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서영이(죄인 중의 괴수=마귀)가 구원자 이랑께요??
서영이를 보면서 어머니랑 토론이 벌어졌다.
어무이 오늘 설교에 나왔듯이 서영이가 저 선악과를 먹은 인간들 속에서
구원자 노릇을 하는 선지자 랑께요
그래 맞네 맞네
선악과 먹은 인간들은 절대 용납 못하지만
정작 서영이로 인해 그 가정이 구원받았는데 말야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거짓말이라는 것이 없는데
자꾸 거짓말 했냐 안했냐를 목숨까지 걸면서 확인할려고 한다.
(자신의 소유물이 되지 않아, 대상물에서 벗어나니 공포와 불안으로 변한 것이다. 의심증)
한번은 강이아빠에게 가족끼리는 거짓말을 해도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다 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우리 인간은 바로 이 거짓말을 자기유익으로 이용해 먹는다.
사랑이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전혀 사랑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사랑에 의해서 소유당한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대상으로 소유할려는 사랑을 펼치려 한다.
그러다 보니 허물이 보이면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허물이 서로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적나라하게 속내를 들추어내는데 활용이 된다.
그러나 스캔달이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되는 셈이다. 비사랑이 참사랑이요, 정(正)사랑이 마귀적이다.)
오히려 참말을 함으로써 사랑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가짜사랑을 쌓는 모래위에 집을 짖는 것과 같다.
반석 위에 집을 짖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신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베드로 (반석)이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하게 하실려고
음부의 권세 속으로 집어 넣으신다.
양을 이리 떼 속에 집어 넣듯이 말이다.
상처는 찌른 창에 의해 치유 되듯이
저주는 저주 속으로 집어 넣으면 저주가 없도록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 속으로 집어 넣으신다.
심판이 없는, 정죄함이 없도록 하시기 위해
심판 속으로, 정죄함 속으로 집어 넣으신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가짜 사랑만 있었으면
단 한번도 참사랑이 없었으면
거짓말을 하면 바로 법적으로 가정이나 사회나 심판이 펼쳐지는
법적인 세계임을 제대로 보여주는지
참사랑이 와서 거짓말하도록 해도
그것이 전혀 진리로 듣기질 않는다.
아무리 거짓말을 안하고
바르고 옳은 말을 입안에 가득채우면서 살았어도
정작 우리의 손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거리낌없이 주저함이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거짓말 하는 인간을 만나면 당장 심판해 댄다.
일만 달란트 용서의 탕감을 받았으면서도 불구하고
(하루일당 1 데나리온 기준, 6천 데나리온 일달란트 , 10,000 곱하기 60,000,000 데나리온, 6억 일, 160만년, 12-42조)
100 데나리온 띠먹고 도망친 친구는 용서를 하지 못한다.(마18장) (160만년 빚진자, 160만년 묵은 산삼 ㅋㅋㅋ)
얼마나 법적인가?
말도 다 할수 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은혜를 외면하고 법적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는 저주 받은 몸
줘도 못 먹는 이 은혜를
무슨 수로 감당하랴?
감당 못하면 저주 받아 마땅하다.
삼생이를 보다가 너무 너무 은혜로운 장면을 봤다.
500년 묵은 삼산을 먹은 아이 삼생이가
원장(나중에 아버지로 밝혀질)으로부터
더 이상 법적인 언어가 아닌 법 밖의 언어를 듣는다.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해서일까?
모든 것을 먹어도, 그 어떤 것을 먹어도, 도라지를 먹어도 500년 묵은 삼산을 먹는다고 생각하라고
캬 이게 복음이다.
뭐든지 주께 하듯 하라 이다.
뭐를 먹어도 무슨 일을 격어도 어떤 상황이여도
모든 범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4000년 묵은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그러니 죽어도 상관 없다.
그 죽음 조차도 4000년 묵은 살과 피다. 160만년, 묵시 곧 계시를 먹는 것이다.
밥 묵을 때 마다 이런 대화를 하니까
어무이랑 나랑 서로 너무 너무 감사하다가
그것도 매일 매일 반복하다 보니
바로 식상해져 처음느낀 감동 보다 싸늘해 졌다.
이 정도로 인간의 몸은 선악적이다.
이 선악의 몸을 빨리 빨리 심판 받아야 할 것이다.
삼생이가 묵은 것보다 더 오래된 참 생명되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은 우리
(요 6:5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왜 이 놈의 눈은 딴데로 향하는지?
아들의 혼인잔치를 벌리는 임금님 비유를 나누면서
얼마나 신나는 잔치였는지
어서 그 종말이 심판 잔치가 벌어지길 바랄 뿐이다.
주님이 준비한 것이 아닌 것들은 어서 어서 빨리 불태워 지는
똥덩어리로 취급받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신나는 종말잔치의 비유를 보면서 소망해 본다.
(마 22: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개역)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8, 개역)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마 22:9, 개역)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 22:10, 개역)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 22:11, 개역)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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