깍두기 말투네 라고 해도

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고 해서
창세전에 사랑하기로 작정이 된 것이 취소가 될 턱이 없는
이 약속의 위력을

베드로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도로 무라 줄수가 없는 겁니다

약속 취소 취소 취소
안되겠네 베드로

니 예수님 세 번 부인했으니 구원 취소가 안된다 라는 겁니다

선을 행했다고 해서 가룟유다처럼 왜 그 아까운 비싼 향유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지 않고
땅에 허비하냐 라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화를 내어도 구원 되는 것이 아니고

맘 착해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고 해서 구원 취소가 되는게 아닙니다

인간들의 선악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 요나의 표적이다 말이죠

오로지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라는

이 약속만의 능력으로만 구원되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일방적인 편파적인 사랑이 구원에 이르지
인간 쪽에서는 그 어떤 것도 들어올수가 없는거다 말이죠

그러니 그 예로써 아무리 스스로 뉘우쳐도

안되는 겁니다

여기에 마귀로써 
부정적인 도구로써 가룟유다는 동원이 되는 겁니다

지금 개인 심판 개인 구원을 이야기 하는게 아닙니다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사건을 통해서

오로지 약속을 말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이
이 둘을 갈라놓은 겁니다

하나는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되었고
또 하나는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고

여기에 힐문 할 자 있으면 나와 보라 말이죠

김어준이가 그럼 말라꼬 가룟유다를 태어나게 했느냐 라고
개인적인 자아를 운운했어요

모든 현대인 모든 니체의 대변인처럼 말이죠
어떤 누구가 반박을 할수 있겠냐 말이죠

자아가 없는데 말이죠

자아가 없다 라고 말하는 너 라는 자아는 그럼 뭐냐 라고 하면 우짜겠냐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를 그 우상적인 자아를 없애버릴려고
미리 앞당겨서 마귀에게 잡혀 오라 라는 겁니다
선악 없애기를 말이죠

그래야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에 맞는 죄가 되거든요

그러나 가룟유다는 선악을 없앨 마음이 없기에
구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가 자신을 심판해요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고
마지막의 실수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속았던 그 부분만을 짤라내고자 자살하는 겁니다

그런 선악은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똑같아요
나는 저런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다르다 굽쇼? 똑같은데
거 보세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부랴 부랴 성전에 던진 돈을 회수해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무덤을 만들잖아요

이것이 모조리 십자가라는 약속과 무관하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에
상대적인 한 세트로써
인간의 살아있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의 결과로 최후로 나타나는 겁니다
남을 살인을 하던 
자기를 살인을 하던

살인하지 말라 라는 이 율법에 다 들어가는 겁니다
미워해도 살인이니까 벗어날 길이 없어요
뭘 해도 다 죄 뿐이다는 겁니다

이런 율법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마귀의 밥 이다 말이죠 시체이다 말이죠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다 말이죠

그러니 율법 덕분에 시체로 미리 만들어야
물에 빠뜨려야

그 물 속 깊은 바다 깊은 스올 무저갱 지옥 그 큰 물고기 뱃속 캄캄한 절망 속에서

생명 되신 예수님을 볼꺼 아니겠냐 말이죠

자살하면 저 세상에서는 이런 악에 의해 속아 넘어가서 안 당하겠지 라고
천만의 말씀 그 의문은 또 반복이 되는 겁니다

리셋 재부팅 포맷 타임루프처럼 되돌아 가본들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과거로 가는 것이 죄책감이고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 자살 이다 말이죠

미래로 가면 달라지겠지????
천만의 말씀

미래 자체가 없는데 뭘 ~~~~~

종말을 평상시에 끌어당기지 않고
과거를 끌어와서 살다가 갑자기 자살하면 미래를 끌어당길수 있냐 말이죠

종말이란 예수라는 인물인데
이 인물과의 관계성인데

참성전의 기능을 무시한채로
참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
나의 선한 마음으로 ???
자기의 의로움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

본인 개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또 가룟유다가 죽고난 뒤에
그 죽음으로 인한 행동들이 또 나와야 한다 말이죠

고로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의 저주가
가룟유다 개인의 자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은 30냥 이라는 피 값이라는 저주의 돈을 처리하는 모습들이
더러운 돈으로 밭을 사야 하는 저주스러운 사태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 말이죠

다른 밭은 사면 안되요 반드시 토기장의 밭을 사야 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에 세세히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렘 19:1, 개역)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렘 19:2, 개역)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렘 19:3, 개역)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렘 19:4, 개역)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렘 19:5, 개역)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렘 19:6, 개역)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마 27:9, 새번역)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은돈 서른 닢, 곧 이스라엘 자손이 값을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서, / ㉡사본에 따라 '스가랴' 또는 '이사야' ㉢슥 11:12;13; 렘 19:1-13; 32:6-9』

지옥 가는 자도 말씀대로만 가도록 되어 있지
말씀대로 가지 않는 지옥은 없어요
아무나 지옥 가는게 아닙니다 아무리 지옥 가고파도 말이죠

천국 가기 싫어도 지 마음대로 가기 싫다고 해서 안가는게 아니거든요

자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과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이 이 세상에는 단 하나도 없다 라는 겁니다
한치 오차 없이 주님의 말씀대로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인간 이론의 결정론 숙명론 운명론 따위가 이 약속 속에 들어올수가 없어요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만을 말하지 인간의 부활을 말하지 않듯이 말이죠
에수 안에서만 다 이루어진 겁니다

자 이렇게 새 언약 되신 인자 새성전 새 마음 새약속이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이 증상물로서 나타나지
인간의 행동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오로지 인간은 자신의 선악의 신체만 관심 뿐입니다
성경말씀이라는 약속에는 관심 없어요
관심 없다고 해서

무관하게 돌아가느냐
택도 없지요

자기의 신체만 챙기기 바쁜 와중에
누가 남에게 일어난 일에 신경 쓰느냐 말이죠
베드로의 세 번 부인도 가룟유다의 자살도 다 남의 이야기요
예수님의 세 번의 피 땀 눈물도 다 남 이야기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가룟유다의 자살이 남의 이야기 이듯이 말이죠
분명히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태도가 가룟유다를 자살로 몰아갔다는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냥 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자살로 몰아가요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경쟁자 하나가 없으면 좀 더 나을까 싶어서 말이죠
또 자기 자신에게도 자살을 강요해요
선악을 포기 못 하니까 말이죠

악으로 살 빠에
저주 스럽게 살 빠에 차라리 죽어라 라꼬 말이죠

자 이렇게 세상도 주님의 약속대로 차질없이 다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서 벗어날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미 죽은
종말을 미리 앞당겨와서
나의 저주 나의 죽음 조차도 저주 축에
죽음 축에 못 든다 라고

제대로 된 죽음
제대로 된 저주
제대로 된 심판 앞에서

우리는 울어야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 보다 더 옳았다 라고
이 십자가의 저주가 나의 저주 받음 보다 더 옳았다 라고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