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설교요지》 2009년 7 월 26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사람들끼리 모이는 유월절과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유월절이 다릅니다. 사람들의 유월절에는 악마가 동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하나님 뜻하고는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원해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배제한다는 사실을 아는 자만이 구원에 초청된 자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몸이란 자기 몸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몸입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마가복음 14:27-28 흩어지고 모이는 제자들
모임이 결정되다가 흩어지면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졸지에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 흩어짐의 현상을 통해서 그동안 멤버들이 무엇을 쳐다보면서, 무엇을 기대하면서 모였든가 라는 내막이 밝혀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목자를 치니’ 흩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 목자 중심으로 뭉쳐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죽어도 자기네끼리 목자가 남기신 장한 정신을 받들어서 다시 똘똘 뭉치든지 아니면, 자기네들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순식간에 흩어지게 된다는 말은, 구심점이 되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오로지 자신의 목숨 부지에 유리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대처요령을 두고 오늘 본문에서는 ‘기록된 바’라고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선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시선입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불리하다고 여기는 것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님의 선택에 의해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지만 생각은 딴 판입니다. 오로지 자기 생각이 우선입니다. 예수님 우선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붙어 다녀도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자기 밖에 세워둔 사물체 같은 대상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자기 안까지 예수님이 파고 들어오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것이 제자들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흩어짐’을 통해서, 그래서 다시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옴을 통해서 예수님의 자리와 자기 자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밝혀집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 위주’가 아니라 ‘예수님 위주임’을 알게 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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