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혈전

 

복수혈전, 복수탄핵, 복수의 날


 

노무현 탄핵에 대한 복수로 드디어 그 억울함을 해소하는 날이 되었다.

노무현을 자살로 몰아간 놈들 드디어 심판의 날이다.

전원 사퇴를 해서라도 복수 해야만 한다.

 

자 그래서 복수를 드디어 갚았다 치자

 

과연 끝날까?

 

오히려 챗바퀴처럼 이 의문의 제사는 반복 된다.

 

마침도 없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갇힌바 된 것이다.

어디에 갇혔는데?

육에 몸에 갇혔다.

 

딴 몸이 와야만이 이 의문의 반복임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닌 내 속의 죄가 이 의문의 반복을, 이 모호한 흐릿한 것을 반복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어서 그렇다.

 

저런 사단의 얕은 것에 말려들 뿐이지
(복수해 복수 너 억울한 것 갚아야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볼 생각 조차 안한다.

 

그래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고

도대체 왜 저런 의문의 반복을 원하냐고

또렷한 십자가의 용서

770번의 용서 가 있는데 누가 꾀냐고?

 

!~~~ 남을 7번 용서 하면 되지 않냐고? 7번 용서가 결국 복수다.

 

인간들은 정의라는 이름하에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하에

복수혈전을 할 뿐이다.

그 의문의 제사만을 반복 할 뿐이다.

 

도리어 구체적 보편성인 진리 곧 십자가의 지혜(하나님의 깊은 것)

너무 너무 괴팍하게

아이를 두 동강 내라고 한다.

 

이 죽음에 이 심판에 이 부조리에

상한 심령이 되는 자를 찾는 것이다.

버린돌이 머릿돌 되는 부조리의 부조리이다.

 

서로가 서로의 탄핵을 외치는 복수혈전에 마음이 다 뻬앗긴 가운데

 

이 두 동강 나야할 나의 심판에

눈물을 흘리면서 뛰어드는 자는 예수님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또렷해야 하는가?

복수의 날이 또렷해야 하는가?

인간의 행동 행함 믿음 모조리 뭘 해도 다 복수심인 이유이다.

신앙심도 결국 복수심이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심판 받은 분이 분명히 보이는데?

과연 누구를 쳐다 봐야 하느냐 말이다.

 

이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은 없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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