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3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 1- 6)

무덤을 지켜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하는 자들 (마 27,62-66)
마태복음 2018 2021. 11. 13. 09:37
18-152 무덤을 지키는 경비병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막는 유대인 (마 27,62-66)

〈마태복음 28, 1- 6 개역한글, 신약성경 52쪽, 찬송가 150장 무덤에 머물러〉

〈찬송가 150장 무덤에 머물러〉

1.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2.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3.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마태복음 28, 1- 6 개역한글, 신약성경 52쪽〉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1, 새번역)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마 28:2, 새번역)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그 돌 위에 앉았다.
(마 28:3, 새번역)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
(마 28:4, 새번역) 지키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서 떨었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마 28:5, 새번역)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마 28:6, 새번역)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주님께서’


앞의 에스겔 40장 새성전 측량을 천사들이 했듯이
오늘 본문 마태복음에서 천사가 예수님이 부활했다 라는 소리를 천사가 합니다

자 천사가 개입했다 라는 것 자체가
인간들은 오늘 본문을 보는데 있어서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즉 천사 개입을 인정해 버리면
이 세상은 내 뜻대로 내 마음 먹은 대로 굴러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단 1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마치 지난 주에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했던 사람들과 같은 심정으로 말이죠

그러니까 천사 개입 자체가 뻥으로 취급해도 좋을 정도로 마음껏 이용꺼리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하다 하다 못해서 한계점에 부딧힐때에
천사의 개입으로 하게 되었다 라는 기적을 바랍니다

네 맞아요 천사 개입이란 종교꾼들이 이용해 먹기 좋은 소재이다 말이죠
그러니 천사와 인간 그 사이의 중간의 연옥사상처럼 이용해먹기 좋은 것으로 말이죠

그러니 어디까지나 천사도 나의 뜻에 동원이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천사 자체가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해석에
일체 포착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수시로 내가 호출하면 천사가 짠 하고 나타나야 하는데

정작 천사가 오로지 예수님을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예수님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에서
인간은 소외 배제 결핍을 가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아니 천사도 흠모한다 라고 했는데
어떨때에 흠모하냐 말이죠

네 맞아요 피 바르실 때 말이죠

어떤 천사가 주님의 지시대로 우는 자에게 피를 바르고자 붓과 먹통을 들고 나타났듯이
천사 지가 지 한테 자기한테 말라본들 의미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그러니까 존재적으로 물질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예 안 먹히는 겁니다
모든 것이 기능적이다 말이죠
천사도 존재가 아니라 기능이다 말이죠
에스겔 새성전은 환상 속에서 다 이루어지고 천사가 측량하고 있지
천사 자기들 존재와는 아예 상관이 없어요 존재적으로 상관이 없어요
오로지 기능적으로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연결작업이다는 겁니다

측량하고 수치를 낸다 라는 것은 땅의 표현입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영역이 있다 라는 겁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이 역사 속에서 흡짐을 내어서 그 틈을 벌려놓은 공백이라는 자리가 있다 라는 겁니다

그 길을 따라 가는 겁니다

그러니 그 길이 1번 도로 또는 한강변 도로 라는 그런 길이 아니라
없는 길 바로 좁은 길이요 초상집과 같은 바로 예수님 그 자체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의미로써의 전지적예수님 시점인데
인간은 자기 중심으로써 해석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내 두 다리로 걷는 걸어다니는 길로 말이죠

예수님의 시점에서는 나 라는 개인을 인정 자체를 안합니다 집단적 이다 라고 했어요
집단적으로 포로 잡히도록 해서
이방나라의 역사를 아예 하나의 길로 굳혀버렸기 때문에
파괴되어야 할 우상과 상대적인 예수님이라는 새성전의 대립으로 놓아버렸기에

그것을 목격하고자 포로잡혀가는 초상집에 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우상은 잔칫집을 구성하고 포로잡힌 자들은

광야 라는 사막 속에 죽음 속에
그래야 베드로가 아무것도 내 세울 꺼리가 없도록 탈탈탈 빈털터리로 털리는 거죠
그 광야 사막이라는 죽음 속에서 다시 삼일 길로 하루 이틀 사흘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그리고 다시 그 삼일 길에서 어린양의 희생의 피 흘리심의 죽으심 피 흘리심 속으로

자 이렇게 됨으로써 새성전의 거룩을 나타내시는 기능
곧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는 의를 펼치심을 보게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세 번 부인하도록 하시는 거죠 잘했다 라는 말이 아닙니다
잔칫집 곧 우상의 집에서는 바로 이 새언약이 없다 라는 겁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마저도 바리새인은 약속이라는 피 흘리심을 보는게 아니라
자기의 의로움만을 내세운다 말이죠 십의 일조 드렸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그것은 다른 불을 드리는 겁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거룩한 의의 영역이 없으면 덮쳐지지 않으면
자기 의로움만을 내세우게 된다 말이죠

예수 안이 없기에 
아브라함의 품이 없기에

자기 의로움으로써 지옥을 맞이한 부자가 아무리 창고가 많아도 소용이 없더라 말이죠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변호 보호할 집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버리니
불에 홀라당 다 타는 겁니다

주님의 심판이 묻어도 타지 않는 예수 안 이라는 영역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바로 그 당신과의 관계성을 말하는 거지

하나님 나라운동을 해 버리면 또 자기숙제로써의 하나님을 대상물로 삼게 되는 거죠

당신이 외부에 있는 당신이 나에게 무슨 짖을 했는가 가 바로 약속이고
그 약속에 나는 그저 순엉터리 뭘 해도 틀린 것들만 싸질러놓은 똥덩어리 밖에 없음이 드러나서
대조를 이루는 겁니다

잘 한 것들이 대조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세 번 부인 한 이 비언약적인 것들이 들통당해서 예수님의 신차에 담겨져서

그 허물을 다시는 보시지 않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이 하는 것 아무것도 없이 말이죠

자 예수님의 부활에 인간이 보태준 것 있습니까?
없습니다 라는 의미에서 천사가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개입이 단절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형사가 살인사건을 맡아서 수사를 하면
아무리 시체가 썩어 없어져도 그 흔적들이 수십년간은 남고 
그 흔적을 증거물로 삼아서 범인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나오는 천사는 바로 그 형사의 기능에 반대의 기능으로써
거꾸로 증거물을 삼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제 ~~~~~~~~~~~~~~~~~~~~~~~~~~~~~

캬 소름이 돋습니다

아니 시체라도 찾을수 있는 끈덕지기 하나 아무것도 못 찾도록 없제 
아무리 찾아봐라 있는가 없지 라고 ~~~~~~~~~~~~~~~

이게 바로 천사의 기능입니다

마치 앞의 글 에스겔의 천사의 활동으로 새성전의 측량은

오로지 환상 속에서만 펼쳐집니다

아니 왜죠?

눈에 보이도록 하시면 안됩니까?
역사 속에 나타나는 안 됩니까?

아니 분명 측량의 수치가 나타났다면 수로 표시가 된다면 이것은 땅의 언어로 표현한 것 아니냐 말이죠

네 맞아요 땅에서 영역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었긴 만들었는데 안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틈이요 홈패인 흔적 뿐입니다

여러분이 실수로 날카로운 칼에 손이 베이거나
책을 읽다가 그 얇은 종이에 의해 베여서 피가 나게 되면

칼은 몰라도 그 얇은 종이로 다시 손을 베어보겠다 라고 한다고 해서
다시 손이 베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고 그 베여진 그 갈리진 틈 사이로 피가 나왔다면
뭔가 쓱 하고 지나간 것이 분명하니까
그 증상물로써 피가 나고 베인 자리에 갈라진 홈 틈에서 피가 난 증거가 되는 거죠

바로 그런 있으나 마나 한 틈
빈틈 흔적 영역이 있을 정도니

이것이 당신의 나라 라는 영역이라고 내물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없는 길이다 없는 홈이다 그저 흔적으로써 증상만 나타났을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다시 재현할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되는 거죠

천사가 개입해서 활동하는 기능이 바로 이거다 라는 거죠

쓱 뭔가 훅 하고 지나가고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흔적만 있을 뿐

그러니 천사가 나타나서

너희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빈무덤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신 예수님처럼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라고 이야기 하기 위해서

천사가 개입해야만 하는 겁니다

이 믄 귀신 아니 천사 시나락 까먹는 소리이겠냐 말이죠

세상에 씨알도 안먹힐 소리 아니냐 말이죠

아무리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경비병 파수꾼을 썻던 것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의 모습이였듯이

예수님의 부활 하셨다를 인간의 증거모집으로 인해서 증거케 하시는게 아니라
그 정 반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그 어떤 인간의 광고회사 광고아이디어를 아예 차단해서
천사를 통해서 오히려 단절 단절 단절 ~~~~~~~ 차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시겠다 라는 말은

이것 조차도 인간의 숙제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일
하나님 본인이 하신 일이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개입 거부 배제 로써의 예수님의 부활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믿을줄 압니다 라는 소리가 안 나오도록 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런 믿음은 내부도 아닌 외부의 핍박이 오면 언제든지 또 배신할수 있는
무너지기 쉬운 절대화가 되는 거죠

예수님의 부활 조차도 예수님의 숙제로써 외부에서 믿도록 만들어 버리시는
예수님 본인의 숙제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 사건이라는 예수님의 죽음조차도 2000년 전의 단 한번의 사건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니듯이

예수님의 부활 또한 20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성도를 통해서 수시로 벌어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마치 환상 속에서 새성전을 건립하듯이 말이죠

그러든 말든 인간 세상은 
그래도 해가 뜨고
그래도 달이 뜨고

전혀 인지를 못하도록

손 베인 그 얇고 얇은 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슨 수로 인식를 해서
거기에다가 목숨을 걸수 있겠냐 말이죠

가장 불행한 자들이 아닐수가 없어요

목숨 걸 데가 있다 라는 것이 말이죠

20-30대의 자살이 세계 최고 라는 너튜브를 보고서

https://youtu.be/b0yLbdFb0lE

그 끓어오르는 젊은 피가 아무런 쓸모짝이 없을 정도로
목숨 걸데가 없어요

이미 나이가 든 사람들은 사기를 많이 당하다 보니
그 사기 당한 것에 다시 사기치는데 목숨을 걸다 보니
욕망이 작동이 되는 것이지
힘만 빠지면 결국은 자살한다 말이죠 복수할 기운도 없을때에 말이죠

그러나 젊은사람들은 사기를 많이 당하지 않다 보니
자기 옳았다 라는 천상천아 유아독존 으로 자꾸 해탈 자살을 할려고 해요
이 더러운 세상 어서 떠나버리자 라고
자기 영역 하나 없으니 자기 의로움만 내세우니까 자살한다 말이죠 가룟유다가 그래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시드기야 왕도 독립운동하다가 악한 무화과 나무처럼
내 옳은데 왜 세상은 더럽냐 라고 말이죠

사기를 쳐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겁니다 (레비 스트로스 - 구조주의)
안티고네를 다룬 일당백 최근 업데이트가 된 것에서도 나옵니다.

책이름을 까먹어서 너튜브에 검색을 하니 바로 나오네요

일당백에서도 다루었는데 정작 그 내용은 이 부분에서는 안 나오고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나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Ty0WebyM

책이름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라캉 쉽게 읽기-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입니다
마지막 6장 「제6장 라캉과 분석적 대화」 에서
라캉이 한 말입니다 

그 부분을 따와서 옮겨보면

[라캉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인생에서 두 번 큰 ‘사기술’을 경험하고서 ‘정상적인 어른’이 된다. 
그 첫 번째는 거울 단계에서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나’의 토대를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이디푸스 단계를 통해 자기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아버지’에 의한 위협적인 개입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어른’ 또는 ‘인간’이 “이 두 번의 자기기만을 제대로 완수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라캉의 주장은 흥미롭다. 
또 라캉은 정신분석의 목적이 그 ‘원인’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닌 ‘치료’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때의 ‘치료’라 함은 서로 간의 대화, 즉 커뮤니케이션의 답보 상태에 빠진 피분석자(환자)를 다시 커뮤니케이션의 회로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 말을 교환하고 사랑을 나누고 재화와 서비스를 나누는 증여와 답례의 왕복운동 속으로” 피분석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뜻 깊은 행위다. “정체되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의 공유를 통해 “다시 가동시키는 것”이 정신분석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타인과 인간적으로 ‘공생’하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보며 깨닫는다.
이 책은 어렵기로 소문난 라캉의 이론이 결국엔, 인간관계의 건강한 지속을 위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포로 잡혀감으로써 주님이 마련한 영역이

광야  -->  그 광야의 삼일길  -->  그 삼일길에서 어린양의 희생죽음

바로 이것이 당신의 나라 이다 라는 
주님이 마련하신 영역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새성전이요 당신의 나라요 새마음이요 새언약 부드러운마음의 영역인
예수의 마음의 영역인 예수 안 이라는 영역이다 말이죠

이 영역을 주님이 만들어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가 옳다 라고만 주장하는 욥처럼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다 죽었다 차라리 나도 죽여라 라고 
요나도 그랬고

나는 당신 시키는대로 했기에 옳은데 왜 당신은 왜 날 배신하냐 라고만 따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아니 천사의 등장은 인간의 누락이요 배제요 개입거부당함이라는 차단이요 단절인데

자기가 했다 라고 우기면 자기가 옳았다 라고 우기면
예수님은 말라꼬 피를 흘렸겠냐 말이죠

오죽 하면 1300년 만에 모세가 변화산에서 느닷없이 나타나서
주여 별세해 주세요 죽어주세요 라고 한
율법의 대표자가 모세가 할짖이 없어서 그런 소리를 하고 사라졌겠냐 말이죠

제발 인간들 손 모조리 떼어내어 주세요 라는 소리이다 말이죠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차라리 날 죽여라 라고 외친자들의 말을 들어주게 되면
주님이 마련한 새성전이라는 영역이 지 마음에 안 들 때 마다 또 자살로써 시위를 하고
데모로 불 지를놈들이기 때문에 차단당해야 하는 겁니다

자살 자체가 나는 옳은데 세상은 왜 더럽냐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당신은 배신 때리느냐 라는 한풀이이거든요

그러니 인간의 믿음은 그저 예수님에 대한 살인의지요 적개심인 오기와 똥고집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런놈들이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과 좌파들 김땡준 김땡민 죽이자기자와 봉도사 등등과 함께
오늘날 철학자 인문학자들 이런 거짓선지자들 아니냐 말이죠

어떻게 하면 짐승이라는 보수의 등에 올라탈려고 하는 음녀들이다 말이죠

힘이 없으면 짐승에게 짖밟히는 유대인들이 돈만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짐승 등 위에 올라탈려고 하는 음녀와 같더라 말이죠

그러니 인간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기에 천사의 개입으로써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새성전은 삼일만에 짖게 되는 거죠

에스겔서에서 환상 속에서만 나오던 그 새성전이 말이죠

그러니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이 새성전을 기준으로 해서

왜 무너져야 하는지를 증거토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즉 우리의 몸이 신체가 왜 무너져야 하고 심판 받아야 하는 지를 말이죠

안그러면 또 내가 옳다 라는 것만 주장할 뿐인

욥처럼 왜 이렇게 날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십니까 케보이 라고만 외칠 뿐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새 마음 새성전을 보여주니까 비로소 

자신의 신체가 가짜 몸이다 라는 것을 진짜 몸을 보고서

내 집에 거할 집이 많도다 라고 영역이동 이사 갈 생각을 하게 되지
안 그러면 자꾸 헌 마음 완악한 마음 속에 머물려고 하지
떠날 마음이 없게 된다 말이죠

(요 14:2, 개역)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1, 개역)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개역)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개역)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4, 개역)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5, 개역)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처소 성령 새마음 새성전을 새언약의 영역을 마련하심으로써
평화 다 이루었다 라는 전쟁의 종식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손에서 지어질 성전 따위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전쟁도 종식이 되지도 않았는데 인간이 성전을 짖고
자신의 신체로 율법을 지킬수 있다 라는 것이 말도 안되듯이 말이죠

여전히 칼을 무기를 뒤에 감춘채로
울리는 꽹과리 에디오피아 군대들의 무기가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혀서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상엿소리 애곡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겁니다

새마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말이죠

자 이렇게 천사의 개입을 강조하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만이 생명이다는 겁니다
아무리 죽음이라는 무기인 울리는 꽹과리로 예수님의 몸을 상하게 해 본들
생명 되심이 취소 되는 법이 없다 말이죠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사니까 말이죠

(합 2:4, 개역)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개역)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히 10:38, 개역)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 2:1, 개역)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합 2:2,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 2:3, 개역)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합 2:4, 개역)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5, 개역)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합 2:6, 개역)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합 2:7, 개역) 너를 물 자들이 홀연히 일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합 2:8, 개역)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에, 성읍에, 그 안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리라
(합 2:9, 개역)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합 2:10, 개역)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합 2:11, 개역)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합 2:12, 개역)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합 2:13, 개역)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합 2:14, 개역)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즉 율법 아래에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의인이 없다 라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 외에는 이미 처음부터 죽음이요 사망 뿐이다 라는 겁니다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0,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 ㉡시 14:1-3(칠십인역); 53:1-3(칠십인역); 전 7:20
(롬 3:11, 새번역)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롬 3:12, 새번역)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롬 3:13, 새번역)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 ㉢시 5:9(칠십인역) ㉣시 140:3(칠십인역)
(롬 3:14, 새번역)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 ㉤시 10:7(칠십인역)
(롬 3:15, 새번역)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 ㉥사 59:7; 8
(롬 3:16, 새번역)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롬 3:17, 새번역)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롬 3:18, 새번역)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 ㉦시 36:1


인간의 출발 자체가 사망이요 죽음이기 때문에
천사의 개입으로 인간의 손을 떼게 하시는 겁니다

인간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신앙이 그래서 더러운 이유입니다
그러니 생명 되신 예수님이 가신 길 만이 생명의 코스이기에

나의 신앙을 따로 만든다 라는 것은 죽음의 코스를 반복하는
의문의 반복일 뿐이다는 거죠

그게 종교 아닙니까 종교라는 짐승이 어떤 코스를 가는지 그 내막을
종교의 대표인 유대교 사탄의 회를 거쳐서 그 완악함을 다 보여주셨고
(즉 사람의 손으로 짖는 성전이다 말이죠)

그 상대적인 예수님이라는 새성전이 저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 되심을 멈출수가 없기에

이 길을 미리 먼저 본을 보이셔서 이 생명의 길을 따라 오라고

너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신앙 그 죽음 버리고
이 길로만 새언약의 코스로만 인도하시고자
천사까지 개입시켜서

새성전의 측량 수치 하나 하나가 정교하고 완벽하고 딱 딱 아귀가 맞도록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으로써 지어진 성전이기에

제대로 된 죽음을 거쳐서 제대로 된 생명 되심으로 인도하는 길로써

이 길을 따르라 라고 본을 삼으심은 성도가 바로 이 성령의 전이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 쪽에서의 소위 악한 세대가 바라는 기적 따위는 일체 바랄수 없도록
요나의 표적으로써

시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텅빈 무덤이 된다 말이죠

인간이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일종의 반항시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이 됩니다
죽은 부모의 산소에 가서 잘 될 때는 위로를 받고
잘 되지 않을때는 한풀이를 하러 간다 말이죠

즉 일단 대상이 있다 라는 거죠
대상이 있다는 말은 자기를 투사했기에
자기의 한 풀이든 아니면 자기자랑이나 고마움이 있어서 받아줄 대상이 자기가 자기투사로써 만드는 겁니다

아까 말한 인간이 죽음으로 출발하니까 이런 헛짖 허구를 하는 거죠

그래서 혹시나 고시원 시험 준비하는데 혹시나 해서 미니어쳐로 제사상을 차려서 제사드려서
혹시나 시험 망치면 어디에다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테니 미리 보험 들 듯이 해야
다음에도 또 도정하기 안그러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주는 압박을 무슨 수로 견디겠냐 말이죠

그런데 그런식으로 찾아간 무덤이 빈무덤이 되었다
시체고 뭐고 죽음이 사라져 버렸다

사망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제 떨어질 시험이 없는 무시험 합격 뿐이게 되는 겁니다

뭐든지 예가 되고 아니오 함이 없게 된다 말이죠

이것이 생명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 살아있다 자기 옳았다에서 출발하는 믿음은 도리어
죽음으로부터 출발했기에 여기 저기 보험을 안전장치를 자꾸 걸어요

높은 빌딩 건축을 하는 노가다 인부들이 여기저기 생명줄을 걸어놓는 이유가 뭡니까

떨어지니까 말이죠

떨어질 것이 없다면
무덤에 묻힐 일이 없다면
빈무덤 뿐이라면

그래서 하나님의 군대는 마른뼈로써 빈무덤이다는 겁니다

이 빈무덤과 싸우는 곡과 마곡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빈무덤들과 싸워야 하니
이건 뭐 귀신 하나도 나타나지 않아도 더 싸늘한 납량특집 공포체험이 되는 거죠

싸우고 전쟁하는 이유가 뭡니까
남을 떨어뜨려야 자기가 안떨어지는 겁니다
남을 죽여서 무덤으로 보내야 자기가 무덤에 가지 않는 살아있게 되는 겁니다

상상으로 코메디 장면을 여러분 머리 속에 상상해 보세요

나 아니면 모든 것이 다 이질적이라서 타인은 지옥이다처럼 적으로 간주해서
무기를 잡고서 전쟁하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칼을 잡으면 칼이 나와 싸우고
어떤 포스터가 점봇대를 삥둘러서 포스터 광고지를 붙이게 되니 총구가 자기 뒤통수를 겨누게 되듯이 말이죠
내가 칼을 잡으니까 칼이 내 뒤에서 찌를려고 하고
내가 총을 잡으로니까 총이 내 뒤에서 뒤톨수에다가 총을 겨누더라 말이죠

빈무덤과 싸운다 라는 것은 이런 의미 이다 말이죠

마른뼈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군대와 싸우는 식은 
마치 빈무덤과 싸우게 되는 식이니까

내가 가진 공포 두려움 불안의 증상물로써 거울처럼 작용하는 겁니다

에스겔 인자든 이사야 인자든 인자란 거울로써 반사시켜서
내가 가진 공포를 비추는 겁니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발가벗고 알몸 맨발로써 다녔다 라는 것은
남유다 왕과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발가벗음과 맨발 되는 것에 대한 공포로써
거울을 비춰주는 겁니다

(사 7:2, 개역) 혹이 다윗 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사 7:2, 새번역) 시리아 군대가 ㉠에브라임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다윗 왕실에 전해 지자,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 / ㉠또는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었다는 말이'

그러니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수치를 가릴수 있는 든든한 옷이 된다고 본 애굽과 손을 잡아서 연합군을 형성하지만

그 애굽이 발가벗겨진 껍데기다 말이죠

(사 30:5, 개역)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사 30:6, 개역)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사 30:7, 개역)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사 20:1, 개역)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사 20:2, 개역)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사 20: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사 20:4, 개역)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사 20:5, 개역)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결국 인간이 하는 전쟁이면 도망치면 그만입니다 안싸우고 말이죠
최고의 지략은 손자병법에 의하면 삼십육계 줄행랑 즉 도망치는 겁니다

그런데 왕인데 그럴수가 있겠냐 말이죠
싸워 이기느냐 아니면 죽음 이 둘 뿐이다 말이죠 도망쳐본들 죽어요 왕은 그래요 왕은

이것은 붙이시는 전쟁으로써 양발차기 이기 때문에

인자 라는 거울로써의 선지자는 저들의 죄악을 담기에
수치를 두려워 하면 수치된 발가벗은 몸과 맨발로써 거울을 비추고

칼을 두려워 하면 칼로써 다가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내가 가진 공포를 뒤통수로 내가 총을 겨누듯이
그 공포의 내막을 다 바닥을 뜯어보자 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잖아 ~~~~~~~~~~~ 라는 거죠

예수님의 전쟁 김의 전쟁은 
인간이 가진 사망권세에 대한 공포이다 말이죠

다들 예수님을 죽여라
성정을 헐고 삼일 만이 짖는 자여 어서 자기자신을 구원해 보시지 라는 
인간의 함성 하나 하나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그 공포를 피라고 삼십육계 줄행할 칠게 아니라
그 공포 두려움 죽음 사망이라는 바닥을 뜯어보자 라는 겁니다

그래 그래 너희들 인간들은 이미 죽기를 무서워 사망의 종노릇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 압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시겠다 라고 인간 손 떼라 라고 하시면서
그 주님의 일하심의 내막을 보여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막상 주님이 가신 길 하나 하나를 가 보면

사망 그 까짓것 아무것도 아닌 허상 허구였다 말이죠
권력요?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니까
제자가 하는 말이 아이구 예수님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시군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 듣고 걸림이 되는 줄 아십니까
저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혀듭니다 라고

제자 스스로가 이미 이 유대사회의 환경 자체가 바리새인화 되어있다
독사의 자식화 되어 있다 라고 도리어 예수님을 말리고 있다 말이죠
예수님 정신 차리세요 정신 ~~~~~~~~~~~ 찰싹 찰싹 뺨 때리듯이 정신 찰싹 ~~~~

(마 15:1, 개역)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 15: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7, 개역)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10, 개역)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4, 개역)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왜 율법을 범하냐 라고 꼬투리 잡고 따지잖아요
맞아요 범한 것 맞아요

그럼 율법 범했으니까 범하지 않겠다 가 아니라

그러는 너희는 왜 범하냐 라고 하는 겁니다

율법이 죄 아래 가두기 위함이니까 서로가 이 기능을 잘 아는 겁니다

공포 아래에 집어 넣고자 하는데
그 공포를 누가 심느냐에 따라서 그 누구에게 종이 되는 식이죠
바리새인의 종이 될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잖아요

오늘날 목사들의 종이 될려고 예수님이 지금 활동 하시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죠

도리어 그들의 공포를 찢고자 오시는 겁니다
목사는 목회성공 못했다 라는 소리 들을까봐 늘 두려워 하잖아요
바리새인은 존경 받지 못할까봐 늘 두려워 하는데 그 존경심을 지금 예수님한테 다 빼앗기는 겁니다

그러니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더 더 파재끼고 들어가는 겁니다

누가 저에게 돈 20억 없는 빈털터리 이다를 공포로 심을려고 난리도 아니더라 말이죠
어릴적 초등학교 4 5학년때의 허물까지 들추어가면서 말이죠
그런데 정작 엉뚱한 자가 벌벌벌 떨어요

20억은 자기들도 없기는 매마찬가지 이거든요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할까요?
그들의 평상시의 삶의 기준들이 무언중에 튀어나온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회들이 다 이런 짖을 해요 글쎄
장로들은 아예 기본이고 목사들까지 해서
온 교인들이 들썩 들썩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 말이죠

정작 저를 구해준 친구가 한쪽 팔이 마른 장애우? 장애인? 친구였는데
우인지 인인지 이거 예민한 단체가 많아서리 ~~~
이거 한 두번 뒤바뀐적이 있어서 헷갈리는데
(장애인으로만 쓰다가 갑자기 낯선 장애우 라고 써야 한다고 해서 썻더니 다시 바뀌더라구요)

다시 찾아 보니 장애인이 맞는 표현이고 장애우는 다른집단으로 표현되는 느낌이라서 쓰면 안된다 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자기도 교회를 탈출해서 십일조 내라는 교회의 협박 때문에 갈 곳이 없어서 왔는데
저를 구해주더라 말이죠

맨날 도리어 얻어먹기만 할 정도로 부끄부끄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시니 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말이죠 ~~~~~~~~~~

전부 돈이다 말이죠 돈이 공포로 자리잡아버렸으니까 말이죠
어떻게든 공포로 심을려고 난리예요 난리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부자는 구원받은 자의 기준이 되어버렸거든요
괜히 부자가 되었겠는가 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거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라 라고 했던 겁니다
어릴적부터 율법 지킨 이유로 부자가 되었으니

율법을 지켜서 가난한 자가 되었다면

전재산을 나누어 주라 라는 예수님을 피할 리가 없잖아요

가난이란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공포로 자리잡았다 말이죠
상대적으로 부자 됨이라는 부요함은 내 영혼아 오늘 편히 쉬자 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주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수님이 언급 하시는 부자는 성경에서 놀랍게도 다 저주에 해당되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부자면 그러면 무조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피하고 거부하고 등돌리더라 라는 겁니다

키 작은 삭개요 보세요 얼마나 부자 입니까
그것이 주님의 부요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자꾸 내어놓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정작 부자청년에게서의 돈은 결국 공포의 반작용으로써 모으게 된 거죠
율법 못 지키면 이라는 공포 때문에 억지로 모은 것이 되며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는 것도 공포 때문에
구원 못 받으면 이라는 공포 때문에 말이죠

자기자신이 죽음에서 출발했다 라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정작 구원을 주시겠다 라는 주님을 등돌리고 피하는 것도
구원과 돈을 함께 섬겼다 라는

이것이 부자청년이 보여준 유대인 전체의 대표성으로써 들추어낸 거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로 인해서 태어난 자들이다 말이죠

죽음으로 인해 태어난 자들이다 말이죠
단 한번도 생명 자체를 모르고 어두움 속에서 태어나 어두움 속에서 살다가
어두움 속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 나에게 우리에게 찾아왔다 라는 것은

돈과는 족히 비교도 안되는 겁니다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배고파요
목구멍이 무덤이다 말이죠

빈무덤이어야 한다 라는 말은 말도 안되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입니다
누가 이런 말을 듣겟냐 말이죠

천사를 인간이 마음대로 호출 가능하다면 또 모를까????

천사 자체가 인간의 개입을 거부하는 식인데 말이죠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어디 목구멍만 열린 무덤이요 지옥이겠습니까
몸 전체 신체 전체가 죽음이 늘 스멀 스멀 지옥의 냄새가 올라오는 무덤이다 말이죠
항상 피 흘릴려는 살인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니까 말이죠

자기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도
행복해 보여서 지나가다가 죽이고
왜 나보다 잘 사냐 라고 죽이고
늘 살인의지가 스멀 스멀 피어나는 육체를 가졌다 라는 겁니다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그 사망권세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거 뭔데 라고 사망의 바닥을 파 재끼니까 아무것도 없다 라는 거죠

마귀가 만든 지옥 따위는 죽음이라고 칠 수도 없는 겁니다
진짜 죽음은 진짜 지옥은 예수님이 만드신 지옥이다 말이죠

아니 사망인 마귀가 만드는 사망이나 죽음 지옥 따위가 사망이거나 지옥이겠냐 말이죠
생명 되신 예수님이 만드신 지옥이 진짜 지옥 아니겠냐 말이죠

첫 번째 사망은 사망 축에도 못들기에
둘째 사망을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못하나 주님은 그 공포를 도리어 바닥을 뜯도록
남은자 그루터기를 구하라 스알야숩을 구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안그러면 두 부지깽이에게 놀아날 뿐이다 라는 거죠

한 번 들어주면 계속 가지고 놀아요 글쎄
아예 아이고 그것도 공포냐 그것도 죽음이냐
진짜 제대로 된 죽음을 보라 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증거하시면 되는 겁니다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들기에 진짜 죽음을 제시하라 말이죠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고 그 길을 따르라 하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이 코스 만이 참된 현실이고

그 외에의 다른 길은 허구요 허상이요

그 허상에게 놀아날 뿐이다 라는 겁니다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지도 않은 것들에게 매여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목숨을 건지신 분은 자기 목숨 버리신 분 뿐입니다
그분에게 우리는 목숨을 걸었기에 얼마나 행복한 줄 모르는 삶 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나
목사 따위를 우상으로 섬기면 불행할 뿐입니다

교리도 신학도
자기 쪽에서의 성전에 바치는 되도않는 함량미달의 666 사람의 수 일 뿐입니다

오로지 새성전을 다 이루신

평화를 다 이루신
전쟁의 마침이 된 분만이 나의 왕이요 나의 신랑이십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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