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5. 대제사장의 옷 찢기 VS 베드로의 저주와 맹세  

(마 26:57-75)

베드로의 허물 덮고자 죽으시러 오신 예수님

(발가벗겨진 베드로 VS 거짓의 위선으로 거룩을 더욱더 껴 입는 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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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57, 개역)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마 26:58, 개역)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마 26:59, 개역)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마 26:60, 개역)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마 26:61,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마 26:62, 개역)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마 26:63, 개역)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마 26:6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 26:65, 개역)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마 26:66, 개역)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 26:67, 개역)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마 26:68, 개역)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마 26:69, 개역)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마 26:70, 개역)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마 26:71, 개역)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마 26:72, 개역)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마 26:73, 개역)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마 26:74, 개역)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마 26:75, 개역)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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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산과 그리심산의 상황


주께 오다

2009년 6월 3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3:22-25

(렘 3:22, 개정)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23, 개정)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렘 3:24, 개정)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렘 3:25, 개정)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주께로 온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지정된 장소에 온다’는 것은 우리는 쉽게 이해합니다. 그 지점에 가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온다’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보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이에는 ‘내게로 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는 방향성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너 자신을 쳐다보다가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런데 동, 서, 남, 북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는 줄 알아야 그쪽 방향으로 쳐다 볼게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대한 이스라엘의 특수한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이방 사람들과는 달리 할례 받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이방 사람들은 태어날 때, 그 몸을 유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대로 태어날 때의 몸이 아니라 할례를 행했던 몸을 영광스럽게 여겼는데 이는 하나님과 관련 있는 흔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하나님이란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자신이 이 세상을 살 이유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자신들의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엷어져갔습니다. 그 대신 이웃 나라들처럼 우상을 섬기는데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있어 ‘부끄러운 것’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이미 이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처지에서 다시 본래의 참 하나님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과거의 홍해나 광야 시절이 아닌 형편에서 말입니다.

이것은 곧 ‘죄 지은 백성’을 위해 구원의 조치를 취하시는 그 중앙점으로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게 됩니다. 이사야 53:7-8에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중앙지점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죽음입니다. 그 ‘어린 양의 죽음’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돌아옴’입니다. 이때 백성들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자신을 볼 때에 ‘마땅히 형벌 받을 백성’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도살장을 쳐다봐야 합니다. 이것만이 참되게 ‘주님께 돌아옴’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유대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겼다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신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세상적으로 으시댈만하고 자랑할만하고 선전할만하고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만한 것들을 추구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부끄러운 짓’에 해당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으로부터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4절에 보면,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축복’의 의미를 ‘이제부터 내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욥의 고백에 의해서 잘못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욥기 1:20-22에 보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서 나타내보이고자 하는 바는, 진정한 복의 의미였다. 개인적으로 건강이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복은 우리 자신을 우리의 원래의 자리로 데려가는 그 힘을 말합니다. 그 원래의 자리란 예수님이 보여주신 ‘도살장’입니다.

만약에 이 원래의 자리에 마음 두지 않고 엉뚱한데 마음 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자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누가복음 12:16-21에 보면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을 모르고 자신의 힘만 압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것인 양 여기고 그것으로 자기 생명을 지탱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모독하고 가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혹시 너희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부자가 되고, 좋은 집을 짓고 살 때에, 이 모든 것이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얻었다고 여긴다면 이는 이방민족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위배하는 일이 되기에 너희들도 이방나라와 같이 멸망시켜 버릴 것이다”고 하십니다. 과연 모세의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고 맙니다.

하나님에게 있어 구원의 힘이란 곧 말씀이 말씀대로 진행되는 힘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력은 이 하나님의 힘 앞에서 제거되어야 하고 부정당해야 마땅합니다. 자신의 노력과 힘이 제거될 때, 즉 자신이 형벌 받아 마땅한 백성인 것을 알 경우에만 비로소, ‘어린 양이 끌려가서 죽은 그 도살장’이 보입니다. 이럴 경우에만 제대로 참 하나님을 바라보며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넓은 대로로 간다고 해서 산 자의 길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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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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