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소멸)이야 말로 새창조
예수님이 사형대에 달리셨다.
그런데 혼자만이 달린게 아니다.
두 명의 강도와 함께 달리신다.
그 두 명의 강도와 예수님 이 세 명의 대화가
아주 가까운 죽음 바로 직전에 뱉어진다.
한 쪽 강도가 죽음의 와 중에서도 운을 띄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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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대화가 기가막히다.
천국을 거래하듯이 서로 주고 받겠다고
뭔가 일치점의 한 몸이냥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옆에서 듣는 강도의 말이
두 사람의 대화의 차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발언을 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민으로써 알게된 창조를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는 창조자를 죽이는 소멸의 증거로써 동원될 줄 꿈에도 몰랐다.
가장 창조를 잘 믿는 자들이
소멸로서 증거되는 십자가의 창조에 반드시 동원되는 자들로서
그 십자가의 어리석은 지혜에 빼도박도 못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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