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잃어버린 자기 양을 찾는 예수님 (99마리는 버리심, 단절)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19:10,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마 18:12, 개역)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 18:13,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눅 15:4, 개역)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눅 15: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3-12 22:20:36,
홈 바뀌고 오늘 처음 들어왔는데 이제 각자의 홈페이지가 없어진건가요?

--------------------------------------------------------------
2009-03-12 22:22:23,
창31:34 에서 드라빔이 라헬아래에 깔렸다는것은 우상이 이렇게 무가치 하고 자기 생각에서 나온것이라고 하던데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답변 :

(창 31:34, 개역)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얻지 못하매』

그런 엉터리 해석을 하다니 그 사람 히브리 원어 헬라어 원어 가르치는자 맞나요? 기본도 모르네요 한국말이나 똑 바로 공부 하라고 하세요.

라반이 못 찾도록 그정도로 단단히 숨겼다는 뜻입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말을?
--------------------------------------------------------------
2009-03-12 22:25:09,
님 홈이 있군요 ㅋ
--------------------------------------------------------------
2009-03-12 22:32:23,
창 4:4에서 열납하다란 단어가 히브리어로 응시하다란 뜻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아발의 삶 모든 과정을 다 지켜 보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셨기에 받으신거라 합니다

답변 :
(창 4:4, 개역)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다시 정중하게 부탁한다고 하세요 히브리어 가르칠 생각 말고 한국 말이나 똑바로 하라고 말이죠. 열납은 받다 라는 뜻입니다. 응한다 나 받다 나 ? 믄 차이가 납니까? 조금이라도 자기를 내세울려고 하니까 그런 헛소리를 자꾸 하는 겁니다.

아벨의 삶 모든 과정을 다 지켜 봤다면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죠? 마음의 중심을 봤다면 더더욱 그래야지요?

성화론자들의 삶에 대한 해석의 집착은 일종의 결백증과 같습니다. 정작 죽음은 싫고 살기는 사는데 선하게 사는 방향으로 자신의 옳았음을 자꾸 정당화 할려는 모습 말이죠. 바로 그게 악마의 하수 라는 증거입니다.

--------------------------------------------------------------
2009-03-12 22:38:37,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면 이미 주님이 그 안에서 가르치고 교훈하시기에 주님의 영에 따라 언어와 행위와 삶이 자연스럽게 나올수 밖에 없는것이고 그것이 주님의 영광이지 않는가 맞는말이지 않나요

답변: 틀렸습니다.

의인은 예수님 뿐이고 그 의인을 쳐다보는 죄인의 자리에 모든 인간이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창조되는 새피조물은 죄인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만이 유일하게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자칭 의인들은 십자가 마저도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정당화 하는데에만 집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라멕의 찬양을 부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놈들은 더욱더 조져야 합니다.

다행히도 환란 핍박 곤고 금융파산 등등을 주님이 일으켜서 자연스럽게 불순물을 제거 합니다. 용광로가 괜히 있는게 아니거든요.

--------------------------------------------------------------
2009-03-12 23:44:23,
요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하와와 아담이 사탄에게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더라도 하나님이 물어 봤을때 숨기지 말고 인정했다면 생명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구요 이미 사단의 영으로 먹게 된 선악과이기에 사단에게 이미 먹혔기에 죄인고백까지 못한것일까요 그래도 주님이 계획하셨더라면 할수 있었겠죠 그냥 그 사건 부분만 보고 이런 저런 생각해 봅니다 ㅋ

답변 :
선악과를 따먹는 유혹에 일방적인 무능력이였다면같은 원리로 생명나무되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데도 무능력의 자리에서 주어집니다.결국 인간 구원을 위한 성경은 없구요. 생명나무를 드러내는 인간과 선악나무를 드러내는 인간 뿐입니다.이미 에서를 미워하였고 야곱은 사랑했습니다.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
2009-03-12 23:45:51,
생명과나 선악과나 주님이 사랑으로 주신것이기에 어차피 하나라고 봐야 할까요 선악과도 산자와 죽은자를 분리하기 위해 필요했던것일까요

답변 :
선악이란 하나님 혼자만 알면 되지 구지 인간이 알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통해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알고 따먹지 말라고 한 분이 창조주임을 알게 되는 그 경계의 구분선과 같습니다. 그 넘어서면 안 될 선을 인간은 넘어선 겁니다.
사랑이란 넌 피조물이고 난 창조주야 라고 그 경계선을 명확히 알려주는 겁니다.인간은 죄인이고 주님은 의사라는 것을 선을 분명히 긋듯이 말입니다.
인간은 건방지게 선악을 알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듯이 자꾸 의사 짖을 하고파 안달이 나 있는 겁니다.선도 제대로 못하면서 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법을 다룰려고 하니? 자기 주제를 파악 못하는 거죠. 그래서 선악과를 보고서 아 나는 피조물 원래자리에 있어야 하는 구나 라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인데 피조물 처음자리를 이탈하여 경계선을 넘은 겁니다.
 
--------------------------------------------------------------
2009-03-13 00:05:10,
참 요샌 이상한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나 듣는자들에게서  왜 그렇게 선명하게 세상의 냄새가 더욱더 물씬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은 나름 좋고( 물론 성화구원이지만요)그것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들도 자신을 성장시키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부분적으로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긴 합니다 그런데 진짜 바뀌어야 할 부분에선 그 실체가 드러날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것조차도 주님이 하시는것이지만요 겉으로는 나눠 주는듯 하지만 속에서 자기챙김을 볼때 왜 그렇게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지,,,

답변 :
성화교리가 먹혀드는 이유는 뭔가 바뀌며는 자꾸 돈이 되지 않을까 라는 쪽으로 인간들은 최종잉여를 돈에 두기 때문입니다.
마치 결혼을 해도 그 사람을 사랑이라는 그 단순함 보다는 자꾸 그 사람을 소유해서 어떤 유익을 챙길수 있느냐 라는 계산과 같습니다.그래서 인간의 사랑이란 소유욕일 뿐입니다.대중에게 성화교리는 그 가르쳐주는 성화를 하면 돈과 같은 유익이 창출되기를 바라는 미신적인 기복신앙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귀 제사죠.

--------------------------------------------------------------
2009-03-13 00:12:41,
그래야지만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는것이지만요 저도 뭐 그들과 다를바 없습니다 ㅋ 의인도 아니면서 전 또 왜 그걸 정죄하고 있는건지...너 나 잘해 하면 될텐데 역시 사람은 별수 없나 봅니다 ㅋ 더 악하면서 세상 냄새가 풀풀나는 그들을 보며 나를 비춰 봅니다 그러는 넌 얼마나 향기로운 냄새가 나냐 또 자기애를 발휘하는구나 하면서 그들 또한 지어진데로 살아가는것 뿐이고 나 또한 역시 마찬가지이고 주님은 주님의 방법데로 잘하시고 있는데 네가 왜 나서냐 하면서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참 종교란것 신앙이란것 어렵네요

답변 :
그래서 사람이 말씀을 앞장세워서 하는 일은 정작 사람의 일로써 하나님의 일을 방해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딱 하나입니다. 십자가로서 인간을 못 밖아 죽이는 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교회일로써 자기가 살아야 한다 라는 정당성만을 핑계로써 자꾸 늘어놓는 겁니다. 지금 죽어도 마땅한 죄인임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집착 하는 겁니다. 목사에게서 이것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있나요? 병주고 약주고 괜히 무당으로 세우신게 아닙니다. 무당 값을 톡톡히 하라고 배치시킨 겁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불가능 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신을 접촉시키는 종교라는 매개체는 일종의 접신 통화료를 받아 챙기는 이익집단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돈과 결부가 됩니다. 편리성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만들어내고서는 그 커미션을 챙기기에 반드시 행함의 문제로 빠집니다. 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러나 믿음이란 불가능을 믿는 겁니다. 보이는 것은 다 가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주님의 가능성은 간단합니다. 인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삭제하는 불가능성만 남기시는 겁니다. 처음 자리 입니다.

--------------------------------------------------------------
2009-03-13 00:23:1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이 되는 교육을 받는것이다 하는데 왜 뿜어져 나오는것들이 내겐 이렇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것일까요 단지파가 뒤쳐져 가면서 불평불만하고 판단만 해서 열두지파에서 떨어져 나갔다는데 제가 그러고 있는건 아닌지....

암튼 요샌 부쩍 혼자가는길이 외롭고 쓸쓸하네요 지금은 임마누엘이 아니어서 그런것일까요 에구 뭐  제가 주님의 자녀이면 이 과정을 거쳐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겠죠ㅋ 오늘 둘로스님에게 이런 저런 넋두리를 해 봅니다 ㅋ

답변 :
무속인은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해서 밀고 땡기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타짜 고수가 되는 겁니다. 목사라는 무당은 성경의 어떤 구절이든 성도를 밀고 땅기는데 이용합니다.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면 교회 안나오고 잘 삐쳐서 돈을 내지 않을테고 너무 태만히 내버려 두면 버릇 나빠지기 때문에 적절하게 기술을 잘 써야 합니다.

타짜가 초보자를 한번에 이겨버리고 그냥 버리는게 아닙니다. 그 초보자에게 말할 수 없는 숨겨진 돈이 나올때까지 빙빙 뺑뺑이 돌려먹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타짜 죠.임마누엘이란 미래의 확정된 완료를 봤기 때문에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현실을 진짜로 취급하지 않는 시선입니다. 그래서 모조리 눈에 보이는 것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겁니다.

그리고 과정이란 아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론에 다다르는 구나 라는 의식이겠지만
정작 복음은 원인 없는 결과로써 답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에
일부러 과정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바로 단절입니다. 단절 시켜 보면 그 사람 속에 답이 뭔지 보입니다.
약속이 그 사람 속에 있으면 이미 있는 답을 확인하는 차원에서의 문제 던짐일 뿐이고,
답이 없는 자들에게는 문제를 자꾸 답을 도출해낼려는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사람들에게(제자를 포함해서 유대인 심지어 바리새인에게 던진)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비유란 일종의 수수께끼로써 숨박꼭질 할 사람 여여 붙어라 라고 자석을 들이대는 겁니다.
N극을 들이대면 S극만 붙도록 되어 있습니다.예수님은 죄인만 부르러 왔지 의인 건강한자에겐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부자청년처럼 자신을 자꾸 N극을 갖추어서 예수님에게 다가갈려고 합니다. 그런 자는 튕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베드로는 급히 수정을 합니다. N극을 들이대놓고서는 S극이라고 글자를 수정해 버렸으니 자기가 옳다고 본 겁니다.

예수님은 N극으로 오셨기에 예수님만 찾도록 되어 있는 S극이지(잃어버린 자기 양)
자기 스스로 S극을 만들어 낼 재간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차라리 성화론자들처럼 저렇게 사기를 치는게 더 솔직하겠지요.
차라리 죽어도 자기들은 N 극이다 라고 말이죠. 건강한자 거룩된자 의인이 되어서 천국 뚫자 라고 말이죠.

예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차라리 잃어버린 양 에게 가라 라고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