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도 막을 수 없는 불저항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3-15 23:13:09,

하나님은 왜 자신의 아들에게 열등한 육을 입혔나 물질세계를 다스리도록 하기 위하여 물질에 해당하는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와서 세상에 흐름 문질세계를 경험해보라는것 물질세계를 경험해봐야지만 너희가 물질세계를 잘 다스릴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몸을 입혀 줬다

답변 :
결국 목적은 하나님 흉내를 내어서 남을 다스리겠다는 탐욕입니다. 땅에 있는 자를 선생이라고 하지 마세요.

예수님 조차도 어찌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이다 라고 유화정치로 다가오는 부자청년의 친화력을 철저하게 배격해 버립니다. 니고데모에게도 니가 선생이라고? 우끼고 있네 라고 가짜선생임을 확 까발려 버립니다. 그 목사 목사 아닙니다. 예수님 외에는 참 목사 없습니다.  참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 목자는 양을 삼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삼켜버림이 저 질문 내용속에 고스란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저 말이 오히려 더 신뢰가 가고 더 섬기는 모습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 같은 배후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런 사변이 철학에서 이미 다 다루어진 바입니다. 또 그것이 만약에 돈이 되고 대중화 된다면 반드시 종교가 가만히 있지 않고 끌어당기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 ? 웃끼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요. 물질 개념은 모든 종교 모든 철학에서 다 다룹니다. 그러나 육이란 오로지 예수님만이 밝혀내지 예수님이 밝혀내지 않은 육이란 육 저거들끼리 육이라고 해 본들 육이 아닙니다.

오늘 오전 설교에도 나옵니다. (인간이 규정해 버리는 믿음이란 다 가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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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이란 유일한 영만이 그것도 육으로 오신 예수님만을 영이고 그 육으로 오신 영만이 육이라고 규정하는 육만이 육입니다. 아무나 육이 되는게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 종류인 사단을 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단 또한 육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등한 육을 입으신 이유는 육으로 오심이 영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육은 가짜로 판명이 됩니다. 즉 인간은 유일하게 예수님 뿐이고 나머지 모든 인간은 가짜 피조물로 판명이 됩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십자가입니다.(사람은 없습니다. 인간 저거들끼리 사람이라고 해도 정작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으로 쳐주지도 않지요. 죄인이 무슨 사람입니까? 죄인은 개 돼지 보다 못할 뿐인데. 그래서 흙이라고 합니다. 흙에게 번호 기호 문자를 붙인거죠 뭐)

결국 이스라엘의 기도(한나와 마리아의 기도)는 바로 우월한 육이라고 착각해서 열등한 육을 짖 밟을 권리가 있다고 착각한 것에 대한 둘 다 똑같은 육 주제에 영 노릇 하는 다름아닌 빛의 아들들 유대인에 대한 이스라엘 내부 전쟁을 이스라엘 밖의 외부 전쟁 우주 전쟁까지 확장 시키는 겁니다.

마치 탕자 비유에서도 언급했듯이 창세전에 천사가 쿠테타를 일으켰듯이 그 상황을 그대로 옮기는 상황이 에덴동산이요 그 속에서도 비밀은 바로 인간을 자기 신부로 삼는 것에 대한 계획에 천사들의 반란으로 작용이 되었고 그 죄성이 그대로 가인과 아벨의 사건으로 나타나고 그 살인사건을 전 인류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즉 유일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은 예수님이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아들이 된다는 것에 모든 육은 이 진짜로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시기하도록 지독하게 미워하도록 되어 있는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성령의 일은 바로 그렇게 너희가 미워하고 시기한자가 인간 같지도 않은 너희 개같은 더러운 자를 불~쌍~~~~~~~~~히 여겨 지옥의 불 속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 뛰어들어야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선한 목자로써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만이 참 인간이요 참 영이심으로 모든 인간은 피조물 조차에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어긋나 버린 가짜요 너희 아비는 마귀요 마귀새끼임이 십자가에서 드러난 겁니다.

이 들추어지고 들통나고 지적당한 것에 감사한다는 자체가 육으로 오신 영을 제대로 본 겁니다. 예수님이 육으로 와서 활동하신 것을 영이라고 합니다. 즉 육의 눈에는 포착 불가능함이 증명이 되거든요. 그러나 하늘에 있는 추상적인 신 개념은 어차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언제든지 구라 칠수 있고 그 구라를 구라라고 증명할 길이 없지만

직접 이 세상에 뛰어든 예수님은 유일하게 구라라고 외치다가 개죽음 당하신 겁니다.

육이 영을 개죽음으로 몰고간 사건이 바로 걸림돌 거리끼게 한 알리바이가 된 십자가 곧 영의 일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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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3:16:21,

물질세계를 다스릴수 있는 방법은 물질세계에서 잘 사는것이 아니다 물질세계에서 빠져나와야 된다는것 주님은 자기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서 육체를 해결함 물질세계의 끝은 죽음이라는것과 사람이라는것을 보여준것이다 주님이 육체의 죽음을 친히 맛보려고 경험하신것이다  혼의 문제는 주님의 복음이 아니면 해결할수 없다

답변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제사 잘 드리겠다는 욕심이 결국은 아벨을 죽여버렸습니다.

자신만은 큰 구원 제대로 잘 받아 보겠다는 욕심이 결국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물질 세계 잘 다스리는 종교심이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과 살인의지를 붙태웠습니다.
비아냥 거리면서 예수님을 비웃었지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강도와 세리와 창기의 친구 라고 놀려 먹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신들은 금식, 또는 소식주의의 탐욕을 부렸고 (욕심)
금주주의로 자신의 육적탐심에 취한 것을 감추었고         (죄)
금욕주의로 자기 보다 더럽고 추한 인간들을 미워한 마음으로 미워한 것이 살인한 것임을 감추었던 겁니다. (사망)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밖힘으로써 육 문제를 해결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영입니다. 이제 그 영의 일을 자기 자녀에게만 적용시키겠다는 겁니다. 그것을 성령의 열매요 은사라고 합니다.
(육 문제 물질문제 심지어 혼 개념 영 개념 다 엉터리로 주장하네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으로 성경에서 나오는 의미를 운운하다니? 그 목사 기본도 안 되어 있는데요? 우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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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3:19:52,

주님은 영광을 이루셨다 우리만 남았다 영광에 들어가면 만물이 다 복종한다 돈별려고 애쓸 필요 없다 돈한테 오라고 하면 지가 알아서 온다 지금은 우리가 돈을 쫓아 간다 왜 복종을 안 하니까  영적세계에선 자격과 실력이 되어야 살수 있다 지금은 영광이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만물이 복종하지 않는다

답변 :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돈을 사랑하는 자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리새인들은 금물질주의자 금재물주의자 금돈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돈을 사랑하는자 라고 일방적으로 해석을 해 버릴까요? 바로 이 질문 속에 그대로 나타나듯이 돈을 사랑치 않는 모습을 갖추었기에 돈을 사랑한 것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율법이란 또는 법이란 법을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법 아래에 가두기 위함입니다. 즉 어떤 누구도 법을 지켜낼 재간이 없도록 범법자로 만들기 위함인데

뭐 지켰다고요? 웃끼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들이야 말로 가장 돈을 사랑하는자의 대표성으로 딱 안성맞춤이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않는 자는 결국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려는 자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불의한 재물이 바로 죄값을 탕감하는 피에 충성치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십자가입니다. 마땅히 심판 받아 마땅함을 십자가를 통해서 외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반대로 외칩니다. 너희들이야 말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느니까 제발 좀 뛰어서 자격과 실력을 갖추고 구비해서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죠.

그것이 바로 거짓선지자의 외침과 동일했고
참선지자는 일부러 그 반대로 삐딱하고 부정하고 때려치워라 너희들은 이미 망했어 심판 뿐이야 라고 그 심판과 망함을 즐거워 하는 자만을 남은자로 규정하는 십자가를 증거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극과 극의 차이 입니까?

도살장에 끌려 가면서 즉 저주 받으면서 심판 받으면서 멸망받으면서 기뻐하고 넉넉히 이긴다니뇨? 말이 됩니까? 설마 했는데 유대인들 자신들에게 자꾸 이런 사건들이 펼쳐지니까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더 나은 제사가 남이 아닌 자신들의 제사 그것도 바르고 거룩하고 선한 제사 앞에서 펼쳐지니까 졸지에 자신들의 제사가 상대적으로 못 한 제사가 되어버리니 걸림돌이 되는 거지요. 저주 받으면서 죽어가면서도 오히려 죽이는 자신들을 용서 해달라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죠? 완료가 덮쳐서 그런 겁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참 교회이고
스데반 집사님이 외친 손으로 짖지 않는 성전을 외치다가 건물 성전에 빠진 자들에게 개죽음 당하는 겁니다. 아벨의 피에 동참하고 예수님도 아벨의 피에 동참 합니다.

그 목사는 과연 아벨의 피에 동참할까요? 아님 인간 손으로 지은 교회를 사수 할려고 저런 소리를 할까요?

(행 7:46, 개역)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행 7:47, 개역)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 7:48, 개역)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행 7:49,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행 7:50, 개역)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51, 개역)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 7:52, 개역)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행 7:59, 개역)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개역)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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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3:23:25,

생명의 선하신 일이 완전히 드러날때에는 만물이 우리에게 복종할수 밖에 없다 주님의 생애를 보라 주님이 30년동안 공생애를 시작하기전에는 만물이 주님에게 복종 안 했다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고 그가 아들이라고 증거받고 공생애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만물이 복종했다 물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 축사 하시고 귀신도 물러 갔다 그러나 다 복종했는데 사람만 안 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답변 :

벌써부터 김칫국을 먼저 마실려고 한다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미리 혼수품을 챙길려고 한다면 결국 누가 사랑이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지요. 24장로들은 면류관을 반납했습니다. 그 정도로 무서운 곳이 천국입니다.

악인들은 서로 서로 외칠정도가 됩니다. 도저히 저 빛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차라리 지옥 보내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처음부터 지옥을 보내는 겁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목적에 예수님은 넌 물 속에 빠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을 소유하겠다는 자체가 믿음 없다는 증거입니다.
세례란 또 복종이란 죽음을 말합니다.

뭐 복종하라고요? 제발 목사 니부터 제발 좀 죽어 달라고 하세요.
자기를 위해 성깔부려 죽지 말고 예수님을 위해 죽어보라고 말이죠.

공부하면서 죽고 설교하면서 죽고 복음을 외치다가 죽고 말이죠.
얼마나 공부하기 싫었으면 공부안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기본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냐 말이죠. 헬라어? 히브리 원어? 그거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로 갖춘 겁니다.

히브리어 원조 유대인이 예수님이 죽였다니깐요?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그 기본도 모르냐 말이죠. 한국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말이죠.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복종하라고 죽으신게 아니라, 복종 안한 다는 것을 아시고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죽으신 겁니다. 성령은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 인간을 등 떠밀어 버리는 일만 골라서 하십니다. 즉 은사란 능력 쌓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무능케 만드는 겁니다. 복종하지 않겠다는 자를 무능케 만드는 겁니다. 자기 지식으로 하겠다는 자를 지워버리는 일로 하겠다는 겁니다. 자기 사랑으로 하겠다는 베드로를 지워버리고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밀어붙이겠다는 겁니다. 즉 성령의 일은 인간 쪽의 모든 출발을 막아버리고 주님으로부터 출발한 십자가의 사랑만으로 밀어 붙이겠다는 겁니다. 그것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고 예수님의 나라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밀어 붙이겠다는 겁니다.

자기 의 자기 나라의 방식을 밀어붙이겠다는 인간의 만만치 않은 그 고집 특히 의로운 성화라고 우기는 놈들은 만만치 않죠. 베드로 고집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 인간의 의 인간나라의 방식 다 깨뜨리고 쪼개어 버리고 찢고 꺽고 지우고 삭제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얼마나 기대를 안했습니다. 성령을 주겠다고 했을까요?

즉 인간 기대 하면 할수록 실망만 크고 그 기대치에 자기가 불만족 스러우면 인간은 자살 합니다. 너무 너무 잘난 인간들이여서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온 의요 기대치요 삶이였으니 타인의 시선에 못 견뎌서 죽는 겁니다. 처음부터 죽은자였죠 뭐. 지옥에 가야만 지옥 자식이 아니라, 이미 지옥 자식 노릇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라고 한 겁니다. 제가 보기엔 그 목사 돈 독에 보통 빠져있는 것이 아니네요. 이미 교인들은 밥풀떼기로 삼아서 뺨을 때려도 잘도 용납하도록 만들어 버렸네요. 그런 놈의 개가 되다니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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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3:26:03,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했다 우리에게 만물이 복종 안 한다 왜 하늘이 안 열렸기에 공생애의 삶을 시작 안 했기에 우리가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면 물질이 우리에게 복종한다 오는 세상 모든것이 갖추어진 아들들에게 복종한다 천국은 가는 세상이 아니라 오는 세상이다 우리안에 말씀으로 와서 생명의 역사를 하기 시작한다

답변 :

순종 안했습니다. 저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을 뿐입니다.
순종할 의욕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일일이 새로 찾아가야 하는 겁니다. 자발적이고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순종이란 없습니다.

공생애의 삶? 우와 이제는 예수님 마저도 흉내내고 경쟁자로 삼았군요.
저런 그 놈 보통 탐욕이 아니네요. 교인들 잡아먹을려고 작정했군요.
뭐 하긴 이미 시대 자체가 악한세대처럼 기적을 요구하니
그 기적의 실적과 효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목사들 세계에서 무능하다고 실패자로 낙인될테니 죽기보다 싫은 소리가 실패 라는 소리겠죠.

전형적인 종교꾼의 길로 가고 있네요. 천국이 와서 이미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천국이 그 목사를 배제 시켰으면 천국과 전혀 상관없는 천국이 내 뿜는 소리와는 반대의 소리를 하는지 참으로 천국이 제대로 일하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지 않구요, 죽음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인 요나의 표적 십자가 곧 저주요 심판이요 죽음인데

악한세대처럼 기적을 요구하니 그 탐심과 죄와 사망이 생명을 주장하는 것이 마땅하죠. 아니 생각해 보세요 종교 중에 누가? 죽음을 증거합니까? 다들 생명을 외치고 구원 빼 버리는 종교가 있던가요? 구원이 돈이 되는데?

천국은 지옥을 외치면서 두 패로 나눕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조작하고 만들어낸 천국은 지옥은 그저 협박용이고 천국 장사로 좀더 돈 되는 쪽으로 말해야 하기에 지옥은 돈 안 낼때만 말하고 돈 잘 내면 지옥은 감추어 버립니다.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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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3:28:40,

성경에선 하나님이 씨를 뿌려 놓고 밭을 가꾼다 세상과 반대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것은 우리의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안에 있는 생명의 씨가 잘 자라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날이란 열매가 익어지는때이다

재림의 때이다 재림이란 우리안이 완전히 무르익어서 열매로 드러나는데 열매로 드러내는 사람과 영광이 나타난 사람이다

답변 :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눅 10:20, 개역)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가룟유다도 귀신을 쫏아 내었죠. 그러나 생명책이 기록되지 않았기에 아무리 예수님과 버금가는 기적과 십자가의 삶을 살아도 아닌 놈은 아닌 겁니다. 즉 행함에 달려 있지 않고 예수님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겁니다. 예수님 마음대로입니다.

즉 씨란 이미 씨의 통로인 남성의 성기가 짤린 상태에서(할례) 열매 맺냐로 결정 납니다.
환도뼈가 부러지지도 않는 자는 육의 통로인 혈통과 사람의 뜻으로 얼마든지 자기 씨를 뿌리고 열매맺는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그런 혈통인 이스마엘은 처음부터 짤린 자입니다.

그러나 분명 아브라함은 더 이상 혈통이 단절 되어 버렸습니다. 죽은자와 방불합니다. 그리고 이중삼중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아내 사라 까지 불임여성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씨 만이 진짜 씨입니다. 불가능 속에서 나타난 씨 만이 열매 맺지
가능 속에서 나타난 씨는 계집종의 아들일 뿐인 육일 뿐이지 약속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단절의 의미인 할례가 신약에서는 세례 곧 죽음인 십자가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찾게 됩니다.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6:2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래서 생명 외치는 놈 치고 마귀 아닌 놈이 없습니다. 그래야 남에게 인정을 받죠.

그러나 죽음을 외쳐보시고 멸망과 저주와 심판을 외쳐 보세요. 곧 십자가를 외쳐 보세요.
당장 교회부터가 십자가를 외치는 자를 핍박하고 거부 합니다.

이런 일을 인간 자체가 할 수 없고 인간의 출발로부터 시작됨을 허용치 않기에
성령께서 하십니다.

단절과 차단과 차이와 분리와 나누고 지우고 삭제하고 막고 넘어뜨리고 실족케 하는 성령의 일이야 말로 참 세례요 참 마음판의 할례요 십자가입니다.

(고후 6:7, 개역)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히 11:11, 개역)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히 11:12, 개역)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롬 4:17, 개역)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8, 개역)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9, 개역)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차이를 알기 위해 일부러 죽음 속에 물 속에 심판 속에 죽은태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세례이기에 그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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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3:31:08,

첫번째 열매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많은 아들들이 영광을 가지고 나타난다 천사는 몸이 없고 고난도 없고 죽음과 부활이 없기에 영광도 없다 우리는 몸을 입고 지금 구원을 진행중이기에 만물이 복종을 안 한다 우리는 날마다 생명으로 말씀으로 덧입어야 한다 사망을 삼켜야 한다

답변 :

진행 중인 구원이란 없습니다. 이미 완료 된 구원 뿐입니다. 그래서 그 구원이라는 정답을 이미 받았기에 곧 피가 발렸기에 그 피라는 정답이 왜 정답인지를 문제를 찾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차이성입니다. 일치성이 아니라. 자꾸 그 목사 일치성 주장하니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제사 제단을 쌓는 거죠. 엘리야 보세요 무조건 반대로 하는 겁니다. 물 뿌리고 하죠. 아무리 봐도 그랬다가는 응답 받기는커녕 도리어 사람들에게 돌삐 맞아 줄을텐데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돌삐 맞아 줄을 짖만 골라서 한 겁니다.

즉 아세라 바알 선지자들의 행동들은 사람들에게 먹혀드는 믿을만한 가능성을 제공한 겁니다. 타인을 의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부러 반대로 가는 이유는 저들이 가능성 쪽으로 갈 줄을 뻔히 알기에 저들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지는 식으로 갑니다.

문제를 못 풀면 답도 엉터리 였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던지는 비유는 풀라고 알려주시는 비유가 아니라. 못 풀도록 던지는 비유입니다. 차라리 주여 전 못 풉니다. 라고 고백할때에 이미 넌 풀었어? 언제요? 내가 대신 풀었거든? 답이 뭔데요? 답은 나야 라고 다가오심 자체가 답인데

뭘 또 다른 답과 문제를 만들어내느냐 말이죠.

주님이 나에게 다가오심은 불가능입니다.

육을 입고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제물되심이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가능한 것만 챙기고 행합니다,조건 갖추기(구원받을 알리바이만 형성). 자기 쪽에서 양 잡고 교회 다니기 하고 예배 찬송 기도 말씀 지키기란 다 가능성으로 만들고 제조하고 조작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사람들에게 먹혀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어떤 누구도 흉내낼수 없고 따라할수 없는 불가능한 길만 가셨습니다. 즉 모든 인간들이 자기 쪽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들을 바알 아세라 제사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에게 엘리야처럼 비웃습니다.

크게 불러야지? 작게 부르면 큰 구원 받겠냐? 더 크게 신을 불러라?
더 열심히 불러라, 더 충서하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아이고 모기만한 소리로 응답 받겠다고? 잘도 받겠다 그래?
복종도 않하고 받을려고 하니? 더 많이 복종해야 응답받지? 라고 비아냥 거리면서 놀려먹습니다.

그렇게 자기 구원 챙기기 위해서 자학적인 열심히 850명의 선지자들이 외칠때에

엘리야는 정작 불을 붙일려고 하지 않고 불이 도저히 붙지 않는 방식의 죽은자와 방불한 짖만 골라서 합니다. 이미 세례 곧 합한자이기 때문에 무슨 짖을 해도 저쪽과 차이가 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850명의 선지자와 같은 자기열심으로 자학적으로 크게 부르짖는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부러 그런 자들의 반대로 갑니다. 이미 합했기에 세례자이기에 죽어도 상관 없는 길로만 골라서 갑니다.

저들은 구원도 챙기고 생존도 챙기고 그것을 생명의 길이라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않는 모든 방법들을 다 챙기면서 가지만 정작 그들은 지옥에서 끌어당겼던 잉여로써 드러납니다.

썩은 동앗줄 붙잡고 생명이라고 평화 평화 라고 외친거죠

그러나 아무리 봐도 썩은 동앗줄로 보여서 아무도 잡지 않았는데
누가 잡을까 싶어서 좋아라 라고 엘리야는 잡는 겁니다.
낼름 잡지요. 낼름 생명나무 치워 버립니다.
한 놈만 잡고 나머지는 99마리를 잡은 겁니다.
처음부터 동앗줄이 엘리야를 택한 거지 엘리야가 동앗줄을 택한게 아니였거든요.

자 십자가란 십자가가 우리를 택하고 등떠밀고 밀어붙입니다. 불저항입니다. 저항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는 자기가 선택했기에 자기가 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선택이라는 조건에 맞을 때만 유지하기 때문이고 조건에 벗어나면 얼마든지 버립니다.

왜 저런 목사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목사가 속여서도 아니고 목사를 잘못 선택해서가 아니라.
이미 어디를 가도 지옥에서 땡기는 자이기에 반드시 저런 목사와 만나고 절대로 못 벗어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도 불저항이거든요.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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