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8 거룩한 땅과 미끼(걸림돌)로써의 침노하는 새성전 (겔 45, 1- 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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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8 거룩한 땅과 3일만에 짓는 걸림돌(미끼)로써의 침노하는 새성전 (겔 45, 1- 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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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저녁에 다시 예배를 드려서 올립니다 선풍기소음이 심해서 제거하다 보니 에코가 심합니다)            

19-128 거룩한 땅 삼기(소덕동)와 막 쳐들어 온 미끼로써의 침노하는 새성전(팽나무) (겔 45, 1- 6)

막 쳐들어 와서 거룩한 불(죽음) 속으로 초대하는 새성전(생명나무)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아무도 없음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중보자(사독 제사장)의 기업 (겔 44,28-31)
에스겔 2019 2022. 7. 3. 12:07
19-127 중보자(사독 제사장)의 기업 (겔 44,28-31)

〈에스겔 45,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4쪽,  찬송가 079장 피난처 있으니, 0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찬송가 079장 피난처 있으니〉

1.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쟎네

2.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 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것 망하겠네

3.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4.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에스겔 45,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4쪽〉

(1)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장은 이만 오천 척 이요 광은 일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2)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장이 오백 척이요 광이 오백 척이니 네모 반듯하며 그 외에 사면 오십 척으로 뜰이 되게 하되
(3) 이 척량한 중에서 장 이만 오천 척과 광 일만 척을 척량하고 그 가운데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4) 그 땅의 거룩한 구역이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서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에게 돌려 그 집을 위하여 있는 곳이 되게 하며 성소를 위하여 있는 거룩한 곳이 되게 하고
(5) 또 장 이만 오천 척과 광 일만 척을 척량하여 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산업을 삼아 촌 이십을 세우게 하고
(6)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광 오천 척과 장 이만 오천 척을 척량하여 성읍의 기지를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시 24:1, 개역) [다윗의 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2, 개역)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5, 개역)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6, 개역)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시 24:7,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8, 개역)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 24:9,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10, 개역)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찬송가 0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1.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와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2. 내 몸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간 나와 항상 같이하여 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로 즉시 물리치사 날 지키시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 보시니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3. 내 맘을 다하여서 주님을 따르면 길이 길이 나를 사랑하리니
   물 불이 두렵쟎고 창검이 겁없네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 누리고 나 친히 주를 뵙기 원하네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아멘


(겔 45:1, 현대어) [새 이스라엘의 토지 분배] 너희가 제비를 뽑아 새 땅을 나누어 갖게 되면 먼저 내 땅을 구별하여 떼어 놓아야 한다. 곧 길이가 동서로 ㄱ) 2만 5천 자요 폭이 남북으로 ㄴ) 2만 자인 땅을 내 것으로 구별하여 바쳐야 한다. (ㄱ. 약 13킬로미터. ㄴ. 약 10킬로미터)
(겔 45:2, 현대어) 너희는 그것을 다시 둘로 나누어 각각 길이가 2만 5천 자요 폭이 1만 자가 되도록 하고 그 남쪽 부분에는 내 성소를 세워 더욱 거룩한 땅으로 삼아라. 내가 와서 머무는 장소는 길이와 폭이 다 같이 500백 자인 정사각형이 되게 하고 그 둘레에는 폭이 50자인 목초지를 두어야 한다.
(겔 45:3, 현대어) (2절과 같음)
(겔 45:4, 현대어) 성소가 있는 이 남쪽의 구역은 나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쓸 땅이다. 제사장들은 그 땅에서 내 성소 주위에 집을 짓고 살며 나머지 땅은 성소를 위하여 거룩하게 쓸 수가 있다.
(겔 45:5, 현대어) 그 나머지 북쪽 구역, 곧 길이가 2만 5천 자요 폭이 1만 자인 땅은 성소에서 일꾼 노릇을 하는 레위 지파의 후손들에게 주어서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삼도록 하여라. 그들은 그 땅에 거처할 집을 짓고 살 수가 있다.
(겔 45:6, 현대어) 또 내게 봉헌된 구역과 나란히 펼쳐진 지역에 길이 2만 5천 자에 폭이 5천 자 되는 구역을 두어 예루살렘 도성의 몫이 되게 하여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성에 들어와 살면서 그 토지를 상속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다.


개역개정
겔45:1 <거룩한 구역>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표준새번역
겔 45:1 [주의 거룩한 땅] "너희가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어 유산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주께 예물로 드려야 한다. 그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자요, 너비는 b이만 자가 되어야 한다. 이 구역 전체는 사방으로 어디나 거룩하다. (b. 70인역을 따름. 히, 만 자)
겔 45:7 [왕의 차지] "거룩하게 구별하여 예물로 드린 땅과 그 성읍의 소유지인 양쪽으로 펼쳐진 구역은, 왕의 몫이다. 이 구역은 서쪽으로 서쪽의 해안선까지이고, 동쪽으로 동쪽의 국경선에 이르기까지이다. 그 길이는 서쪽의 경계선에서 동쪽의 경계선에 이르기까지, 들의 구역과 같아야 한다.

(겔 45:1, 쉬운) <거룩한 땅> “너희 이스라엘 지파들이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어 가질 때에는 한 구역을 여호와께 드려라. 그 땅의 길이는 11킬로미터 가량이고, 너비는 10킬로미터 가량이다. 너희는 이 지역 전체를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겔 45:1, 현대어) [새 이스라엘의 토지 분배] 너희가 제비를 뽑아 새 땅을 나누어 갖게 되면 먼저 내 땅을 구별하여 떼어 놓아야 한다. 곧 길이가 동서로 ㄱ) 2만 5천 자요 폭이 남북으로 ㄴ) 2만 자인 땅을 내 것으로 구별하여 바쳐야 한다. (ㄱ. 약 13킬로미터. ㄴ. 약 10킬로미터)
(겔 45:7, 현대어) [왕의 몫] 가로 세로가 2만 5천 자인 이 정사각형의 구역 밖으로 동쪽과 서쪽에 펼쳐진 두 부분의 땅은 각각 국경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나라 통치자의 몫이다. 이 봉헌된 땅과 왕의 땅을 합하면 한 지파의 땅과 똑같은 넓이가 된다.


오늘 제목이 이상하지요 이상한 제목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화 8화의 내용을 따와서 좀 이해하기 쉽게 제목을 달아봤습니다
네 맞아요 오늘 본문은 이상한 거룩한 땅이요
이상한 성전입니다

앞의 44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상한 제사장 사독 제사장 후예들의 기업 유산 재산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것도 아비아달 제사장과 엘리 제사장을 충돌 시켜서 두 언약으로써 언약을 성사시켜서
짤라낸 후에 말이죠

원인을 짤라내고
원인을 짤라내었으니

원인 있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 없는 결과로써

사독 제사장의 기업을 언급했으니까
이상한 제사장의 기업인 셈이지요

마찬가지로 에스겔 45장에 들어와서는
이상한 거룩한 땅을 언급하십니다

이게 말이 안되는게
지금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 잡혀왔잖아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말이죠

유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거주민들은
이 포로 잡혀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서
저주 받은 자 라고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비록 예루살렘 거주민들은
비록 예루살렘 성전을 불타고 없지만
여전히 약속의 땅에서 만큼은 살고 있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듯이 포로 잡혀가고 있는 자들을 향해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것이
하나님한테 저주 받아서 그런거죠 맞죠 예수님 이라고 했을때에
예수님은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인데 우짜노 라고 하듯이
한 운명의 공동체로 여기지 않고 있다 라는 자체가
이스라엘이 아니다 라는 거죠

도리어 포로잡혀가고 있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의 처음자리를 도리어 보게 됩니다
너는 하늘에서 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가 아니라
너는 원래 가나안 족속 잡족이였어
너희 아비는 아모리 사람 기생오라비였고 포주 말이죠
너희 어미는 헷 사람 창녀 였다 라는 겁니다

그런 무당의 딸로써 태어나자 마자 탯줄도 안 끊긴채로 길바닥에 땅바닥에
내버려진 채로 피투성인채로 말이죠

그런 너에게 제발 살아라 라고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 라고 약속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처음자리는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죽은자 였고
그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
처음사랑으로써 이유도 조건도 달지 않고서
주님의 약속으로써 세워진 특급상품이 된 자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를 믿은 자가 바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듯이
이 하나님의 의 곧 거룩한 죽음을 믿은 자가 바로
첫사랑의 대상물인 이스라엘이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이스라엘이 첫사랑을 잊어버리니까
자꾸 자기 쪽에서 거룩을 바치겠다 라고 나서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게 되는 일을 격도록 하시는 겁니다
뭘 해도 실패케 만드신다 라는 거죠

자 이렇게 엘리제사장과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을 짤라내고 난 뒤에
사독 제사장의 계열로써 새성전의 의미를 알려주실때에

어라 다시 거룩한 땅 지분
부동산을 삼아서
그 속에 다시 또 또 또 거룩한 곳을 두어서
또 또 또 그 거룩한 곳 속에 성전이라는 거룩한 성소를 두는

이런 부동산 이야기를 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아니 예루살렘 성전 불타는 성전을 거쳤잖아요
이제 걸어다니는 성전을 말씀하셨다 라면

다시는 부동산을 언급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바로 이겁니아
오늘 본문에서도
몇척 몇척 이라고 정확한 규격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대로 지어라 라는 말이 아니라

아니 저번에는 천사들만이 짓는다메?

어라 이제는 사람에게 이렇게 지으라고 하는 것 보니
뭔가 수상한 성전
이상한 성전 아니냐 말이죠

맞아요 마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화 8화에서
소덕동 이라는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다 말이죠

youtu.be/HVa5banLOfg

7화를 보고 아 이거로 오늘 본문의 어려운 내용을 힌트로 삼아야 겠구나 했는데
어라 어중간하게 끝났다 말이죠
어쩔수 없이 하루 지나 8화 까지 보고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말이죠

동네사람들 모두가 소덕동 가상의 마을이름 
(소격동이 생각나네 기무사 법정동 ㅋㅋㅋ 서태지 아이유 ㅋㅋㅋ)

소덕동을 지키고자 다들 한 마음으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변호사를 찾아서 재판을 신청했다 말이죠

어라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을을 지키기로 해 놓구서는
어라 돈 앞에서 하나 둘 씩 다 무너지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오늘 본문은 거룩한 땅을 주시고 거기에 거룩한 성전을 두라 라는 말은
이제 거룩한 성전을 세우기만 하면 구원이 될 수 있다 라고 여기는 그 마음을
끌어들이기 위한

성전을 하나의 미끼로 삼아서
올무에 가두기 위함이다 라는 거죠

아니 분명히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것을 격었잖아요
그런데 또 그 장소에 또 짓는다?

그것도 포로잡혀온 바베론 포로민에게 에스겔을 통해서 새성전을 지으라  굽쇼!!!!!!

저쪽 예루살렘 거주민에게 안 카시고?

아니 왜 포로민에게 말이죠

지을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는 거주민이지
포로민이 무슨 수로 포로 잡혔는데 세우냐 말이죠

그것도 정확한 치수로 말이죠 아니 에스겔 42장에서 천사들만이 지을수 있기에
정확한 치수였다 라고 해 놓고서는
이제 인간에게 지으라굽쇼
왜 이리 앞 뒤가 맞지않고 뭐가 그리도 복잡하냐 말이죠

아니 황금성전인 솔로몬 성전도 다 무너진 판국에
솔로몬 성전 보다 몇배나 더 큰 성전을 말이죠
무슨수로 세우냐 말이죠
나라가 가장 부강할 때 지워도 안되는 판국에
나라가 쫄딱 망했는데????? 소덕동 주민들이 모조리 다 돈 앞에 무릎 꿇었는데????
(사실 우영우 소덕동 이야기를 반대로 보면 좀더 쉽습니다
지하철 건설처럼 불도져로 소덕동 다 밀어버리고
팽나무 다 짤라버리는 식이 오늘 본문에 딱 맞아요
그런데 우영우 드라마가 바로 법정드라마입니다
억수로 재미가 없는 것이 법정드라마 인데 
어라 억수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왜냐하면 껍데기는 법이라는 거룩이라는 번제와 제사 라는 딱딱한 부동산과 같은 이야기 인데
속 알맹이는 여지없이 사랑 이야기 이니까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사랑 만이 내 중심으로 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없애고 삭제하고 지워버리는 겁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피조물이 되었다 라고 말이죠

오직 사랑이라는 사건만이 미래에서 쳐들어 오는 
미래완료(사랑; 원인 없는 결과)의 사건 만이
시간과 공간을 삭제 합니다 그 공간 속에 내 몸이라는 공간도 반드시 포함 되었고
너희는 인생을 의지 하지 말라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 라는
나의 시간을 헛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거룩한 죽음 뿐인 율법의 완성인 사랑 뿐이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의문의 반복
나 라는 자아 라는 의문의 반복 뿐이다 말이죠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잔칫집을 유지하고자 번제와 제사만 대따 바치는 ~~~~~

법 재판이란 과거를 다룹니다 과거의 사건 말이죠
검찰만 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니까 미래적인 일을 다룬 적이 없어요
미래는 천공에게 아니면 가스라이팅 당하니까 마누라에게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은 범인 잡기 뿐이니까 말이죠
문을 반드시 노무현 꼴 나게 만들겠다 라고 말이죠

이런 해석을 어준이가 하던데 지들은 미래적이냐 말이죠
시간과 공간을 모조리 빼앗기는 미래완료가 없기는 매 마찬가지일 뿐이고
아무리 명바기를 짤라도 명바기 보다 더 한 것만 나오니까
또 짜르고 또 짜르는 언제까지 그 의문의 반복을 하냐 말이죠
이제는 할 것이 없으니까 어쩔수 없이 계속 할 뿐인거다 말이죠

그런 자아의 시간과 공간을 삭제시켜주는 사랑이 없으니까
울리는 꽹과리 소음만 난무할 뿐이다 말이죠

진짜 사랑은 나의 시 공간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한 성전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아니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거룩을 아예 심어버리는 겁니다

이래야 모든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으로써
다들 고개 돌리는 싫어버린 바 된 거룩한 성전으로써
나를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것만이 진짜 사랑이니 말이죠

(죽어서 가는 천국은 없어요

하늘의 천국이 이 땅에 쳐들어 오는 천국 밖에 없어요
오늘 본문은 부동산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간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자신의 시간과 공간이 날라가 버리는 - 아니 이것도 흉내 내는 놈이 있으니까
자신의 시 공간을 날려버리시는 주님의 시공간이 쳐들어 오는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나라가 가장 부요할때 부자 솔로몬도 성전이 무너지는 판국에
그것도 쫄딱 망한 자에게 소경에게 앉은뱅이에게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성전 지으라?
가진것도 없고 바벨론 포로 잡혀서 무슨 수로 탈출해서 성전 짓겠냐 말이죠
여기서 이미 목사들의 사기치는 설교가 다 들통나는 거죠
부동산 이야기가 아니라
나 라는 공간인 몸을 지우고 삭제해서 주님의 몸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체하시겠다 라는 시공간 날리겠다 라는 의미 입니다
쳐들어 오는 침노하는 천국으로써 말이죠 이게 거룩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거룩은 거룩도 아니요
나를 삭제하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도 아닌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시간과 공간을 주시는게 아니라

거룩한 성전 이라는 부동산 공간을 주시는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나를 삭제하러 온 침략하는 성전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다 날려버리는 미래가 쳐들어 오는 것이 진짜 사건입니다

보세요 이스라엘 나라 해체 되어버렸잖아요
왜 이미 하늘에 완성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참선지자는 바로 이것을 외치고
다 완성 됐응께 ~~~~~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이스라엘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무조건 무조건 역사와 정통 이라는 이스라엘 사수
모세의 제자 됨 너는 3년 짜리 예수의 제자 
어딜 까불어 나는 이천년 묵은 모세의 제자야 2000년 동그라미 세 개가 더 붙어 라꼬

왜 인간들이 거룩을 지킬려고 할까요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고자 함이다 말이죠

그러니 더더욱 경계선을 그거야만 합니다
나는 남을 7번 용서 했고 너는 2 번 어딜까불어 라꼬

그러나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것이 거룩한 성전을 주시는 취지입니다
경계선이 없으니까 마음껏 지우시겠다 라꼬
사수 할 것이 없어요

내 것이 없는 세계에 들어와 버렸응께 말이죠

바로 이 두 소욕 두 언약을 충돌 시켜 삭제 시키시듯이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짓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사랑만이 해체 시켜요 그 의문의 반복 
과거만을 반복하는 그 의문을 마침이 되도록 빨래 끝 종말을 확 땡겨버리는 겁니다

과거만을 다루는 법정 드라마가 반대로 미래를 다루니까
그 미래완료 앞에서 시간과 공간은 의미가 없게 되는 거죠

이제 내 중심으로 내 기준으로써의 시 공간은 이 새성전 앞에서 다 찢겨지는 거죠

아무리 우영우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동질화 하듯이
내가 주인공으로써 거룩 속에 들어가겠다 라는 발상 자체를
새성전이 차단하는 겁니다 
우리는 무조건 반대로 해석하는데 미끼를 덮썩 물어서
어라 동질성이 아니라 단절이였넹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 망하게 되었넹 단절이 되었넹
그 동안 쌓은 거룩한 업적 싹 다 배설물 똥덩어리가 되었넹 로 반드시 만드시는 것이
새성전인줄도 모르고 거룩인줄도 모르고 반대로 해석 즉 내 중심
내가 거룩 속에 들어가야 한다 라는 탐심 우상으로 해석한 줄도 모르고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그래서 마귀들입니다 뭐든지 반대로 해석하니까 말이죠
자꾸 자기를 이미 거룩 속에 집어넣고 시작 하니까 말이죠
누가 빼놓고서 시작 하겠냐 말이죠
이것을 성경말씀에 반대 되는 모든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란 무당처럼 살 자를 죽이고 아벨을 말이죠
죽을 자를 가인을 도리어 살리는 식이니까 
모든 육체의 소욕은 예수님을 죽이도록 되어있듯이
종교는 그저 오락 밖에 없어요 미친 듯이 빼앗아서 잔칫집 만들기
천국만들기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애굽 만들기
강도의 소굴 만들기 밖에 없으니까 말이죠

도리어 걸어다니는 새성전 앞에서 얼마나 더러운 자인지를 들추임 당하는
그 처음자리만을 너의 가나안 잡족이요 니 아비는 아모리 사람 니 어미는 헷 사람
마귀 자식 무당의 딸일 뿐인데
그 죽음 속에 그 음부의 권세 속에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
그 큰 물고기 뱃속 바다 깊은 어두움 속에 스올 지옥 속에
내가 뛰어들었다 라고 이 첫사랑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부른적도 찾은 적도 없는 너희에게
부르신바 찾으신 바 되시겠다 라고 말이죠
그러니 그 어떤 동질화 연합 합일 동일시가 도리어 차단당하는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의 라는 거룩입니다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그 3일의 간극 앞뒤 모순 되는 간극
거룩이 이렇게 모호할 줄을 모르고 거룩한 불을 덮썩 받을려고 하니 
웃사처럼 즉사 하는 거죠 에스겔 45장의 설교가 대부분 그런 식입니다
나 보다 좀 더 더 많이 나은 거룩을 찾아가듯이 말이죠
아닙니다 그 반대로 얼마나 더러웠으면 거룩이 쳐들어 와서
싹 다 다 태워야만 했겠느냐 라는 겁니다)

오늘 거룩한 구역 이만오천 척 은 13킬로입니다
가로 13 킬로 세로 13 킬로

이스라엘 전체가 2만2천 헥타르 정도인데
한국 남한은 십 만 헥타르 인데
한국의 5분의 1 즉 20 퍼센트로 보시면 된다 말이죠
그 이스라엘을 12 조각을 내어서 한 구역을 거룩한 곳으로 삼아서
사실은 13조각인 거죠 십의 일이 조금 못 되도록 말이죠



그 구역을 거룩한 구역으로 삼아서
이만오천 가로 세로 13킬로

레위인과 사독제사장의 기업으로 주고자

다시 이 면적을 남북으로 이등분 해서
북쪽은 레위인
남쪽은 사독제사장 에게 주고
그 남쪽 사독제사장 구역에 성전을 세우신다 말이죠

아 아니다 반드시 세 등분 해서
만 척 북 쪽은 레위인, 만 척은 사독 제사장 
그리고 나머지 오천척은 성읍으로 이스라엘 공동기지로 했다 말이죠 



(반드시 세 등분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네 맞아요 단절 이라는 절대죽음 거룩한 죽음을 말하는 겁니다
반드시 거룩을 연합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의 오독을 끌여들여서
거룩은 분별 차단 분리 단절이다 라고
천사가 짓는 정확한 치수가 바로 이런 의미로 나타나고 있네요
거룩을 넙쭉 받다가 즉사하는 웃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불을 오독 했듯이 말이죠
진노가 바로 주님의 거룩인데 말이죠
심판 속에서의 구원인데
심판을 빼버리니까 항상 주인공을 자기자신을 그 자리에 놓아버리는 
육의 소욕이 걸려들라꼬
미끼로써 세워지는 겁니다
그래야 두 언약이 충돌을 함으로써 언약이 성사 되는 겁니다
그 어떤 인간도 자기자신을 가나안 잡족으로 처음자리인 근본으로 안 보니까 말이죠
무조건 인간은 자기자신을 선택된 자로 보니까 말이죠 무조건 무조건 이야 짜라짜라 짠짠짠 
그래서 오늘 세워지는 새성전은
거룩한 땅을 가나안 땅에 투입 시키시는 이유는
아비아달 제사장의 번제와 제사가 아니라
엘리 제사장의 번제와 제사가 아니라
숨겨둔 이름을 나타내시는
거룩한 죽음을 나타내시는 사독제사장의 인애와 자비를 펼치시고자
의도적으로 더러운 가나안 잡족인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인 
환자요 죄인에게
죽은 자에게 태어나자 마자 핏덩어리 피투성이 인채로 바로 버려진
그 잃어버린 자에게
찾아오신 거룩이요
성전이다는 겁니다
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죠
인애와 자비 라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 말이죠
사랑은 팽나무는 생명나무는 얼마나 우리가 돈 밖에 모르는 죄인임을
무당의 딸로써 태어나자 마자 버림받은 핏투성이 임을
죽은 자임을 들추어내시는 것이 거룩입니다
아주 아주 나쁜 거룩인줄도 모르고 덮쑥 미끼를 물어버린다 말이죠
그래 그래 거룩한 죽음 속에 함께 들어가자 라고 얼떨결이
하나님의 거룩한 불과 동행해야 할 판국에 놓여져 버린 
침노하는 거룩이요 새성전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인간은 자신을 천국에 속했다고 여기고 있지
지옥에 속했다고 여기지 않으니
나 라는 에덴동산 잔칫집을 침략하는 새성전 예수님이라는 나쁜천국 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미끼를 그 만 ~~~~~~~~~~~ 자기 꾀에 자기가 그만 ~~~~~~~)

물론 남쪽 북쪽은 현대어 번역에만 있다 보니
이 부분을 검색하니까
남쪽이 레위인 북쪽이 제사장 이라고
뒤 바뀐 도표그림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현대어번역만 그렇게 나오니까 그렇겠지요 뭐 ~~~
아무튼 그것은 중요한게 아니구

세등분 만 + 만 + 오천 절대단절 말이죠 비록 노아 / 다니엘 / 욥, 세 구덩이 말이죠

우리가 불타는 예루살렘 성전을 거친후이기에
이 새성전의 의미를 다시 새롭게 봐야할 입장인 겁니다
기존의 불타는 성전을 다시 세울리는 없잖아요

그러니 왜 주님이 성전을 그것도 가능한 상태도 아닌
불가능 한 상태로써 그것도 불가능한 성전을 왜 주시느냐 라는 거죠
그것도 정확한 치수로 말이죠

이 거룩한 땅을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땅 약속의 땅 아닙니까
그런데 약속의 땅 전체 속에서 다시 거룩한 땅을 구분하시고

이상하지요

그 거룩한 땅 속에서 다시 거룩한 구역을 지정하시고

다시 거룩한 구역 속에서 성전이라는 거룩한 성소를 두시는 이유는

마치 주님 혼자 바쁘시게
천국의 참 의미를
성전의 참 의미를 침략하여 빼앗은 가나한 땅 정복처럼 말이죠
자꾸 침략하시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전체 약속의 땅에서 거룩한 땅 지정하시고
다시 거룩한 땅 삼으신 그 곳에서 다시 거룩한 구역 제사장 레위인 왕의 땅을 설정 하시고

또 또 또 그 거룩한 구역 속에서 사독제사장 구역에서 다시 거룩한 성소를 두시겠다 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 보세요 이전의 성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지요
다윗이 성전 짓겠다 라는 그 마음은 아예 끼어들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이전의 성전과는 다른 의미는
인간 쪽에서 바치는 번제와 제사의 개념을 모조리 차단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비아달 제사장
엘리 제사장 개념을 다 짤라낸 후에 
사독제사장 곧 거룩한 죽음을 다루시는 입장에서 나온 새성전의 개념이다 말이죠

이게 마음이요 중심입니다

그 이전의 성전 개념은 외모요 껍데기 모양이였던 거죠

물론 주님은 그 이전의 성전 개념 속에서도 마음과 중심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인간들은 외모와 껍데기 그리고 경건의 모양으로만 성전을 까까득 채워버렸습니다

그런 우상의 그림이 가득한 성전을 불태워 버렸다 말이죠

이것을 거치고서 세우는 새성전이다 라는 거죠

물론 또 실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근데 고맙게도 이제 실패해도 이제는 역사가 다 날라간 입장이라서
시공간이 다 날라간 입장이라서
실패해도 상관이 없어요

기능은 그대로 밀어붙이도록 되어 있는 묵시가 떳거든요

그러니 천사가 직접 정확한 치수로 짓는 성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 숫자를 보고
놀랍게도 제 3의 성전을 짓겠다 라고 지금 나서고 있잖아요
그게 마귀들이다 라는 증거인 거죠

한국에서도 솔로몬의 황금성전 짓겠다 라고 성경을 흉내낸 집단들이 있어요
물론 다들 흉내내고 싶었는데 먼저 나선 놈들이 있어줘서 안한 것 뿐이지
다들 그러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말이죠

이단들이 주로 그래요

또 이걸 꼬투리 잡아서 정통이라고 우기는 놈들이 거봐라 이단들은 어쩔수 없다 라고 하는데
사실은 부러워서 말이죠

그런놈들에게 자꾸 에헴 에헴 이라고 헛기침을 자꾸 하면
돈을 찔러 주거든요 돈 찔러주는 놈들에게는 이단 면제
그게 순복음 아닙니까
어느새 이단 면제가 되었어요
원래 같은 한 통속 이면서 말이죠

그런데 정치를 더 잘하는 문선명은 정통보다 더 큰 교단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지금 정통 교단들은 신땡지에게 돈 많이 받아먹었거든요
정치에까지 새똥리 당 에게 까지 손대었으니까 말이죠

왜? 과거 원조 장막성전 이단들이 이 솔로몬 성전 그대로 지을려고 했으니까 말이죠
그냥 지을수 없잖아요 다 공무원들을 구슬려 먹어야 한다 말이죠

자 이렇게 성전이야 말로 기가막힌 미끼요 올무가 되는 겁니다

안 무는 놈들이 없어요 
모조리 다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

그러다 망했고 불타버렸잖아요

아 그런데 또 미끼를 설치하라 하시넹 ㅋㅋㅋㅋㅋ


마치
출애굽 후에 광야 그리고 광야 3일 길 그리고 다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제물 되심 속으로 들어가듯이

점점점 거룩한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냥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불뱀에게 다 물려 죽게 되었을 정도로 미끼를 다 물어버렸다 말이죠

원망 세 번 해서 말이죠 도장 도장끈 지팡이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처럼 
세가지 증거물을 저당 잡혀버린 채로
미끼를 확 물어버렸던 겁니다

그래서 불뱀에게 다 물려 죽게 되었는데

어라 또 미끼를 다시 설치하시더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 말이죠

또 성전을 설치하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오늘 나오는 내용을 구글검색해서 에스겔 45장 이라고 치면
이미지 검색을 하게 되면

다들 그림이 성전이 배치되는 구역으로써 그림이 나오는데

마치 저번에 성전 주변의 제사장의 방들이 3층이였던가요 그런 그림이
방탄복처럼 성전을 보호하기 위한 듯이 보였다 말이죠

오늘 본문의 그림도 그래요

성전이 가장 중심에 있고
그것을 보호하고자 삥둘러친 제사장 구역과 레위인 그리고 왕의 지분이 있고
다시 이스라엘 지파가 있고 말이죠

마치 에덴동산을 철거시킨후 동쪽문을 아무나 못 들어오도록
불검을 들고 천사들이 지키듯이 말이죠


바로 이런 단절성을 보여주는 것이 새성전이다 말이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너희는 잠잠할 지어다
그 입 다물라 경빈이다 말이죠

여호와 삼마 
그 입 다물라 라꼬 말이죠

인간의 구원 시도 모조리 다 차단하시는 단절성이다 말이죠

그러니 도리어 이 새성전인 것 만큼은 더 더 더 자기들의 손에서
인간들의 손에서 세워지도록
아니면 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고자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더더욱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더 가질 것 아니겠느냐 말이죠

네 맞아요 다윗 개인에게서 끝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 시키는 겁니다
다윗이 격었던 그 실패 너도 격어 보라 라고
미끼를 덮썩 물도록 말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의 구원이 왜 헛됨을 알게 하시는

저 분의 절대죽음 앞에서
비로소 마음이 찔리는 겁니다

정직한 영도 없이
경건의 능력을 거부하면서 경건의 모양을 갖춘채로
구원을 따 낼려는 모습 밖에 없는데
정작 그분의 죽음을 보니
감히 내 구원을 챙길 수가 없는
마음이 찔리는 율법의 참된 취지를
이 단절성을 격는 겁니다

분명 앞에서 하나님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동쪽문을
개같은 이방인들이 들락 날락 할 정도로
이스라엘은 다 개판이 되었고

그런 사고방식으로 또 새성전을 맞이할꺼 뻔하다 말이죠
그저 내 구원 내 구원 내 구원 만 챙기고자 말이죠

바로 그런 번제와 제사를 바칠려는
우상숭배자가 한 패거리가 된 엘리 제사장 가문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세워 두 언약으로써 충돌 시켜 놓고
다 짤라냈다 말이죠

이 과정을 다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후세대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나 모르겠다 기억 안 납니다 라고 해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그럴줄 알고 주님은 또 세워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 한 번 격어봐 라고

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아버지가 말 마따나
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입니다
즉 정치적이다 말이죠

제발 정치적으로 되십시오 막사세요
무정치도 정치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더 더 더 정치적인 이 십자가 앞에서
부정의 부정 앞에서
박살이 나도록
다윗이 격었던 그 경험을 전체로 확대 시키시는 겁니다

인간의 정치는 나의 구원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성전에 꽉꽉 채우기 이고
십자가의 정치는 그런 나의 시간과 공간을 해체시키는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광야교회에서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되었는데
미끼를 덮썩 무는 바람에 말이죠

그런데 또 미끼를 또 올무를 쳐서
또 미끼를 덮썩 물어서

자 이제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 쳐다볼래
안쳐다 볼래

끝까지 나 잘났다 나는 구원받아 마땅하다 라고 하는 자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다가 망하고 지옥가고

맞군요 이 새성전의 의미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는 의미는
예수님만 구원받아야 하실 분인데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감당 시켜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하신 거였군요 라고

내 죽음은 죽음도 아닙니다 라고 욥은 다시는 낫게 해 달라고 기도 하지 않더라 말이죠
도리어 시커먼 잿더미를 머리에 뒤짚어 씌우고서는
생일을 저주 하면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이 바다 깊은 그 어두운 큰 물고기 뱃속에서
말도 안되는 생명의 빛의 찾아오심을 보게 되는
이 처음자리에서 무당의 딸로서 
가나안 땅 잡족 개같은 이방인의 자리에서
첫사랑 말도 안되는 무조건 적인 이 사랑 때문에

피투성이라도 살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 요나의 표적으로써

이 새성전은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된 자들에게만

아직도 배불러서 안 쳐다보는 자들에게서는
새성전이 의미가 없구요

죄인에게만
환자에게만 이 새성전의 의미로써

주님의 거룩한 죽음을
이렇게 방탄조끼처럼 보디가드처럼
거룩한 죽음의 의미만을 보여주는 참성전

눈에 보이지 않고
항상 무시꺼리로 취급받는 이 새성전의 의미를

사독제사장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거룩한 죽음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세 되엇구나
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는 망해야 할 민족 중의 한 사람으로써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봐버렸으니 타 죽고도 남아야 할 정도로
나는 사망의 몸이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우리의 처음자리가 바로 사망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첫사랑의 내려오심

이 첫사랑이 떳기에
지금도 떳기에

두려움과 떨림으로써

(빌 2:12,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새성전으로써 밀어붙이심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또 구원의 장치로 보게 되는 탐심을 자극하게 됨으로써
미끼를 덮썩 무는 바람에

오히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열심일수록
더더룩 주님의 십자가의 인애와 자비를
반발하고 거부하는

치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고 낫는다고?
지금 장난 하냐 라고

장닌치고 있는 인간들의 종교오락 장난을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의 지혜로써
부정의 부정으로써

인간의 정치술 보다 더더더 더한 부정적인 스캔들 부조리 정치인 십자가의 정치로써
거울로써

우리의 모습을 거울로써 낱낱이 들추어내시면서
이 십자가의 지혜를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새성전은 더더욱 우리의 민낯을 더더욱 들추어내시기 위함이지

이 새선전을 가지고 또 과거의 했던 우상숭배 구원의 탐싱을 또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이 육체를

고발당하지 않는 이상은

이 새성전은 의미가 없는
또 의문의 반복일 뿐일 것입니다

어머니 말 마따나
제사장과 레위인을 또 세우면 또 성전의 일 맡기면 또 우짜노
또 어차피 우상숭배 또 할 껀데 또 우짜노 라고 하셨듯이

네 맞아요 인간에게서의 시간과 공간은 역시나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 또한 제사장이 아니어도 레위인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성전을 주시면 예수님을 주시든
우리는 늘 우상숭배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위로로 삼고자 할 뿐입니다 내 구원을 위한 짓이라면 무슨 짓도 다 하니까 말이죠

왜냐하면 눈에 보이든
의미를 주시면 뭐든지
결국은 나를 내 스스로가 그 속에 집어넣고자 하는 내가 있고
내 살아 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새성전은 없음을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외모 모양 껍데기는 일단 눈에 보이도록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눈에 안 보입니다
안 보이면 인간에게는 없음 취급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심도 눈에 안 보입니다

양탈쓴늑대무리 사모가 없는 것은 없는 겁니다 라고 화내고 짜증내면서 희숙대리를 부리던데

십자가는 더 정치적이라서 더 희숙대리를 부린다 말이죠

있음을 없게 만들고 
없음을 있게 만드시는 겁니다

새성전 앞에서 있다고 우기는 나를 없애버리고
있다고 우기는 나로 인해서 없음 취급 당해서
십자가에 달려 없애버린 이 사건만이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내가 없애버린 예수님을 있게 하심으로써
참성전의 의미를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시는 겁니다

이 거룩한 죽음을 다루는 자들이 사독제사장이다 말이죠

아무도 못 접근 하도록 방탄에 방탄에 보디가드를 양사방으로 쭈우욱 말이죠

이것이 천국이 침략해 들어오는
불도져로 밀어붙이시는 방식입니다

뭐 니 부정은 부정도 아니야
니 저주는 저주도 아니야
니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오늘 본문을 다룬 거룩하 땅의 구역 그림표를 검색해서 보세요

부정의 부정 곧 오홀리바
여성의 자궁 속의 하나님의 자궁이다 긍휼이다 말이죠

너의 사망의 권세 음부의 권세 죽음은 죽음도 아니다 라고
나의 근원인 이 가나안 땅 잡족 부정한 개같은 이방인의 세계를

포로 잡혀간 주제에 도리어 쳐들어 가겠다 라고
천국의 침노 침략을 선언하시고
반드시 새성전을 세우겠다

아니 이미 세웠다 라고 선언을 하시는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선언하시고 있더라 말이죠

마침 고맙게도
지지난 주에 아 아니다 바로 앞의 지난 주에

야곱의 결혼 이야기에서
드라빔을 르비딤으로 잘못 오독 해서 녹음을 했는데

늘 어릴적부터 안면인식 장애로 친척 족보 전혀 모르고
국민학교때 책읽기 시키면 항상 두 줄 건너띄워서 읽어서
바로 다음 타자로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난독증 그때는 그 용어도 몰랐응께 문해력이 없다 보니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사회성이 없다 라고
뭐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말이죠 ㅋㅋㅋ

다행히도 친족들을 못 알아봤으니 어울리지 않게 되었지
알아봤으면 쓸데없이 돌아다녔을 것이다 말이죠

그렇게 오독 덕분에 드라빔을 검색해서 막 찾아봤죠
이것이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책망과 연관 되었더라 말이죠

드라빔이 소위 남자 고추로써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영화처럼
나중에 신약에서는 출산드라  아 여기서 안 까먹겠구나 개콘의 출산 드라 빔

산약에서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으로 검색이 되더라 말이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써
다산의 상징으로 젖가슴 유방이 24개나 되는 것도 있다 말이죠

이것이 개인의 집 마다 있을 정도이면
소위 가정의 수호신이며
출산을 장려하는 출산 드라 빔 인 셈인거죠

그런데 이것이 처음사랑을 잊어버린 에베소 교회와 연관이 있다니

거짓선지자도 쫏아내고
열심히 특심이고
또 온갖 모든 일에 다 잘하는데 

딱 하나 이것을 잊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첫사랑

이사야 5장 12절 딱 하나 이거 빠뜨렸다 라는 겁니다
주님 쪽에서 직접 마련하신 손수 만드신 일을 빠뜨렸다 라는 거죠

즉 이말은 자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국백성인줄로 안다 라는 거죠

아냐 아냐 너는 원래 근본 태생이 가나안 잡족이였어
고아 과부 나그네 였어
무당의 딸이였어 말이죠

이 처음자리를 잊어버리니까
피투성이 라도 살라 라고 주님 쪽에서 직접 만드신 이 피옷을 거부하고
거룩한 죽음을 거부하고
자기 의를 쌓고자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대단한데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십자가의 사랑은 없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더라 라는 겁니다

왜 자기가 아브라함 자손이다 라고 우기는 식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열심이 특심이였다 말이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사탄도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집디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고
니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즉 예수님이 직접 피 흘리시는 이 생명이 주님 쪽에서 넘어오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피투성이를 직접 책임지시는 피 흘리심
거룩한 죽음이 아니면
생명책에 기록이 될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새성전의 의미가 뭡니까

나는 또 예수님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들추어내는 거울이다 라는 겁니다

거울은요 손거울처럼 물건으로 존재하는 있음입니까 아니면

없는 존재로 취급 받으면서 오는 겁니까

곧 새성전은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
곧 거룩한 죽음이라는 낯설기 짝이 없는 시공간을 말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눅 13:22, 개역)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눅 13:23, 개역)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눅 13:24, 개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5, 개역)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 13:26, 개역)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 13:27, 개역)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눅 13:28, 개역)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눅 13:29, 개역)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눅 13:30, 개역)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눅 13:31, 개역)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 13:32, 개역)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3, 개역)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4,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 13:35, 개역)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인간은 예루살렘이 기존의 봐왔던 성전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읽는 기능이 있다면 언제든지 내 쪽에서 다가가 읽고 실천하면서
다른 책과 다르지 않게
다른 책들과 낯설지 않게 익숙하게 대하면 그만인 겁니다

(눅 13:32, 개역)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3, 개역)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첫째날 오늘도 그저 익숙한 하루처럼 하루 일 뿐이고
내일도 그런 여러날 중의 한 부분일 뿐이고
모레도 마찬가지 우리가 익히 아는 날일 뿐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 시간이
낯설기 짝이 없게 되는 시간으로써
또 익숙한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공간이
낯설기 짝이 없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여줘야할 공간으로써 변해 버리는 겁니다

모든 성경과 모든 날과 모든 공간 조차도 사실은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것인데
우리는 반대로 익숙한 나를 위한 시공간으로써 여겼던 거죠

그런 나 속에 익숙한 나에게
낯설기 짝이 없는 예수님이라는 없는 존재가 불쑥 들어와서
거룩한 땅으로 가나한 땅을 말이죠 지 마음대로 설정하지를 않나
그것도 광야에 그것도 초상집에 말이죠
나는 항상 잔칫집 파티 피플이 되고픈데 말이죠
그리고서는 다시 거룩한 땅 속에 거룩한 구역을 레위인 사독제사장 구역으로 설정하지를 않나
낯설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단절
방탄소년단 두루두루 불칼을 들고 동쪽문을 사수하는 보디가드처럼 말이죠
그리고서는 또 다시 어린양의 희생제물이 벌어지는
거룩한 죽음이 펼쳐지는 성소를 세우질 않나

광야
광야 3일길
다시 그 속에 어린양의 희생 죽음을 마구 마구 세워버려요 글쎄

이것이 마음이요 
중심이다 라고

마음이 없는 내 속에
중심이 없는 내 속에 

주님 마음대로 쳐들어와서는 
마구 마구 새성전의 세워서

거룩한 죽음을 펼쳐서
마음이 푹푹 찔려서 아프게 만들어서
니 아픔은 아픔도 아니야 라고
자꾸 주님의 죽음을 쳐다보도록
욥에게
요나에게
엘리야에게
다윗에게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낯선 기쁨을 심어버려요 글쎄

우리는 애굽의 기쁨 위로 잔칫집의 감사로만 기뻐하는데
이것이 더 익숙한데

어떻게 초상집의 거룩한 희생제물의 죽음으로만 감사하고 기뻐하는
낯선 감사 낯선 기쁨을 심어버리고서는
밀어붙이시겠다 라는데
무슨 수로 말리겠느냐 말이죠

그렇게 성경도 새성전도
그런 나를 상대로 하는게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만을 말하기 위한 기능으로써
나에게 쳐들어와서
내 속에 에어리언 심듯이 시고니 위버에게 말이죠
내 속에 낯설기 짝이 없는 예수님을 심어 버리면

나는 내가 익숙한데
내 속에 다른 이가 살아버리면 이거 얼마나 불편한 동거인지 말이죠

나는 돈이 좋아서 익숙하게 정치적으로
내가 나를 돈 받고 팔아버려서 돈을 취할려고 하는데

생명되신 예수님이 느닷없이 쳐들어와서
우영우 자폐증 변호사가 쳐들어와서 자꾸 자꾸 마음을 찔러요 글쎄ㅐ

소격동을 밀어버릴려고 하는데 돈이 위로가 되지 소격동이 위로가 되냐 말이죠
아 맞다 소덕동이다 ㅋㅋㅋ
팽나무를 짤라버릴려고 하는데 돈이 위로가 되지 무슨 놈의 나무가 위로가 되냐 말이죠

그래서 익숙한 돈만 챙기면 그만인데

수호신 돈
드라빔
언제든지 나를 위로하고 모든 것을 다 앗아가도
다시 원상복귀 해주는 돈만이 있으면
다시 하늘여왕에게 바치는 제물만 있으면 다 회복이 되는데
바칠 것이 없으니까 자꾸 재앙이 온다 라고 여기는 판국에

역시나 돈 돈 돈 번제 제사만 드리면 다시 원상회복이 되는

돈만큼은 수호신 드라빔 만큼은 언제든지 나를 다시 회복시켜주고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는 회복의 능력을 수호신 드라빔 돈은 가능한데

그 돈이 아니라

나에게 팽나무가 쳐들어와서
거룩한 성전 거룩한 죽음이 쳐들어와서
나를 밀어버리는

부정의 정치 보다 더 더 더 부정한 십자가의 정치로써

내가 니가 버린 딸이다 라고 나오니

주여 누구십니까 니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라고

엄마 마음에 잃어버린 딸이
죽었던 딸이 팽나무 아래에서 마구 마구 쳐들어 왔던 겁니다

그것 땜에 성전을 세우는 것이지
뭐 바치라꼬 세우는 새성전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또 성전 불태워야 합니다 더럽혔다고 우상의 그림을 그렸다고
의문의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 라고

무엇이 또렷합니까?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찌르는 것이 또렷합니까
아니면 내가 바치는 번제와 제사 하루만 지나면 썩어버리는 배설물이 또렷합니까?

돈도 정치도 그 앞에서 무너지는

아무리 딱딱한 난공불락의 요새도
그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찔림이 되는 겁니다

비로소 웁니다 우는 자가 복 되는 겁니다

돈이고 뭐고 정치도 뭐고 그 앞에서 다 찢어지는 겁니다
더 나은 잉여의 세계요 더 나은 십자가의 피 용서의 정치 뿐입니다

제발 제발 이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자 되지 말라꼬

내가 너가 꺽어버린 뼈 이다
이 첫사랑을 니가 버렸다 라고 말이죠

마음이

거룩한 죽음으로 인해서 찔림 받지

돈은 찔림을 받지 않아요
이제는 인간이 돈을 버는게 아니라
돈이 인간을 마구 마구 부려먹는 인간을 노예로 삼는 주인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피로 눈물도 없는 돈이 말이죠
돈은 마음이 없기에 찔림받지 않고요
안 아파해요

돈과 일치가 되어버린 인간 세계입니다
아니 어차피 인간 없어요 돈의 세계입니다
차라리 모든 인간을 제대로 없애 버리는
진짜 절대죽음을 터트려 달라고 기도한 마리아의 종말의 기도
한나의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기도로써
브로큰 애로우 폭격요청 하듯이
모조리 다 없애 버리는 진짜 죽음을 요청해야 할 판국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남도록 말이죠

그 핵폭탄이 종말의 폭탄이 새성전 걸어다니는 성전
거룩한 죽음을 나타내는 참성전 되신 예수님 입니다

이 새성전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니 아픔은 아픔도 아니다 라고

회복은커녕 위로는커녕
더한 절대죽음으로써 나오니까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 되니
다시는 낫게 해 달라고 하는 소리가 나오질 않을 정도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새성전이 보여주는 겁니다

막 찔러요
나를 매일 매일 삭제 시켜요 글쎄

내 속에 예수님만 자꾸 튀어나오도록 말이죠

니 구원이 헛되고 헛됨을
저 분의 죽음을 보고 비로소 아는 겁니다

정작 저 분의 구원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 라고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이 나오게 되면
모든 인간 관계가 단절이 되니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 라고
나오지 말라꼬 자꾸 말려요

그런데 새성전이 떠 버린 이상
이제 말릴수도 없어요
시도 때도 없이 에어리언처럼 마구 마구 튀어나온다 말이죠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 라고
방탄복처럼 외치는 자들이 바로 사독제사장 계열로써
새성전의 성전일 종사자로써

거룩한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겁니다

뭐 이들이 하고싶어서 하는 겁니까?
자원하는 심령을 주셨다 라는 말은
마음을 줬고
중심을 줬다 라는 말은
그 동안 얼마나 자원하는 심령이 없었다 라는 반증 아닙니까
그러니 주님이 천사들처럼 다루어야
이들이 하지
자원하는 심령이 있어서 하는 적은 없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새마음 성령을 집어넣어야지만 이 거룩한 죽음을 다루는 겁니다
은사죠 은사
얼마나 안되면 말이죠
육은 안되는 겁니다
오로지 성령의 소욕으로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종말에만 나타는 새성전이기에 곧 예수님
거룩한 죽음을 나타내시는 화목제물이시기에

이 분만이 나 보다
남이 아닌 반드시 나 보다
그 정도로 내가 얼마나 죄인 중의 괴수인가를 들추어내시는 새성전이기에
나 보다 옳다 라고

정작 눈에 보이는 교회는 나를 죄인 중의 괴수로 안 들통내는 가짜이다 라는 거죠

결국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거룩이란
이렇게 두 패로 가르는 겁니다

새성전은 정작 나를 죄인 중의 괴수로 들통내는 겁니다
그래야만 마귀만을 상대로 하신

참 지혜인 십자가의 지혜가
마귀 보란 듯이
천한 계집을

가나안 잡족의 딸 
무당의 딸
창녀의 딸
피투성이 인 채로 버려진 딸을

왕비의 자리에 앉혔을때에

그 자리가 내 자리 인데 라고 마귀가 격동을 하면서 진동 하는 겁니다

새성전은
십자가의 죽음 곧 용서는

바로 이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는

새신랑의 지혜인 자기 피로 거룩한 신부 만들기입니다

이 에로스 사랑이 아니면
세상이 격동하거나 견디질 못해 하는 일은 없습니다

원수의 상에서 목전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하이라이트 결혼식은
이 종말의 잔치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만이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 만이

오직 은혜로만 신랑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신부 만들기입니다

인간 쪽에서 출발 하는 모든 것을 차단 하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으로만 들어가는 거룩한 세계 말이죠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아는 자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굽니까 손 깨끗한 자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요

이것을 아는 자
그래서 우는 자
인애와 자비를 바라면서

회개케 하시는 능력을 바라보는 자
시공간이 해체 되어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희생제물 됨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비로소 봤듯이
예수님의 때를 봤듯이

욥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시 공간이 날라감으로써 주님의 거룩한 죽음을 봐 버렸듯이 말이죠

이것이 거룩한 새성전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진노(거룩한 죽음) 속에 집어 넣으시는 이유로써 거룩(하나님의 의)을 이루시는 겁니다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거룩을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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