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7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을 위한 창조와 새성전 (겔 47, 3- 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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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7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창조와 새성전 (겔 47, 3- 5)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계 22: 1- 4)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물이 나오는 성전 (겔 47, 1- 2)
에스겔 2019 2023. 1. 7. 12:58
19-136 물이 나오는 성전 (겔 47, 1- 2)

〈에스겔 47, 3- 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7쪽, 찬송가 044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찬송가 044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1. 찬송하는 소리 있어 사람 기뻐하도다 
   하늘 아버지의 이름 거룩 거룩합니다 
   천하사람 찬양하자 거룩하신 하나님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멘

2. 하나님의 나라 권세 영원토록 있도다 
   하나님의 영광 나라 거룩 거룩합니다 
   하늘 보좌 계신 주님 세상 주관 하시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멘

3. 하나님의 모든 뜻은 그 뜻대로 되도다 
   우리 아버지의 뜻은 거룩 거룩합니다 
   주여 속히 임하셔서 기쁜 날을 주옵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멘  아멘.


〈에스겔 47, 3- 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7쪽〉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찬송가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2. 주 모슴 내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겔 47:3, 현대어) 안내자는 줄자를 들고 동쪽으로 가며 그 물줄기를 쟀다. 그러더니 1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내게 그 물을 건너가 보라고 하였다. 그 물은 내 복사뼈까지 차올랐다.
(겔 47:4, 현대어) 그가 또 1천 자를 재더니 다시 나더러 그 물을 건너가라고 하였다. 그 물은 이미 내 무릎까지 차올랐다. 또 1천 자를 지난 다음에 똑같이 하게 하였는데 이제는 물이 내 허리까지 차올라왔다.
(겔 47:5, 현대어) 그가 네번째로 1천 자를 잰 다음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물이 이미 바닥에 발을 딛고 설 수 없을 만큼 강물로 불어나 있어서 나는 헤엄 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건널 수 없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위 일천척은
각번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겔 47:3, 새번역) 그가 줄자를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 보라고 하기에, 건너 보니, 물이 발목에까지 올라왔다. / ㉠약 450미터
(겔 47:3, 공동) 그분이 측량줄을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 찼다.
(겔 47:3, 쉬운) 그 사람이 손에 줄자를 가지고 동쪽으로 가서 500미터쯤 잰 뒤에 나를 이끌어 발목까지 차오르는 그 물을 건너게 했다.
(겔 47:3, 현대인) 그 사람이 손에 줄자를 들고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525미터를 측량한 다음 나에게 그 물을 건너게 하였다. 이때 물은 겨우 내 발목에 닿을 정도였다.

평균으로 500미터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니 정확하다메?
네네 ㅋㅋㅋ 일천척이 정확한데
우리 입장에서 그렇다 라는 거지요

뭐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길이를 재면 그놈의 유명한 서문시장까지
2.1 km 정도 됩니다
총 네 번을 재었으니까 말이죠

처음 5백미터에서 발목까지
그 다음 무릎까지
그 다음 허리까지
그 다음은 아예 건널수 없을 정도로 머리 위까지 물이 차서
동쪽으로 흘러 강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흘러 흘러간 물이 강을 이루게 되니
새창조가 벌어져서

죽은 바다가 즉 사막인 거죠
다시 살아났다 라는 겁니다

이 새창조와 새성전과의 연관성을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이 노아홍수심판 후에 동쪽에 시날평지에서
그 노아 심판의 트라우마로
그 반작용으로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해서
바벨탑을 건설 했다 말이죠

요즘으로 치면 허접하지만
그 당시에서는 모든 인간의 지혜가 결집이 된 겁니다
즉 인간의 믿음인 거죠 결속력
모든 행함이 결집이 된 겁니다
하나가 되어서 결국 하나님께 대항하자 라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의 탑을 만들어 낸 거죠

아무리 심판해봐라 안 죽을 거야 라고 말이죠
그래서 구원의 탑인 바벨탑을 동쪽에 짖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구원을 위한 탐심이니 이것이 우상숭배 라고 했습니다
아 아니다 우상 숭배가 아니라 우상이다 곧 인간이 우상이 된 겁니다

우상이 된 인간이
자기 손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자기가 기도하고 자기가 그 기도의 응답을 하는 겁니다

그런 신을 믿는 자기 투사 투영 투시로써 말이죠
아니 우상 조각이 누구 손에서 만들어지던가요

탐심을 가진 인간 아닙니까

바로 이것이 주님의 창조와 안 맞다 라는 겁니다

그럼 간단합니다

이런 인간을 창조한 적이 없는데
인간이라고 우기는 상황에서
다른 창조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인간들은 탐심 곧 우상숭배를 목적으로 성전을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겁니다
그런 인간들의 손에서 지은 성전을 헐고서
그 헐어버린 그 성전 그 자리
그 지옥의 몸, 한 가운데에서
왜? 물이 안 나오는 지옥의 몸이니까 남을 살리기는커녕
도리어 죽이는 몸임을 들통나는
예루살렘성전에서 죽임을 당하는 화목제물이 되니까 말이죠

그래서 다른 성전을 곧 물이 나오지 않음이 명확해 지고서
가짜 성전을 헐고
그 가짜성전을 헐게 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음부의 권세 지옥의 몸이 들통난 그 자리에서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지은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쳐서 넘어온
물이 나오는 성전으로써 새창조를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즉 주님은 성전중심으로 창조를 하셨다 라는 겁니다
문제는 인간의 몸이 지옥의 몸이 성전이 된
인간 자기자신을 중심으로 한 창조가 아니라

새성전을 중심으로 한 창조를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웃끼게도 성전과 바벨탑을 썩어버려서
역시나 인간 자기 구원을 염두하고서
성전짓기에 미쳐서 전부를 걸어 매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자기 몸 세우기입니다

그러니 창조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창조했다 라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결국 구원을 목적으로 창조했다 라고 해석을 하더라 말이죠

이거 행함의 세계이지 믿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아니다는 것이 들통나 버렸거든요

자꾸 무슨 교리인냥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단다 맞잖아 라고 우기는데
문제는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우상을 같이 썩었다 라는 점에서 과연 하나님의 형상 맞기는 맞냐 라는 거죠

그래도 우깁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라고
해석을 엉터리로 하고
문자주의 욕만 했지 역시나 문자주의 해석에서 못 벗어나기는 매 마찬가지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인간 창조한 적이 없다 라는 거죠

그럼 해석을 근본부터 바꿔야 합니다
네 맞아요 해석 포기
해석을 포기하고 해석권을 양도해 버리는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포기할 인간 역시나 없지요

자기가 사망의 몸임이 들통나지 않는 이상
무슨 수로 해석 포기를 하겠습니까
마치 교리 포기를 하면 종교가 물론 기독교를 포함해서
교리포기를 하면 이거 종교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정통교단 우려먹는 그 수천년 동안에 내려오는 유산을 다 포기하는
네 맞아요 생존 포기와 같다 말이죠
언 놈이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돈이 되는데
누가 돈 되는 교회를 포기하면서 생존을 포기하겠느냐 말이죠

이런 인간을 창조한 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럼 말라꼬 창조를 했냐

하나님의 형상을 위해서 창조를 했다 라는 겁니다

그래 그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인간 아니가

네 아닙니다

여기서 다 무너져야 합니다

마치 인간이라고 우기지만
성경은 짐승이다 라고 들통내었어요
도리어 짐승이라고 우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게 아니라 
이놈의 성화론자들이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으로 하도 사기를 쳐서
그런 좋은 뜻이다 싶어놓으니까 맘대로 받아들였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인간들의 손에 죽는 하나님의 형상이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아니 그럼 이건 더 복잡해 지네
아니 죽었는데 우찌 하나님의 형상이 되노

바로 그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면 하나님의 형상 회복 운동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게 아니라
아무리 죽여도 하나님의 형상은 안 죽는다 라는 겁니다
결국 죽여봤잖아요 우리 인간이 말이죠

찰리 체플린 닮기 대회에서 마치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처럼 하나님 형상 닮기 대회에서
진짜 체플린이 과연 자신은 몇등을 할까 궁금해서 호기심에서 참여했는데

1등은 사실상 마귀가 했다 말이죠 그런데 마귀가 워낙 겸손은 힘들어 해서
진짜로 광명한 천사 답게 그 1위 자리를 인간에게 양보를 해서 심사평가원들을 속여서
2등이 되었고
진짜 체플린은 3등을 했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인간의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
하나님 형상 흉내내기 대회에서 1등을 한 겁니다

바벨탑 쌓기 대회에서 역시나 1등
구원의 탑 쌓기 대회에서도 역시나 1등

그야 말로 호모 데우스입니다 신 입니다 신 

바로 그렇게 신이 된 인간의 손에 죽어야만 하는 자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 죽는 하나님이 바로 창조의 취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자 이다는 겁니다
곧 인자입니다 새성전 이다 말이죠 

바로 창조는 바로 이 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창조였고
곧 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겁니다

인간을 위한 창조 라는 해석은 도리어 누락이 되고
뒤로 물어나서 나 아닙니다 저 분입니다 라고 하기 위함이다는 거죠

어딜 감히 실상 앞에서 그림자가 말이죠


방금 미우새 재방을 식사 중에 봤는데
궁상민이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던데
싱가폴에서 부자가 되는 분수 세 바퀴 돌기를 하더라 말이죠

갑자기 뭐가 생각 나는고 하니
여리고성 일곱바퀴 도는 것 하구요(총 13바퀴)

그리고 부자 개념 곧 마음이 청결한 자 라고 시작 되는 팔복이 생각나더라 말이죠

또 방금 보니 머라이언 상이 싱가폴에 있던데
상체는 사자 라이언 하체는 물고기
왜 환상속의 동물이 늘 합체 되어 있는가 라는 점입니다
반신반인 이라는 신화도 그렇구요

인간의 작품은 늘 합체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에게 돌아오는
회귀하는 식인 거죠

그런데 성경은 반대입니다 도리어 인간 탈락 시키는 것이 구원이다 라고 말이죠
그 탈란 시킨 바로 그 자리에

수수께끼의 정답이신 예수님을 놓고자 말이죠

그것 때문에
성령의 전으로써 구약에는 이스라엘
신약에는 성도를 성령의 전으로
새성전의 성전으로 삼으셨다 말이죠

곧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아니라 이 분 이십니다 라고 외치고 누락 되는 
잠자는 죽는 것이 성도의 기능이다 라는 거죠

바로 이 기능이라는 은사는
반드시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시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왜? 무능하거든요

아니 은사 라는 탈랜트 재능이 무능이라니 ~~~~~~~~~~~~~~~
그래서 기독교는 신과 인간을 합체 시킨 우상집단입니다

여리고성을 도는 전쟁에서
힘을 합체 해야 하는 판국에 그 반대로 힘을 빼고 있더라 말이죠

인간은 복 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부자 라는 존제가 되기를 원하지
이것 때문에 기독교가 복 빌어주고 있는 무당 짓을 하더라 말이죠
오죽하면 무당을 대통령으로 세우지를 않나 말이죠

팔복은 그 반대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라고 해서 가난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이거 더 글로리처럼 늘 복수심에 들끓어요
또 트라우마로 반작용으로 바벨탑 구원의 탑을 또 자기 손으로 행위로 이룰려고 해요

그건 존재이구요
부자든
가난한 자든
기능이 되어버리면
자신은 누락 되고
부요한 예수님
마음이 가난한 자는 예수님 뿐임을 증거하는 기능 곧 은사를 받더라 말이죠
잉여는 아무리 죽야도 칼로 물 베기라서
더더욱 잉여를 쪼개면 쪼갤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더더더 퍼지니까 말이죠

그게 물이다 말이죠 물이 나오는 성전 말이죠

여기서만 비로소 목마름이 해결이 되는 안식이 되는 겁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무능한 기능 곧 은사를 받은 자 만이

목마름에서 안식으로 창조로
칠일 이라는 안식을 창조하는 최종목적지를 보는 겁니다
곧 칠일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날짜(역사, 시간)와 공간(장소, 몸)은 모조리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기능적으로 말이죠
두 언약(가짜 몸인 인간 중심의 시공간과 대조를 이루면서 가정부 아들 이스마엘 언약 과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의 아들 여자의 후손 이삭 언약으로써) 언약을 성사하시는 겁니다

5대 제사 (화목제,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라는 공간 장소 몸
네 방향이라는 성전 동서남북과 그 구심점 중심이 되는 이름이 정중앙에 있는 겁니다
곧 머리 되신, 주틀(붕어빵 주틀에 넣어서 찍어내는), 본이 되신 예수님 말이죠
보좌에 앉으신 인자 되신 예수님을 네 천사가 마차를 끌고 가듯이 말이죠

두 언약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을 다 죽이고
사독 제사장 계열로써 
성전에 가두어서 성전의 기능이 펼쳐지는데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곱 절기 라는 때 시간은
매일 매일 피 뿌려지는 이 피로
죽은 자를 생명으로 탈출시키는 물이 나오는 성전
피가 나오는 성전으로써 생명의 샘이 흘러 흘러 넘치게 하는 겁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오순절,맥추절) 나팔절 대속제일 초막절(장막절,수장절)
그야말로 1년 365일 피로 온 몸에 도배 하듯이 말이죠

유월절이 태양력을 쓰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3-4월이다 말이죠
이 유월절이 이스라엘에게는 새해입니다 까치 까치 설날 이다 말이죠

그리고 이 새해가 두 번 있는데 이들 유월절이 1월이 되면 1년의 절반인
7월이 되는 날이 이스라엘의 또 새해가 된다 말이죠 두 번인 거죠
곧 나팔절입니다 7월이 말이죠 그러니까 3-4월을 더하면
태양력을 쓰는 일반인에게는 9-10월입니다
열매 추수날 인 거죠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날이 추수하는 다 이루었다 라는 날이 되는 겁니다
뿌뿌뿌 다 이루었다 라는 겁니다 
모든 시간은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이니까
유월절은 높은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와서 죄인과 같이 되셔서
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화목제가 되신 겁니다

이 새성전의 기능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는 겁니다
맏아들 맏물 로써 왜? 예수님이 장자 이시니까 

그래서 높은 자를 낮추심이다 말이죠

이것이 새 해입니다

그리고 이 낮아진 이스라엘을 다시 높이시는 새해
곧 나팔절 성전을 다 이루신
화평을 다 이룬
물이 나오는 성전 건설 완성
그냥이 아니라 가짜 성전을 허물고 3일 만에
지옥의 세 구덩이를 넘어서 와서 말이죠
전쟁을 다 이루어 화평을 이룬 겁니다

자 그럼 시간 시계로 따지면 새해가 아무리 두 번 이라고 해도
이 간극이 6개월 아닙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시간 개념은 시간 차이가 아니라
기능이라서 시간이 존재가 아니라
기능이라서 유월절과 나팔절이 새 해라서 죄인의 입장에서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는
유월절과 나팔절은 동시성이 되는 겁니다

욕심이 잉태하여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잉태와 장성과 낳는 것이 시간의 경과가 필요한게 아니라
동시서으로써
양자역학처럼 미래가 과거가 되고 과거가 미래가 되는 뒤죽박죽처럼
동시성으로 욕심 죄 사망이라는 지옥의 세 구덩이를 넘어오는 새성전 곧
안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예수님을 위한 창조 밖에 없었다 라는 거죠

그가 없이는 창조가 무의미 하다 라고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무엇이?
지은 것 하나 하나가 말이죠
이 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창조
예수님을 위한 창조 밖에 없었다 라는 겁니다

(요 1:3, 개역)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후 4:4, 개역)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골 1:13, 개역)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개역)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개역)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개역)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8, 개역)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 1:19, 개역)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 1:20, 개역)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요 1:1, 개역)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개역)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개역)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개역)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개역)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6, 개역)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개역)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요 1:8, 개역)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 1:9, 개역)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개역)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개역)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개역)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4, 개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5, 개역)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 개역)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 개역)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8, 개역)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을 본 자가 없는데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었다 말이죠
곧 하나님의 형상을 말이죠

(고후 4:4, 개역)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개역)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러니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 성전 중심으로써
성전을 세상의 중심으로 움직이는 아들의 나라를
하나님의 형상인 아들의 나라를 말하고자 동원이 된 겁니다

인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아들의 나라 인 거죠

사랑은 바로 이 하나님마저 올인하신 아들사랑에 있다 라는 겁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원수들에게 내어주시고자 한 성전의 기능인
둘로 나누어진 원수에게 흘리신 화목케 하시는 화평의 나라 완성을 말이죠

결국 천지창조 곧 만물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이
만물의 주요 사랑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심을 증거하는데 동원이 되는 겁니다
만물 대 자연
요즘 억수로 춥죠
사망도 죽음도
풍랑도 독수리도
남극 얼음 다 녹고
북극 얼음 다 녹고
대 자연의 멸망 조차도
예수님의 주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겁니다

모든 만물에 주 앞에, 하나님의 형상 이신 예수님 앞에 무릎 꿇기 위해서 말이죠

하나님 마저도 예수님의 주 되심에,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위해
화목제물로 삼으셨다 말이죠

이게 창조인데 우리는 시공간에 갇힌 창조를 우기니까
그때 로 어차피 못 돌아가니 말 뿐인거죠

그런데 창조를 지금도 펼치시고 그것을 믿어야 할 판국에 놓여지게 되면
우리가 지금 염두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내 중심으로 내 하기 나름이다 라는 것이 다 깨어질 판국이니
누가 창조주를 믿겠냐 말이죠

암요 암요 창조주 저 믿습니다 라고 아무리 외쳐도
아직도 너가 내가 창조주인 것을 안 믿는다 라고 여기시고
독수리를 보내시는 겁니다

자꾸 실패케 만드셔요

아니 믿는다 암요 암요 하나님이 창조주 이시오
여호와가 누구신줄 잘 압니다 라고 아무리 말해도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모르는구나
오냐 내가 여호와인 줄
누구인줄 제대로 알려주마 자꾸 이렇게 나오니까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기 위해서 태어난줄 모르는 겁니다

그 실패 라야
그 수치를 가려주는 분이 의미가 있거든요

내 실패 내 수치를 내가 가리는 내가 바벨탑건설
내가 구원의 탑을 건설해 버리면

이건 나를 위한 창조 세계이지
하나님의 형상 되신 예수님을 위한 창조가 아닌 겁니다

건강한 자 의인인 나를 위한 창조를 자꾸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마귀가 그래서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무용지물로 의사 되심을 무용지물로 만들고자
건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이죠

그러나 이 실패가 이 죄인됨 이 환자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일로 인해서
곧 하나님의 형상을 위한 창조로 인해서
우리는 의사를 말하기 위한
졸지에 환자가 되는 겁니다

환자의 자리에서
생명수는 저 분이다 라고
사막의 자리
사망의 자리에서 말이죠

무능한 어린아이로 말이죠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안식이라는 쉼
평화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만 이 창조의 목적을 보여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네 번의 물 넘침이 발목 무릎 허리 머리꼭대기에 넘치는 그 생수의 강이 넘치는 
이 제 칠일이라는 안식의 완성
평화 화평 막힌 담을 헐고
원수를 다 이긴 전쟁종식이

이 하나님의 형상의 출현으로 창조를 다 이루는 겁니다
비로소 안식
아들의 나라
화평의 나라
원수도 사랑하는 나라
둘이 된 원수를 하나되게 하시는 한 몸을 이루시는
그 결혼의 나라를 이루시??? 겁니다

(계 7:17, 개역)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21:6, 개역)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2:1, 개역)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개역)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3, 개역)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개역)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개역)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17, 개역)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마귀는 이 신부의 자리를 탐내어도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과의 한 몸을 이루시는
이 새신랑과 한 몸 되기를 원치 않는 겁니다
왜? 자기 일을 방해 했거든요
십자가의 피가 밝히 보이는데

그 흐릿한 모호한 의문의 반복을 방해했다 말이죠
사랑도 아니요 사랑 아닌 것도 아닌듯한
둘을 썩어버린 이 속임수 마저도

십자가의 또렷한 피 흘리심 앞에서
더 이상 사망아 누굴 쏘냐 누굴 꾀냐 로 들추어졌으니

자기 중심의 일을 그 마귀의 일
사람의 일
이 사탄아 어딜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느냐 라는
그 일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도 없게 만들어 버린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 형상을 위한 창조가 다 이루어진
아들 나라가 이루어졌으니 말이죠

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이
아들나라로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하는 창조를 무한반복하시는 겁니다

시작도 예수님이요
마침도 예수님인데

시작도 아닌 것들이
마침도 못 하는 것들이
아직도 46년 동안 아직도 못 짓고 완공도 못하는 것들이

이 실패가 드러났으면
얼른 손 떼로 하나님의 형상에게 맡겨라 말이죠

정복도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하고
충만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죠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기를 하던가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보시던가

어딜 감히 멱살 잡고 오빠 나사로 살려내라 라고 눈물 흘리느냐 말이죠
민망해서 속담처럼 된 인간의 눈물 
곧 진정성이라고 우기는 공감능력이라고 우기는
그 보편적 진리를 깨드리는
구체적 보편성으로써 부정의 부정
눈물의 눈물로써 쪽팔려서 다시 인간의 눈물 흘리시는 것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의 눈물
곧 하나님의 형상의 눈물입니다
생명도 아닌 것들이 울어요 글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왜? 곧 심판이 퍼부어지는데
지금 초코파이 정으로 인간 중심의 인정넘치는 사랑으로 보고 있으니
얼마나 거짓되는지 너무 너무 민망해서 우신다 말이죠

창조주를 안 믿어요
무릎 꿇지도 않아요
도리어 예수님을 넘어 뜨릴려고 하는
사탕아 썩 물러가라 라는 욕 먹을 짓만 우리는 해 왔던 겁니다

오래전 과거 20년 전이였던가
미국인이였던가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는 것으로 낙을 삼아
불법 사냥으로 잡혀 재판 받게 되었는데

아 이 놈이 성경에 정복하라 다스리라 충만하라 라고 하였지 않았느냐
왜? 나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이니까 

이 짓을 오늘날 교회들이 하고 있어요 글쎄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태어난 자들이 아닙니다
사람의 뜻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주의 이름(하나님의 형상)을 부르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이름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는 주의 이름에 곧 하나님의 형상에 안 맞는 자들입니다

물의 양이 네 번씩이나 나타나면서
이 자연의 멸망과 함께 인간(죄)의 실패를 통해서
그 심판 속에서 구원자 되신 생명수를 언급하시는 겁니다

죽은 땅
메마른 사막의 땅을
실패한 자에게
촉촉이 적시는
생명수로
창조주로 오시는 겁니다

기독교 중심의 세계를 이루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 흘리신 이 십자가가
이 생명수 되신 한 몸 이루신 하나님 형상 중심의 나라를 외치고자

이 이름만 이 하나님의 형상되신 그리스도만 앞장 세우는 자가

그리스도 인입니다

새신랑의 사랑만 외치는 새신부 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새신부의 유일한 소망이기에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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