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의 교만? 과 다윗의 후손 (16; 1-14)


 

(16:1, 개역) 너희는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16:2, 개역)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16:3, 개역)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 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16:4, 개역)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16:5, 개역)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16:6, 개역)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16:7, 개역)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16:8, 개역)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16:9, 개역)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16:10, 개역)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16:11, 개역)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나의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16:12, 개역)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16:13, 개역)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16:14, 개역)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16:1, 새번역) 모압 백성아, 예루살렘의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조공으로 보내라. 셀라에서 광야를 거쳐, 나의 딸 시온 산으로 조공을 보내라.

(16:2, 새번역) 있을 곳이 없어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털린 둥지에서 흩어진 새끼 새들처럼, 모압의 여인들이 아르논의 나루터에서 헤맨다. / 여러 성읍의 주민을 뜻함

(16:3, 새번역) 그들이 유다 백성에게 애원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지 말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여 주십시오. 뜨거운 대낮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처럼, 우리가 그대의 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피난민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곳에 우리를 숨겨 주십시오.

(16:4, 새번역) 우리가 이 땅에서 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폭력이 사라지고, 파괴가 그치고, 압제자들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16:5, 새번역)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와 신실과 사랑으로 그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옳은 일이면 지체하지 않고 하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 , '장막'

(16:6, 새번역) 유다 백성이 대답한다. '우리는 모압이 교만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들이 매우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여 화를 잘 내지만, 사실 그들은 허풍뿐이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다.'

(16:7, 새번역) 그러면 모압 백성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못이겨서 통곡할 것이다. 길하레셋에서 늘 먹던 건포도빵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 것이다.

(16:8, 새번역)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원이 황무지가 되다니!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즐겨 마시던 포도주의 산지가 아니던가! 한때는 포도나무 가지가 저 멀리 야스엘에까지 뻗어 나가고, 동쪽으로는 광야에까지 퍼져 나가고, 서쪽으로는 그 싹이 자라서 사해 너머로까지 뻗어 가더니!

(16:9, 새번역) 야스엘이 울듯이, 내가 통곡한다. 말라 비틀어진 십마의 포도나무를 두고 통곡한다. 헤스본아, 엘르알레야, 나의 눈물이 너를 적신다. 여름 과일과 농작물을 거두는 너의 흥겨운 소리가 너에게서 그쳤구나.

(16:10, 새번역) "이제 기름진 밭에서 기쁨도 사라지고 즐거움도 사라졌다. 포도원에서 노랫소리가 나지 않고, 기뻐 떠드는 소리도 나지 않고, 포도주틀에는 포도를 밟는 사람도 없다. 내가 그 흥겨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다."

(16:11, 새번역) 모압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수금 줄이 튀듯 떨리고, 길하레셋을 생각하니,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16:12, 새번역) 모압 백성이 산당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그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6:13, 새번역) 이것이 전에 주님께서 모압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16:14, 새번역)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삼 년 기한으로 머슴살이를 하게 된 머슴이 그 햇수를 세듯이, 이제 내가 삼 년을 센다. 삼 년 안에 모압의 영화가 그 큰 무리와 함께 모두 능욕을 당할 것이며, 남은 사람이라야 얼마 되지 않아, 보잘 것이 없을 것이다."

 

 

지난 시간에 모압에 대한 멸망 경고에 대한 멸망 원인은

원인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멸망입니다.
그러니 원인을 갖추어 조건을 갖추어 원인을 수정했으니 결과 곧 멸망을 수정할수 있는게 아니다는 거죠.

 

자 그렇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흔히 원인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로 따져서 찾다보니

모압과 암몬의 출발이 아브라함 조카 롯의 딸의

음란한 부도덕함으로 인한 출발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멸망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자 그렇게 되면 특별하게 저주 받은 혈통가문이 따로 존재하게 되고

또 그렇게 보게 되면 특별나게 축복받은 혈통이 따로 있게 된다 말이죠

 

말씀은 육에 의해서 성취 되지 않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이삭이라는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났어도

둘이 갈라지게 되는 것은

혈통으로 인한게 아닌

한 부모의 두 자녀로써로도

그것도 쌍둥이로써도

인간이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로

둘은 진노의 그릇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긍휼의 그릇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갈라지는 겁니다.

 

혈통으로 인한게 아니다는 거죠

그러니 모압의 멸망도 그렇게 혈통적으로 볼게 아니다는 겁니다.

 

오히려 원인은 없는채로 결과로 갈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진노이든 긍휼이든 원인 없이 결과로 덮쳐지는 겁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뜻을 말하기 위해서

두 집단 곧 이스라엘과 모압이 동원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혈통적으로 따놓은 당상인냥 구원이 주어지는게 아닙니다.

그 반대죠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주변 국가를 배치시켜서 이스라엘을 돌이키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모압의 멸망을 보고 좋아라 할 게 못 된다 말이죠

그 다음 니 차례인데 우짜노 하신다 말이죠

 

심판 곧 멸망에 대한 해석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당연히 축복 곧 구원에 대한 해석 또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안 주어졌다는 그 증거로

심판도 구원도 엉터리로 해석하는 자들을 주변에 깔아주시는 겁니다.

 

심판은 시간의 순서로 1 2 3 4로 해석하는게 아니라

뭐 잘못 해서 벌 받는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점쟁이들 말이 다 맞게 되고

종교가 인간에게 필요하게 되어버린다 말이죠

바로 이런 해석을 하는 자의 대표성으로 모압을

이스라엘과 차이나게 붙이시는 겁니다

 

즉 우리가 지금 이사야를 하고 있지만

한 참 앞의 출애굽 모세때를 지나 가나안 점령 사사기 때만 생각해 봐도

전쟁만 붙이시는 전쟁으로만 하는게 아니라

심판 또한 붙이시는 심판이다 말이죠

 

이스라엘도 모압도 심판 속에 다 죽는다 말이죠

둘 다 죽는 예수님 당시의 두 강도의 사형장 십자가처형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심판 속에서도 약속의 자녀인 이스라엘은 약속이 뭔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죽음이고 곧 앞의 글 계시록 13장 글에서 언급했듯이 죽임 당한 어린양을 외치는 주의 인애와 자비를 찬양하도록 되어 있고

 

반대로 짐승의 자녀들은 곧 오늘 나오는 모압은 끝까지 짐승을 경배하는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루 아침에 망한다 라는 표현으로

오늘은 다윗의 후손이 보좌에 앉아 인애와 자비로 다스림과 모압의 교만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모압의 교만을 지난주처럼 원인이 소문과 그들의 행함에서 찾으면 안되고

과거가 원인이 되어서 벌 받는다가 아니고

그 반대로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는 말을 못하기 때문에

곧 인애와 자비를 구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배를 위하여 둥지틀기를 찾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찾기 때문에

미래완료에서 덮쳐진 십자가로 인해서 진노의 그릇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는 한 쪽 강도의 특이성 마치 이스라엘의 특이성

곧 긍휼의 그릇을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다른 강도가 동원이 되는 겁니다.

 

발락 왕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동원해서 아무리 저주를 퍼부어도

죽음을 퍼부어도 이스라엘은 죽음 속에 머물수 없고

그 어떤 저주도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드시 모압왕 발락과 브올의 아들 발람의 꾀가 동원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또 마치 에서가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미래완료인 십자가의 지혜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다는 그 이유로

뒤집워 씌움을 당하듯이 말이죠

 

그렇다고 야곱이 옳았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이런 일을 벌리시는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이

곧 말씀 되신 예수님이 말씀을 어떻게 이루시는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이루는 겁니다.

미래완료에서 뒤집어 씌우는 겁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 순서의 원인으로, 심판과 축복을 해석하는게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이 둘의 관계는 빛과 어두움처럼 한 세트로 구성되어서 설명이 되어야만 하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존재가 아닌 기능

 

그러니 사건으로 갈라지지 존재인 시공간이라는 역사가 축복과 저주로 갈라놓는게 아니다 말이죠

 

둘은 역사가 아닌 묵시 곧 계시로만 갈라지는 겁니다.

 

자 그러니 이스라엘에게도 조차! 원인이 없기에

다윗의 자손이 나타나 왕좌에 앉아 인애와 자비로 다스리는 때를 언급하는 겁니다.

 

그럼 이것 때문에 자동적으로 이 다윗의 자손이 나타나 보좌에 앉아 인애와 자비로 다스림을 목격치 않는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교만으로써 자동적으로 모압이 대표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교만하니까 겸손치 못하다고 보는데 그게 아니다는 거죠

 

바로 다윗의 후손이신 인애와 자비로 다스리는 저 겸손한 분을 안 쳐다보는 것이 교만이 되는거다 말이죠

원인 없는 결과다 말이죠

 

자신이 겸손을 갖추어야 교만치 않게 되는게 아니라 말이죠

 

(16:5, 개역)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16:5, 바른) 다윗 장막에서 보좌가 인애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의를 구하고 의를 신속하게 행할 것이다."

(16:5, 새번역)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와 신실과 사랑으로 그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옳은 일이면 지체하지 않고 하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 , '장막'

(16:5, 공동) 선의를 바탕으로 한 보좌가 서리라. 법을 지키고 정의로 신속히 판결을 내리는 자가 다윗의 장막 안에 있는 그 보좌에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앉으리라.

(16:5, 쉬운) 그 때에 자비로운 왕좌가 세워질 것이다. 다윗 집안에서 진실한 왕이 나와 그 위에 앉을 것이다. 그는 공평하게 재판하며 정의로운 일만 할 것이다.

(16:5, 우리말) 인자함으로 보좌가 세워지고 다윗의 장막에서 나온 한 사람이 신실함으로 그 위에 앉을 것이다. 그는 공의를 구하고 지체하지 않고 정의를 행할 것이다.

(16:5, 킹흠정) 왕좌가 긍휼로 굳게 서리니 그가 다윗의 장막에서 진리 안에서 그 왕좌에 앉아 심판하며 공의를 구하고 신속히 의를 행하리라.

(16:5, 한글킹) 그 보좌는 자비 가운데 굳게 설 것이요, 그는 다윗의 성막에서 심판하며 공의를 찾고 의를 신속히 행하며 참으로 그 위에 앉으시리라.

(16:5, 현대인) 한 왕위가 사랑으로 곧게 서고 다윗의 후손 중 하나가 왕위에 앉아 백성을 성실하게 다스릴 것이며 옳은 일을 신속히 수행하고 정의를 실현시킬 것이다.

(16:5, 현대어) 그때에는 다윗의 후손이 왕위에 앉아서 변함없이 진실하게 다스릴 것이다. 그는 언제나 진실하게 판결을 내리고 옳은 길을 찾아서 다스리며 정의 사회를 신속하게 구현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165절을 뽑아봤고

그 반대인 모압의 교만은

 

(16:6, 개역)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16:7, 개역)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16:6, 바른) 우리가 모압의 교만함에 대해 들었으니, 심히 교만하다. 그의 거만과 교만과 무례와 분노를 들었으나 그의 자랑은 헛것이다.

(16:7, 바른)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할 것이니, 모두 통곡하고, 길하레셋의 건포도빵 때문에 슬퍼하고 탄식하며 매우 괴로워할 것이니,

(16:6, 새번역) 유다 백성이 대답한다. '우리는 모압이 교만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들이 매우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하여 화를 잘 내지만, 사실 그들은 허풍뿐이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다.'

(16:7, 새번역) 그러면 모압 백성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못이겨서 통곡할 것이다. 길하레셋에서 늘 먹던 건포도빵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 것이다.

(16:6, 공동) 모압이 건방지다는 말을 우리는 들었다. 뽐내고 우쭐대고 허풍치며 매우 건방지다는 말을.

(16:7, 공동) 그러니 어찌 모압 사람들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슬퍼하여 모두 함께 애곡하지 않겠는가? 키르하레셋에서 먹던 건포도과자 생각으로 가슴이 메게 탄식하리라.

(16:6, 쉬운) 모압 백성이 교만하고 매우 거만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교만할 뿐 아니라 화를 잘 낸다. 그러나 그들은 허풍만 칠 뿐이다.

(16:7, 쉬운) 그러므로 모압이 통곡할 것이다. 모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통곡할 것이다. 길하레셋에서 먹던 건포도 떡을 생각하며,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16:6, 우리말) 우리는 모압이 교만하다고 들었다. 그 찌를 듯한 교만과 자긍심과 우쭐거림과 오만함, 그러나 그 자랑거리들은 허풍이다.

(16:7, 우리말) 그러므로 모압 사람들이 통곡하는구나. 모두가 모압을 두고 통곡하는구나. 길하레셋에서 먹던 건포도 빵을 생각하며 슬피 울며 괴로워하고 있구나.

(16:6, 킹흠정) 우리가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 들었는데 그가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오만과 교만과 진노에 대하여도 우리가 들었거니와 그의 거짓말은 그와 같지 아니하리로다.

(16:7, 킹흠정)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으로 인하여 울부짖되 사람마다 울부짖고 너희가 길하레셋의 기초들로 인하여 애곡하리니 참으로 그들이 고통을 당하였느니라.

(16:6, 한글킹)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그가 아주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과 교만과 분노도 들었으나, 그의 거짓말들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16:7, 한글킹)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모두가 통곡할 것이며, 킬하레셋의 기초들을 위하여 너희가 애통하리니 그들은 반드시 괴로움을 당하리라.

(16:6, 현대인) 모압은 우리가 들은 소문대로 정말 교만하고 거만하구나. 그러나 아무리 모압이 잘난 척해도 그 교만은 헛된 것이다.

(16:7, 현대인) 모압 사람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통곡할 것이며 길-하레셋에서 먹던 건포도빵을 생각하고 탄식하며 슬퍼할 것이다.

(16:6, 현대어) [모압에 대한 조가] 모압이 너무나 교만하고 우쭐대고 건방지고 거만하게 군다는 소문은 우리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떵떵거리는 것은 모두 허풍이었다.

(16:7, 현대어) 그리하여 모압이 이제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모압의 명산물인 포도가 길하레셋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모두 그 건포도떡이 그리워서 슬프게 울고 있다. 이제 모두 신음하며 근심하고 있다.

 

교만이 아니였고 허풍이였는데 정작 울어서 망하는 겁니다. 울어서

 

아니 언제는 우는 자가 복 되다메?

 

그 운다는 자가 내가 되어

그 나가 원인이 되어서 복이 되는게 아니라

 

우는 자는 정작 죽임당한 어린양이지요

그래서 제발 좀 울어라 니 눈물 말고 주님의 눈물좀 봐라 누가 너를 대신해서 울었는지

제대로 복 받은자를 봐라 라꼬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속에 집어넣듯이

 

모압의 교만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교만이 아니라

모압은 교만하다는 소문은 정작 오히려 허풍이였다 말이죠

그들이 망하는 이유는 울어서 망하는 겁니다.

사사기 2장의 보김이 생각나죠 울어서 망한 곳

 

(2:1, 개역)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2, 개역)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2:3, 개역)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2:4, 개역)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2:5, 개역)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즉 왜 우느냐

그들의 둥지가 날라갔다고 둥지틀기가 되지 않는다고 우는 겁니다.

그들의 주요 수입이 포도였는데 그 포도로 유명하던 곳이

포도는 풍요를 말해주거든요 그 정도로 기름진 땅이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기억나시죠

이스라엘 조차도 약속의 땅이 졸지에 척박한 땅이 되는 바람에

열심히 땀흘려 노동을 해서 약속의 땅의 소산물을 먹는게 아니라

정반대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소산물을 먹던 곳이

졸지에 척박한 땅이 되어서 활과 화살이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는

사냥을 해야지만 짐승과 싸워 이겨야지만 먹을수 있는 땅이 되었더라 말이죠

 

그러니 왜 우느냐 모압이 왜 우느냐

자신들의 둥지틀기가 날라가버려서 망하게 되었다고 우는 겁니다.

 

육체를 죽이는 자를 두려워 말고 몸과 영혼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 하라고 했다 말이죠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포도로 풍요를 누리게 되었는데 하루 아침에 패허가 되어 광야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으니

이제 뭐 먹고 사느냐 라고 경제 문제가 닥치게 되니 우는 겁니다

자기 배를 위하여 우는 거다 말이져

 

그래서 그 답답함에 뭐를 찾죠 네 맞습니다. 종교를 찾습니다.

땅의 짐승은 종교이거든요.

경제 종교 정치라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은 동시다발적입니다.

사건의 분류 마디로서의 3이지 숫자 3이 아니다 말이죠

1이 있어야 2이고 2가 있어야 3이 아닌 존재가 아닌 기능이다 말이죠 사건

 

그래서 백날 산당에 가서 빌어도 충성 봉사해도 소용 없다고 합니다.

?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기에

짐승 경배이기에 이것만이 그들에게 매매 / 소통 / 개방 / / 말이 되는 / 대화가 되지!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는 대화 꺼리가 되질 못하고 뚝뚝 끊어지고 단절이 되고 차단이 된다 말이죠

 

무슨 수로 죽었다가 다시 3일 만에 살아나냐 말이죠 단절이 되어버렸는데

그러니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매매 로써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생존을 하기 위해서

말이 되는 대화와 소통꺼리로써 나누는 세계이다 말이죠

매매가 단절 되면 죽은자와 같아서 이 땅에서 제거 되어버린다 말이죠

 

그러니 짐승에게 경배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죽여버리니까 말이죠.

 

성도는 처음부터 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예수님 곧 죽임당한 어린양과 함께하는 운명으로 동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살고 싶어도 못 살아요 죽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러나 성도가 아닌 자들인 모든 인간들은 이 짐승의 표 666을 받아버렸기에

즉 갇혀 버렸기에 모든 역량을 자기둥지틀기 삶의 터전 일구기에 목숨 바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국가가 그래서 탄생하잖아요 가인의 이마표

 

그러니 이미 자기 밥인데 이미 마귀의 밥인데 신경쓸 필요가 없겠지요

문제는 여자가 낳은 아들에 신경을 쓰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그러니 자기 밥을 미워하는 자 없듯이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가 없듯이

마귀가 모든 인간을 사랑했는데 왜? 늑대는 양을 미워할 리가 없거든요

그런데 졸지에 미움이 생겨 버렸고 죽임이라는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말씀에 기록된 대로 되어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에

마귀도 활동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졸지에 세상이 우리는 미워하지 않는데 미워하게 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경영을 악하다 라고 증거함으로써

졸지에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도록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모압이 교만해서가 아니라

겸손 못 해서가 아니라 그건 종교이고

울어서 망하는 이유는

자기 배를 위하여 울고 웃고 하는

덧 없는 허구 안개같은 인생에 목을 걸고 있을때에

정작 짐승과 죽임당한 어린양의 전쟁은 말씀대로 되어가는 것에 못 본다는 겁니다.

 

그러니 모압에게는 일찍 죽임당한 어린양의 눈물을 안 쳐다보는 겁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인애와 자비 곧 요나의 표적 곧 십자가를 안 쳐다보니까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니까

졸지에 기적이 안 온다고 울어서 망하는 겁니다.

자기 학대를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는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처럼

그렇게 해가 듣끼겠나? 더더 더 더더더더더 더 큰 소리

더 크게 더 세게 불어야 알콜측정을 제대로 하지

다들 함량미달을 반복하는 겁니다. 666을 반복하더라 말이죠

 

이 모압의 멸망은 곧 이스라엘에게도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인애와 자비를 안 쳐다보는 자는

아무리 충성 봉사

다윗처럼 회개 눈물 기도 금식 4종 세트를 드려도 소용없습니다.

 

정직한 영이 없는데 무슨 소용있냐 말이죠

총명이라는 지혜는 바로 십자가에만 있다 말이죠

 

이 증거, 이 흔적만을 지닌 자가 성도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스라엘 조차도 아무리 혈통으로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났어도

정작 다윗의 자손을 못 보고

인애와 자비를 못 본다면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를 못 본다면

 

이들도 모압처럼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만 바라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저 종교만 따랐던 겁니다. 짐승 666만 따라한 줄도 모르고

용어만 하나님 예수님 여호와 야훼 아무리 붙여도

중심을 보시는 즉 정직한 영을 보시는 예수님 앞에서는 안 통합니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