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언약과 새언약의 단절성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3-14 21:59:16,

히브리서에서 큰구원이란것은 하나님의 성령 말씀이 우리안에 들어 왔기에 큰 구원이 되는 것이다

답변 :

(히 1:10, 개역)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히 1:11, 개역)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히 1:12, 개역)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히 1:13, 개역)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히 1:14, 개역)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 2:1, 개역)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히 2:2, 개역)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히 2:3, 개역)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 2:4, 개역)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 2:5, 개역)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히 2:6, 개역)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히 2:7, 개역)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히 2:8, 개역)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히 2:9, 개역)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10, 개역)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큰 구원이란 마치 상대적인 겁니다. 작은 구원이 아니라 가짜 구원 즉 썩은 동아줄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과 세상사람들은 기적을 요구합니다. 즉 썩은 동아줄을 원합니다. 구원이라는 단어 빠진게 아니라 구원이라는 단어를 넣은 상태에서 썩은 동아줄을 원하는 겁니다. 그 상대적인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바로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구원 또는 기적이 아닌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를 주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줘도 그들은 싫어합니다. 원치않는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이란 사랑 때문에 오는 겁니다. 편애가 아니면 지독한 미움을 받을 리가 없습니다(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막 15:34). 그래서 사랑이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인지 죽음보다 약한 사랑인지. 죽음을 기준으로 해서 사랑을 가르겠다는 뜻입니다.
큰 구원인지 가짜 구원인지 죽음 곧 고난 즉 십자가로써 가르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천사들은 소외된 입장이고 천사들도 부러워 하는 십자가에서 잉태된 자가 바로 교회 곧 성도입니다. 성도는 십자가의 피를 외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벨의 죽음과 아벨의 피를 앞장세우는 분이 다름아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는 아벨의 죽음이 아닌 아벨의 삶을 앞장세우는 겁니다. 큰 구원을 용어만 따와서 썩은 동아줄 즉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처럼 사용하는 겁니다. 그것이 우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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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2:12:21,

열조 언약의 특징은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절대적인 은혜이다  구약 창세기에서 이 언약의 언급은 끝났다 출애굽기에서 율법언약이 말라기 까지 나온다 조건이 있다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언약의 맥이다 율법은 인간의 의무 강조 가나안땅에서 어떻게 살것이냐 선민들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삶을 강조한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 추상적인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리고 만끽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답변:

왠일이지요? 열조 언약을 조건이 없다고 말하니?
성화론자들의 신학에서 열조 언약 신학은 조건이 없다 라고 말하지 않고 쌍방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얼마나 급했으면 입에서 헛말이 나왔겠습니까? 그 정도로 사람을 속여서 빨리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픈 겁니다. 헛말이 아니라 제대로 말해 놓고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줄 본인도 모르는 겁니다.

어라! 또 일방적으로 절대적 은혜 다 라고 표현했네요? 왠일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무슨 말인줄 모르고 쓰고 있다는 겁니다.

율법은 인간의 의무 강조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이냐 선민들의 땅에서 살아야 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이냐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까요? 아벨처럼 사랑하다 죽어라 라는 겁니다. 누구를 요? 예수님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미래에 오실 예수님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부른 하나님은 누굽니까? 인간들이 별명식으로 붙인 이름이 바로 여호와입니다. 그 여호와 라는 별명을 계속 하나님이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채로 계속 사용하신 겁니다. 다윗언약때에 비로소 이름을 알려줍니다. 그 이름의 기능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너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이 다르다 라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직접 준 이름이 새언약에 비로소 주어집니다. 그것도 인간들이 성경책에서 찾아낸 이름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사를 통해서만 주어진 이름입니다. 구약에는 없는 이름입니다. 구약에 없는 이름이면 구약에서 인간들이 찾아낸 개념들은 다 틀린 겁니다. 바로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구원자 이기 때문에 버림받는 이름이다는 겁니다. 죽어야만 하는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죽고자 오신 겁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예수님의 이름을 보고서도 또 실질적인 실체적인 십자가의 사건을 지금 현재에 성령을 통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그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습니다. 비비디바비디부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6:2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20:28, 개역)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12:25, 개역)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오늘날 목사들은 가장 잘 먹히는 주문을 찾아낸 겁니다. 예수 라는 주문을 마치 비비디바비디 부 라는 주문처럼 외우면 효과 본다고 우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게 성화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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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2:15:01,
 
율법언약의 특징은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세운것이다 창세기에 언약은 일방적인 은혜이기에 죽지 않지만 율법의 은혜은 쌍방이 세운것이기에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을때에서 반드시 죽게 되어 있고 심판받게 되어 있다

답변 :
율법 언약을 모세 언약이라고 하는데 모세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세울수 없습니다. 언약 자체가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에 의한 겁니다. 모든 인간은 아버지와 아들만의 약속에 소외된 입장입니다. 계획에 의한 대상일 뿐이지 창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을 율법에 가두기 위해서 옛언약을 세운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철저하게 소외 되어야 합니다. 유일하게 모세가 참여 했다고 착각하신 모양인데 모세 마저도 소외 시키고 탈락 시키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율법에서 소외 되어야만 율법에서 정죄 받아야 구원의 대상이 되는 십자가의 반대편에 서는 자 곧 죄인이 됩니다. 만약 율법에 참여 되어 버리면 그 당사자는 율법에서 정죄 받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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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2:19:55,

아들의 말씀은 내게로 와서 쉬어라 죄가 사하여졌다 자유자의 멍에 하나님의 자녀다 은혜외 진리로 충만케 하실것이다 내가 너희안에 주의 보좌로 세우며 공평과 의로 공평의 홀로 세울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차원이 다르다 새언약 구원의 언약 메시아의 언약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누림이 있어야 한다 전체시대는 자기 삶을 어떻게 누리며 잘살수 있는가이다

답변 :
만약 그렇다면 옛언약의 지킴과 새언약의 누림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 목사는 계집종 하갈과 자유하는 여자의 차이를 모릅니다.

혼용을 하니까 이랫다 저랬다 하는 종교꾼들의 전형적인 모습인 처세술을 부리는 겁니다. 정치죠 자기의 유리한 쪽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귀에 붙이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가 되는 겁니다. (옛언약과 새언약의 단절성을 모릅니다. 옛것을 새것에 붙일려는 시도를 하는 겁니다. 그런 짓을 하는 것 조차 모르기 때문에 목사라는 자리에 집착하면서 목사다움을 주장하고 주장한 만큼 열심을 내고 열심을 낸 만큼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은사란 무능의 자리로써 내가 목사가 아니라 난 목사 틀렸고 예수님만이 목사임을 주장하는 자가 바로 목사입니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되는 겁니다. 비언약을 앞장세워서 언약을 증거하여 그 차이를 드러내는 겁니다.비언약도 모르면서 언약을 운운하고 모세도 모르면서 모세의 하나님을 운운하니 웃끼네요.

(마 9:17, 개역)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어찌 됐든 말든 사람을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니 광명한 천사가 되는 겁니다.

광명한 천사란 이유도 목적도 없이 속이는 유혹자입니다. 사기꾼이 자기 이마에 난 사기꾼이라고 쓰면 누구를 속일수 있겠습니까? 광명한 천사란 그 자에게 안 당한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만은 안 속았음을 감사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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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2:21:06,

영에 속한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복음에 전념하면서 살아야 한다 생명의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 그것이 우리가 가진 큰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라

답변 :
영에 속했다고 인정해 버리면 육에 속한 율법 아래에 가두기 위한 주님의 일하심의 취지를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다시 율법으로 가둡니다. 그러나 율법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요. 그래서 십자가 아래에 가둡니다. 십자가가 그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걸림돌이란 요나의 표적으로써 걸려 넘어뜨리는 겁니다.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던 걸림돌입니다. 왜냐? 구원을 율법을 모조리 다 디딤돌로 이용해 먹어왔다가 메시아든 뭐든 하나님이든 성전이든 모조리 디딤돌인줄 알았는데 모조리 다 십자가 언약의 의미에서는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죽인 겁니다. 이방인은 이 과정을 모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생각했던 걸림돌이 되도록 십자가가 그렇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죄인의 자리 원수의 자리에서 그 원수를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의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큰 구원을 놓치지 말도록 하자 라고 외치는 이미 거짓 선지자를 깔아 놓음으로써 왜 저들에게 속아 넘어감수 밖에 없는 자임을 자기의 탐욕과 저 큰구원챙기기와 결부가 되어서 예수님을 죽인 바로 기적을 요구하는 악한세대였음을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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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2:25:24,

이방신은 사람을 죽어라고 일하게만 만든다 그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린다 신과 인간이 분명히 다르다 주님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세계를 함께 누리자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나타난 교육은 하나님의 교육을 시키는것이다  아들은 전체이기에 전체적인것을 받으려면 영적이어야 한다

답변 :

방금 언급한 이방신 곧 우상과의 차이성을 드러낸 그 하나님을 증거하는 그 자가 바로 가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좋으신 하나님인데 그게 바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의 하나님 손에서 죽는 예수님입니다. 교육시킨다는 정당성으로 그 자리를 탐내는 겁니다. 예수님은 가르칠려고 오신게 아닙니다. 섬겨 죽을려고 온 겁니다. 죽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셨다면 사기치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섬김이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독점적인 단독적인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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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2:28:06,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이 마지막 때이다 어린양 그리스도만 인을 뗀다

선지자와 아들 다니엘은 선지자이기에 인봉하는것이다 율법의 특징은 입과 귀에 말씀이 있다 복음은 마음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낳으신 사람이다 그것이 다생자이다

답변 :

개별적인 신앙이란 없습니다.
신앙이란 흐름입니다. 주님의 전체 흐름 속에 들어가기 싫어서 따로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고 자기만의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들의 종교성입니다. 그래서 경쟁적이고 실적적이고 조건적입니다. 뭔가를 남들에게 보여할 믿음을 양산해 내어야 한다고 본 겁니다.
목사 본인이 그런 신앙을 따로 국밥처럼 자기 숙제로 챙기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정당화 하는 식으로 세뇌 시키는 겁니다.

성령의 흐름은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밖는 일 외에는 다른 흐름은 없습니다.

십자가란 진짜 산 자는 인간들의 손에 죽은 예수님이고
진짜 죽은 자는 자기들의 손으로 예수님을 죽여서 자신들이 산 자라고 주장하는 삶을 외치는 자입니다.

그 살았음을 계속 주장하고파서 걸림돌 십자가를 치워버리고픈 자들이 죄의 소원이 덮친자입니다.

그러나 참 소망은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에서 소외 되었지만 약속한 성령으로 인해서 주님이 당하신 쓴 잔 고난의 잔을 마시기를 원하는 겁니다. 십자가로 죽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래야 아벨의 피가 양산이 되고 그 죽은자와 방불한 자를 살리시는 긍휼을 베푸시는 자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살려주심 앞에 무능해야 할 자들이
정작 자기가 자기를 살려내는 구원교리를 다 빨아버리는 짖만 골라서 하는 것이 유대인 바리새인 종교꾼입니다. 다 속여도 십자가는 안 속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왜 미움 받아 마땅한 자임을 아는 자 만이
예수님이 왜 나에게 미움 받았지만 그 분만이 구원 그 분만이 편애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만 구원 하십니다. 인간 구원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 버림 받았고 미움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특히 종교꾼들은 예수님도 미워해서 죽여 놓고 예수님에게 구원받기를 원하는 겁니다. 옛언약과 새언약의 단절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곱 과 야곱의 하나님의 단절성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의미를 모르는 겁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십자가는 원수를 만들어 냅니다. 십자가로 원수 된 자를 화목제물 때문에 피 때문에 화평을 이루시는 겁니다. 막힌 담을 허시는 겁니다.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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