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6. 고정 이미지가 된 우상(자기유익)을 날려버리는 지워버리는
 
이미지(무익한 처음자리로 되돌려 놓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미지)


(눅 17:11-21)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형상, 새 형상, 새 이미지, 차이나는 이미지 (무능한 버림받는 십자가의 이미지를 해석할 길이 없는 인간=우상 이미지, 자아 이미지, 보이는 것 밖에는 가치를 둘 줄 밖에 모르는 자아라는 우상 이미지)

가치있는 용서자가 될려는 우상의 사고방식과 그 반대인 용서의 대상이 되는 어리석고 좁은길로 인도하는 성령의 일의 차이, 십자가의 죽음(심판 저주) 을 해석할 길이 없는 인간

잃어버림의 의미(십자가, 요나의 표적, 버림받음. 피 흘리심)를 해석할 길이 단절된 부자와 제자들 모든 인간들

인간은 부자처럼 모든 가치를 자기 구원과 연결된 [선택]으로 해석, VS 반대인 성령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버림]으로 심판으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다른 해석 안되도록 되어 있음

9명의 문둥병자 유대인과 이방인 문둥병자 사마리아인의 차이성으로 드러내는 이스라엘(잃어버린 자기 아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
(문둥병 속에서도 잃어버림을 모름 = 광야 속에서도 이스라엘(광야교회=약속)의 의미를 모르는 9명의 문둥병 고침 받은 유대인)

이전 것의 이미지(우상) 와 새 이미지의 차이

http://media.woorich.net/passofday/passofday090410luk46.mp3



(눅 17:11, 개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 17:12, 개역)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눅 17:13, 개역)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눅 17:14, 개역)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 17:15, 개역)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 17:16, 개역)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눅 17:17,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8, 개역)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눅 17:19, 개역)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 17:20,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개역)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다음 시간에 그리스도의 형상과 인자의 날 (종말의 이미지, 종말의 영이 창조하는 창조물 열매)

(고후 4:4, 개역)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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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밑에 글 검색하다가 찾은 글인데 오히려 제목의 정반대 과거의 이미지를 버려라 즉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처음자리) 너가 잊은 이유는 자꾸 헛된 허상의 이미지로 과거를 채웠기에 과거의 이미지를 지금 지워버리는 이미지에 의해서 지워버림 당하라 라는 의미를 반대로 지금 해석하고 있음(광야교회란 빈주머니로 털털털 빼앗기는 곳임, 교회란 허상이미지 지움당하는 곳임, 처음자리 되돌려 놓기)

마치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는 의미를 주로 장로들이 대표기도를 통해서 엉터리로 말하는 의미는 주님의 용서를 반대로 해석하는 것임 주님의 용서란 반대로 주님의 절대 용서하지 않는 용서를 무익하게 만들고 무시하는 자 일만달란트 탕감받은자를 통해서 명확하게 드러내는 겁니다.

(사 42:1, 개역)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사 42:2, 개역)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사 42:3,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사 42:4, 개역)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마 12:20,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14, 개역)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마 12:15, 개역)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2:16, 개역)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마 12:17,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마 12:18, 개역)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 12:19, 개역)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20,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1, 개역)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2:22, 개역)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마 12:23, 개역)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마 12:24, 개역)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가는 곳 마다 병자를 고쳐도 마귀취급만 받음 정반대로 미움만 더욱더 크게 받음)

즉 난 처음부터 심판의 자리 버림받은 자리 무익한 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
창조때에 나는 흙이였을 뿐이고 ~~~~ 아무것도 한 것 없고흑암이였을 뿐이고 ~~~~

원래 불이 꺼진자 였을 뿐이니 백부당 천부당 끄심이 마땅함을 아는 자에게 매(징계)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심판과 저주가 버림이 의미가 있는 겁니다.

(마 10:5, 개역)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7, 개역)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마 10:8, 개역)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의미가 원래 너 또한 꺼진자 였다는 죄인 무능자이였다는 것이다. (무능자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는 것이 마땅함 무익한 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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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침은 지나개나 다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단절성을 보여준다. 즉 아무나 안 고치겠다는 뜻이다. 그 단절성을 아는 자가 한 명의 남은 문둥병자이고(삭제당한 이미지)나머지 지옥의 잉여성을 보여주는 아홉의 빠져나간 문둥병자는 지옥 보내기 위해서 병고쳐준 것이다. 즉 부재성을 몰랐던 것이다. 단절성 심판성 잃어버림의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집단적 이스라엘만이 알고 있는 약속(잃어버림=십자가)의 의미가 그들 아홉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마 8:2, 개역)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 8:3, 개역)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 8:4,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눅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5:12, 개역)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눅 7:2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희년을 위해서 문둥병자가 있는 것이지 문둥병자를 위해서 희년이 있는 것이 아님
마찬가지로 세례요한은 그 선지자 됨이 바로 희년이라는 복음을 위해서 문둥병자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기에 문둥병자 라는 죄인 때문에 예수님과의 같은 일 즉 집단적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 복음의 일에 동원되는 소모품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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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글은 무가치한 자가 가치가 있게 되었다는 기존의 해석 즉 이제 죄인의 옷을 벗어버리고 의인의 옷으로써 살아야 한다는 성화론을 외치는데 그 반대임

가치 있다고 주장하고 문둥병이라는 저주 광야라는 좋은 기회 조차도 자신의 유익을 늘 챙길려는 눈먼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그 가치를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자기 스스로의 유익을 챙기는데 성공을 했지만

한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정작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은 꺼져가는 등불로써 처음에는 불이 꺼졌는데 누가 그동안 불을 붙혀줬었을 뿐이고 바람이 불어서 정작 꺼져 마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안 꺼뜨렸음을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바로 무능한 자기 앞에 무능한 자신을 고치신 주님 때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심판자를 만나서 자기의 저주와 심판을 제대로 봤기에 무릎을 꿇고 나는 무조건 틀렸고 주님은 무조건 옳다 라고 예수님을 보았으나

나머지 아홉명은 예수님을 못보고 자기 이미지인 우상을 또 다시 쫏으러 갔다.

애굽 포로 속에서 탈출시켜주니까 (안 빼내어도 상관없었는데)  광야에서 빠져나가서 애굽으로 다시 포로가 되어 버리니 일곱귀신이 씌여진 것이다. 자아성이 더더욱 크게 자기 이미지를 확대시키러 간 것이다.

결국 포로 라는 개념 갇힘 이라는 개념 잃어버림의 의미를 해석을 엉터리로 한 것이다.포로 라는 의미를 모르는 자는 풀어주는 자의 의미를 모르도록 되어 있다.
갇힘  억눌림 사망 죽음 저주 심판 등등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자유케 하는 구원을 해석못하기에 자기 이미지(우상: 허상)를 위하여 사적으로 구원을 챙겨버리는 자들이다.          

 

이사야 51장 1절-3절 ‘과거를 잊지 않으면 미래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고 3 수능 시험을 쳤습니다. 올해는 신문에 그런 기사 없네요~ 수능 끝나고 나면 꼭 (어른 강아지) 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고 3들 졸업식 날 (어른 강아지)들이 많이 보일려나~ 암튼 고 3이 끝나면 마치 인생이 끝난 사람처럼 망가져서 (어른 강아지)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고 3 졸업하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눈에 안 보입니까? 우리 대학생들~ 마냥 즐겁게 보입니까? 그나마 1학년 조금 낫습니다. 2학년 3학년 4학년 점점 쪼여 옵니다. 요즈음은 대학교 5학년 6학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하면 끝이 납니까? 대학원 가는 사람~ 직장 들어가는 사람~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 집에서 쉬는 사람~ 또 그렇게 원하던 취업하면 끝이 납니까? 승진 해야지요~ 대기업은 살아남기 위해서 매번 시험을 칩니다. 정말 치열한 경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죽을 때 까지 그렇게 삽니다.
 
우리에게 출생, 시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사람 없습니다. 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친구라는 영화에 보면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호로 자식~ 호로 자식이 뭡니까? 아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니 근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거는 욕입니다. 아주 심한 욕입니다.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람에게, 과거 없고 미래가 없다는 것은 욕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 보면 정말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 친구들이 종종 보입니다. 정말 대책 없이 망가져서 살아가는 학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과거가 없는 것처럼,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 참 안타깝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어제 신문에서 참 안타까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35살 김 모씨 무직입니다. 사회에서 만난 후배 32세 이 모씨 함께 도둑질을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털려고 계획한 집이 35세 김 모씨 자기 집입니다.
 
이 김 모씨는 밖에서 망을 보고 후배인 이 모씨가 집에 들어가서 텔레비를 보고 있는 김 모씨의 어머니를 마구 때렸습니다. 그리고 돈 100만원을 빼앗아서 달아나다가 김 모씨가 자기 후배가 자기 어머니를 너무 심하게 때려서 죽을 까봐 겁이 나서, 119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빨리 가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경찰이 전화를 추적해서 김 모씨를 잡았고 또 어머니를 폭행했던 이 모씨도 함께 잡았습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힌 사실은 경찰이 아들이 범인으로 지목 했을 때에, 두들겨 맞아서 앞니가 부러지고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어머니는, 절대로 착한 자기 아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고, 아들이 잡혀 왔을 때는 아들을 제발 선처해 달라고 부탁해서 주변 사람들을 참 안타깝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기사입니다. 같은 피가 흐르는데 어머니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이 이렇게 다릅니다. 자기에게 몹쓸 짓을 했는데도 아들이니까 덮어둘려고 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런데 반대로 그 아들은 과거를 잊어 먹었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는 그 과거를 잊어 먹고 사는 불쌍한 인생 이었습니다~ 어떻게 자기 집을 털 생각을 했습니까? 어머니인데~ 그것도 후배에게 폭행당하는 자기 어머니를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요?
 
그래도 도망가다가 보니까 자기 과거가 생각났던 거 같습니다~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서 도움을 요청한 것을 보면~ 앞으로 이 젊은 사람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과거를 잊은 사람의 미래~ 결코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가 있어야 미래가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 미래가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 9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10명의 문둥병자가 이 문둥병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많은 능력을 가진 예수님이 자기 마을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신들의 문둥병을 고쳐주시기를 강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들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10명이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딱 1명밖에 없었습니다.
 
10명의 고침 받은 문둥병자 중에 딱 한명만이 과거를 기억하고 예수님께 다시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이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 1명에게 문둥병뿐만 아니라, 죄 사함의 은혜도 더불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을 고침 받았다~ 정말 잊기 힘든 과거입니다.
 
참 복되고 은혜로운 과거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된 과거를 잊었던 9명 보세요~ 미래에 받을 은혜를 모두다 다 날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과거를 잊으면 안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왕의 조서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다니엘의 머릿속에는 항상 과거가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자신을 지금까지 높여주신 그 하나님에 대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과거~ 그래서 그는 사자 굴에 던져져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고 감사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그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예전 보다 더 많은 존경과 신뢰를 받는 미래를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간혹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 사고를 당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과거를 다 잊은 다는 것~ 참 불행한 삶입니다. 과거를 다 잊은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까? 순간 순간 다 잊어버린다면 과거가 없는 그런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있어야지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출발이 있어야 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1절 봅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누굽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 들을 지어다~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를 떠낸 반석~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 보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의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떠낸 반석~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 보기 흉한 것들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생들을 떼어 내어서 쓸모 있는 인생으로 다듬으시는 하나님~ 진흙 속에 묻혀서 가치를 알 수 없는 무가치한 인생들을 고치시는 하나님~ 지난날 과거의 너희 모습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떼어내시고 하나님이 고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이들이 얼마나 무가치한 인생을 살았습니까? 종이었습니다. 구박하면 구박받아야 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정말 가치 없는 진흙 덩어리에 묻혀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가치한 인생을 하나님이 떼어내셨습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인생으로 다듬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세상 가운데 살았다면 정말 무가치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어제도 우리 학생들하고 잠깐 이야기하는데 저보고 그런 말합니다. 목사님~ 예수님 안믿었으면 참~ 끝장 날 뻔 했다고 말하더라구요~
 
저는 그 말에 100% 동감합니다. 정말 무절제하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담배에 찌들려서 술에 찌들려서, 아마도 폐암이 걸려서 40도 못 넘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 생각하면 참 감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그 세상의 구덩이에서 떼어내 주시고 은혜주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것 생각하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과거가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참 감사한 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과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신대원가기 전에 제 모교에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예배 시간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3개월 정도 공부하고 신대원에 합격했습니다. 그때 제가 결심했습니다. 저는 제 모교에서 받은 은혜를 도무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작년에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바로 사역지 구하지 않겠습니다. 1년간 교사로 교회서 섬기겠습니다. 원래 신학대학원 들어가면 다 전도사로 사역지 구해서 나가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유익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도무지 제 과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교사로 섬기겠습니다.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교사로 청년부에서는 그냥 회원으로 어떻게 보면 우스운 처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역지 구해서 전도사로 섬기는데~ 이렇게 무급으로 1년을 그냥 보낸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은혜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시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 다니면서 우리 교회 전도사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랑 신대원에 같이 시험을 쳐서 들어갔습니다. 이제 저랑 같은 위치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는 우리 교회서 중등부 전도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맘 한편에 희안한 생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전도사가 또 질이 좋지 못해서 학교가면 하는 행동 다 보잖아요~ 여러분은 그 맘 모를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은혜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참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누가 저보고 전도사님 부를 때~ 왠지 자격지심이 생겼습니다. 난 아직 전도사 아니고, 난 그냥 교사일 뿐이고, 난 아직 사역도 하지 않고~ 그래도 꾹 참았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내 순수함을 잃지 않을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11월 달이 되어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제가 말했습니다. 이제 목사님 다른 교회 사역지 자리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른 교회 사역지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11월 마지막 주 쯤 되었나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월요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잘 안하시던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하는 말이 12월부터 교육전도사 임명한다~ 유년부 섬겨라~ 그리고 뚝 전화를 끊었습니다.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냥 전도사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모교에서 교육전도사로 2년을 섬겼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것이 제 사역의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교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이 저에게 진짜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싫었지만 부모님의 직접적인 충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설교가 어떠니 저떠니~ 말이 빠르니 어떠니~ 태도가 어떠니~ 진짜 싫었습니다. 제가 자존심이 센 편인데 맨날 집에만 오면 그런 말을 하니까 사람 진짜 돌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 말씀이니까 우짜겠습니까? 들어야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합니다. 누가 저에게 그런 이야기 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충고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 민감한 부분입니다. 그런 이야기 제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할 사람이 성도들 중에 누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지나보니까 이 부분 참 감사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는 제 모교의 성장 과정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100명 정도일 때부터 제가 나올 때 500명 정도 될 때까지~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2년은 교역자로서 지켜보았습니다.
 
선배 목회자들이 말을 합니다. 첫 교회가 중요하다고~ 첫 교회 성장하는 교회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저는 첫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그 때 그 목사님의 모습이 필름처럼 담겨있습니다.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게 축복입니다.
 
일부러 제가 제 모교에서 전도사 할 것 생각하고 교사 한 것 아닙니다. 제 자랑이 아니라 저는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거를 기억한 것이 오히려 제게 미래를 열어주는 축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사역지가 부산충무교회였으면 우쨌을까? 하는 슴뜩한 생각이 듭니다. 그 때가 나에게 없었으면 정말 우쨌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절을 보세요~ 더 먼 과거까지 올라갑니다.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 하나님이 그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그를 부르고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그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 그냥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 사람이 안보는 것 같아도 다 봅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과거에 은혜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은혜를 받았으면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 과거를 알고 과거가 있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어 버리고 과거를 무시하는 사람은 미래가 없습니다. 간혹 보면 자기가 필요할 때만 꼭 죽는 소리 하고 찾아오는 사람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보면 처음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자꾸 보면 나를 이용할라고 하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피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사람이 됐다 싶습니다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 생기면 같은 값이면 그 사람에게 열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괜찮은 사람 생겼을 때에 소개 시켜 줄 때 누구를 소개 시켜 주겠습니까?
그런 사람 소개 시켜 주지요~ 그런데 과거를 잊고 요리 조리 지 살길만 찾는 기회적인 사람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켜보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특별히 과거에 하나님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런데 하나님 오죽 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 보십시오~ 하나님이 왜 과거를 들추어내십니까?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이제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서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미래가 희망적입니까? 암울합니까? 희망적입니다. 하나님이 미래에 황폐한 곳을 에덴 동산 같이~ 천국입니다. 광야 사막 같은 곳을 여호와의 동산같이 아주 아주 아름다운 곳으로 살기 좋은 평안한 곳으로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기쁨과 감사와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잊지 마세요~ 지난 일을 지난 일이다~ 잊어야지~ 분내고 화내는 것은 잊으세요~ 그것을 빨리 잊으세요~ 그렇지만 감사한 일은 두고 두고 기억하세요~ 잊지 말고 감사 하십시요~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밝은 미래가 생깁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그 사람에게는 미래에도 더 많은 감사의 제목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은 아니지만 8절에 보면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하나님이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의 미래에 구원이라는 놀라운 은혜로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뇌물과 감사는 다릅니다. 뇌물은 자기 힘으로 우째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뇌물은 그 자체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감사는 다릅니다. 감사는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은 이것을 너무 너무 잘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그의 길이 자꾸 열려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감사를 잘 해도 그런데 하나님께 과거를 기억하고 감사를 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잘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교회를 다니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보세요~ 51장 1절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특별히 믿는 너희들은? 너희들의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과거가 있는 사람은 미래가 있고 미래가 있는 사람은 앞으로 그 미래에 지금 보다 더 놀라운 감사할 일들이 충만하게 넘쳐 날 것이라고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원래 암울한 미래인데 하나님이 바꾸시겠답니다. 니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
어떻게 사막을 에덴 같이~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오늘 추수 감사절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안믿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믿는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건강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니까 참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는 과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미래가 있습니다. 어떤 미래? 밝은 미래~ 은혜로운 미래~ 축복된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감사할 일이 미래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와 축복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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