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란 무엇인가?

잉여의 증폭기, (Elevator, 엘리베이터)

(눅 17:20,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개역)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눅 17:23, 개역)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눅 17:24, 개역)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5, 개역)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6, 개역)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눅 17:27, 개역)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눅 17:28, 개역)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개역)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눅 17:30, 개역)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 17:31, 개역)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눅 17:32, 개역)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33, 개역)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5, 개역)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오늘 중고등부 공부를 통해서 여자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항상 사건이 진행되는 그 흐름과 계획 속에서 여자의 역할은 늘 그 흐름을 뚝뚝 끊는 역할을 한다. 왜 그럴까?

수 많은 사건을 통해서 항상 여자는 늘 그런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서 한번은 작정을 하고 미리 교육을 단단히 시켜서 그 흐름을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그래도 못 믿겨워 늘 흐름 끊는 그 버릇을 예상하고 그 방안도 미리 다 준비해 두었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전혀 예상 못한 행동으로 그 흐름을 뚝뚝 끊어버리게 되니?

도통 남자로써 여자의 세계를 알 수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오늘 중고등부 설교의 한 예로 든 것을 통해서 힌트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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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인 없는 결과로써만 여자를 보면 답이 간단히 나온다.
마치 원인을 찾아보면 분명 여자인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인해서 넘어갔고 남자에게 그것을 먹게 했다면 분명 하나님은 뱀에게 그리고 하와에게 그리고 제일 나중에 남자에게 다구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자체가 죄악인 것은 오늘 오전 설교인 무화과 나무의 저주를 통해서 기가막히게 지혜롭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앞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왜 그것이 죄악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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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여자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아담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잉여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잉여적인 존재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죄악을 하와의 생명 잉태를 통해서 구원을 보게 된다. 즉 미래를 본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이다처럼

복잡하게 이야기 할 필요없이

여자는 잉여의 증폭기이다.

이것을 오늘 발견했다.

아 이거구나?

결국 남자를 방해하고 남자의 계획에 흐름을 뚝뚝 끊어버리고
남자의 일을 무효화 시키는 그 일에 기똥차게 여자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화를 낼 수 밖에 없고
여자를 무시 할 수 밖에 없고
그 여자를 손지겁을 하는 폭력까지 행할 수 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너무 흔하게 주변에서든 인간 일상사든 문학 소설 미디어든 심지어 성경에서 조차도 비일비재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여러 사건 중에서 특히 아브라함이 아내를 팔아먹는 사건 분명 인신매매단 처럼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내 팔아버린 불순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 복의 근원임을 아내 사라를 통해서 밝혀줌, 죽는 쪽은 아내 쪽이고 또 아들 이삭 쪽인데 정작 죽이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둥 복의 근원이라는 둥 은혜쪽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정말 낯설고 생뚱맞다(믿음 밀어주기법칙?). 또 이것이 말도 안되게 아들 이삭에게서도 또 다시 사건으로 나타난다. 마치 분명 모세는 파라오왕이 두려워 도망쳤다고 구약에 나오는데 신약 히브리서에서는 완전 극단적으로 반대로 기록하고 있다. 또 베드로는 분명 예수님 팔아먹고 세번씩이나 부정했는데, 도리어 예수님은 너가 나를 사랑하냐고 세번씩 묻는다. 즉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깊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여자가 남자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는 잉여의 증폭기로써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돕는 베필인 셈이다.

그렇다고 그 잉여가 무조건 천국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여자 속에서 두 계열이 있다.
한 쪽은 자유하는 여자와
또 다른 한 쪽은 계집종인 여자이다.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이 두 여자의 계통이 종말 때에 즉 노아 때와 같은 종말때에 비로소 여자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아들의 계열의 싸움에 잉여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것이다.
무조건 한 쪽은 자유하는 여자로써 자유하는 아들로 성령의 소욕을 말하고 있고

또 한쪽은 무조건 계집종으로써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을 통해서 왜 기업을 받지 못하는 가를 보여주는 육의 소욕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엇이 기억나는가? 맞다 바로 그거다. 창 3장 15절의 약속의 구체화 이다.

그래서 여기 주님의 전쟁에 동원된 여자는 증폭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흐름을 끊고 맥을 끊어버려서 잇기 잇기를 실패하는 그 역할이
정작 도움닫기의 발판으로써 디딤돌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원인 없는 결과로써 에서는 무조건 미움, 지독한 미움 뿐이다.
또 원인 없는 결과로써 야곱은 무조건 사랑, 지독한 사랑 뿐이다.

거기에 동원되는 잉여의 증폭기가 바로 여자요
이 여자는 천국에서 파견된 미래 소녀 잉여 프리걸 과
지옥에서 파견된 미래 소녀 잉여 본드걸(BONDWOMAN)이
미래에서 각각의 천국과 지옥에서 땡기듯이
잉여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증폭기? 도움닫기 발판?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갈 4:30, KJV) 『Nevertheless what saith the scripture? Cast out the bondwoman and her son: for the son of the bondwoman shall not be heir with the son of the freewoman.』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실지로 바리새인과 예수님과의 공방에서
바리새인은 육의 소욕의 대표자요
예수님은 성령의 소욕의 대표자로써 의 충돌이다.

바리새인은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자를 잉여로써 사용 했고 (지옥의 잉여를 보여줌)
예수님도 또한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자를 잉여로써 사용 했다 (천국의 잉여)

서로가 서로의 흐름과 맥을 끊어버리는 서로의 소욕을 못 이루게 하기 위해서 동원한 잉여였다. 미끼다.

중간에 낑겨 버린 이 여인이야 말로 증폭기 이다.

누구의 잉여가 옳은가를 보여주는 원인 없는 결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증폭기 말이다.

곧 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처럼
예수님은 여자, 어린아이, 소경, 문둥병자, 세리, 창녀, 강도, 귀머거리, 심지어 귀신들린 18년 된 여자 등등을 예수님 자신의 증폭기로써 잉여로써 너끈히 넉넉하게 천국의 식구인냥 증거하셨다. 이유도 없이 원인도 없이 무조건 너는 내것이라 라고 꼭 찍어 찜해 버렸다. 남은자로써 말이다. 렘넌트?(remnant) - 다윗언약에서 왕 하나 옳으면 그 나머지 백성은 무조건 합격, 무시험 합격. 예수님 자신이 무조건 더 나은 제사다, 더 나은 믿음이다 라는 것이다.
(교회란 바로 예수님의 신부라는 표현으로써 잉여적인 존재, 종말에 나타나는 완료된 사랑의 열매다. 곧 성도는 잉여의 증폭기다. 머리로 결정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머리가 누가인가를 캐보야 한다. 인간이 왕노릇 하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이 머리인지를?)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종교꾼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저들은 아무리 봐도 자신들의 잉여품이 될 수 없다. 흐름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을 사용할 때는 바로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좋은 기회를 가졌을 때 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처럼 가장 좋은 잉여가 없기 때문이요(그러나 도리어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도움만 줄 뿐이다. 하여튼 마귀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 그 차이를 확연하게 극대화로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지옥이 없으면 천국의 차이를 모르듯이, 마귀와 바리새인이 없으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이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악마 취급해 버리니까? 그들의 모든 속성들이 다 들통난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모든 것도 다 들어내신다. 누가 더 낫냐 라고 뻔뻔스럽게 보란듯이 다 쪼개고 깨뜨리고 소동이 일어난다.)

(마 9:13, 개정)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런 기회 말고는

약대를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화 아무리 해도 될 가능성 없는 인간은 미리 왕따 시키고
성화 될 가능성이 높은 자들은 자기 오른팔 왼팔로 두는 것이다.
왜냐? 이유도 없고 원인도 없다. 무조건이다. 지옥이 땡기니까 별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잉여 곧 자랑꺼리는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될 수 없다.
건강한자만이 잉여로 쳐 준다(죄인이 잉여가 될 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값어치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무가치한 자는 교회의 수준을 깍아먹는 평균점 잡아먹기에 성화에 방해가 된다.).
성경 지식이 많은 자, 요것도 잉여가치가 높다(먹음직,보암직,지혜롭게할만큼 탐스러운 학력 지혜 팔방미인이 돈이 된다).
특히 성전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열심자 이거는 그야말로 딱이다(율법). 패밀리 조폭을 형성하는데 기가막힌 잉여들이다(다윗이 이 짖을 하다가 깨졌다. 그래서 다윗을 기준으로 선지자의 활동이 펼쳐지는데 다윗이 바라본 미래가 기준이듯이(예수님의 죽음), 다윗이 본 미래가 아닌 것을 보고 먹고 쫒고 따르는자는 무조건 시스템 갖추기 열심일수 밖에 없다).

그래야 잉여로써의 보증 수표인 이마표로써 시스템 갖추기 완벽한 조직구성이 가인에게 유일한 안식처요 방어막이기 때문에 성짖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이 에녹성(가인성)이요, 바벨탑이요, 국가요, 인간나라 이다.

참 감사하게도 아무리 섞일래야 섞일 수가 없는 물과 기름으로써 분리 될 수 밖에 없다.
주님은 장난 꾸러기 이시다.
우리가 물과 기름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착각 할 때마다.
흔들어 버리신다. 과연 그러한지 성경을 상고해 보자는 것이다.
폭탄주 만드는 장면을 티비에서 보면 미친놈들이 그냥 술을 안 쳐먹고
양주와 맥주를 지랄들을 하면서 섞는다?
그래서 술 쳐 먹는 그 순간 만큼은 우리는 하나다 라고 외치면서 곤드래 만드래 개가 되는 일치성을 추구한다.
잉여의 순간만 지나면 술에 깨고 보니 다들 내가 미쳤군이라고 정신 차려서 다음의 잉여시간을 기약하면서 또 이유없이 열심에 빠진다.
그처럼 폭탄주 만드는 그 과정처럼 기름잔과 물잔을 섞어서 아무리 빙빙빙 돌려서 흔들어도

기가막히게 섞일 수가 없는 물과 기름의 철저한 분리성이 바로 주님이 이 양쪽의 잉여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흔들면 흔들수록 더더욱 그 잉여성을 커진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흔들면 흔들수록 그 분리성은 극대화로 나누어진다.

최종적인 잉여란 결국 죽음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성전의 허물기로 맞짱 떳듯이
예수님은 당당하게 니 목숨과 내 목숨을 맞짱 뜨자고 나오신다.
너의 잉여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빨리 까자 라는 것이다.
땅꽁껍질 깨듯이 깨뜨리자는 것이다.
이 일에 여자는 그 잉여성을 증폭시키고 재촉하는 도약을 보여준다.
뱀주사위 놀이처럼 갑자기 7번에서 점프계단으로 엘레베이트 타듯이 98번으로 단번에
1회에 게임오바 시켜 버린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 단번의 제사로 잉여를 완료 하셨다. 더 이상의 미완료는 없다. 더 나은 제사는 더 이상 없다.
그리고 언약은 천국과 지옥을 기준으로 잉여로써 모든 인간을 땡겨버린다.
(바로 최종적인 잉여가 죽음이기에 에스더서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의미도 죽음으로써 증거되는 잉여인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구원을 철저하게 막는 십자가로써 말이다. 자 그렇다면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를 바리새인 곧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부림절을 어떤 의미로 그것도 철저하게 지키는 율법으로써 해석했는지는 좀 물어봐야 될 것 같아 남겨두고 패쓰)

천국은 남은자로써 천국의 잉여품인 창녀 세리 강도 불의한 청지기 고아 과부 나그네 등등의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첫사랑의 자리에 속한 자들로써 잉여품을 땡기고

지옥은 정작 처음자리인 이스라엘 자리를 멀리하고 육과 혈통과 사람의 뜻으로 이스라엘 자리를 채운자들로써 이유도 없이 지옥이 땡기는대로 가는 것이다.

비로소 종말 때에 여자의 의미가 드러난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라고 알려주는 말씀만이
여자의 존재가 왜 잉여적인가를 말이다.

정작 롯과 롯의 처는 두 갈래로 영원히 갈려졌다.
청함을 받았으나 택함을 받지 못한 롯의 처
아무리 아브라함 곧 복의 근원 조차도 땡겨도 땡길수 없는 음부의 권세가 땡기는 자는
나 돌아갈래 라고 돌아서게 되어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러나 롯은 정작 머슴아로써 자신이 아브라함 곧 복의 근원이 땡기는 대로 땡겨지는
잉여품 남은자 라는 것을 사적인 구원이 아니라. 왜 두 갈래로 나누시는 가를 보여주는 한 쪽의 모습을 보여주는 잉여품이였던 것이다.

다시 위에 언급한 말을 인용해 본다.
[일단 원인 없는 결과로써만 여자를 보면 답이 간단히 나온다.]
남자는 평생 여자를 모르도록 되어 있는 비밀이라는 사실이다.
비밀이라는 잉여가 풀려버리면 더 이상의 잉여가 아니고 여자가 아니다.
다른 형태의 머슴아 일 뿐이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마치 땅콩 깨듯이 깨는 남자를 쪼개는 존재들이다.
너 속에 들어있는 것이 뭐냐 라고 깨보면
껍질을 쪼갠 그 속에 약속이 들어 있는지 곧 피 인지,
아니면 흙 인지 쪼개보면 안다. 다말이 가감하게 유다를 쪼개버렸다. 약속이 들어있는줄 우찌 알고 쪼개었는지 참 신기하다?

예수님의 족보[마지막 아담] 속에 나타난 5명의 여자 에게서 또한 피의 증폭기 인지(아벨 족보=죽었더라 족보)?
아니면 흙을 퍼트리는(잉여) 아담(가인의 족보)인지를 ... )

(창 2: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6: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종말에서만 나타나는 잉여란 주님의 신부인 성도 곧 교회다.

(창 2:23-24)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마 19:5-6)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한 몸인지 아닌지 알려면 쪼개보면 안다. 의인인지 아닌지 죽여보면 안다. 다시 사는 자, 믿음으로 살아나는자가 의인이다. 그래서 의인 예수님이 믿음으로 다시 사심으로써 부활의 첫열매이듯이 나머지는 쭈루룩 증폭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잉여 유발 사건의 근원이 십자가다. 예수님의 죽음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니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엡 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은 그래서 흔들어 대시는 회오리 바람, 태풍, 토네이도, 슈퍼 허리케인이다. 모든 것을 삼켜버려서 판대기 자체를 날려버리는 블랙홀이다.(성령의 은사도 흔들어 깨고 쪼개고 도끼로 찍어버리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처음자리, 첫사랑으로 되돌려 놓기위해서 말이다.)
누가 한 몸인지 아닌지?, 누가 성도 인지 아닌지, 누가 교회인지 아닌지를 예수님 자기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치셔서 그 치신 깨어쪼개진 틈 사이로 삐져나온 그 피와 살이 발린자가 잉여물이다.

(창 2:23, 개정)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사 65:17, 개정)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고후 5:17, 개정)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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