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된 긍휼과 멸시 (시편 123)


완료된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123:1, 개역)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123:2, 개역)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123:3, 개역)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123:4, 개역)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오늘 본문에

평안한 자가 조롱하며 비아냥 거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자 곧 먼저 섰다고 한 자는 멸시 무시 경멸 모멸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의 태도들이 성도의 심령에 차고 넘치도록 퍼붓는다고 합니다.

 

(123:4, 새번역) 평안하게 사는 자들의 조롱과 오만한 자들의 멸시가 우리의 심령에 차고 넘칩니다.

(123:4, 공동) 배부른 자들의 비웃음 소리, 교만한 자들의 그 모멸, 이제 그만 지긋지긋합니다.

 

자 그런데 왜 이것을 서두로 꺼내는고 하니

바로 이것이 완료된 모습이다는 겁니다.

아니 미완료라서 벌어지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곧 성전 되신 예수님이 다 이루심으로 나타나는 분리 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완료이기에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즉 기능은 완료성으로써 미래완료를 미리 앞당겨 표절하듯이 나타나는 겁니다.

반대로 존재는 미완료로써 계속 마침이 없는 밑도 끝도 없이 의문의 반복을 할 뿐이다 말이죠.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56:8, 개역)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56:8, 새번역) 나의 방황을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 또는 '주님의 두루마리에 기록해 두십시오'

(56:8, 공동) 나의 한탄을 기록해 두소서. 이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아두소서.

(56:8, 킹흠정) 내가 떠도는 것을 주께서 세시오니 내 눈물들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것들이 주의 책에 있지 아니하나이까?

(56:8, 한글킹) 주께서 나의 방황함을 말씀하시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것들이 주의 책에 있지 아니하나이까?

(56:8, 현대인) 주는 나의 슬픔을 아십니다. 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내 눈물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56:8, 현대어) 이것이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 주께서는 다 헤아리고 계시오니 나의 눈물을 주님의 항아리에 담으소서. 주님의 책에 기록해 주소서.

 

즉 광야에 유리하고 떠도는 모습을 계수 하였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이 되었기 때문이다고 합니다.

즉 이것이 아닌 것은 주의 책에 기록이 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 유리하고 떠도는 모습이 미완료로써가 아니라

완료이기 때문에

주의 병에 담겨서 주의 책에 기록이 되었기에

창세전에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즉 완료이다는 거죠.

 

미래 완료를 표절 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미리 앞당겨 누리는 거다 말이죠.

미완료가 아니라 말이죠.

 

그런데 오히려 저들은 십의 이조를 드리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어릴적부터 율법을 어긴적 없다는 그것을 완료라꼬 들이내밀더라 말이죠.

 

아니 이것 보다 더 또렷한 것이 어디있을까요?

그런데 주님이 그럼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나누어 주어라 라고 했을때는

다들 부러워 했던 완료된 모습이

완전히 순 엉터리 모습이였다는 거죠.

 

오히려 다들 눈길 조차 주지 않았던

유리하고 떠돌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완료이기는커녕 저주를 받아서 아무도 쳐다도 안 보았는데

저게 무슨 완료이고 저게 무슨 또렷한 명료함이겠냐 라고

싫어버린바 되어서 다들 고개를 돌렸는데

 

바로 이것이 진짜 또렷한 명료함이였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 자체가 이미 완료로써 벌어지는

거룩으로 분리 차리 구별 시키는 겁니다.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더라 말이죠.

이것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미 완료 되었다고 승리의 나팔을 불면서

미리 나누어 먹기하면서 누리듯이

배에는 쓰나 입에는 꿀처럼 달기 짝이 없는

이것이 바로 주의 인자하심 이다는 겁니다.

 

밤에는 주의 성실함으로 다 수셔대고 다 들통내고 다 지근 지근 밟아버렸는데

아침에는 주의 인자하심으로 아침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즉 저들은 이 아침을 맞이 하지 못하고 계속 어두움 속에서

계속 늑대들의 배고픔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채울수가 없는 입구멍 자체가 지옥이라서

밑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본들 새기 때문에

 

이런 완료를 거부하는 겁니다.

 

그들은 주의 인자하심을 싫어하기 때문에

십의 이조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의문의 반복을 자랑하면서

세뇌 시키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완료로써

저들에게는 멸시

우리 성도들에게는 긍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 완료이기 때문에

정작 역사 속에서는

곧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써는 자신이 멸시 받은 것을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성도들에게 멸시를 퍼붓는 겁니다.

 

성도는 그 멸시를 통해서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의 완료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우는 자는 복 되도다 라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 되도다 라는 겁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 되도다 라는 겁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 되도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다 라고

미완료가 아니라 완료이기 떄문에 의에 주리게 되고 목마르게 되고

애통하게 되고 마음이 가난하게 되는 겁니다.

 

(5:1, 개역)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2, 개역)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5:3, 개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5:4, 개역)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개역)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개역)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5:7, 개역)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개역)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개역)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개역)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5:11, 개역)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개역)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6:17, 개역)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6:18, 개역)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6:19, 개역)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6:20,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6:21, 개역)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6:22, 개역)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6:23, 개역)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6:24, 개역)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6:25,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6:26, 개역)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6:27, 개역)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6:28, 개역)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6:29, 개역)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6:30, 개역)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6:31, 개역)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6:32, 개역)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6:33, 개역)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6:34, 개역)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6:35, 개역)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6:36, 개역)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이것이 성전에 올라가서 부르는 노래로써

우리에게 덮쳐지는

주님의 인자하심

곧 창세전에 유일하게 기록된 십자가의 피 영광입니다.

 

그러니 누가 당신을 미워하거든

그래서 멸시 받으면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6:22, 개역)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6:23, 개역)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것이 주의 인자하심 곧 십자가의 지혜 때문에

곧 창세전에 주의 책에 기록된 십자가의 피 용서 때문에 벌어지도록 되어 있는

거룩한 말씀이 벌리시는 십자가 사건 곧 분리 구별 차이의 십자가의 반복입니다.

 

이미 완료이기에

 

그러나 미완료는 존재에게 어떻게해서든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이 남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비웃고 비아냥거리고 경멸하는

배가 불러 평안한 자이고

선줄로 알고 있는 교만하고 오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마 19:30, 개역)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 20:16, 개역)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막 10:31, 개역)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눅 13:30, 개역)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고전 10:12, 개역)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들도 어쩔수 없어요

주의 인자하심 때문에

그런 모습에서 절대로 못 벗어나는

어두움 속에서 못 벗어나 배고픈 늑대처럼

아침을 절대로 맞이할수 없는

 

눈물로 씨앗을 뿌림으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지 못하는 자의 모습

그것도 이미 완료된 채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저들의 모습인 겁니다.

결국 주의 인자하심이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3일의 간극이다고 했습니다.

곧 심판 속에서의 구원입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는 심판받는 모습으로 보이고

정작 심판 받은 자는 남을 멸시하기 바쁜 모습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겸손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 조차도

예수님 앞에서는 본색을 드러냅니다.

늘 그들은 언제 예수를 죽일꼬 라고 했듯이 말이죠.


그렇기 때무에 바로 십자가만이 기록이 되었기에
시온에 거치는 반석인 십자가를 두시는 겁니다.


왜? 십자가만이 또렷하고 명료한 밝히 보이기에

십자가로 두 패로 갈라 버린 완료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다른 것은 주의 책에 기록도 되지 않은 것이고

또한 모호하고 의문의 흐릿한 반복일 뿐입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

 

(3:1, 개역)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롬 9:1, 개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2, 개역) 『[1절과 같음]』

(롬 9:3, 개역)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4, 개역)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5, 개역)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6, 개역)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롬 9:7, 개역)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롬 9:8, 개역)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9, 개역)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롬 9:10, 개역)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롬 9:11, 개역)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2, 개역)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개역)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개역)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24, 개역)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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