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의 돈 사랑함에 대해서 

이름 : 김대식 2008-11-09 15:55:03 조회 : 149 

제가 문제를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답이 몇번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이유도 한번 적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눅 16:13, 개역)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4, 개역)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눅 16:14, 현대어)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

(딤전 6:10, 현대어)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죄의 길로 빠지는 첫걸음입니다.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떠나 버린 탓으로 결국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 바리새인이 돈을 사랑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비슷비슷한 내용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선택해 보세요
그 이유도 적어보세요. 만약 마음에 드는 내용이 없으면 문제의 취지에 따라 왜 바리새인이 돈을 사랑하는지를 의견을 적어주십시요.

1번. 바리새인은 돈을 사랑한적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돈을 사랑하지 않을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까지 서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방적인 편견이다.

2번. 바리새인이 돈을 사랑할려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은 맞다. 다만 그들 또한 인간의 보편성에서 예외가 될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의 근본적인 감추어진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3번. 보편성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새롭게 심어버렸기 때문에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바리새인이 아무리 돈을 사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새롭게 심어버린 이상 그들은 과거는 돈을 안사랑했다 할지라도 심어버린 이후 부터는 돈을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4번. 예수님 자신이 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바리새인을 그 반대편인 가장 가짜 의로움에 해당되는 자로써 일방적으로 분리하고 분류배치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돈 사랑에서 빠져 나올수 없도록 하신 그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바리새인을 그냥 인간 대표성으로 세운 것이다.

5번. 바리새인이 돈을 사랑했냐 안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유일하게 돈을 사랑하지 않아도 될 나라를 완성했기에 더 이상 돈에 얽매일 필요성을 가지지 말라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알려주는 교훈이다.

6번. 기타 의견이 있다면?

(갑자기 억지로 만들어 봤는데 문장들이 말이 될런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요지는 이겁니다. 새로심어버린 것인가? 숨겨진 것을 드러낸 것인가? 그냥 일방적인 해석인가? 아니면 보편성인가? 아니면 죄를 겨냥한 의를 드러내기 위함인가? 저도 답을 몰라서 한번 만들어 본 문제입니다.)

--------------------------
 
이근호 08-11-10 06:48
  
바리새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돈을 겸하여 사랑하는 것이 용납이 되는 하나님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사람이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그 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마땅하고, 이로 인하여 바리새인 자신들이 돈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베푸신 축복의 일부로서 담겨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예수님이 믿는 하나님은 자신을 죽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돈이 필요없다'가 아니라 '돈이 사랑의 대상일 수 없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죽어야 될 마당이 돈이 유혹으로 작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누가복음이 복음으로 작용하려면 결국 모든 인간은 예수님 앞에서 이 바리새인같은 입장에 놓여 있음을 밝히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돈 사랑에서 자유로울 자는 없습니다. 즉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족하는 마음가짐이 아닙니다.(딤전 6:8)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늘 회개하며 살도록 예수님의 영께서 독촉하십니다. (요 14:26)

-------------------------------
 
김대식 08-11-10 08:57  

바리새인의 그런 재물관의 하나님이라면 오히려 바리새인은 옛언약의 재물관에 충실한 것이 아닌지요?
마치 율법의 가입이 죄 아래 두기 위함이듯이, 죄 아래 가두기 위한 조치로써 그런 재물관에 빠질수 밖에 없도록 함으로써 율법 외의 한 의를 쳐다보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써의 철저한 단절을 형성하듯이 말이죠.

신명기의 (신 8:3, 개역)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 충실하고자 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성취가 오기까지는 신 8:3 을 지키기 위해서 더더욱 의문의 증서에 말려드는 깊은 수렁을 파는 자기무덤 파는식 처럼 말이죠.

그런데 참 신기한것은 예수님의 재물관을 목사님은 죽음과 결부 시켰습니다. 즉 돈에 대한 가치부여를 보통 살리는 기능으로써 사람들이 사랑하지 돈 자체가 어떤 생명을 주지는 않겠지만요, 바로 남을 살리는 그 기능이 예수님 자신이 죄 값을 치르시는 피흘림의 십자가와 연결해서 아니 반드시 십자가의 의미로써만 나오는 해석만이 예수님의 목적이고, 바리새인들은 십자가와 연결 될 수 없다는 차원으로써 십자가의 기준으로써 죄가 되고 또 돈을 사랑하는 자 라고 평가 되는 것인데

자력으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 라는 것을 믿을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고
예수님 외에는 이 말씀을 믿을자는 없다 라고 계속 불가능성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더 이상 미완료가 없는 완료로써의 완료 뿐인 복음 이라는 의미입니까? 그럼 모든 것이 선물 뿐이네요. 인간이 뭘 한다 라는 것은 무조건 다 거짓이구요.

---------------
 
권범식 08-11-10 11:05  

제 개인적으로 보기엔...4번이 좀 가까운거 같습니다...사실 인간이 아무리 의인이라고 해도 이 세상을 살아 가려면 돈은 있어야 하고(기본 의식주) 그럴려면 어차피 죄라는 것하고는 뗄래야 뗄수 없는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문제는 바리새인(사실 현재 대부분의 교회도 똑같습니다.)들은 이 돈 버는 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정당화 시켰습니다. 그러니깐 돈을 벌어서 하나님일에 쓰자는 거죠...그리고 나아가서 아예 돈을 왕창 벌어서 하나님의 선한일에 쓰고 남을 도우면 돈 버는 것도 선한일이 된다는 것입니다...하지만 그들(바리새인 및 현재 교회들)은 착각하ㅏ고 있는게 그렇게 자기가 돈을 벌므로써 다른 사람들이 돈을 못벌어서 망하고, 가산을 탕진하고 돈 때문에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이지만 이렇듯이 자기의 돈 버는 일을 정당화 시킨다는 것입니다.(다른말로 나는 그래도 할만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교회들과 바리새인은 같은 마인드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와 같이 바이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은 자기의 정당화실현의 모습중 하나라고 생각되어 지며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되기위해서 죄아래 가두어두심의 모습중 하나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글 내용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 

바리새인의 돈 사랑함에 대해서 (3) 
  야 이 더러운 돈에 미친 화냥년아 (2)


야 이 더러운 돈에 미친 화냥년아  이름 : 김대식 2008-11-10 23:07:07 조회 : 94

야 이 화냥년아
니가 돈 미쳐서
돈 때문에 하나님의 가문을 더럽힐려고 하느냐

유다는 안다
왜 저 다말이 불의한 여자인줄

이제야 유다는 물증을 잡았다
그렇게도 벼루고 벼루었던 순간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법적으로 빼도 박도 못하겠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저 여자가 얼마나 사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인줄
그동안 속 시원하게 밝혀 낼수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드디어 나의 이 답답한 마음 속 시원하게 뚫어주시는 구나

창녀로 몸을 팔아서 돈을 벌고
돈에 미쳐서 돈으로 성을 매매하는 더러운 남자의
아이까지 임신 시킨 저 화냥년

이제야 내 아들들이 왜 억울하게 죽었는지
주님은 나의 억울함을 아셨구나

자 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열심히 옳았다는 것을
드디어 증거하게 되었구나

자 여러분들 이 더러운 년을 불태워 화형시킵시다.
저 더러운 화냥년을 거룩한 하나님의 약속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처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 집안의 거룩한 약속의 가문에서
우리 민족의 거룩한 백성의 땅에서
우리의 거룩한 성전 교회에서

당장 제거해야만 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한 것을
나는 그동안 일찍이 알고 있었으나
차마 말할수 없어서 하나님이 판단해 주시길 기다렸소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거룩한 일을 우리는 담당해야하오
재단을 높이 높이 세우고 불을 피웁시다.

다시는 이런 더러움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불의함을 제거하는 거룩한자들이 됩시다.

사람들은 불을 피울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다말은 아이를 임신한 그 무거운 배를 움켜잡고
하소연한다.

잠시만요

이 물건의 주인이 이 뱃속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나를 임신시킨자는 내가 볼모로 잡은 물건의 주인입니다.

자 보세요 이 물건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도장과 도장끈과 지팡이가 담보물입니다. 누구의 물건입니까?

예수님께서 창녀가 되셔서 나에게서 볼모로 잡은 물건을 내놓지 못한다면
나의 구원은 허사이다.

그저 자기의 구원을 아름답게 포장할려는 헛짓만 하는
종교라는 마약만 피우다가 지옥에 갈 뿐이다.

그래서 이 부정한 담보물에 충성할 자가 필요하다.

그 창녀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다.

이 이야기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오로지 불의한 청지가가 불의한 재물에 충성된

그 어리석은 지혜만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십자가는 바로 이 불의한 죄 값에
끝까지 충성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의 값과 맞바꾸고자

그 3가지 물증을 담기 위해서 끝까지 충성한
약속만이 우리의 유일한 미래로 만드시고자
그 부정한 물건에 죽도록 충성하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저당 잡혀야만 한다.
그 3가지 물증인
내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았는지에 대한
증거물을 예수님에게 들켜야만 한다.

그래야 예수님은 그 증거물에 자기 목숨 값을 죽도록 충성하여서
그 값을 치르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날 까지 그 볼모로 잡힌 그 내용물이 뭔가를
하나 하나씩 펼쳐서 (죄인 됨, 원수 됨)

이런 것도 용서하시다니 참으로 놀랍군요 라는 감탄사를 내뱉지 않고서는 못배기도록
뭐뭐뭐 보다 뭐뭐가 낫다는 이유를, 더 나은 이유를

그 더 나은 완료가 덮치는 그 대상에 늘 놓여지는

죽음 보다 강한 질투의 사랑의 대상에 놓인 신부의 자리에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죽음-불의 을 앞장세워서 사랑을 완료, 다른 방식의 완료는 없다.)

(창 38:26, 현대인) 『유다는 그것들을 알아보고 `그녀가 나 보다 옳다.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않았다.' 하고 다시는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창 38:26, 현대어) 『유다는 그 물건들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그러면서 `그래, 이 아이가 옳다. 이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다 내 잘못이지. 내가 이 아이를 셀라와 혼인시켜야만 하였던 것인데 내 탓이지' 하고 말하였다. 그는 며느리 다말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지는 않았다.』

-----------------------

이근호 08-11-11 07:34  

처음 이 글을 보고서 구약 선지자에 대한 새번역 해석인 줄 알았습니다. 원래 구약 선지자의 예언 특징이 욕설에서 시작해서 모호하고 난해한 해석을 범벅채 쏟아내고서는 욕설로 이어지면서 끝나는데 김대식 성도님께서 이 시대상을 보고 얼마나 격분했으면 자연스럽게 선지자 컨셉으로 돌아서야 했는지... 어쩌면 새 선지자가 우리 중에 출현해야 될 타이밍일 수도 있습니다.
---------
 
최일규 08-11-11 16:49  

예전에 창세기 설교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창세기에 왜 꼭 저 유다를 넣었는지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족보를 들이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고보니 저 유다 형편없는 넘이더군요.. 유다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며느리를 통해 알게하시죠. 그런 넘을 통해 약속을 이어가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우째 이런일이.. 말도 안되는.. 믿을 수 없는 내용.. 오늘 다시 한번 저 성경구절을 보면 설교를 한번 더 들어야겠슴다.. 고맙심데이.. 또 얻어 묵네요^^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