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7. 예수님의 죽으심과 모두 다 역여지도록 하는 

                    십자가의 어리석은 지혜 (피 흘림의 제사)

                    (마 27: 1- 10)


토기장이의 지혜 (롬 9:13-33 )

(부딧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http://media.woorich.net/passofday/passofday090609mat67.mp3




(마 27:1, 개역)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마 27:2, 개역)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마 27:3, 개역)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 27:4, 개역)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마 27:5, 개역)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6, 개역)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마 27:7, 개역)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마 27:8, 개역)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마 27:9, 개역)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마 27:10, 개역)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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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8장 토기장이
슥 11장 은 삼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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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자살

http://media.woorich.net/~woorich/성경강해/마태복음-2002/168강-마27장,3-10(가룟유다의,자살)-mat05112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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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7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7:3-10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27: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27: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27: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27: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기룟 유다 이야기가 여기에 적혀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평소에 행하시는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처형에 가담했던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가룟 유다의 개인적인 자살과 무관하다고 그렇게 알았습니다. 가룟 유다에 대한 이와같은 무관심이 그 당시 성직자들 뿐만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일어나는 사태나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룟 유다의 자살은 지금부터 무려 2000여년 전의 일이며, 그것은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참으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처리할만한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처형 당하는 이야기를 적어놓으면서 가룟 유다의 자살을 빠뜨리지 않는 이유는, 가룟 유다의 자살이 없이는 ‘신의 저주’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가룟 유다의 자살은, 곧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의 자실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들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70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모든 인류는 예수님의 의해서 선택당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천국으로의 선택이 아니면 지옥으로의 선택입니다. 왜 선택해서 구원하시는가 하면, 구원이란 오직 ‘약속’에 의해서만 성사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이란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 내용을 준수해서 그래서 이 땅에 등장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약속 지킴’과 상관없이 그냥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만으로 약속은 이 지상에 실현됩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의 경우, 그는 약속의 차원에서 보게 되면 악마의 운명을 담아내고 보여주는 그런 약속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이 가룟 유다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태와 무관한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두는 하늘의 약속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약속의 위력, 즉 다른 말해 말해서 ‘선택’의 위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인간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도 그 약속의 영역에 들어설 수 없을 정도도 대단합니다. 그 확실한 예를 가룟 유다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가룟 유다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우리 인간들이 성취하려고 한다면, 참으로 복잡한 절차가 동원됩니다.

일단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채용이 되어야 하고, 적어도 예수님을 당국자에다 팔아먹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리고 권세자들은 그런 가룟 유다를 예수 집단에서 비중있는 인물을 알아주어야 하고, 따라서 예수님을 넘기는 대신 은 30량을 가룟 유다에게 넘겨줄 정도로 가룟 유다의 ‘예수님 체포작전’에 정치당국자들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와 절차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래서 당국자에게 찾아가서, 받은 은 30량을 반납하겠다는 의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절차로서 당국자들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고, 가룟 유다는 심경의 변화로 인해 괴로워서 자살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은 30량은 자살한 자의 더러운 돈이기에 저주스러운 사태를 처리하는 용도로 쓰여지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오다가다 죽은 노숙자들의 시신처리장으로 밭을 사야 하고, 그것은 반드서 ‘토기장이’라는 직접을 가진 자의 토지를 은 30량으로 사야 합니다.

그런에 이러한 일연의 절차가 실은 예레미야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은 구체적인 실현이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주님께서 선택한 바가 있었기에 그 선택된 가룟 유다를 통해서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은 한치의, 착오로 없이 성취되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무관한 일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되는 식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식으로도 예수님께서 선택하셨기에 발생된 그 선택된 운명의 자국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가룟 유다의 자살 이 전에, 이미 예수님의 의한 가룟 유다의 선택이 먼저 수립되어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은 주변과 주위에 깔려있는 숱한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서 ‘약속에 의한 저주사태’를 파악하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결코 가룟 유다의 일이 나의 구원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 어떤 인간의 하나님의 약속이 우선이 아닌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성경책에 관심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신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자신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이 가룟 유다의 자살 사건에 자신들의 태도가 관여되어 있음을 앓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한 대제사장들은,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저주스러운 사태’에 약속 차원에서 관여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과 선택에 의한 일어난 일입니다. 따라서 만약에 자신이 가룟 유다처럼 저주받기로 선택된 자라면 가룟 유다의 심정이나, 대제사장들의 행동과 동일한 행위들이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즉 “가룟 유다의 죽음과 나는 상관없다. 동시에 예수님하고 나하고도 상관없다. 예수님이 죽든 말든 내 인생은 내가 꾸려나간다. 나만 잘대로 나만 편하면 인생 대 성공이다”라고 여기게 마련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드러낸다는 것은 곧 가룟 유다처럼 저주받기 작정된 자이기에 필연적으로 이런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룟 유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저주의 관한 약속’이 조금도 차질없이 이 역사를 통해서 성취되고 있음을 알고, 자신을 구원시키는 쪽으로 약속하신 그 약속의 고마움에 신명을 다 바쳐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가룟 유다를 보면서 마음을 낮추어서 내가 만드는 인생은 아예 성립되지 않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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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네이트  [정가한 자의 가격]

http://k.daum.net/qna/view.html?qid=3he4U

자유하라 (이준2) 이준 목사

마 27 9절도 오류가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 눈이 없지요

자유하라 | 2008-12-12 18:15

마27:9절도 오류가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 .... 눈이 없지요?

답변 4 | 조회 111

마27:9 - 이에 선지자 예례미아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비교 : 슥11:12,13 -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 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참고 : [정가 - value]라는 말이 있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으며 마27:9절과 는 전혀 관계가 없다 레27:12,14,16,19,23,25, 왕상10:28 = 대하1:16

참고 : <은 삼십>이라는 말은 성경 66권 중에

1. 구약 - 슥11:12,13 -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2. 신약 - 마26:15 -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27:3 -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마27:9 -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결론 : 마27:9절의 <예례미아>는 <스가랴>입니다. 이것은 마태라는 저자의 기억의 오류인 것입니다. 사단은 이것을 오류가 아니라하여 거짓을 믿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즉 이런 자들을 이단이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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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뽀영구님 08.12.12

성경은 예수님의 전도사인 사도 바울이 대부분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배운것도 많고 인품도 뛰어났으므로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 저자의 이름만 다르게 바꿔서 기록했을 뿐 , 그 내용과 글의 짜임새 표현 방식이 유사합니다. 성경의 오류는 많습니다. 앞뒤가 안맞고 이치에 맞지않는 말이 많지요.죄인이 기록!

무대뽀영구님 08.12.12

덧붙인다면, 마태라는 사람은 글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합니다. 성경을 기록한것은 생각도 못해 볼 일이지요. 대부분 복음서 저자들은 글쓰는 재주가 없고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 저자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34장16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다 짝이 있고 짝이 없는(=뜻이 다르면)말은 마귀소리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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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답변들 4개

한진수 님의 답변 (개신교 29위) | 2008-12-12 22:28 | 추천 1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할때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한말을 예레미야를 통해서 한 말이라고 기록한것이 오류라고 주장하시는 것이군요.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이름이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스가랴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 입니다.  그 말을 예레미야가했든 스가랴가했든 하나님의 말씀인것만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말을 성경으로 기록됐다면 그것은 오류라고 할수있지만 사람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말씀이 바뀐것은 아니며 그것을 오류라고 하는것은 지나친 관심인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 사람들은 그 말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것으로  알고있을수도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볼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먼저나온 선지자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스가랴가 인용해서 뜻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음도  배제할수 없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으로 오류라고 단정해버리는 님의 천진함이 귀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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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하라님 08.12.13

사람아. 하나님은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히시네. 스가랴가 한 말을 예례미야가 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오.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시오, 잘못말한 것을 옳다고 말하는 것은 사단의 수법입니다

한진수님 08.12.13

거짓말을 하는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정확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오류를 지적하는것은 님의 사단성이 작용한 것입니까? 그렇게 기록하게된 동기를 알아보려하기보다는 오류로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잘한 일이지요?

은산사랑님 08.12.20

틀린것은 틀렸다고 지적하는것이 옳은것입니다.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미신때문에 구구절절 변명하는것은 진리를 추구하는사람들이 해야 할 도리는 아니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제 때문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논리는 미신과 다를바 없습니다. 위에서 지적한 오류는 사소한 지적일뿐입니다.

한진수님 08.12.20

틀린것을 틀리지않았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사람의 손을 빌어 기록된것으로 번역의 오류일수도있고 어떤 사유가있을수도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려는데 촛점을 맞추고 그렇게 기록할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내는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며 단세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말입니다.

은산사랑님 08.12.21

결과를 먼저 정하지 않고 이유를 추적하는것에는 동의 하지만 교회에서 주장하는것처럼 결과가 정해진 조건에서 성경을 연구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님처럼 말씀하시면 얘기가 되지만 현재 교회에서 주장하는바는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는 너무 무지스러운 처사라 생각됩니다.

한진수님 08.12.23

그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면 상대적으로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일이될수있습니다. 진리가 무었인가를 찾는것이 중요한 일이지 어떤 원칙을 지켜야된다고 못을 박아놓는것은 서로 위험한 지경을 만드는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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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사 님의 답변 (개신교 2위) | 2008-12-13 06:49 | 추천 1

이준목사님은 성경의 그러한 내용들을 찾아내시는데 천재시군요

저도 하나 찾아드릴까요.

마태는 그런 관점에서 볼때 실수 투성이 입니다.
마태복음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에서 부터 시작하고 있죠

그리고 14대 14대 14대라고 합니다. 이것을 다 곱하면 42대가 나오죠.
런데 아브라함 부터 예수님까지 아무리 계수해도 42대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태가 기록한 왕들의 기록에는 빠져 버린 에수님이 조상들이 있고요.

마태가 이러한 실수가 실수일까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들이 거짓말 트성이고 모순 투성이 인가요?
그러한 것이 오히려 성경의 영감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성경저자들의 마음에 영감을 줄때 사상에 영감을 준것이지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을 주시어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는 하나도 틀림이 없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오류가 가득한 책으로 믿으시나요?
그렇게 되면 성경의 모든 것은 하나의 물거품이 될 것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믿을수 있는 책이 아닌 기만과 사기가 가득한 책으로 탈 바꿈 될 것입니다.

그렇게도 틀린 부분들이 많은 데도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것인가요?
라는 질문을 하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님이 말씀올렸고 저의 그러한 기록된 말씀의 틀린 부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구원을
이루시고 말씀으로 이끌어주시는 데는 전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의 그러한 글자한자 한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기록은 진리라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하나님이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것입니다.

님의 재주로 더 많은 곳들이 들어나 그것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우릴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임의 증거가 들언나게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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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본인작성원문출처 : [카페] "사랑의 십자가와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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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하라님 08.12.13

사람이 잘못말한 것을 진리라고 믿는 제7안식교 ... 그렇습니다. 안식교는 이단이니 어차피 거짓말을 믿는 것이지요/

자유하라님 08.12.14

님과 같은 이단들이 오류를 믿으라고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심에도 오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은산사랑님 08.12.20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책이라고 누가 그랬습니까? 그런 가치없는말이 성경에 쓰여있다고 그걸 믿으라고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정말로 한심합니다. 역설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지만 그것조차 허망하게 들릴뿐입니다.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전통신앙에 충실했을뿐 예수를 깨닫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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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way 님의 답변 (개신교 23위) | 2008-12-13 12:08 | 추천 0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가 오류를 범했으니 거짓말쟁이요

성경을 가감하는 자가 되었으니
이단이요 지옥에 갔을 텐데 어쩌지요?

그런데 계21:14 에 보니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성곽의 기초석에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네요!

님의 주장대로 마태가 오류를 범한 이단이라면 지옥에 갔을 터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도인 마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지옥인가요? 

이준 목사는 성경을 보는 관점(패러다임)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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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하라님 08.12.13

진리라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거짓으로 진리를 바꿀 수 있나요?

oneway님 08.12.15

맞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다는 것입니까? 마태가 거짓말을 했으니 지옥에 가야 하는데 왜 하나님의 천국에 있느냐구요? 님이 잘 생각해 보시구려!

자유하라님 08.12.15

보십시요. 목사들이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것과 사단에 의하여 말씀을 바꾸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마태라는 저자의 기억의 오류가 거짓말이 됩니까? 거짓말이란 고의적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은산사랑님 08.12.20

마태가 천국에있는지 없는지 누가압니까? oneway님이 갔다 오셨습까? 그런 무책임한말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안되지요. 성경에는 진리의 말씀이 있기에 귀중한것입니다.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 가르치는 목회자나 교회야말로 큰 잘못을 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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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작은자 님의 답변 | 2008-12-13 13:14 | 추천 0

목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군요.
그 이름 쓰질 말던지...

그 이름 사용한다면 철저하게 하나님편에서 일하시던지..

연구하는 방향부터가 틀렸구요

그 노력 그 시선으로
성경말씀이 왜 하나님의 말씀이고 왜
믿어야 하고 어떻게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고
그러함에도 왜 틀림없는지
연구하고 증명하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또,그렇게 말할려면
처음 원본을 보여주고 그것을  증명하고 그런 말들을 하던지요
자기도 모르는 말들을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 도움이 안되는 말이군요.

그러함에도 성경은 완전하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 말씀을 들을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2장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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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하라님 08.12.13

님은 거짓말이나 열심히 믿으십시요

극히작은자님 08.12.15

목사가 할 말이 아니군요. 어디소속 목사인가요?혹 안식일교 인가요? 앞에서 안식일교를 두둔하는 듯한 글을 하는 것을 봐서 하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은산사랑님 08.12.20

아직도 "축자영감설"이나 "성경무오설"을 지지하시는 분을 보면 신기하군요. 필사에필사를거치고 수많은 번역오류와 끼워넣기와 여러가지형식의 문서가 아직도 영험한 바위나 고목처럼 숭배되고 있다는건 샤마니즘이상으로는 생각할수 없습니다. 이제는 "믿음의신앙"에서 "깨닫고 행하는신앙"으로 관점을 바꾸시지요.

은산사랑님 08.12.20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는것은 그곳에있는 진주를 찾아내어 소유하려함이지 밭을 뭉개고자 함이 아닙니다. 예수님말씀조차도 오역되고 삽입된것을 보면 성경을 공부한다는것이 얼마나 좁은길을 가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옳다는전제속에 펼쳐지는 궤변은 "믿음의 신앙"외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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