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3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 여호와를 거부하였다 (호 6, 4-1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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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3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 여호와를 거부하였다 (호 6, 4-11)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 1- 3)
호세아 2023 2024. 1. 19. 18:08
23-12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 1- 3)

〈호세아 6, 4-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2쪽, 찬송가 450장 새 395장 자비하신 예수여 , 447장 새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찬송가 450장 자비하신 예수여, 새 395장〉 

1. 자비하신 예수여 내가 사람 가운데 
   의지할 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맘이 어두웠으니 밝게하여 주소서 
   저를 보호하시고 항상 인도하소서

2. 죄를 지은 까닭에 저의 맘이 곤하니 
   용서하여 주시고 쉬게하여 주소서 
   천국가고 싶으나 저의 공로 없으니 
   예수 공로 힘입어 천국 가게하소서

3. 허락하심 이루어 사랑 항상 있도다 
   모두 이뤄 주심을 나는 믿사옵니다 
   구주밖에 누구를 달리 찾아보리요 
   복과 영생 예수니 더 원할 것 없도다

4. 거룩하신 구주여 피로 날 사셨으니 
   어찌 감사하온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주의  귀한 형상을 나도 입게 하시고 
   하늘나라 가서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호세아 6, 4-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2쪽〉 

(호 6:4, 개역)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6:5, 개역)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호 6:6, 개역)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8, 개역)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호 6:9, 개역)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호 6:10, 개역)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호 6:11, 개역)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찬송가 447장 오 신실하신 주, 새 393장〉 

1.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 같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2.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하나로 드러낸 증거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3. 내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호 6:4, 현대어)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너희들의 진심은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이른 아침의 이슬처럼 쉬 사라지고 있구나.
(호 6:5, 현대어) 그러므로 나는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의 멸망을 알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씀으로 너희를 죽이겠다고 경고하였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듯이 나의 심판이 어김없이 너희에게 닥쳐올 것이다.
(호 6:6, 현대어) 내가 바라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호 6:7, 현대어) [죄악의 천지] 그런데도 너희는 아담처럼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사랑을 거부하였다.
(호 6:8, 현대어) 길르앗은 폭력배들이 들끊는 도시다.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 있는 곳이다.
(호 6:9, 현대어) 숲속에 숨어 기다리는 강도 떼처럼 제사장들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서 살인과 온갖 죄를 저지르고 있다.
(호 6:10, 현대어) 이스라엘에서는 무서운 일만 벌어지고 있다. 에브라임은 다른 신들을 따라가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더러워졌다.
(호 6:11, 현대어) 오 유다야, 네게도 형벌의 가을걷이가 풍년이 들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고자 그토록 간절히 원하였건만!

(마 9:13, 새번역)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호 6:6
(마 12:7, 새번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7, 새번역) 그런데 이 백성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를 배반하였다. / ㉠또는 '아담에서' 또는 '사람처럼'
(호 6:7, 공동) 이 백성은 ㉠아담에서 이미 계약을 깨뜨렸다. 거기서 벌써 나를 배신하였다. / ㉠이스라엘이 요르단을 건넌 곳(여호 3:16)이다. 거기서 하느님을 배신한 기록은 없다.
(호 6:7, 쉬운) 그러나 아담이 언약을 어겼듯이 너희도 언약을 어겼고, 내게 진실하지 않았다.
(호 6:7, 킹흠정) 그들은 사람들같이 언약을 어기며 거기서 나를 대적하고 배신하였도다.
(호 6:7, 한글킹)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처럼 언약을 위반했으며 거기서 나를 거역하여 변절하였도다.
(호 6:7, 현대인) 그러나 너희는 아담처럼 내 계약을 어기고 나를 배반하였다.
(호 6:7, 현대어) [죄악의 천지] 그런데도 너희는 아담처럼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사랑을 거부하였다.

(수 3:16, 개역)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수 3:16, 새번역)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수 3:16, 공동)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우뚝 일어서서 아담에서 사르단 성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둑을 이루는 것이었다. 아라바 호수라고도 하는 사해로 흘러내리던 물이 다 끊어져 백성들은 예리고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수 3:16, 현대인) 갑자기 위에서 흐르던 물이 멈춰 멀리 사르단 근처에 있는 아담성에까지 둑을 이루었고 사해로 흘러 가던 물은 완전히 끊어져 강바닥이 말라 버렸다. 그래서 백성들은 바로 여리고 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수 3:16, 현대어) 그러자 위에서 흘러내리던 강물이 멈춰 둑처럼 쌓였다. 사르단 가까이에 있는 아담이라는 성읍 부근까지 강물이 쌓였고 소금바다까지 흘러내리던 강물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리고 성읍 맞은편으로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아담처럼 언역을 어기고 여호와를 거부했다 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자기의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쌓았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아담은 우리가 아는 그 첫사람 아담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라 다른번역에서 장소로써의 우리가 잘 모르는 자주 안언급하다 보니
장소 아담성 요단강 건널때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바로 위에 여호수아 구절을 아담이라는 장소로써 참고하시라고 올렸습니다
즉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 처음자리에
아니 약속 속으로 들어가는데 거부할 꺼면 들어갈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거부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오히려 약속의 땅 안에서는 언약을 거부하는 마음이 가득함을 보여줌으로써 
애초부터 처음부터 아담 첫사람 때부터 인간은 언약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장소 공간으로써의 몸뚱아리 첫사람 아담이나 장소 아담성 캐쓸이나 
또 시간으로써의 약속의 땅 입성 때나 첫사람 처음사람 첫 때나 
시공간이라는 역사는 반드시 약속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시간을 쪼옥 빼시는 겁니다 그래야 실체가 드러납니다
국가라는 역사성을 빼면 짐승이라는 본성만 남듯이 말이죠
이 존재(역사)의 함성을 잠잠케 하시는 시온이라는 중심에 참성전(예수님)이 오지 않으면
그 입 다물라 잠잠할 리가 없는 거죠)

여호와를 거부 배신 배반 패역했다 라는 말은
여호와를 알지 않고
자기가 아는 여호와를 따로 챙겨서 찌기를 썩어서 혼합물로 다가가겠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언약을 거부하는게 아니라 반드시 역설적이게도 언약을 지켜가면서 언약을 어긴다는 겁니다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득채워가면서 언약을 거부한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번제와 제사에 목숨걸었다는 거죠
뭐 뉴스에 가끔 종교에 빠죠 남편이 부활 할 것이다 라고
죽은 시체 그대로 두는 약사출신의 천주교인 그런 사이비에 빠진자가 아닙니다
나라 전체가 국민 전체가 다 그래요
번제와 제사에 충성하지 않으면 복 받을 수 구원 받을 수 없다 라는 수준이다는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돈에 충성하지 않으면 돈 못 번다 라는 거죠
자본주의 시대에는 신이 딱 하나 뿐입니다 돈입니다
번제와 제사 라는 행위가 바로 언약을 어김이라는 결과가 되는 겁니다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도리어 언약을 안 어길려고 하고 원망을 하지 않을려고 하는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쌓았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지 다윗언약은 필요없다 라고 언약을 거부하는 겁니다
십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은 것으로 충분한데
남을 7번 용서하는 언약으로 충분한데 왜 7에 70번 용서의 언약이 필요하며
왜 뭘 해도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불쌓히 여겨주소서 라는 세리의 고백이 왜 필요하냐 라고
매국노 세리는 하나님 나라를 팔아먹은 자인데 그딴 악마의 고백은 필요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모세언약(율법)을 지킨 것이 도리어 다윗언약(십자가의사랑)을 거부하더라 말이죠
자신들의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첫사랑은 잊어버린 거지요
처음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이스라엘의 처음자리가 졸지에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첫사랑을 언약을 잊어버리고 거부하는 겁니다

이게 성령을 개방으로 보고 연합 세례 일치 동일 합체로 해석하지만
정작 성령은 단절로써 이런 인간들이 가지고 오는 
자기 의 쌓기를 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다 차단 시키는 겁니다 손세례 손연합을 차단하고 
손세례 이게 다 정치죠 자기를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거부하고 육의 소욕을 거부하고
성령의 소욕으로써 마음판의 세례로 주님이 직접 주도하시는 
연합 세례인 회목제물로만 절대죽음인 죽으면 죽으리라 요나의 표적으로만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는 겁니다
즉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사랑? 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독생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은 이 인애와 자비만을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상대적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모습들을 대조 차이로써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두 언약]이라고 했지요 땅의 계집종 하갈과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언약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러니 모든 사람이 언약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거 오해 하면 안됩니다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오히려 더 더 더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킨다 라고
항상 그들은 [열심히] 라는 행함을 쫓도록 되어있다 라느 겁니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의 달인들이다 라는 거죠
말씀실천의 달인들 입니다

결국 자기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
또 자기의 의를 쌓기 등등은
자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함입니다
자기가 있음 자기가 살아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에게로 회귀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자랑 육의 자랑으로 도착하는 겁니다
이것이 번제와 제사입니다

곧 북이스라엘 신앙인 셈이지요 오늘날 성화론자들의 신학입니다
바리새인 신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라고 했는데
우기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 라고 다가가는 식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의 특징이고
우리가 살펴본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벨론 여자들 곧 우상숭배자들의 특징이다고 했지요

바로 이것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인간 쪽에서 이것 말고는 할게 없어요
접속 자체가 되니까 말이죠 행함이 가능하니까 말이죠

문제는 믿음은 아무리 해도 단절이요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것으로 통보받는다는 겁니다
땡 탈락 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매국노 세리의 고백이 필요없는게 아니라
다윗언약이 필요없다 의사가 필요없다! 내가 뭐 환자냐? 죄인이냐?
의인답게 살아야 하고 선민답게 살아야 하고 건강한 자 답게 살아야지
왜 자꾸 죄인 죄인 고만 좀 캐라 마이무따 아이가 (그 박길땡 목사의 주장이 사실은 모든 인간의 주장인 겁니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십자가 십자가 고만캐라 좀 제발 짜증을 내는 거죠)

라고 단절이 제대로 되다 보니 믿음은 오기(신념,종교심)로 땜빵하면 되지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꺽으신 뼈로 출발하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그 비유 비밀은 필요가 없다

그래 그래 율법이 없는 이방인 너희는 다윗언약 쫓으려 므나
실로암 소경 그래 그래 3년 짜리 아니 실로암소경 너는 만난지 딱 하루이니까
하루짜리 아니면 그 청년 33세 쯤이니까 33년 짜리 예수의 제자나 되어라
그대신 우리 유대인 영역에는 넘어오지 말고 나사렛 이단 예수나 믿어라
우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울(나중에는 바울)이 너희 이단들을 다 몰아낼테니까
나는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로써도 충분하다 예수의 제자 될 필요가 없단다
율법 없는 저 개같은 이방인이나 할 짓 안할란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막 12:33, 새번역)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히 10:6, 새번역)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히 10:8, 새번역)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입니다.
(히 10:6, 쉬운) 또한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와 죄를 씻는 제사인 속죄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히 10:8, 쉬운)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먼저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도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제사들입니다.
(히 10:5, 현대인)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며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와 죄를 씻는 속죄제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
(히 10:8, 현대인)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주께서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거나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이런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임)

(마 9:13, 쉬운) 너희는 가서 ‘나는 희생 제물보다 자비를 원한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 9:14, 쉬운) 그 때,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전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성경검색프로그램에 쉬운성경번역에
마태복음에 9장 13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라는 문장이 있길래
어라 다른 번역은 없던데 뭐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오류이더군요

오자 신고
http://www.bible4u.pe.kr/zbxe/error/43240

햇볕같은 이야기 이 사이트는 찬미예수 최용덕과 연관된 가족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상관 없는 것 같고요
최용우 수도사는 목사되기를 포기하고 일반교인으로 돌아갈려는 
그래서 자료수집으로 유명한 사이트인데 아무튼 오늘본문과 연관된 진리를 찾을려고 무지 노력하던데 ~~~
https://cyw.pe.kr/xe/index.php?mid=a25&document_srl=142094
이 링크는 쉬운성경 오자 그대로 나오길래 프로그램 혼자 그런게 아니더군요

최용우에 대해서는 https://cyw.pe.kr/xe/index.php?mid=a44&document_srl=170819

자 다시 돌아와서 오류인가 인터넷검색해 보니 오자 맞더라구요
그런데 오히려 그 오류가 오늘 본문을 설명하는데 참 적절하다 싶더라구요

그 새술은 새 부대는 먼저 언급해야 할 오늘 본문을 이야기 하고 나서 
왜 그 오류가 적절한지를(오류를 그 문장에서는 안 맞기 때문에 떼어내고 그 의미상 오늘 본문에서는 딱 맞는 겁니다) ....

오늘 본문은 호세아입니다 즉 다윗언약입니다
그런데 다들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왜 더 이상 다윗언약은 필요없다 라고 거부하는
그 역사속에서 주님이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런 사고방식 안에서 보셔야 합니다

사건이란 존재를 무시하고요
존재는 사건을 무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네 맞아요 육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무시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의 소욕을 거스리듯이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거스리는 겁니다
성령이 그러니까 사건화 시키는 거죠 육은 사건화 할 줄 몰라요
그저 자기 존재만을 위한 짓 밖에 안해요

그래서 존재는 자기 있음 즉 자기 살아 있음에서 출발해서 자기 에게로 되돌아 오는 겁니다
자기에게로 회귀하는 거죠
그러나 사건은 뉴스에서 나오는 그런 사건사고가 아니라
세상에 딱 한번 역사 속에서 딱 한 번 벌어진 사건으로써
마치 역사라는 풍성에 송곳인 묵시가 사건이 역사 속으로 풍선 속으로 침투한 사건입니다
이건 뭐 딱 한 번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시작하자마자 풍선이 송곳 바늘에 찔려 뻥하고 터져버리니까
역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허구로 드러난 사건이 된 거죠
그 딱 하나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
곧 오늘 본문의 인애와 자비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믿음이라는 묵시의 세계에서 역사 속에 침범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 역사에서는 믿음이 불가능합니다 그저 행함 뿐입니다 존재만 우길 뿐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믿음 곧 예수님의 죽음만 외치는 겁니다
이 꺽으신 뼈로만 사는 사건이 바로 다윗언약입니다
신약의 성도는 십자가의 죽음인 화목제물 
곧 인애와 자비라는 믿음의 주에게서만 나오는 믿음으로만 다시 사는 겁니다

지금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가정 번성할때에 외치고 있습니다
더더욱 쿠테타 일으킨 예후 장군이 아합왕과 이세벨의 자녀인 요람 왕을 죽이고
또 이세벨을 죽이고 난 뒤에 
예후 장군의 자손들이 종교개혁 아닌 종교개혁의 환경 속에서 가장 번성할 때에
저들 남 유다 4명의 왕, 북이스라엘 2명의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 1:1, 공동)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내린 야훼의 말씀. 유다에서 우찌야와 요담과 아하즈와 히즈키야가 왕노릇 하던 때요, 이스라엘에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노릇 하던 때였다.㉠ / ㉠호세아가 예언 활동을 한 것은 주로 우찌야, 여로보암 II세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므나헴(기원전 745-738년), 브가히야(기원전 738-737년), 베가(기원전 737-732년), 호세아(기원전 732-724년)의 시대이다.
(호 1:1, 쉬운) <부정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유다 왕으로 있던 때이며,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으로 있던 때입니다.

여섯 명의 왕 그것도 제일 잘 나가는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성을 이어주는 가장 번성할 때에

주님은 존재가 아닌 사건으로써
기능으로써 의사에 맞는 죄인을 부르시는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의 사건을
그 묵시를 침투하시는 역사 라는 풍선에 송곳바늘로 푹 찌르는
역사 속의 풍선 속의 바람 빼기
역사 빼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실체가 드러난다 라고 했지요

7번째로 호세아에게 묵시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니
이 호세아는 화평을 주러 온 게 아니라 검을 주러온
안식의 주인으로써 이 안식일 지키는데 열심인 번제와 제사가 가득할 때에
인애와 자비로써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 말이죠
왕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놈 없고요 하는 왕 없고요
호세아가 그 일 곧 사건을 화목제물을 다윗언약을 펼침에 있어서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처음자리를 찾으러 왔다 말이죠
그 처음자리에 있는 자가 없기에
첫사랑의 언약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아무리 저들이 거부해도 주님은 죽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죽음이 아니면 역사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화목제물 되신 십자가의 죽음을, 그 첫맹세를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심지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 끝물 마지막 멸망 전에 투입이 된 
듣기는 들어도 못듣도록 존재 아닌 사건으로써의 
단절하시기 위해서 배치된 사라지는 매개자(역사성이 있을수 없습니다)입니다
곧 사건입니다 호세아 자체가 사건덩어리 곧 인자입니다
그 사건 앞에서는 역사 곧 존재는 사라짐을 이전 것은 지나감을 당하는 겁니다
사망 권세 죽음을 없애버리는 죽음으로써
사망 자체를 삭제 시키는 진짜 죽음으로써 말이죠
이 인자의 기능에 세워진 나라가 이미 있기에
눈에 보이는 존재의 나라는 삭제 되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은 사라지는 단절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아 그럼 우리가 언약을 기억하고 여호와를 배싱하지 않으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오늘 말씀의 취지를 모르게 되는 겁니다

또 존재로 돌아가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존재로 날라가고 역사 곧 시공간도 날라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충돌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의 죽음과 자기 의를 쌓는 것과 충돌하고
다윗언약과 그냥 다윗언약이 아닌 모세언약의 정신을 담고 있는 다윗언약과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신앙과 충돌함에 있어서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단절을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러니 깨달을까봐 고침을 받을까봐 돌아올까봐 걱정 하면서
못 돌아오도록 차단하기 위해서 증거함이지

그래야 주님이 자신을 알려주시고 되돌아오고 고침을 받도록 하시는
화목제물을 완성하시지
안그러면 또 인간의 숙제로 이루어지는 여호와지식 돌아옴 고침받으면
또 의문의 반복으로 다윗언약을 거부하는 모습 밖에 없음을 또렷히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인간의 숙제를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의문의 반복의 다람쥐챗바퀴만 돌 뿐이지
결과가 없어요
결롸란 원인 없이 되는 겁니다 원인이 있으면 존재가 있으면 결과가 없어요
이건 과학의 사고방식인 원인찾기의 논리에서는 이성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과학은 종교가 되었다 지젝의 주장인데 아니 처음부터 종교였던 거죠

그러니 모든 인간은 이 연합시도 연결 접촉시도라는 그 본능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먹기를 탐하고 경제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멋들어진 구원 곧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종교이고
그리고 정치 곧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전쟁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바로 샛별을 자리를 앉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연합 접촉 연결을 시도하는 겁니다
성령을 개방으로 해석하는 것 조차도 북이스라엘 신학입니다

그거 마지막 북이스라엘 선지자 호세아가 차단 단절 시키는 겁니다

자 그럼 처음자리 부터가 나는 언약을 거부할 수 밖에 없고
(북이스라엘 신앙은 절대로 언약을 거부하고픈 마음이 없음에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려고 하는 마음그런데 정작 약속은 예수님은 너는 반드시 닭 욹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토록 만드시는
언약임을 다윗언약임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또 여호와를 거부할 수 밖에 없는 맏아들이 탕자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사랑을 거부하듯이
힘써 여호와를 알자를 거부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다는 겁니다

지난 번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했는데
이 여호와를 알자 가 바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겁니다
예수님 본인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세 번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베드로의 숙제를 막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역사성은 고때만 세 번 부인하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세 번 부인하는 겁니까
그래서 첫사람 아담처럼 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즉 뭘 해도 다 죄이다는 겁니다
죄가 덮쳐졌다 죄가 주체가 되어서 인간을 첫사람 아담을 다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번제와 제사 라는 역사성을 빼버리겟다 곧 행함을 빼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당연히 내밀 것 하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빈털터리가 되니까
비로소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심판의 주만 보이는 겁니다
그 심판의 주를 보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간담이 녹아서
주여 불쌓히 여겨달라고 하는 겁니다

인간은 존재로 나 존재로 승부를 거는 겁니다
그 존재에 도움을 구하는 밧데리 충전하듯이 하나님의 존재
예수님의 존재를 끌어와서 도움을 받아서 승부를 거는 겁니다

그런데 사건은 기능은 바로 그런 존재를 공중해체 시켜버리고
사건 스스로가 말씀 의 운동력만이 새로 창조하시는
이전 것은 단절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고
새 술은 새 부대를 외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존재인 내가 기능으로 옮기는 작접을 할 수 없는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거죠

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가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요일 4장 10절) 인지를
그 내막을 아는 겁니다 아 알면 되겠구나 가 아니라
알면 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자격 조차 안되는 화로다 화로다 망해야 할 자인지를 아는 거죠
즉 정작 하나님을 아는게 아니라
비로소 자기자신을 제대로 아는 겁니다
왜 하필 남북분단의 땅에 태어나고 왜 하필 독재자의 세상에 태어났는가
애굽왕 박통령 때나 문재앙이라고 징징 거리는 자에게서도 역시나 문재앙독재자 때에 왜 태어나고 백성이 되어야 하는가
모든 피조물 이나 날과 달과 모든 절기나 지구나 해 와 달이나
모조리 다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는데 있어서 이 예수님의 죽음과 나를 대조 시키는
예수님 VS 나 전쟁
고려 거란 전쟁
여호와 VS 이스라엘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 전쟁입니다
이 이름을 나의 구원을 위해 끌어당겨서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물리쳤고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주의 이름은 바로 나의 이름을 삭제시키기 위해서 주어진 이름전쟁입니다

나의 이름을 제대로 삭제 시키지 못하는 주의 이름은 주의 이름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삭제시키는 그 주의 이름만이 나를 생명책에 기록하실 자 이다는 겁니다

이걸 또 철학자들이 휼내를 냅니다 소크라테스를 기원으로 하는 철학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최고의 지혜라고 지들끼리 칭찬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이미 유대교 탈무드에서도 나옵니다
그렇기에 실천을 해야 하닌데 모든 종교는 실천교 이니까 말이죠 인간숙제교 이니까 말이죠
문제는 그렇게 행함을 쫓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에 행함완료에 이르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정작 유대교가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 사마리아인 곧 북이스라엘
이방인과 혼합이 된 잡종이 더럽기 짝이 없는 자들이
도리어 의에 복종하고 의를 믿으니 의에 거룩에 이르렀다 라는 겁니다

이 행함과 믿음의 충돌
법과 은혜의 충돌
모세언약 껍데기와 모세언약정신의 완성인 다윗언약 곧 원수사랑완성의 충돌인 겁니다

이건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충돌에서도
그리고 오늘날 성화론자들과 성령과의 충돌 속에서도 나옵니다

어떤 교파도 천국간다 라는 장담을 주는 것 자체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을 사기치는 겁니다

아 그럼 교파를 초월한 초교파? 그 초교파도 작살내지 못하는 언약은
가짜 언약 인간이 썩어버린 겁니다
아 그럼 십자가만 따르면 되겠네 그것도 십자가 자체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진짜 십자가 앞에서는 모조리 세 번 부인하고 모조리 다 도망가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그렇게 지옥의 몸임을 들통내시고 십자가 스스로 모으시는 겁니다
사망의 몸임을 지적 받지 않은 자는 절대로 모일수 없도록 말이죠

그 십자가 앞에서 뭐 신앙을 100년 1000년 했다는 둥
십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토색하지 않았다는 둥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정작 율법대로 사망의 몸임을 부자청년에게 알려주잖아요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나누어 주지 못하는 지옥의 몸 이웃을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치 않고
도리어 등쳐먹은 것이 들통내는 율법을 거부했는데
애초부터 율법을 거부했기에 율법을 지켰다 라고 우기는 것임을 까발려주시는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보여주시는데
안 알려고 등 돌리고 돌아서 다시는 안 보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안보는
둘로 나누어진 단절인 원수의 관계로 남겠다고 나오는 겁니다

이 심판주 앞에서 정작 매국노 세리는 불쌍히 여겨달라고
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니
헹함의 법칙 밖에 없는 인간 세상에서
성령의 법인 인애와 자비를 바라면서 주여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비로소 자신이 심판받아 마땅한 사망의 몸임을
지옥의 불에 타는 몸임을
지금 그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이 불타야 함을 알고서
불 속에 들어가서 주여 당신만이 나를 찌끼로 제대로 심판하실 정금이십니다 라고
불 지르러 오신 예수님을
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둘 다 불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겁니다

이게 철학자들의 지혜인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안다
인간은 쥐 뿔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안다 라는 것을 발견한 것과
족히 비교 대상이 될 문제이냐 라는 겁니다

그 이전에 훨씬 이전에 유대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아무것도 없기에 그들은 실물 없이도 교환 할수 있는 은행을 만들고
금융시스템을 만들었는데 ~~~~~~
실물이 없는데 어떻게 교환되느냐 소통 접촉이 되느냐
바로 그들의 믿음이 신이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곧 돈이 신이 된 겁니다
모든 인간에게 소통 되는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돈입니다
이 돈에서 출발해야 마귀가 유대인을 장악한 겁니다
그런 자들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
왜 언약을 거부하고 배신하느냐 라는 소리는 다 헛소리가 되는 겁니다
다행히 말씀스스로가 운동력이 있어서 언약 스스로가 바로 우리를
북이스라엘을 남유다를 공중해체 시킴으로써 헛소리 허풍 그림자가 아니라
실상이 되도록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가 빍히 보인다 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십자가 만큼은 헛소리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알고서
이 헛소리를 진리로
그들의 보편적진리를 헛소리 허풍 구체적 보편적진리로 만드시는 겁니다

돈은 모든 인간을 소통케 하는 신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즉 이 말은 십자가는 유대인들아게서 마저도 거부당하게 되는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오로지 이 단절로써만 하늘에 소통되는 단 유일한 하나로 만드시는 겁니다

가장 거리끼는 걸림돌이
가장 뛰어난 유일한 지혜요 그 지혜는 세상이 견디지 못할 만큼 격동케 하는
천한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시는 진짜 실천완성을 보일때에
비로소 인간의 사망의 몸은 모제의 자리 샛별의 자리에서 끌려내려져서
심판의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괜히 유대인이 십자가를 목에 탁 걸린 뱉을수도 없도
그렇다고 삼킬수도 없는 목에 중간에 걸린 거리끼는 걸림돌로 여기는지

다른 것이 다 소통했는데
그거 따라갈자 없어요
아니 민족 자체가 나라도 없이 떠돌면서 결핍에서 나온 사고방식을
아무리 흉내내어 본다고 해서 따라잡을 문제가 이니니 말이죠

심지어 지젝은 유럽의 근대문명을 유대인이 다 살렸다 라고 해도
유대인혐오 시기심 부러움으로 인해 늘 쫓겨남을 당해도
소통으로 다 극복하고
돈이라는 신으로 다 극복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딱 하나 소통 할수 없는 단절인 이 십자가 만큼만은
아무리 완벽하게 다 갖추어도 딱 하나 빠진 것 하나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꺽으신 뼈 하나가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이 화목제물 앞에서
왜 이스라엘은 해체 되어야 함을 보여줌에 있어서

그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을 보고

마치 예루살렘 거주민이 포로잡혀가는 이스라엘백성을 보고 비웃었는데
그 다음 니 차례이다처럼
망하는 북이스라엘 보고 비웃던 그 남유다 에게도
그 다음 차례 니 차례다 라고

왜 이 해쳬가 바로 여호와를 알자가 펼치는 일임을
인애와 자비가 이스라엘을 멸망 속으로 집어넣는줄

그럼 이건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요
이스라엘이 그럼 어차피 소명되고 존재하지 않게 사라지는데
말라꼬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신다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를 배신함이 처음부터 첫아담부터였다 라는 이런 지적 자체가

존재가 사라질껀데 말라고 하시느냐
불 속에 들어가면 다 사라지는 재가 되는데

바로 이겁니다

여호와를 알자를 이루시기 위해서
불 속에서 이루시는 겁니다
사라지는
인간의 뇌가 녹아 버리는 아무런 생각 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인 사랑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인애와 자비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따라할 생각 조차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의 숙제가 없어요
주님의 숙제 뿐인 주의 이름의 전쟁입니다
그러니 이름전쟁은 나를 선지자노릇으로 귀신 물리치게 만드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그 이름으로 미움을 받는 사건을 만드시고

저들에게서 삼키지고 뱉을수도 없는 거리끼는 걸림돌로 만드는 겁니다

그게 호세아입니다 호세아 라는 인자가 투입이 된 것 자체가
이미 주님의 숙제가 펼쳐짐에 있어서 공중해체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여거서 다들 반발하는 것이 뭔고 하니

아 그럼 호세아에게 무슨 유익이고
이스라엘에게 무슨 유익이 되고

가장 이해가 안되는 그럼 뭐가 하나님에게 유익이 된다고 저런 일을 벌리시느냐 라는 겁니다

왜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단절시키고
언약을 거부하게 만들며
여호와를 배신하게 만드는지 말이죠

물론 그 이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모세율법을 실천할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것 인정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실패하지 않도록
그리고 역사가 점점점 발전하고 인간의 문명이 똑똑해지고
수 많은 사람들의 환경이 그때와 달라졌기에
더 좋은 환경에서 기회가 많이 되도록 허락하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될까봐 아예 원천 차단하듯이
그 과거의 행동을 붙잡고 현재 미래에 까지 다 단정시켜버리면
우리는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사느냐 라는 겁니다

그래서 억한 심정에 보내는 선지자 마다 족족 죽여버리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더더더 간극 좁힐려는 것아
곧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어 우리 조상들은 선지자를 죽였지만
우리는 이 선지자의 무덤을 기념하고 박물관으로 만들고
자라나는 미례세대에게 교육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 라고

바로 이 자체를 가지고 장난 오락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너희 조상들이 똑같이 미래세대에게 가르쳤고
그 미래세대가 지금의 너희이며
이 역사는 의문의 반복처럼 마침이 없이 반복이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럼 우짜란 말이냐 이래도 안된다 저래도 안된다
니 말 마따나 단절이라매? 단절 된 대로 되고 있다는 거라매?

내 손에서 떠난 약속 스스로가 움직이는 운동력을 보자 라는 겁니다

누구 말마따나 과학자 뭐 노벨상 받은 물리학자가 주장했다곤 하는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사건만 있을 뿐이다
즉 움직임 운동력만 있을 뿐이다 라고 하던데

인간이 지구를 살리느냐 못살리느냐 가 아니라
지구가 인간에게 죽어가면서 예수님의 죽음인 이 단절의 3일을 절대죽음을 외치고 있다는 것에
우리가 눈을 귀를 못 뜨고 못 듣는다 라는 사망의 몸임을 직시하느냐 라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뚱딴지 같은 낯선 말이냐
비유 비밀 수수께기 같은 소리냐

인간 끼리 소통되는 말만 하다가
이 단절의 언어를 외침에 있어서
소통의 언어가 안통한다는 것 자체에서 짜증을 낼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짜증 내는 소통의 언어 밖에 모르는 몸을 죽이시고
단절의 언어만을 소통시키는 몸으로 만드시지 않으면
이 성경 말씀 자체가 나와 상관이 없으니까
부자청년처럼 등돌리고 돌아서 가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수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끼리 백날 소통되는 언어로 사고방식을 구축하면 뭐합니까?
예수님과 대화를 할려고 하니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려고 하니
거리끼는 걸림돌에 탁 하고 걸려 넘어져 실족케 되어버리니 말이죠

아니 천국에 가서 대화 할 수도 없는 언어를 가지고 가본들
내 육체의 언어를 가지고 가 본들 거기서는 무슨 소리인줄 하나도 못 알아 보는데
궁궐에 살고 천국에 살아본들 무슨 소용입니까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그것이 지옥인데 말이죠

그래서 사망의 몸에서 나오는 언어에서는 오로지 단절 뿐이니까
주여 긍휼히 여겨 달라고

즉 주님의 숙제로 제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얼굴을 마주 못 보는 것 자체가 지옥인 사랑이 없는 나라이고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소음 뿐인 지옥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여러분도 잘 아시다 싶이
대화가 안 되는 부부가 있다 칩시다
이미 벌써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자임을 즉각적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소경이고 거기에다가 귀머거리이요 또 거기에다가 벙어리 까지
장애 3가지가 덮쳐진 자가 있는데
그녀의 신랑이 예수님이라면

그 어떤 단절에도 불구하고
늘 얼굴도 못보는 소경임에도 불구하고 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부부이다 라고
다들 그 어떤 누구도 반박 못하는 사실로 여기면서 볼 것이다 말이죠

늘 스킨쉽으로 인해서 둘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철거머리처럼 딱 달라 붙어서 하나가 된 모습 말이죠

그런데 두 눈도 멀쩡 두 귀도 다 멀쩡 말도 할수 있는 건강한 자 임에도 불구하고
대화할 남편이
두 눈으로 얼굴을 볼 신랑이
두 귀로 들어야 할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백날 궁궐같은 천국에 살아본들 그 무슨 소용 있냐 ~~~~~~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거늘 ~~~~~~~~~~


그래서 이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데
사랑을 주시고자 하시는데

모조리 거짓으로 만드는 거짓목자들로 인해서]
가정부로 다 만들어 버리다 보니
바쳐야 복 받는다 라고 행함을 쫓도록 만들어 버렸다 말이죠
가정부와 아내의 차이가 뭡니까?

아내는 아무리 잘 못 해도
그게 오홀리바 아닙니까 
그 긍휼 보다 더한 긍휼로써 자비로써 모든 허물을 다 덮는 것이
아내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가정부는 가정부 스스로가 변상하겠다 라는 법 대 법으로 인식하기에
법으로는 상대를 하지 않기에
언제든지 미리 변상할 자세 뿐인
그카이 대화할 상대가 없는 겁니다

돈이라는 우상이 손도 없고 귀도 없고 눈도 없고 만지지도 못하는 손도 없는
그 우상을 가지고 소통을 할려고 하니

언제 배신 때릴지 모르고 먼저 배신을 때리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능 자기 유익을 염두하고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게 밖에 없는 겁니다

소통의 언어는 말이 소통의 언어이지 바벨탑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단절의 언어였고

단절의 언어인 비유 비밀 십자가의 비밀의 언어는
단절일줄 알았는데 제대로 나를 위해 죽으시는 죽으시는 절대죽음으로써 대신 매 맞는
사랑의 언어 긍휼의 언어입니다

이 긍휼이 오늘 본문에서는 자비를 원하신다 라고 이 자비의 의미인데

그냥 자비가 아니라 그건 우리가 다 아는 언어이고 그건 존재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고

가능의 언어 사건의 언어 비밀의 언어 비유가 되어버리면

이 자비라는 의미는 부정한 자에게 불쌓히 여겨 주시는 긍휼로써
부정한 자임을 들추어내는 의미인 거죠

즉 오홀리바 광야 속의 광야
텐트 속의 텐트
긍휼 속의 긍휼 아닙니까

여성의 자궁인 히스테리 속의 히스테리입니다
즉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이다는 겁니다

남자는 7일 부정 여자는 14일 부정한
그 부정 보다 더더더 부정한 부정의 부정으로
긍휼의 긍휼로 오시는 이 자비만이

나의 부정함을 제거하는
눈물을 씻겨주시는 자비 인 겁니다

주여 제발 불쌓히 여겨주소서 긍휼을 베풀어 자비를 베불어 주소서 라는 의미는

밤에 주의 성실하심 만이
나와 애굽과 교만한 샛별 계명성과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와
전쟁을 하셔서
그 전리품으로 빼내시는 이슬 곧 인애 아침에 나아오는 이슬 
청년 이 되게 해 달라
주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나온 청년이다는 거죠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니 밤에 주의 성실로 애굽을 치듯이 나와 전쟁을 하시는
자비로 긍휼로 제발 나를 지근 지근 밟아 죽이시고

아침에 주님께서 붕어빵 주틀을 완성제작하셨듯이

그 절대죽음인 3일의 간극을 거쳐서 나온 자들을
아침에 붕어빵 주틀에 넣어서 찍어서 붕어빵 완성하소서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주틀제작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언약을 약속을 어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 하고 거부하고
예수님을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는

세 번 씩이나 모른다 라고 부인하는 그 처음자리

그때만 세 번 부인하고
그 때만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한게 아니라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첫사랑 아담 때부터 언약을 어기게끔 태어났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태어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태어났고

바로 이 언략이 벌리신 사건에 의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내 밀것이 없는 탈탈탈 털린 빈 손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에서
주의 자비로 말미암아
밤에 주의 성실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근 지근 나를 밟아서 빈털털로 하게 하심으로써
찌끼와 정금을 분리 시킨 그 처음자리에서

비로소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은 자기의 의 쌓기를 지근 지근 밟아서
하나님의 원수임을 들통내지 못하는 도리어 거꾸로죠
그 카이 7에 70번의 용서 앞에서도 자기가 남을 7번 용서한 것을 들이내미는 겁니다

일만달란트 탕감 앞에서 내 돈 띠 먹고 도망간 백데나리온 안 갚은 죄인을
자기가 건강한 자인냥 의인인냥 심판하더라 말이죠

3개월 노동임금이니 누구에게는 천만원 일반 서민에게는 큰 돈입니다
그러나 일만달란트 44조 앞에서는 뻔데기 앞에 주름인데

바보 같이 44조를 날려먹고 천만원 백데나리온을 택하는 바보 멍청이가 어디 있냐 말이죠

그 바모 멍청이가 바로 남이 아닌 우리 자기자신임을
발가벗은 자 임을 거울로써 비춰 주는 것이

비밀 비유 수수께끼 언약의 말씀인 겁니다

언약을 어기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겠노라 라는 자들은
이건 뭐 본능이라 어쩔수 없다 해도
더더더 어쩔수 없는
거울이기에
아니 자기 얼굴을 비춰주는 다 보이는 거울 앞에서
발가벗겨지지 않겠다 라고 남들을 다 속인다 해 본들
주님 앞에서 소용이 없습니다

네 맞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항상 죄인임을 밝혀내시는

주께만 범죄한 자 만들기 이다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만

이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충분한데 말라꼬 십자가 용서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복임은 다윗언약이 왜 필요하냐
다윗은 살인죄 저질러서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살인죄 안 지었잖아
그카고 저 다윗 꼬라지 봐라 남의 여자 취하고 남의 남편 죽이고
남의 아이까지 죽이는 저런 갈때까지 간 인생막장 뭐가 옳다 라고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온 다윗언약을 수용하냐

모세언약이 만약 흠이라도 있으면 또 몰라
하나님 본인이 인증마크 팍팍 찍은 인증제픔인데

이걸로 충분한데 뭐가 또 필요하냐 라고

네 맞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안 되겟다 라고
내밀 것 하나 없는 빈손 빈털터리 안 되겠다고

아직 소인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다 라고 배불러터진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소인에게는 남을 7번 용서한 의로움을 쌓은 마일리지가 남아있습니다

이게 남은자 운동하는 놈들이다 말이죠 

남은자는 그 반대로 다 불태워 죽여서 하나도 남지 않도록 다 태워버린 단절인데
예수님의 죽음인 새순으로부터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우는자를 남겨두심인 인데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가 아니라
의를 쌓은 남 7번 용서한 그 의인의 자리에서 남은자를 반대로 거꾸로 외치고 있으니

인애와 자비도 긍휼도 사랑도 다 반대로 보는
다윗언약을 반드시 거부하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강퍅한 마음에서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카이 호세아 인자를 보내서
거울을 보내서
수수께끼 비밀
단절을 보내서

모조리 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허물어 버립니다

남은자는 이제 주님의 손에서 직접 나올 문제가 되도록 말이죠

남유다도 똑같이 당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나라도 없고 민족도 없고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올자는 다 나오도록 넉넉히 충만하게 하시더라 말이죠

그카이 이 말씀을 듣고 간담이 녹는
여호와의 이름만 듣고도 말이죠

그 이름만이 나의 이름을 나를 제대로 짖밟는
하나님의 원수 임을 들추어내시고
그 원수에게서 빼앗고 탈취 늑탈
스알야숩 남은자만 돌아오지 그냥 돌아오는 자는 딴데로 돌아가더라 말이죠
오로지 예수 라는 문으로만 돌아오는게
딴 문으로 돌아왔다 라고 우겨본들 소용이 없듯이 말이죠
임금 삼고자 해도 도망치시듯이 말이죠

(시 24:7,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9,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예수님이 직접 들락날락하시는 소통의 문으로 오지 않는 이상
인간이 아무리 들락날락하는 문을 지어도 단절이 되는 겁니다

즉 사랑인 화목제물이 아니면 대화가 안되는 겁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모세언약인 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하기 때무에
다윗언약인 화목제물 꺽으신 뼈가 아니면 안되기에

이 꺽으신 뼈에 맞는 새로운 죄인인 하나님의 원수로 만들고자
언약을 어기게끔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세 번 부인하도록 만들어서

지난 주 에스겔 애굽을 다시는 기억치 못하도록 하시겠다처럼
너의 전남편 바알을 애굽을 반드시 죽이시겠다 라고
그래 그래 바람 많이 피워봐라
다시는 바람 못 피우도록 애굽을 죽이시겠다 라는 것이 바로
본남편이다 라고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결혼이라는 한 몸 되기에
왜 자꾸 제 3자인 남을 의식하는 결혼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건 우리가 신부될 교회가 늘 우상을 염두하고 있음을
그 속내를 감추고 있음을 주님은 아시고
그래 내가 긍휼을 결혼을 반드시 니 마음에 두고 있는 전남편을 짤라 죽임으로써
내가 원래 본래 남편임을 보여주마 라고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고
시기와 질투로써의 사랑을 긍휼을 인애와 자비를 보여줌으로써

징계의 전쟁을 벌려서 이름전쟁을 함으로써
인애 곧 아침에 평화를 이루시겠다 화평 온유를 보여주시겠다 라고

반드시 전쟁에서 뺴앗은 전리품으로써
왜? 왕이란 샛별의 자리란 전쟁을 마무리 마침을 이루는 평화 샬롬을 이루기 때문이거든요
괜히 주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닙니다
전쟁의 이름인 젖먹이 전쟁이다는 겁니다 권능의 이름
스알야숩 마헬살랄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한 몸 되시지 너희와 함께 한 몸 되시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그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는 것은
내갸 그 심판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죄인이다 라고 시인하는 회개인 거죠
그 이름을 유대인은 못 부르는 겁니다
자기가 살인한 자 이다는 것을 시인하는 자수해야 할 판국이니
이 이름 자체가 사건이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사건이니까
거리끼는 걸림돌인 거죠
부딧히는 돌에 걸린 겁니다

아니 임마누엘이 신약 만 있는게 아닙니다
구약에 있어요
못 불러요 그 이름을 불렀다가는
자기가 살인자 임을
십계명을 어긴 죄인임을 시인하는 셈인데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환자 만이 고쳐 달라고
죄인 만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겁니다

아니 이때 북이스라엘 가장 번성할 때 요때만
언약을 어겼습니까?
고때만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저지른 겁니까
날 때부터입니다

우리가 에스겔 오홀라 오홀리바 사건을 통해서
고때만 음란했다 라는 겁니까?
애굽때부터 음란했다 라고 했잖습니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15:1, 개역)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 15: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4, 개역)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마 15:5, 개역)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 15:6, 개역)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 15:7, 개역)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10, 개역)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청함받은 자 속에 택함 받은 자를 탁란하여서
역사를 단절시킴으로써 왜 나도 마찬가지 단절 당해야 하는데 왜 불쌓히 여겨주시는 겁니까 라고

이 단절을 이 잃어버림을 격게 하심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버리시는 자인 심판 주 되심을 보여주는 겁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날 때부터 언약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자 임을
고때만 언약을 어긴게 아니라
애굽때부터 음란한 백성이였음을 말이죠
그 처음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에서
잊어버린 첫사랑
잊어버린 언약을 쳐다보라 라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지적하시는 겁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꺽으신 뼈 필요없다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율법 네배나 갚으라 라는 번제와 제사라는 행위를 하도록
사람을 온전케 못하는 그 행함을 쫓도록 되어 있는
그 음란을 그 음녀짓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화목제를 안 쳐다보겠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는 그 완악함만 고집 부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지 않는 인애와 자비란
하나님께 뭔가를 행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지적을 받고
그 죄인 됨을 나타내는 세 번 부인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이 인애와 자비로 꺽으신 뺘로 기뻐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인애와 자비인 겁니다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꺽은신 뼈라는 화목제물
이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도리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으라 라고 외친 자신들의 행함이
죄였음을 지적받고
이 십자가를 믿는 겁니다 십자가 라는 나무를 믿을 정도로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자체를 믿을 정도로
기드온이 전쟁승리를 하도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실적 또는 존재로 취급할려는 그 완악한 마음에 에봇이 이기도록 했다 라고 던져주니까 그 에봇을 우상숭배하듯이
그 정도로 믿음 좋은게 아니라 역시나 행함을 쫓는

도리어 역사성을 쏘옥 뺀 사건을 보라고 에봇을 던져주니까
우상숭배나 하질 않나 말이죠

아까 올린 마태복음 15장에

하나님을 경배 안하는게 아닙니다 경배 하기는 하는데
헛되이 경배한다 라고 했습니다

즉 반드시 모세언약인 십계명 율법을 자기 살아있음 자기 몸에 딱 맞도록 지키는
그 행함 그 역사를 쫓는다는 거죠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것이 선지자를 우리 조상들처럼 죽이지 않겠다 라는 장로의 유전을 따르는
껍데기만 추구하는
하나님을 우상화 한다 라는 겁니다

우상 믿듯이 말이죠
이 찌끼를 분리 단절 시키는 것이 거룩인데
에봇 이라는 거룩한 옷 곧 제사장 옷을 던져주니까
번제와 제사를 드릴려고 하지
인애와 자비는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약함이라는 기드온 겁쟁이를 사용했는데
삼손 보듯이 천하장사 힘 이라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해석하더라 말이죠

간극의 벌어짐을 느끼는게 아니라
뭘 줘도 간극을 좁혀서
연결 접속 연합 동질 합체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이게 종교오락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마약입니다
사기를 쳐야 돈이 되거든요
애들 가지고 노는 합체로봇으로 보는 겁니다

출애굽 후에 백성들의 원망하지 못할 곳으로 가는게 아니라
원망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양식 없는 곳 물 없는 곳 갈 때 마다
세 번의 원망을 담아서 그 위에 뚜껑 시은좌(속죄소) 덮어서 (히 9:5)
다시는 허물을 보시기 않겠다 라고 덮어버리는 그 뚜껑덮는 카파르
허물을 가리어주심 수치를 가려주시고 눈물을 씻겨주시는 그 사랑이
그 십자가의 죽음인 화목제물이 바로 인애와 자비인데

(히 9:5, 새번역) 그리고 그 언약궤 위에는 영광에 빛나는 그룹들이 있어서, ㉠속죄판을 그 날개로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 ㉠또는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시은좌)’
(히 9:9, 새번역)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 ㉡그, '비유’

(히 9:7, 개역)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 9:8, 개역)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히 9:9, 개역)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히 9:10, 개역)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 9:11, 개역)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 9:12, 개역)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3, 개역)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히 9:14, 개역)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5, 개역)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 이래도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네 드러냅니다

에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이 선해 지겠넹 에라이 돌파리 바울아
어디를 사기를 치냐 라는 겁니다

바로 우리가 인애와 자비로 가본들 역시나 행함을 믿음과 썩은 혼합물로써
여전히 그 의문의 반복을 멈출수 없다 라는 완악함을 주장하는 거죠

이것 자체가 바로 번제와 제사 라는 언약어김이라는 행함을 쫓는
사람은 온전케 못하는 율법의 행함을 쫓는 겁니다
이 지적을 통해서
비로소 정직한 영이 없음을
그때만 정직한 영이 없어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 조사죄를 저지른게 아니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죄가 덮쳐진 자로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 눈물을 그 수치를 가려주실 첫사랑인 인애와 자비를
처음자리인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
불의한 자리에서 첫사랑을 기억하는 겁니다
첫언약 첫맹세를 기억하고

인애와 자비가 오시길 바라는 겁니다

이 인애와 자비 라는 매일 매일 뿌려지는 피가 아니면
또 역사화 하고
또 존재가 되어버리면
존재를 강화 하는 힘을 쫓는 또 우상화 또 혼합물로 썩을려고 하니

이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것도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고 천국가겠다 라는 심뽀는
애초부터 이 땅에서 단절 시키는 겁니다

이 단절의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죄인임을 모르고 의사를 구하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네 반드시 창녀 너 오홀리바 죄인에가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리라
내가 본래 니 남편이다 라고

주님은 언약대로 밀어붙이시고

우리는 그 왜 저렇게도 더럽기 짝이 없는 창녀랑 결혼하시고자 할까 라는
그 거부감에
정작 그 창녀가 바로 나 임을 밝히심으로써

비로소 신랑이 누구신지를 알고

왜 번제와 제사가 바알숭배인지를 알게 하시는 겁니다

사람은 온전케 거룩케 못하는 것은 모조리 다

손이 있어도 만지지도 못하고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하는 존재일 뿐임을

도리어 그런 죄인 중의 괴수를
음녀 오홀리바 로 만드셔서 반드시 그 창녀에게 장가 드시고야 말겠다 라고 선언하는

이 첫사랑 대로 밀어붙이시는 이 여호와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라는 광명한 천사에게 다 속아 넘어갔을 겁니다

누가 꾀느냐

이 또렷한 십자가의 죽음이 또렷한데 말이죠

이 화목제물이 분명히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우리의 불의함을 수치를 눈물을 제대로 가려주시는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인 인애와 자비가 또렷한데

그 흐릿한 번제와 제사로 언제까지 높아지고 언제까지 존재감을 강화하는
그 헛됨을 언제까지 할꺼냐 말이죠

반드시 너에게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는
새언약의 다짐을 다 이루신 이 인애와 자비가 또렷한데 말이죠

(시 92:2, 개역)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우리가 노래 할 것은 딱 하나 뿐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신랑을 노래하기 위해서 신부 삼으신 겁니다

그것은 바로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애굽 곧 우상
곧 번제와 제사를 박살내시고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심입니다

내 손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번제와 제사의 마침을
주님이 손 수 직접 그 속에서 빼내시는 전쟁 거룩한 전쟁을 통해서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시는 겁니다
밤을 통과 하지 못하면 아침을 맞이 할 수 없으니 말이죠

아침에 새벽에 새벽별을 주심으로써
주의 청년들이 헵시바와 쁄라 로 부르시고
나의 사랑 나의 어여뿐 자야 라고 
신부로 비로소
그의 피로 세워짐을 당하고

수치를 가려주시고 눈물을 씻겨주시는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언약을 완성하심으로
죽음을 통과케 하시고 사망을 통과케 하심으로써

신부의 노래 모세의 노래를 하게 하심으로써
유리바다를 건너는 겁니다

이 어린양을 노래 하라고 새창조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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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6 죄의 마지막 사망, 하나님의 은사(선물) 마지막 영생 (롬 6,19-23)

의(義.거룩)의 종이 된 죄에서 해방된 자 (롬 6,15-18)
로마서 2022 2024. 1. 27. 23:24
22-035 하나님의 거룩에 종이 된 죄에서 해방된 자 (롬 6,15-18)

〈로마서 6,19-23, 신약성경 247쪽, 찬송가 409장 새 309 목마른 내 영혼, 524장 새 222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할렐루야 우리 예수(찬 159) 새찬송가 161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찬 524) 새찬송가 222장
예수안에 있는 (880, 찬미예수2000)
주님의 증인 (1365, 찬미예수2000)
하나님이 세상을 (702, 찬미예수2000)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 490) 새찬송가 433장
목마른 내 영혼(찬 409) 새찬송가 309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찬 270) 새찬송가 50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찬 190) 새찬송가 258장
예수안의 생명 (744, 찬미예수2000)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 찾아 오셨네
하늘 위의 집 (1416, 찬미예수2000))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찬송가 409장 목마른 내 영혼, 새찬송가 309장〉 

1. 목 마른 내 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 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2. 주 내게 약속한 큰비 내려 주시려 은혜의 저 구름 건너편에 떠올라 
   그 귀한 징조가 내게 밝히 보이니, 나 힘을 다하여 주께 간구합니다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3. 은혜의 소낙비 지금 흡족히 내려 구원의 큰 강물 흘러 차고 넘쳐서 
   내 추한 모든 죄 모두 씻어버리니, 나 지금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네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를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로마서 6,19-23, 신약성경 247쪽〉 

(롬 6:19, 개역)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 6:20, 개역)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롬 6:21, 개역)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롬 6:22, 개역)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3, 개역)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찬송가 524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새찬송가 222장〉 
 
1.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2. 우리 다신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게 계셔 
   간데마다 보호하며 양식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3.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위태한 일 면케하고 품어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4.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사망권세 이기도록 지켜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가스펠; 예수안에 있는 나에게 (880, 찬미예수2000)〉 

예수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하였네
예수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하였네
예수 예수 오직 예수 
예수 예수 오직 예수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했네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했네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가스펠; 나 주의 믿음 갖고 (1029, 찬미예수2000)〉 

1. 나 주의 믿음갖고 홀로 걸어도
   나 주의 믿음갖고 노래 부르네
   폭풍구름 몰아치고 하늘 덮혀도 
   나 주의 믿음갖고 실망치않네
   주는 내 친구 진실한 친구
   세상 끝까지 주를 믿으리
   폭풍구름 몰아치고 하늘 덮어도 
   나 주의 믿음갖고 실망치않네
 
2. 내주는 선한 목자 나를 인도해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니
   나 주를 따라가리 언제까지나
   주는 내 목자 선하신 목자
   어디 가든지 함께 하시네
   내주는 선한 목자 나를 인도해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니
   나 주를 따라가리 언제까지나


(롬 6:19, 새번역)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 ㉥그, '육신'
(롬 6:20, 새번역)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롬 6:21, 새번역) 여러분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롬 6:22, 새번역)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새번역)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개역)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먼저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안의 영생이다 라고 했습니다

삯이란 죄로 인해서 주어지는 품삯 또는 댓가, 수학적으로는 결과값이라는 거죠
은사 은혜로운 일은 예수님이 이룬 영생이다 그것도 예수 안에 라고 안과 밖으로 표현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라고
그럼 안이 아닌 밖은 뭐냐
바로 율법이라는 막힌 담으로 인한 경계선 너와 나 라는 구분선
둘이 된 것 즉 원수 관계이다는 거죠
그러니 막힌 담을 허무니까 경계선이 무너져 휘장이 찢어져서
예수 안이 다 넘쳐서 막힌 담을 헐고 막 넘어와 버리니까
모조리 예수 안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언약의 다 이루심을 거부하는 자는
모세언약 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새언약을 거부하는 자는
또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을 또 구성하고 담벼락을 쌓는 경계선을 치는 자 인거죠
이것이 오늘 본문에 죄의 종으로써 의에 대하여 자유했다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즉 의에 대해서 자유한 곧 의와 끊어졌기에 의 자체가 뭔지 모른다 라는 거죠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자체가 죄인 거죠
그러니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듯이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요 16:2, 개역)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3, 개역)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 16:4, 개역)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요 16:5, 개역)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개역)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요 16:12, 개역)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 16:13, 개역)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막힌 담을 헐고 예수 안에 들어오게된 침범 침략을 당한 자는
이제 반대로 의의 종이 되어서 죄에 대하여 자유하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즉 죄라는 주인 곧 왕 노릇하던 죄가 도망친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의에 대하여 자유한 자 역시나 예수님이라는 율법 외에 한 의가
자꾸 임금 삼아주겠다 라는 좋은 의도를 거부하고 도망치면서 자유했듯이 말이죠
죄 라는 권세가 더 이상 너랑 놀기 싫다 라고 도망을 치는

이런 상태가 죄에 대하여 자유한 자고
그 반대가 의가 도망치는 것이 의에 대하여 자유한 곧 죄의 종이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에 곧 예수님에게 복종치 않는 자 이다 예수님에 대하여 복종하는게 아니라
끊어진 연처럼 자유하면서 떠도는 연이 된 끈 떨어진 끈이 끊어진 마구 마구 멋대로 날라가버리는 연이 자유하는 연이 되었다 라는 거죠 의의 종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생아요 가정부요 땅의 계집종과 그의 자녀 이스마엘이다 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두 언약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두 언약을 로마서 6장에서
죄의 종과 의의 종으로 표현한 겁니다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도 육체의 약함이 나오네요

(갈 4:13, 개역)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갈 4:13, 새번역)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약함은 오늘 본문의 연약함과 다릅니다
이해력이 부족한 측면에서 쉽게 풀이해준다는 것인데
아무튼 사도의 수고로움 병듬 연약함 매맞음이 너희를 더 부요케 하기 위한 측면으로써
은사 곧 하나님의 일의 차원에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라는 겁니다

(롬 6:19, 공동)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 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롬 6:19, 쉬운) 여러분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말로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여러분의 몸을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드려 불법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의 몸을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십시오.
(롬 6:19, 현대어) 이렇게 내가 노예와 주인의 예를 드는 것은 보다 쉽게 여러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갖 죄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올바르고 거룩한 것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튼 죄도 영생도 인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죽으면 그게 죽음이 되는게 아니라 죄가 되는게 아니라
죄가 덮쳐져서 죄가 되고
인간이 죽는게 아니라 죽음이 인간을 죽여서 사망한다는 거죠

그런 이런 권세 곧 판대기 문제는 그 반대가 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망이 죽음이 나를 죽였는데
생명이 아무리 죽음이 죽인 나를 죽여도 도로 살려버리면
죽고 싶어도 살 수밖에 없는

의의 종이 되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욥이 생각나죠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어머니 말 마따나 인간은 놀이터 네 라는 겁니다

마귀와 하나님의 내기 장기에 장기알로 새우 등 터지는 신세로 놓여진 겁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다른 번역에서는 다 선물이라고 표현했거든요

선물이란 내부에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뭐 요즘? 한때!! 유행어 코메디에서 내가 내 자신에게 선물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웃음 자체가 현실을 전복시켜서 언어로 잠시 초월함으로써
현실 도피로써 웃음을 유발케 해서 힘든 생활에서 잠깐 쉼을 얻고자 함이지
내가 내 자신에게 선물 준다 라고 백날 해 본들
선물이라고 취급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것 같으면 선물이 아님을 다 알기 때문인거죠

어디까지나 선물이란 외부에서 주어진

외부의 숙제로 인한 결과죠

죄도 영생도 외부의 숙제로 주어진 것이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이 외부의 숙제인 주어짐 의 숙제에
인간은 어떻게 관여된 고 하니
연결해서 연결이 된게 아니라
그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절로써 연관이 된 겁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육체의 연약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거죠
죄도 뭔지도 모르고
의도 뭔지도 모르면서 의를 쌓겠다 성화 하겠다 라고
자기 의를 쌓지만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의에 대하여 자유한
연날리기의 줄이 끊어져 지 마음대로 날라가는 연의 신세가 된 거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끊어진 줄도 모르고서 접속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인 무당의 언어입니다
이 무당의 언어가 신과의 접속으로 인해 교리가 되고 법이 되어서
나중에는 그 무당을 대처하는 자들인 왕과 정치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거죠
신과의 접촉으로 인해 법을 잘 지키면 복 받고
법을 어기면 벌 받는
신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 라는 겁니다
이게 가인의 족보인 라멕의 찬양인 거죠

나 복 받았다 신의 저주를 극복하고 복 받았다 라고 그런 가인의 성이 바벨탑이 되고
그 바벨탑이 바로 국가의 원조가 되는 짐승이 되는 겁니다

그 가인 성(에녹성)에서 나온 영웅들이 바로 신으로부터 받은 뜻을 전달하는 매개자
곧 무당으로써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자로써 소통을 신의 뜻을 전달하는 겁니다
이게 제사 이다 말이죠 제사와 번제
과거의 제사는 피를 대신한 곡물로써 결속 곧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하더라 말이죠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다 보니 모조리 다 척박한 땅이다 보니
그래서 가인이 죽을까봐 싶어서 자기는 정작 동생 아벨을 죽여놓고서는
타인이 언제 죽일지 모르는 그 공포심 때문에 제발 대책좀 세워 달라 라고
그래서 준 것이 이마표 이다 말이죠 그것으로 만족 못 하다 보니 나온 것이 바로
성 케슬 보호막 10가지 재앙의 10가지 신들을 장자의 보디가드로 삼듯이
성을 세워서 보디가드로 그래서 활성화 시킨 것이 바로 영웅의 탄생
무당의 언어 영웅의 언어가 된 거죠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애굽의 원조인 바벨탑이라는 국가의 형태로 결속한 거죠 오늘날로 치면 시멘트 발라가면서 말이죠 역청 말이죠

(창 11:3, 개역)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개역)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자기 멋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왜? 의에 복종치 못하고 의에 대해여 자유하니까
지 마음대로 이니까 말이죠


똑같은 식으로 육체의 소욕과 반대되는 
성령의 소욕으로 죄에 대해서 자유한 자는
죄의 사슬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이제 죄에 대해서 죽었기에
죄가 더 이상 관여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거죠
죄가 이전처럼 작살을 꽃아서 올무를 멍에를 지워야 다스릴수 있는데
그 죄사슬이 끊어지니까 움직일수 있도록 연줄이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끊어지니까 더 이상 소통이 안되는 겁니다

(창 11:5, 개역)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창 11:6,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창 11:7, 개역)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 11:8, 개역)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마치 언어를 혼잡케 하니까 바로 흩어져 버리고 성 쌓기를
성화쌓기를 그치게 되는 단절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그 빈자리를 인간이 포기 하지 않습니다
무당이라는 매개자의 언어로 또 소통을 접속을
바벨탑 신의 구원의 통로를 계속 두드리고 시도하는 겁니다
신을 죽이고자 하늘로 올라가서라도 말이죠
걸어서 하늘 끝까지 ~~~~~~ 샛별 계명성이 따로 없죠

자 이렇듯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죽음이라는 사망이 결과적으로 주어졌고
영생이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생명이라는 영생이 결과적으로
원인 없는 결과로 주어졌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도 주어졌다 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어요 다른 표현이 없는 거죠
왜?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말이죠
아 그럼 육체를 강하게 하면 되겠네 라는 발상 자체가 이미 연약한 육체이다는 증거죠
육체 자체는 일방적으로 쳐들어 오는 영 앞에서는 택도 없습니다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뇨? 네 맞다 라고 했지요
우리의 육체의 연약함이 말이죠
칼빈의 주장을 오랜만에 표현하면

불가항적이다 라는 겁니다
죄도 불가항적이다
은혜도 불가항적이다
저항할 수가 없다 라는 거죠
왜? 육체가 연약하기에

육체 핑계 대는 거죠 어쩔수 없어요 육 자체가 영 앞에서는 쨉도 안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내 속의 죄가 나를 사로 잡아 버렸다 라고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4, 개역)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5, 개역)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 7:16,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개역)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죄가 그랬다 라고 죄 핑계 대듯이 말이죠

그럼 반대로 영생은 내 스스로 의를 쌓아서가 아니라
역시나 성령의 소욕과 육의 소욕이 반대 되듯이
예수님 탓 덕분 은혜 덕분 은혜 탓 
은사 곧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벌린 십자가 사건인 화목제물과 
곧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과
그 내어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순종의 종 되신 예수님의 종 곧 의의 종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신 분은 예수님 뿐이니깐요
성화론자들이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겠다 라고 나서지만
의가 뭔지를 몰라요 죄도 모르듯이
십자가에서 밝혀지는데 십자가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넘어뜨리기 바쁘고 그 걸림돌 십자가로 인헤 자빠지기 바쁜데
죄를 의를 심판을 배울턱이 있겠습니까?
알려주시지 않는 이상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히 5:8, 개역)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개역)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바로 율법 외에 한 의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예수님이라는 의 가 나타남으로 인해
온전하게 된 것이지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거룩케 의롭게 의의 종이 되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모세언약(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거부하는 다윗언약인 겁니다
율법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히 7:19, 개역)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아 그럼 율법이 잘 못 된 거네? 못 지킬 줄 알면서 준 거네?
라고 또 시비거는 놈들이 한 둘이가 아니예요 
아니 억수로 많아요
아니 다들 그래요 다 그래
율법이 잘못 된게 아니라 율법을 지킬수 있는 육체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율법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준 거다 말이죠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13, 개역)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4, 개역)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 5:15, 개역)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롬 5:16, 개역)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롬 5:17, 개역)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8, 개역)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9, 개역)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1, 개역)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0, 개역) 중보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갈 3:21, 개역)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2, 개역)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 3:23, 개역)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 3:24, 개역)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5, 개역)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 3:26, 개역)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7, 개역)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 같은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영생이라는 결과가 주어졌다 라는 겁니다

(롬 6:23, 공동)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쉬운)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롬 6:23, 킹흠정)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롬 6:23, 한글킹)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롬 6:23, 현대인)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현대어) 죄의 값은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라는 철학자들의 말이 있는데
(문제는 이들 인문학자들 곧 거짓선지자들은 그 끝이라는 종말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라는 겁니다 종말이 인물이거든요 유독 몇몇 학자가 인물이라고 카긴 캅니다만 역시나 최종 종말의 인물은 내가 한 숙제로 달성해야할 인물이 되어야 한다 라고 귀결이 됩니다)

마지막 곧 종말이 좋으면 다 좋다 라고
미래표절 미래를 미리 앞당기는 종말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기능 곧 사건이다 라고 이것이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언급했고요

반대로 존재는 미래를 미리 앞당길수가 없어요
기능 곧 사건은 (TV뉴스에 나오는 사건은 사람의 일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사건 곧 은사는
십자가 사건 외에는 없습니다)
성령이라는 총명한 지혜 곧 십자가의 지혜를 받은 자 만이
종말을 기능으로써 사건으로써 앞당길수가 있거든요 (사도행전이 그래서 성령행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사도들은 장기알처럼 배치되더라 말이죠 이 성령이 세상임금을 이미 심판했다 라고 증거하지요 그러니 이미 심판받은 놈들에게 휩쓸리지 말라 라고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것에 책망 곧 죄에 대해서 - 예수님을 안 믿고, 의에 대해서 ? 예수님이 다 이루신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의인데 인간은 자기 의를 쌓더라 말이죠 그거 그런 성화론 책망하시고, 심판을 심판하시고 사탄의 가시 느부갓네살 독수리 이미 심판받았으니 그들이 잘 됨에 낙심하고 배 아파 하지 말아라 시편 73편 성소 곧 예수 안에 들어가 보니 이미 벌써 저들은 심판받아버렸단다 괜히 낙심해서 다 죽게 되었다 말이죠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그래서 74편에는 아예 세상을 책망하는 내용으로 증거되고 있습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마지막이 사망인 죄 아래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앞당길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존재로부터 출발해서
내가 살아있음 나 있다 내 자신의 영광으로부터 출발해서
결국은 존재로 회귀하는
나 라는 원인으로 출발해서 원인인 나로 끝나는 것이
사망에 속한 자이다는 거죠

자기 스스로 죄를 많이 지어서 사망이 오지 않듯이
자기 스스로 의를 쌓아서 영생이 오는 것이 아닌

그 내부 숙제가 아닌

오로지 외부에서 주어짐으로써 양쪽의 왕노릇 사망의 왕노릇 은혜의 왕노릇에 
죽기를 무서워 죄의 종으로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를 주심으로써 은혜의 종 순종의 종으로써
영생이 주어지는 겁니다

곧 두 언약입니다

죄의 종은 계집종 하갈은 가정부이기에 의에 대해서 자유롭습니다
즉 사랑에 복종 할 수가 없어요 복종할려면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무슨 수로 신랑으로부터 사랑을 자력으로 따 낼수 있겠습니까

물론 신부의 자리는 탐냅니다 그러나 본래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낳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육은 육체는 유업을 받지 못합니다

이 반대인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은
아내 이기에 아무리 둘로 떨어뜨려놓아서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습니다
마치 누가 수갑을 채워버린양 의에 복종하고 있지
의에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둘로 따로 국밥처럼 원수 지간이 될 수가 없어요
반드시 하나가 되는 한 몸인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이 하나된 사랑의 관계에서 낳은 열매가 바로
이삭이라는 영생의 열매입니다

아무리 불 속에 집어 넣어도 안 죽어요
아무리 무태하고 잉태치 못해도 하늘의 자식이 억수로 많아요

이 단절이라는 육체의 소욕의 단절이 도리어
죄와의 단절인 자유함이 도리어 
성령의 소욕인 하나님의 은사가 풍성한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그 피 흘리심이 넘쳐 넘쳐 흐르는 겁니다
생명수가 말이죠

그러니 의에 대하여 자유한 죄의 종들은
이 한 몸 곧 예수님과 함께 같이 된 한 몸 된 운명
막 죽어나가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십자가의 운명을 거부하는 복종치 않는
자유하는 연줄이 끊어진 상태인 겁니다

신부의 자리인 교회의 자리만 탐할 뿐이지
정작 그 신부가 된 한 몸 한 운명은 싫은 겁니다
여전히 둘 로 나누어진 따로국밥인 원수의 관계로 남아서
휘장이 여진히 쳐져 있는 모세언약으로 충분하단다
막힌담이 여전히 허물어지지 않는 모세언약만 있으면 되지
다윗언약은 필요 없다 라고
다윗언약 곧 새언약에 대해서는 자유하겠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율법은 지키지만 복종하지만 율법 외에 한 의에는 자유하겠다 복종치 않겠다 라고 
자유하는 하늘의 여자 예루살렘을 거부하고
계집종 하갈처럼 가정부로써 월급만 달라 청소하겠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러나 가정부가 아닌 아내는
아무리 음모를 꾸며 죄를 뒤짚어 씌워도
죄가 더 이상 묻지 않는
신랑의 피
피신랑의 용서로 죄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인해
죄에 대하여 이미 죽어버렸기에
더 이상 죄 값을 치를 수가 없어서
죄에 대하여 자유하는

죄가 도망치는 겁니다
소용 없다 라고

아까 반대로 예수님을 아무리 임금 삼고자 하는 의를 선을 추구해도
예수님 본인이 임금 되어 주지 않겠다 라고 도망치듯이

자유해 버리는 겁니다 연줄 끊어지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연줄 끊어지는 자유를 즐기고 싶습니까
아니면 의에 대해서 연줄 끊어진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까

자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증거하시면서
이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죄요 그 마지막은 사망이 되는 것이고
이미 결정났는데 친절하게 다시 설명하시면서
이 말씀 성취를 믿는 것이 바로 의가 덮쳐져서 믿게 되는 그 마지막은 영생인
바로 은사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덕분 탓 으로

바울은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이 죄의 권세가 하는 일과
은혜가 왕노릇하는 권세를 말이죠

이 둘 싸움의 고래 등 터져서 결판 결정이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기에
이제 사망이 작살을 꼿아 연줄처럼 말이죠 잡혀가는 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한 자이고

반대로 영생이 작살을 꽃아서 잡아가는 종으로 삼는 자는 이제 죄에 대하여 자유한 자가 되는 삶만 누리는 겁니다

인간의 달음박질 열심 자기 의로움 쌓기 그리고 원함도 아닌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오직 긍휼히 여겨주시는
아니 십자가에서 다 내어주셨거든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다 내어주셨다 말이죠

그런데도 다른 것을 원한다??

아니 성경은 예수님만 구원해요

사람의 구원은 헛됩니다 아니 우상을 왜 구원해야 하느냐 말이죠
사람의 구원이 헛되다 곧 허구인 사람을 구원해 본들 안개이다 말이죠
육체를 왜 구원합니까 허구인데 안개인데 
누가 안개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냐 말이죠

예수님은 자기 피만 구원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로 이 피를 마신 자가 졸지에 생기다 보니
그 마신 피를 구원하다 보니 그 사람이 딸려온 거지
그 사람 자체를 구원함이 아닙니다

아따 매정하네 그게 무슨 사랑이고

아닙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주님은 자기 피만 구원해요
즉 기능이다 사건이다 라는 겁니다
언약만 구원 합니다

의사의 기능만 구원함에 있어서
딱 걸맞는 새로운 죄인이 바로 환자입니다

환자가 의사의 기능이 발현되는 판대기인 거죠

아무도 의사를 원치 않으니까 말이죠

그럼 내가 환자란 말이냐? 죄인이란 말이냐?
나는 건강하다 의사 필요 없다
나는 의인이다 구원자 필요 없다

그래서 주님은 의사는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은 겁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도 고쳐달라고 의사의 기능을 필요로 하는 자가 없었어요
도리어 개같은 이방인 여자
그것도 그 많은 이방인 여자도 아닌
귀신 들린 딸의 어미 한 테만 보내심을 받았음을
역설적으로 매정하게 나는 개같은 이방인에게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라고
이 단절성으로써 증거하시는 겁니다

구원의 단절이 도리어 구원이 될 줄 누가 알았으리요
환자가 된 저주받은 개같은 이방인 됨이
귀신 들린 딸 덕분에 의사 되신 예수님의 피 흘리심
곧 하나님의 의를 만날줄 복종케 만드심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죠

그러니 원인을 갖추겠다 라는 인간의 숙제를 다 비켜가서
두 언약을 한 세트로 이루시는 겁니다

개같은 이방여자가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여자이고
이스라엘은 가정부 밖에 안되는 땅의 계집종이 된 거죠

수태치 못한 여자
여자의 기능이 완벽하게 고장난
이 죽은 자와 같은
무능한 무명한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유한 자
죽은자 같으나 산자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마귀의 세계에서 알아줍니다
이미 자기 밥은 안 알아주는데 마귀에게서 자유케 된 자는 알아주더라 말이죠
무태한 자 같으나 하늘의 자식이 많은

왜? 죽었더라 라는 족보인 아벨의 족보 속에
에녹처럼 죽음으로부터 자유한 자처럼
영생의 족보가 있기에

반대로 낳고 살았더다 족보인 가인의 족보는
어디 죽여보시지 라고 라멕의 까불거리는 그 족보 속에서는
이 하나님의 의인 찢으셨으나 싸매어주시는 이 간극의 3일
곧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이 없어서 저들은

정작 아무리 낳고 살았더라 족보를 이루어도
그 마지막은 사망인 족보였다 라는 거죠

이것이 의에 대하여 자유한 
오죽 자유했으면
야다와 실라여 가인을 위한 벌은 7배이지만
나 라멕을 위한 벌은 77배 이지롱 이라고
백날 저주 내려봐라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지 라고

의에 대해서 자유하다 라고 하지만
정작 그 열매는 사망이고

죽었더라 족보인 셋의 족보는
아벨의 죽음을 계속 이어가는 겁니다
끊어진 것 같으나 산자로써
예수님의 말씀성취로 인해서
죄애 대하여 자유한
사망에 대하여 자유한
아니 어떻게 죽었더라 죽었다라 속에서 어떻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영생의 족보를 이루었는지

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 이룬 말씀성취 곧
십자가의 언약을 구원하심 덕분이구나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만을 외치는 자로 삼으셔서

우리가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라고

다 이루었다 라고 

그 분의 구원 됨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으신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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