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악이 만들어 낸 신과 이웃 (조작되는 사랑)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3-15 20:44:08,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그래서 사람들을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한다. 주님이 은혜와 긍휼을 베풀고 싶어도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줄수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소중하게 하는것 만큼 은혜와 긍휼의 통로가 많아진다 그래서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답변 :

바로 그런 하나님이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입니다. 마귀의 3가지 시험에도 나오고 잠시 물러간 마귀를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바리새인이요 율법사요 유대인들의 주장입니다. 질문에서 언급한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이미 만들어 조작해 낸 하나님 이였습니다.

정작 예수님께서 따로 자기 백성과 잃어버린 자기 자녀를 택하고 새로 창조해 낼 때마다, 자기를 선택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 죽인 법적 정당성과 알리바이가 바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했다 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다 알아주는데 예수님 만큼은 안 알아주었기에 죽여버린 겁니다.

마치 탕자 비유에서의 맏아들과 같은 모습이요, 율법을 어릴적부터 완벽하게 지켰다는 부자청년과도 같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신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인간이 주변인들 이웃으로 설정한다는 자체가 죄입니다.

이미 주변인을 이웃으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인 밖은 이웃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의 조건에 맞는 이웃만 설정 합니다. 만약 자기 부모를 죽이고 자기 자식을 죽인 자를 절대로 이웃으로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웃과 원수는 예수님이 설정하지 건방지게 인간이 설정할 권리 조차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웃 설정할 생각 말고 예수님이 정하신 이웃과 원수의 자리에 놓여질 대상이나 될 뿐입니다.

마치 7번 용서할 위치에 설 입장이 못되고 무한대 칠 곱하기 칠십 번의 용서를 받을 정도로 무능한 자 임을 발견해야할 처음자리에 놓여질 입장입니다.

이웃 사랑 언제 했다고 이웃을 설정하나요? 건방진 것 아닙니까?

그 시건방진 모습이 결국은 자기 사랑 안 받아준다고 예수님을 죽여버린 겁니다.

그 짖을 또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내용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주님이 은혜와 긍휼을 베풀고 싶어도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줄수가 없다]

예수님은 창조자입니다. 창조를 거부할 피조물이 없습니다.

인간의 수용 여부에 따라서 예수님이 밀리거나 땡겨지는 법이 없습니다.
영접하지 않는다고 영접 받지 못할 분이 아닙니다.

영접을 처음부터 못한다는 것을 밝혀내시는 분임을 모르기에
자기의 영접 여부에 따라 예수님도 멍청하게 거부당하거나 수용당하는 졸지에 피조물 의 선택 여부에 따라 움직이는 피조물의 장난감이 아닙니다.

얼마나 그 목사가 예수님을 모독하는지? 그 동안 자기 종교적인 탐욕의 장난감으로 이용을 했기에 또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가는 자들 또한 신을 가지고 놀고 장난치고 조정하고픈 탐욕이 있기에 같이 놀아나는 겁니다. 유유상종이지요.


십자가 기준에서의 이웃이란 원수 입니다.
원수를 사랑한 분은 그것도 자기 몸 같이 사랑 한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마 5:43, 개역)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4,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개역)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 5:46, 개역)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7, 개역)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눅 6:25,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 6:26, 개역)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7, 개역)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28, 개역)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9, 개역)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눅 6:30, 개역)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눅 6:31, 개역)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32, 개역)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눅 6:33, 개역)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 6:34, 개역)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눅 6:35, 개역)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성화론자들이 위선자들인 이유는 자꾸 자기를 핍박하는 자는 못 사랑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세리도 할 줄 알고 개같은 이방인도 할 줄 아는 세상 사람 다 할 줄 아는 것을 자꾸 이웃 사랑했다고 우긴다는 자체가 그 자체가 가인처럼 에서처럼 미움받은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는 겁니다.)

또 누가복음의 새언약 기준에 의한 성령행전의 이웃은 고아 과부 나그네 곧 처음자리 에 해당되는 자 만이 이웃입니다.
그런데 고아 과부 나그네는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혼자만 고아 과부 나그네 였습니다. 머리 둘 곳 없고 누울 곳도 없었던 유일한 분 예수님만이 유일한 이웃 입니다.

(마 8:20,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눅 9:58,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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