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접한 목사들

신접한 여자를 통해 사무엘을 부른 사울왕처럼 목사들은 아벨의 삶을 불러들이는 무당짖만 골라 한다.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3-13 22:31:18,
아벨의 삶 모든 과정을 다 지켜 봤다면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죠? 마음의 중심을 봤다면 더더욱 그래야지요?

아벨을 창차 오실 주님의 모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답변 : 반대로 보세요 아벨 먼저 보시지 마시고 모형을 먼저 말하지 말고 실체를 먼저 말하고 난 뒤에 그림자를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벨의 삶이란 없구요. 오로지 아벨의 죽음 뿐입니다. 이 죽음을 자기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자가 성화론자들 중에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아벨을 언급하는가? 아벨을 이용해서 돈 뽑아 먹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아벨을 언급했을때에 아벨의 피와 자신과 결부 시키면서 복수 하겠다고 하십니다.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성화론자들도 아벨의 피를 흘린 그 성전을 중심으로해서 전쟁을 벌려야 합니다. 그런 것을 죽어도 못 지킵니다. 도리어 성전을 통해서 자기의 생존을 펼칩니다. 설교를 왜 할까요? 아벨의 설교를 왜 할까요? 살고자 함이지 죽고자 함이 아닙니다. 아벨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신학은 이미 마귀 쪽에서도 다 말하는 것 아닙니까? 지식 갖추면 예수님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 성경박사가 되면 해석 완벽하게 하면 아벨의 피를 갚으러 오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안 믿겨지니까 다른 것으로 채워넣고 그 대안으로 믿기를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지식습득하고 아벨의 삶을 본받자 라고 하는 겁니다. 죽었는데 뭘 본 받아요?

(마 23:35, 개역)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눅 11:51, 개역)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히 12:24, 개역)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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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3 22:48:05,
주님이 이미 우리와 함께 죽고 다시 함께 살아나셨기에 우리는 정죄함이 없다 자꾸 죄인을 읊어대고 주님과 분리시키려는 종교는 주님의 뜻을 모르는것이다

답변 :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 주어서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것은 구지 성화론교회에서만 말하는게 아니라.
모든 종교가 다 외치는 겁니다. 구원 목적입니다.
주님이 피 흘렸다면 오죽해서 피 흘렸겠느냐? 제발 믿으라고 피 흘린 것 아니냐? 죄인에서 의인의 자리로 옮긴 것 아니냐? 그러니 믿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게 예수 라는 단어 차이만 날 뿐이지 모든 종교의 신들의 공통점입니다.

인간들의 종교는 이런 한계성이 있습니다. 구원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래서 십자가란 심판으로 일관 합니다.
심판 받아 마땅함을 아는 자가 십자가를 제대로 본 자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 구원 챙길려는 자가 악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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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3 22:51:19,
야곱의 꿈은 주님이 육체성전을 만드는 것이고 하늘의 원리로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는것이다

야곱의 오르락 내리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답변 :
야곱이 성전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 성전입니다. 그래서 야곱을 깨뜨리는 겁니다. 깨어진 그 틈사이로 성전이 세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은 야곱을 깨뜨리는 일만을 전담하는 하나님의 전쟁을 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스라엘은 야곱과 같은 육의 사고방식을 가진자를 상대적인 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인줄 착각하도록 전부다 그 속에 빠진 것처럼 말이죠. 바로 그 가짜 성전이 고름 익듯이 푹 익어서 원수의 성문이 숙성이 된 후에 고름을 짜 버립니다.

성전을 헐라 3일만에 일으키겠다.

(요 2:1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찢어버리고 심판하러 오신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약속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약속이 없는 자는 찢어버림을 통해서 땅콩의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약속이 있는자는 육체의 껍데기가 깨어짐으로써 약속이 더더욱 드러나는 겁니다. 너 정답이 있었구나 라고 말이죠.

바로 이 일을 전담하는 분이 예수님이고 성령님입니다.

이 일을 거부하고파서 자기가 자기 스스로 깨작 깨작 깨뜨리면서 장난치고 있는 것이 성화론자들이고
정작 성령님께서 손 댈려고 할때는 못 대도록 하는 것이 종교꾼들의 행함입니다.


성경에는 명령어가 없습니다. 지킬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숙제 뿐입니다. 그 숙제를 우리는 누리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도 누릴수 있고 부요함에서도 누릴수도 있는 겁니다. 내 선택 밖이니까요

그런데 종교꾼들의 신앙이란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자 오늘은 누구 흉내낼까? 옳지 아벨을 흉내내자 라고 선택하는 겁니다.

결국 선을 선택하지 악을 선택하지 않죠? 가인을 설마 선택할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 자체가 이미 거짓인 겁니다.

성경이 멍청하게 인간의 선택적 신앙에 말려들어갑니까?

유대인의 선민은 그야말로 처절한 역사속에서의 남은자 였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지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렵게 어렵게 남은 마지막 지파인 유대 지파 마저도 버려 버립니다.

버림의 자리에서 다시 출발해도 상관 없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아벨을 보는게 아니라. 즉 죽음으로 보는게 아니라.
즉 피로 보는게 아니라.

자꾸 흉내낼려는 위선을 갖추는데 이용하는 대상으로 아벨을 볼려고 하니 삶을 끄집어 낼려고 하는 겁니다.

가인에게 죄의 소원이 덮쳤기에 가인이 죽은 아벨을 찾듯이 이마표를 받았듯이
지금 그 목사도 그런 죄의 소원이 덮쳤기에 아벨을 찾는 겁니다.

마치 사울 왕이 죽은 사무엘을 찾는 원리와 같은 겁니다.

교회에 대한 탐욕과 집착 때문에 미쳐 있는거죠. 신접한 여자와 같은 목사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제대로 이루어야 한다는 그 집착으로 생각한 나머지 죽은 사무엘을 불러들이듯이 지금 그 목사는 아벨을 불러내고 있네요. 마귀새끼 같으니라꼬

(삼상 28:1, 개역)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삼상 28:2, 개역)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삼상 28:3, 개역)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애곡하며 그의 본성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 내었었더라』
(삼상 28:4, 개역)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삼상 28:5, 개역)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삼상 28:6, 개역)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7, 개역)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삼상 28:8, 개역)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는 사울이 가로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삼상 28:9, 개역)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삼상 28:10, 개역) 『사울이 여호와로 그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삼상 28:11, 개역)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삼상 28:12, 개역)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삼상 28:13, 개역)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삼상 28:14, 개역)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삼상 28:15, 개역)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삼상 28:16,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삼상 28:17, 개역)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삼상 28:18, 개역)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삼상 28:19, 개역)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28:20, 개역) 『사울이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 기력이 진하였으니 이는 그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음이라』
(삼상 28:21, 개역)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청종하였사오니』
(삼상 28:22, 개역) 『그런즉 청컨대 이제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나로 왕의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삼상 28:23, 개역) 『사울이 거절하여 가로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그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삼상 28:24, 개역)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취하여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삼상 28:25, 개역) 『사울의 앞에와 그 신하들의 앞에 드리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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