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 심판 주의 심판 기준인 율법과 양심 (롬 2,11-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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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 심판 주의 심판 기준인 율법과 양심  (롬 2,11-16)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 헬라인에게라 (롬 2, 5-11)
로마서 2022 2022. 6. 18. 21:15
22-009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 헬라인에게라 (롬 2, 5-11)

〈로마서 2,11-16, 개역한글 신약성경 241쪽,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보라,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1.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자여 어이할꼬

2.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꼬

3.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살아 계신  주 하나님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셨다
   생명수는 홀로 예수 처음이요 나중이라 
   주님 너를 부르신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4.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만 백성을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셔
   인애하신 우리 구주 의의 심판하시는 날 
   곧 가까이 임하는 데 믿는 자여 어이할꼬


〈로마서 2,11-16, 개역한글 신약성경 241쪽〉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삼상 4:1, 개역)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삼상 4:2, 개역)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삼상 4:3, 개역)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삼상 4:4, 개역)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삼상 4:5, 개역)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삼상 4:6, 개역)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삼상 4:7, 개역)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삼상 4:8, 개역)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삼상 4:9, 개역)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삼상 4:10, 개역)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삼상 4:11, 개역)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1.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의지 하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2. 주예수와 밤낮으로 늘 함께 그대는 행동을 하는가 
   아무때나 어디든지 그대는 십자가 붙들고 있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3. 주님 예수 다시올 때 그대는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곳 성전에 들어갈 준비가 됐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4. 모든 죄에 더러워진 예복을 주앞에 지금 다 벗어서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희게 씻으라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롬 2:11,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2:12, 새번역)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롬 2:13,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2:14, 새번역)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롬 2:15, 새번역)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롬 2:16, 새번역)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 ㉧그, '나의 복음'


하나님이 인간을 상대하실 때에는 율법을 가지고서 상대하십니다
즉 율법 없는 인간은 상대하질 않는다 라는 거죠
왜? 우상숭배자인 짐승과 똑같으니까 말이죠
아예 인간 취급 안하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서 뭐 인권 무시니 백날 떠들어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지난 주에 말한 제사장 곧 중보자 만으로만 상대하신다 라는 겁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거룩한 죽음을 다루는 자입니다
즉 이 말은 우리는 주 앞에서 항상 죄 밖에 없는 자 이다는 겁니다

(시 51:3, 개역)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일명 (본이름 외에 따로 부르는 이름) 뻔뻔한 시입니다

(시 51: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개역)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개역)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개역)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개역)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7, 개역)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개역)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개역)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시 51:10, 개역)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개역)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개역)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 개역)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 개역)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51:15, 개역)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 개역)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개역)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개역)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 개역)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제사장 곧 중보자만 상대하신다 라는 말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만 보신다 라는 거죠
그러니 그 외모가 중심과 한 세트로써 두 언약으로써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거죠

(시 51:6, 개역)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그렇게 외모 껍데기만 따지는 번제와 제사만을 따지는 아비아달 제사장을 짤라내고
사독 제사장을 제사장으로 중보자로 중심으로 세워서 
마음판의 할례처럼 말이죠

이 두 언약을 세워서 언약을 성사시킴에 있어서
드디어 거룩한 죽음인 거룩한 심판인 피 흘리심 
곧 기름과 피를, 화목제물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죽음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취지인 정답이다는 거죠
율법의 완성인 십자가의 사랑 말이죠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정답만을 가지고서 주님은 인간을 상대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즉 인간을 상대하지 않으시고 중보자만 상대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그 나머지는 사람의 일 사탄의 일이다 라는 거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만 상대하시는 겁니다

그럼 원인 없는 결과인 주님 쪽에서 부어주시는 이 정답에 딱 맞는
문제지 문제아 는 누구입니까?
바로 특급상품인 이스라엘이다 라는 거죠

중보자인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하늘에 속한 장자 덕분에 우리는 사는 자입니다 라고
하늘의 거룩 덕분에 산다 라고 장자는 맏물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 아닙니까
이 거룩한 죽음 덕분에 사는
이삭의 희생제물 덕분에 사는 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듯이
믿음의 혜택을 받은 일번 타자 
원조이다는 거죠 믿음 덕분에 사는 자
그러니 이 죽은 자를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산 자로 
전이 변이 이동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그 믿음이
그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가 바로 이삭처럼
무능하고 땅에 지분이 없고 육으로 난 자가 아닌 하늘에서 난 자로써의
인자 라는 겁니다
누구 누구의 아들 어라 그런데 다윗의 아들이 아니더라 말이죠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 이더라 말이죠
죽은 다윗을 살리는 산 자의 하나님이더라 말이죠
아브라함 이삭 덕분에 살고
이삭은 야곱 덕분에 살고
야곱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요셉 덕분에 사는
인자 덕분에 중보자 덕분에 사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인데
그 반대 급부가 나타나줘야 막연하고 추상적인 사랑이
그 두 언약의 차이로써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겁니다

율법 껍데기의 번제와 제사로 잔칫집을 현상 유지 보수 하고자
남의 전재산인 귀한 어린양을 빼앗가 손님 마귀에게 대접하고
그 놈을 당장 율법의 네 배나 갚으라 라고 
또 율법의 껍데기
외모 겉모양만 갖추다 보니
중심이 없고 중심을 무시하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
율법을 사모하는 열심히 율법의 살인하지 말라는 어기게 되는
이 모순의 간극을 이 세 구덩이 꼬끼오(노아) 꼬끼오(욥) 꼬끼오(다니엘)
이 하나님의 거룩한 죽음을 거룩한 심판을 넘어갈 방법이 없이
그만 탁 하고 걸려 넘어져 실족케 되는 겁니다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심판의 주로 왔는데
이 심판을 이 종말을 몰고오신 주님을 뽀뽀하고 입맞추지 않고
그저 자기 배를 위하여 자기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 다가오니
다들 실족하여 넘어지는 겁니다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무조건 율법이 있다 라는 이유로 망하지 않는 나라이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의 거룩한 죽음이 
이 거룩한 심판의 불과 동행하는 자 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억수로 봐주시는 긍휼과 자비가 있다 라는 거죠

반면에 개같은 이방인은 율법이 없다 라는 이유로
무조건 이미 망한 자로 취급해 버리신다 라는 거죠

결국 그 기준이 뭡니까 바로 정답인 율법이다 말이죠
이방인에게서는 오늘 본문에 나온대로 양심이 율법의 기능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이방인이 말하는 양심은 성경에서 말하는 이방인의 양심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방나라의 모든 종교가 바로 이 양심에서 출발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심지어 국가의 법도 말이죠 윤리 도덕
바로 이런 종교 교리와 같은 것들이 양심에서 출발한다 라고 해서 같이 볼게 아니라 말이죠
마침 1년 전에 그때도 봤는데 또 재방을 하길래
시사기획 창에서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라는 다큐인데 youtu.be/v7MKTtUm0lM 
그때 껍데기와 싸웠던 운동권이 도리어 자식들에게 껍데기만 물려주다 보니 껍데기 취급을 받더라 말이죠 
바로 이것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악한 무화과 나무 예레미야 22장에 나오는 악한 나무들의 특징이다 말이죠 
아베 히틀러 보세요 자기가 키울려는 자위대에게 결국 죽음을 당하는 
자기 머리에 자기가 쏘고 있는 겁니다 까불다가 갔지요 뭐

인터넷 댓글을 보니 그 다음은 도리도리 차례이네 라고 다들 누워서 침뱉기 하는 겁니다
정답이 없으니까 무당짓만 서로가 서로에게 해요 글쎄 정답이 있는 인간 같으면 그러겠냐 말이죠 이미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 이다는 겁니다 아니 망하는 이 아니라 이미 망한 자 이지요 이들의 양심은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변질이 됩니다 자기가 싸운 독재세력이 나이가 드니까 자기가 도리어 그 독재 짓을 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양쪽다 겉모양만 쫏은 겁니다 그게 정의요 멋들어진 것이라꼬 ~~~~ 
어딜 감히 거룩한 죽음 이 모욕적인 심판의 구원 앞에서 사기를 치냐 말이죠)

오늘 나온 첫 구절에 나오는 외모의 반대 바로 중심 마음의 중심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이방인에게는 이 중심이 없는 거죠
(이런 이방인처럼 유대인 조차도 경건의 모양만, 외모만 갖추었지
경건의 능력인 중심을 정답을 율법을 거부하더라 말이죠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도리어 율법을 거부하는 살인이니 말이죠
살인하라 라고 율법이 부추기는 것처럼 말이죠)

마치 다윗이 정직한 영이 자기에게는 없다 라고 한 것 처럼

(롬 2:11, 개역)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마음이 없는 겁니다 
찔렀는데 마음이 있어야 뭐 아파 하거나 울거나 할 꺼 아니냐 말이죠
찔러도 아파하는 자가 없어요 마음이 중심이 없응께 ~~~~
(정작 사도행전 2장에서는 마음에 찔린 것이 성령이 없으니 성령을 달라 하는
마음이 찔림이 되었는데
반대로 사도행전 7장에서는 정반대로 마음에 찔린 것이 도리어 살인하기 위한
율법의 지킴이 된 거죠 살인하지 말라 라는 율법을 도리어 율법 지키기로
마음 찔림으로 인해 화풀이 복수 원한풀기 살인의지를 정당화 해 버리는 검니다
다시 언급하겠지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정당화의 달인으로써
경건의 모양을 껍데기를 마음의 중심을 중심이라고 캐놓고서는 껍데기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왜? 사울왕 계열처럼 하나님이 이미 그를 미워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말이죠

(행 7:54,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니가 뭔데 우리가 그렇게 마일리지 쌓아서 가리고자 했던 수치를 들추어내어 발가벗기느냐 라고 말이죠 그래서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겁니다
캬 이 얼마나 살벌합니까 지금 에스겔이 아니다 오늘은 로마서 이지
이 사도바울이 스데반을 죽인자 아닙니까
자기가 죽였던 그 스데반의 자리에 앉아서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도리어 스데반의 바톤을 이어 받아서 외치고 있습니다
죽을 각오한 거죠
에스겔도 맞아 죽을 소리만 골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 씨알이 먹히는 자들에게 해야 하는데
절대로 네버 네버 네버 절대로 안 먹힐자들에게만 골라서 골라서 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 속에서 사도바울 본인이 태어났으니까 말이죠
에스겔도 예루살렘 땅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 그발강가에서 태어났으니까 말이죠 중생
비로소 새 성전을 봐 버렸으니까
상황을 보고 때를 보고 여건이 좋을 때, 그런 조건 따져서가 아니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듣든지
모든 것이 음부의 권세 속이기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 속이기에 이 십자가가 또렷한 겁니다)

아무튼 이방인에게는 이 마음이, 이 중심이, 이 율법이 없다 말이죠
중심이 없어요 
정답이 없더라 말이죠
율법이 없는 겁니다
중보자가 없고
믿음의 주가 없고
울게 하는
거룩한 죽음이 없는 겁니다 
화목제물이라는
너희가 나를 사랑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화목제물이 말이죠

심지어 어떤 장로는 잠깐 양심 있는척
마음에 찔려 죄책감을 느끼다가 
바로 그 죄책감이 도리어 원한 풀이가 되어버리니까
살인의지를 불태우더라 말이죠

가룟유다가 그랬거든요
뉘우쳐 깨달아서 자살을 해 버리더라 말이죠
그게 자기가 자기 꾀에 걸려 넘어지는
올무에 미끼에
자기가 친 미끼에 올무에 자기가 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깨닫지 마세요
불교처럼 말이죠
성경에서 말하는 듣고 깨달아라 라는 말은
역시나 성령의 숙제에 달려있으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라는 말입니다

깨달은 내가 이렇게 기특한데 언놈이 건드려 라고 된 자들이 사울왕이였거든요
성신을 받은 것이 도리어 더 촉매재가 되어서 집착하게 되죠 살인의지로 변했어요
첫 번째 피조물이였던 타락한 천사가 그랬어요
그런 마귀를 잡을려고 올무를 친 선악을 왜 인간이 먹냐 말이죠
마귀는 알았다 말이죠 자기 멸망을 말이죠
그 멸망 속에 인간 까지 끌어들여서 논개처럼 같이 껴안고 죽음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거룩한 죽음을
중보자 라는 믿음을 방해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 자의 대표성으로써 다윗과 반대되는 한세트로써의 사울왕이다 말이죠
주의 이름이 사울을 왕으로 삼지 않았고
인간 쪽에서 왕으로 삼아버렸으니 말이죠
개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성이 사울왕을 대표자로써 세움받아 나온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다윗이라는 어린아이로 이 이름 전쟁을 하시고요 ~~~~~
젖먹이 전쟁 누구 누구의 아들
임마누엘 아기 전쟁을
이름 전쟁을 하는 겁니다

(삼상 16:7, 개역)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분명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라고 해 놓고서는
다윗의 외모를 칭찬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본인의 마음을 곧 중심을 집어넣어버렸기에
뭘 해도 이뻐 ~~~~~~~~~~~~~~~~~~~~~~ 보이는 거죠
하나님의 의의 자작극
하나님의 거룩한 죽음의 자작극
주의 이름의 자작극
십자가의 죽음의 자작극
율법 곧 중심의 자작극이다 말이죠

즉 상대적으로 누구는 미워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네 맞아요 사울왕 입니다

(삼상 16:7, 개역)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8, 개역)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삼상 16:9, 개역)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삼상 16:10, 개역)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삼상 16:11, 개역)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6:12, 개역)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삼상 16:13, 개역)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 16:14, 개역)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5, 개역)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삼상 16:16, 개역)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삼상 16:17, 개역)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삼상 16:18, 개역) 소년 중 한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마침 지난 주에 중보자 제사장의 기업에 대해서 언급하다가
웃사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글로써 말이죠
녹음에서는 빠뜨렸는데

어제 어머니에게 
새로 언급을 했습니다

소가 법궤를 싣고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가 뛰는바람에 수레에 있던 법궤가 떨어지게 되었다 말이죠
그 떨어질려는 법궤를 바로 잡을려다가 웃사가 즉사 했다 말이죠

(삼하 6:3, 개역)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삼하 6:6, 개역)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삼하 6: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8, 개역)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이 이야기를 듣고서는
자꾸 어머니께서는 나 라도 잡겠다를 자꾸 반복하시는데

그런 개인적인 상황을 성경이 언급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도 교회에서 세뇌를 당한 것이
자꾸 개인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개인의 숙제를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이 보내시는 하늘에서 뚝 딱 떨어진 이름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가르쳐주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으니
개인 숙제만 세뇌를 당한 버릇이 있다 보니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만 자꾸 신경 쓰시는 겁니다

하여튼 목사 놈들 다 죽여버려야 해요
무당들이라서 살 자를 죽여버렸고
죽어야 하는 무당들을 다 살려버렸으니
무당대통령이 나올 정도이니 말이죠
한국기독교가 세운 무당 말이죠
한국 기독교 다 죽여버려야 한다 말이죠
천주교는 더 무식하게 이런 판국에 정의 운동이나 하고 있는
같은 무당들이다 말이죠 

아무도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이죠
그저 목사나 사제나 다 돈 돈 돈 우상 우상 우상 무당 짓만 골라서 해요 글쎄

그러니 그런 증상물로 저런 무당이나 튀어나오는 겁니다
아베 전 총리 꼴 날꺼다 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누워서 침뱉기 하는
정답이 없는 자들의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결과가 없으니까 원인만을 따지고서 서로가 자기 눈에 들보를 못보고
남의 꼬투리 잡기로 반드시 문재앙을 자살로 몰아가겠다 라는
그 짓 밖에 몰라요
자기가 자기 머리에 총 쏠려고 발악을 해요 글쎄

아무도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려고 하지 않는 가운데서
주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알리시고자

웃사를 그 도구로써 사용이 된 겁니다

어딜 감히 더러운 주제에 왜 거룩한 죽음을 만지느냐 왜 붙잡냐 라는 거죠

아무리 내 쪽의 좋은 의도
선한 의도가 있어도
안 받는 겁니다

주님 쪽에서 주시는 거나 받으라 라고 있는 것이 바로 제사장이요 중보자인데

이들은 웃사가 즉사 할 정도로
이 살벌하기 짝이 없는 무시 무시한 절대죽음이자 절대거룩을 만지는 자들이다는 거죠

오늘날 목사처럼
12지파가 소산물을 바쳐서
제사장이 먹고 사는게 아니라
거꾸로 반대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한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즉 율법이 있어서 안 망하도록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럼 내가 뭘 줬지?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주님이 묻자
베드로는 얼른 뻔뻔스럽게 대답합니다
방금 주님으로 받은 것 이 십자가의 사랑 맞지요
넉넉히 다 이긴 이 사랑 맞지요 라고 말이죠
중보자로부터 받은 믿음을 얼른 내밉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이 원수인 나 같은 죄인 베드로도 너끈히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에서 끊을 자 없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삼으신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 
주님 축하드립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라고 화답하더라 말이죠 찬송을 해요 글쎄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잘 아십니다 라고
당신이 줬응께 당신이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지라 ~~~~~~~
라고 면류관을 반납하는 24장로처럼 화답송을 부르더라 말이죠

이 얼마나 뻔뻔스러운 고백입니까

다윗의 뻔뻔한 시 시편 51편 노래처럼 말이죠
중보자의 기도를 요청하는 기도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는 한 쪽 강도의 뻔뻔한 간구 이다 말이죠


준거 뭐지
받은 거 내놔 보렴 인데

당신의 거룩한 죽음 요 ~~~~~~~~

이놈의 삯꾼 목사들이
그 채팅방의 사모들처럼
십일조를 바쳐야 복 받는다 라고

여전히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여호와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무시 무시한 불을 외치는게 아니라
다른 불을 자꾸 드려서 우상숭배나 하고 있더라 말이죠

법궤만 앞장 세우면 전쟁에서 무조건 이긴다 라는
그 경험만을 가지고서
무조건 이기도록 되어 있는 전쟁에 나갔다가

어라 도리어 전쟁에 지더라 말이죠

도리어 블레셋 군사들이
우리는 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을 멸망시킨줄을 잘 안다 라고
종이 되어 죽느냐 아니면 죽기 살기로 해서 이기느냐
사느냐 죽느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라고
이순신처럼 결사항전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전쟁에 죽을 각오로 임하는데

이스라엘은 대충 그까짓꺼 대충 대충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라고

그러니 정작 전쟁에 지니까
지들도 알아요 눈치챘다 말이죠 이것은 하나님이 블레셋 편에 섰고
이스라엘 편에 서지 않았다 라는 의미이다는 것을 
엘리 제사장이 알았고
이스라엘이 안 겁니다

이것도 역시나 여러 경험을 통해서 안 겁니다
자기들 쪽에 문제가 있었는데
꼭 한 놈이 할례를 안하는 바람에 전쟁에 수 없이 졌거든요

그렇듯 이제 윗대가리 권력자들이 문제가 있었는데
누가 그 윗대가리 권력자를 제거하고 칠수가 있겠습니까
하수 주제에 도리어 자기 목이 날라갈 판국일 텐데

그래서 주님이 직접 윗대가리를 짤라 버리시는 겁니다

어딜 감히 이스라엘을 사유화 하느냐 말이죠
거룩한 죽음이 계속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는데 말이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제 자기 살려고
역시나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듯이
법궤 뒤에 숨으면 살 것이다 라고

법궤를
하나님의 이름을 (법궤에 담긴 것은 결국 여호와의 이름이니까)
여호와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불을
심판을

자기 유익에 끌어당기게 되니
자기 배를 위하여
자기 생존을 위하여
곧 우상을 위하여 말이죠

도리어 법궤가 블레셋 군사들에게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기 여기 숨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라고 대 놓고
블레셋 군사들에게 고자질을 하더라 말이죠

이런 배신자 하나님 봤습니까 ㅋㅋㅋ

그렇게 전쟁에서 패했다 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놀라서 일어나다가 의자 다리가 부러져
엘리제사장 자빠지고 목이 부러져 죽고

얼마나 놀라는 무시 무시한 전쟁 패배 소식에
다들 놀래서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 중이였는데
그 소식에 일찍 아이가 태어났고 
어미는 사경을 헤매는데
아이는 태어났으니 걱정 말아라 라고 사람들이 말했지만
애 이름을 준비 못했을 정도로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애 이름 지어야지요 라고 하니
남편 죽고 시아버지 죽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 라고 했는데
그것이 그만 아이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이가봇 

이름이란 사건이거든요

(삼상 4:21, 현대어) 그녀는 죽어 가면서도 빼앗긴 법궤와 죽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으니 남을 것이 무엇이냐?'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갓난아기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는 뜻이다.


어떤 과학자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라고 했지요
그럼 뭐가 있는데 사건 뿐이다 라고
물리학에서는 이 사건을 운동 에너지
에너지의 활동을 두고 사건이라고 했거든요

성경에서는 이름이 사건이에요

운동력이 있는 것은 말씀 뿐이고
모든 육체와 그 나머지 것들은
이 운동력이 있는 말씀에 의해서
혼과 영과 관절 골수처럼 찔림당해서 쪼개어지는 사건만을 바래야 할 판국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될꺼 아니겠냐 말이죠ㅕ
이 마음과 중심이 없음을 드러내는 찔러 쪼개시는 사건만이 말씀만이
유일한 생명이다 말이죠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사무엘상 처음의 시작이
한나와 브닌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두 여자 두 언약의 충돌입니다

아기 못 낳는다 라고 해서 괴롭히는 브닌나를 통해서
진짜 여호와의 이름 전쟁을 퍼부어 달라 라고
이거 이스라엘 맞기는 맞냐 라고

외부전쟁 속에서도 내부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양발차기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외부 외모 모양만 신경쓰는 척하는
외부세력과의 전쟁에만 신경 쓰지만
정작 이름 전쟁은 양쪽다 치십니다
이것이 중심 전쟁이지요

한나의 기도
마리아의 기도가 종말을 땅기는 종말의 기도로써
(아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과부의 간절한 원수 갚아달라는 기도인데
그 비유가 바로 이 한나의 기도를 말했었던 군요 
드디어 의문점이 풀렸습니다 ㅋㅋ 내부전쟁이였음을 말이죠)

종말이 시간 개념이 아닙니다
끝 이라는 결과
정답을 미리 앞당기는
사건 개념입니다 이름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 전쟁을 펼쳐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여호와의 불 곧 이름 말이죠

그 전쟁 요청이 지금 유대인은 독립운동 3 1일 절 운동 하기 바쁜데
정작 마리아는 애굽이 되어버린 유대인도 포함해서 하늘의 전쟁을 요청하는 겁니다
왜? 유대인이 중심이 있기는 있냐 말이죠
껍데기만 이스라엘이지 역시나 개같은 로마 이방인
애굽이기는 매 마찬가지이다는 거죠
그러니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면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면 하늘의 전쟁을
그 거룩한 죽음을 이 땅에 퍼 부어 달라꼬

아니 제사장이 해야 할 기도를
마리아가 하고 있어요
하여튼 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여자 5명이 진짜 중보자 기능을 하고 있지
머슴아들은 아무리 해도 모양만 외모만 데따 완벽하게 껍질로 회칠하더라 말이죠

그 죽은 태의 여성의 기도가 한나의 기도가
지금 법궤 빼앗기고
다시 법궤가 100년 만에 돌아와서
여호와의 이름이 돌아와서 말이죠

사울왕을 짤라내고 물론 엘리 제사장 쪽 사람들 다 죽이듯이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중심을 마음을
다윗에게 박아버리고서는
이 언약을 성취 하시는 겁니다
자기 사랑을 이 죄인 중의 괴수인 괴물인 다윗에게
탕자 다윗에게 자기 사랑을 확증 시켜버린 겁니다

힐문하고 따질 놈 있으면 어서 따져보렴
이 얼마나 완벽한 절대사랑 절대용서인지를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의 요 거룩입니다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은 거룩 축에도 못드는 종교오락이요
성화 마일리지 쌓기 하는 종교 장난질입니다
어딜 함량미달인 짐승의 수 666을 사람의 수를 
이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용서 앞에
들이내미냐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어딜 사기를 칠려고 하느냐 말이죠

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때문에
여호와의 불 때문에
두 패로 나누어져서

야곱을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하셨고
에서를 태어나기도 전에 미워하기로 작정 하신

이 두 그릇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을 만드시는
토기장이의 권한을 펼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 이다는 겁니다

율법이라는 정답이다는 겁니다

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에 의해서 두 패로 나누어 지는 겁니다

한 쪽은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회개케 하시는 능력을 보고 우는 자로써 주의 심판을 바라보는 자 이고
주님이 거룩을 말이죠

다른 한 쪽은 자기의 선함을 추구해서
다른 불로 하나님께 바치고자 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홉니와 비느하스 인데
한나를 괴롭힌 브닌나 가
아이를 생산한 자기는 옳았고 아이를 못 낳는 너는 저주 받았다 라는
이 사고방식
나는 선했고 너는 저주니까 악이다 라는

이 선악의 의식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에 의해서 심판 받아야 할 자 인데
거꾸로 축복 받아야 한다 라고 나오니까

마귀를 잡을려고 했던 선악을
인간이 마귀와 한 패가 되어서
하나님의 거룩에 의로움에 도전을 하더라 말이죠

보세요 브닌나가 마귀처럼

나는 아이를 낳은 여자 구실을 하는데
왜 너는 여자이면서도 아이를 못 놓니 라고 나온다 라는 자체가

이스라엘의 특급상품의 생각이 아니라
도리어 들포도인 마귀의 생각이다 말이죠

하늘의 것을 생각지 않고
땅의 원리 땅의 생각으로 이스라엘 까지 도배를 하더라 말이죠

(골 3:1,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개역)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 개역)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4, 개역)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사야 사칠 팔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섬기는 이유와
예레미야 사사 십칠 이스라엘이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나
다들 땅의 것을 어떻게 하면 더더욱 확장 시키느냐 라는 것에

정작 특급상품인 이스라엘의 이 하나님의 거룩한 죽음만을
이 땅에 퍼트리는
하늘의 것을 때려붓는
이 기도를 한나와 마리아가 하는데

이스라엘 머슴아들은 그저 우상숭배로써 겉모양 외모만 갖추는 겁니다
지지배처럼 여자아이의 화장품놀이를 하고 있어요 글쎄

왜 이스라엘을 가장 미약하고 가장 수가 적은 수인데 택했냐 말이죠

이것은 주님의 언약성취와 연관이 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창조된 인간과 결혼하시겠다 라는 주님의 계획에 반발하는 자는
당연히
가장 먼저 창조 받았다 라는 타락한 천사 뿐이다 말이죠

(벧후 2:4, 개역)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벧후 2:4,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사슬로 묶어, 심판 때까지 어두움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 ㉡그, '타르타루스(지하 세계)'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구덩이에 가두어’

범죄한 천사도 심판하시는 판국에
원가지인 특급상품인 이스라엘도 짜르는 판국에
죽은 가지인 이방인은 오죽하겠냐 말이죠

주님은 오로지 자신이 흘리신 거룩한 피 밖에 관심 없어요
이것만이 하나님의 의로써
두 패로 나누시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이유는
자기 불이 자기 거룩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는 거죠
중심도 없고 마음도 없는 그런 우상을 추구하는 겁니다

이들을 마귀를 잡을려고 선악이라는 올무를 쳤는데
거꾸로 그 올무를 인간들이 하나님을 죽일려고 사용하더라 말이죠

오로지 인간 자기자신을 구원의 자리에 놓기 위해서 말이죠
자기 구원 받을려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아를
자기들 손으로 죽이게 되닌 이 역설을 이 모순의 간극을 무슨 수로 넘어가겠냐 말이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도리어 주님을 삼키는 죽이게 되는데 말이죠

율법의 완성인 거룩한 죽음을 사랑을 용서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쪽에서 직접 손수 마련하신 것을 간구하는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갖추어서 완벽하게 지켰는데 이거 하나 빼먹는 바람에 망하더라 말이죠

(사 5:12, 개역)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사 5:13, 개역)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사 5:14, 개역)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사 5:15, 개역)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사 5:16, 개역)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이 거룩한 죽음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는 자리에 
회개케 하시는 능력을 받는 자리
죄인의 자리
환자의 자리에 놓여지는 증상물로써 나타나야 하는데

여전히 잔칫집에 머물러서 누워서 침뱉기 하듯이
예루살렘 거주민을 
바벨론 포로 잡혀 가는 이스라엘을 보고서
하나님한테 저주 받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 다음은 자기 차례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자기 눈에 들보도 못 보고 남을 판단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주님이 직접 손수 만드시는 좁은 길 초상집 거룩한 희생제물을 쳐다보는
광야교회의 자리인데 말이죠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율법인데
율법과 선지자 인데
제사장이 바로 이 거룩한 죽음을 말하는 자 인데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 둘려고 하지 않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겁니다

율법을 지킨 자기의 의로움을 가지고 무기로 삼아서
약자를 괴롭히는
번제와 제사를 남의 것을 빼앗아서 드리고자 하는
이 힘의 원리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보세요 지금 이스라엘이 
3천명 군사가 죽을 정도로 전쟁에서 패하니까 대책을 세워
작전을 다시 짜서 나온 모습이
회의를 한 결과가

홉니와 비느하스를 동원한 
이 법궤를 앞장 세우는 모습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요구하듯이 하고 있고요

정작 블레셋은 우리 다 죽었구나
맞어 맞어 애굽인들이 그렇게 죽었지
우리도 결국 죽겠지 뭐 

그러나
죽긴 죽더라고 대장부 답게 죽자 라고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정작 이스라엘이 외쳐야 할 것이
블레셋이 외치면서 전쟁에 임하더라 말이죠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이방인이 양심이다 말이죠
즉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구나 이방인이구나를 이방인이
블레셋이 알고 있다 말이죠

요 부분만을 잠시 주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차원에서 사용하시는 겁니다

문제는 블레셋이 환자임을 알아도 의사가 고칠 마음이 없고
환자 주제에 의사를 취사선택하겠다 라고 하나님을 의사로 안 본다는 거죠

결국 이들 또한 잠깐 외모만 갖추는 거죠
환자인척
주님은 역시 안 속으십니다

아무튼 블레셋은
법궤가 온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상의 목 짜르고 손모가지 발모가지 다 짜르고
독종 전염병 온갖 저주 온갖 심판을 다 격었으니까 잠깐 트릭을 쓰지만 말이죠

아 이건 시간이 이스라엘이 법궤 빼앗긴 뒤에 벌어진 사건 이라고요?
그러니깐요 시간은 없어요 시간은 흐리지 않는다니깐요 사건만 있지
그러니 상관없어요
주의 이름이 벌리시는 거룩한 죽음의 전쟁의 자작극 입니다
이미 블레셋이 애굽을 멸망시킨 여호와 하나님 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도리어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이스라엘에게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라는 거죠

이들이 잘나서 이긴것도 아니다 라는 것을 말이죠
필연이 아니라 우연히
우짜다가 저들 이스라엘의 실수 땜에 이겼지
언제든지 여호와의 하나님 앞에서 다 죽는다 라는 것을 말이죠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만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몽둥이 역할을 했던 앗수르처럼
이렇게 사용이 되는 겁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매를 징계를 대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그들은 못 보고 있는 겁니다

자 그럼 주님의 취지는 뭐냐 라는 거죠
여호와의 이름 전쟁
이름이라는 사건의 취지는 뭡니까

과연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거룩한 죽음을 보는 자는
제사장의 기능을 보는 자는 누구냐 라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는 누구냐 라는 거죠

이 무시 무시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여호와의 불과 동행 할 자는 누구냐 라는 거죠
동행하지 않는다 면

그 나머지는 모두다 선악이다는 거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내 전쟁은 내가 이긴다

보세요 졌잖아요

왜 졌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여호와의 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주님 쪽에서 선악으로 가르지
인간 쪽에서 선악으로 가를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백이면 백 자기자신을 선으로 세우기 위해서
자기 의를 세울려고 하는데 있어서

정작 주님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으로써 다가오는데
어딜 감히 깨끗한 옷으로 주님을 대하겠다 라고

제사장은 세마포 흰 옷이 다 붉게 온 몸에 피가 튀겨서
온 몸에 죽음이 심판이 저주가 다 묻었는데

자기 개인 혼자만 멋들어진 구원을 추구하겠다 라고
다른 제자들은 다 버려도
나 베드로 만큼은 절대로 예수님 버리지 않겠습니다

니가 제일 먼저 버릴끼다 꼬기오 꼬끼오 꼬끼오
아니 닭이 언제 이렇게 웁니까
새벽 아닙니까
다들 잠에서 취해 있는데
깨어나라 라고 울어 대는 것이 닭인데
그 닭이 새벽을 깨우는 잠자는 자를 깨우는
어두움을 깨우는 그 닭의 울음 보다 먼저 너가 나를 꼭두새벽부터 배신 할꺼다 라고

먼저 된 멋들어진 자가 가장 나중이 되게 하시는
이 노아 꼬끼오 욥 꼬끼오 다니엘 꼬끼오를 니가 잡아먹을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 쪽에서 거룩한 죽음으로써 내가 죽을께 대신 죽고 대신 매맞고 대신 심판받고
대신 저주 받을께
너 살아라 라고 나오시는 것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인데

이것이 주님이 직접 손수 마련하신 하나님의 일인데
이거 깡그리 무시하고
인간 쪽에서 거룩을 행해서 주님의 이름 앞에 나아가겠다 라고 하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라고 나무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겁니다

노아 홍수 심판 후에
정결한 짐승 일곱 쌍과 부정한 짐승 두 쌍을 집어넣었고
다시 물이 빠진 후에 나와서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부정한 짐승에게 피 뿌려서
성결제사를 드린 이유는

(창 7:2, 개역)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창 8:20, 개역)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 8:21, 개역)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아무리 부정한 죄인이라도 주님의 거룩한 죽음으로써
십자가의 피 용서로 그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겨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하시겠다 라는 취지가

바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써

오로지 이 율법으로써만 중심으로써만
외모로 하지 않는 주님의 마음으로써만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
새 성전 인자의 죽음으로써만

인간을 대하시고
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아니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인간을 상대하지 않겠다 라고 하시는데

인간은 자꾸 자기들이 의로움을 쌓은 것으로만 상대할려고 하니
하나님이 다른 겁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닌데
도대체 누구한테 그거 줄려고 하느냐 라는 거죠

에이 어딜 똥덩어리 배설물을 가지고서
내 마당을 밟느냐 라고 말이죠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개역)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개역)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개역)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1, 개역)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로지 정답인 율법으로만
거룩한 죽음으로써만
화목제물 되심으로만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러니까 바치지 말라 말이죠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를 중보자를 화목제물로 주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말이죠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다 말이죠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말이죠

자 그럴려면
반드시 이 반대되는 그래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라는
이 율법의 껍데기
외모
경건의 껍데기 모양을 지키는 자들이 나와줘서

선악을 쥐고서 한나를 괴롭히듯이 나와줘야

두 언약이 성사가 되는

이 하나님의 의

이 토기장이의 의
토기장이의 거룩이 비로소 성사가 되는 겁니다

시므온 선지자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
비로소 이제 내 눈을 감게 해 주시는 군요
이상하다 이미 죽을 나이가 훨씬 넘었는데 왜 안죽는거지?

아하 이거구나

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
축복인지 저주인지 헷갈리는 성령의 예언을 외치라고 말이죠

이 아기가 비방받는 표적으로써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의 두 패로 나누는 기준이요 정답이 된다 라고

(눅 2:25, 개역)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개역)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개역)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 2:28, 개역)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29, 개역)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개역)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개역)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개역)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5, 개역)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 2:36, 개역)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개역)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 2:38, 개역)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마치 제사장의 기능처럼 이들 선지자의 기능은
아무리 매우 매우 늙은 안나는 출가한 나이 더하기 7년 더하기 과부된지 팔십 사년
91 에다가 적어도 17에 시잡갔다 쳐도 적어도 108살 

이들의 매우 매우 늙음 곧 죽음 조차도
주님의 거룩한 죽음을 외치기 전까지는 죽을 수가 없는 겁니다
죽음 축에도 못 드는 겁니다

이 화목제물 되심
비방받는 표적이 되심 만이

이 두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에게 위로가 되니까 말이죠

이 율법과 선지자는
인간 쪽에서 바치는 모든 가능성을 거부하고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만을
거룩한 죽음이신 화목제물 만이
정답으로써

새피조물인 새이스라엘에게 퍼붓고 있는 겁니다

이 정답이 아니였다면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이 십자가 라는 정답이 아니였다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아니였으면
다 울리는 꽹과리 에디오피아 군대의 달그닥 거리는 무기 부딧치는 상엿소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을 것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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