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작년이었나? 코닥 필름 공장이 문을 닫는 지구촌뉴스를 봤는데


이 영화는
피로의 인간인 근대인간이냐(사이버)? 
아니면 근대인간을 탈출하는 인간이냐?(동물 되기)


마치 천개의 고원 이라는 책이 생각 났다.
자본주의라는 상상에서 근대인간 이전의 인간은 비현실적인 존재이고
근대 인간 이전의 사람이 지금 현대인(근대인)을 보게 되면 사이버인 상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빨간약 먹을래? 아니면 파란약 먹을래?


빨강은 근대인들의 시선에서는 욕망으로 취급당하는 금지이다. 
매트릭스가 생각났다.


욕망하라, 타락하라
그래서 디지털이 된 사회에서는 욕망이 거세된 입장이라
모든 수작업들은 다 사라지게 된다.


필름은 마치 이 수작업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의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욕망을 일깨운다.


꿈 곧 빨강은 현실이 되고
현실(무기력한 삶)이라고 우기던 사이버(디지털)는 이 역동성(욕망 빨강)에 밀려나야 할 대상이 된다.


처음 장면인 이 관계도
사이버 디지털 기계로 만남을 가질려는
윙크 날리기가 고장으로 인해서
진짜 만남이 아니면 접근할수 없는 차단이 되는 것이다.


디지털이 고장나면
즉 매트릭스처럼 통제시스템이 고장나면
만남의 관계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넘어서겠는가?


갑자기 아일랜드가 생각나네 ㅋㅋㅋㅋ

복제인간은 진짜 인간이 되고 싶어하고 (피노키오 = 거짓의 역량)
진짜 인간은 시스템에 갇혀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수작업 곧 필름을 찾아나선다.
바로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그 하나 마나 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프루스트)
프루스트 처럼 잃어버린 시선(눈)을 찾아서


그것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보다 먼저 있었던 닭의 울음을 들어야 하듯이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이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누가 꾀던가?
눈은 유일한 응시물
밝히 보이는
다른 것은 유혹 꺼리도
욕망 꺼리도 안되는데?


디지털이 아닌

진짜 만남 말이다.

이것이 역동성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이 순간을 즐긴다.


노예들이 이 순간(우연, 우발, 단절)들을 다 잠식해 버리겠지만
겸손한자 위버맨쉬는 노예들에게 잠식당해
결국 그들이 승리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꿈을 꾼다.

그 와의 짜릿한 만남을 위해 ~~~~~~~~~~~~

너 자신을 알라
너의 자리를 아느냐?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지젝

인간은 아는 것이 쥐뿔도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And there's nothing I can do.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A revised version of David Bowie's Space Oddity, recorded by Commander Chris Hadfield on board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Note: This video cannot be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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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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