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가시

해석당하는 자는 해석자에 의해서 배치 당할 뿐이고


모든 인간은 선악을 안다.
선악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것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습이다.
하나님만이 아는 선과 악에 대해서
인간이 한가닥 안다고 선과 악에 대해서 훈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그들에게서 해석할 길이 없는 악을 주님은 사단의 가시로 푹 찔러 심으셨다.
여기서 인간들은 반발을 표출하는 안색의 변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선악을 앎으로 인해서 어떤 인간도 마귀에게서 벗어날 자 없다.
왜냐하면 선악을 알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마귀에게서 해석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마귀에게서 배치 당하는 인생만 살 뿐이며 다른 인생이란 없다.

(히 2:15, 개역)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

그러나 이 사실은 인간만은 극구 부인한다.
그럴 리가 없으며 그런 하나님이란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인간 편이며 인간에게 마귀를 풀어놓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은 마귀가 심은 이런 메시아 관에 사로 잡혀 있는
갇힌자 포로된자 억눌린 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갇혀있지 않고 다만 로마 압제로부터 무지 무지 불편함을 해소되길 바랄 뿐이지 마귀에게는 갇혀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예수님을 죽일때에는 세리(자기 민족을 배신하고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게 바친 죄인 중의 괴수)보다 더 세리적인 발상으로 손을 잡고 죽을수 있을 정도로 융통성이 뛰어났다. 법은 언제든지 수정하면 되는 그런 위치에 서 있다고 본 것이다. 더 나은 선, 더 나은 법, 민족(선민)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위협자 예수 따위는 언제든지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이런 것이 갇힌자의 모습 포로된 자의 모습 억눌린 자의 모습으로써
예수님이 율법을 제대로 적용시켜서 모든 인간이 율법 아래 갇혀 버린 것이다.
법을 쥐면 쥘수록 더더욱 그 법에 의해 갇혀버리지 자유나 진리가 나올수 없다.
법을 쥔 그 자체로 진리요 자유라고 우기기만 할 뿐이다.
바로 그런 자기 법을 자신과 일치화 시키는
마치 하늘의 보좌를 자신의 경배의 열심 때문에 그 열심히 보좌를 삼키는 방식처럼 말이다.

주의 성전을 사모하는 그 열심인 그 일치성이 도리어 주객을 거꾸로 보게 되는
주님을 객체로 보고 객체가 주체 노릇을 하고 되는 식이다.

그런데 막상 그 보좌의 자리 법의 자리에서 나오는 것은
의와 인과 신이 아니라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지독한 자기집착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신을 더욱더 돈독하게 해 주는 가인의 이마표처럼
더욱더 자신의 성벽을 높이고 높이우는 바벨탑과 같은 가인의 성인 것이다.

(롬 5:17, 개역)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8, 개역)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9, 개역)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1, 개역)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선악을 아는 인간은 마귀의 해석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해석 당하는 자는 해석자의 노예이며 해석자에 의해서 배치 당하는 노리개일 뿐이다.

바로 이런 마귀에게 포로되었음을 포로된 당사자들은 인정할 리가 없으며
죄인이라는 수긍은 있을 수 없다.

더 강한 자가 외부에서 나타나야 한다.
죽음 보다 강해야 한다.
사망의 권세보다 강해야 한다.
마귀 보다 강해야 한다.

그 강함을 도적과 같이 표현했다.

능히 빼앗고도 남는 자의 표현일 것이다.

(마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자 이렇게 되면 모든 선악 아래의 구조와 율법 아래의 구조가 새로 재편성이 된다.

먼저 강한 자 인 마귀라는 주인을 결박했다는 그 증거와
세간을 늑탈함으로써 주인의 구조가 재편성 되었다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었고
남편이 바뀌었다.

종은 주인에 의해서 운명이 좌우되며 배치된다.

더 나은 강한자에 의한 재편성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도적으로 표현하고 마귀를 주인으로 표현한 것은
아직도 갇혀 있고 포로된 자임을 모르는
율법의 취지를 모르고 율법을 쥐고서 갇혀 있음을 모른채 도리어 법과 자신을 일치 할려는 자들에게 악마의 하수 노릇인 마귀에게 해석 당하는 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이요
의와 인과 신은 버린자 라고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여전히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여전히 감조차 못잡는 성화론자와 개혁주의자들은 더 심각한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자 라고 명령법으로 신조처럼 말하면서 가장 그들이 헌신짝처럼 수시로 의와 인과 신을 무시하면서 버리우는 자들이다.)

-



-
-



사도바울은 사단의 가시를 빼달라고 3번씩이나 기도한다.

그러나 거절 당한다.

어제 오후 설교처럼

다윗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저주의 상황
버리운바 된 우겨삼을 당하는 처지에
하나님은 나의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한다.

거절 당한다.

왜 그럴까?

하나님은 인간의 편이 아니라 약속의 편이다.
인간은 약속의 편인 이 언약의 의미를 모른다.

알아 봤자 선악적이다.

그래서 알수 없는 고난에 처하게 됨으로써
미래의 누구를 봐야 한다.
현재의 누구를 봐야 한다.
과거의 누구를 봐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미래의 자기 현재의 자아 과거의 자신 외에 모르면서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커녕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자신에게 한발짝도 과거 현재 미래에서 벗어날길이 없다.

갇혀버린 자요
포로된 자요
억눌려 버리운 바 된 자다.

강한 주인인 마귀에게 해석당하는 인간으로써
하나님을 해석하고 메시아를 해석하고 율법을 쥐고
율법 아래에 갇혀 버린바 된 것이다.

그 강한 주인을 결박하러 온 도둑이라는 빼앗는 자를 봐야 할 것이다.

사단의 가시를 통해서 누가 더 강한 자인가를
사도바울은
마치 원치도 않는 성령의 임신으로 인해서 율법에 의해 돌삐 맞아 죽어야할
율법을 쥔 남자들 남편들에 의해
종용히 끊침을 당해야 하는 그 마리아의 입장에서 사단의 가시 보다 더 강한 자를 봐야 할 것이다.

마리아는 졸지에 외부에서 덮친 영의 전쟁에서
사단과 예수님의 전쟁을 보고서
그 전쟁을 이 땅에 가시화 시켜 달라는 기도를 요청하고
둘이 싸움 붙이고 얍삽하게 자신을 뒤로 빠져 버린다.
(한나의 기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두 영적인 존재의 싸움을 붙이고서 뒤로 빠지듯
마리아는 마귀의 해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배치 속에서도
그 보다 더 나은 해석
더 강한 해석이 덮침으로써
마귀 보다 사단의 가시 보다 더 강한자의 해석에 배치 됨을 당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는
주님은 나 보다 강하심을
나의 주인은 마귀 보다 더 강하심을 통해서
주인을 결박하고 세간을 늑탈하는 도둑을 맞이하는 전리품의 입장이요
세간(물건 가구 종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입장)의 입장인 것이다.

사도바울은 마귀 보다 더 강한 분을 사단의 가시를 깊숙이 찔림을 통해서 증거한다.

주님이 그 강한 사단의 가시 보다 더 강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임을 비로소 법이 아닌 사랑을 봄으로써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방식이 아니고서는 알길이 없다.


십자가에 의해 해석당하는 자 만이
모든 것이 심지어 마귀 조차도 십자가에 의해서 배치 되는
십자가 지혜를 드러내는데 동원되는 것임을 .....

 
- 미완 -

Posted by 김 대식
,