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5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무서움과 큰 기쁨에 기쁜소식으로 무덤을 떠나는 자 (마 28, 7-15)
마태복음 2018 2021. 11. 27. 13:24
18-154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린 채로 기쁜소식을 전하는 무덤을 떠나는 자 (마 28, 7-15)

〈마태복음 28,16-20 개역한글, 신약성경 52쪽, 찬송가 046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6, 새번역)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마 28:17, 새번역)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 28:18, 새번역)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마 28:19, 새번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또는 '침례'
(마 28:20,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다른 고대 사본들은 절 끝에 '아멘'이 있음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으로써 그야말로 종말적이다는 겁니다
종말적이다는 말은 반대로 유대인들은 전혀 종말적이지 않다 라는 것이지요
지금 현대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럼 유대인들은 수천년 동안 그 동안 뭘 믿었던 것일까요?

네 맞아요 자기 믿음을 믿은 겁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믿음을 믿는 겁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을 믿던 예수님을 믿던 부처를 믿던 천주교처럼 마리아를 믿던
결국 자기자신을 투사 시킨 자기를 믿었던 것이

그 선배 유대인들에게서 노골적으로 들추어내시는 방식이 바로 마태복음이였다 라는 거죠

그럼 이방인을 대산으로 한 누가복음은 그럼 뭡니까?
마치 우리가 에스겔을 하고 있는것처럼

누가복음은 그야말로 마른뼈군대 같다 말이죠
처음자리 처음사랑을 누가복음은 그대로 밀어붙이시는 식입니다

맏아들은 유대인의 모습이고
탕자는 이방인의 모습으로써
탕자의 모습을 그대로 밀어붙이신다 말이죠
누가? 성령이 말이죠

그래서 사람이 움직이는 것 하나 없고
오로지 천사와 성령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누가복음을 계속 잇는 방식이 사도행전 즉 별명이 성령행전이듯이 말이죠

단절로써 뚝뚝 끊어지는 식으로 잇는 거죠
어떻게 뚝뚝 끊어졌는데
죽은태가 되었는데 어떻게 많은 자식을 낳고
어떻게 수태치 못한 임신한적도 없는 여자가 즉 처녀가
하늘에서 자식이 많냐 말이죠
이 말 자체가 뚝뚝 끊어진 단절 아닙니까

(사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사야 54장에서 새언약의 의미를 이런 비유로써 표현한 겁니다
어떻게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자식을 놓는가? 육의 방식을 존재의 방식을 단절 시키는 겁니다
다른번역에서는 더 노골적입니다
(갈 4:27,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사 54:1
(갈 4:27, 공동) 성서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기 못 낳는 여인이여, 소리 높여 외쳐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인이여,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으리라." / ㉠이사 54:1.
(갈 4:27, 쉬운)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같은 예루살렘아, 기뻐하여라. 아기를 낳는 고통을 느껴 보지 못한 예루살렘아, 노래하며 외쳐라. 남편이 있는 여자보다 네 자녀가 더 많을 것이다.”
(갈 4:27, 한글킹) 기록되기를 "너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아, 즐거워하라. 너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여인아,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음이라."고 하였으니
(갈 4:27, 현대인)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 높여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갈 4:27, 현대어)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ㄱ) `예루살렘아, 너는 이제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라! 네가 버림받은 여인의 신세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남편이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자식을 둘 것이다.' (ㄱ. 사54:1)
(사 54:1, 새번역)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한 너는 노래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너는 환성을 올리며 소리를 높여라. 아이를 못 낳아 버림받은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볼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 54:1, 공동) 환성을 올려라, 아기를 낳아보지 못한 여인들아!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산고를 겪어본 적이 없는 여자야! 너 소박맞은 여인의 아들이 유부녀의 아들보다 더 많구나. 야훼의 말씀이시다.
(사 54:1, 쉬운)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같은 예루살렘아, 노래하여라. 노래를 부르고 큰 소리로 기뻐하여라. 네가 한 번도 아기를 낳는 아픔을 겪지 못했으나, 남편을 둔 여자보다 더 많은 자녀를 가질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사 54:1, 한글킹) 오 잉태하지 못한 자여, 아기를 낳지 못한 너는 노래하라. 아기로 인하여 진통하지 못한 너는 노래를 터뜨리고 큰 소리로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여인의 자식이 혼인한 아내의 자식보다 더 많음이라. 주가 말하노라.
(사 54:1, 현대인)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노래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노래하며 기쁨으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사 54:1, 현대어)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아, 너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 자식을 낳아 본 적이 없는 여인과 비슷하였다. 그러나 너는 이제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라! `네가 버림받은 여인의 신세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남편이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자식을 둘 것이다.' 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즉 여성의 존재로써의 수치 또는 저주가
어떻게 기쁨으로 축복으로 바뀌느냐 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없다 라는 거죠
결국 버림받는 잃어버림이라는 종말성을 품은 새언약의 백성이
새언약의 증상물로써 나타난다 라는 겁니다
이 종말성을 혈통적 이스라엘 곧 유대인들에게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라고
반드시 상대적인 버림받은 여자
남자 없는 여자로써
남편 있는 여자 곧 율법이라는 남편 말이죠 ~~~~ 육을 죽이는 율법)

존재로써는 말도 안되고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기능으로써는 도리어 초과잉적 진리로써 넘치고도 넘치는 겁니다

하늘에서 자식이 많다 라고 말이죠 남자 없이 어떻게????? ~~~~~~~~~~

그것은 지난 주에 에스겔을 통해서 살펴봤듯이

에덴동산의 두 나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로써
이 두 나무가 있는 거주지가 바로 인간이 머무르는 곳인데

두 나무가 없는 거주지에 살다 보니까

굳이 누가 수치를 가려줄 자가 필요가 없이 살아가는 그저 좀비일 뿐인
그래서 자기 인생 자기가 꾸려가는
약속과 무관한 자로써 유대인들이기에
전혀 종말성이 없는 거죠

심지어 어떤 목사의 종말론적인 교회 라는 논문까지 발표하면서도
막상 보면 종말성이 전혀 없는 교회를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우와 깡패다 라고 범죄도시 라는 영화 대사처럼
우와 강도의 소굴이다 라고 저절로 말이 튀어나올 정도이더라 말이죠

겉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어요
광명한 천사예요

(고후 11:14, 개역)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5, 개역)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런데 자기한테 잘해주는 이웃에게만 그래요
안그러면 바로 살기가 넘쳐 흐르더라 말이죠

(눅 14:12, 새번역) 예수께서는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눅 14:14, 새번역)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이단들의 특징 아닙니까 이웃사랑실천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거든요
사기수법처럼 처음에는 잘해주고 나중에는 배로 뜯어먹는 등쳐먹고자 빨대를 꽂아요
이단이 아닌 정통이라는 놈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빨대 꽂아서 피 빨아먹고요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종말적인 이웃사랑 곧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을 못하거든요
다른 종교에서도 할 줄 아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거 가짜죠
다른 종교에서조차도 흉내도 못내는 것인데
유대교 유대인들 보세요 이 사탄의 회가 하는 짖을 다 따라해요
쉽거든요

그것을 자랑으로 삼아요
자랑이 놀랍게도 전염이 됩니다
다들 부러워하니까 그 자랑에 넘어가거든요

잘도 용납하는 구나

(고후 11:19, 개역)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고후 11:20, 개역)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자 그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11제자는 잘도 용납하는구나 라고 책망받는
그 육체가 자랑하는 것을 땅끝까지 전해야 합니까

아니면 도저히 육체가 도저히 자랑할 수가 없는 
부득불 자랑한다 라는 복음을 땅끝까지 자랑해야 합니까

여기서 땅끝 자체가 지옥이거든요 사망까지 이거든요
인간의 자랑꺼리는 사망에게는 자랑안해요

왜? 날라갈까봐
날라가버린다 라는 것을 아니까 말이죠

불 타는 불 에게 까지 자랑 안해요

그렇다면 불탄다는 말이거든요

불타지 않는 것을 자랑한다 라면 불을 붙여도 안 타는 것을 자랑해여 할 터인데
불 속에 안들어감으로써

아니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어 그런데 부득불 자랑한다 라는 사도바울이 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불에 타지 않는 것을 자랑 아니하고는 못 배긴다 라고 자랑을 해요 글쎄

그 자랑이 알고보니 육의 세상에서는 전혀 자랑꺼리가 될 수가 없는

매맞은 것을 자랑하고
사도를 죽이시기로 작정하셨다 라는 그 복음을 자랑하는데 있어서
그 죽임을 당하는 본인 자신을 육의 자랑과 대비해서
너희가 잘도 용납하는구나 라는 것과 대비해서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 라고

왜? 이 십자가가 영광이거든요 이 부정성이 이 죽음이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그 영광 속에 들어갔다 라고 자랑하더라 말이죠

(고후 11:20, 개역)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고후 11:21, 개역)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후 11:22, 개역)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고후 11:23, 개역)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4, 개역)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개역)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개역)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개역)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8, 개역)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29, 개역)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후 11:30, 개역)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31, 개역)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고후 11:32, 개역)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고후 11:33, 개역)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마치 잉태치 못한 자여
죽게 된 자여 기뻐하라 라는 말과 똑같아요

바로 이것을 열한 제자에게 주님이 바톤을 넘져주시듯이

너희는 가서 가르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 28:18, 개역)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자 그럼 유대인들
오늘날 교회나 종교꾼들의 반응은 이미 나왔죠

안돼 이 복음이 세상에 퍼지면 안돼
왜? 돈 못 벌어서 죽게 되고
우리의 종교는 우상은 망하게 된다 라고
강도의 소굴이 무너진다 라고 말이죠

그것과 대비해서 열한제자는 졸지에
저들과 마찬가지로 안돼 안증거할 거야 라고
이미 도망쳤었거든요
그러나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사심을
두 나무가 있는 거주지
성소, 성전(율법과 선지자), 새성전이 새로 지어진 이상
그 증상물로써

이 열한제자는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증인으로써 세워짐으로써
성령의 장기알 배치로 인해서
이 복음증거에 동원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새성전에서 나오는 기념이름 전쟁입니다

즉 기존의 성전은 인간 쪽에서 바치는 불타는 성전이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우상의 이름을 증거하는 자들이고

(마 28:18, 개역)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고로 그들은 땅의 권세와 손잡지 않는 이상 권력을 유지할수도 없기 때문에

아버지 이름과 아들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이 열한 제자의 복음증거를 막아서야만 하는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그 신 모르는데 라고 하는
애굽왕 바로왕의 바톤을 이어받아서
1300년 만에 지옥에 간 애굽왕을 소환하듯이
이들을 소환시킨냥 애굽왕 대변인 노릇을 하게 함으로써

이 복음 증거를 막아서고자 하는 자로 세우시는 겁니다

그래야 거주지 정녕죽으리라 라는 메시아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 어린양의 죽음으로써
새성전의 의미가 계속 지속시키심에 따라

이 열 한 제자는 비록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어도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잉태함으로써 다시 태어난 자로써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증거하는 겁니다

결국 기존의 종교에서는 이 죽었다가 다시 사심이라는 수치를 가려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없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없어요

심지어 유대교에서도 하나님의 의가 없어요
다른 의로움 자신들이 율법 지킨 의로움을 자꾸 들이내밀어요

성화론자들이 이런 짖을 해요

이 얼마나 새성전을 모독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냐 말이죠

종말성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곧 죽은 자의 하나님이고

산자의 하나님은 바로 새성전의 기능으로써
예수님의 죽음과 다시 사심이라는
이 하나님의 의가 계속해서 펼쳐지는 겁니다

다른 것으로는 수치를 가릴 방법이 없거든요

이 기쁜소식 복음에 동원이 된 자로 세워지는

마른뼈이다는 겁니다
억수로 건강한 자도 아니요 의인도 아닙니다
죄인으로써 마른뼈로써 세워진 하나님의 군대이다는 거죠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만 세워진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만 자랑할 뿐인 하나님의 군대인 거죠

위에서 자랑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왜 자랑 할 수 밖에 없는 가? 권능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배후세력입니다

세례요한이 무슨 권리로, 무슨 권능으로,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느냐
하늘로부터 받아서 인가?
아니면 사람으로 부터인가??

(마 21:25, 개역)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막 11:30, 개역)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눅 20:4, 개역)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마 21:23,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 21: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막 11:21, 개역)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 11:2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 11:23,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5, 개역)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막 11:26, 개역) (없음)
(막 11:27, 개역)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막 11:28, 개역)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막 11:29,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막 11:30, 개역)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막 11:31, 개역)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막 11:32, 개역)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막 11:33, 개역)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또 이 자랑이 되는 권세를 권능이라고도 표현할 수가 있는데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땅 끝 즉 지옥을 피하는 것은 권능이 아니지요
음부의 권세 권능도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만드셨으니까

이 주의 이름을 자랑하는 권능을 받은 자가 교회 라는 신부이다 말이죠

안그러면 육의 자랑 즉 쓰레기 자랑을 하게 되어요
똥 배설물 땅의 것 썩을 것 지나가는 이전의 것 삭제될 것을 자랑한다 말이죠

왜? 배후세력이 음부의 권세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오로지 주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은 자 만이
육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아서
자기 권능 하나 내세울 필요가 없이
주의 이름만 자랑하는 자로 삼으시는 겁니다
주권능이가 말이죠

아예 인격화 의인화 해버리는 용어를 써야겠네요 주권능 이가 말이죠
즉 반대로 우리는 인격화 인간이면서도 인격화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건 취급 받는 비인격화가 되는 기능만 나타내는 겁니다
그러니 주의 권능은 존재인 나에게 끌어올수가 없어요

그러나 종교는 반드시 존재인 나에게 끌어오도록 가르치거든요
내가 천국가지 남이 천국가냐? 말이죠

그러니 나 라는 존재가 천국 극락 낙원에 간다는 조건 아럐에서 남에게 선행을 하는
이웃사랑실천을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귀가 떨어지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니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라 라고

지금 본인 존재가 마귀를 떨어뜨리는 권세를 부린 나의 행함이 아니라
창세전에 이미 생명책에 기록하신 주님의 이름이 먼저 있었기에
그 증상으로써 권능을 받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라는
이 약속의 놀라움 이 십자가의 피 용서의 높으신 권능
곧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인 이 십자가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영광이요 권능이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이다는 겁니다
무엇이? 이 십자가 라는 약한 것 무능한 것 부정한 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말이죠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개역)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개역)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도 자랑이 나오네요
사도바울이 매 맞는 것이 사도됨이다 라고 하듯이
우리는 이 약한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영광이요 권능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증거하는 것이
성령의 전인 우리 교회가 외칠 수밖에 없는 기능 곧 종말적 기능이다는 거죠

안 그러면 또 쓰레기 우상 인간 쪽에서 성전에 바치는 거룩이 되는 거죠
새성전 에스겔서에 나오는 천사들이 짖는 새성전은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거룩이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인 의가
수치를 가리는데 있어서 구원의 방식이 바로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로움 입히기
주님의 섬기심 이다는 거죠
우리는 그 주님의 섬기심을 받아서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인 7에 70번의 용서가 무한반복이 되는 곳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죽음과 생명이 있는

성소입니다

바로 새마음인 예수님의 마음
새신 성령이라는 예수님의 영
부드러운 마음인 즉 상대적인 인간의 믿음은 오기요 고집이요 강퍅함이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목이 곧은 딱딱한 마음이라서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살인의지만 더더욱 강해지는
부드러운 마음과 정반대의 모습이기에

성령의 전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성령의 전으로써 우리는 주의 이름만을 자랑하는
왜? 성소는 주께서 감추어둔 아껴둔 기념이름을 담는 성전이니까 말이죠

그 사도바울의 매 맞음이 바로 십자가 라는 주님의 권능에서 곧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서
즉 새성전되신 예수의 이름으로부터 왔구요
아버지의 이름은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부터만 알수 있어요
그러니 유대인들은 단 한번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는 거죠

또 이 열 한 제자들이 주의 권능을 받아서
이 사도의 피 위에 교회 라는 열매가 세워지는 겁니다

오로지 죽음이라는 단절로써만 잇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만 잇고 잇는 이 어리석고 미련하고 거리끼는 걸림돌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는 하나님의 권능이요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죽은 자를 살리시는 참성전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시는

세상이 견디질 못하고 격동하는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는
피 발라 주심
예수님의 죽음을 바르시는 겁니다

어떻게 생명이 퍼지고 퍼지고 퍼지는 것이 아니라
가인의 살았더라 족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퍼지고 퍼지고 퍼지느냐 라는 거죠
아벨의 죽었더라 족보가 어떻게 뚝뚝뚝 끊어졌는데 이어지느냐 말이죠

바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말하기 위해서
이 열 한 제자가 예수님의 본 주틀로써 붕어빵 찍히듯이 같은 운명이 되듯이
우리 교회들도 예수님의 운명으로써 살 수밖에 없도록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증거하는 자로 삼으신 겁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도 아니고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도 아닌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권능으로 말미암아서 말이죠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개역)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개역)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24, 개역)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도 영광이 나오네요 권능 권세 능력 말이죠
왜? 영광을 받으시고자 말이죠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진노의 그릇인 애굽왕 바로왕을 통해서도 영광받으시고
긍휼의 그릇인 새이스라엘 예수님을 통해서도 그 영광의 부요함을 때려부어 주셨으니 
누가 힐문 하겠느냐 말이죠

이 예수님의 운명을 11제자에게 부어주시겠다 라고 말이죠

그러니 아니 증거하고는
아니 자랑하고는 못 배기는

죄수복을 입고서 피 자랑을 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반대로 의인의 옷을 입고서는 도저히 이 십자가의 피 자랑을 못하기에
거리끼는 걸림돌이라서 말이죠
남을 일곱 번 용서는 자랑해도
도저히 7에 70번 용서 받은 것을 그것도 죄수복을 입고서는 도저히 자랑 할 수가 없는
자랑 자체가 안 되는 권능이 안되는
약함이 어떻게 자랑꺼리가 되겠냐 라고 거부하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함이
어떻게 남을 위해서 죽냐 말이죠 그건 개죽음이지

바로 이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광임을
종말에서 덮쳐진
원인 없는 정답 결과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아를 정답이 찾아내어서
성령을 부으심으로써

우리는 세상 쓰레기에서 어서 떠나자 라고 외치는 겁니다
불 타는 쓰레기 장에서
불타지 않는 예수님의 성전 되심 속으로 말이죠

누가 이 불과 주님의 죽음과 함께 동행할수 있겠습니까?

성전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바리새인 입니까?
십의 일조 낸 것을 자랑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저 세리처럼 음란하지 않는
이 바리새인과 동행하실까요?

아니면 세리 매국노 세리
아무것도 자랑할 꺼리가 없어서
주님의 심판 앞에서 주님의 긍휼만을 제발 살려달라는
눈물 회개가 무릎 꿇고 싹싹 비는
이 우는 자와 함께 동행 하실까요?

아무것도 자랑 할 것이 없는 환자
탕자
죄인에게만

의사가 동행하시는 겁니다

방종하면 주님 손해 아니냐

어차피 불 속에 들어가서 불과 함께 동행하기에
주님 손해 보는 것 없으니
별에 별 걱정 하덜덜 마시고
본인이나 걱정 하라 말이죠

이것이 정답이 찾아내시는 문제아 탕자입니다

마른뼈입니다

왜 주님은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하시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겁니까?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19:10,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아무것도 자랑 할 것이 없기에
주의 이름만 자랑하라꼬

의사의 의술을 자랑하라꼬 말이죠


자 이렇게 마태복음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즉 끝까지 유대인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 골라서 말이죠

인간 거부 인간 배제 인간의 믿음
인간의 행함을 끝까지 거부하시겠다 라고

유대인 곧 모든 종교 모든 인간의 그 어떤 접촉 시도를
원천 차단하는 식으로써

오로지 예수님의 새성전의 기능만을 밀어붙이는 식으로만 마태복음을 끝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밀어붙이시는 이 필요한 양식
일용할 양식 말이죠

(잠 30:8, 개역)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마 6:11, 새번역)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 ㉠또는 '일용할 양식'

(마 6:6, 개역)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7, 개역)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개역)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9, 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개역)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1, 개역)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2, 개역)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3, 개역)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나라, 권세, 영광, 이 모두가 주님의 죽으심으로부터 온 믿음입니다
세상자랑인 패역함을 물리치는 새 마음 회개의 영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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