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시편 147)

 

흩으신 자를 모으시는 십자가의 다 이루심

14-14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시편 147편).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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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새번역)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53:6, 공동)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147:1, 개역)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47:2, 개역)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147:3, 개역)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147:4, 개역)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147:5, 개역)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147:6, 개역)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147:7, 개역)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147:8, 개역)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147:9, 개역)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147:10, 개역)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147:11, 개역)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47:12, 개역)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47:13, 개역)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147:14, 개역)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47:15, 개역)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47:16, 개역)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47:17, 개역)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147:18, 개역)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47:19, 개역)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147:20, 개역)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147:1, 새번역) 『㉠할렐루야. 우리의 하나님께 찬양함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하나님께 찬송함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마땅한 일인가! / 또는 '주님을 찬송하여라'

(147:2, 새번역)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신다.

(147:3, 새번역)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치시고, 그 아픈 곳을 싸매어 주신다.

(147:4, 새번역)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신다.

(147:5, 새번역)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니, 그의 슬기는 헤아릴 수 없다.

(147:6, 새번역) 주님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며, 악인을 땅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이다.

(147:7, 새번역)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러드려라. 우리의 하나님께 수금을 타면서 노래 불러드려라.

(147:8, 새번역) 주님은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내릴 비를 준비하시어, 산에 풀이 돋게 하시며,

(147:9, 새번역)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

(147:10, 새번역)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힘센 다리를 가진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147:11, 새번역)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147:12, 새번역) 예루살렘아, 주님께 영광을 돌려라.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147:13, 새번역) 주님이 네 문빗장을 단단히 잠그시고, 그 안에 있는 네 자녀에게 복을 내리셨다.

(147:14, 새번역) 네가 사는 땅에 평화를 주시고, 가장 좋은 밀로 만든 음식으로 너를 배불리신다.

(147:15, 새번역) 주님이 이 땅에 명령만 내리시면, 그 말씀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147:16, 새번역) 양털 같은 눈을 내리시며, 재를 뿌리듯 서리도 내리시며,

(147:17, 새번역) 빵 부스러기같이 우박을 쏟으시는데, 누가 감히 그 추위 앞에 버티어 설 수 있겠느냐?

(147:18, 새번역)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니,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른다.

(147:19, 새번역) 주님은 말씀을 야곱에게 전하시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알려 주신다.

(147:20, 새번역) 어느 다른 민족에게도 그와 같이 하신 일이 없으시니, 그들은 아무도 그 법도를 알지 못한다. 할렐루야. / 또는 '주님을 찬송하여라'

 

(8:17, 공동)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그분은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이사 53:4.

(22:37, 공동) 그래서 '그는 악인들 중의 하나로 몰렸다.' 하신 말씀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한 기록은 다 이루어지고 있다." 하셨다. / 이사 53:12.

(12:38, 공동)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주여, 우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으며 주께서 보여주신 능력을 누가 깨달았습니까?" 한 말이 이루어졌다. / 이사 53:1.

(8:32, 공동) 그가 읽던 성서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 이사 53:7-8.

(10:16, 공동)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 우리가 일러준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이사야도 한탄한 일이 있습니다. / 이사 53:1.

(9:28, 공동) 그리스도께서도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주셨고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 당신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 이사 53:12.

(벧전 2:22, 공동)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 말씀에도 아무런 거짓이 없었습니다. / 이사 53:9.

(벧전 2:24, 공동) 『㉠그분은 우리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매맞고 상처를 입으신 덕택으로 여러분의 상처는 나았습니다. / 이사 53:4, 12.

 

(55:1, 개역)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2, 개역)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http://crosslamb.tistory.com/1913

  

 

지난 시간 시편 146편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 때문에

율법은 죄 아래로 가둔다고 했습니다.

전 남편과의 이혼은 바로 새 남편과의 결혼 때문이다는 거죠.

그러니 이 다 이루심 때문에 기존의 모든 것은 허물어져야만 하는

새 것의 통치를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곧 십자가의 통치 입니다.

 

오늘 시편 147편은 흩어진 자를 모으신다고 하십니다.

즉 우리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의 성취를 보기 위해서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보기 위해서

각기 제 길로 가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도록

율법 아래에 가두어, 죄 아래 가두어짐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마귀에게 포로되도록 말이죠
.


? 그 정도로 십자가가 또렷하다는 겁니다.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그럼 누가 꾀는가 라는 속임수를

바로 그에게 감당시키셨도다를 통해서
안 속는 재미를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

 

그 정도로 모든 허물을 담당 하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방종 유도라는 둥 성령은 단절이 아니라 다양성이고 개방적이라는 둥

막살면 안된다는 둥 

자꾸 이렇게 사기를 치는데
그 속임수를
바로 그에게 감당시키셨도다를 통해서

안 속아 넘어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 발림의 증상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 발림의 피조물이요 증상물입니다.

막살면 안된다고 다들 외치는데 그 속임수에 안 속는 이유가

십자가의 피 발려서

어린양 나라에 속해 새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저 기존의 헌 노래에, 가인과 라멕의 노래에 안 속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능력입니다.

 

능력이라고 하니까

대로 큰 길가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에게

회개의 달인인 그것이 능력이라고 우기는 자들에게 그게 능력이 아니라

 

정작 저는 회개 할 줄 모릅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벙어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십니다.

즉 힘 빼는 능력이 십자가의 능력 곧

세상 또는 종교의 능력의 거꾸로 방향으로써

저 분이 나의 죄악을 담당하실 분입니다.

저는 회개 할 줄 모릅니다.

그 정도로 나의 원수됨을 저 분이 담당하셨습니다 라고

저 분을 말하는 것이 바로 막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인

개같은 이방인과 같은 탕자가 외치는 회개입니다.

 

그래서 흩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목마르게 하셨고 배고프게 하셨고

멀쩡히 부모가 있는데도 고아 라고 과부 라고 나그네 이다고

그렇게 만드셔서

기업이 되어주시고 새남편이 되어주시고 임금이 되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섬김입니다.

 

이 섬김이, 이 대신 허물을 담당 하심은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부어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껍데기 이스라엘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시아버지 유다와 같이 조상대대로 믿어온 믿음의 가문이라는 주장입니다.

믿음은 세습이 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단절의 족보를 보여주실까요?

머슴아 남자들의 원조라고 우기는 개차반 믿음에
개같은 이방인 여자가 정작 믿음을 단절로써 잇습니다
.

여성 자체가 부정한 자로써 족보에 오를수도 없는데

올라왔다는 것은

~~ 에게서 족보 (라합에게서, 다말에게서, 룻에게서,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마리아에게서)

결국 남자들을 다 짤랐다는 겁니다. 할례죠,
성령의 일은 단절성이다는 겁니다. 

육의 통로를 허용하지 않고 단절 시켰다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시아버지 유다는 믿음의 가문이니 혈통이니 이스라엘 혈통이니 우기는데

하필이면 저 죽일놈의 이방여자 때문에 가문의 위기가 벌어졌다고 다 뒤짚어 씌워서 왕따시키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여자를 짤라내는 방법을 구상하는 겁니다.

마치 유대인이 여자의 후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자 상의하는 방식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보다 더 옳았다 라고

본인이 정작 짤려야 하는데

저 여자의 후손이 대신 감당함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알았으니 절대로 각기 제길로 가지 말자, 막 살지 말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담당하셨도다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 담당 때문에 죄인을 찾으시는 겁니다.

각기 제 길로 가는 그릇 행하는 다 양같은 자를 찾으신다는 겁니다.

무엇이? 피가?

? 피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말이죠.

 

왜 그래야 되는데?

아니 왜 흩어져야 하고 왜 각기 제 길로 가야 하고

왜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처음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의 민족성이나 혈통 또는 믿어서 이스라엘이 되었다

그렇게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이스라엘은 존재의 개념이 아니라 바로 기능의 의미이기에

처음자리 처음사랑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존재가 아닌

어떤 기능이냐 라는 겁니다.

 

처음자리이다는 겁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고 하니

이 처음자리 처음사랑을 잊어버리면

자꾸 존재성을 주장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기능입니다.

그 기능이 바로 개같은 이방여자 며느리 다말이다 말이죠.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이 존재는 자신의 존재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곧 자아죠

반드시 빠뜨리는게 있습니다.

속이는게 있어요

나 라는 존재는 나를 늘 속이는게 있어요

그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입니다.

이것을 마귀는 항상 빠뜨리면서 속입니다.

 

놀랍게도 자칭 기독교라고 하는 오늘날 목사들이 대부분

이 부분을 사기를 칩니다.

 

시아버지 유다처럼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써

그거 하나만 빠뜨리고서 모든 것을 동원해 다 속이는 겁니다.

 

성화론, 개혁주의, 모든 종교, 모든 철학사상

다들 한결같이 마치 짠것처럼 이거 하나만은 절대로 숨기자

말하지 말자 라는 것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만큼은 그럴수가 없습니다.

바로 막사는 자 탕자가 오직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써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막사는 자로

부정한 개같은 이방여자로
창녀 며느리 다말로

불의한 청지기로써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운 십자가의 지혜를 나타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 양같이 각기 제길로 가는 것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가 나타나길 고대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234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고방식이 아닌

거꾸로 끝에서 현재로 쳐들어 오는 천국의 침략입니다.

미래완료에서, 종말에서 쳐들어오는 십자가 사건의 처음사랑 찾기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겁니다.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구원자입니다.

환자를 찾는 의사입니다.

 

자신의 기능, 곧 십자가의 피 용서의 기능을 과시하고 싶어서

피흘리신 사랑의 기능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려 주고싶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흩으시는 겁니다.

 

예상치 못한 기쁨을 주고파서

아무도 못 배우고 못 부르는 새노래를 부르게 하실려고

 

슬픔으로 울게 하시는 겁니다.

 

우는 자가 복있거든요.

 

그 아무것도 없었던, 한게 없었던 그 자리가 바로 처음자리

곧 그에게 감당시키셨도다가 만드신 자리였었던 것이었던 것이였습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 때문에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길로 가야만 했던

그릇 행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죄수복을 입고자 피 발라 주신 주님의 피를 자랑하는 겁니다.
그래야 마귀가 덮썩 물거든요.

 

그런데 마귀의 속임수는 그릇 행하면 안된다고 막살면 안된다고 합니다.

?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어떻게 해서든 빼먹을려고 안알려줄려고 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기쁜소식을 희년을 복음을 안 알려줄려고 한다 말이죠.
그저 명령어만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목사들의 주장입니다.

목사들은 오히려 죄 짖게 만들어야 자신들이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있다 말이죠.

 

뭐뭐 하라 뭐뭐 하지 말라 라고 명령어를 심어버리면

뭘 해도 죄 짖도록 되어 있거든요?

 

음녀의 비밀이 뭐라고 했습니까?

거룩을 아는데 그래서 제사장 딸이다고 했지요

그 거룩을 알면서도 그 거룩에 대한 반발성을 드러내고 거부하는 것이다고 했지요?

그래서 선지자와 성도를 죽여서 그 피로 붉은 옷을 해 입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짐승나라의 매매 소통방식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목사요 음녀죠

이 짐승의 나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교회들입니다. 국가정치입니다.

성당, 절간. 사원은 뭐 두 말할 것도 없구요.

 

예수님 당시의 성전과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이 예수님의 음성을 감추는 것이 음녀 곧 마귀들의 특징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알려주니까

막살면 안된다고 교회에 자꾸 나오도록 해서

교회 유지

성전 유지

절간 유지

성당 사수 짖을 벌리더라 말이죠.

그런 명분을 내세워 목사 자신의 생존을 꿈꾸는 겁니다.

 

그래서 그 성전 허물었잖아요

진짜 성전 보라고 삼일 만에 다시 세워지는 성전

 

3일 만에 다시 세워지지 못하는 성전은 가짜다 말이죠.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지지 않는 성전은 가짜다 말이죠.
곧 주의 인자하심(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그에게 담당 하셨도다)을
못보여주는 성전은 가짜다 라는 겁니다.

못하기 때문에 대처방안 대안으로
명령어 지키기에 빠뜨리는 겁니다.

 

성전 자체가 이스라엘 자체가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처음자리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저 분이 옳았다 라고

 

이 성전은 각기 제길로 갔다고

이 이스라엘은 다 양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다고

그래서 저 분을 쳐다보라고
나 자신을 쳐다보지 말고 저 분이 담당하셨다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분이라고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분은 저분 뿐이다고
나 아니요 저 분을 보라고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고


마귀가 절대로 못하는 말을
하는 자가

바로 막사는 탕자

오직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써 외치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147편에서 다윗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다윗 본인이 양같아서 제 길로 가는 그릇 행하는 자로써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 라고 마귀가 절대로 못하는 말을

외치면서

십자가의 다 이루신 나라를 보라 라고

이스라엘 쳐다보지 말고 이스라엘은 도리어 저 십자가를 보라고

처음자리로써 처음사랑으로써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고 저분을 보라고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새로운 증거였으면 무슨소리인지 모르는 겁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쳐다보라고 했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귀신들린자 문둥병자 소경 등등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다윗 손가락이 가리킨 예수님이여

나를 고쳐주소서 라고 외치는데

 

정작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 대제사장은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외친

다윗의 외침을 무시하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외치는 자들의 외침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설려고 하는

음녀의 짓을 하더라 말이죠.

 

마귀의 특징

오늘날도 똑같아요

자꾸 속여요

말을 안해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자꾸 빼먹고

 

어떻게 해서든 눈에 보이는 성전 종사자들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말을 못하도록 막아설려고 한다는 겁니다.

거룩을 알면서도 거룩을 거부하는 음녀인 제사장 딸의 짖을 하더라 말이죠.

 

아이구 바보들 이미 완료되어서 또렷하게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그 속임수가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속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아무나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악령을 받지 아니하면 못한다 말이죠.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 속임수에 다 넘어가고

막살면 안된다 라는 광명한 천사의 말에 다 속아 넘어가더라 말이죠.

논리가 "아 그러면 막살아란 말이냐" 라는 반박 밖에 못해요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 짖자 라는 방종을 막겠다고 또 속여요 글쎄

존재이니까 막사는 존재가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것 밖에 모르니까 속는 겁니다.

 

존재의 차원에서만 자꾸 따지는 겁니다. 방종이냐 아니냐 로만
기능은 그 반대입니다
.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는 것을 말하도록 되어 있는 기능이기에

죄인이 되는 겁니다.

즉 의사 구원자를 말하기 위한 기능이다 말이죠.


두 소경이 고래 고래 고함을 치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말하는 기능이다 말이죠.

맞습니다 맞고요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고 외치는 기능이
노래하는 기능이 바로 이스라엘인데

정작 유대인들은 처음사랑을 버렸다는 겁니다.

 

 

(9:27,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9:28, 개역)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9:29,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9:30, 개역)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9:31, 개역)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9:32, 개역)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9:33, 개역)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9:34, 개역)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9:35, 개역)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9:36, 개역)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9:37, 개역)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9:38, 개역)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2:12, 개역)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2:13, 개역)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2:14, 개역)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12:15, 개역)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12:16, 개역)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12:17,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12:18, 개역)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2:19, 개역)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12:20,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12:21, 개역)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2:22, 개역)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12:23, 개역)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12:24, 개역)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12:25, 개역)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12:26, 개역)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2:27, 개역)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12:28, 개역)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12:30, 개역)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12:3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12:32, 개역)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5:21,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15:22, 개역)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15:23, 개역)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15:25, 개역)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5:27,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15:28, 개역)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0:30, 개역)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20:31, 개역)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21:9, 개역)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21:15,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22:42, 개역)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10:44, 개역)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5,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6, 개역)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10:47, 개역)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0:48, 개역)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0:49, 개역)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10:50, 개역)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10:51, 개역)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0:5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8:35, 개역)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18:36, 개역)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18:37, 개역)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18:38, 개역)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8:39, 개역)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8:40, 개역)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18:41, 개역)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8:42, 개역)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18:43, 개역)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특히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외쳤기에 유대인 보란 듯이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친다.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처음사랑 처음자리를 외치는데 있어서
정작 바리새인들은 음녀들은 이 다윗의 자손이여 라로 고래 고래 외치는 외침을 막고자 한다
)

 

물론 바리새인 대제사장은 이것 조차도 반박하지요.

오늘날 막살면 안된다 라고 하는 자들도 똑같아요.

고함치면 안돼 조용 조용히 하라 라는 겁니다.

 

존재의 논리에 빠뜨릴려고 한다 말이죠.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원인에 따른 결과만 본다 말이죠.

 

그런데 묵시는 시간의 거꾸로

거꾸로 라고 하니까 결국 순서에 따르니까 그것도 시간이지요.

시간의 뒤죽박죽 타임슬립 조차도 뛰어넘는

묵시 마음대로

900년 전 엘리야와

1300년 전 모세를 한 자리에 모아서

그것도 불가능하지만 죽어달라고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보여달라고

즉 시공간을 없애버려 달라고 하는 그 자체가

즉 원인 없는 결과를 다 이루어주소서 라고 외치더라 말이죠.

 

결국 모세도 엘리야도 이렇게 외친 셈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꼬

 

이스라엘은 존재가 아닌 기능입니다.

역사적 존재가 아닌 구지 존재로 표현하면 존재 아닌 비존재로써의 묵시적존재로써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만 외치는 기능 밖에 없다 말이죠.

 

흩으신 자를 모으시는 주여 라는 겁니다.

 

이 분이 곧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라는 그분이

어떻게 흩으셨다가 다시 모으시는지를 보여주시는데 있어서

마귀는 어떻게 이 십자가에서 다 모으심 다 이루심을 어떻게 거부하소 반발하는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는 꾀임을 속임수를

우리는 목격케 되는 겁니다.

 

이 주의 인자하심 만이 창세전에 기록되었기에

이 주의 인자하심 곧 간극 잃어버렸다 다시 되찾는 간극으로써

마귀가 어떻게 활동하는 지를
주의 인자하심을 어떻게 반박하는지


십자가가 넉넉히 다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인 없는 결과로 마귀의 활동 조차도 보게 되는 겁니다.

 

그 정도로 넉넉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마귀가 절대로 말할수 없는

말하더라도 그 말을 어떻게 해서든 속일려고 하는
완벽한 논리
(철학과 신학)를 펼치는지를


이미 완료된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통해서

이 마귀 조차도 승리하신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왜? 이미 승리하고 들어가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피 전쟁을 다윗은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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