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4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롬 3, 5-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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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4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롬 3, 5- 8)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의인에게는 쓸데 없는 십자가의 죽음(하나님의 의-거룩, 약속)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는 쓸데 없고, 사마리아인 우물가의 여인만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정의를 외치는 자에게는 쓸데없고, 모두가 거짓됨을 아는 자만 부르러 오신 하나님만 참 되심

[왕(사람은 다 거짓됨)] 속의 [심판의 왕(오직 하나님만 참됨)] (롬 3, 1- 4)
로마서 2022 2022. 9. 7. 15:46
22-013 왕[인간은 다 거짓됨] 속의 심판의 왕[오직 하나님만 참됨] (롬 3, 1- 4)

〈로마서 3, 5- 8, 개역한글 신약성경 242쪽, 찬송가 0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359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찬송가 0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1.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 해 같이 빛나네

2.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없는 자비를 
   뭇 천사 소리 모아서 늘 찬송 드리네 늘 찬송 드리네

3. 영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버리고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4.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저 사망 권세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5.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내 기쁨 넘치리 아멘


〈로마서 3, 5- 8, 개역한글 신약성경 242쪽〉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겔 47:1, 개역)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겔 47:2, 개역)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겔 47:3, 개역)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겔 47:4, 개역)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겔 47:5, 개역)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겔 47:6, 개역)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겔 47:7, 개역)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겔 47:8, 개역)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찬송가 359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1.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2. 이 세상사는 동안에 주 이름 증거 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3. 이 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 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롬 3:5, 새번역)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롬 3:6, 새번역)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롬 3:7, 새번역)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나도 역시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습니까?"
(롬 3:8, 새번역) 더욱이 "좋은 일이 생기게 하기 위하여, 악한 일을 하자"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비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으로 삼은 로마서 3장 5절의 다른 번역을 한번 보겠습니다

(롬 3:5, 공동) 우리의 불의가 오히려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느님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말이지
(롬 3:5, 쉬운) 내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논리의 방식대로 말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의롭지 못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더욱 밝히 드러날 경우,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롬 3:5, 한글킹) 그러나 만일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사람의 방식대로 말하노니,) 응징하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
(롬 3:5, 현대인)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사람의 논리대로 말합니다.)
(롬 3:5, 현대어)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것은 잘된 일입니다. 우리의 죄가 선한 목적에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도 악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연히 알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도움을 주는 마당에 우리를 벌하신다면 그게 정당한 일이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방종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정당성이 된 듯 합니다만
방종 하냐 안하냐 로 문제는 답이 되지 못한다 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거짓 되고 
하나님만 참 되다 라고 하십니다

이 참 됨이 더 더 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참 되심이 바로 심판 이거든요

결국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방종 개념은 결국 이 하나님의 참 됨을
즉 심판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라는 겁니다

사람의 믿음은 뭘 해도 자기 살아있음에서 나올 뿐이고요
곧 존재죠 존재의 정당성을 우기는 식이 인간의 믿음일 뿐입니다
즉 사람의 믿음이란 살인의지 일 뿐이니까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킬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곧 예수님의 믿음은
예수님의 죽음에서 출발한 믿음입니다
즉 죽은 자를 도로 살리는 믿음이다 라는 거죠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사시니까 말이죠

그러니 이 사망을 심판하시는 주님의 의를 이 종말을 미리 앞당기는
불의한 행함이 있는 믿음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
곧 십자가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라는 겁니다
걸림돌 이라는 말은 그 어떤 인간의 시도도 포함 참예 될 수가 없는
더더욱 단절성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결국 인간의 살아있음에서는 나올수 없는 믿음 곧 하나님의 의 이다 라는 거죠
도리어 죽어 마땅한 불의한 자 임이 심판의 공의로부터 나온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새성전이 보여주는 인자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다 말이죠

그래서 이 죽음에 딱 맞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거죠
그러니 우는 자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겁니다

인간이 말하는 죄는 여전히 구원을 염두한 죄 이기에
인간이 죄를 말한다 라는 자체가 이미 자기 구원을 미리 짜놓인 사기술 곧 정치술
회개 눈물 기도 금식으로 꺽이신 뼈(불의함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살려내어 보겠다 라는 정치 인구조사 죄 곧 사기술 이다는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하나님의 의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사기를 칠려고 이 정치술에 안 속겠다 라는 겁니다

결국 자기의 믿음이 여기서 믿음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지요
자기의 종교적 신념이 결국 자기의 믿음으로 자기가 구원을 펼치는데 있어서
신은 그저 시다바리 종 몸종에 불과한 자기투사 투영일 뿐인 역시나 탐욕 곧 우상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성전을 불태워서
성전을 사라지게 해서 그 성전이 사라진 자리에서 주님께서 새성전으로 오시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앞윽로 살펴볼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 곧 생명수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이 도리어 예수님의 욕망에 의해서 영생수를 달라 라고 합니다

이 피에 딱 맞는 너의 죄
너의 전 남편을 데리고 오라 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약속이다 라고 했지요

죄 플러스 피 가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으로 삼은 우리의 불의함 더하기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의 피가 약속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약속 개념은 이 부정적인 요소를 빼버리고 바로 생명수 되신 피를 먹을려고 한다 말이죠
그리고 죄 가지고 오라 하니까 과거에 담배피고 클럽에 가고 술 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그딴 것을 죄 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런 것은 처음자리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자기 따나는 이 죄를 회개하고 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고 여기면서
조금만 성령이라는 배터리 충전으로 인해 저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성령을 요구한다 말이죠

성령을 받은 선지자의 심판은 그런 심판이 아니다 말이죠
그 심판을 심판한다 라고 했잖아요

왜? 그것이 요나의 표적이 아니라
요나가 구했던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였으니까 말이죠

네 맞아요 요나는 자신이 왜 거짓선지자인가 라는 죄인의 자리에 까지 가 봐야
아 약속이 이렇게 날 배신 때리는 이유가 있었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겁니다

왜 배신 때릴까요
네 맞아요 요나 선지자 너는 하나님을 안다 모른다
모른다 라는 겁니다

모르니까 지가 배신 때리고 있는 것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정작 너가 가장 신뢰하고 너가 가장 믿는
그 믿는 도끼로부터 발등 찍히는
하나님이 왜 자기를 배신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자기 의를 의로움을 쌓으니까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못 하는 겁니다

자기 의가 하나님의 의와 충돌하고 있음을 못 보는 이유는
자기 존재를 하나님의 영역 속에 지 마음대로 포함시켜 버리니
나중에는 그 하나님의 영역을 이용해서 더 넓게 만들어 버리니까
왜 배신 때리냐고 따지는 겁니다

요나 너 너 너 그래 너 가 바로 우상숭배자 이다 라고 지적 받아야 할 판국이다 라는 겁니다
설마 이렇게 열심히 특심인 내가 도리어 우상숭배자
주의 전을 사모하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는 주를 삼키는 자 라꼬?
메시아를 기다리는 내가 메시아를 죽이는 자 라꼬
이 간극을 존재가 된 인간 쪽에서는 좁힐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발등상인 성전을 건축하는 내가
하나님의 원수로 드러나야 하는 줄 몰랐던 겁니다

(대상 28:2, 개역) 이에 다윗 왕이 일어서서 가로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시 99:5, 개역)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110: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시 132:7, 개역)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사 66:1, 개역)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애 2:1, 개역)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마 5:35, 개역)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눅 20:43, 개역)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 7:49,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히 1:13, 개역)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히 10:13, 개역)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뭐 니가 뭐 발등상 되시는 성전을 짓겠다 라고
웃끼시네

바로 이 마음 자체가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

인간의 믿음 인간의 사랑 인간의 행함 인간의 말씀 지키기 자체가
바로 살인 의지 이다 까지 가 봐야 비로소 어찌할꼬 라는

율법의 찔림이 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다다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들을 겁탈 강간 간음하고 (여자문제죠 곧 과부) 죄에 대해서 심판
얼마나 많은 자들을 빼앗고 노예로 삼고 (고아 문제죠 기업 무러줄 고엘사상을 짖밟는) 의에 대해서 심판
얼마나 많은 자들을 쫓아내고 말이죠 (나그네 노인들 쫓아내죠 빨아먹을 단물 없으니 뱉어야 한다 말이죠) 심판에 대해 심판

이 사탄의 깊이 까지 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왜? 의사가 먼저 떳기에
환자의 병들이 낱낱이 다 들통나도록 되어 있는
종합검진이 즉 약속이 떳기에 말이죠

이 새언약은 새약속은 바로

원수됨과 그 원수됨 위에 뿌려지는 피입니다
다시를 허물치 않겠다 라고

이 원수와 사랑이 합쳐진 것이 약속 아닙니까

여기에 인간 스스로가 이 원수됨을 가리고자 시도하는
방종하지 말자
막살지 말고 바르게 살자 라는
인간 스스로가 자기 수치를 가리고자 하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우는 모습 자체가

자기 의 쌓기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모습이다 라는 겁니다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아니 주님께서 언약궤 증거궤 안에 세가지 죄악을 담아서 시은좌 뚜껑을 덮어 피 뿌리겠다 라는 이 약속이 먼저 떳기에

아무리 원망 안하고 싶어도 광야에서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할 만한 곳으로 인도해서
원망할 만한 곳이란 도저히 믿을 놈 하나 없는 하나님도 못 믿고
심지어 자기자신도 못 믿는 곳으로만 인도해서
완전이 영혼 멘탈 탈탈탈 멘붕시켜 버려서

피 뿌리겠다 라는 이 약속 때문에

이 우물가의 여인에게 생명수를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자기 나름대로의 죄관 의관 심판관을 가지고서
예배드릴 장소를 찾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 조차도 주님의 숙제로써 주님이 갈라버리시는데 있어서
엉뚱하게 니고데모가 두 언약의 대조로써 나올 뿐이지
우물가의 여인은 모르는 겁니다

아무튼 예배드릴 장소 곧 제사장을 가두어서 피 뿌리는 특정공간은 어디냐 라는 거죠

바로 니 앞에 우물가의 여인의 죄악을 감당하는 내가 너의 일곱 번째 남편이고
자 이러면 앞의 남자는 여섯이 있었다 라는 거죠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있는 남자도 너를 단물 빨아먹고 뱉어버리고 도망갈 놈이다 라고
마지막 여섯 번째 남자는 아직 하지도 않은 일을 결론을 내 버리는 겁니다

즉 모든 인간은 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서 단물 빨아먹고 뱉어버리는 관계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에서 나온 다윗의 범죄로써
모든 인간들은 다 거짓됨이 나타났고

하나님이 참 되심은 그런 죄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는 이 우물가의 여인

사마리아 수가 여인에게 첫아담은 모조리 여자 핑계를 대었지만
그리고 이 여인도 자기 죄악을 벗어날 길이 없지만

마지막 아담은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 라고
일곱 번째 남편으로써
어떤 분은 왜 일곱 번째냐 인간의 윤리 개념을 들고와서 기분나쁘다 라고 하는데
네 맞아요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입니다
일곱이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으로 보이겠지요
아닙니다 더더 더 더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심판의 의미가 일곱이다 라고 했습니다
일곱은 오로지 피 남편인 예수님만을 말함으로써
계시록에서 일곱교회 즉 일곱 신부라고 피 신부로 언급이 되는 겁니다
구원의 주가 아닌 심판 주를 영접하는 자만이 
심판 곧 음부의 권세가 묻지 않는 교회 이니까 말이죠

(요 4:20, 개역)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 개역)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3, 개역)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개역)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5, 개역)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그러니 야곱의 우물이 있는 세겜
현대어 번역만 그 장소를 그리심산 이라고 했는데요
인터넷 검색은 대부분 세겜이라고 하네요

(요 4:20, 현대어) 그러니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조상들은 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왜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유일한 예배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21절은 더 기가막힙니다

(요 4: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1, 새번역)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요 4:21, 공동)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요 4:21, 쉬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나를 믿으시오.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당신네들이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오.
(요 4:21, 한글킹)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인아, 나를 믿으라. 너희가 이 산에서나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않을 그 때가 오리라.
(요 4:21, 현대인)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이 산이든 예루살렘이든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문제되지 않을 때가 오고 있다.
(요 4:21, 현대어)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여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너희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유대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린다. 이는 구원이 유대 사람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우리에게 원하신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 까지는 장소는 문제가 안된다는 식의 번역 입니다만
현대어는 더 나아가 장소가 아니라 어떻게

어떻게 드리냐가 중요하다 라고 번역 합니다

아닙니다 둘 다 틀렸어요
장소 중요해여
그리도 때도 언급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공간(몸)과 시간(역사)을 자꾸 연장선으로 잇는다는데 있어서
문제라는 겁니다

성령은 바로 그것을 차단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때와 몸입니다
몸에 때가 많아서 때밀어야 한다 라는 말이 아니라

일곱이라는 안식의 주님이 오지 않으면
또 여섯남편 이라는 의문의 또 반복하는
또 자기 몸과 자기 역사 과거 현재 미래의 반복 뿐이다 라는 겁니다
답도 아닌데 왜 그딴걸 반복하느냐

공중해체 시키자는 의미 인데
번역 본에서는 그런 느낌은 잘 들지 않네요

아무튼 주님이 주신 성전을 해체 시킴으로써
주님이 주신 민족 이스라엘도 해체 시킴으로써
이제 성전 안에서 우상숭배하는 더 큰 영역을 펼치고자 하는 자기 의 쌓기는
이제 소용이 없고 의미가 없는 의문의 반복으로 드러나 버렸다 말이죠

즉 성전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해체가 된다 라는 것은
동시에 나의 존재도 몸이라는 공간도
안식일 지키기를 했던 공든탑 쌓기 지키기 라는 시간 또한 해체가 됨으로써
자기 영역의 확장 따위는 이제 소용이 없어져 버렸어요
성전의 사라짐 무너짐 불타 없어짐이 말이죠
거기에서 끝납니까
더 더 더 부정적으로 성전이 매맞고 
예수님에게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안 주면 죽일 거야 했듯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 손에 죽어서 떠나야 한다 그것도 버림받고
하나님한 테 버림받았다 라고 뒤짚어 씌우면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말이죠
거울로 비춰주는데
그 거울 깨뜨리면 취소 되는냥
그 정도로 믿고픈 것만 믿는
성전이 사라지고 떠나고 버림받는다? 이스라엘에게서는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설마 우리를 떠날 턱이 없다
떠날까봐 죽여버리는 겁니다

이런 우리의 의로움이 바로 불의함으로 드러나야
버림받는 떠나는 천국의 세계가 하나님의 어린양의 세계로써
거기서만 생명수가 나오는 겁니다
광야 광야 3일 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에서만
사함이 죄사함이 나오는 겁니다

에스겔 47장에 새성전에서 나오는 생명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우물가의 여인 사마리아 여자에게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물은

인간이 생각하는 지금의 것의 연장선상의 생명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 나의 확장인 
누가 더 크냐 라는 존재의 싸움 혈과 육의 싸움
결국 내가 신이 되는 겁니다

이와 대조로 어린아이는 버림받고 잃어버림 당하는 죽은자 떠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 못간다
왜 천국이 버림받고 떠나는 어린양의 세계 이니까

마치 불로초를 먹고 영생고픈 진시황제의 사고방식의 확장이 오늘날 우리에게나 역시나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 마저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이용해 먹고자 하는
나의 영역 확대를 위한 예수 이니까 가짜요 우상으로 만들어 조작해 버리는 겁니다

그건 미신적이고 우상적이다 라고 욕하면서도 다들 그런 욕망 자체가 없으면
오늘날까지 우주로까지 영역확장 할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까지 오지 않았다 말이죠

반도체가 없으면 전쟁도 못 해요
서로 반도체 차지 할려는 전쟁의 시대가 되었으니
살아남을려면 무조건 반도체를 확보해야 하니까 말이죠

환경이 파괴되든 말든 지금 닥친 문제가 더 크니
이건 뭐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겁니다

뭐 친환경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전을 해체해야 한다 라고
유럽 본인들이 주장해 놓고서는
다시 원전을 찾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지낼 수가 없더라 말이죠
바람이 불어야 친환경 에너지 풍력 발전기가 돌아갈 건데
유럽에서 안 불어요 글쎄
그걸로 얼마나 더 더 더 환경 파괴가 심한지 몰라요
새들이 풍력 발전기에 부딧혀 죽고요
소음으로 인해 동물들이 새끼를 낳을 수 없다 말이죠
좋은 의도가 더 큰 벌을 받더라 말이죠
영국 속담이였던가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한마디로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 이다는 겁니다
그런 주제에 우리가 악을 행하면 그럼 하나님이 선이 드러난다 라고?
라고 뒤짚어 씌우는 자체가 이미 심판 받은 자 이다 정죄받은 자 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악을 행하는 것이 원인이 되고
그래야 결과로써 하나님의 선함 의로움이 드러난다 라고 뒤짚어 씌우기 자체가
이미 마귀가 노리는 거죠

원인 없는 결과로써
결과가 먼저 뜨니까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이 십자가가 뜨니까
그 증상물로써 세 번 부인하는 불의한 자기의 바닥 치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해야 하는 심판받아야 하는 불의한 몸
지옥의 몸이구나 로
증상물로써 드러나더라 말이죠

순서 시간이 뒤바뀐 줄도 모르고
원인을 그래 갖추면 결과가 온다 라고?

그 어떤 원인을 갖추어도 결과는 의가 못 됩니다
그 어떤 원인을 갖추겠다 라는 발상 자체가 이미 정죄받은 존재 라는 겁니다
육 이다 라는 겁니다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되어 있기에
성령의 소욕 곧 물과 불과 성령으로 심판 하시기에
무조건 이유 없이 불의한 자로
심판 받아야 할 자로 드러나도록 되어 있는
심판 주가 떳기에
절대 심판 절대 저주 이자 동시에 절대거룩 절대용서인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는 그 증상물로
이 원수도 이 죄인도 사랑하는 절대심판인 십자가 이다 라는 겁니다

이게 죄 플러스 피 가 약속이다 말이죠
공간에서는 특정 공간 새성전에서만 죄를 감당하고
시간 곧 때 절기에서는 일곱 절기로써 매일 매일 1년 365일 하루도 빠짐 없이 피가 뿌랴지는 겁니다 이 때 속에 집어 넣기에

나의 확장 나의 때 라는 시간과 공간인 나의 몸은 이제 아예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
그것도 내 손에 버림 받은 그 몸
곧 예수 안의 세계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이 물 생명수가 나를 제대로 심판 하지 못한다 라면
에스겔 47장에서 나오는 물이 동쪽으로 흘러서 새로운 세계를 펼치시는데 있어서
나의 세계 확장은 아무 연관성 접촉점이 아예 없어져 버리니

그런 우상의 세계 또 의문으로 반복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말이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메요?
그럼 사라지는 버림받고 떠난 어린양의 세계에서는 이 십자가의 사랑의 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심지어 유대인이 그렇게 목숨 걸어 사수하고자 했던
성전도 없어요
오직 어린양만 있어요 버림받은 어린양 뿐이예요

(계 21:22, 새번역)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3, 새번역)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계 21:24, 새번역)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계 21:22, 현대어) 그런데 그 도시 안에는 성전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도시 안 어느 곳에서든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 21:23, 현대어) 그 도시에는 태양이나 달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이 도시를 환하게 비춰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 21:24, 현대어) 그 빛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나라를 비출 것입니다.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보화를 가지고 그 도시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물가의 여인 말 마따나 특정공간과 그 속에 들어가는 인간의 몸 인간의 공간

곧 야곱의 우물이 예배 장소로 맞냐
당신네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이 예배 장소냐

아직도 심판의 주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모습이라서
자기 열심 자기 의로움을 꽉꽉 채울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그 장소를 획득하면 또 우상으로 도배를 할려고 마음에 준비를 하더라 말이죠
자기 확장을 꾀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직 심판의 주 곧 모조리 다 공중해체를 모르는 구나
울퉁불퉁 누가 더 크냐 라는 그 첩경을 모조리 불도져로 밀어버리는
공의를 너 아직 모르는 누가
그래서 다 밀어버려서
성전도 삭제 시키는 판국에 말이죠
우리의 몸 따위는 그냥 깔려 죽어야 해요
그래서 장소 특정 공간
야곱의 우물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니요

버림받는 어린양의 죽음이 발리는
피 발리는 그 관계성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왜? 심판 주 앞에서 비로소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불의한 자로 드러나니까 말이죠

신령도 없잖아요 진정도 없잖아요 정직한 영이 없음이 성령에 의해서 들추어지고
심판의 주로 인해서 들추어짐을 당하고
그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겁니다

그 우물가의 여인이 장소를 찾다가 다시는 이제 장소 안 따지는 겁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새남편을 만남을 주님이 일방적으로 편파적으로 이루어 버리시는 바람에

졸지에 장소고 시간이고 뭐고 다 날라가고
나의 죄를 아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라고
그냥 함께 먹고 마시는 이 관계섳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가 되어버린 거예요
이것이 계시록에서는 어린양 버림받는 어린양이 참성전으로써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쓸데 없다 라는 겁니다
성전이 사라졌다 라는 것은
곧 해도 달도 빛도 이제 필요가 없다 라는 겁니다
어린양이 그들이 비추는 빛 보다 더 밝으니까
이것 보다 더 또렷하고 밝히 보일 수 가 없어요

그런데 또 성전 지을려고? 어딜 사기를 치냐 말이죠
정 그러면 지어 보라 말이죠
46년 동안에도 못 지어요
기초만 짓고 완공을 못하는 것이
인간인 주제에
뭐 불의한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 라고 이것을 믿으라꼬 따지냐 말이죠
지도 모순 되기는 마찬가지 인 주제에
꼴에 모순 되지 않은 정결한 것을 추구하겠다 라꼬?
거봐 거봐 그 자체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다 말이죠
뭐 손 씻고 왜 안 먹냐 라꼬?
얼마나 마음이 더러우면 손 씻어서 먹겠다 라는 발상을 하느냐 말이죠
코로나 땜에?
코로나 라는 바이러스 보다 더한 바이러스는 인간입니다
이 인간 좀 다 죽여주세요 바이러스 세균 벌레 해충들 좀 박멸해 주세요 라고 울어야 할 판국 아니냐 말이죠

유대인의 관원 부자청년이
관원이란 백성의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직책이다 라는 거죠

이런 부자청년이나 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나
어떤 인간 치고
진시황제의 불로초 영생을 안 바라는 자가 없다 라는 점에서
모든 종교는 우상숭배이다 라는 겁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 이고요
아무리 천주교 마리아 우상섬긴다 라고 욕해도
교회를 우상화 하는 것 목사를 우상화 하는 것 역시나 마찬 가지입니다

이런 죄악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는 판국에 영생을 구원을 바란다 라는 점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다 불도져로 밀어버릴려고 오신 심판 곧 일곱 절대심판 절대저주 이다 라는 겁니다

그 심판 주 앞에 아무도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나올 자는 아무도 없고

도리어 예수님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고 접근해 올때에

예수님은 도망치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도망 못 치게 죽여버리는 겁니다

그 죽은 자를 찾으시러 오신 분이

참성전은 죽인다 라고 했지요 제사장을 가두어서
5대 제사
특정 장소 특정 공간 결국 예수님의 몸 이지요
너의 죄 가지고 와라
너의 남편 여섯명 가지고 온나

그 죄악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제사장 기능이요
참성전의 기능 아니냐 말이죠

복음을 처음 전한 음악선생님이 이 이야길 했다 말이죠
그래놓고 자기는 정작 딴 것을 쫓아가버렸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말이죠 
뜨거움 
열정 
빨간색 피색 만 쫓다보니
순복음에 그런 것이 많은 줄 알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말이죠

결국 사람은 다 거짓 되니까 아예 기대를 하지 말자 말이죠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성전에서 나오는 출처 없는 물 곧 생명수는
죽은 바다를 살리는 생명수입니다

아니 바다 물이 다 오염되어 다 죽었잖아요
안 죽었으면 생명수가 필요가 없어요

저 바리새인은 더럽다 라고 삥 둘러가는 바리새인에게는 생명수가 필요가 없어요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은 죽은 여자입니다
그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불의한 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의 피 흘리심입니다

성전청결 행사 따위나 할 줄 알았지
주여 나는 목 마릅니다 물 좀 주세여 라고 하지 않더라 말이죠

성전청결행사를 억수로 잘 지키기나 하더라 말이죠

껍데기만 대따 지킬줄 알았지
속 알맹이는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고
싫어버린 바 된

버림받는 생명수가
죽은자들의 마을
바리새인이 삥둘러서 갈 정도로 더러운 그 마을 구역에
생명수가 마구 마구 들어가서
물 좀 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죽은 자에게
썩은 물 에게만 의미 있는 생명수 이기에
소성
다시 살리는 겁니다
죽었응께 다시 살리는 물 생명수 이다 말이죠

아무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봅니다
아직도 배불러 터졌거든요

멋들어진 구원이 아니다
부끄러운 구원이 되면 안된다

아니 불뱀에게 물려 죽는 판국에도
찬밥 더운밥을 따지고 선택사항이라고 여긴다는 자체가
이미 정죄 받은거다 말이죠

나는 죽어 마땅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에게만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이

이 죽은 바닷물 
썩어버린 바닷물을 다시 소성 시키는

어린양의 생명수입니다

이 꺽으신 뼈가 먼저 떳기에

아무리 다윗이 왕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쭐꾸덕 미끄러뜨려서

죄인의 자리에서 
이 불의한 자리에서

늘 항상 주께만 범죄하는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나
늘 한번도 쉬지 않는 그 주의 목전에 늘 주님의 눈 앞에서도 하고있는
그 불의한 자로써

이 꺽으신 뼈로만
이 원수 된 둘이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시는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만

기뻐하는 황공무지로소이다 몸둘바를 몰라
벌벌벌 떠는

이 생명수로서만
어린양의 죽음으로만 기뻐하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증상물로써 태어난 불의한 자 이기에
죄인이기에

의사의 증상물 환자 이기에

다른 기쁨은 없기에

나의 의로움 쌓기도 하나도 안 기쁘고
나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도 하나도 안 기쁜

도리어 그것 때문에 살인만 더더더 하는

인간 에게는 답이 없기에


주님이 정답으로써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심으로써

이 원수 된 죄인에게 피 뿌려주심이라는 이 약속성취
율법 완성 만이

이 꺽으신 뼈 되심 만이

유일한 기쁜소식 복음임을
다른 복음은 없음을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확정 
다 이루었도다

사랑을 확정 

앗 실수 확정이 아니라 확증 이네요 어쩐지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더라 했네요

(롬 5:8, 개역)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일 뿐이기에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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