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0 모든 지파의 땅 분배 (겔 48, 1- 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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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0 모든 지파의 땅 분배 (겔 48, 1- 9)

요셉의 두 분깃 (옛적에 맹세한 약속의 땅 분배) (겔 47,13-23)
에스겔 2019 2023. 3. 11. 13:13
19-139 요셉의 두 분깃 (옛적에 맹세한 약속의 땅 분배) (겔 47,13-23)

〈에스겔 48,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8쪽, 찬송가 451장 전능하신 여호와여, 545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찬송가 451장 전능하신 여호와여〉

1. 전능하신 여호와여 나는 순례자이니 
   내가 연약할 지라도 주는 강하옵니다 
   하늘 떡을 하늘 떡을 먹여주시옵소서 먹여주시옵소서

2. 수정같은 생명수로 마시게 하옵시며 
   불기둥과 구름기둥 나를 인도하소서 
   나의 주여 나의 주여 힘과 방패되소서 힘과 방패되소서

3. 요단강을 건널 때에 겁이 없게하시고 
   저기 뵈는 가나안땅 편히 닿게하소서 
   영원토록 영원토록 주께 찬양하리라 주께 찬양하리라  아멘


〈에스겔 48,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8쪽〉

(1) 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 같을지니라 극북에서부터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단의 분깃이요
(2) 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3) 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4) 납달리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므낫세의 분깃이요
(5) 므낫세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분깃이요
(6) 에브라임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르우벤의 분깃이요
(7) 르우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유다의 분깃이요
(8)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 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9)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이라


〈찬송가 545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1.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2.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거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3.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집에 가 쉴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겔 48:1, 현대어) [일곱 지파의 땅과 중앙 구역] 각 지파에게 돌아갈 땅은 다음과 같다. 맨 북쪽 지역의 땅은 단 지파의 모교이다. 그 지역은 북쪽의 경계선에 따라서 동서로 펼쳐진 부분이다.
(겔 48:2, 현대어) 그 다음에는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면서 땅을 똑같은 폭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구획하여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라.
(겔 48:3, 현대어) (2절과 같음)
(겔 48:4, 현대어) (2절과 같음)
(겔 48:5, 현대어) (2절과 같음)
(겔 48:6, 현대어) (2절과 같음)
(겔 48:7, 현대어) (2절과 같음)
(겔 48:8, 현대어) 유다 지파의 땅에 연이어서 위치한 똑같은 폭의 남쪽 땅은 너희가 성별하여 내게 봉헌해야 할 부분이다. 그 땅의 폭은 ㄱ) 2만 5천 자로 그 한가운데에 내 성소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ㄱ. 약 13킬로미터)
(겔 48:9, 현대어) 너희가 특별히 내게 봉헌한 그 지역은 길이가 동서로 2만 5천 자요, 폭이 남북으로 ㄴ) 1만 자가 된다. (ㄴ. 약 5킬로미터)


먼저 지계 라는 표현은 땅 지와 경계선할 때 계
땅의 경계선이라고 보면 되구요
분깃이라는 표현은 지분, 차지할 땅, 몫, 분량, 소유 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전 검색하니 유산을 나누어 주는 것 이라고 나오네요

한문 나오면 저도 어려워 하는 표현들이라서요

아무튼 인간은 땅 없이는 살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치 몸 없이 살 수 없듯이
인간은 땅 곧 장소에 종속이 된 입장이다는 거죠

창세기 3장에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인간은 땅의 요구에 응해야만 땅의 실과를 먹을수 있는
척박한 땅에 종속된 입장 마치 바쳐야 하듯 말이죠
노력도 땀도 바쳐야 하듯
종교에서의 성전에 바쳐야 복 받는다 라는 식처럼
안 바쳤다가는 저주가 오는 척박한 삶 속에 놓이게 된다는 식입니다
이게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의 인간의 보편적 진리가 된 거죠

아무튼 복도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저주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다가
영원히 피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닌
아무튼 땅을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땅에 딱 달라붙어서
땅 없이는 죽음 목숨입니다를 외칠 수밖에 없는 육이 된 거죠

자유는커녕 이 얼마나 철저한 땅의 노예 아니냐 말이죠

그런 땅이 없이는 죽은 목숨입니다 라는 인간에게
간극을 좁히는게 아니라 더더더 벌려버리는

아이고 그것도 땅이가
그것도 죽음이가 라고

이 땅을 가지고서 아들의 나라를 곧 오늘 나오는 본문
땅 분배를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겁니다

저 땅의 저주를 거쳐서
그 보편적진리로써의 속담으로써의 땅을 거쳐서
땅 저주 없애주는게 아니라 간격을 좁혀주는게 아니라
땅 저주 더더더 간극을 벌려서 아이고 그것도 저주가 라고
지옥의 세 구멍을 거쳐서 넘어온 인자의 새 땅
바벨론 땅을 거쳐서
인자의 나라 인자라는 새성전을 설명하듯이

새 땅의 분배를 통해서
죽음 보다 더 강한 생명을 퍼붓는 이 새 땅에 살수 없는 인간이다면
그거는 뭐 매일 매일 저주의 화살을 퍼붓는 땅 보다
더더더 간극을 벌리는 생명의 화살로 쏘아대는 새 땅으로써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의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죽음 없이는 너 죽음 목숨이야 라고
어차피 잔칫집 부국 강대국 애굽이 못 되면 저주받은 더러운 세상에서
더더더 간극 벌리시는 생명의 땅을 주시겠다 라고 오늘 본문에서 나열하고 있는 겁니다

100년 전? 200년 전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전에는
뭐 나라 마다 민족 마다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서 윤리적이지 못하면 악마이다 라고 취급받았다면
오늘날 자본주의에서는 돈 없으면 땅 없으면 악마 취급 죄인 취급 마녀사냥 당하는 입장인 겁니다
남들 다 옷 입고 다니는데 혼자 벌거벗고 다니는 식인 거죠
즉 죽은 자 취급 당하는 겁니다 넌 시체야 라고

그런 땅 소유의 여부가 죽었냐 살았냐 의 기준 보편적진리가 된 입장에서
간극을 더더더 벌리시는
광야 광야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더더더 몰아가서는

네 맞아요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게 아닙니다
뱀이란 땅의 흙을 먹거든요

그건 제대로 된 저주를 보여주는게 아니다 라는 거죠
진짜 저주 함 보여줘봐 ~~~~~~~~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봐서 죽는 겁니다 즉 지옥 가는 겁니다
진짜 제대로 된 저주는 저 분이 받았다 라는 겁니다
그 진짜 심판 절대저주를 보고자
광야 곧 죽음이지요
광야 3일 길 절대죽음이지요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 있는 초상집 곧 십자가 언약입니다
이 약속을 보고자 제대로 된 심판 속에서의 구원인
하나님의 거룩을 보고자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지옥 불은 하나님의 불에 비하면 불 근처도 못가는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불이가 라고
제대로 된 불 함 보여줘봐 ~~~~~~~~

그러니 인간의 죽음은 죽음 근처도 못 가는 것이기에
징징 댈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뜬 이상
이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이 뜬 이상
그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뉘뇨 ~~~~~~~~~~~~~

이 주 날개 밑 이라는 피난처 피난의 땅 장소 몸
이 주의 품으로써의 새 땅이 아니면
인간은 이미 죽은 몸이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땅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라고 여겨지는 부자
특히 솔로몬이 입은 영광의 옷 조차도

그런 땅에서의 축복받은 자라고 여겨지는 부자라도

이 새 땅 앞에서는
더더더 간극을 벌리시는
피 옷 없이는 다 죽은 목숨이다 라고
이제는 생명의 화살로 퍼부어서
이 주님의 피
살과 피 감당해보라 라고 퍼붓는 겁니다

의인에게는 쓸데 없는 주님의 살과 피 곧 오늘 언급되는 새 땅을 퍼부을때에
맞습니다 저 죄인 맞고요 주님의 살과 피 없이는
주님이 주시는 이 새 땅을 퍼부어주시지 않으면 저는 살수 없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라는 죄인에게만
오늘 나오는 땅 분배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땅이야 말로 인간의 생존문제에 직결된 입장이라서
이 땅을 가지고서 언약을 설명하시는데 있어서 더더욱 그 땅의 기능을 활용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특별한 땅이니 말이죠
그 만큼 너거 이스라엘 곧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이 장소가
너희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지 아니 라는 거죠
이 장소에서 처참하기 짝이 없이 찢겨지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우리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사는 형상이 찢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로 지음받는 공장으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붕어빵 주틀에 넣어서 찍어내는 땅, 공장 말이죠
그 본 그 주틀이 뭐냐?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이다 라는 겁니다
저렇게 형상을 찍어내겠다 라고 말이죠
그 공장 그 집이 그 장소 그 땅이
바로 여호와 삼마 라는 하나님의 집 공장이다는 겁니다 땅 하나님 나라 라는 겁니다
인자의 나라 말이죠 그 이전의 형상은 다 지나갔으니 보라 새 형상이다 라는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난 주에 안식일을 지키는 놈들이
안식의 주인을 죽이는
자기의 첫사랑을 발로 차버리는 식인
기가막힌 누워서 침뱉기 라는 올무에 걸려들도록 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율법은 올무입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이 오늘 나오는 새 땅의 분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유업
후사
상속
기업을 받을 수가 없어요

이 새 땅은 예수님 몸입니다
줘도 한 몸이 되기 싫어서 받을려고 안 합니다

저 주세요 제발 주세요 라는 자는 죄인 뿐입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 곧 한 몸 되기를 원한다 말이죠
곧 자기 삭제입니다 자기 이름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주의 이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오늘 본문의 생명의 땅을 퍼붓기 하듯이 말이죠

마침 어머니께서 지난 주에
또 같은 받응을 하시는 겁니다
그 만큼 낯설어서 그런 겁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니 아들의 멘도 과외선생
신앙 선생으로 삼아 니 아들 구원 되도록 옆에 두어서 코치를 해도

나 여호와는 내 목숨 걸어서라도 니 자식 반드시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오 와카시노 라고 또 놀래서 또 같은 반응을 나타내시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낯설기 짝이 없는 겁니다
들을 때 마다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사는데 익숙하지
누가 자기 이름을 포기 하고
나의 이름을 삭제 하는
주의 이름을 누가 부르겠습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라고

까짓꺼 부르는게 뭐가 어렵냐 라고 나온다 말이죠

이런 놈들 억수로 많아요 채팅을 할 때 익명성이다 보니
본색을 마구 마구 드러내거든요
그래 내가 그 주의 이름 예수 이름 좀 불러줬다 이제 됐냐 이제 구원 줄꺼냐 라고
아주 아주 지옥을 가고 싶어서 환장을 하더라구요
내가 불렀으니 자기가 주인공이다는 식입니다
그러니 이미 정죄 받은 거죠
그래 그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말이죠
그래 그래 내가 악을 행했다 이제 하나님의 선으로 나타나겠네 라고 비아냥 거리니까
사도바울이 그카이 너거들은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구체적 보편적진리를 아무리 아무리 해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버린 입장에서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 곧 주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라
결국은 보편적진리 곧 속담으로 자기 이름을 역시나 부르더라 말이죠
그러니 안 되는 겁니다 불가능한 겁니다
지도 아니까 에라이 사도바울아 어디서 뻥 치냐 라고 비아냥 거리는 겁니다
정작 너거가 올무에 걸렸지롱 이라고 되받아 치고 있는데 말이죠
성령의 소욕은 결국 내 입장에서는 당하는 입장이지 뭔가를 하는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육의 소욕을 누가 포기 합니까 포기한 나를 또 주장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소욕이 없이는 안된다 라는 의미인데
여전히 육의 소욕으로 자기가 함 해볼라 카이 그게 되냐 말이죠
하나님의 의는 내 숙제에 달려 있은 적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데 말이죠
정작 그 동안 그렇게 본 자신이 저주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해야 할 판국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한 취지 곧 이미 심판 속에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라고 해서
누구든지 라고 억수로 자유로운 듯이 보이지만
정작 불가능한 이름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이름을 포기할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죠

그 주의 이름이 니 자식 반드시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라는 이름인데
과연 부를 수 있겠냐 말이죠

네 맞습니다 맞고요 제 자식은 지옥에 가도 마땅한 자입니다
제가 그 지옥에 갈 자식의 부모이니까 말이죠
그러니까 당신이 오셨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맞고요 저 개같은 이방인은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꽁꼬물을 먹지 않습니까

안식일의 주인을 본 자는 이렇게 고백하겠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안식일 날만 골라서 손마른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비로소 자신의 안식일 지키는 자기를 포기 할수 없는 본색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 이름과 주의 이름을 아주 아주 기가막히게 섞은 회칠한 무덤
아름다운 무덤
시체인 자신 사망의 몸인 자기자신과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름과 기가막히게 섞은
하얀 거룩하고 흰 백조의 색깔 우아하고 엘레강스 판타스틱한 뷰티플 색깔로 칠한
해골 뼉따귀인 사망의 시체의 본색을 드러내더라 말이죠
아무리 겉을 백조같이 칠해도 속 검은 것은 감출수가 없어요

이 손마른 자를 안식일 날만 골라서 고치시는 이 생명수를 누가 보겠습니까
누가 믿었으리요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즉 아무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식으로만 펼쳐지는 이름이기에
누구든지?
아닙니다
아무도 부를수 없는 이름으로 오신 겁니다
희한하죠 누구든지 라고 해서 갔더니 어라 호구 호갱이 된 냥
낚시질에 낚여 걸려들어버린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 된
걸림돌에 올무에 걸려 넘어지는 식이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라고 누구든지 라고 해서 아무나 인줄 알았더니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은

그 목마름 해결할려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할 판국인
진짜 생명수를 원치 않는 사망의 몸으로 들통당하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울어야 할 판국 회개해야할 판국
아무리 마셔도 마셔도 그 목마름의 갈증을 이 땅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라는 겁니다
이 단절을 거쳐서 이 지옥 세 구멍을 거쳐서 이 바벨론을 거쳐서
나오는 생명수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런 생명수
과연 누구든지 목말라서 마실수 있겠냐 말이죠
안식의 표징이 그런 의미이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표징을 손대었더니만
눈에 보이는 나는 삭제 당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표징 안식일의 주인이 나를 뚫고 튀어나오는 겁니다
에어리언처럼 시고니 위버의 배를 뚫고서 나오듯이 말이죠

그때서야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른 셈이 된 겁니다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니까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르짖듯이 말이죠
풍랑을 일으켜 빠져 죽에 만드니까 비로소 제가 알던 예수님이 아니네요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만나 도대체 이게 뭐지 당신 누구지
너무 너무 낯설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는 겁니다 형상이다는 겁니다

오늘 나오는 새 땅의 분배도 그런 의미입니다

나의 이름 나의 존재 내가 주변인들 심지어 하나님까지
예수님 까지 적절하게 이용해서 맺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그 심뽀가
이 새 땅의 분배로 인해서 삭제 당하는 판국인 셈이 되는 겁니다

이제 주의 이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써 새로 지음 받음 당하는
역변 갑자기 성형수술을 한 것 마냥 부작용으로써 얼굴이 변해 버리는 식이 되는 겁니다
주의 이름으로써 전쟁을 주님 홀로 하심으로써
이제 나의 이름으로 사는 나의 몸 나의 영역을 나의 땅인 몸 나의 나라인 이 신체를
야금 야금 천국이 침노를 당하듯이
나 라는 이 잔칫집이 어떻게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죽음이 펼쳐지는 초상집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는지 말이죠

전쟁 영화에서 모형판을 만들어서 분깃 깃발 물론 깃이 서로 틀린 단어이지만 라임을 타서
땅 따먹기 식으로 전쟁의 상황판을 모형으로 보여줍니다
탱크를 긴 작대기로 옮기고 빨간 깃발 나쁜 놈이 흔히 빨간 적군인 거죠
아둔은 파랑 깃발 탱크 모형을 긴 작대기로 옮기고 깃발을 꽂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진격하고 있다는 식으로 전쟁 모형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지금 땅 분배는 이런식으로 인자 되신 새성전 되신 주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침략해서 차지하고 있다 라고
모형판을 가지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만남이 설명이 되어지고 있고
그런 관계로써 증거되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저 분이 나 보다 옳았다 라는 표식 표징이니까 말이죠

이제 나의 땅에 저촉된 세계는 이제 날라가 버린 겁니다
간따나 이 땅에 살때에 부동산 없어서 죽은 목숨인데
보세요 말도 안되잖아요 바벨론 포로 당해온 판국인데
지옥에서 사망의 몸으로 비로소 들통났는데
손 마른 자로 들통이 났는데
우리 천국의 땅은 여기서 저기까지 라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말도 안되고 웃끼는 모습이냐 말이죠
안식일의 주인이 손 마른자에게 안식일 지키는 자들 보란 듯이
원수의 목전에서 마귀 보란 듯이
여기서 저기까지가 내 신부 땅이다 라고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라고
주의 이름으로써 외치는 식이니
애굽인이 보기에
바벨론인이 보기에
바리새인 곧 안식일 지키는 자들 보기에
이 안식의 주인이 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기괴한 행동이다 말이죠

율법에 속한 자들 보란 듯이
은혜에 속한 믿음으로 된 예수님의 형상으로 된 주의 이름으로 된 상속을
여기서 저기까지가 니 땅이야 라고 손마른 죄인에게
코 앞에서 이야기를 하니 이거 속을 빡빡 끓어대고 있는 모습 아니냐 말이죠

정작 이스라엘 당사자 조차도 안 믿겨져서
내가 그가 찔린 손 자국 창자국 안 만져보고는 안 믿을란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성령의 때 

즉 시간은 어디까지나 나의 이름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인데
주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때가 종말의 성령의 때가 되어버리니
졸지에 다 신기루처럼 다 날라가 버린 입장에서

땅 장소 공간과
안식일 때 시간 역사가
이제야 비로소 주의 이름으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겁니다
바벨론 포로 속에 쫄딱 망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시간 새로운 몸을 중심으로 돌아감을 말이죠

심지어 하늘에서 까지 
새 하늘 새 땅에서 까지 더더더 간극벌리시는
나의 이름 나의 몸을 죽이시는
이 새 땅 곧 주의 살과 피가 아니면
너 이미 죽은 목숨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제 나의 이름으로 살던 그런 죽은자의 하나님은 끝나버렸습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주의 이름으로만 사는 산 자의 하나님의 시대가 된 겁니다
그런 땅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땅을 침략 쳐들어가서 불 지르는 겁니다

뭐 화평을 주러왔다구? 웃끼지마
검을 주러 왔단다 내가 왔단다
아비와 아들
어미와 딸
이런 보편적 세계관
그리스도의 형상을 원치 않는 그런 세계를 불지르러 왔단다 라고
다른 땅으로써 설명하는 식 입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이 사망의 몸
이제 주님의 살과 피로 교체해 주세요 라고 해야 할 판국입니다
더더더 찢어주세요 더더더 간극 벌려 주세요
더더더 홈 패여서 십자가의 흔적 표식 요나의 표적으로 새겨주세요 라고 해여 할 판국입니다
진짜 몸 진짜 거룩을 보니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몸임을 비로소 봤응께 말이죠

오늘 본문의 이 새 땅을 보고
비로소 나는 망해야 할 몸임을 알고 우는
니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외치는 자에게만
이 새 땅 분배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이것이 나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닌
주의 이름을 위한 새 땅 12지파의 땅이니까 말이죠

즉 이 땅 없는 자는 더더더 이미 죽은 목숨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 새성전에서 출처없이 흐르는 물이
동쪽 성전문으로 흘러서 죽은 바다를 다 촉촉이 적셔서 죽은 땅을 살리더라 말이죠

2023.02.17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수 (겔 47, 6-12)

https://crosslamb.tistory.com/2592


말도 안 됩니다 왜 나같은 죄인을 왜 살리십니까

2023.03.11 요셉의 두 분깃 (옛적에 맹세한 약속의 땅 분배) (겔 47,13-23) 

https://crosslamb.tistory.com/2595


응 니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옛날에 맹세한 약속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곧 여호와 자기 이름을 위하여 택한 약속 말이죠

이 주의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그래서 붕어빵 주틀에 넣어서 모조리 다 찍어내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 곧 자기 이름을 위하여서만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것 보다 가장 나쁜 소식이 없는 거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찍어내니 말이죠
예수님의 운명이 졸지에 내 운명이 되어 버렸응게

나의 운명은 이제 날라가 버린 겁니다
내 이름 삭제 시키는 이 주의 이름이
옛날에 맹세 대로 밀어붙이시는 바람에
졸지에 밀려버림당해서 불도져에 다리미질에 쫘악 평평케 되는 겁니다

이 불도져에 밀린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요셉처럼 말이죠
이런 자들만이 천국 땅에 갈수 있듯이
불도져에 밀린 땅 그런 몸 만이
주님이 주시는 땅을 상속 받는 후사이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상속을 받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땅이 아닌
지옥의 땅을 또 준비하셨거든요
그것도 주의 이름이 부지런히 꽉꽉 채우시니까요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
한 몸이 될 수 없는 그런 땅에 살도록 말이죠 얼마나 척박하겠습니까?
마치 약속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인간들이 우상으로 도배를 하니까
얼마나 얼마나 척박한지 활과 화살이 없으면 살수가 없어요 글쎄 하루 하루가 생지옥입니다
무당 하나 잘 못 세우니까 하루 하루가 지옥이더라 말이죠
갑자기 자살이 더 많이 늘어다더라 말이죠
이 얼마나 자살을 부추기고 있는 세상 땅 입니까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이 사망의 몸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우는 자에게 요나의 표적 표징이 비로소 보이는 겁니다
생명수 곧 주의 살과 피가 보입니다
비로소 주여 죽어주세요 별세해 주세요 라고 그 말도 안되는 말이 믿겨지는 겁니다

이제 선악이 없고 높은 봉우리도 없고
움푹 파인 우물도 없이
선도 밀어버리고
악도 밀어버리는

바리새인 유대인 좌파 진보도 박살내고
무당 우상숭배자 로마 독재 우파 보수도 박살내는
평평하게 첩경을 평탄케 하는

오로지 주의 이름만 흥하고 그리스도의 형상만 남고
나는 패 해야 하는 모든 인간의 이름을 깨뜨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사라지는 매개자로써
이 땅을 불질러 온
뭐 화평을 주러왔냐고? 웃끼지 마 검을 주러왔다
불지르러 왔다 라고

첩경을 평탄케 하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이름을 불도져에 깔아뭉개서 찢어버리는 겁니다

그런 찢겨진 자에게만
이 주의 이름이
오늘 나오는 이 장소 이 땅
이 주의 살과 피인 새성전 새 땅이 의미가 있어요

삭제 당한 이름에게 얼마나 천만 다행이냐 말이죠
도리어 삭제 당하지 않았노라 라고
자기 이름이 있는 자는
백날 사탄을 하늘에서 떨어뜨려 보세요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데 믄 헛 짓이다 말이죠

네 맞아요 오늘 나오는 본문의 땅 분배는
마치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으로 기뻐하라 라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분깃이 없어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된 상속자만이
이 생명의 땅을 분배 받는 겁니다

벌써 오늘 말하고자 한 결론을 이미 다 내버린 셈입니다 끝 ㅋㅋㅋㅋ

그래서 율법의 행함이 아니라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서 마침 오늘 본문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은혜로 말미암은 그 이유가 또 나옵니다

바로 요셉의 희생죽음 덕분이듯이
그래서 요셉의 두 분깃이 개입이 되는 겁니다
마치 느닷없이 며느리 다말 이야기가 개입이 되듯이

주님은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신다
바로 그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 요셉의 두 분깃이듯
다음에 할 내용이

중앙의 성소의 자리에는 사독제사장
곧 그냥 사독이 아니라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을 다 죽이고서
성령의 소욕으로만 된 사독 제사장 계열이
이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는 제사를 하는 자로써 땅분배 이야기 속에 개입이 되는 겁니다


(수 16:10, 개역)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수 16:10, 새번역) 그러나 그들이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지파와 함께 살며 종노릇을 하고 있다.
(수 16:10, 현대어) 또 하나 이야기해야 할 사실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가나안 주민인 게셀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였기에 오늘날까지도 게셀의 가나안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고 있다. 게셀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 여호수아 때의 땅 분배 또한 실패한 이유가
기브온 족속이 갑자기 거지 옷으로 변장을 하여서
다 죽이라 라는 것을 어기고 자기유익에 따라 기브온 족속의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즉 이 말은 자기 또한 그 속임수를 알면서도 자기 유익을 쫓다 보니 
서로 서로가 윈윈하는 가운데서 어느새 주님의 명령은 잊어버리고서
자기유익을 따라 상호위선 상호기대 상호기만으로써 서로 이용하려다가 결국은
가나안 땅 분배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새 성전 건축 자체도 인간의 손이 아닌 천사로써만 짓듯이
최종적인 땅 분배로써 나타나기에
완벽한 모습입니다 즉 오로지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써
인애와 자비로써만
그것도 번제와 제사가 아닌 아바이달 제사장 계열 다 죽이고서 펼쳐지는
완벽한 최종 마지막 분배 이다 라는 거죠

선거때만 되면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기억이 나서 한번 검색해 봤다 말이죠

“우리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하고 낙선하면 우리 집안이 망합니다” 1950년대말 이승만정권 시절, 국회의원 선거가 벌어진 경북의 어느 군 지역에 출마한 입후보자 아들이 단상에 올라 청중들에게 하소연한 발언이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우와 진짜로 있었던 사건이였네요

자기 집안의 유익이 될려면 나라가 망해야 하고
나라의 유익이 될려면 자기 집안이 망해야 하는
율법의 시이소 같다 말이죠

완벽하고도 온전한 땅 분배
마치 사기꾼들이 억수로 우려먹는 온전한 십일조 라는 용어처럼
최근 정치꾼들이 선거때만 되면
정의가 하수 같이 라는 표현처럼 다 성경구절을 인용한 거다 말이죠

이 완벽하고도 온전한 땅 분배로써 그 어떤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상태처럼 말이죠
그러나 오늘 본문 또한 구약이라서 어디까지나 모형입니다 실체가 아니다 라는 거죠

아무리 최종적인 마지막 땅 분배 마지막 출애굽이어도 모형이다 말이죠
오로지 예수 안에서만 실상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왜 실패 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반복하느냐
간단합니다 우리의 존재성을 주의 이름 보다 먼저 더 앞장 세울 수밖에 없기에
늘 불순물이 끼여있는 셈인 거죠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구나 피곤하다 번아웃이다 소진된 인간이다는 거죠

그러니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에
이전 것은 지나 갔기에

다 이루었다



마침이 되는 겁니다

이 마침 빨래 끝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합니까

빨래는 수천년 동안 아직도 하는 인간들 성화 되겠다 라고
아직도 자기자신을 빨아요 빠는 그 자체도 더럽히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깨끗하게 빨기 자체가 더러운 짓으로써 더럽히고 있으니
빨아도 빨아도 소용이 없어요
괜히 강박증 결백증처럼
지옥이 늘 스멀 스멀 올라오니
플랜맨 영화처럼 매일 매일 치우고 딱고 질서 정돈 하도
자기도 자기가 그런 자기가 미워 죽어요 글쎄

그 정도로 답이 없으니까 의문의 반복을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하는 겁니다

내 안에서 다 이룬게 아니라 그건 율법에 속한 거구

예수 안에서 다 이루었고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된 유업 땅 분배 이미 다 완료된 채로 빨래 끝 선언해 부렸다 말이죠

이것을 외치는게 복음인데

아직도 미완료
아직도 빨래 중
아직도 깨끗하게 되고자 숙제하는 중이면

그게 무슨 놈의 복음이냐 말이죠

여전히 자기 이름을 의식하고 있는 겁니다
남의 시선을 눈치 보고 있다는 거죠

남이 나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가요?
왜 목사 눈치 보고 왜 사람 눈치 보느냐 말이죠

맞아요 인간의 이름은 결국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써
서로 눈치 보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기에
평생 사람 이름 눈치 보다 허송세월 다 보내는 겁니다
나이들면 꼰대 노릇하면서 그 보상 받기를 바라고요

여전히 아직도 죽은 사망의 몸인줄 모르는 겁니다

땅 분배의 온전한 종결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마침이 되는 겁니다
다 이루었다가 되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는 자가 바로 산 자의 하나님을 외치는
약속 중심을 외치는 겁니다

안그러면 또 불순물 인간이 뭐를 우선 순위로 두는가
결국 사람 눈치를 우선 순위로 보고서
자기 이름
자기 생존을 우선시에 두다 보니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최종 종결인 은혜가 아니라
또 인간 숙제인 율법으로
사람의 손으로 숙제를 해야 한다 라고 가르치는 식이 되는 겁니다

(롬 4:14, 개역)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롬 4:16, 개역)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즉 조상이란 산 자의 조상이다는 거죠
그 외에는 죽은 자를 따르는 식이다
여전히 의문의 반복인
마침이 없는 율법에 속한 자들이다는 거죠

그건 땅을 약속을 하나님 자신을 유업으로 받지 않았고
또 받을 수도 없고
한 몸이 되기를 원치 않는

그저 좋다 싶으니까 그 신부의 자리만을 탐하고
사랑을 하지 않는
여전히 예수님을 자기 유익으로 임금 삼고자 하는
종 부리듯이 우상처럼 손도 없고 발도 없는
노예처럼 부려먹고자 할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 내막을 다 아시고
모조리 다 바벨론 포로 속에 집어 넣어서
그 잃어버린 경험을 거쳐서

땅을 분배하시고

마침이 되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이 약속만

은혜로 공짜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유업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잃어버린 경험
곧 십자가의 죽음을 거치지 않은 자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맺은 결실로써의 천국을 못 누리는 겁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없습니다
그것은 산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죽은 자의 하나님입니다

지금 이 십자가의 죽음이 맹렬히 뿜어져 내려오는 가운데서
이 유업을 이 땅 분배 분깃으로 받음은 이 천국을 누림은

주와 함께 죽는 자로써
주와 함께 사는 자가 되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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