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마녀의 장례식에 와주세요

이상철 성도가 마침 내가 봤던 이 드라마를 이야기 꺼내길래 나도 봤다고 하면서 나누었던 생각들이
놀랍게도 둘 다 성화론(행함)의 엉터리 점을 놓고 이야기를 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던 이야기 이다. 영상은 구하지 못했고
시나리오 만은 검색 중에 찾게 되었다.


베스트극장-얼음마녀의 장례식에 와주세요

MBC2002년 4월 26일 (금) / 제 488 회
극본 박연선 / 연출 윤재문
'얼음마녀의 장례식에 와주세요'
1. 타이틀-성당
웅장한 분위기의 성당 외경
기괴하교 묘한 분위기
장엄한 미사곡이 울려 퍼지고.
백합꽃이 가득 꽂힌 화분이 네 귀퉁이에 놓여 있고,
관 안에 예쁜 드레스를 입은 채 누워있는 지숙.
지숙의 회사 사람들, 가족들, 경비 등등이 검은색 옷을 입고,
국화꽃 한송이씩을 관 안에 놓고 간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같은 지숙에서
타이틀 '얼음 마녀의 장례식에 와주세요.'
2. 단란주점(안/밤)
직장인들이 회식중이다.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동식과 재철
'........' 정도의 노래를 열창하며, 화끈한 쇼맨쉽을 발휘한다
탬버린을 두드리는 현란한 손놀림. 마이크를 집어던져 서로 맞바꿔 잡고....
분위기는 달아오를대로 달라오른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네명의 직원들, 자리에서 일어나 호응하고,
몇 명은 무대로 뛰어나가 합창을 하는데.
이 열띤 분위기를 완전 무시한채 무대 위를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는 여자,
그녀가 이 팀의 팀장. 지숙이다.
재철; 이어지는 무대는, 우리 그래픽 디자인실의 강력 카리스마!
이...팀장니이임!
재철이 폼나게 소개하면,
그러나 갑작스럽게 조용해지는 분위기.
재철 이유를 몰라 사람들을 쳐다보면.
직원들은 지숙의 눈치를 본다.
조용히 일어나는 지숙.
아직 눈치를 못챈 재철이 번호 누를 준비를 하면서.
재철:(혼자 신나서) 오. 예! 부르실 곡목은?
지숙:(싸늘하게) 내일 아침 회의 있는거 알죠? 적당히 하고 들어가요.
동식씨는 내일까지 배경화면 끝내구요. 연숙씨는 작가한테 전화해서 작업상황
체크하구요. 먼저 들어갈게요.
벙찌는 재철.  그럼 그렇지 싶은 직원들을 남겨두고, 지숙 총총히 사라진다.
지숙에게 노래시킬때부터 제일 마땅잖은 얼굴이던 동식, 투덜댄다
동식: (지숙이 나간쪽을 보며) 재수떼기! 하는 짓마다 꼬박꼬박 어찌나 재수스러운지... 대단해 이지숙! 이럴거면 회식을 왜 해?
(재철에게)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놈.
노랜 왜 시켜? 저 인간한테. 소문도 못들었냐?
동식. 마이크를 재철에게 던지듯 넘겨주고, 테이블로 다가가 술을 들이킨다.
쓴입맛을 다시는 직원들, 하나 둘 자리로 돌아온다. 파장 분위기다.
노래방 모니터엔 계속 '선곡해 주십시오'란 자막이 깜박인다.
3. 단란주점 앞/ 계단/ 광화문 사거리/ 지하도(밖/밤)
술취한 샐러리맨 하나는 화단 턱에 반듯이 누운채 잠들어 있고,
하나는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고,
또 몇몇은 간다 못간다 실갱이를 버린다.
술취한 사람들 틈 사이를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도 경쾌하게 빈틈없는 모습으로 걸어오는 지숙
(지숙): 난 노래하는 걸 싫어한다. 못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못한다는 걸 안 중학교 이후로 한 번도 남들 앞에서 노래란걸
해본적이 없다. 대학교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노래 안한다고 구박하는
선배와 싸우고 그길로 돌아 온적도 있다.
분위기를 위해서 좀 망가지면 어떠냐고?
잠깐 멈춰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마침 멈춰선 곳이 걸인이 구걸하는 지하철 계단.
쭈그리고 앉은 걸인, 지숙이 돈을 꺼내는 줄 알고, 더 심하게 몸을 흔든다.
그러나 자기쪽은 쳐다도 안보고 지나가면,
재수없다는 듯 지숙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지숙) :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바보가 되야지?
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살 것이다.
주위시선은 상관없다. 내 앞, 오직 정면만 바라보면서 나아갈 것이다.
정면을 응시한채 콧대를 빳빳하게 세우며 가던 지숙,
삐끗, 계단을 헛디딘다.
넘어질 듯... 겨우 중심을 잡은 지숙,
흥!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세우고 간다.
뒤따라오던 사람들 큭! 웃음을 겨우 참는다.
4. 병실 중환자실(안/밤)
심장박동을 표시하는 선이 가파르게 움직이다가,
삑소리와 함께 직선으로 변한다.
침대 시트로 죽은 환자의 얼굴을 덮어주는 문간호사(30대초반. 여)
그 순간, 터지는 울음소리.
엉엉 소리내 우는 사람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혜원이다.
환자의 부인. 동생등 가족들, 비교적 담담하게 눈물을 찍어내다가 의사인 혜원이가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하자 뜨악해 쳐다본다.
문간호사가 혜원을 부축해 끌고 나가면서.
문간호사: 한선생님! 왜 이래요 또? 그만해요.... 아우 진짜...
문간호사,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하며, 혜원을 끌어낸다.
혜원, 오열하며 끌려나간다.
5. 아파트 경비실앞(밖/밤)
(인서트)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지숙의 차
꾸벅 꾸벅 졸고 있는 경비(50대초반. 남)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지원이 경비실 밖에 서 있다.
경비 하품을 참으며 나온다.
경비: 이제 퇴근하십니까?
지숙:(싸가지없이) 아저씨 하는 일이 도대체 뭐예요?
경비: 예?
지숙: 몇번을 말해야 돼요. 차 댈 때가 없잖아요.
경비:.그게 말인데....
지숙: (말을 끊는다) 외부차량 주차단속 왜 안하세요?
경비: 그게... 안 하는게 아니라...
지숙: (말을 끊는다) 계속 이런 식이면 관리실에 말하겠어요.  자기 할말만 하고 지숙, 돌아서 걸어간다.
경비:(그 뒷모습을 보며) 어후... 나참...
내가 정말 딸린 식구만 없었어도 진짜...
지숙. 가다가 돌아본다.
경비.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거수경례를 붙인다.
경비: 들어가십시오.
정면을 응시하며 또각 또각 걸어가는 지숙
6. 아파트 거실(밤/안)
방 두 개짜리. 17평 정도의 아파트.
혜원이와 지숙이 같이 사는 아파트다.
혜원이 티슈를 앞에 놓고 울고 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문따는 소리 들리고 지숙이 들어오다가
울고있는 혜원을 슬쩍 보고 아무말없이 신발을 벗는다.
혜원: (울음섞인 목소리) 나 울고있어.
지숙: 어쩌라구?
혜원: 왜 우느냐고 물어봐줘?
지숙: 이번엔 누가 죽었는데?
혜원:(다시 복받친다) 간암 아저씨...
지숙; 눈 부어. 그만 울고 자.
혜원: 눈 붓는게 문제야. 사람이 죽었는데.
지숙: 그럼 더 울든가.
지숙, 방으로 들어가려하고,
혜원, 더 큰소리로 운다.
혜원: 불쌍해서 어떻게...
(지숙):(혜원을 내려다보며) 저 아이 고등학교때 별명은 수도꼭지였다.
국어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다가 운 적도 있다.
저 아이와 내가 친구인 것은 분명 미스테리다.
참고로 내 고등학교때 별명은 얼음마녀였다. 난 이 별명이 갖고있는
냉정하고 지적인 뉘앙스를 좋아한다..
지숙이, 보이지않을만큼 한숨을 쉬고 혜원의 옆에 앉는다.
지숙:그 환자 2년동안 똥오줌 받아냈다는 그 사람이지?
혜원:응.
지숙: 나이가 얼마랬지?
혜원: 쉰셋.
지숙:치료 가능성은 있었어?
혜원:(고개를 흔든다)
지숙: 간호하느라 그 가족들 죽어났지?
혜원: 그건 뭐...
지숙: 병원비는?
혜원:....
지숙: 도대체 왜 우는거야?
혜원:(울먹) 죽었잖아.
지숙: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뭔데?
혜원; (대든다)사람이 어떻게 이유만으로 살아? 넌 왜 사는데?
지숙: (자신있게) 나? 세상이 날 필요로 하니까
혜원: 필요 좋아하네. 네가 그 환자를 몰라서 그래.
첨에 우리 병원 왔을 때. 6개월도 장담 못했돼. 근데도 의지 하나로 2년을 버틴 사람이야.
지숙: 그게 의지야? 그거 집착이야. 생명에 대한 집착.
그런 건 바퀴벌레가 최고라더라.
혜원: (화가나서) 야 이 지지배야!
지숙: 니가 감상덩어리란거는 옛날부터 알았지만, 웬만큼 해둬,
남들 보면 우스워.
혜원: 뭐가 우스워? 하나도 안 우스워. 나쁜 지지배.
너 죽을때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보자. 내가 어떻게든 너보다 오래 살아서
너 어떻게 죽나 볼거야.
지숙: 보든지 말든지...난 깨끗하고 쿨하게 죽을거야.
혜원: 그래, 얼음 싸가지! 너 잘났어.
(지숙): 얼음 싸가지! 이것 역시 고등학교때 내 별명이다.
이 별병은.....싫다.
지숙:(방안으로 들어가며)
나 이번주에 시골 간다.
혜원: (삐져서) 가든지 말든지...
(하다가 잠시후 지숙의 방으로 따라가며) 왜? 왜 가는데?
(지숙): 귀찮게 왜 그래?.... 엄마 제사야.
7. 시골집 안방(밤/안)
인서트) 밤하늘/보름달
잘 차린 제삿상 위로 향이 피어오른다.
지숙의 아빠가 옆으로 물러서면.
오빠와 올케, 지숙, 그리고 졸린 눈을 겨우 뜨고 있는 홍이 용이가 절을 한다.
(점프)
제사가 끝났다.
벽에 붙어있던 제삿상이 가운데로 옮겨진다.
홍이와 진이 졸면서도 상에 붙어 앉아있다
올케가 과일을 깍아 먹기 좋게 썰어 낸후, 속에 붙은 살을 맛있게 먹는다.
오빠와 아빠는 음복을 한다.
오빠: 너 참 별종이다. 난 학교다닐때도 공부하기 싫어 죽을뻔 했는데...
무슨 공부를 또 한다고 그러냐?
지숙: 그러니 이 모양으로 살지
오빠:(허허 거린다) 지지배...이게 뭐 어때서...? 나만큼만 살라 그래라
(부인을 보면서) 안 그려?
올케:(픽 웃는다)
아빠: 그 유학이냐. 뭐냐? 그걸 허면 얼마 있다가 오게 되는데?
지숙: 가봐야 알지.... 대충 3년?
아빠: (걱정이 된다) 아휴....그럼 네 나이가 얼마냐?
지숙: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올케:(먹으며) 상관이 왜 없어? 그때되면 재취자리 찾아야 돼. 아가씨는 지금 공부가 급헌게 아녀. 짝 찾는게 급허지.
아빠: 그려, 여자든 남자든 그저 짝 찾아서 가정을 이뤄야 제값을 허는거라.
시집도 못가면, 그게 이름도 성도 없이 값어치 없어.
지숙: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도대체 이 집 식구들은 나아지는게 없어.
무식하고 촌스럽고.
올케: (사람좋게) 그런 말 허는 사람은 남의집 식군가?
지숙:(빽) 언니!
올케: 깜짝이야.
지숙: (딴소리) 한반중에 그렇게 먹으면 겁도 안나요?
올케: 뭐가?
지숙; 자기 관리 좀 해요. 제발. 그렇게 퍼져 있지 말고.
오빠: 또 지랄 시작했네.
지숙: 정말 말이 안 통해...
답답한 지숙.
졸면서 먹는 조카들을 보고. 숟가락을 뺏는다.
지숙; 그만 먹고 자! 남들이 보면 굶겨 키우는 줄 알겠네.
애들이 하나같이 식탐만 있었갖고.
애들, 슬금 슬금 지숙의 눈치를 본다.
발끈할만 한데도, 올케는 사람이 좋다.
올케: 참...먹는거 갖고 왜 그런댜?
지숙:(일어난다) 내일 새벽에 일찍 가야돼서 인사 못할거예요.
(올케에게) 치우는거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지숙이 방을 나가면.
올케:(웃으며) 언젠 도와준 것처럼 말하네.
오빠: 하여튼 저 지지배는 쌀쌀맞아서 남자가 안 꼬이는겨.
(아버지에게) 한잔 더 하실래요?
오빠가 아빠에게 술을 따라준다.
아빠: (변명처럼) 쟤가 어렸을땐 안그랬는데...
오빠: 아버지가 너무 오냐 오냐 해서 그렇지. 엄마없이 불쌍허다구.
올케: 남 말허네. 콩알만할때부터 동생이라면 꿈쩍도 못헌건 누군디?
8. 마당(밖/새벽)
어둠속.
지숙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온다.
옷걸이에 건 정장을 뒷자석에 걸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히터를 튼다.
예열하는 동안 조용히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어둠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마을 풍경을 쳐다본다.
(지숙):(분위기있게) 나는 이시간을 좋아한다. 모두 잠들어있는 새벽.
나 혼자만이 깨어 있다는 ...
그 순간. 차창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
깜짝 놀라는 지숙.
내복 차림의 자다 깬 모습 그대로 아빠가 차창밖에 서 있다.
지숙: (유리문을 내리며, 빽) 아빠! 놀랬잖아요... 나오지 말래니까는...
아빠: (미안하다) 늙으니께 새벽잠이 없어서....
지숙, 벨트를 하고 라이트를 켠다.
아빠: 언제 또 올거냐?
지숙: 봐서...
아빠: 읍내사는 재당숙이 마땅한 사람이 있다고 ...한 번 만나...
지숙: (말을 끊으며) 갈게요.
차가 출발한다.
아버지. 할말을 다 못하고 차에서 떨어지며
아빠: 원 성질하고는... 조심해서 가. 급허다고 서둘지 말구. 으이?
9. 차안(안/새벽)
운전중인 지숙.
(지숙): 난 이곳이 싫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간섭이 애정인줄 착각하는 사람들.
아빠도 오빠도 다 짜증난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운전하던 지숙.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기분이 착잡해진다.
지숙, 한숨을 쉬고 악셀을 밟는다.
10. 새벽길(밖/새벽)
차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그때까지도 문앞에 서 있는 내복 차림의 늙은 아버지!
11. 회사 화장실(안/아침)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지숙.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양치질을 시작한다.
어금니 쪽을 닦다가 갑자기 욱! 토할 것 같다.
잠시 속을 진정시키고 물로 헹궈낸다.
12. 회의실(안/낮)
회의시간이다.
직원들이 모두 긴장된 얼굴로 앉아있다.
동식만이 못마땅한 얼굴이다.
연숙은 안절 부절 못하고, 지숙의 눈치를 살핀다.
지숙:(서류를 내려놓고) 지난번하고 다른게 뭐야?
연숙: 죄송합니다.
지숙: 주말에 뭐 했어?
동식;(삐딱하게) 주말은 법정 휴일인데 지켜 쉬어야지.
지숙: (동식을 흘겨보고 다시 연숙에게) 이대론 진행 못해. 자료 검토해서
내일까지 다시 올려요.
연숙: (사정한다) 팀장님. 모레까지 하면 안될까요? 그렇게 급한것도 아니고.
집에 사정이 있어서..
(지숙): 무능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도 인간성만 좋은 대다수의 인간들!!
지숙: 개인적인 사정이 더 중요하다면 사표 써요.
동식: (다른데 보면서) 팀장이야? 사장이야? 사표를 쓰라 마라... .
지숙: 문동식씨는 문동식씨 일이나 잘해요. 다른 사람 일에 상관말고.
동식: (일어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 일이야? 같은 동료고 직원인데...
지숙: (발끈해서) 팀장은 나야. 아무리 동기래도 이런 식은 곤란해.
동식: 이팀 팀원으로서 나도 이런식은 곤란해.
팀장 혼자서 일하나?
(지숙):(노려본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그러면서 인간성도 나쁜 흔치 않은 인간!
 직원들 동식을 말리며 끌고간다.
끌려가는 동식을 노려보던 지숙. 속이 쓰리다. 인상을 찌푸리다.
13. 내과 진료실(안/낮)
수면 내시경을 받는 지숙.
3씬에 나왔던 남자 의사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혜원이 등 뒤로 나타난다.
혜원: 어때?
의사: 염증이 있네
혜원: 심해?
의사: .......
잠든 지숙을 바라보던 혜원, 재미난 생각이 떠오른다.
14. 혜원의 진료실(안/낮)
지숙이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심각한 얼굴로 혜원이 들어온다.
지숙; 뭐래?
혜원; (일부러 심각한 표정으로) 양치할 때 구토증세를 느낀 건 언제부터야?
지숙: 한달 정도...
혜원: 매운거 먹으면 속쓰린 건?
지숙: 그건 좀 된거 같은데...
혜원: 한밤중에 뭐 먹으면 소화 안되지?
지숙: 밤중에 소화 잘되는 사람이 어딨어?
혜원: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쉰다)
지숙: 뭔데 그래?
혜원: (잔뜩 뜸을 들이고)암이야. 위암 말기!
멈칫하는 지숙.
혜원, 지숙이 울고 불고 난리피기를 기대하면서
혜원: 함암치료도 수술도 불가능해......
지숙: 확실한거야?
혜원: 두 번 세 번 확인했어...
지숙: 그럼.... 어떻게 되는건데...?
혜원: 길어야 3개월!.... 미안하다 이런말 하게 되서....
지숙,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플립을 열었다 접는다.
혜원,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진다.
지숙이 보기엔 울음을 참는 표정이기도 하다.
혜원: (사실은 웃느라 목소리가 흔들린다) 어떡하니? 말 좀 해봐. 응?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지숙: 어...(목이 잠긴다)
혜원: (기대에 찬 얼굴로) 응. 뭐?
지숙: 나.... 들어가봐야 되거든, 이따 보자.
조용히 일어나는 지숙, 침착하게 일어나서 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지숙, 손잡이를 억지로 미는데..
혜원:(웃느라 목소리가 떨린다) 그 문!..... 당기는거야.
지숙, 짧은 한숨을 쉬고 나간다.
그제서야 소리내 웃는 혜원.
혜원: 쿨한 거 좋아하네? 까불고 있어.
지숙을 쫓아 나가려는데.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는 혜원.
15. 병원 앞(낮/밖)
멍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지숙과 엇갈려
응급차 한 대가 주차장에 멈춰선다. 안에서 거구의 츄리닝 차림의 남자들이 내린다.
등판에 'XX대학교 씨름부'라고 써 있다.
뒷문이 열리고 들것이 내려온다.
16. 병원 로비(안/낮)
지숙을 찾으며 나오는 혜원.
지숙이 보이지 않자, 핸드폰을 꺼내 단축키를 누른다.
혜원:(핸드폰에 대고) 어디야?... 빨리도 갔네.
잠깐 기다려, 사실은....
유리문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혜원,
문 너머로 지숙의 모습을 찾느라 턱을 빼고 쳐다보는데.
그순간, 밖에서 씨름부원이 유리문을 있는 힘을 다해 열어제낀다 (이후 묵음상태!)
그 문에 턱을 맞는 지숙, 으득!! 턱뼈 빠지는 소리.
이상한 자세로 쓰러지는 혜원,
오른팔에 체중이 실리며 바닥을 집는데. 삐끗! 어깨뼈 어긋나는 소리.
소리도 못지른채 널브러지면서 핸드폰을 쥔 왼손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왼손위를 침대차 바퀴가 깔고 지나간다.
빠각!! 손등뼈 부러지는 소리.
침대차엔 팬티, 샅바차림의 씨름선수가 허리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 사고!!
17. 병원 앞 도로(밖/낮)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혼잡, 요란, 고함소리(*앞씬의 고요와는 아주 상반되는 소음들)이 뚝 끊긴다. 그것도 의식못한채 멍청히 핸드폰을 들고 서 있는 지숙.
기다리다 못한 택시기사가 빵빵 경적을 울린다.
기계적으로 핸드폰을 접고, 차에 오르는 지숙
택시기사:어디로 모실까요?
지숙:(멍해서) 어디로 가야죠?
낮술 먹었나? 돌아보는 택시기사.
18. 회사(안/낮)
책상앞에 앉아있는 지숙, 여전히 멍한 표정이다.
컴퓨터 모니터안에선 캐릭터들이 한창 전투중인데.
으악. 으악. 피융. 피융!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한 캐릭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옆에서 동식의 설명이 들린다. 굉장히 사무적이다.
동식: 이렇게 죽는 순간 얘는 천상의 전사로 등록이 되는데...
지숙:(되내이듯) 천상!
동식: 그쪽에서는 가을개편부터 들어갔으면 하더라구.
(지숙): (동식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3개월후에 죽는다는데 가을 개편이라고?
지숙이 빤히 쳐다보자
동식, 무슨 의돈지 몰라 쭈삣댄다. 아침에 일도 있고 해서....
19 회사(안-상상)
깨끗하게 치워진 지숙의 책상.
누군가의 손이 CD를 걸고, 플레이 시키면,
초기화면에 뜨는 자막 ' 이 작품을 고 이지숙 팀장에게 바칩니다'
그때 화면 밖에서.
(동식); 바치긴 뭘 바쳐?
카메라 돌아서면 책상앞에 둘러선 직원들, 다들 유쾌한 표정이다.
동식: 그 성질에 오래 살았지.
연숙: 죽는건 개인 사정 아니야? 죽는다고 회사일에 차질을 주네.
동식: 이 팀장 죽은 기념으로 회식 어때?
(동식): 어때?
20. 회사(안/낮-현실) 라마즈 호흡하는 것처럼 숨을 몰아 쉬는 지숙
지숙: 그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동식: 안 그럼, 시간 오버돼. 체크해 봐?
지숙이 정신을 차리고 보면,
동식은 모니터 속의 캐릭터를 다시 플레이시킨다.
21. 지숙의 방(안/밤)
시계 가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어둡다.
잠든 것 처럼 반듯하게 누워있는 지숙, 남은 날을 생각한다.
(지숙): (냉정하게)앞으로 3개월! 그동안 난 뭘 할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하기에 3개월은 너무 짧다.
시간으로 따지면. 90일에 하루는 24시간이니까.
90에 24를 곱하면, 4.9 36에 2.9 18!
(냉정함이 흔들린다)그러면....얼마더라... 머리가 왜 이렇게 안돌아가지?....
216시간?
지숙, 눈을 번쩍 뜬다.
(지숙): 겨우 216시간! 말도 안돼!!
(하다가)
아니다. 0을 빼놨구나. 2160시간! 아후... 다행이다.....
(울컥해서)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바보 아냐?
잠깐 마음을 진정하고
(지숙): (비장하게) 어둡다! 너무 어두워. 이 어둠은 마치... 무덤속 같아
벌떡 일어나는 지숙,
스탠드를 켠다.
그것만으론 모자라 방 불을 켜고, 거실로 나간다.
열린 문으로 거실이 환해지는게 보인다.
22. 거실(안/밤)
인서트-아파트 전경
집안의 불이란 불은 다 켜놓았다.
베란다까지 환하다.
통장을 들고 있는 지숙
(지숙): (허무하다) 유학갈려고 든 3년 부은 적금!
뭐 할려고 그 고생을 했을까? 허무하다! 이렇게 죽을줄 알았으면.
하고 싶은거 하고 가고 싶은데 가고, 먹고 싶은거 먹고.
(하다가 목소릴 바꿔)
가만...
나 죽고 나면 이 돈은 누가 갖게 되지? 만기일이 언제드라?
(통장을 뒤집어보고) 가입자가 죽어도 돈을 받을 수 있나?
은행이 갖는거 아냐?
전화해볼까?
전화기로 손을 뻗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전화벨소리.
깜짝 놀라는 지숙.
수화기를 들며
(지숙): (안도의 숨을 쉬며) 금방 죽을 사람도 놀라는 건 마찬가지구나.
지숙: 여보세요.
23. 병실(안/밤)
침대에 앉아있는 혜원.
턱관절을 고정시키는 압박 마스크를 쓰고,
탈골된 오른쪽 어깨엔 압박 붕대를 감아 목에 걸고,
왼손은 깊스를 하고 있다.
문앞에 선 지숙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
문간호사: 어떻게 알고 왔는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연락할 틈이 있었어야죠.
(키득댄다) 다들 미스테리래요. 부딪쳤는데 어떻게 턱이 빠지냐고?
보통은 코가 깨지든가 이마를 다치든가 하는데...
(혜원에게) 필요하면 벨 눌러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방안엔 과일바구니. 쥬스 상자. 만화책. 라디오등이 대충 놓여 있다.
자리에 앉는 지숙
지숙; 그러게 덜렁댄다 싶었어. 어떡하냐? 일주일은 이러고 있어야 된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혜원.
지숙: 불편하겠다
(하다가) 그래도 넌 일주일만 있으면 되지만. 난... 난....
지숙,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한다.
혜원, 말을 하려 하지만 새나오는건 샛된 소리뿐.
깊스한 왼손을 허우적댄다.
지숙: 너무 억울해.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유학하고, 회사차리고, 외국에도 진출하고,
말도 안돼.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이제 서른인데...
(생각을 고친다) 아니야? 의사 말이라고 어떻게 다 믿어.
너같은 덜렁이 말을... 오진일지도 몰라.
그렇지?
혜원. 최선을 다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지숙:(일어나 나가려한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오진일거야. 내가 죽을 리 없잖아.
이지숙이 이렇게 싱겁게 끝날 리가 없어. 다른 병원에 가 볼래.
문을 열려던 지숙,
문득 멈춰서 허탈한 한숨을 쉰다.
지숙: 아무리 해도 믿기지가 않아. 내가 죽는다는게...
네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는데도 자꾸 거짓말 같해.
확인하고 싶고, 매달리고 싶고...
하... 내가 이렇게 바보였다니.
(문을 이마로 박는다) 나 어쩌면 좋아. 혜원아. 나 어쩌면 좋니?
혜원, 어서 다른 병원에 가라는 뜻으로 깊스한 왼손을 허우적댄다.
돌아선 지숙, 버둥대는 혜원을 슬픈 눈으로 보며
지숙: 그 간암환자도 이런 기분이겠지?
꺽꺽대며 버둥대는 혜원
24. 사무실(안/낮)
동식. 연숙을 비롯한 직원들이 슬쩍 슬쩍 지숙을 훔쳐본다.
지숙은 신문을 펼쳐놓고 있다.
연숙: 저봐요. 아침부터 이상해!
동식: 주식값이 떨어졌나 보지. 알게 뭐야.
재철: 아녜요. 출근한 이후로 한마디도 안했어요.
연숙:(놀래서) 어머! 울어!
동식: 뭐야?
 직원들, 넋을 놓고 지숙을 쳐다본다.
눈물을 훔친 지숙, 자리에서 일어나면,
갑자기 일하는척 부산한 직원들, 서둘러 전화를 걸고, 일부러 큰소리로 '캐릭터 자료 어디다 뒀어?' 등 등의 말을 건넨다.
지숙. 나가다가
지숙:(연숙에게) 외부에 일 보고. 곧장 퇴근할게.
연숙: 예....
지숙, 힘없이 나가면,
직원들 지숙의 자리로 몰려든다.
동식: 뭐야? 뭘 보고 운거야?
펼쳐져 있는 쪽은 스포츠면이다. 야구선수의 도루 사진이 실렸다.
동식: 좋아하는 팀이 졌다고 울 인간은 아니잖어? 저 재수댁이!
 직원들,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25. 공원(낮/밖)
나무에 막 새싹이 돋아난다.
지숙이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다.
지숙의 옆에 곱게 늙은 할머니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지나가고,
중년 부부 손잡고 지나가고,
조깅하는 친구 둘 지나가고,
연인들 자전거 타고 지숙을 지나친다.
(지숙); (우울하게)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나무도 슬프고, 아이도 슬프고, 할머니도 슬프고,
죽을둥 살둥 도루 하다가 아웃되는 야구선수도 슬프다.
으흐흑! 울움을 터트리는 지숙을 사람들이 쳐다보고,
할머니, 지숙을 의식하며 자리를 피한다.
26. 거실(안/ 저녁)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지숙.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고 있다.
카메라 TV쪽을 돌아서면,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가 만년필의 잉크를 빼내는 장면이다.
(지숙): 몇 년 전에 혜원이랑 개봉관에서 본 영화다.
26-1 (인서트) 극장
극장에 있던 모든 여자들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혜원이는 통곡하다시피햇고.
나는 중간에 잠들었었다.
흐흐흑! 흐느끼는 지숙
소파에서 일어난다
(지숙): (감정을 추스리며) 이렇게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에게 주어진 짧은시간, 뭔가를 해야만 한다.
(리모콘을 눌러 TV를 끄고)
기억에 남을 뭔가를....
(한참 생각하다가)
3개월후에 죽을 사람은 뭘해야 하지?
27. 백화점(안/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고 있는 빈 손의 지숙
잠시 후 쇼핑봉투를 한손에 두세개씩 들고 있다.
여기저기 쇼핑하는 지숙.
의류매장으로 들어가는 지숙,
옷을 꺼내들고 찬찬히 살펴보면,
점원이 다가온다.
가격표를 뒤집어보는 지숙.
점원: 6개월 무이자 할부 되거든요. 좀 비싸지만 이 상품은 유행을 안타서 내년
내후년, 얼마든지 입을수 있어요.
지숙:(옷을 걸어놓고) 올해만 입을수 있는 옷은 어떤거죠?
28. 커피?(안/저녁)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은 지숙.
수첩, 명함을 잔뜩 꺼내놓고 전화를 한다.
지숙:(전화기에 대고) 병철씨? 나 지숙이예요.
잘 지냈어요?...나야 뭐...그냥 수첩정리하다 생각나서... .
어디예요?... 어. 나 근처에 있는데...우리 잠깐 볼래요?
(실망해서)
아 그래요...
(억지로) 그럼 아직도 내가 혼잘까봐...나 곧 결혼 할 거에요. 예...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 지숙.
전화를 끊자마자 웃음을 접는다.
다시 명함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수첩을 뒤지다가 핸드폰을 누른다.
지숙: 주영이니? 나 지숙이...
(애기 우는 소리) 왜 이렇게 시끄러? 애기 낳았어? 어! 그랬구나.
알았어. 애기 우유줘... 그래 끊어.
전화를 끊는다,.
29. 고급 레스토랑(안/저녁)
쌍쌍이 혹은 가족들끼리 저녁식사를 하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
난생 처음으로 시켜먹는 랍스타류의 고급 요리
어떻게 먹을 지 몰라 눈치보다 에라 모르겠다 꾸역꾸역 먹는 지숙...
(지숙): 나 아니면 죽겠다던 남자는 그 말을 한지 겨우 2년 반 지났을 뿐인데 그새
다른 여자랑 결혼했단다.
꽤 친했다고 생각했던 대학교 동창은 애 우유 타느라, 친구가 죽게 됐다는
얘기를 들을 정신이 없고. 그밖에 내가 아는 인간들은 소개팅을 하거나,
동창생을 만나거나, 이 시간에 꼭 잠을 자야 한댄다.
웨이터가 물을 따라주고 간다.
지숙: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치며) 나아쁜 놈들!
이상한 눈으로 지숙을 바라보는 웨이터
30. 아파트 주차장(밖/밤)
후레쉬를 들고, 주차장을 돌고 있는 경비.
멀리 들어오는 차를 보고 인사하려고 다가가다가 내리는 사람이 지숙임을 알고 얼른 돌아선다.
자리를 뜨려는 경비를 뒤에서 부르는 지숙.
지숙: 아저씨!
걸렸다 싶은 경비. 얼굴을 찌그러트린다.
하지만 돌아설 땐 환하게 웃는다.
경비: 난 또 누구라고... 아이구 나도 미치겠어. 이놈의 차들이 언제 기어들어오는지...
지숙: (말을 자른다) 제 친구가 입원해서 집이 자주 빌거거든요.
경비:(놀라서) 그 의사선생? 아이구, 어쩌다가 그 착한 아가씨가... 많이 다쳤어요?
지숙:(경비의 반응이 의외다) 예?.. 아뇨. 조금.....많이...
경비: 아이구 참. 어느 병원이여? 한 번 가봐야겄네. 그러게 요새 통 안보이드라니.
퇴근할 때마다 쥬스랑 케?이랑 갔다 줘서 잘먹었는디..
걱정을 늘어놓는 경비를 보며. 지숙 대충 인사하고 돌아선다.
31. 혜원 병실(안/저녁)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혜원.
발가락 사이에 사인펜을 끼워 바닥에 글씨를 쓴다.
삐뚤빼뚤 형편없는 글씬데 자세히 보면. '이지숙. 암 아님. 위염...'이라고까지 썼을 때.
문이 열리고 지숙이 들어온다.
무심코 글씨를 밟아 뭉개는 지숙.
몇시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혜원, 꺽꺽대는데.
지숙: 지저분하게 뭐하는 거야?
(발로 쓱쓱 문지른다)
(속옷 등을 수납장에 정리하며)
슈퍼 아줌마랑 세탁소 아저씨랑. 관리실 여직원까지 병문안 오겠대.
(정리를 끝내고 돌아선다) 너 국회의원 나가도 되겠더라. 지역구 인기가...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혜원을 보다가
지숙: (허탈하게) 내가 잘못 산 건가?
나는 죽어가는데. 이 얘길 들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어.
혜원이 그게 아니라고 왼손을 허우적댄다.
그손을 꼭 잡아 가슴에 안는 지숙.
지숙: 알아. 네가 있다는거. 너마저 없었으면 나 어떻게 됐을까?
네가 내 친구라는게 정말 자랑스럽고... 또 고마워
(웃으며) 죽게 되니까 별 유치한 얘기가 다 나오네..
지숙. 눈물을 단채로 환하게 웃어준다.
꺽꺽대는 혜원.
32. 병원 주차장(밖/밤)
병실을 나오던 지숙,
한쪽, 영안실이란 팻말을 본다.
33. 영안실(안/밤)
바글대는 상가손님들, 빽빽히 들어선 조화.
상제들 쉴새없이 절을 한다.
지숙이 문가에 서서 멍하니 영안실 풍경을 쳐다본다.
부의금을 받는 사람들의 대화가 얼핏 들린다.
사람1 : (방명록을 뒤적이며) 몇 명째야?
사람2 : 살아생전 좋은 일만 하셨잖아.
조문객이 봉투를 내밀자 대화가 끊긴다.
지숙, 영정 사진을 쳐다본다.
34. 영안실(안-상상)
영안실 안 영정사진이 지숙의 것으로 변한다.
지숙이 문간에 서서 자신의 장례식 모습을 보고 있다.
썰렁하다.
오빠는 부조통 앞에 앉아있고.
올케는 음식을 집어먹고.
아빠는 발바닥만 문지르고 있다.
오빠: 완전 적자네.
올케: 괜찮어. 유학간다고 모아 놓은 돈 있으니께...
(하다가) 애들 올 시간 됐네 (나간다)
오빠: 과수원 거름이나 내야겄다(나간다)
지숙 옆을 스쳐가는 올케와 오빠.
지숙, 너무한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다가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발바닥을 문지르다가) 소 밥 줄 시간 됐네.
(나가버린다)
지숙: 아빠!
지숙, 텅비어있는 자신의 장례식장을 보며 울상을 짓는데.,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다.
(점프)
상상에서 깨어나는 지숙,
안도의 숨을 쉰다.
(f.o)
35. 사무실(안/아침)
한참 바쁜 사무실.
동식이 마우스를 움직여 모니터 안의 캐릭터 그림들을 바꾸고 있다.
그 앞으로 스윽 내밀어지는 커피잔.
누군지 쳐다도 안보고.
동식: 고마워!
종이컵을 들다가 무심코 쳐다보면 지숙이다.
놀라 허둥대다가 손등을 댄다.
돌아보면 직원들 모두, 커피잔을 든채,
자리로 돌아가는 지숙을 멀거니 쳐다본다.
연숙:(귀에 대고) 왜 저런대요?
한모금 마신 동식.
으윽!! 목을 움켜쥔다.
연숙: (놀래서) 선배님?
동식:(아무일 없다는 듯 커피를 홀짝 마시며) 독은 안탔고...
연숙: (걱정스럽다)아우... 어떡해? 나 결제 맡아야 되는데...
연숙, 불안한 얼굴로 지숙의 책상앞으로 다가가 서류를 내민다.
연숙: (조심스럽게)팀장님!
지숙:(서류를 펼치며) 일찍 끝냈네.
(보다가 버럭) 도대체가 몇번을...
(하다가 심호흡을 하고, 힘들여 미소를 진 다음에)
이것봐 연숙씨. 에피소드는 장난꾸러긴데 컨셉에는 욕심꾸러기라고
하면, 말이 돼? 안되잖아.
(억지로 미소)
연숙: (더욱 쫄아서) 예. 다시 할게요.
지숙: 그래. 언제까지 될까?
연숙:(지숙의 변신이 공포스럽다) 말씀하세요 밤 새서라도 할게요.
지숙: 아니 그럴것까진 없고. 하는데까지 해봐, 모르는 거 있음 물어보고.
연숙씬 잘 할 수 있어. 화이팅!
지숙이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어보이는데.
연숙, 못볼걸 본 얼굴로 돌아선다.
지숙, 자리에서 일어나
지숙: (모두에게) 오늘 다들 시간 있어요?
사람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36. 단란주점(안/밤)
종업원이 맥주를 늘어놓고 간다.
지숙, 일일이 맥주를 놓아주며,
지숙: 자. 맘껏 마셔요. 내일 안 나와도 돼. 내가 책임질게.
연숙: 팀장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지숙): 그래. 나 죽는다.
지숙: 그냥... 한 번쯤 이런 자리도 갖고 해야지, 요즘 내가 좀 심하게 다그친 것 같기도 하고,
동식; 그게 조금이야?. 정말 죽지 못해 살아온 나날이었다.
(지숙):(울먹이는) 그래 나 죽는다고
지숙: 미안해.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고, 또 다 죽게 마련이니까.
(병맥주를 들며) 자. 건배!
 직원들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친다.
경직되어 있던 직원들, 서서히 풀어지며 분위기가 살아나는데.
지숙:(일어난다) 나 노래할게.
오호!!!
그 대단한 팀장 이지숙이 노래한다는 소리에 괴성이 터진다.
직원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번호를 누르는 지숙을 본다.
(점프)
윤복희의 여러분을 부르는 지숙. 열창 수준이 아니다. 거의 울부짖음이다.
지숙:(노래)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여... 나는 너의 기쁨이여.
사람들, 모두 턱을 빼고 쳐다보면.
지숙: (흐느끼듯) 내가 만약 외로울때면, 누가 외로해주지.
그 대목에서 잠깐 멈춘 지숙.
눈물이 가득 담긴 눈으로 팀원들을 보면.
흠칫 놀라는 직원들, 시선을 돌린다.
지숙: (손으로 가리키며)그건 여러분!!
 직원들, 짝짝 겨우 박수를 친다.
지숙:(코를 훌쩍이며 정신을 수습하고)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지숙, 나가면,
동식: 분위기 깨는것도 가지가지다.
37. 단란주점 앞(밖/밤)
술취한 지숙이 축 처져 화단에 앉아있고,
직원들 모두 꽁무니를 빼고 가버린다.
동식:야!. 연숙씨. 심재철! 다 가면 어떡해?
연숙: 동기 좋다는게 뭐예요? 선배님 수고하세요.
택시를 타고 가버리면.
어쩔수 없이 동식 혼자 남았다.
동식. 지숙을 흔들며.
동식: 이팀장. 일어나! 이팀장! 야. 이지숙. 안 일어나!
지숙:(힘겹게 고개를 들더니 혀꼬부라진 소리로) 아. 문동식!
나 미워하지마. 응? 나 미워하면 안돼. 내 장례식에 꼭 와야돼.
동식: 술 주정도 참, 원대하게 한다. 좀 일어나봐!
지숙: (다시 정신을 놓으며) 안 오면 죽어....
동식. 화는 나는데 어쩔 방법이 없다.
38. 아파트 입구(안/밤)
졸고 있는 경비 앞을 휙 지나가는 동식
낑낑대며 지숙을 엎고 간다.
39 지숙 아파트 앞
지숙을 업은 채로 한 손으로 열쇠를 돌리는 동식
40. 지숙의 방(안/밤)
패대기치듯 지숙을 침대에 내려놓는 동식.
지숙. 정신을 못차린다.
지숙을 제대로 눕히느라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떨어지는 동식의 넥타이핀....
겨우 지숙을 눕히고 땀을 닦는 동식.
동식: 어휴...인간아. 인간아... 안하던 짓은 왜 해가지고...
하다가 위로 올라간 치마를 보자 기분이 이상해진다.
손가락 끝으로 치마를 살짝 내려주는 동식.
41. 아파트 거실(안/밤)
전체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동식, 목이 마른 듯 냉장고 문을 열면
냉장고에서 세어 나오는 환한 불빛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동식...
41-1 지숙의 방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지숙의 다리
(다시 거실)
느끼한 표정의 동식...
F.O
42. 경비실 앞(박/아침)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벌린채 조는 경비.
똑똑 유리문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잠이 덜 깨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면 문밖에 지숙이 서 있다.
경비가 나온다.
경비: 출근하십니까?
지숙: 예. (선물을 내밀며) 이거....
경비: (놀래서) 뭔데요?
지숙: 지난번에 주차건으로... 제가 좀....죄송합니다. 나쁜 뜻은 없었어요.
경비: 아이구. 뭘 그런걸 가지고... 이거 받아도 될래나.
지숙: 받으세요. 성읜데.. 그리고 저 너무 나쁘게 생각지 마세요.
경비: 예?
하는데. 아파트 앞에 병원차가 서 있는게 보인다.
지숙이 그쪽을 쳐다보면.
경비: 그러게...자식이 뭔지....
지숙: (경비를 본다)
경비: 아들이 교통사고 났다는 소리 듣고, 그 자리서 쓰러졌대요.
자식보다 먼저 죽지 싶네.
지숙, 그제서야 시골집이 생각난다.
43. 시골집 안방(안/아침)
아침을 먹는 지숙의 아빠, 오빠. 올케. 홍이 진이.
찌게그릇에 서로 숟가락을 담가가며 밥을 먹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오빠가 전화를 받는다.
오빠: 여보세요?.... 으잉 지숙이냐? 왠일루? 집인 별일 없어.
너는?...
44. 차안(안/아침)
운전하면서 핸즈프리를 통해 전화를 하는 지숙.
울음을 겨우 참으면서...
지숙: 밥먹어?
일 시작했는데, 고기도 사다 먹고 그래. 힘든 일 하면서 맨날 김치만 먹지 말고.
응... 나?
(흐느낌을 겨우 참는다) 나야 잘 먹지.
45. 시골집 방(안/아침)
오빠:(전화기에 대고) 그래. 알았어. 응. 끊어.
오빠 갸우뚱하며 전화를 끊으면
아빠: 왜? 무슨일 있대냐?
오빠: 말로는 별일 없다고 그러는데 일이 있는거 같어.우리 반찬 걱정을 다 허네
올케: (놀래서) 무슨 일이랴?
46. 사무실(안/낮)
넥타이핀을 매만지며 책상 앞에 앉은 지숙.
경비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경비): 자식보다 먼저 죽지 싶네.
한숨을 쉬는데
불쑥 열쇠가 들이밀어진다.
지숙 깜짝 놀란 듯 넥타이핀을 얼른 감추고
올려다보면 동식이다..
지숙: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이게 뭐야?
동식: 몰라서 물어?
동식 보며 생각에 잠긴 지숙
47 회사 구내 다방(안/낮)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지숙과 동식.
지숙: 책임져.
동식: 책임질 게 있어야 책임지지.
지숙: 내 방에 들어 온 남자, 니가 첨이란 말야.
동식: 얘 봐라. 물에 빠진 애 건져 주니까 보따리 내노라네.
지숙: 실은 나 다음달에 회사 관둬. 내 후임자로 너 추천할 생각이야.
동식: (슬슬 구미가 돈다)
지숙: 나 그동안 자료 엄청나게 모아 놓은 거 알지?
그것도 줄게.
동식; (탐난다) ... 안돼. 나 거짓말 못해.
지숙: 아냐. 너 잘해. 너 정말 거짓말 엄청 잘해.
동식: 딴 사람 찾아봐.
지숙: 딴 사람 누구? 내가 너말고 이런 부탁할 사람이 어딨어?
동식: 그럼 아버질 설득하든가.
지숙: 아니 니가 책임져. 무조건 책임져
동식: (황당하다는 표정)
지숙: 부탁이야. 내가 너한테 뭐 부탁한 적 있어? 없잖아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줘.
(지숙): 게다가 난 죽을 사람이라구.
간절한 눈으로 동식을 쳐다보는 지숙.
동식.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48. 혜원의 병실(안/낮)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한자 한자 핸드폰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혜원.
'암이란 거 거짓말이야. 농담이었어'까지 쓰고, 문자를 보내려는데,
삐리리리리! 경쾌하게 울리는 핸드폰.
애써 쓴 문자가 다 날라간다.
깁스한 손으로 핸드폰을 날려버리는 혜원.
49. 국도(밖/낮)
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국도.
지숙의 차가 지나간다.
50. 차안(안/낮)
늘 캐주얼 차림이던 동식. 양복이 영 어색하다.
넥타이를 느슨하게도 해보고, 어깨를 움직여도 보고.
운전중인 지숙.
테잎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지숙: 우리 아빠가 뭐 먹으라고 하면 다 받아 먹어. 안 그럼 서운해 해.
(쓸쓸하게) 아빠가 뭐 먹으라고 그럼 난 짜증냈는데...
말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지숙.
동식이 슬쩍 쳐다본다.
지숙; (기분을 추스리고) 바둑 둘 줄 알아?
동식: 아... 진짜 내가 미쳤지.
정말 이러는 이유가 뭐냐?
지숙: 얘기했잖아. 나혼자 유학가는거 땜에 울 아빠 너무 걱정한다고.
동식: 그치만 언젠간 걸릴거 아냐?
지숙: 그땐 그때고... 마지막으로 효도 한 번 하고 싶어.
(지숙): (말해놓고 스스로 놀라서) 마지막 효도!!
동식:(조금은 비꼬는 투로) 보기보단 효녀다.
잠깐 말이 없다가.
지숙: 너. 니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동식:뭐?
지숙: 난 말야.
51. 성당 (안-상상)
정확히 어딘지 알수 없지만. 교회같은 분위기의 장소.
장엄한 미사곡이 울려 퍼지고.
백합꽃이 가득 꽃힌 화분이 네 귀퉁이에 놓여 있고,
관안에 예쁜 드레스를 입은채 누워있는 지숙.
지숙의 회사 사람들, 가족들, 경비등등이 검은색 옷을 입고,
국화꽃 한송이씩을 관 안에 놓고 간다.
그때.
(동식): 그건 서양식이지.. 우리나란 달라.
갑자기 관 안에서 끌어내지는 지숙.
52 시골 안방(상상)
기다린 베로 지숙을 총총 동여매는 오빠와 동식.
53. 차안(안/낮)
운전하면서 헐떡이는 지숙.
동식:(의아해서) 왜 그래?
지숙: 멀미하나봐.
동식: 어떻게 운전하면서 멀밀 하냐?
(인서트)
갓길로 나오는 지숙의 차.
등받이에 머리를 젖힌채 심호흡을 하는 지숙.
테잎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소리: 앞으로 60을 살지 80을 살지. 벽에 뭐 칠할때까지 살지 그건 모르겠지만.
인생에 있어 2년은 그리 긴 것 같지 않아요.
지숙: (문득) 김광석이 몇살까지 살았지? 그렇게 일찍 죽을 걸 알았을까?
동식: 알았으면 이런 얘기 했겠어.
지숙,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핸들에 엎어져 엉엉 운다.
동식. 놀라 쳐다보면.
지숙: 살아 있는건 다 불쌍해. 언제 죽을지 알아도 불쌍하고, 몰라도 불쌍하고.
지숙, 너무 격렬하게 울다가 이마로 클락숀을 박는다.
짧은 삑소리!
54 과수원
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오빠, 올케.
차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지숙의 차가 멀리서 오고 있다.
55 안방(안/낮)
일하다 들어온 차림 그대로, 모자를 벗으며 자리에 앉는 아빠.
머리가 눌려 있어 우습다.
절 할려고 엉거주춤 서 있는 동식.
아이들은 오빠 뒤에서 동식을 빤히 쳐다본다.
올케언니는 어지러진 방을 대충 대충 치우며 지숙이 화를 낼까봐 눈치를 본다..
올케: 어째 다른 때보다 더 어질러놨네.
농사지랴. 살림허랴. 정신이 없어서... 아가씨는 참.... 오면 온다. 전화 한통화 안 하고...
아빠: 그러게 말이다. 옷도 못 갈아입고.
지숙:(다정하게) 괜찮아요. 사는게 다 똑같지 머. 아빠도 멋있고, 언니도 이뻐요.
이럴수가!!
아빠와 오빠. 올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지숙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본다.
동식: 절 받으십시오. 아...버님.
절하고 무릎꿇고 앉는 동식.
오빠: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편하게 앉어. 편하게... 그렇게 앉으면
다리 저려.
동식: 그러겠습니다.
아빠: 이름이...?
동식: 문동식입니다. 나이는 서른하나구요. 이팀장.... 지숙씨랑은 직장 동룝니다.
아빠; 부모님은 어떻게...?
동식: 두분 모두 호주에 계십니다.
아빠:(오빠에게 슬쩍) 호주가 어디냐?
오빠: 있어요 호주라고....
지숙: 나 유학간다는 데가 호주예요
오빠: (지숙에게) 저번이 왔을때만 해도 이런 얘긴 비치지도 않더니...
지숙: 그렇지 뭐...
지숙, 종이가방을 끌어당겨 선물을 꺼낸다.
지숙: (아빠에게) 홍삼예요. 몸 생각해서 꾸준히 드세요. 너무 힘든 일은 하지 말고.
아빠:(어리둥절해서) 아무 날도 아닌데...이런걸 다..
지숙:(오빠에게) 지난번에 보니까 오빠 구두 다 떨어졌대.
(언니에게) 화장품 셋트거든요. 언니 피부 더 상하기 전에 아침저녁으로
발라요. 자외선 차단효과도 있대니까 일나가기전엔 꼭 발르고.
(조카들에게) 우리 귀여운 홍이. 진이!
모두들, 지숙의 돌변한 태도에 어리둥절하다.
56 시골 길(밖/저녁)
시골 길을 나란히 걷는 지숙과 동식.
그 뒤를 쫄래 쫄래 따라걸으며 둘의 눈치를 살피는 홍이 진이.
용이: 재네 사귀는 거 맞지...
홍이: 저 멀대 눈이 삐었냐? 마녀를 좋아하게..
용이: 에이 머리 아프다. 밥이나 먹으로 가자
조르르 사라지는 아이들
동식: 아버지랑 오빠랑 안 그런데. 너만 왜 독종이냐?
지숙:...
동식:(주위를 보며) 이런데서 자라면 성격도 좋아진다던데... 어째 그럴까?
지숙: 그만해..
동식:...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는데?
지숙: 알거 없잖아.
동식: 같이 유학가서 나중에 결혼까지 할 사인데 알아두자구.
지숙: (쳐다보다가 픽 웃는다)
일곱 살 때... 그전부터 내내 아팠구.
동식: 아버지가 고생 많으셨겠다.
지숙; 어. 과수원 일에다가 밥하고 빨래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울 오빠가 일찍 결혼한것도 아빠때문이것 같해.
아빠 고생하는거 불쌍해서...
지숙이 문득 걸음을 멈춘다.
동식이 슬쩍 쳐다본다.
지숙: 난 그것도 모르고, 새언니 맘에 안 든다고 대놓고 그랬었는데...
(쓸슬하게) 난 어렸을 때부터 참 못됐었구나.
지숙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
동식의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지숙: (조심스럽게 넥타이핀을 건네며) 이, 이거
동식: 이게 뭐야?
대답 없이 흐뭇하게 미소짓는 지숙...
알쏭달쏭한 표정의 동식
57 과수원(밖/낮)
아빠와 오빠. 올케. 일할 생각은 안하고 쑥덕거린다.
아빠: 이상허다.
오빠: 그렇죠? 아무래도 이상해.
올케; 아가씨 같지 않아요.
아빠: 갑자기 남자 데려와서 같이 공부하러 갈 사람이라고 하는 게...
오빠:그거야 쟤 성격에 그럴수도 있지만... 명절때도 빈손으로 오던 애가....
올케: 아까 들었어요? 아빠도 멋있고 언니도 이뻐요. 그러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구
58 안방(안/밤)
오빠와 동식은 바둑을 두고,
언니는 과일을 깎는다.
조카들은 지숙의 선물인 듯 게임을 하고 있다.
아빠는 동식에게 과일을 권하고
처음엔 사양하던 동식. 지숙과 눈이 마주치고 받아먹는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
이 모든 모습을 가슴에 담아가려는 듯,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는 지숙(*그래서 가족들의 말소리는 어렴풋이 들린다.)
(지숙): (오빠를 보며)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한 거 미안해.
오빠. 건강해야돼. 아프지 말고.
(언니를 보며) 언니! 언니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처음 시집 왔을 땐 수줍은 새색씨 같았는데....
문득.
아빠: 내일 엄마 산소에 들러 가라.
오빠: 산소요?
아빠: 새사람 왔는데 인사 가야지.
오빠: 가는김에 우리도 갈까? 다녀온 지도 오래됐는데..
(바둑판을 보며) 죽으면 다 소용없어.
오면 오는걸 아나. 가면 가는 걸 아냐?
뼈만 남았을테지.
아빠: 죽어도 안 잊히는게 자식이다. 뼈만 남았어도 좋아할테지.
(지숙):(아빠를 본다) 아빠! 불쌍한 우리아빠.
나 아빠한테 잘못한 거 너무 많은데...
아빠보다 먼저 죽어서 정말 미안해.
아빠. 미안해.
감정에 겨워 아빠 등에 살며시 얼굴을 기대는 지숙.
그러나. 지숙의 감정도 모른채 화들짝 놀라 피하는 아빠.
아빠: 왜 이러냐? 얘가...
지숙: (뻘쭘하다)
아빠: 땀 냄새 나냐?
지숙: (몰라줘도 너무 모른다) 다들 너무해. 진짜... 내가 정말...
(하다가 나가버린다)
동식:(어리둥절해서) 이팀장!
모두들 나가는 지숙을 쳐다본다.
59 과수원(밖/밤)
달빛이 환한 과수원,
사과나무 아래서 울고 있는 지숙.
바람이 불자. 사과 꽃이 우수수 떨어진다.
눈처럼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다가, 쭈그리고 앉아 한잎 한잎 치마폭에 주워담는 지숙.
(동식): 정말 다른 이유 없어?
돌아보면 동식이 서 잇다.
동식: 요즘 이상해. 너 뭔가 있지?
지숙: (떨어지는 꽃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예쁜데.. 아직 이렇게나 이쁜데...
떨어져서 시들어. 하나 하나 다 다시 붙여줬음 좋겠어
지숙, 일어나다가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린다.
동식이 잡아준다.
지숙:(의미심장하게) 어지러워. 나 이렇게 죽나봐.
동식: 딴소리 하지 말고, 도대체 뭐야? 왜 그래?
지숙:(속상하다) 관두자!
60 병원 원무과(안/밤)
새끼손가락으로 한자 한자 이메일을 쓰는 혜원.
'임이란거 거짓말이야. 장난친거야.'
마우스를 움직여 편지를 보내려는데.
새끼손가락하나로 하는거라 잘 되지 않는다.
겨우 편지보내기로 화살표를 보내고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피유융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나가버린다.
문간호사가 그만 콘센 전원을 밟은 것.
으으으!! 말은 못하고 헤원, 부르르 떠는데.
문간호사,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로운 얼굴로.
문간호사: 미안. 미안...
(하다가) 환자가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떡해요. 들어가요 빨리.
문간호사 혜원을 끌고 사라진다.
(F,O)
61 산을 낀 도로(밖/낮)
트럭과 지숙의 차가 나란히 달려와 갓길에 멈춘다.
트럭에서 내리는 오빠와 올케.
지숙의 차에서 내리는 동식. 아빠. 지숙. 조카들.
오빠는 돗자릴 들고, 올케는 찬합을 들고 산길을 오른다.
62 산길(박/낮)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오르는 지숙.
문득 슬픈 생각이 들어 멈춰선다.
(지숙): 숨시기가 괴롭다. 얼마 안남았나보다.
올케: (뒤따라오다가)거봐 아침 안먹더니...
오빠: 것보다도 움직였어야지. 몸은 벌써 할머니일걸.
지숙:(울컥) 그렇게만 해. 나중에 엄청 후회할테니까.
오빠;(동식에게) 쟤 회사서도 저러나?
동식; 말도 못해요. 오죽하면 별명이 발끈 대마녀라고......
(지숙이 째려보자) 하하.. 그게 또 매력이죠.
63 엄마 무덤앞(밖/낮)
잘 꾸며진 엄마 무덤.
무덤앞에 꽃이 심어져 있다.
동식이 절을 하는 동안, 아빠는 잔디에 난 풀을 뽑는 척 돌아선다.
(점프)
가족과 좀 떨어진 곳에 나란히 앉아있는 지숙과 동식.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케가 돗자리위에 먹을 것을 꺼내놓는다.
홍이와 진이는 소풍온 것처럼 좋아한다.
동식: (마을을 내려다보며) 늙으면 이런데서 살고 싶어.
지숙: (되뇌인다) 늙으면?
동식: 어. 공기도 좋구, 사람도 별로 없구,
(하다가) 벌써 덥다.
양복 윗도리를 벗어 지숙에게 건네고,
와이셔츠를 걷는다.
힘줄이 돋아난 팔뚝을 끌린 듯 바라보는 지숙.
동식이 쳐다보면,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돌린다
(지숙): 죽게 되면 아무나 멋있어 보이나부다.
그때.
(올케): 아가씨. 같이 와요!
(점프)
돗자리에 걸터앉은 가족들.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김밥을 들고 쳐다보는 지숙.
(지숙) ; 위암 말기쯤되면 먹을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는데...
조심스럽게 한입 먹어보는 지숙.
맛있다.
허겁지겁 먹는 지숙
올케: 아가씨가 시장했나보네. 천천히 먹어. 물 좀 마셔가면서...
64 개울옆(밖/낮)
동식과, 아이들, 아빠는 개울가에서 놀고 있다.
그들과 한참 떨어진곳에 오빠와 올케. 지숙이 있다.
지숙: 언니. 오빠.. 놀라지 말고 들어요.
그리고 내가 하는 부탁 꼭 들어줘야 돼.
올케:(얘기는 신경안쓰고 아이들을 보다가) 홍아! 조심해야지.
지숙:(버럭) 언니!
올케: 얘기해
지숙: (다시 분위기 잡으며) 언니 오빠가 도와주지 않으면 나 맘놓고 떠날수가 없어서
그래요. 이런 말하는거 언니 오빠한테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아는데...
오빠:뭔데 심각해?
지숙; 나 며칠전에 병원갔었는데...
지숙,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
오빠: 병원?
지숙:(아빠쪽을 보며)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아우 배 아퍼!
올케: (작은 소리로) 아가씨! 임신?
지숙:(버럭) 언니!
(하다가) 아우... 왜 이렇게 아프지?..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오빠: 야!
오빠와 언니가 쓰러진 지숙을 안아올린다.
65 차안(안/낮)
동식이 운전을 하면서 뒷자석을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본다.
조수석엔 오빠가.
뒷자석엔 아빠가 지숙을 부축하고 앉아있다.
지숙:(식은땀을 흘리며) 어디가는거야?
오빠: 병원가지 어디가? 그러게 무식하게 먹더라니.
지숙: (헐떡이며)안돼. 병원은 안돼. 오빠 안돼?
오빠: 니가 애냐? 병원을 무서워하게.
지숙: 오빠 안된다니까..내 마지막 효돈데...아우. 배야...
(인서트)
비상 등을 켠채 달리는 지숙의 차
더 심해진 지숙.
거의 몸부림을 치다시피한다.
지숙:(비명을 섞어가며) 아퍼. 아퍼. 너무 아퍼... 아직 두달이나 남았는데...
돌팔이 같은 기집애... 아빠. 나 죽어! 아이고... 나 죽어...나 좀 살려줘.
아빠: (지숙의 손을 잡고) 걱정마라 체했다고 죽진 않는다.
오빠:(동식에게) 어려서부터 엄살이 심했어 쟤가.
숨을 헐떡이며 거의 기절하다시피하는 지숙.
66 병실(안/낮)
눈을 뜨는 지숙.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동식을 발견한다.
지숙: 어디야?
동식: 병원.
지숙:(놀란다) 아빠는?
67 진료실(안/낮)
의사앞에 앉은 오빠와 아빠.
의사:(처방전을 쓰며) 염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빠: 괜찮겄죠? 선생님
의사: 몇일 약먹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면...
이때. 벌컥 문이 열리고 뛰어드는 지숙, 의사를 쳐다보다가 오빠를 보고, 아빠를 본다.
모두 쳐다보면.
뒤따라오는 동식.
동식: 이팀장!!
지숙: (의사에게) 다 말했어요?
의사: (건조하게) 예.
지숙: (오빠에게) 얘기 들었어?
오빠: 그래.
지숙:(아빠에게 안기며) 아빠, 미안해. 나 정말 아빠한텐 숨기고 갈가 그랬는데...
아빠 슬프지 않게 그렇게 떠날려고 그랬는데.
나 죽고 싶지 않아요. 정말..
(하다가 의사에게 매달리며)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아직 죽을수 없어요. 내가 해야할게 얼마 많은데...
아빠한테 효도도 해야되구.  제가 만든 작품 방송되는것도 보고 싶구요.
축구는 좋아도 안하지만, 우리나라가 16강 가는지도 궁금해요.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모두들, 지숙의 울부짖음에 어안이 벙벙하다.
의사:( 건조하게 처방전을 건네준다) 이약 먹으면 죽진 않을겁니다.
지숙: 예?
68 혜원의 병실(안/밤)
얼굴 압박 붕대를 푸르는 혜원.
69. 복도(안/밤)
뛰어들어오는 지숙, 뛰다시피 혜원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잠시후 들리는 비명소리.
70. 병실(안/밤)
붕대는 풀렀지만.
코에 휴지를 말아 끼고 있는 혜원.
문간호사:(평화로운 얼굴로) 코뼈엔 이상없대요. 한선생님.
(f.o)
71. 사무실(안/낮)
화면 밝아지기 전
(지숙):(버럭) 도대체 몇번을 해야 알아들어요.
연숙이 지숙에게 혼나고 있다.
지숙: 배경이 요란하면 주인공이 눈에 띌 리가 없잖아.
생각을 좀 해. 생각을!!
연숙: 죄송합니다.
 직원들, 모두 지숙을 쳐다본다.
전화가 온다.
지숙:(전화를 받으며) 이 아이디어는 참 좋네. 제목도 좋고
연숙:(놀란다) 네?
손으로 그만 가보라는 시늉을 하며
지숙:(전화기에대고) 여보세요? 아빠!
(듣다가) 아이 참... 아빠 왜 그래요?
진짜 그냥 회사 동료라니까... 아무 사이도 아녜요.
그얘긴 다 끝났잖아.
동식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돌리며.
지숙: 데려오긴 뭘 또 데려와!
픽 웃는 동식.
72. 엘레베이터(안/저녁)
1층을 누르는 지숙, 퇴근한다.
문이 닫힐 때 뛰어들어오는 동식.
지숙, 벌쭘해서 시선을 돌린다.
동식: 아버지가 뭐라시냐?
지숙: 알아서 뭐하게?
동식; 한 번 꼭 오라고 그러셨었는데.
지숙: 네가 거길 왜 가?
동식: 과일주 먹으러
지숙: 그걸 왜 먹어?
문이 열린다.
나가면서
동식: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래도 한때는 결혼할 사이였잖아
지숙: (놀라 아는 사람이 있나 쳐다보고) 조용히 해!
73. 거리- 지하도 입구(낮)
거리를 단장한 꽃들이 아름답다....
활기차게 거리를 걷는 지숙
거리에서 꽃을 하나 사 들면서...
(지숙) 난 살아있다.
(지숙): 내 인생의 계획은 다시 시작됐다.
3개월 시한부 인생에서 무기한 인생으로...
그 때 지숙을 스쳐가는 사람들,
자세히 보면 S#25의 유치원생, 할머니, 연인들 등등...
지숙,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지하도로 내려가는 ...
지숙. 구걸하는 걸인이 있는 계단을 못본 듯 지나간다.
그러다가 다시 frame in 되어 냄비에 천 원을 한 장 떨어트리고 사라진다.
지숙의 뒷모습 위로
(지숙) 저의 장례식에 오실 거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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